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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북한 대표단의 싱가포르 호텔 숙박비용을 대신 내줄 계획이 없다고 5일(현지 시간) 밝혔다. 헤더 나워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북한은 호텔 숙박에 지불할 만 한 돈이 없다. 미국에 대신 내달라는 요청을 해왔느냐”고 묻자 “이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미국은 북한 대표단의 (싱가포르) 호텔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은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 호텔 숙박비 대납을 요청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3일 ‘미국은 김정은 호텔비를 지불할 신중한 방안을 찾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해 대납 논란을 촉발시킨 워싱턴포스트 존 허드슨 기자는 공영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은 (한국의) 햇볕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다른 때라면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일들을 했다”며 “(결과적으로) 북한은 다른 나라들에 흔치 않은 것들을 요구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는 만큼 일정 곳곳에 투입될 비용 역시 기록적인 액수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회담 장소로 확정된 카펠라호텔의 경우 △회담 장소 대관 △의전 비용 △‘베이스캠프’ 용도로 사용될 객실 비용 등을 더하면 하루에만 최소 10억 원 이상 필요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일 또는 11일 현지 도착이 유력한 가운데 양국 정상 및 관계자들이 쓰고 갈 숙박비가 얼마나 될 지도 관심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안을 위해 자신이 머물 스위트룸이 있는 층은 물론 그 아래 위 몇 개 층까지 통째로 빌릴 것으로 보여 3박 4일만 머물러도 객실 및 식사 등 부대비용이 수십 억 원에 이를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양국 정부가 자체 투입할 인력과 싱가포르 정부 제공 인력까지 합친 경비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당시 경비 비용으로만 이틀에 25만 달러(약 2억9000만 원)를 쏟아 부었다. 이번엔 자국에서 열리지 않는 데다 일정 역시 더 긴만큼 경비 비용도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회담 취재를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3000명 이상의 기자들이 얼마나 쓰고 갈지도 관심사다. 싱가포르 정부는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인 ‘포뮬러원(F1)’ 경기장 건물 안에 초대형 미디어센터를 준비 중이다. 정미경 전문기자mickey@donga.com신진우기자 niceshin@donga.com}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백악관 면담에서 김정은의 위임을 받아 원산 카지노 등 관광상품 개발 투자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이 원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미국발 외자(外資) 유치를 염두에 두고 사전 포석 작업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노동신문은 5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을 내년 태양절(김일성 생일·4월 15일)까지 최상의 수준에서 완공하기 위한 ‘군민궐기모임’이 4일 현지에서 진행됐다”고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현장을 찾은 김수길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최고영도자동지(김정은)께서 조국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끝없는 노고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흙먼지 자욱한 건설장을 찾아 건설자들에게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지난달 25일 이 지역 건설 현장을 찾아 빠른 완공을 지시한 것을 상기시키며 개발 독려가 김정은의 뜻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정은은 이날도 김수길이 대독한 메시지에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대진군에 총궐기하자”고 밝혔다. 북한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현금 벌이 차원에서 관광 분야 개발에 적극 나섰지만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6년 4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해(2015년)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 준공식 이후 1년 동안 공사에 거의 진척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근 다시 개발에 속도를 붙이는 모습이다. RFA는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원산관광지구 공사를 서두르다 공사장에서 화재가 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원산 등 일부 지역에 카지노를 세울 것이란 소문이 확산되자 일부 당 노선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불만까지 터져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4일부터는 원산 갈마비행장과 평양을 잇는 국내 항공노선까지 운영하고 있다. 결국 북한의 이러한 최근 동향은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 중 하나로 관광 분야 투자 지원을 우선 요청했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백악관 면담에서 김정은의 위임을 받아 원산, 마식령 일대에 카지노 등 관광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투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비핵화 조치에 따른 보상으로 ‘단계별’ 제재 완화 가능성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대신 김영철은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완전하고 신속한 비핵화에 나설 수 있다는 김정은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여 북-미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 양측의 세부 의제 조율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김영철은 면담에서 원산 카지노 조성, 마식령 스키장 증설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는 김정은이 1월 신년사에서 조성 계획을 밝힐 만큼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이곳에 카지노까지 조성해 국제관광단지로 운영하면 매년 5000만 달러(약 530억 원) 안팎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정부 내에서 나온다. 북한의 한 해 무역액(70억∼80억 달러)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규모다. 이는 북한의 달러 주 수입원인 석탄 수출, 해외 노동자 송출 등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막혀 있는 상황에서 관광사업을 통해서라도 어려운 사정을 타개해야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김영철은 대북제재, 특히 미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시행 중인 금융제재에 따른 고통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은 미국 주도의 금융제재로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국제금융결제 시스템 접근이 원천 차단되어 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내 북한 계좌 동결 조치 이후 중국 위안화, 러시아 루블화 등 다른 화폐로 외화 벌이에 나섰지만 경제 규모가 줄어들지 않는 한 달러 결제 금지가 장기화되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성 김 주필리핀 미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양국 협상팀은 이날 판문점에서 사흘 연속 만나 북-미 정상회담 핵심 의제에 대한 막바지 조율 작업을 벌였다. 협상팀은 필요하면 12일 정상회담 직전까지 의견 조율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은 4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고려항공 편으로 평양으로 돌아갔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베이징=정동연 특파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백악관 방문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관광 투자를 직접 요청한 것은 국제사회의 촘촘한 대북제재로 돈줄이 꽉 막힌 상황에서 일단 ‘달러의 숨통’을 틔워달라는 ‘SOS’로 보인다. 김정은이 원산 등 일부 관광단지 조성에 ‘다 걸기’ 수준으로 투자를 집중하는 가운데 트럼프에게도 관광 분야 투자는 제조업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데다 부동산 개발은 트럼프의 ‘전공’ 분야이기도 하다.○ 김정은, 트럼프 통해 ‘원산 살리기’ 나서 한미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김영철은 1일(현지 시간) 트럼프를 80분가량 비공개로 만난 자리에서 북측이 어떤 경제 보상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김정은의 의중을 전달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여러 곳 중에서도 원산을 콕 집어 투자 선호 지역으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2014년 ‘원산-금강산 관광지구 개발 총계획’을 발표하며 접근성부터 높였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군용으로 활용했던 인근의 갈마비행장을 2년간 공사 끝에 2억 달러(약 2100억 원)를 들여 민간공항으로 탈바꿈시킨 것. 갈마비행장은 최근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때 취재단이 전세기를 타고 내렸던 곳으로 기자들은 당시 “깨끗하지만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상황을 전한 바 있다. 원산-금강산 지구의 경우 2025년까지 78억 달러(약 8조3500억 원)를 투입해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세부 계획도 잡아 놨다. 원산-금강산 지구 개발이 중·장기 플랜이라면 여기에 속한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는 관련 사업성 초기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가늠자다. 그러나 김정은의 의욕과 달리 해외 투자자의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홍보 설명회까지 열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이 트럼프를 향해 비핵화 반대급부 명분으로 ‘원산 투자’를 요청한 건 경제총력 집중노선의 선봉에 선 원산을 살리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트럼프에게 카지노 계획까지 밝혔다. 외국인 관광객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서까지 내보인 셈이다. 최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은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원산에 세계적인 5성급 호텔과 카지노 건설 지시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김정은으로선 초강경 대북제재로 달러 수입원이 차단된 상황에서 미국 기업 등이 상대적으로 투자가 용이한 관광 분야를 발판 삼아 진출할 수 있다면 향후 체제 보장의 ‘방패막이’ 역할도 할 수 있다고 기대할 만하다. 트럼프 입장에선 미국인의 북한 방문을 허용했다가 나중에 비핵화 로드맵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언제든 사업을 불허해버릴 수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카지노는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일단 개장하면 안정적인 현금 수입원을 확보하는 ‘캐시 카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김정은이 군침을 흘릴 만한 카드”라고 내다봤다.○ 김정은 “제재 완화는 금융제재부터” 김정은은 김영철을 통해 트럼프에게 금융 관련 대북제재 해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단계마다 제재를 완화해 달라는 취지로 요구하면서 금융제재를 특히 먼저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는 당장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풀이된다. 금융제재 때문에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 역시 달러화를 기반으로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투자에선 ‘관광’, 제재 해제에선 ‘금융’을 강조하며 확실한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한편으로 비핵화 시점과 관련해 진전된 발언을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핵사찰과 관련해서도 미국 측 입장을 일부 수용하겠단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미 관계 개선에 러시아의 ‘견제’도 가시화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올 9월 러시아를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다고 4일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이반 멜니코프 러시아 하원 제1부의장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북한 대표단과 면담하던 도중 “(최근 방북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김 위원장에게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으며, 친서엔 ‘김 위원장이 올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4차 동방경제포럼 기간에 러시아를 방문해달라’는 초청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한기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그동안 공개적으로 거론한 적 없는 ‘종전선언’을 콕 집어 얘기한 것은 북한이 체제 보장을 담보하는 확실한 ‘안전장치’를 요구한 것에 대한 응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평화협정 체결로 가는) 문(종전선언) 앞에 섰다”고 밝히며 본격적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을 알렸다는 것이다.○ 트럼프 “종전을 얘기하고 있는 게 믿어지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종전선언 논의 사실을 밝히며 다소 들뜬 표정이었다. 그는 “(6·25전쟁은) 가장 오래된 전쟁이다. 거의 70년? (회담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것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70년’을 두 차례나 반복하며 역사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전 외교통상부 2차관)는 “자신이 종전선언 의미를 잘 이해하고, 또 관심이 많다는 걸 종전선언 당사자인 남북 모두에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가 그동안 별로 언급하지 않았던 종전선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건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제공 가능한 반대급부 중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조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종전선언은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 의회 동의가 필요한 평화협정에 앞서 종전선언부터 일단 던진 뒤 북한이 성의 있게 비핵화에 나서는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무조건적 일괄 타결에 방점이 찍힌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과 달리 ‘트럼프 모델’은 단계적·동시적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북한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프로세스를 담고 있다. 트럼프가 이날 “12일 회담에서 빅딜이 시작될 것이지만 서명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것도 일괄 타결식 비핵화는 실질적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종전선언은 북한에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기 위한 트럼프의 또 다른 ‘히든카드’라는 분석도 많다. 트럼프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구체적인 타임테이블도 일부 공개했다. “정상회담에 앞서서 (종전선언과 관련해) 논의할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어떤 것이 나올 수 있다. 문건에 서명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전 회담을 통해 종전선언 관련 입장을 정리한 뒤 정상회담 합의문에 관련 내용이 담길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 文, ‘살얼음 모드’ 유지하며 싱가포르행 준비 트럼프는 종전선언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지만 워싱턴 안팎에선 ‘섣부른 판단’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종전선언을 토대로 미국, 더 나아가 한국에 또 다른 요구를 하기 위한 디딤돌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트럼프-김영철 회동 이후) 북-미 간 벼랑 끝 회담이 일종의 ‘상견례 회담’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면서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아직은 중대한 양보를 하지 않은 것 같은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의 압박’이란 말을 더 쓰지 않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은 얄팍하게 합의하고, 느리게 합의를 이행해 제재 완화를 유도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핵 개발을 진전시켰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해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부는 일단 극도로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정전협정 서명국인 중국의 입장도 배려해야 하는 데다 결국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등 항구적 한반도 평화로 가기 위한 출발선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물밑에서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행을 준비하는 등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8일 또는 9일에 6·13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3일 “사전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독려 차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움직임을 고려할 때 다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제야 종전선언을 처음 언급한 만큼 12일 회담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발표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선 종전선언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수준으로만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남북미가 만나 선언하는 방식보다는 판문점에서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에 논의하거나 뉴욕에서 열리는 제73차 유엔총회(9월)에서 거론할 수 있다는 관측이 더 유력하게 오르내린다. 북한은 트럼프가 종전선언을 밝힌 만큼 평화협정까지의 시차를 기습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란 시선도 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미 관계 정상화, 평양에 미국대표부 설치 등이 패키지로 따라오기 때문.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는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회담 시작 30분 이내에 평화협정부터 들고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신진우 niceshin@donga.com·한상준 기자}

백발의 ‘대북 저승사자’가 이번엔 미국 뉴욕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과의 비핵화 논의 실무를 주도해 온 미 중앙정보국(CIA) 산하 ‘코리아미션센터(KMC)’의 센터장 앤드루 김 얘기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 센터장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90분간 만찬회동을 가질 때 폼페이오 옆에 단독 배석했다. 김 센터장은 김영철이 만찬장에 도착했을 때 건물 1층 밖에 나와 영접을 하기도 했다. 영어는 물론이고 한국어에도 능통한 김 센터장은 김영철이 전한 김정은의 메시지를 폼페이오에게 ‘한국어 뉘앙스’를 최대한 살려 전하는 데 집중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 센터장은 지난달 9일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동할 때 미 측 인사로는 단독 배석했다. 김 센터장은 올해 초부터 북한과 중국을 수차례 방문했고 김영철과도 조우한 바 있다. AP통신은 김 센터장이 이끄는 ‘CIA팀’이 판문점, 싱가포르 라인과 별도 트랙으로 북한과 사전 협상 중이라고 전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뉴욕 판문점 싱가포르 등 곳곳에서 북-미 간 동시다발적인 접촉이 진행 중인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갔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 ‘한국어 자원’ 싱가포르로 집결 지시 백악관은 최근 미국 재외공관 직원들 가운데 한국 관련 근무를 해서 한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대거 싱가포르로 차출 중인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통역은 물론이고 회담 기간 북한 인사들을 상대로 한 전방위적 정보 수집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미 정부 소식통은 “4일부터 15일까지 싱가포르로 출장가라는 문서가 발송됐다. 해당되는 사람들은 싱가포르행 출장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날짜 조정이 있을 순 있어도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그대로 진행한다는 게 현재 방침”이라고 전했다. 필요에 따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판문점에서 접촉해온 성 김 주필리핀 미대사, 마크 내퍼 주한 미대사 대리 등 한국어에 능통한 국무부 고위급 인사들이 차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한미군 내 대북감청 담당 군 인력도 차출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외교 소식통은 31일 “실시간으로 대북 감청 업무 등을 수행하며 대북 정보를 분석하는 주한미군 정찰 인력은 한국어에 능통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보기 드문 한반도 전문가들”이라며 “본국(미국)에서 이들을 어떻게 이번 회담에서 활용할지 고심 중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중심의 정보 라인과 주한미군 주축의 군 라인 ‘투 트랙’을 가동해 이미 집중적인 대북 정보 수집에 나섰다는 말도 나온다.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 기간 내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정찰부대원들의 경우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수년간 집중적으로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북 감청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부대원들은 북한 특유의 억양과 사투리까지 숙지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북한말 시험을 보고 북한의 최근 동향·정세 교육까지 따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상은 크게, 과거와 다르게, 빠른 비핵화” 판문점 의제 조율을 거쳐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회담이 마무리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어느 선까지 조율된 의제를 놓고 마주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 외교가에선 미국 측이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는) 더 크고, (과거와) 다르며, 더 빠르게(bigger, different, faster) 진행되기를 희망한다”는 표현을 주목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북한의 비핵화 보상은 크게, 비핵화 단계는 기존과 다르게 최소화하여 빠르게 진행하다는 ‘트럼프식 모델’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을 듯하다. 뉴욕 회담 결과에 따라 성 김 대사가 진행 중인 의제 실무 접촉이 하루 이틀 더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관계자는 “일부 디테일을 놓고 북측과 추가 논의해야 한다면 뉴욕이 아니라 판문점에서 진행될 것이다. 성 김-최선희 팀은 그런 이유 때문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싱가포르 현지에선 정상회담 장소로 여전히 샹그릴라 호텔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유력 일간지인 스트레이트타임스는 “외교사절 번호판을 단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미국 당국자들이 샹그릴라 호텔에서 목격됐다”며 “샹그릴라 호텔이 회담 장소로 결정될 거라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닛폰TV는 북한 측이 샹그릴라 호텔이 아닌 현재 미국 선발대가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카펠라 호텔을 회담 장소로 제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한기재 기자}

“북한의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그리고 탄도미사일을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폐기(Complete and Permanent Dismantlement·CPD)해야 한다.” 미국 백악관은 28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북한의 CPD 원칙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밝힌 ‘완전한 비핵화’ 의지는 물론이고 앞서 자주 언급됐던 CVID, PVID보다 비핵화 문턱을 끌어올린 개념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용어들은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줄다리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 같은 성격을 지녀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우선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 비핵화 원칙이다. CVID는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으로 2차 북핵 위기를 맞은 뒤 처음 들고 나온 개념이다. 하지만 북한은 CVID에 대해 “패전국에나 강요하는 굴욕적인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2005년 합의한 9·19 공동성명에는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달 초 취임사에서 들고 나온 개념이다. 기존 CVID에 ‘영구적’이란 표현을 더해 핵무기 해외 반출 등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를 강조한 것. 또 대량살상무기(WMD)까지 폐기 대상을 넓히려는 미국의 구상을 담았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한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겸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전격적으로 미국으로 보내는 건 북-미 정상회담을 불과 2주 앞둔 상황에서 최소한 합의문 초안에는 도장을 찍어야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판문점 실무접촉 등을 거치면서 북한은 미국이 들고 나온 ‘트럼프식 비핵화 모델’에 큰 틀에선 합의한다는 사인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영철이 29일 오전 베이징에 도착한 이후 당초 이날 떠나려던 미국행 항공편 예약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중국이 북-미 간 급속한 비핵화 논의에 긴장해 김정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김영철, 베이징서 ‘미국행 항공편’ 세 번 바꿔 김영철은 29일 오전 9시 45분(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 흰색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까지 맨 모습으로 등장해 서둘러 빠른 걸음으로 공항을 빠져나갔다. 최근 북-미가 협상에 속도를 냈고, 오전에 베이징에 도착한 만큼 이날 오후 미국행 항공편에 탑승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러나 김영철이 베이징에 도착한 뒤 일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초 이날 오후 1시 25분 워싱턴행 중국국제항공 비행기 탑승객 명단에 김영철의 이름이 있었지만 ‘30일 오후 1시 뉴욕행’으로 바꾼 데 이어 ‘30일 오후 10시 35분 뉴욕행’으로 예약이 변경된 것으로 전해졌다. 급기야 29일 밤에는 마지막 예약마저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에서 미국 행 비행기는 하루에 3편(워싱턴 1편, 뉴욕 2편)이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날 오후 7시 반 “김영철 부위원장이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고 트위터에 남겼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영철이 29일 오후 이미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복수의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김영철은 이날 공항에 도착해 몇몇 중국 측 인사들을 만난 뒤 중국 측 고위 인사들과 잇따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입장을 전해 들었다는 말도 나온다. 아무튼 김영철은 미국에서 우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협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외교 소식통은 “판문점, 싱가포르에서 가동한 북-미 실무접촉팀이 각각 의제, 의전 메시지를 (워싱턴 등에)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김영철-폼페이오가 이를 총괄 정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영철이 트럼프 대통령과 깜짝 회동을 가질지도 관심사다. 김영철에 앞서 워싱턴을 방문한 최고위급 북한 인사였던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군복을 입은 채로 2000년 10월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과 만났다.○ 비핵화-체제 보장 간극 좁힌 듯 김영철의 방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는 물론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철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로 대표되는 미국 측 요구에 근접한 김정은의 입장을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날 통화에서 북한의 핵무기,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폐기(Complete and Permanent Dismantlement·CPD)’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백악관이 28일(현지 시간) 밝혔다. 기존 ‘CVID’와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VID)’의 첫 단어들을 합친 것으로 더 강경한 비핵화 요구로 볼 수 있다. 비핵화 문턱은 높이는 모양새지만 북한의 체제 보장과 관련해선 북-미가 간극을 줄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은 CVID에 대한 반대급부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체제 보장(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런 사실을 밝히며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정확히 이런 논의를 했고 협상 이후에도 (계속될) 약속”이라고 강조했다는 것.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북한과의 대화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추가 대북제재가 무기한 연기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번 김영철의 미국행에는 강지영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과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전책략실장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지원, 민간 교류 등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베이징=윤완준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북한 비핵화를 놓고 담판을 벌이고 있는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8일 전날에 이어 다시 한번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마주 앉았다. 회담 결과에 따라 이르면 이번 주 내로 두 사람이 합의한 초안을 갖고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미 워싱턴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각각 방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싱가포르 북-미 담판을 앞두고 각 정상에게 정상회담 진행을 위한 최종 결재를 추진하며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 대사를 대표로 한 미국 협상팀은 이날 오전 판문점에서 이틀째 최선희가 이끄는 북측 협상팀을 만났다. 청와대는 협상을 위해 방한한 미 대표단에 경호처 소속 차량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27일(현지 시간) 트위터를 통해 “미국 협상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나의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북한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굉장한 잠재력을 갖고 있고, 언젠가 경제·금융 분야에서 훌륭한 국가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판문점 협상에서 북한에 핵무기 해외 반출을 통한 신속한 핵 폐기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비핵화에 상응하는 보상책으로 불가침조약 체결과 테러지원국 해제, 경제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문점 회동은 싱가포르 담판을 위한 1차전 성격이다. 복수의 한미 외교 소식통은 “김 대사와 최 부상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루고,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북-미 핵심 인사들의 상호 국가 방문이 될 것”이라며 “비핵화 로드맵은 북-미 최고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미 평양을 방문했던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을, 북측에서 비핵화 논의를 실무 총괄하는 김영철이 백악관을 방문해 마지막 합의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악관과 평양의 재가를 받은 합의문을 바탕으로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8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뒤 일본 기자단에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미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했다”고 밝혔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손효주 기자}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측 대표로 전면에 나서면서 그의 이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선희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겨냥해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저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하게 만들었다가 이번에는 실무회담 주역으로 나섰다. 최선희가 트럼프 행정부와의 악연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행을 결정할 중책을 맡은 건 그를 빼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대미라인의 핵심인 최선희는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 △6자회담 북측 차석대표 △북아메리카국장 겸 미국연구소장 등을 거쳤다. 1990년대부터 6자회담 등 주요 협상에서 통역을 전담할 정도로 영어에 능통해 뉴욕, 제네바 등 채널을 통해 대미 협상을 주도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측 인사들과 첫 대면 접촉에 나선 인물도 최선희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 역시 최선희에 대해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다고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외교관들은 앵무새처럼 준비한 말만 반복하는데 최선희는 생각이 유연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 배경에는 최선희가 한때 북한의 3인자였던 최영림 전 내각 총리의 수양딸이라는 ‘금수저 스펙’도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와 중국 베이징에서 같은 시기에 유학을 하기도 했다. 최선희는 실무접촉 미국 측 대표인 성 김 주필리핀 미대사와도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각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협상장에서 필요하면 둘이 따로 한국어로 대화하며 실타래를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한 양측의 베테랑 실무 협상팀이 전날에 이어 28일에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만나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해 ‘긍정적인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합의문 초안을 작성할 경우 북측 실무 총책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이번 주 내로 미 워싱턴을 방문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세 번째로 평양을 방문하며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막바지 밑그림을 그릴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3월 초 ‘번개 승낙’으로 문을 열었던 북-미 회담이 지난주 잠시 좌초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남북 정상의 ‘번개 만남’을 통해 극적 반전을 이룬 데 이어, 판문점 실무 접촉을 거쳐 역사적인 비핵화 합의문의 틀이 빠르게 마련되는 분위기다.○ 이틀 연속 판문점에서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 28일 복수의 한미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이끄는 미국 협상팀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북한팀은 이날 판문점에서 만나 비핵화 로드맵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전날 첫 번째 회담이 밤 늦은 시각 전에 끝난 것처럼 이날 두 번째 회담도 오후에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에는 검은색 구형 제네시스 차량이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에서 미리 나와 대기하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군 호위차량을 따라 북측으로 향하는 모습이 동아일보 취재진에 포착되기도 했다. 해당 차량은 청와대 소유의 차량으로 미국 협상팀이 탑승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이날 판문점 접촉이 정확히 몇 시간 이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미국 협상팀의 일원인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보좌관,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이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목격된 것을 감안하면 미국 협상팀은 북한과 ‘빠르게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한 미국 소식통은 “(실무회담이) 잘되어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초 북-미 실무협상팀은 29일까지 회담을 할 예정이었지만 사흘 연속 회담을 이어갈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정부는 장소(판문점)와 차량 등 부대 지원만 해주고, 실제 회담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상황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김영철, 이번 주 워싱턴행 유력, 폼페이오의 3차 평양행 가능성도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비핵화 실무협상을 통해 ‘합의문 초안’을 완성해도 ‘성 김 대사와 최선희 부상’급에서는 싱가포르행 최종 도장을 찍을 수는 없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재가를 받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합의문 전달은 각 정상의 ‘특사’가 움직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비핵화 합의문은) 성 김과 최선희가 최종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결국 트럼프와 김정은의 재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두 정상의 재가를 위해선) 결국 김영철이 백악관에 한 번 가야 하고, 폼페이오도 평양에 가서 (정상회담 합의문을 최종 확인받는) 마지막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북-미 협상팀이 마련한 비핵화 합의문의 초안이 늦어도 실무회담 마지막 날인 29일에는 마련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들고 김영철 통전부장이 이번 주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이 두 번 평양을 찾은 데 대한 ‘답방’ 형식으로 워싱턴을 찾는 의미도 있다. 폼페이오가 두 번 평양 노동당 본청을 찾아 모두 김정은을 만난 것을 감안하면 김영철 또한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합의한 ‘비핵화 합의문’을 들고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3차로 평양을 찾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은을 설득해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탑승하게 하는 확약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성 김-최선희의 판문점 채널과 의전 문제를 조율하는 싱가포르 채널과는 별개로 미 중앙정보국(CIA)이 직접 나서는 제3의 채널도 가동 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폼페이오 장관이 CIA 국장 시절 만든 별도의 트랙이 북한 정부와 다각도로 접촉하고 있다”며 “북-미 비핵화 논의를 실무 조율한 앤드루 김 CIA 산하 코리아미션센터장이 다시 한번 나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신진우 기자}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 주필리핀 미대사가 이끄는 미국 협상팀이 27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북측 협상팀을 만나 6·12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26일 전격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히자마자 하루 만에 북-미가 본격 실무 접촉을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한미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김 대사가 이끄는 협상팀은 27일부터 사흘간 판문점에서 최선희가 이끄는 협상팀과 실무 조율을 할 계획이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김 대사는 미 행정부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로, 특히 최선희와 오랜 기간 6자회담 파트너로 함께해 서로를 잘 안다. 김 대사가 우리말에 능통한 만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 보인다. 이에 따라 북-미 간에 비핵화 방식과 보상 체계 등을 놓고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협상을 마치고) 서울에 와 있다”고 확인했다. 앞서 김정은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북-미 회담이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문 대통령에게 ‘원포인트 회담’이라는 SOS를 요청해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에 이어 다시 한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통해 전쟁과 대립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밝혔다. 또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결단하고 실천할 경우 북한과의 적대관계 종식과 경제협력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점을 (김정은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그제(25일) 오후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며 이번 회담이 김정은의 요청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25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서한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한 다음 날이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에게 위임한 담화문에서 몸을 낮추며 미국과의 대화를 요청한 데 이어 곧바로 문 대통령에게 ‘깜짝 회담’을 제안하면서까지 회담 재개 의지를 밝힌 것. 김정은은 26일 문 대통령과 만난 직후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결과도 만들고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듣고), 북남관계 문제도 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도 “(김 위원장이) 6월 12일로 예정돼 있는 조미 수뇌회담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문 대통령의 노고에 사의를 표하시면서 역사적인 조미 수뇌회담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밝혔다. 북한 매체가 북-미 정상회담 날짜를 6월 12일로 보도한 것은 처음이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진우·손효주 기자}
김정은은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 당시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대화를 주도했다. 화통하게 웃고 농담까지 섞어가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한 달 만인 2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재회에선 한층 차분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모두 발언을 보면 유머러스한 농담도 없었다. 검은 인민복을 입고 검은 뿔테 안경을 낀 김정은은 발언할 때나 들을 때나 진지한 표정으로 문 대통령의 눈을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급박한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 우리 대통령을 초청한 만큼 최대한 예를 갖춘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내가 경청할, 회담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회동과 달리 대화 도중 눈을 자주 깜박이거나 시선 이동이 잦은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대신 꼼꼼하게 상황을 챙기는 모습도 보였다. 김정은은 배석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에게 “(회담 제안 후 열린 것이) 이게 하루 만이지?”라고 물어보기도 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우리가 매우 잘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싶다.” 26일(현지 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베네수엘라에서 풀려난 미국인 억류자를 환영하는 행사를 진행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회동이 끝나가던 무렵 기자들이 질문도 하기 전에 이 말을 불쑥 꺼냈다. 그는 “우리는 6월 12일 싱가포르를 살펴보고 있다”며 “(회담을 추진 중인 날짜는)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놓고 당초 예정대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평가해 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남북 정상 간에) 대화가 매우 잘 진행됐다”는 말을 네 차례나 반복했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향하는 긍정적인 대화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12일 회담 강행이 불가능하다’고 보도한 뉴욕타임스(NYT)에 대해 “또 틀렸다”며 비난하는 글을 적었다. 6월 12일 회담 개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 김, 통일각 실무 협상 후 “서울로 돌아왔다”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는 임무를 맡은 미국 측 선발대도 기존 일정대로 싱가포르로 떠났다. AP통신은 26일 “아직 열릴 가능성이 있는 북-미 정상회담의 실무 협의를 준비하기 위해 조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이끄는 선발대가 27일 싱가포르로 간다”고 전했다. 백악관과 국무부 직원 30여 명이 함께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이긴 부실장은 약 2주 전 싱가포르에서 북측과 만나려다 바람을 맞은 적이 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24일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이 마주 앉아 협상할 때 다루는 의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기 위해선 실무 단계에서의 실제적 대화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며 실무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대표였던 성 김 현 주필리핀 미대사가 이끄는 별도의 실무 협상팀은 남북 정상회담 다음 날인 27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북측 실무팀과 전격적으로 만나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의제 등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선희는 24일 담화를 내고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비난해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북-미 정상회담 취소라는 초강수를 두도록 유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최선희를 미 행정부 대표적인 북핵통인 김 대사가 만나 이젠 비핵화 의제를 논의하는 것. 주한 미대사를 지낸 김 대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지금 서울에 머물고 있다”며 통일각에서 북-미 실무회담을 마친 후 서울로 복귀했음을 확인했다. 김 대사는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아태차관보, 앨리슨 후커 미 국가안보회의 한반도 담당 보좌관 등 트럼프 행정부 내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를 이끌고 통일각으로 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슈라이버 차관보는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에도 동행했다. 김 대사와 실무팀은 29일까지 판문점에서 실무 접촉을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백악관 내 의견 통일’ 강조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 행정부 내엔 북한을 다루는 방법을 두고 조금도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대화파’ 폼페이오 장관과 ‘초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 비핵화 문제로 심각한 의견 충돌을 빚고 있다는 등의 언론 보도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백악관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통보한 24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나서 논란이 된 볼턴 보좌관의 ‘리비아 모델’ 발언을 적극 옹호하며 불화설을 일축했다. 이날 그는 “(리비아 모델과 관련된) 오해가 많다. 이는 재빠르고 결단력 있는 외교적 노력을 뜻한다. 카다피가 죽은 것은 관련 협상이 끝난 뒤인 2011년”이라고 주장했다. 핵무기와 관련 물질 등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것만을 ‘리비아 모델’로 봐야 하며 추후에 발생한 정권 붕괴를 이와 엮는 것은 곡해라며 볼턴 보좌관을 변호한 것이다. 한기재 record@donga.com·신진우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24일 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 후 원산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 밤 12시를 앞두고 한국공동취재단의 한 기자가 화장실로 이동할 때 닫힌 객차 문 너머로 북측 인사들이 다소 화난 목소리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트럼프가 회담을 취소했다”는 한 인사의 목소리도 들렸다. 통신 기기를 사용하지 못한 한국 기자단은 이렇게 우연히 북-미 정상회담 결렬 소식을 접했다. 미 CNN은 북측 관계자들이 회담 결렬 소식에 다소 ‘불편하고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분주하게 상부와 전화 보고를 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윌 리플리 기자는 “(기자들 앞에선) 예상과 달리 절제된 모습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북측 관계자들은 상부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는지 원산 호텔로 돌아와 한국 기자들 곁으로 왔다. 취재진이 호텔에 도착해 노트북을 켜고 관련 기사를 확인하자 모니터 앞에 다가와 기사를 함께 읽기도 했다. 다만 회담 결렬과 관련한 질문에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기자단은 애초 25일 오후 원산 갈마지구로 외출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취소 통보를 받았다. 원산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중 개발하는 곳으로 기자단에게 적극 홍보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 것. 일부 외신은 “호텔에서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창문 밖을 보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호텔 주변 경비가 강화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러나 북측은 일정 취소 등의 상황 설명은 하지 않았다. 기자단은 26일 오전 원산을 떠나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해 귀국길에 오른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길주·원산=공동취재단}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폭파 쇼’에 나선 24일, 오전 폭파를 마치고 찾아온 점심시간 다국적 기자단의 눈에 군 막사 처마에 달린 제비집이 포착됐다. 한 기자가 “제비는 방사능에 민감하지 않은가”라고 묻자, 북측 관계자는 “그만큼 (이곳에) 방사능이 없다는 얘기다. 방사능에 민감한 개미도 여기에 엄청 많다”고 답했다. 3번 갱도 앞 개울에선 동행하던 북한 관영 조선중앙TV 기자가 한국 취재진에 개울물을 마셔보라며 얘기했다. “파는 신덕샘물은 pH(산도) 7.4인데 이 물은 pH 7.15라 마시기에 더 좋다. 방사능 오염은 없다.” 북측은 이날 방사성물질 유출 가능성과 관련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들의 질의에 “문제없다”는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 풍계리 일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귀신병’이 돈다는 소문을 의식한 듯했다. 국제사회는 갱도 지하에 축적된 방사능 오염물질이 외부로 흘러나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북한은 풍계리가 안전함을 몸소 보여주려는 듯했다. 북측 관계자뿐만 아니라 기자단에 방호복을 지급하지 않았다. 공사현장에서나 쓸 법한 노란색 안전모만 하나씩 지급됐다. 그 대신 실제 위해성을 측정할 방사선량 측정기는 압수했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이번 폭파로 인한 방사성물질 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갱도 내부 암반에 구멍을 뚫고 폭약을 설치해 터뜨리는 내폭 방식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2∼4번 갱도를 폭파할 때 중간중간 상세히 설명을 하며 기자단의 이해를 도왔다. 폭파 전 갱도 안을 공개하고, 폭파 이후 현장을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당초 약속했던 전문가 참여를 거부한 것을 의식한 듯 ‘검증에 성의를 보였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다. 하지만 25일 공개된 폭파 영상을 보면 북한이 핵실험장 내 갱도를 재사용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폭파하진 않았을 거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갱도 입구 폭파 수준으로 폐기 흉내만 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북한은 갱도 폭파에 앞서 전체 길이가 1∼2k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갱도 중 입구 주변만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1∼2km에 달하는 갱도 내부를 모두 폭파해 붕괴시켰다면 후폭풍이 너무 커서 기자단이 폭파 현장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관람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측 관계자는 “5차례 성과적 핵실험을 한 갱도”(2번 갱도) “핵실험을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된 갱도”(3번) “큰 핵실험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게 특별히 준비해뒀던 갱도”(4번) 등으로 각각의 갱도 폭파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비핵화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의미 있는 ‘폭파 쇼’를 보였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풍계리의 마지막 폭파가 있은 지 6시간여 만에 김정은에게 한껏 격식을 차린 공개편지를 보내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화약 냄새가 채 가시기 전에 풍계리 폭파 쇼는 빛이 바랬다. 길주=외교부 공동취재단 / 신진우 niceshin@donga.com·손효주 기자}
지진이 난 듯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입구에 있던 흙과 부서진 바위 등은 물에 젖은 비누처럼 우수수 흘러내렸다. 굉음에 이어 하늘로 솟아오른 연기는 시야를 가렸다. 뿌옇게 사방을 둘러싼 연기는 해발 2000m가 넘는 만탑산의 자태까지 순간 가렸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24일 폭파했다. 폭파에 앞서 갱도 내부까지 전격적으로 다국적 기자단에 공개했다. 이날 오전 11시 폭파 작업에 나선 북측은 5시간 넘게 ‘불꽃 폭파쇼’를 이어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약속한 비핵화 행보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란 평가와 함께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에 이은 ‘비핵화 쇼 2탄’ 아니냐는 말도 현장에서 나왔다. 전날 숙소인 원산에서 출발한 5개국 공동취재단은 기차로 10시간여를 이동해 이날 오전 풍계리 현지에 도착했다. 북한은 오전 11시 가장 먼저 북쪽의 2번 갱도를 폭파했다. 2∼6차 핵실험이 이어진 2번 갱도는 구조가 구불구불해 폭파하기 까다로운 곳이다. 북한은 폭파 전 취재진을 갱도로 데려가 갱도 안에 설치된 폭발물을 확인하도록 했다. 북한은 이날 3개 갱도 모두 폭파에 앞서 취재진이 갱도 내부를 보도록 했다. 미국 CNN의 윌 리플리 기자는 “약 35m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설치된 축구공 모양의 폭발물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갱도를 본 취재진은 갱도에서 500m 이상 떨어진 안전지대로 이동해 폭발을 직접 지켜봤다. 2번 갱도에선 2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4명의 군인이 폭파 작업에 나섰다.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은 “촬영 준비됐냐”고 물은 뒤 ‘하나 둘 셋’을 센 후 폭파 지시를 내렸다. 입구 쪽에서 첫 폭음이 들린 뒤 안쪽에서 2번 더 폭음이 울렸다. 폭파 후에는 취재기자들을 갱도 쪽으로 다시 안내해 갱도 입구가 완전히 붕괴된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도록 했다. 3시간 후인 오후 2시 17분에는 서쪽 4번 갱도로 이동해 단야장(제련시설)까지 함께 폭파했다. 이어 오후 2시 45분 생활건물 등 5개 지원시설 폭파 작업을 하고 오후 4시 2분 ‘하이라이트’로 꼽힌 3번 갱도를 폭파시켰다. 한 번도 핵실험을 하지 않은 3, 4번 갱도는 핵탄두 실험을 하는 가장 안쪽 실험실부터 ‘ㄱ’ ‘ㄷ’자 모양으로 쭉 이어가는 갱도에서부터 입구까지 차례로 폭파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을 지켜본 체셔 특파원은 “북측 관리자가 폭파 직전 ‘3, 4번 갱도는 핵실험을 위해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췄던 곳’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3번 갱도를 북한이 정리한 건 비핵화 카운트다운을 촉진시키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이번 폐쇄 작업에 최소 100kg 이상의 폭약을 쏟아부으며 취재진 눈앞에서 비핵화 의지를 선전하는 ‘불꽃쇼’를 선보였다. 기자단은 “(폭발 당시) 통나무로 만든 관측소가 엄청난 광경으로 산산조각 났다” “갱도 입구에 전선과 많은 양의 플라스틱 폭발물 등이 엉켜 자태를 뽐냈다”는 등 폭파 전후 상황을 묘사했다. 북측 인사는 1번 갱도는 이미 핵실험으로 2006년 무너져 이번에 따로 폭파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갱도 폐쇄에 이어 군인들이 거주하는 장소인 막사를 폭파시켰다. 취재진은 폭파 행사 후 풍계리를 떠나 원산으로 향했다. 25일 오전 6, 7시경 원산역에 도착해 취재한 내용과 사진 및 영상을 전 세계에 공개할 예정이다. 취재진은 이날 원산행 특별열차 안에서 직접 본 폭파 행사를 국제전화를 통해 속보로 전했다. 다만 북한이 이번 폐쇄 이벤트에 전문가들을 배제한 데다 기자들의 답사 기회도 제한적으로만 허용한 만큼 완전한 폐기를 검증받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결국 국제사찰단의 본격 검증 전에 핵실험 관련 증거를 ‘인멸’해 면죄부를 받겠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풍계리=외교부공동취재단 / 신진우·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국 취재진의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행은 막판 반전으로 가까스로 성사됐다. 전날 외신 기자들만 원산에 데려간 북한은 23일 오전 9시경 판문점 연락채널이 열리자마자 취재진 명단을 수령하며 방북을 전격 허용했다. 취재진은 이후 급히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이동해 정부가 마련한 수송기에 탑승해 뒤늦게 풍계리 다국적 취재단에 합류했다. 북한의 기류 변화는 한국 취재진이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북측의 입국 허가를 기다리다 거부당한 뒤 비행기편으로 귀국하던 22일 밤 감지됐다. 통일부가 오후 9시 26분경 “북측이 23일 아침 명단을 수용하면 남북 직항로를 이용할 수 있다”고 알린 것. 정부 관계자는 “22일 저녁 한국 기자단이 타고 갈 수송기를 준비해 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이를 감안하면 남북 간에 22일 ‘한국 취재진 추가 합류’에 대해 일단 공감대를 형성했고, 북한이 23일 새벽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일부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힌 뒤 최종적으로 방북 허가를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국 취재진이 타고 간 항공기는 ‘공군 5호기(VCN-235)’다. ‘VCN-235’는 기존 군사 작전용 공군 수송기인 CN-235의 좌석 방향을 개조해 만든 귀빈 수송용 항공기다. ‘V’는 VIP를 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VCN-235는 정부 내 총 두 대가 있는 ‘쌍둥이 비행기’이며 다른 하나는 공군 3호기다. 모두 공군 현역 장교가 정조종사와 부조종사를 맡는다. VCN-235의 개조 전 버전인 CN-235는 20여 대가 있다. 공군 5호기가 원산 땅을 밟으며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정부 수송기의 첫 방북 기록이 됐다. 올해 3월 대북특사단 등은 방북 당시 모두 대통령 전용기이자 여객기 형태인 공군 2호기(보잉 737-3Z8)를 이용했다. 정부는 이번 공군 5호기 운용비 부담에 대해 “향후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손효주 hjson@donga.com·신진우 기자}

한국 공동취재단이 방북 마지노선으로 여겨진 23일 우여곡절 끝에 북한 원산에 도착했다. 이제 관심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에 집중되고 있다. 5개국(한국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기자단은 이날 오후 원산에서 풍계리행 특별열차에 탑승했다. 핵실험장 폐기는 이르면 24일 오후 전문가 없이 기자단 참관 아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열차 이동 중에 블라인드 걷지 말라” 한국 취재단은 23일 낮 12시 반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정부 수송기인 ‘공군 5호기’를 타고 출발해 오후 2시 48분에 원산 갈마비행장에 도착했다. 북측은 공항에서 짐을 꼼꼼히 뒤지며 방사능 측정기, 위성전화기, 블루투스(무선) 마우스를 압수했다. 마우스를 압수한 것은 혹시 있을 전파간섭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취재단은 갈마호텔에서 외신 기자단과 합류한 뒤 오후 7시경 원산역에서 특별전용열차를 타고 풍계리로 떠났다. 기자들은 왕복 열차표를 사는 데 75달러(약 8만1000원)를 냈고, 열차 내 매끼 식사비는 20달러(약 2만2000원)였다. AP통신은 “취재진에 침대 4개가 놓인 열차 칸이 배정됐는데, 바깥 풍경을 볼 수 없도록 창문엔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기자들에겐 ‘블라인드를 걷지 말라’란 지시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열차 출발을 저녁 시간으로 잡은 건 군사시설 노출을 감추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기자단은 풍계리에 인접한 재덕역에 24일 오전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원산∼풍계리 현장까지 직선거리는 270km 정도지만 철로와 도로를 통하면 437km에 달한다. 북한은 철로 사정도 좋지 않아 이동 시간만 최소 12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재덕역에 도착해 다시 버스와 도보로 2시간가량을 이동해야 마침내 길주군 시내에서 약 42km 떨어진 만탑산(해발 2205m) 계곡에 위치한 풍계리 핵실험장에 닿을 수 있다.○ ‘죽음의 땅’에서 야간 폭파쇼 펼쳐지나 풍계리에서 기자단 눈앞에 펼쳐질 첫 번째 광경은 ‘시꺼먼 입’을 벌린 갱도 입구일 것으로 보인다. 기자단은 북한이 마련한 4단짜리 전망대에 서서 풍계리 내 1∼4번 갱도 폭파를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앞서 1차 핵실험을 진행한 1번 갱도와 2∼6차 핵실험이 진행된 2번 갱도는 물론이고 아직 한 번도 핵실험을 하지 않은 3, 4번 갱도까지 모두 폐기하겠다고 공언했다. 핵실험장 폭파는 24일 오후에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북한은 23∼25일 중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했는데 하루 여유를 두고 펼칠 가능성이 크다. 일단 24, 25일 모두 구름만 조금 낄 뿐 대체로 맑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24일 밤부터 25일 새벽 사이 구름이 많고 소나기가 내릴 가능성은 있다. 북한은 3, 4번 갱도의 경우 갱도 맨 안쪽부터 순차적으로 재래식 TNT 폭약 등을 이용해 폭파할 것으로 보인다. 1번 갱도는 1차 핵실험 이후 이미 붕괴된 만큼 별도의 폭파 절차도 필요 없지만 2번 갱도의 경우 폭파 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조 자체가 구불구불한 데다 기폭실 주변 차단벽이 심각하게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게 정교한 사전작업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북한이 이벤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야간 폭파’를 감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008년 영변 냉각탑은 덩치가 커서 무너져 내리는 게 보이는데 이번은 동굴 폭파로 외부로 보이는 시각적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유일한 건 폭파로 인한 불꽃인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야간에 ‘폭죽놀이’를 하듯 폭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북측이 폭파 전 기자단에 갱도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북한에서 고위급 인사가 함께 참관할지도 관심사다. 방사능 누출 우려가 높은 현장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찾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이미지 기자 / 원산=외교부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