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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아들(12)을 둔 직장인 이모 씨(42)는 얼마 전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스마트폰을 갖고 놀던 아들이 한 걸그룹 멤버 사진이 올라온 게시글에 ‘맛있게 생겼다’고 댓글 다는 장면을 목격한 것. 이 씨를 더욱 경악하게 한 건 “인터넷 보면 다들 그렇게 하면서 논다”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아들의 반응이었다. 이 씨는 “아이가 한 행동은 성희롱이나 다름없는데 ‘장난삼아 했다’는 아이의 태도가 무섭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혁수 씨(30)는 최근 평소 이용하던 인터넷 커뮤니티를 즐겨찾기 목록에서 삭제했다. 연예인 사진에 달린 성적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댓글이나 외모에 대해 적나라한 품평 때문이다. 10살짜리 아역배우 사진에 달린 ‘성희롱 댓글’을 보고 나서부터는 아예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는다. 강 씨는 “아무리 가상공간이라고 하지만 도를 넘어선 언어 성희롱이 판친다”며 “범죄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흥밋거리로 삼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성적 불쾌감을 주거나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를 담은 게시글, 댓글을 쏟아내는 ‘키보드 성희롱’이 관용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심지어는 12세 미만 아역배우 사진에 성적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댓글도 무비판적으로 달리는 상황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는 연령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어 어린 아이들도 아무 죄책감 없이 키보드 성희롱에 노출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불법콘텐츠범죄 중 사이버음란물은 2014년 3739건, 2015년 3475건으로, 전체 범죄 건수 중 약 20%에 이른다. 최근 연예계는 도를 넘어선 키보드 성희롱에 적극 대응하는 추세다. 지난달 가수 아이유에 대해 키보드 성희롱을 일삼은 11명의 피의자에 대해 벌금형 처분이 확정됐다. 소속사 관계자는 “아이유에 대한 성적 희롱 등 입에 담기 어려운 불건전한 표현들이어서 공개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미성년자 멤버가 포함된 걸그룹 트와이스 역시 강경대응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소속사 관계자는 “성희롱성 게시글 수위와 양이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멤버들의 심리적 건강과 정상적인 활동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인터넷에서 성희롱성 발언을 쏟아내도 ‘직접 말하거나 만진 것도 아니니 문제가 안 된다’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 ‘키보드 성희롱’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 문제도 크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 허모 씨(36)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언어 성희롱을 습득한다”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돼있어서 건전하지 않은 성(性)인식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온라인에서 성희롱성 발언을 쏟아내는 식의 범죄를 성적 호기심에 자기 과시욕을 더한 ‘놀이’로 여기는 행위자들은 점차 희롱의 정도를 높여간다”며 “‘직접 성폭행한 것도 아니기에 성희롱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한국사회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인식도 현상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광장 민주주의는 직접적이고 참여적입니다. 광장엔 룰(rule·규칙)이 없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선동과 민중주의가 지배할 가능성이 큰 공간입니다. 광장의 요구가 정제되지 않고 바로 분출될 경우 우리나라는 분열과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한국 정치학계의 대표적인 비교정치학자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65)는 “극심한 격차가 있는 사회에서 다중(多衆·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집단)의 분노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그들의 행동은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촛불 100일을 맞아 ‘촛불과 광장’의 의미를 듣기 위해 이달 말 정년퇴임을 앞둔 임 교수를 최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만났다. 다중의 분노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세월호 참사, 저임금 노동과 청년실업, 과도한 교육비, 노인 빈곤 등 축적된 분노를 표출할 출구가 필요한 가운데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탄핵이라는 ‘우산’ 아래 다중의 분노가 집결됐습니다. 만일 이들의 요구를 의사당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은 혁명과 같은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불행한 후퇴를 겪을 수 있습니다.” 임 교수는 탄핵소추까지 불러온 촛불집회를 ‘촛불혁명’이라 일컬었다. “4·19혁명, 6월 민주항쟁 때는 화염병과 최루탄을 던지고 사람이 죽어간 반면 촛불혁명은 일종의 명예혁명입니다. 추운 겨울에 전국적으로 1000만 명(12주간 집회 참가 총인원)이 모였기에 ‘제3의 민주혁명’이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그는 “(전통적 집회 참석자뿐 아니라) 직장인, 청년, 주부, 농민 노동조합, 여성단체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다중이 이 혁명의 주체가 됐다”며 “대중과 민중 중심의 과거 혁명들과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국정 농단 사태로 ‘보수가 몰락했다’고 평한다. 국정 농단을 지휘한 세력은 물론이고 방관한 이들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아직 보수의 대안이 사라진 건 아니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보수 정당 후보들의 지지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보수적 가치를 표방하는 후보들은 사태를 수습할 ‘보수주의적 대응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탄핵 반대 같은 시대착오적 주장을 해선 안 됩니다.” 임 교수는 탄핵과 관련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심판’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적 신뢰(public trust)를 배신한 것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게 곧 탄핵입니다. 국민이 탄핵을 결정했고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절차적 정당성만 따져 탄핵을 인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미국 헌법을 제정한 1789년 필라델피아 제정회의를 예로 들었다. 그는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은 ‘탄핵은 의회의 권한’이라고 못 박았다”며 “미국에선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 상원에서 탄핵을 결정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상원의 역할을 헌법재판소가 대신 맡은 것뿐이다. 헌법재판관들은 법률가적 마인드를 갖고 탄핵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기본적으로 탄핵은 국민과 국회의 권한”이라고 밝혔다. 2014년 임 교수는 저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대한민국학술원상을 받았다. 이 책은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시간의 충돌과 공존’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한국 정치를 분석했다. 그는 “국정 농단 사태가 곧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언행에서 샤머니즘적 행태까지 보여주는 최순실 씨는 ‘전근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유신의 흔적과 탄핵이라는 민주적 절차는 ‘근대’다. 동시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다중이 소통해 촛불집회를 여는 것은 ‘탈근대’적 요소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사회는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동시에 섞여 있다는 분석이다. 임 교수는 “이성의 질곡을 메우면서 역사는 발전해 왔다”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출 수도 없고 멈춰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모순을 해소하면서 계속 진보해왔습니다. 이번 국정 농단 사태는 ‘박근혜의 위기’일 뿐 ‘대한민국의 위기’는 아닙니다. 다중의 요구는 우리에겐 한 차원 더 진보하는 기회가 될 겁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임혁백 교수는 서울대와 미국 시카고대(석·박사)를 졸업한 뒤 1991년부터 이화여대, 미국 조지타운대와 듀크대 교수로 일했고 28일 19년간 근무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년퇴임한다. 김대중 정부 5년간 대통령자문정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2015년 대한민국학술원상을 받았다. ‘박정희 ERA’ ‘비동시성의 동시성’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안보와 평화’ 등의 저서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풍자 누드화 ‘더러운 잠’에 대항하는 의미로 박 대통령 지지자들은 표창원 의원이 아닌 그의 부인 누드화를 내걸었어요. ‘남성들의 정치’에서 박 대통령과 표 의원 부인은 같은 여성으로 대상화된 겁니다.” ‘페미니즘의 도전’ ‘아주 친밀한 폭력’ 등 2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학자 정희진 씨(50)는 “‘더러운 잠’은 여성혐오가 맞다”고 일축했다.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그는 국정농단과 촛불정국에서 불거진 각종 젠더(gender·사회적 성)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더러운 잠’과 관련된 얘기가 먼저 나왔다. “표현의 자유는 원래 약자를 위한 권리입니다. 한국 사회는 종종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권력’을 혼동하죠. 누드화에 박 대통령을 합성한 행위는 공적 권력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아닌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행위입니다.” 하지만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여성에 대한 비하는 다르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가령 ‘세월호 7시간 올림머리’를 욕하는 건 여성비하가 아니다”라며 “업무량이 많은 대통령이 공무수행을 해야 하는 시간에 올림머리를 하고 성형수술을 하는 것 자체가 국정유기”라고 비판했다. “메르켈과 힐러리를 보세요. ‘일하는 여성의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올림머리로 대표되는 박 대통령의 몸엔 ‘노동의 의지’가 없습니다.” 촛불집회에 등장한 노래 가사는 박 대통령을 ‘년’이나 ‘아줌마’로 지칭해 여성혐오 논란이 벌어졌다. 정 씨는 “놈과 년, 아저씨와 아줌마는 같은 위상의 단어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아줌마의 어원은 ‘임신한 여자’로 여성의 정체성을 임신과 출산으로 제한한 개념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을 지칭하는 년을 남녀를 막론하고 모욕을 주고 싶을 때 사용해 왔어요. 심지어 군대에서 남자들끼리 욕할 때도 그 단어를 쓰죠.” 최순실 씨 모녀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은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에 관련된 행위뿐만 아니라 외모로도 비난받았다. 특검에 출석한 조 전 정관의 민낯 논란이 바로 그 예다. 여성의 존재성을 외모로 환원시키는 건 좌우, 남녀 할 것 없이 마찬가지라는 게 정 씨의 입장이다. “심지어 요즘은 여성 작가들의 외모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언어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무기인데, 이마저 외모와 대결해야 하는 세상이죠. 박경리 박완서 작가가 예뻐서 위대한 게 아닌데 말이죠.” ‘광장의 조증(躁症), 일상의 울증(鬱症)’, 일각에서는 이번 촛불집회를 이렇게 묘사한다. 일상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광장을 찾는 시민도 있다는 의미다. 그는 “광장의 민주주의가 현실 정치의 변화뿐만 아니라 일상의 정치 영역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사회의 조직 문화, 학교, 가족, 인간관계는 스트레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광장은 이러한 문제가 함께 표출된 장이었죠.” 그는 탄핵 심판을 앞둔 박 대통령에 대해선 “역설적으로 국민이 대통령을 보호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감사해야 한다. 국민의 민주주의 역량 덕분에 아버지처럼 죽음과 같은 최악의 경우가 아닌 적법한 절차에 의해 명예 퇴진할 기회를 받았다.”라고 했다. 일각에서 ‘촛불혁명’이라 일컫는 것에 대해서 그는 “독재정권 아래 집회, 결사의 자유가 억압되면서 지식인 계층이 광장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광장의 역사는 구한말 만민공동회에서부터 시작됐다. 근대화를 위기로 인식했던 당대 민중들은 광장에 모여 횃불을 들고 집단토론을 벌였는데, 그게 촛불집회의 원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 역사를 잇는 시민에 의한 정치, 시민혁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저항한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유례”라고 평했다. 광장은 여성에겐 위협의 공간이기도 했다. 집회에 참가한 50대 남성이 여성을 성추행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 그그는 “광장에 모인 이들 모두가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나온 ‘시민’이 아니었다. ‘시민’이 아닌 ‘남자’가 광장을 악용한 셈이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광장에서도 여성 인권은 존중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탄핵정국 뒤 대선에서 젠더 이슈가 부각될까. 그는 “역대 미국의 대선처럼 동성애, 낙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진 않겠지만 이전의 그 어떤 선거보다 여성의 목소리가 클 것”이라고 봤다. 이어 “만일 대선 후보가 실수 혹은 젠더에 대한 무지를 보이면 젊은 여성 유권자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정희진은 현장을 바탕으로 연구해온 중견 여성 학자다. 대학 졸업 후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여성단체에서 5년간 상근자로 일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한 뒤 이화여대 서강대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는 저술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출근길 친구 A와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A는 새로 올라온 웹툰 이야기를 꺼내며 “그거 봤음? 완전 대박”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3주 전 돈을 지불하고 미리 본 내가 “돈 내고 이미 다 봤음”이라고 하자 A는 ‘호구냐’라며 맹비난했다. 그러더니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책을 들이댔다. 공유만으로도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에 ‘남보다 더 먼저 알려는 욕구’를 이용해 돈을 버는 포털사이트가 괘씸하다는 거다. 그 수법에 넘어간 독자 역시 호구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궁금함을 3주간 참을 만큼 인내심이 있지 못하다. 200원(1화 보는 데 드는 비용) 정도는 기꺼이 낼 만큼 돈도 번다. 비용보다 효용이 크기에 기꺼이 유료 독자를 자청했다. 지적 노동의 결과물인 책만큼은 선물로 주고받지 않는다는 한 여성학자의 글을 읽고는 근사한 정당성까지 부여받았다. 그렇다. 나는 몇 안 되는(?) 웹툰 유료 독자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J:작가님, P:포기하셨나요?, G:그림을’ ‘왜 0점 기능은 없어요?’ ‘내가 너보다 그림 잘 그려.’ 현재 네이버에 연재 중인 작가 임총의 ‘공감.jpg’에 달린 댓글들이다. 그림체의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작품성 논란에 휘말린 이 웹툰은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을 소재로 삼는다. 지난해 10월 연재 시작된 ‘공감.jpg’은 33화(9일 기준)가 올라왔지만 별점은 3점대다. 다른 웹툰이 최소 8점 이상의 별점을 받는 것에 비하면 낮은 편에 속한다. ‘공감.jpg’ 연재에 불만을 가진 독자들이 ‘별점 테러(낮은 별점을 주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매 화 2만여 개 달리는 댓글은 주로 작품의 내용이나 그림을 욕하며 희화화하는 내용 일색이다. 줄거리 자체는 크게 나쁘지 않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공감’이라는 소재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림 수준이다. 그림판으로 대충 그려낸 티가 난다. 선은 울퉁불퉁하고 채색 역시 단순하다. 독자들이 ‘정식 연재’에 걸맞은 수준이 아니라고 지적할 만하다. 웹툰계에서 네이버는 상당한 힘을 가진 플랫폼이다. 네이버에 만화가 정식으로 연재된다는 건 만화가에겐 등단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박탈감을 느끼는 만화가 지망생도 속출한다. 베스트도전에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는 A 씨는 “정식 연재를 하기 위해 날마다 연습하는 내가 초라하고 또 억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네이버는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편"이라며 "네이버웹툰을 방문하는 독자는 취향이 다양하며, 정식 등단을 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과 작가를 소개해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네이버 입장에선 욕하는 댓글이라도 많이 달리면 성공인 셈이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긴 한데,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5개 만점에 0.5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대학 입학, 군 제대 그리고 취업. 남자들은 보통 이 시기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한다. 한데 이게 ‘착각’임을 일깨우는 만화가 있다. 스무 살 청춘의 사랑과 성장을 그려낸 만화. 웹툰 ‘찌질의 역사’다. “‘변기 뚜껑을 열어보는 느낌’이 드는 만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밑바닥 이야기를 할 땐 용기가 필요하죠. 제 과거를 들춰봐야 하니까요.” ‘설익은 수컷’의 연애담을 민망하도록 자세히 풀어낸 이는 자취 요리의 대가로도 알려진 만화가 김풍(본명 김정환·39)이다. 9일 완결(유료 보기 기준)을 앞둔 그를 1일 서울 마포구 와이랩미디어 사옥에서 만났다. 현(現) 여친 개명하는 데 전(前) 여친 이름 추천하기(그 결과 민기는 두 명의 ‘설하’와 사귀게 된다), 이별 후 명품 구두 사준 게 아까워 데이트 비용 손익계산 하기, 결정적 순간 ‘내가 처음이냐’고 물어보기…. 주인공 민기의 행동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적나라한 찌질함’ 그 자체다. “사실 누구에게나 찌질의 역사는 있잖아요. 저 역시 30대 초반에 훅 몰락했거든요. 만화도 그리고 방송도 하고 사업도 벌였는데 이도저도 아니었어요.” ‘서른 즈음 김풍’은 “찌질한 흑역사 그 자체였다”고 고백한다. 당시 그는 ‘폐인가족’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지만 만화계에서 좋은 평판을 받지 못했다. 만화에만 오롯이 집중하지 못해서였다. “만화 그릴 때도 ‘어떻게 하면 빨리 해치울까’ 생각만 했어요. 그러다가 동료 작가들이 만화로 승승장구하는 걸 보는데…. 그걸 용심이라고 하나요? 질투는 들끓으면서 노력하지 않는, 정체된 삶을 살았어요.” 그에게도 기회는 왔다. 2011년 만화 ‘슬램덩크’ ‘원피스’를 펴낸 일본 최대 출판사인 슈에이샤(集英社)로부터 월간 연재 제안을 받은 것. 하던 일은 모두 접고 콘티 짜는 데만 9개월을 매달렸다. 물귀신을 주제로 한 공포물이었다. 하지만 원고를 보냈을 때 일본에서 온 건, 고쳐야 할 점을 적은 A4용지 4장 분량의 편지였다. “그 후로 몇 통의 편지를 더 받았어요. 스토리를 압축해서 보내 달라, 소재가 재미없으니 바꿔라, 한국적인 정서를 넣어 달라…. 원고를 보내고 수정 요청이 반복되는 지옥훈련을 2년쯤 했죠.” 일본 연재 건이 흐지부지될 무렵 그는 우연히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게 된다. 생기는 넘치지만 숫기는 없었던 스무 살 남자 대학생의 첫사랑 이야기였다. “물귀신 생각만 하다가 그 영화를 보니 울컥하면서도 남자 입장에서 많이 미화된 영화라 생각했어요. 그토록 찌질했던 이제훈이 어떻게 근사한 엄태웅으로 변했는지가 안 나오잖아요. 비어 있는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찌질의 역사’는 시작됐다. 학교 후배인 만화가 심윤수가 그림을 맡고 그가 스토리를 짰다. “단편 독립영화 찍는다고 생각했어요. 다수는 아니고 소수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겠다 싶었죠. 제가 하고 싶은 걸 한 거였어요.” 오판이었다. ‘찌질의 역사’는 독립영화가 아닌 블록버스터가 됐다. 독자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목요일 웹툰 3, 4위권을 유지했다. 매 화 댓글은 5000여 개가 달리고 3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찌질의 역사’는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그런 작품 있잖아요.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보면 ‘그걸 보던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거요. ‘찌질의 역사’가 독자들에겐 그런 작품이었으면 합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탄핵을 반대하는 반(反)촛불 세력은 점점 커지고 있고 강한 응집력을 지녔습니다. 맞불시위에 참여하는 시민을 설득해 마음을 얻지 못하면 급변하는 정국에서 역풍(逆風)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음모론의 시대’ ‘상생을 위한 경제 민주화’ 등의 저서로 알려진 중견 사회학자 전상진 서강대 교수(55)는 촛불에만 주목하고 반촛불 시위는 논의에서 배제하는 현 사회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현대사회의 청년-노년 세대 간 갈등 문제를 다루는 ‘세대 사회학(Generation Sociology)’을 연구해온 대표적 학자다. 촛불집회 100일을 맞아 최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정치인, 학자, 언론을 포함한 지식인 계층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맞불시위 참가 시민들을 혐오하며 논외로 둔다”며 “이들을 배제하는 것은 이른바 진보로 분류되는 야당 정치인들의 전략이지만 이는 크게 잘못된 접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촛불시위 참가 시민을 세 부류로 구별했다. △박 대통령을 원래 싫어했던 ‘구(舊)촛불’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마음이 돌아선 ‘신(新)촛불’ △탄핵을 반대하는 ‘반(反)촛불’이다. 전 교수는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탄핵 찬성 수치가 점점 올라가지만 반대 세력도 상당수 존재한다”며 “반촛불 시민들의 또 다른 불만과 분노를 어떻게 사회가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반촛불 시민은 주로 60세 이상 노인 세대다. 이들은 산업화 시대의 역군으로 헌신했지만 현재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60세 이상 1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67%에 이른다. 그는 반촛불 시민의 불만에는 ‘세대 전쟁’ 요소가 함축돼 있다고 지적했다.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회·경제·문화적 자본에서 소외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면 강력한 정치적 힘이 발휘됩니다. 유럽의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인 ‘아메리카 퍼스트’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는 또 이들의 분노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세대 간 싸움을 부추기기 위해 음모론까지 퍼뜨리는 정치권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가했다. 정치인들이 ‘싸가지 vs 꼰대’로 양분해 청장년과 노인 간 갈등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는 “갈등의 선이 잘못 그어져 있는데 한쪽(진보)에서는 젊은이, 다른 쪽(보수)에서는 노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촛불 이후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청년과 노인 세대의 이해가 절실하다는 게 그의 핵심적 주장이다. “청년과 노인 세대 모두 사회적, 경제적 약자입니다. 청년들은 유례없는 실업난에 시달리고 노인들은 모아둔 자산도 연금도 없는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야당의 ‘청장년 중심, 노인 배제’ 전략이 세대전쟁을 심화시켜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대표적 원인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최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 등 공직에 65세 정년을 도입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전형적인 청년 중심적 좌파 동원 전략”이라며 “청년에 집중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1980년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당선은 한국 사회에서 소중한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미국 노동계급이 ‘다이아몬드 수저’인 트럼프를 당선시킨 이유를 잘 살펴야 합니다. 트럼프는 대중의 고통에 다가선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엘리트 지식인 계층으로 사람들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반촛불을 이해하고 설득하기 위해선 혐오나 강압, 배제가 아닌 정공법(正攻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결국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엔 없습니다. 그들을 부정하기보다는 먼저 속내를 차근히 들어봐야 합니다. 연민과 공감을 토대로 먼저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전상진 교수는… 세대 간의 문제를 연구해 온 중견 사회학자다. 2003년부터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 일했다. 문화·교육·세대사회학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 ‘음모론의 시대’ ‘상생을 위한 경제 민주화’ ‘현대사회와 베버 패러다임’ 등이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세대분과위원회 민간위원을 지냈다.}

‘속옷만 걸친 소녀들은 고스톱을 치고, 소년들은 담배 연기 자욱한 방에서 몸에 문신을 새겼다. 그곳은 정애의 집이었다. 정애의 집은 늘 아이들로 붐볐다.’ 주인공 진주와 친구 정애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나쁜 친구’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열여섯 살 소녀 진주가 정애를 만나 ‘나쁜 친구’처럼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최경진(필명 앙꼬·34) 씨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지난달 세계 최대 규모의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새로운 발견상’을 받았다. 한국만화 최초의 수상이다. 4일 경기 성남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제가 겪었던 일들은 특별한 사건이었고 삶을 통째로 바꿔놨어요. 진주나 정애는 실존 인물이 아니에요. 저는 진주이기도 하고 정애이기도 하죠.” 작가가 ‘나쁜 친구’를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일탈과 비행을 일삼는 아이들과 친구가 된 그는 한동안 수치심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겉보기엔 나빴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착한 아이들이었어요, 그 아이들을 손가락질했던 과거의 저보다 훨씬.” 자신보다 열다섯 살 많은 엄마를 둔 아이, 아빠가 조직폭력배에게 살해당한 친구, 건달 아빠와 집 나간 엄마를 둔 소녀. 세상은 그런 아이들을 나쁜 친구라 불렀다.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달랐다. “(환경은) 선택이 아닌 주어지는 거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억울할 정도로 깊은 슬픔을 안고 인생을 끌고 가야 합니다.” ‘나쁜 친구’와 친구가 된 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것이 작가의 고백이다. 술과 담배, 유흥은 학교에서 ‘튕겨’ 나온 소녀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만화에는 정애와 함께 가출한 진주가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일하는 날이 묘사된다. 아버지뻘의 남성은 소녀의 몸을 더듬고 성폭행을 시도한다. 진주가 울며 뛰쳐나오자 노래방 사장은 6만 원을 쥐여주고 이렇게 말하며 돌려보낸다. “나도 너만 할 때 집에서 나왔어. 앞으로 이런 덴 얼씬거리지도 마라.” 방황하는 최 씨를 보며 아파한 건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매를 들었고 어머니는 몸져누웠고 언니는 말수를 잃었다. “아빠가 할 수 있었던 건 그것뿐이었겠죠. 아빠를 이해해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지켜봐 주는 가족이 있었다면 그 친구들도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거예요.” 긴 방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서 끝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던 그는 만화과에 진학했고 스무 살에 그린 만화 ‘엄마’가 공모에 당선되면서 만화가로 살게 된다.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열여섯 그때로 돌아가길 결심하고 ‘나쁜 친구’(2012년)를 완성했다. “당시 기억은 제겐 재밌는 이야깃거리였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큰 슬픔으로 다가왔어요.” 작업 도중 그는 이따금씩 내상(內傷)과 마주했다. 지금도 후미진 뒷골목을 살아가는 친구의 삶을 기억에서 퍼 올리다 보면 마음이 문드러진다고 고백했다. ‘나쁜 친구’는 만화가가 된 진주가 우연히 정애를 마주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정애의 얼굴엔 상처만 있을 뿐 표정은 없다. 홀로 정애를 알아본 진주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난 내 과거를 얘기하는 게 즐거웠다. 더 이상 그곳에 속해 있지 않으니 난 즐거웠다고.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고 만족했다. 그래서 그날 내가 너를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지난해 10월 29일 1차 촛불집회 이후 100일이 흘렀다. 촛불집회에 대한 찬반을 막론하고 한국 민주주의는 커다란 변화에 직면했다. 촛불은 무엇이었나? 광장의 에너지로 무엇을 개혁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조를 각인해야 하는가? 학계와 문화계 인사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촛불 100일과 이후 우리 사회의 길을 물었다. 》 “너무나 평범한 대선이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촛불 민심의 실망은 분명하다. 지금 보수 여당과 정부를 가리키고 있는 민심(民心)의 손가락질은 정권 교체 뒤 현 야당으로 향할 것이다.” 격동의 현대 한국 정치 연구에 평생을 바친 대표적 학자이자 현실 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74). 촛불집회 100일을 앞두고 3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촛불이 제기했거나 잠재한 이슈와 현 정치권의 발언 사이에 굉장한 거리가 있다”며 “근본적 개혁을 함축하고 있는 촛불의 요구를 읽고, 그에 대응하는 모습을 정치권에서 발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먼저 촛불집회를 평가해 달라. ‘촛불 혁명’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권위주의의 복원 시도를 중단시키고 민주주의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본다. 과거 민주화 투쟁과 달리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민주주의의 힘이기도 하다.” ―촛불집회를 이끈 동력은…. “정치적 분노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불만이 깊숙이 깔려 있다. 성장을 가져온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실존의 차원에서 겪는 이들의 누적된 분노가 촛불의 동력이 됐다. 그런 이슈가 집회의 구체적 구호로 부각되지 않은 게 또 이번 촛불의 특징이다. 실체적 요구가 등장하면 분열될 수 있으니 일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 퇴진으로 요구를 통일한 것이다. 시위대가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그런 분노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금 정당이나 대권 주자들이 제시하는 어젠다, 개혁안, 정책을 보라. 너무나 평범하다. 현 야당이 선거에서 이기고 정권 교체가 됐다고 치자. 그 뒤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겠나. 촛불이 기껏 ‘최순실 농단’ 하나 해결하려고 온 나라를 들었다 놨을까.(선거 전 탄핵이 인용되고) 대선 정국이 펼쳐질 때부터 민심의 실망은 시작될 것이다.” 그의 연구실은 촛불집회가 매주 열린 광화문광장 인근에 있다.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평소 성격을 보여주는 듯 깔끔했다. 양편 서가에 해외에서 발간된 정치학 서적이 가득했다. 말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고, 사전에 전달한 질문지와 인터뷰 내용이 사뭇 달라졌음에도 준비된 답변처럼 정돈돼 있었다. ―뭘 개혁해야 하나. “1960, 70년대 형성된 ‘박정희 패러다임’, 곧 국가와 재벌의 연합을 해체해야 한다. 재벌은 국가와 결합해 여러 특혜 속에 경제를 주도했고, 반대급부로 권력에 ‘준조세’를 내는 등 상호의존적 동맹 관계를 만들어 왔다. 이 유착을 끝내고, 대기업은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정치 제도는 어떤가. “(우리 정치사의) 양당은 사실상 같은 패러다임에 머무르면서도 과도하게 이념 대립적이고 투쟁 일변도의 정치 행태를 만들어 왔다. 내용 없는 극단 투쟁을 한 거다. 촛불의 긍정적 효과 중 하나가 다당제의 등장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는 4개 안팎의 정당이 온건, 합리적이면서 국정 운영 능력이 있는 센터(중도·中道)를 중심으로 경쟁하는 정치 구도가 필요하다.” ―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내게) 맘대로 정부 형태를 선택하라면 비례대표제로 운영되는 의회중심주의(의원내각제)가 최선의 정치 구조다. 양당제가 지속되면 분단 상황에서 양극화된 이데올로기 투쟁이 재연될 거다.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다.” ―최근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도 비슷한 주장인데 그를 염두에 둔 것인가. “아니다. 다당제를 전제로 한 말이다. 지금 현실적으로 개헌까지 하고 대선을 치를 수 없다. 당장 의회중심주의 구현이 힘들다면 프랑스식의 ‘준대통령제’나 다당제 상황에서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결선투표제가 차선으로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단순다수제는 양당제로 귀결된다. 물론 결선투표제도 대선이 2, 3개월 남은 상황에서 어느 세월에 선거제도 바꾸고 하겠느냐며 반대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현실은 그냥 이대로 간다고 본다.” ―그럼 개헌은 언제 해야 하나. “다음 정권에서 다 열어놓고 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 개헌 공약이 나오고 집권했을 때 정부가 중심이 돼 개헌한다든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지 않고서라도 하든가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은…. “그런 주장이 은근히 많은데 난 동의하기 힘들다. 대통령으로 집중된 권력구조를 혁파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대통령 임기를 8년으로 늘리자는 것 아닌가.” 대권(大權) 주자들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지만 최 교수는 “정권 교체를 바랄 뿐이다. 후보들 간에 충분히 경쟁해야 할 시점에서 누군가를 편드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 접근한 후보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특유의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대권에 대한 전망도 물었다. 우선 그는 “이번 선거는 여당의 궤멸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구조적으로 어드밴티지를 갖는(유리한) 선거”라고 했다. ―보수층 민심이 결집해 이변이 연출될 가능성도 있지 않나. “가능성이 적다. 선거마다 보이지 않아도 ‘틀’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는 정당 정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보수 후보가 진보 후보와 비슷한 득표를 하기를 바란다.” ―지지율 1위인 민주당의 어깨가 무겁다. “야당이 배전의 노력을 통해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 사명이 있는데 아직은 부족하다.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실제 정책으로 만들 정치력과 결단력이 없다면, 집권한다 해도 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국민의당이나 이른바 ‘중간 지대’는 어떻게 보나. “국민의당은 양당제 구조에서 온건 비판 세력으로 자기 위치를 정립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정당 기반이 약하다. 중간 지대는 양당 정치의 동요 과정에서 과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당장은 ‘중간 지대’가 누구를 대표하는지 정립이 안 돼 있다.” ―세대교체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좋은 문제 제기가 아니다. 교체는 연령의 문제가 아니다. 버니 샌더스(미국 민주당의 진보 정치인으로 올해 76세)도 있지 않은가.” ―정당이 당장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지금대로라면 대선 후보들은 작은 정책 대안을 모아 패키지 선거 공약을 내세울 것이다. 집권 뒤에는 결과적으로 좁은 분야의 전문가인 관료 지배적 형태가 나타나고, 이는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별 차이는 없을 거다.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당파적으로 대선 캠프를 운영한다면 새로운 인적자원을 끌어낼 수 없다. 이것부터 달라져야 한다.”조종엽 jjj@donga.com·이지훈 기자}

‘속옷만 걸친 소녀들은 고스톱을 치고, 소년들은 담배 연기 자욱한 방에서 몸에 문신을 새겼다. 그곳은 정애의 집이었다. 정애의 집은 늘 아이들로 붐볐다.’ 주인공 진주와 친구 정애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나쁜 친구’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열여섯 살 소녀 진주가 정애를 만나 ‘나쁜 친구’처럼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최경진 씨(필명 앙꼬·34)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지난달 세계 최대 규모의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새로운 발견상’을 받았다. 한국만화 최초의 수상이다. 4일 경기 성남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제가 겪었던 일들은 특별한 사건이었고 삶을 통째로 바꿔놨어요. 진주나 정애는 실존 인물이 아니에요. 저는 진주이기도 하고 정애이기도 하죠.” 작가가 ‘나쁜 친구’를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일탈과 비행을 일삼는 아이들과 친구가 된 그는 한동안 수치심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겉보기엔 나빴지만 누구보다 마음은 착한 아이들이었어요, 그 아이들을 손가락질했던 과거의 저보다 훨씬.” 자신보다 열다섯 살 많은 엄마를 둔 아이, 아빠가 조직폭력배에게 살해당한 친구, 건달 아빠와 집 나간 엄마를 둔 소녀. 세상은 그런 아이들을 나쁜 친구라 불렀다.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달랐다. “(환경은) 선택이 아닌 주어지는 거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억울할 정도로 깊은 슬픔을 안고 인생을 끌고 가야 합니다.” ‘나쁜 친구’와 친구가 된 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것이 작가의 고백이다. 술과 담배, 유흥은 학교에서 ‘튕겨’ 나온 소녀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만화에는 정애와 함께 가출한 진주가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일하는 날이 묘사된다. 아버지뻘의 남성은 소녀의 몸을 더듬고 성폭행을 시도한다. 진주가 울며 뛰쳐나오자 노래방 사장은 6만 원을 쥐여주고 이렇게 말하며 돌려보낸다. “나도 너만 할 때 집에서 나왔어. 앞으로 이런 덴 얼씬거리지도 마라.” 방황하는 최 씨를 보며 아파한 건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매를 들었고 어머니는 몸져누웠고 언니는 말을 잃었다. “아빠가 할 수 있었던 건 그것뿐이었겠죠. 아빠를 이해해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지켜봐 주는 가족이 있었다면 그 친구들도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거예요.” 긴 방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서 끝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던 그는 만화과에 진학했고 스무 살에 그린 만화 ‘엄마’가 공모에 당선되면서 만화가로 살게 된다.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열여섯 그때로 돌아가길 결심하고 ‘나쁜 친구’(2012년)를 완성했다. “당시 기억은 제겐 재밌는 이야깃거리였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큰 슬픔으로 다가왔어요.” 작업 도중 그는 이따금씩 내상(內傷)과 마주했다. 지금도 후미진 뒷골목을 살아가는 친구의 삶을 기억에서 퍼 올리다 보면 마음이 문드러진다고 고백했다. ‘나쁜 친구’는 만화가가 된 진주가 우연히 정애를 마주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정애의 얼굴엔 상처만 있을 뿐 표정은 없다. 홀로 정애를 알아본 진주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난 내 과거를 얘기하는 게 즐거웠다. 난 더 이상 그곳에 속해 있지 않으니 난 즐거웠다고.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고 만족했다. 그래서 그날 내가 너를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훈민정음 반포, 고려사 편찬 등 나라의 굵직한 의사결정이 있을 때마다 신하들은 반발했고 세종은 고심(苦心)했다. 하지만 세종은 전제군주처럼 신하들을 몰아세우지 않고 정책 토론으로 설득하려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 1일 출간한 ‘세종의 지식경영 연구’에 담긴 내용이다. 책은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이 토론과 설득으로 신하들과의 갈등을 조정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이끌어온 역사를 살폈다. 특히 ‘고려사’ 편찬 과정에서 세종과 신하들 간에 역사관 논쟁이 벌어졌지만 세종은 수년간의 토론 끝에 동의를 이끌어내 원하던 책을 완성했다. 훈민정음 반포(세종 28년·1446년)를 앞두고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반대 상소를 접한 세종은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고 반대 상소의 논리적 빈약함을 꼬집어 훈민정음 반포에 성공한다. 이 외에도 정치 지도자의 덕목을 정리한 ‘치평요람’, 중국이 아닌 조선의 농경 사정에 맞춘 서적인 ‘농사직설’ 편찬 등에 대한 세종의 지식경영 사례도 수록돼 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작가 앙꼬(본명 최경진·34)의 ‘나쁜 친구’가 한국 만화 최초로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상을 받았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28일(현지 시간) 열린 제44회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시상식에서 ‘나쁜 친구’가 ‘새로운 발견상’을 받았다고 29일 밝혔다. 이 축제는 세계 최대 만화 축제로 프랑스 5대 국제 문화 행사 가운데 하나다. 이 상은 지난해 11월까지 1년여 동안 프랑스어로 출간된 작품 중 3권 이하의 도서를 출판한 작가에게 주는 것으로 주로 신진 작가가 그 대상이다. ‘나쁜 친구’를 프랑스어로 출간한 프랑스 코르넬리우스출판사의 장루이 고테 담당자는 “새로운 발견상 수상자는 유럽 전역에서 크게 주목받을 정도로 영예로운 상”이라고 전했다. ‘나쁜 친구’는 이번 축제에서 최고 작품상인 황금야수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안타깝게 수상에는 실패했다. 최 작가는 “한국에서 혼자만 이상하게 살고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만화 덕분에 이 자리에 와 있다”라며 “앙굴렘을 소개해 준 출판사 ‘새만화책’의 김대중 대표와 작품을 끝내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나쁜 친구’는 2012년 국내에서 출간됐고, 사춘기 시절 어둡고 깊은 사색을 기발하게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돼 파리국제도서전에 공식 초청됐고 그해 3월 벨기에 브뤼셀만화박물관에 전시됐다.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태어나서 지금까지 동굴 주변을 떠난 적 없는 원시 가족 ‘크루즈 패밀리’. 동굴 밖에 온갖 위험이 가득하다고 믿는 아빠 그루그는 해가 지면 누구라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동굴이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크루즈 패밀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동굴 밖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여기에 호기심 충만한 가이까지 합세하면서 본격적인 모험이 펼쳐진다. 니컬러스 케이지, 라이언 레이놀즈, 에마 스톤의 목소리 연기도 들을 수 있다. 전체 관람가.}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위안부 관련 내용이 1997년 처음 등장한 이후 점차 사라져 지금은 단 1종의 교과서에만 실려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검정 통과한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중 2종은 위안부 관련 기술에서 ‘군이 개입했다’는 내용을 삭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23일 본보가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위안부 관련 내용을 기술한 중학교 교과서 9종 중 위안부 관련 내용을 기술한 교과서는 △1997년 7종 △2002년 3종 △2006년 2종 △2012년 0종으로 대폭 축소됐다가 2015년 1종의 교과서에 위안부 관련 기술이 등장했다. 그 결과 일본 중학교 교과서 9종 중 단 한 종의 교과서에만 위안부 관련 기술이 남은 셈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1995년 ‘태평양전쟁 당시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이후 발행한 교과서부터 위안부 관련 내용을 기술했다. 1997년판 교과서에는 ‘강제 연행’ ‘위안부 학살’ ‘참혹한 취급’ 등 위안부 문제에 관해 ‘군 개입’과 ‘강제성’을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부임한 2001년 이후 점차 위안부 기술을 축소해왔다. 지난해 검정 통과한 일본 고교 교과서 중 일부에서도 위안부 기술이 약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교과서 17종 중 11종에 위안부 기술이 있었는데 그중 2종에서 ‘군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등 관련 내용이 축소·삭제됐다. ‘시미즈쇼인(淸水書院)’ 교과서에 ‘일본군에 연행돼 군 위안부가 된 사람도 있었다’고 기술된 내용이 ‘모집된 여성들이 위안소로 보내지는 일도 있었다’고 바뀌어 ‘군 개입’ 사실을 축소했다. 또 ‘데이코쿠쇼인(帝國書院)’ 교과서에는 ‘여성이 위안시설에 보내졌다고 여기는 일’이라고 기술된 내용이 아예 삭제됐다. 일본 정부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군 개입을 인정하고 사죄를 통감한다’고 밝혔으나 교과서 속 위안부 역사는 지우고 있어 잊기 위한 사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 실장은 “일본은 총리 담화를 통해 수차례 사죄해왔지만 망각(妄覺)을 위한 사죄를 거듭해온 셈”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죽느냐 결혼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본격 계약 동거 버라이어티.’ 낯선 얼굴의, 연예인은 아닌 남녀가 화면 속에 등장한다. 이들은 ‘결혼 계약’을 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결혼의 조건’을 들이민다. 남자는 비뇨기과에서 성 기능이 온전한지 정자 인증서를 받아와 ‘남편의 조건’을, 여자는 노량진 어시장에서 회를 직접 떠서 ‘아내의 조건’을 충족한다. 남자의 이름은 신동훈(27), 여자의 이름은 채희선(25)이다. 이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은 이른바 ‘신채계약서’. ‘신’동훈과 ‘채’희선이 만나 결혼 계약을 한다는 설정이다.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진다. 가상 부부의 결혼생활을 다루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MBC ‘우리 결혼했어요’와 유사하다. “신동훈 씨는 2009년 무한도전 ‘돌+아이(I) 콘테스트’에서 만났어요. 그때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가서 그렇게 인연이 됐죠. 2013년에 다시 만났는데 그때부터 연인 콘셉트로 콘텐츠를 만들어 올렸어요.”(채 씨) 대학에서 공연예술학을 전공한 채 씨의 원래 직업은 리포터다. 지방 방송국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는 그는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쉽진 않았다. “리포터나 MC 같은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근데 텔레비전에 나오려면 개그맨, 탤런트 시험에 통과하거나 기획사 오디션을 봐서 연예인이 되어야 했죠.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런 채 씨가 처음 크리에이터(Creator) 일에 뛰어든 건 2015년 2월이다. 여기서 크리에이터는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생산하고 업로드하는 창작자를 가리킨다. 1인 방송 제작자에게 이 명칭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동영상의 창작자일 뿐 아니라 자신이 만든 동영상을 매개로 팬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도 함께 해서다. ‘돌+아이(I) 콘테스트’에서 만난 신 씨와 다시 만나면서 채 씨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신동훈 씨가 크리에이터 그룹인 ‘쿠쿠크루’ 멤버였는데 함께 영상을 찍어 올리지 않겠느냐고 물어봤어요. 죄다 남자 멤버밖에 없어 홍일점으로 영상에 나오기 시작했죠. 주로 동훈 씨 여자친구 역할이었어요.” 채 씨의 ‘유튜브 남자친구’인 신동훈 씨는 이미 오래전 ‘싸이월드’로 데뷔한 프로 인터넷 방송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게 취미였다는 신 씨. “셀프카메라 느낌으로 찍어서 당시 ‘핫’했던 싸이월드에 올렸어요. 그때 만 명 정도가 일촌신청을 했죠. 지금으로 치면 페이스북의 팔로어와 같은 거죠.” 영상 찍는 걸 즐겨했던 신 씨는 대학도 사진·영상과로 진학했다. 연출 지식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연출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주제는 일상, 유머 이런 거죠. 최근엔 ‘12시 내 고향’이라는 콘셉트의 동영상을 만들었어요. 밤 12시에 어디에서 뭘 하고 놀아야 하는지, 그런 내용을 담은 콘텐츠예요.” 제작과 출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이른바 멀티 엔터테이너인 이들이 함께 시작한 프로그램은 다이아TV의 ‘신채계약서’다. CJ E&M에서 MCN 채널로 올해 출범한 다이아TV는 두 사람처럼 일반인 크리에이터와 함께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다. 반드시 연예인이 아니어도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이른바 ‘인플루엔서(influencer)’들과 아이디어 회의부터 기획, 제작까지 함께한다. 기타 예능 프로그램과 콘텐츠 내용이나 콘셉트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다른 점도 있다. 크리에이터들이 기획부터 제작 과정에까지 참여한다는 점. “‘신채계약서’ 초기 기획은 다이아TV에서 해주셨어요. 그런데 기획회의에도 항상 참여하고, 촬영은 2, 3주에 한 번씩 합니다. 촬영 전에 두 번 이상 직접 만나서 회의도 하고요.”(신 씨) “단체 카톡방에서 실시간으로 회의해요. 새벽에라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 메시지를 보내죠. 또 저희가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촬영에서 적극 반영해요. 제작진과 크리에이터가 함께 만들어가는 콘텐츠라는 인식이 강해요.”(채 씨) 이들은 ‘신채계약서’ 외에도 자기만의 채널을 갖고 있다. 채 씨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31만 명을 넘어선다. 채널 이름은 ‘채채(Chaechae)’. 이 채널에서는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 그가 올리는 콘텐츠 주제는 주로 ‘최초 더러움 참기 도전’ ‘추억의 불량식품(=문방구과자) 리뷰’ ‘400g 대용량 아이클레이로 거대 액체괴물 만들기’ 등이다. 일반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다루지 않는 독특한 주제가 주를 이룬다. “일주일에 2, 3개 정도는 꾸준히 만들어 올리려고 노력해요. 콘텐츠의 질도 중요하지만 성실함이 제일 중요해요. 구독자들은 다음 영상을 늘 기다리거든요.” 신 씨 역시 자신의 이름을 딴 채널을 갖고 있다. 그 역시 자기만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을 주로 찍는다. ‘파멸의 어린이집 선생님 체험’ ‘광주의 밤 문화를 즐겨봤습니다’ ‘아이돌 콘서트 처음 가봤습니다. 에이핑크 사랑해’ 등이다. 조회수는 적게는 1만5000회에서 많게는 60만 회를 넘는다. “아직은 채널을 만든 지 얼마 안 돼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벌어요. 조회수 많이 나오면 많이 버는 그런 구조니까요.” 반면 채널을 만든 지 2년째 되는 채 씨의 수입은 적지 않은 편이다. “구체적인 액수는 말씀드릴 수 없고요.(웃음) 친구들이 그러는데 대기업 대리 이상만큼은 번다고 하더라고요. 연봉으로 따지면 그렇대요.” 남들 웃기는 걸 좋아하고 콘텐츠 만들어 올리기 좋아하는 두 사람의 소망은 같았다. “좋아하는 영상 찍으면서 계속 살고 싶어요. 고등학교 때 그런 생각 잠시 했었는데, 돈을 못 벌겠지 하는 생각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가능해졌잖아요.”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인터넷 동영상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엔 아프리카TV에서 방송을 하는 BJ(Broadcasting Jockey)가 별 풍선을 던지는 구독자와 대화하는 구성의 영상이 전부였지만, 이젠 기획에 편집까지 전문성을 더한 동영상이 제작되고 있다. 이렇듯 지상파 뺨치는 동영상을 생산해 내는 사람들은 ‘크리에이터(Creator)’, 이들이 만드는 동영상 콘텐츠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불린다. 이런 콘텐츠들은 크리에이터의 기획사 격이던 MCN(Multi Channel Network)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MCN 시장은 최근 확대되는 추세다. CJ E&M의 ‘다이아TV’, ‘트레져헌터’, KBS MCN인 ‘예띠스튜디오’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MCN의 포문을 연 건 CJ E&M이다. 2013년 ‘크리에이터그룹’이라는 이름의 MCN을 만들었다. 팀에서 시작된 것이 본부로 규모가 커졌고, 이달 초 MCN 전문 채널 방송국 다이아TV를 개국했다. 황상준 다이아TV 편성팀장은 “드림웍스, 디즈니 등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은 수년 전부터 MCN 같은 인터넷 플랫폼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tvN의 성공으로 방송사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진 CJ E&M의 ‘제작 문법’이 인터넷 동영상 시장에선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 “기존 방송 프로그램과는 달리 ‘소통’과 ‘공감’이 키워드가 되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송출하던 과거와는 완전 다른 방식이죠.” 출연자가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됐던 기존의 방송 프로그램과는 달리 MCN의 경우 출연과 기획을 함께 하는 ‘크리에이터’가 제작 과정 전면에 나선다. “프로그램에 PD나 작가를 두고 있긴 하지만 크리에이터에게 자율성을 많이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연예인보다는 콘텐츠 제작에 ‘감’이 있는 크리에이터가 필요하죠.” 수익 중 크리에이터가 가져가는 몫도 크다. 황 팀장은 “계약마다 다르긴 하지만 회사가 가져가는 수익이 절반을 넘지 않는다”며 “크리에이터마다 다르지만 시장 평균은 크리에이터가 8, 회사가 2 정도”라고 말했다. 국내 2위 MCN인 트레져헌터의 송재룡 대표는 MCN의 선두주자 격인 CJ E&M의 MCN 사업본부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송 대표는 “MCN 사업이 큰 틀에서 보면 방송채널 사업과 유사하다”며 “가령 나영석 PD가 독립해서 콘텐츠를 만든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3년 방문한 미국에서 그는 MCN의 가능성을 봤다. “디즈니가 MCN 회사인 메이커스 스튜디오를 1조 원에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걸 보고 ‘한국형 MCN’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함께 일하고 싶은 크리에이터의 조건으로 ‘재능’을 꼽았다. “크리에이터에게는 기획력이나 사물을 보는 센스, 편집능력 등이 필요합니다. 연예인이 아닌 콘텐츠 기획자로서의 자질이 있어야 해요.” 송 대표는 방송으로 얼굴을 알렸지만 출연이 잦지 않은 아나운서나 개그맨, 탤런트들이 크리에이터를 하고 싶다면서 회사를 찾는다고 했다. 송 대표는 “자기만의 채널을 갖게 되면 그 채널 안에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방송에 아무리 많이 출연해도 그 영상은 자기 것이 아니지만, 크리에이터가 만드는 동영상 채널의 경우 일종의 ‘오너십’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성 미디어그룹 중 강자인 KBS도 MCN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4년 MCN 사업팀 예띠스튜디오가 생겼고 2015년 6월 크리에이터를 뽑는 오디션을 실시했다. 고찬수 KBS N스크린 기획팀장은 “잘 알려진 크리에이터를 섭외하는 것도 좋지만 유명하지 않아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기존 PD 중 오리지널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인력을 데리고 MCN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KBS가 MCN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미디어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콘텐츠 수요자들의 소비 형태가 변해서다. 고 팀장은 “요즘 세대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소통한다고 생각한다”며 “콘텐츠 품질이 높지 않아도 출연자와 대화, 소통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KBS가 내놓은 오리지널 콘텐츠 중 가장 화제가 된 건 웹 드라마 ‘마음의 소리’다. 조회수 2600만을 넘어서며 광고까지 완판되는 등 대작 드라마 못지않다는 평을 받았다. 고 팀장은 “인터넷, 방송 등 플랫폼을 구별하지 않고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웹 콘텐츠용으로 제작했지만 역으로 텔레비전에서도 방송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광장의 민의는 새로운 문법의 정치와 접속하는 걸 원하고 있다. 정치의 세대교체를 통해 시대를 바꿔야 한다.” 18일 한국정치학회·사회학회 주최 시국 대토론회에서 “60대 이상 정치인은 조건 없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9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50대 연합 기수론’을 다시 강조했다. 송 교수는 이날 “세대 경험은 정치인의 중대한 결단에 반드시 작용한다”며 “60대 이상의 세대는 감각의 한계 탓에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신세계를 열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대안으로 주장하는 50대 정치인들은 대부분 구(舊) ‘386세대’다. “그 세대는 청년기에 책을 덮고 현실을 몸으로 체험한 세대로 천둥벌거숭이처럼 원초적인 면이 있었고, 무르익지 않았는데 정권을 잡아 서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라면서도 “그로부터 10여 년 동안 현실과 부닥치며 내공을 쌓고 세련돼졌다”고 했다. 그는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로 60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출마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50대 주자들이 소속 정당을 뛰쳐나와 함께 기존 정당과 대적하는 신선함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을 제외한 정당들은 지향과 기반이 뚜렷하지 않은 ‘월세 정당’에 불과해 강자에 맞서 대선의 새로운 판을 짜야 승산이 있다는 설명이다. 송 교수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50대의 중심 인물로 꼽으면서 문 전 대표 중심의 판세를 바꾸지 않으면 세대교체가 어렵다고도 했다. “안 지사는 이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문 전 대표가 당내에 견고하게 다져놓은 ‘성곽’을 넘어설 수 없다.” 송 교수는 특히 문 전 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것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패(大敗)라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고, 야당에서 오래 생존한 조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언어에 머무르고 있어 갑갑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 전 대표의 말은 미래의 씨앗이 보이지 않는 ‘도라지 위스키 시대’의 말 같다”고도 했다. 세간의 말이 많아 판단 유보라고 했던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에 대해서는 “검증이 안 됐고, 포퓰리즘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송 교수는 전날 토론회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안 전 대표는 과거에 비해 정치력은 성장했지만 상징적 자원은 오히려 잃었다”며 “그 갭(격차)을 메울 설득력 있는 정책과 말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신랄한 촌평도 이어졌다. “정치력이 없다. 대선은 70, 80%는 자신의 힘으로 돌파해야 하는 것인데 지지자들이 열광할 만한 철학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있다. 설 전까지 새로운 언어를 들려주지 못한다면 반 전 총장은 사실상 끝이다.” 25일 기존 칼럼과 새로 쓴 글을 묶은 신간 ‘촛불의 시간’을 내는 그는 “‘군주의 시간’이 지나고 ‘시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50대 주자들이 무정형인 광장의 에너지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정치적 비전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학문 영역을 넘어 이례적으로 현실 대선 주자를 구체적으로 촌평한 것에 대해 “토론회에서 학자들이 원론적인 논의를 하는 건 당연하다”며 “하지만 지금 시국에서는 진짜 필요한 ‘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는 것도 학자와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조종엽 기자}

추억은 미화된다. 특히나 그게 남자의 과거라면. 하지만 실제 과거는 기억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20대 초반의 남성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찌질했던 연애담을 수채화풍의 작화로 그려낸 웹툰, ‘찌질의 역사’가 그렇다. 답답한 나머지 보는 이로 하여금 암을 유발하게 한다며 ‘발암’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알린 김풍이 글을 쓰고 만화가 심윤수가 그림을 그린 ‘찌질의 역사’. ‘건축학개론’이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당시 문화 코드를 적절히 섞어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도 인기 비결이다. 2013년 한 술집, ‘찌질의 역사’는 시작한다. 주인공 서민기의 출국을 앞두고 대학 동기 4명이 모였다. 남자들의 수다는 민기의 첫사랑 근황 이야기로 옮아간다. 그렇게 웹툰은 ‘민기의 회상’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민기의 첫사랑은 델리스파이스를 좋아하고 돈가스를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그녀, ‘권설하’다. 연애에 서툴렀던 민기는 용기를 내어 고백하지만 처참하게 거절당한다. 하지만 민기에게도 기회는 온다. 첫사랑을 잊지 못했던 민기는 또 다른 설하, ‘윤설하’를 만난다. 새 여자친구였던 윤설하에게서 첫사랑을 찾는 민기의 모습에 독자들의 ‘발암’은 시작된다. 민기는 각종 ‘뻘짓’으로 윤설하를 떠나보내고 시즌2가 시작된다. 군대를 다녀오고 조금 나아지나 싶지만 시즌2의 민기는 여전히 찌질하다. 복학생 민기는 신입생 퀸카인 ‘최대웅’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고 연애를 시작한다. 남자 이름 같다는 콤플렉스를 가진 대웅이 민기에게 “어떤 이름으로 개명할까?”라고 묻자 민기는 “설하”라고 답해 대웅의 이름마저 ‘설하’로 만들어 버린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최설하’는 민기에게 이별을 고한다. 지난해 8월 ‘찌질의 역사’ 시즌3가 시작됐다. 30대가 됐고 방송국 기자가 된 민기, 어엿한 어른이지만 그의 ‘찌질한 역사’는 계속된다. 19일 업로드된 28화에서 민기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덧 나이가 삼십 대 중반이 됐는데도 여전히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남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는 어째서 이렇게 조금도 나아지질 않고 여전히 찌질할까.” 그렇다. 30대 민기는 여전히 찌질하고 독자는 여전히 발암 중이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18일 열린 한국정치학회와 사회학회 공동 시국 대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와 조기 대선 정국에서 대선 주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50대 기수들이 나서 연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60대 이상 정치인들은 조건 없이 물러나고, 50대 정치인들이 연합하고 전면에 나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60대 이상 세대는 최고의 성장 시대를 살며 자원을 독점한 세대”라며 “그들에게 복지는 ‘시혜’라는 개념이 강하므로 미래 세대의 희망을 반영할 정책을 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60대가 권력을 잡으면 광장 민심은 기득권의 것으로 장악될 가능성이 높다”며 “광장 민심이 요구하는 어마어마한 전류를 적합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가져가버릴 때, 청년들의 불만과 분노를 풀어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가 꼽은 50대 기수는 안희정 충남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들에 대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평을 남겼다. “안희정 지사는 행정력을 갖췄지만 ‘노무현의 현대화’ 버전이다. 안 지사는 ‘나는 노무현이 아니다’라고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남경필 지사는 거시·미시적 정책능력을 갖췄지만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사람에게 냉소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송 교수는 “정치권과 너무 떨어져 있어 중앙정치의 미세한 구조를 파악하는지 모르겠다”(원희룡 지사), “정책관은 있지만 박 대통령에게 대항하다 성장한 인물이라는 한계가 있다”(유승민 의원),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처럼 말은 잘하지만 행정력과 정치력은 확실하지 않아 보인다”(김부겸 의원) 등의 평가를 이어갔다. 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해서는 “워낙 (세간의) 말이 많아서 판단 유보”라고 했고 안철수 의원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60대이지만 50대 기수로 본다는 전제 아래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서는 “살림은 잘하는데 ‘지적 담론’이 떨어진다. 대권 리더십은 도덕적, 지적 리더십이 모두 필요하다”고 했다. 송 교수는 대선 지지율 1, 2위 주자인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서도 “문재인은 오리지널하지 않고, 반기문은 정치적이지 않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토론회 뒤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오리지널하지 않다는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늘에 있었기 때문에 문재인을 보면 노무현이 자꾸 보인다는 의미”라며 “노 전 대통령 시기의 정책이 아니라 이 시대에 맞는 자기만의 독창적인 정책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반 전 총장에 대해 “정치적 리더십을 증명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력이 있느냐, 이 질문에 대해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토론회는 ‘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탄핵·조기 대선 정국으로 접어든 한국 사회를 진단하기 위해 정치·사회학계의 대표적 학자들이 모인 자리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탄핵 정국의 동력으로 지목된 촛불 민심에 대해 △박 대통령을 원래 싫어했던 ‘구(舊)촛불’ △최순실 게이트로 마음이 변한 ‘신(新)촛불’ △맞불집회에 참여한 ‘반(反)촛불’ 등 세 부류로 나눴다. 전 교수는 “학계와 정치권, 언론계 등 지식인은 ‘반촛불’에 해당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감을 거두고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12주째 이어진 촛불집회를 ‘11월 시민혁명’이라 명명한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촛불이 정치적 주체가 되지 않는다면 일회성으로 끝날 것”이라며 “촛불과 시민은 위대하지만 기성 정치권이 변하지 않으면 과거처럼 촛불은 그대로 꺼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송 교수는 “박 대통령은 ‘아버지 종교’의 가장 충실한 교도였다”며 “국가권력의 사유화, 공공권력의 민영화와 같은 아버지 시대의 통치 방식을 30∼40년 후에도 아무런 자기검열 없이 따르다가 현 시대정신과 부정합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권에서 ‘향후 100년간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하지만 (성·性에 관한) 젠더 의식과 사명감을 지니지 않은 박 대통령을 과연 여성 대통령이라 부를 수 있나”라고 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50대 기수’ 등 대선주자 평가안희정 ‘노무현 아니다’ 커밍아웃을남경필 카리스마 부족한 게 문제원희룡 중앙정치와 너무 멀리 있어유승민 ‘대통령에 대항해 성장’ 한계김부겸 말 잘하지만 정치력 의문이재명 세간 말이 많아 판단 유보박원순 살림 잘하는데 지적담론 부족문재인 오리지널하지 않고반기문 정치적이지 않아}

세계적 석학이 노년에 이르러 탐구하고 싶은 주제는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언어 과학자이자 사회 참여적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노엄 촘스키는 이 책에서 세 개의 질문을 던진다. ‘언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이해력이 지닌 한계는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공선은 어떤 것인가’. 이것들은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이 책의 주제이자 촘스키가 평생에 걸쳐 고민한 명제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다소 광범위한 질문 아래 촘스키는 미시적이며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소리를 소음으로만 인식하는 동물과 달리 “아주 복합적인 소리를 생각과 결부시키는 능력”을 지닌 인간에겐 창의성과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 그렇기에 촘스키는 인간을 신뢰한다. 촘스키는 자유주의자이자 개인주의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촘스키의 ‘자유·개인주의자적 면모’는 언어·인지적 능력을 지닌 인간에 대한 강렬한 애정에서 비롯한다. 그렇기에 공공선(公共善)이라는 허울 아래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제도를 비판한다. ‘집단의 이상’을 맹목적으로 우선시하는 국가가 인간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상황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럼에도 그가 국가를 인정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세계 곳곳이 ‘자본주의 떼’로 뒤덮이는 사태에서 주변부로 내몰리는 많은 이들을 국가가 보호하기 때문이다. 탐구 정신에서 출발해 인간애로 귀결하는 그의 철학을 담은 이 책은 명저(名著)가 아닐 수 없다.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