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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1시경 덴마크 올보르의 정유라 씨 집 앞에 하얀색 BMW 차량이 들어섰다. 한 한국인 여성이 내리더니 집 문을 두들겼다. 한 눈에 봐도 어려보이는 이 여성은 몸매가 드러나게 딱 붙는 점퍼를 입고 털모자로 얼굴을 꽁꽁 싸맨 상태였다. 평소 취재진이 찾았을 때는 절대 문을 열지 않았지만 이 여성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정 씨 아들 보모로 추정되는 여성이 나왔다. 둘은 문을 사이에 두고 한국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정 씨 바로 앞집에 사는 주민 비비 씨는 10일(현지 시간) 본보에 마지막으로 본 정 씨 일행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했다. 이후 집 안에 있던 보모와 정 씨 아기는 자취를 감췄다. 정 씨 일행이 집을 비우는 과정에서 목격된 '어리고 마른 한국 여성'은 그동안 정 씨 조력자로 알려진 20대 남성 2명이나 중년 여성인 보모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비비 씨는 "평소 기자들이 오면 그 집에선 절대 문을 안 열어주는데 이 여성이 오자 바로 안에서 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이 여성의 정체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이 타고 왔다는 하얀색 BMW는 최순실 씨 일가가 독일에서 자주 타고 다녔다고 교민들이 주장하는 차량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정 씨의 새로운 조력자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 여성이 집을 찾아오기 5시간여 전인 오전 7시 30분~8시 사이에는 말이 들어갈 만큼 큰 검은색 동물운반용 트레일러가 집 앞에 섰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1시간여에 걸쳐 집에 있던 짐과 함께 평소 집에서 키우던 개와 고양이 여러 마리를 모두 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 씨가 독일에서 타고 왔고 늘 집 앞에 주차돼있던 폭스바겐 밴도 누군가가 운전해 함께 떠났다. 일각에서는 이 여성이 구치소에 구금돼있는 정 씨 아니냐는 추정까지 나왔다. 이번 이사는 정 씨 일행이 매일같이 집을 찾는 취재진 때문에 사생활을 침해받고 있다며 덴마크 아동복지부서에 새 거처로 옮겨달라고 요구해 이뤄진 만큼, 인도주의가 강한 덴마크 정부가 정 씨 일행이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워 할 수 있는 아기를 잠깐이나마 볼 수 있게 배려해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덴마크 검찰 관계자는 "정 씨는 계속 구치소에 구금돼있고, 밖에 나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부인했다. 구치소에 있는 정 씨는 호텔이 부럽지 않은 식생활을 하고 있다. 정 씨가 구금된 올보르 구치소에 따르면 식사는 아침에 빵과 치즈, 감귤잼, 시리얼 2종과 우유, 뜨거운 물과 티백이 제공된다. 점심은 매일 식단에 따라 달라지지만 반드시 따뜻한 음식으로 제공된다. 저녁에는 차가운 육류가 담긴 쟁반에 빵과 치즈, 우유, 과일, 뜨거운 물과 티백이 나온다. 식이요법이 필요하면 의사 진단서 첨부 하에 특별식을 요구할 수도 있다.올보르=조동주특파원 djc@donga.com}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덴마크에서 체포된 최순실 씨(61)의 딸 정유라 씨(21)의 조속한 국내 압송을 위해 독일 정부에 정 씨의 비자 무효화를 요청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앞서 우리 정부는 정 씨의 여권을 무효화했지만, 독일 정부가 발급한 비자는 여전히 유효해 이를 근거로 정 씨가 계속 해외에 체류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외교부에 따르면 정 씨의 여권은 이날 밤 12시에 효력을 상실했다. 특검은 그간 정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 절차와 동시에 여권 무효화를 추진해왔다. 여권 무효화를 근거로 덴마크 정부가 정 씨의 강제추방 및 범죄인 인도를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검은 이에 더해 독일 정부에 “정 씨의 비자는 유효한 여권을 전제로 발급됐지만, 여권이 무효화됐다”며 비자 취소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정 씨가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EU)에 속한 국가인 덴마크에 머무를 법적 자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여권 무효화 이후에도 정 씨는 독일 정부가 발급한 비자의 유효기한이 남아 있는 동안 덴마크와 독일 등 EU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 정부가 정 씨의 비자를 무효화하면 정 씨는 덴마크에서도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 비자 무효화가 이뤄지면 덴마크 정부가 정 씨를 추방할 가능성이 높아져 정 씨의 신병을 이른 시일 안에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특검은 기대하고 있다. 정 씨가 체포되면서 정 씨가 머물러 온 덴마크 집의 200만 원이 훌쩍 넘는 월세를 누가 낼지 관심이다. 정 씨는 체포 직후인 2일 올보르 법원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덴마크 집에는 정 씨의 아이(2)와 보모가 정 씨가 키우던 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정 씨의 덴마크 집 주인 수잔 슈미트 부부는 9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정 씨가 지난 3개월 치 월세는 모두 냈지만 이번 달 월세를 낼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슈미트 부부는 “정 씨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며 “만약 (정 씨가) 우리 뒤통수를 치면 바로 쫓아내버리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한편 정 씨의 말 거래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올보르 북동쪽 외곽 헬그스트란 승마장 측은 기자를 보자마자 “2분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고함을 칠 정도로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승마장 대표인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 씨는 삼성이 정 씨를 위해 구입한 명마 ‘비타나V’와 ‘살바토르31’의 거래를 중개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 올보르=조동주 특파원}

정유라 씨와 함께 10월부터 덴마크 올보르의 주택에서 은신했던 보모와 정 씨 아이, 남성 조력자 2명 등이 10일 모든 짐을 싸들고 돌연 사라졌다.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이들은 대형 동물 운반용 트레일러까지 동원해 집에서 키우던 개와 고양이들까지 데리고 떠났다. 이들은 주택이 노출돼 취재진의 방문이 잇따르자 부담을 느끼고 덴마크 당국에 요청해 새 거주지로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씨 일행이 거주하는 주택 앞 집 주민 비비 씨에 따르면 10일 오전 7시 30분~8시경 정 씨 집 앞에 검은색 대형 트레일러를 단 하얀 차량 1대가 도착했다. 이 차량이 도착하자 집 안에 있던 일행들이 신속히 짐을 실었다. 집 안에서 키우던 개 2마리와 집 뒷마당에서 키우던 고양이 여러 마리, 개 집 등도 모두 실은 트레일러 차량은 1시간여 만에 집을 비우고 떠났다. 정 씨가 당초 독일에서 타고 온 폭스바겐 밴도 누군가가 운전해 함께 사라졌다. 정 씨 일행이 새벽 어둠을 틈타 집을 비운 지 몇 시간이 지난 오후 1시경, 정 씨 집 앞에 하얀색 BMW 차량이 도착했다고 비비 씨는 전했다. 그에 따르면 차 운전석에선 젊고 마른 한국 여성이 두터운 점퍼로 온 몸을 감싸고 털모자까지 눌러 얼굴을 가린 뒤 집에 노크를 했다. 그러자 집 안에서 보모로 추정되는 또 다른 여성이 나와 대화를 나눴다. 정 씨 아기를 데리고 있는 보모와 일행들은 덴마크 아동복지기관에 연락해 "취재진이 매일같이 찾아와 프라이버시가 침해받고 있으니 새 거처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자 덴마크 당국이 공개되지 않은 새 집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에 짐을 꾸리고 트레일러를 단 차량과 폭스바겐 밴을 타고 사라진 이들은 그동안 정 씨를 도와왔던 20대 남성들로 추정된다. 그들은 보모와 아기를 집에 남겨두고 먼저 떠난 다음, 상황이 정리되자 또 다른 여성 조력자가 보모와 아이를 데리러 온 것으로 보인다. 비비 씨는 "집 앞에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한국어를 쓰는 듯한 여성 둘이 대화를 하는 장면을 봤는데, 그 이후엔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차량이 다시 떠나는 것만 봤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 씨의 덴마크 도피를 도와온 일행은 보모와 마부 이모 씨 등 남성 2명으로 알려졌는데, 비비 씨 말이 사실이라면 새로운 여성 조력자가 있다는 말이 된다. 혹시나 그 여성이 정 씨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 덴마크 검찰에 확인했지만, 정 씨는 아직 구치소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올보르=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정유라가 그 집에 사는 건 알고 있지만 직접 만난 적은 없다." 정유라 씨의 덴마크 집 주인 수잔 슈미트 부부는 9일 올보르 외곽 농촌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들 부부가 소유한 올보르 주택은 정 씨가 19개월 된 아기, 보모와 조력 남성 2명과 함께 3개월여 동안 은신처로 삼은 곳이다. 하지만 집주인이 세입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건 임대차 계약을 정 씨 대신 다른 사람이 해 걸 의미한다. 이는 정 씨 소유 독일 회사 비덱스포츠 대표이자 승마코치인 크리스티앙 캄플라데 씨가 정 씨의 덴마크 도피를 도왔다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이들 부부는 정 씨가 살던 올보르 시내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농촌 외곽마을에 살고 있었다. 주변엔 다른 주택 없이 광활한 농장만 있는 한적한 동네였다. 집 주인을 만나기 위해 집 문을 두드리자 잠시간의 정적 끝에 늑대만한 시커먼 개와 함께 집주인 남성이 나왔다. 동양인인 기자가 자신의 집을 찾아오자 정 씨 관련 일 때문이라는 걸 알아챈 듯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집 주인 부부는 정 씨가 지난달 월세까지는 모두 냈지만 정 씨가 체포된 이번 달치 월세를 낼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덴마크에선 집을 빌릴 때 3개월치 월세를 미리 내는데, 정 씨가 9월 27일에 올보르에 온 만큼 10~12월분까지는 선납된 것으로 보인다. 집 계약은 8~9월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정 씨가 살던 집은 지난해 7월 말까지만 해도 다른 세입자가 쓰고 있었다. 부부는 정 씨가 애완동물을 많이 키운다고 해서 계약서에 동물 수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고도 덧붙였다. 현지 시간으로 새해 첫날 정 씨가 체포되면서 200만 원이 훌쩍 넘는 월세를 누가 낼지도 관심사다. 정 씨는 체포 다음날인 2일 올보르 법원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땡전 한 푼 없다"고 말했다. 정 씨가 체포된 후에도 집에는 19개월 된 아기와 보모가 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집주인 부부는 "만약 (정 씨가) 우리 뒤통수를 치면 바로 쫓아내버리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정 씨가 월세를 내지 않으면 즉각 집에서 나가라고 할 거란 것이다. 정 씨가 구치소에 있어 직접 월세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 다른 조력자가 없다면 아기와 보모는 거리에 나앉게 될 수도 있다. 집 주인 부부는 '집을 계약한 당사자가 캄플라데 씨나 비덱스포츠가 맞느냐'고 재차 확인하는 질문에 사적 계약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다만 캄플라데 씨나 비덱이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순순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점으로 보아 그들에게 익숙한 이름처럼 보였다. 더욱이 집주인이 세입자인 정 씨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 정 씨의 말 거래 의혹의 중심에 서있는 헬스트란 승마장 측은 동양인 기자를 보자마자 "2분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고함칠 만큼 예민한 상태다. 승마장 대표인 안드레아스 헬스트란 씨는 삼성이 정 씨를 위해 마련해준 명마 비타나V와 살바토르31 등을 중개해줬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로, 정 씨의 덴마크 생활을 밝힐 핵심 열쇠다. 승마장 측은 그동안 "헬스트란 대표가 9일부터 휴가에서 복귀하니 그 때 찾아와 이야기를 들으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정작 9일에 찾아가니 일체 만남을 거부했고, 취재진이 정문 앞에 서있자 직원을 동원해 경찰에 신고했다.올보르=조동주특파원 djc@donga.com}
정유라 씨가 덴마크 구치소에서 나온 뒤 아이와 함께 현지 자택에 연금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범죄인 인도 결정 불복 소송 등이 길어지면 덴마크 당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정 씨를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9일 현지 법조계에 따르면 덴마크 법원은 정 씨의 신병을 한국으로 인도하느냐를 결정하는 재판이 길어질 경우 △흉악범이 아니고 △어린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인 데다 △여권이 무효화돼 다른 국가로 도주하기도 어렵다는 이유 등을 들어 이같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 예비 심리를 통해 정한 정 씨 구금 기간은 이달 말까지이며 현지 검찰이 연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일단 정 씨의 여권은 10일부터 무효화된다. 하지만 덴마크 당국이 여권 없는 정 씨의 이민법 위반(불법 체류)보다 현지에서 진행 중인 범죄인 인도 청구 심사와 향후의 인도 결정 불복 소송이 더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재판 기간 동안 정 씨는 덴마크에 더 체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정 씨가 1심이나 2심에서 패소하더라도 이미 구금된 지 수개월이 지난 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의 가택연금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정부는 2일 구금 연장 심리를 받으려고 덴마크 올보르 법원에 출석한 정 씨에게 직접 여권 반납 명령서를 건넸다. 당시만 해도 정 씨는 자진 귀국 의사가 강해 즉각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정 씨 여권은 구금 이후 덴마크 당국이 가져가 정 씨가 한국 정부에 반납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정 씨가 명령서를 받은 지 일주일 안에 여권을 반납하지 않으면 여권이 무효화되는데, 바로 10일부터다. 정 씨가 여권이 없는 사실상 불법 체류자라도 덴마크 당국은 자국 내에서의 재판 등 모든 사법 절차를 마친 다음에 한국으로 보낼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 검찰이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정 씨를 한국으로 보내주겠다고 결정해도, 정 씨가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낸다면 불법 체류자라도 1, 2, 3심 재판의 진행 기간에는 덴마크에 머물 수 있다. 정 씨가 현지 변호사를 새로 선임해 재판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선 만큼 재판 종료까지 최소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여권이 없는 정 씨가 자진 귀국 의사를 밝히면 즉각 임시 여행자증명서를 발급해줄 예정이다. 정 씨는 구치소에서 자유롭게 전화를 쓸 수 있지만 2일 심리 이후 단 한 번도 귀국 방법을 한국 정부에 묻지 않았다.올보르=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정유라 씨 한국 송환을 위한 덴마크 검찰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정 씨 송환 사건을 맡은 모하마드 아산 덴마크 검찰청 차장검사(사진)는 7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 만나 “1월 안에 송환 결정을 내릴 방침”이라며 “정 씨의 덴마크 영토 내 범죄나 덴마크에서의 생활 방식 등은 따로 조사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보낸 서류만을 바탕으로 인도 요건에 부합하는지 신속히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적극적인 의지와 한국-덴마크의 우호적 외교 관계를 고려할 때 현지에서는 이달 안에 정 씨 송환을 허가해주는 쪽으로 결론이 날 거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최재철 주덴마크 대사는 이날 정오경 아산 차장검사를 30분간 따로 만나 “한국에서 중요한 사안인 만큼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덴마크 검찰은 6일 국문 버전과 영문 버전, 참고자료를 모두 합쳐 200쪽 분량인 한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청구 요청서를 e메일로 수령한 뒤 하루 만에 개괄적 검토를 마쳤다. 주말인 7일에도 담당팀이 출근해 요청서를 들여다봤다.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핵심 내용에서 질문거리를 추린 다음, 이르면 이번 주에 경찰을 통해 정 씨를 신문할 방침이다. 정 씨는 구금 연장 재판에서 패한 얀 슈나이더 변호사를 코펜하겐의 새 변호사로 교체하며 인도 결정에 대한 이의 제기 소송에 대비하고 있다. 전임 변호사가 하루에 100통 넘는 취재 전화에 시달린 걸 반면교사 삼아 새 변호사는 철저히 신원을 감추고 있다. 덴마크 법조계에선 이 변호사에 대해 ‘슈나이더를 넘는 거물급’이라는 평가와 ‘거물급은 아니다’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코펜하겐=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이란에서 꾸란을 불태우는 내용의 미출판 소설을 일기장에 쓴 혐의로 구속된 여성 인권운동가가 남편의 71일간 옥중 단식투쟁 끝에 일시 석방됐다. 이란 여성인권운동가 골로크 이브라히미 이라이 씨(35)는 2일 남편 아라쉬 사데히 씨(36)가 71일에 걸친 옥중 단식투쟁을 멈추는 조건으로 일시 석방됐다고 BBC가 3일 보도했다. 아내는 며칠간 일시적으로 석방된 것이지만 석방 기한이 연장될 수 있다고 변호인이 밝혔다. 이라이 씨는 지난해 10월 24일 이슬람 가치를 모독하고 반체제 프로파간다를 유포한 혐의로 자택에서 체포됐다. 그는 영화 '더 스토닝'을 뼈대로 간통 누명을 쓰고 돌팔매질 당하며 죽어가는 여성의 심경 변화를 담은 소설을 일기장에 써둔 것이 죄목이 됐다. 소설 속에서 여주인공이 이슬람 성전인 꾸란을 불태우는 장면이 나온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당시 감옥에 있던 남편 사데히 씨는 아내의 체포가 부당하다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인권운동가인 그는 사이버공간에서 반체제활동을 벌이고 국가안보를 위협했으며 이슬람공화국 설립자를 모독한 혐의로 2015년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는 이란 당국이 출판되지도 않은 개인 일기장에 적힌 소설을 문제삼아 아내를 체포한 건 자신을 압박하기 위한 부당한 조치라고 아내의 즉각 석방을 요구해왔다. 그는 단식 기간 동안 체중 19kg이 줄었고, 지난달 중순부터 심박수와 호흡 등에 이상이 생겨 병원으로 이송된 상태다. 이라이 씨의 소설은 2014년 9월 이란 혁명수비대가 부부의 자택을 급습해 수색하면서 발견됐다. 당시 아내는 20일 동안 고강도 조사를 받은 끝에 풀려났고, 남편은 반체제 활동 혐의로 고문을 당한 끝에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다 올해 10월 이란 당국이 다시 이라이 씨를 체포하면서 소설을 문제 삼아 징역 6년을 선고하자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최근 부부가 갇힌 에빈 감옥 앞에선 이례적으로 수백명이 모여 부부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란에선 사데히 씨를 포함해 최소 8명의 정치범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중 3명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알려졌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이슬람국가(IS)가 2일 “영웅적인 전사가 나이트클럽에서 이교도적인 휴일을 즐기는 기독교인들을 공격했다”며 새해 첫날 새벽을 핏빛으로 물들인 터키 이스탄불 나이트클럽 테러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IS는 선전매체를 통해 “이는 터키가 무슬림을 피로 물들이며 공격한 대가”라고 밝혔다. 터키 당국은 범인이 25세가량의 우즈베키스탄 또는 키르기스스탄 출신 남성이며,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을 허리춤에 매고 사상자의 상체를 조준 사격해 피해를 극대화한 점으로 볼 때 철저하게 훈련된 병사 출신으로 보고 있다. 범인의 정확한 신원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범행 당시 구체적인 행적이 속속 파악됐다. 범인은 노란 택시를 타고 가다가 교통 체증 때문에 근처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총기를 꺼내 코트에 숨기고 최소 4분 동안 걸어서 클럽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보안요원을 사살하고 클럽 안으로 돌진해 최소 7분 동안 180발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아랍어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쳤고, 엉성한 터키어로 소리치기도 했다. 이후 혼란을 틈타 총을 버리고 코트를 벗어던진 채 택시를 타고 도주했다. 이번 테러로 사망한 39명 중 신원이 판명된 38명 가운데 27명이 14개 국적의 외국인으로 조사됐다. 터키인이 11명이며, 나머지 1명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새해 첫 붉은 태양이 떠오르기도 전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2017년 새해를 맞는 인파로 가득 찬 이스탄불 나이트클럽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무장괴한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하면서 경찰 1명을 포함해 최소 39명이 숨지고 69명이 다쳤다. 범인은 총격 직후 도망쳐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 하얀색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남성 괴한은 1일 오전 1시 15분경 이스탄불 레이나 나이트클럽 입구에 서 있던 21세의 경찰을 총으로 쏴 사살하고 내부로 침입했다. 그는 클럽 안에 있던 700여 명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퍼부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위치한 이 클럽은 패리스 힐턴, 지젤 번천, 우마 서먼, 케빈 코스트너, 스팅 등 유명 스타들이 종종 찾는 고급 클럽이다. 놀란 시민들은 밖으로 뛰쳐나왔고, 일부는 바로 옆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뛰어들어 몸을 피했다. 좁은 공간 안에 700여 명이 몰려 있다 보니 대피가 늦어지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BBC가 전했다. 외국인 손님이 많은 곳이다 보니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21명 중 16명이 외국인이었다. 사망자들의 국적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모로코, 레바논 등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가 많았다. 사상자 중에 한국인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총기 난사 직후 클럽에서 산타 옷을 벗어던지고 도주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지만 여전히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범인은 노란색 택시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일부 목격자 진술에 따라 범인이 최대 3명이라는 현지 보도가 이어졌지만 바시프 샤힌 이스탄불 주지사는 범인이 1명이라고 밝혔다. 터키 주재 한국대사관은 도주 중인 테러범의 2차 공격이 우려된다며 교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번 테러 공격을 “나라의 정신을 파괴하고 혼란을 야기하기 위한 극악무도한 시도”라고 규탄하고 “터키는 테러와 싸우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단체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터키 경찰은 그가 아랍어로 소리쳤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이슬람국가(IS) 소속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민간인들이 많이 몰려 있고 상대적으로 경비가 약한 소프트 타깃을 노렸다는 점도 IS 소행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IS는 2015년 프랑스 파리 때 공연장을, 지난해 6월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테러 당시 나이트클럽을 각각 공격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범죄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정황도 나왔다. 클럽 사장인 마흐메트 코차르슬란 씨는 “범인은 러시아제 자동소총 칼라시니코프를 썼다”며 “10여 일 전쯤 미국 정보 당국이 연휴 기간에 터키에 대한 테러 가능성을 경고해 보안 조치를 강화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터키는 지난해 IS와 쿠르드계 무장단체가 저지른 15차례의 테러로 260여 명이 숨지는 등 최악의 해를 보냈다. 이날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는 최근 한 달 사이 터키에서 일어난 네 번째 테러다. 하와이에서 휴가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에릭 슐츠 백악관 부대변인을 통해 “무고한 생명이 사망한 데에 애도를 표한다”며 “터키에 적절한 지원을 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 한기재 기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해소의 유일한 길인 ‘두 국가 해법’이 위기에 빠졌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28일 국무부 연설에서 최근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두 국가 해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거듭 촉구했다. 케리 장관은 미국이 2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중단 촉구 결의안에 기권 표를 던진 것은 두 국가 해법을 지키려는 미국의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며 이스라엘의 반발을 일축했다. 케리 장관은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뼈대로 한 두 국가 해법을 유지시키기 위한 중재자로서 역대 모든 정부가 해 왔던 선택을 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이-팔 국경 문제와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해결책,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수도 예루살렘 추진 등 향후 평화협상을 이끌어갈 6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정착촌 건설 중단 촉구 결의 채택 이후 이례적으로 미국 대사를 초치하고 대(對)유엔 관계 축소 검토 등 초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케리 장관은 “이스라엘은 지금 위험한 미래로 가고 있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역사상 가장 우파적인 어젠다를 밀어붙이며 국가를 민주주의의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스라엘이 두 국가 해법을 외면한다면 유대교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고도 했다. 하와이에서 휴가 중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1일 이집트가 안보리에 제안한 이스라엘 정착촌 관련 결의안에 대해 워싱턴의 국가안보팀과 통화하며 기권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8일 보도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 등이 기권할 경우 미 의회와 이스라엘의 거센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미국이 최근 이스라엘의 급격한 정착촌 확장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때가 무르익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기권했을 때 실익을 따져보니 해가 될 만한 것은 이미 다 일어난 것들이라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기권 표를 택했다고 한다. 안보리 결의안 투표에 직접 기권 표를 던진 서맨사 파워 유엔 미국대사는 이런 오바마의 뜻을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전화로 전달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후폭풍이 거셌지만 오바마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이 다시 국제사회 어젠다로 돌아온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이 테러리즘에 몰두하는 팔레스타인에 ‘립 서비스’를 해줬다며 케리 장관의 연설이 편향적이었다고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오바마 행정부의 이스라엘 정책을 취임 직후 폐기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밝혔다. 그는 트위터에 “미국의 훌륭한 친구였던 이스라엘이 무시당하는 걸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잘 견디고 있어라 이스라엘, (취임일인) 1월 20일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 적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덴마크 정부가 시리아로 건너가 ‘이슬람국가(IS)’에 투신한 자국민 최소 36명에게 억대의 실업수당 등 복지 혜택을 제공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북유럽의 선진적인 복지 제도가 IS의 신종 자금줄로 악용돼 온 것이다. 덴마크 현지 언론이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한 고용부 문서로 IS 병사에 대한 복지 혜택이 드러나면서 정부는 바로 환수 조치에 나섰다. 덴마크 출신 IS 병사 36명 중 34명은 지방정부로부터 직접 현금으로 실업수당을 받았고 나머지 2명은 정부가 보조하는 개인 실업보험 혜택을 받아 왔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덴마크 언론 엑스트라 블라데트를 인용해 27일 보도했다. 덴마크 정부는 자국민 IS 병사 36명 중 29명에게 부당 지급한 실업수당 등 복지 혜택 67만2000덴마크크로네(약 1억2000만 원)를 돌려받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7명은 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받은 총 금액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덴마크 의회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규탄했다. 실업수당을 받는 국민은 반드시 덴마크 노동시장에 즉각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IS에 투신해 시리아로 건너간 이들은 명백하게 부정수급에 해당한다. 덴마크인 실업자는 30세 이상이고 자녀가 없는 경우 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1만849∼1만3121크로네(약 185만∼224만 원)를 지방정부로부터 현금으로 받는다. 상황에 따라 주택보조금도 추가된다. 덴마크 정부가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실업자 수는 15만6000여 명이다. 국가가 지원하는 펀드에 기반한 개인 실업보험 가입자는 직장이 없는 최소 2년 동안 평균 1만6720크로네(약 285만 원)를 받을 수 있다. 덴마크에선 최소 135명이 IS에 투신해 유럽에서 벨기에 다음으로 수가 많다. 이번 언론 보도 전까지 36명 중 단 1명의 IS 병사만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파악해 경찰에 신고했을 뿐이다. 지난해 5월에도 IS에 투신한 덴마크인 32명이 실업수당 37만8000크로네(약 6500만 원)를 부정하게 챙긴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됐는데도 같은 사건이 반복된 것이다. 북유럽의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에서도 IS의 복지 악용 사건이 있었다. IS 수도인 시리아 락까로 건너가 지하디스트로 활동하며 IS 선전 영상에도 자주 등장한 마이클 스크라모가 정부로부터 최소 5만 크로나(약 658만 원)를 받아온 사실이 지난달 밝혀졌다. 한 영국인은 정부로부터 받은 복지수당을 인출해 벨기에 브뤼셀 테러를 감행한 IS 조직원에게 건네 재판을 받기도 했다. IS의 이라크 최대 근거지인 모술 정벌에 나선 이라크군은 당초 ‘연내 토벌’을 장담했지만 거센 저항에 부닥쳐 고전하고 있다. 미군 측은 26일 “IS를 전멸시키려면 최소 2년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다르 알 압바디 이라크 총리는 27일 “미군이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본다”며 “3개월이면 이라크에서 IS를 박멸시킬 수 있다”고 반박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무시하고 동예루살렘 정착촌 주택 건설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안보리 결의안 통과에 기권 표를 던진 미국이 배후에서 결의를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겨냥한 비판을 이어갔다. 예루살렘 도시개발건축위원회는 동예루살렘에 새 주택 618채를 짓는 방안을 승인하고 그동안 추진 중인 동예루살렘 정착촌 용도 신규 주택 5600채에 대한 건설 계획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고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가 28일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결의가 법적 구속력이 없고 제재나 징벌을 담지 않아 상징적인 성격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에 부정적이었던 유럽연합(EU) 내부에서는 이번 안보리 결의를 근거로 이스라엘에 대한 독자 제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U는 팔레스타인 지역 내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된 물건을 원래의 이스라엘 상품과 차별해 자유무역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착촌 주민들을 EU 국가에 입국하지 못하게 하거나 EU 기업과 은행이 정착촌에서 영업하는 이스라엘 기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미국은 내년 1월 15일 70여 개국이 참가하는 프랑스 파리 국제평화회의에서 그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견지해온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 원칙을 다시 제안할 방침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8일 이-팔 분쟁에 대한 외교담화에서도 이 같은 해법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측은 오바마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5일 전에 열리는 이번 회담을 자신이 중동 평화에 기여했다는 업적을 남기는 데 활용하려 한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번 파리 회의를 ‘현대판 드레퓌스 재판’에 비유하며 둘 다 프랑스가 부당하게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드레퓌스 재판은 유대인인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만 법정에 세웠지만 이번 회담은 이스라엘 국민 전체와 국가를 재판에 세우려는 시도라는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투항해서 이교도에게 성폭행당하고 살해되고 싶니? 너희는 그들을 죽이고 싶지?” 시리아 반군 누스라전선의 전 멤버로 알려진 아부 님르(본명 압둘 라흐만 샤드다드)는 16일경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에서 어린 두 딸 파티마(9)와 이슬람(7)을 품에 안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딸들에게 자살 폭탄 테러를 하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쳤다. 이슬람 전통 의상인 검은 부르카로 몸을 두른 부인은 두 딸을 끌어안으며 “신이 우리 딸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딸은 엄마 품에 안겨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다. 26일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자폭 테러를 종용받은 일곱 살 꼬마 이슬람 양은 16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미단 지역 경찰서에 혼자 걸어 들어갔다. “화장실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은 소녀는 경찰의 안내에 따라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다 품고 있던 폭탄이 터지면서 숨졌다. 외부에 있던 부모가 원격조종으로 폭탄을 터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테러로 경찰 3명이 다쳤지만 사망자는 소녀뿐이었다. 최근 중동 지역 소셜미디어에는 이들 부부가 두 딸을 끌어안고 자폭 테러를 종용하는 2분 52초 분량의 동영상이 퍼졌다. 자폭 테러 후 이슬람 양의 머리만 남은 끔찍한 영상도 올라왔다. 극단주의 이슬람 사상에 경도된 부부가 ‘지하드(성전·聖戰)’라는 미명 아래 어린 딸들마저 자폭 테러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사실에 중동의 무슬림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동영상에서 아버지 님르는 알레포에서의 반군 퇴각을 언급하며 “왜 남아서 더 싸우지 않고 녹색버스(반군 탈출용으로 정부군이 제공한 버스)를 타고 도망갔나”라고 성토했다. 이어 그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묻자 부르카를 입은 딸들은 “다마스쿠스로 가서 폭탄 공격을 하겠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우리는 위대한 종교야. 그렇지 아가야?”라며 “무서워하지 마. 넌 신에게 가는 거야”라고 자폭 테러를 성전으로 합리화했다. 딸들은 “응”이라고 답했다. 두 딸은 형형색색의 털모자와 잠바로 갈아입고는 엄마와 함께 ‘최후의 기도’를 했다. 이를 촬영하는 남성이 “왜 어린 딸을 지하드에 보내려고 하느냐”고 묻자 엄마는 “그 누구도 지하드를 하기에 어리지 않다. 지하드는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며 “가족으로서 신께 기도하겠다”고 답했다. 두 딸은 극단주의 사상에 경도된 부모로부터 지독한 세뇌 교육을 받고 자란 것으로 보인다. 경찰서 자살 테러를 감행한 7세 소녀는 아빠 엄마 형제자매 등 가족에게 ‘나를 따라서 자폭 테러를 하라’고 당부하는 손편지를 썼다고 한다. 아버지 님르는 2012년 시리아의 유명 연기자 무함마드 라피를 납치하고 살해하는 데 관여한 극단주의자로 딸들을 테러에 동원한 이후 이달 말 다마스쿠스 외곽 지역에서 전투 도중 사망했다. 나머지 가족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 1100만 난민을 돕기 위해 1억 리얄(약 321억 원) 펀드 모금에 나섰다. 그동안 시리아 반군을 지지해 온 사우디는 이번 펀드 자금으로 난민캠프를 짓고 음식과 담요, 약 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살만 국왕을 비롯한 왕족들도 펀드에 개인 재산을 내놓았다. 국왕은 2000만 리얄(약 65억 원),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세자는 1000만 리얄(약 33억 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800만 리얄(약 26억 원)을 각각 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자치령 내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스라엘은 오랜 동맹국인 미국이 결의안 채택을 막을 수 있는 상임이사국으로서의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하자 ‘미국이 뒤통수를 쳤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유엔 안보리는 23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영역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짓는 행위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찬성 14표, 기권 1표로 채택했다. 이번 결의안에서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행위를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 회복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점령한 이 지역에 150곳이 넘는 정착촌을 건설해 왔다. 이 지역 거주민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대다수인 데다 국제법상 이스라엘 국토가 아니지만 사실상 이스라엘이 통제하고 있다. 미국이 이번 결의안에 기권 표를 던지는 과정에서 ‘현재 권력’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친(親)이스라엘파인 트럼프는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견지해 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 정책인 ‘두 국가 해법’에 따라 거부권 행사를 포기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결의안 채택 직후 트위터에 “(대통령 취임일인) 1월 20일 이후의 유엔은 달라질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공화당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매우 부끄러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정부가 이번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어야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을 지지하지 않는 게 역대 모든 미국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었다”며 기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벤 로즈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도 “도의상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며 “내년 1월 20일까지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라고 트럼프 측의 반발을 일축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결의안을 ‘편파적이고 수치스럽다’고 규정했다. 또 한 달 안에 이스라엘의 유엔 대표부 존치 문제와 유엔기구에 내는 이스라엘의 분담금 등 유엔과의 모든 관계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반면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건설을 우려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두 국가 해법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여줬다”며 환영했다. 트럼프 정부의 차기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로 발탁된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미국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에 압력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트럼프 당선인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스라엘 달래기에 나섰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최근 카타르 도하 인근의 한국 식당에 셔츠를 말끔히 차려 입은 북한인 2명이 들어왔다. 2600여 명의 카타르 주재 북한 노동자를 관리·감독하는 간부들이었다. 생일 파티를 한다며 한국 식당을 찾은 두 사람은 아침부터 삼겹살 5인분에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소주와 맥주 등 610리얄(약 21만 원)어치의 생일상을 즐겼다. 카타르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의 한 달 치 월급(150∼200달러)을 단둘이 한 끼에 털어 넣은 이들은 숙소에서 먹을 김치도 따로 싸 갔다.○ “건설사 사장 3년 하면 100만 달러 챙겨” 카타르의 북한 노동자는 북한 건설사 사장, 당 간부, 국가안전보위부 간부가 삼각 편대로 관리·감독한다. 북한 당국이 건설사 사장의 빈번한 자금 횡령을 막기 위해 감시 차원에서 당과 보위부 간부를 딸려 보내는 것이다. 셋 다 소속은 다르지만 노동자의 피를 빨아 배를 채우려는 데엔 한통속이다. 북한에서 파견된 간부들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 달러를 넘어 초고가 물가로 악명 높은 카타르에서 중동 부자 부럽지 않게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북한 노동자가 카타르 회사로부터 받는 급여를 대신 받아 평양에 충성 자금으로 보내고, 급여의 20% 남짓을 노동자에게 나눠 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액을 빼돌린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자 사이에선 북한 건설사 사장을 3년만 하면 100만 달러(약 12억5000만 원)를 챙긴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북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김정은은 올해 해외 공사 현장에 ‘노동자 임금을 떼먹지 말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쿠웨이트에 파견됐다가 귀국하던 한 노동자가 올해 1월 중간 기착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도망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베이징에서 붙잡혀 북송된 이 노동자는 “간부들이 하도 임금을 떼먹어 화가 나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노동자 임금을 착취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에 바칠 충성 자금 목표액을 채울 수 없어 김정은의 특별 지시도 무용지물이 됐다. 간부들은 ‘벼룩의 간’까지도 빼먹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악랄하다. 월급 150∼200달러를 받는 노동자들에게 좋은 보직을 대가로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아 챙긴다. 노동 강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데다 뙤약볕이 아닌 실내에서 작업해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밀주 제조책이 되려면 간부에게 3000달러를 뇌물로 바치기로 약속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유일한 휴일인 금요일에 외출해도 고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간부들은 도하의 유명 호텔 나이트클럽에도 자주 드나든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 속에서 1인분에 80리얄(약 2만7000원)이나 하는 삼겹살을 매주 한 번씩 먹으러 온다고 한다. 북한 간부가 자주 찾는 한국식당 관계자는 “대부분 퉁퉁하게 살이 붙어 있고 말끔한 셔츠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와 한눈에 간부라는 걸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숟가락 삼켜 자살 기도하는 노동자 호화생활에 젖은 간부와 달리 ‘21세기 노예’로 살아가는 노동자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도하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김모 씨는 지난해 6월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에 중노동을 견디다 못해 16cm 길이의 숟가락을 삼켰다. 그는 도하의 대형 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장시간 수술 끝에 간신히 살아나 강제 북송됐다. 카타르의 북한 건설사 5곳 중 하나인 1건설(수도건설) 소속 나모 씨는 2014년 7월 도하 중심가인 시티센터의 고층 빌딩 공사 현장에서 대낮에 투신자살했다. 그의 동료는 “나 씨가 고된 노동 환경 때문에 평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온갖 고난을 견뎌 온 군인들도 해외 건설 현장에 파견된 후에는 열악한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민간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군인들로 구성된 남강2건설에서 일해 온 신모 씨는 지난해 5월 작업복 차림으로 도망갔다가 4일 만에 수색대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다. 그는 중노동에 윗사람의 구타까지 이어지자 충동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군인 한모 씨는 지난해 2월 사막 황무지에 컨테이너 가건물로 지어진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도망쳤지만 보위부 요원에게 며칠 만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다.○ 중동 부호(富豪)에게 인기 높은 북한 화가 북한 노동자들 가운데 기술이 뛰어난 극소수는 이른바 ‘청부업’을 한다. 주로 건설기술사나 벽화를 그리는 화가들이다. 이들은 집단 숙소생활을 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따로 나와 살면서 독자적으로 일하는 대신 일정 금액을 간부들에게 꼬박꼬박 뇌물로 상납해야 한다. 한 청부업자는 카타르 항공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 승무원과 만나 연애를 하기도 했다. 북한 노동자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인 청부업은 화가다. 이들은 손재주가 좋아 대형 벽화를 좋아하는 카타르 부호들에게 인기가 높다. 대개 m²당 2500리얄(약 83만 원)가량을 받기에 벽화 크기에 따라 손쉽게 수백만∼수천만 원을 벌 수 있다. 1년 반 만에 30만 달러를 벌어 귀국했다는 ‘성공담’이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도하의 부촌에 위치한 대저택 3층에 북한 화가가 그렸다는 벽화를 직접 확인했다. 가로 8m, 세로 3m 크기에 폭포를 그린 수묵화였다. 북한 화가와 종종 교류했다는 현지 교민은 “북한 화가가 폭포 그림으로 2000만 원 정도를 벌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8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탈북 소식이 알려지자 청부업을 전면 금지했지만 자금 사정이 열악해 조만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바지 왼쪽 주머니에 영국산 담배 한 갑을 찔러 넣었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이역만리 사막에서 고생하는 북한 노동자에게 작게나마 위안을 주고자 하는 동포애였다. 반대편 주머니에는 녹음기를 켠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혹시나 북한 노동자에게 끌려가 낭패를 당할 때를 대비해 증거라도 확보하려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였다. 아무리 동포라지만 휴전선을 두고 총을 겨누는 사이이지 않은가. 얼마 전 김정은 북한 정권의 돈줄로 혹사당하는 해외 주재 북한 노동자의 인권 유린 실태를 취재하러 북한인 2600여 명이 일한다는 카타르에 갔을 때 ‘분단된 한민족의 역설’을 절감했다. 그동안 탈북자는 여럿 만났지만 대한민국에 핵을 겨누고 위협해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을 눈앞에 두고는 사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 북한 노동자가 일한다는 카타르 도하 인근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앞에서 그렇게 서성거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잠시 쉬려는 듯 공사 현장 밖으로 나온 북한 노동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기자와 비슷한 30대 초반 남성으로 보이지만 키가 160cm가 채 안 됐다. 깡말랐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북조선에서 오셨습니까. 저는 남조선에서 왔습니다. 얼굴이나 보려고요.”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일부러 북한식 표현을 썼다. 잠시 흠칫하던 그는 “혼자 왔습니까?”라고 되묻더니 공사장 뒤편 어둠 속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두려움이 덧없는 선입견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나눠 피우며 그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했다. 하루 14시간 일하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부모와 처자식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북한 건설사에서 주는 식사가 형편없어 처음 보름 동안은 거의 먹지 못했다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고향 생각이 날 때면 국수 한 그릇이 간절한데 50리얄(약 1만7000원)이나 되는 가격에 엄두를 못 낸단다. 김정은 정권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만큼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던 건 인민군으로서 남한에 총을 겨눴을 그가 너무나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는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기자에게 ‘독신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는 결혼을 일찍 해 아이가 있다면서 독신인 기자가 부럽다고 농담을 건넸다. 한국의 내 또래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동무들이 찾겠다’며 10분 남짓한 대화를 마친 그는 “싫어하지 말라. 남조선 사람 만나는 건 절대 금지지만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앞으로 내가 정문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종종 보자”며 돌아갔다. 생애 처음 만난 남한 사람이었을 기자에게 그 역시 동포라는 감정을 느꼈던 모양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른 북한 노동자들도 동포애로 기자를 대해줬다. 공사 현장 앞에서 서성이는 기자에게 “꼬레아?”라며 먼저 말을 걸더니 “안녕하십니까!”라고 목소리 높여 반겨주는 이도 있었다. 유학생이라고 신분을 감춘 기자에게 “통일 되면 공부한 거 우리 대학생들에게 배워주라(가르쳐 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남한에서 왔다고 하면 집단폭행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카타르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2600여 명은 임기 3년 동안 월급의 80%를 북한 당국에 떼이고 150∼200달러만 받으며 주 6일 하루 14시간 사막에서 혹사당한다. 처지를 비관해 숟가락을 삼키거나 고층 빌딩에서 투신해 자살할 만큼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런 카타르에서의 삶이 북한에서의 그것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사실이다. 집권 5주년을 맞은 김정은이 입에 달고 산다는 ‘인민 사랑’의 참혹한 실체다. 조동주 카이로 특파원 djc@donga.com}
“우리를 알레포에서 탈출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시리아 알레포의 참상을 트위터로 알려 주목받은 7세 소녀 바나 알라베드 양이 21일 터키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알레포 탈출 협상을 이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나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분홍색 머리띠를 쓰고 체크무늬 치마와 하얀 스타킹으로 예쁘게 꾸민 알라베드 양은 19일 반군의 알레포 동부지역을 탈출해 이날 터키로 건너왔다.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알레포 참상에 대한 글과 사진, 동영상을 올린 지 3개월 만이다. 알라베드 양이 터키로 가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트위터의 힘 덕분이었다. 소녀는 알레포 전투 종료 후 터키와 러시아의 동부지역 주민 탈출 협상이 잡음을 내며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18일 에르도안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에 메시지를 보냈다. “제발 이 협정이 잘 지켜져 우리를 빠져나가게 해주세요.” 트윗을 받은 터키 정부는 다음 날인 19일 “알라베드 양과 그 가족을 터키로 데려오겠다”고 발표했다. 알라베드 양 가족은 19일 버스를 타고 알레포 동부지역에서 서쪽 이들리브 지방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뒤 터키 정부의 도움으로 북쪽인 앙카라로 향했다. 소녀는 21일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탈출할 때 시리아 정부군이 우리를 알아보고 죽일까 봐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덜덜 떨었다”며 “음식과 물 없이 19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버스는 마치 감옥 같았다”고 말했다. 알라베드 양과 동생 무함마드 군(5), 누르 군(3), 어머니 파티마 씨와 아버지 등 다섯 식구는 당분간 터키가 마련해준 새집에서 살 예정이다. 소녀는 5개월 동안 사방이 정부군에 포위당한 알레포에서 쌀과 마카로니만으로 연명했지만 건강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는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과일을 꼽았다. 9월 말 개설된 알라베드 양 트위터는 ‘현대판 안네의 일기’라고 불리며 팔로어가 36만 명을 넘어섰다. 3개월 동안 쓴 715개 트윗에는 폭격이 빗발치는 알레포 현장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 등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끔찍한 폐허와 더불어 앞니 두 개가 빠진 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소녀 사진이 대비되면서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정부군 폭격에 무너져 내린 집 사진과 함께 “최후의 메시지. 엄청난 폭격에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다. 안녕”이라고 적어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알레포에서의 막판 전투가 치열하던 이달 초에는 갑자기 트윗 계정이 사라져 가족이 사망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알라베드 양의 트윗 계정은 영어 교사인 어머니 파티마 씨가 주도해 운영해왔다. 전쟁 통에 전기가 끊겨 트위터에 글을 쓰는 휴대전화 전력은 태양광 패널로 충전했다. 트윗 중에는 7세 소녀의 글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치적인 구호도 눈에 띄어 엄마가 어린 딸을 반군의 선전도구로 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파티마 씨는 “우리가 말하려는 건 우리 같은 평범한 알레포 시민들이 전장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당분간 터키에 살게 된 소녀는 “알레포에 꼭 다시 돌아가는 게 꿈”이라며 “미래에 알레포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중동 일대 민주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6년 후인 올해 12월. 튀니지 출신 아니스 아므리(24)는 독일 베를린 중심지에서 발생한 트럭 테러의 용의자가 됐다. 12명이 트럭에 치여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경제난이 극심하던 7년 전 튀니지를 떠난 그는 혁명 후 더욱 열악해진 고향을 등지고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투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IS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회사에 다른 튀니지인들과 함께 몸담고 있었다고 한다. 2010년 12월 튀니지 국화(國花)에서 이름을 딴 민주화 운동인 재스민 혁명은 6년이 지난 지금 사실상 실패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24년 동안 장기 집권한 진 엘아비딘 벤 알리 대통령을 축출시키며 일으킨 민주화 바람이 이집트 리비아 등으로 옮겨가 다른 독재정권을 몰락시킬 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실업률은 15%를 넘어섰고 절망한 젊은이들은 극단주의에 빠져 IS 등 테러단체에 용병으로 투신하고 있다. 미국 보안 컨설팅 업체 수판그룹의 2015년 11월 통계에 따르면 튀니지인 6000명이 시리아로 건너갔다. 중동 매체 알자지라가 만난 튀니지 남성 메디(가명·26) 씨도 재스민 혁명으로 벤 알리 대통령을 몰아낸 뒤 새로운 세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관광객이 대폭 줄고 국제사회가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면서 혁명 이후 경제는 오히려 나빠졌다. 당초 전기기술자 교육을 받았던 메디 씨는 2008년 사회에 나왔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해 백수로 지냈다. 혁명한 지 1년도 안 돼 이웃 젊은이들이 속속 사라졌다. 메디 씨도 2012년 4월 ‘성전(聖戰)의 일원이 되고 싶다’며 리비아 시르테로 건너가 IS에 투신했다. 그는 시르테의 IS 병영캠프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매달 월급으로 3000달러를 받았다. 튀니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3000달러다. 평범한 국민이 1년간 벌 돈을 한 달 만에 손에 쥐게 된 것이다. 그가 IS로부터 받는 월급은 가족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메디 씨는 ‘제발 집으로 돌아오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친의 호소에 마음이 흔들려 4개월 만에 튀니지로 돌아왔다. 그의 형이 2003년 이라크전쟁 당시 용병으로 나갔다가 사망했는데, 어머니가 메디 씨까지 전쟁 통에 잃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메디 씨는 “혁명 이후에도 실업 문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악화되기만 해 튀니지가 정말 싫었다”며 “IS 등 테러 단체에 투신한 젊은이들의 90%가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우리 이웃”이라고 말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러시아와 이란, 터키가 시리아 사태 해결의 국제사회 보증자 역할을 자처하며 3자회담을 가졌다.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적극 지원해온 러시아의 상대역을 맡았던 미국 등 서방은 배제됐다. 러시아와 이란, 터키 외교장관은 2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시리아 평화협상 중재를 위한 3자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3개국은 알레포 사태를 포함한 시리아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중재하고 시리아 내 테러 단체를 척결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러시아와 이란은 아사드 정권을, 터키는 시리아 반군을 대변하는 국제사회 중재자 역할을 맡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반군에게 물자를 지원했던 미국의 역할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회담을 하루 앞두고 러시아의 시리아 정권 조력에 불만을 품은 터키 경찰이 안드레이 카를로프 주터키 러시아대사를 암살했지만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은 회담에 앞서 카를로프 대사 영정에 헌화하며 조의를 표했다. 3개국은 이번 회담에서 시리아의 평화 정착을 해치는 격퇴 대상 테러 단체로 ‘이슬람국가(IS)’와 반군의 일원인 파타흐 알 샴 전선을 포함시키는 데 합의했다. 다만 정부군을 돕는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터키 측은 반군 측 파타흐 알 샴 전선과 정부 측 헤즈볼라를 함께 제거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러시아와 이란은 반대하고 있다. 파타흐 알 샴 전선은 과거 알카에다 연계 단체이긴 했지만 최근까지 알레포 동부지역에 주둔하며 반군의 일원으로 싸워 왔다. 반군 측을 대변해 온 터키가 이들의 격퇴에 동의했다는 건 그만큼 아사드 정권에 대한 강경 태도가 누그러졌다는 걸 뜻한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빠진 데 대해 미국이 시리아 사태에서 슬슬 발을 빼려는 징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시리아 사태에 대해 일절 파병 없이 반군에 물자 지원만 하며 소극적으로 일관해 왔다. 중동 개입에 부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이마저도 끊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3개국 회담 직후 러시아, 터키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시리아 평화를 위해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정치적 대화의 재개는 언제든 환영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당장 나가!” 북한 노동자가 일한다는 카타르 도하 근처 산업단지 인더스트리얼 에어리어의 한 조립식 건물 제작공장. 경비원이 영어로 고함치며 공장 안으로 들어서려는 기자를 막았다. 다른 공장보다 통제 수위가 훨씬 높았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이종설 카타르한인상공인협의회장은 “북한인들이 공장 내부 숙소에서 밀주를 만들어 파는데 뇌물을 받은 경비가 외부인 접근을 차단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공장에서 숙식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지난해 말 밀주를 만들어 팔다가 현지 경찰에 적발돼 강제 추방됐다. 하지만 일명 ‘싸대기’(sadiki·아랍어로 ‘나의 친구’)로 불리는 북한 밀주는 허가증이 없으면 술을 살 수 없는 카타르의 은밀한 음주 수요와 외화벌이에 혈안이 된 북한의 욕망이 맞물려 암세포처럼 번지고 있다. 술이 금지된 이슬람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불법 밀주 제조 현장에 내몰리는 건 돈줄이 말라가는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2014년 한 해에만 밀주 판매로 1200만 달러(약 143억 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합법적인 건설노동자 임금으로 벌어들인 수입 800만 달러의 1.5배에 해당하는 돈이다. 카타르가 5월 북한 노동자에 대한 신규 비자 발급을 중단하면서 노동자들은 밀주 제조에 사활을 걸게 됐다. 충성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 밀주 제조로 내몰리는 북한 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괴로운 처지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카타르 주재 노동자들이 밀주를 만들다 적발됐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밀주 제조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올해 3월에는 밀주 제조 실태를 감시한다며 국가안전보위부 검열단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검열단은 뇌물을 받고 밀주 제조를 눈감아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밀주 없이는 충성자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카타르 주재 북한 건설회사들은 한때 잠시 줄였던 밀주 제조를 올해 9월부터 대폭 늘리고 있다.○ 2층 단독주택 통째 빌려 24시간 밀주 생산 북한 건설사들은 회사마다 카타르 외곽에 2층짜리 단독주택 여러 채를 통째로 빌려 24시간 내내 밀주제조 공장으로 가동하고 있다. 5개 건설사 산하 35개 사업소에도 주방 등에 제조시설을 몰래 만들어 놓고 밀주를 생산해 낸다. 제조 과정에서의 악취를 숨기기 위해 공장은 사방이 한적한 곳을 고른다. 단독주택을 빌려 24시간 가동하는 밀주공장에서는 한 곳당 매일 1080L가량의 밀주를 생산한다. 1.5L짜리 페트병 12개를 한 박스로 묶어서 파니 매일 60박스씩 만드는 셈이다. 35개 사업소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밀주 시설에서는 한 곳당 대략 매일 324L, 즉 18박스씩 만들어낸다. 밀주 가격은 알코올 농도가 높은 것은 한 박스에 400리얄(약 14만 원), 물이 많이 섞인 건 200리얄(약 7만 원) 정도로 카타르의 초고가 물가를 고려하면 싼 편이다. 북한 밀주는 물과 설탕, 효모균 가루를 이용해 만든다. 기자가 북한 밀주를 구해 직접 마셔 보니 싸구려 백주(白酒) 같은 맛이 났다. 소주잔으로 한 잔을 마셔도 머리가 아찔할 만큼 도수가 높았다. 조악한 시설에서 만들다 보니 물에 알코올 성분이 깊게 배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북한 밀주는 북한 노동자와 인도 스리랑카 등 비(非)이슬람 국가에서 온 150만 외국인 노동자가 주 수요층이다. 독주를 선호하는 일부 북한 노동자는 밀주 대신 약국에서 의료용 알코올을 사서 물에 타 마시기도 한다. 카타르 도하 인근 건설현장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 A 씨는 “‘사탕가루 술’은 (도수가) 약해서 잘 안 마신다”며 “약국에서 L당 60리얄(약 2만 원)에 파는 의료용 알코올을 사다가 물을 1 대 1 비율로 타서 마신다”고 말했다.○ 노동자들 “걸리면 추방되지만 막노동보다 낫다” 북한 노동자들은 밀주를 만들다 적발되면 바로 강제 추방된다. 추방당한 동료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노동자들은 북한 건설사 간부들에게 뇌물로 3000∼4000달러를 바치기로 약속하면서까지 밀주 제조책을 지원한다. 밀주 수익 대부분을 간부들이 챙긴다지만 월 150∼200달러에 그치는 공사장 일보단 수입이 많다고 한다. 밀주가 돈이 되다 보니 중동 주재 북한 외교관들까지 나서 면책특권을 악용해 밀주를 판매한다. 쿠웨이트에 주재하는 한 북한 외교관은 올해 외교차량을 검문검색하지 않는 점을 노려 차량에 가짜 양주를 한 박스 싣고 육로를 통해 카타르로 들어와 팔았다. 지난해 북한으로 돌아간 1건설(수도건설) 사장은 노동자 임금 착취와 밀주 수입으로 100만 달러를 챙겼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창 때는 건설사 1곳당 밀주 제조용 단독주택 공장 5∼10곳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최근엔 카타르 당국의 단속이 강화됐다. 북한의 불법 밀주사업이 합법적인 노동 임금을 뛰어넘는 김정은 체제의 수익원으로 부상하면서 밀주 산업을 뿌리 뽑아야 실질적인 대북제재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설 회장은 “북한의 노동자 송출 자체를 중단시키지 않는 한 김정은 정권을 배불리는 밀주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인더스트리얼 에어리어=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