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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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계절 바뀌는 소리 음악으로 들으면?

    화려하게 피어오른 봄. 거리 곳곳에서 비발디 ‘사계’(사계절)의 첫 악장이 울려나오는 계절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세 개 악장씩, 열두 개 악장이 모두 사랑받고 있지만 ‘봄’ 첫 악장은 음반의 첫머리에 들어있는 곡인 만큼 역시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화창하고 생기발랄한 느낌은 물론이고요. 비발디의 ‘사계절’ 외에도 한 해의 각 계절을 묘사한 음악작품들이 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1월부터 12월까지 러시아의 정경을 묘사한 피아노곡집 ‘사계절’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음악잡지 부록으로 매달 이 곡의 악보가 제공되었던 점이 재미있습니다. 피아노 보급이 급속히 늘어나던 시대여서 집집마다 아마추어 ‘거실 피아니스트’들이 칠 만한 적당한 수준의 악보 수요가 급증했던 것이 한 가지 이유였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탱고의 전설로 불렸던 아르헨티나 작곡가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절’도 자주 연주됩니다. 비발디의 사계절과 비슷한 편성으로 연주할 수 있어서, 한 무대에 같이 올리거나 한 음반에 동시에 수록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6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 맥더피와 이혜림, 서울비르투오지 챔버오케스트라가 공연하는 ‘맥더피 새로운 사계’ 공연도 눈길을 끕니다. 3일 서울 LG아트센터 공연에 이어지는 무대로,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절’과 미국 현대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바이올린협주곡 2번 ‘미국의 사계절’이 연주됩니다. 특히 작곡가 글래스가 이날 연주자로 나서는 바이올리니스트 맥더피를 위해 이 곡을 작곡했기에 더욱 의미가 큽니다. 이 곡은 맥더피 자신의 솔로와 마린 올솝이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음반도 나와 있습니다. 글래스는 이른바 ‘미니멀리즘(극소주의)’ 작곡의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단순한 음형 또는 동기에서 시작해 점차 표현 요소를 더해나가는 방법으로 곡을 써나갑니다. 특히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리듬과 음계를 사용해 모두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을 쓴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음반으로 먼저 들어보았습니다만, 그가 소리로 표현한 아메리카의 사계절이 실로 흥미롭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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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올해 만우절은 부소니 탄생 150주년

    “만우절에 태어난 작곡가도 있을까?” 이번 주 금요일은 4월의 첫날이자, 어지간한 거짓말은 깔깔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날이죠.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20세기 초 피아노 음악에 육중한 자취를 남긴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두 사람이 우연히도 이날 나란히 탄생했습니다. 이탈리아의 페루초 부소니(1866∼1924)와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입니다. 혹 일곱 살 차이인 두 사람이 만나 생일을 놓고 웃음 섞어 얘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부소니는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았습니다. 라흐마니노프처럼 널리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작곡가는 아니지만, 올해 조명을 받을 기회는 많을 듯합니다. 우선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바로 부소니의 생일날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통영국제음악제 일환으로 리사이틀을 갖습니다. 부소니의 ‘바흐 환상곡’, ‘카르멘 환상곡’, ‘투란도트의 규방(閨房)’ 등을 연주합니다. 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에서 태어났지만 부소니의 음악은 이탈리아적이라기보다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음악을 연상시키는 중후함과 구조적 논리성이 특징입니다. 어머니가 독일계였던 데다 유년기에 빈 음악원에 유학했던 일이 영향을 미쳤을 법합니다. 바흐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편곡해 연주하는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피아노의 신고전주의자’라고 불립니다. 그의 이름을 딴 부소니 국제피아노콩쿠르도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오스트리아 땅이었던 이탈리아 북부의 볼차노에서 열립니다. 지금도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함께 공용어로 쓰이는 고장이죠. 부소니 국제피아노콩쿠르는 피아니스트 서혜경이 1980년 1위 없는 공동 2위로 최고 순위 입상의 성과를 거뒀고, 지난해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마침내 1위 우승의 영광을 안았던 그 콩쿠르입니다. 통영국제음악제 얘기를 꺼내고 보니 남해안의 4월 초 햇살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제가 이 축제 현장에 가본 것도 벌써 몇 해가 지났군요. 뒤늦게 가만히 고속버스 시간표를 열어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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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낭만주의자’ 슈만, 느린 악장은 짧고 소박했네

    독일 중기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 로베르트 슈만(1810∼1856)입니다. 그는 낭만주의 시대의 소설과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음악작품에 녹여 넣었고, 스승의 딸이자 당대 최고의 여성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비크와 유명한 사랑을 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한 낭만’ 했던 예술가임에 틀림없죠.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그의 대표 가곡집 제목도 ‘시인의 사랑’입니다. 이런 그의 면모를 보면 특히 그의 대곡 중 느린 악장은 하염없는 동경과 애틋한 슬픔까지 굽이굽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느린 악장이 그렇듯이. 그러나 실제는 기대와 다릅니다. 그의 교향곡 네 곡과 협주곡 세 곡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느린 악장은 짧으며 간소하고 소박한 ‘로망스’ 스타일입니다. 길고 곡진한 슬픔이나 감상의 토로는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분명히 드러나는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슈만의 대곡들은 빠른 악장들조차도 지극히 감성적이고 낭만적이기 때문에, 느린 악장까지 너무 무겁게 가져가면 전체 작품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을까 슈만이 염려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점은 슈만의 제자인 브람스가 스케르초 악장에 대해 취한 자세와도 비슷합니다. 베토벤 이후 교향곡에는 빠르고 신랄하며 유쾌한 3박자의 ‘스케르초’ 악장이 들어가는 것이 전통입니다. 그렇지만 브람스의 1, 3번 교향곡에는 스케르초가 없고, 2번 교향곡 3악장은 스케르초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실상은 느릿한 전원춤곡과 같은 악장입니다. 4번 교향곡 3악장도 스케르초라고 하지만 짝수 박자로 되어 있어서 베토벤식 3박자 스케르초와 다릅니다. 전체 작품에 씁쓸하고 떨떠름한 느낌이 들어가기 일쑤인 브람스였던 만큼, ‘톡 쏘는 농담’ 같은 진짜배기 스케르초까지 넣는 일은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성기선 지휘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슈만 서거 160주년 기념음악회’라는 제목으로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4번을 연주합니다. 모두 구구절절한 느린 악장은 없지만, 새봄에 어울릴 만한 독일 낭만주의의 향기가 물씬한 작품들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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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

    봄입니다. 아직은 꽃도 피지 않은 희뿌연 이른 봄이지만 마음만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가 들려올 것 같습니다. 빈 신년음악회 때문에 한겨울에 왈츠와 폴카를 많이 듣게 되지만 19세기 말의 이 오스트리아 춤곡들이 전해주는 감성은 밝고 신선하며 아늑한 봄날에 가깝죠. 빈 신년음악회를 챙겨 보는 애호가라면 아시겠지만 빈 왈츠의 세계는 ‘슈트라우스 일가’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요제프 라너(1801∼1843) 정도를 제외하면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1804∼1849),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 요제프 슈트라우스(1827∼1870),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1835∼1916)까지 네 사람의 ‘슈트라우스’로 프로그램이 가득 차기 마련이죠. 밝고 낙관적인 왈츠와 함께 떠오르는 이름이지만 이 가족의 내력이 밝고 화창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자식들이 음악가가 되는 걸 원치 않았고, 아들들이 음악 수업을 받게 되자 집을 나가 딴살림을 차렸습니다. 장남인 요한 슈트라우스가 잘나가자 자신은 그가 출연하는 연주회장에 출연하는 걸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남은 아버지가 45세에 사망하자 아버지의 악단을 인수 통합해 버렸습니다. 요제프와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는? 두 사람은 ‘왈츠의 아버지’의 둘째 셋째 아들이자 ‘왈츠의 왕’의 동생들입니다. 두 사람 다 화려한 춤곡과는 달리 내성적이고 어딘가 어두운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둘째인 요제프는 42세의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러시아 갱에게 살해당했다는 설도 있지만 자살설도 나돌았습니다. 아버지가 열어젖힌 빈 왈츠의 영화는 막내 에두아르트가 1901년 악단을 해산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어제 14일은 대음악가 집안을 만든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212회 생일이었습니다. 오늘 15일은 막내 에두아르트의 181회 생일이죠. 집안의 남다른 내력이야 어쨌든 이번 주만큼은 밝고 활기찬 빈 왈츠와 폴카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동아일보를 읽고 계신 만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침신문’ 왈츠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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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영화로 제작되는 ‘음치’ 소프라노 이야기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는 1868년 미국에서 부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피아노를 잘 쳐서 신동 피아니스트로 각광을 받았죠.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음대 진학은 포기했습니다. 피아노 교사를 하기도 했지만 팔을 다치면서 그것도 포기했습니다. 41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많은 재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젱킨스는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레슨을 받는 한편 뉴욕 사교계에 진출해 수많은 클럽에 가입했고 자신이 ‘베르디 클럽’도 창설했습니다. 이 모임들에서 노래를 선보이며 그는 차츰 자신을 얻었습니다. 그의 노래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12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소프라노 리사이틀을 열기 시작합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묘했지만 1944년에는 드디어 대망의 카네기홀 데뷔 공연을 합니다. 입장권은 공연 몇 주 전에 매진됐고, 작곡가 잔 카를로 메노티, 소프라노 릴리 퐁스를 비롯한 당대 뉴욕의 수많은 명사들이 객석을 메웠습니다. 그러나 신문에 실린 평들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틀 뒤 그는 갑자기 심장 발작을 일으켰고, 한 달 뒤 숨을 거뒀습니다. 악평이 그의 건강을 악화시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세상은 그의 노래를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젱킨스는 표현은커녕 음정도 박자도 전혀 맞지 않는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는 한 단어로 표현하면 ‘음치’였습니다. 젱킨스가 노래한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들어보면 웃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강아지의 애처로운 낑낑거림 같다고 할까, 이 노래 가사 그대로 ‘지옥의 복수’를 표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이 특별한 ‘소프라노’를 더욱 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젱킨스의 생전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은 프랑스 영화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이 이달 국내 개봉됩니다. 이 영화는 26일 열린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카트린 프로)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한편으로 실제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영국 영화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도 영국에서 제작 중입니다. 타이틀 롤에 메릴 스트립, 상대역에 휴 그랜트 등 초호화 배역도 눈길을 끕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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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모차르트가 작곡료를 절반만 받은 사연

    1778년, 22세의 모차르트는 플루티스트 페르디난트 드 장으로부터 플루트 사중주곡 네 곡과 플루트 협주곡 세 곡을 작곡해줄 것을 의뢰받았습니다. 주문받은 숫자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모차르트는 사중주곡 세 곡과 플루트 협주곡 두 곡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드 장은 플루트 협주곡에 대한 작곡료를 절반만 주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곡 수가 모자란다고 화가 났기 때문일까요?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그 전해인 1777년에 오보에 협주곡 한 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의뢰받은 일이 많았는지, 드 장이 요구한 수보다 적게 쓰기로 하고도 여전히 시간이 모자랐던지 ‘두 번째’ 플루트 협주곡은 그 전해에 쓴 오보에 협주곡을 약간 손질만 해서 내놓았던 것입니다. 조를 C장조에서 D장조로 한 음 올리고, 독주부에서 플루트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을 바꾼 정도였습니다. 두 곡의 음반을 꺼내 관현악의 전주 부분만 들어보면, 음감이 좋은 분들은 음높이가 한 음 다르니 구분을 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어디가 다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위에 소개한 일화를 다시 생각해 보면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집니다. “이봐 모차르트, 이거 지난해 나온 오보에 협주곡을 조금만 바꾼 건 줄 내가 몰랐을 줄 알고!” 드 장의 한마디에 머리만 긁적였을 모차르트의 묘한 표정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이 곡은 원곡 이름으로는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 C장조, 플루트용으로는 플루트 협주곡 ‘2번’ D장조로 불립니다. 그가 드 장을 위해 실제로 새로 쓴 협주곡은 플루트 협주곡 1번 G장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작한 ‘2번’은 원곡인 오보에 협주곡으로도 사랑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플루트 협주곡으로 더 많이 연주됩니다. 화려하고 신선한 선율이, 어딘가 아련하고 애수를 띤 오보에보다는 플루트에 더 어울리기 때문인 듯합니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협연하는 임헌정 지휘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의 플루트 협주곡 2번 D장조를 연주합니다. 원곡이 오보에 협주곡 C장조인 그 곡입니다. 메인 프로그램으로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도 마련되어 있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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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세 모차르트가 협주곡의 작곡료를 절반만 받은 까닭은?

    1778년, 22세의 모차르트는 플루티스트 페르디난드 드 장으로부터 플루트 사중주곡 네 곡과 플루트 협주곡 세 곡을 작곡해줄 것을 의뢰받았습니다. 주문받은 숫자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모차르트는 사중주곡 세 곡과 플루트 협주곡 두 곡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드 장은 플루트협주곡에 대한 작곡료를 절반만 주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숫자가 모자란다고 화가 났기 때문일까요?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그 전해인 1777년에 오보에 협주곡 한 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의뢰받은 일이 많았는지, 드 장이 요구한 숫자보다 적게 쓰기로 하고도 여전히 시간이 모자랐던지 ‘두 번째’ 플루트 협주곡은 그 전해에 쓴 오보에 협주곡을 약간 손질만 해서 내놓았던 것입니다. 조를 C장조에서 D장조로 한 음 올리고, 독주부에서 플루트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을 바꾼 정도였습니다. 두 곡의 음반을 꺼내 관현악의 전주 부분만 들어보면, 음감이 좋은 분들은 음높이가 한 음 다르니 구분을 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어디가 다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위에 소개한 일화를 다시 생각해보면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집니다. “이봐 모차르트, 이거 지난해 나온 오보에 협주곡을 조금만 바꾼 건 줄 내가 몰랐을 줄 알고!” 드 장의 한마디에 머리만 긁적였을 모차르트의 묘한 표정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이 곡은 원곡 이름으로는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 C장조, 플루트용으로는 플루트 협주곡 ‘2번’ D장조로 불립니다. 그가 드 장을 위해 실제로 새로 쓴 협주곡은 플루트 협주곡 1번 G장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작한 ‘2번’은 원곡인 오보에 협주곡으로도 사랑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플루트 협주곡으로 더 많이 연주됩니다. 화려하고 신선한 선율이, 어딘가 아련하고 애수를 띤 오보에보다는 플루트에 더 어울리기 때문인 듯합니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임헌정 지휘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의 플루트협주곡 2번 D장조를 연주합니다. 원곡이 오보에협주곡 C장조인 그 곡입니다. 메인 프로그램으로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도 마련되어 있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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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작곡가가 상상한 우주의 소리는…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예언한 중력파의 존재가 확인되었다는 소식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지구로부터 빛의 속도로 13억 년을 날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먼 곳에서 블랙홀 두 개가 충돌해 형성된 파동이라는 설명입니다. 스케일부터 어마어마합니다. 이번에 검출된 파동의 ‘소리’도 공개되었습니다. 우주의 대부분이 진공 상태이니 이 소리가 실제 음파로 퍼져나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진동수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음파 영역에 있어서 바로 소리로 재현해낼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공개된 소리를 들어보니 우주의 고동 소리를 듣는 듯, 신비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우주의 운동을 소리로 표현하겠다는 야심은 옛 작곡가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천인(千人)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교향곡 8번을 작곡하면서 친구인 지휘자 멩엘베르흐에게 이렇게 써서 보냈습니다. ‘우주가 처음 움직이기 시작할 때의 엄청난 울림을 상상해 주십시오. 이 작품에서 연주되는 소리는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태양의, 그리고 우주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말러가 이 작품에서 우주의 모습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작품의 거대한 스케일에 대한 자신감을 이같이 표현한 것입니다. 우주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음악 작품으로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 중 2악장 스케르초도 흔히 거론됩니다. 금관과 팀파니가 단조로우면서도 기하학적인 느낌이 드는 빠른 3박자 리듬을 연주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마치 태양계가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다’라고 말합니다. 작곡가 자신은 작품의 초연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이런 평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일이 없습니다. 우주와 음악 하면 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1918년)을 빼놓을 수 없겠군요. 태양계의 행성 중에서 지구를 제외한 행성 7개의 신비를 작곡가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 묘사했습니다. 곡 중에서 ‘목성’은 198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 뉴스 시그널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명왕성은 발견되지 않아 작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니 태양계 행성의 실제 숫자와 홀스트가 음악으로 묘사한 숫자가 우연히도 딱 맞는 셈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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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이 된 우주…“이 연주는 태양의, 그리고 우주의 소리입니다”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예언한 중력파의 존재가 확인되었다는 소식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지구로부터 빛의 속도로 13억 년을 날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먼 곳에서 블랙홀 두 개가 충돌해 형성된 파동이라는 설명입니다. 스케일부터 어마어마합니다. 이번에 검출된 파동의 ‘소리’도 공개되었습니다. 우주의 대부분이 진공 상태이니 이 소리가 실제 음파로 퍼져나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진동수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음파 영역에 있어서 바로 소리로 재현해낼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공개된 소리를 들어보니 우주의 고동 소리를 듣는 듯, 신비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우주의 운동을 소리로 표현하겠다는 야심은 옛 작곡가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천인(千人)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교향곡 8번을 작곡하면서 친구인 지휘자 멩엘베르흐에게 이렇게 써서 보냈습니다. “우주가 처음 움직이기 시작할 때의 엄청난 울림을 상상해 주십시오, 이 작품에서 연주되는 소리는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태양의, 그리고 우주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말러가 이 작품에서 우주의 모습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작품의 거대한 스케일에 대한 자신감을 이 같이 표현한 것입니다. 우주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음악작품으로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 중 2악장 스케르초도 흔히 거론됩니다. 금관과 팀파니가 단조로우면서도 기하학적인 느낌이 드는 빠른 3박자 리듬을 연주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마치 태양계가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다’라고 말합니다. 작곡가 자신은 작품의 초연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이런 평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일이 없습니다. 우주와 음악 하면 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1918)을 빼놓을 수 없겠군요. 태양계의 행성 중에서 지구를 제외한 행성 7개의 신비를 작곡가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 묘사했습니다. 곡 중에서 ‘목성’은 198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 뉴스 시그널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명왕성은 발견되지 않아 작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니 태양계 행성의 실제 숫자와 홀스트가 음악으로 묘사한 숫자가 우연히도 딱 맞는 셈입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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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봄을 기다리는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광시곡’

    오늘 2월 2일은 북아메리카의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봄이 일찍 올 것인지를 예측하는 날이죠. 이날 해가 나서 마멋(다람쥣과 동물의 일종으로 그라운드호그라고도 부름)이 자기 그림자를 보게 되면 겨울이 6주 길어진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미국 날씨 프로그램에서 이날 마멋을 보는 수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날은 1993년 나온 영화 ‘사랑의 블랙홀’(원제 ‘그라운드호그 데이’) 덕에 아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에 마멋을 취재하러 간 기상캐스터가 눈 때문에 마을에 갇히는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똑같은 날이 다시 시작됩니다. 한 밤을 더 자도, 또 그 다음에도, 똑같은 날이 반복됩니다. 이날과 이 영화는 제게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 주인공인 필은 매번 같은 날이 반복되어 지겨워지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겠다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합니다. 초보자로 시작하지만 매일 반복 연습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늘어 자기가 짝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솜씨를 뽐낼 정도가 되죠. 그가 열심히 연습하는 곡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입니다. 이 곡은 이 영화와 우리말 제목이 비슷한 1980년 영화 ‘사랑의 은하수’(원제 ‘Somewhere in Time’)에도 인상 깊게 사용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계속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벌써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겠죠. 다가오는 주말부터 긴 연휴가 시작됩니다. 명절에는 집안에서 바빠지는 누군가의 손길을 도와주는 일이 우선이겠지만, 그러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봄을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앞에 언급한 라흐마니노프의 곡도 좋지만,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느리고 명상적인 3악장이나, 이 교향곡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구노 ‘성 세실리아를 위한 장엄미사’ 중 봉헌송 부분도 봄을 기다리는 듯한 깊은 명상을 전해줍니다. 약간 성급하지만 슈만 교향곡 1번 ‘봄’이나 멘델스존의 ‘무언가’(Songs Without Words)에 나오는 ‘봄노래’처럼 봄을 직접 그려내고 예찬한 곡을 들어보아도 물론 좋겠습니다. gustav@donga.com}

    • 201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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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슈베르트 ‘겨울 나그네’가 탄생한 사연

    한겨울을 맞아 전국 곳곳의 공연장에서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 나그네’ 연주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전 24곡의 노래에 젊은이의 실연과 방랑을 그려낸 이 작품은 다섯 번째 곡 ‘보리수’가 특히 애청 및 애창되고 있지만 그 밖에도 첫 번째 곡 ‘잘 자요’, 4곡 ‘얼어붙다’, 7곡 ‘홍수’, 13곡 ‘우편마차’ 등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노래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왜 이 곡의 제목이 ‘겨울 나그네’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원제목인 독일어 ‘Winterreise’는 번역하면 ‘겨울여행’이니까요. 그런데 이 곡을 들을 때 생각나는 다른 작곡가가 있습니다. ‘마탄의 사수’로 독일 국민가극의 전통을 수립한 카를 마리아 폰 베버입니다. 그도 슈베르트처럼 ‘겨울 나그네’ 또는 ‘겨울여행’을 썼느냐고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시인 빌헬름 뮐러는 29세 때인 1823년 독일 데사우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와 친했던 베버가 세례식에 와서 대부(代父)가 되어 주었습니다. 뮐러는 아이의 이름을 막스라고 지었습니다. ‘마탄의 사수’ 남자 주인공 이름을 딴 것입니다. 빌헬름 뮐러는 감사의 뜻에서 1823년 출간한 시집 ‘여행을 다니던 호른 연주가의 유고(遺稿) 속 시’를 베버에게 헌정했습니다. 베버에게 주는 헌정사가 뚜렷한 이 시집을 슈베르트가 보게 되었고, 시집 속 절망에 빠진 사나이의 이야기에 공감해 이 시들에 곡을 붙였습니다. ‘겨울 나그네’가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입니다. 슈베르트는 이에 앞서 11세 위 선배인 베버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으니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여기서 그칩니다. 약간은 밋밋한 일화를 소개했죠? 소소한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빌헬름 뮐러의 아들로 ‘마탄의 사수’ 주인공의 이름을 딴 막스 뮐러는 언어학자 겸 소설가가 되었고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한 세대 전 한국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작품입니다. 베버의 이름은 60여 년이 지나 1880년대 후반에 젊은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의 이름과 함께 다시 음악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고자 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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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베르트의 대표적 가곡 ‘겨울 나그네’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

    한겨울을 맞아 전국 곳곳의 공연장에서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 나그네’ 연주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전 24곡의 노래에 젊은이의 실연과 방랑을 그려낸 이 작품은 다섯 번째 곡 ‘보리수’가 특히 애청·애창되고 있지만 그밖에도 첫 번째 곡 ‘잘 자요’, 4곡 ‘얼어붙다’, 7곡 ‘홍수’, 13곡 ‘우편마차’ 등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노래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왜 이 곡의 제목이 ‘겨울 나그네’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원제목인 독일어 ‘Winterreise’는 번역하면 ‘겨울여행’이니까요. 그런데 이 곡을 들을 때 생각나는 다른 작곡가가 있습니다. ‘마탄의 사수’로 독일 국민가극의 전통을 수립한 카를 마리아 폰 베버입니다. 그도 슈베르트처럼 ‘겨울 나그네’ 또는 ‘겨울여행’을 썼느냐고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시인 빌헬름 뮐러는 29세 때인 1823년 독일 데사우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와 친했던 베버가 세례식에 와서 대부(代父)가 되어 주었습니다. 뮐러는 아이의 이름을 막스라고 지었습니다. ‘마탄의 사수’ 남자주인공 이름을 딴 것입니다. 빌헬름 뮐러는 감사의 뜻에서 1823년 출간한 시집 ‘여행을 다니던 호른 연주가의 유고(遺稿) 속 시’를 베버에게 헌정했습니다. 베버에게 주는 헌정사가 뚜렷한 이 시집을 슈베르트가 보게 되었고, 시집 속 절망에 빠진 사나이의 이야기에 공감해 이 시들에 곡을 붙였습니다. ‘겨울 나그네’가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입니다. 슈베르트는 이에 앞서 11살 위 선배인 베버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으니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여기서 그칩니다. 약간은 밋밋한 일화를 소개했죠? 소소한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빌헬름 뮐러의 아들로 ‘마탄의 사수’ 주인공의 이름을 딴 막스 뮐러는 언어학자 겸 소설가가 되었고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한 세대 전 한국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작품입니다. 베버의 이름은 60여년이 지나 1880년대 후반에 젊은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의 이름과 함께 다시 음악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고자 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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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쇼팽 전주곡집 24곡에 붙인 48개의 제목

    쇼팽의 전주곡집 전 24곡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실황앨범에 이 곡이 실렸고, 임동혁이 연주한 이 작품 앨범도 영국 음악전문지 ‘그라머폰’이 지난해 11월 ‘편집자의 선택(Editor’s Choice)’에 선정하면서 음악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전 24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은 ‘빗방울’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15번이죠. 그런데 이 곡에는 다른 제목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죽음이 있다. 그늘 속에’라는 제목입니다. 쇼팽이 이 작품집을 작곡할 때는 24곡 각각에 제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말 음악평론가 한스 폰 뷜로가, 이어 20세기 피아노 대가이자 이 곡집을 처음 음반으로 녹음한 알프레드 코르토가 각각 나름대로 24곡에 제목을 부가했습니다. 두 사람의 제목들을 비교해보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뷜로가 붙인 제목을 후세의 코르토가 의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먼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제목들이 있습니다. 20번 ‘장송행진곡’(뷜로) ‘장례’(코르토) 같은 경우입니다.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감상을 제목으로 붙인 곡들도 있습니다. 9번에 대한 뷜로의 제목은 ‘환상’, 코르토의 제목은 ‘예언의 목소리’입니다. 22번은 각각 ‘참을 수 없음’과 ‘반항’, 23번은 ‘유람선’ ‘놀이를 하는 바다의 요정들’입니다. 뷜로가 짧은 표현들을 사용한 데 비해 코르토가 붙인 제목은 긴 것이 많습니다. 격렬한 8번의 경우 뷜로는 ‘절망’, 코르토는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폭풍이 친다, 그러나 슬픈 내 마음속 폭풍우가 가장 참기 힘들다’로 표현했습니다. 서로 상반된 제목들도 눈길을 끕니다. 5번의 경우 뷜로는 ‘불확실’, 코르토는 ‘노래로 가득한 나무’로 표현했습니다. 뷜로는 선율이 불안한 느낌을 주는 점을, 코르토는 화려한 오른손 음형을 강조한 것입니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쇼팽 작품만으로 리사이틀을 합니다. 발라드 1번, ‘화려한 변주곡’ 등에 이어 2부에서는 전주곡집 24곡 전곡을 연주합니다. 뷜로와 코르토가 붙인 제목들을 염두에 두고 감상하면 한층 흥미로울 듯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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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팽 전주곡집 24곡, 제목은 48개? ‘한 곡에 두 제목’ 비교하며 들어보니…

    쇼팽의 전주곡집 전 24곡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실황앨범에 이 곡이 실렸고, 임동혁이 연주한 이 작품 앨범도 영국 음악전문지 ‘그라머폰’이 지난해 11월 ‘편집자의 선택(Editor’s Choice)‘에 선정하면서 음악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전 24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은 ’빗방울‘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15번이죠. 그런데 이 곡에는 다른 제목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죽음이 있다. 그늘 속에‘라는 제목입니다. 쇼팽이 이 작품집을 작곡할 때는 24곡 각각에 제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말 음악평론가 한스 폰 뷜로가, 이어 20세기 피아노 대가이자 이 곡집을 처음 음반으로 녹음한 알프레드 코르토가 각각 나름대로 24곡에 제목을 부가했습니다. 두 사람의 제목들을 비교해보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뷜로가 붙인 제목을 후세의 코르토가 의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먼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제목들이 있습니다. 20번 ’장송행진곡‘(뷜로) ’장례‘(코르토) 같은 경우입니다.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감상을 제목으로 붙인 곡들도 있습니다. 9번에 대한 뷜로의 제목은 ’환상‘, 코르토의 제목은 ’예언의 목소리‘입니다. 22번은 각각 ’참을 수 없음‘과 ’반항‘, 23번은 ’유람선‘ ’놀이를 하는 바다의 요정들‘입니다. 뷜로가 짧은 표현들을 사용한 데 비해 코르토가 붙인 제목은 긴 것이 많습니다. 격렬한 8번의 경우 뷜로는 ’절망‘, 코르토는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폭풍이 친다, 그러나 슬픈 내 마음속 폭풍우가 가장 참기 힘들다‘로 표현했습니다. 서로 상반된 제목들도 눈길을 끕니다. 5번의 경우 뷜로는 ’불확실‘, 코르토는 ’노래로 가득한 나무‘로 표현했습니다. 뷜로는 선율이 불안한 느낌을 주는 점을, 코르토는 화려한 오른손 음형을 강조한 것입니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쇼팽 작품만으로 리사이틀을 같습니다. 발라드 1번, ’화려한 변주곡‘ 등에 이어 2부에서는 전주곡집 24곡 전곡을 연주합니다. 뷜로와 코르토가 붙인 제목들을 염두에 두고 감상하면 한층 흥미로울 듯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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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플루트 제왕’ 골웨이의 ‘피리 두 개 불기 신공’

    1985년에 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영어로 소포모어(Sophomore)니 지혜(sophia)와 바보(moron)가 합쳐진 시기였죠. 실제 바보짓도 많이 했지만 그해 잘한 일 중 하나는 ‘살아있는 플루트의 제왕’으로 불리는 아일랜드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의 콘서트를 보러 갔던 일입니다. 당시 46세, 골웨이의 플루트 소리는 살집이 도톰하게 잡힌 탐스러운 소리였고, 그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완벽한 기교를 뽐냈습니다. 제 자리는 세종문화회관 3층의 거의 꼭대기였고 연주자의 얼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상관없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갈채 속에 골웨이가 무대에 다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플루트를 들지 않은 빈손이었죠. 관객들이 박수를 그치지 않자 그가 갑자기 연주복 안주머니에서 뭔가 꺼냈습니다. 리코더를 닮은 아일랜드 악기 ‘틴휘슬’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한층 열렬한 박수를 쏟아냈습니다. 그가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골웨이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활기찬 지그(Jig) 춤곡이 흘러나왔습니다. 경쾌하게 연주를 이어나가던 그가 연주복에서 틴휘슬 하나를 더 꺼냈습니다. 입에 악기 두 개를 물고 양손으로 두 악기를 연주하며 화음을 맞추었습니다. 객석에서 ‘우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제 일 같은데 벌써 30년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이제 77세가 된 골웨이가 부인이자 플루티스트인 지니 골웨이, 그리고 서울 바로크합주단과 함께 연주회를 갖습니다. 치마로사, 고세크, 로타 등의 작품을 연주하는 이날 프로그램 중에서 영화 음악가 헨리 맨시니의 ‘페니휘슬 지그’가 유독 눈길을 끕니다. 31년 전 골웨이가 앙코르로 연주한 것과 같은 곡입니다. 맨시니의 곡으로 표시돼 있지만 실제는 아일랜드 전통 선율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번 무대에서 골웨이는 예전처럼 ‘피리 두 개 신공’을 보여줄까요? 예전과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옛 추억에 젖을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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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입에 악기 두 개 물고 연주하며 화음 맞춰…다시 보여줄까?

    1985년에 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영어로 소포모어(Sophomore)니 지혜(sophia)와 바보(moron)가 합쳐진 시기였죠. 실제 바보짓도 많이 했지만 그 해 잘한 일 중 하나는 ‘살아있는 플루트의 제왕’으로 불리는 아일랜드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의 콘서트를 보러 갔던 일입니다. 당시 45세, 골웨이의 플루트 소리는 살집이 도톰하게 잡힌 탐스러운 소리였고, 그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완벽한 기교를 뽐냈습니다. 제 자리는 세종문화회관 3층의 거의 꼭대기였고 연주자의 얼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상관 없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갈채 속에 골웨이가 무대에 다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플루트를 들지 않은 빈손이었죠. 관객들이 박수를 그치지 않자 그가 갑자기 연주복 안주머니에서 뭔가 꺼냈습니다. 리코더를 닮은 아일랜드 악기 ‘틴 휘슬’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한층 열렬한 박수를 쏟아냈습니다. 그가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골웨이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활기찬 지그(Jig) 춤곡이 흘러나왔습니다. 경쾌하게 연주를 이어나가던 그가 연주복에서 틴 휘슬 하나를 더 꺼냈습니다. 입에 악기 두 개를 물고 양 손으로 두 악기를 연주하며 화음을 맞추었습니다. 객석에서 ‘우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제 일 같은데 벌써 30년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18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이제 76세가 된 골웨이가 부인이자 플루티스트인 지니 골웨이, 그리고 서울 바로크합주단과 함께 연주회를 갖습니다. 치마로사, 고세크, 로타 등의 작품을 연주하는 이날 프로그램 중에서 영화 음악가 헨리 맨시니의 ‘페니휘슬 지그’가 유독 눈길을 끕니다. 31년 전 골웨이가 앙코르로 연주한 것과 같은 곡입니다. 맨시니의 곡으로 표시돼 있지만 실제는 아일랜드 전통 선율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번 무대에서 골웨이는 예전처럼 ‘피리 두개 신공’을 보여줄까요? 예전과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옛 추억에 젖을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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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미완성으로 끝난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

    멋진 새해 계획들 세우셨는지요. 나라 안팎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한 해이지만, 각자 목표하신 일들을 달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힘이야 들겠지만,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힘쓰는 과정 자체도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1824∼1896)가 1887년 아홉 번째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가 이 곡의 운명을, 나아가 자신이 맞을 운명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 곡을 자신이 사랑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쓰고자 했습니다. 10년 가까운 시간을 들였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그는 세상을 떠났고, 4개 악장 중 피날레를 제외한 3개 악장의 악보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4악장은? 주제 선율들을 적은 여러 장의 스케치만 남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브루크너가 습관대로 이 스케치 악보들에 순서대로 번호를 적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 번호에 따라 스케치 악보를 읽어보면 대략의 구조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에 따라 몇몇 음악학자와 작곡가들이 자기 나름대로 완성한 4악장 악보를 발표했습니다. 브루크너 자신은 “완성하지 못한 4악장을 잊어버리고 내가 예전에 쓴 테데움(찬미가)을 3악장 뒤에 연주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교향곡 9번은 대부분의 경우 후대에 가필 완성된 4악장도, 테데움도 없이 브루크너가 완성한 3개 악장만 연주되고 있습니다. 3개 악장만으로도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웅대하고도 완결된 듯한 구도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합니다. 이번에도 브루크너가 완성한 3개 악장만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합니다.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지휘하려던 애초의 계획과 달리 독일 출신 거장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지휘봉을 듭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만은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단절이 있을 수 있죠. 그래도 남은 사람들이 목표를 계속 이어가고 발전시켜 나간 결과 인간의 장려한 역사가 있었음을, 또한 진보와 발전이 있었음을 이 새해에 생각해 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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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바흐 첼로 모음곡’ 가치 알아본 카살스

    이달 중순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어 다닌 일이 아직 머리에 생생합니다. 건축가 가우디의 자취를 돌아본 것 외에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1876∼1973)가 다녔던 악보점은 어디 있었을까’ 상상해보는 일도 즐거웠죠. 카살스는 ‘현대 첼로 연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연주가입니다. 첼로 연주 기법의 진보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첼로 레퍼토리를 넓히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특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내’ 첼로 음악 애호가에게 사랑받는 레퍼토리로 만든 주인공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불과 13세 때 바르셀로나의 악보점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를 발견한 뒤 이 곡을 널리 연주해 세상에 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널리 퍼진 오해가 있습니다. 카살스가 악보를 찾아내기 전까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정말로 ‘잊혀진’ 곡이었을까요? 카살스가 악보를 ‘찾아냈다’는 일화만 기억하는 사람들은 13세 소년이 악보점에서 찾아낸 악보가 바흐가 손으로 쓴 악보이거나, 바흐 생전에 출판된 악보였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악보는 독일 첼리스트 프리드리히 그뤼츠마허(1832∼1903)가 손을 보아 출판한 교정보였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이 곡이 분명히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카살스가 어렸을 때인 1880년대에도 많은 첼리스트들이 바흐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작품집이 첼로 기량을 연마하기 위한 ‘연습곡’이라고만 생각해 청중 앞에서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이 곡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기 시작하고 그 매력을 널리 알린 주인공은 분명 카살스가 맞습니다. 다시 말하면 카살스의 공로는 이 곡의 ‘가치’를 재발견한 데 있는 것이지 이 곡의 ‘악보’를 발견한 데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카살스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고 이후 프랑코 독재가 성립되자 고향에서 가까운 프랑스의 프라드에 정착했고 평생 고향인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을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오늘날 민주화된 스페인을 보면 그가 어떤 감회를 표현할지 궁금합니다. 오늘(29일)은 그가 별세한 지 42년째 되는 날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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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라보엠’ 여주인공 미미는 당돌? 청순?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매년 그렇듯이, 크리스마스이브가 배경인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과 푸치니(사진)의 오페라 ‘라보엠’이 전국 곳곳에서 공연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라보엠’에서는 미미가 촛불을 불어 끄도록 하는 연출이 많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1막에서 여주인공 미미는 자취방을 비추던 촛불이 꺼지자 초를 들고 같은 건물에 사는 시인 로돌포의 방으로 불을 붙이러 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미가 멀쩡하게 불 켜진 초를 들고 가다 로돌포의 방문 앞에 와서 초를 훅 불어 끄는 장면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사소한 차이지만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큽니다. 미미가 로돌포의 방 앞에서 초를 껐다면, 단지 이웃에게 불을 빌리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미는 적당한 구실을 붙여 로돌포를 ‘찾아간’ 것이고, 미리 로돌포를 점찍어 둔 게 됩니다. 적극적이고 ‘당돌한’ 여인입니다. 적절한 모습일까요? 이 오페라의 원작인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들의 생활 정경’에서 미미는 파리 라탱 지역의 대부분 젊은 여성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연애는 젊고 멋진 예술가들과 하고, 나이 들고 부유한 남자들에게서는 용돈을 챙기는 여인들 중 한 명이죠.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돌한’ 미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불이 꺼진 척하는’ 미미에 반대입니다. 그렇게 적극적인 미미는, 푸치니가 선율과 반주부에 깔아놓은 연약하고 바스러질 듯한 이미지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푸치니는 대본작가들에게 미미를 ‘청순무구’한 여인으로 그리도록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가 죽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미미에게 투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푸치니의 어머니는 의지가 강하고 과감한 여인이었지만, 푸치니가 데뷔작 ‘빌리’로 성공을 거둔 직후 암에 걸려 촛불이 꺼지듯이 쇠약한 상태로 죽어 갔습니다. 이후 처음으로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여인을 오페라에 등장시킨 푸치니는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들을 떠올렸고, 이 주인공을 순수의 화신으로 그리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연말입니다. 연인이나 배우자에게도, 부모님께도 기쁨 드리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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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휴대전화 벨소리로 유명한 타레가의 ‘그란 발스’

    지난주 스페인 중부와 남부 일대를 여행했습니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에서는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를 보고, 바르셀로나의 리세우 극장에서는 도니체티의 오페라 ‘라메르무어의 루치아’를 관람했습니다. 특히 마드리드에서 ‘살아있는 리골레토’로 불리는 73세 바리톤 레오 누치가 부르는 리골레토는 굉장했습니다. 질다 역을 맡은 올가 페레탸트코와 함께 부른 2막 2중창은 청중의 열렬한 갈채에 응답해 다시 한 번 불러야 했습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흘렀습니다만, 11일 7년 만에 찾은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였던 프란시스코 타레가(1852∼1909)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슬람 군주의 성이었다가 기독교 정복 뒤 서유럽 양식의 건물들이 덧붙여진 언덕 위의 아름다운 궁전을 보고, 타레가는 기타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썼습니다. 같은 음이 빠르게 반복되는 트레몰로 주법이 인상적인 곡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거쳐 가는 ‘성지’와 같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타레가의 작품 중 더 널리 퍼진 선율이 있습니다. 1902년 작곡한 ‘그란 발스’라는 곡입니다. 제목이 생소하죠? 이른바 ‘노키아 벨소리’로 알려진 곡입니다. 휴대전화 회사인 노키아는 1994년부터 이 곡의 선율 일부를 이 회사의 전화기에 넣었고, 이는 곧 세계인에게 친숙한 선율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선율을 휴대전화 벨소리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2012년에는 루마니아의 한 비올리스트가 객석에서 이 벨소리가 들리자, 이 벨소리를 받아서 즉흥연주를 하는 영상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12월 15일)은 타레가가 세상을 떠난 지 106년 되는 날입니다. 그는 기타가 가진 기교적인 잠재력을 모두 끌어내 당대 제일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파블로 사라사테와 비교되며 ‘기타의 사라사테’로 불렸습니다. 단지 한 사람의 기타리스트를 넘어 기타라는 악기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 하루는 휴대전화 벨소리를 ‘그란 발스’로 바꾸어 보겠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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