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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전남 순천의 한 시골마을에서 50, 60대 여성 2명이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시다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였다. 더 충격적인 건 “숨진 여성 중 1명의 남편과 딸이 공모한 살인”이란 수사 결과였다. 남편 백모 씨(당시 59세)는 무기징역, 딸(당시 26세)은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잊히는 듯했던 ‘독(毒) 막걸리’ 사건은 14년여 만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광주고법이 4일 사건을 재심하라고 결정하며 부녀를 풀어줬다. 검찰이 자백을 강요했고, 부녀에게 유리한 증거를 고의로 누락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딸이 저(와) 함께 엄마를 죽였다고 인정했다면 저도 인정합니다.’ 백 씨는 용의자로 검찰에 체포되던 날 자술서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 한 문장을 썼다. 열흘 뒤 작성된 추가 자술서에는 상세한 범행 경위가 깔끔한 글씨체로 적혀 있다. 검찰은 아버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딸이 이를 눈치챈 어머니를 살해하려 아버지와 짜고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백 씨 모녀의 자백을 주요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1심은 자백의 신빙성을 의심해 무죄로 봤지만 2심, 3심은 “범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진술”이라며 유죄 판결했다. ▷재심은 판결 확정 뒤에 무죄 증거가 새롭게 나오거나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가 확인될 경우 가능하다. 이번 재심 결정은 후자에 해당한다. 당시 조사 녹화 영상에는 범행을 부인하는 백 씨 부녀를 상대로 유도 심문이 집요하게 반복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검사가 자백 진술서를 받기 위해 한글을 잘 모르는 백 씨에게 ‘당신이 불러주면 직원이 대신 쓸 것’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백 씨와 발달장애를 가진 딸은 체념한 듯 질문마다 “네”라고 짧게 답했다. ▷검찰은 증거를 취사 선택해 불리한 건 법원에 내지 않았다. “(백 씨처럼) 오이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해충을 없애려 청산가리를 사용한다”는 일부 진술만 제출하고 “그건 유황가루를 오인한 것이고, 청산가리는 절대 쓰지 않는다”는 오이농부 수십 명의 진술은 숨겼다. 또 부녀가 막걸리를 사왔다는 순천의 국밥집 인근 폐쇄회로(CC)TV를 통째로 확보해 범행 관련 행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도 법원엔 “CCTV 기록이 없다”고 했다. ▷사건을 초동 수사했던 경찰은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 순천지청 K 검사는 꿰맞추기 수사로 백 씨 부녀를 기소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부녀가 재판에서 자백을 번복해 무죄를 호소했음에도 유죄가 확정됐을 때 K 검사는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에서 정의를 실현한 스타 검사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 화성 연쇄살인 사건 등에서도 재심을 거쳐 진범을 잡은 사례가 있지만 21세기에도 이런 억지 수사가 통한 것이다. 강압 수사를 한 검사는 물론 이를 검증하지 못한 법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칠레 대통령인 가브리엘 보리치(37)의 부모 자택 앞에서 선물 꾸러미가 사라진 것은 성탄절을 앞둔 23일(현지 시간) 밤이었다. 칠레 남부 푼타아레나스에 사는 보리치 대통령의 부모가 이 지역 환경미화원들에게 주려고 직접 빵과 현금을 넣어 만든 꾸러미들이었다. 현지 일간지 마가야네스는 “최근 칠레에 절도 등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번엔 대통령 가족의 차례가 됐다”고 24일 전했다. 칠레는 남미 첫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비교적 치안이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범죄가 늘면서 대통령 부모까지 절도 피해를 입게 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2일 발표된 국민 치안 인식 조사(2022년) 결과에 따르면 ‘국내 범죄가 증가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90.6%에 달했다. 이는 2012년 이후 10년 사이 가장 높은 수치라고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폭력이나 협박을 동반한 강도나 차량 절도 등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는 응답도 21.8%로 나타났다. 카롤리나 토아 칠레 내무·공공안전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살인 사건의 경우는 2016년 이후 증가하다 올해는 전년보다 감소했다”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미국 국무부 고위직을 지내며 40년간 쿠바 스파이로 활동해 온 빅터 마누엘 로차(73)는 지난해 11월 마이애미의 식당가에서 젊은 정보요원을 만났다. 로차는 접선 지점에서 수십 m 떨어진 곳에서 한참 동안 이 청년을 지켜보다 다가갔다. 청년은 유창한 스페인어로 말문을 열었다. “(쿠바 총첩보국) 마이애미 지부 미겔이라고 합니다. 아바나(쿠바의 수도)에 있는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메시지가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새로운 접촉 포인트입니다.” “미겔이라고 했나? 나는 ‘아바나’ 이런 표현 안 써. 그냥 ‘그 섬(The Island)’이라고 하지. 뭘 적지도 않아. 꼬리가 잡히니까.”(로차) 콜롬비아 출신 이민자인 로차는 미국이 주는 온갖 혜택을 누리며 엘리트로 성장한 인물이다. 뉴욕 할렘가에서 자라다 빈민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965년 명문인 터프츠대에 입학했다. 예일대로 옮겨 우등 졸업한 뒤에는 하버드대(케네디스쿨), 조지타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 국무부에는 1981년 입부했다. 멕시코, 쿠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6개국 외교관을 지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남미 국장을 거쳐 2000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에 올랐다. “(이 일을) 몇 년이나 하신 건가요?”(미겔) “거의 40년.”(로차) “와우… (쿠바와) 오랜 기간 우정을 지켜주셨네요.”(미겔) “쉽지 않았지. 많은 걸 희생했고…. 한순간도 긴장을 놓은 적이 없어. 나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안 되니까. 그래도 신념이 있으면 정신을 붙잡게 돼.”(로차) 로차가 쿠바에 포섭된 시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3년경이다. 당시 로차는 칠레를 여행 중이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를 축출했고, 미국이 이 군부정권을 물밑 지원하던 때였다. 쿠바 역시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이후 미국 재산을 국유화해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었다. 쿠바는 미국과의 대결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고 선전하며 남미 출신 미국인을 첩보원으로 끌어들였다.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 주류 사회 침투 가능성이 높은 로차는 매력적인 포섭 대상이었다. “(쿠바) 본부와 마지막으로 닿은 게 2017년쯤이었어.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 있으라더군. 그 후로 난 우익 인사로 살았지. 그게 내 레전드(legend)야.”(로차) ‘레전드’는 비밀요원이 정체를 숨기려 만들어낸 캐릭터를 뜻하는 은어다. 로차는 2002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 퇴직 후에도 쿠바를 관할하는 미 남부사령부 고문으로 6년 넘게 활동하며 군사기밀에 접근했다. 로차는 미겔에게 “젊은 요원을 보게 돼 뿌듯하다”며 회한에 잠긴 듯 ‘나 때는’ 발언을 이어갔다. “우리가 해온 일들은 정말 대단했어. 그랜드 슬램(세계 4대 테니스 대회인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 이상이지. 그들(미국)은 우리를 과소평가했어.” 쿠바가 훔친 정보는 쿠바 안에 머물지 않는다. 우방인 러시아, 중국, 북한 등으로 흘러갈 수 있다. 미국의 봉쇄로 경제가 어려웠던 쿠바는 구소련에 크게 의지했다. 정보기관도 KGB로부터 훈련과 지원을 받아 운영됐다. 냉전 후에도 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면서 정보 공조는 지속됐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미 플로리다에서 불과 150km 떨어진 쿠바 해안에 정보 시설을 다시 열었다. 쿠바에 막대한 지원을 해온 ‘최대 채권국’ 중국도 미국을 겨냥한 정보 기지로 쿠바를 활용하고 있다. 신냉전의 핵심 교두보로 급부상하는 쿠바를 미국은 ‘지나간 적’으로 여기며 방심했다. 미겔은 올 6월 로차와 세 번째 접선을 했다. “본부에서 확인하려는 사항이 있습니다. 당신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는지 궁금해합니다.”(미겔) “그런 걸 물어온다니 화가 나는군. 마치 내가 남자가 맞느냐고 묻는 거니까. 바지를 내려서 성기를 보여 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어.”(로차) 두 사람의 대화는 미 연방검찰 공소장에 녹취록으로 첨부돼 있다. 로차는 40년간 숨겨 온 정체를 연방수사국(FBI) 위장 요원인 미겔에겐 미처 감추지 못했다. 세 번째 접선 후 체포된 로차는 미겔과의 만남 자체를 부인하다 둘이 나란히 찍힌 사진을 수사관이 들이밀자 입을 닫았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4일(현지 시간) 로차를 간첩 혐의로 기소하면서 “외국 요원이 미국 정부의 최고위직에, 가장 오래 침투한 사건”이라고 했다. 로차는 내년 초 마이애미 법정에 선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미국 국무부 고위직을 지내며 40년간 쿠바 스파이로 활동해 온 빅터 마누엘 로차(73)는 지난해 11월 마이애미의 식당가에서 젊은 정보요원을 만났다. 로차는 접선 지점에서 수십 m 떨어진 곳에서 한참 동안 이 청년을 지켜보다 다가갔다. 청년은 유창한 스페인어로 말문을 열었다.“(쿠바 총첩보국) 마이애미 지부 미겔이라고 합니다. 아바나(쿠바의 수도)에 있는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메시지가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새로운 접촉 포인트입니다.”“미겔이라고 했나? 나는 ‘아바나’ 이런 표현 안 써. 그냥 ‘그 섬(The Island)’이라고 하지. 뭘 적지도 않아. 꼬리가 잡히니까.”(로차)콜롬비아 출신 이민자인 로차는 미국이 주는 온갖 혜택을 누리며 엘리트로 성장한 인물이다. 뉴욕 할렘가에서 자라다 빈민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965년 명문인 터프츠대에 입학했다. 예일대로 옮겨 우등 졸업한 뒤에는 하버드대(케네디스쿨), 조지타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 국무부에는 1981년 입부했다. 멕시코, 쿠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6개국 외교관을 지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남미 국장을 거쳐 2000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에 올랐다.“(이 일을) 몇 년이나 하신 건가요?”(미겔)“거의 40년.”(로차)“와우… (쿠바와) 오랜 기간 우정을 지켜주셨네요.”(미겔)“쉽지 않았지. 많은 걸 희생했고…. 한순간도 긴장을 놓은 적이 없어. 나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안 되니까. 그래도 신념이 있으면 정신을 붙잡게 돼.”(로차)로차가 쿠바에 포섭된 시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3년경이다. 당시 로차는 칠레를 여행 중이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를 축출했고, 미국이 이 군부정권을 물밑 지원하던 때였다. 쿠바 역시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이후 미국 재산을 국유화해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었다. 쿠바는 미국과의 대결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고 선전하며 남미 출신 미국인을 첩보원으로 끌어들였다.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 주류 사회 침투 가능성이 높은 로차는 매력적인 포섭 대상이었다.미 국방정보국의 쿠바 전문 정보분석관으로 활동하며 17년 간 미군 기밀정보를 빼돌리다 2001년 발각된 아나 몬테스도 비슷한 시기에 포섭된 쿠바 스파이였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에 성공해 부와 명예를 보장받을 수 있었음에도 비밀공작을 멈추지 않았다.“(쿠바) 본부와 마지막으로 닿은 게 2017년쯤이었어.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 있으라더군. 그 후로 난 우익 인사로 살았지. 그게 내 레전드(legend)야.”(로차)‘레전드’는 비밀요원이 정체를 숨기려 만들어낸 캐릭터를 뜻하는 은어다. 로차는 2002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 퇴직 후에도 쿠바를 관할하는 미 남부사령부 고문으로 6년 넘게 활동하며 군사기밀에 접근했다. 로차는 미겔에게 “젊은 요원을 보게 돼 뿌듯하다”며 회한에 잠긴 듯 ‘나 때는’ 발언을 이어갔다.“우리가 해온 일들은 정말 대단했어. 그랜드 슬램(세계 4대 테니스 대회인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 이상이지. 그들(미국)은 우리를 과소평가했어.”쿠바가 훔친 정보는 쿠바 안에 머물지 않는다. 우방인 러시아, 중국, 북한 등으로 흘러갈 수 있다. 미국의 봉쇄로 경제가 어려웠던 쿠바는 구소련에 크게 의지했다. 정보기관도 KGB로부터 훈련과 지원을 받아 운영됐다. 냉전 후에도 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면서 정보 공조는 지속됐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미 플로리다에서 불과 150km 떨어진 쿠바 해안에 정보 시설을 다시 열었다. 쿠바에 막대한 지원을 해온 ‘최대 채권국’ 중국도 미국을 겨냥한 정보 기지로 쿠바를 활용하고 있다. 신냉전의 핵심 교두보로 급부상하는 쿠바를 미국은 ‘지나간 적’으로 여기며 방심했다.미겔은 올 6월 로차와 세 번째 접선을 했다. “본부에서 확인하려는 사항이 있습니다. 당신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는지 궁금해합니다.”(미겔)“그런 걸 물어온다니 화가 나는군. 마치 내가 남자가 맞느냐고 묻는 거니까. 바지를 내려서 성기를 보여 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어.”(로차)두 사람의 대화는 미 연방검찰 공소장에 녹취록으로 첨부돼 있다. 로차는 40년간 숨겨 온 정체를 연방수사국(FBI) 위장 요원인 미겔에겐 미처 감추지 못했다. 세 번째 접선 후 체포된 로차는 미겔과의 만남 자체를 부인하다 둘이 나란히 찍힌 사진을 수사관이 들이밀자 입을 닫았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4일(현지 시간) 로차를 간첩 혐의로 기소하면서 “외국 요원이 미국 정부의 최고위직에, 가장 오래 침투한 사건”이라고 했다. 로차는 내년 초 마이애미 법정에 선다.로차의 전직 국무부 동료들은 “감쪽같이 속았다는 생각에 치가 떨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1990년대 중반 쿠바의 미국 대사관격인 아바나의 미 이익대표부에서 로차와 함께 근무했던 한 간부는 “당시 카스트로 정권의 독재를 같이 한탄했었고, (로차가) 아이비리그 동문들의 우파 성향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해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미국 외교의 거목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사진)이 29일(현지 시간)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향년 100세. 냉전시기 ‘핑퐁 외교’의 주역이면서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주도했던 키신저 전 장관은 7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한 행보를 보여왔다.키신저 전 장관만큼 미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정치인도 드물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냉전 갈등이 세계를 지배했던 시절 ‘죽의 장막’을 열어젖혔다. 러시아와의 군비확대 경쟁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전략무기협정을 체결해 데탕트를 모색했으며 당시 미국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베트남전 휴전협정을 유도했다. 그는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국과도 친했던 그는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벤플리트상을 2009년 수상했다. 90세가 넘어서도 해외 순방을 멈추지 않고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등 말년까지 영향력을 보였다.키신저 전 장관이 존경을 받는 것은 단지 외교적 업적뿐만이 아니다. 그는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방인으로 현대 외교사의 거인으로 우뚝 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기도 하다.키신저 전 장관은 1923년 5월 27일 독일 북부 퍼스(Furth)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유대인으로 어머니는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으며 아버지는 교사였다. 어린 시절 그는 하루 2시간씩 유대교 율법집인 탈무드를 공부할 정도로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다.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책에 빠져 산다”며 “좀 더 활발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소수 정예 학생들이 입학하는 인문계 중고등학교 김나지움에 들어가는 꿈을 키우며 공부했다.그러나 그의 꿈은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이 부상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유대인 차별정책으로 인해 김나지움 입학은 불가능해졌다. 10대 소년이었던 키신저는 유대인 박해를 견디며 살았다. 축구를 좋아했던 그는 소년 축구 클럽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가입할 수 없었다. 유대인 금지 규정을 어기고 몰래 경기장에 들어가 경기를 관람하다가 나치 당원들로부터 몰매를 맞기도 했다. 당시의 기억은 키신저 전 장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화가 나고 억울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미국에 건너와서도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뒷걸음을 쳤다. 독일에서 나치 당원들에게 맞은 기억 때문이었다. 나치즘이 점점 기세를 올리고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그의 부모는 1938년 미국행을 결심했다. 키신저가 15세 때였다. 그의 가족을 배를 타고 런던을 거쳐 뉴욕에 도착했다. 돈 없이 미국에 온 그의 가족은 공장에서 일을 했다. 키신저 전 장관 역시 면도용 브러시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미국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독일 분위기가 나는 중간 이름 ‘하인즈’를 버렸다. 그는 뉴욕의 조지워싱턴 고교에 입학해 빠르게 영어를 배웠다. 교내에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1940년 뉴욕 시립 컬리지에 입학한 뒤에는 회계사가 돼 가정을 돕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제2차 세계대전 참전은 키신저의 꿈을 바꿔 놓았다. 1943년 미국 시민이 된 그는 곧바로 전쟁에 징집됐다. 미국에 온지 5년 만에 자신의 고향 독일에 대항해 싸우게 된 것. 그는 처음에는 프랑스에 소총병으로 파견됐으나 유창한 독일어 실력 덕분에 곧바로 독일 정보수집 임무를 맡게 됐다. 키신저는 독일 하노버에 침투해 게슈타포 장교들의 전쟁 기밀을 감청하는 역할을 맡았다. 유명한 발지 전투에서 독일군 공격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자청해 전투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큰 공적을 세웠다. 일등병으로 군에 입대했던 그는 사령관으로 초고속 승진했으며 청동 무공훈장을 받았다. 탁월한 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을 인정받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보 교관으로 활동했다.전쟁의 최전선에서 외교의 각축 현장을 직접 목격한 키신저 전 장관은 외교 분야 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바꾸고 하버드대로 편입해 1950년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 당시 그가 대학 졸업 논문으로 ‘역사의 의미’라는 주제로 383쪽짜리 연구 논문을 쓴 것은 지금도 하버드대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키신저 전 장관의 장대한 논문에 놀란 하버드대 당국은 이후부터 대학 졸업 논문은 100쪽 내외여야 한다는 ‘키신저 규정’을 마련할 정도였다. 비록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탁월한 분석력과 직관력을 엿볼 수 있는 그의 대학 논문은 지금도 하버드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1954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바로 하버드대 정부학과 교수로 임용됐고 이후 5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다. 그는 1957년 하버드대 교수로 있으면서 ‘핵무기와 외교정책’이라는 명저를 발표했다. 이 책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존 포스터 델레스 국무장관의 소련의 공격에 대한 ‘대량 핵 보복’ 정책에 반대하며 재래식 무기와 전술적 핵무기를 사용하는 유엔 대응 전략만으로도 소련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버드대 교수로 있으면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린든 존슨 대통령의 특별고문으로 임명돼 외교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했다.키신저는 1969년 하버드대를 떠나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보좌관과 국무장관으로 1975년까지 일했으며 이후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도 1977년까지 국무장관을 맡았다. 1978년 민주당의 지미 카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후 컬럼비아대, 조지워싱턴대 교수를 지내면서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H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보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키신저 전 장관은 1982년 키신저 어소시에이츠라는 정치 자문 및 로비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9·11테러를 조사하는 ‘대미 테러공격 위원회(NCTAUUS)’ 위원장으로 임명됐으나 키신저 어소시에이츠 고객과의 이해충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자진 사퇴했다.키신저 전 장관은 “내 인생을 돌아보면 누가 세계 최강국의 국무장관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독일에서는 유대인 박해로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미국에 건너와서도 어린 나이에 공장에 다니며 학비를 벌어야 했던 자신이 세계사에 남을 외교인으로 우뚝 선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그는 생전 3권의 자서전의 썼으며 14권의 저서를 남겼다. 자서전 ‘백악관 시절’은 1980년 전미도서위원회 최고의 역사 서적으로 꼽힐 정도로 내용이 알차다.. 정책서 중 ‘미국 외교정책(1969)’ ‘외교(1994)’ ‘중국 이야기(2011)’는 키신저의 3대 명저로 꼽힌다. 가장 최근 저서로는 ‘세계 질서(2014)’가 있다.두 번 결혼했던 키신저 전 장관은 1남 1녀를 두고 있다.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 데이비드 키신저는 외교인이 아닌 방송계로 진출해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장관 시절에도 고향인 독일 퍼스 축구팀의 전적을 매주 챙겼을 정도로 열렬한 축구팬이었다. 그는 2012년 고향을 방문해 퍼스팀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키신저 전 장관은 퇴임 후 인터뷰에서 “가장 즐기는 스포츠 게임이 뭐냐”는 질문에 “외교(Diplomacy)”라고 답했다. 그는 평생 외교를 사랑한 미국인이었다.외교 업적2013년 초 뉴욕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90세 생일 축하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그의 외교적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지 보여주는 행사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텡 전 프랑스 대통령,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매케인 상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 정재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지 슐츠, 제임스 베이커, 콘돌리자 라이스, 힐러리 클린턴, 존 케리 등 미국의 전현직 국무장관도 총출동했다. 매케인 의원은 “그는 미국과 세계가 가장 혼란스러웠을 때 외교의 등불을 밝혔다”며 “키신저 전 장관만큼 존경받는 인물을 본 적이 없다”는 축사를 건넸다.이에 키신저 전 장관은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위기가 닥쳤을 때 세계가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며 “나는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의 외교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다”고 감회를 밝혔다.2016년 11월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키신저를 트럼프타워로 초청해 세계정세에 대한 견해를 구한 것도 키신저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2015년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지난 50년간 가장 효과적인 국무장관은 누구였는가’라고 묻자 미국서 활동하는 1615명의 국제정치학자 중 32.2%는 키신저를 꼽았다. 2위 ‘잘 모르겠다(18.3%)’와 3위 제임스 베이커(17.7%)를 압도했다.실제로 키신저 전 장관이 외교 사령탑으로 있던 1969~1977년은 미국 외교의 최대 전성기였다. 베트남 중국 소련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베트남 칠레 아르헨티나 아프리카 등 미국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미국이 지지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효과적인 외교 정책 수립을 위해선 감정이 배제된 가치중립적인 전략 이익 추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현실주의자 키신저. 그의 3대 외교 업적으로는 중국 방문, 소련과의 무기통제협정, 베트남전 휴전협정이 꼽힌다.1971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키신저 전 장관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관계를 재정립하라’는 밀명을 받고 중국을 방문했다. 국무부도 모르는 비밀 방문이었다. 중국은 제2차 대전 후 미국과는 별다른 접촉이 없는 베일 속에 가려진 나라였지만 미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키신저 전 장관은 파키스탄 방문 중 비밀리에 중국에 가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만나 이듬해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켰다. 단 17시간의 체류는 양국 관계를 새로운 출발점이었다.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 비밀방문 보고서에서 “우리는 추상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다루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데올로기와 현실정치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는 “이념을 앞세우는 냉전시대 외교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키신저 전 장관은 2016년 12월에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는 등 왕성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그가 중국을 방문한 횟수는 40회를 넘는다. 그는 2011년 저서 ‘중국 이야기’에서 “국제무대에서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미국과 중국은 파트너십이라기보다 함께 앞으로 나가는 공진(共進)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가능하면 협력하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호 관계를 조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앞서 1969년 키신저 전 장관은 냉전시대의 라이벌인 소련과 전략무기제한협정(SALT)를 이끌어내며 데탕트의 서곡을 울렸다. 그는 SALT 협상을 통해 증가 일로를 치닫던 미국과 소련의 공격용 전략미사일 수를 동결시켰다. 당시 그는 주미 소련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 공산당 제1서기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비밀 협상을 벌여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키신저 전 장관은 처음에는 베트남전 철수를 반대하며 강경노선을 유지했지만 남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하여 이를 남베트남 군대로 대치하는 ‘월남화’ 정책을 밀고 나갔다. 수개월 동안 파리에서 북베트남 정부와 비밀 협상을 벌인 끝에 1973년 미군을 철수하고 남북 베트남 사이의 평화정착의 토대를 마련하는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베트남 분쟁을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키신저 전 장관은 북베트남 협상대표 르 둑 토(黎德壽)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토는 수상을 거절했지만 키신저 전 장관은 “겸손하게 상을 받겠다”며 수상했다. 그러나 1975년 북베트남의 공격으로 남베트남이 함락되고 공산화되면서 평화협정은 무용지물이 됐다.키신저 전 장관의 외교는 중동에서 빛을 발했다. 베트남전 평화협정을 체결하던 바로 그 해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1973년 중동전이 발생하자 키신저 전 장관은 수차례 중동 여러 국가를 방문하는 ‘’셔틀 외교‘를 펼치며 휴전을 유도했다. 키신저 전 장관이 이스라엘에게 이집트 점령지 일부를 반환할 것으로 촉구하면서 1950년대 이후 냉각됐던 미국과 이집트의 관계는 정상화됐다.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키신저 전 장관은 평소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수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를 꼽았다. 키신저 전 장관은 메테르니히를 주제로 하버드대 박사 학위 논문도 썼다. 프랑스 나폴레옹에 대적해 주변 4국의 동맹을 주도한 메테르니히의 정치술은 키신저 전 장관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불완전한 동맹이라고 해도 협력을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세계질서를 지키는 것이 혼돈과 혁명보다 낫다는 키신저의 ‘현실정치(Realpolitik)’는 메테르니히에서 출발했다.정치학자 로버트 캐플린은 키신저 전 장관을 가리켜 “미국이 펼치고 싶은 것이 아닌, 펼쳐야만 하는 외교정책을 펼친 인물”이라고 평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상주의가 아닌 냉철한 현실 인식에 바탕으로 두고 미국의 이해관계를 넓히고 세계질서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뒀다. 뉴욕타임스는 “키신저 전 장관이 미국 외교의 지평을 넓혔고 그의 리더십 하에서 미국 외교가 황금시대를 구가했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평했다.논란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2012년 4월 하버드대를 방문해 특별 강연을 했다. 이 방문은 키신저 전 장관에게는 43년만의 ‘귀향’이었다.키신저 전 장관은 1969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 임명될 때까지 15년 동안 하버드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그러나 하버드대는 그가 1977년 장관 퇴임 후 다시 교수로 돌아오려고 했을 때 받아주지 않았다. 웬만한 유명 동문에게 주는 졸업 축사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키신저 전 장관도 자신을 냉대하는 하버드대와 담을 쌓으며 지냈다. 이날 강연에서도 일부 청중은 “키신저는 전범이다”라고 외치며 키신저의 하버드 귀환에 반대했다.하버드대와 키신저 전 장관 간의 반세기에 가까운 냉전은 키신저의 외교 정책 때문이었다. 진보 성향의 하버드대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서 국익에 바탕을 둔 키신저식 실리 외교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업적이 많은 만큼 과오도 많다’는 비판이었다.키신저 전 장관은 1970년 칠레에서 좌익 성향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당선되자 남미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아옌데를 축출하기 위해 피노체트 군사 반란을 지원했다. 피노체트 독재 하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면서 키신저의 피노체트 지원은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는 베트남전 당시 캄보디아 영토를 침입해 활동하는 북베트남군을 봉쇄하기 위해 베트남전에 중립을 지키던 캄보디아에 대한 무차별 폭력을 감행해 킬링필드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다.이와 함께 키신저 전 장관은 1975년 동맹국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공격해 주민을 학살하는 것을 묵인했다는 논란도 있다. 미국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키신저 전 장관을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해야 한다”며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실은 전범자라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키신저 전 장관은 하버드대 연설에서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학자는 최상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정책 결정자는 제한된 옵션 중에서 제일 나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키신저 외교 정책의 과실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들어놓은 국제질서가 지금도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미국에서 공화당 대통령들은 민주당 대통령들에 비해 연방대법관 임명 기회를 더 많이 누렸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이 임명한 대법관은 1, 2명에 그쳤지만 로널드 레이건은 3명, 도널드 트럼프와 리처드 닉슨은 불과 4년 임기 동안 각각 3명, 4명을 대법관에 앉혔다. 공화당 대통령들 중에서도 트럼프는 ‘타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다른 대통령들이 보수적 가치를 실현해줄 것으로 기대하며 임명했던 대법관들은 막상 판결할 때 중도에 서거나 진보 대법관들과 의기투합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트럼프가 임명한 3인은 달랐다. 지명 당시부터 선명한 보수 성향으로 논란이 됐던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기대에 부응하며 대법관 9명으로 이뤄진 연방대법원을 확실하게 보수로 기울게 했다. ‘트럼프 대법관들’ 합류 이후 연방대법원에서 벌어진 하이라이트 사건은 지난해 6월 낙태권 폐지 판결이다. 1973년 낙태권을 최초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왔을 때 이에 찬성한 7명 중 3명은 다름 아닌 공화당의 닉슨이 임명한 대법관들이었다. 1992년 대법원이 낙태권 존폐를 다시 다뤘을 때도 레이건이 임명한 대법관 3명 중 2명이 ‘존치’ 쪽에 서면서 낙태권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난해 재판에서 ‘트럼프 대법관들’은 단 한 명도 이탈 없이 낙태권 폐지를 지지해 보수주의자들의 숙원을 이뤄줬다. 이 판결이 나온 날 트럼프는 “다른 대통령들이 실패했던 일을 내가 해냈다. 내가 임명한 3명의 대법관들과 함께”라며 자신의 업적을 부각했다. 이것은 근거 있는 자랑이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 나서며 “당선되면 태아의 생명을 지킬 것이다. 그런(낙태 금지) 판결을 할 2, 3명을 연방대법관에 앉히면 되는데 그러려면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며 보수 표심을 저격했다. 미국에서 대선 후보가 특정 이슈에 대해 특정 결론으로 판결할 대법관을 임명하겠다고 공언한 건 트럼프가 처음이었다. 사실상 ‘사법부를 정치에 이용하겠다’는 이 대국민 선언을 트럼프는 성공적으로 이행했다. 보수로 기운 연방대법원은 총기 규제, 소수 인종 우대, 학자금 채무 면제 등 바이든의 주요 정책을 번번이 무력화시켰다. 보수진영에선 “다른 건 몰라도, 우리 편 대법관 3명을 ‘알박기’ 한 게 트럼프의 최대 업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대선을 1년 앞둔 지금, 트럼프가 ‘사법적 치적’으로 홍보해온 낙태권 폐지는 그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주 정부가 낙태 허용 여부를 자체 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 등 낙태 찬성 유권자들을 꽁꽁 결집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과 공화당이 팽팽히 맞붙는 경합주나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 여론이 출렁이고 있다. 전통적인 민주당 성향 주에서는 주 정부가 낙태권을 계속 보호할 것이기 때문에 위기감이 덜하지만 ‘공화당 주’에서는 낙태가 금지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최근 각 주에서 낙태 관련 법안 주민투표가 이어지는데 대표적인 경합주인 미시간은 물론이고 공화당 표밭인 오하이오, 몬태나, 캔자스, 켄터키 등에서도 낙태 허용 법안은 속속 통과되고, 낙태 제한 법안은 제동이 걸렸다. 낙태 금지를 표방하며 출마한 주지사, 주 대법관들도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와 NBC방송의 9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4%가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에 반대했다. 찬성은 30%에 그쳤다. 대법관들은 6 대 3으로 낙태권 폐지를 결정했는데 여론은 그와 정반대인 것이다. 트럼프는 대법원의 균형추를 인위적으로 옮겨 민의와 다른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를 내년 대선에서 치르게 됐다. 민주당은 대선 전략으로 트럼프가 ‘낙태 반대’ 대법관 3명을 임명한 주역이란 점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지킬 수 있었던 최대 요인은 낙태권 폐지에 반발한 중도층 흡수였는데 내년 대선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공개석상에서 좀처럼 트럼프 얘기를 꺼내지 않던 바이든도 14일(현지 시간)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선 “미국에서 낙태가 금지된 유일한 이유는 바로 트럼프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 물론 트럼프가 역풍에 쉽사리 흔들릴 인물은 아니다. 그는 당내 경쟁 대선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얼마 전 ‘임신 6주 후 낙태 금지’ 법안에 서명하자 “끔찍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낙태 금지 주역’ 꼬리표를 떼어내려 하고 있다. 낙태 표심이 곧바로 바이든에게 향할지도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입맛에 딱 맞았던 낙태권 폐지 판결이 공화당을 늪에 빠뜨리고, 민주당엔 비벼볼 희망이 된 것은 분명하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미국에서 공화당 대통령들은 민주당 대통령들에 비해 연방대법관 임명 기회를 더 많이 누렸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이 임명한 대법관은 1, 2명에 그쳤지만 로널드 레이건은 3명, 도널드 트럼프와 리처드 닉슨은 불과 4년 임기 동안 각각 3명, 4명을 대법관에 앉혔다.공화당 대통령들 중에서도 트럼프는 ‘타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다른 대통령들이 보수적 가치를 실현해줄 것으로 기대하며 임명했던 대법관들은 막상 판결할 때 중도에 서거나 진보 대법관들과 의기투합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트럼프가 임명한 3인은 달랐다. 지명 당시부터 선명한 보수 성향으로 논란이 됐던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기대에 부응하며 대법관 9명으로 이뤄진 연방대법원을 확실하게 보수로 기울게 했다.‘트럼프 대법관들’ 합류 이후 연방대법원에서 벌어진 하이라이트 사건은 지난해 6월 낙태권 폐지 판결이다. 1973년 낙태권을 최초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왔을 때 이에 찬성한 7명 중 3명은 다름 아닌 공화당의 닉슨이 임명한 대법관들이었다. 1992년 대법원이 낙태권 존폐를 다시 다뤘을 때도 레이건이 임명한 대법관 3명 중 2명이 ‘존치’ 쪽에 서면서 낙태권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난해 재판에서 ‘트럼프 대법관들’은 단 한 명도 이탈 없이 낙태권 폐지를 지지해 보수주의자들의 숙원을 이뤄줬다.이 판결이 나온 날 트럼프는 “다른 대통령들이 실패했던 일을 내가 해냈다. 내가 임명한 3명의 대법관들과 함께”라며 자신의 업적을 부각했다. 이것은 근거 있는 자랑이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 나서며 “당선되면 태아의 생명을 지킬 것이다. 그런(낙태 금지) 판결을 할 2, 3명을 연방대법관에 앉히면 되는데 그러려면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며 보수 표심을 저격했다. 미국에서 대선 후보가 특정 이슈에 대해 특정 결론으로 판결할 대법관을 임명하겠다고 공언한 건 트럼프가 처음이었다.사실상 ‘사법부를 정치에 이용하겠다’는 이 대국민 선언을 트럼프는 성공적으로 이행했다. 보수로 기운 연방대법원은 총기 규제, 소수 인종 우대, 학자금 채무 면제 등 바이든의 주요 정책을 번번이 무력화시켰다. 보수진영에선 “다른 건 몰라도, 우리 편 대법관 3명을 ‘알박기’ 한 게 트럼프의 최대 업적”이라는 평가가 많다.하지만 대선을 1년 앞둔 지금, 트럼프가 ‘사법적 치적’으로 홍보해온 낙태권 폐지는 그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주 정부가 낙태 허용 여부를 자체 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 등 낙태 찬성 유권자들을 꽁꽁 결집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과 공화당이 팽팽히 맞붙는 경합주나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 여론이 출렁이고 있다. 전통적인 민주당 성향 주에서는 주 정부가 낙태권을 계속 보호할 것이기 때문에 위기감이 덜하지만 ‘공화당 주’에서는 낙태가 금지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최근 각 주에서 낙태 관련 법안 주민투표가 이어지는데 대표적인 경합주인 미시간은 물론이고 공화당 표밭인 오하이오, 몬태나, 캔자스, 켄터키 등에서도 낙태 허용 법안은 속속 통과되고, 낙태 제한 법안은 제동이 걸렸다. 낙태 금지를 표방하며 출마한 주지사, 주 대법관들도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워싱턴포스트(WP)와 NBC방송의 9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4%가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에 반대했다. 찬성은 30%에 그쳤다. 대법관들은 6 대 3으로 낙태권 폐지를 결정했는데 여론은 그와 정반대인 것이다. 트럼프는 대법원의 균형추를 인위적으로 옮겨 민의와 다른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를 내년 대선에서 치르게 됐다.민주당은 대선 전략으로 트럼프가 ‘낙태 반대’ 대법관 3명을 임명한 주역이란 점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지킬 수 있었던 최대 요인은 낙태권 폐지에 반발한 중도층 흡수였는데 내년 대선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공개석상에서 좀처럼 트럼프 얘기를 꺼내지 않던 바이든도 14일(현지 시간)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선 “미국에서 낙태가 금지된 유일한 이유는 바로 트럼프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물론 트럼프가 역풍에 쉽사리 흔들릴 인물은 아니다. 그는 당내 경쟁 대선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얼마 전 ‘임신 6주 후 낙태 금지’ 법안에 서명하자 “끔찍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낙태 금지 주역’ 꼬리표를 떼어내려 하고 있다. 낙태 표심이 곧바로 바이든에게 향할지도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입맛에 딱 맞았던 낙태권 폐지 판결이 공화당을 늪에 빠뜨리고, 민주당엔 비벼볼 희망이 된 것은 분명하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해외 전문 투자기관이 전 세계 47개국의 연금제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42위에 그친 것으로 평가됐다. 납입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뜻하는 적정성 면에선 꼴찌로 나타났다. 자산운용업체 머서와 글로벌 투자전문가협회(CFA)가 17일(현지 시간) 발표한 ‘2023 글로벌 연금지수(MCGPI)’에 따르면 한국의 연금제도는 100점 만점 중 51.2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중국(55.3), 멕시코(55.1), 남아프리카공화국(54), 인도네시아(51.8)보다도 점수가 낮았다. 머서와 CFA는 각국의 연금 시스템을 적정성과 지속가능성, 운용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평가한 뒤 가중치를 적용해 합산하는 방식으로 순위를 매겼다. 네덜란드(85.0)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호주(5위), 미국(22위), 일본(30위) 등이 뒤를 이었다. 우리는 납입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지를 따지는 적정성 분야에서 39점으로 최하위였다. 지속가능성(52.7)은 27위, 운용관리 부문(68.5)은 34위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연금제도를 C등급으로 분류됐다. C등급은 ‘전반적으로 유용하지만 위험성과 약점이 존재하고,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연금제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앞서 7월에도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맥킨지가 국내 공적·사적연금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연금 소득 대체율은 47%에 불과해 국민의 충분한 노후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인 58% 대비 11%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OECD는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65∼75% 정도로 권고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 역시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 모두 소진될 것이란 추계가 나왔음에도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의 국회 제출 시한을 10여 일 앞둔 18일까지도 보험료 인상 방안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재정 안정에 필요한 보험료율을 아예 제시하지 않고 각종 노후소득 보장 제도를 아우르는 구조 개혁 방향성만 두루뭉술하게 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보다 후퇴한 개편안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이스라엘은 여성이 의무 군복무를 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등 위험 지역에도 여군들이 투입된다. 이스라엘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내가 정말 미소 짓고 있었을까(To see if I am smiling)’에는 가자지구 점령군으로 복무했던 이스라엘 여군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겨 있다. 제대 후 20대 후반이 된 그들은 당시 기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선임이) 제게 총을 쥐여 주며 점령할 마을을 보여 주자 저는 더 강해졌다고 느꼈어요. 노인부터 아이까지 모두가 적이었고 인류애는 곧 (우리의) 죽음이었죠. 우리는 어떤 주저함도 없이 나아갔어요. 총은 장전돼 있고, 이제 갈기기만 하면 됐어요.” “제 아이가 집에서 울어댈 때면 제 기억은 (아기들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곳으로 향하게 돼요. 죄책감이 드냐고요? 그냥 제 마음속 거울을 보는 느낌이에요. 저에게 잠재된 폭력성을 비춰 주는 거울… 저는 좋은 엄마라고 생각해요. 악마 같았던 그 순간만 빼고요.” “군대 동기들에게 가끔 전화를 걸어요. 저는 말하죠. 이게 없어지질 않아. 비누로 손을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질 않아. 그럼 동기는 그게 뭐냐고 물어요. 저는 말해요. 내 손에 묻은 피…. 전투가 끝나고 몇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핏자국이 지워지질 않아요.” 이스라엘은 군사강국이다. 첨단 무기로 무장한 것은 물론이고 전쟁 때마다 30만∼40만 명의 정예 예비군이 소집된다. 2009년과 2014년 가지지구에 진입해 하마스와 지상전을 벌였을 때도 팔레스타인에 압도적인 피해를 안겼다. 2009년 전투 때 이스라엘 사망자는 13명에 불과했지만 팔레스타인에선 민간인 900여 명을 포함해 1400명이 숨졌다. 2014년에는 이스라엘(72명)의 30배에 달하는 21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덜 죽고 많이 죽이면 그것이 이기는 것일까. 그게 승리한 전쟁이라고 해도 이스라엘은 그 승리를 통해 얻어낸 것이 거의 없다. 하마스는 이내 빈자리를 다시 채워 어김없이 이스라엘에 공격을 재개했다. 가족과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마스에 의지하며 켜켜이 복수심을 쌓아왔다. ‘전쟁 영웅’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군인들 역시 손에 무고한 이들의 피를 묻혔다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고 평화와는 멀어지는 오랜 악순환은 이번에도 재연될 조짐이다. 이스라엘은 곧 하마스의 본거지 가자지구에 역대 최대 규모 지상군을 투입할 예정이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1500여 명이 사망하는 초유의 대참사를 당한 이스라엘로선 가혹한 대가를 안기는 것 외에 마땅한 대응책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가자자구에서 전면전이 벌어지면 이스라엘 군인들의 희생이 어느 때보다 클 수 있다. 이스라엘로선 국제사회의 압박과 이란 등으로 확전될 위험 때문에 민간인 피해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 지역을 통째로 초토화시키기보단 밀착한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으로 소규모 전투를 이어가야 한다. 전투원과 민간인이 구별되지 않는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는 수백 km에 달하는 땅굴 곳곳에 함정을 파놓고 이스라엘군을 기다릴 것이다. 가지지구 작전에 참여했던 한 이스라엘 병사는 “집 한 채 한 채 문 하나 하나를 열 때마다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군인들과 인질들의 희생을 감수하고 하마스 세력을 일시 제압한다고 한들 가자지구 주민들의 계속될 저항은 막을 길이 없다. 중동의 해묵은 보복의 쳇바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지도자들이 있었다.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인정한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 1978년 중동과 이스라엘 간 최초의 평화협정을 이끈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둘 다 각자의 진영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최후를 맞았다. 라빈 총리는 유대인 민족주의자의 손에, 사다트 대통령은 이슬람 과격단체에 의해 암살됐다. 평화보다는 전쟁, 공존보다는 배제를 추구하는 쪽이 살아남는 생태계가 유지되는 한 증오에 기생하는 세력들이 사람들의 운명을 쥐게 된다. 이런 자멸적인 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곳에선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정권이나 하마스 같은 극단적 무장단체들이 서로가 서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주며 주인공으로 부각된다. 이스라엘에서 극우파를 솎아내고,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를 고립시키는 게 그나마의 해법일텐데 핏빛의 외신 사진들이 시시각각 쏟아지는 지금의 전시 국면에선 그런 주장들이 별로 설 자리가 없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는 과정에서 자행한 민간인 살상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을 지상군 투입의 명분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1일(현지 시간) TV 연설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 군인들을 참수하고 여성을 성폭행한 것은 물론이고 어린이들의 머리에 총을 쏘고, 사람들을 산 채로 불태웠다”며 “하마스 대원들은 이제 모두 죽은 목숨”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총리 대변인도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국경에 있는 크파르아자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참수된 영유아들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혔다고 미국 CNN방송은 전했다.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 의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에서 유대인 지도자들과 만나 “테러리스트들이 어린이들을 참수하는 사진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더욱 증폭됐다. 다만 백악관은 “네타냐후 총리 대변인의 주장과 이스라엘 언론 보도를 근거로 언급한 것일 뿐 해당 사진을 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학살 의혹을 부인하며 “우리 저항군이 어린이 참수, 여성 성폭행에 연루됐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서방 매체들이 유포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학살과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정보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전쟁 6일째인 12일 기준 양측 사망자는 하마스 대원 1500명을 포함해 41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당국은 자국 사망자가 최소 1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주민 135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이 현실화될 경우 확전에 대비해 이란을 직접 거론하며 “‘조심하라’고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신광영 기자 neo@donga.com}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는 과정에서 자행한 민간인 살상 실태가 드러나면서 공격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양측의 여론전도 격화되고 있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1일(현지 시간) TV연설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 군인들을 참수하고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물론, 어린이들의 머리에 총을 쏘고, 사람들을 산채로 불태웠다”며 “하마스 대원들은 이제 모두 죽은 목숨”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총리 대변인도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국경에 있는 크라르 아자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참수된 영유아들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혔다고 미국 CNN 방송은 전했다. 이곳은 아기 시신 40구가 발견됐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참혹한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하마스의 민간인 학살 의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에서 유대계 지도자들과 만나 “테러리스트들이 어린이들을 참수하는 사진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더욱 증폭됐다. 다만 백악관은 “네타냐후 총리 대변인의 주장과 이스라엘 언론 보도를 근거로 언급한 것일 뿐 해당 사진을 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학살 의혹을 부인하며 “우리 저항군이 어린이 참수, 여성 성폭행에 연루됐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서방 매체들이 유포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학살과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정보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전쟁 6일째인 11일 양측 사망자는 23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당국은 사망자가 최소 1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 역시 11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이 현실화될 경우 확전 우려에 대비해 이란을 직접 거론하며 “조심하라고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이스라엘에 급파해 강력한 지원 의지와 함께 이란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에 대한 억제 메시지를 전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신광영 기자 neo@donga.com}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사흘째인 9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은 전방위 보복을 선언하며 하마스 본거지인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을 예고했다. 이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공격해 올 때마다 납치한 인질들을 1명씩 처형하겠다며 ‘인간 방패’ 전술을 실행할 태세여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 9일(현지 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TV 연설에서 “하마스의 행태는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와 같다. 하마스는 가혹하고 끔찍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지금은 협상할 수 없다. (가자지구에) 진입해야 한다”며 지상군 투입이 불가피함을 설명했다고 미국 매체 액시오스가 전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휘부에 대한 암살 작전에 곧 착수할 것이라는 보도도 이어졌다. 10일 기준 이스라엘에선 최소 900명이 사망하고 24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7일 기습 침투한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 약 150명이 가자지구에 붙잡혀 있어 생사가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집중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도 770명이 숨지고 3700여 명이 부상을 당해 양측 사망자가 167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마스는 인질 살해 협박으로 맞서고 있다. AP,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부 우바이다 하마스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사전 경고 없이 우리 민간인을 공격할 때마다 붙잡고 있는 인질 중 한 명을 처형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이 극단적인 보복전으로 치달으면서 미국 등 서방 내에서도 단일대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빅5’ 국가 정상들은 9일 공동성명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일부 회원국이 입장 차를 드러내자 몇 시간 만에 철회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유엔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규탄하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봉쇄도 우려된다”는 양비론 속에 안전보장이사회 성명 도출에 실패했다.하마스 “폭격에 인질 4명 사망”… 이 “하마스 지휘부 제거할것”보복전 치닫는 이-팔 전쟁하마스, 인질 ‘인간 방패’ 내세워 위협… 이 “인간 탈을 쓴 짐승과 싸우고 있어”가자지구 봉쇄… “전기-식량 없을 것”지상전 초읽기… 민간인 희생 등 부담 “하마스와의 대결은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다. 문명 세계가 이슬람국가(IS)를 패배시킨 것처럼 하마스를 패배시킬 것이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이스라엘이 우리 국민을 표적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붙잡고 있는 민간인 인질을 한 명씩 처형할 것임을 선언한다.”(아부 우바이다 하마스 대변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최소 900명의 자국민이 숨진 이스라엘이 ‘피의 보복’에 나선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는 “힘으로 하마스를 물리칠 것이며 (이번 전쟁을 통해) 중동을 변화시키겠다”는 공격 의지를 밝혔다. 이스라엘은 전쟁 시작과 함께 예비군 30만 명을 동원한 데 이어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를 전방위로 포위하고 있어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에서 끌고 온 민간인 인질들을 ‘인간 방패’로 삼겠다고 위협하는 등 극단적인 보복전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하마스 지휘부 제거 작전 착수”전쟁 나흘째인 10일(현지 시간) 현재 양측의 사망자는 1700명에 육박했다. 이스라엘 현지매체 하아레츠는 이스라엘 보건당국을 인용해 이날까지 이스라엘인 약 900명이 숨지고 240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이날 브리핑에서 “하마스가 침투한 가자지구 접경지를 장악하고 남부지역 통제권을 거의 회복했다”면서 민간인 사망자와 별도로 하마스 무장대원의 시신 1500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사상자도 크게 늘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770명이 숨지고 37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궤멸을 목표로 대대적인 설욕전을 준비하고 있어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지휘부 암살 작전에도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 고위 관리는 “서방이 (테러단체) IS에 했던 것처럼 하마스를 겨냥해 모든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이는 하마스의 지도부와 전투원을 제거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하마스를 압박하기 위해 가자지구에 대한 ‘고사 작전’도 시작됐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9일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닫힐 것”이라며 “인간의 탈을 쓴 짐승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으로 2007년부터 생필품과 의약품 반입이 제한된 가자지구에 전기, 식량, 연료 공급이 추가로 제한되면 주민 약 237만 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주민 약 12만 명이 이미 피란길에 올랐다고 집계했다.● “지상군 투입” 공언해도 걸림돌 많아 네타냐후 총리가 하마스에 대한 ‘끝장 보복’을 선언한 만큼 가자지구에 이스라엘 지상군이 투입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미 매체 액시오스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8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는 (가자지구에) 진입해야 한다”며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나약함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통화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지상 작전 계획을 만류하지 않았다고 액시오스는 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지상군 투입을 실행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 우선 가자지구로 끌려간 인질 약 150명이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리처드 헤흐트 이스라엘 방위군 대변인은 이날 “인질을 죽인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무리한 작전으로 인질들이 연이어 살해될 경우 국내외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의 폭격에 따라 19세 이스라엘 군인을 포함해 인질 4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약점을 공략하고 있다. CNN과 워싱턴포스트(WP)도 자체 영상 분석을 토대로 이스라엘인 4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대규모로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인 데다 하마스 대원들이 민간인 틈에 깊숙이 숨어 있어 공격 대상을 식별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이 2014년 병력 6만 명을 가자지구에 파견해 하마스와 전쟁했을 때 팔레스타인인 2000여 명이 사망했다. 민간인 희생이 속출하면 국제 여론이 이스라엘에 불리하게 바뀔 수 있다. 지상전이 장기화될 경우 이번 전쟁에 일부 참전한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두 단체를 후원하는 이란으로 전선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하마스 고위 관계자는 이스라엘 현지 언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이란과 헤즈볼라는 이번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가자지구가 위기에 처하면 전쟁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신광영 기자 neo@donga.com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하마스와의 대결은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다. 문명 세계가 이슬람국가(IS)를 패배시킨 것처럼 하마스를 패배시킬 것이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이스라엘이 우리 국민을 표적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붙잡고 있는 민간인 인질을 한 명씩 처형할 것임을 선언한다.”(아부 우바이다 하마스 대변인)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최소 900명의 자국민이 숨진 이스라엘이 ‘피의 보복’에 나선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는 “힘으로 하마스를 물리칠 것이며 (이번 전쟁을 통해) 중동을 변화시키겠다”는 공격 의지를 밝혔다. 이스라엘은 전쟁 시작과 함께 예비군 30만 명을 동원한데 이어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를 전방위로 포위하고 있어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에서 끌고 온 민간인 인질들을 ‘인간 방패’로 삼겠다고 위협하는 등 극단적인 보복전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하마스 지휘부 제거 작전 착수”전쟁 나흘째인 10일(현지 시간) 현재 양측의 사망자는 1700명에 육박했다. 이스라엘 현지매체 하레츠는 이스라엘 보건당국을 인용해 이날까지 이스라엘인 약 900명이 숨지고 240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이날 브리핑에서 “하마스가 침투한 가자지구 접경지를 장악하고 남부지역 통제권을 거의 회복했다”면서 민간인 사망자와 별도로 하마스 무장대원의 시신 1500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사상자도 크게 늘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770명이 숨지고 37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궤멸을 목표로 대대적인 설욕전을 준비하고 있어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이스라엘은 하마스 지휘부 암살 작전에도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 고위 관리는 “서방이 (테러단체) IS에 했던 것처럼 하마스를 겨냥해 모든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이는 하마스의 지도부와 전투원을 제거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하마스를 압박하기 위해 가자지구에 대한 ‘고사 작전’도 시작됐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9일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닫힐 것”이라며 “인간의 탈을 쓴 짐승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으로 2007년부터 생필품과 의약품 반입이 제한된 가자지구에 전기, 식량, 연료 공급이 추가로 제한되면 주민 약 237만 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주민 약 12만 명이 이미 피난길에 올랐다고 집계했다.● “지상군 투입” 공언해도 걸림돌 많아 네타냐후 총리가 하마스에 대한 ‘끝장 보복’을 선언한 만큼 가자지구에 이스라엘 지상군이 투입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8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우리는 (가자지구에) 진입해야 한다”며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나약함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통화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지상 작전 계획을 만류하지 않았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지상군 투입을 실행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 우선 가자지구로 끌려간 인질 약 150명이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리처드 헤흐트 이스라엘 방위군 대변인은 이날 “인질을 죽인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무리한 작전으로 인질들이 연이어 살해될 경우 국내외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의 폭격에 따라 19세 이스라엘 군인을 포함해 인질 4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약점을 공략하고 있다. CNN과 워싱턴포스트(WP)도 자체 영상 분석을 토대로 이스라엘인 4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대규모로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인 데다 하마스 대원들이 민간인 틈에 깊숙이 숨어있어 공격 대상을 식별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이 2014년 병력 6만 명을 가자지구에 파견해 하마스와 전쟁했을 때 팔레스타인인 2000여 명이 사망했다. 민간인 희생이 속출하면 국제 여론이 이스라엘에 불리하게 바뀔 수 있다.지상전이 장기화될 경우 이번 전쟁에 일부 참전한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두 단체를 후원하는 이란으로 전선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하마스 고위 관계자는 이스라엘 현지 언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이란과 헤즈볼라는 이번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가자지구가 위기에 처하면 전쟁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범위를 5%로 제한하는 방안을 확정해 22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보조금 가드레일(안전조치)’ 조항을 완화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 확장 기준을 두 배인 10%로 늘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 상무부는 자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을 ‘실질적으로 확장(material expansion)’하는 중대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날 상무부가 발표한 ‘실질적 확장’은 첨단 반도체의 경우 5% 이상, 이전 세대의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이다. 對중국 반도체 투자 10만달러 상한은 빠져 美, 中 반도체 규제장비 반입 규제 유예는 언급 안해산업부 “국내기업 中사업 문제없어” 미국 정부는 앞서 3월 가드레일 조항 초안을 발표한 뒤 한국 등 관련 국가와 기업들로부터 의견 수렴을 진행해 왔다. 우리 정부는 중국 내 생산 확장 기준 확대와 함께 범용 반도체의 기준도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날 발표에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 상무부는 로직 반도체는 28nm(나노미터), D램은 18nm, 낸드플래시는 128단 이하를 범용 반도체로 분류하고 있다. 상무부는 다만 초안에서 10만 달러의 한도를 넘는 중국 투자를 중대 거래로 분류해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으나 최종안에선 빠졌다. 블룸버그통신은 “10만 달러 투자 상한 폐지는 삼성전자와 인텔, 대만 반도체 기업들을 대표하는 정보기술산업협의회가 반대 목소리를 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날 발표에 중국 내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 유예 관련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수 없도록 규제안을 마련했지만 한국 기업에 대해 1년간 규제를 유예했다. 우리 정부는 이 규제의 유예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미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상무부의 최종안을 분석해 협상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수준으로 중국 내 생산 능력 확장 기준이 정해져도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지속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보조금 한도가 늘어난 부분 등 일부 달라진 내용이 있어 각 기업들이 보조금을 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범위를 5%로 제한하는 방안을 확정해 22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보조금 가드레일(안전조치)’ 조항을 완화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 확장 기준을 두 배인 10%로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미 상무부는 자국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10년 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을 ‘실질적으로 확장(material expansion)’하는 중대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날 상무부가 발표한 ‘실질적 확장’은 첨단 반도체의 경우 5% 이상, 이전 세대의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이다.미국 정부는 앞서 3월 가드레일 조항 초안을 발표한 뒤 한국 등 관련 국가와 기업들로부터 의견수렴을 진행해왔다. 중국 내 생산 확장 기준 확대와 함께 범용 반도체의 기준도 완화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날 발표에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 상무부가 로직 반도체는 28나노미터(nm), D램은 18나노, 낸드플래시는 128단 이하를 범용 반도체로 분류하고 있다.상무부는 다만 초안에서 10만 달러의 한도를 넘는 중국 투자를 중대 거래로 분류해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으나 최종안에선 빠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10만 달러 투자 상한 폐지는 삼성전자와 인텔, 대만 반도체 기업들을 대표하는 정보기술산업협의회가 반대 목소리를 낸 결과”라고 분석했다.이날 발표에 중국 내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 유예 관련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가동 중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수 없도록 규제안을 마련했지만 한국 기업에 1년 간 규제를 유예했다. 우리 정부는 이 규제의 유예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미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방한 중인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은 21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 기술협력 포럼’에서 유예 기간 연장 여부와 관련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내 합법적인 사업은 계속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다. 미국과 협력하는 국가들의 반도체 기업들을 불필요하게 옥죄고 싶지 않다”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상무부의 최종안을 분석해 협상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수준으로 중국 내 생산 능력 확장 기준이 정해져도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지속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보조금 한도가 늘어난 부분 등 일부 달라진 내용이 있어 각 기업들이 보조금을 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정부를 비판하면 저희한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데 그러자니 여기서 벌어진 일이 없었던 일이 될까 봐 무서워요.” 대지진이 덮친 모로코 중부 아미즈미즈의 한 산간 마을 주민은 일본 아사히신문에 이런 말을 했다. 그의 마을에선 주민 400∼500명 중 최소 80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가 5명 중 1명꼴이다. 아직 수십 명이 잔해에 갇혀 있는 이곳에 지진 발생 3일이 지나도록 구조대는 오지 않고 있다. 구급차가 없어 오토바이로 중상자를 이송하고, 거리에서 노숙하는 주민들은 밤마다 전갈과 뱀의 공격을 걱정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어디 있느냐’는 목소리는 좀처럼 울려 퍼지지 않는다. 모로코는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국가다. ‘어떤 공무원도 국왕보다 앞설 수 없다’는 원칙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620여 명이 숨졌던 2004년 지진 때도 모로코 총리는 왕이 먼저 현장에 갈 때까지 기다리느라 사고 한참 뒤에야 피해 지역을 방문했다. 이번 지진 때도 국제사회가 구조대 파견을 제안하고 나섰지만 모로코 정부는 ‘국왕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머뭇거리고 있다. 그나마 구조대를 받기로 한 4개국인 스페인 영국 카타르 아랍에미리트는 모두 왕실이 있는 나라다. 국가적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국왕이지만 모로코 왕실의 태도는 ‘골든타임 사수’라는 기본 수칙과 거리가 멀다. 무함마드 6세 국왕은 지진 4일째가 되도록 대국민 연설을 하지 않았다. 지진 당시 프랑스 파리 호화 저택에 머물고 있었던 국왕은 지진 다음 날 내각 회의를 주재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동 전문가들은 “왕은 대중 앞에 서기 전 신중하게 이미지를 계산하고 모든 상황에 철저히 대비한다”고 한다. 왕실 통치가 참사 대응에 얼마나 취약한지 이번 지진으로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지만 모로코에서 왕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왕이나 정부를 비판하면 처벌할 수 있는 왕실모독죄가 공고히 유지되고 있어 국민들의 숨통을 쥐고 있다. 모로코가 2004년 큰 지진을 겪고도 재난 대비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배경에는 권력에 대한 심판과 검증을 할 수 없는 구조 탓도 클 것이다. 올 2월 5만 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도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나라에 재난이 닥쳤을 때 국민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70여 개 국가에서 구조대를 지원받았던 튀르키예와 달리 시리아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루트가 차단됐다. 자국민을 독가스 등으로 학살해 ‘시리아의 도살자’로 불리는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 이후 북서부 반군을 압박하기 위해 외부 구호단체가 오갈 수 있는 국경을 한 곳만 남기고 모두 폐쇄했다. 그런데 지진으로 이 국경 도로가 파괴되자 해외 구조대가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막히게 된 것이다. 시리아는 오랜 내전으로 자체 구조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고 의료진마저 대부분 해외로 떠난 상태였다. 독재 치하에 있는 폐쇄 국가의 치명적 약점은 재난 속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나고 국민들이 그 대가를 치른다. 민주주의는 일상에선 피부에 와닿지 않는 모호한 관념이지만 국민의 생명이 위태로운 참사가 벌어지면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낸다. 바로 그럴 때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는 치열하게 묻게 된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박근혜 정부 붕괴의 시작점이 됐고, 지난해 이태원 압사 참사가 윤석열 정부의 중대한 위기로 번질 뻔했던 것도 사고 현장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생생히 체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재난에 대비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점검하고 상황이 벌어지면 정권의 명운을 걸고 대응에 나서게 된다. 민주주의의 미덕은 집권 세력이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국민의 생명을 중시하게 만드는 데 있다. 모로코 대지진을 취재하며 눈에 띄는 부분은 사상자 규모가 제때 갱신되지 않고, 구조 상황에 대한 정부 발표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선 정치인들이 재난 현장에 앞다퉈 얼굴을 비치고 당국자가 (때로는 부풀려서 문제인) 구조 상황 브리핑을 수시로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소 2800여 명이 숨진 지진에 ‘정부 실종’ 사태까지 겹친 모로코 이재민들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최고의 ‘내진 설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20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시상식 무대에 스페인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올라섰다. 조금 전 결승에서 잉글랜드를 1-0으로 꺾고 스페인 여자 축구 사상 처음으로 우승컵을 거머쥔 순간이었다. 공격수 제니 에르모소 선수(33)가 스페인 레오노르 공주와 인사를 나눈 뒤 스페인왕립축구연맹(RFEF) 루이스 루비알레스 회장(46) 앞에 섰을 때였다. 루비알레스 회장은 에르모소 선수를 양팔로 껴안더니 두 손으로 에르모소의 얼굴을 잡고 1, 2초가량 입을 맞췄다. 이 ‘기습 키스’ 사건으로 스페인 여자 축구계는 월드컵 우승이란 경사를 만끽할 틈도 없이 대혼란에 빠졌다. 이번 사건으로 최근 급성장하는 여성 스포츠계에 여전히 만연한 성차별 실상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치 6명 항의성 사퇴…FIFA도 직무정지사건 후 일주일 새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사건 직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던 에르모소 선수는 2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루비알레스 회장의) 당시 행위를 정당화하는 발표를 하라는 지속적인 압력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직장에서도 동의 없는 행동으로 피해자가 나와선 안 된다. 이런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 스페인 여자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성과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밝혔다. ‘기습 키스’가 논란이 된 직후 루비알레스 회장은 “다들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며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이에 22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까지 나서서 “우리가 본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제스처였다”고 비판했다. 빅토르 프랑코스 스페인 체육장관도 루비알레스에 대한 업무 정지 절차에 착수하며 “스페인 축구를 위한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의 순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루비알레스 회장은 “내가 실수를 했다. 악의 없이 즉흥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고 중요 기관 수장인 만큼 더욱 조심할 것”이라고 뒤늦게 사과했지만 사퇴 여론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영국 BBC방송 등은 이번 우승 주역 23명을 비롯해 81명의 선수가 루비알레스가 회장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스페인 여자 축구 대표팀에서 경기하지 않겠다는 서명을했다고 전했다. 26일에는 여자 대표팀 코치진과 다른 연령별 대표팀 코치 6명이 루비알레스 회장을 규탄하며 사퇴했다. 같은 날 FIFA도 루비알레스 회장에게 90일 직무정지 징계를 내린 뒤 조사에 착수했다. 스페인 남자 축구 대표팀의 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 역시 “축하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女 선수들에 대한 상습 차별의 정점”스페인 여자 축구팀의 위상을 올려놓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던 루비알레스 회장이 ‘기습 키스’ 논란으로 축구계의 공적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2018년 취임 때부터 “남녀 모두를 위한 협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여자 선수들에게도 2027년까지 월드컵·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등 주요 대회 참가에 따른 포상금을 남자 선수들과 동등하게 지급하는 협정에 지난해 서명했다. 이 때문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6일 “루비알레스의 행동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여성 선수들에게 이뤄진 수년간 차별(mistreatment)의 일환이자 그 정점”이라고 분석했다. NYT에 따르면 스페인 여자 축구 대표팀은 체계적인 훈련시설이 부족한 환경에서 연습해왔고 유니폼도 여성의 신체에 맞춰 제작된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대표팀 선수 15명은 호르헤 빌다 감독의 훈련과 선수 관리가 권위주의적이라며 RFEF에 해임을 요구했다. 20일 잉글랜드와의 결승전에서 스페인이 선취 득점에 성공하자 빌다 감독이 옆에 있던 여성 코칭스태프를 끌어안으며 가슴을 만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스포츠계의 성폭력과 성차별이 스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에 패해 탈락한 잠비아 여자 축구 대표팀에서도 감독이 선수들의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8일 오후 4시경 하와이의 유명 휴양지인 마우이섬 리조트 로비에는 줄지어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체크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체크인을 했던 덴턴 퓨콰 씨는 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수상한 연기를 보고 리조트에서 나오던 중이었다. 그가 야외 수영장을 지나쳐 갈 때 한 젊은 부부는 자녀들과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무언가에 경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칵테일 잔을 홀짝였다. 몇 분 뒤 리조트에 닥쳐올 일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퓨콰 씨가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였다. 리조트를 향해 불기둥이 진격해 오고 있었다. 태풍에 올라탄 산불은 폭주기관차처럼 해안가로 맹렬히 하강했다. 불에선 거대한 엔진 소리가 났다. 공기 중 산소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며 덩치를 키우는 소리였다. 그는 황급히 시내로 통하는 해안가 도로로 들어섰다. 좁은 도로에 이제 막 대피에 나선 차량들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차량들 위로 불이 뿌려졌다. 곳곳에서 연료통이 폭발했다.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땅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쏘는 것 같았다”고 한 생존자는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사람들은 차에서 뛰쳐나와 바다를 향해 내달렸다. 노약자들은 차에서 잠시 망설이는 사이 불길에 갇혔다. 반려동물과 함께 해변에 닿은 사람들은 물속에까지 동물들을 데려갈 수 없어 그냥 놔줬다. 어리둥절해하던 강아지들은 주인을 따라 바닷물로 몸을 던졌다. 물도 피난처가 되진 못했다. 하늘에서 축구공만 한 불씨와 불타는 파편들이 떨어졌다. 머리를 물속에 담갔다 다시 들기를 반복했다. 참았던 숨을 몰아쉬면 짙게 내려앉은 연기가 숨통을 조여 왔다. 질식과 저체온증으로 사람들은 기력을 잃어갔다. 강풍은 널빤지나 나뭇조각에 의지해 겨우 떠 있던 이들을 먼바다로 밀어냈다. 하와이 산불 2주째인 22일 현재, 실종자는 850여 명에 달한다. 확인된 사망자는 114명. 이 중 27명만 신원이 확인됐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신이 훨씬 많고, 발견되더라도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얘기다. 지금 하와이에는 9·11테러 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했던 퇴역 군인들이 활동 중이다. 러시아의 폭격에 희생된 우크라이나인들의 시신을 조사한 법의학자들도 투입됐다. 고고학자들도 참여해 잿더미에서 사람 뼛조각을 찾고 있다. 건물이나 차량 잔해를 채로 걸러서 그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를 식별한다. 화재 당시 집이나 호텔, 차에 있었던 가족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쏟아지지만 흔적조차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테러 못지않은 이 참사가 ‘기후의 역습’이라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의 이견이 없다. 지구온난화로 공기가 뜨거워지면 식물은 급격히 건조해지고, 땅에서 증발한 수분을 듬뿍 빨아들인 태풍은 더욱 강력해진다. 그 결과 더 쉽게 불붙고, 더 빠르게 확산된다. 하와이는 지구온난화가 가장 빠른 지역 중 하나다. 산업화를 거치며 지구 온도가 1.1도 오를 때 하와이는 2도 상승했다. 이번 산불은 태풍에 전신주 전선이 흘러내렸고, 바싹 마른 풀과 마찰하며 불이 붙어 강풍을 타고 퍼져 나갔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 10년 새 하와이에선 비슷한 패턴의 산불이 자주 났다. 이번 역시 어느 정도 예상된 산불이었다. 하지만 불이 산만 태우지 않고 섬까지 통째로 집어삼킬 것이란 상상은 하지 않았다. 지난해 하와이의 9∼18세 청소년 14명은 “산불과 폭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며 주(州)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주 정부가 고속도로 개발을 촉진하는 등 화석연료 사용을 부추기고 있으니 막아 달라는 호소였다. 미국 전역에서 청소년들의 이 같은 기후위기 소송이 여러 번 제기됐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로 치부돼 기각되기 일쑤였지만 이젠 법원도 달라지고 있다. 하와이주 법원은 올 4월 “기후변화가 미래 세대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어 이에 대비하는 것은 주 정부의 헌법적 책무”라며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몬태나주 법원 역시 14일 “석탄·석유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 조사를 면제해 준 주 정책은 위헌”이라며 청소년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와이 소송에 동참한 칼리코 테루야(13)는 이번 산불로 집이 모두 탔다. 불이 날 당시 훌라(하와이 전통 춤) 수업을 받던 중이어서 목숨을 건졌다. “어른들은 얼마나 더 큰 비극을 겪어야 저희처럼 절박해질까요”라고 테루야는 NYT에 말했다. 그동안 많은 기후재난이 그랬듯 이번 하와이 산불도 곧 기억에서 무뎌져 갈 것이다. 하지만 등 뒤에서 불기둥이 다가오는 걸 모른 채 칵테일을 홀짝이는 사람이 바로 우리였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쯤 해 볼 필요가 있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8일 오후 4시경 하와이의 유명 휴양지인 마우이섬 리조트 로비에는 줄지어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체크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체크인을 했던 덴턴 퓨콰 씨는 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수상한 연기를 보고 리조트에서 나오던 중이었다. 그가 야외 수영장을 지나쳐 갈 때 한 젊은 부부는 자녀들과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무언가에 경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칵테일 잔을 홀짝였다. 몇 분 뒤 리조트에 닥쳐올 일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덴튼이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였다. 리조트를 향해 불기둥이 진격해 오고 있었다. 태풍에 올라탄 산불은 폭주기관차처럼 해안가로 맹렬히 하강했다. 불에선 거대한 엔진 소리가 났다. 공기 중 산소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며 덩치를 키우는 소리였다. 그는 황급히 시내로 통하는 해안가 도로로 들어섰다. 좁은 도로에 이제 막 대피에 나선 차량들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차량들 위로 불이 뿌려졌다. 곳곳에서 연료통이 폭발했다.“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땅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쏘는 것 같았다”고 한 생존자는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사람들은 차에서 뛰쳐나와 바다를 향해 내달렸다. 노약자들은 차에서 잠시 망설이는 사이 불길에 갇혔다. 반려동물과 함께 해변에 닿은 사람들은 물속에까지 동물들을 데려갈 수 없어 그냥 놔줬다. 어리둥절해하던 강아지들은 주인을 따라 바닷물로 몸을 던졌다.물도 피난처가 되진 못했다. 하늘에서 축구공만 한 불씨와 불타는 파편들이 떨어졌다. 머리를 물속에 담갔다 다시 들기를 반복했다. 참았던 숨을 몰아쉬면 짙게 내려앉은 연기가 숨통을 조여 왔다. 질식과 저체온증으로 사람들은 기력을 잃어갔다. 강풍은 널빤지나 나뭇조각에 의지해 겨우 떠 있던 이들을 먼바다로 밀어냈다.하와이 산불 2주째인 22일 현재, 실종자는 850여 명에 달한다. 확인된 사망자는 114명. 이 중 27명만 신원이 확인됐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신이 훨씬 많고, 발견되더라도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얘기다. 지금 하와이에는 9·11테러 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했던 퇴역 군인들이 활동 중이다. 러시아의 폭격에 희생된 우크라이나인들의 시신을 조사한 법의학자들도 투입됐다. 고고학자들도 참여해 잿더미에서 사람 뼛조각을 찾고 있다. 건물이나 차량 잔해를 채로 걸러서 그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를 식별한다. 화재 당시 집이나 호텔, 차에 있었던 가족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쏟아지지만 흔적조차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전쟁이나 테러 못지않은 이 참사가 ‘기후의 역습’이라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의 이견이 없다. 지구온난화로 공기가 뜨거워지면 식물은 급격히 건조해지고, 땅에서 증발한 수분을 듬뿍 빨아들인 태풍은 더욱 강력해진다. 그 결과 더 쉽게 불붙고, 더 빠르게 확산된다. 하와이는 지구온난화가 가장 빠른 지역 중 하나다. 산업화를 거치며 지구 온도가 1.1도 오를 때 하와이는 2도 상승했다.이번 산불은 태풍에 전신주 전선이 흘러내렸고, 바싹 마른 풀과 마찰하며 불이 붙어 강풍을 타고 퍼져 나갔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 10년 새 하와이에선 비슷한 패턴의 산불이 자주 났다. 이번 역시 어느 정도 예상된 산불이었다. 하지만 불이 산만 태우지 않고 섬까지 통째로 집어삼킬 것이란 상상은 하지 않았다.지난해 하와이의 9~18세 청소년 14명은 “산불과 폭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며 주(州)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주 정부가 고속도로 개발을 촉진하는 등 화석연료 사용을 부추기고 있으니 막아 달라는 호소였다. 미국 전역에서 청소년들의 이 같은 기후위기 소송이 여러 번 제기됐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로 치부돼 기각되기 일쑤였지만 이젠 법원도 달라지고 있다. 하와이주 법원은 올 4월 “기후변화가 미래 세대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어 이에 대비하는 것은 주 정부의 헌법적 책무”라며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몬태나주 법원 역시 14일 “석탄·석유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 조사를 면제해 준 주 정책은 위헌”이라며 청소년들의 손을 들어줬다.하와이 소송에 동참한 칼리코 테루야(13)는 이번 산불로 집이 모두 탔다. 불이 날 당시 훌라(하와이 전통 춤) 수업을 받던 중이어서 목숨을 건졌다. “어른들은 얼마나 더 큰 비극을 겪어야 저희처럼 절박해질까요”라고 테루야는 NYT에 말했다. 그동안 많은 기후재난이 그랬듯 이번 하와이 산불도 곧 기억에서 무뎌져 갈 것이다. 하지만 등 뒤에서 불기둥이 다가오는 걸 모른 채 칵테일을 홀짝이는 사람이 바로 우리였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쯤 해 볼 필요가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동아일보 특별기획 [장애, 테크로 채우다] 시리즈가 7월 29일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기획의 에필로그는 각 회별 주인공들이 직접 말하는 ‘나의 삶, 나의 일상’입니다. 삶은 이렇게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펼쳐집니다. 지면 제약으로 미처 전하지 못했던 ‘손끝으로 세상을 보는 마케터’ 고미숙 씨의 이야기도 만나보세요.다양한 몸들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김예솔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릴라 엘리펀트 창업)‘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의 힘은 커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그 주변을 바꾸기도 합니다.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갖고 살아오면서 밥을 먹고 자고 놀고 싶은 욕구는 친구나 저나 비슷했는데, 세상은 저를 다르게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좋을 텐데, 자꾸만 다른 게 마치 결점인 것처럼 인생의 성적표에 감점을 주는 것 같았어요. 그 성적의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한 걸까요?스웨덴에는 ‘얀테의 법칙(Jantelagen)’이라는 오래된 사회적 규범이 있습니다. 당신이 남보다 특별하다거나, 똑똑하거나, 잘났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이 법칙이 현대에 와서는 개인주의와 상반되고 구시대적인 사상이라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하지만 이런 규범 덕분인지 스웨덴에서는 저의 장애가 그렇게 신기한 일로 비쳐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저처럼 휠체어를 타며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그것이 가능한 것은 스웨덴 사회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신념아래 만들어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식 때문인지 장애학생이 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편의시설이 마련되는 게 아니라, 장애학생의 재학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학교는 장애인이 접근가능하게 지어져야 합니다. 교육 시스템 역시 장애 학생 개별의 요구에 따라 모든 지원을 국가와 지자체가 무상으로 제공합니다.반면, 제가 성장기를 보냈던 한국에선 아빠가 저를 일반고에 보내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했어요. 저를 ‘받아준‘ 유일한 학교는 건물에 엘레베이터가 없었는데요. 학교 측은 기존 계단 위에 임시로 나무 경사로를 만드는 비용을 저희 부모님이 학교 발전기금 차원에서 부담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부모님은 그 조건을 받아들인 뒤에야 저를 입학시킬 수 있었어요.저의 중고교 시기 6년 간의 통학 역시 부모님의 몫이었습니다. 당시에(현재도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는 아닙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는 휠체어로 탈 수 있는 대중교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미술을 하겠다는 저를 위해 여름방학이면 엄마는 생업을 뒤로해야 했습니다. 엄마는 미대 입시를 위해 서울 홍대 앞 미술학원에 다니겠다는 저를 따라서 홍대 앞 월셋집에서 같이 살면서 활동 보조 겸 공부 뒷바라지를 하셨습니다.어쩌면 한국 사회는 개인의 노력과 열정으로 무언가 성취를 이루는 데에는 환호하지만, 그런 가시적인 성공의 대가로 치러야했던 보이지 않는 희생에 대해선 당연시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운영되는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가 저의 성장기에도 있었다면, 엄마는 친구들도 만나고 취미 생활을 즐길 여유가 있었을 거예요. 또 지금처럼 장애인 이동 지원 차량이나 저상버스 같은 모두를 위한 대중교통 인프라가 있었더라면 아빠는 저의 ‘365일 운전기사’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 겁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그런 희생을 기꺼이 감수해준 부모님이 없었다면 저에겐 배움의 기회가 애초부터 없었을지 모릅니다.2007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을 때 디자인과 건물에 편의시설 개선을 요청했던 적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학과 교수님들과 조교님들을 포함해 학교 구성원들이 한 마음으로 제 요구에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그 요구가 대학 총장님께 전달되어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난 후, 학과 조교님이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당연히 있었어야 했던 편의시설이지만, 그럼에도 총장님께는 감사를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그 조교님의 말은 제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어요. 엘리베이터가 장애 학생 단 한명을 위해 1억원을 투자한 시설로 해석되는 게 아니라,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보편적인 접근성을 보장하는 기본권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담긴 말이었기 때문입니다.스웨덴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배움의 기회를 갖습니다. 그 결과 장애인 역시 직업 능력을 갖추게 되고, 고용시장에서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내며 다시 사회에 환원합니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데 저의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자유를 저는 비로소 타국에서 누리고 있습니다.저는 이제 많은 에너지를 창작에 쏟고 있어요. 평소 휠체어를 타면서 필요했던 일상 도구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능적일 뿐만 아니라 집안 한 켠에 두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물건들입니다. 집안의 다른 물건들과도 조화를 잘 이루는, 튀지 않는 미감을 추구합니다.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곁에 두고 싶은 가구이면 좋겠거든요. ‘릴라 엘리펀트’에서 만드는 저의 가구들이 세상에 나와 훈훈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봅니다. 얀테의 법칙처럼 말이죠. 겸손하게 자기 할일을 묵묵히 하는 ‘믿음직한 사람’같은 가구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양한 몸을 가진 저와 우리가 여전히 아름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이 가구들이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나에게 걷는다는 것의 의미김승환 (‘입는 로봇’ 연구원·KAIST 기계공학과 웨어러블로봇 연구실)아침에 눈 뜬 뒤 침대에서 내려와 디디는 첫발, 은은하게 흙냄새가 나는 여유로운 산책길, 시끌벅적한 음식점의 문턱을 넘어 들어갈 때의 설렘… 일상 속에서 내딛는 수많은 걸음은 많은 이들에게 당연한 일상의 일부입니다. 제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하지만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뒤 ‘걷기’가 지니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다시 걸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때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서히 ‘가능’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산책하고,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누고, 가고 싶은 곳을 아무런 걱정 없이 언제든 갈 수 있는, 한때는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꿈과 희망도 더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이고요. 웨어러블 로봇은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장애인들의 자립과 사회 참여를 증진시킬 통로가 될 것이며, 휠체어를 타던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에도 혁신을 가져올 것입니다. 장애인이 걸을 수 있게 된다면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발전한 기술은 장애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공경철 교수님을 필두로 한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엑소랩(Exoskeleton Laboratory)에서 저를 포함한 20명의 연구진들은 더 나은 로봇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로봇이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연구실 속 일상을 SNS 등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웨어러블 로봇이 우리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싶습니다.저희는 2024년에 열리는 로봇·장애인 융합 국제 올림픽인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나아가다보면, 언젠가 로봇이 휠체어를 대신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내가 이래서 음악을 못 끊나보다임채섭(시력을 잃어가는 작곡가·뮤직프로듀싱팀 ‘티스푼’ 소속)30년 전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매미의 강렬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침 오늘도 30년 전 그런 강렬한 매미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를 매개로 과거를 회상해봅니다. 혼자서 뭔가를 가지고 놀고 관찰하기 좋았던 저는 그 때 리코더를 불고 있었습니다. 30년이 흐르며 그 리코더는 이제 건반과 컴퓨터로 바뀌어있습니다.음악을 시작하게 된 시점부터 음악을 연주하고, 만들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 중 어느 것이 우선인지 알기 어렵지만 각각의 매력이 다르기 때문에 음악 안에서 직업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요즘은 아침이 되면 산책 때 메모 했던 음원 수정사항을 반영해 음악적인 스케치를 조금 더 구체화시킵니다. 이런 수정 작업은 시력이 남아있던 예전에도 했던 일이지만 이걸 보이스 오버(화면을 읽어주는 서비스) 기능으로 하려고 하니 새로운 훈련처럼 느껴집니다. 컴퓨터가 발전해도 아직은 가상 악기의 여러 가지 값을 정확하게 딱 일치시켜서 읽어주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어떤 기술이 좀더 편하고 적응할 수 있는 대안인지를 계속 찾아가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컴퓨터로 음악 작업을 하다보면 화면 확대를 했을 때 건반 일부가 안 보이기도 합니다. 음의 높낮이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죠. 강약 조절이 잘 되는지 보기 위해 화면 아래쪽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음표를 보기 위해 화면 위로 올라가다보면 커서가 엉뚱한 곳에 가 있기도 합니다. 다행히 요즘 저는 PC를 활용해 음악을 만들 때 ‘logic remote’라는 앱을 활용해 아이패드를 컨트롤러로 사용하는 대안을 발견해가고 있어요.예전에는 건반으로 음표를 입력했던 방법을 썼지만 지금은 시각장애인 음악인에 맞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죠. 작업 속도는 과거보다 조금 느릴 수 있지만 마우스로 음표를 일일이 찍고 강약을 수정하거나 가상 악기 등을 걸어줄 수 있어 할 수 있는 작업의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어요. 이런 방법을 쓰면 좀더 객관적인 모니터링이 되기도 하고, 특이한 화성이나 리듬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좋기도 합니다.제가 음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들은 이 순간에도 계속 새롭게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기술들을 가까운 분들의 도움을 통해서 익혀나가고 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저에게 맞는 멋진 기계나 프로그램들을 꼭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나중에 전맹이 오더라도 이런 기술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요즘은 틈틈이 점자 공부를 하고, ‘한소네’라는 점자 단말기를 익히고 있어요.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진행성 장애로 인한 분노들이 저에게는 젊은 날의 혈기였던 거 같기도 합니다. 이런 분노들은 어찌 보면 열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살고 싶은 열정, 음악을 하고 싶은 열정, 칭찬받거나 뽐내고 싶은 열정 같은 거 말이죠. 이런 것들이 가라앉고 있는 부표가 기적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듯, 저를 다시 떠오르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게임을 즐기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게임의 세계에선 ‘켠 김에 왕까지’라는 말이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을 듣고 ‘무조건 끝까지 가서 엔딩을 본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잘 살든 못 살든, 제게 주어진 지금 이대로의 인생을 끝까지 즐겨본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이런 의미에서 음악은 미우나 고우나 저의 친구입니다. 사람 속은 알 수 없고 언제든지 떠나갈 수 있지만, 음악은 노력의 영역이므로 저에게서 영원히 떠나가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아마도 그래서 제가 음악을 못 끊나봅니다.첫 발은 천근만근이지만… 내딛고 나면 어떻게든 나아가는 것이 삶이규환 (중증장애에 맞선 치과의사·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 치과클리닉 교수)다치고 나서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담당 의사는 제게 “더 좋아지지 않는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전신마비가 된 몸으로 뭘 하다가 죽을까’ 만 번을 생각해도 치과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반대했고 미쳤냐고 욕했지만, 정말 0.1초라도 치과의사로 살아보고 싶었어요.그래서 재활원을 나와 1년 만에 치대에 복학했습니다. 재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겁쟁이가 되고, 사회로 나오는 게 더 두려워질 것 같아서요. 복학 후 처음엔 휠체어로 문턱을 못 넘어서, 문 앞에서 눈치 보며 하루 종일 계속 버텼습니다. 교수님들은 한숨만 쉬셨죠. 그러다 예방치과 교수님, 방사선과 교수님께서 처음으로 “들어와, 해보자”라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자료를 줄 테니까, 여기서 판독을 해”라면서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가장 힘든 건 첫 발이에요. 저는 강연을 할 기회가 있을 때면 “장애인은 비장애인만큼 노력해선 안 된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그냥 버티는 것도 힘들겠지만 거기서 한 발짝씩만 더 나아가라는 거죠. 그 과정에서 보조기기와 기술, 최신 장비를 활용하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인 거 같아요.사실 한 발 내미는 게 너무 힘듭니다. 그 한 발이 수만근의 무게입니다. 근데 그것만 내딛으면 어떻게든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요. 삶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한 번뿐인 인생, 진짜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어야죠. 최중증 장애인인 저도 이렇게 해냈잖아요.제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래서 보여드리는 거예요. 0.1%의 희망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라구요. 저도 중환자실에서 누워있을 때 어려움을 극복해낸 분들의 기사들을 읽고 희망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때의 저처럼, 절망으로 삶을 포기하고 있는 분들께서 제 이야기를 보고 “그래, 까짓 거 나도 한번 해보자”라는 희망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색으로 그려진 하루하루지만 예쁜 꽃처럼 피어나게 가꿀 거예요고미숙 (손끝으로 세상을 보는 마케터·소셜벤처 ‘닷’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저의 하루는 한 가지 색으로 그려진 그림이에요. 하지만 사랑을 받는 날엔 몽글몽글해지고, 시선을 집중받는 날엔 스크래치가 생겨서 하루하루가 모이면 드라마처럼 다채로운 스케치북이 만들어진답니다. 그날을 떠올려볼까요. 살랑 부는 봄바람에 기분도 설렜던 날이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보러 흰 지팡이를 들고 집을 나섰는데요. 점자 블록이 없는 길을 ‘초집중’하며 걷다가 앞에 오던 사람과 부딪치면서 지팡이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 거예요. 친절한 그분은 흰 지팡이를 손에 쥐여 주며 사과도 해 주셨죠.‘역시 세상엔 좋은 분들이 많아’ 흐뭇해하며 지하철역에 도착했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하며 걸었지만 주말이라 붐비는 통로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니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소심한 저는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죠. “저… 제가 눈이 안 보여서요. 지하철 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해요?”돌아오는 건 대답 대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터벅터벅’ 하는 발소리뿐이었습니다. 혼자서라도 길을 찾으려 기억을 더듬고 이곳저곳을 헤맸지만 같은 곳만 빙빙 돌 뿐이어요. 시간이 흐르며 다급해진 마음에 다시 용기를 내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이쪽으로”라며 제 옷을 냅다 잡아당기는 거예요. 약속장소에서 만나 제 이야기를 들은 다른 시각장애인 친구는 말했습니다. “난 내 흰 지팡이에 걸린 사람이 오히려 나한테 눈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 하던걸?” 시각장애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마음부터 더 단단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죠. 제가 시력을 잃기 전에 좋아했던, 비 오는 날도 떠올려봅니다. 눈이 보일 땐 빗방울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스며드는 모습이나 창문에 맺혀있는 빗방울을 보는 게 좋았죠. 우산을 쓰고 걸을 때면 들려오던 ‘토독토독’하고 떨어지던 빗방울의 소리도요. 그런데 지금은 비 내리는 날이면 걱정을 먼저 하게 돼요. 비 내리는 소리로 인해 주변 소리가 가려지고, 길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를 피하기도 힘들거든요. 사설제 인생의 책갈피는 이렇듯 행복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언제나 상처받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고, 좋아하던 것들도 즐기기를 망설이게 되죠. 저뿐 아니라 누구나 크기가 다른 고민과 걱정의 씨앗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씨앗이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건강하게 자라서 예쁜 꽃을 피우는 씨앗이 될 수 있도록 저는 긍정의 물과 사랑의 햇살로 잘 키워 보려고요.<특별취재팀>▽기획·취재: 신광영 neo@donga.com 홍정수 이채완 기자▽사진: 송은석 기자▽디자인: 김수진 기자※아래 주소에서 [장애, 테크로 채우다] 전체 시리즈와 디지털로 구현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