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연말입니다. 곳곳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가 이어지는 계절이죠. 4악장에서는 명상적인 3악장에 이어 인류가 하나 되기를 호소하는 ‘환희의 송가’ 합창이 펼쳐지므로, 한 해를 보내며 감상하기에는 딱 좋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베토벤에게는 이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형제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합창교향곡’보다 16년 앞서 1808년에 쓴 ‘합창환상곡(Choral Fantasy)’입니다. 관현악단과 피아노 솔로, 솔로 성악진이 출연합니다. 피아노가 들어간 점을 빼면 합창교향곡과 닮은꼴입니다. 작품을 들어보면 공통점이 더 확연히 드러납니다. 모호한 혼돈의 느낌으로 시작해서 당당하고 낙관적인 느낌으로 이어지는 점도 그렇고, 끝부분 주제선율의 느낌도 비슷합니다. ‘합창환상곡’은 나중에 ‘합창교향곡’을 만들기 위한 테스트, 즉 ‘시험적 작품’이었을까요? 그런데 ‘합창환상곡’이 단지 ‘작은’ 합창교향곡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베토벤 시대는 계몽적 이상주의의 영향력이 강한 시대였고, 이 시대 예술가들은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개인과 인류의 모습을 작품에 그려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먼저 발표된 ‘합창환상곡’ 가사에는 이상적인 개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외면적으로는 평온이, 내면적으로는 기쁨이 지배하는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간주합니다. 반면 이후 실러의 시 ‘환희에의 송가’에서 가져온 ‘합창교향곡’ 가사는 이상적인 인류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관습이 엄중히 갈라놓았던 것을 다시 묶어, 환희의 마법으로 한 형제가 된’ 인류입니다. 2016년, 인류는 많은 ‘갈라놓음’을 만났습니다. 영국은 유럽연합과 갈라지게 되었고, 미국도 더 많은 장벽을 주장하는 인물이 나라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해도, 인류의 역사는 조금씩 서로 마음을 여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고 믿습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합창교향곡 연주의 대표 격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합창교향곡 콘서트는 28,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지휘로 열립니다. 이어 30일에는 음악감독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이 ‘합창환상곡’과 ‘합창교향곡’을 잇달아 연주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2010년 1월 아이패드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날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배경에 특이한 교통 안내판이 보였다. 서로 엇갈린 두 개의 표지판에는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라고 쓰여 있었다. 잡스는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 지점에 존재해왔다.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애플이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기술을 따라잡으려고 애썼지만 사실은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한다.” 이 말은 기술이 모든 세상을 지배할 것 같은 현실에서 그동안 등한시하거나 퇴조하는 학문쯤으로 대접받고 있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웅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문학이 고사(枯死) 위기에 처했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지만 인공지능(AI)의 등장을 계기로 제4차 산업혁명이 닥쳐오는 시대에는 융합의 학문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학 교양교육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는 2010년 학부교육선도대학육성사업(ACE)을 시작하면서 인문소양 함양을 위한 교양교육과정 개편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85%의 대학에 학부대학, 기초교양교육원, 교양대학 등의 이름으로 교양교육 기관이 설립됐다. 경희대는 2011년 대학생 교양교육을 전담하기 위한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데 대학들의 교양교육과정이 천편일률적인 데 비해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졸업학점 120학점 중 35학점은 중핵교과, 배분이수교과, 기초교과, 자유이수교과에서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양 과정을 들어야 한다. 개설 과목만 1000개가 넘는다. ‘글쓰기’와 ‘시민교육’은 이 대학이 강조하는 과목인데 ‘나를 찾는 글쓰기’와 박경리의 소설 ‘토지’ 같은 소설을 한 학기 동안 읽는 인문고전교육도 인기가 높다. 이영준 교양교육연구소장은 “학생들이 자신의 존재와 살아온 과정에 대해 성찰하며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같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날이면 수업시간이 눈물바다가 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이제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가르칠 게 아니라 학생이 관심 분야를 찾아 개척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며 “공학과 음악이 결합되는 등 다양한 융합의 시대에 맞게 교육과정도 변신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말했다. 또 ‘독립연구’는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아서 과정을 짜고 원하는 교수에게 지도를 부탁하는 방식이다. 학생 2∼10명이 팀을 이루고, 교수 1명이 4개 팀까지 지도할 수 있다. ‘에머슨의 초절주의 연구’ ‘한국비교철학사 연구’ ‘시민교육 현장활동의 지속’ 같은 강좌도 있다.신민지 씨(언론정보학과 3학년)는 “다른 수업에서는 시간과 인원 제한 등으로 한계가 있어 관심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며 “교수님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활동 영역도 훨씬 다양해져 만족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신입생들은 2011년부터 송도의 레지던스 칼리지(RC)에서 전원 1년간 교양수업을 받는다. 9개 영역 중 8개 영역에서 1과목 이상씩 기초학문 과목을 골고루 이수해야 한다. 문과는 문과, 이과는 이과 관련 과목만 수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 수강을 통해 학문의 폭을 넓혀주자는 취지다. ‘인문사회 학생을 위한 수학’이나 ‘생명과학이란 무엇인가’ 과목을 교차해서 듣는다. 강의실 밖의 체험교육도 중시해 ‘사회봉사’ ‘문화예술’ ‘체육’은 필수교양이고 명사초청 특강이나 교내 콘서트 등 학생들의 교양 함양을 위한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기숙사 생활로 학생끼리 소통할 기회가 많고, 학사 지도교수와 학생 지도교수 20명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양교육 개선에 있어 전공중심의 ‘학과 이기주의’가 큰 걸림돌이라고 강조한다. 교육과정을 전공 위주로 짜려는 경향 때문에 유연성이 떨어지고 교양교육 담당 단과대나 조직은 힘이 약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학과에 밀리기 일쑤다. 손동현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획일적인 전공학과 구분의 경계를 낮춰 넘나들 수 있게 교육과정 중심으로 변화시켜야 기초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며 “학생을 전공학과에 전속시키지 않고 기초학문 분야에서 여러 학문을 다양하게 교육받게 하는 미국식 학부대학(University College)이나 자유학예대학(Liberal Arts College)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11년 산하에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을 두고 대학의 교양교육을 전문적으로 연구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 예산이 줄어 정부의 교양교육 정책 의지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우섭 원장은 “올해 예산이 11억5000만 원이었는데 2017년에는 그나마 6억 원으로 깎였다”며 “교양교육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이 아닌 만큼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어제(12월 5일)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225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1791년 9월 초부터 모차르트는 몸에 이상을 느꼈지만 영화 ‘아마데우스’로 익숙한 죽음의 미사곡 ‘레퀴엠’을 포함해 작곡의 손길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해 10월에는 친구 안톤 슈타들러가 의뢰한 클라리넷 협주곡을 썼습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평원의 황혼 장면에 등장해 깊은 인상을 남긴 클라리넷 선율이 이 작품의 느린 2악장입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모차르트도 자기 인생의 황혼을 예감하고 있었을까요? 이 곡을 완성한 직후 그는 결국 병상에 눕게 됩니다. 음악 속의 황혼을 얘기하자면 모차르트가 만년을 보낸 빈에서 한 세기 뒤 활동한 요하네스 브람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황혼’과 직접 결부되는 그의 작품을 꼽자면 휴가지인 뵈르터 호수의 황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교향곡 2번이 대표적이지만, 브람스 교향곡 1번의 느린 2악장도 한껏 명상적인 황혼의 정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첫 주제, 오보에가 한껏 애수 띤 노래를 펼쳐내는 두 번째 주제 모두 그렇습니다. 12월입니다. 큰 문제지 하나를 받아든 듯이 시작했던 한 해도 거대한 황혼을 향해 다가가고 있군요. 누구에게나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한 해였고,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보람보다 아쉬움의 무게가 더 크게 가슴에 얹혀 있을 듯합니다. 저기 붉게 저무는 해는 다시 어둠을 거두어내면서 밝고 찬란하게 떠오르겠죠. 한 해 동안 거둔 보람은 내일을 위한 동력으로, 아쉬움도 더 나은 이후를 위한 교훈으로 삼아 나간다면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도 조금은 덜 아쉽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앞에 소개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브람스 교향곡 1번은 9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곡들입니다. 31세의 젊은 프랑스 지휘자 알렉상드르 블로슈가 지휘봉을 들고, 20세의 떠오르는 클라리넷 명인 김한이 협연합니다. ‘황혼’ 얘기로 시작했지만 콘서트를 이끌 얼굴들은 아침 햇살처럼 밝고 젊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오페라는 작품마다 제목이 있지만 오페라 속에 나오는 노래들에는 본디 제목이 없습니다. 대체로 가사 첫머리가 제목 대신 사용되죠. 오페라에 사용되는 이탈리아어나 독일어, 프랑스어와 우리말의 구조가 다르다 보니 의역(意譯)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베르디 ‘리골레토’에 나오는 아리아 ‘여자의 마음’은 본디 ‘La donna `e mobile’로 ‘여성은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움직여 다닌다’는 뜻을 갖고 있지만 ‘여자는 움직인다’고 직역하면 그 뉘앙스를 살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푸치니 ‘토스카’에 나오는 ‘별은 빛나건만’은 ‘E lucevan le stelle’로 ‘그리고 별들은 빛났다’입니다. 주인공 카바라도시가 이 노래를 부르는 시점도 새벽이므로 현재형인 ‘별은 빛나건만’이 이상하지는 않지만, 가사를 들여다보면 연인과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함께했던 행복한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제목 때문에 노래의 내용을 오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1797년 오늘 (11월 29일) 탄생한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라는 유명한 테너 아리아가 있습니다.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슬퍼하는 노래’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실제 내용은 자기가 사모하는 여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라며 기뻐하는 노래입니다. 가사 첫머리를 따서 제목 대신 쓰다 보니 때로는 오해가 빚어지기도 합니다. 구노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여주인공 줄리엣의 아리아 ‘Ah! Je veux vivre Dans ce r^eve’가 있습니다. 번역하면 ‘아, 꿈속에 살고 싶어’죠. 그런데 ‘꿈속에’를 뚝 잘라 ‘Ah! Je veux vivre’만 써놓고 ‘아, 나는 살고 싶어요!’로 번역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12월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유명 성악가들이 독창과 합창을 부르는 ‘솔리스트 앙상블’ 송년음악회가 열립니다. 소프라노 김희정은 구노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리아를 노래합니다. ‘물론’ 착오 없이 ‘그 꿈속에 살고 싶어라’라는 매끈한 번역이 프로그램 북에 실렸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노랗고 붉은 잎들이 거리에 흩날리고 바야흐로 겨울이 문턱 앞까지 왔군요.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 나그네’(원제목 Winter-reise·겨울여행) 음반을 꺼내 보게 되는 시기입니다. 모두 24곡으로 구성된 이 가곡집의 끝에서 두 번째 곡은 ‘세 개의 태양’(원제목 Ne-bensonnen·곁태양)입니다. 시인 빌헬름 뮐러가 쓴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내 태양이 아니다!/예전에는 나도 태양이 세 개였다/하지만 그중 두 좋은 태양이 지고 말았다/세 번째 태양만 나를 따라다닌다면/차라리 어두운 게 낫겠다.’ 사랑을 잃고 실의에 잠긴 시인은 방랑하다가 하늘에 태양이 세 개나 동시에 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고는 탄식하는 내용이 위의 노래입니다. 그가 말하는 ‘지고 만 두 태양’은 무엇일까요. 그와 사랑을 나누었던 연인, 그리고 앞날에 대한 희망을 말한 것이겠죠. 그런데 왜 다시 하늘에 떠 있는 세 개의 태양을 본 것일까요? 예전의 명곡해설집에는 ‘실의와 방랑에 지친 시인이 환각을 본 것’으로 이 장면을 설명했습니다. 요즘엔 다른 설명도 나옵니다. 실제 하늘에 세 개의 태양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겁니다. 이른바 ‘환일(幻日)’이라고 하는 현상으로,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잘 일어나는데 하늘에 흩어져 있는 육각형 얼음 알갱이 때문에 달무리 비슷한 ‘해무리’가 생겨 태양이 세 개로 보인다고 합니다. 특히 해가 뜬 직후나 해넘이 직전에 이런 현상이 잘 일어난다고 합니다. 어느 해보다도 사방이 부옇고 전망이 불투명한 연말입니다. 더 나은 미래로 나를 인도할 진짜 태양은 어디에 떠 있는지 혼란스러운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곁태양’은 진짜 태양이 지평선 위로 뜨면 사라져 버립니다. 혼란스러울수록 중심을 잘 잡고 새해의 설계를 잘해야 되겠습니다. 올해도 연말을 맞아 곳곳에서 ‘겨울 나그네’ 공연이 이어집니다. 오늘(22일)은 독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가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24일에는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겨울 나그네’를 노래합니다. 12월 2일에는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바리톤 토마스 바워가 옛 음악 연주의 명인 요스 판 이메르세일의 피아노 반주로 이 가곡집을 노래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19세기 말은 유럽 음악계에서 ‘자작자연(自作自演)’의 시대였습니다. 자기 작품을 자기가 연주한다는 뜻입니다. 차이콥스키와 시벨리우스는 대작곡가이면서 능숙한 지휘자였고, 쇼팽과 리스트, 브람스는 청중을 감전시키는 엄청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 국가 간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데도 기여했습니다. 서로 국적이 다른 차이콥스키 그리그 브람스 드보르자크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말러와 시벨리우스가 교향곡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토론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연주여행을 다니며 만났기 때문입니다. 한 번 얼굴을 보고 맺은 우정은 다음번 만남의 약속과 편지 교환으로 이어졌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유럽 대륙을 종횡으로 이어준 철도망의 구축은 ‘작곡가 겸 연주가(또는 지휘자)’들을 그물망처럼 이어주었습니다. 오늘날 ‘작곡가 겸 연주가’의 전통은 퇴색된 듯이 보입니다. 음악계 각 영역의 전문화가 강조되면서 작곡가는 작곡에만, 지휘자는 지휘에만 힘쓰게 된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지휘하는 작곡가, 작곡을 하는 지휘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달 서울 부산 대구에서 열린 폴란드 오케스트라 ‘신포니아 바르소비아’ 연주회에서는 20세기 작곡계의 거장으로 불린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지휘봉을 들고 자신의 곡을 연주했습니다.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가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상임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의 지휘로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임동혁이 협연하는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과 함께 토머스 자신이 작곡한 ‘아그네그램’이란 곡을 선보였습니다. 이 악단의 후원자였던 아그네스 앨버트를 기념해 쓴 곡입니다.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와 연주자의 개념을 분리하고 있고, 일단 작곡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연주자의 것이니 ‘작곡가 자신의 해석’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래도 작곡가의 의도를 그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지난 세기 초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자작 피아노곡 음반을 들어보고 싶어지는군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오늘날 음악을 접하는 경로는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커다란 LP 음반을 턴테이블에 걸거나 ‘워크맨’에 카세트테이프를 넣었습니다. 아 참, 라디오를 들을 수도 있었죠. 오늘날에는 음반을 사지 않아도 됩니다. 일정한 사용료를 매달 내고 인터넷에서 제법 괜찮은 음질의 음원을 듣는 길이 열렸으니까요. 19세기 말에는 어땠을까요? 당시에 음반은 팔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유럽의 귀족과 부유한 시민들은 최신의 음악들을 집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피아노 보급이 늘고 ‘악보산업’이 급성장했기 때문이죠. 브람스는 두 사람이 함께 치는 피아노 곡집 ‘헝가리 춤곡’으로 돈을 벌었고, 친구 드보르자크에게도 ‘슬라브 춤곡’을 쓰도록 권합니다. 최신의 교향곡이나 협주곡도 피아노용으로 편곡돼 가정의 거실에서 귀를 즐겁게 했습니다. 차이콥스키(사진)의 피아노 곡집 ‘사계’도 피아노가 있는 부유한 가정의 거실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러시아 음악잡지 ‘누벨리스트’가 1875년 이 작곡가에게 매달 한 곡씩 피아노 독주곡을 써 달라고 제안합니다. 1월에서 12월까지 각 달의 정감을 담은 곡을 부탁한 것입니다. 이 곡들은 잡지 부록으로 독자들에게 제공되었습니다. 각각의 곡이 묘사한 정경을 담은 시도 악보 한쪽에 실렸습니다.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대접을 받았던 작곡가의 최신 소품 하나씩을 매달 받아본다는 것. 이렇게 해서 차이콥스키의 ‘사계’ 전 12곡이 탄생했습니다. 각 달의 정감을 표현한 모든 곡 중에서도 특히 6월 ‘뱃노래’와 10월 ‘가을의 노래’가 유명하지만, 11월 ‘트로이카(삼두마차)’도 담백하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곡입니다. ‘외로울 때 길을 쳐다보고/마차를 쫓아 달리지 말라/갈망일랑 마음속에 눌러두어라.’ 곡 중간에 오른손이 썰매 방울의 도르륵 도르륵 하는 독특한 소리를 묘사합니다. 올해도 채 두 달이 남지 않았군요.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마음을 복잡하게 하지만 정리할 일은 정리해야 할 때가 돌아왔습니다. 저도 마차를 쫓아가듯이 성급하지 않게, 조금은 길고 먼 안목으로 새로운 계획들을 세워 보겠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한때 나는 호수 위의 아름다운 백조였다네/그러나 제길! 이제는 검게 구워졌다고!/요리사가 나를 꼬치에 꿰어 돌리더니/시종이 그릇에 담아 내놓는구나….’ 카를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1937년)에 나오는 열두 번째 곡 ‘나는 호수 위의 백조였다네’입니다. 테너 솔로가 처량한 고음으로 이제는 요리가 된 백조의 신세를 노래합니다. 이 칸타타는 19세기 독일 보이렌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발견된 중세 노래 텍스트들에서 영감을 받아 오르프가 곡을 붙인 것입니다. 신을 찬미하는 경건한 노래도 있지만, 당시 풍속을 전해주는 파격적인 음식 노래나 에로틱한 노래까지 있습니다.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 유럽에서는 백조나 비둘기 같은 조류를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닭과 오리 사육이 보편화되면서 인류가 먹는 조류의 종류는 오히려 줄어들었죠. 백조 요리와 관련된 음악작품으로 힌데미트의 비올라 협주곡 ‘백조를 돌리는 사람(Der Schwanendreher·1935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 3악장에 독일 민요 ‘그대는 백조를 돌리는 사람인가?’ 선율을 바탕으로 한 변주곡이 등장해 붙은 제목입니다. 중세에 주방에 들어가 일을 배우는 사람은 꼬치에 꿴 고기를 천천히 돌리는 일부터 했다고 합니다. 옛날 독일의 방랑음악가들은 흔히 손풍금을 돌리며 노래를 했는데, 이 손풍금 돌리는 모습이 백조 고기를 돌리며 굽는 모습과 비슷해 이런 노래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조구이를 묘사한 두 작품의 발표 연도가 비슷하죠?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낭만주의 음악의 전성기였던 19세기의 낙관주의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깨져 나간 뒤였고, 사람들은 ‘미래’나 ‘오랜 과거’에서 상상력의 원천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중세에 먹던 백조’라는 소재가 우연히 겹친 것으로 보면 자연스럽겠습니다. 지난주 화요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는 제56회 동아음악콩쿠르가 막을 내렸습니다. 비올라 부문 본선 과제곡은 힌데미트의 ‘백조를 돌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입상자들께 축하를 드리며, 모든 참가자들께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로시니의 오페라 ‘랭스 여행’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귀에 익은 선율이 나옵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새 프랑스왕 샤를 10세의 즉위를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는데, 이 부분의 선율이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곡 중 하나인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마지막 장면과 같거든요. 발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오페라 ‘랭스 여행’보다 거의 70년이나 더 지나 세상에 나왔습니다. 차이콥스키가 로시니의 명선율을 모방한 것일까요? 이 선율은 실은 프랑스혁명 이전의 프랑스 국가인 ‘앙리 4세 행진곡’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앙리 4세 만세’라는 제목으로도 불렸습니다. 원래는 왕 이름을 붙인 민요였는데, 언젠가부터 국가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 민요 시절의 가사는 우스웠습니다. “앙리 4세 만세/용감한 왕이시며/끔찍한 악마이시며/세 가지 능력을 가지신 바/술, 싸움 그리고 여자를 유혹하는 것이로다….” 물론 국가가 되었을 때는 경건한 가사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프랑스 국가는 대혁명기의 혁명가에서 출발한 ‘라 마르세예즈’입니다. 현재도 사용되는 국가인데, ‘무장하라, 시민들이여/대오를 정렬하라/전진, 전진/저 더러운 피가 고랑을 적시도록’이라는 살벌한 가사 때문에 어린이에게 부르도록 하는 것이 괜찮은지 논란도 종종 벌어집니다. 이 선율도 차이콥스키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과 패퇴를 묘사한 ‘1812년 서곡’에 삽입한 바 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프랑스혁명 전후의 프랑스 국가를 모두 자기 작품에 넣어본 셈이군요. 그런데 정작 나폴레옹 전쟁기인 1812년 당시에는 ‘라 마르세예즈’가 아직 프랑스 국가로 쓰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국립발레단이 11월 3∼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장대한 거작인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무대에 올립니다. 늘 그렇듯이, 마지막 장면에 옛 프랑스 국가가 등장합니다. 침착한 오보에 연주로 시작해 전 관현악이 화려한 합주를 이어 나갑니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발레뿐 아니라 음악만 들어 보아도 매우 인상 깊은 장면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예전 이 코너에서 타악기 연주자들의 애환을 소개하면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에는 2악장에서 딱 한 번 심벌즈를 치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 표현이 꼭 맞지는 않습니다. ‘어떤’ 연주에는 심벌즈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숙하게 시작된 악장은 차차 고조되어 클라이맥스에서 심벌즈의 강타와 팀파니, 트라이앵글까지 가세해 장엄한 소리의 풍경을 자아냅니다. 그렇지만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연주를 보러 갔다가, 심벌즈 팀파니 트라이앵글이 나오지 않아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에 다양하게 편집한 악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대 음악가들은 이 곡들에 ‘연주하기 곤란하다’, ‘효과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며 난색을 표시하기 일쑤였고, 브루크너는 꾸준히 악보를 고쳤습니다. 심지어 ‘그 분야 전문가’들이 알아서 고치거나 바꾸어서 연주해도 상관없다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가 죽고 세월이 흐른 뒤 교향곡마다 다양한 악보들이 남았고, 심지어 어느 것이 브루크너 자신이 고친 것인지, 어느 것이 남들이 고친 것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세기 들어 로베르트 하스, 레오폴트 노바크 같은 음악학자들이 자기 나름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표준’ 악보들을 만들었습니다. 7번 교향곡의 경우 노바크 판이 널리 연주되는데 2악장 클라이맥스에 심벌즈와 팀파니, 트라이앵글이 불꽃같은 음향을 만들어냅니다. 그렇지만 하스 판에는 이 악기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노바크 판을 사용할 때도 심벌즈 강타는 넣지 않는 지휘자들도 있습니다. 브루크너가 이 악장을 쓰다가 존경하는 바그너의 부음을 듣고 심벌즈 등을 악보에 추가했다고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팔랑귀였던 브루크너가 지휘자 니키슈의 충고만 듣고 어울리지 않는 음향을 추가한 것이므로 빼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요? 답은 듣는 사람 각자의 마음에 있을 듯합니다. 26,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갖는 독일 밤베르크 교향악단은 27일 공연에서 이 악단 명예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 지휘로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합니다. 심벌즈 등이 나오는 노바크 판을 사용할 예정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1900년 초연된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는 딱 한 세기 전의 역사적 사실에서 소재를 가져왔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나폴레옹군이 오스트리아군을 패퇴시킨 ‘마렝고 전투’ 당시 로마에서 펼쳐진 혁명파와 보수파의 대결입니다. 처음에는 나폴레옹이 패배한 것으로 잘못 전해져, 보수파들은 안도하고 성가대를 시켜 성당에서 찬미가인 ‘테 데움’을 노래하도록 합니다. 2막에서는 이 소식이 반대로 전해진 것을 알게 된 보수파가 당황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또 한 세기가 지난 2000년, 이탈리아 토레델라고의 ‘푸치니의 집(Villa Puccini)’이 악보 하나를 공개합니다. 푸치니의 할아버지 도메니코 푸치니가 1800년 작곡한 찬미가 ‘테 데움’이었습니다. 푸치니 집안은 5대를 이탈리아 중북부 도시 루카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봉직했습니다. 마렝고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회의 명으로 할아버지 푸치니가 찬미가를 작곡했던 듯합니다. 이 곡이 실제 연주되었는지, 나폴레옹이 승리한 사실이 밝혀져 연주되지 못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단, 푸치니는 할아버지가 작곡한 이 작품의 내력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푸치니의 루카 고향집에서 그가 당시 살던 토레델라고로 악보를 가져올 사람은 푸치니 자신 말고는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약간의 의문을 남깁니다. 푸치니는 당대 연극으로 인기를 끈 ‘토스카’를 오페라로 만들기 주저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오페라 ‘에드가르’가 초연된 직후부터 주변에서는 이 ‘핫한’ 연극을 오페라화하기를 권했지만, 그가 ‘내게 맞지 않는 소재다’라며 계속 미루기만 했고 결국 이 작품은 푸치니의 다섯 번째 오페라가 되었습니다. 그가 1막 마지막 부분에 삽입한 ‘테 데움’ 선율은 할아버지가 쓴 ‘테 데움’과는 닮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13∼16일 국립오페라단이 주최하는 푸치니 ‘토스카’ 공연이 열립니다. 번갈아 스카르피아 역으로 출연하는 바리톤 고성현과 클라우디오 스구라가 그란데오페라합창단과 함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반주로 ‘테 데움’을 노래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1902년 어느 날,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 주역 가수 헤르만 빙켈만의 집 문을 누군가가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문 열어.” “누구십니까?” “나, 국립오페라 감독이다. 문 열어.” 문을 연 빙켈만의 눈앞에는 작곡가 후고 볼프(사진)가 있었습니다. “감독으로서 명하니, 내 앞에서 노래하시오.” 빙켈만은 어리둥절해졌습니다. 빈 국립오페라 감독은 후고 볼프가 아니라 구스타프 말러였기 때문입니다. 횡설수설하는 볼프를 결국 사람들이 정신병원으로 데려갔고, 그는 이듬해 병원에서 43세의 길지 않은 삶을 마쳤습니다. 볼프는 왜 자신이 빈 국립오페라극장 감독이라고 착각했을까요? 당시 앓고 있었던 매독의 후유증으로 정신착란에 빠진 것이 직접적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빈 국립오페라 감독이었을까요? 그 직위는 볼프가 평생 가고 싶었던 ‘꿈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픈 꿈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면 그 꿈은 실제 이뤄질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 감독이었던 말러는 볼프와 재능을 다투던 빈 국립음대 동급생이었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1860년생으로 나이도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까칠한 볼프의 성격이 늘 화를 불렀습니다. 교장과 충돌한 끝에 빈 국립음대를 그만두었고, 음악 저널을 통해 당대 빈의 존경을 받고 있던 브람스를 공격한 결과 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뫼리케, 아이헨도르프 등의 명시에서 영감을 받아 ‘외로운 늑대’처럼 고독하게 작곡을 이어갔지만 최후의 순간 그에게 친구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동급생이었던 말러가 오스트리아 제국 음악계 최고 지위인 국립오페라극장 감독에 오르자 볼프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이후 불운하게 삶을 마쳤지만, 시의 맥락에 최대한 다가가 절묘한 음악적 표현을 이끌어내는 볼프의 가곡들은 오늘날 살아남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소프라노 임선혜와 테너 시모 메키넨, 앙상블 오푸스가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을 무대에 올립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랄프 고토니가 반주부를 실내악단용으로 편곡한 악보를 사용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사람 이름으로 선율을 만든다?’ 낯설게 들리는 일일까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사진)의 음악에 친숙한 분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은 얘기입니다. 서양음악에서 소리의 높이를 표시하는 ‘음이름’은 A(라)에서 G(솔)까지의 알파벳 일곱 글자만을 사용하지만, 독일어권에서는 유독 A-‘H’-C-D-E-F-G로, 영어에서의 B 대신 H를 씁니다. 옛 활자에서 H자가 B와 비슷하게 보였던 데서 유래한 관행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영어의 B♭(B플랫)음을 그냥 ‘B’로 표시합니다. 이에 따라 ‘BACH’라는 이름은 ‘B♭-A-C-B’라는 네 개의 음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노년의 걸작으로 꼽히는 ‘푸가의 기법’ 마지막 부분에서 바흐는 이 네 음의 진행을 앞뒤로 뒤집고, 아래위로 뒤집는 등 다양하게 발전시킵니다. 이런 ‘이름놀이’를 즐긴 작곡가로 슈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가 악보로 출판한 첫 번째 작품이 ‘아베크(Abegg) 변주곡’인데, 이 작품의 주제는 제목처럼 ‘A-B-E-G-G’ 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백작 따님인 폰 아베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전해지지만, 역시 전해지는 얘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모든 이름을 이렇게 소리로 바꿀 수는 없죠. 음이름은 독일식으로 ‘H’까지 더해 보아야 고작 여덟 개의 알파벳 자모만을 사용하니까요. 그래서 1909년 프랑스의 음악 저널리스트 쥘 에코르슈빌이라는 사람이 이른바 ‘프랑스식’ 음이름 바꾸기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한 줄에 일곱 글자씩, A부터 Z까지 죽 써놓은 다음에 각각의 글자를 첫 줄에 대응시키는 방법입니다. 말하자면 두 번째 줄의 H에서 N까지는 첫 줄의 A에서 G까지에 각각 대응하니까, ‘KIM’은 ‘D-B-F’라는 음이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작곡가 라벨이 하이든(Haydn)의 이름을 이렇게 ‘B-A-D-D-G’로 바꾸어 ‘하이든 이름에 의한 미뉴엣’을 작곡했습니다.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백건우의 선물’ 콘서트에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프란츠 리스트의 ‘바흐 이름에 의한 판타지와 푸가’를 연주합니다. 글 앞에 소개한 ‘B♭-A-C-B’의 음 진행으로 바흐를 오마주한 작품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리미니의 프란체스카(Francesca da Rimini)는 단테(사진)가 쓴 ‘신곡’의 지옥편에 등장하는 여성입니다. 못생긴 남자에게 시집가지만 잘생긴 시동생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죠. 이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되고, 사랑하는 남녀는 죽임을 당합니다. 이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차이콥스키가 교향시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를 썼고, 차이콥스키를 경모한 후배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프란체스카를 생각할 때마다 차이콥스키나 라흐마니노프에 앞서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를 떠올리게 됩니다. 푸치니가 이 소재로 작품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옥에 간 프란체스카는 눈물을 흘리면서 “불행한 지금,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보다 슬픈 일은 없습니다”라고 뇌까립니다. 푸치니는 이 명제를 가장 충실하게 실천한 단테의 후배 예술가로 일컬어집니다. 단테보다 600년 뒤에 같은 고장(토스카나 주)에서 태어난 그는 수많은 오페라에서 ‘프란체스카 원칙’을 실천했습니다. 첫 오페라인 ‘빌리’, 출세작 ‘마농 레스코’, 대성공작인 ‘라보엠’ ‘나비부인’ 등이 다 비슷합니다. 첫 장면에서는 연인들이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비극적인 운명을 앞두고 있습니다. 죽어가거나, 벌을 받거나, 이별할 수밖에 없는 슬픈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은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립니다. 동시에 푸치니는 첫 장면에서 선보였던 아름다운 멜로디를 수없이 흘려보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이 때문에 푸치니의 오페라들이 ‘단테적이다’라는 얘기를 듣는 것입니다. 한편 줄거리 면에서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는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테를링크의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등과도 공통된 구조를 갖습니다. 정략 결혼한 신부가 더 낮은 권력을 가진 미남을 사랑했다가 죽는 스토리죠.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포레, 드뷔시, 시벨리우스, 쇤베르크가 각각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도 이 코너에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은 30일 정기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의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를 첫 곡으로 연주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1892년 브람스(사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해 그는 피아노 소품집 ‘세 곡의 인테르메조’ Op.117을 작곡합니다. 잔잔하면서도 쓸쓸한 이 세 곡을 그는 ‘나의 고뇌의 자장가’라고 불렀습니다. 고뇌를 잠재우는 자장가라니. 브람스의 연보를 찾아보면 이해에 누이가 죽고, 친했던 여성 제자인 엘리자베트라는 분이 죽었습니다. 그 밖의 특별한 사건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늘 일어나는 일이며, 이 두 죽음이 브람스의 ‘고뇌’와 특별한 연관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세 곡 중에서 ‘자장가’의 느낌을 가장 짙게 드러내는 작품은 첫 곡인 E플랫장조의 소품입니다. 잔잔한 8분의 6박자 리듬이 마치 요람을 흔드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브람스는 악보에 옛 스코틀랜드의 소박한 자장가 가사 두 줄을 적어 두었습니다. ‘편히 자라, 아이야, 편안히, 예쁘게/네가 울면 내가 힘들단다.’ 선율이 흘러가는 가운데 으뜸음인 E플랫 음이 한숨이나 위로처럼 계속 수놓아지면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중간부는 더 멋집니다. 왼손이 멋진 분산화음을 타면서, 마치 오랜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는 듯한 회상의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다시 어머니의 한숨과 같은 자장가 가락. 흔히 브람스를 ‘가을의 작곡가’라고 부릅니다. 출세작인 ‘독일 레퀴엠’이나, ‘만추의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4번, 고독과 우수의 느낌을 짙게 풍기는 클라리넷 5중주곡 등이 특히 가을에 사랑을 받습니다. 흐린 날이 많고 바람이 많이 부는 북부 함부르크에서 성장한 점도 한 가지 이유일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앞에 소개한 ‘세 곡의 인테르메조’도 가을에 듣기 좋은 작품으로 강력히 추천합니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너무 쓸쓸한 작품을 전해드렸나요? 누구나 일상 속 작은 고뇌는 가지고 있기 마련이죠. 이번 추석 연휴에는 부디 각자의 고뇌를 ‘자장자장’ 잠재우고, 주변을 한번 돌아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신지연 피아노 독주회에서 브람스 ‘세 곡의 인테르메조’가 연주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1824∼1896)는 순진한 사람이었습니다. 생의 대부분을 오스트리아 시골인 장크트플로리안의 성당에서 오르간을 치며 생활했습니다. 대인관계에 서툴렀고, 여성들과의 관계는 더욱 그랬습니다. 결국 독신으로 지냈죠. 이 사람의 순진함은 선배 작곡가 바그너를 경모했으면서 교향곡 작곡에 몰두한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바그너는 교향곡이 ‘시대에 뒤졌다’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바그너는 브루크너가 자신의 스타일에 영향받은 교향곡을 들고 찾아오자 처음에는 격려도 하고 호기심을 보였지만 나중에는 ‘별스러운 친구’ 취급을 하며 거리를 두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주류 음악계도 그에게 거리를 두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바그너의 숙적’으로 불리는 브람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유난히 바그너 색채가 짙은 브루크너를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결국 ‘바그너를 경모한 교향곡 작곡가’가 된 것은 전략상 오류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우직한 작곡가는 계속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두드렸습니다. 마침내 환갑이 되어서 1884년 발표한 교향곡 7번에 이르러 세상은 그에게 갈채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그가 남긴 교향곡 9곡(습작을 포함하면 11곡)은 세계 콘서트 무대에서 베토벤이나 말러의 교향곡들에 버금가는 ‘우뚝한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달 11일은 브루크너의 서거 120주년 기념일입니다. 대전시립교향악단은 8일 브루크너의 첫 성공작이자 바그너에 대한 추모의 뜻이 들어 있는 교향곡 7번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이종진 지휘로 연주합니다. 임헌정 지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브루크너 전곡 연주 시리즈의 일환으로 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그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합니다. 그가 거의 평생을 보낸 장크트플로리안 부근의 린츠에서는 매년 ‘브루크너 페스티벌’(9월 13일∼10월 29일)이 열립니다. 한국이 ‘주빈국’인 올해 행사에는 브루크너의 교향곡들 외 오페라 갈라 콘서트, 정명훈 지휘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이 연주하는 말러 교향곡 5번 등의 콘서트가 마련됩니다. 동아일보도 이 페스티벌과 함께하는 ‘독일 오스트리아, 축제와 호수에 빠지다’ 여행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www.tourdonga.com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어떤 예술가나 늘 걸작만 쏟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놓은 작품이 예상 밖의 뜨거운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나름 공을 들이고 기대도 했던 역작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죠. 베르디가 43세 때 발표한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도 그랬습니다. 이미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를 성공시키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으로 떠오른 그였지만, 이 작품에는 청중과 평론가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냈습니다. 이유는 있었습니다. 베르디는 화려하고 힘찬 노래와 중창, 합창들을 죽 엮어내는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극적으로 밀도가 높고 중후한 작품을 쓰려 했습니다. 그런데 의욕이 앞선 나머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포인트’를 잡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한결 나은 작품을 쓰려고 했는데, 뒤돌아보니 잘 해내지 못한 것 같다’고 썼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그대로 묻혀버리지는 않았습니다. 24년이 지난 뒤 베르디는 이 작품에 대대적인 손질을 해 다시 발표했습니다. 악보를 다시 펼쳐보니 작품의 숨은 매력과 함께 어떤 부분을 손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는 점이 보였던 것입니다. 1881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이루어진 재공연은 대성공이었고, 이 작품은 베르디의 걸작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큰 공헌을 한 인물이 작곡가 겸 오페라 대본작가였던 아리고 보이토입니다. 그는 한때 베르디의 음악이 시대의 새로운 경향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질타했지만, 결국 베르디 작품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협력에 나섰습니다. 그 첫 단추가 ‘시몬 보카네그라’의 개작을 위해 대대적으로 대본을 고쳐준 일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Othello)’를 바탕으로 오페라 ‘오텔로(Otello)’ 대본을 써서 베르디가 만년의 걸작을 남기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3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시몬 보카네그라’를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합니다. 주인공 시몬 역의 바리톤 시모네 피아촐라 등 유럽에서 온 출연진과 함께 2013년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2위 입상한 베이스바리톤 김주택 씨가 평민의 우두머리인 파올로 역으로 출연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누구나 아는 랜드마크에서 셀카봉으로 인증샷찍고, 다음 장소로 달려가는 여행은 이제 그만. 예술사에 발자취를 남긴 대가와 명인의 흔적을 찾아보고, 걸작이 탄생한 장소를 찾아 거장의 내면을 느껴보는 문화 테마여행이 대세다. 올가을엔 알프스 산맥 동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찾아 음악사를 대표하는 작곡 거장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 각 지역의 향기를 전해 주는 음악을 휴대기기에 넣어 간다면 금상첨화다. 바로 짐을 꾸릴 용기가 없어도 좋다. 눈을 시원하게 하는 사진들을 찾아 보고 고금의 명선율을 듣는 것만으로 반쯤은 흰 알프스 연봉이 머리에 채워질 것이다. 동아일보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걸친 동부 알프스 일대에서 대작곡가들의 자취와 축제를 만나는 ‘독일 오스트리아, 축제와 호수에 빠지다’ 여행을 9월 30일∼10월 10일, 총 11일 일정으로 준비했다.퓌센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는 왕세자 시절 리하르트 바그너가 중세의 전설을 바탕으로 작곡한 오페라 ‘로엔그린’에 심취했다. 18세 때 왕위에 등극한 그는 가장 먼저 ‘혁명파’로 몰려 외국으로 망명했던 바그너를 예우를 갖춰 초청했다. 루트비히 2세는 어린 시절 ‘백조성’으로 불렸던 호엔슈반가우 성에서 맞은편 언덕을 바라보며 중세와 기사 전설의 공상을 키웠고, 왕위에 오른 뒤 6년 뒤엔 그 언덕에 자신의 환상을 집대성한 꿈의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이 성은 이후 미국 디즈니랜드에 있는 신데렐라 성의 모델이 되었다. 추천곡은 백조의 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중 3막 전주곡(인터넷 검색어:Lohengrin prelude to act 3)과 ‘결혼 행진곡’(wedding march). 결혼행진곡은 오늘날 세계인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듣는 선율이기도 하다.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두 마을이 합쳐져 복잡한 이름이 되었지만 통칭 ‘가르미슈’라고 불리는 곳. 1936년 겨울올림픽이 열린 곳이며, 독일 최고봉인 추크슈피체(해발 2962m)에 오르기 위한 전진기지기도 하다.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이용해 한 시간 남짓만 오르면 의외로 쉽게 가슴이 탁 트이는 만년설의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순례자와 등산 중의 희생자를 기리는 정상 부근의 금빛 십자가를 붙잡고 벌벌 떠는 다른 관광객들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 추천곡으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An alpine symphony)’를 꼽을 만하다. 새벽에 산을 오르기 시작해 찬연한 일출을 만나고, 정상 정복의 희열을 느낀 뒤 폭풍을 만나지만 결국 고요한 일몰을 바라보고 하산하기까지의 과정이 소리의 그림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뮌헨 옛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이자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9월 말부터 10월까지 펼쳐지는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전혜린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무대로도 알려진 곳이다. 중세의 자취가 아련한 고딕 양식의 시 청사부터 푸른 녹지와 개울이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영국 정원’까지 이상적인 도시의 모든 것을 갖추었다. 추천곡은 이 도시 출신의 작곡가이자 리듬 교육 창안자로도 인정받은 카를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TV 예능 오락 프로그램에서 놀라운 반전이 펼쳐질 때마다 배경 음악으로 울려퍼지는 합창이 바로 이 작품의 첫 악장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로 넘어왔지만 독일 국경이 바로 옆에서 손짓하는 곳.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원이었지만 중세부터 황제보다 대주교의 권한이 강력해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킨 곳이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호엔잘츠부르크 성에서 잘차흐 강을 내려다보는 고즈넉한 풍경은 장관이다. ‘도레미송’의 무대인 미라벨 정원 등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고장으로서 세계인을 끌어들이고 있다. 추천곡은 당연히 이 도시 출신으로 세계 음악사의 챔피언이 된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모든 작품. 영화 ‘엘비라 마디간’ 주제곡으로도 쓰인 피아노협주곡 21번(Piano concerto no.21)이나, 후기 3대 교향곡(Late symphonies)으로 귀를 꽉 채우며 중세 향기 가득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한나절도 한 시간처럼 짧다.잘츠카머구트 잘츠부르크 동남부 일대로 넓게 퍼진, 푸른 호수와 높은 산들이 어우러진 천혜의 휴양지다. 모차르트와 하이든, 슈베르트, 브람스, 말러에 이르는 대작곡가들이 이 일대에서 휴가를 보내며 푸른 대자연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호숫가의 동화마을’로 불리는 할슈타트의 전경은 잘츠카머구트의 대표적인 ‘우편엽서 이미지’로 통한다. 이 지역의 중심지인 바트이슐에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유행한 가벼운 오페라 ‘오페레타’의 대표자였던 프란츠 레하르가 살았던 집과, 휴양하러 온 귀족들이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객석을 메웠던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 레하르의 대표작인 오페레타 ‘유쾌한 과부(Die lustige Witwe)’에 나오는 아늑한 이중창 ‘입술은 침묵하고(Lippen Schweigen)’를 추천곡으로 권한다.린츠 오스트리아와 독일, 체코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면서 ‘브루크너의 도시’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교향곡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는 바그너의 정신을 교향곡에 도입한 장려한 교향곡 아홉 곡(습작 포함 11곡)을 쏟아놓았다. 중세 숲과 산악을 헤쳐 나가는 듯한 이 대곡들은 오랫동안 이해받지 못하다가 오늘날 베토벤, 말러 등의 교향곡들과 함께 세계 교향악단의 표준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브루크너는 이곳 인근의 작은 도시 안스펠덴에서 태어났지만 1974년 린츠에 개관한 ‘브루크너하우스’에서 매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고의 악단과 예술가들을 초청한 가운데 ‘브루크너 페스티벌’이 열린다. 올해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되어 KBS교향악단, 수원시립교향악단, 국립합창단 등이 유럽 유수의 예술단체들과 나란히 공연을 펼친다. 브루크너의 유산 외에도 알록달록한 건물들로 둘러싸인 중앙광장, 최신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전자예술센터 등 옛것과 새것의 볼 거리들이 수두룩하다. 추천곡은 물론 브루크너의 교향곡. 그의 장엄한 음악세계 중에서도 우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향곡 4번 3악장(Bruckner Symphony no.4 mov.3), 7번 2악장(Symphony no.7 mov.2)을 추천한다. 모차르트가 이 도시에서 쓴 교향곡 36번도 ‘린츠’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빈 현재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일부, 이탈리아 일부 등을 영유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이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이 활약했던 ‘세계 음악의 수도’. 수없이 이사를 다녔던 베토벤의 집을 포함해 셀 수 없이 많은 음악가의 체취가 골목골목을 지배하고 있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명곡의 목록도 엄청나게 긴 만큼 추천곡을 뽑기 두려울 정도이지만, 도나우 강가에서는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An der sch¨onen blauen Donau)’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에 등장한 빈 국립오페라(슈타츠오퍼)에서는 한 세기 전 이 극장의 감독을 지낸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떠올려 보아도 좋을 것이다. 장려한 교향곡 5번 피날레(Mahler Symphony no.5 mov. 5)는 어떨까. 한편 동아일보가 마련한 ‘독일 오스트리아, 축제와 호수에 빠지다’ 여행은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해 멜크,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 독일 뮌헨,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추크슈피체), 퓌센(노이슈반스타인 성),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잘츠부르크, 잘츠카머구트(할슈타트), 린츠, 그라츠를 거쳐 빈에서 여정을 마친다. 린츠 브루크너하우스에서 브루크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이탈리아 오페라 갈라 콘서트와 정명훈 지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연주하는 말러 교향곡 5번 콘서트를 감상하고, 빈 국립오페라에서 열리는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에서 남다른 감동의 시간을 경험하며 뮌헨 옥토버페스트에도 자리를 함께해 즐거운 시간을 가져 본다. tourdonga.com 02-361-1414 유윤종 기자gustav@donga.com}

새로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에서 임헌정 지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25, 27일 말러의 대작인 교향곡 8번(1906년)을 연주합니다. ‘1000인의 교향곡’이라는 별칭대로 오케스트라와 성악 솔로 8명, 합창단을 포함해 약 1000명의 연주자가 출연한다고 합니다. 이 홀의 객석 수가 2036석이니 연주자 한 사람당 청중 두 명꼴이군요. 워낙 규모가 큰 곡이지만 말러가 터무니없는 일을 벌인 것은 아닙니다. 오케스트라는 5관 편성(목관악기 1종당 연주자 다섯 명)으로 표준적인 2관 편성보다 2∼3배의 연주자가 필요하지만 이는 말러 시대에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입체적 효과를 내기 위해 큰 합창단 두 개를 배치했고, 순진무구한 소리를 위해 어린이합창단도 필요했겠죠. 말하자면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내고 싶은 소리를 다 내보려’ 한 것일 뿐, 숫자로 압도하려는 생각은 아니었던 겁니다. 실제로 이 곡은 300명 정도의 인원으로도 연주 가능하고, ‘1000인의 교향곡’이라는 별명도 말러 자신이 아니라 공연 기획자가 붙인 것입니다. 이 곡 이외에 많은 연주자가 필요한 곡으로는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먼저 아널드 쇤베르크의 칸타타 ‘구레의 노래’(1911년)가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 8번보다 약간 큰 규모이며, 혼성합창단 1개 외에 남성합창단 3개가 참여하도록 지정되어 있습니다. 자연히 이 곡 연주도 1000명을 훌쩍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보다 80년이나 앞선 대규모 작품이 있습니다.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죽은 자를 위한 대미사곡’(1837년)입니다. 이 곡은 4관 편성 오케스트라에 합창단 210명이 필요합니다. 숫자만으로는 말러나 쇤베르크의 대곡보다 적습니다. 하지만 이 곡을 연주하려면 앞의 두 곡 못잖게 골치가 아픕니다. 정규 오케스트라 외에 연주장 동서남북에 각각 8∼12명으로 구성된 금관 합주단을 배치하고, 타악기는 팀파니 10명, 큰북 2명, 심벌즈 10명, 탐탐(큰 징) 4명이 각기 별도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 많은 악기가 동시에 울리는 음향은 ‘굉음’에 가깝기로 유명합니다. 실제 베를리오즈 생전에 연주자 수를 늘려 800명에 가까운 인원으로 연주한 기록도 있습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왕은 플루트를 꺼내어 불었다.”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호전적이고 권위적인 왕보다는 ‘평화로운 중재자’인 온화한 군주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습니까. 실제로 플루트를 잘 연주했던 왕이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1712∼1786·재위 1740∼1786년)입니다. 그의 플루트 실력은 ‘아마추어’ 수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플루트 소나타를 100곡 이상이나 써서 이 악기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대(大)바흐의 아들인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와 요한 요아힘 크반츠 같은 최고의 음악가들을 왕궁으로 불러 활동하게 했고, 대바흐의 걸작 ‘음악의 헌정’에 쓰인 주제 선율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 생활’이 처음부터 평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 조피 도로테아 왕비가 프랑스인 가정교사를 초빙해 그에게 음악의 세계를 열어주었지만, 성격이 강하고 완고했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아들이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는 걷어차거나 몽둥이로 두들기기도 했습니다. ‘황태자’가 선택한 탈출구는 가출이었습니다. 친한 육군 중위 카테와 상의해서 여행 중에 숙소를 빠져나왔지만 결국 체포되었습니다. 격노한 아버지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카테를 참수해 버렸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황태자는 변했습니다. 마음을 숨기고 부왕에게 순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8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어떤 왕이 되었을까요? 난폭한 아버지에 대한 저항심과 음악으로 갈고닦은 감각으로 ‘민주적 군주’가 되었을까요? 즉위 초기 그는 고문 폐지, 언론 검열 폐지, 종교 차별 금지 등 계몽주의적 조치를 잇달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야심이 강한 한 사람의 왕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에 개입해 널따란 슐레지엔(오늘날의 폴란드 남서부) 땅을 병합하는 등 영토를 크게 늘렸습니다. 오늘날 그가 ‘대왕’으로 불리게 된 데는 넓게 영토를 확보한, 광개토(廣開土)한 업적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17일은 프리드리히 2세가 서거한 지 230년째 되는 날입니다. 시련도 겪었지만 강인했고, 무엇보다 예술을 사랑했던 왕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