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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 /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김정하 옮김 / 540쪽·까치·2만 원 서기 2세기 초반 영국 런던. 로마 동전을 가득 실은 수레를 이끌고 기마대가 강을 건넌다. 2000년이 흐른 뒤 영국인들이 ‘템스’라고 이름 붙인 바로 그 강이다. 로마 군인들이 강물 위 나무다리에 들어서기 직전 누군가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 순간 다리 한가운데가 위로 들리면서 아래로 포도주를 가득 실은 화물선 한척이 유유히 지나간다. 신기하게도 이 다리는 1894년 지어진 런던의 관광 명물 ‘타워 브리지’와 거의 동일한 지점에 있었다. 심지어 선박이 통과할 수 있도록 다리가 위로 열리는 구조까지 같았다는 게 최근 영국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 밝혀졌다. 저자는 “고대 로마에서 런던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그 핵심지역이 오늘날 영국의 금융 중심지인 ‘런던 시티’와 일치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고 썼다. 이 책은 마치 미국 드라마 ‘로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불륜을 저지르며 주술사에게 남편의 죽음을 부탁하는 유부녀와 결혼지참금을 노리고 부유층 여성들에 접근하는 젊은 남자들, 창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그리스 상인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전 로마인들의 욕망과 일상의 삶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저자는 전작인 ‘고대 로마인의 24시간(까치)’에서처럼 이번에도 팩션(faction·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 기법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고고·역사학 기록을 행간에 풀어 넣었다. 특히 책 속 인물은 무덤이나 고대문헌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로 로마시대 문학작품을 근거로 줄거리를 재구성해 사실감을 높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로마를 출발해 영국, 프랑스, 독일, 이집트 등 로마제국의 광범한 속주를 누비며 당시 생활상을 고증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1만5000㎞에 달하는 이 긴 여정의 주체가 사람이 아닌 동전이라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원제목이 ‘한 닢 동전의 제국 여행기’인 이유다. 아피아 가도로 상징되는 로마의 우수한 도로망을 쉴 새 없이 오가며 2000년 전 ‘팍스 로마나’를 일궜던 건 다름 아닌 로마의 화폐였다. 마치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기반으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요즘과 비슷한 이치다. 이 책은 곳곳에서 로마의 사회상이 21세기와 별 차이가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여성의 사회적 권리에서 로마는 동시대 다른 지역의 추종을 불허했다.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에 이르면 여성들은 남성과 똑같이 이혼할 권리가 있었고 남편의 간섭 없이 재산을 처분할 수 있었다.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는 풍자 시집에서 “마치 몽둥이로 맞아 바닥으로 떨어진 뱀처럼 여자는 술을 마시고 토한다. 이런 추태에 남편은 진저리를 치며 눈을 찌푸리면서도 분노를 삭이려고 애를 쓴다”고 적었다. 세계제국을 꿈꾼 히틀러나 나폴레옹, 스탈린과 달리 로마가 수천 년을 영속할 수 있었던 저력을 무엇일까. 저자는 로마인들이 권력과 힘의 전략을 효율적이고 균형감 있게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힘이 있다고 마구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진되는 반면 권력은 잘 사용할 경우 빠르게 강화되며 비용도 적게 든다. 로마인들은 고대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지만 이를 외과 의사처럼 신중하게 사용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지금 일본 규슈국립박물관엘 가면 백제의 ‘칠지도(七支刀)’ 진품을 볼 수 있다.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1일부터 열린 ‘백제 특별전’에서다. 현재 일본 이소노가미(石上) 신궁이 칠지도를 소장하고 있는데 평소 진품을 전시하지 않아 일본 내에서도 이를 볼 기회가 드문 편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보물 제176호) 등 백제 문화재 50점가량이 출품돼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 지난주 백제 특별전 개막식에는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참석했으며 현지에서 한일 연구자들의 학술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현지 박물관 관계자는 “칠지도와 왕흥사지 사리기, 무령왕릉 출토 유물 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며 “당초 한국에서 건너오기로 한 ‘백제 금동대향로’까지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사실 양국 박물관은 수년 전부터 백제 특별전 개최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규슈에 이어 나라국립박물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순으로 대단위 순회 전시회를 열려고 했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의 상징성을 되새기는 데 백제와 왜의 문화 교류만 한 아이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600년 전 백제-왜의 관계에 비해 훨씬 후진적인 한일 관계가 발목을 잡았다. 규슈국립박물관에 이어 올 10월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에서 개최할 계획이던 백제 특별전이 결국 취소된 것이다. 백제 금동대향로를 비롯해 100점의 문화재도 대한해협을 건널 계획이었지만 결국 절반만 보내기로 했다. 쓰시마 섬 불상 도난으로 칠지도의 한국 반출이 힘들어진 게 결정적이었다는 박물관 측 설명이 있었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우경화 행보가 한몫한 게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한일 관계의 틈바구니 속에 국민은 백제의 1급 문화재를 감상할 소중한 기회를 잃은 셈이다. 일본 국민도 백제 금동대향로를 볼 수 없게 됐다. 다시 칠지도로 돌아가 보자. 근초고왕의 아들이 서기 369년 왜왕에게 선물로 건넨 칠지도는 단조 방식으로 일곱 개의 칼날을 구현해 낸 백제 공예품의 진수다.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는 칠지도는 그 자체로 한일 문화 교류의 상징이랄 만하다. 당시 백제는 칠지도뿐만 아니라 불교, 유교, 율령, 한자 등 고급문화의 정수를 왜에 전해 주고 군사 지원을 약속받았다. 단순한 문화 교류의 차원을 뛰어넘어 외교, 군사적 협력까지 이끌어 낸 것이다. 이런 역사의 교훈은 현재도 유효하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첨예한 정치, 외교적 갈등을 푸는 데는 문화적 접근이 최선”이라며 “예컨대 음식문화 교류전은 한일 간의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안보 위협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일본을 계속 외면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미국의 입김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그렇다면 양국 관계의 최후 보루로서 문화 교류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백제 특별전이 일본에서만 열리고 있는 현실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김상운 문화부 기자 sukim@donga.com}
평양 고구려 고분에 대한 첫 남북 공동발굴이 추진된다. 문화재청은 22일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평양 대성동 고구려 고분에 대해 처음으로 공동발굴을 추진하고 개성 만월대는 7차 공동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우리 정부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통해 고구려 고분 발굴조사를 처음 제안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2004년 남북 역사학자들이 세운 민간 학술단체다. 정부 당국자는 “고구려 고분 공동발굴에 대해 아직까지 북측에서 명확한 답변을 해오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긍정적”이라며 “올 하반기쯤 공동발굴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남북은 2007년부터 고려왕궁 터인 개성 만월대에 대한 공동발굴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와 함께 문화재청은 씨름과 금강산, 설악산에 대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및 세계문화유산 남북 공동 등재를 추진하기로 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우경화로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계 행사들이 잇따라 취소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 규슈국립박물관과 함께 10월 개최하려던 ‘한일 백제 특별전’을 취소했다. 당초 우리 측에서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 등 지정문화재 100점가량을 일본에 빌려주는 조건으로 일본으로부터 칠지도 등을 넘겨받아 순환전시를 할 계획이었다. 중앙박물관은 “쓰시마 불상 도난사태에 아베 정부의 우경화까지 겹쳐 애초 계획의 절반인 지정문화재 50점 정도만 일본에 보내고, 서울 전시는 아예 접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립민속박물관도 ‘한일 음식문화 교류 특별전’과 더불어 한일 우호관계의 상징인 ‘조선통신사 전시회’를 검토했지만 최근 분위기를 감안해 음식문화 교류전만 추진하기로 했다. 민속박물관은 “지금 상황에서 국교 정상화 기념행사를 두 개나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그동안 문화계는 올해 광복 7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할 행사들을 준비해 왔지만 양국 관계가 악화된 탓에 광복 70주년 기념 쪽으로 무게가 급속하게 쏠리고 있다. 학술단체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와 관련한 학술대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8월에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사’ 도록을 발간하고 관련 학술대회를 열 계획이다. 독도 문제 등 한일관계에 집중해 온 동북아역사재단도 국교 정상화보다 광복 70주년 학술행사에 더 집중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웠다. ▼ 중앙박물관 “日帝 역사왜곡 고발 보고서 낼것” ▼韓-日 행사 줄줄이 취소공연예술계도 최근 경색된 한일관계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무총리 소속의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6일 출범한 데 이어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예산을 지원하기 위해 국립극장 등으로부터 광복 70주년 기념 공연계획서를 제출받았다. 하지만 “한일 국교 정상화 기념 공연에는 예산이 따로 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체부 측의 설명이다. 국립극단은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그린 유치진의 ‘토막’과 김우진의 ‘이영녀’를 광복 70주년 기념작으로 무대에 올린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국교 정상화와 관련해 별도의 작품이나 행사를 기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올해 말 발간할 경주 금관총에 대한 재발굴 조사보고서에서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조목조목 비판하기로 했다. 이 연구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921년 시작된 금관총 발굴조사의 경우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 교토제국대 교수가 주도해 3권의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일본 학자들은 금관총과 일본 고대의 유물들이 서로 비슷하다며 일본이 신라를 복속시킨 적이 있다는 일본사기의 허황된 주장을 뒷받침해 왔다. 김영나 중앙박물관장은 “금관총은 일본 학자들이 부실하게 발굴한 만큼 우리 손으로 다시 발굴해서 제대로 된 보고서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양국 간 갈등으로 문화계에서도 한일 국교 정상화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남창희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국교 정상화의 의미를 경시하고 계속 갈등 국면으로 나가면 일본을 좀 더 우익으로 밀어내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며 “문화 교류를 통해 첨예한 정치, 외교적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김상운 sukim@donga.com·김정은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이 다음 달부터 2019년까지 금관총 등 경주의 신라 왕릉을 다시 발굴한다. 일제강점기 때 처음 발굴 조사한 신라 왕릉을 광복 70주년을 맞아 우리 손으로 직접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국립경주박물관과 손잡고 금관총을 발굴 조사해 제대로 된 조사보고서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관총의 경우 1921년 우연히 발견된 뒤 학자들이 오기 전에 일반인들이 유물을 대거 수습하는 바람에 부장품의 위치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박물관 관계자는 “당시 일본 학자들이 쓴 약식 보고서는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논리 위주로 작성돼 오류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이후 서봉총, 황남리 고분군, 금령총, 식리총 순으로 매년 한 개씩 왕릉을 재발굴한 뒤 보고서를 낸다. 김 관장은 “올해는 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서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라며 “이를 기념해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의 고대 불교조각 150여 점을 들여와 ‘고대불교조각대전’을 9월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때 국보 78호와 국보 83호로 지정된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을 동시에 전시하기로 했다. 현재 두 불상은 수장고와 전시장을 오가며 교차 전시되고 있는데 용산으로 옮긴 뒤 한꺼번에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김 관장이 올해 전시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르네상스 특별전’은 일단 무산됐다. 김 관장은 “최근 이탈리아의 정권 교체로 주요 박물관장들이 자리를 떠나면서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며 “올해와 내년은 힘들고 2017년 전시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다.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김 관장은 기자들을 데리고 박물관 3층에 있는 금속공예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최근 삼성전자의 후원을 받아 반사율을 크게 낮춘 특수유리를 설치해 놓았다. 김 관장은 “일반 유리보다 10배가량 비싸지만 전시물을 시각적인 장애 없이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며 “도쿄국립박물관도 모든 전시장에 이 특수유리를 썼다”고 설명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초기 철기시대 무덤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 등 청동 유물 19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단일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 유물 중 가장 많은 수다. 문화재청은 “충북 충주시 호암동에서 기원전 1∼2세기경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지나무널무덤(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 1기와 나무널무덤(木棺墓) 2기가 발굴됐다”고 19일 밝혔다. 돌무지나무널무덤은 땅을 파서 통나무 목관을 안치한 뒤 주변을 돌로 채운 것이다. 나무널무덤은 돌을 덮지 않고 목관만 매장한 것이다. 돌무지나무널무덤에서는 세형동검 7점과 가는줄무늬청동거울(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1점, 나무자루를 끼우는 청동 투겁창(동모·銅모) 3점, 나무자루를 묶어 연결하는 청동 꺾창(동과·銅戈) 1점, 청동 도끼(동부·銅斧) 1점 등이 나왔다. 이은석 문화재청 연구관은 “도굴된 적이 없는 ‘처녀분’인 데다 보존 상태도 좋아 초기 철기시대의 무덤 조성 방식 파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은 전국체전을 유치한 충주시가 종합스포츠타운을 건설하기 위해 시행한 조사에서 이뤄졌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코카콜라가 지구상에서 아직 진출하지 못한 나라는 북한과 쿠바뿐이다. 과거 냉전이 한창이었을 때에는 중국과 동유럽 등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에서 코카콜라 판매를 금지했다. 코카콜라를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음식이 단순히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반원(反元) 개혁 정치를 내건 고려 말 공민왕은 변발과 몽골 옷뿐만 아니라 몽골 음식을 먹는 것까지 금했다. 음식은 이처럼 생물학적 행위에만 그치지 않는 한 시대 사회문화의 결정체다. 이 책은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거대한 중국사를 훑는 미시사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 저자가 1970년대 문화혁명 당시 중국의 음식문화를 직접 체험한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고도자본주의 사회의 세례를 흠뻑 받은 일본인이 극좌의 사상 투쟁에 내몰린 전체주의 사회를 음식을 통해 해부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혁명 당시 중국 식당가는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방불케 했다. 저자는 감시원 몰래 주민 자치조직이 운영하는 ‘거민식당’을 찾아갔을 때의 기막힌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손님들이 식당 전면에 걸린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향해 마오쩌둥 어록을 복창하고 자리에 앉으면 묽은 국과 만터우(饅頭·찐빵), 러차이(熱菜·즉석에서 데워 먹는 요리)가 고작인 단출한 음식이 제공됐다. 요리 평론가인 저자는 거민식당 음식을 맛보고 “혀를 도려내는 것처럼 초라하고 빈곤한 맛에 나는 남몰래 ‘문화혁명의 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썼다. 황당한 것은 그 맛없는 식당을 중국인들이 경쟁적으로 찾아갔다는 것이다. 초라한 음식을 먹는 게 부르주아적 구태에서 벗어난 혁명적 행동으로 칭송됐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민식당에 수시로 가지 않으면 홍위병들에게 반동으로 낙인찍혀 수모를 당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요지경 세상이 따로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 대목에서 당시 중국 사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군 간부들이 초대한 고급 음식점에서의 경험이 그것이다. 거민식당과 비교할 수도 없는 산해진미 속에서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湖南) 성 요리 차오터우취안쯔(草頭圈子·삶은 송아지 대창)가 접시에 담겨 나올 때였다. 간부들은 마오쩌둥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로 전원이 기립해 그의 건강을 기원하며 건배했다. 저자는 “건배는 왠지 몰라도 건성이었고 그 전에 나온 요리 ‘라오후페이샹(老虎飛翔·흰살 생선을 갈아 빚은 경단 조림)’을 앞에 뒀을 때 술잔이 더 떠들썩하게 오고 간 게 인상적이었다”고 적었다. 역사는 진보와 퇴보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오히려 중국 요리의 최전성기는 청나라 시절이었다. 중원을 놓고 수많은 민족이 자웅을 겨룬 중국사에서 청의 개방성은 중국 요리의 다양성을 가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청나라 황실 요리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한족과 만주족 요리사들이 서로 솜씨를 뽐내며 개발한 총 108가지의 화려한 음식이 만한전석을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 저자는 만한전석을 통해 한족 등 이민족을 국정 파트너로 받아들인 청나라의 통치철학을 조명한다. 예컨대 재상 격인 군기대신(軍機大臣) 아래 만주어 문서를 담당하는 만장경(滿章京)과 한족 문서를 담당하는 한장경(漢章京)을 둬 자연스러운 민족 간 융합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덩샤오핑 집권 이후 1984년부터 민간의 음식점 설립이 허용되면서 ‘문화혁명의 맛’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의 중국 음식이 진정 부활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제 순수한 만주족의 맛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한족도 마찬가지다. 베이징의 맛이 점점 더 케케묵은 맛으로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내가 이르기를 ‘경들이 나의 본래 체질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나는 본래 성질이 따뜻한 약을 먹지 못한다. (중략) 평소에도 경옥고(瓊玉膏)를 한번 먹고 나면 5, 6일 동안은 음식을 먹지 못했다. 생맥산(生脈散)이 어쩌면 경옥고보다 낫지 않겠는가?’ 하니 이시수가 ‘그러하시다면 생맥산을 지어 들이는 것도 좋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나는 ‘(몸이 아파) 서로 대화하기도 어렵다. 경옥고를 먹을지 생맥산을 먹을지 하교를 기다리라’고 말했다.” (1800년 양력 8월 16일) 정조는 신하들과 이 대화를 나누고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그해 8월 중순부터 종기를 심하게 앓은 정조는 며칠째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 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먹을 약제를 의원들과 일일이 토론했다. 정조는 몸에 열이 많은 자신의 체질을 감안해 인삼이 들어가는 경옥고 사용을 꺼렸다. 유학 경전은 물론 한의학에도 능통했던 ‘학자 군주’ 정조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16년 만에 ‘일성록(日省錄·사진)’의 정조 재위 기록에 대한 번역을 최근 마쳤다. 이 시기의 기록은 일성록 전체 분량의 40%를 차지한다.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국가기록물 중 하나다. 정조는 왕의 사후에나 공개되는 실록과 달리 국정 진행 상황을 곧바로 파악하고 반성할 목적으로 세손 시절이던 1752년(영조 28년) 일성록을 만들었다. 이후 일성록은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년까지 158년에 걸쳐 꾸준히 기록됐다. 정조의 마지막 사흘이 담긴 고전번역원의 일성록 국역본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정조는 마지막까지 병상에서 업무보고를 챙기며 국정에 매진했다. 서거 하루 전인 1800년 8월 17일 그는 “도목정사(都目政事·정기 인사)가 임박했는데 정관(政官)의 일이 딱하게 되었다. 민사(民事)에 관련된 일이 있으면 비록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도 낱낱이 내게 물어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민본 행정을 최우선시한 정조의 국정 철학이 읽힌다. 일성록은 왕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됐다는 점에서 사관이나 승지가 쓴 실록, 승정원일기에 비해 왕의 통치 철학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 승정원을 거치지 않는 지방관의 장계(狀啓·보고서)나 암행어사의 서계(書啓) 전문을 수록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내용도 실록에 비해 훨씬 자세하다. 예컨대 정조 때 흉년을 맞아 전국에서 진휼(식량 구호 제도)을 실시한 것과 관련해 일성록은 곡식을 지역별로 얼마나 배포했는지는 물론이고 고을마다 굶주린 사람이 몇 명이었으며 재원은 누가 마련했는지 등을 세세하게 적고 있다. 반면 실록이나 승정원일기는 소요된 재원 등만 요약된 수치로 제시하고 있다. 일성록 번역은 고전번역원이 촉탁한 외부 번역위원 11명과 직원 2명이 이뤄 낸 성과다. 이 중 1년에 원고지 3600장 분량의 살인적인 번역 작업을 감당한 김성재 번역위원(58)은 2004년부터 일성록 번역에 매달렸다. 그는 ‘이날 유시(酉時·오후 5∼7시)에 상(정조)이 창경궁 영춘헌에서 승하하였다’는 15자의 원문 번역을 마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 컴퓨터 앞을 잠시 떠나 있어야만 했다.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초 종기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종기로 숨을 거둔 정조를 내내 떠올렸다고 했다. 김 위원이 10년을 마주한 인간 정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굉장히 명민하면서도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 사도세자와 관련된 국면에서 감정 기복이 특히 심했다. 김 위원은 “어렸을 적 아버지의 충격적인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 같다”며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오회연교(五晦筵敎·오월 그믐 경연장에서 지시) 때 작심하고 신하들에게 장광설을 늘어놓은 것도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감정 때문이었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지난해 5월 16일 세월호에서 한 달 만에 딸이 발견됐다. 아버지는 딸과 함께 헬리콥터를 타면서 많이 울었다. 200번째 시신부터는 훼손이 심해 수습에 앰뷸런스 대신 헬기가 동원됐다. “미지가 나하고 농담을 잘해. 생전에 나랑 팔짱 끼고 드러누워서 ‘아빠, 이 다음에 내가 아빠 비행기 태워 줄게’ 했어. 그 말 많이 하잖아,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고. 헬리콥터로 올라오는 동안 내내 관 옆에서 울었어. 와, 이 자식이 죽으면서까지도 약속을 지키려고 그랬을까.” 세월호 유가족들의 육성을 담은 신간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사진)에 나오는 대목이다. 제목의 ‘금요일’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로 한 날을 뜻한다. 자식을 되찾고 싶은 부모들의 간절한 심정이 담긴 책이다. “딸과의 좋은 추억만을 안고 사시라”며 시신을 안 보는 것이 낫다는 검안의의 설득을 받아들인 아버지가 “아무리 험해도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게 나을 뻔했다”며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는 장면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공황장애로 집안에서만 생활하던 희생자의 어머니가 진상규명을 위해 아이 이름을 부르며 광화문광장에 가까스로 발을 내디디는 일화도 소개됐다. 안산에 거주하는 김순천 작가는 지난해 4월 16일 진도행 버스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부모들을 우연히 목격했다. 당시만 해도 전원 생존이라는 오보가 언론에서 흘러나올 때였다. 이후 대형 참사로 밝혀지자 그는 지체 없이 다큐멘터리 감독과 작가 등을 불러 모아 현장으로 달려갔다. 김 작가는 13일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고통스러운 분들을 도와드려야 하는데 제가 할 줄 아는 게 글쓰기밖에는 없었다”며 “유가족 한 분을 인터뷰하고 나면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작가들도 하루이틀은 드러눕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장에는 고(故)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씨도 참석했다. 정 씨는 “아이 시신을 본 그날부터,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숨을 제대로 못 쉬어서 가끔 응급실에 가곤 한다”며 “진실을 밝힌 뒤 죽어서 내 새끼를 실컷 끌어안아 주고 싶다”고 했다. 출판사 측은 책 수익금 전액을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공익활동에 기부할 예정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수학자 존 내시는 미소 냉전의 ‘인간병기’로 동원된다. ‘내시 균형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에게 정부가 소련군 암호 해독 프로젝트를 맡긴 것. 사물의 일상적인 움직임에서 물리, 수학 규칙을 찾아내는 그의 순수 학문이 군사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내시뿐만 아니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앨런 튜링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무기 개발에 투입됐다. 과학 입문서를 주로 써온 저자는 이 책에서 물리학 관점에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무기기술의 혁신을 개괄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 들어 중요한 과학적 성과들이 대부분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등장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최초의 제트엔진 항공기를 비롯해 레이더, 로켓, 컴퓨터 등이 모두 2차 대전 중에 개발된 것이다. 2차 대전은 물리학 등의 연구방식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수많은 연구인력이 한꺼번에 동원돼 집단과제를 수행하는 이른바 ‘거대과학(big science)’이 이때 태동했다. 나치 독일에 맞서 핵무기 개발을 목표로 출범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전쟁과 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무기의 살상력을 높이기 위한 과학연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예컨대 13세기 말 중국인들은 파죽지세로 중원을 위협하는 몽골을 막아내기 위해 화약 연구에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이 때문에 1280년에는 실험 중 대형 화약고가 폭발해 100여 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만들어진 화약의 폭발력이 워낙 강력해 폭발 잔해가 3km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기초물리학 이론이 전쟁무기에 어떻게 쓰였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그렇지만 전쟁을 위한 과학의 복무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아인슈타인이 생전에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지독하게 싫어했다는 얘기 정도가 그나마 위안이 될까.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6일 공동 주최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심포지엄에서는 공공성 붕괴의 원인과 대안을 놓고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특히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큰 정부가 필요한지, 민간 자율성을 확대해야 할지 등에 관한 견해차가 첨예했다. 동아일보는 공공성 확립을 위한 5대 제언을 정리해 사회적 논의와 실천의 토대로 삼기로 했다.》 선진국의 문턱에 선 대한민국을 더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만드는 ‘공공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의 위법행위나 특정 집단의 ‘떼법’에 대해 엄정하고 공정한 법집행이 확립돼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비효율적인 정부와 정치의 역할을 재검토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도 쏟아졌다.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6일 고려대 경영관에서 공동 주최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첫 회 심포지엄에서는 이와 함께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책임)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시민윤리 확산을 위한 교육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 기조강연… 성숙한 시민사회 향한 공공의 철학 ▼황경식 서울대 명예교수이기심, 도덕심으로 대체 못해… 생활속에서 ‘공덕심’ 체득해야오늘날 한국사회는 오랜 세월 길들여져 온 ‘우리’라는 이데올로기에서 갓 깨어난 개인들이 저마다 권리와 이익을 내세우며 서로 협상·조정하는 합리적 대화에 서툰 원색적 이기주의(primitive egoism)의 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전통사회가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개인의 원초적 이기심을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합리적 이기주의자들의 신사협정으로 만든 것이 법체계이고 시민윤리다. 이기심을 억압하거나 전통적 도덕심으로 대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각자가 주장하는 이익이 상충하며 갈등하는 가운데 조정의 원리를 찾아내고 이것이 새로운 윤리의 바탕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위험사회인 것은 위험요인이 있는 곳곳에 우리를 지켜줄 매뉴얼이 갖추어져 있지 못하고, 매뉴얼이 있어도 상황에 특유한 디테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공부가 그러하듯 시민의식이나 시민윤리도 하루아침에 체화되기 어렵다. 아직 우리는 근세 시민사회적 학습에서 학(學)의 단계에 있을 뿐 오랜 습(習)을 통해 생활화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상황과 관련된 케이스를 발굴하고 갖가지 갈등상황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구체적 연습을 통해 공덕심(公德心)을 체득해야 한다. ▼ 제1주제… 한국의 정치·사회에서의 공공성 ▼임혁백 고려대 교수이념적 갈등으로 공동체 분열… 시민참여 활성화로 아픔 치유를정부와 시민사회는 모두 세월호 참사 처리를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데 실패했다. 정부는 책임성 공정성 공개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일부 시민사회는 이념적으로 대응하여 정부를 정치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아픔의 치유를 통해 공동체를 회복하기보다는 분열을 심화시켰다. 한국의 역사에도 공공성의 정치 사회적 전통이 존재했다. 조선 초기 의정부의 합의제적 국정 심의와 국왕-학자관료 사이의 경연제도, 언관제도 등에 의한 중앙정부의 공론정치와 지방의 재야유학자 집단에 의한 유교적 시민사회, 민중적 노동공동체인 두레가 그것이다. 광복 이후 분단과 전쟁으로 다원주의적 공론의 장이 막힌 가운데서도 농지 분배, 보편적 교육 실시 같은 공공성이 풍부한 공공 영역이 발전해 4월 혁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가능케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자유의 확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의 진전, 시민 참여의 제고 등으로 정치 사회의 공공성은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유교적 가산주의(家産主義)’의 부활로 공공 영역이 사유화되고 동료시민들과의 정치적 소통이 어려워짐으로써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하는 파당화가 심화돼 공공성을 실종시키고 있다. 시민참여적 공론의 장을 부활시키고 시장경제와 정치에서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다. ▼ 제2주제… 공인의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 직업윤리 없인 독단주의 빠져… 정신적 품격 갖출 시민교육을장인정신과 직업윤리야말로 공공성 형성의 기반이다. 탁월한 장인정신 없이 창조적이고 정교한 생산품은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러한 덕목의 바탕 없이 건전한 직업윤리가 작동할 수 없고 건전한 공인의식이 발현될 수 없다. 자신만의 성실하고 진지한 장인정신이나 직업윤리가 없으면서 외면적으로 내세우는 공인의식이나 정치이념은 특정한 정치집단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한 사람들은 교조적인 정치운동의 행동대원으로 전락하기 쉽다. 한국사회의 종북주의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독단적 이념이나 신앙에 집착하는 행동을 공공성의 실현으로 믿을 때 전체주의 정당이나 광신적 종교집단이 출현한다. 지식인들부터 지적(知的) 권위와 함께 공인으로서의 사명의식과 정신적 품격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사회지도층에 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출발이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교양시민문화의 형성을 근원적이고 장기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초중등 교육이라는 시민교육이며, 그러한 시민교육을 주도할 의무와 책임은 대학에 있다. 한국의 시민교육 및 대학교육이 그러한 공적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교양 형성의 원천인 토론문화 및 독서문화가 사회 전체 차원에서 활성화돼야 한다. ▼ 제3주제… 시민정신과 공화(共和)사회 ▼윤평중 한신대 교수 시민적 삶 체험기간 짧은 한국… 구성원 의리보다 규범 앞세워야1000년 이전부터 상업활동을 기반으로 자유와 인권을 쟁취해가면서 법치주의와 시민정신의 탑을 쌓아온 유럽과 반세기 미만의 시민적 삶을 체험한 한반도의 현실은 다르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슈퍼 갑질도 시민정신의 축적과정을 생략한 정신사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외형적 성과를 거뒀음에도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적으로 양극화돼 있고 사회정치적으로 찢겨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종합처방전이 공화사회다. ‘더불어 조화롭게’의 미명 아래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것이 공화사회의 필수조건이다. 시민들 스스로 정당한 것으로 동의한 법질서 속에서 누리는 책임 있는 자유가 공화사회의 진면목이다. 민주적 리더십과 주체적 팔로어십(followership)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질 때 공화사회가 가까워진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80%에 이르는 시민이 한국사회가 불공정사회라고 답하고 있으나 보수정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가족주의 집단주의는 집단이익이나 구성원들 사이의 결속감과 의리를 사회 전체의 합리적 규범이나 법질서보다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 종합토론… 전통사회에 공론의 場 있었나 ▼“신라 화백회의 전통 이어가야” vs “지배층에 한정… 폐쇄성 넘어서야” 이날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우리 전통사회에 공론(公論)의 장을 통한 공공성이 과연 존재했느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우리 사회의 공공성 실패를 제대로 조명하려면 역사적 연원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신라의 화백회의(和白會議)와 백제 정사암(政事巖) 회의, 고구려의 제가평의(諸加評議) 등을 언급하며 조선 초·중기까지 우리 전통사회에도 서양 못지않은 공론의 장이 있었음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역사를 돌이켜 무너진 공공성의 전통을 다시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서양사학을 전공한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이를 반박했다. 우리 전통사회의 공론장은 서양의 것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영국의 과거 ‘커피하우스’에서 볼 수 있듯 서구의 공론장은 지위가 낮은 필부들도 모여 공공성을 논의한 것”이라며 지배층에 한정된 전통사회의 공론장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리 것만 너무 고집하지 말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사회를 본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한국의 경우 국가가 독점해온 공공성이 사회로 넘어가는 시기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늦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송 교수는 “한국은 공(公)의 개념을 오랫동안 국가에 헌납해왔다”며 “지금 당장 밖에 나가 사람들에게 공공성의 주체가 바로 당신이라고 얘기하면 그걸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과거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참석자가 변화·혁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험담을 내놓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행정학)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를 왜 하는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계속 자문했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며 “시간은 짧고 마음은 조급하다 보니 부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두 번째 심포지엄은 20일 오전 10시 고려대 경영대 LG-POSCO관에서 열립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한국사회가 국가와 시민사회 전반에 걸쳐 공공성의 가치를 확립하지 못하면 제2의 도약을 이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사적(私的) 이익과 집단이기주의가 공공성의 기반을 질식시키는 공적(公的) 가치의 부재현상을 탈피하기 위한 제도·문화적 혁신이 시급한 것으로 진단됐다.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공동 주최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심포지엄에서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세월호 참사를 처리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일부 시민사회는 아픔의 치유를 통해 공동체를 회복하기보다는 참사를 정치적, 이념적으로 활용하며 공동체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불공정한 사회구조가 대중의 불만과 극심한 사회갈등, 스트레스를 야기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복무와 승복을 가로막는 사회적 분노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정의롭지 못한 정치와 극심한 양극화, 불공정한 경제사회적 관행이 21세기 한국사회를 분노와 스트레스, 울분, 혈기의 분출이 가득한 거대 ‘울혈(鬱血)사회’로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울혈사회에서 대중은 모든 사회문제를 정치권 등 남의 탓으로 돌리는 책임회피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도 “정치집단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이를 무기로 삼아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는 ‘분노 장사’에 몰입하고 있다”며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숙의(熟議)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는 “진지한 장인정신과 직업윤리 없이 내세우는 공인의식이나 정치이념은 특정집단의 이데올로기에 그칠 수 있으며 사람을 교조적 정치운동의 행동대원으로 내몰기 쉽다”면서 그 예로 종북주의를 들었다.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공공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참석자들은 교육을 통한 시민윤리 확립과 함께 법의 공정한 집행과 제도개혁을 강조했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정치와 경제, 문화에서 공공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개혁과 문화혁신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평중 교수는 “정치를 비롯한 공직에 너무나 많은 희소자원이 집중된 현실을 타개하고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이 시민적 팔로어십과 수평적으로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공화(共和)사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훈 인촌기념회 이사장은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각종 사건사고는 우리에게 누적돼온 부작용의 압축된 적폐를 시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져주었다”고 말했다. 김병철 고려대 총장은 “인촌 김성수 선생의 공선사후(公先私後), 신의일관(信義一貫)의 정신은 선진화된 국가 건설을 위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공적 가치”라고 밝혔다.(상보는 8일자 2개 면에 보도 예정입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광복 직전 이승만 전 대통령(1875∼1965·사진)이 미국인 후원자들과 함께 무장투쟁을 추진한 증거가 발견됐다. 이 전 대통령은 외교독립론을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무장 독립운동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관련 해외 서지자료를 수집하는 윤형원 아트뱅크 대표는 “세브란스 병원 창립자이자 고종의 어의였던 올리버 애비슨 박사(1860∼1956)가 1944년 1월 한국기독친우회(the Christian Friends of Korea) 회원들에게 보낸 영문 편지를 최근 입수했다”고 4일 밝혔다. 한국기독친우회는 이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애비슨 박사가 설립한 미국의 한국 독립 후원단체. 애비슨은 캐나다 출신 선교사 겸 의사로 이 전 대통령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청년 이승만이 개화 지식인으로 거듭날 때 애비슨 박사가 그의 상투를 손수 잘라준 일이 유명하다. 애비슨 박사의 편지는 B5 용지 2배 크기의 종이에 영문으로 타이핑을 하고 끝에 자필서명을 남겼다. 그는 편지에서 “우리가 추구해온 한국의 독립이 절반가량 이뤄졌지만 좀더 노력해야 할 사항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의 즉각적인 독립과 더불어 한국이 유엔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며 “이는 한국인 군대가 조직돼 중국과 만주, 한국, 일본 본토에서 연합군과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울 때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이 즉각적인 독립을 쟁취하려면 승전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애비슨 박사는 편지 말미에 “과업을 수행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을 감안해 성의껏 기부해 달라”며 회원들에게 군자금 모집을 요청했다. 학계에서는 애비슨의 편지가 이 전 대통령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애비슨이 편지를 쓸 무렵 이 전 대통령은 미군 전략정보처(OSS)와 함께 한인 청년들의 후방 침투작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무장 독립운동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일본의 패전이 가시화되자 새로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신라, 왜(倭)에 선진 문화를 전파한 고대 동아시아의 베네치아. 중국과 고구려 등 강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700여 년간 역사를 꽃피운 문화국가. 당대 중국인은 물론이고 적국 고구려인까지 과감하게 중앙관료로 등용한 개방국가. 바로 백제 이야기다. 최근 백제가 긴 잠에서 깨어나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백제 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마쳤다. 최종 등재 여부는 올 6월쯤 결론이 난다. 특히 최근 극도로 경색된 한일 관계와 맞물려 고대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백제의 외교 역량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동아일보는 백제 역사 연구의 권위자로 ‘공유문화권’ 관점에서 백제를 해석해 주목받고 있는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66)를 인터뷰했다. 노 교수는 앞으로 매주 월요일 백제사의 최근 연구 성과와 현대적 의미를 담은 ‘소프트 파워 강국 백제의 비밀’ 시리즈를 본보에 기고할 예정이다.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교편을 잡고 백제사를 전공했는데…. “내가 역사 연구를 시작한 1970년대만 해도 대구경북 출신이 백제 역사를 전공한 사례가 드물었고 연구 성과도 빈약했다. 그런데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무령왕릉이 도굴된 적 없는 ‘처녀분’으로 발견되면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거다 싶었다. 백제사 연구에 매진해 1977년 백제의 웅진 천도를 주제로 쓴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 백제사를 다시 돌이켜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시 동아시아는 전체적으로 분열과 갈등의 시기였다. 한반도는 삼국으로 나뉘어 있었고, 중국도 5호16국에 이어 남북조로 갈려 있었으며, 왜도 통일왕국을 이루기 전의 호족 연합정권이었다. 백제는 고구려와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살아남기 위해 주변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외교전에 사활을 걸었다. 요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 벼랑 끝 전술로 버티는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의 상황을 감안할 때 백제의 외교 전략을 한번 눈여겨볼 만하다.” ―백제 외교력의 비결은 무엇인가. “바로 문화의 힘, 소프트 파워다. 백제는 자국의 선진문화를 주변국에 적극 전파하고 상대국으로부터 군사, 외교적 지원을 약속 받았다. 문화를 외교수단으로 십분 활용한 것이다. 백제는 불교와 도교, 율령, 한자 등 선진문명을 신라와 왜에 전달해 동아시아에서 ‘공유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대 일본이 백제와 깊은 교류를 맺은 원인은…. “왜는 삼국 중 백제에 가장 우호적이었다. 백제의 문화적 매력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왜의 사신이 방문했을 때 백제는 다른 나라와 달리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지 않고 조용히 궁전의 보물창고를 열어 보여줬다. 함부로 힘을 과시하지 않고 높은 문화역량을 직접 느끼도록 한 것이다. 왜 입장에서는 군사적인 위험부담 없이 백제와 깊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백제와 왜 사이의 이 같은 문화 교류의 정점이 일본 왕실이 보유한 ‘칠지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앞으로 시리즈를 통해 그려낼 백제의 모습은…. “칠지도 백제금동대향로 금동관 등 유물에 담긴 의미와 무령왕의 저수지 건설 등 토목 및 건축 기술의 발달, 유연하고도 실용적인 인재 등용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백제의 소프트 파워의 진수를 보여주겠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국 좌파 정당에 과연 미래가 있는가. 최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진보 진영에서 제기되고 있는 최대 화두다. 이 책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당의 퇴조를 분석하면서 한국 좌파들의 현실까지 함께 다뤘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있다. 한마디로 전 세계 좌파들이 쓴 냉철한 자기고백 내지 반성문이다. 중도 좌파 성향의 프랑스 최고 권위지인 르몽드가 격월로 펴내는 단행본(마니에르 드 부아)을 뼈대로 한국 진보 계열 지식인들의 글을 추가했다.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 이탈리아 한국 등의 좌파 지식인 33명이 각국의 좌파 지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들이 말하는 유럽 좌파 정당의 최대 문제는 바로 원칙과 일관성의 결여다.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정권을 잡기 위해 좌파로서의 일관된 정책을 포기하다 보니 정체성을 잃고 지지층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실리와 명분을 모두 잃은 셈이다. 예컨대 프랑스 사회당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1981년 집권한 이후 다시 정권을 잡기까지 무려 17년이 걸렸다. 미테랑은 집권 초기 기간산업 국유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경제 시스템에 충격만 안긴 채 불과 1년 만에 손을 들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유럽연합(EU)의 부상이라는 현실적인 난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1990년대 중반 유럽 정치권을 휩쓴 좌파 정당들이 도리어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있다. 당시 EU 소속 15개국 중 12개국에서 좌파 혹은 좌파연합 정권이 들어섰다. 이 가운데 ‘제3의 길’로 주목받은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공교육마저 시장의 손에 맡기는 정책까지 도입했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2002년 제정한 교육법에서 감사 당국이 ‘비효율적’이라고 판정한 학교들에 대한 관리를 경쟁 입찰을 거친 민간기관이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역시 신자유주의에 발맞춰 노동유연성을 추진했다. 유럽 좌파 정당들의 갈지자 행보는 국내 좌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오직 표를 얻기 위해 서로 색깔이 다른 진보세력들이 연합해 통진당을 세우고 제1야당과 ‘야권연대’를 조직했다. 이 책에선 “통진당은 창당을 추진하던 때부터 급조된 선거정당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야권연대라는 정치적 기회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술 정당일 뿐이었다”고 지적한다. 좌파 정당 내부의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도 발목을 잡았다. 예컨대 1980년대 프랑스 사회당은 미테랑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을 중심으로 정책이 수립되면서 내부 분열을 가져왔다. 통진당이 소수의 당권파에 의해 장악된 것을 연상시킨다. 이 책은 결국 정치적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고 좌파 특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말한다. 극심한 경제 양극화로 인한 지금의 위기가 좌파들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으로 분단된 데다 진정한 의미의 좌파가 한 번도 집권하지 못한 한국에서 좌파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또 하나의 난관일 수밖에 없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양이 평화를 상징하기 때문일까. 수많은 외침을 겪은 우리 역사에서 양의 해는 평화와 관련이 깊었다. 1607년 정미년(丁未年)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단절된 일본과 국교를 전격 회복하고 통신사를 파견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년이 흐른 뒤였다. 이후 조선은 1811년까지 12번에 걸쳐 통신사를 일본에 보내 대대적인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근대화된 일본이 침략에 나서기 전까지 250년 동안 양국은 평화를 지속할 수 있었다.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다. 1965년 극심한 반대 여론을 뚫고 정부는 일본 측과 한일 청구권 협정을 맺어 국교를 정상화했다. 일본의 침략을 받고 나서 양국이 관계 회복의 첫걸음을 뗀 시기가 모두 양의 해였던 셈이다. 양은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지만 일단 성이 나면 누구도 말리기 힘들다고 했던가. 기미년(己未年)이던 1919년 한민족은 일제에 대한 의분을 3·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으로 분출했다. 앞서 같은 기미년인 1019년에는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이 거란의 대대적인 침략에 맞서 대승을 거둔 ‘귀주대첩’이 있었다. 종교적으로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지는 양의 해를 반영하듯 527년 정미년에는 이차돈의 순교에 힘입어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됐다. 이어 647년 정미년에는 천문대 혹은 종교적 제의시설로 추정되는 첨성대가 우뚝 섰다. 역사에 명암이 있듯 양의 해에는 민족사적 비극도 있었다. 1895년 을미년(乙未年)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주도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이후 한반도는 러시아까지 가세해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돌궐과 티베트에서 파견된 사신들을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두 사신의 눈초리가 매섭다. 가는 눈매에 두 가닥의 새털로 된 ‘조우관(鳥羽冠)’을 머리에 쓴 모습이 왠지 친근하다. 여기에 둥근 손잡이의 칼 ‘환두대도(環頭大刀)’를 허리에 찼다. 이들은 7세기 중반 동아시아의 강국이던 고구려의 사신들. 무려 5000여 km 떨어진 실크로드 한복판의 사마르칸트에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아브 궁전 서쪽 벽화의 모사 복원도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에서 23일 공개했다. 현재 사마르칸트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벽화는 7세기 당시 이 지역 소그디아 왕국의 바르후만 왕이 서기 650년경 궁전 안에 그린 것이다. 아프라시아브 궁전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채 오랜 기간 땅속에 묻혀 있다가 구소련 시절이던 1965년 발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09년 아프라시아브 벽화에 대한 종이 모사도를 들여와 국내에서 전시한 적은 있지만 원형 복원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황토로 지은 벽체 위에 그림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벽화의 느낌을 충분히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벽화 속 고구려 사신들의 모습은 표정부터 옷 주름까지 세세하게 복원돼 눈길을 끈다. 지난해 사마르칸트에 파견된 연구팀이 초고해상도 디지털카메라로 벽화를 찍은 뒤 현미경으로 그림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윤곽선의 흔적을 찾아냈다. 현장에서 작업을 진행한 임권웅 중앙문화유산보존센터 원장은 “훼손이 특히 심한 고구려 사신 그림을 재현하기 위해 현미경으로 안료 색상과 붓 터치 등을 세밀하게 고증했다”고 설명했다. 서용 동덕여대 교수는 “1960년대 당시 구소련 연구팀은 서구적 얼굴로 고구려 사신들을 모사하는 오류를 범했다”며 “벽화 속에서 동양적 얼굴 윤곽선을 찾아내 고구려 사신들을 그릴 때 참고했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입산을 앞둔 ‘어인마니’(우두머리 심마니)는 집 문 앞에 금줄을 하나 치고 황토를 두 줄로 깔아서 부정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다른 심마니들도 목욕재계를 하고 부부관계도 피했다. 이때는 월경하는 여자가 지은 밥도 입에 일절 대지 않았다.” 1970년대 한 심마니의 증언이다. 예부터 심마니들은 산삼은 산신이 점지해준다고 믿어 금기를 지켰다. 하지만 요즘 심마니들에게 입산 전 금기사항은 잊혀진 지 오래다. 우승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발표한 ‘심마니 습속의 변화 양상’ 논문에서 강원 원주시 치악산에서 26년간 심마니로 활동한 우모 씨 등을 인터뷰해 요즘 심마니의 모습을 담았다. 이 논문에 따르면 심마니들의 변천사는 물질문명과 개인주의라는 시대적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예컨대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던 예전에는 심마니들이 보통 한 달간 산에 머물며 집단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차량을 이용해 산 접근이 쉬워진 요즘 심마니들은 길어야 일주일 동안만 산속 생활을 한다. 연장자인 어인마니를 중심으로 중간어인(2인자), 정재(취사 담당자), 소댕이(산삼 채취 경험이 없는 심마니), 염적마니(나이가 가장 어린 심마니) 등 여러 명이 뭉쳐 돌아다니던 심마니 조직도 훨씬 단출해졌다. 차 한 대로 모두 이동할 수 있도록 3명 내외로 구성되거나 아예 혼자 다니기도 한다. 또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심마니들은 눈앞에 값나가는 약초가 있어도 일부러 캐지 않았다. 산삼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삼을 캘 때도 약효를 위해 쇠붙이를 쓰지 않고 맨손으로 땅을 팠다. 그러나 요즘 심마니들은 약초도 캐고 삼을 캘 때 연장 사용도 주저하지 않는다. 우 학예연구사는 “노동요로 곧잘 불리던 ‘심마니 노래’도 전승이 거의 끊긴 상황”이라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올해 우리네 삶은 더 팍팍해진 걸까. 동아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책 목록에선 자본주의의 폐해와 소득 양극화, 소통의 문제 등을 파헤친 묵직한 책들이 대거 선정됐다. 대표적인 예가 ‘21세기 자본’이다. 증세 논란과 맞물려 집권여당 대표가 이 책을 언급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화제가 됐다. 함께 선정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나 ‘세상 물정의 사회학’도 현 자본주의 방식에 대한 비판이 담긴 책들이다. 또 ‘단속사회’와 ‘소년이 온다’에서는 소통 부재와 역사의 단절이라는 한국 사회의 병폐가 도마에 올랐다. 그 대신 문학은 퇴조했다. 지난해엔 올해의 책 10권 중 4권을 소설이 차지했으나 올해는 2권이었다. 올해의 책은 출판계와 학계 전문가 31명에게 5∼10권의 책을 추천받아 선정했다. 》21세기 자본 올해의 책 중에 가장 파급력이 컸던 책이라 할 만하다. 자본 수익률 증가 속도가 노동 수익률 증가보다 빨라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올 초 세계적 붐을 일으켰다. 9월 한국어판 출간과 저자의 방한을 전후로 책 내용에 대해 학자들 간에 논쟁이 불붙기도 했다. 피케티 논쟁을 정리한 책(피케티 패닉)도 나왔다 또 ‘자본’ ‘마르크스’ 등 관련 도서가 잇달아 출간돼 88만 원 세대, 하우스푸어, 양극화 심화와 같은 현실이 이 책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이중섭 평전 미술평론가·미술사학자인 저자는 문헌 기록 150여 종을 망라해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의 실체를 그렸다. 어떨 때는 과대평가됐다고 하다가 어떨 때는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양극단에서 벗어나 ‘이중섭의 거의 모든 것’을 충실히 담았다. 20세기 걸작으로 꼽히는 ‘소’ 시리즈를 남겼지만 가난과 외로움에 찌든 유랑 생활 끝에 마흔 나이에 무연고자로 요절한 극적인 삶이 시리게 다가온다. 이중섭의 생애별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자본주의의 병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본 시골빵집 주인의 이야기다. 일본 오카야마(岡山) 현 내 인구 8000명인 시골마을 가쓰야마(勝山)에 차린 저자의 빵집은 여러모로 유별나다. 인공발효 효모인 이스트를 쓰지 않고 천연효모와 유기농 밀로만 빵을 만든다. 목∼일요일만 가게를 열고 이윤은 전부 직원들과 나눠 갖는다. 지은이는 자본을 부패하지 않고 증식만 하는 이스트에 비유하는 등 건강한 빵을 만드는 과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적절하게 엮어낸다. 투명인간 압축성장 시대, 각박한 세상을 힘껏 살았지만 투명인간처럼 소외된 가장들을 기리는 서글픈 노래. 주인공 김만수 가족은 일제강점기 할아버지가 사상 문제로 고초를 겪다 숨진 탓에 집안이 몰락해 가난하게 산다. 큰형은 명문대에 진학해 집안의 기대를 받지만 베트남전 고엽제 후유증으로 숨진다. 만수는 일찍 가장이 되어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만 돌아오는 건 비난과 외면뿐.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한 적이 없어요”란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사회문화적 전개 과정을 탐사한 결과물이 담겼다. 종이 생산부터 책값 책정까지 당시 책 인쇄와 유통 방식을 자료 사진과 그림을 통해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 한글 창제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출판 독점으로 조선이 출판 강국이 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도 담았다. 저자는 “읽히지 않는 책은 책이 아니다. 책은 인쇄되거나 그 외의 복제 과정을 거쳐 확산되지 않는 한 존재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라고 일갈한다. 깊은 마음의 생태학 국내 대표적 인문학자인 저자가 문학 철학 경제학 사회학 수학 생물학을 넘나들면서 이성과 마음의 문제를 파헤쳤다. 현대 문명이 사람만 위하는 인간 중심주의에 갇혀 방황하고 있고 성찰을 통해 마음의 깊이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제언이다. 난해하지만 77세 학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이 구절을 기억하자. “사람은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으로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속사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사이버 세계의 교류는 사람들의 관계를 보다 돈독히 할까. 그러나 SNS에선 현실 속 타인의 고통이나 이슈엔 무감각한 채 자기가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취할 뿐이다. 저자는 현실은 끊고(斷) 사이버세계는 잇는(續) ‘단속’의 개념으로 한국 사회를 풀이한다. 불통을 치유하는 건 경청(敬聽)이다. 경청은 말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의 말문을 여는 말 걸기까지 포함된다. 남을 이해하려는 주체적인 관계 맺음을 화두로 제시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사회학이다. 올 한 해를 되돌아보자. 세상 물정을 핑계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거나 자신의 이익을 탐닉하진 않았는지, 세상 물정을 알려주겠다는 사람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거나 처세술 책을 붙들고 살진 않았는지, 소비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아치울 기세로 덤벼들지는 않았는지…. 팽창과 성장에 눈이 멀어 괴물 같은 짓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저자가 들려주는 25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소년이 온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혹함을 다시 되살렸다. 계엄군에 희생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던 중학교 3학년 동호와 주변 인물들이 당시를 증언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가 한 병사의 총에 맞아 숨지는 걸 목격한다. 그러고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라고 묻는다. 1970년생인 작가는 당시 열 살로 서울 수유동 언덕배기 집에서 광주 소식을 처음 접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저자는 인류 탄생 이후 폭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20세기가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음을 증명한다. 우리가 현시대를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건 실제 폭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폭력을 손쉽게 접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악의 폭력 사건은 8세기 중국 당나라 때 안녹산의 난과 이로 인한 내전으로 당시 중국 인구의 3분의 2인 3600만 명이 희생됐다. 지은이는 민주주의와 이성, 인도주의, 과학을 토대로 인간 본성의 선한 천사를 끄집어내면 폭력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가나다순)강문종(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김경집(인문학자) 김기봉(경기대 사학과 교수) 김기중(더숲 대표) 김석근(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김윤태(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김종갑(건국대 영문과 교수) 김학원(휴머니스트 대표) 김형찬(고려대 철학과 교수)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백경학(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신정근(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이권우(도서평론가) 이명학(한국고전번역원장) 이인식(지식융합연구소장)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재승(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주일우(문학과 지성사 대표) 표정훈(도서평론가) 하응백(문학평론가)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미화(출판평론가)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황현산(고려대 명예교수) 김상운 sukim@donga.com·박훈상 기자 }

동아일보 ‘책의 향기’팀은 한 주에 대략 100여 권의 책을 받는다. 이 중 지면에 최종 소개되는 것은 20여 권뿐. 담당 기자의 안목 부족이나 지면 압박 등으로 미처 싣지 못한 신간들 가운데 꼭 소개하고 싶은 책들을 따로 모았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들에게 ‘책의 향기’가 놓쳤던 책을 설문조사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5권을 추렸다. 선정위원들이 가장 많이 꼽은 ‘모멸감’(김찬호 지음·문학과지성사)은 한국인의 낮은 자존감을 통해 우리 사회를 해부한 이색적인 시도로 눈길을 끌었다. 저자는 모멸감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가장 큰 적이라고 주장한다. 위계 서열과 힘에 대한 강박, 콤플렉스 등 우리 사회에 모멸감이 만연하는 원인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이어 공동 2위를 차지한 ‘나의 한국 현대사’(유시민 지음·돌베개)는 저자가 태어난 1959년부터 올해까지의 현대사를 압축 정리한 책이다. 정치를 그만두고 저술가로 돌아온 저자는 대중의 욕망을 키워드로 우리 역사를 재해석했다. 행간에 간간이 자신의 체험을 녹여냈다.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역사를 돌아보았다”는 지은이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주관적 관점이 강한 역사책이다. 나란히 2위로 꼽힌 ‘비밀의 정원’(조해너 배스포드 지음·클)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성인용 색칠 책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했다. 직접 색칠한 작품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다른 독자와 교감하는 방식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이젠, 함께 읽기다’(신기수 외 3명 지음·북바이북)는 함께 책을 읽어 인생이 바뀐 사람들의 경험담 및 타인과의 지적 공유가 갖는 시너지 효과를 담았다. ‘책에는 정답이 없고 그저 생각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라는 게 저자가 주장하는 요지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이명현 지음·동아시아)은 천문학을 전공한 지은이의 ‘별밤’ 에세이다. 외계 지적생명체를 탐색하는 세티 프로젝트 한국 책임자인 저자는 천문학자답게 인간은 별에서 나와 결국 별로 돌아갈 것이라는 인생관을 설파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