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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건. 각종 문학 공모전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 ‘엽서시문학공모전’에 게시된 지난해 공모전 수다. 이곳은 등단을 꿈꾸는 문청(문학청년)들이 공모전을 찾기 위해 즐겨 찾는 사이트다. 최근 5년간 해마다 800건 이상의 공모전이 치러졌는데, 대부분 역사가 짧은 중소 규모다. 사이트 관계자는 “게시된 문학 공모전 중 ‘진짜 작가’를 뽑는 곳은 10∼20%에 불과하다”며 “일부 공모전은 상금을 주기는커녕 당선자에게 책을 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최근 A 씨가 기존 문학상 수상작을 도용해 5개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문학 공모전 난립상이 도마에 올랐다. 우후죽순으로 공모전이 생기면서 표절 검증 등 관리가 부실해졌다는 것. 한 출판사 관계자는 “과거 유명 작가의 표절 논란이 일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일도 일반 독자들이 한국 문학에 실망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문학 공모전이 급격히 늘어난 건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2003년 7차 교육과정 시행 이후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학과 수시입학 전형에서 백일장 당선 경력 등이 있으면 가산점을 주는 대학이 많이 생겼다. 문학상이 일종의 ‘대입 스펙’이 되면서 백일장뿐 아니라 학생들을 상대로 한 독후감, 수필 공모전도 늘었다. 마침 비슷한 시기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관들이 “문학의 턱을 낮추자”며 글쓰기 대회를 잇달아 개최했다. 문학 공모전을 ‘취업 스펙’으로 활용하려는 수요도 영향을 끼쳤다. 광고회사, 출판사 등 글쓰기와 직결된 직무의 경우 공모전 당선 경력이 취업에 유리해서다. 이 때문에 취업 관련 공모전을 취합하는 온라인 사이트에는 문학 공모전 공고들이 자주 올라온다. 공모전 심사에 참여한 문학계 관계자는 “일반인도 문학을 가까이 즐기자는 취지는 좋았다”며 “하지만 일부 문학 공모전은 명함에 ‘소설가’ ‘시인’을 새기려는 사람들의 허영과 대입이나 취업을 위한 스펙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수가 늘어난 것에 비해 관리는 허술했다. 주요 공모전은 공신력 있는 문학평론가와 소설가가 심사에서 표절 여부를 검토하고, 추가 검증도 한다. 그러나 규모가 작거나 새로 생긴 공모전의 운영업체는 예산 부족으로 이런 과정을 생략한다. A 씨 표절 사태의 피해자인 작가 김민정 씨 작품도 온라인에 게재돼 있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만 거쳤어도 도용작의 수상을 막을 수 있었다. A 씨가 당선된 한 문학상의 운영담당자는 “표절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문학계에선 문학 공모전 운영에 대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학적 표현에 대한 표절 판단이 쉽지 않고, 기존 수상작 표절 여부를 걸러낼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지만 최소한의 방침은 마련돼야 한다는 것. 김호운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은 “저작권 문제 해결을 전제로 문학 작품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해 표절 여부를 검토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성희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장은 “올 3월부터 전국 문학상 실태조사를 진행한 뒤 표절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만화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에 등장한 세일러 전사들은 악당을 물리칠 때마다 이 명대사를 외친다. 일본에서 1991년 12월부터 연재된 이 작품은 전 세계 누적 판매 3000만 부를 기록한 히트작이다. 애니메이션도 40개 국가에 방영됐다. 한국에서도 1997, 1998년에 걸쳐 KBS에서 애니메이션이 방영돼 흥행했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로 시작하는 애니메이션 삽입곡을 흥얼거려 봤다면 한 번쯤은 세일러 전사들을 봤다는 이야기다. 총 10권짜리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세미콜론) 완전판을 15일 펴낸 최원 편집자(40·사진)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21일 만났다. 그는 “세일러 문은 이제 명작을 넘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라고 했다. 짧은 제복 치마를 입은 소녀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을 현재 시선에서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첫 연재 당시엔 악당에게 납치된 여성을 남성 주인공들이 구하는 기존 만화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작품에 동성 커플이 등장하며 젠더 중립성도 반영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만화에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는 마법 소녀들이 등장한 흐름도 세일러 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세일러 문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1990년대 한국에 출판된 초판은 중고 시장에서 희귀품으로 거래된다. 세트는 기존 가격인 20여만 원보다 많게는 3배에 이르는 60여만 원에 팔리기도 한다. 완전판도 출간된 뒤 일주일 만에 3000세트가 팔렸다. 권수로 치면 3만 권이다. 어린 시절 세일러 문을 보고 자란 30, 40대 팬들이 “추억을 다시 되살리고 싶다”, “어린 아이와 함께 보고 싶다”며 책을 사고 있는 것이다. 최 편집자는 “추억과 꿈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 행복하다는 독자들의 반응 덕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세미콜론은 완전판을 한국에 들여오기 위해 일본 출판사와 2012년부터 협의를 했다. 오랜 협의 끝에 2019년부터 한국 완전판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 완전판에선 과거 애니메이션에서 영어로 불렀던 캐릭터들의 이름을 모두 일본어로 바꿨다. 일본 완전판과 차별화하는 ‘현지화’에도 공을 들였다. 일본 완전판은 모두 세로쓰기로 돼 있지만 한국 완전판은 가로쓰기를 택한 것. 가로쓰기에 맞게 달 모양이 그려진 한국 제목 역시 새롭게 디자인했다. 번역할 때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식이 달라진 부분을 감안했다. 일본 완전판에선 주인공이 복도에서 도시락을 먹자 소꿉친구가 “여자가 도시락 까먹기라니”라고 놀리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 완전판은 “복도에서 도시락 까먹기라니”라고 번역했다. 최 편집자는 “음식을 밖에서 먹는 행위를 지적하는 발언을 성별에 한정하면 성차별이 될 수 있다고 번역자가 판단해 다르게 번역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성인지 감수성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지 번역자와 편집자들이 회의를 거듭하며 수정했다. 최 편집자는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과 함께 볼 때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웰 다잉’(well dying)은 죽음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태도다. 웰 다잉을 택한 이들은 갑작스럽게 죽기를 거부한다. 살아온 날을 천천히 정리한 뒤 삶을 마무리한다. 이는 자신을 돌보는 가족을 배려하는 방법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치료 대신 죽음을 받아들이는 존엄사도 웰 다잉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최근 웰 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한 책 두 권이 출간됐다. 서울대 암병원 종양내과 전문의로 일하는 김범석 교수(44)는 암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상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펴냈다. 그는 4기 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그 앞에서 환자들은 완치가 아니라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항암 치료를 받는다. 예정된 죽음 앞에서 환자들은 분노하고 울부짖는다. 마지막 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해 발버둥치는 환자들 앞에서 그는 겸허하게 고개를 숙인다. 한 환자는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주경야독 끝에 겨우 대학에 갔다. 열정적으로 일해 외국계 기업 임원이 됐다. 그러나 50대 중반 찾아온 암은 극복하지 못했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든 항암치료를 다 했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통보에 환자는 분노했다. “나는 이렇게 죽으란 말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환자 눈에 살기가 어린다. 현장에서 죽음을 목격한 경험은 존엄사 제도에 대한 고민으로 옮겨간다.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사망이 임박한 말기 암 환자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됐다. 환자가 의식이 없을 경우 가족이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 법에 대해 그는 “누가 어떻게 산소 주입을 중단할지에 대해선 고민해주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호흡기를 떼어낸 의사에겐 일말의 부담과 죄책감이 남아 있다는 것.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애매하고 인간의 판단은 인위적”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웰 다잉에 대한 글을 지속적으로 써온 미국 수필가 케이티 버틀러(72·여)는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방법을 담은 안내서를 펴냈다. 그는 몸 상태에 따라 준비할 게 다르다고 조언한다. 신문 부고 기사를 눈여겨볼 정도의 상태라면 인생 후반기를 지탱할 좋은 가치관을 만들 때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한 번에 끄는 게 힘들다면 일상을 좀 더 단순화시켜야 한다. 심각한 말기 암 통보를 받았다면 병의 진행 상태에 대해 주치의와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며칠밖에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병원을 벗어나 집에서 마지막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사소하지만 임종 때 중요한 것들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간병하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이나 시집, 종교 경전이 있으면 좋다. 자신이 죽기 직전 연명 치료를 할지에 대한 의견이 담긴 서류는 눈에 잘 띄도록 냉장고 문에 붙여 둬야 향후 문제의 소지가 적다. 가족들이 119에 전화해 울부짖지 않도록 미리 당부할 것을 제안한다. 그가 이토록 냉철한 조언을 담은 웰 다잉 준비법을 내놓은 건 삶이 죽음에 내몰리지 않길 바라서다. 그는 “평화롭고 자율적이고 인간적인 죽음의 길은 있다”고 단언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취미나 운동도 홀로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영화, 뮤지컬 같은 콘텐츠 관람은 물론이고 스포츠, 오락, 쇼핑 등 여가 전반을 집에서 혼자 즐기는 ‘코쿤(cocoon·누에고치)족’이 많아진 것. 코로나19 이전에는 으레 여럿이 만나 영화관에 가고 단체 운동을 하는 것이 노멀이었다면, 이제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랜선 운동’을 즐기는 게 뉴노멀이 되고 있다.○ 영화는 차 안에서, 운동은 나 홀로 코로나19로 인해 극장과 공연장에는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이 때문에 신작 영화 등이 곧바로 온라인 플랫폼으로 향하는 사례도 늘었다. 영화, 공연, 뮤지컬, 콘서트를 즐기는 주된 장소는 다름 아닌 ‘내 집’이 됐다. 집에서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콘텐츠 감상용 기기들의 이용률도 큰 폭으로 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5월 성인 6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된 3월 전과 후를 비교할 때 DVD, 프로젝터 등 동영상 기기의 이용률은 51.4%, 스마트패드는 46.9%, 애플TV 같은 스마트형 기기는 41.2% 증가했다. 집 밖으로 나오더라도 격리된 공간을 선호한다. 차에서 즐기는 ‘드라이브인’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로 자동차극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극장 중 하나인 서울 송파구 탄천공영주차장 내 잠실자동차극장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지난해 3월에 전월보다 방문자가 20%가량 늘었다. ‘드라이브인 콘서트’도 공연업계의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현대자동차는 경기 고양시 킨텍스 주차장에서 하루 300대씩 3일간 총 900대를 초청해 K팝 공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갈라쇼, 지휘자 금난새와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클래식 음악회 등을 진행했다. 스포츠 역시 ‘나 홀로 운동’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의 운동량은 전반적으로 줄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2020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한 번에 30분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 인구 비율은 2019년 66.6%에서 2020년 60.1%로 떨어졌다. 특히 헬스장 등이 문을 닫으면서 전년 대비 보디빌딩은 2.9%포인트, 요가와 필라테스는 각각 1.1%포인트 줄었다. 반면 트인 공간에서 혼자 하는 운동은 소폭이나마 늘었다. 자전거가 0.6%포인트, 걷기와 등산이 0.3%포인트씩 늘었다. 본인이 세운 운동 기록을 영상으로 공유하고, 각자의 기록을 비교하는 ‘언택트 경연’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이온 박사는 “코로나19가 지속된다면 운동의 개인화 및 온라인화가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장비 판매량에서도 확인된다. 설민협 이베이코리아 마케팅매니저는 “혼자 또는 소수로 즐기는 운동 제품의 판매량이 지난해 크게 늘었다”면서 “골프, 자전거, 낚시, 등산 용품 판매가 전년 대비 각각 16%, 12%, 11%, 11%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가상세계 속 네트워크 확산 콘텐츠를 다루는 이들은 코로나19가 지속되면 가상공간에서의 ‘연결’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카카오톡’만큼이나 널리 퍼진 ‘제페토’가 그 사례다. 제페토는 네이버제트가 만든 증강현실(AR) 아바타 애플리케이션. 사용자가 실제 얼굴을 바탕으로 아바타를 만들고, 가상현실(VR)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현실세계와는 차별화되는 가상현실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3차원의 가상세계를 의미하는 ‘메타버스(metaverse)’의 대중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블랙핑크의 공연과 팬미팅이 취소되자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제페토를 활용한 가상 팬미팅을 열기도 했다. 송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미래정책팀 팀장은 “코로나19 이후 가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집에서 혼자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연결에 대한 지향이 있다”면서 “완전히 단절된 비대면 콘텐츠 소비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길 원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MZ세대 사이에서는 이미 아바타를 이용해 소통하는 게 당연해졌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 가상세계에서의 콘텐츠 소비, 아바타를 이용한 연결이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력·연령에 따른 삶의 질 양극화 대비해야 콘텐츠 소비와 여가 트렌드가 바뀌는 과정에서 삶의 질 양극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특히 소비력에 따라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명확히 갈릴 거라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는 콘텐츠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해당된다. 국내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사람들이 극장 가길 꺼리면서 영화제작사와 투자배급사는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명확한 대작을 만들려고 한다. 수십억∼100억 원 정도 들어가는 ‘중간’ 영화가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소비자 역시 고사양, 고품질의 콘텐츠를 소비하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예를 들어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 콘텐츠를 즐기려면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모니터 등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다. 세대에 따른 콘텐츠 소비의 양극화도 심화될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여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복수로 구독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반면 정보력이 부족한 중장년층은 TV가 유일한 콘텐츠 창구가 될 수 있다. 송진 팀장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저가 콘텐츠와 큰 화면과 고화질로 즐길 수 있는 고가의 콘텐츠가 명확히 갈리고, 향유 주체의 차별화가 심해질 것”이라며 “문화 콘텐츠의 중간 영역이 약화되지 않을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김재희 jetti@donga.com·이호재 기자·이원홍 전문기자}
“전자책 업체들이 지식재산권(IP)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전자책 업체들이 전자책 유통에서 더 나아가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 등 IP 시장에 뛰어드는 상황을 이같이 표현했다. 이들은 기존에 보유한 전자책 IP를 활용해 드라마, 영화, 웹툰 등을 만드는 기업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2009년 11월 전자책 업체인 리디북스로 출발한 ‘리디’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19년 8월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프텔과 합병하며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지난해 2월 웹소설 전문 출판사 에이시스미디어를 인수했고 이달 11일에는 게임 사업 진출을 위해 자회사 ‘투디씨(2DC)’를 설립했다. 사업 영역을 확장한 후 각종 콘텐츠를 내놓았다. 지난해 8월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 ‘상수리나무 아래’를 웹툰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11월엔 자체 제작한 애니메이션 ‘슈퍼 시크릿’을 공개했다. 올해 상반기엔 로맨스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게임 ‘반만 남은 세계’를 내놓을 계획이다. 현재 리디가 보유한 콘텐츠 수는 23만 개다. 전자책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애니메이션, 웹소설, 웹툰, 게임 사업을 하는 기업으로 분류된다. 리디 관계자는 “기존의 웹소설, 웹툰, 애니메이션을 게임 소재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자책 업체 ‘밀리의 서재’는 보유한 IP를 직접 확장하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IP의 활로를 넓히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부자 아파트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룬 소설 ‘행복배틀’의 TV 드라마화가 대표적이다. 이 소설은 밀리의 서재가 지난해 7월 장르 전문 출판사 고즈넉이엔티와 함께 진행한 공모전에서 당선됐다. 전자책 업체들이 다양한 장르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오프라인 서점이나 출판사에 비해 트렌드에 민감해 IP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드라마, 영화, 웹툰 등의 수요가 늘어나자 발 빠르게 움직이며 대응하고 있다. 독자들 역시 모바일로 책을 읽기 쉽게 제작된 전자책 플랫폼을 통해 웹소설, 웹툰을 보는 게 편하다는 반응이다. 한 웹툰 업계 관계자는 “웹툰이라는 인기 IP 하나가 드라마, 영화화되면서 추가 수익을 창출한 것처럼 전자책 업체들이 내놓은 작품들도 중요 IP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문구에 대한 추천과 사연을 담은 에세이 ‘문구는 옳다’(오후의 서재)를 10일 펴낸 정윤희 작가는 ‘문구 덕후’다. 남들이 신상 가방과 구두를 사들일 때 그는 신상 문구를 사러 문구점으로 향하곤 했다. “잉크 향에 흥분하고 종이 질에 예민하다”는 그에게 초등학생 조카는 문구점을 차리자는 제안을 할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매일 문구를 사들이며 살고 있다. 19일 그를 만나 스마트 기기가 넘치는 시대에도 문구가 필요한 이유를 듣고, 유용한 문구를 추천받았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메모할 수 있는 세상이다. “언젠가부터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니는 이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여전히 펜으로 쓴다. 글을 쓸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와 펜을 잡는 손맛을 잊지 못해서다. 학창 시절 다양한 펜으로 공책에 필기하던 향수가 남은 중장년층뿐만이 아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아날로그 문구는 새로운 문화로 유행하고 있다.” ―스마트 펜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는데…. “갤럭시 S펜, 애플 펜슬은 훌륭하지만 아날로그는 디지털이 구현하지 못하는 디테일에 강하다. 그렇다고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벽을 만들고 싶지 않다. 스마트 펜으로 손맛을 본 이들이 더 나은 손맛을 찾아 아날로그 펜을 찾기도 한다. 나 역시 모두 사용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필요한 문구를 추천해 달라. “만년필을 쓰면 회사에서 각종 서류에 서명할 때 고급스러운 느낌을 줘 유용하다. 펜촉이 쓰는 사람에 맞게 길들여지기 때문에 오래 쓴 가죽 제품처럼 오래될수록 매력에 빠져든다. 볼펜심에서 삐져나오는 ‘볼펜 똥’이 싫다면 꼭 사용해 보자. 만년필이라고 해서 고급 제품만 고를 필요는 없다. ‘라미 사파리 만년필’은 3만 원대로 구입할 수 있지만 엄지와 검지로 잡는 느낌이 편안하다.” ―다른 필기구를 원한다면…. “쓰고 지울 일이 많다면 ‘팔로미노 블랙윙 연필’을 추천한다. 필기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쉽게 번지지 않아 소설가 존 스타인벡, 디즈니 애니메이터 샤머스 컬하인 등 저명한 예술가들이 즐겨 사용한다. ‘펜텔 트라디오 스타일로 수성펜’처럼 만년필의 필기감과 비슷하면서도 튼튼한 유사 제품도 좋다. 독특한 펜을 원한다면 ‘피셔 스페이스 펜’에 도전해볼 만하다. 무중력인 우주 공간에서 쓸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영하 35도와 영상 121도에서도 필기할 수 있다.” ―문구를 가지고 다니는 게 불편하지 않나. “얇고 길게 만든 ‘스틱형 가위’는 필통 안에 쏙 들어간다. 지우개 역시 예전처럼 둔탁한 디자인 대신 얇고 길게 나온 제품이 많이 있다. 가방 안에 작은 필통 하나만 있으면 된다.” ―회사생활에 유용한 문구가 있나. “민감한 정보가 들어 있는 문서를 파쇄하지 않고도 정보를 감추는 역할을 하는 ‘보안 문구’가 유용하다. 롤러 타입의 고무에 특수한 패턴이 박혀 있는 도장을 회사 문서나 영수증에 문지르면 개인정보가 순식간에 감춰진다. 패턴이 들어간 수정테이프를 사용하면 종이 뒷면에 지워진 글자가 비치지 않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87년 1편이 나온 영화 ‘로보캅’에선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사이보그 경찰관이 범죄자를 소탕한다. 범인에게 희생된 머피의 뇌에 기계 팔과 다리를 결합한 사이보그 경찰관은 범죄자들이 쏜 총알을 모두 튕겨낸다. 발길질이나 주먹질을 당해도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천하무적이다. 그러나 최근 신간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출판사)를 펴낸 김원영 변호사(39)와 소설가 김초엽 씨(28·여)는 18일 인터뷰에서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고 했다. 이들은 현실 속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에세이에서 각각 장애를 보완하는 휠체어와 보청기를 쓰는 자신들을 사이보그에 비유했다. 김 변호사는 “기계와 긴밀히 결합해 삶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많은 장애인들은 현실 속 사이보그와 같은 존재”라며 “사이보그가 영화 속에서 전형적인 히어로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기계와 결합한 삶은 불편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사이보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건 2018년.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유전질환인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 변호사는 공상과학(SF) 작품을 쓰는 김 씨에게 “장애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3급 청각장애인으로 과학을 전공했고 소수자들에게 주목한 작품을 써 온 김 씨라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장애를 앓아온 두 사람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다룬 글을 쓰기로 의기투합했다. 이동과 대화가 자유롭지 않은 두 사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함께 책을 써내려 갔다. 책에는 두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 변호사는 장애가 법률 업무 수행에 큰 지장을 주지 않지만, 그의 사건 처리 능력을 의심하는 사회적 편견을 종종 겪는다고 했다. 또 장애를 지닌 이들이 성적 대상화가 되는 ‘페티시즘’을 비판했다. 사이보그를 홍보하는 영상매체에 장애인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 베푼 온정의 수혜자로 등장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 씨는 발음이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외국인인가” “치아 교정 중인가”라는 말을 듣곤 한다고 고백했다. 이들의 이런 일상 경험은 우리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확대됐다. 김 씨는 2019년 펴낸 소설 ‘원통 안의 소녀’(창비)에서 원통 안에 갇혀 사는 한 소녀가 연민의 대상으로 비치는 문제를 다뤘다. 김 씨는 “장애 여성으로서 대상화되는 삶,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방식, 자선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술을 최첨단으로 발달시켜 훌륭한 사이보그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기술을 인간에 가깝게 활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저의 현실을 바꾼 건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제가 수업을 들었던 대학과 인턴을 했던 로펌 앞에 놓인 작은 경사로였다”며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학교 정문에 경사로가 놓이면서 학교를 다니고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장애인들의 이동 문제는 특정한 기업이나 단체가 장애인들에게 베푸는 시혜와 자선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평등과 정의의 문제”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창의성이 경쟁력’이라는 말도 옛말이 된 시대다. 창의성은 이미 경쟁력이 아닌 필수가 돼 버렸다. 애플 아이폰으로 정보기술(IT) 업계에 혁신을 불러온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으로 사람을 잇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전기자동차와 스페이스X 우주선으로 이동 산업을 뒤흔드는 일론 머스크 등의 남다른 창의성에 세계는 감탄한다. 저들이 어떻게 창의성을 키웠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자녀를 그렇게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도 많다. 미 하버드대 교수이자 퓰리처상을 2번이나 받은 저자는 창의성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지를 파헤친다. 이를 통해 아직도 미지의 세계에 남아 있는 창의력을 확장하자는 것이다. “바야흐로 제3차 계몽시대를 열고 있다”는 추천사처럼 저자는 창의성이 인간을 계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역설한다. 저자가 창의성의 뿌리로 주목하는 건 ‘인문학’이다. 인문학처럼 무엇인가를 해석하는 능력이 인간을 ‘동물’에서 해방시켜 인간으로 만드는 근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원숭이는 한 개체가 고구마를 물에 씻는 모습을 본 뒤 그대로 따라하지만 인간은 언어로 이를 전달한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문장은 자연현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이른다. 그러나 인문학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같은 분야에 밀려 연구 지원금이 줄고 일자리 경쟁에서도 밀린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저자는 인문학이 과학에 조금 더 개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세상 만물의 궁극적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세상이 발달했지만 인문학은 이를 응용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생물학의 틀을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창의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처럼 과학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고생물학, 인류학, 심리학, 진화생물학, 신경생물학 등 ‘빅 파이브(Big Five)’를 “인문학의 우군”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빅 파이브가 “자연 선택이 구석구석까지 프로그래밍해” 온 인간의 생물학적 본질을 밝혀 준다는 것. 인문학의 토대인 인간 본성과 인간 조건을 해명할 열쇠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주장은 과학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과학 제국주의’로 경도되지는 않는다. 과학적 사실을 판단하는 역할을 인문학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이 인문학의 토대가 된다면, 인문학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며 “과학 이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현실 세계를 다루지만, 인문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무한히 많은 모든 환상 세계까지 다룬다”고 한다. 인문학과 과학이 융합되면 창의성이 이상적으로 발휘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과학의 발달로 우주 탐사가 이뤄지자 각종 SF 소설과 우주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예술작품을 받아 영감을 받은 이들이 다시 과학자가 돼 우주를 연구한다. 예술작품이 내놓은 가설을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해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계몽운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과학과 인문학의 관계는 철저히 호혜적”이라며 “과학이 인문학의 토대가 된다면 인문학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고 역설한다. 과학이 죽어가는 인문학에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는 환경 보호를 위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원칙이다. 2018년 재활용 업체들이 비닐과 스티로폼 수거를 중지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벌어진 이후 국내에서도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일회용 쓰레기가 최근 크게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상에서 쓰레기를 ‘제로(0)’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 신간 ‘제로 웨이스트는 처음인데요’(판미동)를 쓴 작가 소일(35)은 13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딱 즐겁고 행복한 만큼만 시도해 보자”고 제안했다. 스스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해보자는 것. “배달을 시킬 때 밥과 국을 담은 플라스틱 용기가 사용되는 것까진 막을 수 없어요. 그래도 집에서 시켜먹는다면 수저와 물 티슈는 보내지 말라고 요청할 수 있진 않을까요.” 그가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한 건 2016년이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선 쓰레기를 줄이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삶에서 덜어낼 물건을 기록하고 조금씩 생활을 바꿔나갔다. 처음부터 무리하진 않았다. “집착하지 않았고 하나라도 줄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완벽하려고 스스로 옥죄지 않았던 게 제로 웨이스트를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에요.” 그는 화장실에서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한다. 일회용 생리대 대신 생리컵을 쓴다. 한 사람이 평생 약 1만 개의 생리대를 써 상당한 양의 쓰레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엔 지레 겁을 먹었으나 막상 써보니 환경도 보호하고 편리하기까지 했다.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볼일을 보고 난 뒤엔 가급적 휴지를 쓰지 않는다. 소변을 본 뒤엔 손수건을 쓰고, 대변을 본 뒤엔 비데를 쓰고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집에선 볼일을 본 뒤 손수건을 세척할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선 그렇지 못하잖아요. 아예 휴지를 안 쓴다는 건 아니에요.” 생활 곳곳에서 간단히 실천할 수 있는 제로 웨이스트는 이 밖에도 많다. 티백을 마실 땐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 소재를 고른다. 치약을 많이 쓰지 않아도 칫솔질만 잘하면 이가 잘 썩지 않는다. 분리수거만 제대로 해도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외출할 땐 개인 식기와 손수건을 챙겨 쓰레기를 최소화한다. 직장생활에서도 제로 웨이스트 원칙은 유지된다. 일회용 종이컵 대신 다회용 컵을 사용한 뒤 설거지한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땐 전원을 모두 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장을 간다. 그와 대화를 나눈 출판사 관계자도 플라스틱 병을 줄이기 위해 생수를 덜 마시고, 알칼리성 세제인 과탄산소다를 쓰기 시작했다. “제 모습을 보고 동료들이 조금씩 습관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누군가에게 제로 웨이스트 하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습니다. 저를 보고 다른 분들이 쓰레기를 줄이자는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 만족해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재즈가 흑인의 문화와도 맞닿아 있으니 우리의 주인공은 흑인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소울’의 제작진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최초로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흐름 때문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인종 차별이나 정치적 올바름(PC) 문제를 의식해 꼭 필요하지 않은 설정임에도 억지로 흑인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지적을 부인한 것. 제작진은 “타당한 우려는 맞지만 문맥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한다. (그동안 흑인을 등장시키지 않았던) 단점을 알고 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일 개봉하는 소울을 계기로 이른바 ‘블랙 워싱’ 논란이 일고 있다. 블랙 워싱은 할리우드 등 서양 주류 영화계에서 무조건 백인 배우를 기용하는 관행인 ‘화이트 워싱’에 견준말이다. 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한다며 작품에 무조건 흑인을 등장시키는 추세를 비판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간 이런 논란은 흑인의 인권 문제에 예민한 서구 사회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해외 콘텐츠가 많이 소비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1800년대 영국 런던이지만 왕비 역을 맡은 배우 골다 로슈벨은 흑인이다. 남자 주인공 사이먼 역시 흑인 배우 레지 장 페이지가 맡았다. 한국 시청자들 사이에선 “영국 왕비가 흑인으로 등장해 몰입을 방해한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원작 소설에서 사이먼은 파란 눈을 지닌 백인으로 묘사되는데 설정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왔다. 물론 흑인이 등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블랙 워싱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대 배경이나 원작의 취지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흑인을 등장시키면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018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트로이: 왕국의 몰락’은 그리스의 신인 제우스와 그리스인인 아킬레스를 흑인으로 설정해 무리수라는 지적을 받았다.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2019년 7월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실사 영화에 흑인 배우 핼리 베일리를 캐스팅하자 ‘#나의 아리엘이 아니야’라는 반대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근 영화계가 흑인을 내세우는 건 다양한 인종을 존중하자는 할리우드의 흐름 때문이다. 백인들만 등장한 영화가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에 대한 반성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백인에게 치우친 캐스팅에 대한 자성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며 “애니메이션에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면 이를 자주 보는 아이들이 편협한 시각을 갖지 않게 만든다”고 했다. 색다른 요소로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도 여러 이유 중 하나다. 가수를 꿈꾸는 멕시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코코’(2018년)는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다루지 않던 남미를 배경으로 해 관객들로부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코’가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한 배경에도 다양성을 반영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았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단편적으로 논란에 휩쓸리기보다는 흑인 캐스팅이 영화 흐름에 맞는지 관객이 판단하며 작품을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부벌레… 수전노… 할리우드, 아시아계 편견 못벗어나미국인이 만든 ‘미나리’도 차별“영화제작진에 한국인 포함돼야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인 표현”할리우드 작품에 흑인 배우가 등장하는 일은 흔해졌지만 여전히 아시아 배우가 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시아 배우가 나오더라도 평면적인 인물로 표현되거나 미국에서 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영화로 분류되기도 한다.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올해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일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한국계 미국인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제작사는 브래드 피트가 공동 대표인 플랜B다. 그럼에도 규정상 영화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니라며 외국어 영화로 분류된 것이다. 그러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년) 영화는 대사의 영어 비중이 30% 정도임에도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감독과 배우가 백인이 아니라고 해서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19년엔 중국계 미국인인 룰루 왕 감독이 중국계 이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페어웰’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된 적이 있다. 아시아인이 등장하더라도 동양에 대한 서양의 시각이 드러나는 ‘오리엔탈리즘’이 녹아 있다. 영화 ‘시리어스맨’(2010년)에서 한국인은 낙제점인 F학점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한국인은 공부벌레로 표현되곤 한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년)처럼 돈밖에 모르는 부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백인이 주류인 서양권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동양인 갑부들의 이야기’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지만 동양권에선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며 흥행에 실패했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인이 소외되는 흐름을 바꾸기 위해선 영화 제작진에 아시아인이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흑인과 멕시코인 제작자들이 할리우드 작품을 만들면서 편견을 극복해나간 것처럼 제작하는 이들이 차별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영화 ‘기생충’을 계기로 할리우드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제작 시스템에 한국인이 포함돼야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한국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쏟아지는 눈발을 헤치고 한 남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머리에 얹힌 눈을 훌훌 털어내고 책을 구경한다. 그러다 익숙한 듯 구석에 있는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다른 이가 들어오더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창문 밖 쏟아지는 눈을 찍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12일 찾은 경기 고양시 ‘책방이듬’은 독립 책방보단 아지트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책방 주인이자 책방 운영기를 담은 에세이집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를 펴낸 김이듬 시인(52)은 지난해 10월 시집 ‘히스테리아’ 영역본으로 미국문학번역가협회가 주관하는 전미번역상을 국내 최초로 받은 중견 작가. 그가 책방을 연 건 유럽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10년여 전 독일 베를린에 머물다 책방과 사랑에 빠졌다. 책방 주인과 손님이 어울려 낭독회를 열고 토론을 하는 힘이 문학을 키웠다고 생각했다. 2017년 10월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인근에 처음 책방을 열었다. 그러나 시인이 사업가가 되는 건 쉽지 않았다. 눈 딱 감고 책을 많이 파는 일에 집중해야 했건만, 참가비 1만 원짜리 낭독회를 열고선 9000원짜리 시집과 3000원짜리 커피를 주니 남는 게 없었다. 손님이 없는 날 달력에 치던 동그라미가 50개가 넘어가자 울음이 터졌다. 누군가 “중고, 대형서점이 코앞인데 장사가 되겠느냐”고 했다. “한국에서 하면 잘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책 팔아선 월세도 안 나오더라고요.”(김 시인) 개업한 지 6개월 정도 됐을 때 샤워한 뒤 하수구가 막힌 것을 발견했다. 머리카락이 잔뜩 끼어있었다. 머리를 숙이니 정수리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있었다.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랐다. 부모님을 만나러 가선 모자를 절대 벗지 않았다. 그럼에도 버틴 건 이웃 때문이었다. 뜨끈뜨끈한 삼계탕을 포장해 온 단골, 오는 길에 샀다며 사과를 주고 가는 손님. 깜짝 놀라 “왜 이러세요?”라고 되물었지만 이웃은 다가왔다. 이혼 도장을 찍은 날 책방에 와서 책을 고르다 간 한 손님을 그는 잊지 못한다. 강의와 책 판매로 번 돈으로 어찌어찌 책방을 유지한 건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 때문이다. 재정적 어려움은 계속됐다. 결국 월세를 포함해 200만 원이던 고정비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지난해 11월 고양시 대화동의 주택가로 책방을 옮겼다. 창고 매물이었던 이곳을 책방으로 바꾼 것도 이웃이었다. 이웃은 전기배선 공사를 해주고, 커다란 식탁을 용달차에 싣고 왔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는 서정주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책방을 키운 건 팔할이 이웃’이에요. 건강한 ‘책방 언니’로만 남아달라고 하더라고요.” 3년의 암흑기를 버티며 기른 문학의 힘 때문일까. 이사한 뒤, 하루에 수십 권이 팔릴 정도로 조금씩 매출이 늘고 있다. 뜻밖에도 그는 손님이 자신의 책방보다는 동네 책방에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멀리서 찾아오지 마시고 가까운 책방부터 걸어가 주세요. 동네마다 책방이 자리 잡고 살아 숨쉬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고양=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그의 시선은 항상 영화를 향했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언제나 몸과 마음이 극장에 있었다. 한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영화 없이 살 수 있을까. 취업을 접고 영화에 빠져 살기로 했다. 7년 전 유튜브를 시작해 어느새 구독자 100만 명을 넘겼다. 이젠 영화 유튜버 김시선(34)이 추천하는 작품이 넷플릭스 순위를 흔든다. 영화와 함께 사는 일상을 담은 에세이 ‘오늘의 시선’을 펴낸 그는 11일 만남에서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를 묻자 수줍게 “오직 영화가 좋아서”라고 했다. 그는 영화를 하루 2편, 매년 700편 본다. 아침에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고, 점심에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유튜브 대본을 짠다. 잠들기 전까지 넷플릭스나 왓챠를 통해 해외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도 시청한다. 영화 관련 학과를 다닌 적도, 영화 평론가로 등단한 경력도 없지만 구독자들이 “김시선의 추천은 믿고 본다”며 신뢰하는 이유는 이 같은 성실성이다. 영화를 업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었다. 직장 대신 매일 같이 ‘출근’하던 영화관에서 안면을 튼 이들이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소도시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영화 행사의 관객은 대부분 어린이나 노년층이었다. 어려운 용어를 빼고 쉽게 설명해야 했다. “초등학생에게 ‘E.T.’(1984년)를 틀어주면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철학에 대해 말할 순 없잖아요.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에게 맞춰 해설하면서 눈높이를 낮추는 법을 알게 됐어요.” 지인들이 그에게 유튜브를 해보라고 권했다. 2014년 9월 그가 처음 영화 유튜브를 시작할 때는 영화 리뷰를 하는 유튜버가 거의 없었다. 1세대 영화 유튜버인 셈이다. 구독자의 호응을 얻다가 2017년 1월 넷플릭스를 만났다.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독자가 좋아할 단 한 작품을 위해 수많은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넷플릭스의 시선은 다양성을 존중하던 그의 시선과 일치했다. 그는 줄거리를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설과 감상 지점을 풀어놓는다. 인질극을 그린 드라마 ‘종이의 집’의 제목에 대해 “화폐를 찍어내는 조폐국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범행 계획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분석한다. 자막으로 표기된 범행 경과 시간에 집중하면 긴장감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리뷰 영상의 조회수는 600만 회가 넘었다. 그의 유튜브는 20대와 50대의 시청 비율이 비슷할 정도로 구독자의 연령대가 넓다. 리뷰 영상은 5∼30분으로 길이가 각각 달라도 조회수는 대부분 20만 회를 넘는다. 통상 리뷰 콘텐츠에 따라붙기 쉬운 “결말을 스포일러한다”, “영상 저작권 허락도 받지 않는다”는 비판도 그는 비껴간다. 영화의 일부만 보여주면서도 흥미를 끌어 영화를 보도록 유도하고, 한 달이 걸리더라도 제작사에 직접 연락해 영상 이용을 허락받아 쓰기 때문에 영화계 관계자들도 그를 인정한다. 영화감독과 배우 인터뷰가 성사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 유튜브는 절대 영화의 본질이 아니에요. 영화를 선택하는 통로나 다리일 뿐이죠.” 치열한 유튜브 생태계에서 7년을 버텨온 것도 이런 원칙을 알아주는 구독자의 지지 덕이다. 그의 유튜브 구독자 ‘영화친구’는 그가 공들여 만든 영상과 쉽게 만든 영상을 귀신같이 가려낸다. “영화를 보는 다양한 시선을 유지하고 싶어 가끔은 택배도 ‘시선’이라는 가명으로 받는다”는 그.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 볼 영화가 자연스레 추려질 것만 같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암은 아직 인간이 풀지 못한 숙제다. 세포가 각종 원인에 의해 무제한 증식돼 만들어진 이 악성종양을 완전히 치료하는 방법은 여전히 연구 중이다. 그러나 암에 걸리는 코끼리는 거의 없다. p53이라는 유전자가 암에 걸릴 만한 돌연변이 세포를 자살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연구자가 코끼리를 연구해 인간이 암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인간과 유전자가 약 4분의 3이 비슷한 코끼리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풀어줄지도 모른다. 이처럼 저자는 여러 ‘굉장한’ 생물들에게서 인간의 희망을 엿본다. 우리 주위에 있는 생명체들을 통해 인류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파헤친다. 학술적 조사뿐 아니라 현장 취재도 병행한다. 연구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살아있는 동물들을 찾아 나선다. 존재 자체로 인간에게 희망이 되는 생물은 무엇이 있을까.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방사능을 먹어 치워서 자연 제거하는 ‘작은 것’ 박테리아는 방사능 위험을 막을 수 있는 단초다. 4000년 넘게 살면서 노화와 싸우는 ‘오래 사는 것’ 강털소나무는 인류가 생로병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다. 1초에 자기 몸길이의 300배 넘게 이동하는 ‘빠른 것’ 진드기는 더 빠른 이동수단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인간보다 4억 년 먼저 지능을 갖춘 ‘똑똑한 것’ 문어에게서 인간의 지능을 더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극한의 진화를 보여 주는 최상의 생명체들을 만난 저자는 “솔직히 말해서, 인간은 대자연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해 온 것들을 종말로 이끄는 재능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선 오랫동안 살아남은 생물들에게 배움을 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라도 이런 작업을 잘할 수 있다”며 주위에 있는 생물들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새해 첫날 두 배우가 관객 앞에 섰다. 야구 천재 여고생이 프로구단에 입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야구소녀’에 출연한 이주영과 이준혁. 둘은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말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았다. “많이 기대해주시면 좋겠다”며 관람을 독려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영화 시사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두 배우는 화면 안에 있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가 지난해 12월 31일 야구소녀를 비롯한 독립·예술영화 39편을 모은 기획전 ‘왓챠 X KAFA 필름즈’를 연 것을 기념해 온라인으로나마 홍보 영상을 올린 것이다. 왓챠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극장 개봉이 어려워진 독립·예술영화를 살리기 위한 방법”이라며 “올해도 한국의 독립·예술영화로 다양한 온라인 영화제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OTT가 독립·예술영화를 품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비해 인력과 예산이 적은 독립·예술영화는 촬영 후 곧바로 개봉해 제작비를 회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개봉이 미뤄지거나, 극장 개봉을 한다 해도 관객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작은 예술영화관도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고 있다. 활로를 찾지 못한 독립·예술영화가 OTT를 통해 관객에게 다가가려 하는 것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위기에 처한 독립·예술영화가 그나마 향할 곳은 OTT”라며 “빠른 제작비 환수를 위해 극장 개봉을 뛰어넘고 OTT로 직행하기도 한다”고 했다. 넷플릭스는 예술성이 높은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하고 있다. 1968년 미국에서 벌어진 반전 시위가 배경인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원래 극장 개봉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가 악화되자 지난해 10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1세대 블루스 여가수 마 레이니를 중심으로 흑인들의 삶을 다룬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지난해 12월 넷플릭스 공개 직후 호평을 받았다. 두 영화 모두 높은 작품성으로 평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OTT가 독립·예술영화를 강화하는 건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OTT는 알고리즘 시스템을 바탕으로 각 시청자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개별적으로 추천한다. 다양한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선 거대 자본이 투자된 대작뿐 아니라 여러 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OTT 관계자는 “블록버스터가 독차지한 영화계의 편향성에 지친 관객들이 OTT로 향한 것도 다양성 때문”이라고 했다. OTT가 막대한 자본력으로 영화 시장을 잠식한다는 비판에 맞서기 위한 명분 확보용이라는 해석도 있다. 자본으로 극장 시장을 잠식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2010년대부터 독립·예술영화 전용 개봉관을 만들며 영화계의 반발을 잠재우려 한 행보를 OTT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맹크’는 할리우드 시스템을 냉소적이고 신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올해 4월 열릴 예정인 미국 오스카상 유력 후보로 언급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을 연출한 유명 영화감독 데이비드 핀처도 넷플릭스와 4년간 활동 독점 계약을 맺으며 할리우드를 떠났다. 영화계 관계자는 “할리우드를 비판한 영화인 맹크가 오스카상을 수상하면 넷플릭스의 위상은 단번에 올라갈 것”이라며 “‘창작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넷플릭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대표작이 될 것”이라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배우 이영애 씨(50·사진)가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여아 정인이 등을 기리며 1억 원을 기부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이 씨가 4일 소아 환자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료진을 위해 1억 원을 기탁했다고 6일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은 “이 씨가 정인이처럼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아픈 어린이를 위해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후원을 결심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씨는 5일 정인이의 묘소가 있는 경기 양평군의 한 공원묘지를 찾았다. 매니저 없이 가족과 함께 간 모습이 현장에 있던 취재진을 통해 알려졌다. 마스크를 쓴 이 씨는 정인이를 추모하며 눈물을 흘렸다. 동행한 이 씨의 남편과 열한 살 쌍둥이 아들딸도 함께 정인이를 애도했다. 이 씨는 자녀들의 방학을 맞아 양평군에 머무르던 중 사건을 접하고 묘소를 찾았다. 이 씨는 2006년에도 형편이 어려운 중증환자를 위해 써 달라며 서울아산병원에 1억 원을 기부했고 2018년 소아암 환자를 위해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1억 원을 전달했다. 지난해 2월에는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대구시에 5000만 원을 전하는 등 꾸준히 기부를 이어왔다. 여러 연예인도 어린이들을 위한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래퍼 사이먼 도미닉(쌈디·본명 정기석)은 6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상처 입은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힘을 더해 달라”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5000만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방송인 유병재도 위기에 처한 아동을 돕는 비영리단체 지파운데이션에 1000만 원을 전달했다. 배우 한지민, 황정음은 정인이 양부모의 재판을 담당하는 서울남부지법에 이들을 엄벌에 처해 달라는 진정서를 각각 제출했다. 방송인 허지웅은 “추가 증언이 있어야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공소장을 살인죄로 변경할 수 있다. 아직 본 것을 말하지 못한 이웃이 있다면 꼭 경찰에 연락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난 시청자들이 작품에 깊게 빠져 ‘덕후’(일본어 오타쿠를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 우리말 조어)가 되면 책까지 산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순 나무옆의자 편집주간은 지난달 24일 소설 ‘기묘한 이야기: 최초의 의심’을 국내에 번역 출간한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이 소설은 넷플릭스 역대 최고 시청자 수를 기록한 미국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프리퀄(이전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다. 2019년 2월 출간된 영문 소설은 1980년대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을 다룬 드라마와 시대 배경 및 세부 내용이 다르다. 그런데도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꼽힐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하 편집주간은 “드라마 팬이라면 충분히 소설의 독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국내 번역 출판을 결정했다”며 “앞으로 출간될 소설까지 포함해 기묘한 이야기와 관련한 3개 작품의 판권을 계약한 상태”라고 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 드라마를 접하는 국내 시청자들이 늘면서 작품의 원작이나 프리퀄 소설이 국내에서 출간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예전보다 베스트셀러가 쉽사리 나오지 않아 침체된 출판계의 빈자리를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를 업은 소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묻혀 있던 소설이 영상화를 계기로 빛을 보기도 한다. 한 출판 번역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성장세에 들어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관련 작품이 출판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했다. 국내 출판사들은 보통 넷플릭스 드라마 공개 시기에 맞춰 원작 소설을 출간한다. 영국 런던의 귀족 가문 브리저튼가 4남 4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브리저튼’의 원작 소설은 지난달 25일 넷플릭스 드라마 공개와 함께 국내에 e북으로 출간됐다. 독자들 사이에선 “시리즈의 1권 내용만 다룬 드라마 시즌1을 다 보고난 뒤 뒷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계기로 좋은 소설을 알게 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작품을 출간한 신영미디어 관계자는 “(현재 촬영 계획이 있는) 드라마 시즌2 공개 시기에 맞춰 종이책도 낼 것”이라고 했다. 넷플릭스의 인기가 높다보니 원작 소설의 판권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고아 소녀가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되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이 지난해 10월 공개 직후 ‘오늘의 한국 TOP10 콘텐츠’ 2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자 복수 업체들의 경쟁이 붙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대형 출판사까지 뛰어들 정도로 경쟁이 심했다”고 전했다. 판권을 확보한 출판사는 정해졌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 작품화를 계기로 인기를 이어가는 국내 소설도 있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소설은 넷플릭스 드라마가 공개되기 직전인 지난해 8월 리커버 특별판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런 사례가 이어지자 OTT를 구독하고 번역할 작품을 찾는 것이 출판계 관계자들의 일상이 될 정도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해 9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에놀라 홈즈’의 원작 소설을 펴낸 김요안 북레시피 대표는 “과거엔 책이 인기를 끌어 영상화가 됐다면 이젠 영상이 인기를 끌면 책이 출판된다”며 “영화, 드라마 관련 작품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이 요즘 현실”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난 시청자들이 작품에 깊게 빠져 ‘덕후’(일본어 오타쿠를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 우리말 조어)가 되면 책까지 산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순 나무옆의자 편집주간은 지난달 24일 소설 ‘기묘한 이야기: 최초의 의심’을 국내에 번역 출간한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이 소설은 넷플릭스 역대 최고 시청자 수를 기록한 미국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프리퀄(이전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다. 2019년 2월 출간된 영문 소설은 1980년대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을 다룬 드라마와 시대 배경 및 세부 내용이 다르다. 그런데도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꼽힐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하 편집주간은 “드라마 팬이라면 충분히 소설의 독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국내 번역 출판을 결정했다”며 “앞으로 출간될 소설까지 포함해 기묘한 이야기와 관련한 3개 작품의 판권을 계약한 상태”라고 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 드라마를 접하는 국내 시청자들이 늘면서 작품의 원작이나 프리퀄 소설이 국내에서 출간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예전보다 베스트셀러가 쉽사리 나오지 않아 침체된 출판계의 빈자리를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를 업은 소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묻혀 있던 소설이 영상화를 계기로 빛을 보기도 한다. 한 출판 번역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성장세에 들어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관련 작품이 출판 업계에 활력을 불러넣고 있다”고 했다. 국내 출판사들은 보통 넷플릭스 드라마 공개 시기에 맞춰 원작 소설을 출간한다. 영국 런던의 귀족 가문 브리저튼 가 4남 4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브리저튼’의 원작 소설은 지난달 25일 넷플릭스 드라마 공개와 함께 국내에 e북으로 출간됐다. 독자들 사이에선 “시리즈의 1권 내용만 다룬 드라마 시즌1을 다 보고난 뒤 뒷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계기로 좋은 소설을 알게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작품을 출간한 신영미디어 관계자는 “(현재 촬영 계획이 있는) 드라마 시즌2 공개 시기에 맞춰 종이책도 낼 것”이라고 했다. 넷플릭스의 인기가 높다보니 원작 소설의 판권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고아 소녀가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되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은 지난해 10월 공개 직후 ‘오늘의 한국 TOP10 콘텐츠’ 2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자 복수 업체들의 경쟁이 붙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대형 출판사까지 뛰어들 정도로 경쟁이 심했다”고 전했다. 판권을 확보한 출판사는 정해졌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 작품화를 계기로 인기를 이어가는 국내 소설도 있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소설은 넷플릭스 드라마가 공개되기 직전인 지난해 8월 리커버 특별판이 출간돼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런 사례가 이어지자 OTT를 구독하고 번역할 작품을 찾는 것이 출판계 관계자들의 일상이 될 정도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해 9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에놀라 홈즈’의 원작 소설을 펴낸 김요안 북레시피 대표는 “과거엔 책이 인기를 끌어 영상화가 됐다면 이젠 영상이 인기를 끌면 책이 출판된다”며 “영화, 드라마 관련 작품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이 요즘 현실”이라고 했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가치관과 불일치하면 구독 취소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달 17일 ‘콘텐츠 산업 2020년 결산과 2021년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콘텐츠 업계 키워드 중 하나로 신조어 ‘가불구취’를 선정했다. 콘텐츠 이용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행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콘텐츠는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뜻이다. 가치관은 물론 윤리나 취향과 어긋나는 콘텐츠 및 채널은 구독 취소라는 방식으로 가차 없이 쳐낸다. 이런 현상은 특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구독 취소는 콘텐츠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여기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주도한다. 사회적 차별, 정치적 올바름, 환경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이들이 ‘내가 보는 콘텐츠는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콘텐츠에는 “불공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콘텐츠는 보지 않겠다” “이 콘텐츠를 보면 나도 불공정한 사람”이라고 댓글을 달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구독 취소 운동을 이끈다. 구독 취소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플랫폼은 이용자가 구독한 채널에 올라온 영상을 자동으로 보여주는 유튜브다. 지난해 7월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제품을 리뷰한다며 올린 영상이 수천만 원의 광고비를 받은 간접광고(PPL)임이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았다. 86만 명이었던 구독자 수는 1주일 만에 7만 명 정도가 줄었다. 한혜연은 사과 영상을 올렸지만 “이제 언니 영상 안 볼래요” “오늘부터 구독 취소”라는 댓글이 달렸고 채널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구독경제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넷플릭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8월 공개된 영화 ‘큐티스(Cuties)’가 여자아이들을 성상품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미국에서 구독 취소 운동이 벌어졌다.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에 올라온 넷플릭스 구독 취소 청원에 65만 명이 동의했다. 넷플릭스 구독 취소율이 한때 일일 평균 해지율보다 8배 이상 높아졌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도 ‘#Cancelnetflix’ ‘#boycottnetflix’ 같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수만 개 올라왔다. 방송사만큼 영향력이 커졌지만 아직 규제가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는 OTT 기업으로선 이용자들의 높아진 윤리적 잣대를 스스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OTT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Z세대가 OTT의 주 소비자인 만큼 구독 취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며 “구독 취소 운동이 커지면 정부가 심의 권한을 높이는 등 규제를 할 근거가 돼 이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유료 콘텐츠를 쉽게 구독 취소하도록 돕는 규정이 생기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튜브는 지난해 8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아 프리미엄 서비스를 중도에 해지하면 남은 기간을 환불해주기로 했다. 넷플릭스도 금융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해지할 때 1개월 단위로만 환불을 해주던 현재 제도를 1일 단위로 바꿀 것으로 보인다. 빠르게 변화하는 콘텐츠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윤리성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미래정책팀장은 “구독을 한 이용자는 언제든 구독을 취소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에 이용자를 잡기 위한 보다 꼼꼼하고 깐깐한 콘텐츠를 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콘텐츠로 사회적 가치를 소비하는 흐름은 계속해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스무 살 독학으로 만화 공부를 시작했다. 10년 넘게 만화출판사에 원고를 보냈고 수없이 퇴짜를 맞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07년 사회인들의 삶과 야구를 다룬 ‘퍼펙트게임’으로 겨우 데뷔에 성공했다. 외계 물체와의 사투를 그린 ‘미확인 거주 물체’, 불혹의 야구선수의 도전을 다룬 ‘나처럼 던져봐’ 등을 통해 조금씩 입지를 쌓았다. OCN 최고 시청률(9.3%)을 연일 경신하고 있는 ‘경이로운 소문’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장이(본명 장성용·44·사진) 웹툰 작가 이야기다. 그의 작품은 따뜻하다. 가족, 이웃과의 상생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주인공은 혼자가 아니라 주변 사람과 함께 고난을 이겨낸다. 경이로운 소문의 악귀 사냥꾼 카운터 4명(소문 가모탁 추매옥 도하나) 역시 서로 도와가며 악귀를 물리쳐 나간다. 장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 툭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울보 히어로’ 주인공 소문은 어떻게 탄생했나. “원작가인 내가 눈물이 많다. 하하하. 사연 많고, 마음 여린 캐릭터인 소문이 견디기 어려운 순간과 사건을 마주하고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은 눈물이 터져 나올 때라고 생각한다. 주저앉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면 울보라도 좋다. 소문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런 정서적 교감이 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대해 스스로 ‘어려운 일선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에게 보내는 찬사’라고 했다. “가족과 사람을 중심에 두고 캐릭터와 이야기를 구상한다. 어떤 장르를 선택하더라도 그것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취재를 다니다 보면 어려운 일선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자주 목격한다. 희망이 없으면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희로애락이 있고, 제 작품이 있다.” ―악귀 사냥꾼 ‘카운터’를 생각해낸 계기가 궁금하다. “경이로운 소문보다 앞서 구상한 작품을 살짝 비틀다 ‘카운터’라는 소재가 파생됐다. 가족과 이웃이라는 단순한 것에서 출발했다.”(주인공 소문은 죽은 부모를 만나기 위해 악귀 사냥꾼 역할을 받아들이고, 생판 남이던 다른 카운터들과 함께 악귀를 물리쳐 나간다.) ―원작 웹툰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 무엇인가. “카운터를 돕는 최장물과 악귀 지청신의 대결에 특히 애착이 간다. 소문과 부모님 이야기를 다룬 클라이맥스도 그렇다.” ―배우 조병규가 주인공 소문 역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들었다. “아내와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조병규 배우를 처음 마주했다. 그때 소문 역으로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얼굴과 연기에서 많은 점을 봤기 때문이다. 어둠과 밝음이 있었고, 진중함과 유쾌함이 보였다. 세월로 만들어갈 인간미가 보여 어떻게 각색하더라도 소문 역을 잘 구현할 거라 믿었다.” ―드라마로 제작되며 웹툰과 설정이 바뀌기도 했다. “드라마로 만드는 건 각색과 재해석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바뀌지 않아야 될 것이 있다면 작품명과 주인공들의 이름 정도다. 작품 설정과 에피소드 생략, 대사의 변화에 대해서 제작진에 요청한 일은 없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이기에 각색의 권한을 드렸고, 저는 오롯이 시청자의 입장에서 즐겁게 작품을 만나고 있다.” ―준비 중인 작품이 궁금하다. “경이로운 소문 시즌3의 연재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차기작도 여전히 한국적인 색채와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흥미로운 설정과 캐릭터의 힘이 실린 작품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가치관과 불일치하면 구독 취소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달 17일 ‘콘텐츠 산업 2020년 결산과 2021년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콘텐츠 업계 키워드 중 하나로 신조어 ‘가불구취’를 선정했다. 콘텐츠 이용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행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콘텐츠는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뜻이다. 가치관은 물론 윤리나 취향과 어긋나는 콘텐츠 및 채널은 구독 취소라는 방식으로 가차 없이 쳐낸다. 이런 현상은 특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구독 취소는 콘텐츠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여기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주도한다. 사회적 차별, 정치적 올바름, 환경적 가치를 중요시여기는 이들이 ‘내가 보는 콘텐츠는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콘텐츠에는 “불공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콘텐츠는 보지 않겠다”, “이 콘텐츠를 보면 나도 불공정한 사람”이라고 댓글을 달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구독 취소 운동을 이끈다. 구독 취소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플랫폼은 이용자가 구독한 채널에 올라온 영상을 자동으로 보여주는 유튜브다. 지난해 7월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제품을 리뷰한다며 올린 영상이 수천만 원의 광고비를 받은 간접광고(PPL)임이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았다. 86만 명이었던 구독자 수는 1주일 만에 7만 명 정도가 줄었다. 한혜연은 사과 영상을 올렸지만 “이제 언니 영상 안 볼래요” “오늘부터 구독 취소”라는 댓글이 달렸고 채널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구독경제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넷플릭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8월 공개된 영화 ‘큐티스(Cuties)’가 여자아이들을 성 상품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미국에서 구독 취소 운동이 벌어졌다.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에 올라온 넷플릭스 구독 취소 청원에 65만 명이 동의했다. 넷플릭스 구독 취소율이 한 때 일일 평균 해지율보다 8배 이상 높아졌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도 ‘#Cancelnetflix’ ‘#boycottnetflix’ 같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수만 개 올라왔다. 방송사만큼 영향력이 커졌지만 아직 규제가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는 OTT 기업으로선 이용자들의 높아진 윤리적 잣대를 스스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OTT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Z세대가 OTT의 주 소비자인만큼 구독 취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며 “구독 취소 운동이 커지면 정부가 심의 권한을 높이는 등 규제를 할 근거가 돼 이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유료 콘텐츠를 쉽게 구독 취소하도록 돕는 규정이 생기고 있는 것도 이같은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튜브는 지난해 8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아 프리미엄 서비스를 중도에 해지하면 남은 기간을 환불해주기로 했다. 넷플릭스도 금융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해지할 때 1개월 단위로만 환불을 해주던 현재 제도를 1일 단위로 바꿀 것으로 보인다. 빠르게 변화하는 콘텐츠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윤리성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미래정책팀장은 “구독을 한 이용자는 언제든 구독을 취소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에 이용자를 잡기 위한 보다 꼼꼼하고 깐깐한 콘텐츠를 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콘텐츠로 사회적 가치를 소비하는 흐름은 계속해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