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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과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A 씨(28)는 외부 장학금 중 하나인 ‘선한인재지원금’에 매학기 지원해 매달 30만 원의 장학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원할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일종의 ‘가난 증명’을 요구하는 지원서 양식 때문이다. 서울대 각 단과대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신청서를 보면 지원자는 경제적으로 절박한 정도를 선택해야 한다. A B C 세 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A는 ‘매우 절박’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어 자기소개란에는 ‘해당 등급을 선택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쓰라’고 돼있다. A 씨는 “건강보험료 월 납입액도 쓰게 돼 있어 지원자의 경제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데 굳이 절박함에 대해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12월 이런 관행에 대해 교육부 장관과 시도 교육감에게 개선을 권고했다. 당시 인권위는 “신청 학생의 가정·경제적 상황은 객관적인 공적 자료를 통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판이 잇따르자 서울대는 비로소 진화에 나섰다. 서울대 장학복지과 관계자는 “해당 장학금은 개별 단과대와 외부 재단이 직접 교류해 지급하는 것으로 대학본부를 통하지 않아 신청 양식을 알지 못했다”며 “재단 측에 학생들의 민원을 전달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김하경 whatsup@donga.com·강동웅 기자}

“사람도 진화된 동물의 형태일 뿐입니다. 수의과대에서 하려는 것도 사람을 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수의과대 스코필드홀. 이곳에서 열린 서울대 동물병원 응급의료센터 개소 기념 세미나에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권역외상센터장·사진)가 특강 강사로 나섰다. 이 교수는 “경기 남부권에서 버스 사고가 발생해 10명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제가 오늘 여기에 오느라 제 밑에 있는 동료들이 비행 출동을 나갔다”며 늘 급박한 응급의료 현실에 대한 설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 교수는 자신의 오랜 외상센터 수술 경험을 바탕으로 동물 응급 치료 시 고려해야 할 부분을 조언했다. 그는 “몸에서 가장 질긴 부위가 피부이기 때문에 내장이 터져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며 “밖에서 볼 땐 별문제가 없어 보여도 신체 내부에서 내장이 터지는 게 제일 심각한 문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응급의료센터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24시간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어렵고 힘들 때 시니어 스태프들이 정면에 서야 한다. 그래야 (응급의료센터가) 오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의 사례를 많이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 심각한 얼굴로 회의만 하는 걸로는 응급의료가 절대 완성되지 않는다”고 당부했다. 그는 외과 수술 수업 때 동물을 수술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사람과 동물이 참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또 “사람이면 말이 통하겠지만 동물은 그렇지 못하니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을 잘 받아 동물들과 소통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보다는 동물을 편한 마음으로 치료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좀 죄스러운 부분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스코필드홀 좌석 190석은 가득 찼다. 청중은 노트북을 꺼내 이 교수의 말을 메모하고 강연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서울대 수의학과 졸업생 김하영 씨(30·여)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응급환자를 대하는 자세는 다 똑같다는 이국종 교수의 말에 공감한다. 수의학계도 체계적인 응급의료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하경 whatsup@donga.com·강동웅 기자}
살아생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딸의 얼굴을 마주한 노부부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기억에도 없는 부모의 얼굴을 처음 본 딸도 펑펑 울었다. 잃어버릴 당시 세 살이었던 딸은 어느덧 중년이 돼 있었다. 17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한 노부부가 54년 전 잃어버린 딸 A 씨(57·여)를 13일 만났다. 노부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딸을 직접 키우지 못하고 전남 함평에 사는 친할아버지에게 맡겼다. 그러다가 1965년 할아버지가 손녀를 데리고 서울로 오던 도중 A 씨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당시 A 씨 나이는 세 살이었다. A 씨 부모는 딸을 찾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으나 당시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찾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A 씨는 서울의 한 영아원에 맡겨졌고 2년 뒤인 1967년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A 씨 어머니(78)는 죽기 전에 딸의 얼굴을 꼭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에 2014년 7월 서울 구로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하고 자신의 유전자 정보도 등록했다. 그러나 딸의 유전자 정보가 등록돼 있지 않아 모녀 간 상봉은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A 씨가 “친부모를 찾고 싶다”며 한국을 찾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A 씨는 자신이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인근 서대문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은 A 씨의 유전자를 채취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중앙입양원 실종아동전문기관이 보유한 유전자와 대조해줄 것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두 유전자가 흡사하나 친자관계라고 확인할 수는 없다’고 통보했다. 이에 경찰은 A 씨의 아버지 유전자를 새로 채취해 대조를 의뢰했고, 결국 올해 1월 ‘99.99% 친자관계’라는 결과를 받았다. A 씨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노부부와 A 씨는 상봉 다음 날인 14일부터 국내 여행을 함께 했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A 씨는 곧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친부모와 계속 연락하기로 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치매 환자나 치매 전조 증상을 보이는 노인이 초미세먼지(PM2.5)를 많이 들이마실 경우 망상, 환각, 불안 등의 증상이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가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치매 증상을 빠른 속도로 악화시킨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이혜원 교수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재명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명우재 교수 등이 참여한 합동연구팀이 경도 인지장애나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 6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확인한 것이다. 연구 대상 환자들의 평균 나이는 74세다. 이 논문은 환경역학 분야에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학술지인 ‘사이언스 오브 더 토털 인바이런먼트’ 최근호 온라인판에 2일 게재됐다. ‘초미세먼지 노출이 인지장애 환자의 신경정신행동 증상 악화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이 논문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한 달 사이 m³당 평균 8.3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높아졌을 때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정신행동 증상(비정상적인 반복 행동, 불안, 망상, 환각 등)은 한 달 전보다 17.1%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의 전조 증상인 경도 인지장애가 있는 노인의 정신행동 증상은 같은 기간 40.7%나 나빠졌다. 미세먼지 노출 기간을 더 늘려 두 달 동안 초미세먼지 농도가 평균 7.9μg 상승한 경우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정신행동 증상은 20.7%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 노인들이 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되면 피해가 더 커지는 것이다. 합동연구팀은 보호자를 대상으로 환자들의 정신행동 증상 악화 정도를 설문조사하는 방식(NPI)으로 이런 결과를 확인했다. NPI는 치매 환자들의 변화를 평가할 때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이다. 연구에 참여한 이혜원 교수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데는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든다. 미세먼지가 심해지면 치매 환자들의 정신행동 증상이 더 빠르게 악화돼 이들을 돌보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도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상묵아, (서울대 합격을) 축하한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보니 대학 때까지가 공부고 실력이지, 그 이후엔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한 것 같더라.” 4일 오전 서울대 입학식이 열린 서울 관악구 서울대 종합체육관. 단상 위에서 전동휠체어에 앉아있던 중년의 한 남성이 자신의 축사 순서가 되자 38년 전 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57)였다. 서울대 81학번인 이 교수는 신입생 후배들을 향해 “여러분들도 (아버지 말이) 무슨 말인지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며 “나이 마흔이 되면 내가 서울대를 나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밑에 몇 명의 직원을 두고 어떤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 교수는 ‘학문의 중요성’을 자신의 사고 경험과 함께 얘기해 입학생과 학부모 등 청중을 숙연하게 했다. 그는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지 1년 6개월여 만인 2006년 학생들과 함께 연구 목적으로 미국을 찾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이 교수는 전신이 마비됐다. 이 교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되면 ‘산다는 게 무엇인가’처럼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며 “내가 지금까지 배운 학문적 소양을 통해 스스로 답해 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교수는 전공 분야가 아닌 철학과 역사를 포함해 여러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축사를 하는 10여 분 동안 자신이 미리 써온 원고를 한 번도 보지 않고 학생들과 눈을 마주쳐가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입학생 이형용 씨(20·경영학과)는 이 교수의 축사에 대해 “친근하게 말씀해주셔서 좋았다”며 “공부가 대학 입학이나 취업 준비 등 어떤 목적을 위해서만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오늘 축사를 통해 인생 전반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1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는 신입생들에게 조언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는 “멘토링은 자칫하면 ‘이미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이 영화를 보려고 들어가는 사람에게 줄거리를 얘기해 주는 것’과 같다”며 “직접 겪어보고 문제에 부닥쳐 봐야 차별화된 사람이 될 수 있다. 실수를 했을 때 더 많이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이 교수는 입학식 축사를 위해 3일 귀국했다가 4일 저녁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김하경 whatsup@donga.com·강동웅 기자}
서울시 기초의원들이 회의장 안팎에서 다투다 경찰에 입건되거나 동료 의원을 고소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졌다. 최근 경북 예천군의원의 해외 여행가이드 폭행, 강북구의원의 동장 폭행에 이어 이제는 기초의원들끼리 서로 시비를 자초하고 있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동작구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신민희 의원(39·여)과 자유한국당 소속 최민규 의원(48)을 각각 재물손괴와 폭행 혐의로 지난달 28일 체포해 조사한 뒤 1일 새벽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두 의원은 28일 오후 11시 45분 동작구청 주차장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주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말다툼을 하면서 신 의원이 최 의원의 제네시스 차량을 발로 차자 최 의원은 신 의원을 손으로 밀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왜 서로 다퉜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다만 “사소한 말다툼이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지난달 27일에는 서울 송파구의회 민주당 소속 김장환 의원(39)이 본회의 도중 한국당 이배철 의원(67)에게 의사봉으로 어깨 등을 맞았다며 이 의원을 송파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과 송파구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열린 본회의에서 일부 안건 상정에 반대하며 한국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이를 저지하려는 민주당 의원들과 한국당 의원들이 실랑이하다 두 의원이 충돌했다는 것. 이 의원은 “때리지는 않고 (때리는) 시늉만 했다”며 “맞고소를 비롯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김하경 whatsup@donga.com·김은지 기자}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종합체육관. 73회 학위수여식이 열린 이곳에서 관현악단의 연주로 방탄소년단(BTS) 노래 ‘DNA’가 흘러나오자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47·서울대 미학과 91학번)가 연단에 올랐다. 방 대표가 자기소개를 시작하자 체육관에 있던 졸업생 1200명과 학부모들은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나는 부정할 수 없는 기성세대다. 나도 모르게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며 축사를 시작했다. 방 대표는 자신이 음악 프로듀서가 된 계기에 대해 “아무리 돌이켜봐도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다”며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다”고 했다. 방 대표는 자신의 ‘성정(性情)’과 ‘행복’에 대해 얘기하면서 ‘분노’와 ‘화’를 여러 차례 언급해 관심을 끌었다. 그는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 안일’에 분노했고,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냈다”고 했다. 또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음악산업 세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분노가 커졌다”며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화를 내는 것이 내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졸업생 강수연 씨(26·여·디자인학부)는 “많은 사람이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반대의 이야기를 하니 더 와 닿았다. 나를 좀 더 다듬어 취업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방 대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여러분을 그런 상황에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지금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며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말고 무엇이 진짜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고민하라”고도 했다.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연예계 인사가 축사를 한 것은 방 대표가 처음이다. 김하경 whatsup@donga.com·강동웅 기자}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종합체육관. 73회 학위수여식이 열린 이 곳에서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방탄소년단(BTS) 노래 ‘DNA’가 흘러나오자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47·서울대 미학과 91학번)가 연단에 올랐다. 방 대표가 자기소개를 시작하자 체육관에 있던 졸업생 1200명과 학부모들은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TV 음악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을 향해 날카롭고 직설적인 표현을 던졌던 방 대표지만 이날은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나는 부정할 수 없는 기성세대다. 나도 모르게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며 축사를 시작했다. 방 대표는 자신이 음악 프로듀서가 된 계기에 대해 “아무리 돌이켜봐도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다”며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다”고 했다. 방 대표는 자신의 행복관에 대해 얘기하면서 ‘분노’와 ‘화’를 언급해 관심을 끌었다. 그는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불만 많은 사람’이었다”며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음악산업 세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분노가 커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화를 내는 것이 내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라고 고 덧붙였다. 졸업생 강수연 씨(26·여·디자인학부)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반대의 이야기를 하니 더 와 닿았다. 나를 좀 더 다듬어 취업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라고 말했다. 방 대표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어떨 때 행복한 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여러분을 그런 상황에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지금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며 “남이 만들어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말라”고도 했다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연예계 인사가 축사를 한 것은 방 대표가 처음이다. 김하경기자 whatsup@donga.com}
서울대의 한 단과대가 비정규직 직원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금지하는 내부 문건까지 작성해 지침으로 내리는 등 학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무책임한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는 “학교 측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고용계약을 고수하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자연과학대는 지난해 11월 20일 ‘자연과학대학 행정실 간접비직원 무기계약 전환 기준’ 문건을 만들어 단과대 직원들에게 배포했다. 본보가 이 문건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해당 공문에는 ‘(비정규직의 경우) 무기계약은 정년까지 원칙적으로 전환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년 넘게 근무한 계약직 근로자의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한 현행 비정규직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조치다. 현재 서울대 직원 3000여 명 중 정규직은 3분의 1인 약 1000명이다. 나머지는 무기계약직 또는 비정규직이다. 무기계약직은 고용이 보장되지만 정규직보다 임금과 복지 등 처우가 열악하다. 비정규직은 고용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측은 “무기계약직 전환 심사를 할 때 위원회를 거치라는 것이지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지만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전국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등에 따르면 학교 측은 위 지침을 근거로 비정규직 직원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회피해 왔다. 학교 측은 해당 공문을 배포한 뒤인 지난해 11월 29일 비정규직 행정직 직원 A 씨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학교 측은 당초 A 씨에게 “구성원과의 화합에 문제가 있다”는 사유를 댔다가 노조가 항의하자 “성과 평가가 낮다”고 말을 바꿨다고 한다. 노조 관계자는 “학교 측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안 해주려고 합당한 사유도 없이 근무한 지 2년이 되기 전 해고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노조의 항의가 계속되자 “A 씨 채용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뒤늦게 입장을 바꿨다. 서울대는 비정규직 직원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서울대는 언어교육원에 근무하는 한국어 강사들을 시간강사로 간주해 6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있다. 시간강사는 강의한 시간만큼 수당을 받는 비정규직 신분이다. 학교로선 최저임금을 지급할 때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달 이 한국어 강사들에 대해 “시간강사로 볼 수 없어 2년 넘게 근무 시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서울대는 기숙사에서 행정업무와 학생 지도를 담당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도 ‘전문계약직’으로 채용해 매년 근로계약을 맺고 있다. 통상적으로 전문계약직은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이나 상위 25% 소득자를 고용할 때 맺는 계약 형태다. 김하경 whatsup@donga.com·강동웅 기자}

1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이 건물 4층에 있는 소회의실 문이 열리자 푸른 넥타이에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한 노인이 들어섰다. 그는 평소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에 의지했지만 이날만은 “직접 걸어보겠다”며 용기를 냈다. 그는 느리지만 한 발씩 뚜벅뚜벅 걸음을 내디뎠다. 회의실 벽면에는 ‘해동첨단공학기술원 건립 및 운영기금 출연 협약식’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서울대가 500억 원의 기부금을 기탁받는 자리였다. 기부자는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90)이었다.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김 회장은 이날 1시간가량 차를 타고 특별한 외출을 했다. 그는 협약식에서 “건물 짓는 데 그치지 말고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로 채워 달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48학번)를 졸업한 김 회장은 그동안 꾸준히 모교에 기부해왔다. 이날 기탁한 500억 원을 포함해 누적 기부액이 657억 원에 이른다. 서울대가 개인한테서 받은 기부금으로는 역대 가장 많은 액수다. 김 회장의 기부금은 그동안 학내 건물 10여 동을 짓는 데 쓰였다. 전날인 17일 김 회장은 차국헌 서울대 공과대학장을 만난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다. 차 학장은 “김 회장이 뼈저리게 가난했던 젊은 시절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한이 맺힌 듯 눈물을 흘렸다. ‘어려운 학생들이 기회가 없으면 안 된다’고 당부하셨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1948년 서울대 공대에 합격한 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첫 학기만 마치고 휴학했다. 호텔 웨이터 등 궂은일을 하며 1년 넘게 등록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1950년 6·25전쟁이 터져 복학하지 못했다. 학도병으로 입대한 김 회장은 3년간의 전쟁이 멈춘 뒤 학교로 돌아왔다. 김 회장은 1972년 전자부품 업체인 대덕전자를 창업한 이후 기술인력 양성에 집중 투자했다. 회사는 성장을 거듭해 반도체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인 인쇄회로기판을 생산하는 연매출 1조 원대 중견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가 주 거래처다. 김 회장은 1991년 공학인재 양성을 위해 해동과학문화재단을 세워 본격적인 기부 인생을 시작했다. 전국 20여 개 공대에 도서관을 짓고 재단이 제정한 해동상을 받은 이공계 연구자 282명에게는 연구비를 지원했다. 지원 금액이 450억 원에 달한다. 김 회장은 한국 전자산업 기술 개발에 헌신한 공로로 2010년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가 수여하는 인촌상을 받았다. 당시 김 회장은 “일본을 오가며 기술을 배웠는데 그때 고생은 말로 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많은 과학인재가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 회장은 상금으로 받은 1억 원도 “의학 연구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고려대 의대에 기부했다. 김 회장은 정작 자신의 삶에선 절제를 보여줬다. 김 회장 곁을 20년간 지켜온 박성한 해동과학문화재단 이사는 “김 회장은 옷차림이 수수해서 푸근한 인상의 동네 할아버지로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차 학장도 “김 회장은 기부금 관련 행사를 열 때마다 ‘화려하게 하지 말고 그 돈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도우라’고 하신다”고 전했다. 대덕전자 직원 등 주변 사람들은 김 회장에 대해 ‘따뜻하고 합리적인 리더’라고 했다. 직원 A 씨는 “회장님은 공장에서 직원들과 식사도 자주 하고 경조사 때마다 직접 불러서 격려해주셨다”고 말했다. 9년 차 직원 B 씨(34)는 “회장님은 ‘엔지니어로서 한 군데 갇혀 있지 말고 틀을 깨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했다. 김 회장이 입원해 있는 병원 관계자는 “김 회장은 한참 연하인 간병인에게 늘 존댓말을 쓴다. 간병인이 씻는 것을 도와줄 때는 ‘고맙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한다”고 전했다. 창업 이후 30여 년간 서울대 공대에 157억 원을 기부해온 김 회장은 지난해 10월 “내가 구순이 넘어 얼마나 더 살게 될지 모르니 이제는 제대로 된 기부를 하고 싶다. 200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학교 측에 밝혀왔다. 김 회장은 미국 금융회사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최고경영자(CEO)가 매사추세츠공대(MIT)에 3000억여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올 1월 접한 뒤 기부 금액을 두 배가 넘는 500억 원으로 올렸다고 한다. 차 학장은 “김 회장은 건물이 완공된 후에도 계속 관심을 갖고 ‘시설 운영을 더 열심히 해 달라’고 조언하신다. 모교에 대한 애정을 넘어 국가의 공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하경 whatsup@donga.com·강동웅·사지원 기자}
수행비서 성폭행 등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4)의 부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사건은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불륜 사건이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안 전 지사의 부인 민주원 씨(55)는 13일 오후 11시 50분경 자신의 페이스북에 ‘불륜을 저지른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김지은 씨가 아니라 저와 제 아이들’이라고 주장했다. ‘김지은 씨는 안희정 씨와 불륜을 저지르고도 그를 성폭행범으로 고소했다’고도 했다. 민 씨는 2심 재판부가 충남 보령의 한 콘도인 상화원에서 벌어진 사건과 관련해 김 씨의 거짓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집중 비판했다. 민 씨는 지난해 1심 재판에서 “2017년 8월 주한중국대사 부부와 저녁 만찬을 한 뒤 상화원 2층 객실에서 잠을 자는데 김 씨가 오전 4시경 침실로 들어와 우리 부부가 잠자는 모습을 내려다봤다”고 증언했다. 1심은 민 씨의 증언을 받아들여 김 씨가 성폭행 피해자로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부부의 침실에 들어간 사실이 없다”는 김 씨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김 씨는 재판에서 “숙소 2층 계단에 앉아 깜박 졸다 일어나 숙소를 찾아가려다 안 전 지사와 눈이 마주쳤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2심 재판부는 판결 당시 “설령 민 씨가 주장하는 사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김 씨를 성폭력 피해자로 볼 수 없다거나,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만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 씨는 이날 페이스북에 상화원 객실 내부 사진과 동영상까지 올리며 ‘내가 묵었던 침대는 3면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문 뒤에서 침대에 누운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가해자 가족의 글은 2심 재판부에서 다른 객관적 사실 등에 의해 배척된 바 있다. 성폭력 가해자 가족에 의한 2차 가해 행위를 중단하길 바란다”고 밝혔다.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지난달 초 지방의 한 사립유치원에 신입 교사로 채용된 A 씨(22·여)의 정식 출근일은 다음 달 1일이다. 하지만 A 씨는 이미 지난달 초부터 출근하기 시작해 한 달 보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오전 8시 반에 출근해 오후 6시 반까지 일한다. 그런데 A 씨가 두 달 일하고 이달 말 받게 될 돈은 교통비 50만 원이 전부다. 사실상 무급인 셈이다. 올해 최저시급(8350원)을 기준으로 하면 A 씨는 두 달 치 급여로 300만 원 가까이를 받아야 한다. A 씨는 “출근 3일째 되던 날 원장이 ‘3월 1일 전까지는 교통비만 준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A 씨는 따지지 못했다. 원장이 채용을 취소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유치원 신입 교사들의 정식 임용일은 대개 3월 1일이다. 하지만 A 씨처럼 임용 한두 달 전부터 사실상 무급으로 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유치원 원장들이 업무 인수인계와 빠른 적응 등을 이유로 내세우며 ‘무급 출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의 한 사립유치원에 채용된 B 씨(25·여)도 당시 정식 임용되기 전에 졸업식과 신학기 준비 업무를 하면서 한 달 넘게 일했다. B 씨 역시 교통비만 받았다. B 씨는 “신입 교사이다 보니 적응 기간이 필요한 건 맞지만 받는 돈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앞으로 계속 출근해야 할 직장이라 돈 얘기를 꺼내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국공립 어린이집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다음 달 1일 광역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 정식 채용될 예정인 C 씨는 18일부터 출근해야 한다. 원장은 지난달 초 C 씨에게 합격을 통보하면서 ‘교육 차원의 출근이기 때문에 당연히 무급’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들은 신입 교사들의 빠른 업무 적응을 위해 ‘임용 전 출근’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신입 교사들이 ‘임용 전 무급 출근’ 요구를 거부하기는 힘들다. 원장들이 ‘무급 출근’을 거부한 교사 명단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공유한다는 소문 때문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무급 출근에 대해 “임금 체불, 최저임금법 위반,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립 교원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적용 대상이다. 신입 교사라도 근로를 했다면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치원 교사들의 취업난이 무급 출근 관행을 없애기 힘든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유치원 교사 자격증 취득자는 한 해 1만 명이 넘는다. 전국 사립·공립 유치원 교사 수가 4만5255명(2018년 4월 기준)임을 감안하면 전체 유치원 교사의 4분의 1에 가까운 예비 교사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강동웅 leper@donga.com·김하경 기자}

오세정 서울대 총장(사진)은 학생 선발부터 교육까지 길게 보고 학교 방침을 세우는 교육위원회가 서울대에 필요하다고 12일 말했다. 오 총장은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총장 임기와 관계없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입학정책과 교육 전체를 생각하는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부의 (국가)교육위원회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밝혔다. 교육위원회를 통해 서울대가 어떤 인재를 선발하고, 어떻게 키워야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오 총장은 “서울대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주어진 답을 잘 아는 사람, 정답을 잘 맞히는 사람”이라며 “이보다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 혼자 잘하는 게 아니라 같이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 총장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나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뽑는 데에만 그치지 말고 이들이 더 잘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리학과를 보면 과학고 졸업생과 일반고 졸업생의 준비가 많이 다르다”며 “여러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의 백그라운드에 따라 준비가 필요한 학생은 준비할 수 있는 과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 과목을 학생 수준별로 개설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오 총장은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해서는 “우리는 상당히 객관성을 갖고 하지만 국민은 어떻게 뽑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며 “투명성을 높이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 총장은 이날 타결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파업에 대해서는 “노조는 파업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학생을 볼모로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2017년 시흥캠퍼스 추진에 반대하며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의 징계 철회와 관련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풀어 가겠다”고 했다.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면서 중앙도서관 난방을 끊었던 서울대 기계·전기 담당 무기계약직 직원들이 나흘 만에 난방을 재개했다. 그러나 다른 5개 건물은 여전히 난방을 넣지 않고 있다. 서울대에 따르면 7일 오후 끊겼던 서울대 중앙도서관 난방이 11일 오후 2시 다시 들어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소속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관계자는 “학생들이 파업을 지지하자 학교가 전향적으로 나와 노조도 학생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선택했다”며 중앙도서관 난방 중단 해제를 밝혔다. 노조는 이날 학교 측과 협상을 통해 임금과 복지 개선 관련 실무합의안을 도출했다. 양측은 12일 합의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학생들을 볼모로 한 파업 방식에 비판 여론이 높아진 것도 협상 타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날 오전 서울대 총학생회는 “노조의 요구가 최소한의 생활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요구임을 알리기 위해 ‘서울대 시설관리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겠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서울대생 인터넷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는 ‘안 좋은 선례로 남을 것’ ‘학생회가 노조한테 손쉽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 노조는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파업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등의 비판이 적지 않았다.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고려대의 경쟁 상대는 다른 대학들이 아니라 삼성, 현대차, SK, LG 같은 대기업입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64)은 지난 4년 동안 고려대를 ‘지식 전수’가 아닌 ‘지식 생산’의 근거지로 변화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고 밝혔다. 현재를 ‘21세기 문명사적 전환기’로 규정한 그는 “더 이상 대학이 20세기 패러다임에 머물면 안 되고 외부와의 네트워크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학협력으로 외부에서 연간 5000억 원 이상이 고려대로 들어오는 것을 그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4년의 총장 임기를 마치고 28일 퇴임하는 염 총장을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 인촌 챔버에서 만나 한국 대학이 가야 할 길과 고려대의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대학을 ‘지식의 놀이동산’으로 바꿔야” ‘상대평가 폐지, 출석체크 폐지, 시험감독 폐지.’ 염 총장은 2015년 3월 취임 직후 이와 같은 ‘3무(無) 정책’을 추진했다. 기존 대학 수업의 기본 틀을 깨는 파격이었다. 학생들이 평가에 얽매여 좋은 성적을 받기에 유리한 과목만 골라 수강하는 폐해를 없애려는 목적이었다.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수동적으로 교수 강의를 듣고 외워 성적을 높이는 데만 매달리는 학생 다수에게 ‘더 이상 그렇게는 안 된다’는 자극을 주고 싶었다는 게 염 총장의 설명이다. ‘성적 우수 장학금’을 없애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목적이었다. 그는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서 충격을 주고 화두를 던지는 것이 제가 한 일이다. 그중 일부는 열매를 맺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진행형이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대학을 ‘지식의 놀이동산’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대기업 위주의 취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염 총장은 고려대 안에 컨테이너를 쌓아 학생들이 모여 토론하는 공간인 ‘파이빌(π-Ville)’을 만들었다. 또 학생의 아이디어를 직접 제품으로 생산하는 ‘엑스개라지(X-Garage)’도 세웠다. 염 총장은 “파이빌에선 다른 대학에 다니는 학생과 졸업생들까지 포함해 60여 개 팀이 돌아가면서 최장 두 달 단위로 활동한다”고 밝혔다. 그는 고려대가 국방부와 공동 운영하는 사이버국방학과를 취업 패러다임 전환의 성공 사례로 제시했다. 국방부가 사이버국방학과 학생들에게 4년간 학비 전액과 매달 생활비를 50만 원씩 지급하며 사이버 보안 전문 장교를 육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염 총장은 “전국 최고 수준인 사이버국방학과 학생들은 세계해커대회에서 2차례 우승하며 우수성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가 파격적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의 근거로 등록금 환원율을 제시했다. 2017학년도 학생 1인당 교육비로 2286만 원을 써서 등록금 환원율이 241%라고 설명했다. 학생이 낸 등록금의 2.4배 이상을 교육에 투자했다는 의미다. 염 총장은 “이젠 대학이 등록금을 받고 가르치기만 하는 시대가 아니라 새 시대를 이끌 지식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디네이터 있어야 SKY 간다? 완벽한 허구” 염 총장은 최근 종영한 최상위권 대학 입시 문제를 다룬 TV 드라마를 언급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입시 정보가 유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액을 들여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해 성적과 봉사활동 등의 스펙을 철저하게 관리해주면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수시모집을 통해 이른바 ‘SKY(서울-고려-연세)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완벽한 허구’라는 것이다. 염 총장은 “학원가에서 코디네이터 나오는 드라마 내용의 70%가 사실이라고 한다는데 학원들이 학부모들을 겁줘서 끌고 가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코디네이터 고용 등에 들어갈 거액을 쓸 수 없는 집안의 학생이 고려대에 많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고려대 재학생 2만여 명의 가정 소득 수준을 0∼10분위로 구분했을 때 2700여 명이 기초생활수급자(소득 0분위)와 차상위계층(1분위), 차차상위계층(2분위)이다. 3분위까지가 전체의 22%”라고 밝혔다. 또 그는 ‘강남 학생들이 고려대에 많이 들어간다’는 소문도 오해라고 했다. 2019학년도 입시에서 수시모집으로 고려대에 합격한 3469명의 출신 고교가 1000개가 넘는다는 것이다. 염 총장은 “다양성을 중시해 신입생을 선발하다 보니 강남에선 오히려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는다며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염 총장은 수험생과 학부모가 사교육 업체를 찾아가 거액을 들여 입시 컨설팅을 받는 비정상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고려대는 지난해 국내 대학 최초로 일대일 대면 입시 상담이 상시 가능한 진로진학상담센터를 열었다. 염 총장은 “대학이 직접 ‘우리는 이런 학생을 뽑는다’며 상담에 나서자 작년에만 전국 각지에서 3000명 넘는 학생이 상담을 받았다”고 말했다. 염 총장은 퇴임 후 당분간 자유롭게 책을 쓸 계획이라고 했다. 또 고등학교의 대안학교 같은 ‘대안대학’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구상도 밝혔다. 염 총장은 “지식의 절반이 10년 안에 의미가 없어질 만큼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며 “전통 학문 대신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대안대학으로 기존 대학에 충격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조동주 djc@donga.com·김하경 기자}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대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자신만의 이익이 아닌 사회 전체의 안녕을 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 왔는지 진솔하게 자문해야 합니다.” 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오세정 신임 서울대 총장(66)은 통렬한 자성론으로 취임사를 시작했다. 오 총장은 “많은 사람이 서울대 위기론을 말하는데 근본적으로 서울대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외부 여건을 탓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자성이 먼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지성의 권위를 뿌리부터 흔드는 부적절한 행위들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대 교수들의 표절 등 연구 부정행위나 성추행 논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으며 위기론이 더욱 확산되는 현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오 총장은 “좋은 대학에 대한 통념을 바꿔 나가겠다”며 “좋은 대학이란 뛰어난 학생을 잘 뽑는 대학이 아니라 잘 가르쳐 뛰어난 인재를 만드는 대학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분야에서 양적으로 많은 업적을 내는 것보다 새로운 분야를 여는 근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연구가 필요한 때”라면서 “논문의 수나 인용횟수를 세는 계량적 평가의 틀에서 벗어나(겠다)”고 밝혀 교수 임용 및 재계약 방식의 변화를 예고했다. 오 총장이 풀어야 할 학내 문제는 적지 않다. 이날 문화관 앞에서는 전날 파업에 돌입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소속 직원 등이 요구사항이 담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2017년 시흥캠퍼스 추진을 반대하며 서울대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인 학생들에 대한 전임 총장의 징계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취임식에는 이현재 조완규 선우중호 이기준 정운찬 이장무 오연천 성낙인 씨 등 서울대 역대 총장들을 비롯해 교직원과 학생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오 총장은 2016년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의원이 됐지만 지난해 10월 총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김하경 whatsup@donga.com·강동웅 기자}
서울대에서 기계와 전기를 담당하는 무기계약직 직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이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학교 건물 세 곳의 난방 가동을 멈추면서 애꿎은 학생들만 추위에 떨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소속 전국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소속 직원들은 7일 낮 12시 반경부터 서울대 행정관과 중앙도서관, 제1파워플랜트에 진입해 농성하는 과정에서 각 건물의 기계실 업무를 중단했다. 서울대 기계·전기분회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접 고용됐지만 서울대는 2년 전 용역회사 시절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중소기업 수준 제조업 시중 노임단가 적용 △성과급, 명절휴가비, 복지포인트 등의 차별 없는 적용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오세정 서울대 신임 총장이 이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농성하겠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영하 0.2도로 최근 들어 가장 추웠던 이날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일부 학생은 난방 온도를 높여달라고 경비실에 요구하기도 했다. 오후 4시경 중앙도서관 정문에 ‘중앙도서관 본관 및 관정관(신관) 전 구역 난방 공급이 중단됐다’는 안내문이 붙고 방송이 나오고서야 학생들은 파업 사실을 알게 됐다. 파업에 들어간 직원들이 복귀하지 않는 한 중앙도서관 난방을 켤 방법은 없다. 총장과 직원들이 근무하는 행정관은 개별난방 시스템이 있어 난방을 유지할 수 있다. 학생들은 학교 측과 직원 갈등에 피해를 입어 아쉽다는 분위기다. 정모 씨(27·자유전공학부)는 “파업이 장기화되면 그만큼 학생 피해도 커질 것 같다. 너무 추워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워 집에 가야 하나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인 유학생 A 씨(22·여)도 “문제가 있다면 학교 측과 협의해 풀어야지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행동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오세정 총장이 취임 전 일어난 일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 원칙을 가지고 최대한 대화에 노력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강동웅 leper@donga.com·김하경 기자}

“여보, 아이가 열이 나요. 학교에 못 보내겠어. 감기가 심한 거 같아.” “잠시만, 당신은 오전에 회의가 있죠? 내가 바로 회사에 전화할게요.” 스웨덴 스톡홀름 남서쪽 툴링에에 거주하는 아사 플로드마르크(39·여), 프레드리크 플로드마르크 씨(37) 부부는 오전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맞벌이였지만 여덟 살 난 초등학생 아들의 돌발 상황에서도 평온했다. 이 상황이 한국의 맞벌이 부부에게 닥쳤다면 어땠을까. 아마 급하게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친척이나 이웃을 수소문하느라 진땀을 빼거나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선진국의 워라밸 제도와 문화를 찾아 나선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지난해 11월 16일 찾은 스톡홀름 부부의 집에서는 아이 맡길 곳을 찾느라 조급해하는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재택근무 이날 오전 아사 씨는 감기를 앓던 아들 욘의 몸 상태가 학교에 가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자 별다른 고민 없이 직장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아이 때문에 재택근무를 합니다.” 아사 씨는 “사무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일한다고 상사가 눈치를 주거나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진 않는다”고 말했다. 아사 씨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자신의 집 부엌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문서를 작성하며 틈틈이 욘을 돌봤다. 욘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자 아사 씨는 욘이 자신 옆에서 아이패드로 학습용 게임을 하도록 거들었다. 욘을 낳기 전까지 이 부부는 ‘워라밸’이란 단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워라밸은 일상에서 공기처럼 당연했기 때문이다. 오전 9시에 회사로 출근해 8시간가량 일하고 난 뒤에는 영화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자유롭게 여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욘과 딸 마야(5)가 태어나면서부터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자녀들을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보낸 후에야 출근했다. 퇴근 후에 육아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날처럼 근무시간에 아이가 아파 돌봐야 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직원의 워라밸이 생산성 향상 이들의 워라밸을 지켜준 것은 ‘유연근무제’였다. 프레드리크 씨는 “회사가 어디에서 몇 시간 일했는지보다 성과를 더 중요시하는 덕분에 시간을 융통성 있게 조절해 근무도 하고 개인 용무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부가 일하는 스웨덴 트럭·버스 제조업체 스카니아(SCANIA)에는 ‘워라밸’이라는 이름을 붙인 별도의 제도는 없다. 그럼에도 여러 제도가 워라밸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회사 건물에 체육관이 설치돼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고용해 필요한 경우 심리치료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스웨덴의 많은 기업이 유연근무제를 적극 활용한다. 직원들이 출퇴근 시간을 알아서 정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재택근무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다. 일주일에 40시간 근무가 원칙이지만 일이 많은 주에는 좀 더 일할 수 있다. 그 대신 덜 바쁜 때에 적게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스카니아 HR 담당자 소피아 발네 씨는 “상사가 직원들과 계속 소통하면서 어떤 업무 환경이 불만족스럽고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파악한다”며 “개인의 삶을 희생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복지와 기업의 생산성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인식이 스웨덴 사회 전체에 확산돼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이레네 벤네모 스웨덴 고용노동부 차관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 고용주들은 법을 어기거나 사회 가치에 역행하는 이미지를 받게 되면 인재를 모으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이 때문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직원들의 워라밸을 지켜주려 한다”고 말했다.○ 성평등 문화로 워라밸 공고 스웨덴 성평등 문화는 워라밸 실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스웨덴인들은 가사노동과 육아에서 공평하게 역할분담을 해 부부 모두 워라밸을 실현하려 노력한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지난해 스웨덴은 149개국 중 세 번째로 젠더 격차(성평등 수준)가 작다. 반면 한국은 115위에 그쳤다. 같은 달 12일 기자는 말뫼의 프리다 스벤손(33·여), 다비드 요한손 씨(36) 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다비드 씨가 딸 에스트리드(4)에게 옷을 입히며 유치원에 데려다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딸의 등원은 늘 다비드 씨가 맡는다. 프리다 씨보다 30분 늦게 출근을 해 아침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부는 철저히 가사를 분담한다. 딸의 하원과 저녁식사 준비는 남편보다 두 시간 일찍 퇴근하는 프리다 씨가 맡는다. 오후 6시경 귀가한 다비드 씨는 프리다 씨가 준비한 저녁을 빠르게 먹었다. 이어 딸과 블록 쌓기를 했다. 책을 읽어주며 에스트리드를 재우는 것도 그의 몫이다. “어릴 적 내 어머니는 직장생활과 가사를 둘 다 하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셨죠. 나 홀로 가사를 도맡았다면 워라밸은커녕 일을 하는 것조차 꿈도 못 꿨을 거예요.”(프리다 씨) 딸이 오후 8시경 잠들자 다비드 씨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부의 여유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역할 분담을 통해 효율적으로 가사를 마치려 한다”며 “부부가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워라밸”이라고 했다. ▼‘부부 분리 과세’ 도입, 맞벌이 장점 극대화… 육아지원 장치 마련도▼스웨덴의 ‘워라밸 정책’개개인의 인식 변화나 기업의 노력으로만 스웨덴 워라밸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근로자를 보호하고 육아 부담을 줄여주려는 사회보장법과 노동법 등 다양한 정책이 있었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은 ‘근로자’가 가진다. 스웨덴 노동법상 법정 주당 근로시간은 기본적으로 40시간이지만 근로자가 판단했을 때 일이 많은 주에는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주는 50시간을 일하고 그 다음 주는 30시간만 일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고용주가 근로자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또 연장근무는 연 200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 과거 스웨덴에서 이뤄진 세 가지 개혁은 워라밸 실현에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리아 아른홀름 자유당 당비서(원내대표)이자 전 성평등 장관은 △부부 분리 과세 △육아휴직 △공공보육서비스를 스웨덴 워라밸 정착의 공신으로 꼽았다. 스웨덴은 맞벌이 부부의 소득은 합산해 누진세를 매겼다. 1971년 ‘부부 분리 과세’ 제도가 도입돼 맞벌이 부부의 감세 효과가 커지자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다. 또 스웨덴에서는 아이 1명당 총 480일의 육아휴직 중 90일은 아버지가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되도록 해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했다. 공립 유치원을 통해 고품질 교육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아른홀름 전 장관은 “세 가지 개혁은 육아 부담을 줄이고 부모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어떤 점이 보완돼야 워라밸이 실현될까. 전문가들은 유연근무제가 워라밸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유연근무제가 확산되려면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 서로 신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대 행정학과 조경호 교수는 “한국은 위계가 강하다”며 “조직 문화가 유연해지고, 조직 구조가 직무 중심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과 금현섭 교수는 “육아 문제를 여성에게 전가한 채 여성만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게 되면 오히려 이 제도를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며 “남성도 유연근무제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톡홀름·말뫼=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여보. 아이가 열이 나요. 학교에 못 보내겠어. 감기가 심한 거 같아.” “잠시만. 당신은 오전에 회의가 있죠? 내가 바로 회사에 전화할게요.” 스웨덴 스톡홀름 남서쪽 툴링에(Tullinge)에 거주하는 아사 플로드마크 씨(39·여), 프레드릭 플로드마크 씨(37) 부부는 오전 9시까지 출근해야하는 맞벌이였지만 8살 난 초등학생 아들의 돌발 상황에서도 평온했다. 이 상황이 한국의 맞벌이 부부에게 닥쳤다면 어땠을까. 아마 급하게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친척이나 이웃을 수소문하느라 진땀을 빼거나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선진국의 워라밸 제도와 문화를 찾아 나선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지난해 11월 16일 찾은 스톡홀름 부부의 집에서는 아이 맡길 곳을 찾느라 조급해하는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재택근무 이날 오전 아사 씨는 감기를 앓던 아들 욘 군(8)의 몸 상태가 학교에 가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자 별다른 고민 없이 직장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아이 때문에 재택근무를 합니다.”(아사 씨) 아사 씨는 “사무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일한다고 상사가 눈치를 주거나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사 씨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자신의 집 부엌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문서를 작성하며 틈틈이 욘을 돌봤다. 욘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자 아사 씨는 욘이 자신의 옆에서 아이패드로 학습용 게임을 하도록 거들었다. 욘을 낳기 전까지 이들 부부는 ‘워라밸’이란 단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워라밸은 일상에서 공기처럼 당연했기 때문이다. 오전 9시에 회사로 출근해 8시간가량 일하고 난 뒤에는 영화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자유롭게 여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첫 아이인 욘과 둘째 마야(5·여)가 태어나면서부터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자녀들을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보낸 후에야 출근했다. 퇴근 후에 육아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날처럼 근무시간에 아이가 아프게 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직원의 워라밸이 생산성 향상 이들의 워라밸을 지켜준 것은 ‘유연근무제’였다. 프레드릭 씨는 “회사가 어디에서 몇 시간 일했는지 보다 성과를 더 중요시한 덕분에 시간을 융통성 있게 조절해 근무도 하고 개인 용무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가 일하는 스웨덴 트럭·버스 제조업체 스카니아(SCANIA)에는 ‘워라밸’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 별도의 제도는 없다. 그럼에도 여러 제도가 워라밸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회사 건물에 체육관이 설치돼있다. 정신과 의사를 고용해 필요한 경우 심리치료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스웨덴의 많은 기업들이 ‘유연근무제’를 적극 활용한다. 직원들이 출퇴근 시간을 알아서 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재택근무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다. 일주일에 40시간 근무가 원칙이지만 일이 많은 주에는 좀 더 일할 수 있다. 대신 덜 바쁜 때에 적게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스카니아 HR 담당자 소피아 발네 씨는 “상사가 직원들과 계속 소통하면서 어떤 업무 환경이 불만족스럽고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파악한다”며 “개인의 삶을 희생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복지와 기업의 생산성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인식이 스웨덴 사회 전체에 환산돼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아이린 베네보 스웨덴 고용노동부 차관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 고용주들은 법을 어기거나 사회 가치에 역행하는 이미지를 받게 되면 인재를 모으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이 때문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직원들의 워라밸을 잘 지켜주려 한다”라고 말했다.● 성평등 문화로 워라밸 공고 스웨덴 성평등 문화는 워라밸 실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스웨덴인들은 가사노동과 육아에서 공평하게 역할분담을 해 부부 모두 워라밸을 실현하려 노력한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지난해 스웨덴은 149개국 중 세 번째로 젠더 격차(성평등 수준)가 작다. 반면 한국은 115위에 그쳤다. 같은 달 12일 기자는 말뫼의 프리다 스벤슨 씨(33·여), 데이빗 요한슨 씨(36) 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데이빗 씨가 딸 에스트리드 양(4)에게 옷을 입히며 유치원에 데려다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딸의 등원은 늘 데이빗 씨가 맡는다. 프리다 씨보다 30분 늦게 출근을 해 아침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 부부는 철저히 가사를 분담한다. 에스트리드 양의 하원과 저녁식사 준비는 남편보다 두 시간 일찍 퇴근하는 프리다 씨가 맡았다. 오후 6시경 귀가한 데이빗 씨는 프리다 씨가 준비한 저녁을 빠르게 먹었다. 이어 에스트리드 양과 블록 쌓기를 했다. 책을 읽어주며 딸을 재우는 것도 그의 몫이다. “어릴 적 내 어머니는 직장생활과 가사를 둘 다 하다가 결국 일을 그만 두고 전업주부가 되셨죠. 나 홀로 가사를 도맡았다면 워라밸은 커녕 일을 하는 것조차 꿈도 못 꿨을 거예요.”(프라다 씨) 에스트리드 양이 오후 8시 경 잠들자 데이빗 씨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부의 여유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역할 분담을 통해 효율적으로 가사 일을 마치려 한다”며 “부부가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워라밸”이라고 했다. ▼ 스웨덴 워라밸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실현될 수 있는 이유는? ▼개개인의 인식 변화나 기업의 노력으로만 스웨덴 워라밸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근로자를 보호하고 육아부담을 줄여주려는 사회보장법과 노동법 등 다양한 정책이 있었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는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은 ‘근로자’가 가진다. 스웨덴 노동법 상 법정 주당 근로시간은 기본적으로 40시간이지만 근로자가 판단했을 때 일이 많은 주에는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주는 50시간을 일하고 그 다음주는 30시간만 일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고용주가 근로자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또 연장근무는 연 200시간을 넘어서면 안 된다. 과거 스웨덴에서 이뤄졌던 세 가지 개혁은 워라밸 실현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리아 안홀름 자유당 당비서(원내대표)이자 전 성평등 장관은 △부부 분리 과세 △육아휴직 △공공보육서비스가 스웨덴 워라밸 정착의 공신으로 꼽았다. 스웨덴은 맞벌이 부부의 소득은 합산해 누진적으로 소득을 매겼다. 하지만 1971년 ‘부부 분리 과세’ 제도가 도입돼 맞벌이 부부의 감세효과가 커지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었다. 또 스웨덴에서는 아이 1명 당 총 480일의 육아휴직 중 90일은 아버지가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되도록 해 남성육아휴직을 활성화시켰다. 공립 유치원을 통해 고품질 교육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안홀름 전 장관은 “세 가지 개혁은 육아 부담을 줄이고 부모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어떤 점이 보완돼야 워라밸이 실현될까. 전문가들도 유연근무제가 워라밸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유연근무제를 확산되기 위해서는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 서로 신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조경호 교수는 “한국은 위계가 강하다”며 “조직 문화가 유연해지고, 조직 구조가 직무 중심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과 금현섭 교수는 “육아 문제가 여성에게 전가된 채 여성만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게 되면 오히려 유연근무제를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며 “남성도 유연근무제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톡홀름·말뫼=김하경기자 whatsup@donga.com}
세팍타크로 여자 국가대표 선수가 “고교 시절 운동부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빙상과 유도에서 시작된 체육계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태권도에 이어 다른 종목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팍타크로 여자 국가대표 최지나 선수(26)는 21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충남 서천여고 3학년이던 2011년 8월 초 학교 세팍타크로 감독이던 A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최 선수에 따르면 A 씨는 사건 당일 밤 막차를 타고 귀가하려던 최 선수에게 “집에 데려다 줄 테니 운동을 더 하라”며 붙잡았다. 이후 A 씨가 최 선수를 자신의 차에 태워 가다가 최 선수 집 동네 야산 부근에 주차한 뒤 몸을 끌어안았다는 것. 최 선수는 “A 씨가 차에서 ‘외국인들이 하는 인사법을 알려주겠다’며 나에게 키스를 했다. 깜깜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 계속 저항했다가는 더 큰일을 당할 것 같은 공포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 선수는 그날 이후 7년 5개월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털어놨다. 최 선수는 “성추행을 당한 뒤 집에 와 철수세미로 입을 박박 문질렀다. 피가 나는데도 아픈지 몰랐다. 요즘도 A 씨와 체격이나 머리 모양이 비슷한 남자를 보면 갑자기 숨이 막힌다”고 했다. 그는 A 씨의 보복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A 씨는 취재팀에 “당시 차를 잠깐 세우고 안아서 토닥토닥 해주던 중 얼굴을 돌리면서 입술이 닿았다. 성추행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 선수는 16일 A 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조만간 A 씨를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최 선수는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백승우 채널A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