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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백인이고, 저절로 뒤따르는 많은 특권들을 누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게 특권이란 걸 자신들은 모르지. 특권을 누리지 않은 날이 그들 삶에는 없었거든. … 그 사람들은 자기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건 마치 물고기한테 물에 관해 묻는 것하고 같은 거야. 물고기는 물에 둘러싸여 있어. … 하지만 물고기는 이렇게 말할걸. ‘물이라뇨? 당신이 말하는 물이란 뭔가요?’ 아주 종종 그게 진실이야. 시각장애인 백인 할머니와 10대 흑인 소년의 차이, 우정, 연대를 그린 소설.}

당신은 미신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병원 엘리베이터에 4층이 없는 걸 보고는 ‘그럴 수 있다’며 넘기고, 새해가 시작되자 신년 운세를 확인한다. 이름을 쓸 때 빨간 펜을 꺼리며, 등산로 주변 돌탑에 ‘소원을 들어 달라’며 돌을 쌓아 올린다. 유튜브에선 미신에 빠져 “지구는 평평하다”고 외치는 이들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당신이 얼마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든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미신에 둘러싸여 산다. 저자는 “우리를 속이는 건 점쟁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며 “우린 지금도 기꺼이 속는다”고 말한다. 사주를 믿지 않지만 직접 1년간 스승 밑에서 사주를 공부했던 저자는 앞서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등을 펴내며 매번 눈길을 끄는 이야기로 독자와 만났다. 이번에는 ‘근거 없는 믿음’인 미신에 천착해 초기 인류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미신의 역사,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미신”이라는 농경문화도 별다른 근거 없이 인류가 ‘풍요’를 믿었기에 지속됐다고 주장한다. 점성술에 빠져 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자신의 손금으로 운명을 점쳐 본 알렉산더 대왕, 심령술에 빠졌던 작가 코넌 도일 등 미신에 심취한 유명인 사례도 흥미롭다. 책의 모든 내용을 역사적 관점에서 엄격하게 재단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저자는 결국 좋든 나쁘든 미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자신과 인류의 숙명을 일깨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앞에서 보던 무용을 위에서 내려보면 어떤 모습일까. 바닥은 무대 세트가 되고, 무용수의 그림자는 또 하나의 무용수가 된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 무대가 멈춰 선 지금, 코로나19는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마저 바꿔 놨다. 드론을 이용해 피사체를 담아내는 호주 출신의 사진작가 브래드 월스(28·사진)를 서면을 통해 만났다. 사진가로서의 걸어온 길을 그는 한마디로 “완벽한 러브 스토리”라고 표현했다. 어려서부터 ‘사진 덕후’였던 그는 친구의 카메라를 빌려 이것저것 찍고 실험하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제품 디자이너이자 사진가로 4년간 활동하다 2017년 우연히 드론 항공사진을 접했다. 강한 이끌림에 그는 바로 드론을 주문했고, 새 여정이 시작됐다. 야외에서 주로 작업하던 그의 시선은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는 “무용수에게 촬영 방식을 이해시키는 게 꽤 어려웠지만 노력 끝에 드론과 교감하는 무용수의 모습과 그림자까지 담았다”고 했다. 이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빈 공간과 여백을 강조하고 사진가(드론)와 피사체의 ‘거리 두기’까지 가능한 예술은 이 시대에 적합하다”며 웃었다. 지난해 ‘2020 드론 사진 콘테스트’에서 테니스 선수를 촬영한 사진으로 수상한 그는 “각도, 방향, 관점 등 모든 것에 호기심 가득한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방역당국이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를 17일까지 2주 연장하면서 공연 중단 기간을 연장하거나 아예 조기 폐막을 결정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앞서 약 한 달간 공연을 중단했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고스트’ 등의 제작사 측은 4일 중단 기간을 연장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해 11월부터 공연한 ‘몬테크리스토’의 EMK뮤지컬컴퍼니는 공연 중단 기간을 17일까지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고스트’의 신시컴퍼니 역시 지난해 12월 5일부터 멈춘 공연 중단을 2주 더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일시 중단, 재개를 반복하며 관객들께 지속적 혼란과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호프’ ‘젠틀맨스 가이드’ 등의 제작사 측 역시 중단 연장 결정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막 이후 호평받았던 프랑스 오리지널팀의 내한공연 ‘노트르담 드 파리’는 당초 17일까지 계획한 공연을 2주 앞당겨 최종 폐막했다. 그간 이 작품은 2.5단계를 적용한 ‘두 칸 띄어 앉기’ 정책에 따라 객석 좌석의 30%만 판매하면서도 공연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기간 연장 방침이 결정되면서 더 이상 적자를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작품 관계자는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공연을 이어왔으나 2.5단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적자를 감당할 수가 없어 부득이하게 공연을 종결했다”고 설명했다. 거리 두기 2.5단계 방역지침이 공연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객석의 30%가량만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공연 수익을 기대하기는커녕 출연료, 대관료, 관리비, 인건비 등을 충당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는 유례없는 위기에 처한 공연계의 ‘두 칸 띄어 앉기’ 지침을 재고해 달라는 호소문을 지난해 12월 30일 발표했다. 신춘수 추진위원장은 “2.5단계 정부 방침 상황 속에서 공연을 강행하는 부담이 크고 정책 변동으로 인한 좌석 운용이 달라짐에 따라 막대한 차질이 발생한다”며 “좌석 두 칸 띄어 앉기 조치는 재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별생각 없이 유튜브에 접속한다. 평소 안 보던 소재의 콘텐츠가 추천 영상으로 뜬다. ‘어, 이게 뭐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일단 클릭해 본다. 영상을 좀 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궁금해진다. 댓글 창을 연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오늘도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이 영상으로 끌고 왔다.” “무엇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나.” 사용자에게 최적화한 ‘취향 저격’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용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1020세대들은 알고리즘을 따라 노출되는 광고나 편향적 콘텐츠에서 벗어날 방법을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피해 가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알고리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나 방법이다. 포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상의 알고리즘은 이용 기록, 개인 정보를 토대로 맞춤형 콘텐츠와 광고를 노출하는 시스템이자 규칙 모음이다. 유튜브, 넷플릭스를 즐겨 보는 대학생 임정민 씨(27)는 매번 시청 기록, 검색 기록을 삭제한다. 알고리즘이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기록을 지우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봤던 콘텐츠나 비슷한 내용만 추천하는 알고리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물 안에 갇히는 듯한 느낌이 싫다”고 했다. 기록 삭제마저 번거롭다는 이정현 씨(21)는 아예 로그아웃 상태에서만 유튜브를 이용한다. 그는 “섬네일 형상만 비슷하거나 제가 본 영상 제목과 몇몇 단어가 겹친다는 이유로 관련 없는 영상이 자주 보인다”며 “뜬금없는 추천 영상을 모은 ‘#유튜브알고리즘’ 게시물은 유머 코드가 될 정도”라고 했다. 넷플릭스의 경우 메인 화면에서 노출하는 인기 콘텐츠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하는 장르를 직접 검색하는 방법도 공유되고 있다. 특정 장르가 플랫폼에서 갖는 고유 ‘시크릿 코드’를 PC 주소창 마지막 부분에 직접 타이핑해 입력하는 것. 괴물 영화는 ‘947’, 범죄 다큐는 ‘9875’라는 코드를 갖는다. 임 씨는 “기존 시청 패턴에서 벗어나 새 장르를 보기에 유용하다”고 했다. 알고리즘을 역이용하기도 한다. 계정을 여러 가지로 구분한 뒤 상황에 따라 필요한 계정에 접속하는 방식이다. 유튜브용 계정을 학습, 게임, 음악 듣기용 등으로 나눠 관리한다는 한 고등학생은 “공부할 때 사용하는 부계정은 뜬금없는 광고나 콘텐츠가 적어 유용하다”고 했다. 이마저도 번거로울 땐 추천 영상 목록이나 광고를 아예 노출하지 않도록 작동하는 별도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도 이들이 공유하는 ‘꿀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자가 추천 알고리즘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구글, 넷플릭스 등 거대 기업들이 영업비밀인 알고리즘의 구체적 원리를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 개발팀에서 근무한 인공지능학자 기욤 샤슬로는 한 인터뷰에서 “알고리즘의 최우선 순위는 시청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과 저널리즘’ 보고서에서는 약 3만 개 영상을 분석해 특정 패턴을 파악했다. 오세욱 선임연구위원은 “유튜브 알고리즘은 전통적 언론사, 제목이 길거나 주요 키워드가 많은 콘텐츠, 생중계 영상에 대한 선호가 있었다”면서도 “어떤 데이터를 중요하게 보는지는 여전히 공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년 가까이 계속된 팬데믹은 일상의 모든 걸 바꿨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우린 이 질긴 싸움이 여전히 낯설다. 더구나 바이러스의 정체를 거의 파악하지 못했던 초창기, 각국 정부 사회 개인은 바이러스와 맞닥뜨린 모든 상황을 알아서 해결하고 생존해야만 했다. 혼돈스러운 당시 실상을 보여준 에세이 두 권이 출간됐다. 각각 중국과 한국에서 미지의 바이러스와 싸우던 우리의 서툰 모습이 담겼다.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기에 이 거친 기록들은 더없이 소중하다. “人不傳人 可控可防(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으며,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 전염병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퍼지던 2019년 12월 중국의 우한, 이 여덟 개의 글자가 당국 지침으로 내려졌다. 의문의 폐렴 환자가 속출하던 중에도 당국은 대중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인지, 뭔가 은폐하려는 의도인지 이 입장을 한동안 고수했다. 하지만 당시 우한에 머물며 사태를 지켜본 중국 작가 팡팡(方方·65·사진)은 “이 여덟 글자가 도시를 피와 눈물로 적셨다”고 털어놓는다.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됐던 중국 우한의 참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록한 팡팡 작가의 일기가 출간됐다. 공장 노동자 출신인 저자는 하층민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며 중국 신사실주의 대표작가로 불리던 인물. 1월 말 그가 거주하던 우한이 봉쇄되자 SNS에 도시에 펼쳐진 풍경을 신랄하게 적기 시작했다. 국수주의적 중국인 누리꾼의 비난과 정부 검열은 그가 감내할 몫이었다. “이 비극은 인재(人災)”라며 치부를 세계에 알리는 그가 곱게 비칠 리 없었다. ‘매국노’ ‘반역자’라는 오명이 붙었지만 그를 응원하는 이들은 그를 ‘중국의 산소호흡기’라 불렀다. 그를 지지한 중국 지식인은 정부 조사를 받고, 그의 SNS 계정이 차단·삭제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는 3월 24일까지 봉쇄 62일 차의 기록을 이어갔다.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공포감과 고통에 휩싸인 시민들의 모습이다. 마스크가 없어 사용한 마스크를 빨아 다리미로 다려 쓰고, 혼자 남겨진 아이는 굶어 죽었다. 비닐에 싸인 시신들이 매일 트럭에 실렸고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에는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병상이 부족하자 암 환자인 딸을 우한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한 어머니의 절규도 눈물을 적시게 한다. 한국에서 ‘우한’은 곧 ‘폐렴’ ‘감염병의 온상’이라는 원망스럽고 혐오적 시각이 가득한 곳. 하지만 그곳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있었음을 일깨운다. ‘부산 47번’ 확진자로 알려진 박현 부산대 기계공학과 겸임교수(48)는 확진 이후 230일간의 기록을 남겼다. 그가 ‘부산47’이라는 SNS 페이지를 통해 세상에 꺼내 놓은 투병기와 후유증 극복기는 환자, 시민들에게 큰 울림과 용기를 줬다. 저자는 방역에 밀려 놓치고 있는 환자의 후유증 관리에 대해 깊게 논하며 방역 당국을 질타한다. 바이러스를 이겨낸 뒤에도 여전히 호흡곤란, 두통, 불면증으로 신음한 그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외신 보도, 해외 연구 결과를 직접 찾아 적었다. 그는 “체계적인 후유증 치료를 미뤄 만성질환 환자가 되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며 “코로나19에 정말 완치가 있는지” 되묻는다. 매일 수십 번씩 오가는 그의 육체적, 정신적 질곡에도 그는 끝내 희망을 얘기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머릿속으로 그린 끔찍한 이야기가 더 끔찍한 영상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면 어떤 기분일까.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돼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처 장르물(괴물이 등장하는 작품) ‘스위트홈’의 원작 웹툰 스토리작가 김칸비(본명 김민태·38)는 “괴물들이 영상으로 잘 구현될지 걱정됐다. 마침내 탄생한 드라마 속 괴물들은 제 기준에서 황송할 정도로 생생하고 훌륭하다”며 기뻐했다. 김 작가가 구상한 네이버웹툰 ‘스위트홈’의 서사는 빼어난 특수효과에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더해져 국산 크리처 장르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원래 오피스텔 내 ‘식인(食人) 파티’를 떠올리며 작품을 구상했지만, 소재의 연령상 제한 때문에 설정을 바꿔야 했다”며 “바이러스와 인류 멸망이라는 클리셰(예술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에 충실하면서도 군데군데 이를 깨는 재미 요소를 배치했다”는 창작 배경을 밝혔다. 이어 “원작과 드라마의 결말이 전혀 다른 점도 또 다른 흥미 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현재 웹툰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고정 팬 층을 보유한 인기 작가 중 하나다. 최근까지 네이버웹툰 ‘돼지우리’와 ‘스위트홈’을 동시 집필했으며, 이전에 집필한 ‘후레자식’ ‘언노운 코드’ ‘멜로 홀릭’ 등도 영화, 게임, 드라마 등으로 제작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스위트홈’은 최근 ‘2020 오늘의 우리만화’로 꼽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도 수상한 작품. 어딘가 괴기스러운 ‘김칸비표’ 세계관은 독자를 빨아들이는 묘한 마력이 있다. 한국에서 그간 크리처 장르는 철저히 비주류로 인식돼 왔다. 이 장르가 웹툰을 넘어 드라마로 제작된 건 처음이다. 김 작가는 이에 “운 좋게 얻어 걸렸다. 저는 뭔가 트렌디한 작품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드라마 제작자와의 회의에서도 그가 뱉은 첫마디는 “이걸 왜?”였다. “아포칼립스(인류 멸망) 소재 웹툰은 이미 많았거든요. 다만 괴물이 냉철하고 차갑게 파괴하기만 하는 모습들이 아쉬웠어요. 인간 욕망이 투영된 괴물들을 통해 어딘가 뜨거운 괴물과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김 작가는 드라마 출연 배우들로 인한 행운도 있다고 했다. “촬영 시작 때는 신인이던 배우들이 지금은 스타가 됐죠. 그동안 ‘삽질’ 많이 했으니 신이 ‘고생했다’며 제게 주는 동정의 선물이랄까요.” 한때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그는 현재 전업 스토리 작가로 활동한다. 3, 4일 안에 큰 얼개를 짜고 그림 작가와 디테일을 채운다. 그는 “황영찬 작가의 친근한 그림체가 ‘스위트홈’ 인기에 한몫했다”고 했다. 그는 ‘스위트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주인공 라이벌인 ‘이은혁’과 괴물에게 유일하게 맞서는 일반인 ‘편상욱’ 등을 꼽았다. “괴물들은 싫어한다”고 덧붙였다. “스릴러 작가지만 전 공포물을 싫어하고 겁도 많아요. 특히 동양 귀신은 너무 무서워요.”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아이들의 코로나19 우울을 달랠 ‘2021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가 내년 1월 6일부터 24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펼쳐진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는 ‘내가 너와 함께할게(I‘m still with you)’를 슬로건으로 정하고 대표 공연 9편과 뉴챌린지 공연 4편을 엄선했다고 밝혔다. 대표 공연 9편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한다. ‘수상한 외갓집’(1월 6, 7일)을 시작으로 ‘덤블링의 고수’(1월 6, 7일), ‘벨벳 토끼’(1월 9, 10일), ‘탄생의 신, 삼신’(1월 9, 10일), ‘여우와 돌고래’(1월 13, 14일) 등이 차례로 관객과 만난다. 오프라인 공연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과 종로 아이들극장에서, 온라인 공연은 네이버TV 후원 라이브에서 볼 수 있다. 뉴챌린지 공연 4편은 1월 13일부터 23일까지 오프라인(종로 아이들극장)으로 진행한다. 그림자 연희극 ‘나는 기와입니다’(1월 13, 14일), 인형극 ‘옛날 어느 섬에서’(1월 15, 16일) 등 4편을 공연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매순간 올바른 결정만 내리는 완벽한 삶, 너무 지루하지 않나요?” 평범한 고교 화학교사가 마약을 만들며 ‘막 나가기’ 시작하더니 이번엔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아들을 빼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며 ‘더 막 나가는’ 판사가 되어 돌아왔다.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막 나가기)’ 주인공으로 세계적 스타덤에 오른 미국 유명 배우 브라이언 크랜스턴(64)이 신작 시리즈 ‘유어 오너(Your Honor·존경하는 재판장님)’로 팬들과 만난다. 신작 공개를 앞두고 최근 각국 언론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인생 모든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는 완전무결함은 지루하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약한 존재”라고 답했다. 이어 “배우에게도 극한으로 치닫는 배역이 매력적이고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요즘 시청자들도 막가는 캐릭터를 보고 싶어 돈과 에너지를 더 투자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1980년부터 배우, 성우, 극작가, 연출가로 활동해온 그는 현재 미국에서 손꼽히는 배우다. 브레이킹 배드와 함께 영화 ‘트럼보’ ‘업사이드’ ‘인필트레이터’ 등으로 국내에도 얼굴을 알렸다. 저음으로 깊게 깔리는 ‘동굴 목소리’에 복잡다단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력이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옴짝달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을 때 뿜어내는 광적인 연기가 그의 트레이드마크. 폐암 말기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화학교사 ‘월터 화이트’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마약을 제조하는 과정을 그린 ‘브레이킹 배드’로 그는 미국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네 차례나 거머쥐었다. 이 작품은 유명 리뷰 사이트에서 99점이라는 역대 최고점을 받아 2014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2018년엔 영국 공연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올리비에 어워즈’의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스라엘 원작 드라마 ‘Kvodo’를 각색한 신작 ‘유어 오너’에서 그는 법을 수호하는 강직한 판사이자 아들의 뺑소니 범죄를 은폐하는 아버지 ‘마이클 데지아토’ 역할을 맡았다. 크랜스턴은 매순간 악마의 장단에 춤을 추듯 끊임없이 흔들리고 동요한다. 그는 “오랜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건 이 모순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줄거리 때문”이라며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뭐든 하려는 부모 마음은 전 세계 누구나 똑같을 것”이라고 했다. 급박한 위기에 연속적으로 맞닥뜨리는 배역을 그는 “충동적” “즉각적”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모든 범죄를 치밀하게 계획하는 (브레이킹 배드의) ‘빌런(악역)’과는 정반대”라고 했다. 극 중 그의 아들이 저지른 사고의 사망자는 공교롭게도 지역 조직폭력배 보스의 아들.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아들에 대한 보복 살인이 불 보듯 뻔해 모든 걸 내려놓고 경찰에 자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아들이 사망 사고를 냈다고 고백한 뒤 경찰 포위망이 좁혀오고, 다른 누군가는 눈에 불을 켜고 범인을 찾고 있어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오로지 내 자식을 지키겠다는 생각 하나뿐, 모든 건 충동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결국 극 중 그는 한 흑인 청년이 범죄 누명을 쓰고 체포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다. 괴로워하는 아들에게 철저히 입단속을 시키며 교묘히 법리를 이용한다. 경찰은 진상 조사보다는 무고한 희생양에게 억지 자백을 강요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미국 사회의 사법 정의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그는 작품 돌입 전 철저히 캐릭터를 연구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판사 배역을 위해 몇 주 동안 극의 배경인 미국 뉴올리언스 일대 법원을 들락거리며 재판을 지켜봤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우려도 했었지만 모두 엄숙하게 재판을 지켜보고 있어서 마음 편히 캐릭터 분석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판사는 우주의 지배자 같았고, 누군가는 무대에 선 배우 같았다”면서 “부자에게 호의적이고 빈자에게 가혹한 법정 내 불평등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 7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그는 혈장을 기증하고 현장에 복귀해 촬영을 마쳤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 연습하느라 상대역 대사가 들리지 않아 ‘방금 뭐라고?’를 수십 번씩 반복해야 했다”며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전 지구적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런 때일수록 ‘유어 오너’ 같은 순수한 오락물은 더 짜릿할 겁니다!”. 이 시리즈는 쿠팡의 OTT 서비스 ‘쿠팡플레이’를 통해 내년 1월 말 국내 단독 공개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동아연극상이 나침반을 잡아줬죠. 나는 배우를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올 연말 연극 ‘더 드레서’에서 ‘선생님(Sir)’ 역할을 맡아 희끗희끗 수염을 기른 신사. 52년 전 연극 ‘학마을 사람들’ 무대에 올랐던 순간을 떠올리자 얼굴에 소년 같은 미소가 스쳤다. 그 이듬해인 1969년, 12세 소년이던 송승환(63)은 동아연극상 역대 최연소 특별상을 받으며 배우를 꿈꾼다. “공부에 지장 없는 범위에서 연극을 계속하겠다”던 수상 소감의 약속을 지켜냈다. 배우, 연출자, 제작사 대표로 그는 늘 극장 안팎에 머물렀다. 최근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만난 그는 “어른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고 동아연극상까지 받으니 그게 좋다는 건 알았다. 아마 내 인생은 그때 정해졌을 수도 있다”며 웃었다. 1965년 KBS라디오 어린이연속극으로 연기에 첫발을 들인 그는 어느 날 선배 성우 연기자들의 손에 이끌려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 갔다. 거기서 극단 ‘광장’을 창립한 원로 연출가 고(故) 이진순 선생을 만난다. 대뜸 ‘학마을 사람들’ 아역 복남을 맡게 됐으니 내일부터 연습실에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 첫 연극이었다. “마냥 재밌고 신났죠. 대사에 관객이 웃고 울고 바로 반응이 오잖아요. 첫 공연 끝나고 커튼콜에서 박수 치는 관객들을 보는데 짜릿했어요.” 연출자 겸 배우로 ‘극단 76단’ 생활을 하며 방송 연기자를 하는 동시에 라디오 MC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이후 공연 제작에 흥미를 느낀 그는 ‘난타’를 세계적 공연으로 키웠다. “내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더 드레서’에서 그의 마음에 가장 와 닿은 대사. 그는 “나이 때문에 공허한 마음도 있었고, ‘세상 떠날 때 어떤 얘기를 해야 하나’ ‘나는 잘 살고 있나’를 돌아보게 한 대사”라고 했다. 그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은 뒤 황반변성,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이 나빠져 현재 글자도 보기 어렵다. 상대역 표정을 읽으려면 상대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뜯어봐야 한다. ‘남은 게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무대를 다시 떠올렸다. 연극이 더욱 고파졌다. 9년 만의 무대 복귀였던 이번 연극의 첫 대본 리딩을 할 때, 대사를 다 외워서 갔다. 베테랑 배우들인 후배 안재욱 오만석 배해선 정재은 등이 깜짝 놀랐다. 이들이 바짝 긴장해 바로 다음 만남에서 대사를 다 외워 왔다고 한다. “눈이 잘 안 보이게 되면서 배우 표정이나 무대가 잘 안 보이니 연출은 힘들어졌어요. 그런데 연기는 제 세계 안에서 상상하고 몸짓하면 되잖아요. 연기에 더 잘 몰입할 수 있었죠.” 11월 시작된 ‘더 드레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2월 중순 중단됐다. 당초 29일부터 6일간 공연을 재개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불가능해졌다. 20세기 후반 최고 연극의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노배우 ‘선생님’과 그의 드레서 ‘노먼’을 중심으로 한 연극 속 연극. 그는 “작품 배경인 2차 세계대전과 현재의 팬데믹 상황이 비슷하다. 공연을 꼭 올리겠다는 연극인들의 투철한 신념도 닮았다”고 했다. ‘연기는 나를 버리고 그 인물이 되는 과정’이라는 그는 “노배우 역할과 송승환이 점점 더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연극에 관한 연극(메타연극)’인 작품은 송승환과 만나 비로소 ‘메타 송승환’이 됐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그 사람 참 공무원스럽다.” 약 300년 전 프랑스에도 이런 표현이 쓰였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발자크는 공무원을 “살기 위해 봉급이 필요한 자, 쓸데없이 서류를 뒤적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라고 정의하며 “오전 9시에 출근하지만, 대화하고 토론하고 깃털 펜을 다듬는 일 등을 하다 보면 오후 4시 반이 된다”고 꼬집었다. ‘고리오 영감’ ‘환멸’ 등을 남긴 발자크의 잘 알려지지 않던 르포르타주 문학이다. 적나라한 비판에 억하심정이라도 있나 싶지만 공무원의 존재를 철학적, 역사적으로 분석하며 문제점을 논했다. ‘생리학’이라는 제목은 당대 유행한 일종의 문학 장르로 인물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책은 “최상의 국가는 적은 공무원으로 많은 일을 하는 국가인가, 많은 공무원으로 적은 일을 하는 국가인가”라는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이 작품 ‘하겠다’가 아니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아니면 도대체 누가 하겠냐며 배우, 제작진이 의기투합했죠.” 연극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로 제57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구자혜 연출가(38·사진)는 23일 “배우들에게 희곡을 건넸을 때 ‘오케이’하지 않았다면 공연은 못 올라갔을 것이다. 자막, 수화, 대사라는 언어의 힘을 작품 안에서 적극적으로 작동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구 연출가는 “수상 소식을 듣고 30분이 지나서야 실감이 났다”는 소감을 전했다. 구 연출가는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배우로 하여금 무대로 끌어오게 했다. 연극계에서 그만큼 자기 신념과 미학을 가진 연출가는 드물다는 얘기가 많다. 여러 목소리를 잘 듣는 귀를 가진 그가 이제 신뢰할 만한 연출가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받는다. 성(性)소수자, 그중에서도 트랜스젠더를 정면으로 건드린 이번 작품은 트랜스젠더인 이은용 작가가 희곡을 집필했다. 구 연출가는 “해외의 퀴어 작품도 많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동시대를 겪는 당사자가 쓴 작품이라 의미가 더 크다”고 했다. 그는 “기억이 안 나는데 작업을 하면서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모든 과정이 너무 신나고 재밌다’고 했다더라”라고 말했다. 모든 연극인이 그렇듯 올해는 그에게도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는 “연습이 오후 10시에 끝나면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직원분들이 두 시간 동안 방역을 끝내고 퇴근했다. 공연이 무사히 올라갈 수 있도록 도운 성북문화재단의 고마운 분들이 여럿 떠오른다”고 했다. 연출가로 8년째 작업을 이어온 그는 4년 전 제53회 동아연극상에서 ‘새개념연극상’을 받았다. 그는 “‘어렵다’ ‘특이하다’ ‘난해하다’는 평을 들으며 ‘새 개념’이라고 평가받던 극단의 작품세계가 이제는 관객, 평단의 ‘인지’를 받은 것 같아 기쁘다. 상과 심사평이 큰 응원이자 위로가 된다”고 털어놓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우리는 농담이(아니)야’와 극단 ‘배다’의 ‘왕서개 이야기’가 제57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공동 수상했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경미)는 23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최종 심사를 진행해 수상작이 나오지 않은 대상을 제외한 작품상 등 9개 부문 수상작(자)을 결정했다. 올해 본심에는 심사위원 추천작 18편이 올랐다.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연출상(구자혜) 연기상(이리) 유인촌신인연기상(박수진)까지 거머쥐며 4관왕에 올랐다. ‘왕서개 이야기’도 희곡상(김도영) 연기상(전중용)을 받으며 3관왕을 차지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공연이 취소 또는 연기되면서도 연극의 본질을 묻는 화제작들을 적지 않게 배출했다는 평가다. 심사위원들은 이날 “‘연극은 계속돼야 한다’는 신념을 끝내 잃지 않은 한 해였다. 특히 올해 수상작들은 아이디어 탐색, 희곡 발굴 시스템, 낭독극 같은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개발 단계를 거치며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했다”고 총평했다. 그러면서 “공연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많은 연극인이 공연을 포기하거나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전환하는 등 차선책을 모색한 힘든 해였다”고 밝혔다. 사회 성(性)소수자인 트랜스젠더를 조명한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는 세계에서 끊임없이 그 경계를 두드리는 이들의 삶과 분투를 그렸다. 심사위원들은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희곡을 완성형 공연으로 만들어낸, 공력이 빼어난 작품”이라며 “형식 측면에서도 수어통역사, 자막, 배우의 연기가 무대에서 유기적으로 만나 객석에 묘한 울림을 준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장벽을 없앤)’ 연극”이라고 평가했다. 함께 작품상을 받은 ‘왕서개 이야기’는 1930년대 만주에서 매사냥꾼으로 살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주인공 왕서개가 이후 일본에서 국적과 이름을 모두 바꾼 채 전범(戰犯) 가해자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비극적 가족사와 세계사적 아픔을 통해 역사 속 가해자와 피해자, 기억의 문제를 감각적으로 질문했다는 평을 들었다. 심사위원들은 “극장 전체가 텅 빈 유골함을 여는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연출, 무대, 빛, 음악이 어우러져 밀도감 있는 장소로 구현됐다. 높은 몰입감과 무게감으로 기억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연기상을 받은 이리 배우(‘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확고한 연기 철학과 실천력을 겸비했으며 ‘말할 수 없는 이들의 말’을 가장 절실하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한다. 연출과 관객의 접점에 선 배우”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역시 연기상 수상자 전중용 배우(‘왕서개 이야기’)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끌면서 묵직하고 신뢰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극 중 인물들이 피해자이면서 또 다른 가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설명했다. 신인연출상은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의 김풍년 연출이 받았다. 김 연출은 무대에 펼쳐 놓은 놀이판의 다양한 사물과 움직임을 통해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찾아가게 만드는 유희적 연출을 선보였다. 유인촌신인연기상은 박수진(‘우리는 농담이(아니)야’)과 권정훈(‘팜 Farm’)이 각각 수상했다. 희곡상을 받은 김도영 작가(‘왕서개 이야기’)는 역사와 기억의 문제에 천착하며 성찰적으로 접근해 뛰어난 작품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대예술상은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의 움직임과 안무를 맡은 금배섭 안무가에게 돌아갔다. 배우의 연기를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구현해 냈다는 심사평이었다. 지난해 수상자를 내지 못한 새개념연극상은 전통적 의미의 극장에 서지 못한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연극의 실천적 담론을 제시한 신재 연출가에게 돌아갔다. 이 상은 기존 연극 개념을 탈피한 형식과 감각의 연극을 추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한다. 특별상은 올해 임대차계약이 종료돼 문을 닫는 남산예술센터에 돌아갔다. 좋은 공연을 선보인 연극계의 상징적 공간이자 ‘공공극장’이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상식은 코로나19 확산 상황 등을 고려해 내년 1월 중 열릴 예정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기자 박삼수 역으로 출연하다 음주운전으로 하차한 배성우의 자리에 정우성(사진)이 투입된다. 드라마 촬영 중에 배우가 하차한 경우는 가끔 있었지만 인지도가 더 높은 유명 배우가 주연을 대신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날아라 개천용’ 제작진은 21일 입장문을 통해 “정우성이 출연을 확정했으며 금주부터 촬영에 합류한다. 이미 촬영을 마친 16회까지는 배성우의 출연 분량을 최대한 편집해 방송하고 17회부터 20회 종영까지는 정우성이 극을 끌어간다”고 밝혔다. 당초 이 배역에 배성우의 소속사인 아티스트컴퍼니에 함께 소속된 이정재가 투입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다른 드라마를 촬영 중이어서 정우성이 나서게 됐다. 정우성의 안방극장 복귀는 JTBC 드라마 ‘빠담빠담’ 이후 8년 만이다. 현재 결방 중인 ‘날아라 개천용’은 재정비 후 내년 1월 초 방송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앞서 2019년 TV조선 드라마 ‘조선생존기’는 주연인 강지환이 성폭행 혐의로 하차하자 서지석을 투입해 남은 회차 방송을 마무리했다. 2018년 SBS 드라마 ‘리턴’에서는 주연 고현정이 제작진과의 갈등으로 하차한 뒤 박진희가 그 자리를 채웠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64)가 신간 ‘싸가지 없는 정치-진보는 어떻게 독선과 오만에 빠졌는가?’(사진)에서 또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상대를 용인하지 않는 ‘진영의 정치’가 사회의 이성을 어떻게 마비시켰는지 분석했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 대해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 또는 범죄에 비해 적정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너무 가혹하게 당했다는 시각에 꽤 동의한다”면서도 “특수부의 그런 효율적인 활약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그걸 원 없이 이용한 건 바로 문재인 정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 정권은 특수부의 칼이 자신을 향하자 펄쩍 뛰면서 ‘윤석열 죽이기’에 돌입한 것”이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사태를 언급했다. 월성 1호기 수사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에게 몰래 원전 문건을 삭제하도록 지시해 절차적 정당성을 유린했다며 “(공무원들의) 준법 자율성을 말살해 ‘영혼 없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중대 범죄행위다. 진보주의자와 진보 언론이 이 국기 문란의 중대성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나는 꼼수다’ 진행자인 김어준 등을 겨냥해서는 “음모론을 양산해낸다”며 “그런 특권은 문재인 지지자들의 ‘닥치고 지지’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편향적 공영방송에 대해 “정권이 바뀌어도 지금처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강 교수는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등 올해 낸 여러 저서에서 현 정부와 열성적 여당 지지자들을 비판해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일본의 군위안부 역사 왜곡과 급격한 우경화를 비판한 세계적인 동아시아 전문가 에즈라 보걸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사진)가 20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한국을 수차례 방문하고 중국과 일본도 수시로 찾으며 관련 저서를 낼 정도로 한중일 3국에 고루 정통한 석학이었다. 1950년 오하이오 웨슬리언대를 졸업한 고인은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사회관계학을 공부했다. 예일대에 재직하다 1967년 하버드대 교수가 된 후 2000년 퇴직할 때까지 일본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와 미국의 관계를 연구했다. 교수 재임 시절 페어뱅크센터 소장(1977∼1980년), 아시아센터 소장(1995∼1999년)을 지냈다. 일본의 고도성장기인 1979년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취지로 ‘세계 제일 일본(Japan as Number One)’을 썼다. 고인은 2015년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군위안부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세계 역사학자들의 성명에 참여했으며, 일본 정부의 급격한 우경화를 비판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표현도 고인이 처음 썼다. 일본과 중국에 대한 관심은 한국으로도 이어져 ‘네 마리의 작은 용(The Four Little Dragons): 동아시아에서의 산업화의 확산’을 저술한 것. 그는 유교 윤리가 접목된 동양식 자본주의가 아시아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이론을 주창했다. 고인은 미중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미국중앙정보국(CIA) 동아시아 문제 분석관으로 활동했다. 1997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 시 장 주석의 하버드대 방문을 주관했고 ‘덩샤오핑 평전’을 집필했다. 그가 몸담았던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구센터는 20일 페이스북에 “그는 박식한 학자이며 훌륭한 친구였다”고 애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보걸은 지난 4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압박에 반대한 인물 중 하나였다”고 보도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64)가 신간 ‘싸가지 없는 정치-진보는 어떻게 독선과 오만에 빠졌는가?’에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상대를 용인하지 않는 ‘진영의 정치’가 사회의 이성을 어떻게 마비시켰는지 분석했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 대해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 또는 범죄에 비해 적정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너무 가혹하게 당했다는 시각에 꽤 동의한다”면서도 “특수부의 그런 효율적인 활약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그걸 원 없이 이용한 건 바로 문재인 정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 정권은 특수부의 칼이 자신을 향하자 펄쩍 뛰면서 ‘윤석열 죽이기’에 돌입한 것”이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 정지 사태를 언급했다. 월성 1호기 수사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에게 몰래 원전 문건을 삭제하도록 지시해 절차적 정당성을 유린했다며 “(공무원들의) 준법 자율성을 말살해 ‘영혼 없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중대 범죄행위다. 진보주의자와 진보 언론이 이 국기 문란의 중대성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나는 꼼수다’ 진행자인 김어준 등을 겨냥해서는 “음모론을 양산해낸다”며 “그런 특권은 문재인 지지자들의 ‘닥치고지지’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편향적 공영방송에 대해 “정권이 바뀌어도 지금처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강 교수는 ‘권력을 사람의 뇌를 바꾼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등 올해 낸 여러 저서에서 현 정부와 열성적 여당 지지자들을 비판해왔다.김기윤기자 pep@donga.com}

초등학생 연극 경연인 어린이 연극제 무대. ‘미스터 션샤인’ ‘동백꽃 필 무렵’ ‘킹덤’으로 최고 주가를 올리는 아역배우 김강훈이 등장한다. “그래봤자 애들 장난, 프로가 무엇인지 보여 주마”라며 독백하는 순간, 반대편에서 배우 유아인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대사를 읊으며 나타난다. 초등학생 몸을 한 유아인이 신들린 연기를 선보이자 김강훈은 말 그대로 ‘벙찐다’. 이후는 점입가경이다. 원로 배우 ‘신구 어린이’가 등장해 “아니, 얜 또 뭐야”라고 김강훈이 반응하는 사이 배우 엄태구와 웹툰 작가 주호민 이말년이 나타나 무대 위 검을 차지하려 한다. 뒤이어 조여정 태연 이경영 양동근 오정세 박희순까지…. 이 ‘거물’들은 김강훈에게 “강훈이 형, 이따가 사인 한 장만 해줄 수 있을까”라며 끝까지 ‘B급 세계관’을 유지한다. ‘연극의 왕’이라는 제목의 웹 드라마도, 쇼트폼 영화도 아닌 10분 남짓한 이 영상의 정체는 9분이 지날 때까지도 알 수 없다. 무대가 막을 내릴 무렵 3차원(3D) 캐릭터가 등장해 검을 들어올린다.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자극적 내용으로 관심 끄는 행위) 끌었다.” 내레이션이 나오면서 그제야 새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그랑사가’ 광고인지 안다. 이쯤 되면 ‘낚였다’는 반응이 주를 이룰 법하나 영상을 온라인에 올린 지 한 달 만인 12일 조회수 770만 회, 댓글 3500개를 넘었다. 댓글에는 “10분짜리 광고를 끝까지 본 것도 처음이다. 광고를 검색해 다시 봤다” “올해 최고의 어그로” 등 찬사 일색이다. 그럼 광고의 목적인 유저는 얼마나 확보했을까. 정식 오픈 전인 이 게임은 사전등록자 300만 명을 모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게임만 좋아서는 2% 부족? 게임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며 스타 마케팅과 B급 감성을 활용한 게임 광고들이 눈길을 끈다. 유명 연예인의 광고 출연은 몇 년 전부터 익숙하다. 하지만 멋진 정장을 입은 스타가 “지금 다운로드하세요”만 반복하고 하이라이트 장면만 편집한 기존 광고와는 다르다. 게임 광고만으로도 보는 맛이 있는 바이럴 필름(viral film)으로 진화한 것이다. ‘게임만 잘 만들면 유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셈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게임 출시 직후 광고 노출이 가장 중요했지만 이제는 출시 전 사전등록 기간도 주요 광고 노출 시점이 됐다. 화제를 만드느냐가 광고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중국 게임사들이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광고를 개시한 5, 6년 전부터 조짐을 보였다. 뒤이어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이 공격적 스타 마케팅을 통해 시장에 안착한 선례를 따라 경쟁은 거세졌다. 새로운 유저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찾은 돌파구라고 볼 수 있다. ‘그랑사가’는 넷마블 게임 ‘세븐나이츠’의 핵심 개발진이 창업한 신생 게임사 ‘엔픽셀’의 데뷔작이다. 엔픽셀로서는 사활을 건 작품으로 초기 이용자를 빠르게 확보해야 했다. 그 1차 시험대로 광고를 택했다. 엔픽셀 관계자는 “신생 회사와 신규 지식재산권(IP)이 시장에 설 자리는 좁게 느껴졌다. 게임 자체는 자신 있었기 때문에 이목을 얼마나 끌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고 했다.○ 스타도, 게이머도 “게임 광고 OK” 스타를 내세운 ‘약 빤 광고’로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게임은 많다. 게임 ‘검은사막’ 광고는 배우 오연서가 화장품 홍보인 줄 알고 촬영까지 마쳤다가 뒤늦게 컴퓨터그래픽(CG)을 입힌 게임 광고를 찍은 것을 알게 된다는 콘셉트다. 넥슨은 백종원의 요리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영상에 슬며시 신작 MMORPG ‘V4’를 밀어 넣었다. 축구선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닮은꼴로 축구 팬들 사이에 화제인 배우 신현준은 ‘피파 모바일’ 모델로 기용돼 웃음을 줬다. 핀란드의 대형 모바일 게임업체 슈퍼셀은 게임 ‘브롤스타즈’ 광고에 이병헌 조우진 김동현을 기용해 서부영화 같은 광고를 제작했다. ‘연극의 왕’을 비롯한 게임 광고를 다수 제작한 기획사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감독은 최근 2, 3년 사이 급변한 게임 광고 시장을 현장에서 겪었다. 신 감독은 “몇 년 전까지 게이머들은 유명인이 광고에 나오는 게임은 기피했다. 게임사가 게임에 자신이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예인도 게임 광고를 비주류 영역으로 생각해 섭외에 응하더라도 ‘칼을 들지 않겠다’거나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는 등 조건을 많이 달았다는 것. 신 감독은 “하지만 스토리를 입힌 광고가 인기를 끌고 흥행에도 성공하자 유저나 스타의 게임 광고에 대한 인식도 확연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학회 학술지 ‘소비자학연구’에 실린 논문 ‘모바일 게임 광고 메시지 유형과 자아 해석이 게임 이용 의도와 구매 의도에 미치는 영향’은 “광고 기획에서도 게임의 독특성, 심미성뿐만 아니라 광고 자체가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도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과다 출혈 경쟁 우려도 게임을 출시한 뒤 개발사가 느끼는 가장 뼈아픈 반응은 “마케팅 비용으로 게임이나 잘 만들지 그랬느냐”는 평가다. 광고는 요란했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게임 구성이나 그래픽 등에서 허술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광고 같은 마케팅에 진력해 초기 이용자 확보에 성공했더라도 게임의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가 과도한 마케팅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메조미디어의 ‘2020 모바일 게임 업종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의 디지털 광고비는 최근 3년간 매년 40% 이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모바일 게임의 온라인 광고비는 총 1208억 원 수준이며 그중 12%가 동영상 광고 제작에 쓰였다. 중견·중소 게임사로서는 상대적으로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 중견 게임사는 올해 영업손실을 공시하며 “신작 공개를 앞두고 광고 선전비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투자 비용 대비 효과도 고민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반인이 인지할 만큼 자주 광고를 내보내려면 3개월 기준 50억 원에서 많게는 100억 원까지 들어간다. 매출을 100%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큰돈을 들여 스타 마케팅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당신은 분명 배우 이봉련(39)을 본 적이 있다. ‘어디서였지….’ 고민도 잠시. 영화나 TV 속 프레임 안의 그를 본 순간 “아, 이 사람!” 탄성과 함께 강렬한 존재감이 떠오른다. 최근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는 임신했다고 퇴사를 권고받은 미스 김, ‘버닝’에서는 사라진 해미의 친언니, ‘옥자’에서는 안내데스크에 앉아 “전화로 하세요, 전화”라고 무심하게 대사를 내뱉고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주인공을 물심양면 돕는 동료 혜수까지. 모두 이봉련이다. 조연으로 잠깐 등장하지만 딱 필요한 만큼 탁월하게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프레임 밖 모습은 오히려 낯설다. 배우 이봉련이 국립극단의 신작 연극 ‘햄릿’으로 돌아왔다. 복수의 칼을 갈며 광기를 뿜어내는 ‘햄릿 공주’ 역이다. 8일 화상으로 만난 그는 “무대에 돌아왔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했다. “한 번도 여기(연극)를 벗어나서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돌아온 것도 아니고, 그냥 쭉 하던 일입니다. 무대는 제 토양이에요.” 스크린으로 인지도를 높였지만 스물넷이던 2005년 뮤지컬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로 데뷔한 이래 무대를 오래 비우지 않았다. 박근형 연출가의 극단 골목길 출신으로 ‘극장서 나고 자랐다’. 배역의 연령대나 장르 폭이 넓어 ‘나이아가라 폭포 수준’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다채롭다. 슬픈 미소를 띠며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시선을 보이다가도 극단으로 치달을 때 동공의 1mm 흔들림도 없이 처연하게 좌절을 표현한다. 그는 “배우 홍수의 시대, 관객과 연출자들이 제 연기가 ‘흥미롭다’며 좋아하시는데, 습관처럼 매일 ‘그 연기’를 꺼내는 저 자신에게 좀 질릴 때가 있다”며 “관객이 질리지 않도록 작품에 잠깐씩만 나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웃었다. 이번 연극에서는 또 한 번 변신한다. 성에 갇힌 ‘고뇌자 햄릿’이 아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복수자 햄릿’으로 135분을 채운다. 그는 “중세 유럽 왕정시대에 벌어질 법한 얘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한국의 정의, 진실, 세대갈등, 인간의 나약함을 조명한다. 그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2020년에도 통할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70년 역사 국립극단의 2001년, 2007년에 이은 세 번째 햄릿이다. 부새롬 연출, 정진새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여성 햄릿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젠더프리 캐스팅이나 단순한 ‘여성 서사’가 아니어서 좋았다”며 “성별이 바뀌어도 이야기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햄릿은 여성보다 인간이기에 하는 고민이 더 많다”고 했다. 아버지 죽음의 배경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햄릿 공주에게 무대 밖은 더 전쟁 같다. 개막은 한 차례 밀려 17일 예정이었으나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이마저도 잠정 연기됐다. 19일 개막도 불투명해 온라인 공연도 고려한다. 그는 “‘연습하면 공연도 한다’는 전제를 의심한 적이 없다. 꼭 관객과 만나길 바란다”고 했다. 그의 내공은 이미 업계 너머로 퍼졌다. 봉준호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그를 ‘가장 주목하는 연극배우’로 꼽았다. 함께 무대에 서던 ‘기생충’의 이정은 배우는 “봉련이는 잠깐 등장해도 ‘기승전결’을 다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팬들이 ‘연기 천재’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 하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어휴, 부담스러워요. 천재에겐 뭘 자꾸 기대하잖아요. 제 본명은 이정은인데 검색하다 마음에 들어 ‘이봉련’을 예명으로 했어요. 이름 자체가 별명 같지 않나요?”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미국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79·사진)이 60년간 창작한 노래 600여 곡의 판권을 판매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현지 시간) 딜런이 세계 최대 음악기업인 유니버설뮤직에 자신의 곡들 판권을 넘겼다고 보도했다. 계약의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 유력 언론들은 판권 가액이 2억∼4억 달러(약 2150억∼43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WSJ는 “음악 스트리밍 산업이 정착하면서 판권 가격도 올랐다”고 전했다. 노래 한 곡당 1년 로열티의 8∼13배 수준이던 판권 가격이 최근 10∼18배로 뛰어올랐다는 것. WSJ는 딜런이 그동안 작곡한 노래의 가치는 비틀스에 맞먹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딜런은 1962년 데뷔 앨범 이후 정규 앨범 39장을 냈고 세계적으로 1억2500만 장 이상 판매했다. 1960년대 초반 ‘Blowin‘ in the Wind’를 비롯해 시적인 가사의 포크 음악을 발표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60년대 중반부터 ‘Like a Rolling Stone’ 같은 록 음악을 발표해 1988년 미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2016년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고 평가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