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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이스라엘 수도’ 선언에 이슬람 국가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미래 수도로 여기는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 이란, 요르단 등 이슬람권 주요국이 한목소리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6일 앙카라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만나 “이슬람권에 분노의 불을 붙여 긴장과 충돌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3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민중봉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랍권이 겉으로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 “아랍 세계의 예루살렘을 향한 구호는 동력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사우디, 이집트, 터키같이 ‘대국’이면서 동시에 친미 성향인 나라들이 정치·경제적 문제들에 직면해 있어 미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기 힘들다. 트럼프의 예루살렘 발언이 불만스럽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보복 조치를 취할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나라들은 모두 이슬람국가(IS) 퇴치,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같은 이슈들에 오랜 기간 에너지를 소모해 왔다. 특히 아랍권의 ‘맏형’ 격인 사우디는 정권 실세이자 왕위 계승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애초부터 이스라엘과 갈등을 벌이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그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해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활발해진 비공식 정보 교환과 고위 인사 회동의 중심에 무함마드 왕세자가 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며 정통 유대교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무함마드 왕세자가 최근 수차례 회동하고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을 두고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의견을 주고받았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중동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사우디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선언을 사실상 묵인하겠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는 소문이 많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외의 반대에도 예루살렘 선언을 강행한 것을 놓고 유대인 측근들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쿠슈너 선임고문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반대에도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찬성했다”고 전했다. 안으로는 미국 내 기독교와 유대교 지지층을 결집하고 밖으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카드라는 해석도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해야 한다는 미국인은 31%에 불과하다.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문제는 공화당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층으로 알려진 ‘복음주의 기독교도’는 53%가 대사관 이전을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팔레스타인에 ‘이-팔 평화협정에서 불리한 조건을 수용하라’고 보내는 메시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상대를 압박하는 ‘말폭탄’으로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 왔던 고전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 시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고 미 대사관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팔레스타인과 중동 각국의 분노한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6일 팔레스타인 현지 매체인 가자뉴스 통신에 따르면 이날 가자지구에는 미국의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대 25만 명 이상이 집결했다. 무수히 많은 미국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이 불탔다. 시민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이스라엘에 죽음을” “미국에 죽음을” “트럼프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특히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는 “지옥문을 연 결정”이라고 표현하며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수의 탄생지로 알려진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서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항의의 표시로 크리스마스트리 전등을 꺼버리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정파들은 “6일부터 사흘을 ‘분노의 날’로 지정한다”며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팔레스타인 교육부는 휴교령을 내려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 열릴 항의 집회에 참가하라고 독려했다. 터키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미국 공관 앞에도 성난 군중이 몰려들었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도 팔레스타인 난민 수백 명이 거리행진을 벌였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식 인정하고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동 국가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미 행정부 고위 관리는 5일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6일 오후 1시 백악관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주재 미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준비작업을 국무부에 지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예산을 확보해 대사관 터를 구하고 건물 설계와 보안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텔아비브 대사관에 약 1000명이 근무해 실제 이전까지는 3, 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예루살렘은 현재 국제법상 어느 국가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 1947년 유엔은 분쟁지역인 예루살렘에 대해 ‘특별한 국제체제’라는 독특한 지위를 부여했다. 실제 국방부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주요 입법·사법·행정 기관은 예루살렘에 있다. 하지만 텔아비브가 수도로 알려진 것은 국제사회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헤게모니 경쟁 △이란 핵 합의를 둘러싼 갈등 △예멘 내전 등으로 혼란스러운 중동 정세를 더욱 흔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러시아, 이란같이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놓고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국가에 유리한 판을 깔아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중 독재자인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적극 지원하며 안보 측면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슬람교 시아파 맹주 이란도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초승달 동맹’(시아파 인구가 다수인 나라)을 거의 완성했다. 중국도 시리아를 중심으로 전후 복구 사업에 적극 나서며 경제적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 터키, 이집트 같은 친미 성향의 중동 국가들도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장기적으로 결국 미국의 입지만 좁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사우디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은 “중동지역의 안정과 안보에 위험한 영향을 주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을 재개하는 데도 방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5일 “예루살렘은 무슬림에게 꼭 지켜야 하는 레드라인이며 (트럼프가 선언할 경우) 이스라엘과 단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선언이 향후 미국의 대(對)중동 외교에 대한 불신을 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미국이 중재자 역할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편임을 보여주는 조치로 비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극우파보다 더 강경하다는 평가를 받은 데이비드 프리드먼 주이스라엘 미국대사를 비롯해 정통 유대교인들이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 많다는 점도 향후 ‘트럼프표 중동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지역 맹주인 사우디와 이란이 개입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자신의 권력 기반 다지기에 ‘올인’하며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상태다. 이란은 핵 합의를 두고 이미 미국과 갈등 중이라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게 부담스럽다. 결국 두 나라 모두 강경한 성명 발표 같은 ‘레토릭(말) 대응’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이세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식 인정하면서 ‘평안의 도시’ 예루살렘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은 히브리어 ‘예루샬라임’에서 왔다. ‘예루’는 수메르어로 토대 또는 지역을 말하고, ‘샬라임’은 평화를 뜻하는 ‘샬롬’과 뿌리가 같다.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땅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예루살렘은 기원전 997년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점령했다. 다윗의 아들이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다는 솔로몬이 동예루살렘에 ‘템플마운트(성전산)’를 세우면서 이곳은 유대인들의 성지(聖地)가 됐다. 하지만 솔로몬이 죽은 뒤 예루살렘은 분열과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유대인들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총 52차례 공격을 받았고, 23차례 포위됐으며, 2차례 완전히 파괴됐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점령과 탈환은 44차례나 반복됐다. 특히 서기 7세기 이슬람교가 태동하면서 예루살렘은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각축장이 됐다. 면적이 0.9km²에 불과한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에 3대 종교의 성지가 한데 모여 있다. 유대인들은 서기 70년 로마에 의해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뒤 남은 시설을 ‘통곡의 벽’으로 부르며 이를 재건하려고 한다. 무슬림들은 이곳에 세워진 알아크사 모스크를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하늘로 승천해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곳으로 여긴다. 팔레스타인인에게 동예루살렘은 향후 독립국의 수도가 돼야 할 곳이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의 피살 사건 이후 예멘 내전이 더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 살레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 중 하나를 초래한 예멘 전쟁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위기감시기구(ICG)의 예멘 전문가인 에이프릴 롱리 앨리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살레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전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라며 “예멘 내전에 복수라는 요소가 더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존 정부군과 후티 반군의 대결 구도에 살레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의 복수전이 추가돼 예멘 내전의 방정식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는 분석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살레 전 대통령의 죽음은 지난 3년간의 교착상태에 극적인 변화를 불러왔다”며 “내전이 더 어려운 국면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단기적으로 후티 반군 세력의 장악력이 강해지면 현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더 깊게 개입할 수밖에 없다. 살레 지지 세력의 핵심인 타레크 무함마드 살레는 예멘 특수부대 사령관 출신으로 삼촌의 복수를 위해 사우디 주도 동맹군의 공습을 지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지드 알마드하지 사나전략연구소장은 “결과적으로 후티 반군은 전쟁을 시작한 이래 어느 때보다 약해지고 고립될 것”이라며 “고통 받는 주민들에 대한 지배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랜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이 직접적으로 예멘 사태에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란은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막후에서 미사일 등 무기 지원으로 개입을 강화할 수 있다. 살레 전 대통령은 3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벌어진 후티 반군과의 교전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33년간 장기집권하고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이듬해 물러난 그는 노련한 정치력으로 불안정한 정세 속에 후티 반군과 손잡고 호시탐탐 권력 탈환을 노려왔다. 하지만 최근 후티 반군이 수세에 몰리자 사우디로 돌아설 의사를 밝히면서 ‘반역자’로 낙인찍혔다. 살레 전 대통령은 2일 사우디 주도의 동맹군이 예멘 봉쇄를 풀고 공격을 중단한다면 휴전 중재에 나서겠다고 제안했지만 후티 반군은 이를 거부했다. 살레 전 대통령은 후티 반군과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지 하루 만에 퇴각 도중 폭격을 맞아 살해됐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집트 시나이반도 대학살의 배후에 이슬람국가(IS) 내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파벌 ‘하지미윤’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IS 최고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사망설이 나온 뒤 내부 세력 간 투쟁이 격화했고, 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파벌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분석이다. 4일 AP통신은 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나이반도 테러는 “훨씬 더 과격한 극단주의 파벌이 득세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보도했다. 과거 3년간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IS 추종 세력은 이집트 보안군, 정부 관계자, 콥트교도나 정부의 대테러 캠페인에 협력해온 무슬림만 주된 타깃으로 삼아 왔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이슬람 사원에 대한 공격은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집트의 이슬람 극단주의 전문가 아흐마드 반은 AP와의 인터뷰를 통해 “하지미윤으로 알려진 IS 파벌 세력이 이번 수피 모스크 공격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미윤 파벌이 공격을 주도했거나, IS 내부에서 하지미윤 세력이 팽창하는 데 압박을 느낀 다른 파벌이 자신들은 무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공격을 자행했다는 관측이다. 하지미윤 파벌은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진 급진주의 성직자 아흐마드 빈 오마르 알 하지미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한다. 하지미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대한 IS의 해석을 따르지 않는 모든 무슬림을 죽어 마땅한 ‘카피르(불신앙자)’로 낙인찍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예루살렘 성지(聖地)는 누구의 땅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르면 5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할 것이라는 보도들이 잇따르면서 예루살렘을 미래 수도로 여기는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이 “폭력 사태를 부를 것”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일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27일 국가안보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공식 인정 방침을 결정하고 발표 시점을 저울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텔아비브에 있는 미 대사관을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옮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팔레스타인은 예루살렘의 특수한 지위를 부정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의 아흐마드 아불 게이트 사무총장은 2일 성명을 통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려는 미국의 방침은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극단주의와 폭력사태를 부채질할 것”이라며 “평화를 적대시하는 이스라엘에만 유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 국무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발표 이후 외국 주재 미국 공관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대사관·영사관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9월 25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 “대통령이 되면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대사관을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이후 네타냐후 총리를 백악관으로 가장 먼저 초대했고, 올해 5월 미국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최초로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인 ‘통곡의 벽’을 공식 방문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 의회가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도록 하는 ‘예루살렘대사관법’을 1995년 제정했지만, 미 대통령이 국익과 외교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결정을 6개월간 보류할 수 있는 유예조항을 뒀다. 역대 모든 대통령은 대사관 이전 결정을 보류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올해 6월 1일 결정 시한이 도래하자 같은 선택을 했다. 예루살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관할하고 있지만 국제법상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다. 유엔 총회는 1947년 예루살렘을 ‘국제관리체제’에 두는 결의안 181호를 채택했고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최근 극단주의 무장단체로부터 사상 최악의 테러를 당한 시나이반도의 치안과 안정을 3개월 내로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이를 위해 ‘모든 무차별 공격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시 대통령은 29일 오전 이집트 국영 방송으로 중계된 연설을 통해 모하메드 파리드 헤가지 신임 육군 참모총장에게 이같이 명령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임명된 헤가지 참모총장에게 “경찰 병력과 함께 시나이반도의 치안과 안정을 3개월 안에 회복시켜야 한다”며 “모든 무차별 공격 수단을 사용할 것을 승인한다”고 말했다. 시시 대통령은 구체적인 군사작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시나이반도에서 이집트 군경의 대(對)테러리즘 캠페인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군사 옵션을 강화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간 이집트 정부의 대테러 전략이 충분히 폭력적이었음에도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집트 정부는 2013년 7월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이 군부에 축출된 이후 시나이반도 통제를 대폭 강화했지만 1700건이 넘는 테러가 발생했다. 배치된 군인과 경찰 병력 1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집트 정부가 4년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동안 시나이반도 주민들은 보안군과 테러리스트 양쪽의 폭력에 시달려 왔다. 보안군은 대규모 테러 소탕 작전을 펼치면서 많은 주민들을 용의자로 몰아 장기간 억류하거나 주민들의 희생을 무시한 채 무차별 공습을 가했다. 테러 세력들은 보안군에 협조하는 주민들을 협박하고 살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더 폭력적인 작전으로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할 경우 역효과만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24일 시나이반도 북부 수피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으로 어린이 27명을 포함해 최소 305명이 숨지고 128명이 다쳤다. 이집트 정부는 이슬람국가(IS) 이집트 지부의 소행으로 보고 있지만 IS는 지금까지 배후를 자처하지 않고 있다. IS가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파를 겨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보안군에 협조해 온 이 지역 주민들에게 보복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를 선동한 인물이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이슬람국가(IS) 지휘관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8일 사우디아라비아 관영 방송인 알아라비야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24일 이집트 테러를 선동한 것으로 알려진 이집트 IS 지부의 ‘에미르 알헤스바’가 무슬림형제단 소속 이집트인 무함마드 마즈디 알둘라에이라고 보도했다. 현재까지 309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나이반도의 알라우다 모스크 테러는 수피 무슬림들을 노린 이집트 IS 지부의 소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지부는 지난해 말부터 수피파에 대한 공격을 선동해왔다. 이집트 지부의 에미르 알헤스바로 불리는 무삽 알마스리는 지난해 12월 7일 IS 선전매체 ‘알나바’와의 인터뷰에서 수에즈운하 서안 이스마일리아, 카이로 북동부 샤르케야, 시나이반도 수피 모스크 등을 공격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날 알아라비야는 공개된 마스리의 사진을 통해 확인된 그의 실명을 공개했다. 둘라에이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태어나 카이로대 공대를 다녔고, 2015년 1월 잠적했다. 둘라에이는 올해 3월에도 선전매체를 통해 수피 무슬림을 위협했다. 알아라비야는 “이 젊은이의 정보를 따라가면 알라우다 모스크 학살의 주범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무슬림형제단과 이번 테러 배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 근본주의 정파로 사우디를 비롯한 이슬람 왕정국가들의 잠재적인 최대 위협이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19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외곽 기자 지역으로 들어서자 우뚝 솟은 피라미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비롯해 이집트 3대 피라미드에 거의 도달할 때쯤 피라미드만큼이나 거대한 공사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집트 정부가 2002년 착공해 내년 하반기 부분 개관하는 ‘이집트 대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 신축 공사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확인한 박물관의 외관은 피라미드를 향해 뻗은 길쭉한 계단처럼 보였다. 건물 자체도 웅장했지만 멀리서 바라본 전체 부지 전경은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대박물관 부지는 총 49만 m²로 축구장 면적의 약 70배에 이르는 규모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16만2250m²)보다도 훨씬 넓다. 박물관 전시실의 유리로 된 외벽을 통해 이집트 3대 피라미드가 보인다. 박물관과 피라미드 사이의 직선거리는 2km에 불과하다. 이슬람 무스타파 박물관 기술감독 겸 미디어담당관은 “개관하면 관람객들은 카트나 마차를 타고 피라미드까지 하루에 둘러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하루 최소 1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물관이 세계의 관심을 끄는 건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 컬렉션 때문이다. 1922년 발굴된 투탕카멘의 부장품은 5000여 점에 이르지만 대다수는 카이로 타흐리르 국립박물관의 전시 공간 문제로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 개관하는 박물관에는 7000m² 규모의 전시실을 따로 마련해 이집트 최고의 보물로 꼽히는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를 포함해 모든 컬렉션을 전시한다. 투탕카멘의 미라도 이곳으로 옮겨져 투탕카멘의 최후 안식처가 거의 100년 만에 재현될 예정이다. 이집트 정부는 박물관 개관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공사 현장에서는 4000명의 노동자가 주야간 교대로 쉴 새 없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고, 보존센터에서도 200명의 연구 인력들이 새로 전시할 유물 관리에 여념이 없었다. 이미 4만2000점의 유물이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부분 개관하면 3만 점의 유물을 공개할 계획이다. 이집트 대박물관의 총 건설비용은 10억 달러(약 1조800억 원)로 추산된다. 1년 전부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이집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건설비용의 75%를 일본에서 빌려왔다. 이집트 관광산업을 부흥시키는 것이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는 키포인트라고 본 것이다. 이집트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치안이 불안해졌다. 특히 2014년 이집트에 이슬람국가(IS) 지부가 생겨난 뒤부터 빈번한 테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기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까지 겹치면서 이집트의 관광산업은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 이집트의 관광수입은 38억 달러로 2010년(125억 달러)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기자 피라미드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마차를 모는 아트리스 아부 샤이마는 “하루 3만 명에 이르던 관광객이 이제는 5000명 남짓으로 줄었다”며 “하루빨리 박물관이 문을 열어 관광객들이 다시 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물관 총책임자인 타레크 사예드 타우피크는 “박물관이 개관하면 몇 년 새 크게 줄어든 관광수입이 다시 늘 것”이라며 “교통, 호텔, 케이터링 등 관광 인프라도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짐바브웨 과도정부가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93·사진)의 생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다. 물러난 무가베 전 대통령은 퇴진 협상 과정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위로금까지 챙긴 것으로 알려져 새 지도부가 독재 정권을 계승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7일 현지 일간 짐바브웨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짐바브웨 새 지도부는 무가베 전 대통령의 생일인 2월 21일을 ‘로버트 무가베 국립 청소년의 날’로 지정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에머슨 음낭가과 신임 대통령(75)은 24일 공식 취임한 직후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음낭가과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개인적으로 무가베 전 대통령은 나의 아버지, 멘토, 동지, 지도자”라며 “짐바브웨의 창시자이자 지도자의 한 명으로 존경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불명예 퇴진이라고 볼 수 없는 거액의 퇴직금도 논란이 됐다. 현지 언론과 외신들은 무가베 전 대통령이 불기소 면책과 재산권은 물론이고 1000만 달러(약 109억 원)에 이르는 ‘위로금’을 챙겼다고 보도했다. 그는 일시금으로 500만 달러를 받고 죽을 때까지 매년 15만 달러를 연금으로 지급받는다. 그가 사망할 경우 쿠데타의 원인이 된 그레이스 무가베 여사(52)가 연금의 절반을 받는다. 그레이스 여사는 수도 하라레 인근 지역에 로버트 무가베의 이름을 딴 대학을 세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가베 전 대통령이 10억 달러를 들여 추진하기로 했던 프로젝트가 현재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무가베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경호와 의료, 해외여행도 보장했다. 무가베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도 국정 운영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군부와 무가베 사이 중재자 역할을 했던 피델리스 무코노리 신부는 “아프리카에서 고령자는 조언을 위해 존재한다. 음낭가과 대통령이 전임 무가베에게 정치적 조언을 구할 것이고 무가베는 국가 원로로서 조언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전관예우에 새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간판만 바뀌었을 뿐 권위주의 시스템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37년간 무가베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음낭가과 대통령이 군부를 등에 업고 개혁 조치 없이 반민주적인 통치를 이어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짐바브웨에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이 군부를 통해 안정적인 정권 계승을 강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외교안보 매체 디플로맷은 “무가베가 존엄을 유지한 채 물러난 것은 무가베뿐만 아니라 베이징의 체면도 살렸다”며 “짐바브웨 국민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수십 년간 긴밀했던 무가베와의 관계를 정당화했다”고 평가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24일 이집트 북부 시나이반도에서 발생한 무차별 테러로 전 세계가 분노했다. 이슬람 사원에서 평화롭게 예배 하던 민간인들이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30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이집트에서 일어난 테러 가운데 역대 최악의 사건이다. 그러나 비극의 씨앗은 이 척박한 땅에 아주 오래전부터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집트 시나이반도는 북동아프리카와 서아시아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시나이반도는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했다가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협정 이후 이집트에 반환됐다. 시나이반도에 군대를 배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반환 조건이었다. 이집트는 시나이반도를 돌려받은 뒤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막의 유목민 ‘베두인족’을 철저히 차별하고 소외시켰다. 반도를 점령했을 당시 광활한 지역을 통치하기 어려웠던 이스라엘이 베두인족들의 자치를 허용하고 경제적 후원을 해줬던 탓이다. 이집트 중앙정부는 베두인족에게 ‘이스라엘과 협력했던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베두인족들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집권한 30년 동안 정당 결성이 금지됐고 자기 소유의 땅조차 등록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2004년 남부 시나이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잇따르자 무바라크 정권은 지역 주민 3000명을 체포해 고문했고, 용의자와 관련된 여성과 어린이들을 억류해 인질로 삼는 등 폭압적인 통치를 이어갔다. 그러나 ‘아랍의 봄’ 기운이 이집트를 강타한 2011년 시민혁명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하면서 베두인족이 시나이반도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국내 정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경찰 병력이 수도로 집중되면서 시나이반도에 치안 공백이 커졌던 것이다. 베두인족들은 관광객들을 납치한 뒤 이집트 중앙정부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이들을 풀어주곤 했다. 2012년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반도 순례 중에 베두인족에게 피랍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당시 피랍됐던 한국인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베두인족들은 “우리는 이집트 정부와 싸우고 있다. (납치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 시나이반도에 이집트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으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도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집트 군인과 경찰,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공격했다. 이 같은 행태는 2013년 이집트 군부가 이슬람주의자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한 이후에 더욱 심해졌다. 이들은 중앙정부로부터 소외된 베두인족들을 포섭했고, 시나이 지형에 밝은 이들을 통해 각종 무기 등을 밀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부 시나이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안사르 바이트 알마끄디스(ABM·성지를 지키는 사람들)’가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알마끄디스는 2014년 2월 시나이반도 타바 국경검문소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타고 있던 버스에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질러 한국인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히며 “이번 공격은 국고를 약탈하고 국민의 이익을 전혀 돌보지 않는 배신자 정권을 상대로 한 경제 전쟁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알마끄디스는 2014년 11월 이슬람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하고 ‘시나 윌라야트(시나이 지방)’로 명칭을 바꿨다. 이듬해 10월에는 시나이반도의 휴양지 샤름엘셰이크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러시아 여객기 안에서 폭발물을 터뜨려 탑승자 224명 전원이 사망했다. 수피파 모스크를 타깃으로 삼은 이번 테러 역시 시나 윌라야트의 소행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들은 약 1500명의 전투대원과 휴대용 지대공 무기 등 상당수의 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전문 프리랜서 기자인 모나 엘타하위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이집트 정부는 잔인하고 억압적으로 시나이반도를 통치했지만 오랜 반란을 진압하는 데 실패했다”며 “이번 테러는 정부 실패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경보”라고 지적했다. 차별과 소외의 땅인 시나이반도의 토질 자체를 개선하지 않으면 테러리즘의 악순환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제가 설교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뒤 2분 만에 밖에서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한 무리가 신도들을 향해 총을 쏘면서 모스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창문을 통해 달아나려고 서로 밀치며 몸부림치는 광경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이집트 최악의 테러에서 살아남은 무함마드 압둘팟타흐 이맘(이슬람 성직자)의 불안한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는 끔찍했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카메라를 쳐다보지 못했다. 25일 이집트 검찰은 전날 북시나이주 비르알압드 지역의 알라우다 모스크에서 발생한 폭탄·총기 테러로 305명이 죽고 128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사망자 가운데 27명은 아이들이었다. 이번 테러로 라우다 마을 남성 4분의 1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당시 모스크에는 금요예배를 위해 약 500명의 무슬림이 모여 있었다. 예배가 시작된 지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수류탄 한 발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날아왔다. 큰 폭발음과 함께 수류탄이 터지면서 예배당은 아수라장이 됐다. 신도들은 모스크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테러범들은 출입구와 12개 창문 앞에서 대기한 채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테러범 일부는 창문으로 수류탄을 던져 터뜨린 뒤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다. 현장에 있던 무함마드 알리는 총알 2발을 맞았지만 단상 뒤에 숨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무자비한 대량학살이었다. 그곳에서 내 형제 3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목격된 무장괴한들은 25∼30명 규모로 복면을 쓰고 제복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테러범 중 한 명은 이슬람국가(IS)의 검은 깃발을 소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집트 IS 지부 ‘시나 윌라야트(시나이 지방)’의 소행이 거의 확실시되는 정황들이다. 이집트 공군은 테러에 사용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은신처를 폭격해 테러범 상당수를 제거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시나 윌라야트의 전신은 2011년 시민혁명 이후 북부 시나이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안사르 바이트 알마끄디스(ABM·성지를 지키는 사람들)’다. 이들은 2014년 IS에 충성을 맹세했고, 2015년 224명 탑승객 전원의 목숨을 앗아간 러시아 여객기 폭파 사건의 배후를 자처하면서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이번에 IS의 타깃이 된 모스크는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파 사원으로 알려졌다. 시나 윌라야트가 이집트 군경과 콥트교도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대형 테러를 감행했지만 이슬람 사원을 겨냥한 것은 이례적이다. 타흐리르중동정책연구소의 티머시 칼다스 연구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테러 동기를 2가지로 분석했다. 그는 “IS가 이단으로 취급하는 수피 모스크가 합법적인 타깃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그동안 이집트 정부의 반IS 캠페인에 협조해 왔던 이 지역의 사와르카 부족에 대한 보복 테러”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시나 윌라야트가 작심하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형 테러를 저질렀다는 분석도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거점을 완전히 잃으면서 구심점을 상실한 IS 지부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선명성 경쟁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버나드 헤이켈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상황이 절박해지면 누가 더 엄격한지를 둘러싸고 내분이 생긴다”며 “이들은 대의에 충실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경쟁하고 가장 극단적인 강경파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IS 지부들이 있는 다른 국가에서도 더욱 잔학한 테러가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집트 시나이반도 북부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폭탄 및 총기 테러로 최소 2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4일 AP통신과 이집트 관영 통신 MENA는 이날 북부 시나이 주도인 아리시에서 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알 아베드 마을의 알 로다 사원에서 테러가 발생해 최소 155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테러 공격 직후 긴급안보회의를 소집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오프로드 차량 4대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사원에서 예배 중이던 신자들을 향해 폭탄을 터뜨리고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현지 언론은 이번 공격이 사원에서 예배 중이던 보안군 지지자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공격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슬람 과격 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2013년 이슬람주의자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가 군부에 의해 축출된 후 시나이반도에서는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에 의한 국경 검문소 공격이 잦았다. 지난 3년간 북부 시나이 지역에서 이집트 보안군과 경찰 사망자만 수백 명에 달한다. 올해 4월에는 이집트 나일 델타 지역과 알렉산드리아의 콥트교회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해 47명이 숨지고 130명 이상이 다쳐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달 국가비상사태를 올해 12월까지로 또 한 차례 연장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짐바브웨를 37년간 통치한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93)이 사임하고 에머슨 음낭가과 전 부통령(75)이 새 임시 대통령으로 24일 취임한다. 22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제이컵 무덴다 짐바브웨 의회 의장은 이날 집권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이 음낭가과 전 부통령을 무가베 퇴진에 따른 권력 공백을 메울 새 지도자로 추대했다고 밝혔다. 음낭가과 전 부통령은 해임된 뒤 머물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떠나 짐바브웨로 돌아오는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21일에는 무가베 대통령의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수도 하라레를 비롯해 짐바브웨 전역에서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했다. 이들은 국기를 흔들고 춤을 추며 ‘무가베 시대’ 종말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무가베 대통령은 1980년 초대 총리로 취임한 뒤 권력을 독점하며 “오직 신만이 나를 끌어내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나 부인 그레이스 여사(52)에게 권력을 물려주려는 ‘부부 세습’ 노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를 위해 유력한 후계자였던 음낭가과 전 부통령을 6일 갑작스레 숙청하는 무리수를 뒀고, 군부가 반발해 정부를 접수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군부가 자진 퇴임을 압박하는 가운데 ZANU-PF와 야당이 이날 오후 함께 탄핵안을 발의하며 무가베를 몰아붙였다. 무덴다 의회 의장은 이날 오후 5시 50분께 현지 국영TV를 통해 무가베 대통령에게서 사임서를 제출받았다고 밝혔다. 무가베 대통령은 사임서를 통해 “순조로운 권력 이양을 위해 즉각적이고 자발적으로 사퇴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날 개시된 탄핵 절차도 중단됐다. 김일성 때부터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무가베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북한은 아프리카의 든든한 우방을 잃게 됐다. 1978년부터 1994년까지 총 8차례 북한을 방문한 무가베 대통령은 북한의 세습 통치를 흠모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 총리 취임 직후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난 그는 김일성을 숭배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각료들에게 김일성의 연설문을 읽도록 지시하고 주체사상 서적들을 전시하도록 했다. 또 자신의 생일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북한은 짐바브웨에 무기를 지원하고 군사훈련단을 파견하는 등 무가베 대통령을 적극 도왔다. 현지 일간 뉴짐바브웨는 “무가베 대통령이 후계자 선정에서도 북한으로부터 영감을 찾으려고 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전했다. 무가베의 불명예 퇴진은 장기 독재가 만연한 아프리카 국가들에 경종을 울릴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 독재자들은 이번 짐바브웨 사태를 숨죽이며 지켜봤다. AFP통신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지도자 8명이 20년 이상 집권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명은 30년 넘게 권좌를 지키고 있다.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적도기니 대통령(75)은 1979년 8월 쿠데타로 집권한 뒤 지난해 5선에 성공했다. 7년 임기를 마치면 40년 넘게 집권하게 된다. 자신의 아들 테오도린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려고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짐바브웨 사태가 아프리카에서 수십 년간 권력을 붙들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불쾌한 시사점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향후 아프리카 독재자들의 권력 승계를 둘러싸고 내부 동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정치 궤적△1924년 짐바브웨 쿠타마 출생△1964년 독립운동으로 투옥(∼1974년)△1975년 짐바브웨아프리카국민연합 대표 취임△1980년 초대 총리(의원내각제) 취임△1987년 2대 대통령(대통령중심제) 선출△1996년 그레이스 여사와 재혼△2000년 토지개혁으로 백인 농지 몰수△2008년 대선 1차 투표서 모건 창기라이에게 패배했으나 선거 방해로 2차 투표에 단독 출마해 승리△2009년 창기라이와 거국내각 구성해 타협△2014년 그레이스 여사 집권당 ‘여성연맹’ 수장으로 임명△2017년 군부 쿠데타와 의회 탄핵안 발의 등으로 사임}

중국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쿠데타 계획을 미리 알고도 사실상 승인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내정 불간섭’을 명분으로 독재 정권이나 군부 정권을 지지해온 중국의 외교정책이 부메랑을 맞는 사례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지 일간 짐바브웨메일은 20일자 기사에서 군부 쿠데타 발생 나흘 전인 10일 콘스탄티노 치웽가 육군 참모총장(61)이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을 만난 것을 중국 배후설의 근거로 들었다. 이에 중국 측은 “치웽가 총장의 방중은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간 것”이라며 “짐바브웨 사태는 내부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재 중국대사관도 20일 “서방 언론 등에서 중국 배후설을 제기하는 것은 중국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고 중-아프리카 관계에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라며 “사악한 의도가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짐바브웨메일은 “사전에 중국으로부터 구체적인 지령을 받은 치밀한 쿠데타였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중국은 짐바브웨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인 1979년부터 무가베 대통령의 게릴라전을 지원하고 독재를 묵인해왔다”며 “그러나 경제적 무능으로 짐바브웨에 투자한 중국 기업들이 손실을 보기 시작한 데다 후계 문제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자 무가베를 버리기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짐바브웨의 최대 교역국이다. 다만 중국이 유혈사태 없이 친중파인 음낭가과 전 부통령이 권력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쿠데타를 승인해 짐바브웨 군부도 자신들의 행위를 쿠데타로 부르지 않고 최대한 무가베에게도 예의를 갖추고 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무가베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면서 짐바브웨 의회는 무가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짐바브웨 의회 상·하원에서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 탄핵안이 통과되면 음낭가과 전 부통령이 내년 8월 총선 전까지 과도정부를 이끌고 자연스럽게 권력을 승계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중국이 군부 독재 정권을 지지하다 역풍을 맞은 것은 짐바브웨가 처음이 아니다. 중국은 서방이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제재를 하는 것에 아랑곳 않고 미얀마 군부 정권을 지지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행되고 군부 독재가 종식되자 ‘탈중국’ 분위기가 높아졌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최근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인종청소’ 논란으로 곤경에 처한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을 만나 지지를 약속하는 등 끌어안기에 나선 것도 민주화 이후 미국으로 기울고 있는 추세를 돌리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남미의 대표적인 반미(反美) 정권이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하지만 차베스 전 대통령이 2013년 사망한 이후 국가파산에 이르자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했다. 미국의 뒷마당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묻지마 독재 지원 외교’를 펼친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동남아에서는 32년 장기 집권 중인 캄보디아의 훈 센 총리와 태국의 군부 정권이 중국과 가깝다. 서방 국가와 달리 중국은 독재를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나라들에서도 민주화가 진전되면 미얀마에서처럼 중국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중국은 북한의 세습 독재 정권에 침묵하고 자국 내 탈북자들을 북송하는 데에도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운다. 하지만 북한을 미국과의 세력 다툼에서 완충지대로 활용하려는 지정학적 이익 때문에 중국이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개발 폭주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결국 동북아에 불안정을 가져오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평가가 많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군부와 집권 여당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아온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93)이 결국 사임 조건에 합의했다고 CNN이 20일 보도했다. CNN은 무가베 대통령의 퇴진 협상 관계자를 인용해 그가 사임 조건에 동의했으며 이를 위한 초안이 완성됐다고 전했다. 무가베 대통령이 사임하는 대신 군부는 무가베 대통령과 그의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 여사(52)에 대한 완전 면책권, 사유 재산 유지 등의 요구조건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물러나려면 먼저 사임안을 국회의장에게 발송해야 한다. 무가베 대통령은 19일 밤 국영 TV를 통해 생중계된 대국민연설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 논란이 됐다. 그는 연설에서 “나에 대한 비판과 국민의 우려를 알고 있다”면서도 사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달 열릴 전당대회를 주재하겠다”고 말해 당분간 퇴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무가베 대통령은 “고맙다. 좋은 밤 보내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퇴진 선언을 기대하던 짐바브웨 국민은 낙담했다. 앞서 AFP통신 등 일부 외신이 “무가베 대통령이 사임에 합의했다”고 보도해 대국민연설에 안팎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었다. 현지 언론 짐바브웨메일은 “무가베 대통령이 사임을 거부한 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두려워하는 군중은 집안에 머물렀고 일요일 밤 거리는 기분 나쁜 침묵으로 뒤덮였다”고 전했다. 무가베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군부와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저버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쿨루마아프리카는 집권 여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 관계자를 인용해 “무가베 대통령이 (연설문의) 모든 문장을 읽지 않고 페이지를 넘기기도 했다”며 “그가 넘긴 부분이 사임과 관련된 내용이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19일 대국민연설의 목적은 군부 쿠데타가 헌법에 따른 것이며 이를 무가베 대통령이 받아들인다는 점을 선언케 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집권 여당과 야당은 무가베 대통령이 20일 정오까지 사임하지 않을 경우 탄핵 절차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후 무가베 대통령의 조건부 사임 수용 보도가 나와 탄핵 추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쿠데타를 주도한 짐바브웨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에머슨 음낭가과 전 부통령(75)은 쿠데타 발생 하루 만인 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짐바브웨 과도정부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93)이 17일 사임하고 음낭가과가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재자 남편의 권좌를 물려받으려 했던 그레이스 무가베 여사(52)는 군부의 묵인 아래 나미비아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쿠데타는 유난히 매끄럽게 진행됐다. 음낭가과 전 부통령이 해임된 지 일주일 만에 콘스탄티노 치웽가 육군 참모총장이 쿠데타를 암시하는 듯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고, 이틀 뒤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 음낭가과 전 부통령과 그를 따르는 군부 세력이 사전에 쿠데타를 모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치웽가 총장이 지난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인민해방군 지휘부와 만났다며 최대 투자국인 중국이 이번 쿠데타를 사전에 알았거나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음낭가과 전 부통령은 과거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베이징 사상학교에 다닌 바 있다. 이번 쿠데타의 비극적인 주인공은 세계 최고령 독재자 무가베 대통령이지만 이 드라마의 공동 주연이 2명이나 더 있다. 그의 아내 그레이스 여사와 오른팔이었던 음낭가과 부통령의 치열한 권력 암투가 쿠데타의 배경이었다. ‘구치 그레이스’로 불릴 만큼 명품 쇼핑광인 그레이스는 일찍부터 권력에 맛을 들였다. 2014년 집권여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 산하 ‘여성연맹’의 수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올해 7월부터는 공개석상에서 무가베 대통령에게 “당신의 후계자가 누군지 말해 달라”며 노골적으로 권력욕을 드러냈다. 무가베 대통령은 아내를 후계자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여전히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했다가 결국 타의로 권력을 내려놓게 됐다. 2014년부터 그레이스를 후계자에 앉히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 그는 독립운동 동지이자 유력한 후계자였던 조이스 무주루 전 부통령에게 대통령 암살 모의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씌워 경질했다. 무주루 전 부통령을 지지했던 장차관들도 무능하다는 이유로 해임했다. 그레이스가 이 같은 숙청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에 3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음낭가과 전 부통령을 쳐낸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군부는 이미 참전용사 출신의 음낭가과 전 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그는 별명이 ‘크로커다일’일 만큼 생존 본능이 뛰어났다. 대통령의 혁명 동지인 그는 40년 가까이 무가베의 장기 집권을 도왔다. 무가베가 사임하거나 사망할 경우 뒤를 이을 가장 강력한 후계자로 거론돼 왔다. 음낭가과 전 부통령은 올해 8월 심각한 구토 증세를 보여 병원에 실려 가면서 자신을 향한 독살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레이스가 그를 독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양측의 갈등이 깊어졌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달 초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중 전격 사임한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귀국 계획을 밝혔다. 사우디가 하리리 총리의 사임을 종용하고 억류했다는 의혹이 짙어지면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서방의 압박에 사우디가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하리리 총리는 1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나는 괜찮고, 신의 뜻대로 앞으로 이틀 안에 돌아갈 것”이라고 귀국 계획을 밝혔다. 이날 사우디를 방문한 베샤라 알라히 레바논 마론파 기독교 총대주교를 만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트위터에 글을 남긴 것이다. 하리리 총리는 4일 사우디에서 갑작스러운 사임을 발표해 중동 정세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란이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를 통해 레바논의 내정을 간섭하고 있으며 자신이 암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 자진 사퇴의 배경이었다. 하리리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자 사우디는 헤즈볼라가 레바논 정계를 장악한 것은 “사우디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태는 사우디가 연출한 ‘잘 짜인 각본’이라고 중동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사우디가 레바논 헤즈볼라의 세를 꺾기 위해 하리리 총리를 정치 인질로 삼았다는 것이다. 중도우파 정당 미래운동의 지도자인 하리리 총리는 레바논의 안정을 위해 헤즈볼라와 타협해 왔다. 하리리 총리는 12일 레바논 퓨처TV를 사우디 수도 리야드로 불러 인터뷰를 갖고 “헤즈볼라가 정치 중립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사퇴를 철회할 수 있다”며 한 단계 톤을 낮췄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내내 불안한 기색을 보였고,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모습으로 의혹을 더욱 키웠다. 일각에서는 그가 인터뷰 말미에 카메라에 잡힌 남성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방이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결국 사우디가 한발 물러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10일 하리리 총리의 사우디 억류설에 대해 부인하면서도 “사임하더라도 레바논에 돌아가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임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해소하고 레바논 정부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14일 “하리리 총리와 그의 가족이 레바논으로 조속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2015년 발생한 파리 연쇄 테러 이후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고 테러가 이어지자 프랑스 경찰관들의 자살이 크게 늘고 있다. 업무 강도가 세지고 스트레스가 급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최근 일주일 새 경찰서장급 고위직을 포함한 경찰 8명이 잇따라 자살하자 프랑스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14일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프랑스 국립경찰의 훌리건 대응총괄팀장(총경급)인 앙투안 부토네가 12일 파리 근교 자신의 사무실에서 총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라르 콜롱 프랑스 내무장관은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가 이례적으로 즉각 성명을 내놓은 건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총 61명의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콜롱 내무장관은 전국의 경찰서장과 예하 경찰조직 책임자들에게 상황 진단과 경찰관들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를 마련해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13일에는 전국 경찰노조 관계자들을 불러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대책 마련을 약속하기도 했다. 프랑스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가 2010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경찰관들의 자살 위험은 경찰 외 직업군의 평균보다 36%나 높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