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욱

이기욱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구독 56

추천

박물관에 익숙해질 때쯤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습니다. 유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71wook@donga.com

취재분야

2025-11-18~2025-12-18
미국/북미30%
국제일반22%
국제정세15%
인사일반10%
유럽/EU7%
아시아5%
일본5%
국제정치2%
러시아2%
중국2%
  • ‘대학생 녹화공작’ 1984년 폐지했다더니… 5년 더 자행

    운동권 대학생을 징집해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던 ‘녹화공작’이 기존 알려졌던 것과 달리 1980년대 말까지도 자행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자 1700여 명도 새로 파악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회)는 23일 서울 중구 위원회 회의실에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공작 사건’ 진실 규명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1984년 폐지된 것으로 알려졌던 녹화공작이 ‘선도업무’로 명칭만 바뀌어 1989년까지 계속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선도업무’ 명칭으로 공작 이어가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는 2007년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1984년 12월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심사과가 해체되면서 녹화공작이 폐지됐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선 소관 부서가 보안사령부 정보처로 바뀐 채 녹화공작이 지속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원회는 조사 과정에서 보안사령부 정보처가 1985년 제작한 ‘선도업무 활동 지침’ 문건을 확보했다. 문건에서 정보처는 ‘특변자(특수학적변동자) 관련 업무가 보안 노출 등 새로운 학원가 쟁점으로 부각, 문제화되고 있어 현행 지침을 재검토 보완한다’고 했다. 특변자는 대학에서 퇴학이나 강제휴학 등을 당한 운동권 대학생을 뜻한다. 보안사령부는 이후 녹화공작을 ‘선도업무’로, 특변자를 ‘선도대상자’로 명칭만 바꾼 채 공작을 이어나갔다. 위원회는 보안사령부가 1986년 만든 ‘군입영 대상 문제학생 관리지침’ 문건도 확보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학교가 ‘문제학생’ 징계 결과를 문교부(현 교육부)에 보고하면 문교부가 병무청에 알려 징집하도록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안사령부는 1987년 5월에도 ‘선도업무활동지침’과 ‘선도대상자 심사운영위원회 운영내규’ 문건을 제작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밝혀진 녹화공작 대상자는 총 2921명으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가 확인했던 1192명보다 1729명 많았다. 명단에는 최근 강제징집 뒤 프락치 활동 의혹이 제기된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도 포함됐다.○ “폭행, 밀고 트라우마 40년 동안 이어져”40년가량 지난 오늘날까지도 당시 녹화공작으로 입은 정신적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다. 22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피해자 A 씨(62)는 1982년 3월 학내 시위에 학생들을 동원했다는 이유로 징집돼 경기 연천군 전방부대에 배치됐다. 그해 9월 서빙고 대공분실로 끌려간 그는 20여 일간 폭행을 당하며 ‘자술서’ 작성을 강요받았다. 이후 부대로 복귀했지만 첫 휴가를 앞둔 그에게 사단 보안대원이 “학내 동향을 파악해 오라”고 지시했다. 이후 A 씨는 전역할 때까지 휴가 때마다 학내 동향을 보고해야 했다. A 씨는 “학회 동료들을 만나 받은 지시 내용을 털어놓고, 부대에 돌아가 중요하지 않은 인물과 사건만 보고했다. 하지만 당시 일이 여전히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했다. A 씨는 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고, 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A 씨를 녹화공작 피해자로 인정했다. 위원회는 “녹화공작은 국방의 의무를 악용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공권력의 중대 인권침해”라며 “공작과 관련됐던 국방부와 행안부, 경찰청, 교육부 등은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라”고 권고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11-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尹정부 출범후 최대규모 촛불집회 ‘대통령실 에워싸기’ 행진도…보수단체는 맞불 집회

    “퇴진이 추모다. 윤석열은 퇴진하라” (촛불승리전환행동) “문재인, 이재명 당장 구속하라” (자유통일당) 19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촛불집회와 이에 맞서는 보수단체의 맞불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정부 책임론’을 지적하며 정부를 규탄하는 세력과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 간 세 대결이 3주 연속 이어지고 있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로 구성된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이날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인근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2만 6000여 명, 주최 측 추산 25만여 명이 모였다. 이는 전주 촛불집회(경찰 추산 4000여 명)의 6배가 넘는 규모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열린 촛불집회로는 역대 최대 인원이다. 이전까지는 지난달 22일 촛불집회(경찰 추산 1만8000여 명)가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집회였다. 촛불행동은 이날 오후 4~7시 숭례문 오거리부터 시청 교차로까지(약 450m 구간) 세종대로 모든 차로를 점거한 채 집회를 이어갔다. 참가자들은 ‘퇴진이 추모다’ ‘윤석열 퇴진’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윤석열은 퇴진하라.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유정주, 강민정, 김용민, 양이원영, 황운하 의원 등 6명과 무소속 민형배 의원 등 7명이 참석했다. 유 의원은 야권 인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언급하며 “윤석열 정부는 ‘인간 사냥’을 멈춰라. 멈추지도, 반성하지도 않겠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라. 퇴진하라”고 외쳤다. 안 의원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정부 책임론을 지적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공개 사과하고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행동은 오후 7시경 서울 지하철역 4·6호선 삼각지역 쪽으로 행진했다. 이들은 삼각지역에서 대열을 지하철역 6호선 녹사평역과 4호선 신용산역 방향으로 나눠 대통령 집무실을 에워싸는 형태로 행진을 진행했다. 애초 경찰은 교통 혼잡 등을 이유로 행진 경로를 삼각지역으로 제한하는 부분 금지 통고를 했지만, 주최 측이 이에 반발해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이를 법원이 18일 인용하면서 일명 ‘대통령실 에워싸기’ 행진할 수 있었다. 전광훈 목사가 대표인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는 이날 오후 2~8시 촛불집회와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불 집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1만 8000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문재인 이재명 당장 구속하라’, ‘주사파 척결‘ 등 손팻말을 들고 “대통령을 지키자”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에는 이준석 전 대표의 ’성 상납 의혹‘을 제기한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 변호인인 강신업 변호사도 참가했다. 삼각지역에선 다른 보수 단체인 ‘신자유연대’ 회원 1000명(경찰 추산)도 오후 5~8시 반까지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촛불행동의 행진이 시작되자 “촛불 사람들이 여기로 오고 있다. 저들이 돌아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자”며 외쳤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삼각지역 인근에 도착하자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이날 대규모 도심 집회로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이날 광화문을 찾은 직장인 김지은 씨(24)는 귀를 막고 이동하며 “오랜만에 주말을 맞아 친구와 덕수궁을 찾았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용산구 주민 박모 씨(27)는 “회사 직원들과 저녁 모임을 하러 가는데 진로방해가 너무 심한 것 같다”며 “삼각지역 쪽에서 길을 건너야 하는데 길이 막혀 남영역 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11-20
    • 좋아요
    • 코멘트
  • “11계급 수직구조 경찰, 보고체계 한곳만 막혀도 올스톱”

    “지금의 경찰처럼 수직적·단계적으로 보고와 지시가 이뤄지는 구조에선 중간에 한 사람만 문제가 생겨도 아래위가 완전히 먹통이 됩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가 커진 원인에 대해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같이 진단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최근 인터뷰한 경찰 및 소방 행정 경영 분야 전문가 20명은 “경찰 등의 경직된 조직 문화를 통째로 바꾸지 않는다면 참사는 되풀이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직선 수직 보고 체계가 키운 참사지금 경찰 조직은 11개 계급의 수직 구조이며, 단선적 지휘·명령 체계로 움직인다. 책임과 권한이 명확한 만큼 문제가 생긴 경우 책임 소재가 명확하고 규율 유지에 효과적이다. 문제는 책임자가 부재중이거나 사안에 대해 잘 모를 경우 발생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직선 보고 시스템에선 한 군데가 막히면 전체가 멈추는 ‘동맥 경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사전 대비가 잘 안된 것도 핼러윈을 잘 모르는 중장년 의사결정자들이 인파 위험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참사에선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의 늑장 대처로 위로는 서울경찰청과 경찰청으로의 보고가 지연됐고, 아래로는 지휘자 부재로 인한 현장 혼란이 발생했다. 112상황실, 경비, 정보 등 경찰 각 기능 사이에 칸막이가 쳐진 것도 유기적 대처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힌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들은 자기 업무 외의 영역은 침범하지 않는데, 이를 판단해줄 지휘관의 지시가 없으니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참사에선 사태의 심각성을 늦게나마 감지한 이태원파출소가 바로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출동을 요청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경로 자체가 없었다. 마약 단속을 나갔던 경찰관들은 인파 통제에는 손을 놨다가 뒤늦게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 경찰, 계급은 너무 많고 협업은 안 돼경찰 조직의 계급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주별로 다르지만 미국 경찰은 계급이 7개 정도인데, 우리는 11개”라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적고 관리·감독 인력이 많다 보니 지휘체계가 복잡하고 유사 시 대응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개선 방안으로는 보고 단계 축소와 권한 이양, 프로젝트 단위로 각 기능 협업 구조를 상시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윤호 교수는 “기능을 융합하면서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위급 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현장 인력과 하위 조직에도 재량권을 줘야 한다”고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처럼 비상 시 단계를 건너뛰어 상위 책임자에게 보고할 수 있는 ‘핫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관 간 협업, 기존 안전 대책 작동 안 해기관 간 불통도 문제다. 3년 만의 사회적 거리 두기 없는 핼러윈을 앞둔 상태에서 경찰 소방 구청 등 어느 곳도 참사에 대비하지 않았다. 참사 발생 전후에는 경찰과 소방이 서로의 공조 요청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이준원 숭실대 안전융합대학원 교수는 “안전 부문을 총괄 지휘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한 기관이 문제를 인지하면 동시에 다른 기관도 이를 즉시 알 수 있는 다중망 소통 체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재난 시 협업을 활성화하겠다며 경찰 소방 지자체 등이 소통할 수 있는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지만 정작 참사 때는 작동하지 않았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 2022-11-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선플재단, 워싱턴서 ‘STOP 아시안·소수민족 헤이트 미주위원회’ 출범

    아시아인과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표현·행동 및 차별을 없애기 위한 인식개선 운동과 인권운동을 전개하는 ‘STOP 아시안·소수민족 헤이트 미주위원회’가 미국 워싱턴에서 공식 출범했다. 선플재단(이사장 민병철 중앙대 석좌교수)은 11일 “5일 ‘STOP 아시안·소수민족 헤이트 미주위원회’와 ‘선플운동 미국 워싱턴지구’가 공식 출범했다”고 밝혔다. 출범식에서 민 이사장은 워싱턴지구 위원장에 박대원 미주한인총연합회 법률수석, 부위원장 겸 사무총장에 이리아 타이드워터 한인회장, 부위원장에 우태창 워싱턴 통합노인회장과 김용하 몽고메리한인회장, 페인 윌리엄 변호사, 린다 라이스 변호사를 위촉했다. 또 고문에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과 양성전 국회조찬기도회 협력위원을 위촉했다. 민 이사장은 “모든 국가의 국민이 일단 자국을 떠나면 소수 민족이 되므로, 전 인류를 대상으로 서로 편견과 혐오표현, 증오행동을 하지 말자는 새로운 의미의 인식개선 인권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에서 한인 동포를 포함한 아시안에 대한 차별과 혐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며 “미국 내에서 한인들과 아시안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 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펼쳐나가겠다”고 했다. 선플재단은 STOP 아시안·소수민족 헤이트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인이 인종에 따른 각종 차별을 받지 않고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이기욱기자 71wook@donga.com}

    • 2022-11-16
    • 좋아요
    • 코멘트
  • “이태원 책임, 왜 실무자에만…” 경찰-서울시 내부 반발 확산

    이태원 핼러윈 참사 관련 업무를 하던 서울시 공무원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를 받던 서울 용산경찰서 간부가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서울시와 경찰 등의 내부 반발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내부망 등에선 “일선 실무자들만 참사 책임을 지는 게 맞느냐”는 취지의 글이 확산되고 있다.○ “참사 이후 업무 폭증, 중압감 컸을 것”13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서울시 안전지원과장 A 씨는 참사 후 업무량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날 A 씨의 빈소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동료는 “A 씨가 참사 이후 국회 요구 자료 등을 만들고 수습 업무를 맡느라 퇴근도 제대로 못 했을 것”이라며 “참사 이후 업무 부담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시공무원노조 관계자도 “해당 부서가 (참사) 후속 조치는 물론이고 일반에 공개되는 자료 요청을 많이 받다 보니 중압감이 컸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직원만 글을 쓸 수 있는 온라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도 “이태원 (참사와) 엮어서 왜 매뉴얼이 없었냐, 사전에 대비 안 했냐 등 취조하듯 했을 것”이라는 등 성토가 이어졌다. 사망 당일 경찰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 없는 부서’라고 밝힌 것을 두고선 “관련 없는 부서에서 왜 요구 자료를 제출하고 민원 답변을 하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서울시에 따르면 A 씨는 지난달 31일 ‘이태원 사고 관련 재난심리회복 지원 계획’을 비롯해 다른 행사의 안전점검 관련 공문을 여러 건 결재했다. 참사 관련 서울시의회와 국회 요구 자료 제출, 관련 민원 처리도 A 씨 부서가 담당했다.○ 숨진 정보계장 동료 “전날까지 억울함 토로”핼러윈 기간 안전사고 우려를 담은 내부 문건 삭제를 지시했다는 의혹으로 특수본 수사를 받던 중 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용산경찰서 정보계장 B 씨의 동료들은 “B 씨가 특수본 수사에 상당히 억울해했다”고 전했다. 12일 B 씨 빈소에서 만난 한 동료는 “사망 전날 저녁에 통화했는데 ‘그런 지시를 한 적 없다’며 억울해했다”면서 “잘 마무리해 보자고 다독였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유족들은 이날 빈소를 찾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살려내라”,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며 고성으로 울분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B 씨 사망 이후 경찰 내부 반발은 한층 거세지고 있다. 한 경찰은 경찰 내부망에 “특수본이 윗선에 대한 수사는 전혀 안 하고 정권 눈치만 보며 현장 경찰만 윽박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경찰은 “수뇌부는 왜 제대로 말을 못 하느냐”며 “대통령 경호경비가 우선순위라 경찰력을 대통령 경호와 집회 시위에 더 집중했다. 경찰 책임도 있지만 1차 책임자는 서울시장과 용산구청장이라고…”라고 썼다. 이 글에는 공감을 표시하는 동료 댓글이 1400개 넘게 달렸다. 특수본이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지휘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입건한 것을 두고선 소방 내부에서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소방청지부는 “14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특수본 수사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자 특수본은 13일 기자들에게 “‘지지부진하다’, ‘하위직만 수사한다’ 등 다양한 의견을 겸허히 청취하고 있다”며 “기초수사를 통해 확정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빠른 시일 내 수사 범위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니 믿고 결과를 지켜봐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수본은 이날 용산구 및 서울교통공사 직원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참사 당일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열차를 무정차 통과 조치하지 않은 이유 등을 조사했다. 참사 발생 직전 경찰의 무정차 통과 요청을 이태원역장이 묵살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사실 관계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본은 12일에는 용산경찰서, 용산구, 용산소방서 직원 등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최미송 기자 cms@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 2022-1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보수-진보 주말 도심 집회…시민 통행 큰 불편

    주말인 12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보수·진보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열려 교통 체증을 빚으면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진보단체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 인정을 촉구하며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고 보수단체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전날 오후 3시부터 숭례문~서울시청 앞 왕복 10차선 도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주최 측 추산 9만 여 명(경찰 추산 6만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을 요구했다. 또 이태원 참사 책임자의 처벌을 촉구하며 희생자를 추모했다. 앞서 오후 1시부터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보수단체인 자유통일당의 맞불집회가 열렸다. 경찰 추산 1만여 명의 참가자들이 ‘문재인 구속’ ‘이재명 구속’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시청 앞 도로에는 민노총과 자유통일당이 각각 설치한 전광판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지만 경찰이 버스로 차벽을 설치해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촛불중고생시민연대도 5호선 광화문역 인근에서 ‘윤석열 퇴진 중고생 촛불집회’를 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정부가 윤석열차 정치풍자 만화 논란 등 청소년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각, 용산 대통령실 인근 4호선 삼각지역 주변에서도 보수·진보 집회가 열렸다. 진보성향의 촛불전환행동은 오후 4시경부터 주최 측 추산 3만여 명(경찰 추산 4000여 명)이 참가해 이태원 참사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윤석열은 퇴진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건너편에는 보수성향의 신자유연대가 약 800여 명(경찰 추산)이 모여 ‘윤석열 지지’ 손팻말 들고 “추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주장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김윤이기자 yunik@donga.com}

    • 2022-11-13
    • 좋아요
    • 코멘트
  • ‘문건 삭제 지시 의혹’ 용산署 정보계장 숨진채 발견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를 받던 용산경찰서 공공안녕정보외사과(정보과) 정보계장 A 씨가 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는 핼러윈 기간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내용의 내부 문건을 참사 후 삭제하도록 지시·회유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이날 낮 12시 44분경 A 씨가 강북구 수유동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가족들이 마당에서 숨진 A 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A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 씨는 전날 일부 동료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전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본은 A 씨를 용산서 정보과장과 함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해 왔다. A 씨는 정보과장과 함께 핼러윈 기간 이태원 일대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참사 후 컴퓨터에서 삭제하도록 지시하거나 회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는 6일까지 정상 근무를 하다 특수본에 입건된 7일부터 연차 휴가를 냈으며, 9일에는 정보과장과 함께 대기발령 조치됐다. 특수본은 11일 A 씨의 사망에 대해 “국가에 헌신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족들은 이날 빈소를 찾은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고인을 살려내라’고 외치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빈소를 찾은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은 “지역구 의원으로서 왔는데 유족 말을 들으니 A 씨가 자신은 ‘문건을 삭제하라고 지시하거나 회유한 적이 없다’며 많이 억울해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특수본은 또 이날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인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출국금지했다고 밝혔다. 박 구청장은 핼러윈 기간 이태원 일대 안전사고 예방 대책 마련에 소홀하고 참사에 부적절하게 대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아울러 용산구가 핼러윈 축제를 대비해 종합상황실을 운영했다고 발표했으나, 사실상 별도 상황실 설치 없이 당직실이 운영됐을 뿐이라는 의혹도 추가로 제기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이날 제출받은 용산구 당직일지에 따르면 용산구가 상황실이라고 밝혔던 곳은 당직실이었으며 참사 당일 당직실엔 소음 민원 담당자 3명이 추가돼 총 8명이 근무했다. 한편 이날 오후 4시 25분경 서울시 안전지원과장 B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B 씨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B 씨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주무 부서인 안전총괄실 소속으로 산하에 축제안전관리계획을 수립·심의하는 사회안전팀이 있어 참사와 관계가 아주 없지는 않다”면서도 “다만 고인이 경찰 등의 조사를 받은 적은 없는 걸로 안다”고 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11-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중고생, ‘尹 퇴진’ 촛불집회…주말 보수·진보 도심 대규모 집회

    토요일인 12일 서울 광화문 등지에서 보수·진보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어 교통 혼잡이 예상된다. 경찰은 도심에 9만 명 이상이 모일 것으로 보고 안전 관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12일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울 중구 서울시청~숭례문 교차로 구간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신고한 집회 인원은 7만 명이며, 경찰은 8만 명까지도 집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민노총은 이날 낮 12시 반부터 여의도, 을지로, 남대문 일대 등에서 단위 노조 17개가 개별 사전 집회를 한 후 본 집회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에 도심 교통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진보 성향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도 이날 이태원 참사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 촛불행동 집회는 오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 서울 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 11번 출구~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7번 출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경찰은 이 집회에 1만 명가량이 모일 것으로 보고 있다. 오후 3시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앞에서는 촛불중고생시민연대 약 100명(경찰 추산)이 모여 ‘제1차 윤석열 퇴진 중고생 촛불집회’를 연다. 이 단체는 오후 5시까지 집회를 벌인 후 삼각지역으로 행진해 촛불행동 집회와 합류할 예정이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윤석열퇴진대학생운동본부 약 150명도 오후 3시에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뒤 촛불행동에 합류한다. 이에 맞선 보수 단체의 집회도 열린다. 전광훈 목사가 대표인 자유통일당 등은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진보 성향 단체들의 정부 규탄 집회 맞대응 집회를 연다. 경찰은 이 집회에 1만 명가량이 모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보수 성향인 신자유연대 회원 약 1000명(경찰 추산)도 촛불행동에 맞서 오후 3시부터 오후 8시까지 삼각지역 10번 출구에서 맞불 집회를 열 예정이다. 경찰은 도심 곳곳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로 이날 오전부터 교통 불편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집회 시간 세종대로에 긴급차량 이동통행로를 제외한 전 차로를 통제하고, 집회 구간 주변에 안내 입간판 60개와 교통경찰 350여 명을 배치해 차량 우회 유도 및 교통관리를 할 예정이다.이기욱기자 71wook@donga.com}

    • 2022-11-11
    • 좋아요
    • 코멘트
  • “고물가에 이발도 부담”…‘첫 방문 할인’ 찾아다니는 ‘떠돌이 미용족’ 증가

    “할인해주는 곳을 골라 다녔더니 이발 비용이 월 2만2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줄었어요.”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27)는 요즘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첫 방문’ 고객 대상 할인 행사를 하는 미용실을 찾아본 뒤 이발을 한다고 했다. 김 씨는 “물가는 오르고 수입은 그대론데, 고정 지출인 이발비라도 줄이려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미용실, 네일숍 등이 벌이는 각종 할인 행사를 찾아 방문 시마다 새로운 가게를 이용하는 ‘떠돌이 미용족’이 최근 늘고 있다. 통상 이·미용 업종은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 나오는 점포를 꾸준히 찾는 충성 고객 비중이 비교적 높다. 그러나 최근 고물가에 시달리는 고객들이 이·미용 결과가 마음에 드느냐를 따지기보다 지출을 줄이는 것을 우선하고 있는 것. 직장인 김은주 씨(27·경기 성남시)는 최근 1년 반 정도 다니던 네일숍이 아닌 저렴한 곳을 방문했다면서 “첫 방문 할인 행사 등 할인 폭이 큰 곳을 계속 찾아다닐 생각”이라고 했다.손님이 적은 시간대 방문하면 할인해주는 가게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기도 한다. 직장인 정모 씨(27·경기 수원시)는 미용실 예약 앱을 통해 ‘타임 세일’하는 곳을 찾아 이발하고 4000원가량 할인받는다고 했다. 정 씨는 “항상 깎던 곳이 아니다보니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고물가 시대 합리적 소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업주들은 울상이다. 할인 행사만 이용하고 다시 찾아오지 않는 고객들은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중랑구의 미용실 원장 강모 씨(38)는 “할인가로 이용한 손님 중 20% 정도만 다시 방문하는 것 같다”면서도 “주변 열군데 정도 되는 미용실들이 다들 첫 방문 할인을 25% 이상 하니 우리라고 안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네일숍 사장도 “재방문율이 낮지만 일단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할인 행사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전문가들은 고물가 탓에 소비자들이 가격을 최우선 순위로 둬 이와 같은 떠돌이 미용족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걸 찾아다니는 합리적 소비인 ‘체리 피킹’(혜택만 챙기는 소비)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업주로서는 처음 찾아온 소비자를 계속 붙잡을만한 또 다른 서비스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최원영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졸업양인성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 2022-11-10
    • 좋아요
    • 코멘트
  • “먹고는 살아야죠” 다시 문 연 이태원 상가… 추모객 발길 이어질뿐 손님은 거의 없어

    “가게 문 여는 것도 죄송한 마음이죠. 하지만 임차료도 내야 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과 약 50m 떨어진 곳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A 씨는 7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29일 참사가 발생한 후 처음 가게를 열었다는 그는 가끔 가게 밖으로 나와 참사 현장인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 쪽을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A 씨는 “그동안 마음을 추슬렀다고 생각했는데, 보니 다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국가애도기간이 5일로 끝나고 첫 평일인 이날 참사 후 문을 닫았던 이태원로 주변 가게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상인들은 대부분 참사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일부 상인들은 가게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멍하니 거리를 바라봤고,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괜스레 진열 상품을 만지기도 했다. 옷 가게를 운영하는 박해일 씨(61)도 이날 처음 가게 문을 열었다고 했다. 박 씨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사고 당일 늦게까지 가게를 열었더라면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다. 거리는 썰렁한 편이었고, 가게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날 참사 후 처음으로 문을 연 이태원역 2번 출구 인근 한 식당은 점심시간인 낮 12시에도 손님이 한 명도 없었고, 직원만 4명 앉아 있었다. 빈 테이블 20여 개를 바라보던 식당 주인 B 씨는 “영업할 기분은 아니지만 적자를 메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고 했다. 특히 사고 현장과 맞닿은 세계음식문화거리 가게들은 여전히 거의 문을 닫은 채였다. 행인도 드문 가운데 경찰들만 사고 현장 입구를 지켰다. 희생자를 추모하려는 일부 시민들이 가끔 폴리스라인 앞에 꽃을 두고 가는 정도였다. 주민 임모 씨(32)는 “사고 현장 근처에 가면 참사가 연상돼 가능하면 피하고 있다”고 했다. 인근 주민 가운데는 이태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태원에서 60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우성훈 씨(66)는 “안타까운 마음에 사고 현장에 10번 넘게 갔다”면서 “앞으로 이태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텐데 장사하는 사람이 무슨 죄가 있을까 싶다”며 씁쓸해했다. 이태원로 인근 상인 C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오랫동안 상권이 위축돼 힘들었다가 이제야 다시 살아나나 싶었는데, 손님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11-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태원 참사 키운 불법증축… 지자체는 단속 책임 회피 [기자의 눈/이기욱]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주점 측이 우리한테 증축한다고 말한 적도 없다.”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관계자는 호텔 본관 북측 주점이 불법 증축한 테라스와 관련해 “구청이 불법 증축 사실을 지난해 통보하자마자 ‘시정하라’고 주점 측에 전달했다”며 이렇게 항변했다. 불법 증축 테라스로 호텔 옆 도로는 폭이 5m에서 4m로 줄었다. 여기에 참사 당일 테라스 반대편 호텔 별관 주점이 행사 부스를 골목길에 설치하면서 도로 폭은 다시 3m로 좁아졌다. 이 때문에 참사 당시 병목현상이 가중돼 시민들의 원활한 대피를 막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호텔만의 문제는 아니다. 확인 결과 참사 현장 통행로 일대 건물 14곳 중 6곳이 무단증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목격자들에 따르면 참사 당일 일부 주점은 거리에 테이블을 내놓거나 입장 인원을 관리하겠다며 경계선을 세워 통행을 방해했다. 참사 직후 경찰과 소방의 대피 안내가 잘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큰 음악소리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 용산구는 올 4월 클럽 문화를 활성화하겠다며 안전과 소음 등의 규제를 준수할 경우 일반음식점에서도 클럽처럼 춤을 출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참사 현장 인근 8곳의 ‘클럽형 주점’ 가운데 구청 허가를 받은 곳은 1곳에 불과했다. 한 업주는 기자에게 “허가를 안 받고 클럽형 주점을 영업하는 게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좁은 골목에 무허가 클럽형 주점이 난립하면 인파가 몰리고 소음이 심한 상황에서 언제든 사고가 다시 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용산구는 “단속이 어렵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태원의 모든 상인이 불법으로 영업하는 건 아니다. 상당수 상인은 참사 당시 시민 구조에 적극 나서 많은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일부 상인이 안전을 경시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반복되면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 상인과 시민, 정부와 지자체 모두 ‘안전불감증’의 폐해를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시점이다. 이기욱·사회부 기자 71wook@donga.com}

    • 2022-11-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죄책감 갖지 말아요” 전문가가 검사-상담… 참사 트라우마 다독이는 ‘마음안심버스’

    “지금 당장은 힘들지 않아도 심리적 어려움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거든요. 본인의 마음을 잘 살펴주세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 분향소 옆에 있는 ‘마음안심버스’(사진)에서 참사 현장을 직접 취재했던 동아일보 기자와 상담을 하던 심리 전문상담사는 이렇게 조언했다. 마음안심버스는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정신건강과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개인 상담을 제공하는 보건복지부의 심리지원 서비스다. 정신건강 전문의와 상담사에게 개인 상담도 받을 수 있다. 기자가 처음 버스에 오르자 상담사는 간단한 설문을 끝낸 뒤 두 손목과 왼쪽 발목에 전극을 꽂고 ‘자율신경균형검사’(스트레스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스트레스가 위험 수준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20분 정도 상담을 진행하던 상담사는 “참사와 관련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며 “그래도 사고 현장이 자꾸 떠오르면 지인들을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참사로 피해를 입은 부상자와 유가족, 당시 사고 현장에 있었던 시민 등이 ‘트라우마 증상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고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목격한 이들 중에서도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나올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날 마음안심버스를 이용한 송모 씨(25)는 “사고 현장 근처에서 분장사로 일하는데 참사 당일 가게 안에서 들었던 구급차 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며 “상담사께서 마음이 힘들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국가애도기간이 끝난 뒤에도 유가족과 부상당한 분들을 곁에서 도울 수 있는 통합지원센터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지원센터는 국무총리실 안에 관계부처 합동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며 장례와 치료, 구호금 지급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원스톱으로 지원하게 된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 2022-11-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T자 골목 클럽형 주점 7곳 무허가… “음악 소리에 비명도 묻혀”

    “오후 7시경에 이미 (클럽형) 주점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참사가 벌어진 골목으로 길게 줄을 서 있었어요.”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장모 씨(21)는 2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줄을 선 사람들 때문에 통행에 지장을 받았고, 크게 틀어놓은 음악 소리 때문에 바로 옆 사람이 목청 높여서 말해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의 인명 피해가 커진 이유 중 하나로 허가를 받지 않은 클럽형 주점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면서 통행에 지장을 줬기 때문이란 증언이 적지 않다. 또 참사 후 경찰과 구급대원의 안내가 주점이 틀어놓은 음악 소리에 묻혀 인명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일 확인한 결과 실제로 참사 현장 주변 상당수의 술집이 무허가 클럽형 주점인 것으로 확인됐다. 클럽형 주점은 용산구에서 ‘춤 허용 업소’ 지정을 받아야 하는데, 참사 현장 인근 주점 8곳 중 7곳이 허가를 받지 않은 것이다.○ 클럽형 주점 8곳 중 7곳 ‘무허가’ 2일 용산구에 따르면 참사 현장 주변에는 주택가가 있어 클럽 같은 ‘유흥주점’은 아예 영업을 할 수 없다. 다만 올 4월 용산구의회가 ‘객석에서 춤을 추는 행위가 허용되는 일반음식점의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켜 일반음식점을 클럽형 주점으로 바꿔 운영하는 건 가능해졌다. 이 조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상권이 침체된 이후 상인들이 “클럽형 주점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해 마련됐다고 한다. 조례에 따르면 일반음식점 운영자가 클럽형 주점을 운영하기 위해선 △춤 허용업소 지정 신청서 △유흥주점 안전시설 완비 증명서 등을 구청에 제출하고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구청은 서류를 검토한 뒤 현장 실사를 거쳐 ‘춤 허용 업소’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일반음식점이 클럽형 주점으로 영업하려면 안전을 위해 m²당 1명으로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방음 시설을 설치해 생활 소음 규제(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를 준수해야 한다. 만약 무허가로 클럽형 주점을 운영하다가 적발되면 2, 3개월 영업정지는 물론이고 문을 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참사가 발생한 거리의 클럽형 주점 8곳 중 구청 허가를 받은 곳은 단 1곳뿐이었다. 구청 관계자는 “한 달에 3번 정도 단속하고 있다”면서도 “클럽형 주점 안전요원들이 단속반이 오면 춤을 추던 손님들을 자리에 바로 앉도록 안내해 잡아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 “클럽형 주점 앞 보행로나 진입로 넓혔어야”참사 당일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은 클럽형 주점들이 호객 등을 위해 경쟁적으로 음악 소리를 키웠다고 증언하고 있다. 소음 관련 규제를 어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A 씨(27)는 “음악 소리가 길거리에서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며 “넘어진 분들의 비명 소리는 아예 노래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고 했다. 클럽형 주점들이 설치한 광고물과 입장 대기줄이 통행로를 더 좁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고 당일 영상을 보면 클럽형 주점의 입장 인원을 관리하기 위한 경계선이 참사 현장 인근에 설치된 모습이 보인다. 전문가들은 진입로나 보행로를 확대하지 않은 채 무허가 클럽형 주점이 다수 영업한 것이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일반 주점이 클럽으로 바뀌면 이용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골목길이 좁아 위험했다면 클럽형 주점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내주더라도 안전시설과 (충분한) 보도를 확보했어야 했다”고 했다. 한편 용산구는 사고 수습이 끝나는 대로 참사 현장 일대의 불법 증축 실태를 조사할 계획이다. 서울시도 불법 증축에 대한 이행강제금 등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령을 개정해달라고 국토교통부에 건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주현우 인턴기자 서강대 물리학과 4학년양인성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 2022-1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파 몰린 ‘T자 골목’에 불법증축 건축물 6개

    “이 골목은 불법 증축 백화점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1일 동아일보 취재팀과 함께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골목을 살피던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건축물대장, 평면도와 실제 건물을 대조한 뒤 이같이 말했다. 이 골목은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과 맞닿은 곳으로 참사 당시 불법 증축 때문에 대피가 어려워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안 전 교수가 가리킨 한 카페 건물은 내부 공간이 건축물대장에 표기된 경계 밖까지 콘크리트로 1.5m가량 확장돼 있었다. 맞은편 주점 건물은 대장에 표시된 경계 밖으로 1m가량 확장돼 있었는데 이곳에 철제 계단도 설치돼 있었다. 모두 불법 증축으로 구청에 적발된 것들이다. 원래 두 건물 사이의 거리는 8.5m는 돼야 하지만 불법 증축 탓에 실제로는 6m가량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골목 폭이 2.5m가량 좁아진 것이다. 참사 당시 대피로로 사용됐던 이 거리에 있는 건물 14곳 중 6곳이 무단 증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팀이 건축물대장을 확인한 결과 나머지 건물 8곳 중 6곳도 과거 무단 증축됐던 이력이 있었다. 아예 신고조차 되지 않은 ‘무허가 건축물’도 1곳 있었다. 안 전 교수는 “돌출한 철제 계단이나 난간, 영업공간을 넓히려고 설치한 천막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무단 증축돼 있다”며 “보행자 안전을 위한 총체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이행강제금 내면 그만”… 길 막은 불법증축 10년째 시정 안해 전문가와 돌아본 이태원 참사 골목건물 14곳중 6곳이나 무단증축전문가 “불법증축 백화점 같아”… 좁아진 통행로, 결국 참사로 연결1982년 이전 건물은 단속 제외… 지자체들 “강제철거 방법 없어” 동아일보 취재팀과 만난 인근 상인들은 이 일대 건물의 무단 증축이 이태원 상권 형성 이후 계속 이어져 왔다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영업 공간을 넓히기 위해 설치한 임시 구조물이 구청에 적발되면 잠시 철거했다가 다시 설치하는 업주들이 적지 않다”며 “일부 업주들은 철거하는 시늉도 안 하고 ‘이행강제금을 물더라도 불법 증축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이득’이라며 배짱 영업을 한다”고 전했다.○ 5차례 지적 받고도 10년 동안 시정 안 해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 건물 외벽에 불법 행사 부스를 설치해 도로를 막았던 해밀톤호텔 별관은 2013∼2017년 총 5차례 무단 증축 지적을 받고도 10년 가까이 시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밀톤호텔 별관은 1층 31m²가량을 경량철골과 투명 플라스틱 패널 등으로 불법 증축했다가 2013년 12월 처음 당국에 적발됐다. 이 건물은 2014년 11, 12월에도 점포 30m²와 옥상 창고 24m², 2층 영업장 78m²를 무단으로 넓혔다. 2017년에는 별관 1층의 무단 증축 면적이 31m²에서 51m²로 더 늘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앱) 로드뷰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한 결과 이 건물은 외벽 밖으로 계속 확장하며 무단 증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해밀톤호텔 별관과 본관 사이 도로 폭이 좁아졌다. 참사 당일에는 이에 더해 불법 임시 부스가 설치됐고, 맞은편 본관 건물에 불법 증축된 테라스까지 더해져 원래 약 5m인 골목 폭이 약 3m로 좁아졌다. 이로 인해 참사 당시 대피로를 막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적발되면 철거하고 재설치 반복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의 다른 건물들도 무단으로 면적을 늘려 영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구청에 적발되면 잠시 철거했다 다시 증축하기를 반복해 온 것이다. 이 거리 내 한 주점 건물은 2015년 도로 앞에 파이프, 비닐 등을 이용해 천막을 증축했다가 구청에 적발됐다. 이 건물은 약 11개월 뒤 천막을 철거했다고 신고했지만 2020년 5월 다시 설치해 재차 위반 통보를 받았다.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이 천막은 해가 지날수록 도로 방향으로 면적을 넓히다 올 9월 다시 구청으로부터 위반 통보를 받았다. 건물 6층 역시 무단 증축된 상태다. 다른 건물도 무단으로 외부 공간에 구조물을 세워 구청에 적발됐다. 이 건물주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키지 않았는데 인테리어 업자가 구조물을 세워 버렸다”며 “그렇다고 부수자니 애매해서 매년 500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내고 있다. 고의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지자체가 적발 못 한 위반 건축물도무단 증축 상태지만 건축물대장에는 시정 조치된 것으로 기록된 곳도 있었다. 한 주점 건물은 2015년 건물 앞에 창틀과 유리를 덧대 공간을 넓혔다가 구청에 적발됐다. 이후 해당 건물에서 시정 조치를 해 올 9월 구청은 이 건물의 위반 건축물 표기를 해제했다. 하지만 점포가 바뀌면서 이 건물은 다시 철제 기둥과 유리로 온실 비슷하게 무단 증축된 상태다. 안형준 전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이행강제금을 물리긴 하지만 납부만 하면 그 이상의 별다른 제재가 없는 실정”이라며 “이태원뿐 아니라 홍익대 앞 등의 대형 상권에서도 흔하게 보이는 현상”이라고 했다. 참사가 일어난 해밀톤호텔 서측 골목에는 아예 신고조차 되지 않은 ‘미허가 건축물’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시건축사회 관계자는 “1982년 이전 지어진 건축물의 경우 서울시 건축조례에 따라 ‘기존 무허가 건축물’로 분류돼 단속 유예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지자체 상당수가 이 같은 건물이 위험 요소라고 보고 개선 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관할 지자체 “제재 수단 마땅찮다”지자체 실무자들은 불법 증축 건물에 대해 이행강제금 부과 외에는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제재 조치가 별로 없다고 했다. 관련 대법원 판례가 있어 건축 규정을 위반했더라도 강제 철거는 어렵다는 것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이행강제금 부과 외에는 취할 수 있는 제재 조치가 사실상 없다”고 토로했다. 이행강제금은 불법 증축물의 시가표준액, 위반 면적 등을 고려해 부과하지만 건물주가 증축으로 얻는 임대료 상승분 등 이익에 비해 적은 경우가 상당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5m가량 떨어진 해밀톤호텔 본관 역시 북측 주점 테라스 17.4m²가 불법 증축돼 지난해 5월 시정조치를 받았지만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해당 면적에 대해 부과되는 이행강제금은 1년 기준으로 400만∼5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불법 증축으로 통행로가 좁아지는 경우 보행자 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위반 건축물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 2022-11-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해밀톤호텔 주점 테라스-부스 불법증축… ‘병목’ 가중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 위치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주점이 세계음식문화거리에 테라스를 무단 증축했으며, 행사를 앞두고 임시 부스까지 불법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시설물 탓에 거리 너비가 대폭 좁아지면서, 참사 당시 현장을 벗어나려는 시민들이 대피할 때 병목 현상을 가중시킨 것이다. 31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해밀톤호텔 일반건축물대장을 확인한 결과 호텔 본관 북측에 있는 A주점의 테라스는 불법 증축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테라스는 폭 1m, 길이 17m가량이다. 이 때문에 참사 당시 대피로 역할을 했던 호텔 북측 세계음식문화거리는 폭이 약 5m에서 약 4m로 1m가량 줄었다. 지난해 11월 용산구가 불법 증축을 단속하고 기록한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이 테라스는 면적이 17.4m²로 경량철골 및 유리로 제작됐다. 참사 당일 해밀톤호텔 맞은편 별관 주점에서도 핼러윈을 맞이해 이 테라스와 비슷한 폭(약 1m)의 행사 부스를 세계음식문화거리 반대편에 무단 설치했다. 이 때문에 세계음식문화거리 일부 구간은 폭이 약 3m까지 줄었다. 이 테라스와 부스는 이번 참사가 발생한 호텔 서측 골목과 직선거리로 5m도 채 떨어져 있지 않다. 불법증축 건물 앞은 3m ‘병목’… 돌아갈 길도 꽉 막혔다 호텔 불법증축 ‘통행 병목’길이 17m-폭 1m 테라스 무단증축… 맞은편도 폭 1m 행사부스 무단설치사고 난 호텔 옆 골목서 이동 어려워… 전문가 “도로 폭 통상 3.5m 넘어야”용산구청 “호텔에 작년 5월 시정요구”… 해밀톤측 “임대 준 주점이 설치한 것” 전문가들은 이 불법 테라스 등으로 인해 병목현상이 발생한 탓에 참사 당시 사고를 피하려는 인파가 현장을 떠나기 힘들어졌고, 피해가 확대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테라스와 행사 부스 탓에 원래 폭이 약 5m인 세계음식문화거리는 일부 구간(5∼6m)에서 인파가 통행할 수 있는 폭이 3m 남짓에 불과했다. 테라스만 있는 11∼12m 구간은 통행 폭이 약 4m로 줄었다.○ 좁아진 거리에 옴짝달싹 못 해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게시된 참사 당일 사고 발생 직전 영상을 보면 세계음식문화거리에 들어찬 인파의 흐름은 이미 매우 느린 상태였다. 특히 불법 증축된 테라스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거리 폭이 좁아지며 행인들이 거의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앞사람 뒤통수와 맞닿을 정도로 붙어 있었고, 일부 행인은 인파에 짓눌리자 진행 방향이 아닌 옆 방향으로 몸을 돌린 채 간신히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음식문화거리로 사람들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인파의 압박은 더 심해졌다. 일부 행인들은 휘청거렸고, 몇몇은 테라스 기둥을 붙잡고 서 있거나 매달려 있었다. 이 때문에 참사가 발생한 직후 사고가 난 호텔 서쪽 골목에서 세계음식문화거리 쪽으로 대피하려던 이들은 대부분 인파에 갇혀 움직이지 못했다. 구조대원 등이 사고 현장으로 접근하는 것도 지체됐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보행자와 차량 모두 통행할 수 있는 거리 폭은 통상적으로 최소 3.5m 이상이어야 하지만, 불법 증축물과 설치 부스 탓에 사고 당시 통행 공간이 줄어 사람들이 대피할 수 없게 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건축주인 호텔 측이 시정 책임”용산구청에 따르면 구청에선 지난해 5월경 호텔 뒤편에 테라스가 무단 증축된 것을 확인하고 호텔 측에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이후 시정되지 않자 6개월 뒤 강제이행금을 부과하고 건축물대장에 해당 내용을 기재했다. 구청 측은 “건축주인 호텔 측에 시정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테라스가 설치된 주점을 관리하는 해밀톤쇼핑몰 측은 구청에서 시정 조치를 전달받자마자 해당 내용을 테라스를 설치한 주점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쇼핑몰 측은 “주점에 임대를 내준 공간이고, 주점에서 테라스를 설치할 당시 우리에게 알린 바 없다”며 “시정 조치를 받자마자 주점에 통보했다”고 했다. 테라스 맞은편 건물에 설치된 행사 부스도 호텔 별관을 임차한 주점에서 설치했다고 한다. 취재팀은 해당 주점에 해명을 듣고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에 호텔 쪽으로 세워져 있는 임시 벽도 골목길을 더 좁게 만든 원인으로 지적된다. 해당 벽은 해밀톤호텔이 무단 증축했다가 2016년 구청 지적을 받고 철거한 건물의 잔재다.○ 분장사들로 통행 불편 겪기도테라스와 행사 부스 외에도 사고 당일 이 거리 곳곳에는 인파 통행을 방해하는 시설물들이 적지 않았다. 참사 당일 이태원을 찾았던 이들은 거리 곳곳에 1만∼2만 원의 돈을 받고 핼러윈 분장을 해주는 이들이 설치한 이동식 탁자와 의자 등이 통행에 불편을 낳았다고 했다. 김모 씨(24)는 “인파들이 움직일 때 분장사들이 설치해 놓은 의자와 탁자에 부딪히는 경우가 잦았고,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이태원을 찾은 A 씨는 “사고가 발생했던 골목길에도 분장사가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 2022-11-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폭 3.2m ‘죽음의 골목’, 청년들 앗아갔다

    핼러윈을 앞둔 주말이었던 29일 밤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서 154명이 깔려 숨지고 132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2014년 304명이 숨진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대형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30일 소방당국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기준으로 이번 사고 사망자는 154명, 중상자 36명, 경상자 96명으로 모두 28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중상자가 적지 않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고 장소는 해밀톤호텔 서편 폭 3.2m짜리 내리막 골목길이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와 유명 식당 및 클럽이 밀집된 세계음식문화거리를 잇는 지름길이라 이태원역 인근에서 유동인구가 많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참사는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저녁부터 인파가 몰리면서 시작됐다. 골목마다 행인들이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찼는데, 오후 10시 15분경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길에 서 있던 인파가 내리막 방향으로 넘어지면서 도미노처럼 서로 깔리는 참사가 났다. 신고 2분 만에 구조대원이 도착했지만 좁은 공간에 인파가 뒤엉켜 있어 구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도로 정체로 구급차 진입로가 확보되지 않아 구조 작업이 지연됐다. 시민들도 앞다퉈 팔을 걷어붙이고 심폐소생술(CPR)에 나섰지만 이미 구조의 골든타임(4분)은 지난 뒤였다. 소방당국은 이날 대응 최고 수준인 3단계를 발령하고 소방대원 경찰 등 2421명을 구조 작업에 투입했지만 끝내 154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내 압사 사고로는 최악의 인명 피해다. 사망자 154명 중 103명(66.9%)이 20대였다. △30대 30명 △10대 11명 △40대 8명 △50대 1명 등이었고 1명은 연령대가 파악되지 않았다. 사망자 중 98명은 여성이었다. 미국(2명), 중국(4명), 일본(2명), 러시아(4명), 이란(5명) 등 14개국 외국인 26명이 숨졌다. 이번 사고를 두고 ‘예견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는 3년 만의 마스크 없는 핼러윈 축제라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릴 가능성이 컸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등은 안전사고 대비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 없이 인근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파티를 여는 방식이라 안전조치 의무를 다해야 할 주체도 마땅치 않았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고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들을 확보해 분석하는 한편 목격자를 조사하고 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 2022-10-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m²당 12명 넘게 밀집”… 5.5평에 300명 깔리고 선 채 실신도

    핼러윈을 앞둔 주말이었던 29일 밤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서 154명이 깔려 숨지고 132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2014년 304명이 숨진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대형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30일 소방당국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기준으로 이번 사고 사망자는 154명, 중상자 36명, 경상자 96명으로 모두 28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중상자가 적지 않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고 장소는 해밀톤호텔 서편 폭 3.2m짜리 내리막 골목길이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와 유명 식당 및 클럽이 밀집된 세계음식문화거리를 잇는 지름길이라 이태원역 인근에서 유동인구가 많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참사는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저녁부터 인파가 몰리면서 시작됐다. 골목마다 행인들이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찼는데, 오후 10시 15분경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길에 서 있던 인파가 내리막 방향으로 넘어지면서 도미노처럼 서로 깔리는 참사가 났다. 신고 2분 만에 구조대원이 도착했지만 좁은 공간에 인파가 뒤엉켜 있어 구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도로 정체로 구급차 진입로가 확보되지 않아 구조 작업이 지연됐다. 시민들도 앞다퉈 팔을 걷어붙이고 심폐소생술(CPR)에 나섰지만 이미 구조의 골든타임(4분)은 지난 뒤였다. 소방당국은 이날 대응 최고 수준인 3단계를 발령하고 소방대원 경찰 등 2421명을 구조 작업에 투입했지만 끝내 154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내 압사 사고로는 최악의 인명 피해다. 사망자 154명 중 103명(66.9%)이 20대였다. △30대 30명 △10대 11명 △40대 8명 △50대 1명 등이었고 1명은 연령대가 파악되지 않았다. 사망자 중 98명은 여성이었다. 미국(2명), 중국(4명), 일본(2명), 러시아(4명), 이란(5명) 등 14개국 외국인 26명이 숨졌다. 이번 사고를 두고 ‘예견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는 3년 만의 마스크 없는 핼러윈 축제라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릴 가능성이 컸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등은 안전사고 대비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 없이 인근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파티를 여는 방식이라 안전조치 의무를 다해야 할 주체도 마땅치 않았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고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들을 확보해 분석하는 한편 목격자를 조사하고 있다.생존자-목격자가 전한 악몽 현장폭 3.2m 길이 40m 좁은 비탈길, 도미노처럼 쓰러지며 아수라장압력에 약한 여성들 더 큰 피해 “살려주세요” 울부짖고 잇단 실신사고 30분 지나서야 구조 시작 “(밀려 넘어졌을 때) 앞사람 등에 내 얼굴이 완전히 파묻혔고, 뒷사람이 내 몸 전체를 깔고 있었어요. 깔린 채로 인파에 떠밀려서 골목길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제 바로 아래 있던 사람이 못 움직이는 것 같아서 몸을 잡았는데, 이미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습니다.”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생존자 최승헌 군(17·충남 서산시)은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그는 당시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 아래쪽에 있었다. 최 군은 “내리막에서 사람들이 뒤에서 미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도미노처럼 넘어졌다”고 했다. 소방대원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 있었던 최 군은 인파 무리에 깔린 지 30여 분 만에 가까스로 구조됐다. 최 군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던 유성주 군(17)은 “다행히 내리막길 위쪽에 있어서 사고를 피할 수 있었지만 앞에 있던 사람이 선 채로 실신하는 걸 봤다”고 말했다. ○ “앞뒤로 밀려 숨 안 쉬어져”목격자와 생존자들이 전한 사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일부 구조자는 “서 있었지만 앞뒤로 받는 압력에 숨을 쉬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현장에서 간신히 구조된 A 씨(29·여)는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골목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확 밀렸다”며 “숨이 안 쉬어져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들고 최대한 숨을 쉬려고 했다. 친구에게 ‘우리 나갈 수 있어, 정신 차려’라고 얘기하다가 저도 점점 정신이 희미해졌다”고 했다. 특히 압력에 저항하는 힘이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떨어지는 여성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목격자 최모 씨(21)는 “여성들의 ‘살려주세요’라는 울부짖음과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이번 참사에서 여성 희생자 수가 남성의 약 2배에 달했다.○ “밀어” “밀지 마” 고함과 절규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에 앞서 이미 해당 골목에서는 인파에 밀린 사람들의 신발이 벗겨지거나 가방이 찢어지는 등 위험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8시 반경 일행과 함께 이태원에 온 이모 씨(27)는 “이때도 사고가 난 골목에서 사람들이 물밀 듯 밀려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내려오려는 사람들과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뒤섞이며 3명이 연쇄적으로 넘어지기도 했다”고 했다. 인파가 갑자기 몰린 건 오후 10시경부터였다. 선택규 씨(27)는 “오후 10시쯤 인플루언서가 왔다는 말이 돌면서 인파가 더 많아졌다”고 기억했다. 사고 직전 참사 현장에선 ‘밀어’라는 고함과 ‘밀지 마’라는 절규가 오갔다고 한다. 이모 씨(25)는 “압사 사고 전에도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사람들 틈에 껴 있었다”고 했다. 최 군은 “오후 10시 10분쯤부터 사람들이 넘어지기 시작했고, 일어나려고 해도 다시 밀려 넘어지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 골목 내 폭 3.2m, 길이 5.7m 남짓한 약 18.24m²(약 5.5평) 공간에 300여 명이 쌓였는데, 이 구간에서 대부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고 현장 영상 등을 보면 참사 당시 인파가 1m²당 12명 이상이었을 것”이라며 “이 정도면 실신자가 생긴다”고 했다.○ “구급대원 진입에 시간 걸려 골든타임(4분) 놓쳐”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파 속에서 의식을 잃고 숨을 쉬지 않는 이들이 점차 늘었지만 구조는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근 상인 B 씨는 “사람이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사람이 너무 많아 현장에 다가갈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오후 10시 반 전에 일부 경찰과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구조는 지지부진했다. 사고 현장을 찍은 영상 등에는 경찰관과 구급대원들이 인파에 깔려 정신을 잃은 시민의 손을 잡고 끌어내려고 애쓰지만 못 꺼내는 상황이 담겨 있다. 구조가 본격화된 것은 사고 발생 뒤 최소 30분가량이 지난 오후 10시 45분경부터였다. 사고 장소 인근에 있었던 C 씨(23)는 “인파로 길목이 차단돼 구급대원들이 진입하기도 힘든 상황이 한동안 이어졌다”고 했다. 갈수록 심정지 골든타임(4분)을 넘긴 피해자가 늘었다. 구조대와 시민들은 위아래로 달라붙어 의식을 잃은 이들을 해밀톤호텔 앞 차도와 세계음식문화거리 등으로 옮겨 뉘었다. 구급대원과 시민들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지만 이미 사선을 넘은 희생자들이 푸른 천에 덮인 채 나란히 뉘어졌다. 30일 0시 반이 지나서야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됐고, 시신들이 각 병원으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사고 현장 벽면에는 사상자들이 살기 위해 붙잡았던 간판이 떨어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극적으로 구조되거나 사고를 피한 이들은 정신적 충격을 호소했다. 29일 오후 11시 15분경에야 가까스로 구조됐다는 한 시민은 현장에서 동아일보 기자에게 “같이 온 친구는 다리를 다쳐 길바닥에 한동안 앉아있었다. 지금도 당시 공포를 생각하면 손발이 덜덜 떨린다”고 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김보라 인턴기자 고려대 한국사학과 졸업}

    • 2022-10-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년만의 ‘노마스크 핼러윈’…13만명 몰렸는데 보행통제 없었다

    29일 이태원에는 경찰이 예상한 10만 명을 훌쩍 넘는 인파가 몰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를 맞아 예년보다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인데, 경찰 등 당국의 대비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예고된 사고’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서울시내 곳곳에 시위가 있어 경찰 경비 병력의 상당수가 광화문 등으로 분산됐다”고 해명했다.●경찰 예상보다 많은 13만 명 이상 운집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에도 핼러윈을 앞둔 주말이면 10만 명 가까운 인파가 모였다.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3년 만의 ‘노 마스크’ 핼러윈이 가능해지면서 더 많은 인원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됐다. 30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이날 서울 지하선 6호선 이태원역 이용객 수는 총 13만131명(승차 4만8558명, 하차 8만1573명)이었다. 3년 전 핼러윈을 앞둔 토요일(2019년 10월 26일·9만6463명)보다 약 3만4000명 많았다.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고 이태원을 찾은 인원까지 더하면 경찰이 예상한 10만 명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28, 29일 각각 예년과 비슷한 200여 명을 이태원 일대에 배치했지만 참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주로 이태원로의 교통 관리에 투입됐을 뿐 이태원 골목 안쪽의 인파에 대한 안전 대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보행자 통행 방향을 정하거나 진입 인원수를 조절하지 않았고, 2017년 등에 설치했던 폴리스라인도 설치하지 않았다. 사고 현장인 해밀톤 호텔 옆 골목도 마찬가지였다. 사고 현장에서 구조된 유성주 군(17·충남 서산시)은 “오후 7시 반부터 사고 순간까지 현장 통제 인력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모로코인 마르완 씨(24)도 “관리 인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민 장관은 이날 서울정부청사 브리핑에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었다”면서도 “예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으로 파악한다”고 했다. 서울시청이나 용산구청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안전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용산구는 핼러윈 주말을 앞두고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방역·소독을 실시하고 주요 시설물 안전 점검을 진행했다”고 했지만 대규모 인파 통제 계획 등은 없었다. 통행량 조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을 무정차 통과하도록 했어야 한단 의견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역장이 당시 역사 내에는 무정차 통과할 정도로 사람이 많지는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전날인 28일에도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직장인 정모 씨(31)는 “28일 친구들과 골목에 끼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로 30분 정도 있었다”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동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도 사람들로 가득찬 사고 전날 찍은 이태원 골목 사진이 올라왔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대규모 인원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면 안전 관리요원을 배치하고 소방차가 사전에 대기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55평 면적에 1000여 명 운집 참사가 발생한 골목은 세계음식문화거리와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연결하는 가장 빠른 경로다. 북쪽에서 진입하는 쪽은 비교적 넓지만 골목 자체의 폭은 4m 가량에 불과해 인파가 밀려들며 앞쪽에 가해지는 압력이 극도로 높아지는 구조다. 더구나 길이 45m 정도의 내리막길이라 위에서 아래쪽으로 하중이 더욱 가해졌다. 유료로 핼러윈 분장을 해주는 이들이 거리에 설치한 식탁과 의자 등이 인파 통행에 불편을 낳기도 했다. 직장인 김모 씨(24)는 “(사고에 앞선 시점에도) 행인들이 분장사들이 설치해놓은 의자와 식탁에 걸려 넘어졌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면적이 약 55평(180㎡) 가량인 골목 인근에는 1000여 명이 몰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격자 증언을 종합하면 이날 오후 10시경 지하철역 방향으로 빠져나가려는 인원은 뒤에서 계속 밀려드는데, 골목 앞쪽은 역에서 나온 인파로 가로막혀 있어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앞쪽의 일부 인원이 잇달아 넘어지면서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태원로가 주차장으로 변해 구급차 진출입이 지연되며 초기 구조가 지체된 것도 참사가 커진 원인이다. 사고 현장에서 인파에 깔려 있다가 구조된 정지수 씨(26)는 “체감 상 깔린 뒤로부터 30분 넘게 지나서야 구급대원이 도착했다”고 했다. 현장의 구조본부는 “지금 축제(핼러윈)가 문제가 아니다. 구급차가 빠져나갈 수 있게 경찰 통제에 따르라”라고 지속적으로 안내했지만 도로에 가득 찬 차들과 인파가 빠져나가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날 오후 10시 50분경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이태원로를 빠져나가기까지 20분가량 소요됐다. 사고 발생 1시간이 넘게 지난 오후 11시 반경에도 “지금 차가 빠지지 않고 있으니 빼 달라”는 119 구조대의 안내가 지속됐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양인성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 2022-10-30
    • 좋아요
    • 코멘트
  • 3년만의 ‘노마스크 핼러윈’에 10만명…현장통제 제대로 안됐다

    29일 151명이 숨지고 82명이 다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사고‘를 두고 “예견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3년 만의 ‘노 마스크’ 핼러윈 축제가 가능해지면서 대규모 인원이 모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관계 당국이나 인근 상인회 차원의 현장 통제 등 안전 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관할 구청과 경찰 등은 28일부터 30일까지 하루 10만 명 이상이 운집할 것으로 일찌감치 예상하고 대비 태세를 갖췄지만 정작 인원 통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시민들의 자율적인 축제로, 행사 주최 시 안전 조치를 담당하는 주최가 별도로 없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현장을 통제할 주최 측이 없는 현장인 만큼 정부 등에서 이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 요원을 배치하는 등 조치가 취해졌어야 한다”고 했다.● “현장 통제 인원 사고 뒤에야 도착” 현장 목격자들은 “인파가 몰려드는 좁은 골목길만이라도 통제됐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좁은 길목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경우 통행 방향을 정하고 진입하는 인원수를 조절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지만 목격자 등에 따르면 이러한 대처는 전무했다. 유성주 군(17·충남 서산 거주)은 “현장을 통제하는 인원은 오후 7시 30분부터 사고 순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사고 발생 이후인 오후 10시 20분경에야 경찰이 도착해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경찰은 28, 29일 이틀 동안 매일 200여 명을 이태원 일대에 배치했지만, 대형 인명 사고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장 목격자 등에 따르면 경찰 인력은 주로 차도인 이태원로에 배치돼 교통 통제에 투입돼 있었다고 한다. 모로코인 마르완 씨(24)는 “경찰은 도로에만 있었고 사고 난 지역에선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현장 브리핑을 진행한 경찰 관계자는 ‘사고 전 군중 통제가 왜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건 제가 확인해드릴 입장에 있지 않다”며 “앞서 가용 인력을 총동원해서 철저히 대응하란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사고 발생 전날도 비슷, “예견된 사고”사고 발생 전날인 28일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단 증언도 나왔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는 사고 전날 찍은 이태원 골목 사진 등과 함께 “(이날도) 수천 명이 몰려 걷기가 어려웠다”, “인원 통제가 없었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날 이태원을 찾은 직장인 정모 씨(31)는 “28일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동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며 “친구들과 골목에 끼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로 30분 정도 있었다”고 했다. 차로까지 몰려든 인파에 구급차 이송이 지연되며 초기 구조가 지체되기도 했다. 이날 오후 10시 50분경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인파에 막혀 이동하지 못하자 한 시민은 맞은편 이태원 파출소를 찾아 “구급차가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경찰이 교통정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해당 구급차가 이태원로를 빠져나가기까지는 20분가량 소요됐다. 사고 현장에서 인파에 깔려 있다가 구조된 정지수 씨(26)는 “체감상 깔린 뒤로부터 1시간가량이 지나서야 구급대원이 도착했다”며 “구조가 빠른 것 같지 않았다. 뒷사람에 오랫동안 깔려 있어서 다리에 감각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은 폭 4m에 길이 45m 정도 좁은 내리막길로 해당 골목은 서울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와 세계음식문화거리로 진입하는 가장 짧은 경로다. 목격자 증언과 당시 영상 등을 종합하면 사고 당시 수천 명이 이곳에 몰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음식문화거리는 이태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집과 클럽 등이 모여 있는 거리다. 특히 사고 발생 골목과 접하는 삼거리엔 유명 클럽형 주점이 몰려 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양인성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 2022-10-30
    • 좋아요
    • 코멘트
  • “41년만에 형 만났지만, 선감학원 악몽은 계속”

    “감자골에 살았던 영열이 형 맞으신가요?” “아이고 내 동생 영수구나. 어머니가 널 보셨어야 하는데….” 25일 경기 화성시 자택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최영수 씨(58)는 “형과 41년 만에 기적적으로 재회한 2016년 8월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옆에 있던 형 최영열 씨(59)는 “동생이 선감학원에 끌려간 줄 몰랐던 어머니는 항상 동생 밥을 퍼놓고 기다리셨다”고 돌이켰다. 최 씨는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로 공식 인정받은 167명 중 한 명이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 초까지 부랑아 단속 명목으로 아동·청소년을 강제 수용했고 각종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8남매 중 막내였던 최 씨는 열한 살이던 1975년 8월 선감학원에 끌려갔다. 수원역에서 “화장실 간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다”던 최 씨를 경찰이 막무가내로 끌고 갔다고 했다.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했지만 막내를 찾을 순 없었다. 최 씨는 1964년 8월 20일 태어났지만, 선감학원이 원아대장에 1962년 1월 1일로 기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경기도 조례상 만 13∼18세 남아만 수용할 수 있다 보니 대장을 조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 씨는 “매일 보리밥에 건더기도 없는 국물, 김치에 무장아찌만 줬는데 그마저도 3분 만에 먹어야 했다”며 “강제 노역과 구타에 시달리다 8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발각됐다”고 했다. 한 직원은 유리 조각으로 최 씨의 허벅지를 찌르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을 꼬박 버티다 직원이 회의에 간다며 최 씨 등 3명을 데리고 나왔을 때 인파 속에 숨어 탈출했다. 가족을 찾으려 했지만 원래 살던 경기 안산시 상록구는 개발이 진행 중이었고 가족도 다른 곳으로 이사한 뒤였다. 최 씨는 닥치는 대로 신문팔이, 구걸, 식당일 등을 하며 생활했다. 영열 씨는 “2009년 사망한 어머니가 눈감는 순간까지 막내를 찾았다”고 했다. 가족과 수십 년간 생이별해 살던 최 씨는 2016년 8월 단골 카센터 직원 덕분에 극적으로 형과 만날 수 있었다. 눈썰미 좋은 이 직원은 최 씨에게 “당신을 닮은 사람이 차를 수리하러 와 물어보니 동생 이름이 영수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경기 수원시에서 41년 만에 상봉하던 날, 둘은 어릴 적 마을 이름을 같이 되뇌며 형제임을 확인한 뒤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최 씨는 가족을 찾은 직후 어머니 산소를 찾았다. 41년 만에 어머니 앞에 선 막내는 한없이 흐느끼기만 했다고 한다. 가족이 생겼지만 최 씨는 여전히 수면유도제를 달고 산다. 선감학원에서 보낸 지옥 같은 시간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최 씨는 “큰형과 큰누님은 내가 선감학원에 있었다는 걸 아직 모른다”면서도 “기사를 보고 알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화성=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10-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