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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이환 감독(42)은 첫눈에 띄었다. 푸르게 물든 머리와 수가 가늠되지 않는 피어싱. 화려하게 치장하고 구석에 앉은 이 감독은 자신의 작품 속 아이들과 닮아 있었다. 청소년들의 어두운 현실을 그린 이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가 15일 개봉한다. 영화는 그의 전작인 ‘박화영’(2018년)에서 조연으로 나온 세진(이유미)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진은 화영(김가희)의 집에서 지내는 가출 청소년인데 극 후반 홀연히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이번 작품에선 임신한 10대 소녀 세진이 동갑내기 친구 주영(안희연)과 만나 낙태를 시도한다. 이 감독은 기획 의도에 대해 “박화영 개봉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청소년 쉼터 선생님이 10대 이야기를 한 번 더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유미 배우가 어떤 연기로 관객을 끌고 갈지도 궁금했다”고 말했다. 리얼리즘은 여전하다. 전작 때도 10대들의 말투와 행동이 리얼해 관객에게 트라우마를 줄 정도라는 평이 많았다. 수십 개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음지에서 행해지는 낙태 실상을 연구했다. “우연히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10대가 자해하는 장면을 봤다. 그 자체도 놀랐지만 어른들이 그 아이를 보고 ‘환심을 사려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영화는 전작보다 핏빛이다. 화영의 인간관계에 집중하며 모성애를 은연중 내보인 박화영과 달리 이번에는 낙태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떠올린 2년 전 떠들썩한 낙태 찬반 논란을 보며 함께 고민해 봤으면 했다”고 말했다. 배경음악에도 신경을 썼다. 엔딩곡으로 점찍어 놓은 빈첸의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는 자퇴를 다룬 노래로 영화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그의 영화는 사실 관객을 불편케 한다. 그는 “어른들은 위기 청소년들의 존재를 믿고 싶지 않아 한다. 관심까진 아니더라도 그들을 부정하지 않아 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차기작으로 범죄 드라마를 준비 중이지만 관계라는 키워드를 놓지 않을 작정이다. “박화영도 이번 작품도 일종의 가족 영화라고 생각한다. 끊긴 관계에서 오는 결여나 새로운 관계 만들기 등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영화에 녹이고 싶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단원 김홍도(1745∼?)의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은 뮤지컬, 소설, 연극 등 여러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돼왔다. 도첩에 실린 그림 중 ‘무동도’는 정물이지만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그림 속 무동은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신명나게 팔과 다리를 흔든다. 200여 년간 그림 속에 갇혔던 흥겨운 춤판이 현대로 소환됐다. 10, 11일 국립중앙박물관은 무동도를 소재로 ‘The Line of Scene’ 발레 공연을 열었다. 이 작품을 만든 정형일 안무가는 “풍각쟁이들의 연주와 무동의 춤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치게 표현된 그림을 보면서 자유로움과 해방감에서 나오는 본능적 표현을 생각하게 됐다”며 “엄격히 학습된 정통발레에서 벗어나 춤이라는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품은 2019년 안산문화재단의 ‘댄싱키즈’ 공연에서 초연됐다. 정 안무가의 말처럼 작품은 무용수의 선이 특히 돋보인다. 배경과 소품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신체 하나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홍도가 배경을 생략하고 등장인물들이 취하는 자세와 동작에만 집중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 공연 중간에 정지 동작이 많은데 이는 한 번에 이어지지 않는 붓 터치를 연상시킨다. 연출도 눈여겨볼 만하다. 오프닝은 샤막(무대 전면에 설치되는 반투명의 막) 뒤에서 무용수 아홉 명이 춤을 춘다. 약 20초 뒤 샤막이 걷히는데, 마치 그림 속 주인공이 살아나 춤을 추는 듯하다. 오프닝 음악인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바이올린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뜯어 음을 내는 방법) 편곡은 가야금 연주 소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무용수들의 의상은 먹물을 떨어뜨린 한지를 상상케 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13일 막걸리를 빚는 작업뿐 아니라 생업, 의례, 경조사 등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생활관습까지 무형문화재 지정을 예고했다. 막걸리 빚기는 2019년 국민신문고 국민제안을 통해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예고한 첫 사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삼국시대부터 막걸리 제조 기록이 확인되고 현재까지도 한반도 전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점이 고려됐다. 농요와 속담, 문학작품 등을 통해 막걸리 문화가 꾸준히 향유된 점도 인정받았다. 막걸리는 쌀밥을 지어 식힌 후 누룩과 물을 넣고 수일간 발효시켜 체에 거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막걸리는 마구 혹은 빨리를 뜻하는 ‘막’과 거른다는 뜻의 ‘걸리’를 결합한 말로 거칠게 빨리 걸러진 술을 뜻한다. 어원처럼 제조 과정이 간단한 만큼 값이 싸서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쉽게 접한 서민 술의 대명사다. 문화재청은 다음 달 12일까지 30일간 무형문화재 지정 예고 기간 중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칠 예정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땡!” tvN ‘신서유기’ 팬이라면 반사적으로 웃게 되는 소리다. 나영석 PD(45)의 경쾌한 목소리는 이 프로그램의 시그니처다. 이번에 나 PD 앞에 선 건 신서유기 멤버들이 아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 음반공연기획사 안테나의 유희열, 정재형, 페퍼톤스, 권진아, 이진아, 샘김.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얼굴들이다. 지난달 12일부터 나 PD는 tvN 예능 ‘출장십오야’의 공식 출연진으로 등장해 방송계 행사 등을 찾아가 게임을 진행한다. 신원호 PD의 예능 ‘슬기로운 캠핑생활’을 촬영 중인 배우들을 대상으로 약 4∼5시간 촬영하고 그 부분을 편집해 올리는 식이다. 슬기로운 캠핑생활이 힐링이라면, 출장십오야 슬기로운 캠핑생활 편은 오락이다. 출장십오야는 나 PD 등이 운영하는 CJ ENM 소속 유튜브 채널에서도 볼 수 있다. 12일 기준 누적 조회수가 약 2200만 회에 이른다. 이승기, 안재현, 송민호, 이서진, 유해진, 차승원…. 나 PD가 ‘예능 원석 발굴가’로 불리면서 이번에 나타날 새 예능캐릭터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 출연진별 영상은 총 1시간 남짓인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이면이 톡톡 드러난다. 특히 큰 반응을 끈 건 정경호와 2인조 밴드 페퍼톤스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까칠하고 무뚝뚝했던 김준완(정경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애교 많은 정경호의 본체만 남았다. 비교적 덜 유명했던 페퍼톤스는 탁구 경기 도중 영어를 쓰면 0점 처리되는 ‘훈민정음 탁구’ 게임에서 기발한 어휘력을 구사해 웃음을 줬다. 댓글에는 “예능계 블루칩들 나가신다”, “데려다가 새 프로그램 만들어 달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은 신효정 PD(40)는 서면 인터뷰에서 “유연석 씨에게 우연히 걸려온 전화를 받고 첫 출장을 갔고, 이후 다양한 곳으로 출장을 다녀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며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사람이 달라지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는 걸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촬영 후 출연자들의 만족도를 확인하는데 다시 출연하고 싶다는 비율이 매우 높다”며 “음식점에서 별점 5점 받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신 PD는 2007년 KBS ‘해피선데이’ 때부터 나 PD와 인연을 맺어왔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7세기는 조선 유학사에서 전환이 이뤄진 시기로 일컬어진다. 윤휴, 박세당 등 조선왕조의 국가 이데올로기였던 주자성리학과 거리가 있는 경전 해석을 시도한 학자들이 나왔다는 것. 이들은 국내에서 유학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일제강점기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주자성리학 권위에 도전하고 새로운 사상체계를 구축한 조선 후기의 실학은 이들로부터 비롯됐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한문학자인 저자는 조선 실학자들이 주자성리학을 부정했다는 통설에 반론을 제기한다. 이들은 주자성리학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개선을 시도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제에 의해 조선 유학사 연구가 왜곡됐을 가능성을 거론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관변학자들은 조선 유학계가 주자성리학을 추종해 학문적 독창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족운동계열 학자들이 이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조선에도 실학이나 양명학 등 주자학을 비판한 학맥이 존재했다는 식으로 주장을 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17세기 당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 유학자들도 실상 주자성리학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녔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주자학 연구가 더 정밀하게 이뤄진 바탕에서 진전된 견해를 밝혔다는 것. 17세기 조선 유학계에서 어떤 이는 주자의 발언을 실마리 삼아 연역하고 어떤 이는 인용하여 자신의 설을 전개했다. 저자는 조선 유학사에 대한 ‘오해’는 시대의 산물이라며 잘못으로 치부하고 망각해 버리면 안 된다고 말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서울 종로구 송월길의 고갯길을 10분 정도 오르자 붉은색 2층 벽돌집이 툭 튀어나온다. 주변의 잿빛 연립주택과 비교하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 1층 거실에 들어서자 건물 벽과 같은 색의 벽돌로 만든 벽난로가 놓여 있다. 난로 위에는 중세 유럽풍의 은촛대와 은제 컵이 놓여 있다. 벽면에는 세 마리의 칼새가 그려진 방패 모양의 휘장이 걸렸다. 흡사 유럽 성에 온 것 같다. 분위기는 2층에서 바뀐다. 거실에는 연꽃과 오리, 새를 채색 자수로 장식한 2m 높이의 조선시대 전통 병풍이 놓여 있다. 동서양의 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곳은 미국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1923년에 지은 자택 ‘딜쿠샤’다.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구한말 부친을 따라 조선에 온 테일러는 1919년 3·1 독립선언서를 일제의 눈을 피해 세계에 알린 주인공이다. 이후에도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서울시는 1942년 일제에 의해 테일러가 추방된 후 방치된 딜쿠샤의 원형을 복원해 지난달 1일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딜쿠샤의 실내 복원을 전담한 최지혜 국민대 예술대 교수(49)는 국내에 드문 근대 서양 앤티크 양식 전문가다. 그는 “방문이 곧 훼손이라고 생각하지만 되레 사람의 손길에서 멀어지면 죽은 공간이 되기 쉽다”고 했다. 그는 2014년 덕수궁 석조전 실내 공간을 비롯해 미국 워싱턴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복원에도 참여했다. 최근에는 신간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혜화1117)을 펴내 딜쿠샤의 복원 과정을 세세히 담았다. 복원 시 핵심 단서는 테일러 부부가 남긴 흑백사진 6장이었다. 최 교수는 사진에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확대해 형태, 재질, 장식을 샅샅이 분석했다. 마치 사건을 해결하듯 제작 시기와 장소를 추적했다. 테일러의 부인 메리가 남긴 유고도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보통 실내는 사적인 공간이라 자료가 많지 않은데 사진 6장이면 해볼 만했다”며 “어려운 건 가구 복원이었다. 근대 가구는 박물관에 보존되기보다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벽난로를 비롯해 실내 물품의 약 70%는 해외에서 구입했고, 붙박이 의자 등 나머지는 국내에서 최대한 비슷하게 제작했다. 최 교수는 복원을 마친 실내 공간을 “마치 흑백이 컬러로, 평면이 입체로 되살아난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실내 복원의 매력에 눈뜬 건 우연이었다.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4학년 재학 시절 했던 번역 아르바이트가 계기가 됐다. 고(古)악기를 수입·판매하는 회사에서 일했는데, 사장이 영국을 들를 때마다 경매회사의 도록을 가져왔다. “미술품이나 가구가 경매로 거래된다는 걸 도록으로 처음 알게 됐는데 재밌는 거예요. 사장님이 제게 영국에 있는 미술전문 대학원 ‘소더비 인스티튜트(Sotheby‘s Institute)’에 보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1994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년 뒤 회사가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아 학비 지원이 힘들다는 연락이 왔다. 유학에 반대하는 가족에게 그는 “딱 한 학기 등록만 도와 달라”고 설득했고, 이후 전액 장학금을 받아 장식미술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때 본 영국의 수많은 하우스 뮤지엄(박물관으로 만들어진 집)은 그에게 적지 않은 자극이 됐다. 귀국한 뒤 장식미술사를 다룬 ‘앤틱가구 이야기’(호미)를 2005년 발간했다. 이 책을 본 박물관 큐레이터의 제안으로 덕수궁 석조전 실내 공간 복원을 맡게 됐다. 그가 네 번째로 복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건축물은 창덕궁 대조전과 희정당이다. 두 곳은 왕과 왕비의 침전(寢殿)으로 사용되다가 나중에 집무실로 쓰였다. 그는 “복원을 통해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폐지 이후 중국 자본이 투입됐거나 중국 원작과 관련 있는 드라마들이 뭇매를 맞고 있다. 조선구마사는 중국풍 소품 사용 논란 등으로 2회 만에 전격 폐지됐다. 중국의 고압적인 행태로 쌓여온 반중(反中) 정서가 이 드라마를 계기로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창작물에 대한 과잉 대응이라는 반론도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중국 연관 드라마 리스트가 돌아다녔고 해당 게시물에 “중국 관련 드라마를 보이콧하자”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이 리스트에 오른 tvN ‘간 떨어지는 동거’는 네이버웹툰 원작으로, 드라마 제작에 중국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아이치이(iQIYI)가 참여한다. 중국 웹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기획 중인 제작사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tvN ‘철인왕후’는 중국 웹드라마 ‘태자비승직기’가 원작이라는 이유로 지난해 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하반기 tvN 기대작인 ‘잠중록’도 동명의 중국 베스트셀러 웹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돼 도마에 올랐다. JTBC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는 중국 추리소설 ‘추리의 왕’ 시리즈 중 하나를 각색한 작품이라고 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 원작이 아닌 사극도 중국풍 소품이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요주의 리스트에 올랐다. 홍정은, 홍미란 작가(홍자매)가 천기(天氣)를 다루는 젊은 술사(術士)들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사극 ‘환혼’이 대표적이다. 방송가는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tvN 드라마 ‘빈센조’는 8회에서 논란이 된 중국 브랜드 비빔밥의 간접광고(PPL) 장면을 국내외 OTT에서 삭제했다. 한중 군주가 연적이 되는 드라마 ‘해시의 신루’의 제작사 스튜디오앤뉴는 “역사 왜곡이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 원작자인 윤이수 작가와 논의해 각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퓨전 사극을 만든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시청자의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전반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회차별 소품까지 일일이 자문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반중 정서는 드라마를 넘어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을 철회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중국 동북공정에 우리 문화를 잃게 될까봐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도내 차이나타운 건설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썼다. 강원도 차이나타운은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추진 중인 중국문화 체험공간으로, 규모가 인천 차이나타운의 10배에 달한다. 이 청원에는 6일 현재 42만 명 이상이 동의를 표시했다. 일각에서는 무조건적인 반중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SNS에서는 “한중 교류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노력은 해야 하지만 타국과의 교류 자체를 막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특정 국가와의 문화 교류를 막으면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다만 국내 드라마 제작자도 중국이 중화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상황에서 이를 경계하는 한국인의 시각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중 정서에 따른 과도한 여론몰이가 창작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원천적으로 중국 관련 콘텐츠를 막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콘텐츠를 보기도 전에 여러 제한을 두는 건 작가가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데 있어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생활상에 대한 고증은 필요하지만 판타지 장르에까지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6세기 고문헌 ‘천사일로일기(天使一路日記)’가 최근 국내에서 처음 번역됐다. 천사일로일기는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을 맞이한 조선 관료의 일기다. 원접사(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둔 임시 관직) 일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필사본이며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85호다. 이번 번역은 대구 계명대가 진행한 고문헌 번역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계명대는 지난해 7월 고문헌이 학생과 일반에 두루 활용되게 하겠다며 10명의 관련 전공 교수들로 구성된 ‘고문헌 번역 사업단’을 발족했다. 사업의 시작을 알린 천사일로일기는 1537년(중종 32년) 음력 2월 20일에 중국 사신을 의주에서 맞이해 한양까지 온 뒤 같은 해 4월 8일 압록강을 건너서 전송한 기록이다. 조선 조정은 중국 사신이 조선을 방문하는 경우 국경도시 의주에 환영단을 보내 한양까지 오가는 길을 안내했다. ‘천사’(天使)는 명나라가 조선에 파견한 사신을 이른 말이며, ‘일로’(一路)는 지나가는 길이란 뜻이다. 일기를 쓴 사람은 우리 쪽 환영단 책임자인 정사룡(鄭士龍)이었다. 그는 16세기 조선에서 최고로 꼽히는 시인이자 북경 방문 경험이 있어 중국에 밝은 문인이었다. 일기에는 거만하고 까다로웠던 명나라 사신 일행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사룡의 능력과 인품에 매료돼 친밀감을 느끼는 대목이 있다. 2월 25일 일기가 대표적이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두 사신이 웃으며 ‘우리는 날마다 조선말 몇 마디를 배우니, 판서도 중국말을 배우세요. 술 한 잔 합시다라는 말로 오늘부터 중국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아주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원접사가 잔을 잡고 앞에 나아가 중국말로 술 한 잔 합시다라고 하자, 상사가 웃으며 제대로 배우셨어요라고 하였다.” 연구책임자인 김윤조 계명대 한국한문학 교수(62)는 “이 일기는 조선과 중국 사신의 왕래 절차가 상세히 기록돼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며 “두 나라 고위 관료의 인간적 교류는 외교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산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명대는 ‘천사일로일기’와 16세기 문인학자 윤춘년의 문집 ‘학음집’을 번역한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고문헌 27권을 번역할 예정이다. 대상은 1960년대 말부터 계명대 동산도서관에 보관돼있던 고문헌들로, 한 번도 번역된 적이 없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일본이 도쿄(東京)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2년이 지난 1966년. 일본 주요 도시에서 영화 ‘육군 나카노학교’(사진)가 일제히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다. 올림픽과 고도 경제성장으로 자부심이 한껏 고조된 당시 일본 사회에 베일에 가려 있던 이 학교가 전면에 등장했다. 나카노학교 졸업생을 슈퍼맨처럼 간주하는 분위기조차 있었다. 나카노학교는 1938∼1945년에 걸쳐 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정보요원과 특공대원 등 ‘그림자 전사’를 비밀리에 훈련시킨 곳이다. 소재지 도쿄 나카노(中野)구를 따 교명을 지었다. 1945년 종전까지 이 학교는 약 2300명의 정보요원을 배출했는데, 이들은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럽 중국 인도 등으로 파견됐다. 패전에 임박해선 전투 임무로 전환돼 일본 열도를 최후 방어하기 위한 특수전 및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1945년 일본은 항복했지만 수많은 그림자 전사들은 전쟁을 계속 이어갔다. 미국 정보기관은 냉전을 맞아 나카노학교 졸업생들을 주목했다. 미국의 일본 점령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이들은 미군을 위해 복무했다. 그러나 다양한 전시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그림자 속에 남아 있다. 대중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졸업생은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다. 그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필리핀에 파견된 유격대원이자 정보요원이었다. 그는 ‘끝까지 살아 남으라’는 사령관의 마지막 명령 후 필리핀 정글에서 29년간 숨어 지역 순찰대와 게릴라전을 벌였다. 오노다는 수소문 끝에 찾은 30년 전의 직속상관이 전투중지 명령서를 읽어준 뒤에야 총을 내려놓았다. 일각에선 나카노학교 졸업생을 미국 전략첩보국(OSS)이나 영국 특수작전국(SOE)과 비견하기도 한다. 전쟁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첩보전에 얽힌 비사를 다룬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2006년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궁’이 리메이크된다. 궁은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이라는 가상하에 평범한 신분의 여고생 채경이 왕위 계승권자인 세자 이신과 정략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궁은 MBC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이 27%를 넘어섰고, 여전히 팬이 많다. 15년이 지나 다시 선보일 궁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달 30일 만난 드라마 제작사 그룹에이트의 김영배 콘텐츠제작본부장(41)은 리메이크 이유에 대해 “좋은 이야기의 가치는 잊히지 않는다. 한 세대를 풍미한 만큼 다음 세대 배우들이 연기하는 궁을 궁금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건 올해 초. 제작진은 리메이크 후보로 ‘꽃보다 남자’(2009년)와 궁 사이에서 고민했다. 김 본부장은 “궁 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끈질기게 리메이크 요청을 하는 등 궁의 브랜드파워가 큰 것이 결정의 이유였다”고 말했다. 흥행한 전작을 뛰어넘어야 하는 리메이크엔 부담이 따르는 법. 그는 “원작의 매력을 지키면서도 재미를 극대화할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중 하나가 유행어다. 2006년 방영 때도 ‘대략난감’ 같은 당시 유행어가 극의 묘미였다. 그는 “발랄한 채경, 까칠한 신의 정서를 트렌디하게 살릴 수 있는 아이디어 많은 2030 신인 작가를 물색 중”이라고 했다. 이달 중으로 작가 섭외를 마치고 내년 여름쯤 촬영에 들어가 16∼20부작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관건은 배우다. 제작 발표 전부터 드라마 팬들은 각종 커뮤니티에 가상 캐스팅을 올렸다. 제작진은 “가상 캐스팅을 눈여겨보고 있다.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 중 시청자들의 기대치에 어긋나지 않을 인물을 캐스팅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대상을 반영해 대사와 설정은 일부 수정될 예정이다. 김 본부장은 “일례로 미술과 의상을 좋아하는 채경이 궁에 들어가서 전통 복색을 연구하고 이를 세계에 알리는 식의 성장 스토리를 생각하고 있다. 캐릭터의 주체성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드라마의 격을 높이는 고가의 세트장과 수제 소품도 세심히 살피는 중이다. 김 본부장은 “2006년 작 연출을 맡았던 황인뢰 감독을 이사로 영입한 만큼 전통 색과 미장센을 충분히 살릴 예정”이라며 “영화계 스태프를 많이 데려와 블록버스터급 연출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최근 역사왜곡 논란이 본격화된 만큼 고품격 사극으로 호평받았던 ‘사임당―빛의 일기’ 자문단에 고증을 맡길 예정이라고 했다. 팬들이 고대하는 OST에 대해선 “최대한 당시 작업한 뮤지션들을 섭외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울과 제이의 ‘사랑인가요’, 두 번째 달의 ‘얼음연못’은 2006년 작 궁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진은 단순히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를 만들진 않겠다는 각오다. 김 본부장은 “지금 10대에겐 재밌는 스토리를, 2030에겐 추억을, 그 이상 세대에겐 궁내 암투와 가족 이야기를 전하는 드라마를 만들 것”이라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한 수출도 염두에 두는 만큼 ‘다시 했는데도 재밌다’는 반응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한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들이 있다. 2006년 MBC에서 방영한 ‘궁’은 그 대표주자다. 2006년 방영된 드라마 ‘궁’이 리메이크 된다. 궁은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이라는 가상 하에 평범한 신분의 여고생 채경이 왕위 계승권자인 세자 이신과 정략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궁은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이 27%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였다. 2000년대 인터넷소설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드라마는 여전히 많은 팬층을 갖고 있다. 최근 이 드라마 팬들에게는 희소식이 있었다. 지난달 5일 만화전문기획사 재담미디어는 드라마제작사 그룹에이트와 만화 ‘궁’의 리메이크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룹에이트는 당시 드라마제작사인 에이트픽스에서 파생된 제작사다. 15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될 궁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달 30일 만난 드라마 제작사인 그룹에이트의 김영배 콘텐츠제작본부장(41)은 리메이크 이유에 대해 “좋은 이야기의 가치는 잊히지 않는다. 한 세대를 풍미한 만큼 다음 세대 배우들이 연기하는 궁을 궁금해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건 올해 초. 제작진은 리메이크 후보로 ‘꽃보다 남자’(2009년)와 궁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는 “꽃보다 남자는 브랜드파워가 셌지만 수동적인 캐릭터, 학교 폭력 등 상대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리메이크에는 항상 부담이 따르는 법. 2000년대 감성을 그대로 따라갈 것인가, 2020년대의 궁을 새롭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깊었다. ‘요즘도 먹힐 것인가’는 제작진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는 “원작의 매력을 지키면서도 재미를 극대화할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 중 하나가 유행어다. 당시에도 ‘대략난감’과 같은 2000년대 유행어가 극의 묘미였다. 그는 “발랄한 채경, 까칠한 신의 정서를 트렌디하게 살려갈 아이디어를 많이 가진 2030 신인 작가를 위주로 물색 중”이라고 했다. 4월 중으로 작가 섭외를 마치고 내년 여름쯤 촬영해 16~20부작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관건은 배우다. 제작이 결정되기 전부터 드라마 팬들은 각종 커뮤니티에 가상 캐스팅을 올렸다. 2006년에는 주지훈, 윤은혜 등 주연 배우들이 모두 신인이었다. 제작진들은 2021년판 궁의 주인공은 신인, 스타 모두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가상캐스팅을 가장 눈 여겨 보고 있다. 시청자들의 눈이 정확하다.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 중 시청자들의 기대치에서 어긋나지 않는 배우들로 캐스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대상을 반영해 대사와 설정은 일부 수정될 예정이다. 김 본부장은 “일례로 미술과 의상을 좋아하는 채경이 궁에 들어가 전통 복색을 연구해 세계에 알리는 등 성장 스토리와 캐릭터의 주체성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 카카오페이지에서 재연재 중인 만화 궁도 왕실을 황실로 바꾸는 등 대사가 일부 수정되고 있다. 드라마 궁의 가치를 높였던 소품도 세심하게 살피는 중이다. 당시 고가의 세트장과 전통 소품들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었다. 민언옥 미술감독은 이 작품으로 최초의 드라마 전문 국제 시상식 ‘서울 드라마 어워즈’에서 최우수 미술감독상을 수상했다. 김 본부장은 “당시 연출을 맡았던 황인뢰 감독님이 자사 이사로 있으신 만큼 한국 전통의 색과 미장셴을 충분히 살릴 예정”이라며 “영화계 스태프를 많이 데려와 블록버스터라 평 받던 ‘더 킹 : 영원의 군주’(2020년)급 연출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최근 역사왜곡 논란이 심해지는 만큼 철저한 고증으로 고품격 드라마라 호평 받았던 ‘사임당-빛의 일기’의 자문단에게 고견을 물을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는 “전작 때 사용했던 약혼지 등 주요 소품을 찾아 이번 작품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넣을 테니 관심 있게 봐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팬들이 가장 고대했던 OST에 대해서는 “감독의 결정사안이겠지만 최대한 당시 작업자들을 섭외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울제이 ‘사랑인가요’, 두 번째 달 ‘얼음연못’ 등은 드라마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해 ‘궁은 OST가 연기하는 드라마’라고 평가 받기도 했다. 2006년 안방에서 본방사수하고 궁 굿즈를 사모았던 10대들은 이제 20대 후반, 30대가 됐다. 제작진은 단순히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는 아닐 것으로 봤다. “지금 10대에게는 재밌는 스토리를, 2030에게는 추억을, 그 이상의 세대에게는 궁내의 암투와 가족 이야기를 전하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 했다. 이어 “15년이라는 짧은 텀으로 리메이크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 스타터로서 책임감이 있다”며 “OTT를 통한 수출도 염두에 두는 만큼 ‘다시 했는데도 재밌다’는 반응이 나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동아일보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18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윤제림 시인(61·사진)의 시집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가 선정됐다. 본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근배, 최문자, 곽효환 시인은 최종 후보 5개 작품 중 윤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수상작은 인간다움과 상생(相生)에 대해 노래한 시집. 심사위원들은 “윤 시인은 무심히 스쳐 지나갔을 법한 일상과 기억, 농담, 작은 기사, 광고 전단지, 소소한 사물 등 주변의 다양한 것들을 무겁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시로 만들어낸다”며 “고전적 미감과 세련된 페이소스로 미학적 개성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의 시에서 독서와 체험을 통한 독특한 미적 감각과 미사여구가 눈길을 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시 ‘푸른 꽃’의 일부 문구인 “열흘 싸움에 지친 꽃들이 피 흘리며 떨어져 눕고/상처만큼 푸른 꽃들이/함성을 지르며 일어선다/이제보니/꽃들의 싸움도 참으로/격하구나/장하구나”가 대표적. 한 심사위원은 “아름답고 쓸쓸한 미감과 서정성 그리고 윤 시인만의 시적 개성에 영랑시문학상이 값진 격려와 동행이 돼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윤 시인은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너 해 전 꼭 이맘때 집이 화재로 전소되고 가족이 암 선고를 받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등 내게 잔혹했던 때가 있었다”며 “눈물 나는 상황에 바깥에 환히 핀 꽃을 보며 곧바로 생각난 건 영랑의 표현 ‘찬란한 슬픔의 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많은 문학상 중에서도 한 번쯤 타고 싶다고 생각한 상을 받게 돼 대단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윤 시인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 석사를 마쳤다. 1983년 광고회사 오리콤에 입사한 후 10년 동안 독립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며 여러 대학에 출강했다. 2003년부턴 서울예술대 광고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인으로는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했고 동국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삼천리호 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등이 있다. 시상식은 다음 달 30일 오후 3시 전남 강진군 시문학파 기념관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 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제2의 브레이브걸스는 누가 될까.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역주행에 성공한 브레이브걸스의 후속주자를 찾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브레이브걸스는 4년 전 발표한 곡 ‘롤린’이 유튜브에서 뒤늦게 인기를 끌면서 14일 SBS 인기가요에서 1위에 올랐다. 이미 SNS에선 ‘롤린처럼 역주행했으면 좋겠다, 걸그룹 숨겨진 명곡 모음’ ‘두 번째 롤린, 역주행이 시급한 명곡 모음’ 등이 여럿 등장했다. 지상파의 유튜브 채널도 이에 가세했다. MBC의 ‘올더케이팝’ 채널은 ‘밀보드 차트 노래 모음’을 통해 군인들에게 인기가 높아 군통령으로 불린 걸그룹들의 노래를 소개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걸스데이, EXID는 물론 헬로비너스, 라붐의 곡도 포함됐다. KBS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KBS Star TV’에선 10년 이상 경력의 영상 편집자가 골든차일드, 온앤오프, 더보이즈, SF9 등 눈여겨볼 만한 남자 아이돌 그룹의 곡들을 추천한다. 이런 흐름은 대중의 주체적인 음악 소비 경향과 맞물려 있다. 대형 기획사의 자본력이나 사재기와 같은 편법이 아니라 대중이 음지의 곡들을 발견해내는 데 쾌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힘든 시절 자신을 위로해준 가수를 성공시키겠다는 욕구로 발현되기도 한다. 예컨대 브레이브걸스를 띄운 건 군인 팬들이었다. 이들의 댓글 모음 영상도 국방TV의 ‘위문열차’ 프로그램 영상이 주를 이룬다. 이 영상에는 “20대 가장 힘든 시절을 보내던 군인들에게 무명이었던 그룹이 건넨 위로” “은혜 갚은 장병들” 등의 댓글이 올라 있다. 성공 신화에 대한 갈증도 한몫했다. 브레이브걸스를 향한 대중의 응원이 컸던 건 이들이 갖고 있는 서사에 힘입은 것이었다. 지금은 탈퇴했지만 팀의 기초를 닦은 원년 멤버 5명은 10년 전 데뷔했다. 현재 활동 중인 멤버들도 데뷔한 지 5년이 넘었다. 힘든 무명 시간, 전방부대 등 작은 무대를 소중히 여기며 활동한 모습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줬다. 시청자들은 긴 무명기를 겪은 이들에게 자신을 투영했고, 무언의 애틋함을 느꼈다. 이런 분위기는 유튜브 채널을 타고 하나의 유행을 만들었다. EXID ‘위아래’, 비 ‘깡’을 비롯해 현재의 역주행 열풍을 가늠하려면 유튜브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롤린 역주행에 크게 기여한 유튜브 채널 ‘비디터’의 경우 지난달 24일 올린 롤린 영상 조회 수가 약 1430만 회로 구독자 수(30일 기준 약 13만 명)를 훌쩍 뛰어넘었다. 비디터 운영자는 “역주행은 생각조차 못 했고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브레이브걸스가 잘돼 기분이 좋다”며 “코로나로 인해 삶이 힘들어진 이들에게 위문 영상과 웃긴 댓글들이 활력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국립민속박물관이 상설전시관 ‘한국인의 1년’을 20일 선보였다. 계절별 생활상을 선보인 기존 ‘한국인의 일상’ 전시를 지난해 5월부터 개편해 약 10개월에 걸쳐 리모델링했다. 농사 중심의 24절기에 치중한 기존 전시관과 달리 세시풍속을 중심으로 전시를 다시 꾸몄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뉴트로 전시품들이다. 박물관은 이번 개편에서 20세기 생활상을 적극 반영했다. 봄 파트에는 예전 콜라병과 팔레트, 소풍가방을, 여름 파트에는 빙수기, 변산해수욕장 개장 포스터, 아이스케키통 등을 전시했다. 겨울 파트에는 연탄 난로와 크리스마스 엽서를 선보였다. 이런 시도는 박물관의 새로운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올 1월 취임한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뉴트로나 레트로처럼 밀레니얼 세대도 친근하게 볼 수 있는 문화 현상을 찾아내는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며 “민속학을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같은 과거 시점으로 한정 지을 게 아니다. 지금의 현상도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감각적 전시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 마지막에 나오는 체험형 전시 ‘한옥에서의 사계절 풍경과 삶’이 특히 그렇다.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에서 옮겨온 한옥의 대청마루에 앉으면 벽면 영상을 통해 양동마을의 사계절을 담은 풍경과 소리를 생생히 감상할 수 있다. 무형문화재인 위도 띠뱃놀이(정월초사흘에 배를 띄워 행하는 마을 굿)에 쓰인 띠배와 동해안에서 미역 채취에 사용하는 떼배를 바다 영상과 함께 보여주는 전시는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달력인 ‘경진년대통력’(보물 제1319호)은 겨울 파트의 동지책력(동짓날 새해 달력을 주고받는 풍습)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 역서로는 유일한 이 달력은 조선시대 역법과 활자연구에 있어서 핵심 자료다. 현장 조사를 통해 강원 홍천군에서 수집한 겨리쟁기(소 두 마리가 끄는 전통 쟁기)도 소개됐다. 이 밖에도 각종 사진과 영상, 전시품 등 700여 점이 전시됐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4일 방영한 tvN 드라마 ‘빈센조’ 8회에서 빈센조(송중기)와 홍차영(전여빈)이 라이벌과의 싸움에 신광은행장 황민성(김성철)을 이용하는 모습이 나왔다. 홍차영은 빈센조에게 남성 동성애자인 황민성을 유혹할 것을 제안한다. 빈센조에게 첫눈에 반한 황민성은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볼에 키스를 하거나 껴안는 애정 표현을 한다. 이를 억지로 받아들이는 빈센조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블랙코미디다운 유머러스한 장면이지만 찜찜한 구석이 있다. 방영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불편하다는 반응이 꽤 나왔다. 한 블로거는 “그저 재미로 볼 에피소드는 아니었다. 매력적인 남성이 유혹하면 정신 못 차리고 자신의 일까지 내치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동성애자를 그린 건 유감스럽다”고 했다. 다른 시청자는 “성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덧칠하고, ‘데이트 폭력 가해자’라는 악한 캐릭터까지 부여했다. (빈센조가 황민성을 이용한 뒤 내치는 것에 대해) 악당에게 정의를 구현하는데 무슨 문제냐는 식의 면피용 설정을 뒀다”고 지적했다. 사실 빈센조는 ‘매번 당하는 가난한 피해자’ 같은 틀에 박힌 공식을 깬 드라마다. 그런 빈센조도 깨지 못한 견고한 벽이 성소수자다. 혹자는 황민성은 한 개인일 뿐, 이 캐릭터가 성소수자를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성애자 캐릭터를 희화화하는 건 국내 콘텐츠 내에 성소수자가 많이 다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자칫 혐오감을 부추길 수 있다. 더구나 이 드라마는 CJ ENM이 발표하는 콘텐츠 영향력 지수(CPI)의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 종합(드라마·예능) 순위’에서 5위 안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돌아보면 예전에는 성소수자가 극의 감초 역할로 코믹하거나 이상한 인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실적 서사를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tvN 월화극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윤태형(김태훈)은 보수적인 의사 집안 장남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고 여성과 결혼해 죄책감을 느낀다. 같은 해 JTBC ‘이태원 클라쓰’에선 현이(이주영)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자취를 감췄다가 주변 격려에 힘입어 다시 세상에 나선다. 영화나 웹툰에 비해 성소수자에게 보수적이던 드라마가 점차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성소수자의 등장이 많아진 만큼, 이제는 캐릭터의 설정과 표현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김태언 문화부 기자 beborn@donga.com}
역사 왜곡 논란으로 방영 2회 만에 폐지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박계옥 작가가 공개 사과했다. 감우성 등 주요 출연 배우들도 잇달아 사과의 뜻을 밝혔다. 박 작가는 27일 입장문을 내고 “사려 깊지 못한 글쓰기로 시청자 여러분께 깊은 심려를 끼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로서 지난 잘못들을 거울삼아 더 좋은 이야기를 보여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고 미숙한 판단으로 오히려 시청자 여러분께 분노와 피로감을 드렸다”고 했다. 중국풍 소품과 더불어 태종 등 역사 인물을 왜곡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역사 속 큰 족적을 남기셨던 조선의 건국 영웅들에 대해 충분한 존경심을 드러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타지물이라는 장르에 기대어 안이한 판단을 한 점에 대해서도 크게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이어 그는 “역사 왜곡은 추호도 의도한 적이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남긴 점 역시 뼈에 새기는 심정으로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의 작품 선택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 여론이 일자 이날 배우 장동윤을 시작으로 감우성, 박성훈, 정혜성, 이유비 등이 사과문을 줄줄이 발표했다. 감우성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실존 인물로 극을 이끌어 가야 하는 배우로서 역사 왜곡으로 비칠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썼다. 장동윤은 소속사 인스타그램을 통해 “창작물을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만 작품을 바라봤다. 사회적으로 예리하게 바라봐야 할 부분을 간과했다. 큰 잘못”이라고 했다. 연출을 맡은 신경수 PD는 이날 입장문에서 “드라마의 내용과 관련한 모든 결정과 선택의 책임은 연출인 제게 있다. 스태프와 배우들은 저를 믿고 따랐을 뿐”이라고 밝혔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95년 3월 27일 오전 8시 반, 이탈리아 밀라노 거리에서 4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탄은 오른쪽 팔과 엉덩이, 왼쪽 어깨, 오른쪽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총구가 향한 건 세계적인 명품 패션브랜드 구찌 가문의 마지막 최고경영자(CEO) 마우리치오 구찌(1948∼1995).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3년 뒤에야 밝혀졌다. 범인은 그의 전 부인 파트리치아 레자니. 파트리치아는 결혼 전 가난한 세탁소집 딸이었다. 둘은 가족들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에 골인했지만 파트리치아의 허영심과 의부증으로 인해 이혼했다. 이혼 후 증오심으로 전처가 청부 살해를 의뢰한 것. 파트리치아는 살인교사 혐의로 징역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탈리아 패션잡지 루나 편집장으로 현재 미국 블룸버그 기자인 저자는 구찌 가문의 역사와 관련된 인물 100여 명을 인터뷰하고, 다양한 문헌을 섭렵했다. 패션 명가 구찌 가문의 끊임없는 내분과 사업 분쟁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재구성했다. 흡입력 있는 이야기 덕분에 많은 영화감독들이 탐낸 소재다. 지난해 리들리 스콧 감독이 레이디 가가, 애덤 드라이버 주연의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올 11월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구찌 가문을 알기 위해선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온 피렌체 상인들의 역사를 봐야 한다. 피렌체 상인에게 부는 곧 명예를 의미했다. 20세기 초 창업주 구찌오 구찌(1881∼1953)의 부모는 19세기 말 피렌체에서 밀짚모자 사업을 하다 파산했다. 구찌오는 도피하듯 영국 런던으로 떠나 호텔에서 일하며 부자들의 취향과 소지품을 관찰했다. 그는 고향 피렌체로 돌아와 1921년 가죽제품 매장 ‘발리제리아 구찌오구찌’를 세웠다. 이곳에서 그는 독일, 영국에서 가죽 원단을 사들여 각종 가방을 만든 뒤 관광객들에게 팔았다. 구찌는 창업 이후 결정적 순간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꿋꿋이 살아남았다. 대나무 손잡이가 달린 뱀부 백과 모카신 로퍼 등 히트 상품을 연이어 출시했다. 이들 상품이 1960, 7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구찌는 로마, 런던, 뉴욕, 도쿄 등에 매장을 둔 세계적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가족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구찌 가문의 경영수업 방식은 구찌오 사망 이후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진다. 급기야 1980년대 들어 구찌 운동화가 마약상들 사이에서 유행할 정도로 구찌의 브랜드 가치는 급락했다. 구찌는 브랜드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명품업계 최초로 투자은행과 손잡고 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 소송전으로 다시 난관에 부닥쳤다. 1990년대 초반까지 매출이 저조해 구찌는 빚더미에 올랐다. 구찌오의 손자 마우리치오는 투자은행에 회사를 매각해 가족기업 구찌의 마지막 운영자가 되었다. 구찌 가문의 손을 떠난 구찌는 1990년대 초 미국의 패션디자이너 돈 멜로와 톰 포드를 영입하고 브랜드 혁신을 단행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저자는 구찌가 20세기 후반 프랑스 LVMH(루이비통 모에에네시)의 인수합병 시도에 맞서 프랑스 피노프랭탕르두트(PPR) 그룹과 손잡고 변화를 선도했다고 평가한다. 20세기 후반 세계 패션업계의 흐름과 더불어 명품업계 주역들의 삶을 살펴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책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용은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신령한 존재의 상징으로 칼과 옷, 자기 등에 그려졌다. 조선왕조는 15∼19세기 꾸준히 용무늬항아리(용준·龍樽)를 만들었다. 최근 새롭게 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백자실’에선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천을 겪은 조선의 용무늬를 확인할 수 있다. 용무늬항아리는 왕실 존엄의 의미를 담아 각종 행사에서 의례용기로 쓰였다. 1467년(세조 13년) 확립된 관요(官窯·국가가 운영하는 도자기 제작소)는 청화안료로 항아리를 제작했는데, 17세기 이전 것들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돼 문헌으로만 전한다. 당시 의례 종류에 따라 용은 조금씩 다르게 장식됐다. 세종실록과 국조오례의에 그려진 용은 발톱 3개에 턱수염이 있다. 국조오례의서례에선 5개의 발톱에 뿔이 있는 용이 그려졌다. 주요 국가 행사에선 5개 발톱의 용무늬가 주로 사용됐다. 그런데 17세기 들어 간략하고 투박한 용무늬가 등장한다. 이 시기 용무늬항아리는 청화(靑華)가 아닌 철화(鐵華)백자로 바뀐다. 전란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돼 중국에서 청화안료 수입이 어려워진 데 따른 것이다. 이때 용무늬는 뿔과 수염, 코, 이빨, 다리, 발가락 등 세부묘사가 생략됐다. 특히 17세기 후반 제작된 구름용무늬항아리는 빠른 필치로 힘차고 자유로운 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은 2010년 발간한 도록 ‘백자항아리 조선의 인과 예를 담다’에서 “왕실은 물론 사대부나 서민의 민수용 항아리에도 용무늬가 사용되면서 점차 해학적이고 익살스럽게 변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이 시기 왕실이 물을 상징하는 용무늬를 기우제에 사용하기 위해 이런 양식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문헌에 따르면 숙종(재위 1674∼1720년) 연간에 기우제가 집중적으로 열렸다. 최윤정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용무늬철화백자를 제작한 유일한 민요(民窯·민간의 도자기 제작소)가 한양과 가까운 경기 가평군 하판리에 있었다. 질 좋고 큰 백자가 제작된 걸 보면 왕실이 주문 제작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8세기에는 용무늬가 다시 화려하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바뀐다. 백자청화 구름용무늬항아리는 높이 50cm가 넘는데 당당한 몸체에 주변 장식이 섬세해졌다. 이는 영·정조 때 왕실의 위엄을 되찾기 위해 의례를 강화한 데 따른 것이다. 18세기 들어 관요 체제가 정상화되면서 정교한 작업이 가능해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이수경 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18세기부터 용이 제대로 된 품위를 보여주며, 이는 왕실의례용 용무늬항아리로 정립돼 19세기까지 유지됐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SBS 월화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시작부터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여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른 데 이어 광고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SBS는 이미 방영된 1, 2회의 다시보기와 재방송을 중단하고, 다음 주는 결방하기로 했다. 조선구마사는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악령과 이에 맞서는 인간들을 다룬다. 그러나 22일 첫 회에서 중국풍 소품들이 사용돼 도마에 올랐다.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역사왜곡 동북공정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즉각 방영 중지를 요청한다’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24일 10만 명 이상이 동의를 표시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24일 기준 1700여 건의 민원이 제기됐다. 논란이 일자 이 드라마 2회는 1회보다 시청률이 떨어졌다. 1회 최고 시청률은 8.9%를 기록했으나 하루 만에 6.9%로 하락했다. 광고주들도 제작 지원을 줄줄이 철회하고 있다. 삼성전자, KT, LG생활건강 등은 제작 지원을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나주시도 영상테마파크 장소 지원 계약을 철회했다. 대본을 쓴 박계옥 작가는 전작 드라마인 tvN ‘철인왕후’에서도 역사왜곡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철인왕후는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에 빗댄 대사로 뭇매를 맞았다. 박 작가가 최근 중국 제작사인 자핑픽처스와 집필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판이 더 거세지고 있다. 이에 제작진은 문제가 된 장면을 삭제하고, 다음 주 결방을 통해 재정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단 며칠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한 편의 영화가 됐다. 31일 개봉하는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소설가 창석(연우진)이 커피숍, 박물관, 바 등에서 네 사람의 사연을 듣는 게 줄거리다. 마치 단편소설집 같은 이 영화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46)을 24일 만났다. 그가 이 작품에서 주목한 건 상실감이다. 김 감독은 “전작들과 달리 다소 어둡다. 누구나 마음의 이야기가 있지 않나. 이 영화를 보며 ‘어둠도 편안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창석이 만난 네 명의 인물은 모두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 놓여 있다. 나이 들어 과거를 잊은 미영(이지은), 인도네시아 유학생이었던 남자친구와 이별한 유진(윤혜리), 아픈 아내를 살리고 싶은 성하(김상호),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바텐더 주은(이주영)이다. 하지만 이들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의 영화가 특별한 건 ‘특별한 기법’이 없어서다. ‘최악의 하루’(2016년)와 ‘더 테이블’(2016년)처럼 대화가 주를 이룬다. 그렇기에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관객은 누군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엿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김 감독은 “많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한 명의 인물에게 달려드는 만큼 액션보다 리액션이 중요한 영화”라며 “연우진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영화를 완성시켰다”고 했다. 촬영지의 의미도 영화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 첫 장면에 나오는 카페 ‘시티커피’는 바쁜 세상의 속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긴다. 창석이 드나드는 공중전화 부스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사연을 쏟아낸 곳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사람이 꽉 들어찼다가 어느 순간 비워지는 바도 그렇다. 김 감독은 “사람과 사연들이 머물다 가는 곳일수록 타인의 온기나 자취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며 제목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그의 영화는 숨어 있지만 분명 존재하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끌어낸다. 이 영화는 네 명의 삶을 다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삶을 말하고 있다. 최근 범죄 드라마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도 “다양한 인간상을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김 감독은 “제 작품이 인간에 대한 시선을 넓혀주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