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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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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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3~202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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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도 어부들은 왜 매년 울릉도를 왕복했을까[전승훈의 아트로드]

    울릉도 북서쪽 끄트머리 태하리 해변에는 ‘대풍감(待風坎)’이 있다. ‘바람을 기다리는 절벽’이라는 뜻의 커다란 바위가 바닷쪽으로 삐죽 나와 있는 형태다. 울릉도에는 예로부터 배를 만들기에 알맞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많아서 새로 배를 만들어 완성하게 되면 대풍감에서 바위에 밧줄을 매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에서 세찬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 돛이 휘어질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면 한달음에 동해안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고 한다. 동력선이 개발되기 전에는 울릉도에서 육지로 가기 위해서는 대풍감에서 북서풍이 불기를 기다려야 했다. 지난달 울릉도를 찾았을 때 대풍감 절벽 위를 올랐다. 대풍감에 오르기 위해서는 태하해변에 있는 태하향목관광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된다. 총연장 304m 길이의 모노레일은 20인승 짜리 2개의 칸으로 돼 있다. 정상까지는 약 6분이면 도착을 한다. 모노레일은 출발하자마자 최대 등판각도가 39도나 되는 급격한 바위산의 경사를 오른다. 그러나 급경사에서도 언제나 자동으로 수평을 유지해주기 때문에,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면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하차 후에 태하등대까지는 약 500m 정도를 걷게 된다. 태하등대를 지나면 태하향목전망대와 대풍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는 아랫부분이 철제 구조물로 돼 있는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대풍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바람이 올라온다. 추운 겨울에 대풍감의 바람을 제대로 맞아볼 수 있는 기회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왼쪽이 바로 대풍감의 주상절리 절벽이다. 절벽 바위 틈에서 모진 바람을 맞으며 대풍감 향나무들이 세월을 견뎌내고 있다. 위태롭고 절박해서 더욱 아름답고, 희망마저 갖게 하는 작은 향나무들이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울릉도의 북쪽 해안이 펼쳐진다. 학포마을과 현포, 노인봉과 송곳봉(추산)이 어깨춤을 추듯 불쑥불쑥, 삐죽삐죽 이어집니다. 바다 위에는 코끼리바위(공암)가 귀여운 공처럼 떠 있다. 한국관광 100선, 10대 비경이란 찬사를 들을 만한 절경이다. 전라도 어부들이 고향가는 배를 기다리던 대풍감조선시대 정부는 울릉도에 대해 ‘공도정책’ ‘쇄환정책’을 펼쳤다. 울릉도가 동해안에 들끓는 왜구들의 전초기지가 될 것을 우려해 섬에 주민들을 아예 비워놓는 정책이었다. 조선정부는 2~3년에 한번씩 울릉도에 수토사를 파견해 사람들을 수색하고, 일본인은 추방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렇다면 나라에서 아무도 살지 말라고 하는 울릉도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1882년 울릉도 검찰사로 파견된 이규원은 울릉도에 조선인이 140명, 일본인 78명이 살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조선인 140명 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여수, 거문도, 고흥반도 인근에 살던 전라도 사람들로서 배 운항에 노련한 기술을 가진 뱃사람들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춘삼월 동남풍을 이용해 돛을 달고 울릉도에 가서 나무를 벌채하여 새로운 배를 만들고 여름내 미역을 채집해두었다가 가을철 하늬바람(북서풍)이 불면 목재와 해조류 그리고 고기를 가득 싣고 하늬바람에 돛을 달고 남하하면서 지나온 포구에서 판매하거나 물물교환을 하면서 거문도로 귀향하였다.” (전경수 ‘울릉도 오딧세이’)울릉도는 개척령 이전부터 전라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이른바 ‘나선’이라고 불리는 전라도 출신의 배가 천부 해안을 중심으로 많이 오갔다고 한다. 이들은 봄에 남동풍이 불 때면 배 한 척에 타고 건너와 여름 동안 배를 건조하고 미역을 따고 고기를 잡아서, 울릉도에서 건조한 배를 각자 한 척씩을 몰고 돌아갔다고 한다.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말, 대풍감에서 북서풍이 불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전라도에서 울릉도까지 어떻게 동력도 없는 목선을 타고 오갈 수 있었을까?그것은 바로 해류와 바람의 힘이다. 울릉도에는 남쪽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쿠로시오해류(동한난류)가 있다. 봄에 이 해류를 타면, 남쪽에서 울릉도로 항해하기가 예상 외로 쉽다고 한다. 바다를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절과 해류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울릉도에서 다이빙을 해보면 해류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바로 울릉도 바닷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리돔떼다. 원래는 제주 앞바다의 따뜻한 난류에 살고 있는 자리돔이 요즘에는 울릉도 앞바다에도 가득하다. 쿠로시오 해류, 동한난류를 타고 올라온 자리돔떼다. 태하해변산책로대풍감에서 내려갈 때는 모노레일을 타지 말고 ‘태하해변산책로’ 방향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괜찮다. 태하향목전망대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울릉해담길 산책로 6-2코스가 나온다. 숲 속 길을 걸어서 내려가다보면 ‘가재굴’이라고 불리는 해변의 절벽 동굴이 나온다. ‘가재굴’의 뜻은 무엇일까. 울릉도와 독도에 남아 있는 ‘가제 바우’ ‘가재 바위’ ‘가제굴’이라는 이름은 바로 ‘독도 강치’로 유명한 바다사자(또는 물개)가 살았던 바위나 굴을 의미한다. 강치는 당시에 ‘가지어(可支魚)’로 불렸는데, ‘가제’ ‘가재’는 모두 강치를 지칭하는 말이다. 원래 울릉도에 살던 가지어(강치)는 20세기 초에 울릉도에서 밀려나 독도를 거점으로 살게 된다. 그런데 가지어는 일제에 의해 대거 도살되고 남획돼 멸종하기에 이른다. 태하해변산책로를 걷다보면 울릉도를 덮고 있는 조면암의 실체를 볼 수 있다.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난 조면암은 풍화작용으로 벌집모양의 구멍이 가득하다. 해변산책길을 걷다보면 날카로운 매와 독수리의 부리처럼 생긴 멋진 조면암 바위가 있다. ‘독수리 바위’ ‘매바위’로 불리는 바위다. 해변 산책길에서는 태하황토굴이 있는 황토구미도 볼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아도 바위 밑의 붉은색 황토가 선명하다. 울릉도 지명에 남아 있는 전라도 방언울릉도와 독도는 포항과 217km 떨어져 있는 동해의 외딴 섬이다. 주변은 수심이 2000m가 넘는 심해다. 그런데 경상북도에 속해 있는 울릉도의 지명에는 예상 외로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도의 ‘보찰바위’다. ‘보찰’은 전라도 지역 사투리로 ‘거북손’을 뜻하는 말이다. 거북손은 남해안 지역에서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생물로, 무쳐서 먹으면 별미다. 울릉도민들도 ‘거북손’이라는 말보다는 ‘보찰’이라는 말을 익숙하게 사용한다. ​​나리분지에 있는 ‘알봉’ 안내문에도 ‘전라도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러 왔다가 알처럼 생긴 봉우리라고 해서 ’알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이 붙어 있다. 또한 울릉도 해변의 곳곳에도 전라도 방언으로 된 지명이 허다하다. ‘통구미’ ‘황토구미’ 등의 ‘-구미’는 전라도 방언으로 해안이 쑥 들어간 지형을 말한다. 항구로 이용할 수 있는 좁고 깊숙하게 들어간 만을 뜻하죠. ‘대풍감’의 ‘감(坎)’도 ‘-구미’를 한자어로 표현한 말로, 바닷가 절벽에 움푹 들어간 땅이라는 뜻이다. 현포는 원래 옛 이름이 ‘가문작지’였다. 전라도 방언으로 ‘-작지’는 자갈돌들이 널려 있는 해변가를 말한다. ‘검을 현(玄)’자를 쓰는 현포는 바닷물이 검게 보인다고 해서 ‘가문작지’(검은 자갈해변이라는 뜻)로 불렸다고 한다. 이 밖에도 ‘와달’(작은 돌들이 널려 있는 긴 해안), ‘걸’(물고기나 수초가 모여 있는 넓적한 바닷속 바위), ‘독섬(돌섬)’ 등이 울릉도 지명에 남아 있는 전라도 방언이다. 그래서 독도의 영유권 분쟁에 있어서도 전라도 방언을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나온다. 바로 석도(독도)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한다고 밝힌 ‘대한제국칙령 41호(1900년 10월25일)’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 대한 내용이다. 칙령에는 울릉도의 관할구역을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라고 규정했다. 전경수 서울대명예교수(인류학과)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은 바로 위의 대한제국칙령에서 명시한 ‘석도’가 지금의 ‘독도’ 임을 증명하면 된다”며 “이를 위해서는 전라도 방언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울릉도를 내왕했던 전라도 흥양 지방(여수, 거문도, 고흥반도 등)의 어부들이 불렀던 ‘독섬’(돌섬의 전라도 방언)에 해답이 있다는 이야기다.전라도 방언에서는 지금도 ‘돌’을 ‘독’이라고 부른다. ’독섬‘이라는 전라도 방언을 대한제국의 공문에서 한자로 ’석도‘(돌석+섬도)라고 적었다는 해석이다. 전 교수는 “우리가 요즘 부르는 ’독도(獨島)‘는 발음을 중심으로 지은 이름이고, ’석도‘는 의미 중심으로 지은 이름으로 같은 섬”이라고 말한다. 조선 정부는 섬을 비워놓는 공도정책을 펼쳤지만, 민초들은 매년 해류를 타고 배타고 섬을 찾아와 나무를 베고, 배를 만들고, 미역을 따서 바람을 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먼 여행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 중요한 삶의 현장이 바로 ‘대풍감’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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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온천여행, 패키지 말고 기차로 떠나 보세요”

    “붉게 물든 저녁 노을 바라보며 바닷가에서, 눈 덮인 깊은 산속 계곡에서 노천 온천에 몸을 맡겨보세요. 구석구석 숨어 있는 일본 온천을 찾아가려면 열차여행이 최고입니다.” 30년간 160차례 이상 일본 여행을 한 박승우 작가(사진)는 “일본 온천 여행은 패키지로 가지 마라”고 한다. 그는 최근 펴낸 책 ‘JR기차 타고 즐기는 일본 온천 50’(덕주)에서 기차를 타고 자유여행으로 즐기는 온천여행을 소개했다.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해 있는 일본에는 전국에 걸쳐 약 3000곳의 온천이 있습니다. 바닷가 온천에서 탁 트인 바다의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즐기는 노천 온천, 빨간 단풍잎이 둥실 떠 있는 늦가을의 노천 온천, 폭설이 덮인 아름다운 설경의 고원지대나 산속 깊은 계곡에서 눈이 내리는 노천 온천 등의 비경을 만끽할 수 있는 온천이 산재해 있지요.” 박 작가는 “그런데 온천을 패키지 여행으로 가면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다”고 말한다. 홋카이도 노보리베쓰 온천, 도쿄 하코네 온천, 벳푸 온천 등 공항 주변의 유명 온천 외에는 찾아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교통비가 비싼 일본이지만 외국인을 위한 철도여행용 레일패스를 활용하면 구석구석에 있는 다양한 온천을 찾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최북단의 홋카이도부터 최남단 가고시마까지 2만여 km에 이르는 JR철도망이 깔려 있다.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총 12가지 JR패스를 판매하는데, 권역별 3일권, 5일권을 구입하면 경제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고 한다. “도쿄에서 특급열차로 약 2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군마현 ‘구사쓰 온천’의 경우 일본에서 20년째 최고의 온천으로 선정된 온천인데도 국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국도는 대부분 2차로이고, 제한속도가 시속 60km라 버스로 가려면 도쿄에서 4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현지인들도 대부분 국내 패키지여행은 기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에게 그동안 다녀본 온천 중 최고를 꼽아 달라고 하자 구사쓰 온천 외에 △바닷가에 있는 고가네자키 후로후시온천 △1800m 고원에 8가지 색깔과 성분의 노천탕이 있는 만자코겐온천 △세계에서 단 2곳뿐인 퇴적식물성 온천(모르·Moor)인 홋카이도 도카치가와 온천을 꼽았다. “고가네자키 후로후시 온천은 아키타에서 아오모리로 가는 바다열차를 타고 찾아가야 합니다. 엄청난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서 불과 20∼30m 떨어져 있는 바위에서 온천수가 솟아 나옵니다. 옆에서는 파도가 치는데, 바위에 파놓은 온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가슴이 탁 트이는 게 약간 현실감이 없어지게 되지요.” 박 작가는 “일본 철도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철도 노선마다 지역별 특산물을 활용해서 만들어 파는 3000여 종의 ‘에키벤(駅弁·기차역 도시락)’을 먹는 것”이라며 온천 여행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음식도 소개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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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온천여행, 패키지 말고 기차로 떠나보세요”[전승훈의 아트로드]

    “붉게 물든 저녁 노을 바라보며 바닷가에서, 눈 덮인 깊은 산 속 계곡에서 노천 온천에 몸을 맡겨보세요. 구석구석 숨어 있는 일본 온천을 찾아가려면 기차가 최고입니다.” 30년간 160여 차례 이상 일본여행을 한 박승우 작가는 “일본 온천 여행은 패키지로 가지 마라”고 한다. 그는 최근 펴낸 책 ‘JR기차 타고 즐기는 일본 온천 50’(덕주)에서 기차를 타고 자유여행으로 즐기는 온천여행을 소개했다. ‘JR 프라이빗 트래블 마스터’로 불리는 박 작가를 인터뷰해 여행 고수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온천을 패키지 여행으로 가면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습니다. 홋카이도 노보리베쓰 온천, 도쿄 하코네 온천, 벳푸 온천, 오사카 아리마 온천 등 외에는 거의 가는 데가 없습니다. 국내 여행사에서 패키지 여행은 버스로 3박4일 정도 코스로 짜다보니까, 항공기가 도착하는 공항에서 가까운 지역의 온천 밖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일례로 도쿄에서 특급열차로 약 2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군마현 ‘구사쓰 온천’의 경우 “일본에서 20년 째 최고의 온천으로 선정된 온천인데도 국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기차를 타고 자유여행을 하다보면 현지인들이 즐기는 다양하고 최고급 수질의 온천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구사쓰 온천은 어디에 있는 거죠?“도쿄에서 기차로 2시간 정도 가는 군마현에 있는 온천입니다. 일본에서 20년째 최고의 인기 1위 온천으로 꼽히는 곳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혀 모릅니다. 도쿄에서 특급 열차를 타고 가면 2시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데, 고속버스나 관광버스로 가려면 최소 4시간 정도 걸립니다. 왜냐면 일본에서는 고속도로만 4차선이고, 국도는 대부분 2차선인데 제한속도가 60km이고, 정체가 되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도쿄에서 패키지 여행으로 갔다오려면 여행사 입장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구사쓰 온천은 왜 20년 연속 인기 1위 온천으로 꼽히나요?“천연 온천수 용출량이 어마어마합니다. 유바다케라는 온천수가 분당 3만리터가 쏟아져 나옵니다. 성분이 유황온천이라 효능이 좋습니다. 그온천수 온도가 거의 90~100도 가깝습니다. 그 물을 식혀서 온천수로 씁니다.” 그리고 온천 마을 자체가 예쁘고 잘 꾸며져 있습니다. 온천마을이 해발 1150m쯤에 자리잡고 있는데, 여름에는 선선한 날씨라 인기가 높습니다. 도쿄에서 열차로 2시간 남짓이면 가까운 편이죠.구사쓰 온천의 원천은 너무 뜨거워서 그대로 사용할 수 없으며, 찬물을 섞어 수온을 낮추면 온천의 효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뜨거운 원천수에 긴 나무판을 넣고 물을 뒤집듯 휘저으며 온천욕을 할 수 있을 만큼 적당한 온도로 낮추는 방법인 ‘유모미’를 개발했어요. 이 때 ‘초이나 초이나’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유모미는 온천수를 부드럽게 하고, 온천욕 이전에 준비운동을 하도록 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지요.“-JR기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장점은?“우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중장거리 교통수단의 중심이 일본철도(JR, Japan Railways)입니다. 전국에 철도망이 구석구석 들어가는 반면 고속버스 연계망은 잘 발달이 안 돼 있어서,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국내 패키지 여행은 기차를 타고 다닙니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에는 ‘외국인용 JR패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3일짜리는 3일 동안 특정 지역 내에서 무제한 탈 수 있었고, 5일짜리는 5일 동안 무제한 탈 수 있습니다. 사실 작년까지는 엄청나게 쌌었는데, 지난해 10월에 가격을 30년 만에 50~70%가량 올렸습니다. 그래서 옛날보다는 메리트가 많이 줄었지만, 전국 JR패스 말고 지역 패스 같은 걸 사면 3~5일 정도는 아주 저렴하게 다닐 수가 있습니다.”-그동안 가본 일본 온천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세 곳만 추천한다면?“먼저 쿠사츠 온천입니다. 일본에서도 최고로 치는 온천이니까요. 그 다음에는 아오모리현에 있는 ‘코가네자키 후로우시 온천’을 꼽고 싶습니다. ‘불로불사 황금온천’이라는 별명이 달려 있는 온천이예요. 온천 주변 불과 약 20~30m 정도 떨어진 바닷가에 엄청난 파도가 치는 곳입니다. 해안 넓은 바위에서 온천이 솟아나오기 때문에 그 바위에 표주박 모양의 욕조를 파놓았습니다. 파도가 치는 바닷가 바로 앞에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약간 현실감이 없게 됩니다. 탕 속에 있는 데도 그야말로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끼게 되지요. 이 온천에 아는 지인들을 몇 번 데리고 함게 가봤는데, 탕 속에 들어가는 순간 모두들 다 자지러집니다. 여기서 나오는 온천수는 철분이 많아요. 나올 때는 무색 투명하게 솟아오르는데, 공기하고 접촉하는 순간 갈색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이 온천에 가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아키타에서 아오모리 가는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 관광열차를 타야 하는데요. 주로 금토일 주말에 하루에 한두 번 정도 밖에 운행을 하지 않습니다. 천하의 절경에서 즐기는 온천인데, 일본사람들도 웬만하면 가본 적이 없는 온천입니다. 워낙 교통비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희소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천한다면 ‘동일본 패스’ 구간에 있는 만자코겐 온천입니다. 여기도 해발 약 1800m 지점에 온천이 있어요. 물 색깔도, 성분도, 온도도 다른 8개의 노천탕이 있는 특이한 온천입니다. 그 다음에 한 군데 더 추천한다고 하면, 홋카이도에 토카치가와 온천(十勝川溫泉)이 있습니다. 전세계 단 2개 밖에 없다는 모르(Moor) 온천입니다. 보통 일반적인 온천은 화산 또는 미네랄 성분으로 유명한 데요. 모르 온천은 옛날에 낙엽같은 식물성 성분이 쌓이고 쌓여서 수천, 수만년이 지나면서 발생한 열로 생긴 온천입니다. 그러한 모르 온천이 전 세계에서 딱 두 군데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독일에서 서울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했던 IOC총회가 열렸던 바덴바덴입니다.“-온천수의 종류는. “온천수의 성분에 따라 색깔과 맛이 다 다릅니다. 어떤 때는 무색 투명하고, 냄새도 없는데 어떤 곳은 우윳빛이 나기도 하고, 새 파란색도 있고, 갈색도 있습니다. 보통 우윳빛이 나는 것은 유황온천이고, 갈색빛은 철분이 많이 섞인 온천입니다. 또 먹을 수 있는 온천이 있고, 못 먹는 온천이 있어요. ‘노메마스’라고 써 있는 온천은 마실 수 있는데, ‘노메나이’라고 쓰여 있으면 마시면 안됩니다. 피부에는 좋아도 위장으로 들어가면 큰 일나는 온천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황이나 이런 독성 성분이 있는 물은 마시면 안되니까요.”-일본 온천의 지역별 특징을 말씀해주신다면. “일본 온천은 크게 나누면 바닷가 온천이냐, 산속 온천이냐 두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태평양 연안을 끼고 원래 환태평양 화산대이기 때문에 바닷가에 온천이 많습니다. 바닷가 온천은 탁 트인 경치를 보면서 노천 온천을 하는 즐거움이 있지요. 특히 도쿄 밑 이즈반도에는 태평양 연안에 노천탕이 있습니다. 대개 절벽이나 언덕에 노천탕이 있으니까 노천탕에 앉아 있으면 진짜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또 반대로 내륙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온천이 계곡을 끼고 있습니다. 계곡가에 노천탕을 만들어 놓으면 가을엔 단풍잎이 떨어져 있고, 겨울엔 눈이 수북히 쌓인 가운데 온천만 싹 녹아 있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우리나라 동해안과 마주보고 있는 온천은, 일본에서는 서쪽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에 바닷가 노천탕에서 석양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본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노천탕에서는 새벽에 일출을 볼 수가 있지요.”그는 “일본 철도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철도 노선마다 지역별 특산물을 활용해서 만들어 파는 ‘에끼벤 도시락’을 먹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끼밴 도시락은 몇가지 종류가 있는가. “약 3000 종류도 넘는 것 같아요. 일본 철도역에는 각 지역 특산물 도시락을 역마다 팔아요. 예를 들면 아오모리에서는 가리비가 특산품이라 가리비 도식라, 치바에서는 바지락이 유명하니까 바지락밥 도시락을 팝니다. 지방마다 고기나 해산물, 초밥, 버섯도시락 등을 팔기도 하죠. 도쿄역에 가면 전국의 유명한 에끼벤 도시락 수십, 수백종을 모아놓고 팔고, 1년에 한 번씩 에끼벤 콘테스트를 벌이기도 합니다. ‘전국 에끼벤 도시락 페어’를 열어서 인기투표를 해서 1위, 2위를 뽑죠. 우리나라처럼 천편일률적인 도시락이 아니라 역마다 다양한 특산물 도시락을 팔아서 골라서 먹는 재미가 있죠.“ -동일본, 서일본 등 권역별로 온천이 소개돼 있는데요. 어떻게 여행을 하면 좋은가.“일본에 있는 6개 철도 회사들은 지역별로 JR패스를 만들어서 팝니다. 보통 한국인이 오사카에 가면 교토, 고베 등지를 돌고 오지, 오사카에 간 사람이 북해도까지 가지는 않잖아요. 그러니까 ‘오사카 간사이 와이드 패스’, ‘도쿄 에어리어 패스’ 등 권역별로 JR패스를 사가지고 갈 수 있는 온천들을 그룹별로 묶어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책을 편집했습니다. ‘도쿄 와이드 패스’는 도쿄, ‘간사이 와이드 패스’는 오사카, ‘북규슈 레일패스’는 후쿠오카 등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심도시를 먼저 표기를 해주고, 주변 지역을 초보자들도 쉽게 열차로 여행할 수 있도록 했지요. “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은.“지역별로 있는 챕터에는 ‘추천 모델 코스’가 있는데, 제가 추천하는 1일차, 2일차, 3일차, 4일차 프로그램과 함께 기차 시간표, 버스시간표를 함께 다 수록했습니다. 최소한으로 역에서 안내판을 읽으면서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한 권을 들고 가면 여행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 후기를 보니까 이 책에 나온 코스대로 따라서 가보겠다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더군요.“이 책에는음식 종류별로 일본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소개해주는 ‘일본 음식 문화 상식 사전’이라는 부록이 있다. 그는 “일본어 회화를 하지 못해도 음식 관련 단어를 몇마디만 알면 웬만한 이자카야 식당에서 주문하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온천 여행하는 또다른 팁은. “개별 여행을 하게 되면 제일 큰 문제가 이동하는 겁니다. 보통 패키지 여행을 하면 숙소를 옮겨도 관광버스 화물칸에 캐리어를 싣고, 몸만 다니잖아요. 그런데 개인이 열차 여행을 하게 되면 일일이 캐리어를 끌고 다녀야 해서 불편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냐면 보통 3박4일이나, 4박5일 여행을 가면 항공기 도착 첫날과, 돌아오기 전 마지막날에 같은 호텔을 예약합니다. 첫날 호텔에서 체크아웃할 때 캐리어를 맡겨 놓고, 백팩에 필수품하고 속옷 정도만 챙겨서 돌아다닙니다. 캐리어는 호텔에서 맡아 주니까요. 백팩을 메고 돌아다니면 자유여행을 해도 크게 불편함이 없습니다. 또 일본은 어느 지역에 가든 관광안내소에 가면 그림으로 잘 설명된 지도하고 팸플릿이 있습니다. 요즘 웬만한 데는 다 한국어로 된 자료가 있어요. 역 앞에 도착해서 관광안내소에 가서 한국어 지도와 팸플릿을 챙겨서 돌아다니면 큰 도움이 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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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알울라 코끼리바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북서쪽으로 1100km 떨어진 고대문명 도시 알울라에는 코끼리바위가 있다. 프랑스 북부 에트르타 해변에 있는 코끼리가 사막으로 걸어온 듯한 모습이다. 해질 녘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코끼리바위 앞 모래사막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노을이 지고 횃불이 들어오고, 시시각각 변하는 바위 색을 감상하며 나지막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막의 고요함 속에 빠져든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길 기대하게 되는 순간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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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신]‘일본 간사이 관광 세미나’ 열려 外

    ■ ‘일본 간사이 관광 세미나’ 열려 일본 간사이(關西) 광역연합 관광 세미나와 교류회(사진)가 29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간사이 광역연합은 2부 6현 4개 광역지자체(시가현, 교토부, 오사카부, 효고현, 나라현, 와카야마현, 돗토리현, 도쿠시마현, 교토시, 오사카시, 사카이시, 고베시)로 구성돼 있다. 세미나에서는 간사이 광역의 사계절 관광의 매력과 2025년 개최되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에 대한 홍보가 펼쳐졌다. 미카즈키 다이조 간사이광역연합장(시가현 지사)은 “한일 간의 관계 개선은 양국의 관광 여행 교류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에버랜드, 산리오캐릭터즈와 협업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사장 정해린)이 운영하는 에버랜드는 3월 22일 개막하는 튤립축제에서 헬로키티, 쿠로미, 시나모롤 등 ‘산리오캐릭터즈’와 협업한 튤립 테마가든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에버랜드 튤립축제가 펼쳐지는 약 1만 ㎡ 규모의 포시즌스 가든에서는 산리오캐릭터즈를 활용한 다채로운 야외 체험공간이 들어선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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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한강대교의 신호등

    한강 반포지구 반포대교 옆 세빛섬에는 마리나 요트 선착장이 있다. 11인승 파워요트인 ‘프린세스호’를 타면 동작대교를 지나 한강대교 노들섬 주변까지 다녀올 수 있다. 환상적인 조명이 켜진 한강대교와 노들섬 뒤편으로는 여의도 63빌딩, 쌍둥이빌딩 등 마천루가 높이 서 있다. 유람선, 여객선, 요트 등은 한강대교 밑을 지날 땐 빨간색, 초록색 등이 켜져 있는 교각 사이로 통과해야 한다. 그 부분에만 충분한 수심을 보장할 수 있도록 관리하기 때문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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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국(雪國) 울릉도[전승훈의 아트로드]

    울릉도에 눈이 내린다. 나리분지에 흰 눈이 수북수북 쌓인다. 도동항에도, 저동항에도, 사동항에도 눈이 가득하다. 고운 이불을 덮은 섬은 겨울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적설량을 기록하는 섬, 울릉도. 겨울에는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로 찾기 힘든 섬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대형 여객선인 울릉크루즈가 취항한 후 시작된 눈꽃축제가 올해 두 번째로 열리고 있다. ‘설국(雪國) 울릉도’로 겨울 여행을 떠나 보자.●나리분지의 울릉도 고릴라(ULLA) 울릉도 눈꽃 여행의 중심지는 나리분지다. 울릉도 유일의 평원인 나리분지 전망대에 서면 나리분지를 둘러싼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나리분지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울라(ULLA) 윈터 피크닉 시즌2’가 열리고 있다. 2월 26일까지 코오롱글로텍과 울릉크루즈가 개최하는 울릉도의 대표 겨울축제다. 17m 높이의 초대형 아트벌룬으로 만든 울릉도 고릴라 캐릭터 ‘울라(ULLA)’가 서 있는 축제장에서는 캠핑과 백패킹을 즐길 수 있다. 축제장을 찾은 사람들은 네모난 플라스틱 박스에 눈을 퍼 담아 눈벽돌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눈벽돌을 쌓아서 이글루를 짓기 위해서다. 지붕까지 완벽한 이글루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텐트 주변에 웬만한 높이로 둥그렇게 눈담을 쌓기만 해도 한층 아늑해진다. 주최 측에서 텐트와 깔개 등의 기본장비를 대여해 주기 때문에 개인 침낭을 준비해 오면 눈 속 텐트에서 잠을 자는 추억을 만들 수 있다.캠프파이어에서 불멍을 하기도 하고, 눈꽃 축제장에서 스키나 눈썰매를 타는 사람도 있다. 축제장 한쪽에는 울릉도 최초의 맥조 양조장 울릉브루어리가 만든 생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나리분지에서는 성인봉이나 깃대봉까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신령수 산책길 방향으로 25분쯤 걷다 보면 삼거리에 ‘억새투막집’이 나온다. 추운 겨울, 눈 때문에 고립돼도 몇 달을 버틸 수 있도록 지어진 울릉도 특유의 가옥 형태다. 집의 본채 외곽에 ‘우데기’가 둘러싸고 있는데, 본채와 바깥채 사이에 실내 베란다 같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눈이 많이 내려 고립됐을 때 집 주변을 한바퀴 돌며 운동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본채는 통나무를 가로로 격자로 쌓아 벽을 만들어 1m가 넘는 눈이 지붕에 쌓여도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었다. 억새투막집을 지나 메밀밭을 건너고, 출렁다리를 건너서 약 30분 동안 오르막길을 걸으면 깃대봉에 오른다. 흰 눈 속에도 빨간 울릉도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있고, 향긋한 전호나물의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산 속 나무 곳곳에는 검은색 호스가 연결돼 있다. 겨울부터 봄까지 나리분지의 유명한 우산고로쇠 수액을 받기 위해 부지런한 주민들이 설치해 놓은 장치다. 깃대봉(608m) 정상에 오르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360도 풍경은 감동 그 자체였다. 바다 쪽으로는 대풍감부터 현포, 노인봉, 석봉, 공암(코끼리바위), 송곳봉, 천부가 보이고 산쪽으로는 나리분지, 알봉, 말잔등, 성인봉, 미륵산, 옥녀봉까지 울릉도의 절반 이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포인트다. 성인봉(987m)에 올랐을 때 탁트인 전망이 쉽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산과 바다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깃대봉 뷰는 인상적이다. 특히 바닷가에 뾰족이 튀어나온 송곳산(추산) 너머로 보이는 노을과 오징어잡이 배의 어화(漁火)도 유명하다. ●대풍감과 송곳봉(추산) 겨울 울릉도의 항구에 가면 가게 앞에 ‘육지출타중’이란 메모가 붙어 있는 집이 꽤 있다. 추운 겨울에는 배 결항이 잦고 폭설로 고립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예 육지에 나가 사는 주민이 많다. 그런데 지난해 차량을 싣고 12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울릉크루즈가 취항한 이후 울릉도의 겨울 분위기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울릉크루즈는 KTX 포항역에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포항 영일만에 있는 국제여객터미널에 가면 탈 수 있는데 밤 12시쯤 출발해 오전 7시쯤 도착한다. 밤새 침대에서 자고 가기 때문에 아침부터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울릉도 겨울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대풍감(待風坎)이다. 울릉도의 북서쪽 끝 태하리에 있는 ‘바람을 기다리는 절벽’이다. 울릉도와 독도에는 전라도 방언으로 된 지명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전라도 여수 거문도 지방의 어부들이 봄에 남동풍이 불면 구로시오 해류(동한난류)를 타고 울릉도에 와서 나무를 베고,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았다. 1882년 울릉도 검찰사로 파견된 이규원은 울릉도에 조선인이 140명 살고 있었는데, 그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가을철에 배를 새로 만들어 대풍감에 묶어 두고,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에 하늬바람(북서풍)이 불기를 기다렸다. 돛이 휘어질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면 출발해 지나온 포구에서 판매하거나 물물교환을 하면서 거문도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대풍감에 오르려면 ‘태하향목관광모노레일’을 이용하면 된다. 총연장 304m, 분당 50m의 속도로 움직이는 모노레일은 정상까지 약 6분이면 도착한다. 하차 후 약 500m를 걸으면 태하등대와 대풍감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는 아랫부분이 철제 구조물로 돼 있어 숭숭 뚫린 구멍 사이로 어마어마한 바람이 올라온다. 이 바람이면 돛단배가 충분히 육지까지 갈 만하다는 느낌이다. 전망대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주상절리 절벽으로 이뤄진 대풍감이 보인다. 절벽에 키 작은 향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데, 바위 틈새에서 모진 바람을 맞으며 세월을 견뎌내고 있는 향나무들의 위태롭고도 절박한 아름다움과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청옥빛 바닷물을 지나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울릉도의 북쪽 해안이 펼쳐진다. 학포마을과 현포, 노인봉과 송곳봉(추산), 코끼리바위(공암)가 공룡의 등뼈처럼 불쑥불쑥, 삐죽삐죽 이어지는 절경이 이어진다. 한국의 ‘10대 비경’이란 찬사를 들을 만하다. 또 다른 절경은 해변에 거대한 송곳니처럼 솟아 있는 추산이다. 송곳봉이라고 불리는데 멀리서 보면 고릴라가 바나나를 먹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송곳봉 옆 바위 절벽에는 구멍이 3~4개 뚫려 있는데, 밤이면 달빛이 구멍 사이로 은은하게 비친다. 그래서 송곳봉은 울릉도 고릴라 ‘울라’ 캐릭터가 탄생한 고향이다. 울라 캐릭터는 울릉도 곳곳에 숨어 있다. 낚시를 하고 있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모습도 있다. 울라를 찾아서 인스타그램에 띄우면 독도 가는 배가 출발하는 저동항 여행자센터인 ‘울라웰컴센터’에서 굿즈를 선물받을 수도 있다. 추산에 있는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천혜의 절경과 건축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김찬중 건축가가 설계한 빌라 코스모스는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양이다. 수성, 목성, 토성과 같은 태양계 행성처럼 물(水), 쇠(金), 흙(土), 불(火), 나무(木)의 기운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 설계가 울릉도의 자연과 어우러진다. 정원에는 ‘메가 울라’ 상이 서 있고, 한복 디자이너 김리을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울릉도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볼 수 있는 ‘사태감 터널’은 햇빛에 비친 그림자가 터널 안으로 드리울 때 중세 수도원처럼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또한 울릉도의 자생 식물과 수석, 문자 조각품을 볼 수 있는 ‘예림원’도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명소다. 겨울의 별미=독도새우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 인근 바다의 수심 300m 이하 바위 틈에서 살고 있는 새우다. 도화새우, 꽃새우, 닭새우 등 3종류의 새우를 합쳐서 독도새우라고 부른다. 투명한 살의 싱싱하고 쫄깃한 맛이 소주를 부른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당시 메뉴에 올라 유명해졌다. 도동항의 천금수산은 독도새우를 잡는 배를 직접 운영한다. 사장님은 “수심 300m 이하 심해에서 통발로 잡는데, 1년 통발 값만 1억5000만 원이 든다”며 독도새우가 비싼 이유를 설명한다.울릉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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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雪國,울릉도[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울릉도에 눈이 내린다. 나리분지에 흰 눈이 수북수북 쌓인다. 도동항에도, 저동항에도, 사동항에도 눈이 가득하다. 고운 이불을 덮은 섬은 겨울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적설량을 기록하는 섬, 울릉도. 겨울에는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로 찾기 힘든 섬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대형 여객선인 울릉크루즈가 취항한 후 시작된 눈꽃축제가 올해 두 번째로 열리고 있다. ‘설국(雪國) 울릉도’로 겨울 여행을 떠나 보자.●나리분지의 울릉도 고릴라(ULLA) 울릉도 눈꽃 여행의 중심지는 나리분지다. 울릉도 유일의 평원인 나리분지 전망대에 서면 나리분지를 둘러싼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나리분지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울라(ULLA) 윈터 피크닉 시즌2’가 열리고 있다. 2월 26일까지 코오롱글로텍과 울릉크루즈가 개최하는 울릉도의 대표 겨울축제다. 17m 높이의 초대형 아트벌룬으로 만든 울릉도 고릴라 캐릭터 ‘울라’가 서 있는 축제장에서는 캠핑과 백패킹을 즐길 수 있다. 축제장을 찾은 사람들은 네모난 플라스틱 박스에 눈을 퍼 담아 눈벽돌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눈벽돌을 쌓아서 이글루를 짓기 위해서다. 지붕까지 완벽한 이글루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텐트 주변에 웬만한 높이로 둥그렇게 눈담을 쌓기만 해도 한층 아늑해진다. 주최 측에서 텐트와 깔개 등의 기본장비를 대여해 주기 때문에 개인 침낭을 준비해 오면 눈 속 텐트에서 잠을 자는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캠프파이어에서 불멍을 하기도 하고, 눈꽃 축제장에서 스키나 눈썰매를 타는 사람도 있다. 축제장 한쪽에는 울릉도 최초의 맥조 양조장 울릉브루어리가 만든 생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나리분지에서는 성인봉이나 깃대봉까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신령수 산책길 방향으로 25분쯤 걷다 보면 삼거리에 ‘억새투막집’이 나온다. 추운 겨울, 눈 때문에 고립돼도 몇 달을 버틸 수 있도록 지어진 울릉도 특유의 가옥 형태다. 집의 본채 외곽에 ‘우데기’가 둘러싸고 있는데, 본채와 바깥채 사이에 실내 베란다 같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눈이 많이 내려 고립됐을 때 집 주변을 한바퀴 돌며 운동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본채는 통나무를 가로로 격자로 쌓아 벽을 만들어 1m가 넘는 눈이 지붕에 쌓여도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었다. 억새투막집을 지나 메밀밭을 건너고, 출렁다리를 건너서 약 30분 동안 오르막길을 걸으면 깃대봉에 오른다. 흰 눈 속에도 빨간 울릉도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있고, 향긋한 전호나물의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산 속 나무 곳곳에는 검은색 호스가 연결돼 있다. 겨울부터 봄까지 나리분지의 유명한 우산고로쇠 수액을 받기 위해 부지런한 주민들이 설치해 놓은 장치다. 깃대봉(608m) 정상에 오르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360도 풍경은 감동 그 자체였다. 바다 쪽으로는 대풍감부터 현포, 노인봉, 석봉, 공암(코끼리바위), 송곳봉, 천부가 보이고 산쪽으로는 나리분지, 알봉, 말잔등, 성인봉, 미륵산, 옥녀봉까지 울릉도의 절반 이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포인트다. 성인봉(987m)에 올랐을 때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없었던 것에 비하면, 산과 바다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깃대봉 뷰는 인상적이다. 특히 바닷가에 뾰족이 튀어나온 송곳봉(추산) 너머로 보이는 노을과 오징어잡이 배의 어화(漁火)도 유명하다. ● 대풍감과 송곳봉(추산)겨울 울릉도의 항구에 가면 가게 앞에 ‘육지출타중’이란 메모가 붙어 있는 집이 꽤 있다. 추운 겨울에는 배 결항이 잦고 폭설로 고립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예 육지에 나가 사는 주민이 많다. 그런데 지난해 차량을 싣고 12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울릉크루즈가 취항한 이후 울릉도의 겨울 분위기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울릉크루즈는 KTX 포항역에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포항 영일만에 있는 국제여객터미널에 가면 탈 수 있는데 밤 12시쯤 출발해 오전 7시쯤 도착한다. 밤새 침대에서 자고 가기 때문에 아침부터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울릉도 겨울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대풍감(待風坎)이다. 울릉도의 북서쪽 끝 태하리에 있는 ‘바람을 기다리는 절벽’이다. 울릉도와 독도에는 전라도 방언으로 된 지명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전라도 여수 거문도 지방의 어부들이 봄에 남동풍이 불면 구로시오 해류(동한난류)를 타고 울릉도에 와서 나무를 베고,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았다. 1882년 울릉도 검찰사로 파견된 이규원은 울릉도에 조선인이 140명 살고 있었는데, 그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가을철에 배를 새로 만들어 대풍감에 묶어 두고,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에 하늬바람(북서풍)이 불기를 기다렸다. 돛이 휘어질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면 출발해 지나온 포구에서 판매하거나 물물교환을 하면서 거문도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대풍감에 오르려면 ‘태하향목관광모노레일’을 이용하면 된다. 총연장 304m, 분당 50m의 속도로 움직이는 모노레일은 정상까지 약 6분이면 도착한다. 하차 후 약 500m를 걸으면 태하등대와 대풍감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는 아랫부분이 철제 구조물로 돼 있어 숭숭 뚫린 구멍 사이로 어마어마한 바람이 올라온다. 이 바람이면 돛단배가 충분히 육지까지 갈 만하다는 느낌이다. 전망대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주상절리 절벽으로 이뤄진 대풍감이 보인다. 절벽에 키 작은 향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데, 바위 틈새에서 모진 바람을 맞으며 세월을 견뎌내고 있는 향나무들의 위태롭고도 절박한 아름다움과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청옥빛 바닷물을 지나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울릉도의 북쪽 해안이 펼쳐진다. 학포마을과 현포, 노인봉과 송곳봉(추산), 코끼리바위(공암)가 공룡의 등뼈처럼 불쑥불쑥, 삐죽삐죽 이어지는 절경이 계속된다. 한국의 ‘10대 비경’이란 찬사를 들을 만하다. 또 다른 절경은 해변에 거대한 송곳니처럼 솟아 있는 추산이다. 송곳봉이라고 불리는데 멀리서 보면 고릴라가 바나나를 먹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송곳봉 옆 바위 절벽에는 구멍이 3∼4개 뚫려 있는데, 밤이면 달빛이 구멍 사이로 은은하게 비친다. 그래서 송곳봉은 울릉도 고릴라 ‘울라’ 캐릭터가 탄생한 고향이다. 울라 캐릭터는 울릉도 곳곳에 숨어 있다. 낚시를 하고 있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모습도 있다. 울라를 찾아서 인스타그램에 띄우면 독도 가는 배가 출발하는 저동항 여행자센터인 ‘울라웰컴센터’에서 굿즈를 선물받을 수도 있다. 추산에 있는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천혜의 절경과 건축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김찬중 건축가가 설계한 빌라 코스모스는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양이다. 수성, 목성, 토성과 같은 태양계 행성처럼 물(水), 쇠(金), 흙(土), 불(火), 나무(木)의 기운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 설계가 울릉도의 자연과 어우러진다. 정원에는 ‘메가 울라’ 상이 서 있고, 한복 디자이너 김리을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울릉도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볼 수 있는 ‘사태감 터널’은 햇빛에 비친 그림자가 터널 안으로 드리울 때 중세 수도원처럼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또한 울릉도의 자생 식물과 수석, 문자 조각품을 볼 수 있는 ‘예림원’도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명소다. ● 겨울의 별미=독도새우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 인근 바다의 수심 300m 이하 바위 틈에서 살고 있는 새우다. 도화새우, 꽃새우, 닭새우 등 3종류의 새우를 합쳐서 독도새우라고 부른다. 투명한 살의 싱싱하고 쫄깃한 맛이 소주를 부른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당시 메뉴에 올라 유명해졌다. 도동항의 천금수산은 독도새우를 잡는 배를 직접 운영한다. 사장님은 “수심 300m 이하 심해에서 통발로 잡는데, 1년 통발 값만 1억5000만 원이 든다”며 독도새우가 비싼 이유를 설명한다.울릉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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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서울의 봄’ 타이틀 캘리그라피 작가 쓴 ‘입춘대길’

    “세계가 전쟁과 코로나 등으로 인해 장기간 경기침체와 고금리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상이 좋아질까 알 수 없는 안개 속입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쓴 영화 타이틀 ‘서울의 봄’이 침체된 영화시장에서 천만 관객을 넘겼습니다. 김성수 감독도 놀라고 배우들도 놀랐습니다. 덩달아 신이 났죠. 차갑고 혹독한 겨울 속 봄이 시작되는 듯 했습니다.“1297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 타이틀 글씨의 주인공인 캘리그라피스트 장천(章川) 김성태 작가의 신춘초대전이 26일부터 2월12일까지 열린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골목숲길에 있는 아트필드갤러리 2관에서 열리는 ‘서울의 봄 in 문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장천 김성태 작가가 갑진년 새해 희망과 응원이 담긴 캘리그라피 작품 20여 점이 전시된다. 혹독하고 추운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관객들에게 2024년에 찾아올, 찾아왔으면 하는 따스한 봄을 전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장천 김성태 작가는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장영실’, ‘전설의 고향’ 등 작품의 방송 타이틀을 써 왔다. 장천 김성태 작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익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글’을 ‘그리는’ 작가다. 장천 김성태 작가의 작업은 하얀 화선지와 흑색 먹을 통해 글자가 가진 형태 자체의 아름다움을 우아하게 드러내면서 텍스트가 가진 뜻과 소담하게 등장하는 색조를 통해 언어의 의미와 형상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환기한다.김 작가는 전시 기간에 ‘입춘(立春)’이 끼어 있어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1월 27일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에 아트필드 갤러리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장천 작가가 입춘첩을 직접 써주는 행사가 진행된다. “입춘이 바로 ‘서울의 봄’ 아니겠습니까. 오시는 관람객분께 입춘첩을 써 드리며 새해 복을 심는 일만큼 행복한 시작이 어디있을까요. 전시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앙망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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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세부 ‘니모’와 말미잘

    필리핀 세부 막탄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다 말미잘 속 오렌지색에 흰 줄무늬가 선명한 ‘흰동가리’(니모·디즈니 만화 주인공)를 만났다. 고프로로 촬영하려는데 니모는 얼굴을 똑바로 세워 ‘우리 집에 왜 왔니’ 하는 식으로 들이댄다. 말미잘은 촉수에 독성분이 있다. 그러나 니모는 말미잘 촉수 독에 면역이 있어 안전하다. 말미잘은 니모에게 안전한 집을 제공하는 대신 니모를 쫓아온 다른 물고기나 생명체를 잡아먹는다. 공생 관계인 셈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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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물의 교회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는 빛,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을 그대로 살린 종교 건축으로도 이름이 높다. 홋카이도 토마무에는 ‘물의 교회(Chapel on the water)’가 있다.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흘러가는 것처럼 나선형 계단에 접근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창틀의 십자가와 창밖 연못 위에 세워진 철제 십자가가 2중으로 보이다가 어느 한 지점에 서면 정확히 겹쳐 보인다. 에메랄드빛 조명이 비치는 숲은 이곳이 명상의 공간임을 느끼게 해준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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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극곰과 펭귄을 보는 겨울 동물원… 눈내리는 밤에 즐기는 ‘해장 파르페’[전승훈의 아트로드]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의 동물원은 펭귄과 북극곰 세상이다. 그런가 하면 삿포로에서는 지역의 상권과 로컬 호텔이 상생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역 커뮤니티와 호텔리어가 함께 노포(老鋪) 맛집을 소개하는 여행맵을 만들고, 투숙객들을 위한 도심 골목 야경 투어를 진행하는 것이다.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 있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일본 동물원 중 최북단에 자리잡은 동물원이다. 추운 날씨 덕분에 펭귄과 북극곰의 자연번식에 성공하기도 했다. 매일 오전 펭귄들이 먹이를 먹거나, 관람객 앞을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남극 펭귄, 북극곰을 볼 수 있는 동물원삿포로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아사히카와(旭川)시에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있다. 일본 동물원 중 최북단에 자리잡고 있어 펭귄, 북극곰 등 극지방에 사는 희귀 동물 자연번식에 성공한 동물원으로 유명하다.동물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숲속 침엽수에 흰눈이 소복이 쌓였다. 뽀로로 친구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1000엔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곳곳에 귀여운 동물들이 가득하다. 현실 세계에서 진짜 동물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뽀로로에 나오는 펭귄이 관람객 앞을 뒤뚱거리며 산책하고, 보노보노를 닮은 바다표범이 물 위에 누워서 헤엄을 친다. 북극곰이 빨간 공을 가지고 놀고, 긴 줄무늬 꼬리를 가진 레서판다가 관람객 머리 위로 놓인 공중 사다리를 뛰어간다.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동물이 야생에서 생활하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행동전시(行動展示)’를 통해 유명해졌다. 특히 겨울철 펭귄 산책 시간과 사육사가 먹이를 주는 시간만 되면 관광객들이 펭귄관 앞에 장사진을 친다. 펭귄들이 추운 겨울에 지방질이 몸에 쌓여 혈압이 올라가는 등 성인병 증상을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30분씩 걷기 운동을 시키기도 한다. 펭귄은 사람들 바로 앞에서 부리로 온몸 구석구석을 긁으며 깃털을 고른다. 사육장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대형 유리로 만든 수조 속 펭귄이 관람객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기도 한다.북극곰 관에는 엄마, 아빠 곰과 함께 지난해 7월 태어난 새끼가 있다. 동물원에서 처음으로 자연번식에 성공해 탄생한 북극곰 ‘유메(夢)’다. 공모를 통해 지어진 이름인 ‘유메’는 꿈, 희망, 바람 등의 뜻이라고 한다.1년여 만에 부쩍 큰 유메는 뽀얀 우윳빛 털에 윤기가 좔좔 흐른다. 몸집은 크지만 어릴 적부터 갖고 놀던 빨간 공을 아직 장난감으로 갖고 노는 모습을 보니 어린 티가 난다.펭귄, 북극곰, 바다표범에 이어 인기가 높은 동물은 레서판다다. 대나무 잎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다가 긴 줄무늬 꼬리를 휘날리며 뛰어다닌다. 그러더니 갑자기 관람객 머리 위 공중 사다리를 지나간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카메라로 찍기에 바쁘다. ‘스노 올빼미’는 몸통이 흰색이라 눈 속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노란색 눈과 부리만 보이는데, 얼굴이 로봇처럼 순식간에 180도 회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기념품 상점에서는 방금 보고 온 펭귄, 북극곰, 바다표범, 레서판다 등을 귀여운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우리나라 지자체에서도 고추, 낙지, 문어 등 지방 특산품을 캐릭터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너무 크고 흉측해 기괴한 모습일 경우도 많다. 이렇게 구매욕을 자극하는 귀여움을 갖춘 캐릭터로 디자인할 수는 없을까.●해장 파르페와 양고기 칭기즈칸 요리“홋카이도에서는 술 마시고 마지막 코스에 해장용으로 파르페를 먹는 문화가 있습니다. 술자리를 마감한다고 해서 ‘시메파페(シメパフェ)’라고 하지요. 유제품과 딸기, 멜론 등 과일이 풍부하게 나는 홋카이도에서는 일찍부터 파르페를 먹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삿포로에 있는 OMO3호텔에서는 매일 오후 로비에서 지역전문가인 ‘오모레인저’가 진행하는 도심의 맛집과 명소에 대한 강의가 펼쳐진다. 파르페 모양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설치돼 있는 로비에는 지역의 맛집을 소개하는 지도인 ‘고킨조(GO-KINJO)맵’이 한 벽 가득히 걸려 있다. 지도 안에 표시된 QR코드를 찍으면 맛집의 홈페이지로 연결돼 메뉴와 가격, 찾아가는 길을 검색할 수 있다.저녁 식사 후에는 오후 9시경부터 오모레인저가 진행하는 도심 야경투어 프로그램도 있다. 그를 따라 삿포로 스스키노 거리를 탐험했다. 소화 29년(1954년)에 창업한 유서 깊은 이자카야(일본식 술집), 홋카이도 목장에서 키운 양으로 칭기즈칸 요리를 해주는 히쓰지, 새벽 2시까지 파르페를 파는 로지우라 카페,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퇴근 후 자주 찾는 제로번지 지하의 스낵바 등의 코스였다.이 중에서 가장 신선했던 곳은 새벽까지 문을 여는 ‘해장용 파르페’를 먹을 수 있는 카페들. 이었다. 한국에서는 음주 후 다음 날 아침에 해장을 하지만, 일본에서는 귀가 전 당일 밤에 해장을 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라멘이나 우동 같은 국물 음식으로 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삿포로에서는 저녁 식사나 술자리를 마치고 마지막 코스로 파르페를 먹는 시메파페 문화가 대유행이라고 한다. 시메파페는 마무리를 뜻하는 ‘시메(シメ)’와 ‘파르페(Parfait)’를 합친 말이다. 파르페는 아이스크림 위에 과자, 시럽, 생크립, 과일 등을 올려서 먹는 프랑스식 디저트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유행했던 파르페에는 앙증맞은 장식용 종이우산이 꽂혀 있기도 했다. 삿포로 스스키노역 주변 거리에는 새벽 2시까지 파르페를 판매하는 카페가 20곳 넘게 성업 중이다.삿포로의 또 다른 인기 골목은 ‘간소 삿포로라멘 요코초’다. 미슐랭가이드에 실릴 만큼 해외에도 잘 알려진 라멘골목이다. 1950년대에 처음 8개의 점포로 시작됐는데, 지금은 17곳으로 늘어나 좁은 골목에 라멘가게가 빽빽하게 마주보고 있다. 호텔 측은 라멘골목과 콜라보해 다양한 맛의 라멘을 시식할 기회를 제공한다. 라멘골목 가게 중 3곳에서 미소(된장), 쇼유(간장), 시오(소금) 라멘 등을 종류별로 하프사이즈로 맛볼 수 있는 식사권이다. 아무리 그릇 크기가 절반이라고 해도 깊이가 있어 양은 상당하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고기 육수의 진한 맛, 짠맛과 싱거움 정도가 다르고, 면발의 쫄깃함도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비교 체험이었다.요즘 일본 여행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앱은 네이버 인공지능(AI) 기반 번역기인 ‘파파고’다. 일본어로 된 간판이나 메뉴,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으면, 파파고가 이미지를 인식해 그대로 번역해 주기 때문이다. 나도 이치쿠라 라멘집 벽면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찍어봤더니 육수의 비밀이 써 있었다. 홋카이도에서 많이 나는 연어 등 해산물을 육수로 만들어 국물 맛이 훨씬 담백하다는 내용이었다.눈 내리는 삿포로 스스키노 밤거리는 노면 전차가 낭만적 감성을 더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트램을 일본에서는 ‘시전(市電)’이라고 부른다. 삿포로에서는 오후 4시 반이면 컴컴해지는데, 시내 중심가에 있는 오도리공원 삿포로TV 타워 주변의 화려한 조명 불빛이 야경 투어의 매력을 더한다.삿포로가 미소 라멘이 유명하다면, 아사히가와의 명물은 쇼유 라멘이다. OMO7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시그니처 메뉴로 ‘라면 파르페’와 ‘솜사탕 파르페’를 판다. 앙증맞은 구릿빛 철가방 속에 담겨 나온 이 파르페는 디저트로 라면 모양을 그대로 재현한 솜씨가 놀랍다. 노란색으로 실처럼 길게 뽑은 면은 몽블랑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었고, 고명으로 올라간 돼지고기는 초콜릿, 김은 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홋카이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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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극곰과 펭귄이 있는 겨울 동물원… 눈 내리는 밤에 즐기는 ‘해장 파르페’[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旭川)의 동물원은 펭귄과 북극곰 세상이다. 그런가 하면 삿포로에서는 지역의 상권과 로컬 호텔이 상생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역 커뮤니티와 호텔리어가 함께 노포(老鋪) 맛집을 소개하는 여행맵을 만들고, 투숙객들을 위한 도심 골목 야경 투어를 진행하는 것이다.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 있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일본 동물원 중 최북단에 자리 잡은 동물원이다. 추운 날씨 덕분에 펭귄과 북극곰의 자연번식에 성공하기도 했다. 매일 오전 펭귄들이 먹이를 먹거나, 관람객 앞을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남극 펭귄, 북극곰을 볼 수 있는 동물원삿포로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아사히카와시에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있다. 일본 동물원 중 최북단에 자리 잡고 있어 펭귄, 북극곰 등 극지방에 사는 희귀 동물 자연번식에 성공한 동물원으로 유명하다. 동물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숲속 침엽수에 흰눈이 소복이 쌓였다. 뽀로로 친구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1000엔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곳곳에 귀여운 동물들이 가득하다. 현실 세계에서 진짜 동물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뽀로로에 나오는 펭귄이 관람객 앞을 뒤뚱거리며 산책하고, 보노보노를 닮은 바다표범이 물 위에 누워서 헤엄을 친다. 북극곰이 빨간 공을 가지고 놀고, 긴 줄무늬 꼬리를 가진 레서판다가 관람객 머리 위로 놓인 공중 사다리를 뛰어간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동물이 야생에서 생활하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행동전시(行動展示)’를 통해 유명해졌다. 특히 겨울철 펭귄 산책 시간과 사육사가 먹이를 주는 시간만 되면 관광객들이 펭귄관 앞에 장사진을 친다. 펭귄들이 추운 겨울에 지방질이 몸에 쌓여 혈압이 올라가는 등 성인병 증상을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30분씩 걷기 운동을 시키기도 한다. 펭귄은 사람들 바로 앞에서 부리로 온몸 구석구석을 긁으며 깃털을 고른다. 사육장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대형 유리로 만든 수조 속 펭귄이 관람객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기도 한다. 북극곰관에는 엄마, 아빠 곰과 함께 지난해 7월 태어난 새끼가 있다. 동물원에서 처음으로 자연번식에 성공해 탄생한 북극곰 ‘유메(夢)’다. 공모를 통해 지어진 이름인 ‘유메’는 꿈, 희망, 바람 등의 뜻이라고 한다. 1년여 만에 부쩍 큰 유메는 뽀얀 우윳빛 털에 윤기가 좔좔 흐른다. 몸집은 크지만 어릴 적부터 갖고 놀던 빨간 공을 아직 장난감으로 갖고 노는 모습을 보니 어린 티가 난다. 펭귄, 북극곰, 바다표범에 이어 인기가 높은 동물은 레서판다다. 대나무 잎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다가 긴 줄무늬 꼬리를 휘날리며 뛰어다닌다. 그러더니 갑자기 관람객 머리 위 공중 사다리를 지나간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카메라로 찍기에 바쁘다. ‘스노 올빼미’는 몸통이 흰색이라 눈 속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노란색 눈과 부리만 보이는데, 얼굴이 로봇처럼 순식간에 180도 회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기념품 상점에서는 방금 보고 온 펭귄, 북극곰, 바다표범, 레서판다 등을 귀여운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우리나라 지자체에서도 고추, 낙지, 문어 등 지방 특산품을 캐릭터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너무 크고 흉측해 기괴한 모습인 경우도 많다. 이렇게 구매욕을 자극하는 귀여움을 갖춘 캐릭터로 디자인할 수는 없을까.● 해장 파르페와 양고기 칭기즈칸 요리 “홋카이도에서는 술 마시고 마지막 코스에 해장용으로 파르페를 먹는 문화가 있습니다. 술자리를 마감한다고 해서 ‘시메파페(シメパフェ)’라고 하지요. 유제품과 딸기, 멜론 등 과일이 풍부하게 나는 홋카이도에서는 일찍부터 파르페를 먹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삿포로에 있는 OMO3호텔에서는 매일 오후 로비에서 지역전문가인 ‘오모레인저’가 진행하는 도심의 맛집과 명소에 대한 강의가 펼쳐진다. 파르페 모양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설치돼 있는 로비에는 지역의 맛집을 소개하는 지도인 ‘고킨조(GO-KINJO)맵’이 한 벽 가득히 걸려 있다. 지도 안에 표시된 QR코드를 찍으면 맛집의 홈페이지로 연결돼 메뉴와 가격, 찾아가는 길을 검색할 수 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오후 9시경부터 오모레인저가 진행하는 도심 야경투어 프로그램도 있다. 그를 따라 삿포로 스스키노 거리를 탐험했다. 소화 29년(1954년)에 창업한 유서 깊은 이자카야(일본식 술집), 홋카이도 목장에서 키운 양으로 칭기즈칸 요리를 해주는 히쓰지, 새벽 2시까지 파르페를 파는 로지우라 카페,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퇴근 후 자주 찾는 제로번지 지하의 스낵바 등의 코스였다. 이 중에서 가장 신선했던 곳은 새벽까지 문을 여는 ‘해장용 파르페’를 먹을 수 있는 카페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음주 후 다음 날 아침에 해장을 하지만, 일본에서는 귀가 전 당일 밤에 해장을 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라멘이나 우동 같은 국물 음식으로 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삿포로에서는 저녁 식사나 술자리를 마치고 마지막 코스로 파르페를 먹는 시메파페 문화가 대유행이라고 한다. 시메파페는 마무리를 뜻하는 ‘시메(シメ)’와 ‘파르페(Parfait)’를 합친 말이다. 파르페는 아이스크림 위에 과자, 시럽, 생크림, 과일 등을 올려서 먹는 프랑스식 디저트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유행했던 파르페에는 앙증맞은 장식용 종이우산이 꽂혀 있기도 했다. 삿포로 스스키노역 주변 거리에는 새벽 2시까지 파르페를 판매하는 카페가 20곳 넘게 성업 중이다. 삿포로의 또 다른 인기 골목은 ‘간소 삿포로라멘 요코초’다. 미슐랭가이드에 실릴 만큼 해외에도 잘 알려진 라멘골목이다. 1950년대에 처음 8개의 점포로 시작됐는데, 지금은 17곳으로 늘어나 좁은 골목에 라멘가게가 빽빽하게 마주 보고 있다. 호텔 측은 라멘골목과 콜라보해 다양한 맛의 라멘을 시식할 기회를 제공한다. 라멘골목 가게 중 3곳에서 미소(된장), 쇼유(간장), 시오(소금) 라멘 등을 종류별로 하프사이즈로 맛볼 수 있는 식사권이다. 아무리 그릇 크기가 절반이라고 해도 깊이가 있어 양은 상당하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고기 육수의 진한 맛, 짠맛과 싱거움 정도가 다르고, 면발의 쫄깃함도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비교 체험이었다. 요즘 일본 여행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앱은 네이버 인공지능(AI) 기반 번역기인 ‘파파고’다. 일본어로 된 간판이나 메뉴,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으면, 파파고가 이미지를 인식해 그대로 번역해 주기 때문이다. 나도 이치쿠라 라멘집 벽면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찍어봤더니 육수의 비밀이 쓰여 있었다. 홋카이도에서 많이 나는 연어 등 해산물을 육수로 만들어 국물 맛이 훨씬 담백하다는 내용이었다. 눈 내리는 삿포로 스스키노 밤거리는 노면 전차가 낭만적 감성을 더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트램을 일본에서는 ‘시전(市電)’이라고 부른다. 삿포로에서는 오후 4시 반이면 컴컴해지는데, 시내 중심가에 있는 오도리공원 삿포로TV 타워 주변의 화려한 조명 불빛이 야경 투어의 매력을 더한다. 삿포로가 미소 라멘이 유명하다면, 아사히카와의 명물은 쇼유 라멘이다. OMO7호텔 레스토랑에서는 시그니처 메뉴로 ‘라면 파르페’와 ‘솜사탕 파르페’를 판다. 앙증맞은 구릿빛 철가방 속에 담겨 나온 이 파르페는 디저트로 라면 모양을 그대로 재현한 솜씨가 놀랍다. 노란색으로 실처럼 길게 뽑은 면은 몽블랑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었고, 고명으로 올라간 돼지고기는 초콜릿, 김은 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홋카이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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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을 지나는 술 ‘과하주’는 사계절 마실 수 있는 전통주예요”

    “예전에는 전통주라고 하면 어르신이나 마시는 올드한 이미지였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새롭고 핫한 술이 됐습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통해 우리 술을 접한 해외 업체들도 수입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경기 여주에 양조장이 있는 ‘술아원’은 여주쌀로 만드는 전통주 양조장이다. 특히 ‘경성과하주’와 ‘도시어부’, ‘술아연화주’ 등 와인처럼 10년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전통 과하주(過夏酒)를 고증해서 복원해낸 술로 유명하다. “과하주는 ‘여름을 지나는 술’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고문헌에 과하주의 맛에 대한 표현은 ‘달고 독한 술’이라고 돼 있습니다. 과하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지만, 단맛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과학적인 술 제조 방법으로 탄생한 술입니다.” 술아원 강진희 대표는 10년 전 와인스쿨에서 맛본 전통주 맛에 빠져 한국전통가양주연구소에서 공부했다. 이후 ‘음식디미방’에서 전하는 과하주 제조법을 고증해 현대적으로 되살린 과하주 전문 양조장을 설립했다. ‘음식디미방’은 조선시대 1670년경(현종 11년) 정부인 안동 장씨라 불리던 장계향(張桂香·1598∼1680)이 정리한 술과 음식에 관한 책이다. “과하주는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처럼 당분이 남아 있는 발효 중간 단계에 도수가 높은 술을 첨가해 발효를 중단시킨 술입니다. 포트 와인은 포도주 증류주인 브랜디를 넣지만, 과하주는 쌀을 증류한 소주를 첨가합니다. 둘 다 당분과 도수를 높여 더운 날씨에도 변질되지 않게 만든 주정강화 술입니다. 과하주를 ‘한국의 포트와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과하주가 훨씬 먼저 생겨난 술입니다.” 술아원의 시그니처 브랜드는 ‘경성과하주’다. 육당 최남선은 1946년 발간한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의 감홍로, 전주의 이강고, 전라도의 죽력고 등과 함께 금천의 ‘두견주’, 경성의 ‘과하주’를 조선의 명주로 지목했다. 강 대표는 “육당이 선택한 명주 중에 앞의 3가지만 ‘조선의 3대 명주’로 홍보되고 있는데, 사실 육당은 5가지 술을 명주로 꼽았다”며 “과하주가 잊혀지는 게 아쉬워서 ‘경성과하주’를 브랜드로 삼았다”고 말했다. 술아원에서는 제주도와 협업한 ‘제주 해마주’, 고려대 응원단의 ‘엘리제 막걸리’, 채널A 낚시 예능 프로그램과 콜라보한 ‘도시어부’를 출시하는 등 MZ세대 고객을 잡기 위한 제품 개발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도시어부는 낚시나 캠핑 가서 마시기 좋게 포켓 스타일의 병에 담은 경성과하주 베이스의 술입니다. 과하주가 알코올 도수(20도)가 좀 높다 보니까, 추울 때 마시면 금방 몸이 따뜻해집니다. 또 달달한 맛도 있어 쌀쌀한 야외에서 액티비티를 즐길 때 마시기에 좋은 술입니다.” 강 대표는 “과하주는 ‘여름을 지나도 변하지 않는 술’이라는 뜻이지, 꼭 여름에만 마셔야 하는 술은 아니다”라며 “사계절 모두 즐길 수 있는 우리의 전통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봄에는 매화, 여름엔 연꽃, 가을엔 국화의 향을 넣고, 겨울엔 순곡주로 만들고, 화려한 전통 단청으로 라벨을 붙인 과하주인 ‘술아’를 내놓기도 했다. 또한 세종대왕릉이 있는 여주 지역의 특성을 살려 고구마 소주 25도짜리는 세종대왕이 세자 시절 입던 푸른색 곤룡포, 소주 40도짜리에는 임금에 즉위해 입었던 붉은색 곤룡포로 디자인했다. 강 대표는 “넷플릭스에 방영된 ‘백스피릿’ 프로그램에 백종원 대표와 이준기 배우가 우리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보고 해외에서 구입 요청을 해 왔다”며 “한류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만큼 높은 퀄리티의 우리 전통술 복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여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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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을 지나는 술 ‘과하주’를 아시나요?”[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예전에는 전통주라고 하면 어르신이나 마시는 올드한 이미지였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새롭고 핫한 술이 됐습니다.” (술아원 강진희 대표)경기 여주에 양조장이 있는 ‘술아원’은 여주쌀로 만드는 전통주 양조장이다. 특히 ‘경성과하주’와 ‘도시어부’, ‘술아연화주’ 등 와인처럼 10년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전통 과하주(過夏酒)를 고증해서 복원해낸 술로 유명하다. 과하주는 ‘한국의 포르투 와인(Porto Wine)‘으로 불린다. 포르투갈의 포르투 와인처럼 당분이 남아 있는 발효 중간단계에 도수가 높은 술을 첨가해 발효를 중단시킨 주정강화 술이기 때문이다. 포르토 와인은 영국인들이 백년전쟁에 패하면서 1693년 윌리엄 3세가 프랑스 보르도 와인에 대한 세금을 대폭 올리면서 포도주를 더이상 수입할 수 없게 되자, 포르투의 도루강 하구에서 생산된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탄생한 술이다. 포르투갈에서 영국까지 포도주를 배로 운반하다가 더운 날씨에 와인이 변질돼 식초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포도주 발효과정에서 발효를 중단시키고, 포도 증류주인 브랜디를 첨가시켜 당분과 도수가 높은 술을 만들게 된 것. 포르투 와인은 영국인들이 그냥 ‘포트 와인’이라고 부르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포르토 와인은 도수와 당도가 높아 상온에서도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 쌀을 발효시켜 만든 우리나라 막걸리나 청주도 더운 날씨에 냉장고에 넣지 않으면 변질되기 쉽다. 포르토 와인은 발효 과정에서 브랜디를 섞지만, 과하주는 쌀을 증류해서 만든 소주를 발효 중간에 넣어준다. 그러면 당도와 도수(약 20도)가 높아서 ‘여름에도 변하지 않는, 여름을 나는’ 과하주가 탄생하게 된다. 과하주 제조비법은 조선시대 1670년 경(현종 11년) 정부인 안동 장 씨라 불리던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남긴 ‘음식디미방’이라는 책에 전하고 있다. 169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포르토 와인보다 훨씬 앞선 ‘주정강화 술’ 제조 비법이 한국에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술아원의 강진희 대표는 10년 전부터 고문헌인 ‘음식디미방’에서 전하는 비법을 고증해, 현대적으로 되살린 과하주를 만들고 있다. ​​술아원 아지트 술아원 양조장 옆에는 이 곳에서 만들어진 여러가지 술을 맛볼 수 있는 시음장인 ‘술아원 아지트’가 있다. 천정에 멋진 샹들리에가 있는 공간이다. 바처럼 생긴 곳에서 술을 따라주기도 하고, 냉장고 앞 테이블에서 천천히 음미하기도 한다. -과하주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신다면?“고문헌에 과하주의 맛에 대한 표현은 ‘달고 독한 술’이라고 돼 있어요.. 과하주는 ‘여름을 지나는 술’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냉장고 없이 여름 지나야 하는데, 그러면 도수가 높은 술만 가능하잖아요. 술이 점점 발효가 되면서 당분이 알코올로 변하는데, 발효가 될 수록 점점 맛이 세지고 드라이해집니다. 근데 과하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지만, 단맛도 계속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술입니다. 과학적인 술 제조방법이죠.”-과하주 만드는 방법을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신다면. “술을 막걸리 같이 발효를 시키는데 중간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넣어요. 그러면 발효가 멈추면서 거기에 이제 남아 있던 당분도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래서 달면서도 소주가 들어갔으니까, 알코올 도수가 높은 그런 술이 되는 겁니다. 포르토 와인하고 만드는 원리가 같죠. 그래서 과하주를 ‘코리아 포르토 와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과하주가 포르토 와인보다 훨씬 먼저 생겨난 술입니다.”-보통 막걸리는 일주일간 발효를 시키는데요, 과하주를 만들 때 증류주는 언제 넣나요. “술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다 달라요. 그래서 과하주는 정말 몇 백, 몇 천 가지 맛이 나올 수 있는 술입니다. 고문헌인 음식디미방에 나와 있는 과하주를 복원하려고 만든 술은 거의 발효 초기에 소주를 넣어서, 단맛이 좀 많이 남아있습니다. 좀 드라이하게, 약간 ‘셰리 와인’ 같이 하려면 발효가 거의 끝난 다음에 소주를 넣어서 드라이한 맛이 나게 하는 방법도 있어요. 저희는 두 가지 다 있습니다.”-술아원에서 만드는 과하주 브랜드는? “경성과하주랑 술아가 있습니다. 다 과하주입니다. 드라이한 맛과 단 맛 두 종류가 있습니다. ‘술아’는 양조장을 시작할 때 대중적으로 만든 술이고, 경성과하주는 고문헌인 ‘음식 디미방’에 나와 있는 과하주 제조방법을 최대한 고증, 복원해 만든 술입니다.“-‘경성과하주’란 이름의 뜻은. “육당 최남선 선생님이 1946년 발간한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유명한 술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육당 선생은 평양의 ‘감홍로’, 전주의 ‘이강고’, 전라도의 ‘죽력고’과 함께 금천의 ‘두견주’, 경성의 ‘과하주’를 명주로 꼽으셨어요. 그런데 앞에 세 가지만 딱 잘라가지고 ‘조선 3대 명주’라고 홍보가 돼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말씀을 끝까지 들어 보면 5가지 명주를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과하주가 잊혀지는 게 좀 아쉬워서 ‘경성과하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도시 어부 술은 어떤 술이죠?“저희 과하주 시그니처인 ‘경성과하주’를 베이스로 하면서, 좀더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술입니다. 낚시나 캠핑 가서 마시기 좋게 병도 포켓스타일로 했습니다. 과하주가 워낙에 알코올 도수가 좀 있다 보니까, 추울 때 마셔도 금방 몸이 따뜻해집니다. 또 달달한 맛도 남아 있어 춥거나 쌀쌀한 야외에서 액티비티를 즐길 때 마시기에 좋은 술입니다. 도시어부도 20도, 경성과하주도 20도입니다.”-엘리제는 어떤 술인가?“엘리제는 고려대 응원단과 콜라보해서 만든 도수 6도짜리 막걸리입니다. 젊은 학생들의 취향에 맞게 톡쏘는 탄산이 많은 시원한 막걸리입니다. 알코올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연발효된 탄산입니다. 엘리제 막걸리에는 설탕이나 감미료 대체재로 자일리톨이 들어가는데요. 자일리톨은 후 발효가 잘 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페트 안에서 계속 발효가 되면서 탄산이 생성됩니다.“-제주 해마주는 어떻게 만들었나. “바다에 사는 해마가 들어가는 술이에요. 해마는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동안은 천연기념물이라 식용으로 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주도에서 해마 양식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제주에서 양식된 해마를 이용해 약으로 만드는 제약회사랑 콜라보해서 술을 만들었습니다.“-과하주는 여름에 마셔야 하는 술인가요? “과하주의 뜻은 ‘여름을 지나는 술’입니다. ‘사람’이 여름을 잘 지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술’이 여름을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와인처럼 여름을 지나 10년, 20년 오래 묵힐 수 있는 약주가 생겼다는 의미이지, 과하주가 꼭 여름에만 마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과하주는 오히려 모든 계절마다 마실 수 있는 술이지요. 그래서 저희는 봄에는 매화, 여름에 연꽃, 가을에는 국화 등 계절마다 피는 꽃을 주제로 해서 ‘술아’ 주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술을 접하시는 분들이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알콜 도수인 15도로 정했습니다. 다만 겨울은 아무것도 안 넣고 순곡으로 20도로 만들었습니다. 겨울은 ‘술아 순곡주’, 봄에는 ‘술아 매화주’, 여름에는 ‘술아 연화주’, 가을에는 ‘술아 국화주’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라벨을 단청 문양으로 한 의미는. “전통주인 만큼 우리나라의 화려한 단청무늬가 어울릴 것 같아서 라벨을 디자인했습니다. 특히 단청에 매화, 연꽃, 국화, 쌀 문양이 다 있어서 신기했습니다. 과하주는 흔히 포르투갈 ‘포르토 와인’과 비교되는데, 화려한 단청무늬가 포루투갈의 타일 문양과도 분위기가 닮았다는 분도 있습니다. 여주에는 또 세종대왕릉이 있습니다. 고구마 소주 25도 짜리는 세종대왕이 세자시절 입던 옷의 색인 푸른색, 40도는 임금이 됐을 때 옷인 붉은색으로 라벨을 디자인했습니다. 다음에 출시될 고구마 소주 오크통 버전은 중전마마 의상 색으로 디자인할 계획입니다. 복분자 그라빠는 백제향로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 ​-양조장 이름을 ‘술아원’이라고 지으신 이유는?“처음엔 계절마다 나오는 네 종류의 술 이름을 각각 예쁘게 지었어요. 그런데 이름이 너무 어렵고, 기억하기가 어려워 한가지로 통일하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생각한 게 ‘술과 나’라는 의미에서 ‘술아’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양조장 면허를 받을 때도 ‘술아원’이라는 이름을 썼죠. ‘술아’를 만드는 양조장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한 고객 분이 ‘술아원’을 ‘술과 나는 하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그것도 좋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어쩌다 전통주 양조를 하시게 됐나? “그 질문이 진짜 제일 어려운데요. 정말 어느 날 눈뜨고 보니 제가 양조를 하고 있었어요. 와인스쿨에서 처음 마셔본 전통주 맛에 빠져서, 2010년 서울 방배동에 있는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전통주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졸업할 때 술 만드는 법만 배우지 말고, 실제 우리만의 술을 출시해보자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양조장 면허를 받는 게 그렇게 까다롭다는데, 같이 수업들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직접 술을 만들어 상품화해보자고 도전했죠. 술 이름도 정하고, 면허 신청하는 법까지 다 배워서 ‘술아’라는 과하주를 만들게됐어요. 그때 제가 졸업생 회장을 맡고 있었죠. 처음엔 양조장 면허가 나오지 않아, 다른 양조장을 빌려서 ‘술아’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수소문해도 우리 술을 계속 생산해주겠다는 양조장이 없었어요. 저희가 직접 양조장을 하지 않으면, 어렵게 복원해낸 과하주가 다시 없어질 것 같은 거죠. 이후 까다로운 절차과 비용, 시간을 들여서 양조장 면허를 받았어요. ‘술아’를 출시한 게 2014년 3월이었으니까 이제 10년이 됐네요.“-여주에 양조장을 세운 이유는. “술 만들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쌀과 물, 누룩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엔 사람이 중요하죠. 여주는 기본적으로 쌀과 물이 좋은 지역입니다. 남한강 상수원 보호지역의 물을 서울사람이 다 마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주 쌀은 임금님께 진상할 정도로 품질이 좋아요. 다만 쌀이 비싸다는 게 흠이죠. 진짜 비싼 여주 찹쌀로 술을 빚다 보니까 가격이 사실 다른 데랑 경쟁이 안됩니다. 쌀 가격이 다른 지역하고 거의 2배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쌀이 좋다고 무턱대고 양조장을 차리는 건 아니구나하고 깨닫게 됐죠. 비싸서 좀 어려운 점은 있지만, 보람은 큽니다. 여주쌀만 쓰니까 지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우리나라 지금 전통주 시장의 미래는 어떻게 생각하세요?“저희가 전통주를 만들어오는 10년 동안 매년 전통주 마케팅 전문가, 유통 전문가들은 단 한해도 빼놓지 않고 내년은 더 나쁠 거다라고 예상했어요. 초창기엔 진짜 겁먹었어요. 올해도 힘들었는데 내년은 더 힘들다고 하니까. 그런데 10년 동안 저희는 그래도 매출이 매년 꾸준히 올랐어요. 스타가 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계단을 밟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 3년 전부터 젊은 대표들이 운영하는 작은 양조장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어요. 엊그제도 주류 박람회가 열렸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양조장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술아원에도 양조장을 새로 창업하고 싶으신 분들이 점점 많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아질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전통주 시장이 지금도 너무 작아서, 공급이 많더라도 관심이 더 많아지면 더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전통주라고 하면 올드하고, 어르신 분위기가 난다고 생각해서 ‘우리술’ ‘한국술’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전통주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면서, 갑자기 전통주란 말의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더 핫하고, 힙한 술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전통주라는 단어를 바꾸기 보다는, 그 말의 이미지를 바꾸는 게 더 중요한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해외에서 우리 전통주에 대한 관심은. “해외에서 관심이 엄청 많대요. 그래서 해외에서도 맨날 전시회 나오라고 하고, 수출하자고도 많은 제안이 들어옵니다. 저희도 일본, 베트남에도 수출을 합니다. 저희 술 ‘복단지’가 넷플릭스에서 백종원 대표가 술에 대해 설명하는 ‘백스피릿’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어요. 이준기 배우랑 같이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 일본에서 수입을 요청해왔어요. 넷플릭스 드라마나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에 우리 전통술이 잘 홍보됐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주 양조장술아원 양조장에 들어가니 쌀이나 고구마를 찌는 기계 옆에 경사진 트레일러가 있었다. 기게에서 찐 쌀이 트레일러를 통해 올라가면서 떨어질 때까지, 위에서 선풍기가 바람을 쏴주면서 쌀을 식히게 된다. 쌀이 떨어지는 통에는 누룩이랑 물을 섞어서, 손으로 혼합을 해준다. 강 대표는 ”우리 술은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섞어야 발효가 잘 된다“며 우리 술의 ‘손맛’을 예찬했다. 양조장 한켠에는 자동으로 온도가 조절되는 특별한 시설이 갖춰진 방이 있었다. 복분자 약주는 발효시킬 때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동으로 일정한 온도를 맞춰주는 발효실에서 발효를 한다고 한다. 반면 과하주는 온도에 덜 예민하기 때문에 구분해서 발효시킨다. -술은 몇일 만에 발효가 되나요?“술마다 너무 달라요. 막걸리는 1주일 발효시키고, 2주 정도 저온에서 안정화시켜주는 단계를 거칩니다. 과하주는 5일 발효시키고, 증류조에 넣어놓고, 최소 한 달간 숙성시킵니다. 그다음에 저장고에서도 1~3달 최소 숙성시키고 나서야 제품이 됩니다. 고구마 소주 같은 경우에는 발효는 5일에서 일주일이지만, 증류에서 우리가 먹기까지는 거의 1년 반에서 2년 까지 숙성을 시키고 술이 나오고 있어요.”양조장의 여과기는 술을 맑게 걸러주는 역할을 해주는 장치다. ‘막걸리’는 원래 베 보자기 등을 이용해 ‘막걸러서‘ 마시는 술이다. 그래서 보통 쌀의 텁텁한 맛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청주나 약주처럼 맑은 술은 발효된 쌀성분을 가라앉힌 다음, 윗부분의 맑은 부분을 떠서 여러차례 천이나 한지 등을 이용해 거른다. 그래서 화이트 와인처럼 맑은 술이 탄생하는 것이다. 술아원의 여과기는 여과지(종이)와 여과포(천)을 이용해 1차와 2차에 걸쳐 걸러내 맑은 과하주를 만들어낸다. 양조장 한쪽 방에는 소주를 만드는 증류기가 설치돼 있다. 연금술을 하는 중세의 실험실 같은 분위기다. 고구마를 쪄서 증류해 나온 알콜은 처음엔 68도로 나오며, 이 원액에 물을 섞어서 40도 정도로 만들어낸다고 한다. 강 대표는 “우리술 양조장과 서양의 와이너리와 다른 점은 쌀을 찌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포도주는 포도를 찌지 않고 바로 담그기 때문에 간편하죠. 그런데우리 술은 쌀을 쪄서 온도에 맞게 식히고, 누룩과 잘 섞어주고 하다보니 과정이 한층 복잡해집니다. 찌는 과정에서 습기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여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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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경주 대릉원

    경북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은 부드러운 곡선의 향연이다. 잘록한 허리에서 풍만한 엉덩이로 이어지는 곡선은 조선백자 달항아리처럼, 표주박처럼, 첼로처럼, 신윤복 미인도의 치마처럼 이어진다. 둥글게 올라간 고분은 원초적인 생명을 배태하는 모체로서 땅의 실체를 느끼게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 못지않은 대규모 고분군인데도, 전혀 위압적이지 않다. 어릴 적 뛰어놀던 뒷동산마냥 정겹다. 대릉원에 가면 엄마 품처럼 포근한 공간에서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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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릉도 나리분지에서 열리는 겨울 눈꽃 캠핑 축제

    울릉도는 전국 최고 강설량을 자랑하는 섬이다. 겨울이면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설경을 만날 수 있는 국내에선 보기 드문 여행지다. 그동안은 겨울철에 세찬 바람에 파도가 높아 잦은 뱃편 결항으로 찾아가기 어려운 섬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울릉크루즈 등 대형 여객선 취항으로 결항률이 크게 낮아짐에 따라 인기있는 겨울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여객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울릉도에서도 겨울축제가 생겼다. 코오롱글로텍(대표 방민수)과 울릉크루즈(대표 조현덕)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개최하는 ‘울라 윈터 피크닉 시즌2’다. 1일부터 2월29일까지 울릉도 나리분지에서 겨울을 만끽할 수 있는 눈꽃 축제다. 울릉도 유일의 평야 지대인 나리분지에서 캠핑과 백패킹을 즐길 수 있는 울릉도 대표 겨울 축제다.이번 나리분지 행사장은 캠핑 존, 참여 존, 놀이 존으로 구성된다. 캠핑 존에는 울릉도 대표 캐릭터인 울릉도 고릴라 ‘울라(ULLA)’의 17M 높이 초대형 아트 벌룬과 포토존이 설치된다. 행사장에서는 누구나 겨울 캠핑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에선 별도의 개인 장비가 없어도 캠핑을 할 수 있다. 코오롱스포츠의 텐트와 장비를 대여해주기 때문이다. 참여 존의 울라 스토어에서는 방한용품을 비롯해 울라 굿즈도 만나볼 수 있다. 대표 캐릭터인 울릉도 고릴리 ‘울라’가 깜짝 방문해 현장 경품 이벤트도 진행한다. 또한 울릉도 최초의 맥주 양조장 울릉브루어리의 맥주 시음 행사와 경남제약 레모나의 상큼한 울릉도 인생샷 이벤트도 동시에 열린다.놀이 존에서는 눈썰매, 미니 눈사람 만들기, 위시트리 소원 달기, 겨울 민속놀이 체험 등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이 마련되돼 이색적인 울릉도의 겨울을 경험할 수 있다. 울릉크루즈는 행사 기간 동안 겨울 축제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설국 울릉도 원나잇 원데이 크루즈’ 상품을 선보인다. 이용 고객들에게 무료 조식과 사동-나리분지 셔틀버스 서비스도 제공한다.코오롱글로텍 관계자는 “올해 1월과 2월에 열린 ‘울라 윈터 피크닉’에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 겨울 관광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새해에는 더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해 아름다운 울릉도의 겨울을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코오롱글로텍은 21년 8월 한국관광공사, 울릉군과 울릉도 관광 활성화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지난해 5월 울릉도 최초의 민·관 합작 여행자센터 ‘울라 웰컴하우스’를 오픈했다. 올해 울릉도의 특산물을 발굴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계해주는 구독 프로그램인 ‘울라사계’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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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삿포로 AI번역기

    일본 삿포로 출장길에 휴대전화 앱이 사진 속 일본어를 바로 한국어로 번역해 주는 걸 보고 개안(開眼)의 놀라운 경험을 했다. 네이버 인공지능(AI) 기반 통역 앱인 ‘파파고’는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 상태의 간판, 메뉴를 찍으면 바로 번역해 준다(사진). 파파고는 13개 언어 통번역을 지원하는데, 특히 한일 통역은 구글 번역기 사용량을 추월했다고 한다. 네이버가 일본 메신저 시장을 85% 점유하는 ‘라인’으로 일본어 데이터를 쌓아온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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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대왕암의 일출[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푸른 용(龍)의 해다. 우리나라에는 용의 전설이 깃든 바위, 해안, 연못, 폭포 등 명소가 많다. 오랜 세월 도를 연마한 끝에 하늘로 오르는 상상의 동물로 신성시했기 때문이다. 궁궐에서는 임금의 상징이기도 하다. 청룡의 해에 첫 일출은 어디서 보는 것이 좋을까.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왕의 전설이 담긴 경북 경주시 감포 해변을 찾았다. ● 문무대왕암의 일출“내가 죽거들랑 동해 바다에 장사를 지내라. 나는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 문무왕(文武王·재위 661∼681)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완성한 왕이다. 김유신, 김춘추가 당나라와 함께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켰지만 문무왕은 최종적으로 이 땅에서 당나라 군대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해 통일신라를 완성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문무왕은 삼국통일 후에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왜(일본)가 통일신라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존재라고 내다봤던 것.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고, 대왕암에서 뿌려 달라고 유언하게 된다. 그는 결국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되었다. 경주 감포 앞바다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는 자연 암초인 문무대왕릉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수중왕릉이다. 해마다 1월 1일 새벽 감포 해변에는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수천 명의 사람이 몰려든다. 대왕암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의 기운이 더욱 상서롭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동해 바다 위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태양도 좋지만 추암의 촛대바위나 문무대왕릉처럼 멋진 바위 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바위 위로 날아다니는 수백 마리의 새는 해돋이를 장엄하게 만드는 훌륭한 조연이다. 26일 오전 7시 반. 감포 해변에 도착하니 해변 모래사장에 밝은 빛이 나는 병들이 놓여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병 속에 촛불이 들어 있었다. 촛불이 아직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밤새 기도했던 흔적인가 보다. 해변엔 가족들과 함께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문무대왕암의 중앙에는 수면에서 깊이 1.2m의 십자형 수로가 있고, 그 중앙에는 거북이 모양처럼 보이는 커다란 돌이 놓여 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곳에서 부장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문무왕은 죽은 후 아들인 신문왕에게 해룡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용은 대나무를 주면서 “이것으로 피리를 만들어 불어라. 그러면 온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피리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불린다. 1만 개의 파도(고난과 위기)를 가라앉히는 피리라는 뜻이다. 맑은 날씨의 해변에서 태양이 고개를 내밀었다.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파도를 헤치고 올라오며 오메가 현상을 불러온다. 대왕암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장엄하다. 죽어서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용이 떠오르는 듯하다. 대왕의 만파식적처럼 온갖 고난과 역경을 물리치고,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새롭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경주시는 1월 1일 문무대왕릉 일원에서 3000여 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신년 해룡축제’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경북 포항시 구룡포 호미곶에서도 4년 만에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 감은사지와 용굴 감포 앞바다에 연결된 대종천변에는 감은사지가 있다. 문무왕이 불법(佛法)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짓기 시작한 절이다. 감은사지에는 텅빈 대지에 두 개의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감은사지는 해질 녘 노을에 찾으면 좋다. 분홍빛으로 선연하게 물들어 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두 개의 3층 석탑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실루엣을 보여 준다. 육중한 화강암 덩어리가 단순하면서도 장중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이 탑은 우리나라 3층 석탑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문무왕이 해안으로 침투하는 왜구를 경계하기 위한 비보(裨補)적 의미로 세운 탑이라는 해설이다. 그러나 문무왕은 절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영면하게 됐다. 아들인 신문왕은 즉위 이듬해(682년)에 이 절을 완공시켜 ‘감은사(感恩寺)’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감은사는 왜구를 막는 비보 사찰이면서도, 문무왕의 추모 사찰이란 의미도 갖게 됐다. 문무대왕 수중릉과 감은사는 바다와 육지가 가까운 곳에 세트로 지어진 추모공원인 셈이다. 신문왕은 바다의 용이 된 아버지가 감은사에 찾아와 금당에서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수로를 만들었다. 감포 해안과 연결되는 대종천을 따라 감은사로 이어지는 ‘용의 길’이다. 삼국유사에는 “금당 돌계단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을 하나 뚫어두었으니, 곧 용이 절로 들어와 돌아다니게 하려고 마련한 것이다”라고 전한다. 실제로 감은사지의 금당터 바닥에는 주춧돌 아래에 장대석이 일렬로 세워져 용의 길을 만들고 있다. 감은사지를 돌다보니 해가 완전히 지고 보름달이 떠올랐다. 감은사지 3층 석탑에는 자정까지 조명이 비추고 있어 한밤중에도 제법 운치가 있다. 두 개의 탑 위로 보름달이 떠오르니 말 그대로 ‘신라의 달밤’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감포 전촌항 해변에는 용굴로 알려진 해식동굴이 있다. 파도와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의 조각품인 용굴은 ‘사룡굴’과 ‘단용굴’ 두 곳이 있다. 사룡굴에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지키는 네 마리 용이 살았다고 하고, 단용굴에는 용이 한 마리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용굴 안에서 동해 일출을 찍기 위한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파도 소리가 울려퍼지는 동굴 안에서 인생 샷을 건질 수도 있다. ● 용의 전설이 숨쉬는 곳동해에서는 요즘도 자주 용오름이 관측된다. 해수면과 하늘의 구름이 일직선으로 연결돼 거대한 수증기 기둥이 형성되는 기상현상이다. 이런 용오름 현상을 보고, 사람들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동해안에는 용을 숭상하는 무속신앙이 발달했다. 계곡이나 강가의 절벽에도 수심이 깊은 연못에는 대부분 용소(龍沼), 용연(龍淵), 용담(龍潭)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이무기가 천년 동안 수행을 하다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함께 전해진다. 설악산 비룡폭포는 용이 하늘을 나는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사찰에 가면 대웅전 처마 단청에 용이 새겨져 있는 곳이 많다. 물에 사는 용이 화재를 예방해줄 것이라는 속설 때문이다. 또한 사찰에 있는 비석은 이수(螭首)와 비신(碑身), 귀부(龜趺) 등 3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이수는 이무기 모양의 머릿돌이고, 귀부는 비신(몸통)을 받치고 있는 거북이 모양의 돌이다. 그런데 귀부는 몸통은 거북인데 얼굴은 용의 머리를 하고 있다. 힘이 세기로 유명한 용의 6번째 아들이라고 한다. 사찰에서 계단이나 지붕 등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용머리 장식품은 대부분 이무기다.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단련하는 수행자를 상징한다고 한다. 지명 중에도 용두동(용의 머리 모양 지형에 있는 동네), 용강동(용처럼 생긴 강), 용산(용처럼 생긴 산), 용문(용이 바위를 열고 승천했다는 문) 등 전국에 용과 관련된 명소가 많다. 제주공항 인근에 있는 용두암은 10m에 이르는 괴암이 옆에서 보면 용의 머리처럼 보인다. 용이 입에 여의주를 문 듯이 해가 걸리는 일출 장면을 찍을 수도 있는 곳이다. 용두암은 바람이 잔잔한 날보다는 파도가 심하게 몰아치는 날에 봐야 제맛이다. 천지개벽하는 분위기 속에서 용이 ‘으르르’ 울부짖으며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르는 모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경주 감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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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대사의 집무실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 있는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대사의 집무실에서 바라본 창밖의 풍경이었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 뒤편 한양도성이 창문 가득히 눈에 들어왔다. 스위스 정부는 1974년부터 송월동에서 45년간 사용했던 낡은 건물을 허물고 2017년 새 대사관을 지었다. 재개발로 주변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고층을 포기하고 한양도성의 눈높이에 맞춘 한옥에서 영감을 받아 낮은 건물로 새로 지었다고 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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