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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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zsh75@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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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둥팡즈싱’ 침몰사고로 431명 사망·11명 실종, 지금 중국은…

    중국 창장(長江) 강에서 1일 밤 발생한 유람선 ‘둥팡즈싱(東方之星·동방의 별)’ 침몰 사고는 7일까지 승객과 승무원 456명 중 43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됐으며 14명이 탈출하거나 구조된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로써 이번 사고는 1948년 상하이(上海) 황푸(黃浦)강에서 폭발해 2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증기선 ‘장야호’ 사고 이후 최악의 선박 사고로 기록됐다.○사고 원인 조사 난항 예상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정치국 상무위원 회의에서 철저한 사고 조사를 지시한 만큼 사고 조사가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통신 내용과 기관 상태, 속력 등의 정보를 자동 기록하는 항해자료 기록장치인 ‘블랙박스’는 물론 사고 발생시 주변 선박 등에 위험 상황을 긴급하게 알리는 ‘자동경보장치’가 침몰 선박에 탑재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과학적인 사고 원인 조사는 힘들어졌다. 결국 사고 조사는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진술에 의존할 것으로 보이는데 피해자 가족들이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기상 당국이 사고 당일 7차례나 악천후를 경고했는데 항해를 강행한 이유 △1994년 건조 이후 수차례 진행된 선박 개조의 적법성 △2년 전 안전 검사에서 통과하지 못했는데 계속 운항한 경위 등이 조사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유족 현장 방문 등 추모 행사 허용 중국 당국은 7일을 전통 관습에 따라 망자를 추도하는 ‘7일제(頭七)’ 행사일로 정하고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한 장소에서 묵념과 경적 울리기 등으로 애도를 표하도록 했다. 이날은 현장 접근 통제도 해제해 가족의 접근을 허용했다. TV방송들도 추도 분위기 조성을 위해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으로부터 7일부터 황금시간대 오락 프로그램의 방송을 잠정 중단하라는 지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후베이(湖北) 성 젠리(監利) 현의 위사(玉沙)초등학교 담장에는 이번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글이 적힌 노란 리본이 가득 매달려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팽목항 주변을 연상케 했다. ○신속하게 이뤄진 선체 인양 및 시신 수습 중국군과 교통부 등은 생존 가능 시간(골든 타임)인 72시간이 지나자 4일 밤부터 사실상 선체 인양 작업에 들어가 이튿날 오전 7시경부터 선체 바로 세우기 작업을 벌였다. 관영 CC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5000t급 크레인선 2척과 160t급 크레인선 1척이 선박 뒤집기 및 들어올리기에 나서 2시간 50분 만에 4층 구조의 유람선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국은 시신 및 유품 유실을 막기 위해 강 하류 200m 지점에 그물을 설치했다. 중국 당국은 이번 사고 수습 과정에서 유족들에게 사고 및 희생자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지 않거나 구조 작업에 유족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아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일부 관영 언론은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신속히 현장에 도착해 지휘한 것을 칭송하다 일부 누리꾼들로부터 “이 마당에 누굴 칭송하냐”는 비난을 샀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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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 수학천재 김정윤양, 하버드-스탠퍼드 동시입학

    수학과 컴퓨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한국인 천재 여학생이 미국 최고 대학들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고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미국 최고의 공립학교 중 하나인 버지니아 주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 12학년인 김정윤(영어명 세라 김·18·사진) 양. 하버드대는 올해 졸업 예정인 김 양을 일찌감치 지난해 말 조기 합격시켰다. 스탠퍼드대도 이에 질세라 교수들이 총동원돼 김 양에게 매달렸다. 결국 김 양은 두 학교에서 모두 공부해 본 뒤 졸업할 대학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2년은 스탠퍼드대에서, 2∼3년은 하버드대에서 각각 공부할 예정이다. 연간 6만 달러에 이르는 학비도 전액 학교 측이 부담한다. 내로라하는 명문대들이 김 양을 놓고 경쟁하는 것은 그가 수학경시대회 등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김 양은 11학년 때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주최한 리서치 프로그램에서 ‘컴퓨터 연결성에 대한 수학적 접근’이란 주제의 발표를 했는데 대학 교수도 풀기 힘든 고난도의 과제를 해결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발표 이후 유수의 대학들은 교수들을 통해 자신의 학교에 와달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는 등 치열한 스카우트전을 벌였다. 스탠퍼드대의 제이컵 폭스 교수는 김 양에게 “너의 수학적 증명이 완성되면 전 세계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컴퓨터 혁명을 맞게 될 수도 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미국 최고의 수학자인 아서 루빈 박사도 김 양을 직접 찾아 격려했고,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도 김 양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김 양은 학점 받기가 어렵다는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에서 4년 내내 줄곧 A학점을 유지해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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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서울 수돗물보다 맛있다는 평양 수돗물의 비밀

    “어, 곱등어(돌고래)가 살아 있네.” 화면을 되돌려 봐도 분명 곱등어가 맞았다. 미국 CNN 방송이 지난달 평양에 들어가 찍어온 영상 중에는 능라인민유원지 곱등어관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지난해 말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김정은이 야심 차게 만든 곱등어관에서 스파르타식 훈련과 수질 오염 등으로 인해 돌고래들이 폐사했다는 소문이 평양에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돌고래 대신 여성들이 수중발레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 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혹은 그 보도 이후에 돌고래를 다시 사왔을지도 모른다.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불식시키려 지난달 CNN 방송을 불러 여기저기를 보여주었다. 곱등어관을 구경시켜준 속내도 어쩌면 “봐, 돌고래가 살아 있잖아” 하는 메시지를 남쪽에 보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돌고래가 살아 있다고 써준 한국 언론은 당연히 없다. 북한 안내원은 CNN 특파원에게 “대북 제재 때문에 돌고래를 사올 수 없어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서울에선 8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돌고래를 바다로 되돌려 보내는데, 평양에선 돈이 있어도 돌고래를 살 수 없다고 푸념을 한다. 참고로 훈련되기 전 돌고래는 1마리에 2만 달러, 훈련되면 20만 달러 정도에 거래된다고 한다. 돌고래를 찾다 보니 내가 본 어느 돌고래 쇼장보다 훨씬 큰 수조가 눈에 들어온다. 그 넓은 수조엔 바닷물이 찰랑찰랑 가득 차 있었다. 이 바닷물은 2012년 남포에서 평양까지 60여 km 구간에 주철관을 묻고 끌어온 것이다. 그때도 곱등어 쇼를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바닷물을 평양까지 끌고 왔다고 보도한 언론들이 있었다. 하지만 바닷물을 평양까지 끌고 온 목적은 곱등어관에 공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평양 시민들의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과거 평양도 수돗물 소독에 외국과 똑같이 액체염소와 표백제를 사용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난 때문에 염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수돗물을 마시고 배탈이 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양 상하수도관리국 연구사들은 바닷물을 활용한 소독방법을 연구 도입했다.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을 전기 분해하면 강력한 살균력을 갖는 산성수와 알칼리수가 나오는데, 이를 민물에 섞어 소독제로 활용하는 것이다. 새 소독방법을 도입하고 바닷물을 남포에서 끌고 오기까지 연구사들은 국가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한다. 북한이 많이 부패돼 있는 와중에도, 시민들을 위해 뇌물 받지도 못하는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양심적 과학자들이 있다는 점이 반갑다. 하지만 소독을 잘한다고 해서 깨끗한 물이 모든 평양 시민에게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수도관이 워낙 노후해 장마철에 흙탕물이 나오는 지역도 많다. 그래서 요즘엔 평양에서 수도관 교체 공사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물론 아직은 멀었다. 평양에서 아파트가 고층일수록 가격이 떨어지고 20층 이상이 되면 입주하지 않으려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도 바로 수돗물 때문이다. 펌프 수압을 고층까지 충분히 올려 보내는 걸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일거리나 광복거리의 고층 아파트들은 한 달에 한 번 수돗물이 나올 때도 적지 않다. 그나마 평양이니 이 정도지, 지방은 수질이나 수압이나 더 논할 형편이 안된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바닷물로 소독한 평양의 수돗물은 어쨌든 수돗물 특유의 염소 냄새를 없애버렸다. 지난해 탈북한 평양 시민에게 물어봤더니 “염소 냄새가 없어져 물맛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또 전해수를 활용해 수영장 물을 소독하니 눈이 시리지도 않다고 한다. 바닷물 소독방법의 장단점이나 비용에 대해선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염소를 활용한 전통적인 소독방법에 비해 최근에 도입되기 시작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매우 궁박한 처지에 이르게 되면 도리어 펴나갈 길이 생긴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서울의 수돗물에선 아직 없애버리지 못하고 있는 염소 냄새를 평양의 수돗물에선 없애버렸다. 이걸 보니 유선전화망이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곧바로 휴대전화 시대로 넘어간 아프리카의 사례가 떠올랐다. 북한도 휴대전화 붐이 그렇게 일어났다. 어쩌면 북한에서 모자라다는 것, 없다는 것이 곧바로 최신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금과 의지가 따라야 함은 필수불가결적 조건이다. 허나 여전히 돌고래쇼나 양식 따위에 집착하는 김정은을 떠올리면 다시 답답해진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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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FA 고위 간부 6명 체포…블래터 5선 도전 빨간불

    5선을 노리는 제프 블래터(79)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회장 선거를 이틀 앞두고 최대 위기를 맞았다. 외신들에 따르면 스위스 당국은 27일 취리히의 한 5성급 호텔에서 29일 열릴 회장 선거를 앞두고 모여 있던 FIFA 고위임원 6명을 한꺼번에 체포했다. 체포된 임원 중에는 회장 선거에서 블래터 회장 지지 연설을 맨 첫 번째로 할 것으로 알려진 에우헤니오 피게레로 FIFA 집행위원회 부회장도 포함돼 있다. 스위스 당국은 당초 10명 이상을 체포할 계획이었으며 현장에 없어 체포를 면한 임원들도 곧 체포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위스 법무부는 성명을 발표해 이번 체포 작전은 미국 법무부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체포된 인물들은 범죄인 인도요청에 따라 즉각 미국으로 이송될 수 있으나 본인들이 거부할 경우 최장 40일 간 추방이 유예될 수 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은 최대 14명의 FIFA 임원들이 부패혐의로 기소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산하 FIFA 간부들과 조직, 스포츠 미디어와 프로모션 업체들로부터 1억 달러(약 1100억 원) 이상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은 러시아와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뇌물이 오간 정황을 포함해 199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가 FIFA 임원들의 부패 혐의를 조사하고 있으며, 구체적 증거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0년 열린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투표에서는 막대한 오일 머니를 뇌물로 썼다는 의혹을 받는 카타르가 경쟁자인 미국을 14 대 8로 누르고 유치에 성공했다. FBI의 수사는 이때부터 본격화됐고, 이에 체포될 것이 두려운 블래터 회장이 최근 4년 동안 미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FIFA 고위간부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29일 회장 선거에서 승리가 확실시 됐던 블래터 회장은 최대 악재를 만났다. FIFA 회장 선거는 209개 회원국의 투표로 이뤄진다. 4선까지만 하겠다던 약속을 깨고 5선에 도전한 블래터 회장은 FIFA 6개 대륙연맹 가운데 5곳의 지지를 받아 회장 유임이 유력시됐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블래터 회장 체제의 부패가 부각될 경우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블래터 회장은 1998년 회장으로 집권해 지금까지 17년 동안 재임해왔다. 1981년부터 FIFA 사무총장을 지낸 점을 감안하면 무려 34년이나 FIFA 조직을 장악했다. FIFA는 ‘블래터의 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블래터 회장이 오랫동안 왕국을 관리해온 방식은 지구상의 독재자들이 권력을 유지해 온 방식과 일맥상통하다. 월드컵을 비롯한 각종 FIFA 주관대회 개최지를 선정하는 집행위원회는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13명의 지지만 얻으면 어떤 나라던 개최지로 선정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 집행위원들이 수백 만 달러 이상의 뇌물을 받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해왔다. 섭씨 40도의 날씨로 축구 대회를 열기 최악의 조건을 가진 카타르가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여러 명의 집행위원들이 뇌물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증거를 찾기가 워낙 쉽지 않은 구조여서 실제 처벌된 위원은 없다. 블래터 회장이 부패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측근들로부터 충성심을 얻어왔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회장 선거는 209표 중 105표만 얻으면 된다. 블래터 회장은 측근들이 포진된 회원국 축구협회에 ‘축구발전 보조금’을 뿌리고, 측근들이 이를 착복하는 것을 묵인하는 방식으로 표밭 관리를 해오고 있다고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가 22일 보도했다. 지난달에도 블래터 회장은 카리브해 25개국 축구협회의 지지가 흔들리자 급히 바하마를 방문해 재선되면 4년 동안 최대 1억80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이 지역 축구협회에 뿌리겠다고 공약했다. 유럽에선 블래터 회장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회장 선거에선 바하마와 같은 이름 없는 국가가 영국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축구 강국과 똑같은 1표를 행사한다. 29일 열릴 FIFA 회장 선거에는 블래터 회장의 대항마로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40)가 나섰다. 외신들은 측근들이 대거 구속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막대한 돈을 틀어쥐고 뿌릴 수 있는 블래터 회장의 당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FIFA는 축구 관련 보유 현금이 15억 달러가 넘으며, 지난해 월드컵축구대회 중계권과 마케팅 권리를 팔아 57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그럼에도 스위스 취리히에 비영리 단체로 등록돼 세금도 내지 않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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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 최고가 그림, 카타르 왕실서 구매? “사실 아니다”

    최근 피카소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유화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의 구매자가 카타르 왕실이라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경매회사가 밝혔다. 미국 뉴욕 크리스티경매 측은 11일 진행된 경매에서 1억7936만5000달러(약 1975억 원)에 매각된 이 유화의 최종 낙찰자가 하마드 빈 자심 빈 자베르 알타니 전 카타르 총리라는 보도를 부인했다. 하지만 실제 낙찰자가 누군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크리스티 측은 이번 경매에 35개국에서 참여했으며, 유럽과 아시아의 수집가들이 미국 수집가들과 경쟁하는 양상이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뉴욕포스트와 영국 텔레그래프 등 서방 언론들은 피카소 작품이 알타니 전 총리에게 낙찰됐다고 보도했다. 서방 언론이 피카소의 그림 매각에 큰 관심을 보인 이유는 고가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유화 ‘알제의 여인들’은 벌거벗은 여인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입체파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그림은 이슬람교 국가인 카타르에서 공개 전시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서방 언론에서는 유명한 작품이 지하 금고에 들어가 빛을 볼 수 없고, 대중이 관람할 수 없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다. 카타르 왕가는 올해 2월 약 3억 달러(약 3300억 원)에 팔려 미술품 개인 거래 최고가 기록을 세운 폴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Nafea Faa Ipoipo: When Will You Marry?)’를 비롯해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봄의 자장가’,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등의 구매자로도 지목됐다. 유럽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국보급 작품들이 중동의 오일 머니에 팔려가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이 커지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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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목숨을 저당 잡히고 얻는 부패의 자유

    “이 자는 당의 신임을 저버리고….” 북한에선 제일 끔찍한 말이다. 장성택, 현영철을 포함해 숙청된 북한 간부들의 판결문에는 꼭 신임을 저버렸다는 ‘죄명’이 붙는다. 이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이 너를 핵심 통치 계층에 뽑아주었는데, 이제 더 믿지 못하겠으니 죽이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대신할 것이다.” 통치 계층의 상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엔 조상 때부터 김씨 일가에 충성한 ‘뼈대 있는’ 집안 출신만 매달릴 수 있다. 경쟁자를 물리치며 한발 한발 위로 올라갈수록 꼽기조차 아름찬 갖가지 특혜들이 기다리고 있다. 고급 주택, 외제 차, 자녀 대학 입학권, 최고 의료 수급권부터 시작해 북한 돈 1원으로 1달러짜리 상품도 살 수 있는 특권까지…. 자신이 어디쯤 올라왔는지는 어떤 공급을 받는지를 보고도 가늠할 수 있다. 최상위 ‘1일 공급제도 대상’이 되면 식모가 주문한 각종 육류, 과일, 수산물 등이 매일 오전 6시 냉동차에 실려 집에 배달된다. 중앙당 비서, 내각 총리, 군단장 이상 군 장성, 각 도 책임비서 정도가 이에 해당된다. 그 아래 3일에 한 번 냉동차가 오는 ‘3일 공급제도 대상’이 있는데 노동당 과장, 내각 장관급이 해당된다. 항일빨치산 연고자, 남쪽에서 송환한 비전향 장기수도 이런 공급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북한의 계층별 공급 제도는 주 공급 대상, 월 공급 대상까지 매우 세분화됐고, 운명도 특권을 누리는 자와 뜯기기만 하는 자로 갈린다. 1990년대 중반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 시기 1일, 3일 공급 대상들의 특권은 오히려 더 커졌다. 김정일은 백성이 아무리 많이 굶어 죽더라도 측근들은 절대 등 돌리지 않게 아낌없이 보상해야 한다는 독재 정권 유지의 규칙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 경제가 오랫동안 마비되다 보니 핵심 계층의 충성을 사던 김정일의 돈주머니도 점점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이 꺼낸 카드가 바로 ‘부패 허가’였다. 김정일은 직접적인 보상을 줄이는 대신 부패를 눈감아 줌으로써 특권층에 우월감과 보상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때부터 북한의 통치 계층은 큰 간부는 크게, 작은 간부는 작게 각자 인민을 수탈하며 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김정은 시대에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북한에서 부유함은 곧 권력과 비례하게 됐다. 북한판 태자당이라고 표현되는 북한 신흥 부자층에는 당정군을 가리지 않고, 핵심 고위계층의 자녀들이 부모 권력순으로 포진돼 있다. 부패는 한편으로는 김씨 집안이 쥔 칼자루이기도 하다.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은 부패로 몰아 죽이면 그만이다. 태자당의 운명도 부모의 용도가 끝나는 순간 함께 끝나는 것이다. 얼마 전 김원홍 보위사령관의 아들인 김철의 외화벌이 세력에 대해 내사가 있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김원홍이 무탈한 것으로 보면 여전히 그가 효용가치가 있다고 김정은이 판단한 듯하다. 목을 맡기고 사는 고위층은 “당의 신임을 저버렸다”는 무시무시한 판결을 받고 사다리에서 굴러떨어지지 않기 위해 목숨 내놓고 충성하게 된다. 사실 이런 식의 통치 방식은 세계의 가난한 장기 독재 국가들에서 아주 보편적인 것이다. 결국 죽어가는 것은 북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인민들뿐이다. 하지만 독재 국가에서 병들고 굶주려 나약해지고 위축된 인민이 반란을 일으키는 사례는 거의 없다. 고위층 역시 부패한 체제가 자기의 부를 담보해주기 때문에 배신할 생각을 갖지 않는다. 결국 북한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세력은 몹시 궁핍하거나 몹시 윤택한 계층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시장에서 돈을 축적하는 시장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김정은 체제 들어 시행되는 시장 및 농업 개혁으로 이들의 만족도는 커지고 있다. 이들 역시 부패의 사슬 속에서 통치 계층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부를 키우고 있다. 이런 북한에선 오랫동안 시민혁명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전만 하더라도 북한의 부패 정도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수위를 다툴 정도다. 나는 북에서 그 변질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북한이 뇌물 없이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어딜 가나 구린내가 풀풀 풍기는 나라가 되기까진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되돌리자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청렴한 북한은 내 생전엔 볼 수 없을 것 같다. 정권 유지를 위해 북한을 완전히 썩게 만든 것, 이는 김씨 일가가 민족 앞에 용서받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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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당 조직지도부 빼곤 北에 ‘숙청 안전지대’는 없다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으로 김정은의 ‘공포 통치’가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정원은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처형된 주요 간부가 70명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3년 반 동안 행해진 김정은 숙청사를 돌아보면 여기에도 교묘한 규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현영철 처형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식 통치방식을 한층 선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정은의 숙청사’를 들여다보면 현 체제에서 안전한 그룹과 미래에 위태로운 그룹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예상이 가능하다.○ 김정은은 왜 軍 인사들을 숙청하나 북한 독재 체제를 지탱하는 3대 핵심 축은 노동당, 군, 국가안전보위부(비밀경찰)이다.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해 김정은 시대까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굳건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적잖은 변화가 감지된다. 세 축 간의 역학관계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대에서 약간씩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일성 시대에는 노동당 군 보위부 순으로 권력이 배분됐으나 김정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군이 정점에 서게 된다. 김정일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 파탄으로 민심이 흔들리자 “권력은 총에서 나온다”며 ‘선군정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당시 군은 북한에서 가장 우대받는 조직이 되었고 다음으로 국가안전보위부, 노동당 순이었다. 김정은 시대에는 다시 노동당이 약진했다. 노동당 내 인사권을 틀어 쥔 조직지도부가 김정은이 후계자이던 시절부터 꾸준히 그에게 충성을 바쳐 신임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동당 내 권력구조도 달라졌다. 김정일 시대에는 장성택이 장악했던 행정부가 중심이었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조직지도부가 권력의 핵심이 됐다. 주지하다시피 장성택은 막대한 세력과 재력을 움켜쥐고 있다가 김정은 장기 집권에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혀 2013년 12월 비참하게 처형됐다. 김정은 시대에 위상이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군부였다. 지난 3년 반 동안 처형된 사람들도 주로 군부 인사가 많다.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에서 군의 중요성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군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숙청의 칼날을 받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떻든 지금 북한에서 군 인사들이 표적이 되는 이유는 김정은이 준비된 지도자가 아닌 상태에서 통수권자가 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권력 기반을 다져온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는 한 번 인민무력부장이 되면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자신들이 가장 믿는 사람을 군부 수뇌로 앉혀 ‘총구의 배반’을 막았다. 그러나 김정은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황병서 최룡해 같은 인물을 등용해 총정치국장을 맡겨 군부를 장악하려 하지만 민간 출신인 이들은 군 조직 장악에 한계가 있다. 결국 김정은의 군부 통치 전략은 “믿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어떤 한 사람이나 집단이 세력화될 시간을 주지 않으며, 숙청 같은 공포심을 조장해 반역 움직임을 차단한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최근 군부 인물에 대한 숙청 및 계급 강등과 복권을 수시로 반복하는 ‘왕별 놀이’가 계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전한 그룹과 위태로운 그룹 이 같은 김정은 체제의 통치 방식을 알면 향후 숙청에서 가장 안전한 그룹과 위태로운 그룹도 예상할 수 있다. 가장 안전한 그룹은 황병서를 중심으로 한 노동당 조직지도부 그룹이다. 조직지도부는 수십 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끈끈하게 의리로 다져온 북한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다. 이 그룹에선 아직 숙청된 인물이 한 명도 없다. 다음으로 비교적 안전한 그룹은 최룡해 최태복 등 오랜 가신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북한 내 인지도는 상당히 높지만 김정은을 위협할 만한 세력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치안을 맡는 일반 경찰)은 숙청과 사회 기강 유지를 위해 매우 필요한 조직이다. 더구나 군부가 흔들리는 와중에 국가안전보위부까지 등을 돌리면 체제는 한층 위험해진다. 현재 김원홍 보위부장은 계속 숙청 예상 인물로 지목되고 있지만 김정은이 군부를 틀어쥘 때까지는 필요한 인물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군부는 김정은이 핵심 심복을 찾았다고 판단될 때까지 계속 숙청의 칼날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황이라면 전쟁이 날 경우 김정은을 위해 목숨 걸 군인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정은에게 필요한 군은 ‘체제를 향해 총구를 쏘지 않을 군’이지 전쟁에서 이길 군이 아니다. 그러나 국지도발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울 가능성이 높다. 패할 경우 숙청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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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의 숙청 칼날에 숨겨진 북한 통치의 룰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으로 김정은의 ‘공포 통치’가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정원은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처형된 주요 간부들이 70명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3년 반 동안 행해진 김정은 숙청사를 돌아보면 여기에도 교묘한 규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현영철 처형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식 통치방식을 한층 더 선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정은의 숙청사’를 들여다보면 현 체제에서 안전한 그룹과 미래에 위태로운 그룹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예상 가능하다. ●김정은은 왜 軍 인사들을 숙청하나 북한 독재 체제를 지탱하는 3대 핵심 축은 노동당, 군, 국가안전보위부(비밀경찰)이다.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해 김정은 시대까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굳건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적잖은 변화들이 감지된다. 세 축 간의 역학관계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대에서 약간씩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일성 시대에는 노동당 군 보위부 순으로 권력이 배분됐으나 김정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군이 정점에 서게 된다. 김정일이 1990년대 중반이후 경제 파탄으로 민심이 흔들리자 “권력은 총에서 나온다”며 ‘선군 정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당시 군은 북한에서 가장 우대받는 조직이 되었고 다음으로 국가안전보위부, 노동당 순이었다. 김정은 시대에는 다시 노동당이 약진했다. 노동당 내 인사권을 틀어 쥔 조직지도부가 김정은이 후계자이던 시절부터 꾸준히 그에게 충성을 바쳐 신임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에따라 노동당 내 권력구조도 달라졌다. 김정일 시대에는 장성택이 장악했던 행정부가 중심이었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조직지도부가 권력의 핵심이 됐다. 주지하다시피 장성택은 막대한 세력과 재력을 움켜쥐고 있다가 김정은 장기집권에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혀 2013년 12월 비참하게 처형됐다. 김정은 시대에 위상이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군부였다. 지난 3년 반 동안 처형된 사람들도 주로 군부 인사들이 많다. #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에서 군의 중요성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군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숙청의 칼날을 받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떻든 지금 북한에서 군 인사들이 표적이 되는 이유는 김정은이 준비된 지도자가 아닌 상태에서 통수권자가 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권력 기반을 다져온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는 한번 인민무력부장이 되면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자신들이 가장 믿는 사람을 군부 수뇌로 앉혀 ‘총구의 배반’을 막았다. 그러나 김정은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황병서, 최룡해와 같은 인물을 등용해 총정치국장을 맡겨 군부를 장악하려 하고 있지만, 민간 출신인 이들은 군 조직 장악에 한계가 있다. 결국 김정은의 군부 통치 전략은 “믿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어떤 한 사람이나 집단이 세력화될 시간을 주지 않으며, 숙청같은 공포심을 조장해 반역 움직임을 차단한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최근 군부 인물에 대한 숙청과 계급강등과 복권을 수시로 반복하는 ‘왕별 놀이’가 계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전한 그룹과 위태로운 그룹 이같은 김정은 체제의 통치 방식을 알게 되면 향후 숙청에서 가장 안전한 그룹과 위태로운 그룹도 예상할 수 있다. 가장 안전한 그룹은 황병서를 중심으로 한 노동당 조직지도부 그룹이다. 조직지도부는 수십 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끈끈하게 의리로 다져온 북한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다. 이 그룹에선 아직 숙청된 인물이 한 명도 없다. 다음으로 비교적 안전한 그룹은 최룡해, 최태복 등 오랜 가신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북한 내 인지도는 상당히 높지만, 김정은을 위협할만한 세력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치안을 맡는 일반 경찰)은 숙청과 사회 기강 유지를 위해 매우 필요한 조직이다. 더구나 군부가 흔들리는 와중에 국가안전보위부까지 등을 돌리면 체제는 한층 위험해진다. 현재 김원홍 보위부장은 계속 숙청 예상 인물로 지목되고 있지만, 김정은이 군부를 틀어쥘 때까진 아직은 필요한 인물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군부는 김정은이 핵심 심복을 찾았다고 판단될 때까지 계속 숙청의 칼날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황이라면 전쟁이 날 경우 김정은을 위해 목숨 걸 군인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정은에게 필요한 군은 ‘체제를 향해 총구를 쏘지 않을 군’이지 전쟁에서 이길 군이 아니다. 그러나 국지도발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울 가능성이 높다. 패할 경우 숙청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편 노동당 다른 부서의 경우 언제든 숙청돼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이들은 체제 유지의 핵심 축이 아니기 때문에 각종 실패의 책임을 전가해 처형되어도 김정은 체제를 절대 위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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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단속 공 세워 변방서 벼락출세, 軍 통솔은 미숙… 수차례 강등-복권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불경·불충죄로 잔혹하게 처형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을 넘겨받는 과도기에 큰 공을 세워 승승장구했던 인물이었다. 2008년 8월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이 본격적으로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기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개월여가 지난 그해 10월경이었다.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바로 다음 달인 2008년 11월 아버지로부터 군 지휘권을 넘겨받았고, 이듬해 3월까지 순차적으로 보위부와 정찰총국을 장악하게 된다. 김정은은 군 지휘권을 넘겨받으면서 제일 먼저 아버지에게 “조국을 배신해 달아나는 자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내건 첫 번째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당시만 해도 2006년 2000명을 넘어선 한국 입국 탈북자가 매년 수백 명씩 늘어날 때였다. 현영철은 당시 백두산에서 신의주까지 국경 경비를 관장하는 8군단장이었다. 김정은과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김정은의 명을 받은 현영철은 국경경비대원들에게 “탈북자들을 신고하면 그들이 여러분에게 갖다 바친 뇌물들은 절대 빼앗지 않겠다. 오로지 탈북자들만 잡아오라. 노동당 입당과 승진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엄청난 효과를 냈다. 군인들이 뇌물을 받은 뒤 탈북자를 신고하는 사례가 급증하자 돈이 있어도 탈북이 불가능해진 상황이 만들어졌다. 국경경비대와 탈북자 사이에 신뢰가 끊기자 2009년 2914명이던 탈북자 수는 2010년 2401명으로 줄었고 지난해엔 1396명으로 크게 줄었다. 이 공로로 현영철은 김정은의 눈에 들어 1선 군단장 출신이 아님에도 2010년 9월 인민군 대장 겸 당 중앙위원에 임명됐다. 김정은은 2012년 7월 군부 1인자였던 이영호 군 총참모장이 숙청되자 그를 후임 총참모장으로 임명했다. 현영철의 계급도 차수로 올랐다. 이때가 그의 전성기였다. 현영철은 벼락출세로 총참모장에 올랐지만 군 통솔을 김정은의 뜻대로 잘하진 못했다.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군부 수중에 있던 엄청난 규모의 외화벌이 권한을 자기 수중에 넣으려 했다. 군부는 당연히 이에 반발했고 이런 기득권의 충돌이 이영호의 숙청까지 이어졌다. 총참모장에 오른 현영철은 김정은과 장성택의 뜻에 따라 군부의 돈줄을 순순히 넘겨주고 반발도 다독여야 했지만 수하에 내로라하는 군 선배들이 즐비한 현실에서 그로서는 힘에 부친 과제였다. 마침내 2012년 가을 김정은은 군인들의 영양상태가 안 좋다는 이유로 현영철을 현지 해안포 중대 중대장으로 한 달 동안 있게 하고 계급도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시켰다. 이듬해 5월에는 전방 군인 3명이 잇따라 귀순하자 그 책임을 지고 전방 5군단장으로 좌천됐고, 계급도 다시 상장으로 강등됐다. 그리고 지난해 6월 다시 인민무력부장이라는 대장 자리로 복권한 것이다. 파란만장 부침이 심했던 그가 바야흐로 중심 권력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번 숙청으로 마지막이 됐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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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지시로 SLBM 10년째 개발”

    북한이 8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직접 참관한 가운데 동해상에서 발사 시험을 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2006년경 김정일 국방위원장(사진)의 지시로 개발이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국방과학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탈북한 김준익(가명) 씨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SLBM 개발은 김정은의 단독 작품이 아니라 김정일의 유훈”이라며 “옛 소련 출신 미사일 과학자 20∼30명이 북한에 머물며 미사일 개발의 핵심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美 본토 타격 투 트랙 전략 김 씨에 따르면 김정일은 2006년경 국방연구를 담당한 제2자연과학원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두 종류의 미사일 개발을 빠른 시일 내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되, ICBM이 요격될 가능성에 대비해 잠수함으로 미 본토에 접근해 발사할 수 있는 SLBM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북한 미사일 요격을 위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검토하고 있으나 북한이 향후 SLBM을 실전 배치할 경우 완벽한 요격은 어려워지게 된다. 결국 김정일의 ‘두 종류 미사일 개발’ 지시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망 강화를 염두에 둔 투 트랙 공격 전략인 셈이다. 북한은 이후 2009년 4월과 2012년 4월 장거리 로켓으로 광명성 2호와 3호를 잇달아 발사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2012년 12월에 광명성 3호 2호기를 목표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북한은 매번 인공위성 발사라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ICBM 개발을 위한 시도로 평가했다. ICBM 개발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북한은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SLBM 개발에 매진한 것으로 관측된다. 한미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 성공(2012년 12월) 이듬해인 2013년 함경남도 신포에 지상 미사일 수직발사 시험시설을 설치했다. 북한은 이후 모의탄 해상 수직발사 사출시험(2014년)과 모의탄 수중 사출시험(2015년)에 이어 이달 8일 모의탄 수중 잠수함 사출시험까지 실시하며 SLBM 개발에 한층 더 다가갔다.○ “미사일 개발 주역은 옛 소련 과학자들” 김 씨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옛 소련 과학자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다”며 “옛 소련 과학자 20∼30명이 평양시 만경대구역 축전동 광복거리의 아파트에 가족과 함께 거주하면서 북한 미사일 개발의 중추로 활동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엔진과 동체, 연료, 송수신, 탄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어 이들이 북한의 미사일 기술 향상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북한의 SLBM 개발 속도는 한미 정보당국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어 이 증언이 사실인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옛 소련 과학자들은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사회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북한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북한의 166(로켓공학)·628(로켓엔진)연구소에 소속돼 비행거리 향상과 요격미사일 회피 기술 발전 등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사일 잠수함 건조 중 김 씨는 또 북한은 최근 함남 신포에 위치한 ‘봉대보일러공장’에서 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약 3000t급 잠수함을 건조 중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군수공장에 보일러공장, 트랙터공장 등의 위장명을 사용한다. 그는 “봉대보일러공장은 북한의 유일한 잠수함 건조 기지이며, 지붕을 모두 덮어 군사위성으로 잠수함 건조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봉대보일러공장이 있는 신포 앞바다 마양도에는 북한 동해함대사령부와 잠수함 기지가 있다. 또 남포 와우도에는 서해함대 잠수함 수리를 맡은 군수공장도 위치해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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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네스북 오른 중국 단체 관광객 6400여 명, 뭘 했기에…

    중국 단체 관광객 6400여 명이 8일 프랑스 관광도시 니스에서 기네스 신기록을 세웠다. 이들은 이날 니스 해안도로에 늘어서서 ‘코트다쥐르에서 꾸는 텐사의 꿈은 훌륭하다(Tiens’ dream is Nice in the Cote d‘Azur)’라는 문장을 써 보였다. 이 문장은 반점까지 포함하면 30자를 넘어 사람이 만든 가장 긴 문구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코트다쥐르는 니스가 위치한 지방의 이름이다. 니스에서 기네스 신기록을 세운 이들은 모두 중국 텐사그룹 소속 직원들이다. 생명공학에서부터 여행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을 거느린 텐사그룹은 회사 창립 20주년을 맞아 전체 직원 1만2000명 중 절반이 넘는 6400여 명을 단체로 5일부터 8일까지 프랑스에 관광을 보냈다. 전세기가 84대나 동원됐고 방문지인 칸과 모나코에는 4성급, 5성급 호텔 79곳의 객실 7900개가 이들 이름으로 예약됐다. 이들이 한 번 움직일 때면 버스 146대가 동원됐다. 이중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기념일인 8일 니스 해안에 모여 전승 기념행사를 치른 뒤 만든 인간 글씨 새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리진위안(李金元·57) 톈사그룹 회장은 마치 개선장군마냥 2차 대전에서 사용했음직한 미국제 구형 군용 지프차를 타고 대열을 지어 서 있는 직원들 앞을 사열했다. 텐사그룹이 프랑스에서 대규모 행사를 치르기 위해 쓴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현지 업계는 이들이 파리에서 머무르며 루브르박물관, 에펠탑 등을 돌아보는데 1300만 유로(약 160억 원), 니스에서 2000만 유로(약 245억 원)를 지출해 합계 3300만 유로(약 405억 원)를 썼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 1명이 보통 1500유로(약 184만)를 쓴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쇼핑에 쓴 돈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텐사그룹의 통 큰 씀씀이에 프랑스 정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프랑스 외무장관이 6일 텐사그룹 임원들을 초대해 환영할 정도로 귀빈 대우를 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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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대전 승전기념일, 서방은 5월 8일인데 러는 왜 9일?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을 5월 9일로 정하고 있다. 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은 8일이다. 이유가 뭘까. 1945년 5월 7일 알프레트 요들 독일군 작전참모장은 프랑스 랭스 연합군사령부에서 “5월 8일 오후 11시부터 모든 군사행동을 중단한다”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역할은 소련군이 했고, 나치의 심장부는 베를린이기 때문에 항복 문서는 베를린에 있는 소련군사령부에서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박할 이유가 궁색한 연합군은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8일 오후 10시 43분 베를린 근교 소련군사령부에서 빌헬름 카이텔 독일군 총사령관이 게오르기 주코프 소련군 총사령관 앞에서 항복문서에 다시 서명했다. 이 시간이 모스크바 시간으론 9일 0시 43분이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도 전승 기념행사를 서방은 8일에, 러시아와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9일에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듯 러시아는 연합군의 2차 대전 승리의 주역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인들은 1812년 나폴레옹을 몰아낸 전쟁을 ‘조국전쟁’, 2차 대전을 ‘대(大)조국전쟁’이라고 부른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세계를 두 번씩이나 구해냈다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도 2차 대전에서 소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2차 대전 내내 소련은 독일군 병력의 60∼80%와 홀로 상대해 싸웠다. 러시아인들은 2차 대전의 전세를 바꾼 계기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아닌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쿠르스크 격전이라고 여긴다. 1942년 7월부터 6개월간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은 포로 9만1000명을 포함한 85만 명의 병력을 잃으면서 파죽지세가 꺾였다. 이 승리를 위해 소련군은 무려 113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1943년 7월 쿠르스크 격전에선 130만 명의 소련군이 80만 명의 독일군을 물리치고 전세를 뒤집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미영 연합군은 서부전선에서 독일군 56만 명과 싸웠을 뿐이지만, 소련군은 동부전선에서 홀로 450만 명의 독일군과 싸웠다. 소련군은 장비가 열세인 조건에서 싸우다 보니 희생이 컸다. 2차 대전에서 소련 측은 군인 1000만 명 이상을 포함해 최대 2700만 명이 희생됐다. 당시 소련 인구의 12%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 국토의 3분의 1이 잿더미로 변했다. 세계 제패를 꿈꾸던 최강 나치 독일군을 전 국민이 애국심으로 단결해 물리치고 세계도 구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러시아는 아무리 경제 사정이 어려워도 매년 승전 기념일 행사만큼은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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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 조기 붕괴론, 현실성 있나

    독재자로서 김정은은 몇 점짜리일까. 이 질문은 김정은이 훌륭한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이는 수백만 명이 굶어죽더라도 눈 깜짝하지 않고 독재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또 북한 독재체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세상에는 악당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끄떡없이 장기 집권을 유지하는 독재자가 많다. 52년간 집권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내전 속에서도 44년간의 세습 독재를 유지하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38년 집권으로도 모자라 94세에 재출마를 하겠다고 선포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이런 사례 중 으뜸은 바로 70년 동안 3대 세습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이다. 장기 집권 독재자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아랍의 봄, 북한의 세습 등을 정확히 예측해 ‘정치학계의 노스트라다무스’란 말을 듣는 뉴욕대의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석좌교수와 알라스테어 스미스 교수가 몇 년 전 그 답을 내놓았다. 이들은 사상 최악의 독재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통치의 원칙들을 도출해 2012년 ‘독재자의 핸드북’이란 저서를 내놓았다. 불행한 사실이지만, 북한 김씨 독재 일가는 이들이 도출한 장기 독재자의 ‘통치 교본’에 가장 적합하게 들어맞는 사례다. 어쩌면 70년간 축적된 김씨 가문의 ‘통치 바이블’은 미국 교수들의 연구보다 훨씬 정교하고 구체적일지 모른다. 김정은이 3대 세습 독재자로 등극한 지도 벌써 3년 반째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때 김정은은 장기 독재 교본에 근거해 점수를 준다면 ‘수(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독재 체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나오고 있는 “김정은 정권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예측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결론이다. 김정은 조기 붕괴론을 예상하는 사람들에겐 근거가 많다. “북한 경제는 더는 소생이 불가능하다”,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해 수많은 고위층을 처형하는 공포통치로 민심 이반이 커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까지….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이런 것들은 장기 독재에 거의 위협이 되지 못한다. 현실은 가난한 나라일수록, 악당일수록 독재자가 더 오래 집권하는 경향이 있다. 시리아처럼 내전으로 20만 명 넘게 사망해도 독재자는 끄떡없다.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장성택 처형을 놓고 보자. 독재자의 교본에 따르면 장성택은 어느 독재 국가에서 2인자로 있었든 처형됐을 것이다. 카스트로는 1959년 혁명 이후 자기가 임명했던 장관 21명 중 16명을 2년 만에 숙청했다. 그는 혁명 동지이자 2인자였던 체 게바라도 남미로 보낸 뒤 지원을 중단해 죽게 만들었다. 사담 후세인은 1979년 권력을 잡자마자 ‘혁명위원회 의장’을 포함해 동지 450여 명을 약식 처형했다. 히틀러, 스탈린, 무가베 등 무수한 독재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장기 집권을 노리는 독재자는 잠재적 도전자로 간주되면 혈육이라도 확실히 죽인다. 살려 두면 언제든지 화근이 되기 때문이다. 장성택의 죽음은 잠재적 도전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확실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자금의 흐름을 통제하지 못하는 독재자는 반드시 권력을 잃는다. 장성택은 국가 무역을 독점해 북한 외화 통제권의 절반 이상을 틀어쥐고 있었고 내놓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김정은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다. 독재 교본에 따르면 김정은은 노동당과 보위부, 군, 평양 시민 정도에게만 돈을 많이 풀어 충성을 이끌어 내면 오래 버틸 수 있다. 핵심 소수만 확실히 틀어쥐면 대다수 주민의 불만이 아무리 커도, 심지어 봉기가 발생해도 독재 체제는 끄떡없다. 김일성이 평양을 끔찍이 챙긴 것도, 김정일이 위기가 닥쳐오자 군부에 돈줄을 나눠 주며 ‘선군정치’를 한 것도, 김정은이 장성택의 유산을 당 조직지도부와 보위부가 나눠 뜯어먹게 놔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김정은이 숙청을 밥 먹듯 하는 것도 대신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 충성을 이끌어 내는, 최악의 독재자들의 대표적 수법이다. 장기 독재에 필요한 행위를 적시에 정확히 할 줄 안다면 경험과 나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김정은은 무수한 과거 독재자들의 선례를 잘 따랐다. 장기 독재에 필요한 많은 것을 움켜쥐는 데도 성공했다. 이제는 김정은 체제를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비로소 보인다. 역사의 무수한 피의 교훈이 북한에서만 예외일 것이란 희망은 버려야 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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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비극의 숫자 어디서 멈출지…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에 있는 랑탕 마을에서 네팔 대지진 여파로 숨진 사람 51명이 새로 발견됐다. 이들 중 6명이 히말라야 등반에 나섰던 외국인으로 밝혀졌다. BBC 등 외신은 “랑탕 마을 호텔과 민박집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자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네팔에서 여행 중이던 유럽인 1000명의 생사가 아직 확인되지 않아 외국인 사망자가 더 나올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적의 생환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2일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0km 떨어진 한 산간마을에서 101세 남성 노인이 무너진 집 잔해 속에 파묻혀 있다가 지진 발생 7일 만에 구조됐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 노인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3일에도 무너진 가옥과 산사태 흙 속에 파묻혀 있던 여성 2명과 남성 1명이 추가로 구조됐다. 현재 네팔에서는 세계 20여 개국에서 파견된 다국적 구조팀이 피해자를 찾아내는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네팔 내무부는 지난달 25일 대지진으로 2일 현재 사망자 7056명, 부상자 1만4123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에는 외국인 54명, 네팔군 장병 9명과 경찰 4명이 포함됐다고 당국은 설명했다. 네팔 정부는 자국민 사망자 1인당 장례비 400달러를 포함해 모두 1400달러를 유족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도로가 복구되지 않아 접근이 힘든 산간지역의 사망자는 집계되지 않아 전체 사망자가 1만5000명을 넘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유엔 추산 결과 대지진의 직접 피해를 본 주민은 네팔 전체 인구 2780만 명의 4분의 1 이상인 810만여 명으로 나타났다. 네팔 정부가 이재민 구호를 비롯한 사태 수습에 우왕좌왕하고 있어 현지인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각국에서 도착한 수백 t의 구호품이 까다로운 통관 절차와 인력 부족 때문에 카트만두 공항과 인도 국경에 묶여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특히 많은 트럭 운전사들이 지진 피해를 본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돕고 있어 공항에는 운송 수단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나마 세관을 거친 일부 물품은 불필요하다며 반송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네팔 정부는 참치나 마요네즈 같은 불필요한 물품들을 받았다면서 세관 당국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물품을 검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네팔에 2일 긴급 파병된 미군 해병대 100여 명과 군용기 6대, 헬기 2대 등 군사 장비들도 까다로운 통과 절차 때문에 예정보다 하루 더 공항에 묶여 있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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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볼티모어 한인가게 20곳 약탈당해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한인들이 다쳤다고 알려지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또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은 29일과 30일 경기를 관중 없이 치르기로 결정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무(無)관중 경기가 열리는 것은 145년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28일(현지 시간) 오후 10시 볼티모어 시는 야간 통행 금지령을 내렸지만 흑인 청년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 수백 명이 빈 병과 벽돌을 진압 경찰에게 던지며 이틀째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연막탄과 최루탄을 쏘자 1, 2시간 뒤 대다수가 뿔뿔이 흩어졌다. 이틀째 시위에선 첫날처럼 무차별적인 상가 약탈과 차량 방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메릴랜드 주 당국이 급히 투입한 3000명의 경찰과 주 방위군은 주요 거리를 통제했다. 경찰은 전날 밤 소요사태로 건물 15채와 차량 150여 대가 불탔고, 많은 상가가 약탈당했다고 밝혔다. 약탈된 상가에는 한인들이 운영하는 세탁소와 주류 판매점 등도 20여 곳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주재 한국총영사관 측은 “한인들이 가게를 지키다 부상당했다고 알려져 피해를 집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28일 오전 현재 방화와 약탈 혐의로 250여 명을 체포했다. 미국 경찰당국은 약탈범과 방화범 대다수가 10대 흑인 청소년들이어서 강경 진압을 자제하고 있다.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부모도 늘고 있다. 한 흑인 어머니가 복면을 하고 시위대에 참가한 16세 아들을 끌어내 집으로 돌려보내는 동영상은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 앤서니 배츠 볼티모어 시 경찰국장도 이 영상을 언급하며 “자기 아이를 저렇게 책임질 줄 아는 부모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흑인 여성인 캐서린 퓨 메릴랜드 주 상원의원도 시위대를 한 명씩 안아주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한편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안전상의 문제로 볼티모어 오리올파크에서 예정됐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27일과 28일 경기를 모두 취소했다. 또 29일과 30일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른다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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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볼티모어 대규모 흑인 폭동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동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서 27일 흑인 폭동이 일어나 약탈과 방화, 폭력 사태로 번졌다. 이날 폭동은 볼티모어에서 경찰 구금 중 사망한 흑인 프레디 그레이(25)의 장례식이 끝난 뒤 시위대가 거리에 쏟아져 나오면서 시작됐다. 시위대는 경찰 폭력에 항의하면서 ‘사법정의’를 외치고 진압 경찰에게 돌멩이와 벽돌을 던지는 등 격렬히 저항했다. 거리가 어두워지자 시위는 인근 건물에 대한 방화와 약탈로 이어졌다. 일부 시위대는 상점과 현금인출기 등을 약탈했고 경찰차를 부쉈다. 진압 과정에서 경찰 15명도 돌에 맞아 부상했고, 이 중 1명은 혼수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폭동으로 200명 가까이가 체포되고 건물 15채와 차량 144대가 불탔다고 볼티모어 시당국은 밝혔다. 볼티모어 폭동은 지난해 8월 미주리 주의 소도시 퍼거슨에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당시 18세)이 백인 경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대규모 폭동이 일어난 이후 미국 내 가장 큰 폭력사태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이날 오후 8시 30분부터 시내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경찰 1000여 명과 주 방위군 1500명을 폭동 현장에 보냈다. 이날부터 1주일간 야간통행금지령과 휴교령이 발령됐다. 또 미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홈경기가 취소되고 지하철역도 폐쇄됐다. 볼티모어에는 한인이 2000여 명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주재 한국영사관 측은 27일 “한인가게 10여 곳이 방화와 약탈의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지만 소요사태가 난 직후인 오후 2시 모두 집으로 철수해 인명 피해는 피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날 볼티모어 시 한 침례교회에서는 그레이의 장례식이 열렸다. 볼티모어 시내에서 경찰에게 붙잡힌 그레이는 체포 과정에서 척추 등을 심하게 다쳤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고, 체포 1주일 만인 이달 19일 병원에서 숨졌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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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립된 산악인 100여명 ‘해발 6000m의 사투’

    네팔 지진 여파로 일어난 눈사태로 에베레스트에 고립된 세계 각국의 등반가들이 해발 60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극한의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베이스캠프에서 확인된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60여 명으로 알려졌다. 중국 신화통신은 27일 오후 에베레스트에 20개국 이상의 등반객 400여 명이 고립돼 있다고 전했다. 구조 활동에 헬기 3대가 동원됐지만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의 특성상 한 번에 부상자 2명밖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구조가 베이스캠프에 집중돼 그 위쪽에 있는 ‘캠프1’과 ‘캠프4’ 사이에 등반가 100명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빠진 것. 보통 사람들은 산소 부족으로 잠시도 머물기 어려운 위치이다. 구조 헬기 착륙도 불가능하다. 추위와 강풍이 휩쓰는 가운데 등반용으로 메고 떠났던 산소와 음식도 바닥나고 있다. 하산하려 해도 베이스캠프와 캠프1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 빙하가 완전히 막혀 버렸다. 밧줄 등 중요 장비를 두고 떠났기 때문에 새로 길을 내기도 어렵다. 게다가 최초의 지진 이후 여진도 3차례 추가로 발생하면서 눈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캠프1에 머물고 있다는 미국인 등반가 대니얼 마주르 씨(55)는 26일 트위터에 ‘세 방향에서 눈사태가 쏟아져 내려왔다. 이곳은 작은 섬이 됐다. 아래쪽 팀원들은 살아 있나?’라는 글을 남겼다. 눈사태가 베이스캠프를 덮치는 순간의 생생한 화면도 26일 공개됐다. 독일 산악인 요스트 코부슈 씨가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는 수십 m 높이의 눈사태가 파도처럼 베이스캠프를 휩쓰는 모습이 담겨 있다. 눈사태는 “땅이 흔들린다”는 코부슈 씨의 고함 이후 17초 만에 베이스캠프를 덮쳤다. 코부슈 씨와 동료는 눈사태 직후 황급히 텐트 안으로 도망쳤고 곧바로 ‘콰과광’ 하는 굉음과 함께 텐트가 무너져 내렸다. 싱가포르 출신의 산악인 조지 포울샴 씨도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50층 건물 높이의 눈 더미를 피해 달렸지만 곧 쓰러졌고, 일어나려 했지만 또 쓰러졌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죽는구나 생각했다.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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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인도판-유라시아판 충돌 지점… 학자 50명 1주일전 현지서 대책회의

    25일 발생한 네팔 대지진은 예고된 재앙이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진 전문가들은 2010년 2월 3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아이티 대지진 참사 직후 다음 차례는 네팔이며 지진 규모는 8.0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트만두에서는 불과 일주일 전에도 지진학자 50여 명이 모여 닥쳐올 지진 피해를 줄일 방법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기도 했다. 네팔이 대지진 유력 지역으로 떠올랐던 것은 두 거대한 지각판인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부딪치는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네팔이 에베레스트 산 등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나라이지만, 2500만 년 전 인도판이 유리시아판과 충돌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바닷속에 있었다. 인도판이 계속 유라시아판을 밀어 올리면서 융기하기 시작했고 그 충돌 에너지가 수십 년을 주기로 계속 지진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네팔은 1934년에도 규모 8.1의 지진이 남동부를 강타해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988년에도 같은 지역에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해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255년에도 대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국왕까지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전문가들은 다음번 대지진 유력 지역으로 터키의 이스탄불을 꼽고 있다. 1999년 이스탄불 동쪽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해 1만7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한편 유라시아판 내부에 있어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우리나라에서도 지진 발생 빈도가 잦아져 주목된다. 26일 기상청 지진화산감시과는 “관측을 시작한 1978년부터 1998년까지는 연평균 19.2회의 지진이 관측됐으나 이후 1999∼2014년에는 2배 이상 많은 47.7회의 지진이 있었다”고 밝혔다. 관측 이래 한반도(북한 지역 제외)에선 규모 4.9 이상의 지진이 9차례 관측됐는데, 이 중 6번이 2000년 이후에 몰려 있다. 지난해 4월 1일 충남 태안군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km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5.1의 강진은 관측 이래 3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이다. 전문가들은 국지적 지진 발생 빈도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 한반도에도 지진에 취약한 활성단층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주성하 zsh75@donga.com·이종석 기자}

    • 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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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고된 재앙’ 네팔 대지진, 다음 대지진 유력 지역은?

    25일 발생한 네팔 대지진은 예고된 재앙이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진 전문가들은 2010년 2월 3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아이티 대지진 참사 직후 다음 차례는 네팔이며 지진 규모는 8.0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이번 지진 규모 7.9에 거의 근접한 전망이다. 카트만두에서는 불과 일주일 전에도 지진학자 50여 명이 모여 닥쳐올 지진 피해를 줄일 방법을 논의하는 회의가 열리기도 했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지진학자인 제임스 잭슨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이번 지진이 발생한 직후 “악몽이 현실화 됐다”고 말했다. 네팔이 대지진 유력 지역으로 떠올랐던 것은 두 거대한 지각판인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부딪치는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네팔이 에베레스트산 등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나라이지만, 2500만 년 전 인도판이 유리시아판과 충돌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바다 속에 있었다. 인도판이 계속 유라시아판을 밀어 올리면서 융기하기 시작했고 그 충돌 에너지가 수십 년을 주기로 계속 지진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네팔은 1934년에도 규모 8.1의 지진이 네팔 남동부를 강타해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988년에도 같은 지역에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해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255년에도 대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국왕까지 죽었다는 기록도 있다. 전문가들은 다음번 대지진 유력 지역으로 터키의 이스탄불을 꼽고 있다. 1999년 이스탄불 동쪽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해 1만7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터키 정부는 건축규정을 강화해 다가올 지진에 대비하고 있다. 한편 유라시아판 내부에 있어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우리나라에서도 지진 발생 빈도가 잦아져 주목된다. 26일 기상청 지진화산감시과는 “관측을 시작한 1978년부터 1998년까지는 연평균 19.2회의 지진이 관측됐으나 이후 1999~2014년에는 2배 이상 많은 47.7회의 지진이 있었다”고 밝혔다. 관측 이래 한반도(북한 지역 제외)에선 규모 4.9 이상의 지진이 그동안 9차례 관측됐는데, 이 중 6번이 2000년 이후에 몰려 있다. 지난해 4월 1일 충남 태안군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km 해역에서 방생한 규모 5.1의 강진은 관측 이래 3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이다. 전문가들은 국지적 지진 발생 빈도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 한반도에도 지진에 취약한 활성단층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이종석기자 wing@donga.com·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 201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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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쿠바 화해 이끈 교황, 9월 양국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9월로 예정된 미국 방문 길에 쿠바를 먼저 들른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22일 성명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 주교들과 민간단체들의 초청을 받고 섬나라 쿠바를 찾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 후 교황은 미국 워싱턴, 뉴욕, 필라델피아를 방문한다. 교황의 이번 방문은 미국과 쿠바 사이에 국교 정상화 등 급격한 해빙 무드가 조성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으로 관심을 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에서 미국의 대(對)쿠바 금수조치 해제를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외교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교황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수년간 노력해 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난항에 빠진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주었고, 양국 간 비밀협상 장소를 주선하기도 했다. 교황의 쿠바 방문은 1998년 1월 요한 바오로 2세, 2012년 3월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쿠바를 다녀간 교황들은 현지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미국의 쿠바 경제 봉쇄 정책과 쿠바의 낙태 합법화, 인권 문제 및 정치범 억압 등을 함께 지적해 왔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가 쿠바를 다녀간 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가톨릭 정교회가 쿠바 관영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성탄절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성탄절도 공식 휴일로 지정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2005년 선종하자 카스트로 전 의장은 쿠바에 사흘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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