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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로서 김정은은 몇 점짜리일까. 이 질문은 김정은이 훌륭한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이는 수백만 명이 굶어죽더라도 눈 깜짝하지 않고 독재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또 북한 독재체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세상에는 악당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끄떡없이 장기 집권을 유지하는 독재자가 많다. 52년간 집권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내전 속에서도 44년간의 세습 독재를 유지하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38년 집권으로도 모자라 94세에 재출마를 하겠다고 선포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이런 사례 중 으뜸은 바로 70년 동안 3대 세습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이다. 장기 집권 독재자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아랍의 봄, 북한의 세습 등을 정확히 예측해 ‘정치학계의 노스트라다무스’란 말을 듣는 뉴욕대의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석좌교수와 알라스테어 스미스 교수가 몇 년 전 그 답을 내놓았다. 이들은 사상 최악의 독재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통치의 원칙들을 도출해 2012년 ‘독재자의 핸드북’이란 저서를 내놓았다. 불행한 사실이지만, 북한 김씨 독재 일가는 이들이 도출한 장기 독재자의 ‘통치 교본’에 가장 적합하게 들어맞는 사례다. 어쩌면 70년간 축적된 김씨 가문의 ‘통치 바이블’은 미국 교수들의 연구보다 훨씬 정교하고 구체적일지 모른다. 김정은이 3대 세습 독재자로 등극한 지도 벌써 3년 반째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때 김정은은 장기 독재 교본에 근거해 점수를 준다면 ‘수(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독재 체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나오고 있는 “김정은 정권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예측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결론이다. 김정은 조기 붕괴론을 예상하는 사람들에겐 근거가 많다. “북한 경제는 더는 소생이 불가능하다”,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해 수많은 고위층을 처형하는 공포통치로 민심 이반이 커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까지….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이런 것들은 장기 독재에 거의 위협이 되지 못한다. 현실은 가난한 나라일수록, 악당일수록 독재자가 더 오래 집권하는 경향이 있다. 시리아처럼 내전으로 20만 명 넘게 사망해도 독재자는 끄떡없다.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장성택 처형을 놓고 보자. 독재자의 교본에 따르면 장성택은 어느 독재 국가에서 2인자로 있었든 처형됐을 것이다. 카스트로는 1959년 혁명 이후 자기가 임명했던 장관 21명 중 16명을 2년 만에 숙청했다. 그는 혁명 동지이자 2인자였던 체 게바라도 남미로 보낸 뒤 지원을 중단해 죽게 만들었다. 사담 후세인은 1979년 권력을 잡자마자 ‘혁명위원회 의장’을 포함해 동지 450여 명을 약식 처형했다. 히틀러, 스탈린, 무가베 등 무수한 독재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장기 집권을 노리는 독재자는 잠재적 도전자로 간주되면 혈육이라도 확실히 죽인다. 살려 두면 언제든지 화근이 되기 때문이다. 장성택의 죽음은 잠재적 도전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확실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자금의 흐름을 통제하지 못하는 독재자는 반드시 권력을 잃는다. 장성택은 국가 무역을 독점해 북한 외화 통제권의 절반 이상을 틀어쥐고 있었고 내놓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김정은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다. 독재 교본에 따르면 김정은은 노동당과 보위부, 군, 평양 시민 정도에게만 돈을 많이 풀어 충성을 이끌어 내면 오래 버틸 수 있다. 핵심 소수만 확실히 틀어쥐면 대다수 주민의 불만이 아무리 커도, 심지어 봉기가 발생해도 독재 체제는 끄떡없다. 김일성이 평양을 끔찍이 챙긴 것도, 김정일이 위기가 닥쳐오자 군부에 돈줄을 나눠 주며 ‘선군정치’를 한 것도, 김정은이 장성택의 유산을 당 조직지도부와 보위부가 나눠 뜯어먹게 놔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김정은이 숙청을 밥 먹듯 하는 것도 대신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 충성을 이끌어 내는, 최악의 독재자들의 대표적 수법이다. 장기 독재에 필요한 행위를 적시에 정확히 할 줄 안다면 경험과 나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김정은은 무수한 과거 독재자들의 선례를 잘 따랐다. 장기 독재에 필요한 많은 것을 움켜쥐는 데도 성공했다. 이제는 김정은 체제를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비로소 보인다. 역사의 무수한 피의 교훈이 북한에서만 예외일 것이란 희망은 버려야 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에 있는 랑탕 마을에서 네팔 대지진 여파로 숨진 사람 51명이 새로 발견됐다. 이들 중 6명이 히말라야 등반에 나섰던 외국인으로 밝혀졌다. BBC 등 외신은 “랑탕 마을 호텔과 민박집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자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네팔에서 여행 중이던 유럽인 1000명의 생사가 아직 확인되지 않아 외국인 사망자가 더 나올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적의 생환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2일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0km 떨어진 한 산간마을에서 101세 남성 노인이 무너진 집 잔해 속에 파묻혀 있다가 지진 발생 7일 만에 구조됐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 노인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3일에도 무너진 가옥과 산사태 흙 속에 파묻혀 있던 여성 2명과 남성 1명이 추가로 구조됐다. 현재 네팔에서는 세계 20여 개국에서 파견된 다국적 구조팀이 피해자를 찾아내는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네팔 내무부는 지난달 25일 대지진으로 2일 현재 사망자 7056명, 부상자 1만4123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에는 외국인 54명, 네팔군 장병 9명과 경찰 4명이 포함됐다고 당국은 설명했다. 네팔 정부는 자국민 사망자 1인당 장례비 400달러를 포함해 모두 1400달러를 유족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도로가 복구되지 않아 접근이 힘든 산간지역의 사망자는 집계되지 않아 전체 사망자가 1만5000명을 넘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유엔 추산 결과 대지진의 직접 피해를 본 주민은 네팔 전체 인구 2780만 명의 4분의 1 이상인 810만여 명으로 나타났다. 네팔 정부가 이재민 구호를 비롯한 사태 수습에 우왕좌왕하고 있어 현지인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각국에서 도착한 수백 t의 구호품이 까다로운 통관 절차와 인력 부족 때문에 카트만두 공항과 인도 국경에 묶여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특히 많은 트럭 운전사들이 지진 피해를 본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돕고 있어 공항에는 운송 수단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나마 세관을 거친 일부 물품은 불필요하다며 반송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네팔 정부는 참치나 마요네즈 같은 불필요한 물품들을 받았다면서 세관 당국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물품을 검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네팔에 2일 긴급 파병된 미군 해병대 100여 명과 군용기 6대, 헬기 2대 등 군사 장비들도 까다로운 통과 절차 때문에 예정보다 하루 더 공항에 묶여 있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한인들이 다쳤다고 알려지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또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은 29일과 30일 경기를 관중 없이 치르기로 결정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무(無)관중 경기가 열리는 것은 145년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28일(현지 시간) 오후 10시 볼티모어 시는 야간 통행 금지령을 내렸지만 흑인 청년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 수백 명이 빈 병과 벽돌을 진압 경찰에게 던지며 이틀째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연막탄과 최루탄을 쏘자 1, 2시간 뒤 대다수가 뿔뿔이 흩어졌다. 이틀째 시위에선 첫날처럼 무차별적인 상가 약탈과 차량 방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메릴랜드 주 당국이 급히 투입한 3000명의 경찰과 주 방위군은 주요 거리를 통제했다. 경찰은 전날 밤 소요사태로 건물 15채와 차량 150여 대가 불탔고, 많은 상가가 약탈당했다고 밝혔다. 약탈된 상가에는 한인들이 운영하는 세탁소와 주류 판매점 등도 20여 곳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주재 한국총영사관 측은 “한인들이 가게를 지키다 부상당했다고 알려져 피해를 집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28일 오전 현재 방화와 약탈 혐의로 250여 명을 체포했다. 미국 경찰당국은 약탈범과 방화범 대다수가 10대 흑인 청소년들이어서 강경 진압을 자제하고 있다.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부모도 늘고 있다. 한 흑인 어머니가 복면을 하고 시위대에 참가한 16세 아들을 끌어내 집으로 돌려보내는 동영상은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 앤서니 배츠 볼티모어 시 경찰국장도 이 영상을 언급하며 “자기 아이를 저렇게 책임질 줄 아는 부모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흑인 여성인 캐서린 퓨 메릴랜드 주 상원의원도 시위대를 한 명씩 안아주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한편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안전상의 문제로 볼티모어 오리올파크에서 예정됐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27일과 28일 경기를 모두 취소했다. 또 29일과 30일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른다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동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서 27일 흑인 폭동이 일어나 약탈과 방화, 폭력 사태로 번졌다. 이날 폭동은 볼티모어에서 경찰 구금 중 사망한 흑인 프레디 그레이(25)의 장례식이 끝난 뒤 시위대가 거리에 쏟아져 나오면서 시작됐다. 시위대는 경찰 폭력에 항의하면서 ‘사법정의’를 외치고 진압 경찰에게 돌멩이와 벽돌을 던지는 등 격렬히 저항했다. 거리가 어두워지자 시위는 인근 건물에 대한 방화와 약탈로 이어졌다. 일부 시위대는 상점과 현금인출기 등을 약탈했고 경찰차를 부쉈다. 진압 과정에서 경찰 15명도 돌에 맞아 부상했고, 이 중 1명은 혼수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폭동으로 200명 가까이가 체포되고 건물 15채와 차량 144대가 불탔다고 볼티모어 시당국은 밝혔다. 볼티모어 폭동은 지난해 8월 미주리 주의 소도시 퍼거슨에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당시 18세)이 백인 경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대규모 폭동이 일어난 이후 미국 내 가장 큰 폭력사태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이날 오후 8시 30분부터 시내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경찰 1000여 명과 주 방위군 1500명을 폭동 현장에 보냈다. 이날부터 1주일간 야간통행금지령과 휴교령이 발령됐다. 또 미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홈경기가 취소되고 지하철역도 폐쇄됐다. 볼티모어에는 한인이 2000여 명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주재 한국영사관 측은 27일 “한인가게 10여 곳이 방화와 약탈의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지만 소요사태가 난 직후인 오후 2시 모두 집으로 철수해 인명 피해는 피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날 볼티모어 시 한 침례교회에서는 그레이의 장례식이 열렸다. 볼티모어 시내에서 경찰에게 붙잡힌 그레이는 체포 과정에서 척추 등을 심하게 다쳤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고, 체포 1주일 만인 이달 19일 병원에서 숨졌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네팔 지진 여파로 일어난 눈사태로 에베레스트에 고립된 세계 각국의 등반가들이 해발 60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극한의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베이스캠프에서 확인된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60여 명으로 알려졌다. 중국 신화통신은 27일 오후 에베레스트에 20개국 이상의 등반객 400여 명이 고립돼 있다고 전했다. 구조 활동에 헬기 3대가 동원됐지만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의 특성상 한 번에 부상자 2명밖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구조가 베이스캠프에 집중돼 그 위쪽에 있는 ‘캠프1’과 ‘캠프4’ 사이에 등반가 100명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빠진 것. 보통 사람들은 산소 부족으로 잠시도 머물기 어려운 위치이다. 구조 헬기 착륙도 불가능하다. 추위와 강풍이 휩쓰는 가운데 등반용으로 메고 떠났던 산소와 음식도 바닥나고 있다. 하산하려 해도 베이스캠프와 캠프1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 빙하가 완전히 막혀 버렸다. 밧줄 등 중요 장비를 두고 떠났기 때문에 새로 길을 내기도 어렵다. 게다가 최초의 지진 이후 여진도 3차례 추가로 발생하면서 눈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캠프1에 머물고 있다는 미국인 등반가 대니얼 마주르 씨(55)는 26일 트위터에 ‘세 방향에서 눈사태가 쏟아져 내려왔다. 이곳은 작은 섬이 됐다. 아래쪽 팀원들은 살아 있나?’라는 글을 남겼다. 눈사태가 베이스캠프를 덮치는 순간의 생생한 화면도 26일 공개됐다. 독일 산악인 요스트 코부슈 씨가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는 수십 m 높이의 눈사태가 파도처럼 베이스캠프를 휩쓰는 모습이 담겨 있다. 눈사태는 “땅이 흔들린다”는 코부슈 씨의 고함 이후 17초 만에 베이스캠프를 덮쳤다. 코부슈 씨와 동료는 눈사태 직후 황급히 텐트 안으로 도망쳤고 곧바로 ‘콰과광’ 하는 굉음과 함께 텐트가 무너져 내렸다. 싱가포르 출신의 산악인 조지 포울샴 씨도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50층 건물 높이의 눈 더미를 피해 달렸지만 곧 쓰러졌고, 일어나려 했지만 또 쓰러졌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죽는구나 생각했다.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5일 발생한 네팔 대지진은 예고된 재앙이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진 전문가들은 2010년 2월 3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아이티 대지진 참사 직후 다음 차례는 네팔이며 지진 규모는 8.0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트만두에서는 불과 일주일 전에도 지진학자 50여 명이 모여 닥쳐올 지진 피해를 줄일 방법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기도 했다. 네팔이 대지진 유력 지역으로 떠올랐던 것은 두 거대한 지각판인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부딪치는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네팔이 에베레스트 산 등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나라이지만, 2500만 년 전 인도판이 유리시아판과 충돌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바닷속에 있었다. 인도판이 계속 유라시아판을 밀어 올리면서 융기하기 시작했고 그 충돌 에너지가 수십 년을 주기로 계속 지진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네팔은 1934년에도 규모 8.1의 지진이 남동부를 강타해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988년에도 같은 지역에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해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255년에도 대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국왕까지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전문가들은 다음번 대지진 유력 지역으로 터키의 이스탄불을 꼽고 있다. 1999년 이스탄불 동쪽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해 1만7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한편 유라시아판 내부에 있어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우리나라에서도 지진 발생 빈도가 잦아져 주목된다. 26일 기상청 지진화산감시과는 “관측을 시작한 1978년부터 1998년까지는 연평균 19.2회의 지진이 관측됐으나 이후 1999∼2014년에는 2배 이상 많은 47.7회의 지진이 있었다”고 밝혔다. 관측 이래 한반도(북한 지역 제외)에선 규모 4.9 이상의 지진이 9차례 관측됐는데, 이 중 6번이 2000년 이후에 몰려 있다. 지난해 4월 1일 충남 태안군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km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5.1의 강진은 관측 이래 3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이다. 전문가들은 국지적 지진 발생 빈도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 한반도에도 지진에 취약한 활성단층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주성하 zsh75@donga.com·이종석 기자}
25일 발생한 네팔 대지진은 예고된 재앙이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진 전문가들은 2010년 2월 3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아이티 대지진 참사 직후 다음 차례는 네팔이며 지진 규모는 8.0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이번 지진 규모 7.9에 거의 근접한 전망이다. 카트만두에서는 불과 일주일 전에도 지진학자 50여 명이 모여 닥쳐올 지진 피해를 줄일 방법을 논의하는 회의가 열리기도 했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지진학자인 제임스 잭슨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이번 지진이 발생한 직후 “악몽이 현실화 됐다”고 말했다. 네팔이 대지진 유력 지역으로 떠올랐던 것은 두 거대한 지각판인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부딪치는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네팔이 에베레스트산 등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나라이지만, 2500만 년 전 인도판이 유리시아판과 충돌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바다 속에 있었다. 인도판이 계속 유라시아판을 밀어 올리면서 융기하기 시작했고 그 충돌 에너지가 수십 년을 주기로 계속 지진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네팔은 1934년에도 규모 8.1의 지진이 네팔 남동부를 강타해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988년에도 같은 지역에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해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255년에도 대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국왕까지 죽었다는 기록도 있다. 전문가들은 다음번 대지진 유력 지역으로 터키의 이스탄불을 꼽고 있다. 1999년 이스탄불 동쪽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해 1만7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터키 정부는 건축규정을 강화해 다가올 지진에 대비하고 있다. 한편 유라시아판 내부에 있어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우리나라에서도 지진 발생 빈도가 잦아져 주목된다. 26일 기상청 지진화산감시과는 “관측을 시작한 1978년부터 1998년까지는 연평균 19.2회의 지진이 관측됐으나 이후 1999~2014년에는 2배 이상 많은 47.7회의 지진이 있었다”고 밝혔다. 관측 이래 한반도(북한 지역 제외)에선 규모 4.9 이상의 지진이 그동안 9차례 관측됐는데, 이 중 6번이 2000년 이후에 몰려 있다. 지난해 4월 1일 충남 태안군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km 해역에서 방생한 규모 5.1의 강진은 관측 이래 3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이다. 전문가들은 국지적 지진 발생 빈도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 한반도에도 지진에 취약한 활성단층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이종석기자 wing@donga.com·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9월로 예정된 미국 방문 길에 쿠바를 먼저 들른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22일 성명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 주교들과 민간단체들의 초청을 받고 섬나라 쿠바를 찾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 후 교황은 미국 워싱턴, 뉴욕, 필라델피아를 방문한다. 교황의 이번 방문은 미국과 쿠바 사이에 국교 정상화 등 급격한 해빙 무드가 조성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으로 관심을 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에서 미국의 대(對)쿠바 금수조치 해제를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외교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교황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수년간 노력해 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난항에 빠진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주었고, 양국 간 비밀협상 장소를 주선하기도 했다. 교황의 쿠바 방문은 1998년 1월 요한 바오로 2세, 2012년 3월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쿠바를 다녀간 교황들은 현지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미국의 쿠바 경제 봉쇄 정책과 쿠바의 낙태 합법화, 인권 문제 및 정치범 억압 등을 함께 지적해 왔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가 쿠바를 다녀간 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가톨릭 정교회가 쿠바 관영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성탄절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성탄절도 공식 휴일로 지정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2005년 선종하자 카스트로 전 의장은 쿠바에 사흘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사기꾼은 공산주의자보다 더 악질인 듯싶다. 인민을 공산주의자로 개조한다고 수십 년 세뇌시킨 북한이지만 사기꾼은 갈수록 더 늘어난다. 물론 수법이야 남쪽사람에겐 식상하겠지만. 북한이 나름대로 시스템을 유지하던 1980년대 ‘북한판 박인수’ 사건이 항간의 화제가 됐다. 일개 노동자가 김일성 주석궁에 물자를 조달하는 고위 군관을 사칭해 수많은 여성을 농락했다. 호위총국 상좌(중령과 대령 중간계급) 군복을 입고, 일반 사람은 구경하기 힘든 김일성 명함 시계를 차고 다니니 여성들이 줄줄이 속아 넘어갔다. 한 여성과 동거하다 돈을 얻어내곤 출장을 떠난다며 다른 여성 집에 가 머무르는 수법을 반복하다 잡혔다. 사람들은 김일성 이름을 팔고 다닌 그 배짱에 놀랐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 들어간 이후 갑자기 사기꾼이 급증했다. 특히 장마당 경제를 주도하는 여성들 속에서 사기 범죄가 크게 늘었다. 오죽하면 평양에 ‘여성범죄단속그루빠’까지 생겨났을까. 초기 사기수법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아름다운 여성이 자전거 장사꾼에게 흥정을 붙이다 자전거를 타보겠다고 말한다. 그러곤 함께 온 사람에게 지갑을 맡기고 주변을 도는 척하다 갑자기 사라진다. 뒤늦게 장사꾼이 남은 사람을 족쳐 봐야 “내 물건도 산다 해서 따라왔는데” 또는 “아깐 지갑에 달러가 가득했는데”라는 식의 뻔한 대답만 돌아온다. 사기수법은 점점 진화한다. 몇 년 전 평양에서 있었던 일이다. 할머니 홀로 사는 집에 한 처녀가 짐을 잔뜩 갖고 와 적잖은 돈을 내놓으며 “장사하러 평양에 왔는데 일주일만 묵자”고 했다. 처녀 방엔 매일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하루는 처녀가 손님을 데리고 와 술상을 거나하게 차리더니 “어머님 한잔, 선생님 한잔” 하며 대접하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알고 보니 할머니 집을 자기 집이라고 속이고 5000달러에 팔아먹었다. 처녀의 짐 속엔 헌 천 쪼가리만 가득했다. 정체를 모르니 어디 가서 잡아야 할지도 막막하다. 북한에서 사기당한 중국 사업가들도 수두룩하다. 가장 고전적 수법은 담당자 바꿔치기다. 북한의 모 기관을 대변한다는 사람이 중국 사업가에게 온갖 감언이설로 투자하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투자하고 나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감당하지 못할 조건을 내민다. 중국인이 항의하면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1990년대 후반 이런 일도 있었다. 북한에 돈을 떼인 중국 사업가 수십 명이 관광하는 척 평양에 단체로 들어가 노동당 중앙당사 앞 고려호텔에 투숙했다. 중앙당사 앞에서 기습시위라도 하면 북한 당국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계획대로 이들은 다음 날 오전 호텔 앞에 일제히 모여 시위를 시작하려 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북한 안내인이 막아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침 거리를 지나던 북한군 승용차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 차에 탔던 군관 두 명은 북한 안내인이 중국인 관광객에게 멱살을 잡힌 것을 보고 분노했다. 이들은 전후사연도 모른 채 차에서 시동을 걸 때 쓰는 쇠막대기를 들고 달려와 중국 사업가들에게 마구 휘둘렀다.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나 쇠몽둥이를 휘두르자 사업가들은 혼비백산해 흩어졌다. 나중에 이 일을 안 중국대사관은 북한 정부에 자국민들을 부상시킨 데 대해 사죄할 것을 요구했고 북한은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군인들이 아주 잘했다”고 치하했다. 군관들은 크게 승진했다. 과거 북한은 항상 중국에 사기를 치는 존재였다. 하지만 시장경제 활동이 본격화된 최근에는 오히려 중국인들에게 사기당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중국인과의 상거래가 활발한 나선시에서 이런 사례가 적잖다. 중국 사기꾼들은 북한 사람들이 상대적 ‘선진국 국민’인 중국인을 믿는다는 점을 악용한다. 이들은 사업가로 위장해 북에 가서 친분을 쌓은 뒤 물품을 싸게 사주겠다며 돈을 받는다. 물론 중국에 있는 일당에게 전화를 요란스레 해서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은 필수 코스다. 중국 사기꾼이 달아나면 북한 사람은 찾을 길이 없다. 북한에서 이런 사기 피해가 속출하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옌볜에서 번창하던 보이스피싱 조직이 한국 당국의 대처로 기세가 꺾일 때와 일치한다. 한국을 상대로 전화사기를 치던 조직이 눈을 돌려 북한 맞춤형 사기수법을 고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과 북을 사기쳐먹는 전화 속 그놈 목소리는 언제면 사라질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최근 지중해에서 난민들이 수백 명씩 사망하는 참사가 잇따르자 유럽연합(EU)이 인신매매나 밀입국 사범들이 띄운 난민선을 파괴하는 군사작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EU 28개국 회원국 외교장관과 내무장관들은 20일 룩셈부르크에서 난민대책 긴급회의를 열어 난민 밀입국 조직 소탕을 위한 군사 작전을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 작전의 목적이 “밀입국 선박들을 파괴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EU는 바다에서 난민들을 구조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았지만 앞으로는 아예 배를 파괴해 유럽을 향해 떠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이번 결정의 골자다. 디미트리스 아브라모풀로스 EU 이민·내무 담당 집행위원은 과거 소말리아 해적에 맞서 ‘아프리카의 뿔’(뿔 모양의 아프리카 동부를 지칭) 지역에서 벌였던 작전과 유사한 방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전 범위 등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등 주요 지도자 모두 밀입국 조직과의 전쟁을 난민 대책의 최우선으로 지지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EU의 밀입국 선박 파괴 작전의 주요 무대는 리비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에 난민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유럽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유도 있지만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무너진 탓이 크다. 여러 지역을 나누어 군림하고 있는 부족과 군벌들은 난민 밀입국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 경쟁적으로 난민을 모집해 온다. 심지어 내전으로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시리아까지 가서 유럽행 난민 희망자를 데려오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밀입국 업자들은 난민 희망자 1명에게서 수천 달러씩 받는데 수백 명이 탄 선박 한 척을 하루 동안 운항해 유럽에 도착시키면 수십만 달러를 벌 수 있다. 이 때문에 각 군벌은 난민 모집에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현재 리비아에서 대기 중인 난민은 최대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난민을 상품으로 보는 밀입국 조직들은 안전 수칙을 무시하고 보트에 사람들을 짐짝처럼 싣고 지중해로 나간다.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개인 짐은 물론이고 먹을 것과 물병조차 휴대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 때문에 기관이 고장 나 표류하면 난민들이 살아남기 힘들어진다. 한편 18일 난민 950명을 태우고 가다 전복된 선박 사고에서 선장과 승무원 1명이 수백 명의 난민을 배 아래 짐칸에 가두고 자신들은 갑판 위에 있다가 가장 먼저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경찰은 생존자들 속에 숨어 있던 이들을 체포했다. 이 사고는 지중해에서 벌어진 사상 최악의 참사 중 하나라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와 별개로 20일에만 지중해에서 선박 조난 사고 3건이 추가로 일어났다. 난민 100∼300명을 태운 선박 2척이 침몰해 20여 명이 숨졌으며, 그리스 해안가에서도 난민선이 난파해 3명이 사망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조만간 무인 잠수정(수중 드론·사진)이 바닷속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무인 선박(드론선)이 적의 잠수함을 찾아 전 세계 대양을 누비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온라인 군사전문 매체 밀리터리닷컴은 미 해군이 올해 말까지 버지니아급 공격 핵잠수함을 발진기지로 하는 ‘레무스 600’ 수중 드론(UUV)을 실전배치할 것이라고 19일 보도했다. 무게 226.7kg, 길이 3.25m인 레무스 600 수중 드론은 핵잠수함에 장착된 특수 사출장치를 통해 수중에서 발사된다. 수중 드론은 전 세계 주요 전략지점에서 기뢰 탐색과 정찰, 지형도 작성 등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수중 드론의 활약으로 기뢰 해제를 위해 함정이나 병사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미 해군은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이 진화하면 드론이 직접 기뢰 등을 해제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미 해군은 잠수함 추적 선박인 ‘무인선(drone ship)’도 개발해 2018년까지 실전배치를 목표로 생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개발을 주도하는 이 무인선은 길이가 약 132피트(약 40m)로 수천 마일 밖에서도 적의 잠수함을 자체적으로 탐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무인선의 운용 비용은 약 2000만 달러에 불과해 수십억 달러가 드는 유인 함정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잠수함 추적 무인선 개발은 중국 해군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중국은 최신형 전략 핵잠수함 3척을 조만간 실전 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조만간 무인 잠수정(수중 드론)이 바다 속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무인 선박(드론선)이 적의 잠수함을 찾아 전 세계 대양을 누비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온라인 군사전문 매체 밀리터리닷컴은 미 해군이 올 연말까지 버지니아급 공격 핵잠수함을 발진기지로 하는 ‘레무스 600’ 수중 드론(UUV)을 실전배치할 것이라고 19일 보도했다. 무게 226.7㎏, 길이 3.25m인 레무스 600 수중 드론은 핵잠수함에 장착된 특수 사출장치를 통해 수중에서 발사된다. 수중 드론은 전 세계 주요 전략지점에서 기뢰 탐색과 정찰, 지형도 작성 등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수중 드론의 활약으로 기뢰 해제를 위해 함정이나 병사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미 해군은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이 진화하면 드론이 직접 기뢰 등을 해제하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또 미 해군은 잠수함 추적 선박인 ‘무인선(drone ship)’도 개발해 2018년까지 실전배치를 목표로 생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개발을 주도하는 이 무인선은 길이가 약 132피트(약 40m)로 수천 마일 밖에서도 적의 잠수함을 자체적으로 탐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무인선의 운용 비용은 약 2000만 달러에 불과해 수십억 달러가 드는 유인 함정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잠수함 추적 무인선 개발은 중국 해군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중국은 최신형 전략 핵잠수함 3척을 조만간 실전 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중 드론 개발에 러시아도 뛰어들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개발 중인 5세대 핵잠수함에 스텔스 기능을 가진 수중 드론과 수중 전투 로봇을 함께 운용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아프리카 난민 700여 명이 탄 배가 18일 밤 지중해에서 뒤집혀 탑승자들이 대부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CNN방송은 이날 이탈리아령 섬인 람페두사에서 남쪽으로 약 193km, 리비아 해안에서 북쪽으로 약 27km 떨어진 해상에서 난민 700여 명이 탄 배가 전복돼 46명만 구조되고 나머지 난민은 익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날 사고는 정원을 초과해 승선한 난민들이 지중해에서 지나가는 상선의 주의를 끌고자 한쪽으로 몰리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CNN은 전했다. 사고 이후 이탈리아와 몰타 해군은 현장으로 출동해 뒤집힌 선박 주변에서 시신 수습 작업을 벌였다. 이탈리아 해상구조대 대변인은 “구조와 시신 수색 작업을 동시에 펼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시신만 보인다”고 말했다. 해군 경비정과 상선 등 배 20척과 헬기 3대도 이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 아프리카 난민이 몰려드는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올해 초 난민선에 올랐다가 숨진 희생자가 지난해에 비해 10배가량 늘었다며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이달 12일에도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선이 지중해에서 전복돼 400명이 숨졌다고 국제 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국제이주기구(IOM)가 밝혔다. 당시 이 난민선에는 약 550명이 타고 있었으며 140명 정도만 구조됐다. 익사자 가운데는 어린이도 일부 포함됐다. 이틀 뒤인 14일에는 100여 명이 탄 난민 선박에서 종교 갈등으로 싸움이 벌어져 이슬람교도 출신들이 소수인 기독교 난민 12명을 바다에 던져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와 관련해 이슬람교도 난민 15명이 이탈리아 시칠리아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이 급증해 대규모 인명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18일 선박 침몰 사고를 포함해 올해 들어 지금까지 최소 1600명이 난민선 전복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IOM은 올해 지중해를 무사히 건너 이탈리아에 들어간 이주자는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난민 사망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배에 이른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 국경수비대는 여름이 다가오면서 약 50만 명의 난민이 리비아 해안에 몰려와 유럽으로 가려고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난민선에 승선하려는 사람들은 내전과 가난을 피해 새 삶을 찾으려는 아프리카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사람이 대다수이며, 최근 정국 혼란을 겪고 있는 리비아 난민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 난민선에 올랐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급증하는 추세다. IOM에 따르면 지난해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난민은 3072명으로 2013년의 700명보다 크게 늘었다. 2000년부터 집계하면 2만2000명이 넘는 난민이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다 숨졌다. 지난해 유럽에 불법 입국한 난민은 28만 명에 이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유럽연합(EU)이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을 대상으로 반독점법을 어긴 혐의로 제소 절차에 들어갔다. 반독점법 위반이 인정될 경우 구글은 60억 달러(약 6조6000억 원)가 넘는 벌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AP 등 외신은 EU가 15일 구글의 검색 독점 등에 대한 공식 제소와 추가 조사 방침을 발표하고 구글 측에 ‘이의 진술서’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공식 조사를 위한 EU의 첫 번째 절차로 구글은 답변서를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현재 구글이 받는 혐의는 모두 4가지이다. 우선 검색 점유율이 90%인 점을 이용해 자사 광고 링크와 서비스를 교묘하게 우수 검색결과로 보여줘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이다. 이 외에 경쟁사의 트래픽을 의도적으로 제외했는지, 경쟁 검색광고업체를 배제했는지, 수익성이 좋은 자사 앱인 유튜브를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에 강요했는지 등을 조사받는다. EU는 2010년 11월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검색 관련 업체로 구성된 ‘페어서치’ 그룹이 구글의 불공정 행위를 제소함에 따라 구글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과정에서 구글은 EU 집행위에 3차에 걸쳐 개선안을 제출했다. EU는 지난해 2월 구글의 3차 제안을 받아들여 반독점법 위반 조사를 마무리할 방침이었으나 지난해 EU 집행위가 교체돼 재조사에 착수했다. 구글에 대한 공식 제소가 결정됨에 따라 앞으로 10주의 변론 준비기간이 주어지며 최종 결정까지는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구글이 반독점법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이 나고 이어 EU의 수정안을 거부한다면 연 매출의 10%까지 벌금으로 내야 한다. 지난해 구글 매출은 660억 달러에 달했다. EU는 2004년부터 MS와도 반독점 소송을 벌이면서 현재까지 22억4000만 유로(약 2조6000억 원)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한 적이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일부터 북한 학교의 새 학기를 맞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우상화하는 교육이 정식으로 시작됐다. 대북 소식통들은 13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정은이) 3살 때부터 총을 쏘고 운전을 했다’는 등의 황당한 내용이 많아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은 이날 김정은 우상화 교재에 김정은의 출생과 성장에 대한 의심과 의혹만 잔뜩 키워 놓았다고 지적했다.○ 황당한 우상화 교육 내용 본보가 입수한 교사용 교재인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참고서’(151쪽)에는 김정은이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묘사되어 있다. 교수참고서는 가르칠 내용과 방법, 답안까지 상세히 기술돼 있는 교사용 교안이다. 참고서에선 “(김정은의) 담력과 배짱이 영웅남아답다”면서 “3살 때부터 총을 쐈고, 3초 내에 10발을 다 목표를 명중시키며 100% 통구멍을 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김정은이 “3살 때부터 자동차 운전을 시작했으며 8살 이전에 도로를 질주했다”는 내용도 있다. 가장 많이 할애된 대목은 그가 어린 시절 ‘마운틴’이란 브랜드의 보트를 몰고 온 외국 초고속 보트회사 시험 운전사를 두 번이나 이겼다는 일화다. 참고서는 김정은이 이 경주에서 보트를 시속 200km로 몰았다며 “학생들에게 200km/h는 몇 m/s인가 계산해보도록 하고, 55.56m/s의 속도로 달리는 초고속 배가 얼마나 빠르겠는가를 상상해보도록 하라”는 구체적 훈육 지침까지 내리고 있다. 또 “6살 때 사나운 말을 마음대로 길들여 타고 기마수보다 더 잘 달렸다”거나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전문가 이상으로 연주하는 절대 음감의 소유자” “못하는 체육종목이 없는 스포츠 천재”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10대에 정치 경제 철학 역사 수학 물리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보통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찬양하고 있다. 김정은이 ‘고난의 행군’ 기간 매일 주먹밥과 죽으로 해결하며 인민들이 겪는 고생을 함께했다는 대목도 있다. 고난의 행군에 해당하는 1990년대 중반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생활했다. 북한 교사 출신의 한 탈북자는 “김일성과 김정일 우상화 교재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이라도 했지만 김정은 우상화는 황당함과 거짓말이 도를 넘는다”고 말했다. 김정은 우상화 교재는 그에 대해 ‘선군 조선의 위대한 태양’이라 호칭하고 그가 태어난 생일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규정한 점이다. 과거 태양과 민족 최대의 명절이란 단어는 김일성과 그의 생일에만 해당됐다. 김정은을 김일성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북한의 조급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학생들 질문에 교사들 쩔쩔매 김정은 우상화 교육은 북한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신의주의 한 소식통은 자유북한방송에 “이제 교사들은 3살 난 어린이가 어떻게 총을 쏘고 운전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를 설명해줘야 하는 기막힌 처지”라며 “김정은을 우상화하려다 함정에 빠진 꼴”이라고 말했다. 대답이 궁한 일부 교사들은 부모를 따로 불러 “원수님의 혁명역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반동행위이니 부모가 아이교육을 책임지라”고 부탁하기도 한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대북 소식통들은 “앞으로 김정은 가계와 경력, 고향 등을 어떻게든 밝힐 수밖에 없는데 주민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상화를 포기할 수도 없고, 사실을 밝힐 수도 없는 북한의 딜레마가 김정은 우상화 교재에 반영돼 있는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년 전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의 용의자에 대해 마침내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이번 사건을 심리 중인 미국 연방법원의 배심원단 12명은 8일 용의자 조하르 차르나에프(21)에게 적용된 30개 혐의 가운데 10개에 걸쳐 유죄가 인정된다고 평결했다. 유죄가 인정된 대량살상 무기 사용 모의, 대량살상 무기 사용, 공공장소에서 폭탄 테러 모의, 공공장소에서 폭탄 테러 자행 등 각 혐의는 최소 종신형, 최대 사형까지 적용될 수 있는 죄목이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은 2013년 4월 15일 오후 2시49분 마라톤 결승점에서 압력솥 장비를 이용해 만든 폭탄 2개가 터진 사건이다. 이로 인해 어린이를 포함해 3명이 숨지고, 260명 이상이 다쳐 미국에서 9·11테러 이후 가장 큰 테러행위로 기록됐다. 이 테러는 당시 각각 19세와 26세였던 조하르와 타메를란 차르나예프에 의해 저질러졌다. 타메를란은 경찰 추격을 받으며 도주하던 중 동생이 몰던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 이 사건의 재판이 2년 만에 시작된 것은 이번 사건이 미국 연방정부가 중범죄로 정한 테러 사건으로 분류돼 수사 과정이 길어졌고 재판지 관할, 배심원 선정 등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배심원단은 증언을 다시 청취하는 2차 절차를 밟은 뒤 최종 형을 확정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평양에서 애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안원이 “이봐 동무, 혁명의 수도에서 개를 데리고 한가롭게 다니다니” 하며 호통을 치진 않을까. 지나가는 뭇 시선이 부럽게 쳐다보진 않을까. 답은 “아무 일도 없다”이다. 남쪽의 상상과는 사뭇 다르게, 애견 문화는 서울과 평양이 별 차이가 없다. 단, 평양에선 애견의 배설물은 그냥 방치한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평양에서 애견을 키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 북한이 주민에게 자주 보여준 사상교육 영상물엔 서방의 애견이 단골로 출연했다. 마사지를 받는 애견과 거리의 노숙인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며 “썩고 병든 자본주의에선 사람이 개보다 못하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1990년대 평양에 살면서 나는 젊은 여성이 안고 나온 애견을 딱 한 번 보았다. 그때 처음 들었던 생각이 “누구 딸일까”였다. 당시 애견은 무소불위 권력의 상징이었다. 보안원도 모르는 척했다. 단속해야 본전도 찾지 못할 고위층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재벌 2세의 수억 원대 고급 스포츠카처럼 평양의 애견이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자 몰래 키우는 부유층도 늘었다. 급기야 1990년대 말 평양에선 애견 단속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고, 김정일에게 보고가 되기도 했다. 남쪽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김정일도 애견을 끼고 산 역사가 깊다. 단속 논쟁은 “애견 키우는 게 뭐가 문제냐”는 김정일의 판결로 막을 내렸다. 평양의 애견 문화가 중산층까지 파고든 계기는 특이하게도 서울에서 ‘세콤’과 같은 보안경비업체가 확장한 것과 똑같은 이유였다. 2001년 평양 중심부 중구역의 한 가정집에 칼을 든 강도가 들었다. 이때 몸집이 크지도 않은 애견이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안주인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이 소문이 평양에 바람처럼 퍼지자 “점점 치안이 불안해지는데 개에게라도 집을 맡기자”며 너도나도 애견을 키우기 시작했다. 셰퍼드와 같은 군견을 키우는 집도 늘었다. 2000년대 초반 평양의 애견 붐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을 연상케 했다. 평양에선 몰티즈와 시추가 가장 인기가 있는데 당시 좋은 품종의 암컷은 500달러를 호가했다. 교배 한 번에 100달러, 새끼 한 마리에 100달러였다. 당시 100달러는 북한의 일반 가정이 1년을 먹고살 수 있는 돈이었다. 애견이 있어야 좀 사는 집 취급을 받다 보니 토종견을 염색해 애견으로 둔갑시켜 파는 사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이런 붐을 타고 중국에서 수많은 애견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밀수돼 들어왔다. 당시엔 북한 농촌 집에서 자란 토종견들도 식용으로 중국에 몰래 팔렸다. 중국에서 팔려온 개의 몸값은 수백 달러, 북에서 팔려간 개의 몸값은 10달러 남짓이었다. 애견은 중성화 수술이 없는 평양에서 마음껏 새끼를 낳았다. 그러니 해가 다르게 가격도 떨어져 지금은 아무리 비싸도 100달러를 넘기 힘들다. 이제 애견은 더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 아니다. 유행에 편승해 애견을 키우기 시작했던 사람들 중에서 아파트에서 기르기가 힘들고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지인에게 잡아먹으라고 주는 사람도 생겨났다. 2000년대 중반 애견이 닭이나 토끼보다 폐사율이 낮다며 식용으로 수십 마리씩 길러 파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애견이 토종견보다 육질이 좋다”는 소문까지 더해지면서 광복거리와 통일거리엔 애견 고기 전문식당도 생겼다. 이 사실이 2008년 김정일의 귀에 들어갔다. 김정일은 “애견을 잡아먹는 행위는 미개한 인종에게서나 있을 수 있는 야만행위”라고 격노했다 한다. 그 직후 당국은 애견 통제령을 내렸다. 지금까지 이런 통제령이 두세 번 더 내려졌다. 하지만 무조건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될수록 기르지 말라는 식의 권고였다. 다만 셰퍼드 같은 큰 개는 사람을 물 수 있어 무조건 금지시켰다. 항상 그랬듯이, 통제령의 약발도 몇 달밖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애견 바람은 쉽게 죽었다. 주변에서 쳐다봐 주지도 않고, 살림에 부담만 되니 사람들도 점점 권태를 느끼던 때였기 때문이다. 물론 평양의 애견 붐이 전혀 헛되진 않았다. 개를 식용동물로만 여겼던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정이 통하는 동반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지금 평양의 견주는 밥술깨나 뜨고, 애견이 정말로 좋은 사람만 남았다. 이들은 동물병원도, 전용사료도 없는 그곳에서 애견과 한솥밥을 나눠 먹고, 장마당에서 옷을 주문해 입히며 살고 있다. 한편으론 여전히 평양의 곳곳엔 왁자지껄 오가는 술잔 속에 개고기를 뜯는 식당도 많다. 서울처럼.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42년간 철권통치를 휘두른 곳인 리비아의 옛 국가원수 궁전이 쓰레기장과 동물 등을 파는 야외 시장으로 변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6일 리비아 제2의 도시인 동부 벵가지의 옛 궁전 모습을 이같이 보도했다. 카다피는 2011년 10월 20일 시민혁명으로 죽음을 맞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그렇지만 카다피가 사라진 지 불과 3년 반 만에 ‘권력의 상징’이 ‘권력의 허망함을 보여 주는 곳’으로 바뀌었다. 벵가지의 옛 궁전 터는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다. 카다피 정권 붕괴 뒤 생활난에 쪼들리던 주민들은 이곳에 하나둘 모여 좌판을 깔고 의류와 식품, 동물 등을 팔기 시작했다. 현재 이곳 어디에서도 카다피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무함마드 술레이만 씨(43)는 “카다피가 사라지고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는데, 내가 그의 궁전 폐허에서 장사를 하는 신세가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시장의 다른 구석은 쓰레기장으로 변해 있었다. 시민들이 트럭에 쓰레기를 싣고 와 버리면 이곳에서 소각한다. 한때 카다피가 거닐었을 거리는 악취 나는 쓰레기와 타다 남은 검은 재 때문에 걸어 다니기도 힘들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카다피 관저도 비슷한 처지다. 한때 카다피의 강력함을 상징하던 시내 중심부 밥 알 아지지야 요새는 지금 잡초만 무성한 폐허로 변했다. 이곳을 장악한 반군은 불도저를 동원해 내전으로 앙상한 골조만 남았던 요새를 완전히 허물어 버렸다. 카다피가 살던 관저도 파란색 바닥 타일만 흙 속에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공터가 됐다. 폐허 곳곳엔 내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란 핵 협상 타결은 북한에도 적잖은 충격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역시 핵무기 보유나 폐기냐를 두고 오랫동안 주판알을 튕겨 왔겠지만 결론은 항상 ‘핵 보유’로 내려졌다. 이란 핵협상이 막바지 타결을 앞둔 1일에도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의 한 관리는 “핵 포기는 있을 수 없으며 6자회담에도 관심이 없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은 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길을 따르지 않을까. 그 이유를 다섯 가지로 분석해본다.① 김정은, 권력기반 여전히 불안정 북한은 지금까지 핵무기 개발을 김일성, 김정일이 일생을 바친 업적이자 유훈이라고 선전해 왔다. 김정은이 핵을 폐기하려면 이 ‘족쇄’부터 풀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집권 3년 차를 갓 벗어난 김정은에겐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다. 김정은의 권력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3년 동안 가혹한 숙청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김정일 시대의 인물들이 북한 지도부의 핵심이다. 이들은 설령 김정은이 핵 폐기를 결심했더라도 그렇게 해선 안 될 수많은 이유를 들어 김정은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② 경제 문제보단 체제 안보가 목표 핵 개발 포기로 북한과 이란이 얻을 수 있는 목표도 완전히 다르다. 이란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 제재 해제이지만 북한은 김정은 체제 안보가 최대 목표다. 주요 산유국인 이란은 핵 개발을 강행해 받을 경제적 손해가 막심하지만 북한은 잃을 것이 많지 않다. 핵무기가 없어도 이란은 국가 존립이 위태롭진 않지만 세계 최강 미군과 한국군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북한은 핵무기마저 없다면 비교불가한 군사적 열세에 놓이게 된다.③ 세습과 민주 정권의 차이 북한과 이란은 리더십의 형태도 판이하게 다르다. 권력을 세습 받은 김정은은 사실상 종신 집권이지만, 이란 대통령은 4년 중임제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는 민주 국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바뀐다. 반면 북한은 정책을 번복할 경우 실패의 책임이 고스란히 최고 책임자에게 돌아간다. ④ 핵무기 포기 보상에 대한 의구심 이란과 달리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임을 주장해 왔다. 따라서 핵무기 폐기에 대한 보상 요구도 경제 제재 해제에 초점을 맞춘 이란보다 더 클 것이 당연하다. 체제 안보가 목표인 북한은 오래전부터 핵 개발 포기의 전제로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모든 제재 해제 등을 우선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수백억 달러의 경제적 보상도 플러스알파(+α)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미국이 이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북한 스스로도 믿지 않는다.⑤ 핵 압박보다 무서운 인권 압박 북한은 세계 최대의 인권 탄압국이란 오명도 함께 얻고 있다. 설사 김정은이 핵을 포기했다고 해도, 인권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제사회의 요구에 맞추면 김정은 체제는 지탱하기 어렵다. 김정은 체제의 입장에선 인권보다는 차라리 핵 폐기 압박을 받아 경제가 피폐하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아프리카 대국 나이지리아에서 지난달 31일 역사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3월 28, 29일 치러진 대선에서 무함마두 부하리 후보(73·사진)가 이끄는 제1야당 범진보의회당(APC)이 52.4%를 득표해, 43.7%의 굿럭 조너선 현 대통령을 누르고 정권을 잡았다. 나이지리아의 민주적 정권 교체는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55년 만에 처음이다. 인구 1억7800만 명으로 아프리카 최대 인구 대국이자 1위 경제 대국인 나이지리아가 이룬 첫 평화적 정권 교체는 장기 독재가 일상화된 아프리카 대륙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선거는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넬슨 만델라가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래 가장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부하리 대통령 당선인은 32년 전 쿠데타로 집권했다가 2년 뒤 다시 쿠데타로 축출됐던 인물이다. 이후 그는 30년간 세 번의 대선 도전과 실패를 거쳐 이번 4번째 선거에서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탈환했다. 이번 대선 결과는 이변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하리는 지금까지 ‘한물간’ 늙은 정치인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2007년 대선에서 상대가 70%의 표를 얻을 동안 부하리 후보는 18%를 득표했고 2011년 대선에서도 상대 후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득표율이 나왔다. 그의 이미지는 ‘만년 2등 정치인’이었다. 이번 선거에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의 득세와 굿럭 조너선 정부의 부패가 겹치면서 부하리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었다. 북부에서 보코하람에 희생당한 사람은 2만 명이 넘는다. 보코하람의 주요 근거지인 보르노 주에선 유권자의 94%가 부하리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과거 군 장성이었던 그가 집권하면 보코하람을 쓸어낼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조너선 정부 각료들의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1980년대 부하리가 심어놓은 청렴한 이미지도 그의 집권을 도왔다. 1983년 12월 육군소장이던 부하리 후보는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뒤 ‘부패 청산’을 핵심 과제로 삼고 군사 재판을 시작해 고위 인물 수백 명을 투옥시켰다. 독재자란 비난에 시달리다 1985년 8월 부하의 쿠데타로 실각해 3년 동안 감금생활을 했지만 당시 보여준 부패 청산 의지를 국민들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또 그가 과거 3번의 대선에서 깨끗하게 패배를 승복했던 것도 독재자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났음을 보여줬다. 부하리는 1942년 나이지리아 북부 이슬람 가정에서 23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영국에서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961년부터 군에 투신했고 1979년부터 1980년 사이 미국 펜실베이니아 칼라일에 있는 미군 육군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1976년 이후 오바산조 군사정권하에서 보르노 주지사, 석유장관, 국영 석유공사 사장을 지내며 정치를 배웠다. 부하리는 두 번 결혼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첫 부인이 딸 4명과 아들 1명을 낳은 데 이어 재혼한 둘째 부인 역시 딸 4명과 아들 1명을 낳았다. 1980년대 중반 대통령 부인을 지낸 아내와는 1988년 이혼했고 현재 아내와는 1989년 재혼했다. 한편 이번 대선에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인구의 15%에 불과한 2800만 명에 그쳤다. 당초 6880만 명이 유권자로 등록했지만 보코하람의 선거 방해와 유혈사태 등으로 투표율이 크게 떨어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