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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부터 중고교생이 배울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삭제하기로 했던 ‘6·25 남침’ 표현이 다시 포함되는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8월부터 마련 중인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 시안(試案)은 대한민국 발전 과정을 다루면서 ‘북한 정권의 전면적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이라는 학습 요소가 사라져 논란이 됐다(본보 5일자 A8면 참조). 최근 교육부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은 “6·25 남침 같은 명백한 사실이 빠지면 소모적인 논란만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을 평가원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평가원은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고 내부 심의회를 통해 수정 보완 중”이라며 “3월 초 최종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역사교과서(2009 개정 교육과정) 집필 기준은 ‘6·25전쟁의 개전에 있어서 북한의 불법 남침을 명확히 밝히라’고 했고 국정 역사교과서(2015 개정 교육과정) 집필 기준은 ‘6·25전쟁이 북한의 불법 기습 남침으로 일어났다’는 표현을 썼다. 반면 새 집필 기준 시안은 ‘6·25전쟁의 전개 과정과 피해 상황, 전후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을 살펴본다’라고만 했다. 이에 대해 평가원 관계자는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이 지나치게 상세하다는 학계 및 교육계의 지적에 따라 학습 요소를 최소화한 것”이라며 “6·25 남침은 전쟁 전개 과정을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포함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6·25전쟁의 북한 책임을 희석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부정될 수 있다”며 “특정 사관이 기술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라고 우려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은 예정대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기술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15경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을 1948년이 아닌 1919년 임시정부 수립으로 보고 있다.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한 국정 교과서는 지난해 5월 문 대통령의 지시로 폐기됐다.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의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의견 수렴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민주주의란 표현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도 민주주의를 사용했고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개정 교육과정엔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했다. 교육계에선 정부 여당이 개헌을 추진하는 상황과 맞물려 6월 지방선거 이후에나 결론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교육부는 3월 초 평가원의 집필 기준 최종 보고서를 받으면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의 검토를 거쳐 늦어도 6월 안에 확정 고시할 예정이다. 당초 계획보다 최대 4개월이나 지연돼 역사교과서 졸속 제작 우려도 나온다. 2020년 3월부터 역사교과서가 배포되려면 출판사의 검정도서 개발 8개월, 검정 심사기간 7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는다. 교육부는 “검정 심사위원을 대폭 늘려 검정 기간을 단축해 집필 기간을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우경임 woohaha@donga.com·임우선 기자}

《 대학교수의 자녀들이 국제 학술지 등재 논문의 공저자가 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저 교수 부모의 논문 철자를 좀 고치거나 실험실 연구수치를 기록하거나 해외 봉사활동에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쉽게 국제적 논문의 저자가 된 미성년 자녀들에게 대학 가는 문은 더없이 넓었다. 심지어 이 논문들의 64%는 국가의 연구예산을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6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입수한 교육부 실태조사 자료를 통해서다. 정부 예산을 따다가 자녀 출세 길을 연 ‘짬짜미’ 현장에선 지성이나 양심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최근 교육부의 실태조사에서 적발된 ‘중고교생 자녀 공저자 끼워 넣기’ 논문 가운데 상당수는 국가연구개발예산을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녀의 입시를 위해 부정행위를 했다고 의심되는 논문에 국가예산이 들어간 사실이 확인되면서 교수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입수한 교육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중고교생 자녀를 공저자로 끼워 넣은 논문 82건 가운데 64%인 53건에 정부예산이 지원됐다. 이 가운데 교육부가 파악한 33건에만 약 105억 원의 정부예산이 투입됐다. 나머지 20건은 여러 부처 예산이 산재해 있어 정확한 예산 규모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중 가장 많은 22억9100만 원을 지원받은 논문은 서울대 A 교수의 것으로, A 교수의 고3 자녀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연구비의 대부분은 인건비로 쓰이는 만큼 중고교생 자녀들의 인건비로 유용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추가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교수의 자녀들은 영문 철자를 교정하거나 실험 수치 기록을 도왔다는 이유로 공동저자에 이름을 올린 경우가 많았다. 2012, 2013년 고등학생 자녀를 자신의 국제학술지 등재 논문의 공동저자로 올린 서울대 B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논문 근거자료로 활용한 연구실 수치 기록에 자녀가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논문은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을 지원받았다. 부산대 모 교수는 2016년 고3 자녀를 국제학술지 등재 논문의 공동저자로 올렸다. 논문의 철자를 교정해줬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부경대 모 교수도 ‘실험에 참여하고 영문 교정 작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고3 자녀를 2012년 한 해에만 3번이나 국제·국내학술지 등재 논문 공동저자로 등재했다. 숙명여대 모 교수는 ‘고등학생의 길거리 음식 이용실태’와 관련한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실으면서 자녀를 공동저자로 올렸다. 이 교수는 이 논문이 자녀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작성한 글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순천향대 모 교수는 2011년 미국 고교를 다니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각각 자신의 국제학술지 논문 공동저자로 등재했다. 교육부의 실태 조사에서는 유독 의대 교수들의 ‘도덕적 해이’가 눈에 띄었다. 의대 특유의 폐쇄적인 서열 문화 속에서 의대 교수들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자녀를 논문 저자로 끼워 넣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연세대 모 교수는 2014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인 자신의 자녀를 대한당뇨병학회가 주최한 캄보디아 의료봉사에 참여시킨 뒤 국제학술지 등재논문의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논문 끼워 넣기 사례가 가장 많이 발견된 대학은 성균관대(8건)였다. 성균관대 모 교수의 자녀는 고3 때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린 ‘여름 리서치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여러 국제학술지 논문의 공동저자가 됐다. 이 논문 중 일부는 보건복지부의 연구예산을 지원받았다. 입시 전문가들은 “중고교생 가운데 국제학술지에 등재된 논문의 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교수 자녀들은 사실상 논문쓰기가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이나 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의대에서는 교수인 아버지와 자녀가 지도교수와 학생 관계를 유지하며 같이 논문을 쓰는 경우가 많고, 그 자녀도 교수가 되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임우선 imsun@donga.com·우경임 기자}

‘왜 교육부 사람들은 다 강남으로 갈까?’ 처음 교육 분야를 맡았을 때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종종 교육부 관계자들과 서울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 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택시!’를 외치며 부르는 곳이 대개 반포, 잠실, 대치동 쪽이었던 까닭이다. 교육부를 출입하기 전 서너 개 부처를 출입했지만 교육부만큼 ‘다수의 강남 주민’이 체감되는 곳은 없었다. 더군다나 교육부는 세종시에 있지 않은가. 호기심에 노웅래 의원실을 통해 ‘최근 5년간 교육부 고위공무원단(고공단)의 주소지 현황’을 받아봤다. 재작년 말의 일이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2016년 10월 기준 지난 5년간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는 교육부 고공단을 거쳐간 인사는 총 62명. 이 가운데 35.5%인 22명이 강남(7명) 서초(8명) 송파(7명) 등 강남 3구에 살고 있었다. 강남 3구에 사는 서울시민 비율(15.8%)보다 두 배 이상으로 높았다. 재밌는 결과였지만 기사는 쓰지 않았다. 자칫 ‘교육부 사람이 강남에 사는 게 죄’인 것처럼 비칠 수 있어서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모든 국민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거주할 권리가 있다. ‘꿈과 끼를 살리는 공교육’을 추구하는 교육부 관료라고 해서 사교육과 입시에 유리한 강남에 거주하지 말아야 할 의무는 없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다만, 제아무리 입 바른 말을 하는 교육부 공무원이라도 강남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 교육의 민낯이 씁쓸했을 뿐이다. 그렇게 씁쓸해하고 말았던 그 자료가 요즘 다시 생각났다. 최근의 교육정책이 ‘강남 쏠림’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김상곤 교육부총리가 대치동에 집을 가지고 있고, 그 집이 최근 1년 동안 3억∼4억 원 이상 올랐다는 이유 등으로 교육정책이 마치 ‘교육부의 음모’인 듯 말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정치권과 교육부가 그런 ‘1차원적인 이유’로 정책을 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교육정책의 향방을 쥔 교육부 관료, 혹은 정치인들이 강남 밖 다른 지역의 교육현실에 몹시 무지하거나 무관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무리 교육현장을 열심히 다닌다 해도 교육의 현실이란 자신이 직접 겪거나 자녀가 겪은 것 이상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폐지부터 외고·자사고 폐지, 학생부종합전형 확대에 이르기까지, 분명 최초의 의도는 선했으리라 믿는다. 과잉 교육을 잡고, 우수 학생 쏠림현상을 일반고로 분산시켜 공부를 좀 덜해도 각자 원하는 진로를 찾아가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의도가 전혀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요즘 초등 1, 2학년 학생들은 더 많은 평가와 경쟁이 이뤄지는 영어학원을 찾고 있다. 학원 갈 돈이 없는 아이들과 격차만 커질 뿐이다. 살던 곳에 살면서도 좋은 면학 분위기를 누릴 수 있던 외고·자사고가 없어질 위기에 놓이면서 공부 좀 한다 하는 학생의 부모들은 누구나 한 번쯤 교육특구로의 이주를 고민하는 분위기다. 최근 만난 한 입시분석업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수능은 아무리 돈을 써도 머리가 없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돈 쓰는 만큼 됩니다.” 학종에 ‘머니효과’를 내주는 업체나 학원은 대부분 강남에 모여 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모든 지역의 일반고나 사교육 환경, 경제력이 마치 강남 수준인 것처럼 전제하고 탁상공론 같은 정책을 펼친다면 교육정책에 대한 신뢰 확보는 물론이고 강남 집값도 잡을 수 없다. ‘강남의 교육부’가 기억해야 할 현실이다.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마련 중인 새 고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 시안(試案) 초안에 6·25전쟁이 북한 정권의 전면적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표현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꾼 데 이어 6·25전쟁과 관련한 집필기준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검정 교과서 출판사들이 교과서 제작 시 꼭 반영해야 하는 ‘학습요소’ 가운데 기존에 있던 △한미상호방위조약 △인천상륙작전 △새마을운동 △동북공정(東北工程) 등이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4일 본보가 평가원이 공개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과 기존의 역사·한국사 교육과정을 분석한 결과 기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북한 정권의 전면적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이란 표현이 침략 주체에 대한 설명 없이 ‘6·25전쟁’으로 바뀌어 있었다. 통상 6·25전쟁은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이라는 것이 주류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수정주의자로 분류되는 일부 역사학자는 6·25전쟁에 대해 “침략 주체를 따지는 게 무의미한 내전” “남측이 북침의 빌미를 제공한 전쟁” 등의 주장을 펴 왔다. 한 역사학자는 “6·25전쟁 집필 기준에서 북한군의 남침이란 표현을 뺀 것은 이 같은 수정주의 역사관을 다룰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6·25전쟁의 남침 여부에 대한 기술은 7차 교육과정(1997년)에는 명시돼 있었으나 2007,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사라졌고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다시 부활한 바 있다. 새 집필기준 시안에서는 한미 관계나 경제 성장과 관련한 학습요소가 축소된 것도 눈에 띈다. 군사·외교 분야에선 △유엔군 참전 △인천상륙작전 △중국군 참전 △한미상호방위조약 △정전협정 등이 삭제됐다. 또 경제 분야에서는 △수출제일주의 정책 △새마을운동 △중동건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외환위기 극복 등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학습요소도 삭제됐다. 그 대신 새 집필기준은 ‘경제성장은 정부와 국민이 이룬 성취라는 일국적 시각에 가두지 말고 세계경제 변동 과정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도 파악한다’며 세계적인 경제 호황에 따른 결과로 설명했다. 경제성장의 부정적 측면으로는 ‘정경 유착’을 새로운 학습요소로 포함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지난해 1월 국·검정 혼용 체제를 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취임 직후 예전의 검정 체제로 전환하기로 해 교육부는 새 집필기준에 따른 교과서를 만들어 2020학년부터 중고교 학생들이 쓸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국정 역사 교과서 폐기 지시를 내리며 “역사 교육이 정치적 논리에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에서도 논쟁적인 부분들이 대거 수정되면서 역사 교과서가 정권이 바뀌면 부침을 거듭한다는 비판이 다시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교육과정평가원 시안은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의견 수렴을 하고 있으며 향후 교육과정 심의회와 운영위원회 등의 과정을 거쳐 집필기준을 상반기에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 교과서 집필진은 학습요소를 중심으로 내용을 개괄적으로 서술해야 하고, 집필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검정을 통과하지 못해 교과서 발행이 제한된다. 임우선 imsun@donga.com·우경임 기자}
헌법 전문에 명기된 ‘자유민주’라는 표현을 ‘민주’로 바꾸려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개헌안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무총리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통해 교육부가 새로 마련할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도 ‘자유’를 빼려는 시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교육계에 따르면 평가원은 지난달 26일 열린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 공청회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모두 ‘민주주의’로 대체한 집필 기준 시안을 공개했다. 평가원은 지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따라 지난해 8월부터 새 집필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총 3차례의 공청회를 열었다. 집필 기준은 출판사들이 집필하는 교과서의 검정 기준이다. 새 집필 기준에 따라 만들어질 역사 교과서는 2020년부터 중고교에 적용된다. 이번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었던 중학교 교육과정 소주제명이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바뀌는 등 ‘자유’란 표현은 모두 삭제됐다. 공청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번 시안에서는 논란이 된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바뀌었다. 또 ‘북한 정권 수립’과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등이 학습 요소로 실렸다. 경제 성장의 성과 서술은 축소됐고 문제점 언급은 늘었다. “민주화 과정을 강조하는 동시에 북한사 관련 서술을 늘린 것도 특징”이라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앞서 지난해 9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한 공청회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같은 움직임에 보수 진영은 크게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를 사회민주주의나 다른 이념으로 바꾸려는 힘이 작동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육부는 “새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 대한 의견 수렴은 2월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라며 “공청회에서 제시된 시안은 교육부 안이 아니며 확정된 것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2+4년 편입 체제’였던 약학대학 진학 방식이 2022년부터 ‘6년제 신입 선발’ 병행 체제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는 1일 서울교대에서 약대 학제 개편 방안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정부가 마련한 정책건의안을 공개했다. 교육부는 “현행 ‘2+4년 편입 체제’와 더불어 ‘통합 6년제’를 병행하는 안을 건의한다”며 “대학별 여건에 맞게 대학 자율로 선택하되 각 대학은 하나의 학제만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약대는 4년제 체제였다. △해외의 약대가 대부분 6년제라는 점 △약사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2006년 법 개정을 통해 2009년부터 현재의 ‘2+4 편입 체제’로 바뀌었다. 2년을 자연계나 이공계 대학 등에서 공부한 뒤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을 치러 약대 1학년으로 편입해 4년을 다시 공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공계생의 이탈 문제가 심각해졌다. 공청회 발제를 맡은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매년 약대 편입생 1800여 명 중 화학·생물계열이 1100명 이상”이라며 “이런 현상이 10년 동안 지속될 경우 1만 명 이상의 기초과학 인력이 유출돼 기초학문 황폐화가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약학교육의 기초교육과 전공교육의 연계성 약화와 PEET 준비를 위한 대학생의 사교육비가 많이 드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교육부는 전문가 정책협의를 바탕으로 고교 졸업 신입생을 선발해 약대에서 대학 1학년부터 6년을 수학하는 통합 6년제를 제안했다. 다만 학내 협의 과정에서 6년제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대학을 위해 ‘2+4 체제’도 함께 열어놓기로 했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올해 고1이 될 학생들에게 적용될 내신평가 기준이 나왔다. 올해 고1부터는 ‘2015 개정교육과정’의 적용을 받아 교과 편제나 과목명 등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다. 이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과연 새로운 교과의 내신평가가 어떻게 이뤄질지 궁금증이 컸다. 내신평가 기준은 적어도 지난해에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대선에 따른 정부 개각 등 여러 변수가 겹치면서 신학기 시작을 한 달 남겨둔 지금 기준이 나왔다.○ 공통과목은 5단계, 진로선택은 3단계 교육부는 31일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일부개정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고1은 새롭게 생긴 공통과목들을 A부터 E까지 5단계로 평가받는다. 공통과목에는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이 포함된다. 단 과학탐구실험 과목은 공통과목군에 속해 있긴 하지만 실습적 성격이 강해 A∼C의 3단계로 평가한다. 5단계 평가에서 A∼E를 가르는 기준은 △A: 성취율 90% 이상 △B: 80% 이상∼90% 미만 △C: 70% 이상∼80% 미만 △D: 60% 이상∼70% 미만 △E: 60% 미만이다. 3단계 평가에서는 △A: 성취율 80% 이상 △B: 60% 이상∼80% 미만 △C: 60% 미만으로 나뉜다. 공통과목이 아닌 선택과목 평가는 어떨까. 2015 개정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들이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과목의 범주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선택과목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가 큰 관심을 받았다. “성적 걱정 없이 소질과 적성에 따라 학생들이 진정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하려면 평가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그렇게 하면 학업을 소홀히 할 수 있으니 적정 수준의 평가 틀은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입장이 맞서 왔던 사안이다. 선택과목 평가에 있어 교육부는 △일반선택 과목은 종전과 같은 5단계 평가 틀을 유지하고 △진로선택 과목들만 3단계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일반선택 과목은 보다 학습적인 성격을 띤다. 진로과목은 새로 생긴 과목이 많고 실생활·현장 중심이 많다. 예컨대 공통과목인 ‘통합사회’ 이수 후 배우는 일반선택 과목 중에는 한국지리, 세계사, 경제, 사회·문화 등 기존과 비슷한 과목이 많다. 진로선택 과목에는 ‘여행지리’ 등 신생 과목이 다수 있다. 새 평가기준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고교 학생부에는 A∼E 또는 A∼C로 구분되는 절대평가 성적 외에도 과목별 석차 등급(9등급)에 따른 상대평가 성적도 함께 병기된다. 이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3등급으로 성적을 매기는 과목이더라도 9등급 상대평가 점수가 병기되는 한 학생들은 내신경쟁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육부는 학생부에서 상대평가 성적 병기를 없애는 고교 내신의 절대평가 여부를 8월까지 결정해 대입제도개편 정책과 함께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수능 개편 혼선 여파로 고교 내신 절대평가 여부 결정까지 연기되다 보니 학생들로서는 새 교육과정 평가기준이 나왔어도 여전히 많은 것이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 “공동 교육과정으로 강남만 득볼 것” 우려 교육부는 이른바 ‘공동 교육과정’이라고 불리는 학교 간 통합 선택교과의 성적처리 지침도 신설했다. 이 지침도 논란이다. 공동 교육과정은 원래 도서 산간지역 고교처럼 학생 수가 적어 다양한 선택과목을 만들기 어려운 학교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희망 학생이 적거나 교사 수급이 어려운 소인수·심화과목에 대해 여러 학교가 공동으로 과목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런 과목은 학생 수가 워낙 적어 상대평가가 쉽지 않다. 교육부는 수강생이 13명 이하인 과목의 경우에 한해 석차 상대평가 결과를 내지 않고 절대평가를 하도록 해 왔다. 그런데 이번 개정령에서 교육부는 “학생의 과목선택권을 확대하고 공동 교육과정을 활성화하겠다”며 수강생이 13명이 넘는 경우에도 석차등급을 매기지 않고 절대평가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계는 우려를 나타냈다. 학생들의 내신 부풀리기를 위해 인접 학교끼리 공동 교육과정을 다수 만들고 해당 과정에 학생들을 몰아넣어 내신 절대평가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상대적으로 내신에 불리했던 서울 강남지역 등 교육특구 학교들이 막대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예컨대 강남의 A학교와 B학교가 공동 교육과정을 신청해 운영하면 학생들은 석차 경쟁 없는 내신 절대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비교육특구 지역 학교들도 이런 식의 운영을 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적극적일 가능성이 크고 대입에서도 교육특구 학교들보다 낮게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는 “각 학교단위별로 개설 가능한 과목까지 공동 교육과정으로 개설하지 않도록 시도교육청의 관리감독을 주문할 것”이라며 “공동 교육과정을 개설하려면 시도교육청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취지를 벗어난 공동 교육과정이 난립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시업계의 한 전문가는 “학교들이 시도교육청의 관리감독 구멍을 찾아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며 “반대로 시도교육청 관리로 공동 교육과정 개설이 제한된다면 활성화를 위해 절대평가 가능 인원 제한을 풀겠다는 교육부의 취지는 무색해진다”고 지적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올해부터 사회적 갈등이 따르는 교육정책을 세울 때 국민 의견을 듣는 ‘국민참여 정책 숙려제’가 도입된다. 최근 교육부가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를 결정했다가 전면 재검토로 입장이 바뀌는 등 정부 정책 발표 때마다 극심한 국민 반발과 여론 악화로 결정을 유예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교육부는 29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년 정부업무보고’에서 올해 시행할 새 정책 중 하나인 국민참여 정책 숙려제를 소개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교육부 ‘온교육’ 사이트 등을 통해 국민 의견을 접수하고 △이를 반영해 30일에서 6개월 이상까지 숙려기간을 가진 뒤 △정책 결정 후 배경 및 사유를 상세히 밝힌다는 것이다.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모두발언을 통해 “일부 교육 시책이 혼선을 빚거나 찬반 논란을 부른 경우가 있다”며 “정책 영향을 받는 국민 의견을 반드시 듣고 수렴한 뒤 정책으로 다듬는 절차를 확립하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올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을 대상으로 숙려제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점검해 대상을 선정할 예정이다. 최근 논란이 된 교육 정책 중 대입제도 개편, 유치원·어린이집의 영어 특별활동 금지 등도 숙려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예를 들었다. 다만 박춘란 차관은 “대입제도 개편은 의견 수렴 기간의 연장 없이 예정대로 8월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통해 학부모들이 강하게 요구한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금지 철회’도 숙려제의 대상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 “이미 정책이 결정된 사안이라 (어렵고) 초3부터 하도록 돼 있는 영어 정규과정 내실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부에서는 국민참여 정책 숙려제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우려도 나온다. 의견을 받고도 반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부는 지난해 초 1, 2학년 방과후 영어에 대한 학부모 설문을 실시해 70%가 넘는 지지를 확인하고도 금지를 강행했다. 한편 교육부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 △고교학점제 도입 △국립대 및 지방대 지원 강화 △저소득층 교육지원 강화 △아동학대 의심학생 점검관리 시스템 구축 등 기존에 발표한 국정과제 및 관련 정책을 이날 종합해 보고했다.세종=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폐교 명령 후 교육부는 ‘학생들은 전원 인근 대학 유사학과로 특별편입학되니 걱정할 것 없다. 학습권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이미 편입을 포기한 선배도 있어요.” 올 8월 전북 남원시에 위치한 서남대 교육대학원 졸업을 앞둔 직장인 김진수(가명·34) 씨는 말끝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공대를 나와 유통업에서 일해 온 그는 서른 살이 넘어 대학원생이 됐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전기과목 고교 교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대학원을 다니려고 2년 반 동안 회사에서 야간 근무를 자처하며 생활했다. 졸업까지 딱 두 과목만 남은 상태였다. 갑자기 학교가 폐교됐다. 졸업을 하려면 인근 학교로 특별편입학을 해야 했다. 인근에 전기 분야 교육대학원이 있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문제는 이 대학이 편입 이전 학교에서 이수한 학점의 3분의 1만 인정한다는 것. 결국 1학년부터 다시 다니는 셈이 됐다. 김 씨는 “또 2년을 등록금과 왕복 교통비를 대며 1000만 원 넘게 써야 한다”며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전북 군산에서 충남까지 다니려면 직장도 문제다”고 말했다.○ 특별편입 지원도, 졸업도 문제 교육부 규정에 따르면 대학이 폐교될 경우 학생들은 인근 대학의 동일·유사학과로 전원 특별편입된다. 지원은 3개 대학까지 가능하고, 시험은 필기시험 없이 면접이나 학점 등 대학별 자체 심사기준에 따른다. 교육부는 “대학이 폐교되더라도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원래 대학보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으니 남는 장사 아니냐”며 폐교한 대학 편입생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서남대와 강원 동해시의 한중대 학생들은 특별편입으로 적잖은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서남대생 이모 씨는 1월 5일 원서마감이었던 특별편입 공지를 3일 전에서야 알았다. 그마저도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다 알게 된 것이었다. 이 씨는 “우편으로 부치면 혹시 늦어질까 봐 직접 해당 대학까지 달려가 원서를 냈다”며 “어떻게 학교도 정부도 일정 공지조차 제대로 안 하는지 화가 났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학교까지의 거리나 전공 유사성을 따져보면 편입할 만한 학교가 몇 없고, 편입하더라도 학점 인정 기준이나 커리큘럼이 달라 제때 졸업을 할 수 없는 상황 등을 우려했다. 손민석 한중대 총학생회장(간호학과)은 “우리 과만 300명이 움직여야 하는데 교육부조차 인근 간호학과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더라”며 “같은 간호학과라도 커리큘럼이나 학점 기준이 달라 예정대로 제때 졸업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학비와 생활비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이정학 동해시의원은 “지역 대학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지역 주민의 자녀들이 많다 보니 편입 후 학업 잇기가 쉽지 않은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2014년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대학 구조조정 국정감사 자료집에 따르면 폐교 대학의 경우 재학생의 편입률이 44%(2014년 기준)에 그쳤다.○ 편입 학생들 ‘왕따’ 당하기도 편입까지도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편입 이후는 더 문제다. 학생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편입한 학교 학생들과 벌어지는 마찰과 감정싸움이다. 한중대 학생 김모 씨는 “편입할 학교 학생들이 우리 학교 학생들의 입학을 반대하며 페이스북이나 학과 관련 카페에 공격과 비하성 글을 올려 상처받은 친구들이 많다”며 “싫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우리도 원해서 편입하는 게 아닌데 속상하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서남대 학생 이모 씨도 “일부에서는 ‘학벌 세탁하니 좋겠다’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학생들 대부분 각자 형편에 맞춰 학교에 온 것이고 다니던 학교에서 졸업하길 원했다”고 밝혔다. 편입 대상 학교 또는 학과의 위상이 높고 경쟁이 치열한 곳일수록 학생 간 갈등은 더욱 심하다. 최근 전북대 의대 학생·학부모가 서남대 의대생들의 편입을 반대하며 서울까지 상경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교수진과 교육시설은 그대로인데 편입생으로 학생수만 늘면 강의는 물론 실습에서도 막대한 차질이 빚어진다”며 “정부가 폐교 대학 학생들의 학습권만 중시하고 이들을 받아야 하는 학교의 학습권은 무시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학령인구 급감 추세 속에 앞으로 대학 폐교가 증가할 것은 분명하다. 폐교 정책 수립에서 폐교 대학 학생 및 인근 학교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한 세심하고 선제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이유다. 문상준 한중대 광고디자인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은 교육부의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으로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킬 수 없다”며 “어른들의 잘못으로 학생들이 애꿎은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동해=임우선 imsun@donga.com / 남원=김호경 기자}

22일 찾은 강원 동해시 한중대 교수회관. ‘ㄱ’자 간판이 떨어져 나가 ‘ㅛ수회관’이라고 적힌 거대한 건물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막한 긴 복도의 방문마다 적힌 이름만이 이곳의 옛 주인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한중대에서 유일하게 마주친 교수 한 명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자신의 승용차에 연구실 짐을 담은 라면상자를 싣고 있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폐교에 교수고 직원이고 다들 길에 나앉을 형편”이라며 “재취업할 곳도 마땅치 않고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시 서남대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18일 학교에서 만난 한 교수는 “시간강사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2년 넘게 이어진 대학의 임금체불로 은행 대출은 물론이고 집까지 내다 팔았다. 가정도 깨졌다. 홀로 월세 원룸에 살고 있는 그는 “형편이 어려워 양육권 주장도 못 하고 이혼했다”면서 “지금도 양육비를 제대로 보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10년 이상 가입’ 조건 사학연금, 그림의 떡 학령인구 급감 속 대학 폐교는 피할 수 없는 한국의 ‘결정된 미래’다. 한 대학만 무너져도 수백 명의 교직원이 실직한다. 한중대와 서남대 폐교로만 총 570명의 교직원이 실직했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수백, 수천 명의 생계가 위태로워진 셈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없다. 전 한중대 행정직원 김만기(가명·52) 씨는 2015년 계속되는 임금체불을 견디다 못해 학교를 나왔다. 그는 한중대에서 9년이나 일했지만 학교를 그만둘 때에야 자신이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의 교직원은 실업급여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실직하면 퇴직금과 별도로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월 최대 180만 원씩 최대 9개월간 실업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사학연금법 적용을 받는 이들은 고용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학연금은 10년 이상 가입해야 받을 수 있다. 전윤구 경기대 법학과 교수는 “법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학교만 세우면 학생이 모집되는 고도 성장기였고 대학의 폐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결국 김 씨는 한중대를 그만둔 후 골프장 잔디 깎는 일을 구할 때까지 8개월을 대출과 지인에게 빌린 돈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폐교 후 재산 청산도 쉽지 않아 대체 한국엔 지속 가능성도 없는 대학들이 왜 이리 많은 걸까. 교직원들은 “부실 사학을 난립하게 한 건 정부인데 정작 교육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분개한다. 한국에 대학이 급증한 건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대학 설립 기준이 바뀌면서부터다. 그전까지 4년제 대학을 세우려면 최소 33만 m²의 학교부지와 부지 비용 외에 1200억 원 이상의 재원 등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교육부는 ‘백화점식 종합대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특성화된 대학이 필요하다’며 인가 기준을 확 낮췄다. 부실대 난립 우려가 제기됐지만 감사를 통해 사후관리를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자고 나면 대학이 하나씩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이 늘었다. 전문대도 너도나도 4년제 대학으로 전환했다. 교육부의 관리감독은 말뿐이었다. 2013년에는 사학비리를 감독해야 할 교육부 감사담당자가 오히려 서남대 설립자에게 뇌물을 요구해 수년간 수천만 원을 받아 챙긴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후 교육부는 “비리 대학이 문제”라며 부실 대학들에 관선이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한중대 직원들은 “2004년 이후 파견된 관선이사들은 정작 경영권을 쥐고도 대학 정상화 의지가 없었고 이사회에 참석해 수당만 챙겨갔다”고 꼬집었다. 학교가 무너지면서 교직원 임금은 체불됐다. 수년간 1인당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 이상 임금이 밀렸다. 전윤구 교수는 “앞으로 학령인구 감소로 ‘서서히 말라죽는’ 대학들이 늘게 되면 여기저기서 임금 체불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이 체불 임금을 받을 길은 폐교 후 대학의 재산을 청산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청산 자체가 쉽지 않고 기약도 없는 게 문제다. 우남규 한국사학진흥재단 대학구조개혁지원팀장은 “지방 대학들은 대체로 시에서 떨어진 외곽에 자리한 데다 부지나 건물 덩치가 워낙 커 사겠다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재활용 가능성이 극히 낮은 게 폐교 대학 청산의 숙제”라고 말했다.동해=임우선 imsun@donga.com / 남원=김호경 기자}

22일 찾은 강원 동해시 한중대 교수회관. ‘ㄱ’자 간판이 떨어져 나가 ‘ㅛ수회관’이라고 적힌 거대한 건물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막한 긴 복도의 방문마다 적힌 이름만이 이 곳의 옛 주인을 짐작케 할 뿐이었다. 한중대에서 유일하게 마주친 교수 한 명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자신의 승용차에 연구실 짐을 담은 라면상자를 싣고 있었다. 그는 “갑작스런 폐교에 교수고 직원이고 다들 길에 나앉을 형편”이라며 “재취업 할 곳도 마땅치 않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시 서남대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18일 학교에서 만난 한 교수는 “시간 강사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2년 넘게 이어진 대학의 임금체불에 은행 대출은 물론 사채까지 끌어다 쓴 상황이었다. 가정도 파탄 났다. 홀로 월세 원룸에 살고 있는 그는 “힘없는 애비라 양육권 주장도 못하고 이혼했다”며 “지금도 양육비를 제대로 보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 실업급여도 못 받는 사립대 교직원 학령인구 급감 속 대학 폐교는 피할 수 없는 한국의 ‘결정된 미래’다. 한 대학만 무너져도 수백 명의 교직원이 실직한다. 한중대와 서남대 폐교로만 총 570명의 교직원이 실직했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수백, 수천의 생계가 위태로워진 셈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없다. 전 한중대 행정직원 김만기 씨(가명·52)는 지난 2015년 계속되는 임금체불을 견디다 못해 학교를 나왔다. 그는 한중대에서 9년이나 일했지만 학교를 그만둘 때에서야 자신이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의 교직원은 실업급여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실직하면 퇴직금과 별도로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월 최대 180만 원씩 최대 9개월간 실업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사학연금법 적용을 받는 이들은 고용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학연금은 10년 이상 가입해야 받을 수 있다. 전윤구 경기대 법학과 교수는 “법이 만들어질 때만해도 학교만 세우면 학생이 모집되는 고도성장기였고 대학의 폐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결국 김 씨는 한중대를 그만 둔 후 골프장 잔디깎는 일을 구할때까지 8개월을 대출과 지인에게 빌린 돈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 부실대 양산한 정부 실책, 교육부는 뒷짐만 대체 한국엔 지속가능성도 없는 대학들이 왜 이리 많은걸까. 교직원들은 “부실 사학을 난립시킨 건 정부인데 정작 교육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분개한다. 한국에 대학이 급증한 건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대학설립 기준이 바뀌면서부터다. 그전까지 4년제 대학을 세우려면 최소 33만㎡의 학교부지와 부지 비용 외에 1200억 원 이상의 재원 등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백화점식 종합대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특성화된 대학이 필요하다’며 인가 기준을 확 낮췄다. 부실대 난립 우려가 제기됐지만 감사를 통해 사후관리를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자고나면 대학이 하나씩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이 늘었다. 전문대도 너도나도 4년제 대로 전환했다. 교육부의 관리감독은 말 뿐이었다. 2013년에는 사학비리를 감독해야 할 교육부 감사담당자가 오히려 서남대 설립자에게 뇌물을 요구해 수년 간 수천만 원을 받아 챙긴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후 교육부는 “비리 대학이 문제”라며 부실 대학들에 관선이사를 파견했다. 그러나 한중대 직원들은 “2004년 이후 파견된 관선이사들은 정작 경영권을 쥐고도 대학 정상화 의지가 없었고 이사회에 참석해 수당만 챙겨갔다”고 꼬집었다. 학교가 무너지면서 교직원 임금은 체불됐다. 수년 간 1인당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 이상 임금이 밀렸다. 전윤구 교수는 “앞으로 학령인구 감소로 ‘서서히 말라죽는’ 대학들이 늘게 되면 여기저기서 임금 체불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이 체불 임금을 받을 길은 폐교 후 대학의 재산을 청산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청산 자체가 쉽지 않고 기약도 없는 게 문제다. 우남규 한국사학진흥재단 대학구조개혁지원팀장은 “지방 대학들은 대체로 시에서 떨어진 외곽에 자리한데다 부지나 건물 덩치가 워낙 커 사겠단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재활용 가능성이 극히 낮은 게 폐교대학 청산의 숙제”라고 말했다. 동해=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남원=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옛말에 도시가 살려면 아이 울음소리, 아낙네 다듬이 소리, 책 읽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출산, 노령화, 폐교까지 삼재가 겹치며 희망이 없어졌어요.”(남원 시민) 지역 대학이 폐교될 때 주민들이 가장 아쉬운 것은 뭘까. 서남대가 자리한 남원시와 한중대가 자리한 동해시 지역 주민들은 한결같이 “사람이, 그것도 젊은이들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급격한 인구 감소로 한 사람이 귀한 지방 도시에서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빠져나가는 것은 사실상 한 지역의 미래에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남원시와 동해시는 모두 인구가 채 10만 명이 안 되는 소규모 도시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인구도 빠르게 줄고 있다. 남원시 인구는 2017년 주민등록기준 8만3281명으로 2000년(10만3571명)에 비해 2만 명 줄었다. 5명 중 1명이 사라진 것이다. 동해시도 마찬가지다. 2000년 10만3654명이었던 동해시는 2017년 9만2851명으로 줄었다. 이제는 한중대 폐교로 학생과 교직원, 그들의 가족까지 수천 명이 더 빠져나가게 됐다. 이들 지역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터라 문 닫는 대학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아쉬움은 크다. 지난해 남원시의 20대와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각각 8103명(9.7%), 2만1167명(25.4%)으로 노인 비중이 20대의 두 배 이상이었다. 동해시도 20대 인구가 9944명으로 전체의 10.7% 수준인데 반해 노인 인구는 17.1%(1만5881명)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소멸위험지역 지수로 보면 남원시는 소멸지수가 0.41에 이르러 소멸위험지역에 속한다. 소멸지수는 65세 이상 노인인구 대비 20, 30대 여성 인구(가임여성의 90%를 차지) 비중을 나타낸 것이다. 소멸지수가 △0.5 미만은 소멸위험 △0.5 이상 1 미만은 소멸주의 △1.0 이상 1.5 미만은 정상 △1.5 이상은 소멸저위험으로 분류된다. 올해 서남대 폐교로 서남대 재적생 2000명이 빠져나가면 남원시는 20대 4명 중 1명이 없어지는 셈이다. 남원=김호경 kimhk@donga.com 동해=임우선 기자}

30인분용 대형 밥솥에 냉기가 돌았다. 여기에 하루 대여섯 번씩 밥을 안치던 때가 있었다. 80석 규모인 홀은 학생들로 붐볐고 남편과 조리사, 주방 아줌마까지 3명이 일해도 주문이 밀렸다. 지금 주방에는 남편 혼자서 일을 한다. 불 앞에 있을 때보다 홀에 나와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18일 하루 종일 5000원짜리 짜장면 두 그릇을 팔았다. 2월 폐교를 앞둔 전북 남원시 서남대 인근 상가들은 18일 을씨년스럽게 텅 비어 있었다. ‘○○PC방, △△서점, ◇◇주점’ 등 빛바랜 낡은 간판이 활발히 영업했던 과거를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불 켜진 곳은 장옥자 씨(54·여) 부부가 운영하는 중국집뿐이었다. 장 씨의 고향은 남원이다. 1996년 전 재산을 들여 3층짜리 건물을 샀다. 2층은 중국집으로, 1, 3층은 원룸으로 대학생들에게 세를 놓았다. 10여 년간 몸은 고돼도 절로 웃음이 났다. 인근 상인들도 그랬다. 하지만 2010년 즈음부터 학생 수가 줄었다. 재단 비리 뉴스가 잇따랐고 급기야 폐교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부부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서남대 뉴스를 검색했다. ‘폐교만은 막아 달라’고 빌었다. 지난해 12월 서남대 폐교가 확정됐다. “이젠 다 끝났죠.” 장 씨의 말에 홀에서 쉬던 남편은 깊은 한숨만 쉬었다.○ 폐허로 변해 버린 대학가 원룸촌 폐교를 앞둔 서남대와 강원 동해시 한중대 인근에는 ‘대학가’였던 흔적만 남았다. 지난해 12월 교육부 폐교 결정이 나왔고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학생들이 떠났다. 끝까지 버티던 편의점도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도 있다. 대개 건물을 소유한 원룸 주인들이었다. 한중대 인근의 ‘OO원룸’에 사는 학생은 더 이상 없다. 한동안 비어 있던 무보증 월세 20만 원짜리 방에는 얼마 전 동해시 항만공사에 나가는 일용직 근로자가 몇 명 들어와 있다. 지난해만 해도 월세 40만 원을 받았으나 지금은 나가지 않아 절반으로 낮췄다. 월세와 사람이 적다 보니 전기료 난방비 수도료를 빼면 오히려 손해다. 원룸 주인 정덕규 씨(74)의 수입은 정부로부터 매달 받는 100만 원의 보훈급여뿐이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다. “월세만으로 200만 원 넘게 벌었는데 이제는 살기도 빠듯해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꾸릴지 막막합니다.” 서남대 인근의 유일한 원룸촌인 율치마을 사정은 더 심각했다. 한때 서남대생 1000여 명이 살던 마을은 이미 폐허로 변했다. 무보증 월세 5만 원짜리 방도 찾는 사람이 없다. 헐값에 건물을 매물로 내놓아도 팔리지 않았다. 방치된 원룸 곳곳은 곰팡이가 피었고 원룸 입구에는 주인 없는 우편물만 수북했다. 율치마을 박병오 통장(68)은 “예전엔 마트가 9개나 됐고 매일 밤 마을회관 앞에 포장마차가 섰는데…. 이제 하나 남은 마트도 곧 문을 닫고 민심까지 흉흉해졌다”고 말했다. ○ 마을뿐 아니라 도시 전체가 타격 폐교의 충격은 대학 인근에서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갔다. 경기 변동에 가장 민감한 택시기사 수입부터 줄었다. 서남대는 시내와 떨어져 있어 학생들이 자주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를 잘 이용하지 않는 노인이 많은 남원에서 서남대생들은 택시기사들에게 귀한 손님이었다. 30년간 택시 운전을 한 전재중 남원시개인택시조합장은 “예전엔 하루 10만 원도 거뜬히 벌었는데 이젠 5만 원도 못 가져간다”며 “지역 경기가 완전 바닥이다. 외환위기 때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2010년대 들어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남원지역 택배 물량도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1107만 통이던 남원시의 배달 물량은 2015년 780만 통으로 급감했다. 남원시내 유흥가에는 한 건물 건너 문을 닫은 가게 골목 풍경이 쉽게 눈에 띄었다. 동해시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정학 동해시의원은 “학생 1000여 명이 빠져나가니 지역 상권이 완전히 절멸한 상태”라고 밝혔다. ○ “지역 대학은 우리에게 대기업” 남원과 동해 모두 변변한 기업이나 공장이 없다. 대학이 지역경제의 가장 큰 버팀목이다. 대학 덕분에 그나마 젊은층과 외지인이 모였고 이들이 쓰는 돈이 지역경제를 돌게 했다. 학생, 교직원은 아니어도 지역주민 상당수가 대학이 간접적으로라도 생계와 연관이 있는 셈이었다. 전억찬 한중대 공립화추진 범시민대책위원장은 “다른 지역에선 관심 없겠지만 동해 주민에게 한중대는 지역문화와 교육은 물론이고 경제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이정린 서남대 정상화공동대책추진위원장 역시 “가장 큰 공장이 직원 500여 명인 남원에서 서남대는 현대나 삼성과 다름없었다. 우린 대기업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호소했다. 의대가 있는 서남대의 폐교로 의료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남원은 전북 장수 임실 순창, 전남 곡성 구례, 경남 산청 함양군을 아우르는 지리산권의 중심지로 도립 남원의료원이 인근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낙후지역이라 의사 구하기가 어려운 남원의료원으로서는 서남대 의대생은 젖줄이었다. 하지만 서남대 의대생이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면 앞으로 의사 구하기가 더욱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주민들은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과 비리 재단 퇴출이라는 명분 아래 지역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정상화 노력 없이 섣불리 폐교를 결정했다며 원망했다. “죄는 비리 재단이 짓고 피해는 학생, 교직원, 지역주민이 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서남대 정상화를 위해 교육부, 국회, 청와대까지 찾아갔던 이 위원장은 정부의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지금 정부 방식이라면 다른 지방대와 지역도 다 죽습니다. 비리 재단을 솎아 내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생계가 걸려 있는 사람을 봐주세요.”남원=김호경 kimhk@donga.com / 동해=임우선 기자}

강원도교육청이 3월부터 초등 1, 2학년들에게 하루 100분의 놀이시간을 제공하면서 하교시간을 오후 1∼2시에서 오후 3시로 늦추는 일명 ‘놀이밥 100분, 3시 하교’ 시범학교를 운영한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강원도교육청이 시도하는 이 사업은 모든 아이들에게 놀 권리를 확보해주는 동시에 학교 돌봄 기능도 강화해 학부모와 정부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장 교사들은 업무 부담 증가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하교 늦추고 놀이 강화에 반색 강원도교육청은 이번 신학기부터 10여 개 학교를 시범학교로 지정해 ‘놀이밥 100분, 3시 하교’ 사업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21일 밝혔다. 교육계에서 쓰는 ‘놀이밥’이란 용어는 아이들에게 놀이가 밥처럼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도교육청은 초등 1, 2학년 학생들에게 1교시 시작 전 30분, 중간 교시 사이에 40분, 점심시간 추가 30분 등 총 100분의 놀이시간을 제공하면서 하교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출 예정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생에게 놀이는 매우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며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면서 최근 늘어나는 학교의 돌봄기능 강화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모델을 찾다보니 나온 사업”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부모가 늘면서 초등 저학년의 빠른 하교시간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를 방과 후 수업시수 연장으로 해결하려 하면 저학년 학생들의 피로감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상희 부위원장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싶다’며 사업 브리핑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대체로 반색하는 분위기다. 초2 자녀를 둔 학부모 박지영 씨는 “놀이밥 100분을 통해 모든 학생의 하교시간이 오후 3시로 늦춰진다면 학부모의 돌봄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아이들도 어린 나이부터 학업에 치이지 않고 안전한 학교 공간 안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초등 1학년 시기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마의 시기’로 통한다. 취학 전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닐 때는 대부분 오후 3∼7시경 하원하던 아이들이 초등 1학년이 되면 오후 1∼2시에 학교를 마치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맘들에게는 빠른 하교 시간이 부담이 된다. 직장맘 김현주 씨는 “학원과 방과후 수업, 돌봄교실 등 여러 수단을 활용해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오후 1시면 하교하는데 우리 애만 늦게 하교하는 것 같아 많이 미안하다”며 “이리저리 이동을 많이 하다 보니 아이가 지치기도 하고 툭하면 아파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자녀가 초등 1학년일 때 많은 직장맘의 휴직 또는 퇴사가 집중되는 상황이다.○ 현장 교사들 “부담 너무 커” 반발 초등 1, 2학년의 하교시간이 1, 2시간씩 늦춰지면 그만큼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커진다. 이 때문에 현장 교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스스로 놀 줄 아는 고학년과 달리 저학년은 놀이 시간에도 ‘지도’가 필요하고, 안전사고 위험도 높아 수업이 아닌 놀이의 형태이더라도 시간 연장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초등교사 조모 씨는 “초등 1학년은 아이 하나하나에게 손이 많이 가고 에너지 소모도 커 이미 교사들 사이에선 기피 학년”이라며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 놀이밥까지 더해진다면 1학년 담임들은 쓰러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도교육청은 시범사업 운영을 통해 교사들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최대한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저학년은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교육청도 안전 문제를 가장 신경 쓰고 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안전요원을 붙이는 것이지만 예산상 어려워 자원봉사자 활용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강원도교육청의 이 같은 시도는 다른 교육청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안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우리도 놀이교육의 차원에서 학교별로 중간 놀이 시간을 30분 이상 갖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임우선 imsun@donga.com·김호경 기자}
“대학이 문 닫으면 우리 지역은 죽습니다.” 폐교를 앞둔 서남대와 한중대가 위치한 전북 남원시와 강원 동해시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폐교가 아직 1개월가량 남았지만 지난해 겨울방학부터 학생 대다수가 떠난 뒤라 지역 주민들은 이미 ‘폐교 이후’를 살고 있었다. 지역경제에 직격타를 맞은 것이다. 약 4년 뒤면 전국 곳곳에서 이런 폐교 후유증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대는 2022년, 4년제 대학은 2024년부터 학생 수가 모자라 본격적인 ‘폐교 도미노’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저출산 세대’의 시작으로 분류되는 2002년생 이후 출생아들로 대학의 전 학년이 채워지는 때다. 2002년에는 처음으로 한 해 출생아 수(49만 명)가 5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24일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연구에 따르면 대학의 모든 학년이 저출산 세대로 채워지면(전문대는 2022년, 4년제 대학은 2024년) 대학들은 존폐위기로 몰릴 전망이다. 지난해 말 현재 전문대와 4년제 대학 수는 각각 138개, 189개. 대학정원과 진학자 수를 바탕으로 추정한 결과 2022년 전문대는 43개, 2024년 4년제 대학은 73개가 필요 없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학들은 재정의 70% 이상을 학생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만큼 입학정원이 줄어들면 대부분의 대학은 심각한 생존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대학 정리를 시작했다. 지난해에만 서남대, 한중대, 대구외대 등 3개 대학에 교비 횡령, 임금 체불 등 정상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폐교 결정을 내렸다. 올 들어서는 국내 전문대 가운데 처음으로 대구미래대가 학생이 없다며 스스로 문을 닫았다. 전윤구 경기대 법학과 교수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줄 폐교’를 예상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동해=임우선 imsun@donga.com / 남원=김호경 기자}

엄마들은 다 안다. 교육부가 말하는 ‘경쟁 지향의, 학습 위주의, 비싼, 문제적 영어교육’은 초등학교나 유치원이 아닌 학원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대다수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이나 유치원 영어 특별활동은 공부라고 부르기 어려운 놀이식이다. 회화를 익히는 노래와 게임, 율동이 전부다. 시험도 없고 값도 싸다. 초등 방과후 영어수업은 주5회 50분 수업 가격이 월 10만 원 정도다. 이 같은 형태의 수업을 학원에서 들으려면 최소 월 50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 왜 교육부는 공교육의 영어만 못 잡아 안달일까. 학부모들이 분노하는 핵심이다. 엄마들은 다 아는 사실을 정말 교육부가 모르는 걸까. 진짜 문제인 학원 영어는 못 잡는 걸까, 안 잡는 걸까. 엄마들은 그 속내가 궁금하다.○ 학부모-교육부 끝없는 갈등 모든 갈등의 시작은 ‘영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배우는 게 옳다’는 교육부의 굳건한 교육철학에서 출발한다. ‘왜 초3이냐’라고 물으면 “많은 전문가가 그렇게 말하고 외국도 그렇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그 이전에 영어를 배우는 건 설령 놀이식이라 하더라도 경쟁을 조장하는 선행학습이며 불필요한 조기교육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학부모가 이 전제에 동의하지 않다 보니 영어교육 금지를 둘러싼 갈등의 폭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설령 동의했다 하더라도 많은 학부모가 “진짜 문제인 사교육부터 잡아라. 그래야 교육격차가 안 생기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교육부도 할 수만 있다면 둘 다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은 정책 몇 개로 쉽게 영어교육을 금지시킬 수 있는 반면 사적 영역인 영어학원은 제재가 매우 어렵다. 교육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교육부는 제재가 쉬운 공교육 영어라도 금지시키자는 생각이었지만 초등학교에 이어 유치원 영어교육까지 잇달아 금지하자 학부모들의 ‘분노의 뇌관’이 터진 것이다. 유치원 영어교육 문제를 1년 뒤에 결정하겠다고 밝힌 교육부는 “국민 의견을 고려해 사교육부터 잡겠다”며 내달부터 일명 ‘영어 유치원(영유)’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유아 영어학원 규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영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미 수년 전부터 계속됐음에도 교육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이것이 건드리기 싫을 만큼 몹시 골치 아픈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4년에도 영어 사교육 잡으려다 실패 교육부는 과거 딱 한 번 2014년에 영유 규제를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교육부의 지상과제는 사교육비 경감이었다. 영유의 고액 수업료를 규제하기 위해 사교육 종합대책에 영유의 원어민 강사 채용 금지 내용을 포함시켰다. 정책이 나온 배경은 이렇다. 당시 교육부가 영유 수업료를 따져 보니 비용 대부분은 원어민 강사 인건비가 차지했다. 교육부는 원어민 채용을 제재하기 위해 강사로 일할 때 필요한 ‘E2 비자’ 발급 제한 정책을 발표했다. 당장 학원계와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났다. 외국어 학원들이 속한 전국외국어교육협의회는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맞섰고 일부 학부모는 “헌법이 보장한 교육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위헌 소송을 내겠다고 반발했다. 외국인 비자 발급을 제한하자는 발상은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였다. 결국 해당 정책은 폐기됐다. 교육부는 이번만큼은 영유 단속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운영시간 제한’ 카드가 가장 유력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유아 대상 영어교육 시간의 상한선을 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며 “종일제 영유를 없애고 반일제만 허용하는 식의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학부모 “초등 방과후 영어 금지도 폐지” 교육부가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학부모들은 3월부터 시행되는 초등 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폐기도 주장하고 있다. 초2 자녀를 둔 학부모 강현주 씨(38)는 “방과후 영어수업 같은 놀이식 영어학원을 찾고 싶어도 학원은 놀이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없다”며 “학원은 학부모 기대치를 만족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어 공부식 수업이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자주 레벨 테스트를 봐 아이들을 더 큰 경쟁으로 내몬다”고 지적했다. 초등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폐기를 요청하는 학부모 요구가 계속되자 교육부는 이 같은 여론이 정치권 압박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교육부는 “초등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는 이미 정책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라며 “일선 교육청에 공문이 다 내려가 학교들도 방과후 수업을 정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교육부가 유치원·어린이집의 영어수업(특별활동) 금지 시행을 재검토해 1년 뒤 확정하겠다고 16일 밝혔다. ‘국민의 우려가 큰 만큼 의견 수렴 기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의 압박에 발표 시기만 미룬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민심 이반을 우려한 정치권 요구에 1년 뒤로 미루긴 했지만, 영어 조기교육에 반대하는 교육부 장관의 철학이 워낙 확고한 데다 이미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후 영어까지 금지했기 때문에 유치원·어린이집 영어교육을 허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날 교육부는 ‘영어교육 금지 철회까지 포함해 재검토할 것이냐’는 질문에 “말하기 곤란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정치권 압박에 ‘자승자박’에 빠진 교육부 교육부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최근 논란이 된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와 관련해 “이달 발표할 예정이었던 유치원 방과후 과정 운영 기준을 국민 의견을 수렴해 내년 초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신익현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적기 교육의 관점에서 유아들의 영어교육은 가능한 한 지양하고 금지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교육부의 원칙과 기조”라며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법과 관련해 국민들의 의견을 더 듣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견 수렴 기간을 갖더라도 1년 뒤 교육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어는 초등 3학년부터 배우는 것이 적기이며 그 전에 배우는 건 위법적인 선행학습’이라는 원칙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초등학교 학부모 설문조사를 통해 70%가 넘는 학부모가 방과후 영어수업에 찬성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금지 방안을 확정했다. 그럼에도 정책 발표를 1년 뒤로 미룬 것은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의 압박 때문이란 게 교육계 해석이다. 교육부는 이날 “시도교육청이 (교육부 방안에서 더 나아가) 유치원 영어 특별활동 금지 원칙을 정한다면 존중할 것”이라며 “그러나 영어교육을 ‘지양’이 아닌 ‘지향’하는 방향의 시도교육청 정책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영어유치원’ 제재한다지만 실효성 없을 듯 교육부는 이날 일명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 및 유치원의 고액 영어 방과후 수업을 다음 달부터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유아 영어학원의 인가 기준은 성인 대상 어학원과 같은 기준이라 새 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실질적 제재는 불가능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단 시설 안전 문제라도 들여다볼 것”이라며 “영어학원만 대상으로 하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미술, 음악 등 유아 대상 학원 전반을 점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바른정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영어수업 금지 관련 정책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 분위기는 교육부 성토장이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과외를 금지한) 전두환 정권 시절로 가는 것 같다. 부모 잘 만난 아이들만 영어를 잘하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거냐”며 영어수업 금지 철회를 요구했다. 학부모들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유치원생 자녀를 키우는 김정주 씨(37·여)는 “아이가 ‘하우아유(How are you)?’라는 질문에 옛날 교과서처럼 ‘아임 파인, 앤드 유(I‘m fine, and you)?’가 아니라 원어민처럼 ‘굿(Good)’이라고 답하길 원하는 게 부모 심정”이라며 “대체 정부는 이걸 왜 막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정미 씨(43·여)는 “이번 정부의 교육 정책만큼은 못 믿겠다”며 “학부모 의견을 안 듣고 정책을 밀어붙이는 걸 보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인 것 같다”고 말했다.세종=임우선 imsun@donga.com / 김호경 기자}

예전에 시골의 한 초등학교로 취재를 갔다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오후 4시쯤 전교생이 스쿨버스를 타고 하교하기에 당연히 집에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두 명의 아이를 빼고는 모두 지역아동센터로 간다고 했다. 다문화가정이 많고 아빠가 퇴근하기 전에는 마땅히 숙제를 봐줄 사람도 없다 보니 공부부터 저녁밥까지 모두 지역아동센터에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집엔 오후 8시가 넘어 가는데, 사실상 아이들에게 집이란 씻고 잠만 자는 곳이라는 게 교사의 설명이었다. 집이 ‘씻고 잠만 자는 곳’인 건 서울 등 도시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엄마 아빠가 모두 일하는 맞벌이 부부 자녀에게는 어린 나이에도 집에 머무를 권리가 허락되지 않는다. 많은 아이들이 아침부터 이른 오후까지는 어린이집이나 학교, 그 이후는 방과후 교실과 돌봄교실, 학원 등 ‘각종 기관’을 전전한다. 초등학교 2학년과 7세 자녀를 둔 한 직장맘은 “남편도 나도 툭하면 야근이라 아이들 학원을 최대한 빡빡하게 오후 8∼9시까지 짜뒀다”며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도시고 시골이고 아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집을 떠나 사는 경우가 많은 이상한 나라다. 물리적으로 ‘집’은 있지만 온정을 느낄 수 있는 ‘가정’은 없는 아이들이 많다. 한국의 ‘집’이 ‘가정’이 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그 집에 엄마 아빠가 없어서다. 엄마 아빠가 집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도 긴 노동시간 때문이다. 부모에게 집이 ‘씻고 잠만 자는 곳’이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집이 결코 가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가정이 없는데 가정교육이 될 리 없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아이가 ‘사건’을 일으킨 뒤에야 아이가 그럴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 교사는 “집에서도 챙기지 못한 아이를 학교와 사회 탓만 하는 걸 보면 답답하다”며 “모든 교육의 시작은 가정인데 갈수록 가정에서 안정감을 못 느끼는 아이들이 많아진다”고 걱정했다. 가정의 역할은 가정에서만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가정을 못 느낀 아이들이 커서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도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한국은 현실적으로 부모 교육조차 전무한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아무리 뛰어난 교사나 학원도 엄마 아빠의 역할을 대신할 순 없다. 부모와의 교감 속에서 아이들은 가정의 유대감을 체험하고 정서적 성장을 이룬다. 최근 부모답지 못한 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급격한 경제성장 속에서 수십 년간 한국에 ‘가정’이 아닌 ‘집’만 많아진 탓인지도 모른다. 정부는 그간 저출산 비상이라며 국민들의 결혼과 출산을 독려해 왔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결혼과 출산을 해도 정작 그 이후에는 긴 노동시간에 가정을 일굴 권리를 박탈당하는 게 한국인의 삶이다. 한국의 밤낮 없는 노동시간을 해결하지 않는 한 정부의 온갖 저출산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각종 보육정책과 교육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정부 역점과제로 ‘근로시간 단축’을 강조했다. 경제정책의 관점에선 논란이 큰 이슈다. 그러나 교육의 관점에선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엄마 아빠를 집으로 돌려보내 아이와 가정을 누리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시급한 제1의 교육정책이다.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국내 전문대 가운데 처음으로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자진해 학교 문을 닫은 사례가 나왔다. 교육부는 12일 “학교법인 애광학원이 신청한 대구미래대 폐지를 인가했다”고 밝혔다. 대구미래대를 운영하는 애광학원은 지난해 6월 “신입생 부족으로 재정난이 심각해 더 이상 대학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교육부에 폐교 인가를 신청했다. 교육부가 승인하면서 대구미래대는 올해 2월 28일자로 대학 문을 닫는다. 경북 경산에 위치한 대구미래대는 1998년 설립자 유족이 관선이사 체제에서 학교 운영권을 되찾기 위해 교육부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줬다가 구속되는 등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2015년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선 가장 낮은 E등급을 받았다. 2016년에는 E등급 대학 중에서도 상태가 심각해 상시 컨설팅 대상 대학으로 지정됐다. 학교 운영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대구미래대의 신입생 충원율은 지난해 34.8%까지 떨어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신입생 충원율이 30%대라는 건 학교의 등록금 수입이 3분의 1로 줄었다는 뜻”이라며 “이런 수준으로는 최소한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재원 마련조차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인구절벽’ 여파가 대학가로 본격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전문대 진학 추세가 앞으로 지속된다고 가정했을 때 2002년 이후 출생한 ‘저출산 세대’가 2년제 전문대의 2개 학년을 모두 채우는 2022년에는 전문대가 95개만 필요하다. 숫자만 놓고 봤을 때 현재 137개에 이르는 국내 전문대 가운데 42곳이 4년 뒤 없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조 교수는 “2019년에서 2020년 사이에는 전문대 진학 인구가 약 14% 축소될 것”이라며 “2020년부터 생존기로에 놓이는 전문대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학교의 자진 폐교로 갈 곳을 잃게 된 대구미래대 재학생 및 휴학생 264명은 규정에 따라 대구·경북지역 내 동일·유사학과에 특별 편입학할 예정이다. 만약 동일·유사학과가 없다면 인접 시도로 편입학 지역 범위가 확대된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라는 새 교육과정에 기초해 학교 수업을 받게 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지식 주입’이 아닌 ‘역량 향상’에 목표를 두고 있다. 평가 역시 지필평가보다 수업 중 학생의 참여활동 등을 관찰해 성장과정을 서술식으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 과정 중심 평가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학생들의 성장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뤄져야 한다. 교사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으로는 수업 중 학생의 성장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서술식으로 기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새 교육과정은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고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업방식을 활용하도록 권고한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재미있고 생활 속 경험과 연계되는 것들이 많다. ▽미디어 활용 수업(MIE·Media In Education)=참여형 수업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방식이다. EBS 지식채널e나 유튜브 동영상 등 수업 주제와 연계된 다양한 배경지식 동영상 등을 틀어주고 학생들의 관심을 끈 뒤 발표를 통해 각자의 지식 및 궁금증을 공유한다. 교과서의 지식을 보충하고, 비판하며, 내면화할 수 있는 영상 미디어 매체가 활용된다. ▽사진 활용 학습(PIE)=자유롭게 찍은 사진에 대해 글과 설명으로 표현하면서 창의력, 관찰력, 비판력, 발표력을 기르게 하는 방법이다. 생활 주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후 사진에 나타난 사실을 파악해 보는 활동을 통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넓히도록 한다. ▽신문 활용 수업(NIE)=신문을 교재로 하는 다양한 수업활동을 말한다. 찾기, 이해하기, 평가하기, 창조하기 순으로 난도가 높아진다. 기사 제목 만들기, 기사 추가하기, 인터뷰 기사로 바꾸어 쓰기 등 교사의 아이디어에 따라 사회와 밀접한 수많은 연계활동이 가능하다. ▽포토 스탠딩(photo standing) 활용 탐구=신문이나 잡지 속 사진이나 그림, 광고지 같은 자료를 활용해 탐구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이다. 기초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거나 의견 모으기를 할 때 주로 이용된다. ▽비주얼 싱킹(visual thinking)=학습 내용을 이미지로 만들어 표현하는 수업활동이다. 모둠활동을 통해 상호협력할 수 있고, 학습 내용을 정리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핵심 주제를 선정하고, 이미지, 말풍선, 화살표 등으로 핵심 주제와 관련된 시각언어를 만들어 각자의 생각을 표현 및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제시된 자료의 연관성을 찾는 모둠활동을 진행할 때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 브레인스토밍에서 나온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지 않는 게 기본이다. 가능한 한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 있도록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한다. ▽브레인 라이팅(brain writing)=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아이디어를 생각해 종이에 기록하는 것.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도록 침묵을 지킨다. 이후 종이를 서로 돌려보며 아이디어를 추가해 나간다. ▽번개 토론=진행자가 참가자들에게 번개처럼 생각나는 질문을 갑자기 묻고, 참가자 역시 한 단어 또는 한 문장 정도로 짧게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답변을 할 학생은 무작위로 선정된다. 대답에 대해 비판해선 안 되고, 대답이 없으면 빠른 진행을 위해 바로 “통과”를 외칠 수 있다. ▽피라미드(pyramid) 토의=일종의 의견수렴 및 합의 방식이다. 주어진 논제에 대한 개인의 의견을 브레인 라이팅 기법을 활용해 1인당 4장의 빈 카드에 적는다. 이후 옆 사람과 1 대 1 토의를 거쳐 둘이 합친 카드를 4장으로 줄인다. 다시 다른 팀과 만나 2 대 2 토의 과정을 거친 뒤 카드를 총 4장으로 줄인다. 다시 그 4명이 다른 4명과 함께 토의한 뒤 카드 장수를 계속 줄여나가는 식이다. 최종적으로 남은 마지막 카드 4장은 전지에 붙이거나 칠판에 기록해 대표자가 전체 앞에서 발표한다. ▽하브루타=최근 교육계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교수법 중 하나로 둘씩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유대인들의 전통 학습방법을 일컫는다. 끝없는 질문과 답의 연속과정을 통해 깊이 있는 사고로 들어가는 것이 핵심이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집단활동을 해야 하는 교실 수업의 특성상 한계가 있을 수 있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