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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동안 전막오페라 다섯 편과 두 개의 갈라콘서트, 19개 무대. 풍요롭다고 하기 힘든 서울의 오페라 환경에서 오페라 팬들에게 샘물 같은 축제가 펼쳐진다. 올해 10회를 맞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다. 5월 17일∼6월 9일 서울 예술의전당. 2200여 석의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지는 전막오페라는 글로리아오페라단의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5월 17∼19일)을 시작으로 하는 세 편이다. 자유소극장에서는 박창민 ‘배비장전’ 등 소극장오페라 두 편이, 신세계스퀘어 야외무대에서는 5월 18일 갈라콘서트 ‘오페라 페스티벌 미리보기’가 공연된다. 국립오페라단은 ‘발퀴레’ 1막과 ‘파르지팔’ 3막을 연주하는 바그너 갈라 공연을 이틀 동안 연다. 창작곡인 호남오페라단의 지성호 작곡 ‘달하, 비취오시라’는 백제가요 ‘정읍사’를 토대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된 여인의 애절한 사연을 그렸다. 2017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초연됐다. 박창민 작 ‘배비장전’은 한국인의 영원한 바람둥이상인 배비장을 소재로 2015년 처음 공개된 작품이다. 1인 2장씩 판매하는 페스티벌석은 75% 이상 할인하는 2만, 3만 원으로 판매된다. 페스티벌 10주년을 기념해 10세부터 20세, 30세 등 10세 단위 나이 해당자(60세까지)는 30% 할인받을 수 있다. 25% 할인 혜택이 있는 가족패키지(4인 이상 가족)도 판매한다. 오페라 팬이 직접 무대에 서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5월 18일 오페라 갈라콘서트 오프닝 무대의 일부로 마련된 ‘도전 오페라스타’다. 카카오톡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친구 추가 후 직접 부른 오페라 아리아 또는 이탈리아 가곡 영상을 전송해 선발된 사람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하게 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시작할 때 신선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마칠 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이제 디토의 여행을 끝낼 때가 왔습니다.” 12년 동안 실내악에 대한 한국 청중의 반응을 새로 써내려간 앙상블 ‘디토’가 작별을 고한다. 음악감독으로 디토를 이끌어온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0)은 29일 만난 자리에서 “젊고 새로운 세대가 디토의 기억과 경험을 이어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앙상블 디토는 2007년 그의 주도로 창단됐고 2009년 디토 페스티벌로 발전해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 등 젊고 역량 있는 멤버들을 출연시켰다. ‘외면받는 장르’로 통하던 실내악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객석을 연속 매진시켰다. 도쿄, 상하이 등 해외 진출도 이뤘다. 올해 마지막 디토 페스티벌은 6월 12∼29일 예술의전당과 경기 고양아람누리에서 7회 공연을 갖는다. 오랜만에 만난 리처드 용재 오닐은 귀밑머리가 살짝 희끗해진 모습이었다. “실내악은 교향악처럼 피부를 진동시키는 큰 장르가 아니죠. 하지만 작곡가들은 자신이 간직한 우주의 비밀을 이 친밀한 세계에 풀어놓았습니다.” 그는 “디토를 이끈 힘은 ‘소통’이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가 대표하는 신기술이 인간을 서로 접속시키지만 그 접촉은 피상적인 데로 흐르기 일쑤죠. 예술이 주는 접속은 그런 피상적인 소통을 넘어서게 만듭니다.” 그는 음악감독으로서 멤버들에게 때로 힘든 예술적 요구도 했음을 내비쳤다. “제가 자란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사람들이 마음을 다 표현하지 않죠. 그렇게 자랐지만 ‘탁월함’에 도달하도록 멤버들에게 거듭 요구했었습니다. 제가 고약해서가 아니라(웃음),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었고 그런 목표로 연주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예전보다 유럽에서 더 많이 지내며 다양한 콘서트를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인 이번 디토 페스티벌은 그와 피아니스트 제레미 덴크가 협연하는 ‘환상곡’ 리사이틀(12일 고양아람누리,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시작해 12년간 디토 여정의 하이라이트를 돌아보는 ‘디토 연대기’(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2일 고양아람누리), 28일 동시대 음악을 다루는 디퍼런트 디토 ‘메시앙 그리고 최재혁’(예술의전당 IBK체임버홀)으로 이어진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덴크는 뉴욕타임스와 뉴욕타임스 북리뷰에 기고하는 피아니스트로, 연주도 글도 천재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디퍼런트 디토’의 주인공 최재혁은 2017년 제네바 작곡 콩쿠르 우승 뒤 창작음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곡가. ‘디토 연대기’에는 초기 인기 멤버였던 재키브를 포함해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은메달 수상자인 피아니스트 조지 리,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등이 출연한다. “음악회장도 쇼핑몰도 없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란 저에게 비올라는 꿈속에서 세상을 여행하게 만드는 수단이었습니다. 음악을 생각하며 눈을 감으면 지금도 저는 열 살 소년입니다.” 3만∼10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이 책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이 저자에 대한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그의 이름과 책의 제목만 보고도 충분히 논지를 예상할 수 있다. 강연록과 여러 매체에 기고한 에세이 등 7개의 글이 역시간 순으로 나열돼 통일된 체계로 묶여 있지 않으며, 각각은 1969년에서 2013년에 이르는 긴 발표시간에 걸친다. ‘자본주의와 문명 파괴’라는 핵심적 논점은 앞의 두 장으로 국한된다. 그러나 이 한계들은 장점도 된다. 언어학자이면서 정치평론가인 이 사상가가 긴 인생 여정에 걸쳐 풀어놓은 정치적 사색의 재료들을 일별할 수 있다. 현존하는 세계의 거의 모든 악(惡)을 자본주의와 미국에 쏟아놓는 그의 특징을 사전에 아는 한, 그의 분석은 투명하며 비교적 견고하게 읽힌다. 오늘날 세계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저자는 ‘RECD(really existing capitalist democracy)’로 칭한다. 약자를 한 단어로 그대로 읽으면 ‘난파하다, 부서지다’라는 뜻을 가진 ‘wrecked’와 발음이 같다. 미국 초대형 은행들이 수익을 못 내면 국가가 도와준다. 은행 주주들을 위해 보통 국민인 납세자들이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은행을 살려주는 것까지야 참을 수 있지만, 기업계의 로비는 학생들에게 기후 변화를 부인하는 학설을 ‘공평하게’ 가르칠 것까지 요구한다. 환경 재앙이 닥치면 긴급구제를 요청할 곳도 없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부는 다를까. 2009년 유엔 기후변화 회의를 좌초시킨 주인공은 당시 대통령인 오바마였다고 저자는 고발한다. 예정된 재앙을 뻔히 보면서도 탐욕은 지구적 파국을 향해 달려온 것이다. 이 책 후반부의 세 개 장은 동구권 붕괴 이전에 쓴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문명을 파괴하는 것이 자본주의만의 속성일까. 현대문명 고유의 자기 파괴적 속성과 자본주의의 속성을 뒤섞어놓은 부분은 없을까. 옛 공산권의 비효율과 환경 파괴도 극심하지 않았던가. 물론 저명 사상가 촘스키는 붕괴 이전의 현실 공산주의도 서슴없이 경멸해왔다. 그러나 그가 자본주의의 결과로 판단하는 시대의 모든 병리가 적절한 범주화를 거쳤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스위스가 다시 숨을 쉬도록 하자! 게슬러 총독, 이번에는 너를 향한 화살이다!” 조아치노 로시니(1792∼1868)의 마지막 오페라 ‘윌리엄 텔’을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한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꺾고 독립을 쟁취했던 스위스를 거울삼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공연이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무용단까지 출연자 250명, 연주시간 4시간에 이른다. 5월 10∼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3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의 연습실은 분노한 스위스인들의 봉기를 묘사하는 4막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다. “더 움직여요! 이렇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분노를 표현하세요. 지금은 마치 무기가 당연히 나올 걸 기다리는 것 같네요!” 불가리아의 여성 연출가 베라 네미로바가 양쪽 무릎을 치며 합창단을 독려했다. 37세 때 모든 명예와 부를 이미 지녔던 로시니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로 결심하면서 모든 역량을 이 작품에 쏟아부었다. 실러의 원작은 ‘빌헬름 텔’이지만 파리에서 ‘기욤 텔’로 190년 전인 1829년에 초연되었다. 이탈리아의 선율미에 프랑스 ‘그랑 오페라’ 스타일의 장려함을 결합했고, 호수의 폭풍 장면을 비롯한 스펙터클이 압도적이지만 극장의 통상 레퍼토리로 소화하기 부담스러운 규모 때문에 오늘날엔 12분가량의 서곡만 자주 연주되어 왔다. 13세기 초 오스트리아 총독 게슬러는 장대에 모자를 걸고 사람들에게 절을 하라고 명한다. 이름난 궁수 텔은 이를 거부하고, 게슬러는 벌로 텔의 아들 머리에 사과를 놓고 쏘기를 명한다. 화살은 사과에 꽂히고, 스위스인은 압정에 대항해 일어난다. 게슬러의 딸 마틸드와 스위스인 지도자의 아들 아르놀드의 사랑 이야기가 줄거리 라인에 재미를 더한다. 연출가 네미로바는 “모든 민족에게는 자신만의 윌리엄 텔이 있고 불가리아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비장하고 현대적인 연출로 극적인 묘미를 살리면서 유쾌한 상상력을 더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특히 아르놀드 역의 테너가 ‘고음의 극한’으로 불리는 C음을 19번이나 부르고 이보다 높은 C#음도 두 차례나 나온다. 이번 공연에는 2014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극장이 100년 만에 공연한 ‘윌리엄 텔’에서 아르놀드 역으로 출연해 오스트리아 음악극장상을 받은 테너 강요셉이 김효종과 함께 아르놀드로 출연한다. 강요셉은 “사랑과 애국심 사이의 고민만 너무 강조하기보다 아르놀드의 결단을 부각시키는 데 연기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표와 함께 타이틀 롤인 텔로 출연하는 바리톤 김동원은 “의지가 넘치고 강인한 주인공을 사실주의 오페라처럼 실감나게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아르놀드의 연인 마틸드 역에는 소프라노 정주희와 이탈리아의 세레나 파르노키아가 출연한다. 제바스티안 랑레싱 지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는다. 금 오후 7시, 토·일 오후 4시. 1만∼1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한국의 대표 실내악 축제로 자리 잡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14회째를 맞은 올해의 콘셉트는 ‘맛’이다. ‘음악과 미식’을 주제로 23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예술의전당과 세종체임버홀, 롯데콘서트홀 등 서울 시내 공연장과 종로구 윤보선 고택 등에서 14개 공연을 펼친다. 미식과 음악이 어떻게 만날까. 강동석 예술감독은 22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곡 한 곡에 의미를 담기보다 매일 공연 전체의 프로그램이 그려내는 그림을 통해 미식과 같은 음악의 즐거움을 찾아보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 혼자 공연하다 보면 외롭고, 음식으로 위로를 받는 음악가가 많다. 미식은 음악가의 친구”라며 웃음을 지었다. 23일 개막 공연은 스칸디나비아 뷔페 ‘스뫼르고스보르드’가 주제다. 5개 코스로 이뤄지는 바이킹 뷔페의 특징에 맞춰 다섯 개 작품을 연주하고 노르웨이 작곡가 스벤센의 현악5중주로 마무리한다. 24일은 ‘고기요리’를 콘셉트로 브루흐의 현악5중주를 비롯해 메인 코스를 연상시키는 육중한 작품들로 구성했다. ‘해산물’이 제목인 28일 공연에는 드뷔시의 ‘바다’를 비롯해 바다와 물을 연상시키는 곡들을 모았다. 이런 식으로 14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올해 출연진은 하피스트 이자벨 모레티, 첼리스트 라슬로 페뇌 등 국내외 연주가 60여 명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연주가는 조성진이 2015년 우승한 바르샤바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1980년 동양인 최초로 우승했던 베트남의 당타이선. 당시 그의 우승은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은 심사위원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등 일화도 낳았다. 당타이선은 4월 25일 세종체임버홀 연주에서 프랑크 피아노5중주에, 27일 롯데콘서트홀 콘서트에서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6중주 편곡판 등에 출연한다. 그는 “30여 년 전부터 한국에서 자주 리사이틀을 가졌지만 뛰어난 연주가들과 화음을 맞추는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되어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음악과 음식은 모두 타이밍의 예술이며 ‘레시피’를 뛰어넘는 직관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했다. 2만∼6만 원(28일 윤보선 고택 살롱콘서트는 1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2000년부터 19년 동안 국내 실내악 활동의 중심이었던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금호아트홀(사진)이 이달 말 역할을 마감한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25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의 ‘메모리즈 인 광화문’ 콘서트에서 추억과 작별의 의미를 담은 공연을 펼치겠다”고 19일 밝혔다.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지원해 온 젊은 연주가들로 구성된 실내악단이다. 이번 공연에는 피아니스트 김다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등이 브람스와 슈만의 작품을 연주한다. 금호아트홀 로비에서는 이곳에서 열렸던 공연들의 사진을 영상으로 상영할 계획이다. 390석 규모의 금호아트홀은 개관 이후 현악기와 피아노 듀오를 비롯한 실내악을 중심으로 900회 이상의 공연을 열었다. 금호아트홀이 있는 대우건설 빌딩에 새 입주자가 들어오게 되면서 운영을 중단한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앞으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기획하는 공연은 2015년 서울 연세대에 개관한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이어진다. 금호아트홀의 마지막 공연은 30일 열리는 김진승 바이올린 독주회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모기업과 재정적으로 독립돼 있으며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클래식 저변을 확대하고 젊은 음악인을 발굴하는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고위공직자 투기 논란과 낙태죄 폐지 논란이 큰 요즘은 도덕 또는 윤리에 관해 질문하기 가장 좋은 때인지도 모른다. 어떤 행위가 도덕적이고 어떤 행위는 아닌가. 도덕이 단지 상대적인 것이라면 무엇이 우리를 도덕적이라고 느끼게 하는가. 도덕을 얘기하는 데 여행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도덕을 얘기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며, 이 주제에 관해 핵심적인 논점을 이야기할 만한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로 책을 조립한다. 말하자면 다큐멘터리적 도덕론이다. 여성으로서의 두려움을 딛고 유명 살인 전과자를 자신의 방에 불러 ‘해외에서 외인부대원으로 살다가 도덕에 대해 이해한 뒤 자수하게 된 경위’를 묻는가 하면, 금융 부정 사건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저널리스트를 찾아가 금융가의 도덕성 문제를 묻는다. 저널리스트는 “기업에서 불법행위란 오늘날 단지 벌금, 즉 비용으로 치부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도덕 절대주의자의 입장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문화와 환경을 불문하고 공통으로 적용되는 도덕률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수많은 도덕 상대주의적 시각이 인용된다. 일본 기업 이사회의 비리를 폭로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는 회사를 중시하는 일본인들뿐 아니라 ‘가족을 저버린 것 아니냐’는 친구의 비난까지 받는다. 이는 마땅히 감수해야 할 비난일까. 한편으로 문화의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사람들의 이동이 잦은 오늘, 모든 집단의 사람에게 ‘우리’의 도덕률을 강제할 수 있을까. 저자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샌델이 정의를 다룬 것처럼 도덕에 대한 두세 가지 체계를 정리해 두지는 않는다. 독자가 다양한 견해들의 충돌과 상호 인정, 때로는 위배를 경험하며 답을 모색하도록 놓아둔다. “도덕에 대해 탐색하며 1년을 보낸 뒤, 떠오른 생각은 무한한 미래에도 (도덕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 계속되리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어떤 은하에 살게 되더라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왜 나를 깨우는가, 봄의 숨결이여, 왜 깨우는가?/내 얼굴에 네 애무를 느끼노라,/그러나 슬픔의 시간은 다가오는구나….” 마스네 오페라 ‘베르테르’ 3막의 테너 아리아 ‘왜 나를 깨우는가’다. 괴테의 소설로 알려진 주인공 베르테르가 연인 앞에서 옛 시인의 시를 읽으며 이루지 못할 열정을 분출하는 노래이지만, 봄이면 오페라 팬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선율이기도 하다. 프랑스 낭만주의 오페라 작곡가 쥘 마스네(1842∼1912)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베르테르’를 서울시오페라단이 다음 달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세종문화회관 내 연습실에서는 17일 피아노 옆 지휘단 위에 앉은 양진모 지휘자와 김광보 연출가의 주도로 4막 베르테르의 절명 장면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번 공연에는 서울시극단 김광보 단장이 처음으로 오페라 연출에 나섰다. 김 단장은 2013년 연극 ‘그게 아닌데’, 2015년 ‘줄리어스 시저’로 한국 연극계 대표 제전인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바 있다. “나는 죽어요…. 잘 들어요. 저기 묘지에 라임 나무 두 그루가 있어요. 그곳이 내가 영원히 쉴 자리예요!” “아, 어떻게 해! 베르테르!” 남녀 주역인 테너 신상근·메조소프라노 김정미(1, 3일), 김동원·양계화 씨(2, 4일)는 번갈아 최후의 2중창을 노래하며 연기의 최적점을 찾느라 열심이었다. 쓰러진 베르테르를 샤를로트(독일어 원작에선 샤를로테)가 부둥켜안은 채 연습실 바닥을 네다섯 차례나 함께 구르기를 반복했다. 죽어가는 장면이지만 보는 이의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주역들의 밀착 연기는 농밀했다. “2000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초연을 연출했죠. 그때 베르테르의 자살 동기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어요. 이번에 오페라를 하면서 마스네의 음악에 몰입해 보니 매우 뜨거운 격정의 드라마였고, 베르테르의 죽음에 대한 동기를 샤를로트가 계속 부여하더군요.”(김광보 연출가) “맞아요. 이 오페라에서의 샤를로트는 ‘팜 파탈’적인 면이 있어요. 베르테르가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도록 계속 미련을 갖게 만들죠.”(샤를로트 역 김정미) 김광보 연출가는 원작과 다른 샤를로트의 성격을 부각하고 무대 배경을 현대로 설정했다. 비도 내리고 눈도 내리는 사계절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표현하겠다고 밝혔다. 베르테르 역을 맡은 신상근은 2018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구노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역으로 데뷔한 뒤 비제 ‘진주조개잡이’의 나디르 역 등 프랑스 오페라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활약 중이다. 그는 “독일 하노버와 브레멘 극장에서도 베르테르 역으로 공연해 주인공의 내면에 친숙하다. ‘샤를로트의 세계’에 갇혀 못내 탈출하지 못하는, 슬프고 젊은 베르테르를 절절히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3만∼12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스물다섯. 베이스 길병민은 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7년 그는 제57회 동아음악콩쿠르 성악부문 1위를 차지했다. 2015년 2위 입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2년 동안 치열하게 준비한 결과였다. 이후 그의 도전은 날개를 달았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국제성악콩쿠르, 빈 오토 에델만 콩쿠르, 조지아 오페라크라운 국제콩쿠르 첫 대회 우승,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콩쿠르 준우승이 폭발적으로 이어졌다. 올해 3월에는 베이스 일다르 압드라자코프가 개최한 압드라자코프 음악페스티벌에서 노래하며 전 러시아의 주목을 받았던 그가 ‘봄’을 주제로 세 차례 청중과 만난다. 20일 오후 5시 부산문화회관 챔버홀, 23일 오후 7시 반 대구 수성아트피아 무학홀, 30일 오후 8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으로 이어지는 ‘2019 길병민 봄내음 콘서트’다. 그의 노래는 때 이른 완숙함이 만개한 젊음과 어울린다. 노래의 성격에 따라 밝고 어둑한 공명의 질을 날렵하게 바꾸고, 품위를 갖춘 가사 해석이 함께한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비롯한 수많은 콩쿠르와 리사이틀 실황에서 그의 다양한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길병민 TV’도 열었다. 이번 세 차례의 콘서트에는 2016년 처음으로 도전한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서울대 성악과 동갑내기로 나란히 결선에 진출했던 테너 박기훈, 그리고 피아니스트 성현과 소프라노 박예랑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1부에서는 라흐마니노프 ‘알레코’ 중 ‘알레코의 독백’을 비롯한 오페라 아리아를, 2부에서는 최근 창작곡을 중심으로 한 한국 가곡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난달 압드라자코프 페스티벌 출연은 길병민이 스스로 용기를 낸 것이 계기가 됐다. 올해 42세인 압드라자코프는 러시아 정치계의 압도적 후원을 받고 있는 베이스. 6월 12일 테너 롤란도 비야손과 함께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듀오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 그가 갈라쇼에 출연할 성악가들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길병민이 직접 출연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의 노래를 들은 압드라자코프는 “당신은 이제 후배 성악가가 아닌 동료”라며 그를 격려했다. 전석 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거짓말이 흘러넘친다. 핵 폐기를 논의하는 지도자들 테이블 위에, 성폭력을 둘러싼 권력자나 연예인 증언 속에, 주변인 처신을 질타하는 게시물에도. 개인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를 맞아 거짓말은 수량으로나, 정교함으로나 전성기를 구가하는 듯 보인다. 최강국 지도자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도 어제오늘이 아니라 금세기 초반 이라크전부터 낯설지 않다. 이 책은 거짓 뉴스를 분별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거짓말의 폐해를 질타하는 것도 목적이 아니다. 저자는 ‘거짓말’을 철학적,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그 개념의 뼈대가 하얗게 드러날 때까지 파헤친다. “거짓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가려볼 줄 알 때만 논의가 엉뚱한 곳에서 헤매거나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말이란 인식론적으로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자. 세상에는 (단일한) 진실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이란 것도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거짓말은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는지와 관계가 없다. 사람은 단지 ‘자기가 진실로 여기는 것’을 숨기려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짓말은 놀랍게도 자유를 전제로 한다. 자신이 체험하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표상할 수 있기에 거짓말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실제 아는 모습과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명확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를 전제하지만 거짓말은 타인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자기 생각을 타인의 생각 자리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상대의 행동을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핵심은 ‘거짓말 발화자(發話者)와 수신자의 관계’에 있다. 거짓말은 권력이며, 권력은 동의를 필요로 한다. 거짓말의 수신자가 거짓말하는 사람과 함께 거짓 세상을 지어낼 때 거짓말은 유효해진다. “자유가 있는 인간들이 함께 이뤄내는 작업이 거짓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발화자만 들여다본다고 거짓말의 정체가 들여다보일 리 없다. 한편 거짓말쟁이를 높은 가치에 놓으려는 논변들이 있었다. ‘거짓말은 진실을 갖고 노는 창의성의 표현’이라는 관점이다. 저자는 이런 얘기들이 궤변임을 꿰뚫는다. 거짓말쟁이는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금의 허위를 섞을 뿐, 가짜 이정표만 세워둘 뿐이다. 예술작품처럼 세계를 새롭게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인식론적 관점에서 해부한다고 해서 윤리적 관점을 외면했다는 뜻은 아니다. 독일의 나치 청산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해나 아렌트가 제기한 ‘악의 평범성’ 개념이 2010년대에 논박됐다”는 뉴스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로 이 저자의 2011년 역저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이다. ‘악이란 결코 진부하거나 평범하지 않으며 고도의 계산으로 이뤄지는 행위’란 점을 논증한 것이다. 그런 만큼, 윤리적 관점을 제쳐 두고 거짓말의 인식론적 정수를 헤집은 저자의 시각은 오히려 무거운 윤리적 각성을 요구한다. 거짓을 넘어 ‘인류로서의 신뢰’에 대한 호소다.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저자는 판문점 회담장에 들어가본 경험을 떠올린다. “우리(독일)가 분단 시절 이와 견줄 만한 신호를 세계에 보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언제라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는, 언제라도 안전한 만남이 보장되어 신뢰를 키우려는 목적 외에는 쓰이지 않아야 한다는 신호가 그것이다.” 원제 ‘Lügen lesen’(2017년).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5·사진)가 서울에서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백조의 노래’ 등 슈베르트 3대 가곡집을 노래한다. 이 반가운 뉴스에 나머지는 단지 부연 설명일 뿐이다. 5월 10일 ‘겨울 나그네’를 시작으로 12일 ‘아름다운…’, 14일 ‘백조의 노래’로 이어진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오늘날 성악가들이 가장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줄리어스 드레이크가 반주를 맡는다. 20세기에 ‘독일 가곡의 황제’란 타이틀은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1925∼2012)의 것이었다. 정통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성파라고 할 만한 발성을 갖고 있었지만 가사의 느낌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해석의 깊이 때문이었다. 21세기 들어 이 타이틀은 영국인인 보스트리지가 인수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보스트리지의 국제무대 데뷔 자체가 피셔디스카우의 강력한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철학과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 학구적인 테너는 정밀한 분석서인 ‘겨울 나그네’라는 책을 펴내 한국어를 비롯한 10여 개 언어로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1년 동안 서울시립교향악단 ‘올해의 음악가’로 영국 가곡, 바흐 요한 수난곡, 말러 가곡 등 세 번의 무대를 가지며 한국 청중에게 한층 친근한 존재가 됐다. 이번 공연은 매년 가을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의 ‘봄 콘서트’다. 올해 이 음악제의 주제는 ‘인간과 환경’이다. 보스트리지는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에서 시냇물은 이 시집을 지은 빌헬름 뮐러의 청년기 동반자이며, ‘겨울 나그네’의 방랑자에게 겨울의 전경은 적대적이다. ‘백조의 노래’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대립한다. 세 작품 모두 ‘인간과 환경’이라는 음악제의 주제와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9만∼12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정말 실력 있고 진지한 친구들이에요. 앞으로 아벨 콰르텟에 주목해 주세요.” 2016년 공연기획사 목프로덕션 관계자가 이렇게 귀띔했다. 그러나 이후 2년 넘도록 현악4중주단 아벨 콰르텟의 이름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4월 20일 이들은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초심(初心)’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라의 부름을 받고 돌아왔죠.” 첼리스트 조형준(32)과 비올리스트 김세준(30)이 나란히 웃음을 지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군복무를 마친 두 사람은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31) 박수현(29)과 다시 만났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초심’은 아니다. “이번 무대에 올리는 베토벤 현악4중주와 쇼스타코비치 4중주 3번은 저희가 처음 모였을 때 합을 맞춰본 곡들이에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한 결과였죠. 하지만 열어보니 생각처럼 안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나중에 시도해보자고 했죠. 이제 다시 모이면서 두 곡이 떠올랐어요.”(김세준) 이번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4중주 6번을 시작으로 드뷔시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배치했다. 각각 18세기 막바지, 19세기 말, 20세기의 산물이라는 시대적 차이 외에도 세 작품의 개성은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된다. 드뷔시가 꿈결처럼 몽롱하다면, 쇼스타코비치는 기계적이라 할 만큼 즉물적이다. “멤버 넷 모두 쇼스타코비치라는 작곡가에게 욕심을 냈어요. 그의 4중주 열다섯 곡을 모두 듣고 투표를 했죠. 현악4중주 3번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에 발표돼 악장마다 전쟁과 관련된 표제가 있는 작품이에요. 특히 전쟁의 개시를 알리는 3악장은 짧으면서도 매우 강렬한 임팩트를 전합니다.”(조형준) 2015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 1위, 이듬해 제네바 국제 콩쿠르 3위를 차지하며 세계무대에 얼굴을 알린 이들은 올해 7월 세계 최고의 실내악 축제 중 하나인 핀란드 쿠모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연주한다. 2016년 팀에 합류한 바이올리니스트 박수현이 팀의 활동 중단 기간에 먼저 초청되었던 게 계기가 되었다. 이탈리아 나르니 페스티벌에도 초청되어 스위스 바젤 신포니에타 클라리넷 수석인 한국계 이탈리아인 아론 키에사와 협연무대를 갖는다. “아벨이란 ‘생명력’ ‘함께 호흡하기’란 뜻을 담고 있어요. 개인으로 단절되어 가는 시대에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보태는 것의 귀중함에 네 멤버가 의기투합했죠. 잠시 반짝하는 앙상블이 아니라, 오래 활동하면서 다양한 시대의 4중주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싶습니다.”(조형준) 3만∼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꽃이 앞다투어 피어나는 계절이다. “꽃들이 시샘해서 하는 일이라곤 자신의 성장뿐입니다. 꽃들은 자기 성숙으로 경쟁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요?” 저자의 물음이다. 그가 보기에 인간의 시기심이란 남을 깎아내리려 하므로 소모적이 되기 쉽다. “자기 능력을 키워 시기심을 건강한 시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꽃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요.” 아름다움과 서사(敍事)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철학자가 일상에서 길어낸 45편의 사색을 담아냈다. 사소하다는 것은 보잘것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런 것들이 우리를 구원할까. “사소한 것들은 깨달음의 실마리입니다. 그들은 우리 주위에 상존합니다. 우리 삶의 감수성이 그들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놓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일상에서 경이를 발견하려는 기다림을 갖고 저자의 인도에 따라 감각을 열어놓으면, 이후 문장들은 술술 읽힌다. 마침 프로야구가 개막했으니 이번에는 야구에 대한 저자의 단상을 따라가 보자. “야구에서는 사람이 점수를 내므로 공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기 중 관중들에게 많은 공을 선사합니다. 공들은 떠나고 사람은 집에 돌아오는 경기, 여기에 야구 고유의 인간미가 있습니다.” 동아일보에 2016년 7월부터 1년 반 남짓 연재한 ‘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가 이 풍요로운 일상 담론들의 모체가 됐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에네스 콰르텟의 연주는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엄밀하다. 자연스럽고 극적인 흐름과 다양한 색채로 깊은 영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음반전문지 ‘그라머폰’) “네 연주자의 일치된 호흡이, 특히 깊이 있는 작품들에서 듣는 이의 귀를 붙든다.”(현악전문지 ‘스트라드’) 현악4중주단 ‘에네스 콰르텟’에 쏟아지는 찬사들이다. 들어본 듯하면서도 고개가 갸웃해진다면,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속한 4중주단’이라고 하면, ‘아’ 하고 고개가 끄떡여질 것이다. 2016년 내한해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을 연주하면서 여섯 차례 콘서트를 전석 매진시켰던 이들이 다시 서울에 온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국내 데뷔 15년을 기념하는 이번 무대에서는 모차르트 현악4중주 23번 K 590(‘프러시안 3번’), 드뷔시 현악4중주 G단조,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로 유명한 차이콥스키 현악4중주 1번 등을 연주한다. 26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에네스 콰르텟은 2010년 캐나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리더 제임스 에네스가 주도해 창단했다. 에네스는 2008년 엘가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으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반상인 그라머폰상을 수상했고 그래미상도 두 차례나 수상한 중량급 연주가. 그와 리처드 용재 오닐, 바이올리니스트 에이미 슈워츠 모레티, 첼리스트 에드워드 아론이 맞추는 호흡은 ‘늘 한 방에서 숨쉬는 친구들처럼 일치된 목소리를 이룬다’는 평을 받아왔다. 한편 이들이 26일 연주할 차이콥스키 현악4중주 1번은 19일 뒤인 5월 15일에 같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르는 러시아의 보로딘 콰르텟도 레퍼토리에 포함시켰다. 워낙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실내악 골수팬들이라면 쏠쏠한 비교의 재미를 느껴볼 만한 기회다. 네 사람은 4중주 무대 다음 날인 27일에도 같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2009∼2015년 부산시립교향악단 수석지휘자를 지냈던 중국 지휘자 리신차오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다. 독일 초기 낭만파 작곡가 슈포어의 ‘현악4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현악4중주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이 협주곡은 실내악적 울림과 협주곡의 매력을 모두 표현하는 흔치 않은 작품으로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날 KBS교향악단은 하이든 교향곡 96번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모음곡도 무대에 올린다. 26일 4중주 콘서트 3만∼10만 원, 27일 KBS교향악단 콘서트 1만∼9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결선 진출자 7명이 모두 훌륭한 좋은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단지 두드러지는 ‘단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LG와 함께하는 제15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은 소프라노 신영옥(사진)은 “올해 일곱 명의 결선 진출자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소리를 잘 조절해 표현했고, 몇몇 소리가 크지 않은 출연자도 좋은 울림을 갖고 있었다”며 “단, 음악적 표현에는 조금씩 단점과 실수가 보였다. 출연자 대부분이 1차 예선에서 결선까지를 거치는 동안 완성도의 차이가 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결선 출연자들은 ‘마음을 담아 노래하겠다’는 자세만 가진다면 모두 앞으로 더 큰 기회를 얻게 될 높은 기량의 소유자들”이라며 계속 정진하기를 부탁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최상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김우경 한양대 교수는 “예년보다 기본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서도 과욕을 부리다 결점을 노출한 출연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가울랜드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영아티스트 프로그램 예술감독은 “여러 단계의 예선을 거치면서 수준의 차이를 크게 드러낸 출연자가 많았지만 참가자 대부분이 만족할 만한 높은 기량을 나타냈다”고 평했다. 독일 바리톤 안드레아스 슈미트는 “경연 일정 진행과 반주의 수준 등이 모두 뛰어난 일류 콩쿠르였다”고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평가했다. 이번 콩쿠르에는 신영옥, 최상호, 김우경, 가울랜드, 슈미트 외 프란체스코 안돌피 이탈리아 나폴리 산카를로 오페라극장 예술감독, 게르미날 힐베르트 독일 힐베르트아티스트매니지먼트 대표, 미우라 야스히로 도쿄메트로폴리탄오페라재단 이사장, 독일 소프라노 에다 모저 등 10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아쉬운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올해 ‘LG와 함께하는 제15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1위 수상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리톤 이현규(30·한국예술종합학교)가 2위로 수상한 직후 이어진 사회자의 말에 장내에는 “아∼” 하는 탄성이 흘렀다. 이 콩쿠르에서 1위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바이올린 부문으로 열린 2015년 이후 두 번째, 성악 부문으로는 처음이다. 신영옥 심사위원장(소프라노)은 “결선 진출자들 중 확연하게 기량이 우월한 출연자가 없어 심사위원들의 합의에 따라 1위 수상자를 내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최고 등위인 2위로 입상한 이현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성경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콩쿠르를 준비했다”는 말로 감회를 대신했다. 그는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부천시립합창단 상임단원으로 일해 온 ‘순수 국내파’다. “중학교 3학년 때 교회 성가대 지휘자 선생님께서 ‘너는 노래를 잘하니 성악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권하셨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는데, 마침 학교 음악선생님께서 성악을 전공하신 분이어서 무료로 레슨을 해주셨죠.” 몇 달 입시를 준비한 뒤 경북예고에 실기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동기들은 대부분 졸업 후 유학을 떠났지만 그는 부천시립합창단에서 근무하며 시간 나는 대로 콩쿠르를 준비했다. 4년 전 스페인 유명 콩쿠르인 비냐스 성악콩쿠르에 나가 준결선에 진출했고 이번에 국제콩쿠르에 두 번째로 도전해 최고 등위 입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날 일곱 명이 겨룬 결선 무대에서는 이현규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유난히 큰 환호와 “브라보”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가 성가대 지휘자로 있는 경기 광주시 한 교회의 성가대원들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대학 동기들이 객석에서 대대적 응원을 펼쳤다. 그는 결선에서 자신이 선택한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 중 ‘너였구나’와 심사위원단이 지정한 바그너 ‘탄호이저’ 중 ‘저녁별의 노래’를 불렀다. 진지하고 심각한 노래들을 차분한 표정과 진중한 해석으로 소화했지만 수상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는 애교 섞인 유머러스한 포즈를 취해 지인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즐겁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며 “무대 위에서는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3위는 조성준(25·베이스·연세대), 4위는 이명현(31·테너·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5위는 알렉산드라 요바노비치(28·소프라노·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예술대), 6위는 밧자르갈 바야르사이한(29·테너·몽골 울란바토르 국립음대)에게 돌아갔다. 2위 이현규는 3만 달러(약 3600만 원)의 2등 상금을 받았으며 서울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출연 기회를 갖는다. 이날 시상식에는 서정협 서울시 문화본부장, 정창훈 LG아트센터 대표, 허엽 동아일보 상무가 시상자로 나섰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의 1, 2차 예선과 준결선은 유튜브(검색어 ‘seoul competition’)에 공개됐으며 결선은 5일 볼 수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취임한 지 만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세계는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 최강국 지도자로 있는 현실을 낯설어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누구이고, 왜 탄생했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의 시대를 보내야 하는가. 저자도 ‘확실히 모른다’는 데서 출발하자고 제안한다. “불확실성의 시대는 이미 도래했고, 새로운 시각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놀랍게도 버락 오바마와 트럼프에게는 동일한 배경이 있다. 클린턴이나 부시와 달리 ‘제국’이 황혼을 맞은 걸 깨닫고 혁신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물론 추구한 수단은 전혀 다르다. 오바마가 영화 ‘다크 나이트’의 어둠의 기사(배트맨)라면, 트럼프는 그의 온정적 자유주의를 야유하는 악당 ‘조커’다. 그에게도 정치적 선조들이 있다. 1960년대 분리주의 깃발로 인기를 끈 조지 월리스 같은 인물들이다. ‘제국’이 팽창하던 낙관주의의 시대에는 월리스가 성공하지 못했지만 제국의 하강기에는 디스토피아와 불안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파시즘적’ 트럼프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트럼프에게는 애런 제임스가 제기한 ‘개자식(assholes) 이론’이 들어맞는다. ‘일관되게 자신의 특권을 추구하고, 자신은 특별하다는 관념을 갖고 있고, 비난에 개의치 않는 것’이 ‘개자식’의 특징이다. 그가 단임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만든 시대는 바로 끝나지 않는다. ‘품위를 갖춘’ 제2의 트럼프가 나타난다면 세상은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폴 웨이드의 책 제목처럼 ‘죄수 운동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친 환경 속에서, 환상을 갖지 않고, 융복합적으로 체력을 키우는 것이 죄수 운동법이다. 물론 그것은 비유이다. ‘열린 사고로 부단히 질문하며, 생태문명적 비전을 갖고, 미래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공존의 패러다임을 갖자’는 것이 저자의 제안이자 머리를 사용하는 ‘죄수 운동법’의 요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LG와 함께하는 제15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성악 부문) 준결선에서 참가자 12명 중 결선에 진출할 7명이 가려졌다. 결선에 오른 7명은 밧자르갈 바야르사이한(29·테너·몽골 울란바토르국립음대), 조찬희(26·베이스·한양대), 이현규(30·바리톤·한국예술종합학교), 조성준(25·베이스·연세대), 이명현(31·테너·독일 함부르크국립음대), 라하영(25·소프라노·함부르크국립음대), 알렉산드라 요바노비치(28·소프라노·세르비아 베오그라드예술대)이다. 이번 콩쿠르에는 영상 예비심사를 통과한 총 12개국 61명이 참가해 24∼26일 열린 1, 2차 예선을 거쳤다. 바야르사이한 씨는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평양 국제성악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해 남북한에서 열린 국제콩쿠르 결선에 모두 진출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는 “연습에 바빴기에 평양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요바노비치 씨는 “10분 전에 결선 진출 소식을 들어 아직 심장이 두근거린다”며 “처음 온 서울이 너무 아름다워 여기저기 보고 싶었지만 이른 봄 찬 공기가 목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참았다. 결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후 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명현 씨는 제6, 12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두 차례 4등상을 수상했고, 오스트리아 빈 폴크스오퍼 등에 출연하고 있는 ‘유럽 현역’ 테너이다. 그는 “늘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 콩쿠르를 통해 발전해 왔다고 생각해 또 도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조찬희 씨는 현역 군인 신분으로 휴가를 얻어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도전했다. 그는 “좋은 결과를 얻어 가슴을 쭉 펴고 자랑스럽게 부대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웃음 지었다. 이현규 씨는 콩쿠르 도중 어려웠던 순간을 묻자 “준결선 경연에서 물을 무대에 가져가지 않았는데 도중에 목이 말라 후회했다”며 “마지막까지 컨디션을 잘 관리해 즐기는 마음으로 결선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라하영 씨와 조성준 씨도 “더 편한 마음으로 부끄럽지 않은 결선 무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결선 경연은 30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장윤성 지휘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열린다. 오페라 아리아 두 곡을 부르며 한 곡은 자유 선택, 다른 한 곡은 심사위원회가 지정한다. 1등 수상자에게는 5만 달러(약 5700만 원)와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출연 기회 등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결선에 이어 30일 오후 5시 반에 열린다. 2만∼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높은 음표의 목소리만 자랑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분노’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그 핵심이 있죠.”(에다 모저) 독일 성악계의 별 세 사람이 서울에 떴다. 소프라노 에다 모저(81)와 바리톤 안드레아스 슈미트(59), 2003∼2010년 드레스덴 젬퍼오퍼 극장장을 지낸 게르트 위커(73). 이들은 성악부문으로 24일 개막한 ‘LG와 함께하는 제15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모저는 1960, 70년대 모차르트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 역으로 세계 성악 팬들의 뇌리에 각인된 ‘공인(公認) 밤의 여왕’. 미국 우주선 보이저호가 외계로 쏘아올린 ‘골든 디스크’에도 그가 부른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수록돼 있다. 슈미트는 바흐 교회음악부터 현대음악에 이르는 방대한 음반으로 영국 그라머폰상, 독일 에코 클래식상을 비롯한 수많은 음반상을 수상한 주인공. 위커는 젬퍼오퍼를 맡기 전 7년 동안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감독을 지냈고 지휘자, 음악학자, 음악교육가로 전방위 활동을 펼쳐왔다. 26일 4개국 12명의 준결선 진출자를 배출한 올해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예선 무대에 대해 세 사람은 “훌륭한 ‘악기’(목소리)를 지닌 남성 성악가가 특히 여럿 출연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직선적이기로 이름난 독일인답게 슈미트와 위커는 “초반부터 너무 기교적인 곡으로 승부하려다 호소력을 잃은 참가자가 많았다”, 모저는 “곡의 깊은 의미를 충분히 소화하지 않고 모든 것을 성급하게 표현하려는 참가자들이 아쉬웠다”며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세 사람 모두 이번 방한이 처음이지만 한국인 제자는 여럿이라고 밝혔다. 슈미트는 “10여 년 전에는 목소리가 깊고 풍성한 한국인 리릭(서정적) 소프라노가 독일로 여럿 공부하러 왔는데, 최근엔 소리가 가볍고 밝은 소프라노들 위주로 바뀌어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슈미트는 소프라노 권해선(헬렌 권)과 함께 자주 모차르트 오페라 무대에 올라 친한 사이. 모저는 쾰른 오페라극장 전속 가수를 지낸 베이스 사무엘 윤의 노래에 깊은 인상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위커는 젬퍼오퍼 극장장 재직 시절 테너 김우경(한양대 교수)을 출연시킨 것은 그 시절 극장의 ‘최고 성공’ 가운데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세 사람은 “입국 이후 콩쿠르 심사에 전념하느라 서울의 아름다운 봄을 만끽하지 못했다”며 30일 결선 전까지 틈틈이 서울의 매력을 즐기겠다고 했다. ‘LG와 함께하는 제15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28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준결선이, 30일 오후 3시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6명이 참가하는 결선 경연이 열린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최근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대도시 오페라극장에서는 한국인이 출연하지 않은 오페라를 관람하는 게 희귀한 일이 되고 있다. 세계 성악계에 인재를 공급하는 ‘핫플레이스’ 서울에서는 24일부터 서초동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LG와 함께하는 제15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의 성악부문이 열리고 있다. 3년마다 돌아오는 이 콩쿠르 성악부문 경연은 올해가 다섯 번째다. 예년에 비해 참가자들이 선택한 레퍼토리가 넓어진 점이 우선 눈에 띄었다. 24, 25일 열린 1차 예선부터 예년에 적었던 영미 가곡이나 요구되는 기교의 차원이 다른 19세기 초중반 프랑스의 기교적 아리아를 선택한 참가자가 여럿 있었다. 초반 경연부터 다채로운 테크닉을 요구하는 긴 콜로라투라 아리아를 노래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다양한 지역적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의 노래를 감상하는 것은 국제 성악콩쿠르가 제공하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올해 경연에서는 아시아 인접국 참가자들이 이전보다 치밀한 준비를 갖추고 참가했다. 28일 열리는 준결선에는 한국 참가자 외 몽골 참가자 1명만이 진출했지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성악계의 성장세는 한국 음악인들이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그 성장은 우리 음악계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 대륙에서 온 참가자들도 준결선 진출자를 내지 못했지만, 우리 무대에서 만나기 힘든 다채로운 색깔의 발성과 표현으로 경연 무대를 한층 다채롭게 만들었다. 올해도 참가자가 많은 바리톤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심사위원들은 음역을 가리지 않고 완성도가 높으면서 큰 가능성을 보인 참가자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지만, 특정 음역의 경쟁자가 많으면 참가자들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올해 출연한 바리톤들은 특히 예년보다 다양한 개성과 목소리의 질감으로 승부했다. 테너를 연상시키는 높은 공명과 화려한 음색을 갖춘 바리톤도 있었고, 거대한 뒷배경을 받쳐둔 듯 베이스를 닮은 탄탄한 저역의 발성이 인상적인 바리톤도 눈에 띄었다. 모든 음역에서 배음(倍音) 성분이 강한 발성보다는 밝게 앞쪽으로 소리를 방사하는 참가자가 많았다. 공식 반주자 박형진을 비롯한 반주자들이 리스트의 질풍 같은 ‘로렐라이’ 반주부를 비롯한 여러 어려운 반주부를 깔끔하게 소화하며 참가자들의 훌륭한 밑받침이 되어준 점도 인상적이었다. 1, 2차 경연 기간 내내 서울 미세먼지 수준이 ‘좋음’과 ‘보통’을 오간 것은 참가한 성악가들을 위해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LG와 함께하는 제15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28일 4개국 12명이 참가하는 준결선, 30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장윤성 지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결선 경연이 열린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