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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언제부터 학교에 가요?” 올해 5월 성폭력 피해 청소년 쉼터에 들어온 소영(가명·16) 양은 두 달이 넘도록 ‘강제 결석’ 중이다. 이전처럼 학교에서 친구들과 지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학교들은 '성폭력 피해 청소년'인 소영이를 받아주지 않았다.5년 전 아빠의 '몹쓸 짓'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시행한 심리상담에서 소영이가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되면서 피해 사실이 밝혀졌다. 학교는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고 소영이는 쉼터로 보내졌다.가족들이 학교로 찾아올까 봐 소영이는 학교를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흔쾌히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다. 쉼터 인근 5개 특성화고에서는 “판결문이 있느냐” “학생 정원이 다 찼다”며 전학을 거부했다. 3개월 만에 겨우 소영이를 받아주겠다는 학교가 나왔다. 쉼터에서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며 집요하게 매달린 결과다. 소영이는 다음 주부터 새 학교로 등교할 예정이다.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가 전학을 갈 학교를 찾지 못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고교생이 심각하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초중학생은 ‘의무 전학’이 가능하지만 성폭력 피해 고교생은 학교장 추천 및 재량으로 전학이 이뤄진다. 문제는 성폭력 피해 청소년을 ‘문제아’로 인식해 전학을 받지 않으려는 고교가 많다는 점이다. 학교가 떠밀어서 원치 않는 전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전학이 늦어져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가까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이 생기고 있다. 11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박모 양(18)은 피해 사실이 밝혀진 지 2주 만인 올해 4월 사실상 ‘강제 전학’을 했다. 박 양은 전학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학교 측은 “아이에게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전학을 권유했고 결국 학교를 옮겼다. 쉼터 관계자는 “심리상담 검사에서 박 양이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되자 부담을 느껴 다른 학교로 보내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성화고와 실업계고의 상황은 일반고보다 더 열악하다. 일반고는 학교장 추천을 받은 뒤 교육감 권한으로 전학할 학교를 배정하는 반면 특성화고와 실업계고는 전학 과정 전체가 ‘학교장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경북 지역의 한 실업계고에 다니던 김모 양(18)은 이웃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전학하려 했지만 인근 실업계고 두 곳에서 모두 거부당했다. “가해자가 학교를 찾아와서 난동을 부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양은 끝내 전학할 학교를 찾지 못해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학교에서 성폭력 피해 청소년의 전학을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성폭력피해자보호법에 의무 전학 조항이 없어서다. 가정폭력 피해 학생의 경우 초중고교생 모두 의무 전학 대상이다. 성폭력 피해 아동(초중학생)은 경찰 수사 자료 등 최소한의 피해 사실만 입증되면 각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전학을 받게 돼 있다. 그런데 성폭력 피해 청소년(고교생)에 대해선 강제 조항이 없다. 대전의 쉼터 관계자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학교 다닐 권리’를 박탈당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법 개정 움직임도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장 추천 과정을 교육청에서 확인하긴 어렵다”며 “민원이 많지 않아 법 개정 추진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수행비서 김지은 씨(33)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들여다본 것은 ‘위력’의 존재와 행사 여부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고 피해자가 제압당할 만한 사정이었다고 볼 만한 사정은 드러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본보가 19일 입수한 114쪽 분량의 1심 판결문 전문에는 사건들의 내용과 재판부의 판단이 상세히 나와 있다.○ 재판부 “더 명시적으로 거절할 여지 있었다” 안 전 지사는 스위스 제네바로 출장을 간 지난해 9월 3일 오전 1시 반경(현지 시간) 호텔에서 김 씨에게 텔레그램으로 ‘담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담배를 가지고 객실로 간 김 씨를 안 전 지사가 성폭행했다는 게 검찰의 기소 내용이다. 재판부는 객실로 온 김 씨에게 안 전 지사가 “침대로 오라”고 요구했고 김 씨는 거절 의사로 “아니요,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한 부분은 인정했다. 방으로 오라는 지시를 받은 뒤 김 씨가 전임 수행비서였던 A 씨에게 전화해 “(안 전 지사가) 부른다. 어떻게 하느냐”라고 물으며 우려한 사실도 인정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방으로 오라는) 요구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 더 명시적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할 여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위력이 행사됐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담배를 피고인의 방문 앞에 두고 텔레그램으로 방문 앞에 뒀다고 메시지를 보내기만 했어도 간음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씨의 옷차림도 쟁점이 됐다. 안 전 지사 측은 김 씨가 슬립 차림으로 객실로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씨는 “옷을 갖춰 입고 나갔던 것 같고 평상복이었던 것 같다”면서도 어떤 종류의 옷인지는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의상의 대략적인 종류조차 전혀 특정하지 못하는 취지의 증언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 측은 “지사가 시킨 일을 시킨 방식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수행비서의 업무를 이해하지 못한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상화원리조트’ 사건에서 김 씨 진술 인정 안 해 지난해 8월 18, 19일 안 전 지사와 아내 민주원 씨(54)는 1박 2일 일정으로 주한 중국대사를 초청해 충남 보령시 상화원리조트에 묵었다. 안 전 지사 측은 19일 오전 4시경 김 씨가 부부의 침실로 몰래 들어왔다고 진술했다. 이에 김 씨는 “같은 건물에 묵고 있던 중국인 여성이 안 전 지사에게 ‘2차를 기대한다. 옥상에서 만나자’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을 착신 전환된 휴대전화로 확인했다”며 “두 사람이 부적절한 만남을 가지는 것을 염려해 문 앞 계단에서 지키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을 뿐 객실 내부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안 전 지사도 당시 중국인 여성을 만났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김 씨는 보름 전부터 2회에 걸쳐 위력에 의한 간음을 당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상황”이라며 “수행비서의 업무를 철저히 행하고 한중 관계 악화를 막으려는 의도로 안 전 지사의 밀회를 저지하기 위해 침실 앞에서 밤새 기다렸다는 김 씨의 해명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후 김 씨가 민 씨에게 사과 전화를 한 점 등도 재판부 판단에 반영됐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지사의 여자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김 씨가 비서 업무로 인수인계받았던 내용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김은지 eunji@donga.com·이지훈 기자}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경. 일본 히로시마(廣島)의 군량미 공장에서 밤샘 작업을 마친 열일곱 살 조선인 소녀는 집에 돌아갈 참이었다. 등굣길 또래 일본 학생들의 놀림을 피하려 옆길로 공장을 빠져나오던 소녀의 손바닥 위로 ‘검은 비’가 떨어졌다. 찰나의 섬광 이후 정신을 차려보니 온 하늘과 땅은 검은 비로 뒤덮여 있었다. 무간지옥 같은 그곳에서 사람들은 웃통을 벗어던지며 ‘아쓰이(뜨겁다)’ ‘이타이(아프다)’를 외쳐댔다. “햇볕에 서 있던 아이들 살갗이 흐물흐물해지면서 녹아내렸어. 그때 붕괴된 건물에서 터져 나와 얼굴에 박힌 유리조각은 40년 뒤에야 뺄 수 있었어.” 근로정신대 징집을 피해 히로시마로 떠났다가 ‘피폭자’가 된 소녀는 광복 이후인 그해 10월에야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인 ‘피폭 증언’에 눈물 흘린 일본인 대학생 18일 한국인 원폭 피해자 안월선 할머니(90)의 증언이 50분가량 이어졌다.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모인 한일 대학생 20명은 숨을 죽인 채 한국말과 일본말이 섞인 안 할머니의 증언에 귀를 기울였다. 증언 도중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과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인 이시구로 가나에 씨(20·여)는 증언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울먹였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처음 알게 됐다는 그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바로 앞에서 들으니 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마음이 무거워졌다”며 “일본인을 싫어하실 만도 한데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하고 또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날 합천을 찾은 학생들은 고려대와 와세다대에서 온 ‘성신학생통신사’로 올해 4년째를 맞았다. 한일 대학생들은 두 나라를 돌며 양국의 아픈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해 한국인 원폭희생자위령제에 참석했다. 화정평화재단과 고려대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코어사업)이 지원한다. 4년간 성신학생통신사로 활동한 고려대 조성표 씨(25)는 “히로시마에는 원폭 피해자 평화기념관, 추모시설 등이 상당히 잘 갖춰져 있었다. 반면 한국 정부나 시민사회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 생존 한국인 원폭 피해자 2306명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10만 명(일본 경시청 추산)에 이른다. 5만 명은 일본에서 숨졌고 4만3000명이 살아남아 귀국했다. 73년이 지난 지금 생존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2306명(올 8월 기준)만 남아 있다. 평균 연령은 82세, 최고령 생존자는 올해 100세 생일을 맞았다. 하지만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그림자 같은 삶을 살았다. 70여 년간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원폭피해자협회에서 확인한 피해자 1133명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합천의 ‘위령각’도 일본 종교단체에서 만든 것이다. 합천에는 원폭 피해 생존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모여살고 있다. 이 협회 이규열 회장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고 어린 소녀들은 정신대를 피해 군수공장에 취업했다. 피폭자가 돼 돌아왔지만 조국은 70년간 우리를 잊어버리려 했다”고 말했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원폭 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특별법(2017년)이 만들어졌지만 바뀐 것은 별로 없다. 협회 측은 “특별법이 생긴 뒤 실태조사 용역예산 3000만 원 늘어난 게 전부”라고 지적했다. 원폭 피해는 후손에게 대물림됐다. 질병뿐 아니라 ‘피폭자 후손’이라는 낙인은 주홍글씨처럼 남아 있다. ‘대퇴부무혈성 괴사증’이라는 병을 진단 받은 원폭 피해 2세 정모 씨(56·여)는 “어릴 때부터 다리에 힘이 없어 잘 넘어지고 중학생 때부터 빈혈을 앓았다. 여생을 병원에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냉대’도 심각하다. 원폭 피해 3세 강모 씨(28·여)는 지난달 파혼을 당했다. 상대 남성의 부모가 “몸에 무슨 질병이 있을지 모르는데 찝찝하다”며 파혼을 통보한 것이다. 원폭 피해 2세 유모 씨(60·여)는 “국가에서 원폭 피해자를 제대로 치료하고 관리해 왔으면 이런 ‘낙인’이 반세기 넘게 지속됐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지난해 특별법에서 빠진 원폭 피해자 후손을 지원하는 법안을 14일 대표 발의했다.합천=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수행비서 김지은 씨(33)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가 14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현직 법관들도 114쪽 분량의 판결문 열람을 문의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사건 중 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온 것이어서 관심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 “위력 개념 오해” vs “애매하다면 무죄 추정” 공개된 보도자료와 선고문을 놓고 법관들의 견해는 엇갈렸다. 일부 법관은 ‘안 전 지사가 강제 성관계를 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지만 이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성폭력 사건을 전담했던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위력의 존재만으로도 피해자에겐 압박이 될 수 있다. 이를 구분한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판사도 “유력 정치인인 데다 비서에 대한 임면권도 갖고 있었는데 어디까지 이를 표현해야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유형의 힘뿐만 아니라 무형의 권세나 지위도 위력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은 이와는 어긋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안 전 지사에게 ‘업무상 위력’은 있었다고 봤지만 안 전 지사가 이를 이용해 김 씨와 강제 성관계를 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재판부 판단이 정당하다는 반론도 있었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성인 피해자에 대해 위력에 의한 간음을 폭넓게 인정하면 자칫 성적 자기결정권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고 했다. 위력에 의한 간음을 유죄로 인정한 판례도 피해자가 미성년이나 장애인인 사례가 다수였다. 또 다른 판사는 “피해자 의사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겁박이 있어야 성폭력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항소심 판단이 바뀔 확률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했다. 안 전 지사 사건에서는 재판부가 김 씨와 안 전 지사 가운데 누구의 진술을 믿느냐에 따라 결론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부하 여직원을 간음한 회사 사장 A 씨의 경우 성관계 뒤 보낸 문자메시지에 피해 여성이 답장을 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은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진술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며 실형을 선고했고, 이는 대법원에서도 확정됐다. 한 부장판사는 “항소심에서 피해자의 일기장이나 메모 등 당시 심경이 담긴 물증이 나온다면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 ‘비동의 성관계 처벌’ 법 개정 계기 될 듯 조 부장판사가 선고 때 언급한 것처럼 현행 입법체계의 한계 여부를 놓고도 공방이 치열했다. 한 판사는 “현행 법체계에서는 처벌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했다. 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이명숙 변호사는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어떻게 거부했는지 물을 게 아니라 가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의 동의를 구했는지 증명하게 해야 한다. 법을 다루는 판사들의 인식의 변화만으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외국처럼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처벌하는 법 개정 움직임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비동의 간음죄’를 처벌하고 있다. 올해 초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미투 폭로’로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천정배, 백혜련, 강창일, 홍철호 의원 등 국회의원 53명은 형법상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거나 ‘강간·추행의 죄’의 일부 조문을 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들은 대체로 폭행, 협박이 없어도 상대방 의사에 반해 성관계를 맺는 경우 처벌하는 규정이 포함됐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동의 간음’을 처벌하려면 지금의 강간죄보다 낮은 형량으로 도입해야 하는 등 별도의 새로운 구성요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1심 무죄 판결 후 여성단체는 예정돼 있던 집회를 앞당기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운동’은 25일 열릴 예정이었던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못살겠다 박살내자’ 집회를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측의 공개 발언도 예정돼 있다. 대전과 전북 전주 등 지방에서도 여성단체의 저항 움직임이 활발하다. 고도예 yea@donga.com·이지훈·김은지 기자}

14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은 재판부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의 법리를 엄격하게 해석한 결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33)가 위력에 못 이겨 억지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보기에는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고 다른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 떨어져” 재판부는 권력적 상하관계에 있는 남녀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만으로 범죄가 성립될 수는 없다고 봤다. 평소에도 상대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로 위력이 행사돼야 하고, 특히 성관계를 맺을 당시 상급자가 위력을 동원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김 씨는 검찰 조사와 공판 과정에서 “안 전 지사의 요구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고 수행비서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먼저 김 씨가 성관계 거부 의사를 충분히 표현하지 않았다고 봤다. 두 사람이 첫 성관계를 한 지난해 7월 안 전 지사가 “안아 달라”고 요구하자 김 씨는 바닥을 보며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안 전 지사를 살짝 안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음 달 서울의 한 호텔에 투숙하게 된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씻고 오라”고 했을 때 김 씨가 별다른 저항 없이 응한 점, 이후 스위스 출장 당시 김 씨가 전임 수행비서로부터 “안 전 지사의 객실에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도 방에 들어간 점 등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건 이후 김 씨의 행동도 김 씨의 자유의사가 제압당한 상태에서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근거로 판단했다. 첫 성관계 몇 시간 뒤 김 씨는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한식당을 찾아 식사를 하려고 노력했고, 당일 저녁에는 안 전 지사와 함께 와인바를 간 점 등을 예로 들었다. 재판부는 “김 씨가 지인과 지속적으로 안 전 지사를 지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며 “피해를 잊고 수행비서 일을 열심히 수행하려 한 것뿐이라는 김 씨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마지막 성관계를 맺었던 올 2월, 대전에 있던 김 씨가 밤에 안 전 지사의 연락을 받고 바로 서울의 한 오피스텔로 찾아간 것도 의문이라는 게 재판부의 시각이다. 당시 김 씨는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가 아닌 정무비서 신분이었고, 당시 안 전 지사와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 대화 내용을 삭제한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과거 안 전 지사의 운전비서로부터 성희롱을 당했을 때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하는 등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안 전 지사와의 강압적인 성관계로 인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동의 안 한 성관계라도 현행법상 처벌 어려워 재판부는 김 씨가 안 전 지사와의 성관계를 거절하려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을 가능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유죄 여부는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는지가 아니라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는지에 달려 있어 가능성만으로 안 전 지사를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북미와 유럽 등 10개국에서는 상대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음에도 성관계를 맺은 경우 강간으로 간주하거나(No Means No rule), 상대가 적극적으로 성관계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성관계를 맺은 경우까지 처벌하는(Yes Means Yes rule) 입법례가 있다. 독일에서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상황이라도 위계관계에서 발생한 성관계는 무조건 ‘비동의 간음’으로 간주해 처벌한다. 재판부는 “이 같은 새로운 처벌 규정을 도입할지는 입법 정책적 문제이고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성문화와 성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은지 기자}

수행비서 김지은 씨(33)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람이 업무상 상하관계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강압적인 성관계였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핵심적인 이유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14일 “피해자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데 이를 있는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부족한 이 사건에서 (성관계가) 피해자의 진정한 내심에는 반하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 성폭력범죄의 처벌 체계하에서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4월 안 전 지사를 피감독자 간음·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공소장에는 안 전 지사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김 씨를 상대로 네 차례에 걸쳐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맺는 등 10건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법원은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안 전 지사가 김 씨와 성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업무상 위력을 동원했는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차기 유력 대권주자이자 도지사로서 피해자를 임명 또는 면직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며 두 사람이 업무상 위력관계에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이 행사돼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해야 한다”며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고 피해자가 제압당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볼 만한 사정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가 집무실 등에서 김 씨의 몸을 만지거나 입을 맞추는 등 강제추행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안 전 지사는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다시 태어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김 씨는 선고 직후 배포한 입장문에서 “굳건히 살아서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곧바로 항소 의사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했고 여러 증거에 의해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김은지 eunji@donga.com·이지훈 기자}
‘편파 수사’ 논란이 제기됐던 ‘홍익대 누드 몰카 사건’의 피고인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이은희 판사는 13일 이 사건 피고인 안모 씨(25·여)에게 징역 10개월과 함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안 씨는 5월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촬영한 뒤 이를 ‘워마드’ 게시판에 올려 유포한 혐의(카메라등이용촬영죄)로 기소됐다. 법원은 안 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나체사진이 남성혐오 사이트를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돼 회복할 수 없는 인격적 피해를 줬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누드모델로서 직업 수행이 어려워 보이는 등 피해가 크다는 점도 고려됐다. 안 씨가 7차례의 사죄편지를 보내는 등 반성한다는 점은 인정됐지만 “피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법원은 밝혔다.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 착수 8일 만에 안 씨를 구속하면서 일부 여성단체에서 “가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혹하게 수사가 이뤄진다”며 편파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판결에 대해서는 “초범인데 징역형이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나왔다. 이 판사는 “피해자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처벌이 달라질 수는 없다”며 성별과 판결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사한 사건에서 남성 피고인에게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 사례들이 있다. 전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장면을 몰래 촬영하고 이를 불법 유포한 20대 남성에게는 벌금 350만 원, 전 여자친구의 누드사진을 동의 없이 촬영·유포한 20대 남성에게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두 사건 모두 피해여성의 신체가 완전히 노출됐고 피해자들이 강력한 처벌을 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그동안 몰카 범죄에 왜 솜방망이 처벌을 해왔는지 사법당국에 묻고 싶다”며 “향후 몰카 사건에 대해서도 이번처럼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날 사이버성폭력특별수사단을 발족해 촬영과 판매, 유포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집중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몰카 촬영물이 주로 유통되는 음란사이트 216곳과 ‘일간베스트’ ‘오늘의유머’ 등 온라인 커뮤니티 33곳을 대상으로 수사에 나섰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자현 기자}
‘편파 수사’ 논란이 제기됐던 ‘홍익대 누드 몰카 사건’의 피고인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이은희 판사는 13일 이 사건 피고인 안모 씨(25·여)에게 징역 10개월과 함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안 씨는 5월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촬영한 뒤 이를 ‘워마드’ 게시판에 올려 유포한 혐의(카메라등이용촬영죄)로 기소됐다. 법원은 안 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나체사진이 남성혐오 사이트를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돼 회복할 수 없는 인격적 피해를 줬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누드모델로서 직업 수행이 어려워 보이는 등 피해 크다는 점도 고려됐다. 안 씨가 7차례의 사죄편지를 보내는 등 반성한다는 점은 인정됐지만 “피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법원은 밝혔다.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 착수 8일 만에 안 씨를 구속하면서 일부 여성단체에서 “가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혹하게 수사가 이뤄진다”며 편파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판결에 대해서는 “초범인데 징역형이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나왔다. 이 판사는 “피해자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처벌이 달라질 수는 없다”며 성별과 판결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사한 사건에서 남성 피고인에게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 사례들이 있다. 전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장면을 몰래 촬영하고 이를 불법 유포한 20대 남성에게는 벌금 350만 원, 전 여자친구의 누드사진을 동의 없이 촬영·유포한 20대 남성에게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두 사건 모두 피해여성의 신체가 완전히 노출됐고 피해자들이 강력한 처벌을 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그동안 몰카 범죄에 왜 솜방망이 처벌을 해왔는지 사법당국에 묻고 싶다”며 “향후 몰카 사건에 대해서도 이번처럼 엄중하게 다뤄져야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날 사이버성폭력특별수사단을 발족해 촬영과 판매, 유포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집중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몰카 촬영물이 주로 유통되는 음란사이트 216곳과 ‘일간베스트’ ‘오늘의유머’ 등 온라인 커뮤니티 33곳을 대상으로 수사에 나섰다.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김자현기자 zion37@donga.com}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아버지를 교무부장으로 둔 두 자녀의 성적이 1년 만에 급상승하며 나란히 문·이과 전교 1등을 차지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12일 서울시교육청·학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방학식에서 A 씨의 두 자녀는 각각 문·이과 1등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두 자녀는 1년 전만 해도 각각 문·이과에서 121등, 59등이었다. A 씨 자녀의 성적이 급등한 것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들이 의혹을 제기하자 A 씨는 지난달 30일 학교 측에 소명 자료를 제출하고 이달 10일 학교 홈페이지에 해명 글을 올렸다. 두 자녀가 급격하게 성적이 오른 건 맞지만 문제는 없다는 취지였다. A 씨는 “두 아이가 수학클리닉 선생님을 소개 받아 성적이 올랐다”며 “두 아이가 하루에 4시간도 못 자고 얻어낸 결과”라고 밝혔다. 특히 A 씨가 교무부장으로서 자녀들이 치른 시험지를 사전에 검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대해 A 씨는 “해당 시험지를 사전에 확인한 건 맞지만 오픈된 교무실에서 형식적인 오류를 잡기 위해 1분가량 검토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학교 측도 A 씨가 시험지 검토를 한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학업성적 관리지침’에는 부모 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재직·재학할 경우 △자녀가 속한 학년의 시험문항 출제 및 검토에서 부모 교사를 배제하고 △부모 교사는 자녀가 속한 학년의 담임이나 교과 담당을 맡지 말도록 한 규정이 있다. 이에 비춰보면 학교 측과 A 씨가 시험문항 검토에서 부모 교사를 배제하도록 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서 교사인 부모와 그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제한하는 별도의 법적장치는 없다. 다만 서울시교육청은 부모 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 배치를 원하지 않으면 진학 희망고교 신청 시 별도 신청을 통해 부모 학교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11일 의혹을 밝혀 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하루 만에 약 4000명이 서명했다. 한 학부모는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냈다. 서울시교육청은 13일 강남서초교육지원청과 협의한 뒤 특별장학(장학관이 파견돼 학교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것) 또는 감사 실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 학교는 13일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학교 관계자는 “교육청에 자체 감사를 요청하거나 변호사,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자체조사위를 통해서라도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구특교 kootg@donga.com·이지훈·조유라 기자}
국내 최초로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로스쿨)에 ‘전문 변호사’를 길러내 벤처 로펌 창업을 지원하는 플랫폼이 생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명순구)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를 길러내고, 이들이 기존 로펌에 입사하기보다는 전문성을 살려 신생 로펌을 창업하도록 돕는 플랫폼을 설치·운영하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를 위해 고려대는 법전원 산하에 법창의센터를 설립해 새내기 변호사들의 창업과 실무교육을 지원하고 국내외 다양한 기관들과의 교류를 추진할 방침이다. 센터 초대 소장은 검찰총장을 지낸 한상대 고려대 법전원 초빙교수가 맡았고, 김제완 법전원 교수가 부소장을 맡아 2년 임기를 시작한다. 체계적인 창업 지원을 위해 법창의센터 내에 ‘고려정우창업보육플랫폼’도 설치한다. 고려대 측은 다음 달 3명 내외로 구성된 6개 팀을 선정해 무상으로 사무실을 제공하고 이들이 ‘벤처 로펌’을 만들 수 있게 2년간 지원할 방침이다. 지원 자격은 팀당 1명 이상 고려대 학부 또는 법전원을 졸업하고 팀원은 모두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들은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 방배동에 2년간 무상으로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다. 사무실(약 200평)은 정유정 유중개발 회장과 정승우 유중문화재단 이사장이 무상으로 제공했다. 명순구 원장은 “사회에선 ‘전문 변호사’를 많이 필요로 하지만 현재 로스쿨 교육체계에선 이 같은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며 “특허, 보건의료, 세법 등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전문 법률가가 나올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5년 차 직장인 박모 씨(33)는 두 달 전 다른 회사에 다니는 대학 후배로부터 받은 ‘지라시’(사설 정보지)를 보고 경악했다. ‘박 씨가 같은 회사의 유부녀 상사, 인턴 등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글에 박 씨의 이름, 나이, 회사명이 적시돼 있었고 박 씨의 사진까지 첨부돼 있었다. 완전히 거짓이었고 박 씨는 지난달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하지만 이미 이 지라시는 널리 퍼진 상태여서 속수무책이었다. 박 씨는 “이미 다른 회사에까지 퍼졌는데 우리 회사 사람들은 오죽하겠느냐”며 “누가 무슨 억하심정을 갖고 이런 걸 뿌렸는지 모르겠지만 마주치는 사람마다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반인의 사생활이 적힌 ‘일반인 지라시’가 유포되는 일이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유명인을 대상으로 했던 지라시가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과장되거나 허위사실이지만 불특정 다수의 ‘퍼나르기’로 인해 피해자들은 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직장인 A 씨(26·여)도 지라시에 이름이 올라 피해를 입었다. ‘A 씨가 여러 명의 사내 남자 동료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이 지난달부터 온라인상에 퍼졌다. A 씨는 물론이고 상대 남성들의 사진, 이름, 나이, 결혼 여부 등도 함께였다. A 씨가 근무하는 회사 관계자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며 생산과 유포에 관여한 이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인 사생활 털기는 2016년 등장한 ‘강남패치’가 시초 격이다. 당시 이 SNS 계정에는 주로 ‘화려한 외모나 사생활로 화제를 모은 일반인 SNS 스타들이 실제로는 유흥업 종사자’라는 주장과 함께 실명, 성형 전후 사진, 전 애인과 가족사진까지 올라왔다. 근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지라시는 여성혐오 등의 목적보다는 타인의 사생활을 흥밋거리로 유포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인들은 허위 정보가 돌면 언론을 통해 해명할 길이라도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반론권’조차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허위사실이 유포되더라도 이를 바로잡을 창구가 전혀 없다. 한 달 전 피해를 당한 B 씨(27·여)는 “결혼을 하고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거짓 지라시가 돌았는데 해명할 방법도 없고 호소할 데도 없어서 죽고 싶었다”며 울먹였다. 지라시를 생산하는 행위뿐 아니라 무비판적으로 유포하는 행위는 모두 범죄다.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 해당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는다. 처벌되는 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2012년 6000여 건에 불과했던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범죄 건수는 5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어 지난해에는 1만3348건에 달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여성의 분노를 혐오로 왜곡하지 마라.” “우리의 일상은 포르노가 아니다.” 4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붉은 티셔츠를 입은 여성 수만 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올해 5월 시작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4차 집회 참가자들이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에서 온 7만여 명(주최 측 추산)의 여성이 참가했다. 주최 측인 ‘불편한 용기’가 현장에서 나눠준 공식 구호문에는 △경찰의 편파수사와 약한 처벌 수위 비판 △불법카메라 규제법안 시행 △경찰 여남(女男) 비율 9 대 1 △여성 검찰총장·경찰청장 임명 등이 적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일 국무회의에서 한 ‘원한 발언’에 대한 공개 사과 등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여성들의 성과 관련된 수치심, 명예심에 대해 특별히 존중한다는 것을 여성이 체감할 수 있게 해줘야 여성들의 원한 같은 것이 풀린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다만 이번 시위에는 성차별 수사 외에 정치적 구호가 담긴 피켓은 보이지 않았다. 이전 시위 때와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의 얼굴을 몰래 찍으려는 남성들이 다수 나타났다. 폴리스라인 밖에 서서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 또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참가 여성들을 찍다가 경찰에게 저지당한 이들도 있었다. 참가 여성들은 신상 노출을 막기 위해 마스크, 모자, 선글라스 등으로 가렸지만 일부 남성 유튜버는 참가자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시위 장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광화문광장을 찾아 집회 현장을 40여 분간 둘러봤다. 민 청장이 시위 현장을 방문한 건 처음이다. 민 청장은 참모들에게 “집회에 필요한 것이나 지원해줄 건 더 없는지 확인하고 물이나 아이스팩 등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이버 보안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사이버국(INCD)의 이갈 우나 장관이 내린 결론이다.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이를 활용하는 것도 모두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것. 6월 17일부터 5일간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열린 ‘사이버 위크 2018(Cyber Week 2018)’에서 만난 우나 장관은 “인간에게 선과 악, 양면이 모두 있듯이 사이버 보안 기술은 좋게 쓰면 좋게 쓰는 것이고 나쁘게 쓰면 나쁘게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의 목표는 나쁘게 쓰는 것들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고 궁극적으로는 ‘공적 신뢰’를 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60년 건국 이래 주변국들과 분쟁을 벌여온 이스라엘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방위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왔다. 사이버 보안 기술 개발도 초기에는 생존 전략의 하나였다. 2000년대 들어 전쟁과 테러 위협이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확대되자 이스라엘은 사이버 안보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시작했다. 우나 장관은 “이스라엘의 목표는 단 하나다. 사이버 공간에서 다른 적들보다 우리가 강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그 어떤 비용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 방위 차원에서 시작한 ‘사이버 보안 기술’은 이제 미래의 먹거리가 됐다. 이스라엘 정부에 따르면 해마다 사이버 보안 기술 기업 400여 개가 탄생한다. 지난해 글로벌 사이버 투자 자본의 약 20%가 이스라엘 기업들에 집중됐다. 기술 수준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평가된다. 그는 “안보를 1순위로 하지만 국가사이버국은 군사적 테러 대응, 기업 지원, 대학·연구기관과 연계한 투자 등을 총괄한다”며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순 없지만 사이버 분야에 이스라엘이 투자하는 금액은 상당히 크며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와 ‘산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는 ‘관치’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적극 개입하고 있다. 2002년부터 사이버 보안을 총괄하고 타 부처와 연계 업무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관을 총리실 산하에 두고 운영 중이다. 올해로 8번째 열린 ‘사이버 위크’ 역시 총리실이 지원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 80개국에서 보안기술자, 정치인, 기업인 등 8000여 명이 찾아와 사이버 테러 대응 방안을 토론한다. 우나 장관은 한국도 사이버 보안 기술 발전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스라엘과 한국은 모두 가까운 곳에 적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높은 교육열, 징병제, 산업 발달 수준 등이 비슷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사이버 테러 기술을 가진 북한과 맞서고 있는 한국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며 “이스라엘처럼 한국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사이버 보안 강국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우나 장관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국제적인 벡터(vector·숙주) 위협에 직면했다”며 “위협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나 시장경제 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기술 교류를 통해 우방국을 확대하는 사이버 보안 생태계(eco-system)를 구축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어 “이를 토대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국제법을 만들고 전 세계 주요국들을 우방국으로 삼아 사이버 협력 체계를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텔아비브=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오토바이를 타고 대학가를 돌면서 노출 행각을 벌이고 청소년을 포함한 여성들을 강제 추행한 이른바 ‘국민대 오토바리맨(오토바이+바바리맨)’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재차 기각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올 1월부터 6개월간 국민대, 성신여대 등 대학가를 돌면서 24차례 자신의 신체 일부를 노출하고 피해자들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검거된 성모 씨(39·무직)를 1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의 신청을 받아 서울북부지검이 6월과 7월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 우려가 없으며 입건된 뒤 추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성 씨는 상습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가 20명이 넘는다. 일부 피해자의 팔을 잡아끌어 억지로 추행하거나 도망가는 피해자를 집까지 따라가기도 했다. 더욱이 피해자 가운데 3명이 18세 미만이어서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지만 구속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한편 “남성 성범죄자에게 관대한 사법기관에 항의하겠다”며 시작된 ‘혜화역 시위’(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가 이번 주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주최 측인 ‘불편한 용기’는 4일 5만 명 규모의 집회를 열겠다는 신고서를 1일 경찰에 제출했다. 5월 19일 혜화역에서 첫 집회를 연 뒤 6월 9일, 7월 7일 각각 집회가 열렸고, 참가 인원은 1만2000명에서 6만 명(주최 측 추산)으로 늘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집회 참가 자격은 ‘생물학적 여성’으로 제한된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살려주세요!” 20일 112에 한 여성의 다급한 신고가 들어왔다. 출동한 경찰이 아파트 문을 두드렸지만 신고자의 남편은 “못 열어준다”며 10분 넘게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이 가까스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거의 알몸 상태의 50대 여성이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신고자 A 씨였다. 그의 손과 발에는 테이프로 칭칭 감긴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A 씨는 몇 년 전에도 남편의 매질을 견디다 못해 두 차례 112 신고를 한 적이 있었다. 경찰은 상습적 폭력이라고 판단해 21일 남편에 대해 체포감금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A 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결정적이었다. 남편이 풀려나자 A 씨는 친정집으로 피신했다. 법원은 남편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가 A 씨 거처에 막무가내로 들이닥치더라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 피해자 10명 중 9명, 가해자와 ‘계속 동거’ 가해자를 격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구속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가정폭력 사범 구속율은 0.8~1.4%에 그쳤다. 차선책으로 접근금지 등 긴급 임시조치가 필요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에서 임시조치를 취하는 비율은 10건 중 1건(2013~2017년 평균)에 불과했다. 가정폭력 피해자 10명 중 9명은 사건 이후에도 가해자와 함께 살면서 지속적으로 피해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피해자를 고문 기술자와 한 방에 몰아넣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임시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피해자들이 수사당국에 적극적으로 격리조치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땅한 주거지를 마련하기 어렵고 가정 파탄으로 자녀에게 부정적 영향이 갈까봐 망설이는 피해자가 많다. 접근금지가 풀린 뒤 보복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도 영향을 미친다. 경찰 관계자는 “현행 가정폭력특례법이 가정 보호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피해자가 임시조치를 요구하지 않으면 강제로 분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500만 원 미만의 과태료만 부과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임시조치 위반으로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9건 뿐이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해자를 체포한다. 사안이 중하다고 판단되면 경찰이 가해자의 접근을 차단하고 피해자를 별도 시설에서 보호한다.● 격리 조치 강화 법안 1년 째 계류 중 가해자를 철저히 격리하지 못해 참혹한 2차 피해가 빚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5월 서울 관악구에서는 30대 남성이 동거녀를 폭행하고 불을 질렀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 남성은 영장 기각 뒤 40일 만에 동거녀를 찾아가 살해했다. 2016년 7월에는 60대 남성이 가정폭력 혐의로 두 차례 청구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된 뒤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건 모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됐다. 실질적인 가해자 격리가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폭력 사범이 긴급 임시조치를 위반할 경우 가해자를 즉시 체포하거나 형사처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이 지난해 7월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피나 장기는 ‘그냥’ 받았으니 줄 때도 ‘그냥’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팔순을 넘긴 백발노인이 50년간 지켜온 신념이다. 혈액과 장기 ‘매매’ 문화를 ‘기증’으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이사장(82·사진)의 말이다. 그는 국내 최초의 헌혈자이자 장기 기증인이기도 하다. 박 이사장은 “헌혈의 대가로 영화표도 줘선 안 된다. 대가를 주면 선의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백 년의 세월을 헌혈 및 장기 기증 운동에 헌신한 박 이사장을 20일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헌혈이라는 단어도 없던 그때 오해도 많이 받았죠. 피 모아서 되파는 거 아니냐고….” 박 이사장은 1968년 생애 최초이자 국내 최초로 헌혈을 한다. 우석대병원(현 고려대병원)에서 원목으로 근무하던 시절 응급 환자로 실려 온 22세 청년에게 380cc의 혈액을 나눠준 것이다. 수혈을 받은 청년이 보름 뒤 건강하게 퇴원하는 모습을 본 박 이사장은 이후 헌혈협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피 주기 운동’을 시작했다. ‘매혈’에서 ‘헌혈’로 문화가 바뀌어 가자 박 이사장은 “가족을 위해 살겠다”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미국에서 그는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을 맞는다. 1990년 이웃에 살던 친구가 뇌사하자 가족이 장기를 기증하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된 것. “당시 친구의 중학생 딸이 ‘기증받은 사람을 통해 아빠가 살아 있는 것 아니냐’고 엄마를 설득하더군요. 그 길로 귀국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 이사장은 1991년 국내 최초로 신장을 기증한다. 3000만 원에 신장이 거래되던 시절에 한 푼도 받지 않고 모르는 이에게 신장을 떼어준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창립했다. 이후 2000년 52명에 불과했던 뇌사 장기 기증자는 2017년 515명으로 10배가량으로 늘었다. 하지만 장기 이식 대기자는 3만4187명(2017년 말 기준)에 달해 여전히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갈 길이 멀었다”고 말하는 이유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성추행 피해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해 ‘2차 피해’를 유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A 양(13)은 이달 초 경기도 의정부 시내의 한 카페에서 동급생 B 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과 학교에 알렸다. 성추행 사건 이후 A 양은 자해를 시도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학교 측은 11일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 B 군에게 전학 등 조치를 취했다. 문제의 성교육은 이틀 뒤인 13일 시행됐다. 성교육 영상에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엉덩이, 허벅지 등을 만지는 등 성폭력 장면이 나온다. 수업 내내 A 양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A 양의 오빠는 “성폭력 관련 내용을 듣는 게 불편했던 동생이 울었는데도 수업은 계속됐다”며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더욱 안 좋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 양의 오빠는 관련 내용을 16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렸다. 학교 측은 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학교 관계자는 19일 “불미스러운 일(동급생 성추행)이 있어서 재발 방지를 위해 성교육을 실시한 것”이라며 “피해 학생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점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최영애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67·사진)을 내정했다. 최 후보자는 인권위 출범 이후 처음으로 구성된 공개후보추천위원회에서 공모를 통해 뽑힌 후보 3명 가운데 1명이다. 장관급인 인권위원장에 여성이 내정된 것은 처음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최 후보자는 30여 년 동안 시민단체와 인권위 등에서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에 앞장서 온 인권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최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정식 임명되며 임기는 3년이다. 부산 출신인 최 후보자는 이화여대에서 기독교학과 여성학을 공부했으며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설립한 이후 2002년까지 소장을 지냈다. 2004년부터 4년간 인권위 상임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현재 사단법인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 이사장과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여성인권의 대모’로 꼽힌다. 최 후보자는 여자친구가 의붓아버지에게 10년간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남자가 그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김진관 사건’의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 사건은 성폭력특별법 제정의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3년 이른바 ‘우 조교 사건’으로 알려진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의 지원도 맡았다. 앞서 인권위원장 후보추천위는 9일 최 후보자를 비롯해 유남영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장,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3명을 추천했다. 앞으로 인권위는 성차별 등 여성인권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인권위 산하에 차별시정국을 신설하고 산하에 성차별시정팀 등을 신설하는 내용의 인권위 조직개편안을 심의 확정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한상준 기자}

“‘남성은 사냥, 여성은 채집’이라는 명제는 학계의 정설(定設)처럼 여겨졌지만 20세기 이후 여성 연구자들에 의해 고고학적 증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12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만난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51)는 ‘획일화된 과학의 폐해’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로 이를 들었다. 장 교수는 남성 과학자가 수적(數的)으로 지배적인 현 상황에서 상당수의 과학적 지식은 남성 중심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원시 인류가 사냥, 채집을 했다는 걸 알게 된 남성 연구자들이 ‘사냥은 당연히 남자가 했겠지’ 하며 도출해낸 이론이다.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지닌 과학자들이 필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의 동생이자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과 사촌지간이다. 장 교수에 따르면 모든 과학적 지식은 연구자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과학자의 성별, 배경, 인종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연구자 집단이 한쪽에만 치우쳐 있으면 과학 자체의 본질 또한 훼손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가 든 다른 예는 ‘정자와 난자의 성향’이다. 장 교수에 따르면 그간 생화학에서는 여성의 난자를 ‘받아들이는 위치’에 있는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한 반면에 정자는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개체로 봤다. 하지만 최근 난자가 정자를 화학적으로 ‘선택’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간의 이론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성역할이 정자와 난자에 투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남성은 능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사회적 관념 그대로 과학에도 적용됐다. 남성 연구자가 지배적이었던 생물학, 의학 등을 뜯어보면 이런 식의 오류가 정말 많다”고 지적했다. 연구자가 누구냐에 따라 과학적 진리는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장 교수의 생각이다. 이는 그가 ‘과학에서의 다원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다. 장 교수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의 이공계에서 여성과 흑인, 동양인, 중남미계 등이 소외돼온 게 사실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여러 관점에서 파고들다 보면 사회 전체적으로 얻어지는 게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2일 이화여대가 개최한 ‘이화―루스 국제 세미나’에 연사로 참여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의 강연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본주의 과학철학’이다. 과학은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므로 과학 기술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나 사회적 여파를 고민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장 교수는 “과학자들이 직접 연구실에서 하면 가장 이상적이지만 과학자들은 그런 생각을 해낼 훈련도 안 돼 있고 일반인 역시 과학은 전문 분야라 접근하기 힘들다”며 “두 영역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게 나 같은 과학철학자들의 임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여성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에 천주교 성당 방화를 예고하는 글이 추가로 올라왔다. 천주교에서 예수의 몸으로 여기는 성체(聖體)를 훼손한 사진이 올라온 다음 날이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11일 오후 7시경 워마드에는 ‘오는 15일 한 성당에 불을 지르겠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주황색 플라스틱통에 기름을 담는 사진과 함께 “임신중절을 합법화할 때까지 천주교와 전면전을 선포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논란이 커지자 글쓴이는 추가로 “소라넷, 일베 등 온갖 남초 사이트에서 성폭력 피해자 2차 가해하고 강간 모의, 집단강간 인증할 때나 순찰 강화하지 그랬냐”고 비난 글을 올렸다. 현재 워마드에는 신성모독 외에 ‘낙태 인증’ ‘소년 살인 주장’과 같은 게시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8일에는 미성년 남성을 과자, 초콜릿을 준다고 유인해 살해했다는 글이 올라 왔다. 글쓴이는 “살인 후 모텔에서 이틀간 (시체를) 해체했고 뒷산에 유기했다”고 주장했다. 산속에서 워마드를 상징하는 모양의 손가락을 찍은 인증샷과 함께였다. 같은 날 혈흔이 가득한 변기 사진과 함께 국내에선 금지된 경구용 낙태약 미프진을 이용해 낙태를 했다는 내용의 인증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문제의 글들이 온라인에 확산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워마드 폐쇄 청원이 수십 건 올라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워마드의 성체 훼손 사건을 교황청에 보고하기로 했다. 주교회의는 12일 “천주교 신앙의 핵심 교리에 맞서는 심각한 모독 행위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가톨릭 교회법에 따르면 교리에 어긋나는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면 지체 없이 교황청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앨프리드 슈에레브 몬시뇰 주한 교황대사를 통해 교황청 신앙교리부에 공식 보고서를 올린다.○ ‘페미니즘 혐오’ 낳는 워마드 행보 워마드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면서 ‘페미니즘 혐오’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워마드에는 최근 많은 여성이 참여한 ‘불법촬영 편파수사 시위’를 옹호하는 글이 다수 올라오면서 ‘워마드=페미니스트’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워마드는 여성 우월주의를 표방하며 지난해 1월 처음 열었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정확한 이용자 수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소수의 여성이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보가 지난해 1월부터 이달 12일까지 워마드에 올라온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 하루 평균 게시글은 280여 건, 글 1건당 댓글은 10여 개, 조회수는 20∼6000건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베스트로 추천되는 글도 조회수가 천 단위에 불과하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조회수가 1만도 안 되는 성체 훼손 게시글이 실시간으로 기사화되고 천주교가 공식 대응하면서 워마드에 한국 페미니즘의 과잉 대표성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워마드=페미니스트’라는 인식 때문에 다수의 여성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페미니즘 재갈’에 물려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직장인 한모 씨(27·여)는 “대학 때 여성학 수업을 듣고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녔다”며 “워마드 논란이 언론에 크게 다뤄지면서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워마드 유저로 오해받는 분위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를 안 꺼내게 된다”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정훈·이지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