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박성민 차장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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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부터 죽음까지, 보건복지 분야를 취재합니다. 원인의 원인의 원인이 뭘까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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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5-16~20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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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 빚 5억에도 행복한 정신과 전문의…그는 왜 ‘봉천동 별지기’가 됐나 [박성민의 더블케어]

    서울 관악구 봉천동엔 독특한 건물이 하나 있다. 교육과 마음 치료, 직업 탐색이 동시에 이뤄지는 6층짜리 건물이다. 학교이자 병원인 셈이다. 늘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마음을 다쳤던 아이들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씩도 머물다가 일상 회복의 꿈을 안고 떠난다. 2층엔 학생들이 직접 커피를 내리는 카페도 있고, 최근엔 방송 스튜디오를 만들어 유튜브 채널도 시작했다. 병원장이자 교장은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55)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이기도 하다. 학교 폭력, 따돌림, 인터넷 중독, 은둔형 외톨이 등 청소년 정신건강 전문가다. 봉천동 토박이인 김 교장은 이 건물에 정신과 의원을 개원했다가 아예 학교까지 만들었다. 2002년 2월 ‘치유적 대안학교 별’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뒤 ‘성장학교 별’을 거쳐 현재는 ‘프레네스쿨 별’이 됐다. 프레네 교육학은 프랑스에서 유래한, ‘자율’을 강조하는 교육 이론이다. 치유와 성장, 자율까지 학교 이름에 김 교장이 청소년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이 모두 담겨 있다. ● “위축된 아이들에겐 ‘자유’가 곧 치료”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러브홀릭 ‘버터플라이’) 음악 수업이라기보다는 노래방이나 밴드 연습실 같았다. 한지훈 군(14·가명)과 최주현 양(19·가명)은 내리 다섯 곡을 부르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음정이나 박자가 틀려도, 잠시 딴 짓을 해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윤이준 군(15·가명)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부터 씨엔블루의 ‘외톨이야’까지 능숙하게 기타 반주를 해냈다. 윤 군은 “예전 학교에선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게 힘들었는데 여기선 기타도 배우고 연주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학교의 첫 인상은 ‘자유로움’이었다. 2일 참관한 음악 협동조합 수업은 20여개 선택 과목 중 하나다. 장애나 따돌림 때문에 일반학교에 적응 못했던 아이들도 여기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자유를 강조하는 이유를 김 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소외된 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대개 위축돼 있거나 폭력적인 경우가 많아요. 자기를 잃어버린 아이들이죠. 감정이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것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자신을 되찾을 수가 있어요. 자율을 주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가르칩니다.” 청소년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건 1992년 공중보건의 시절 소년교도소를 방문하면서다. “진짜 부도덕해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보단 가난이나 장애 때문에 나쁜 유혹에 빠진 아이들이 훨씬 많더군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빈곤과 범죄의 악순환에 갇히는 거죠. 이 아이들이 배움을 이어갈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전문의가 되고 병원을 개원하면서도 학업 중단 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중퇴 학생들의 검정고시 공부를 도와주는 ‘도시 속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돕기도 했다. 빈곤과 학업 중단 청소년들에게는 늘 정서적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치유와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 2002년 동료 3명과 함께 학교를 만들었다. 사재 1억5000만 원을 들였다. 현재 건물 3층의 반쪽 공간에서 시작한 학교는 어느덧 건물 다섯 층을 사용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20년 동안 다녀간 학생은 260여 명. 현재 30여 명이 재학 중이다. 상근 교사는 5명. 어두웠던 아이들을 ‘별’처럼 밝힌다는 의미에서 선생님들은 ‘별지기’로 부른다. ● 1교시는 ‘둔감력’, 2교시는 ‘분노 조절’ 이 곳의 커리큘럼은 대학처럼 필수 과목과 선택 과목으로 나뉜다. 한 학기에 하나 이상 꼭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은 분노 조절, 갈등 해결, 낙관주의, 반(反)편견, 둔감력, 정중한 거절, 치유 산행 등이다. 보통 학생에겐 자연스러운 사회화 과정이지만 이 곳 아이들에겐 하나같이 버거운 과제들이다. 김 교장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아이들에겐 타인과 어우러지는 방법을 배우는 ‘사회 정서 학습’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건 아이들이 범죄에 연루되거나 피해자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접근해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범죄에 쓸 휴대전화나 통장을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둔감력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의 평상심을 유지시키는 훈련이다. 가령 영상 등으로 약한 자극을 준 뒤 감정을 어떻게 조절할지 서로 의견을 나눈다. 식은땀이 나서 옷을 벗겠다는 아이도 있고, 책을 읽거나 다른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아이도 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수학 수업에서도 답을 빨리 찾는 건 중요하지 않다. 교사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각자의 방법을 인정해 준다. 정답을 맞힌 아이가 친구들에게 풀이 과정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이정은 대표교사는 “학습 효과가 당장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보단 아이들 각자의 수준을 인정해주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기다려준다”고 말했다. 정해진 학년이나 졸업 시기는 없다. 학기가 시작하면 4주 동안 졸업 신청을 받는다. 학생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되 학부모와 교사가 졸업해도 괜찮을지 논의한다. 졸업이 결정되면 8주 동안 진학이나 취업, 일반학교 복귀 등 졸업 후 진로에 맞춰 졸업 준비를 돕는다. ● 스무살, 준비 없이 사회로 떠밀리는 아이들 학교를 처음 만들 때만해도 공교육에서 이탈한 10대 청소년들 보듬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가 성인이 된다고 바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지적 장애가 스무 살부터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김 교장이 2010년 ‘스타 칼리지(현 청년행복학교 별)’를 만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스무 살 이후에도 조금 더 머물 수 있는 일종의 직업학교가 필요했다. 치유에서 자립으로 학교의 목표와 역할을 넓힌 것이다. 졸업 후엔 바리스타, 쿠키 만들기, 농장, 공방, 출판·편집 등 5개 사업장을 만들어 다양한 일 경험을 쌓도록 했다. 현재 30여 명이 청년행복학교 별에 등록돼 있다. 졸업 후 학교가 운영하는 카페 등에서 일하는 ‘가디언’도 16명이다. 대학 입시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박정식 씨(24)는 의사 소개로 3년 전 청년행복학교 별을 찾았다. 제과제빵과 영상 편집을 배우고 있다. 상태도 많이 호전됐다. 박 씨는 “서로 존중해 주는 분위기 덕분에 마음을 열게 됐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10대 때 입학해 청년행복학교 별을 거쳐 가디언으로 일하고 있는 한지윤 씨(27·여)는 “이 곳에서 처음으로 먼저 다가와 주는 친구들을 만났다”며 웃었다. ● ‘심리적 차상위계층’, 경계선 지능 청년들 이 곳 아이들의 상당수는 ‘경계선 지능’이다. 지능지수(IQ) 71~84로 장애 등급은 받지 않지만 자립이 쉽지 않다. 일반 학생들보다 배움이 느려 ‘느린 학습자’라고도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내외 연구에선 인구의 12~15%를 경계선 지능으로 추산한다. 이들은 관계 맺는 것도 서툴다. 가장 큰 고비는 성인이 되면서 찾아온다. 학교라는 울타리마저 사라지면서 혼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취업은 쉽지 않고, 대학에 진학했더라도 적응이 어렵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성인이 되면 최소한의 보호막도 사라진다. 미성년자가 아니고 장애 판정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렵다. 2019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조사에서 아동복지시설 종사자들은 이들에게 취업 지원(49.1%)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원만한 대인관계(20.4%), 주거(12.2%), 보호기간 연장(6.1%) 등이 뒤를 이었다. 유럽 선진국들은 경계선 지능을 복지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눈높이 직업 교육을 통해 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려 노력한다. 독일의 카리타스 돈보스코 직업교육훈련소는 경계선 지능을 포함한 경증 장애를 가진 16~25세 청소년을 위한 교육 기관이다. 교사 55명이 600여 명의 학생을 돌보는데, 이 중 약 20%가 경계선 지능 청소년이다. 청소, 자동차정비, 요리 등 18가지의 직업군을 실습 위주로 교육한다. 비장애인이 2, 3년 걸리는 교육을 3, 4년에 걸쳐 가르친다. 청년행복학교 별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곳에서 공예를 가르치는 안은비 교사는 “실패 경험이 누적된 학생들은 자신이 환대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교사 등 지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느린 학습자의 범위를 넓게 보면 청소년과 청년 인구 중 1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며 “진단 중심의 장애 판정 기준을 기능 중심으로 바꿔 돌봄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생지옥’ 코로나19로 악화된 마음 건강 프레네스쿨 별의 지난 20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4년 위탁형 대안학교 지정을 추진하며 인근에 3층 건물을 구입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반년 만에 쫓겨났다. 대안학교를 혐오시설로 여긴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진다며 시위를 한 것이다. 대출까지 받아 구입한 건물을 급히 처분하면서 수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 20년 동안 진 은행 빚만 5억 원이 넘는다. 운영 예산은 늘 팍팍하다. 청소년 학교 예산은 지방자치단체 지원이 3분의 2, 나머지는 학부모와 일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지자체 지원이 없는 스타 칼리지는 학부모 후원과 기부만으로 운영된다. 김 교장은 “많은 급여를 줄 순 없겠지만 청년 100~150명이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후 김 교장은 아이들의 마음 건강이 더 염려스럽다. 김 교장은 “PC방도 못가고 서로 어울리지 못하니 더 깊은 외로움과 우울감에 시달린다. ‘생지옥 같다’ ‘스마트폰 유배생활’이라며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는 일반 청소년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김 교장은 어른들이 무심한 사이 아이들의 꿈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했다.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비관론, 허무주의에 빠진 아이들이 많이 보여요. 부모가 받는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을 아이들은 더 크게 느낍니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말고 무엇이, 얼마나 힘든지 계속 물어봐야 합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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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외된 아이들에 마음건강 찾아주는 ‘치유 스타’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러브홀릭 ‘버터플라이’) 음악 수업이라기보다는 노래방이나 밴드 연습실 같았다. 한지훈 군(14·가명)과 최주현 양(19·가명)은 내리 다섯 곡을 부르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음정이나 박자가 틀려도, 잠시 딴짓을 해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윤이준 군(15·가명)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부터 씨엔블루의 ’외톨이야‘까지 능숙하게 기타 반주를 해냈다. 윤 군은 “예전 학교에선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게 힘들었는데 여기선 기타도 배우고 연주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별지기’가 된 정신과 전문의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대안학교 ‘프레네스쿨 별’의 첫인상은 ‘자유’였다. 2일 참관한 음악 협동조합 수업은 20여 개 선택 과목 중 하나다. 장애나 따돌림 때문에 일반 학교에 적응 못 했던 아이들도 여기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20년째 학교를 운영 중인 김현수 교장은 “소외된 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대개 위축돼 있거나 폭력적이다. 감정이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김 교장의 본직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현재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을 맡고 있다. 1992년 공중보건의 시절 소년교도소에서 만난 아이들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진짜 부도덕해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보단 가난이나 장애 때문에 나쁜 유혹에 빠진 아이들이 훨씬 많더군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빈곤과 범죄의 악순환에 갇히는 거죠. 이 아이들이 배움을 이어갈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전문의가 된 후로도 계속 학업 중단 청소년을 보살폈다. 교과 수업만큼 중요한 게 정서적 안정과 치유라는 걸 그때 알았다. 2002년 동료 3명과 함께 사재 1억5000만 원을 들여 학교를 만들었다. 학교의 첫 이름은 ‘치유적 대안학교 별’. 현재 건물 3층의 반쪽 공간에서 시작해 어느덧 건물 다섯 층을 사용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20년 동안 다녀간 학생은 260여 명. 현재 30명이 재학 중이다. ○1교시는 ‘둔감력’, 2교시는 ‘분노 조절’ 이곳의 커리큘럼은 대학처럼 필수 과목과 선택 과목으로 나뉜다. 한 학기에 하나 이상 꼭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은 분노 조절, 갈등 해결, 낙관주의, 반(反)편견, 둔감력, 정중한 거절, 치유 산행 등이다. 보통 학생에겐 자연스러운 사회화 과정이지만 이곳 아이들에겐 하나같이 버거운 과제들이다. 김 교장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아이들에겐 타인과 어우러지는 방법을 배우는 ‘사회 정서 학습’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건 아이들이 범죄에 연루되거나 피해자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접근해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범죄에 쓸 휴대전화나 통장을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둔감력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의 평상심을 유지시키는 훈련이다. 가령 영상 등으로 약한 자극을 준 뒤 감정을 어떻게 조절할지 서로 의견을 나눈다. 식은땀이 나서 옷을 벗겠다는 아이도 있고, 책을 읽거나 다른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아이도 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수학 수업에서도 답을 빨리 찾는 건 중요하지 않다. 교사는 문제를 풀어 나가는 각자의 방법을 인정해 준다. 정답을 맞힌 아이가 친구들에게 풀이 과정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정은 대표교사는 “학습 효과가 당장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보단 아이들 각자의 수준을 인정해주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기다려준다”고 말했다. ○스무 살, 준비 없이 사회로 떠밀리는 아이들 이곳 아이들의 상당수는 ‘경계선 지능’이다. 지능지수(IQ) 71∼84로 장애 등급은 받지 않지만 자립이 쉽지 않다. 일반 학생들보다 배움이 느려 ‘느린 학습자’라고도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내외 연구에선 인구의 12∼15%를 경계선 지능으로 추산한다. 이들은 관계 맺는 것도 서툴다. 가장 큰 고비는 성인이 되면서 찾아온다. 학교라는 울타리마저 사라지면서 혼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취업은 쉽지 않고, 대학에 진학했더라도 적응이 어렵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김 교장은 2010년 '스타 칼리지(현 청년행복학교 별)'을 만들었다. 스무 살 이후에도 조금 더 머물 수 있는 일종의 직업학교다. 치유에서 자립으로 학교의 목표와 역할을 넓힌 것이다. 졸업 후엔 바리스타, 쿠키 만들기, 농장, 공방 등 5개 사업장을 만들어 다양한 일 경험을 쌓도록 했다. 현재 약 30명이 청년행복학교 별에 등록돼 있다. 졸업 후 학교가 운영하는 카페 등에서 일하는 ‘가디언’도 16명이다. 대학 입시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박정식 씨(24)는 의사 소개로 3년 전 스타 칼리지를 찾았다. 제과제빵과 영상 편집을 배우고 있다. 상태도 많이 호전됐다. 박 씨는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 덕분에 마음을 열게 됐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경계선 지능 등 정신건강 취약 청년들은 성인이 되면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사회로 내던져진다. 미성년자가 아니고 장애 판정도 받지 않았다면 더 이상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렵다. 2019년 한국장애인개발원 조사에서 아동복지시설 종사자들은 이들에게 취업 지원(49.1%)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원만한 대인관계(20.4%), 주거(12.2%), 보호기간 연장(6.1%) 등이 뒤를 이었다. 청년행복학교 별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에서 공예를 가르치는 안은비 교사는 “실패 경험이 누적된 학생들은 자신이 환대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교사 등 지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느린 학습자의 범위를 넓게 보면 청소년과 청년 인구 중 1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며 “진단 중심의 장애 판정 기준을 기능 중심으로 바꿔 돌봄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지옥’ 코로나19로 악화된 마음 건강 프레네스쿨 별의 지난 20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4년 위탁형 대안학교 지정을 추진하며 인근에 3층 건물을 구입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반년 만에 쫓겨났다. 대안학교를 혐오시설로 여긴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진다며 시위를 한 것이다. 대출까지 받아 구입한 건물을 급히 처분하면서 수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 20년 동안 진 은행 빚만 5억 원이 넘는다. 운영 예산은 늘 팍팍하다. 청소년 학교 예산은 지방자치단체 지원이 3분의 2, 나머지는 학부모와 일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지자체 지원이 없는 스타 칼리지는 학부모 후원과 기부만으로 운영된다. 김 교장은 “많은 급여를 줄 순 없겠지만 청년 100∼150명이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후 김 교장은 아이들의 마음 건강이 더 염려스럽다. 김 교장은 “PC방도 못 가고 서로 어울리지 못하니 더 깊은 외로움과 우울감에 시달린다. ‘생지옥 같다’ ‘스마트폰 유배 생활’이라며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는 일반 청소년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김 교장은 어른들이 무심한 사이 아이들의 꿈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했다.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비관론, 허무주의에 빠진 아이들이 많이 보여요. 부모가 받는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을 아이들은 더 크게 느낍니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말고 무엇이, 얼마나 힘든지 물어봐야 합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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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니로 만든 LoL… IP 콘텐츠 사업의 ‘오징어게임’ 될까

    10여 년간 세계 6억명이 즐기고 있는 인터넷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스토리를 기반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아케인(ARCANE)’이 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2019년 라이엇 게임즈가 LoL 출시 10주년을 맞아 제작 진행 사실을 공개한 지 2년 만이다. 아케인은 LoL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총 3개 시리즈로 구성된다. 한 시리즈당 3편의 에피소드가 담긴다. 7일 첫 시리즈 공개 후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시리즈가 공개된다. 첫 시리즈는 주인공인 두 자매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갈등의 시작을 다루고 있다. 제작은 프랑스의 3차원(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포티셰 프로덕션’이 맡았다. LoL 팬들의 기대도 크다. 올 9월 공개된 2분 30초 분량의 첫 공식 트레일러는 공개 3시간 만에 조회수 100만 회를 기록했다. 공개 4일 만에 1000만 회를 돌파했고, 2일 기준 조회수는 1600만 회를 넘었다. 영상에는 두 주인공 징크스와 바이의 관계를 비롯해 자매가 겪은 사연 등 아직 드러나지 않은 스토리 등이 담겨 궁금증을 자아냈다. 1만여 개의 댓글 중에는 “LoL 유저가 아니지만 이 영상만으로도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어졌다”는 내용도 적지 않다. ‘아케인’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오프라인에 마련된 아케인 관련 전시 체험 공간에서도 드러났다. 11월 7일까지만 한시적으로 성수동 카페 쎈느에 문을 연 이 공간에서는 아케인을 주제로 권오상, 지용호, 최문석 등의 현대미술 아티스트 6명이 작업한 12점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지난 주말 해당 공간에는 코로나 거리 두기 지침하의 운영에도 불구하고 하루 총 10시간의 운영 시간 동안 1200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해당 공간은 11월 7일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일 운영된다. ‘아케인’ 공개와 함께 출시될 OST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7일 발매되는 OST에는 총 11곡이 담긴다. 세계적인 록 밴드 이매진 드래곤스와 협업한 주제곡 ‘에너미’ 뮤직비디오는 지난달 28일 먼저 공개됐다. 공개 하루 만에 조회수 300만 회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올해 롤드컵 공식 주제곡 ‘번 잇 올 다운(Burn it all down)’을 만든 록 밴드 패리스, 가상 걸그룹 ‘K/DA’, 데뷔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즈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재즈민 설리번, 2024년 파리 올림픽 주제가를 만든 우드키드 등이 참여했다. 음악은 게임 밖으로 꾸준히 외연을 확장해 온 라이엇 게임즈가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분야다. 이매진 드래곤스와 협업으로 제작한 월드 챔피언십 테마곡 ‘워리어스(Warriors)’가 대표적이다. LoL 대표 캐릭터 아리, 이블린, 아칼리, 카이사로 구성된 가상 걸그룹 ‘K/DA’는 멤버 구성 등에서 케이팝 스타일을 차용해 눈길을 끌었다. 라이엇 게임즈는 게임과 음악,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대중문화 영역으로 시장을 넓혀 기존 게임 회사들과 차별화를 노린다. 세계 최대 OTT 기업 넷플릭스,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와 손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이엇 게임즈 니콜로 러렌트 최고경영자(CEO)는 “전 세계 LoL 플레이어들의 열정에서 LoL의 주요 배경인 룬테라를 구현하기 위한 영감을 얻고 있다”며 “아케인 공개 후에도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콘텐츠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겠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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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니 ‘아케인’, 7일 넷플릭스 통해 공개…‘LOL’ 팬들 기대↑

    매달 1억 명 이상이 참여하는 인터넷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스토리를 기반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아케인(ARCANE)’이 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2019년 라이엇 게임즈가 LOL 출시 10주년을 맞아 제작 진행 사실을 공개한 지 2년 만이다. 아케인은 LOL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총 3개 시리즈로 구성된다. 한 시리즈 당 3편의 에피소드가 담긴다. 7일 첫 시리즈 공개 후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시리즈가 공개된다. 첫 시리즈는 주인공인 두 자매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갈등의 시작을 다루고 있다. 제작은 프랑스의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포티셰 프로덕션’이 맡았다. LOL 팬들의 기대도 크다. 올 9월 공개된 2분30초 분량의 첫 공식 트레일러는 공개 3시간 만에 조회수 100만 회를 기록했다. 공개 4일 만에 1000만 회를 돌파했고, 2일 기준 조회수는 1700만 회를 넘었다. 영상에는 두 주인공 징크스와 바이의 관계를 비롯해 자매가 겪은 사연 등 아직 드러나지 않은 스토리 등이 담겨 궁금증을 자아냈다. 1만 여개의 댓글 중에는 “LOL 유저가 아니지만 이 영상만으로도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어졌다”는 내용도 적지 않다. 7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오프라인 관람 행사인 ‘아케인 와치 파티’가 열린다. 현장 시사회와 함께 아케인 골든벨, 포토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참가자 전원에게 기념품이 제공된다. 아케인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는 ‘아케인 롤플릭스’도 진행된다. ‘아케인 팬아트 챌린지’도 진행 중이다. 아케인과 관련해 떠오르는 이미지를 일러스트, 그래픽, 드로잉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현하면 된다. 선정된 작품은 LOL 공식 채널에 소개된다. 접수는 14일 자정까지다. ‘아케인’ 공개와 함께 출시될 OST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7일 발매되는 OST에는 총 11곡이 담긴다. 세계적인 록 밴드 이매진 드래곤스와 협업한 주제곡 ‘에너미’ 뮤직비디오는 지난달 28일 먼저 공개됐다. 공개 하루 만에 조회수 300만 회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올해 롤드컵 공식 주제곡 ‘번 잇 올 다운(Burn it all down)’을 만든 록 밴드 패리스, 가상 걸그룹 ‘K/DA’, 데뷔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즈 7개 부분 후보에 오른 자즈민 설리반, 2024년 파리 올림픽 주제가를 만든 우드키드 등이 참여했다. 음악은 게임 밖으로 꾸준히 외연을 확장해 온 라이엇 게임즈가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분야다. 이매진 드래곤스와 협업으로 제작한 월드 챔피언십 테마곡 ‘워리어스(Warrios)’가 대표적이다. LOL 대표 캐릭터 아리, 이블린, 아칼리, 카이사로 구성된 가상 걸그룹 K/DA는 멤버 구성 등에서 케이팝 스타일을 차용해 눈길을 끌었다. 라이엇 게임즈는 게임과 음악,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대중문화 영역으로 시장을 넓혀 기존 게임 회사들과 차별화를 노린다. 세계 최대 OTT 기업 넷플릭스,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와 손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이엇 게임즈 니콜로 러렌트 최고경영자(CEO)는 “전 세계 LOL 플레이어들의 열정에서 LOL의 주요 배경인 룬테라를 구현하기 위한 영감을 얻고 있다”며 “아케인 공개 후에도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콘텐츠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겠다”고 말했다.박성민기자 min@donga.com}

    • 20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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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살고 싶다” 우울의 늪 탈출한 10대들,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다[박성민의 더블케어]

    지난달 말 통계청의 ‘2020년 사망원인 통계’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10대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이 전년보다 9.4% 급증했다는 소식이었다. 10대 남성의 증가율(18.8%)이 특히 높았다. 2년째 이어진 팬데믹이 사회적 단절에 취약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켰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 즈음 비슷한 경험이 있는 10대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가 출간됐다. ‘아픔을 딛고 일어선 청소년들의 살고 싶다는 고백’이라는 표지 글이 눈에 띄었다. 저자는 정신질환 인식 개선 및 동료지원가 양성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기관 ‘멘탈헬스코리아’에서 만난 7명의 ‘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동료지원가)’ 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아픔 경험 전문가’라고 불렀다. 학교 폭력과 따돌림, 이로 인한 자해와 자살 시도까지. 터놓기 쉽지 않은 상처와 치유 과정을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각자 쓴 분량은 20페이지 남짓이지만 책이 나오는 데는 1년 반이 걸렸다. 간신히 봉합한 상처를 다시 꺼내 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저자들은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은 생존자다. 여러 통계를 종합하면 한국 10대 청소년의 3분의 1가량은 경도 이상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2019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중고생의 13.1%는 최근 1년 간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있고, 3%는 실행에 옮겼다. 12일 서울 마포구의 출판사 사무실에서 우가은(16), 강지오 양(17·가명)을 만났다. 잿더미가 된 마음속에서 작은 불씨를 지켜낸 방법이 궁금했다. ● 폭력, 차별, 강박… 벼랑 끝 아이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일찍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다. 강 양이 우울감을 처음 느낀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괴롭힘이 시작됐다. 물리적 폭력보다 견디기 더 힘들었던 건 성적 비하가 담긴 언어폭력이었다. 어른들도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5학년 때 반 친구 2명에게 놀림과 구타를 당했지만 담임은 피해자에게 형식적인 사과를 받아낸 뒤 용서하라고만 했다. 괴롭힘은 계속됐다. 자해를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다. “네가 태어났으면 안 됐어.” 우 양은 6살 무렵 친할머니에게 들은 이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할머니는 원했던 손자 대신 손녀가 태어난 게 마뜩치 않았다. 그 때부터 우 양은 조금씩 위축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폭력을 겪으며 벼랑 끝까지 몰렸다. 괴롭힘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이어져 우 양을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가해자와 한 공간에 있는 게 지옥 같았다.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유로 무너지기도 한다. 문강 양(18)이 그랬다. 문 양은 2019년 뇌종양으로 아버지를 여읜 아픔을 딛고 씩씩하게 학교를 다녔다. 겉만 멀쩡했을 뿐 안에선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걸 몰랐다. 어느 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등교 시간이 다 돼 눈을 떴다. 그 때부터 두 달간 등교도 거부하고 은둔생활이 이어졌다. 문 양은 “아빠가 없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마음 속 불이 ‘탁’ 하고 꺼져버렸다. 번아웃(burnout·소진)이 왔다”고 말했다. ● 가면 속에서 더 곪아가는 상처들 ‘내 편은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아이들은 가면 뒤로 숨는다. 학업과 교우 관계 스트레스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자해를 했던 이성음 씨(20·여)는 “힘들다고 말하면 패배자로 보일 뿐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았다. 감정이 읽히는 게 싫어 슬픔이나 분노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가면 속에서 상처는 더 곪는다. 장예진 씨(21·여)는 초등학교 시절 당한 따돌림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도 철저히 배제 당하는 ‘유인도 표류기’였다”고 썼다. 잘난 척 하는 게 꼴 보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못하는 척 연기도 했다. 장 씨는 “광대 같은 내 모습이 경멸스러워 집에 오면 더 우울해지고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고 했다. 어른들의 미숙한 대처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중학교 진학 후 심리검사에서 자살위험군 진단을 받은 강 양은 상담 내용이 그대로 학교와 부모님에게 전달되는 것을 알고 큰 배신감을 느꼈다. 부모 손에 이끌려 간 병원에서 만난 의사도 강 양의 마음을 보듬지 못했다. 의사는 자해 상처를 보고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덜 심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강 양은 “겉으로 드러난 상처보다 마음 속 상처를 헤아려주는 어른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상담소나 쉼터에서 듣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강 양은 “집에선 1분 1초도 버틸 수 없어 탈출한 건데 쉼터에선 신체적 학대가 없으면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가정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소중함을 각인시키는 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가정 폭력에 시달려 온 조수현 씨(20·여)의 부모님은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상담을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우울증 약 복용도 반대했다. 그런데도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마다 보호자 동의를 요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 씨는 “그 땐 엄마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를 극단적으로 몰아간 상황이 무엇인지 알아주길 원했다. 상담이 끊긴 후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하고 처절한 시간을 보냈다”고 썼다. ● “추락은 두렵지만 착륙은 두렵지 않다”그래도 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누군가 손을 잡아줬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던 문 양에게 담임선생님은 “수정테이프로 지우거나 펜으로 긋고 다시 써도 괜찮다”는 말로 힘을 줬다. 문 양이 피어 스페셜리스트 활동을 하며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반드시 뜨겁게 타오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잔잔한 모닥불도, 작은 양초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불씨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니까요.” 강 양에겐 온라인에서 만난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다. “40대 아저씨였는데 ‘누구나 아플 수 있다. 그건 네 잘 못이 아니다’라고 한결같이 내 편이 돼 줬어요. 알고 보니 그 분도 힘들었던 순간 손을 잡아준 사람이 있었고, 받았던 위로를 나눠주고 싶었대요.” 초등학교 시절 지속된 따돌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김도희 양(18)은 틈틈이 정신건강과 심리학 관련 공부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는 게 꿈이다. 그는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감기처럼 쉽게 털어놓을 수 있길 바란다”며 “학교폭력의 상처는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고 흉터가 될 수도 있지만, 잘 극복하면 날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저자들은 “바닥을 찍고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언제든 다시 깊은 바다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걸 잊지 않는다. 우 양은 그럴 때마다 “추락은 두렵지만 착륙은 두렵지 않다”는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의 말을 되새긴다. 우 양은 “비행 중 난기류를 만나 흔들릴 때도, 착륙할 때도 있지만 더 멀리 날기 위한 과도기일 뿐 실패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웃었다. 강 양은 글씨가 저절로 지워지는 ‘기화펜’으로 감정일기를 쓴다. 힘든 순간이나 감정도 글씨처럼 곧 사라질 것이란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다소 안정된다. 강 양은 “가장 힘들 때 내 옆에 10m 높이의 벽이 있었다면 지금은 4m쯤 남은 것 같다. 그래도 벽은 언젠간 허물어진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 아픔도 장점이 될 수 있다 지난해 교육부의 학생정서·행동특성 검사에서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된 학생은 2만682명. 검사 대상이 초등학교 1·4학년, 중고등학교 1학년 등으로 한정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정신건강이 우려되는 10대는 훨씬 많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자해나 자살시도로 응급실에 실려 온 10대는 2015년 2291명에서 2019년 4598명으로 거의 2배로 늘었다. 전 연령대 중 증가율이 가장 높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관계 단절을 겪거나 고립되는 청소년은 더 늘었다. 부모의 실직이나 수입 감소가 자녀들의 심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그래서 더 중요하다. 멘탈헬스코리아가 2018년부터 최근까지 양성한 피어 스페셜리트는 약 130명. 지난해엔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요청으로 ‘청소년 자해 예방단’으로 활동했다.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는 “자해 횟수를 줄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목표를 못 이룬 아이들이 더 큰 자기혐오에 빠질 수 있다”며 “언젠가 끊을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피어 스페셜리스트는 아픔도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과정이다.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모집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선 “애들이 사고 치면 어떡하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최연우 멘탈헬스코리아 대표는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정과 사회의 문제다. 피해자나 환자라는 낙인을 지우고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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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처는 흉터 대신 날개 남겨… 더 멀리 날기 위한 과정일 뿐”[박성민의 더블케어]

    “상처는 흉터 대신 ‘날개’를 남긴다.” “벽이 있다면 억지로 넘으려 하지 말고, 눕혀서 다리로 만들자.” 여기 7명의 특별한 전문가가 있다. 긴 우울과 불안의 터널을 통과한 ‘아픔 경험 전문가(Peer Specialist)’다. 이들은 10대 혹은 갓 성인이 된 청년이다. 정신질환 인식 개선 및 동료지원가 양성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기관 ‘멘탈헬스코리아’에서 만났다. 학교 폭력과 따돌림, 이로 인한 자해와 자살 시도까지. 터놓기 쉽지 않은 상처와 치유 과정을 지난달 책(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사진)으로 펴냈다. 저자들은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은 생존자다. 여러 통계를 종합하면 한국 10대 청소년의 3분의 1가량은 경도 이상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2019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중고교생의 13.1%는 최근 1년간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있고, 3%는 실행에 옮겼다. 지난해 10대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은 6.5명으로 전년보다 9.4% 급증했다. 12일 서울 마포구의 출판사 사무실에서 우가은(16), 강지오(가명·17) 양을 만났다. 잿더미가 된 마음속에서 작은 불씨를 지켜낸 방법이 궁금했다.○ 폭력, 차별, 강박… 벼랑 끝 아이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일찍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다. 강 양이 우울감을 처음 느낀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괴롭힘이 시작됐다. 물리적 폭력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성적 비하가 담긴 언어폭력이었다. 어른들도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5학년 때 반 친구 2명에게 놀림과 구타를 당했지만 담임은 피해자에게 형식적인 사과를 받아낸 뒤 용서하라고만 했다. 괴롭힘은 계속됐다. 자해를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네가 태어났으면 안 됐어.” 우 양은 여섯 살 무렵 친할머니에게 들은 이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할머니는 원했던 손자 대신 손녀가 태어난 게 마뜩지 않았다. 그때부터 우 양은 조금씩 위축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폭력을 겪으며 벼랑 끝까지 몰렸다. 괴롭힘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이어져 우 양을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가해자와 한 공간에 있는 게 지옥 같았다.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유로 무너지기도 한다. 문강 양(18)이 그랬다. 문 양은 2019년 뇌종양으로 아버지를 여읜 아픔을 딛고 씩씩하게 학교를 다녔다. 겉만 멀쩡했을 뿐 안에선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걸 몰랐다. 어느 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등교 시간이 다 돼 눈을 떴다. 그때부터 두 달간 등교도 거부하고 은둔 생활이 이어졌다. 문 양은 “아빠가 없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마음속 불이 ‘탁’ 하고 꺼져버렸다. 번아웃(burnout·소진)이 왔다”고 말했다.○가면 속에서 더 곪아가는 상처들 ‘내 편은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아이들은 가면 뒤로 숨는다. 학업과 교우 관계 스트레스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자해를 했던 이성음 씨(20·여)는 “힘들다고 말하면 패배자로 보일 뿐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았다. 감정이 읽히는 게 싫어 슬픔이나 분노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가면 속에서 상처는 더 곪는다. 장예진 씨(21·여)는 초등학교 시절 당한 따돌림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도 철저히 배제당하는 ‘유인도 표류기’였다”고 썼다. 잘난 척하는 게 꼴 보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못난 척 연기도 했다. 장 씨는 “광대 같은 내 모습이 경멸스러워 집에 오면 더 우울해지고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고 했다. 어른들의 미숙한 대처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중학교 진학 후 심리검사에서 자살위험군 진단을 받은 강 양은 상담 내용이 그대로 학교와 부모님에게 전달되는 것을 알고 큰 배신감을 느꼈다. 부모 손에 이끌려 간 병원에서 만난 의사도 강 양의 마음을 보듬지 못했다. 의사는 자해 상처를 보고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덜 심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강 양은 “겉으로 드러난 상처보다 마음속 상처를 헤아려주는 어른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추락은 두렵지만 착륙은 두렵지 않다” 그래도 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누군가 손을 잡아줬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던 문 양에게 담임선생님은 “수정테이프로 지우거나 펜으로 긋고 다시 써도 괜찮다”는 말로 힘을 줬다. 문 양이 피어 스페셜리스트 활동을 하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반드시 뜨겁게 타오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잔잔한 모닥불도, 작은 양초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불씨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니까요.” 강 양에겐 온라인에서 만난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다. “40대 아저씨였는데 ‘누구나 아플 수 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한결같이 내 편이 돼 줬어요. 알고 보니 그분도 힘들었던 순간 손을 잡아준 사람이 있었고, 받았던 위로를 나눠주고 싶었대요.” 저자들은 “바닥을 찍고 올라왔지만 언제든 다시 가라앉을 수 있다”는 걸 잊지 않는다. 우 양은 그럴 때마다 “추락은 두렵지만 착륙은 두렵지 않다”는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의 말을 되새긴다. 우 양은 “비행 중 난기류를 만나 흔들릴 때도, 착륙할 때도 있지만 더 멀리 날기 위한 과도기일 뿐 실패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웃었다. 강 양은 글씨가 저절로 지워지는 ‘기화펜’으로 감정일기를 쓴다. 힘든 순간이나 감정도 글씨처럼 곧 사라질 것이란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다소 안정된다. 강 양은 “가장 힘들 때 내 옆에 10m 높이의 벽이 있었다면 지금은 4m쯤 남은 것 같다. 그래도 벽은 언젠간 허물어진다고 믿는다”고 말했다.○아픔도 장점이 될 수 있다 지난해 교육부의 학생정서·행동특성 검사에서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된 학생은 2만682명. 검사 대상이 초등학교 1·4학년, 중고등학교 1학년 등으로 한정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정신건강이 우려되는 10대는 훨씬 많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자해나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온 10대는 2015년 2291명에서 2019년엔 2배 이상인 4598명으로 늘었다. 전 연령대 중 증가율이 가장 높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관계 단절을 겪거나 고립되는 청소년은 더 늘었다. 부모의 실직이나 수입 감소가 자녀들의 심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그래서 더 중요하다. 멘탈헬스코리아가 2018년부터 최근까지 양성한 피어 스페셜리스트는 약 130명. 지난해엔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요청으로 ‘청소년 자해 예방단’으로 활동했다.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는 “자해 횟수를 줄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목표를 못 이룬 아이들이 더 큰 자기혐오에 빠질 수 있다”며 “언젠가 끊을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피어 스페셜리스트는 아픔도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과정이다.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모집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선 “애들이 사고 치면 어떡하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최연우 멘탈헬스코리아 대표는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정과 사회의 문제다. 피해자나 환자라는 낙인을 지우고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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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업위기 소상공인들에 재도약 날개… 소진공 희망리턴패키지 사업 큰 호응

    2015년 화장품 소매점을 창업한 A 씨(29)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초부터 매출이 급감했다. 주요 고객이었던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이 뚝 끊긴 영향이었다. 임차료 부담이 커지면서 하루빨리 가게를 정리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깊어졌다. A 씨는 결국 지난해 5월 폐업을 결정했다. A 씨가 재기의 기회를 찾은 건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의 희망리턴패키지 사업 덕분이다. 희망리턴패키지는 폐업 예정인 소상공인의 사업 정리, 취업 교육, 법률 자문, 재창업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A 씨도 컨설팅을 받아 별도 비용 없이 사업장을 정리할 수 있었다. 외상 거래대금 회수, 재고 물품 매각 등을 자문해 폐업 비용을 줄였다. 폐업 후에는 업종전환 교육을 받고 남성미용 전문점을 차렸다. 창업 비용 1000만 원도 지원받았다. A 씨는 “창업 전문가로부터 시장과 상권 분석, 판매전략 수립, 온라인몰 개설까지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희망리턴패키지의 ‘재창업 및 업종전환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은 폐업한 소상공인에게 창업 교육과 사업화 비용을 지원한다. 올해 사업비 지원 예산은 총 120억 원, 교육에는 60억 원이 책정됐다. 사업체 1곳당 비용의 50%를 1000만 원 한도에서 지원한다. 재창업에 성공한 소상공인들의 만족도도 높다. 지난해 1월 대전 중앙시장에 운동기구 전문점을 차렸다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B 씨(60)는 희망리턴패키지의 지원을 받아 수공예품 공방을 창업했다. B 씨는 “교육비와 재료비가 무료여서 경제적 부담도 크지 않았다. 다양한 창업 노하우를 배워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희망리턴패키지 사업을 통해 인생 역전을 이룬 사례도 있다. 2014년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다 폐업한 C 씨(38·여)는 당초 소진공의 재창업 교육을 받아 꽃집을 창업했다. C 씨는 사업 확장을 위해 올해 다시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제품 개선 컨설팅을 받은 C 씨는 받침 없는 화분 등 새로운 디자인을 고안해 주목을 받았다. C 씨는 “희망리턴패키지 사업 덕분에 동네 꽃집이 전국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기부는 올해 약 691억 원이었던 희망리턴패키지 예산을 내년 1139억 원으로 확대 편성했다. 조봉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은 “올해 처음 시작된 사업화 지원은 아이디어로 그칠 뻔했던 소상공인의 사업 구상을 실현시켜주는 프로그램”이라며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에게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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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고거래 신뢰 쌓이니 이용자 머무는 시간도 늘어”

    가입자 2100만 명. 주간 순이용자(WAU) 1000만 명. 이 정도면 ‘국민 애플리케이션(앱)’이라고 부를 만하다. 전국 가구 수(약 2336만 가구)를 감안하면 가족 중 한 명은 이 앱을 쓰는 셈이다. 중고 거래에서 시작해 지역 밀착 커뮤니티 서비스로 진화 중인 당근마켓 이야기다. 당근은 ‘당신 근처’의 줄임말이다. 2015년 직장인 기반 플랫폼인 판교장터로 시작해 2018년 전국으로 무대를 넓혔다. 2018년 1월 50만 명이었던 월간 순이용자(MAU)는 최근 1500만 명을 넘었다. 당근마켓 김재현 공동대표(42)를 최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만났다. 문방구, 기찻길 등 회사 곳곳에 붙여 놓은 공간 이름이 독특했다. 지역 기반 서비스를 지향하는 당근마켓의 정체성과 닮아 있었다. 김 대표는 “인터넷과 모바일이 발달하면서 먼 거리를 연결하는 것만을 가치 있게 여겨 왔다. 반대로 내가 사는 동네, 내 이웃을 연결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근마켓의 아이디어는 김 대표와 김용현 공동대표가 함께 근무하던 카카오의 사내 중고 거래 게시판에서 얻었다. 좁은 서비스 범위, 거래자 간 높은 신뢰도, 이용자의 높은 체류 시간 등 게시판의 성공 요인을 당근마켓에 그대로 옮겼다.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기를 당하거나 거래에 실망했다는 ‘거래 불만’ 비율은 0.7% 미만이다. 신뢰도를 높인 요인 중 하나가 매너온도다. 36.5도로 시작해 상대의 평가에 따라 변화한다. 김 대표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앱을 업데이트할 만큼 고객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용자 간 신뢰가 쌓이면서 기존 지역카페 기능도 대체하고 있다. 맛집 문의, 취미 공유 등이 이뤄지는 동네친구 서비스는 최근 MAU가 600만 명을 넘었다. 김 대표는 “네이버 검색보다 내 지역 정보 찾기에 유리하고, 폐쇄형 커뮤니티인 맘카페보다는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로 진화하면서 이용자들이 머무는 시간도 늘었다. 글로벌 데이터 조사기관 앱애니에 따르면 가입자 1명당 월평균 64회 당근마켓에 들어와 2시간 2분 동안 머물렀다.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넥스트도어(25회, 51분)보다 이용자들과 더 깊은 친밀도를 유지했다는 의미다. 당근마켓은 최근 1789억 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를 유치했다.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가치는 3조 원. 유통 대기업들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규모다. 2019년 글로벌 버전 캐롯(Karrot)을 출시한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등 4개국 72개 지역에 진출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당근마켓의 목표는 전 세계 이용자 20억 명이 쓰는 글로벌 서비스다. 가입자 수 2000만 명을 넘겼으니 목표의 1%를 이룬 셈이다. “증시 상장보다는 탄탄한 수익구조를 만드는 게 먼저예요. 무리한 투자보다는 원래 속도대로 조금씩 앞을 바라보고 갈 겁니다. 당근마켓이 이렇게 잘될 줄 만들 땐 몰랐으니까요.”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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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소리만 들어도 고객의 미세한 감정 떨림이 보여요”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유 오피스. 바닥만 볼 수 있게 시야를 가린 특수 안경을 쓰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기자를 방으로 안내한 직원은 작은 호출기를 건넸다. 나가고 싶어지면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푹신한 의자와 나지막한 음악에 마음이 착 가라앉다가도 낯선 어둠에 이내 신경이 곤두섰다. 그 순간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어둠이 불편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그는 자신을 ‘어린왕자’라고 소개했다. 이곳은 익명이 원칙이다. 기자도 ‘노트’라는 대화명을 정했다. “어떤 고민 때문에 오셨나요.” 잠깐 체험만 하고 나올 생각이었지만 종료 3분을 알리는 신호가 울릴 때까지 속엣말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이었다. 녹취를 들어보니 50분의 대화 중 어린왕자의 목소리는 5분 남짓. 45분 동안 고민을 털어놓은 기자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안정과 여유를 찾는 것처럼 들렸다.○ 어둠 속에서 327명의 마음을 보듬다 이날 기자가 이용한 서비스는 여느 상담과 다르다. 정확한 이름은 ‘블라인드 마음보듬’이다. 시각장애인 ‘마음보듬사’와 50분간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다. 철저한 익명으로 진행되고 끝날 때까지 상대방의 얼굴도, 방의 구조까지도 알 수 없다. 모든 걸 지우고 오직 대화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일반 심리상담이 진단이나 치유가 목적이라면 이곳은 경청과 공감이 중심이다. 활동 중인 마음보듬사는 7명. 보건복지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인증한 마음보듬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주체는 서울대 동아리 ‘봄 그늘’이다. 창업 동아리실에 모인 친구들은 누구에게나 ‘터놓고 말할 곳’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우울감에 시달리거나 고민이 있어도 병원에 가거나 심리상담 받기를 꺼려하는 친구가 많았다. 상담 기록이 남는 걸 원치 않았고 비용 부담도 진입 장벽이었다. 그러다 떠올린 게 ‘어둠’이다. 어둠 속에선 상대의 시선을 신경 쓰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오직 내 목소리에만 집중한다. 그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적임자가 시각장애인이었다. 정서현 매니저(20)는 “시각장애인은 어둠 속에서 장시간 일하는 데 비장애인보다 적응이 쉽다”고 말했다. 2018년 5월부터 강남구 공유 오피스와 관악구 사무실 등 2곳에서 ‘봄 그늘’ 소속 학생들이 운영하기 시작한 마음보듬 서비스에는 지금까지 327명이 다녀갔다. 총 마음보듬 횟수는 679회. 평균 2회 이상 이용할 만큼 재방문 고객이 많다. 3년째 꾸준히 대화하러 오는 고객도 있다. 평점은 5점 만점에 4.82점을 기록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정 매니저는 “전문 상담을 받다가 마음보듬으로 옮겨 오신 분도 있다. 상담의 대체재 혹은 보완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보이지 않아서 더 잘 보인다 마음보듬을 받은 뒤 밝은 곳으로 나와 어린왕자 A 씨(54)와 마주 앉았다. 2018년 봄 그늘에 합류해 지금까지 약 200회의 마음보듬을 진행한 베테랑이다. 그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2008년 장애 판정을 받았다. 점차 시력이 나빠져 완전히 시각을 잃게 되는 질병이다. 지금도 볼 수 있는 범위가 90도가 채 안 된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던 A 씨는 2003년부터 심리상담을 배우기 시작했다. 공부에 욕심이 생겨 3년 뒤엔 대학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비장애인 석박사가 넘치는 심리상담 영역에서 상담사로 일할 기회를 얻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10년 넘게 공부한 게 물거품이 되나 싶었던 순간 마음모듬사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A 씨에게 상대의 표정이나 반응을 보지 못하면 대화가 더 어렵지는 않은지 물었다. “청각에만 의존하면서 상대를 더 깊게 알게 돼요. 호흡이나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에서 고객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느껴져요. 들어와서 앉을 때 의자 소리에서도 감정이나 심리 상태가 드러나거든요.” 오전엔 병원 사무보조원으로, 오후엔 마음보듬사로 일하는 A 씨는 저녁엔 대학원까지 다닌다. 전공은 예술심리다. 음악 심리상담과 미술 심리상담 자격증도 있다. 시각을 잃어가는 중에도 색채 심리상담을 공부하는 이유를 A 씨는 “빛을 보는 순간까지는 색을 느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직업의 한계를 넓히다 마음보듬이나 심리상담은 시각장애인에게 어울리는 직업이지만 기회는 제한적이다. A 씨는 “시각장애인 중에는 사회복지나 심리상담 자격증을 가진 분이 많다. 그런데 이들이 일할 기회는 충분치 않다”고 아쉬워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5세 이상 시각장애인은 25만1565명. 이들의 고용률은 42.3%에 그쳤다. 전체 장애인 고용률 34.9%보다는 높지만 전체 고용률(60.2%)에는 한참 못 미친다. 마음보듬사가 의미 있는 것도 시각장애인의 직업적 한계를 넓혔다는 점이다. B 씨(26·활동명 ‘좋은’)는 2017년 레버 시신경 위축증으로 중증 장애 판정을 받았다. 재활 과정의 동료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상담의 매력에 빠졌다. B 씨는 “장애 판정을 받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크게 좌절했다. 그때 마음보듬사를 알게 되면서 다시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를 통해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됐다는 고객들, 어둠이 예전처럼 무섭지 않고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후기를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릴 적 의료사고로 시각장애가 생긴 C 씨(38)는 헬스키퍼(안마사)와 마음보듬사를 병행하고 있다. 그는 “특수학교를 다니면 대부분 안마를 배우고 다른 직업을 선택할 기회는 거의 없다”며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직업 영역을 나눠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요정 할머니가 나타난 기분” 마음보듬 50분 이용료는 3만5000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대면 서비스에 제약이 생기면서 전화 상담(2만5000원)도 시작했다. 이 중 1만3000원이 마음보듬사 몫이다. 남은 수익은 거의 운영비로 쓰인다.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들이 프로젝트까지 운영하는 게 쉽지는 않다. 급여도 없다. 공간 대여료 외에 운영비는 격월로 진행되는 마음보듬사 교육에 쓴다. 전문기관에 상담 교육을 의뢰한다. 마음보듬을 시작하기 전 80시간의 사전 교육을 받고 실습도 하지만 다양한 고객의 고민을 보듬으려면 역량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봄 그늘 멤버들이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 후기를 볼 때다. 한 고객은 “동화 같았다. 언제나 내 편인 요정 할머니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정 매니저는 “학업과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활동 기간 1년 동안 마음보듬사와 고객들께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A 씨에게 ‘어린왕자’라는 활동명을 정한 이유를 물었다. “어린왕자가 낙천적이잖아요. 저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점점 시각을 잃어 전맹(全盲)이 될 때까지 저 역시 사막을 여행하고 있거든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날을 대비해 배우고 깨칠 것도 많고요.” 10월 15일은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성취, 기본권을 생각하자는 의미로 제정된 ‘흰 지팡이의 날’이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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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고거래 하러 왔다가 위로 받고 간다…할머니부터 손자까지 ‘1일 1당근’ 시대[박성민의 이노베이터]

    가입자 2100만 명, 월간이용자(MAU) 1500만 명. 주간이용자(WAU) 1000만 명. 이 정도면 가히 ‘국민 애플리케이션(앱)’이라고 부를 만하다. 전국 가구수(약 2336만 가구)를 감안하면 가족 중 한 명은 이 앱을 쓰는 셈이다. ‘1가구 1당근’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거래 상대를 확인하며 건네는 첫 인사 “당근이세요?”는 유행어가 됐다. 중고 거래에서 시작해 지역 밀착 커뮤니티 서비스로 진화 중인 당근마켓 얘기다. 앱 다운로드 수가 많다고 그 서비스가 반드시 성공적인 건 아니다. 방문 빈도가 높고 체류 시간이 길어야 한다. 글로벌 데이터 조사기관 앱애니에 따르면 가입자 1명당 월 평균 64회 당근마켓에 들어와 2시간 2분 동안 머물렀다.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넥스트도어(25회, 51분)보다 이용자들과 더 깊은 친밀도를 유지했다는 의미다. 당근은 ‘당신 근처’의 줄임말이다. 2015년 판교장터로 시작, 2018년 전국으로 무대를 넓힌 당근마켓은 MAU 기준으로 3년 새 30배의 성장을 이뤘다. 유니콘(가치 1조 원 이상 스타트업) 기준도 훌쩍 뛰어넘었다. 이런 성공을 거뒀음에도 스스로를 “홈런 치는 개발자는 아니다”라고 소개하는 김재현(42) 공동대표를 최근 서울 강남구 당근마켓 본사에서 만났다. ● 비대면의 시대에 대면을 강조한 서비스 문방구, 기찻길, 나무그늘…. 회의실, 휴게실, 복도 등 사무실 곳곳에 붙여 놓은 이름이 독특했다. 동네에서 봄직한 장소들이다. 지역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근마켓의 정체성을 옮겨 놓은 것. 동네 아저씨 같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김 대표에게 ‘지역’에 그렇게 집중하는 이유를 물었다. “인터넷이 대중화 된 게 20년, 모바일은 10년쯤 됐지만 그동안 많은 서비스들이 먼 거리 연결만을 가치 있게 여겼던 것 같아요. 저희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내가 사는 동네가 궁금하고, 이웃과 교류하고 싶은 욕구가 분명 있으니까요. 그런 연결에서 새로운 가치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당근마켓의 아이디어는 김 대표와 김용현 공동대표가 함께 근무하던 카카오의 사내 중고거래 게시판에서 얻었다. 서비스 범위가 좁으니 거래가 편했고, 같은 직원들끼리 거래라 신뢰도 높았다. 가성비 좋은 물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직원들은 수시로 드나들었고, 체류 시간도 길었다. 이런 성공 비결을 당근마켓에 그대로 옮겼다. 판교장터에서 서비스 지역을 넓히면서 바뀐 이름이 당근마켓이다. 당시 김 대표가 생각한 회사명은 ‘끼리장터’, ‘완소비’ 등이다. 완소비는 ‘완전한 소비’의 줄임말이다. 생산과 소비 주기가 빨라지면서 피할 수 없게 된 환경 문제에서 착안한 작명이었다. 사명으로 채택되진 않았지만 ‘완소비’는 당근마켓 경영 철학의 하나로 남았다. 당근마켓은 매달 자원 재사용으로 얻게 된 탄소저감 효과를 수치로 보여 준다. 지난해엔 당근 거래로 약 2777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효과를 냈다. 김 대표는 수시로 환경 동향이나 관련한 유튜브 콘텐츠를 찾아본다. 원래 물건을 버리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데다가 아파트 단지의 넘쳐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보면서 중고거래의 필요성을 더 실감했다. 그는 “최근 수도권의 쓰레기 매립지 문제가 심각하다고 들었다”며 “당근마켓이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개발자들이 가고 싶어하는 회사취업 준비생이나 이직을 꿈꾸는 직장인 사이에선 ‘네카라쿠배당토’가 최근 화제다.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 등 성공한 스타트업을 선망하는 젊은 세대의 바람을 담은 신조어다. 몇 달 전엔 애플 개발자 공모전에서 입상한 한 고교생이 “당근마켓이나 쿠팡 개발자로 취직하는 것이 목표”이라는 포부를 밝혀 업계에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김 대표는 몸을 낮췄다. “저희 빼곤 모두 직원 1000명 이상 기업이잖아요. 그런 기업들 사이에 낀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아직 개척이 덜 된 ‘로컬’이라는 시장에 많은 개발자들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여느 스타트업처럼 당근마켓도 새로운 시도, 직원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다만 그런 분위기가 성과로 이어지도록 판을 깔아주는 건 리더의 몫이다. 개발자 출신인 김 대표는 누구보다도 그 중요성을 잘 안다. “어떤 프로젝트를 두고 어디선가 회의적인 반응이 나올 때면 ‘처음엔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길 많이 해요. 그 팀을 믿어보는 거죠. 당근마켓을 시작할 때도 ‘이게 되겠어?’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토론하고 개선점을 찾으면서 결국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당근마켓에선 연차나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수시로 팀을 꾸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주니어 직원, 심지어 인턴사원이 PM(프로젝트 매니저)을 맡는 팀도 있다. 김 대표는 “PM은 전통적인 회사의 팀장, 리더와는 성격이 다르다. 팀이 잘 돌아가도록 업무를 조율하고 뭘 더 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공서열에 얽매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연차가 적다고 역량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당근마켓은 최근 월 20~30명씩 채용할 만큼 몸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직원 수는 올해 안에 3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 스타트업의 수평적 문화를 유지하기 쉽지 않은 규모다. 김 대표는 그럴수록 전 직원들의 소통을 강조한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문화의 날’은 모든 직원이 모여 조직 문화를 토론하는 시간이다. 구체적인 답을 찾기보단 회사의 리더십, 지켜야 할 가치 등을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다. “규모가 커질수록 상위 직급자만 공유하는 정보가 생길 수밖에 없죠. 그래도 꾸준히 타운홀 미팅을 해요. 각 팀들이 서로의 업무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궁극적으로는 회사와 함께 구성원들도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 취업, 스카우트, 창업, 인수, 또 창업 김 대표도 취업과 창업을 반복하며 회사와 함께 성장한 경우다. 두 번째 회사를 다니다 2007년 네이버 개발자로 스카우트됐다. 안정적인 직장인 네이버를 박차고 나오게 만든 건 아이폰이었다. 모바일의 시대, 새로운 놀이터가 생기는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창업을 꿈꿨던 김 대표에겐 기회의 문이 열린 것처럼 느껴졌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국내 출시되자마자 사표를 내고 이듬해 2월 첫 회사를 차렸다. “전부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회사 다니면서는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왜 올랐는지 알려주는 웹사이트를 만든 적도 있어요. 트위터가 처음 나왔을 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잘 안 됐죠.” 첫 창업(씽크리얼즈)은 성공적이었다. 온라인 의류 쇼핑몰을 모아 놓은 포켓스타일, 소셜커머스 검색 서비스 쿠폰모아 등이 연달아 히트했다. 설립 1년 만에 흑자를 낸 젊은 개발자들을 업계에서 가만둘 리 없었다. 씽크리얼즈는 창업 2년 만에 카카오에서 57억 원에 인수됐다. 재밌는 건 카카오가 곧 서비스를 양도했다는 사실. 결국 카카오는 김 대표를 포함한 개발자들의 가능성에 배팅한 셈이다. ‘천재 개발자’라는 수식어가 뒤따랐지만 늘 성공만 했던 건 아니다. 카카오에서 김용현 대표와 야심차게 준비했던 맛집 리뷰 서비스인 카카오 플레이스는 대실패였다. “모든 프로젝트, 모든 스타트업이 성공할 순 없어요. 시행착오를 어떻게 경험과 실력으로 만드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홈런 치는 개발자’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고객이 뭘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사기 걱정 없는 중고거래 문화 정착 당근마켓을 써본 뒤 이웃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이용자가 많다. 당근마켓에서 이웃은 ‘믿고 거래할 수 있는 타인’이고, 예전 품앗이처럼 ‘시간과 노동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거래 후기에서 ‘별로에요’를 선택한 비율은 0.7% 수준이다. 그만큼 사기를 당하거나 실망한 경험이 적다는 의미다. 이용자 간의 신뢰를 높인 요인 중 하나가 매너온도다. 36.5도로 시작해 거래 후기 등 상대의 평가에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언제나 답을 주는 건 이용자들이었어요. 매너온도도 상대방이 얼마나 믿을만한 거래자인지 알고 싶어 하는 이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한거죠. 서비스 초기엔 이용자 반응에 따라 일주일에 서너 번씩 앱을 업데이트 한 적도 있어요.”중고거래로 시작했지만 당근마켓의 목표는 지역 밀착 커뮤니티 서비스다. 올 5월 선보인 ‘내근처’도 그 중 하나다. 이웃들이 직접 입력하고 추천한 맛집, 알바 구인 정보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동네생활’은 커뮤니티 서비스다. 특정 아이스크림을 파는 편의점을 궁금해 하면 몇 분 안에 “OO아파트 정문 옆 편의점에 있다”는 답이 올라온다. 같이 배드민턴을 칠 친구를 찾고, 붕어빵 파는 곳이 어디인지 묻는다. “취업 준비하면서 생긴 우울증 때문에 갈 만한 병원을 찾는다”는 글엔 응원 글이 줄줄이 달린다. “병원 정보는 몰라도 네일이라도 해 주고 싶으니 연락달라”는 이웃도 있다. 김 대표는 “네이버 검색 서비스보단 내 지역 정보를 더 빨리 찾을 수 있고, 폐쇄형 커뮤니티인 맘카페보단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동네생활은 최근 MAU가 600만 명에 이를 만큼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당근마켓은 최근 1789억 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를 유치했다. 시장에서 평가하는 기업 가치는 3조 원에 이른다. 유통 대기업들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규모다. 2019년 영국에서 출시한 글로벌 버전 앱 캐롯(Karrot)을 시작으로 캐나다, 미국, 일본 등 4개국 72개 지역에 진출했다. 그동안 ‘국민 앱’이라고 불려 온 서비스들은 상당수가 거리 제약을 없앤 ‘비대면’ 기반이다. 카카오톡, 배달의민족, 쿠팡 등이 그렇다. 만나지 않고서도 대화하고 쇼핑하는, 오프라인의 일상을 온라인으로 옮긴 서비스다. 당근마켓은 이런 성공 문법을 바꿨다. 지역을 세분화하고, 이웃과의 연결을 강조했다. “당근마켓 안에서는 세대간 장벽도 무너지는 걸 느낍니다. ‘첫 월급으로 부모님 선물을 사 드리고 싶은데 어떤 옷이 좋을지 모르겠다. 골라 달라’는 글과 사진이 올라오면 중장년 이용자들이 ‘이 나이엔 이런 걸 좋아한다’고 답을 해줘요.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이용하는 거의 유일한 커뮤니티 아닐까요.” 당근마켓의 목표는 전 세계 이용자 20억 명이 쓰는 글로벌 서비스다. 가입자수 2000만 명을 넘겼으니 목표의 1%를 이룬 셈이다. 가야할 길이 멀지만 김 대표는 한 발짝씩 천천히 걸음을 옮길 생각이다. “상장을 서두르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탄탄한 수익구조를 만드는 게 먼저겠죠. 우리의 속도대로 조금씩 앞을 바라보고 하는 게 사업인 것 같아요. 당근마켓이 이렇게 잘 될 줄도 만들 땐 몰랐으니까요.”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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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이 마지막 생일파티 아니길”… 병원-집 오가며 ‘재활사투’

    《‘멘케스병’은 선천적으로 구리의 흡수와 전달에 문제가 있는 희귀 유전 질환이다. 남자 아이 10만∼25만 명 중 1명꼴로 발병한다. 국내에서도 한 해 1, 2명이 진단을 받는다. 퇴행성 신경장애를 겪다 대개 3세 이전에 사망한다. 현재 국내 생존자는 10명 남짓으로 알려졌다. 2018년 엄마 3명이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 현재는 일곱 가족이 있다. 응급 입원 후 경과는 어떤지 묻고, 신약 개발 소식이 들리면 공유한다.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됐든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멘케스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9년 3월. 임서영 씨(34·여)는 아들 지오 군(3)이 멘케스병 의심 진단을 받은 그날을 잊지 못한다. 병명만 듣고선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직장에서 먼저 멘케스병을 검색해 본 남편 김효곤 씨(40)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3세 이전 사망.’ 여섯 글자만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을 더 뒤져봐도 생존율이나 치료법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기적은 없지만 포기도 없다 지오는 백일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목을 가누지 못했다. 처음엔 그저 발달이 조금 느린 줄만 알았다. 감기 때문에 간 동네 소아과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워낙 드문 병이라 대학병원에서도 정확한 진단을 못 내렸다. “유전자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 멘케스가 맞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간 병원에서 마침 이 병에 관한 박사논문을 쓴 전문의를 만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몇 주 동안 지오를 유심히 관찰했다. 멘케스병이 아니라는 근거를 찾고 싶었다. “멘케스병 아이들은 경련도 잦고, 음식 섭취도 잘 못한다고 하는데 지오는 달랐어요. 주위에서도 ‘늦되는 아이들이 있다. 걱정 마라’고 했죠.”(임 씨) 확진 후에는 ‘경증 멘케스는 아닐까’ 기대도 했다. 찾아보니 해외에는 지적 장애가 있어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환자도 더러 있었다. 걷고 말도 했다. 그래서 재활도 더 열심히 했다. 병원에선 뼈가 잘 부러질 수 있으니 운동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아랑곳 않고 일주일에 5번씩 재활을 다녔다. 기특하게도 지오는 힘든 과정을 잘 버텨줬다. 멘케스 가족들은 다른 난치병 환자들처럼 완치의 기적을 꿈꾸지 않는다. 임 씨는 “처음에는 ‘왜 아직도 못 고치는 병이 있나’ 원망도 많이 했다. 몇 년을 사느냐의 차이일 뿐 결론이 정해져 있다는 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했다. ○“어린이집에서 보내 온 사진에 울컥” 멘케스병의 3분의 2는 모계 유전으로, 나머지는 가족력 없이도 발병한다. 지오는 후자다. 임 씨는 보인자가 아니지만 지난해 둘째를 가졌을 때 부부는 덜컥 겁이 났다. 아들이라 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정확한 검사가 가능한 14주차까지 두 달 넘게 마음을 졸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태명도 짓지 않았다. 생후 6개월인 도아는 다행히 또래보다 크고 건강하게 자랐다. 들쭉날쭉하던 지오의 컨디션도 올 들어 눈에 띄게 안정됐다. 올 초 음식물을 넣어주는 위루관과 오줌을 빼는 도뇨 장치를 단 뒤부턴 부기가 빠지고 체중은 부쩍 늘었다. 최근엔 네 식구가 처음으로 2박 3일 강원 속초 여행을 다녀왔다. 지오의 첫 여행, 첫 바다였다. 둘째 덕에 입소 대기 순위가 높아져 장애 전문 어린이집에도 다닐 수 있게 됐다. 남들 다 다니는 어린이집이지만 부부에겐 더없이 특별하다. 임 씨는 “병원과 집 외에도 지오가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며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신기하고 울컥한다”고 했다.○부모의 ‘마음 건강’도 중요 “예전처럼 마음껏 못 안아주는 게 가장 미안해요.” 14일 경기 화성시 자택에서 만난 ‘멘케스 맘’ 정현주(가명·46) 씨는 누워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박정인(가명·10) 군은 다음 달 열 번째 생일을 맞는다. 국내 멘케스 환자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부모는 매년 이번이 마지막 생일이 아니길 기도한다. 정 씨는 “2년 전까지는 병원에서 그만 내려놓으라고 할 정도로 들어서 안고 있었는데, 이젠 혼자 일으키기도 힘들다”며 안타까워했다. 보통 아이들은 클수록 활동 반경이 넓어지지만 멘케스병은 반대다. 침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근육의 수축하는 힘(근긴장)이 떨어져 거동이 부자연스럽다. 정인이도 고관절이 빠져 있는 상태다.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출혈이 많고 위험을 감수해야 해 엄두가 안 난다. 10년째 거동이 힘든 아이를 돌보면서도 정 씨는 “별로 힘들었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5년 전 기관절개 수술을 받은 뒤 정인이 상태가 안정된 것도 있지만 정 씨 스스로가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게 컸다. 3년째 활동보조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정인이에게 쓸 에너지를 아끼는 법을 배웠다. 올 4월부턴 정인이가 다니는 병원의 소아완화의료팀 상담도 시작했다. 정 씨는 “아픈 아이를 돌보려면 부모의 마음 건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어린이집, 재활센터는 항상 ‘대기 중’ 멘케스병은 아직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일찍 발견했을 경우 구리를 투약하기도 하지만 병의 진행을 막기보다는 생명을 조금 더 연장시키는 정도다. 그마저도 유전적 결함이 심하거나 병세가 진행된 후에는 효과가 거의 없다.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교수는 “늦어도 생후 한 달 이내, 더 빨리는 태아 단계에서 치료를 시작해야 구리 주사의 효과가 있다지만 멘케스병의 특성상 조기 발견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가 커 갈수록 부모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가래 흡입 장치를 달고 있는, 20kg이 넘는 아이를 엄마 혼자 옮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장애인 택시를 부르면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집에 가는 길에 산소가 부족할까 봐 병원 복도에서 산소공급 장치를 충전하며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다. 멘케스병 부모들에겐 아이가 집과 병원 외엔 갈 곳이 없다는 게 가장 서글프다. 지오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경기 하남시에서 유일한 장애 전문 어린이집이다. 서울 8곳, 경기 21곳 등 전국에 176개소(2019년 기준)가 있다. 장애 통합 어린이집(1100개소)도 있지만 장애 아동의 몫은 정원의 20% 이내다. 중증 장애를 다룰 인력도 부족해 주로 경증 장애 아동들이 이용한다. 재활시설은 ‘재활 난민’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국내 장애 아동 29만 명 중 재활치료를 받는 아동은 6.7%에 불과하다. 지오도 여러 재활기관에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씩 대기를 걸어 두고 순서가 돌아오면 치료를 받고 있다. 김 씨는 “재활을 다니면 몸에 버티는 힘이 생기고 눈빛도 또렷해지는 게 보인다”며 재활 기회가 더 늘어나길 희망했다. 멘케스병 아이를 키우며 가족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가족이 함께 외식하고 산책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아주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정 씨) “둘째 도아도 형을 기억하겠죠.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친구에 대한 편견 없이 자라줬으면 좋겠어요.”(임 씨)하남·화성=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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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타버스’로 그려낸 지구촌 어린이 135만명의 꿈

    천장과 벽이 온통 하얗게 뒤덮인 미술관 로비를 지나 서너 개의 문을 통과하면 아프리카 잠비아의 한 초등학교 교실 앞에 도착한다. 교실 벽에는 아이들의 그림 15점이 걸려 있다. 뭉가 오스왈드 군은 병원을 그렸다. “안과 의사가 돼 앞을 못 보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쓴 작품 설명에선 잠비아의 열악한 의료환경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곳은 진짜 학교가 아니다. 월드비전 엽서그리기 대회에 참여한 잠비아 초등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한 가상현실(VR) 전시장이다. 다른 방에는 한국 학생들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대상(교육부장관상)을 받은 당선혜 양(매포초 3년)은 인종별로 다양한 색깔로 채색한 얼굴과 무럭무럭 자라는 벼를 같이 그렸다. 당 양은 “배고픈 사람이 없는 세상을 그렸다”며 작품을 소개했다. 월드비전 엽서그리기 대회는 ‘함께 꿈꾸는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해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캠페인이다. 2013년 지역 대회로 시작해 2019년부터 전국대회로 확대됐다. 올해 참가자는 135만5585명으로 지난해(70만 명)의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그동안 오프라인으로 진행됐던 이 대회는 올해 처음으로 메타버스(가상세계)를 접목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게임인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랜선 자립마을’을 지었다. 아프리카 케냐의 학교, 보건소 등 현지 모습을 실감 나게 재현해 지구촌 반대편 아이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올해 대회에는 잠비아 학생 100명도 참가했다. 아이들은 그림에 선생님이 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목수가 돼 마을 사람을 돕겠다는 꿈을 담았다. 1등 학생에게는 염소 한 마리와 책가방, 책 등 교구가 수여됐다. 장민혁 월드비전 차장은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는 개인적 꿈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꿈을 고민하도록 돕고 싶었다”고 대회 취지를 설명했다. 내년부터는 대회를 전 세계로 확대할 예정이다. 국내 참가자들의 작품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엽서로 전달된다. 수상작 3개 작품은 현지 학교에 벽화로 그려질 예정이다. 수상작은 VR 전시관에서 상시 관람할 수 있다. 월드비전 홍보대사인 전이수 작가의 작품도 전시 중이다. 올해는 PC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지만 내년부터는 모바일로 들어올 수 있는 메타버스 환경을 구축할 예정이다. 월드비전이 메타버스 등 새로운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10대와 MZ세대 등 젊은층과의 접점을 늘려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대면 캠페인 진행이 어려워지면서 디지털 콘텐츠 구축의 필요성도 커졌다. 조광남 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본부장은 “메타버스는 현실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지구촌 반대편의 취약 아동들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후원자들의 도움이 현지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메타버스 콘텐츠를 통해서도 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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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산보다 많아진 죽음… ‘웰다잉’은 어떻게 준비할까[박성민의 더블케어]

    지난해 한국은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어서는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를 겪었다. 0.8명대까지 떨어진 출산율을 감안하면 교차했던 그래프가 다시 만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앞으로 가까운 이들의 출산보다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얼마나 돼 있을까. 국내에서 준비된 죽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이른바 ‘웰다잉(well dying)’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장례식의 형태를 이야기하고, 유언장 작성과 연명 의료를 받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누구나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는 건 아니다. 죽음을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해 준비를 미루다가 갑자기 생을 마감하거나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이달 선보일 웰다잉 플랫폼 ‘아이백(iback)’도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서비스를 기획한 스타트업 빅웨이브의 채백련 대표(34)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채 대표를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 준비된 죽음, 상조면 충분할까흔히 스타트업과 ‘장례, 죽음, 추모’라는 주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두고 웰다잉 플랫폼을 기획한 이유가 궁금했다. “인구 구조와 가족 구성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으니까요. 언제까지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당연히 챙기는 시대가 계속될까요. 자식을 안 낳는 부부도 적지 않습니다. 죽음이 꼭 고령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도 아니죠. 최근 세계를 덮친 팬데믹에서 보듯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는 문제지요.” 한국인은 죽음을 준비하는 데 서툴다. 대개 상조서비스에 가입해 장례식을 준비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장례식은 죽음 후 며칠간 벌어지는 추모행사일 뿐이다. 상속과 증여 설계부터 유품 정리, 사후 추모까지 죽음이 남기는 숙제는 많다. 채 대표는 “생을 갑자기 마감하면서 장례 형태나 재산 기부 등 고인의 유지(遺旨)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양한 웰다잉 서비스를 하나로 모아 제공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백이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디지털 음성 유언장’도 있다. 국내 한 금융회사의 2015년 설문조사에서 ‘사망 전 유언장을 작성하겠다’는 응답은 54%에 달했지만 실제 유언장을 작성한 경우는 5%도 채 안 됐다. 채 대표는 “한국인들은 유언장 작성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엄청난 재산 정리가 아니더라도 유언장은 생의 마지막 메시지로서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반려 동물은 어떻게 관리하길 원하는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도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준비 안 된 죽음은 모두에게 불행”채 대표는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150여 명을 인터뷰했다. 갓 성인이 된 젊은층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고령층까지 죽음에 대한 생각, 좋은 죽음의 의미를 물었다. “부모 세대들은 ‘죽음마저도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30, 40대에선 ‘부모들의 삶을 반영해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하더군요.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생의 마무리를 가족과 터놓고 얘기하는 게 낯설다. 하지만 그 필요성은 서로 느낀다는 의미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웰다잉에 관한 전 국민 인식조사’에서 응답자(40~79세) 1500명 중 64%는 좋은 죽음의 조건을 ‘미리 준비하고 주변에 피해가 없는 죽음’이라고 답했다. 채 대표는 ”코로나19 이후에 미국도 웰다잉 플랫폼에 가입하는 2040 세대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아이백의 기본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될 것이라고 한다. 상속이나 증여세 계산, 유언장 작성,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등이다. 채 대표는 ”장례를 치르고 대개 3주 뒤부터 극심한 상실감이 몰려온다고 한다. 이런 유족들을 위한 애도 및 심리상담 서비스, 고인의 디지털 기록을 보관, 정리해주는 클라우딩 서비스 등을 유료로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삶의 마침표를 미리 그려보자 채 대표는 ”삶의 마침표를 미리 그려보는 것은 현재의 삶에 충실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위해선 은행 계좌처럼 내 삶을 총망라한 ‘인생 계좌’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엔 재산뿐 아니라 인간 관계, 성취한 것과 아직 이루지 못한 꿈 등이 포함된다. 채 대표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중간 점검“이라고 했다. 아직 서비스도 선보이지 않은 신생 스타트업을 만난 건 숫자로 평가되는 기업의 가치보다 이 서비스가 던지는 화두가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채 대표는 ”좋은 죽음에 필요한 비용을 낮추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빅웨이브는 글로벌 벤처캐피털 500스타트업과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DHP의 투자를 받았다. 채 대표는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웰다잉 시장이 2019년 54조 원 규모로 커졌다. 한국도 인구 규모로 따졌을 때 수십 조 원의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업설명회(IR)에서 만난 투자자들에게 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매출이 얼마가 되든지 모든 돈에는 꼬리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빅웨이브는 고객 한 분 한 분이 준비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을 때 성장하는 기업입니다. 그게 이 플랫폼이 갖는 의미입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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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약처, 스마트 HACCP 도입 늘려 식품 불량률 대폭 낮춘다

    부산의 식육가공업체 A사는 지난해 완제품 중 불량 발생 비율이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고객 불만 건수도 30%가량 감소했다. 특별히 위생을 더 철저히 관리했거나 검사 인원을 늘렸던 것은 아니다. 달라진 건 지난해 도입한 ‘스마트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 시스템이다. 스마트 HACCP는 식품 및 축산물 생산 과정의 위해 요소를 모니터링하는 기존의 HACCP를 디지털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식품 가열 온도가 적절한지, 가공 중 이물질이 유입되지 않았는지 등을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 기존에도 일부 업체들은 HACCP를 디지털로 전환해 업무 효율과 정확도를 높여 왔다. 정부가 구축한 스마트 HACCP는 이와 별개로 지난해 4월부터 도입됐다. 업체마다 달랐던 시스템 운영 방식을 표준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식품 생산 관련 데이터를 더욱 광범위하게 확보할 수 있고 영세 업체도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HACCP 개발도 용이해진다.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올 8월 말 기준 스마트 HACCP를 도입한 식품 제조 및 가공 업체는 90곳이다. 스마트 HACCP가 HACCP보다 뛰어난 점은 기록을 디지털화해 모니터링 역량을 높였다는 점이다. 가령 기존 시스템은 2시간마다 담당 직원이 직접 중요관리점(CCP) 공정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해 수기로 결과를 기록한다. 점검 시간 사이에 발생한 문제는 놓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위해 요소를 발견해도 구두나 이메일로 이를 전달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 속도와 손실 규모도 다르다. 문제 발생을 2시간 만에 알아차렸다면 그 사이 공정이 진행된 식품은 폐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마트 HACCP는 ‘한계 기준’ 이탈을 감지하면 즉시 관리자에게 통보한다. 생산 라인 가동을 바로 멈추게 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 공정 전반의 세밀한 데이터도 확보하고 있어 문제 원인을 찾기도 쉽다. 스마트 HACCP를 도입한 업체들의 만족도도 높다. 지난해 스마트 HACCP를 구축한 54개소의 운영 성과를 분석한 결과 공정 불량률은 도입 전보다 56.2%, 완제품 불량률은 58.4%, 검사 불량률은 50%, 고객 불만 건수는 27.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과제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스마트 HACCP 도입률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가공식품의 87.5%가 HACCP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HACCP보다 위해 요소를 더 깐깐하게 잡아낼 수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김치, 만두, 비빔밥 등 ‘K푸드’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스마트 HACCP를 구축하려면 아무리 작은 사업장도 수천만 원의 비용 부담이 생긴다. 가열 온도 검사부터 금속 검출, 소독과 냉동 기준 유지 등 공정이 복잡할수록 관리 비용이 높다. 식약처는 이런 부담을 낮추기 위해 소규모 업체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표준 모듈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스마트공장 사업’과 연계해 중소 식품업체의 스마트 HACCP 구축도 지원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안에 스마트 HACCP 인증 마크도 선보인다. 제조사가 원하면 포장지에 인증 마크를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이제명 식약처 식품안전인증과 사무관은 “스마트 HACCP 도입 업체에 지원을 강화해 국민의 식품 안전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높이겠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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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정복 앞당기려면 ‘뇌 기증’ 문화 확산돼야”[박성민의 더블케어]

    《끝나지 않는 팬데믹이 ‘돌봄’의 방향을 고민하게 합니다. 직장을 잃고 가정이 무너지면서 스스로를 돌보기 버거운 이웃도 늘고 있습니다. 정신건강 관리부터 비대면 의료까지 ‘위드 코로나’ 시대엔 보건의료 패러다임도 달라집니다. 의료와 복지, 일자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더블케어’가 들여다봅니다.》 60대 전문의 A 씨는 올 초 서울대병원 치매 뇌은행에 사망한 아버지의 뇌를 기증했다. 아버지는 수년간 치매를 앓았다. 아버지의 형제들도 치매와 싸우느라 힘든 노년을 보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이 컸지만 치매 치료법이 하루빨리 개발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생전 뇌 기증에 동의한 아버지의 뜻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뇌 기증 덕분에 치매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됐다. 뇌 부검 결과 A 씨 아버지는 치매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19배 높은 유전 요인을 갖고 있었다. 생전에 진단받지 못했던 파킨슨병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만난 박성혜 치매 뇌은행장(병리과 교수)은 “유족이 고인의 임상정보까지 제공해 준 덕분에 치매 초기부터 사망까지 질환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7년 간 누적 뇌 기증 300건 미만 한국인에게 뇌 기증은 아직 낯설다. 2014년 한국뇌연구원 산하 국가뇌조직은행(현 한국뇌은행)이 설립됐고, 2016년부터는 국립보건연구원이 치매 뇌은행 네트워크를 운영 중이다. 주무 부처가 각각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질병관리청으로 나뉘어 있다. 7개 병원이 참여 중인 한국뇌은행에는 지난해까지 151명, 4개 병원이 참여한 치매 뇌은행에는 지난달까지 135명이 뇌를 기증했다. 병이 생기면 직접 조직을 떼어 내 검사할 수 있는 다른 인체 기관과 달리 뇌는 생검(生檢)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자칫 뇌 기능을 더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질환은 사실상 사망 후에야 조직 검사를 할 수 있다. 부검이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한국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연구 자원이 부족하니 질환의 원인 규명이나 치료제 개발은 더딜 수밖에 없다. 급증하는 치매 인구를 생각하면 뇌 기증은 더 절실하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60세 이상 치매 추정환자는 86만3542명, 65세 이상의 유병률은 10.3%에 이른다. 이르면 2024년 치매 인구는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교수는 “뇌 질환 연구를 위한 동물실험 결과는 인간의 뇌에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치매 없는 100세 시대를 위해선 뇌은행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 파킨슨병 연구할 뇌 조직은 특히 부족” 대개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하는 장기 기증과 달리 뇌 기증은 사망 후에 이뤄진다. 뇌 조직을 온전히 보존하려면 늦어도 사망 후 24시간 안에 뇌를 꺼내야 한다. 뇌는 다른 장기보다 괴사가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뇌 전문가들은 12시간 내 적출을 권장한다. 생전에 뇌 기증에 서약했지만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유족 동의가 지체돼 뇌 기증이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뇌를 보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1.4kg가량인 뇌의 절반은 약 1cm 두께로 잘라 영하 80도 이하의 초저온 상태로 냉동 보관한다. 나머지는 병리학적 진단을 위해 포르말린에 담가 약 한 달간 고정시킨다. 이를 절개와 보존이 쉽도록 파라핀 블록으로 만든다. 그리고 두께 약 4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의 절편으로 잘라 염색한 뒤 병인 등을 분석한다. 이렇게 만든 뇌 조직은 대학과 연구소 등에 분양된다. 연구의 타당성과 윤리성 등을 심의해 분양을 결정한다. 한국뇌은행이 보유 중인 파라핀 블록은 약 1만5000개. 언뜻 충분한 것 같지만 질환별로 필요한 부위가 달라 뇌 기증자 수는 연구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 류연진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치매와 파킨슨병 연구에 필요한 조직은 해마와 흑질인데 전체 뇌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은 2∼3g에 불과하다”며 “연구 수요만큼 충분히 분양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반드시 뇌 질환이 있어야만 기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건강한 뇌는 대조군으로 활용된다. 현재까지 기증된 뇌의 약 30%는 질환이 없는 뇌다. 김인범 가톨릭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서울성모병원 뇌은행장)는 “다른 질환으로 사망했지만 뇌 부검에서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며 “질환이 없는 뇌도 의학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뇌 기증이 알츠하이머 시작점 규명으로 이어져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뇌은행을 구축해 뇌 질환 정복을 꿈꾸고 있다. 유럽 뇌은행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네덜란드 뇌은행은 1987년부터 4500건 이상의 뇌 기증을 받았다. 일본은 1967년 개소한 니가타대 뇌연구소에서만 3500개 이상의 전뇌를 확보해 연구 중이다. 류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모든 장기를 함께 기증받고 있어 여러 질환과 뇌의 연관성을 연구하기에도 유리한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뇌 연구로 가장 주목받는 나라는 브라질이다. 2003년 뇌은행을 설립한 브라질은 정부가 사망자의 부검을 의무화하면서 뇌 조직 확보가 용이해졌다. 상파울루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뇌은행이다. 김 교수는 “브라질 연구진이 알츠하이머가 뇌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다양한 뇌 조직을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가 활동하는 뇌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뇌 자원 확보와 투자만 뒷받침되면 삶의 질을 높이는 연구 성과를 기대할 여지가 크다. 의학계에서는 조현병과 각종 중독 등 정신질환도 뇌 기증을 통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로 본다. 문제는 뇌의 확보다. 류 선임연구원은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은 뇌는 특히 기증받기 어렵다”고 말했다.○내년 ‘태아 뇌은행’ 추진…신경 발달 이상 연구한국은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는 의료 선진국으로 손꼽히지만 뇌 연구는 후발주자다. 의료계에선 한국의 뇌 연구 역량을 선진국의 70% 수준으로 평가한다. 특히 뇌 연구의 바탕이 될 뇌 기증과 뇌은행 구축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시신 기증은 장례를 치른 후에도 가능하지만 뇌 기증은 사망 후 바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거부감이 더 큰 측면도 있다. 뇌은행 출범 후 꾸준히 증가하던 기증 희망자도 최근 감소 추세다. 치매 뇌은행의 기증 희망 서약은 2019년 341건에서 지난해 211건, 올해는 8월까지 104건으로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홍보가 부족했던 영향도 있다. 김 교수는 “기증 등록 후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며 “올해 서울성모병원의 뇌 기증 5건도 시신 기증 희망자가 뇌 기증까지 결심한 경우”라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뇌은행 운영과 연구를 심화시키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한국뇌은행은 내년부터 ‘태아 뇌은행’ 시범사업을 계획 중이다. 신경 발달 이상으로 인해 성장에 이상이 생긴 태아 연구를 위해서다. 뇌 연구 성과를 높이려면 의료 데이터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후 뇌 조직 확보에 그치지 않고 발병부터 사망까지 임상 기록을 얻게 되면 더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뇌은행 소속의 한 교수는 “의료 기록은 유족만 열람과 확보가 가능한데, 뇌은행이 직접 접근할 수 있어야 유족의 불편함을 줄이고 연구 성과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최근 뇌 기증에 대해 문의하는 30, 40대 젊은층이 많아졌다”며 “장기 기증이 당장 내 곁의 생명을 살린다는 의미가 있다면 뇌 기증은 다음 세대의 무수한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나눔”이라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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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휠체어여행 책부터 패럴림픽 NFT까지…하버드대 졸업 20대 장애 청년의 도전[박성민의 더블케어]

    “기술은 불가능을 없애려고 개발되는데 정작 상용화되면 장애인은 배제되곤 합니다. 또 다른 벽이 생기는 셈이죠.” NFT(대체 불가 자산) 스타트업 도어랩스 김건호 대표(28)는 세계 첫 패럴림픽 NFT를 개발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한 14개 종목 선수들 사진을 담은 디지털 카드인 이 NFT는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장애인을 향한 편견을 없애자는 바람을 담았다. 김 대표도 11년 전 교환학생으로 간 미국에서 스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세계 첫 패럴림픽 NFT 출시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 명함에는 휠체어를 탄 캐릭터와 ‘#2514’가 새겨져 있었다. 올 초 도어랩스가 발행한 NFT ‘휠카드(휠체어 카드)’ 캐릭터다. 디자인이 모두 다른 휠카드 1만 개를 매일 30개씩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 팔고 있다. 2514는 카드 고유번호. 100달러(약 11만6000원)짜리 카드가 2만 달러에 재판매 될 만큼 인기다. 휠카드마다 캐릭터 생김새나 휠체어 모양이 다르다. 농구공이나 테니스라켓을 들고 있는 캐릭터도 눈에 띄었다. 김 대표는 “휠체어를 탄 사람도 개성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공학을 전공하던 하버드대에서 블록체인에 빠졌다. 2017년 귀국해서 만든 블록체인 업체는 하버드대가 지원하는 첫 블록체인 스타트업으로 선정됐고 이후 지금의 도어랩스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음식점 등에서 NFT로 경품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국내 특허를 받았다. 패럴림픽 NFT를 만들기로 결심한 건 올해 초. 김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장애인 조정 선수 생활을 했다. 서울시 팀에서도 뛰었다. 그는 “패럴림픽이 비장애인 올림픽과 같은 장소, 같은 시기에 개최된 건 1988년 서울이 처음”이라며 “한국 스타트업이 세계 최초로 패럴림픽 NFT를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패럴림픽 NFT는 금 은 동 일반 등 4가지 형태로 출시됐다. 종류에 따라 실물카드와 티셔츠, 휴대전화 케이스 같은 기념품도 함께 제공한다. 금 카드(15만 원)를 구입하면 해당 선수들과 메타버스 공간에서 만나 소통할 수도 있다. 세계 최대 메타버스 기업인 게더타운이 서비스를 지원한다. NFT는 대개 가상화폐로 거래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쉽게 구매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패럴림픽 NFT는 카카오페이로 결제가 가능하다. 구입은 도어랩스 웹사이트 ‘카드미(kaard.me)’에서 할 수 있다. 카카오 디지털 지갑 ‘클립’을 통해 디지털 카드 형태의 패럴림픽 NFT를 받아 보관할 수 있다. 티셔츠 제작도 의류 스타트업이 제작을 맡아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수익금은 전액 대한장애인체육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 휠카드 장학생 후원하고, 휠체어도 기부김 대표는 장애인도 살기 편한 세상을 꿈꾼다. 그는 2014년 미국 20개 주 주요 관광지를 휠체어로 돌아본 뒤 장애인용 여행 가이드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장애인 시각으로 세상의 불편한 것을 바꿔보기로 결심한 것도 이때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서울 인천 편도 제작했다. 그 무렵 장애인 이동권 개선 운동을 하는 ‘무의(MUUI)’라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했다. 그 공로로 2018년 장애인인권상을 받았다. 무의는 ‘장애를 무의미하게’라는 뜻이다. 휠카드와 패럴림픽 NFT에 이은 새로운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김 대표는 “NFT가 일상에서 보상 수단으로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구글 지도를 통해 휠체어 접근성을 알려주면 NFT를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얼마나 자발적으로 참여할지 보려고 일부러 홍보도 하지 않고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만 프로젝트 소식을 올렸다. 그런데 며칠 만에 25개국에서 ‘휠체어 지도’에 필요한 정보가 쏟아졌다. 그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과도 관련 프로젝트를 논하고 있다”고 말했다.사업가로서 김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 환경에 대해 고민이 많다. “사람들이 빠른 변화에 익숙해 기술업체가 사업을 펼치기에는 좋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에 대한 잣대가 불명확한 점은 아쉬워요.” 블록체인과 NFT 관련 회사라는 이유로 은행계좌 개설이 취소된 적도 있다. 그는 “한국은 메타버스에는 큰 관심을 보이는데 가상화폐 때문인지 블록체인이나 NFT에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것 같다”며 “메타버스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게 NFT인데 둘을 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수익이 많이 나지 않은 스타트업이지만 기부에는 적극적이다. 휠카드 하나 팔릴 때마다 국제 구호개발기구인 미국 월드비전이 세계 각국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기부한다. 이달부터는 베트남 풀브라이트대학에 수익금 일부를 기부해 휠카드 장학생을 후원할 계획이다. 이 대학은 미국과 베트남 정부, 하버드대가 함께 세운 비영리 사립대학이다. 해외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때부터 베트남에서 공부한 김 대표에게는 현지 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제가 길에서 3시간을 허비했다면 장애인 100명의 300시간이 버려지는 셈이에요. 저희 기술로 장애인이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랍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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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첫 패럴림픽 NFT 만들어 자부심”

    “기술은 불가능을 없애려고 개발되는데 정작 상용화되면 장애인은 배제되곤 합니다.” NFT(대체 불가 토큰) 스타트업 도어랩스 김건호 대표(28)는 세계 첫 패럴림픽 NFT를 개발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한 14개 종목 선수들 사진을 담은 디지털 카드인 이 NFT는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장애인을 향한 편견을 없애자는 바람을 담았다. 김 대표도 11년 전 교환학생으로 간 미국에서 스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 명함에는 휠체어를 탄 캐릭터와 ‘#2514’가 담겨 있었다. 올 초 도어랩스가 발행한 NFT 휠카드(휠체어 카드) 캐릭터다. 디자인이 모두 다른 휠카드 1만 개를 매일 30개씩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 판다. 2514는 고유번호. 100달러(약 11만6000원)짜리가 2만 달러에 재판매될 만큼 인기다. 김 대표는 “휠체어를 탄 사람도 개성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공학을 전공하던 하버드대에서 블록체인에 빠졌다. 2017년 귀국해 만든 블록체인 업체는 하버드대가 지원하는 첫 블록체인 스타트업으로 선정돼 도어랩스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음식점 등에서 NFT로 경품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국내 특허를 받았다. 대학 때 장애인 조정 선수로도 뛴 김 대표는 “패럴림픽이 비장애인 올림픽과 같은 장소, 같은 시기에 열린 건 1988년 서울이 처음”이라며 “한국 스타트업이 세계 최초로 패럴림픽 NFT를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패럴림픽 NFT는 금 은 동 일반 등 네 가지 형태다. 실물카드와 티셔츠, 휴대전화 케이스도 제공한다. 금 카드(15만 원)를 구입하면 세계 최대 메타버스 기업 게더타운의 메타버스 공간에서 해당 선수와 소통할 수도 있다. 수익금은 전액 대한장애인체육회에 기부한다. 김 대표는 장애인도 살기 편한 세상을 꿈꾼다. 그는 2014년 미국 20개 주 주요 관광지를 휠체어로 돌아본 뒤 장애인용 여행 가이드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서울 인천편도 제작했다. 휠카드가 하나 팔릴 때마다 미 월드비전이 각국에 휠체어를 기부한다. “제가 길에서 3시간을 허비했다면 장애인 100명의 300시간이 버려지는 셈이죠. 저희 기술로 장애인이 삶이 나아지길 바랍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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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수소 등 산학연계 생태계 만들어 지역발전 이끌어야”

    《지역에서 대학이 갖는 가치는 어느 때보다 크다. ‘수도권 일극(一極)’ 문제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역 거점 대학 육성이다. 대학은 청년 인구 유입, 신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 거의 모든 지역 현안과 연관돼 있다. 지방 소멸 위기 극복 방법으로도 거론된다. 다만 ‘대학은 성장동력’이라는 인식이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대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도 뒷받침돼야 한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중희 전북대 나노융합공학과 교수는 13일 전북대에서 열린 ‘지역발전과 거점 국립대의 역할’ 대담에서 대학 육성이 지역 발전 선순환의 시작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기 위해선 대학 스스로의 혁신과 함께 광역자치단체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두 사람이 생각하는 전북과 전북대의 미래 비전은 무엇인가.안 의원=침체된 전북 경제의 ‘게임체인저’가 될 큰 축은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수소 산업과 국민연금공단을 중심으로 한 금융 산업이다. 농업과 바이오 분야도 성장 잠재력이 크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선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과 산업, 대학이 연계된 생태계를 만들어 지역 혁신 성장을 견인해야 한다. 이 교수=대학이 중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한다. 독일 드레스덴대, 미국 실리콘밸리 등을 봐도 결국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이 살아났다. 전북에는 새만금이라는 기회의 땅이 있고, 수소 산업 등 미래 산업에 강점이 있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신기술 개발과 생산이 함께 이뤄지는, 산업과 혼합된 캠퍼스를 조성해야 한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북 인구는 올해 180만 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인구 감소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안 의원=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있는 대구 달성군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모이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군(郡) 단위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전북도 수소 분야에서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전북대를 중심으로 ‘전주·완주 수소시범도시’를 만들었지만 다시 인구가 유입되고 경제가 살아나려면 산업 생태계까지 갖출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의 꾸준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 교수=지자체 지원 방식도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출산지원금 1억 원을 줘 아이를 전북에서 낳게 해도 서울로 취업하면 지역 인구는 감소하거나 그대로다. 같은 1억 원도 다른 지역 인재들을 전북으로 끌어들이는 데 쓰는 게 효과적이다.전북 혁신도시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국책연구기관이 들어와 있다. 이를 활용하는 전략도 중요해 보인다. 이 교수=연구기관의 상당수가 농업 관련이다. 대학원장 시절 전북대 농대와 이들 연구기관을 합치자고 건의한 적이 있다. 연구기관은 학생이 필요하고, 학생들에게 더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아이디어에 그쳤지만 지역이 가진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한다. 안 의원=대학도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모든 대학이 같은 과를 만들어 경쟁하는 것보단 거점 대학에 특성화 된 전공을 개설하고 다른 학교 학생들도 학점을 취득할 수 있게 하면 기회를 넓힐 수 있다. 그린뉴딜이 전북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안 의원=전북은 수소 생산부터 저장과 운송, 활용까지 완전한 생태계를 갖췄다. ‘그린 수소 수도’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이 선진국을 따라가는 추격 국가에서 글로벌 경제의 선도 국가가 된 것처럼 전북이 다른 지방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이끄는 선도 지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 교수=전북대는 수소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 최고일 뿐 아니라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췄다. 현대차의 수소전기차인 넥쏘의 수소저장 용기도 전북대 실험실의 벤처기업에서 개발한 제품이다. 그린 수소는 기술력 확보가 쉽지 않고 비용 부담도 크다던데….이 교수=그린 수소는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한다는 의미다. 100% 청량 수소다. 한국은 수소에너지 개발에 대한 국가적 관심은 높지만 아직 미국, 일본 등에 비해 투자가 부족하고 원천기술 확보 수준도 낮다. 전북대가 됐든지 한국에너지공과대와 같은 새로운 대학이든지 이 분야에 특성화된 대학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안 의원=국내에서 생산 기술과 설비를 못 만들면 해외에서 사 오는 수밖에 없다. 새만금에 그린수소 생산 클러스터를 추진할 예정인데, 근간이 되는 대학의 연구개발 과정에도 더 지원이 필요하다. 그린뉴딜의 중심지로서 새만금의 활용도 중요해 보인다. 이 교수=2030년부터 유럽은 탄소중립이 실현되지 않은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한국도 2050년 탄소중립을 국가 비전으로 채택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면 탄소중립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고 국제적으로 낙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교통, 주거 등 삶의 모든 영역과 관련돼 있다. 새만금은 전북을 탄소중립도시로 이끄는 핵심이다. 안 의원=새만금에 수소 생산단지가 완성되면 전북이 2040년 탄소중립을 선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의 탄소중립 시간표보다도 10년 빠른 셈이다. 기업들도 새만금에 오면 탄소중립을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관세 부담을 덜고 수출할 수 있다. 강력한 기업 유인책인 셈이다. 쇠락한 자동차와 조선 산업을 대신할 지역의 일자리, 먹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지역 대학은 비상이다. 올해 입시에서 전북대를 제외한 모든 대학이 미달 사태를 겪었다. 안 의원=지역의 성장 동력 역할뿐 아니라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지방 대학이 살아야 한다. 모호한 법 규정부터 고쳐야 한다. 현행 지방대학 육성법에는 ‘지자체가 지방대학을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이를 광역지자체로만 해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초지자체는 대학과의 협력이나 지원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아울러 교육을 다지고 대학을 육성해 콘텐츠 성장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이 교수=현재의 지방정부와 지방대학의 관계로는 전북의 쇠퇴를 막을 수 없다. 지방정부가 초중고 교육을 챙기듯이 대학교육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반대로 교육부는 대학 운영에 덜 관여하는게 맞다. 교육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을 줄 세우기 하면서 대학을 더 힘들게 하는 측면이 있다. 최근 정부 사업 유치 등에서 전북대는 부진했다. 거점 국립대로서 전북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데….이 교수=대학의 준비 부족만이 원인은 아니다. 정부 지원 사업 유치는 지자체와의 유기적인 협력도 중요하다. 대부분 정부와 지방정부가 예산을 같이 부담하는 매칭 펀드 형태인데 지자체가 대학을 지원할 의지가 없으면 사업 유치가 어렵다. 지자체와 대학이 하나가 돼 산업과 문화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안 의원=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 대학을 살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전북도 차원에서 지역의 산업 인프라와 대학을 어떻게 연계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전북을 금융 중심지로 만드는 데 전북대 연기금 학과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수소 산업 분야의 성장에 전북대가 핵심 역할을 하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진행=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정리=박성민 기자 min@donga.com사진 제공=전북대학교}

    • 20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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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달새 40만 캔… 日 입맛 사로잡은 ‘리챔’

    동원F&B의 캔햄 리챔(사진)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도 판매 호조를 보이며 올해 수출액 100억 원 달성을 앞두고 있다. 리챔은 5월부터 일본 전역 대형마트에서 판매를 시작해 지난달까지 3개월 동안 40만 캔 이상 팔렸다. 회사 측은 연말까지 판매량이 100만 캔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250만 캔 판매량 달성이 목표다. 2003년 선보인 리챔은 캔햄의 나트륨 함량을 낮춰 눈길을 끌었다. 짠맛은 줄이면서도 돼지고기 함량은 90% 이상으로 유지해 햄 본연의 맛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원F&B는 캔햄의 나트륨 함량을 꾸준히 줄여 왔다. 최근 나온 제품은 초창기 제품보다 나트륨 함량이 36% 낮아졌다. 나트륨을 줄인 ‘착한 캔햄’ 전략은 일본에서도 통했다. 소비자 반응 평가를 위한 사전 판매 행사에서 4일 만에 8만4000캔이 팔렸다. 회사 측은 “짠맛이 강한 요리가 많은 일본에서 나트륨 함량을 낮춘 것이 건강한 식단을 추구하는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한국 캔햄 소비로 이어졌다. 이 회사는 리챔 김치찌개 등 한국 음식과 접목한 다양한 메뉴를 현지에 소개하고 있다. 리챔 판매와 사회 공헌을 연계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에도 적극적이다. 6월부터는 리챔 묶음 제품 포장지에 실종아동 정보를 넣었다. 리챔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도 실종아동 정보를 싣고 있다. 이달 11일에는 EDM 아티스트 배드보스와 함께 2000만 원 상당의 현금과 리챔을 국제구호개발단체 등에 기부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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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작품 후원금으로 아이들의 미래 지켜주고 싶어요”

    “제 작품을 통해 마련한 후원금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데 쓰이길 바랍니다.” 세계적인 디지털 미디어 아트 거장인 후랭키 배 화백(63)은 17일 국제구호개발 NGO(비정부기구)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위촉된 소감을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며 후원 동기를 설명했다. 월드비전은 ‘후랭키 펀드’를 만들어 전 세계 취약 아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 “미술로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주고 싶다” 후랭키 화백은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디지털 예술 분야 대표 작가다. 지난달에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경매에서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 시리즈 작품이 505만 달러(약 59억 원)에 낙찰돼 주목을 받았다. 한국 작가의 NFT 작품 중 최고가다. 2019년에는 한 백화점에서 작품 5점이 총 5000만 달러(약 587억 원)에 판매될 정도로 미술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후랭키 화백이 아이들 후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그는 아이들에게 받는 감동이 세상을 바꾸는 희망이 된다고 강조했다. 후랭키 화백은 “아이들은 모든 어른에게 동기부여를 해 주는 존재”라며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후랭키 화백은 향후 작품 판매 수익금을 기부해 후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24일에는 자신의 작품 중 하나를 월드비전에 기증하는 전달식을 열 예정이다. 후원이 어떤 형태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소신도 확고하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동 한 명, 한 명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랭키 화백은 “월드비전과 함께하기로 한 것도 이런 철학을 공유했기 때문”이라며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문제도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태일 헌정화, NFT 경매… 끊임없는 도전 후랭키 화백은 대한민국 수채화의 선구자인 서양화가 고 배동신 화백의 아들이다. 후랭키 화백은 주로 추상 표현주의 작품을 만들어 왔다. 순수 회화에 천착해 온 그는 지난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전태일 열사를 주제로 한 디지털 아트 작품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후랭키 화백이 작품에서 사회적 인물을 다룬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는 “예술도 근본적으로 ‘선함’을 지향해야 한다”며 “휴머니티를 담지 않으면 예술 역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작가로서 새로운 시도도 멈추지 않는다. 최근에는 작품 하나를 1500개 NFT로 분할해 거래하는 NFT 작품 특별전을 열었다. 미술품의 디지털 복제가 무한대로 가능한 시대에 작품 거래를 투명하게 만들어 작가의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다. 미술품 마니아들도 원본과 동일한 작품을 손쉽게 소유할 수 있도록 예술의 문호를 넓힌 셈이다. 고유 토큰(번호)은 다르지만 원본의 고유성은 인정받는다. 후랭키 화백은 전태일 50주기 기념화도 NFT로 등록해 경매에 내놓을 예정이다. 후랭키 화백은 “예술의 근본 가치는 변하지 않지만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 맞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기본 자세”라고 말했다. “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는 없어요. 우리가 서로 돕고 의지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선한 영향력’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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