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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의 변화를 보려면 저녁에 젊은이들로 붐비는 개선청년공원이나 능라유원지에 가보면 된다. 처녀들 옷차림이 야해졌고 커플들이 팔짱을 끼고 활보한다. 5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지난해 북한을 탈출한 평양 출신 탈북자는 “평양 여성들의 패션이 바뀐 건 퍼스트레이디 이설주의 공이 크다. 이설주가 하는 목걸이, 귀걸이, 반지, 명품 가방은 곧 유행이 된다.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스커트도 이설주가 입은 뒤 유행이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평양의 고급 상점가인 모란봉구역 북새거리에서는 개당 가격이 1만 달러(약 1180만 원)가 넘는 한정판 롤렉스 시계도 팔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사해진 평양 거리 젊은이들의 급격한 패션 변화에 북한 당국은 한때 당황해 단속에 나섰지만 지금은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체제 초창기엔 규찰대가 길거리에 나가 ‘김정은 동지와 이설주 동지의 머리 모양은 따라 해도 좋지만, 목이 깊게 파인 옷이나 짧은 치마, 발목이 드러나는 바지(7분 바지) 같은 옷은 따라 입지 말라’며 일일이 검열을 했었다. 하지만 막을 수가 없다 보니 곧 포기했다.”(대북 소식통 A 씨) 서울에서 만난 한 탈북자는 “지난해 말 북한에 사는 친척이 남쪽에서 발행되는 헤어 패션잡지 이름을 불러주며 그 잡지를 구해 달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며 “미장원에서 그런 잡지를 몰래 숨겨두고 있다가 단골에게 보여주면서 남조선식으로 머리를 해주면 3배나 비싸게 요금을 받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스마트 기기 열풍도 거세게 불고 있다. 요즘 평양에선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까지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김정은이 집권 이듬해인 2013년 8월 북한산 스마트폰인 ‘아리랑’ 생산 공장을 시찰하는 등 첨단 정보기술(IT) 기기 보급에 큰 관심을 보인 뒤로 평양의 정보화 바람이 더 거세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본보와 인터뷰에서 “요즘 평양 명문대의 일부 신입생들은 싱가포르에서 수입한 최신형 애플 노트북을 들고 와 강의 내용을 꼼꼼하게 메모하곤 한다”며 “한국이나 미국의 대학가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전했다. 올해 평양에는 국영 모바일 홈쇼핑(옥류)에서 상품을 사고 전자카드(나래)로 결제하는 서비스까지 시작됐다. ‘옥류’를 이용하면 ‘해당화관’ ‘해맞이식당’처럼 유명 식당 음식을 국영 운수사업소 배달서비스를 통해 집에서 먹을 수 있다. 아직은 구매 가능 품목이 많지 않지만 확장 가능성은 크다. IT 기기 보급 확대의 영향으로 남한, 미국 등 외부 문화 콘텐츠를 접하는 북한 젊은이도 늘어나고 있다. 휴대용 저장장치 등을 이용해 외국 영화나 드라마, 전자책 등의 콘텐츠를 노트북과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이 2011년 이후 탈북한 주민 6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서 한국의 방송 영화 드라마 노래 등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80% 이상으로 나타났다. 학력이 높을수록, 소득이 많을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남한 문화 경험이 많았다. 중국 방문 중 본보와 전화 연결이 된 한 평양 주민은 “현재 북한에서 한국 노래를 가장 많이 유통시키는 세대는 중학생으로 특히 여중생들이 활발하다”며 “(북한 당국이) 평양의 모 중학교에서 학생들의 가방을 불시에 수색했는데 한국 노래가 적혀 있지 않은 수첩이 없을 정도였다. 수첩 하나에 수백 곡의 한국 가요가 적혀 있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반 사회인들보다는 군인들이 한국 노래를 더 많이 부르고 있다”며 “다양한 연령대가 어우러져 있는 일반 사회 조직보다는, 비슷한 연령대가 모여 10여 년 동안 함께 생활하는 군인들이 더 동질성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보통신 기기에 눈을 뜬 북한 주민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점 중 하나는 전기다. 전력 부족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 중에는 중국산 태양광 전지판을 구입해 설치하는 집도 늘고 있다. 20W용 태양광 전지판 하나는 북한 돈으로 35만 원(약 4만7000원)이다.○ 외부에 대한 호기심도 커져 최근 평양을 다녀온 외국인들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일상 속 자유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한다. 실제 만나본 북한 관료들의 태도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느껴진다고도 했다. 매년 세 차례 북한을 방문해 행정 관련 세미나를 열어 온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관계자는 “과거엔 형식적인 질문 몇 개만이 오갔지만 최근엔 간부들이 저마다 손을 들고 질문을 쏟아내 놀랐다”며 “최근에는 점심식사를 같이하는 것도 허용됐다”고 전했다. 올봄 평양을 방문했었다는 전직 독일 시장은 “최근 북한 간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관광업”이라며 “내가 시장으로 있던 도시가 어떻게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는지 자세히 물으면서 그 과정에서 총리가 어떻게 결정했는지까지 물었다”고 말했다. 외국어 배우기 열풍도 개방 바람을 상징한다. 평양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중국어와 영어 과외가 크게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평양의 경우 강사 수준에 따라 월 20∼30달러인데 중국어는 조금 더 비싸다고 한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한 미국 인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려호텔에서 통역 없이는 체크인이나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는데 얼마 전 가보니 직원들이 영어를 해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양 따라 하기 열풍 파견이나 사업 형태로 외국 생활을 체험한 북한 주민들이 늘면서 “외국처럼 잘살아 보자”는 바람도 불고 있다. 이들의 욕구가 가장 많이 반영되는 분야는 ‘집’이다. 주택 구매에 대한 당국의 통제가 유명무실해져 국가가 발행하는 주택 사용허가 서류인 ‘입사증(入舍證)’이 자유롭게 매매되면서 돈을 벌어 좋은 집에 살겠다는 것이 주민들의 꿈이 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평양 부동산 가격도 매년 크게 뛰고 있다. 중국을 방문한 한 평양 시민은 시내 중심부에서 100m²(약 30평) 이상 되는 새 아파트 가격이 10만 달러(약 1억1800만 원)를 호가한다고 말했다. 신흥 부촌으로 뜨고 있는 보통강구역 북한 최고가 아파트는 180m²(약 50평) 이상의 크기에 20만 달러를 호가한다고 한다. 큰 방, 넓은 베란다, 대형 그림이나 화려한 무늬의 장식장 같은 것들이 부의 상징이 되고 있다. TV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들도 삼성과 LG 제품이 최고로 통한다. 다만 아무리 비싼 아파트라도 전기가 부족해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하고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샤워하기 힘든 것이 단점이다. 김정은 체제로 들어서면서 평양에 중국식 대형 슈퍼마켓과 각종 해외 요리 전문 식당, 호화 물놀이장과 놀이장, 극장 등이 잇따라 건설되는 것이 해외 경험을 가진 북한의 부유층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말 평양 보통강구역에 1호점을 낸 북한 최초의 편의점 ‘황금벌상점’은 올해 안으로 평양 20호점 개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현재로서는 평양에만 국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위 간부를 지내다 최근 탈북한 B 씨는 “최근 김정은의 치적을 내세우기 위한 대형 공사가 늘면서 주민 수탈이 김정일 시절보다 몇 배로 가혹해졌다. ‘젊은 놈이 더 지독하다’는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초부터 최소 5명의 해외 파견 북한 고위급 무역 일꾼들이 탈북했는데 이들은 크게 늘어난 외화벌이 할당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한국행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zsh75@donga.com·김정안 기자}

김정은 체제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북한의 시장화는 주민 생활 개선이란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부정부패 확산이라는 사회적 부작용도 낳고 있다. 시장화의 최대 수혜자는 권력을 쥔 고위 간부 계층이다. 이들은 각종 이권에 개입해 뒷돈을 챙기며 재산을 늘린다. 권력이 클수록 오가는 ‘검은돈’ 규모도 커진다.○ ‘혁명’이란 말 뒤에 숨겨진 부의 세습 김정은 체제 들어 빈발하고 있는 ‘피의 숙청’은 권력 내부의 물갈이로 이어진다. 이와 함께 특정 간부가 처형되거나 숙청되는 바람에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경제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추악한 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이권 사업을 주도하는 이들은 주로 권력자의 자녀들이다. ‘뉴데일리’ 등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와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북한 최대 부자 중 한 명은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아들 김철이다. 청봉무역회사 사장인 김철의 개인 재산은 수천만 달러로 추정된다. 우리 돈으로 수백억 원의 자산가다. 김철은 석유 수입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해 거액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매년 중국에서 수입하는 석유는 약 6억 달러(약 7094억 원)어치. 수입 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차액을 챙길 수 있어 석유 수입권은 막대한 이권 사업으로 꼽힌다. 북한의 석유 수입권은 김정은 체제 초기까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최측근이던 장수길 행정부부장이 사실상 독점해 왔다. 그러다 장성택 숙청 한 달 전인 2013년 11월 장수길이 처형되면서 김철이 석유 수입권을 거머쥔 것으로 알려졌다. 김철은 현재 북한 내부에서 ‘새끼 보위부장’으로 불린다. 재력과 아버지의 지위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변 보호를 위해 태권도 사범들을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철 다음으로 부상한 인물이 이영란이다. 그는 2010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용철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의 맏딸로 아버지가 죽은 뒤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양딸이 됐다. 황병서는 이용철이 맡고 있던 핵심 요직인 노동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황병서는 현재 북한 권력 서열 2위다. 이영란은 장성택이 갖고 있던 핵심 돈줄인 노동당 54부를 손에 넣었다. 54부는 석탄 등 광물, 수산물을 중국에 팔아 막대한 외화를 주무르던 부서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김철이 이영란이 독점하고 있던 탄광과 어장의 이권에 군침을 흘리고 개입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그러자 황병서가 이영란을 돕기 위해 보위사령부(우리의 기무사령부 격)를 내세워 김철을 내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3일 중국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 북한 대표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던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아들 최현철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거부(巨富)로 꼽힌다. 대외 무역 등으로 돈을 버는 그는 미녀들을 끼고 다니며 외국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말 아버지 최룡해가 섹스 스캔들로 좌천된 전례를 기억하는 평양 주민들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며 수군거리고 있다고 한다. 최현철은 또 과거 평양 시내에서 교통사고를 내고는 상대 운전자가 반체제 발언을 했다고 뒤집어씌워 총살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운전자가 평소 고지식하지만 마음은 착한 노(老)당원이어서 평양 시민들이 분노했다고도 전해진다. 복수의 북한 소식통들은 최근 본보와의 통화에서 “부모의 권세를 등에 업은 이런 ‘자녀 권력’에게 잘 보이려고 줄을 서는 돈주가 적지 않다”며 “이들과 친해지려면 최소 20만 달러(약 2억3600만 원)를 뇌물로 주어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의 권세는 늘 불안하다. 부모가 숙청되면 모든 부귀영화를 한순간에 빼앗기고 목숨까지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정일 체제 말기 최고 부자로 꼽혔던 이제강 조직지도부 1부부장(2010년 사망)의 사위인 차철마와 최고 여성 부호로 꼽혔던 김일철 전 인민무력부장의 딸(이름은 알려지지 않음)은 무대 중심에서 밀려났다. 북한 최고 간부들이 김정은 말에 절대 복종하는 것은 최소한 무난하게 은퇴해야 가문의 부를 지킬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가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들에겐 체제 수호가 곧 자신들의 생존과 기득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빈부 격차의 심화 김정은 체제 들어 권력층의 부는 증가하는 반면 사회 전체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 장사나 친지 방문 등의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 100명을 면접 조사한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대 다수인 98명이 “빈부 격차가 크다”고 답했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 4년간 탈북한 지 1년 미만인 북한 주민 600여 명을 대상으로 매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북한 최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북한 돈 90만 원(약 13만 원)으로 최하위 20%의 월평균 소득 2만 원(약 2900원)의 45배다. 동일한 격차가 5.4배에 불과한 한국보다 훨씬 더 큰 빈부 격차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 78.9%가 북한에서 가장 잘사는 직업으로 중앙당 간부를 지목했고 14.3%가 두 번째로 잘사는 직업으로 법 집행 기관 간부를 꼽았다. 반면 가장 못사는 직업으론 57.1%가 농민을, 21.6%가 노동자를 각각 선택했다. 평양과 지방의 격차, 지방 간의 격차도 급속히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평양을 제외하고 북한에서 가장 잘사는 지역을 묻는 질문에 35.4%가 평안남도, 22.1%가 함경북도, 16.7%가 평안북도, 15.5%가 양강도를 꼽았다. 평양을 둘러싼 평남을 제외하면 나머지 3개 도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다. 반면 가장 못사는 지역으로는 강원도(36.7%)와 황해남북도(24.3%)가 꼽혔다.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전까진 곡창지대인 황해도의 생활 수준이 함경북도와 양강도보다 높았지만 지금은 평양 또는 중국과 얼마나 가깝고 먼가에 따라 잘사는 지역과 못사는 지역이 갈리고 있다. ○ 부정부패의 만연 강 교수의 설문조사에 응한 북한 주민 100명 중 90명은 ‘일을 해결하기 위해 뇌물을 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만큼 뇌물 주고받기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북한 주민들은 “뇌물을 주지 않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돈 대신 담배를 뇌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대답했다. 북한에선 현재 1보루(10갑)에 10위안 상당의 가치가 있는 ‘고양이’ ‘고향’ ‘금강산’ 같은 담배가 뇌물 대용으로 인기가 있다. 또 중국 방문 허가를 얻으려면 공식적으론 50달러를 국가에 내야 하지만 실제론 300∼1000달러의 뇌물을 줘야 한다고 한다. 물질만능주의가 확산되면서 안전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5월 발생한 평양시 평천구역 아파트 붕괴 사고는 돈과 권력의 유착, 개인의 욕망이 어우러져 빚어진 참사였다. 부정부패가 비리를 낳고, 비리가 부실 공사를 낳은 것이다. 황금만능주의 확산에 따른 사기 범죄도 해마다 크게 증가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으로 나온 평양 주민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여성이 주도하는 사기, 절도와 매춘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지난해 평양에선 여성 범죄만 전담해 수사하는 단속반이 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글 싣는 순서 조기붕괴 예상 깬 정치권력 떠오르는 ‘붉은 자본가’ 북한 시장화의 그늘 외부로 분출되는 북한의 욕망주성하 zsh75@donga.com·김정안 기자}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 경제는 조금씩 호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 수준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비록 폐쇄적인 북한의 특성상 정확한 경제 관련 통계를 얻기는 힘들지만 일정한 경향성은 확인할 수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북한 경제의 호전은 당국의 노력이 아닌, ‘돈주’로 불리는 신흥 자산계급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김정은 시대 번창하는 붉은 자본가 ‘돈주’ 돈주는 ‘돈의 주인’이란 뜻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한에서 자산(資産)이 많은 부자를 가리키는 용어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보통 1만 달러(약 1180만 원) 이상을 보유하면 돈주로 불린다고 한다. 북한에 돈주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긴 어렵지만, 최소 수만 명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돈주들은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하며 북한의 시장화를 빠르게 이끌고 있다. 현재 북한의 돈주들은 투자 분야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는데, 어선에 투자하면 ‘선주(船主)’, 광산에 투자하면 ‘광주(鑛主)’, 운송업에 투자하면 ‘차주(車主)’, 땅에 투자하면 ‘지주(地主)’로 불리는 식이다. 돈주들은 수익금을 다시 다양한 분야에 투자해 이윤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북한 돈주들의 집중 투자처는 부동산, 운송, 광산업, 서비스업 등이다. 나진선봉 지역에서 대학교수를 했던 현인애 통일연구원 객원 연구위원은 “요즘 평양에서 가장 핫한 투자처는 건설업”이라며 “여럿이 돈을 모아 아파트 한 채를 지으면 최소 30% 이상의 이윤이 남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그는 “평양에서 건설되는 대다수 고급 아파트들의 건설 주체는 공기업이지만 건설 자금은 돈주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본주의식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에 나온 길에 본보 기자와 통화가 된 한 평양 주민은 “돈주가 투자해 건설한 아파트가 평양에만 최근 5년 동안 5만 채가 넘는다”며 “이에 비해 같은 기간 김정은의 지시로 국가가 투자해 건설한 아파트는 5000채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올해 4월에는 김정일의 경호부대가 사용하던 건물까지 돈주에게 팔려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건물은 평양 시내 노른자위 땅인 중구역 경흥동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한 돈주가 60만 달러에 사서 살림집으로 개조한 뒤 되팔아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운송업 또한 돈주의 독무대로 자본주의식 경영이 활발하다. 지난 2년간 중국과 한국에서 탈북자 및 북한 무역상 수백 명을 인터뷰한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신의주나 원산 같은 곳은 시내버스도 민간 자본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며 “중고 버스를 중국에서 5000∼1만 달러에 사와 당국의 비호 아래 운영하고 이윤을 나누는 형태”라고 전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평양의 택시 운행 대수가 최근 대략 1000대가 넘었는데, 60∼70%는 돈주의 소유라고 전했다. 석탄, 금 등의 채굴도 돈주의 집중 투자처다. 아오지 탄광으로 유명한 함북 은덕군에서 2년 전 탈북한 A 씨는 돈주가 운영하는 탄광에서 일당을 받으며 석탄을 캤다고 한다. 돈주가 국영기업인 탄광에 돈을 주고 폐갱을 산 뒤 일당직 노동자 10여 명을 고용해 탄을 캐서 장마당에 파는 회사였다. 이런 식으로 돈주가 운영하는 탄광은 은덕군에만 100개가 넘으며, 전국적으론 수천 개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란코프 교수는 “김정은 시대 들어 민간 자본에 대한 단속이 거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현재 북한 경제는 정부가 아닌 돈주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장경제 마인드의 급격한 확산 돈주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경쟁을 부르고 있다. 북한 사회주의 경제가 자본주의로 변하는 싹들이 곳곳에서 싹트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 사례가 초보적 수준의 자본주의적 마케팅 기법이 적극 도입되고 있는 것. 최근 평양을 방문했던 한 외국인은 “평양의 한 카페에서 음료 10잔을 마시면 1잔을 공짜로 주는 쿠폰을 나눠 주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더 이상 국가 주도 공사에 무보수로 끌려가 일하려 하지 않는 사례도 나타난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벌여놓은 평양의 대규모 공사장에서도 돌격대원들이 무리로 이탈하는 현상이 빈발한다는 것. 실제로 평양의 개인집에서 실내 인테리어나 연탄만들기 등을 하면 중국 인민폐 수십 위안을 하루 일당으로 챙길 수 있다고 한다. 군인들도 일당을 챙기기 위해 민가에 가서 며칠씩 일한 뒤 부대로 복귀해 지휘관에게 뇌물을 주는 현상이 전국에 일상화됐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인력시장도 형성됐다. 주요 도시 장마당 앞에는 일감을 얻기 위해 젊은 사람들이 몰려 서 있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하는 일과 기술 숙련도에 따라 보수는 인민폐 10위안(북한 돈 1만3000원)부터 100위안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돈주가 주도하는 북한의 경제 성장이나 자본주의화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소규모 상거래나 유통은 활성화되고 있지만 국가 기간산업은 여전히 회복 불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평양을 다녀온 서방의 한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는 평양순안공항 완공 전 활주로 공사 현장을 목격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 건설 현장에는 크레인 등 기계장비를 쉽게 볼 수가 없다. 모두 다 인민이 수작업으로 한다. 아프리카 극빈국보다 못하다. 공항 활주로 건설장에도 기계는 하나 없고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활주로 시멘트를 손으로 바르고 있더라. 정말 놀랐다.” 북한 주민생활 개선을 북한 경제 호전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의 3대 세습이 공식화된 지 27일로 만 5년이 된다. 북한은 2010년 9월 27일 김정은(사진)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수여하면서 세상에 ‘김정은’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알렸다. 이렇게 등장한 김정은은 ‘북한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금까지 끄떡없이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이 권력 안정성 측면에서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다”며 “과거 레닌과 스탈린 모두 공포정치로 권력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공포정치가 정권의 불안정성으로 반드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외향적 안정성과는 달리 지도자에 대한 북한 간부들의 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끊임없이 새로운 건설 과제 등을 제시하고 이를 수행하지 못하면 무자비한 처벌을 하기 때문에 간부들은 ‘도저히 이 상태로 더 살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 등장 이후 주민 생활은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이 김정은 체제에서 살다가 탈북한 북한 주민 600여 명을 대상으로 2012년부터 진행해 온 조사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선 굶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이 같은 경제 호전은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현인애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주민 생활의 호전은 당국이 아닌 ‘돈주(돈이 주인이라는 뜻으로 ‘부자’의 다른 말)’로 불리는 신흥 자산계급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김정안 기자}
김정은의 리더십 한계와 경험 부족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분야는 대외정책이다. 특히 최근 북-중 관계는 ‘혈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북한은 9일 정권 수립 67주년을 맞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보내온 축전을 노동신문 2면에 실었다. 반면 러시아와 쿠바에서 보내온 축전은 1면으로 다루었다. 중국도 이달 초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 때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톈안먼 성루의 끝자리에 배치하는 등 사실상 홀대했다. 얼어붙은 북-중 관계는 당분간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은 “최근 김정은이 간부들 앞에서 ‘중국놈들에게 역사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국도 북한을 과거와 다르게 다루고 있다. 청샤오허(成曉河) 중국 런민대 교수는 7일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이 북한과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에서 일방적인 징벌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한 북한 무역 관계자는 “최근 중국이 금융과 통관 등 여러 분야에서 북한을 옥죄고 있다”며 “여러 계약이 파기됐고 인력 파견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이 유엔 제재 속에서도 버틴 것은 중국이란 ‘뒷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그 뒷문이 열렸다 닫혔다 한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년 9월 27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인민군 지휘성원들의 군사칭호를 올려줄 데 대한 명령’ 제0051호를 하달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비롯해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김 위원장의 여동생), 최룡해 노동당 비서, 현영철 인민군 8군단장, 최부일 인민군 부총참모장,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을 대장으로 승진시킨다는 발표였다. 그해 26세였던 ‘김정은’ 이름 석 자가 북한 관영 매체의 보도에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 당시 정보기관과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이 김정은 3대 세습을 공식화한 것으로 평가했다. 한국 언론들도 김정일의 3남 이름을 ‘김정운’으로 표기해 오다 이 발표 이후 김정은으로 정정했다. 김정은은 대장 승진 발표 하루 뒤인 9월 28일에 열린 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를 통해 처음 공식석상에 얼굴을 드러냈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이듬해 12월 17일 아버지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심근경색으로 숨지면서 김정은은 약 4개월간 애도기간을 거쳐 2012년 4월 11일 노동당 제1비서, 이틀 뒤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취임하면서 1인자 자리에 올랐다. 이후 김정은은 공포의 숙청을 통해 권력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 공식 등장 이후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은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김정은 등장 5년을 맞아 본보는 외국 전문가와 탈북자 30여 명을 지난 2개월간 심층 인터뷰해 간접적으로나마 북한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추적했다.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의 정치 경제 문화 분야의 변화상을 4회로 나눠 보도한다. 》 ‘어리고 미숙하다’는 평가에도 김정은이 4년 가까이 끄떡없이 권좌를 지키고 있는 비결은 뭘까. 우선은 오랜 시간 북한 사회에 내재된 순수 혈통이 주는 배타적 정통성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 노동당 간부 출신 고위급 탈북자는 “김정은 체제를 지탱하는 5할은 ‘김일성’이라는 신적 영역이 만들어놓은 주민들의 잠재의식이고 3할은 공포정치와 굳건한 감시 시스템, 그리고 2할은 개인적 리더십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탈북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내려오는 이른바 ‘백두 혈통’은 북한에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라며 “수십 년 동안 다져놓은 이들에 대한 신격화는 주민들의 머릿속에 ‘수령은 백두혈통만 할 수 있다’는 잠재의식을 세뇌시켰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외양과 행동까지 할아버지 김일성을 흉내 내는 것은 주민들의 이런 잠재의식을 활용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했다. ‘백두혈통 세뇌 효과’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이 발표한 탈북자 656명 대상 설문조사를 보면 ‘주민 과반수가 김정은을 지지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62.7%나 됐다. 이 조사는 2012년부터 2015년 사이 매년 탈북 1년 미만 탈북자 100여 명을 선정해 진행됐다.○ 붕괴 가능성 당분간 작아 최근 북한을 오간 해외 북한 전문가들 중에는 김정은 정권의 붕괴 가능성이 당분간 희박하다는 시각이 많다. 대니얼 핑크스턴 국제위기기구(ICG) 서울사무소장은 “(북한 입장에서만 보면) 김정은은 상당히 유능한 독재자로 보인다”며 “김정은의 후세대까지 4대 권력 세습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적어도 수십 년 동안 김정은의 통치가 견고히 유지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니 타운 38노스 책임연구원도 “북한 현지 경제 상황이 상당히 호전되어 가고 있고 연속적인 가뭄에도 쌀 가격 등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북한에서 자생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시장 경제 활동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주민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김정은은 ‘5만 달러까지는 그 출처를 따지지 말라’며 자본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한다. 과거 투자금의 출처를 꼼꼼히 따지고 사회주의법에 반한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투자금을 즉각 회수했던 것과는 차별화된 변화라는 것. 그만큼 이윤을 목적으로 한 개인투자자들의 활동 범위도 이전보다 넓어졌다는 것이다.○ 뉴제너레이션의 등장 김정은 체제에서 가장 주목되는 권력계층은 충성 경쟁을 벌이는 신진 엘리트 집단이다. 관료 출신 한 탈북자는 “김정은은 2012년 중간급 간부들을 50대 미만으로 교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수십 년간 보좌해온 측근들이 뒤로 물러나고 신진 엘리트들이 권력을 잡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야심만만한 신진 엘리트들이 김정은의 눈에 들기 위해 그의 명령을 물불 가리지 않고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북한을 빠져나온 간부 출신 탈북자는 “김정은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유일 영도 체제’는 단순히 공포정치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며 “신진 엘리트들이 북한 정권을 탄탄하게 떠받치고 있다”고 했다. 해외에 체류 중인 한 북한 간부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충성심 때문만이 아니다. 북한에선 권력과 부가 비례한다. 큰 권력을 잡을수록 이권에 개입하거나 뇌물을 받아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숙청으로 자리가 비는 만큼 기회가 생기는 것이어서 그 자리를 새로운 신진세력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른바 외국 물을 먹은 세대들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북한대학원대 이우영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는 최대 15만 명에 육박한다. 이 교수 연구팀은 최근 2, 3년 동안 중국과 러시아에 나와 있는 북한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생활 실태와 인식 조사를 해 오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해외에 파견된 근로자가 김정일 시대에 비해 2배 이상 많아졌을 뿐 아니라 이들이 북한에 돌아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도 상당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북한에 돌아가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해외 노동 경험을 ‘공통분모’로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자신들만의 정보망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해외 생활을 통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향후 북한 변화를 이끄는 동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북한 내 신흥 부르주아나 해외 노동 경험이 있는 해외파들은 아직까지는 북한 당국과 협조하고 야합하는 세력”이라며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이들이 생각하는 이득과 북한 당국의 이득이 상충할 때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심은 이탈… “평양서 김정은 뉴스 나오자 볼륨 줄이기도” ▼○ 노동당이 등을 돌린다 하지만 내부 균열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간부들의 불만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간부들이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못할 뿐이지 불만은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무리한 요구라도 따르지 않으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 김정은 시대 들어 할아버지나 아버지 때와는 달리 당원들이 이탈하는 등 하부 조직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다. 우선 당의 통제하에 국가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사회주의 국가 시스템이 급격하게 해체되고 있다. 함경북도 주민 A 씨는 국영기업 하급 간부였지만 3년 전부터 공장에 나가진 않는다. 대신 공장에 매달 북한 돈 5만 원을 내고 있다. 현재 북한 암시장 달러 환율 8200 대 1을 적용할 때 5만 원은 약 6달러(약 7100원)이다. 이 돈이면 장마당에서 쌀 10kg, 옥수수 30∼40kg 정도를 살 수 있다. 서류상으로만 공장에 소속된 A 씨는 가을에는 송이버섯을 캐고, 여름 3개월은 바다에서 오징어를 잡는다. 직장에 5만 원을 내고도 충분히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수입이 짭짤하다. A 씨는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직장에 매이기보다는 이 편이 훨씬 자유롭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다”며 “배급제도가 되살아나 과거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때로 돌아갈까 봐 겁을 낸다”고 전했다. A 씨 사례는 김정은 체제 이후 급격히 해체되는 북한의 사회주의 국가 시스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과거 수십 년간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전통적 기반은 ‘인민대중-노동계급-노동당-핵심 통치 집단-수령’이었다. 하지만 인민대중과 노동계급의 상당수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심적으로 수령으로부터 이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는 국가와 지도자가 자신들을 먹여 살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은 스스로 자기 살길을 개척하고 있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도자에 대한 불신은 오히려 당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대상인 2013년 이후 탈북한 주민 291명 중 46명은 북한에서 당원이었다. 조사에서 당원 출신 탈북자의 82.6%가 북한 경제가 어려운 이유를 최고영도자 때문이라고 답했다. 비(非)당원 출신 탈북자는 이보다 적은 70.4%가 경제난의 책임을 김정은에게 돌렸다.○ 당원도, 간부도 기피 대상 이런 분위기 속에 노동당원과 간부의 인기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특히 김정은 체제 들어 간부를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지난해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B 씨는 고위직 진출이 가능할 정도로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이상 당원도 되지 않으려는 풍조가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옛날엔 당원이 돼야 간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어코 당원이 되려 했다. 당원이 되려고 수백 달러씩 뇌물을 바치던 것이 6∼7년 전이다. 하지만 이제는 당원이 되라고 비서가 사정해도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원이 되면 통제도 더 강해지고, (비리를 저질렀을 때) 처벌도 비당원보다 몇 배 더 세기 때문이다.” 간부 기피 바람은 보위부와 같은 권력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탈북한 북한 관료 출신 C 씨는 평안남도 ○○군 보위부의 경우 정원의 반밖에 차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보위부는 정치적 범죄만을 다루는데 요새는 주민들의 신고가 줄어 정치범을 잡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이런 당원과 간부 기피 현상은 북한 체제를 지탱하던 하부 조직이 급격히 썩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이 지난 3년 반 동안 공포통치를 펼치는 사이 북한의 팔다리가 서서히 마비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 “너는 김정은, 나는 나” “누가 지도자가 되건 관심도 없다. 관심이 있다 해도 우리가 뭘 어떻게 할 힘도 없다. 그냥 ‘너는 너대로 왕 노릇 해라, 우린 우리대로 산다. 제발 우리를 못살게 굴지만 말아 달라’는 분위기다.”(함경북도 주민 D 씨) “가족 먹여 살리기도 힘든데 김정은이 간부를 죽이건 말건 그건 남의 일일 뿐이다. 누가 처형됐다고 하면 또 누가 죽어나갔구나, 다음에 또 누가 죽어나가겠구나 다들 쉬쉬한다. 우리야 어차피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도 아니니 죽을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어차피 수십 년째 이러고 사니까 그러려니 한다.”(양강도 주민 E 씨) 지난달 휴대전화로 본보 기자와 통화한 북한 주민들이 전한 현지 민심이다. 김정은 체제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의식은 ‘체념’과 ‘무관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치에 관심을 끊고 돈이나 많이 벌자는 인식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집권 3년 반을 맞으면서 북한 정권이 과거 수십 년간 자랑해온 수령과 대중의 ‘혼혈일체(渾血一體)’ 전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혼혈일체는 주체사상에 뿌리를 둔 북한의 핵심 통치 구호로 모두가 수령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공동체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북한은 김정은 말 한마디에 벌벌 떠는 고위 간부들의 ‘상위 리그’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이 자기 돈벌이에만 몰두하는 평범한 주민들의 ‘하위 리그’로 갈라져 있다. 김정은 역시 주민들에겐 더이상 ‘경외의 대상’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통치자일 뿐이다. 최근 평양에서 근무하고 온 한 서방 외교소식통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양의 한 식당에서 김정은 관련 뉴스가 나오자 시끄럽다는 듯 TV 볼륨을 줄여버리는 광경도 목격했다”고 전했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김정은 체제는 과거(김일성 김정일 시대)와 달리 지도자와 핵심 권력 엘리트 간 유대감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김정은과 핵심 권력 엘리트의 관계는 충성을 바치고 권력과 돈을 얻는 상업주의적 거래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관계는 통치자금이 고갈되는 순간 금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조기붕괴 예상 깬 정치권력 떠오르는 ‘붉은 자본가’ 북한 시장화의 그늘 외부로 분출되는 북한의 욕망주성하 zsh75@donga.com·김정안 기자}

장성택의 목을 친 김정은의 칼끝이 다음엔 누굴 겨눌까. 지난해 초반 나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을 지목했다. 김원홍은 고위층들의 구린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점 때문에 노동당 조직지도부나 군부 간부들은 김원홍을 공공의 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경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군 보위사령부를 내세워 김원홍의 아들인 김철을 외화 횡령과 경제질서 혼란 주도 혐의로 내사했다는 정보가 흘러나올 때 드디어 올 것이 오는가 싶었다. 그런데 김원홍은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그가 김정은의 신임을 얻는 데 대단한 노하우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김원홍은 장성택 처형의 최대 공신으로 발언권이 커졌던 지난해 초 김정은에게 제안해 조직지도부에 보위부 담당 부부장 직제를 새로 만들고, 그 자리에 자신의 심복을 앉혔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라이벌인 조직지도부 내부에 자신을 막아줄 방패 하나는 갖게 되는 셈이다. 김원홍이 간단치 않은 인물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역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는 것 같다. 김원홍은 과거 숙청에 이용된 뒤 ‘토사구팽’ 당한 수많은 선배들을 지켜본 사람이다. 김정일 시대에 토사구팽 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사회안전부 정치국장이었던 채문덕이다. 1990년대 후반 김정일은 채문덕을 시켜 ‘심화조’ 사건이라는 것을 조작해 수많은 고위 간부들을 제거했다. 서관희 노동당 농업비서가 간첩 누명을 쓰고 평양시민들 앞에서 공개 총살됐고, 문성술 중앙당 본부당 책임비서와 서윤석 평남도당 책임비서는 가혹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거나 정신병자가 됐다. 이때 수많은 고위 간부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2만5000여 명이 숙청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일은 대량 아사로 흉흉해진 민심을 딴 곳으로 돌리고 김일성 시대의 노간부도 제거하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얻었다. 당시 채문덕은 매일 숙청 명단을 들고 가 김정일의 비준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친 처형으로 민심이 들끓자 김정일은 채문덕을 ‘공명심과 야망으로 사실을 날조하고 혁명동지들을 억울하게 죽게 한 극악한 살인마’로 낙인찍고 2000년 7월 그를 심복 15명과 함께 공개 총살했다. 채문덕의 일가는 멸족됐고 그의 지휘를 받던 안전원 4000여 명이 군복을 벗고 숙청됐다. 이런 사례를 무수히 목격했던 김원홍이 토사구팽이란 단어를 매 순간 떠올리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터. 하지만 김정은이 변심하면 제 아무리 김원홍이라도 방법이 없다. 살기 위해선 자신이 왜 필요한지 김정은에게 부단히 주입시키는 길밖에 없다. 이런 김원홍에게 걸려든 대표적 표적이 ‘미녀 응원단’이었다고 한다. 북한은 지난해 7월 인천 아시아경기에 미녀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했다가 8월에 파견 불가를 통보했다. 북한은 “남측이 응원단 규모와 공화국기 크기, 체류 비용 등을 거론하며 시비를 걸기 때문에 응원단을 보낼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때문에 남쪽에선 정부가 속이 좁았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소식통이 전해준 진짜 내막을 들어보면, 남쪽이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고 해도 응원단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응원단이 모집되자 숱한 간부들이 자기 딸을 넣으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딸에게 남쪽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남쪽에 응원단으로 파견돼 갔다”는 것은 곧 “국가대표 미녀로 인정받았다”는 증명이다. 이는 유학도 마음대로 못 가는 폐쇄된 북한에서 결혼 직전의 여성이 쌓을 수 있는 최대 스펙이기도 하다. 북한은 23∼25세를 여성의 결혼 적령기로 본다. 응원단으로 뽑혔다는 후광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혼삿말이 오가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모들이 딸을 뽑아달라고 담당 부서에 경쟁적으로 뇌물을 찔러 주었는데, 1000∼3000달러 정도가 오갔다고 한다. 보위부장인 김원홍이 과거 응원단 선발 때부터 전해져 온 이런 관행을 몰랐을 리는 없다. 하지만 공교롭게 지난해 여름 김정은이 김원홍을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더구나 장성택 측근 숙청이 반년 넘게 이어지면서 보위부에서도 장성택과 가까웠던 주요 간부들이 하나둘 사라지게 되니 김원홍도 불안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응원단 비리를 자기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카드로 써먹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김원홍의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즉각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2005년 인천에 응원단으로 왔던 이설주에게 진짜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약 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김정은은 김원홍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랄발광들 하는군. 역시 믿을 건 보위부밖에 없습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아 옆자리 승객을 불편하게 하는 ‘쩍벌남’의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 ‘맨스프레딩(Manspreading)’이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새로 올랐다. 옥스퍼드 사전 편집자들은 27일 ‘쩍벌남’을 포함해 신조어 1000여 개를 추가했다. 1985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ABC방송의 인기 시리즈였던 ‘맥가이버(MacGyver)’도 이번에 신조어로 포함됐다. 맥가이버는 ‘가지고 있는 재료나 도구를 기발하게 사용하여 무언가를 만들거나 수리한다’는 뜻의 동사로 등재됐다. 이 밖에 배가 고파(hungry) 화가 난다(angry)란 뜻의 ‘행그리(hangry)’, 호주머니의 휴대전화 버튼이 눌려 의도치 않게 전화가 걸린다는 뜻의 ‘포켓 다이얼(pocket dial)’, 바지 뒷주머니에 넣은 휴대전화가 잘못 눌러져 전화가 걸린다는 뜻의 ‘버트 다이얼(butt dial·엉덩이 다이얼)’ 등도 새로 등재됐다. 신조어는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 분기마다 추가되며 사전에 올라가려면 대중이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남한에서 송출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 들리는 북한 지역 10km 범위 안에는 완전히 상반되는 두 종류의 북한군 병사들이 근무한다. 출신 성분이 가장 좋은 간부 자녀들과 출신 성분이 가장 안 좋은 노동자 농민의 자녀들이다. 간부 자녀들은 군사분계선(MDL) 비무장지대 2km 정도 구간의 경비와 수색을 담당하는 민경(민사행정경찰) 부대에서 주로 일한다. 민경의 선발 요건 제1조는 ‘계급적 토대’, 즉 출신 성분이다. 이렇게 따져 뽑다 보면 주로 간부 부모를 둔 자녀들이 선발될 수밖에 없다. 전방에는 민경대대가 10여 개 있고, 대대마다 1800명 정도 배속돼 있으니 민경 전체는 2만 명이 좀 안 된다. 민경은 북한군에서 최상의 대우를 받는다. 최전방 사단에 소속돼 있지만 보급은 평양에서 따로 받는다. 매주 두세 끼 육류를 먹고, 당과류와 필터담배도 공급된다. 명절 때마다 꿩고기 사탕 귤 등이 담긴 선물박스가 전달된다. 외출 때 장교복을 입고 나가는 특권도 보장되며 제대하면 공산대 졸업증을 받고 곧바로 간부로 등용된다. 반면 민경부대 약 1km 후방에 있는 ‘1제대’ 부대엔 출신 성분이 나쁘고 가난한 집 자녀들이 주로 간다. 부모들은 자식을 배고픈 고생이 덜한 국경경비대나 해안경비대 같은 좀 나은 부대로 빼돌릴 연줄도 돈도 없다. 1제대에 속하는 최전방 1, 2, 4, 5군단 병사들에 대한 보급은 최악이다. 3년 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노크 귀순’ 사건의 당사자가 귀순 후 “배가 고파 칡뿌리를 캐 먹었고 소금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오랜만에 맛본 소금에서 단맛이 났다”고 했던 게 대표적이다. 특히 강원도 1, 5군단은 피복 공급도 제대로 되지 않아 신발 밑창에 나무껍질을 덧대고 다니는 병사도 적지 않다. 김정은 시대 들어 1제대 군단들은 더욱 홀대를 받고 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체제의 최대의 적은 미제나 남조선이 아니라 탈북자”라고 공언한 뒤 북-중 국경을 분계선처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에 최근 북-중 국경이 전기철조망으로 봉쇄되고 지뢰까지 매설된다는 정보도 있다. 식량과 피복 등 군수물자는 국경경비대에 우선적으로 공급된다. 전방 군단이 홀대받는 이유는 북한군의 전력으로 남침하기엔 어림도 없고 그렇다고 한미 연합군이 북진해 올라올 일도 없다는 것을 김정은이 잘 알기 때문이다. 5중의 전기철조망과 조밀한 지뢰밭에 민경까지 지키고 있어 병사들이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남쪽으로 탈출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 한국군 경계초소(GP)와 일반전초(GOP) 사이에 위치한 대북 확성기 방송은 이런 두 부류의 병사들에게 외부 소식을 전해준다. 방송 내용은 2004년 중단하기 전과 별 다를 바가 없지만 그 위력은 11년 전에 비해 몇 배로 더 커졌다. 청취자인 북한 병사들이 ‘장마당 세대’로 완전히 구성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사사전에도 올라온 ‘장마당 세대’는 ‘국가 배급망이 붕괴된 이후 태어나 국가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세대’이다. 이 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간부 자녀든, 가난뱅이 자녀든 대북 방송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래에 북한 사회를 휩쓴 한류의 주 소비자가 바로 간부 자녀들이다. 한국 제품을 가장 선호하는 부모들 밑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 말투를 따라 한 세대가 현재 민경에서 근무한다. 이들의 머릿속에 한국은 부유하고 자유로운 곳으로 각인돼 있다. 1제대 병사들은 부익부빈익빈이 고착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체제에 대한 반감이 가득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고 충성심이 매우 희박하다. 이런 병사들에게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전달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그들이 당장 폭동을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입장에선 체제를 지키라고 보낸 수십만 명의 병사가 10년 넘게 반동으로 세뇌돼 제대한 뒤 전국에 흩어지는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민경 병사들은 미래의 북한 간부이기도 하다. 기를 쓰고 탈북하는 북-중 국경경비대만도 골치가 아픈데, 남쪽에서까지 체제 불만 세력이 자란다면 북한 체제는 어떻게 될까.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자마자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급히 달려와 사활을 걸고 회담에 매달린 것엔 이런 사정이 숨어 있다. 북한이 이번에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켰다고 안심할 순 없을 것이다. 북한이 점점 더 높이 쌓아가고 있는 거짓의 누각은 진실이 파고들수록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동시에 시간이 흐를수록 대북 확성기의 위력도 커지게 될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48시간 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고 22일 공언한 것과는 달리 내부적으론 국지전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의 핵심 군 장비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평양에서 마감 훈련을 하고 있다. 북한이 남북 고위급 당국자 접촉에 전격적으로 나오게 된 배경도 김정은이 공언한 ‘48시간 최후통첩’의 딜레마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는 추정이 나온다. 48시간 내에 행동을 하지 않으면 김정은의 권위가 크게 떨어지고, 도발을 한다 해도 한국의 반격에 큰 타격을 입으면 김정은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핵심 군 장비 열병식에 동원 현재 열병식 준비에 동원된 북한 군 병력은 평양 외곽 미림비행장에서 막바지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통은 “9월 3일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보다 더 크게 준비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3만 명 규모로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으며 핵심 군 장비들이 총출동했다”고 말했다. 중국이 9월 3일 진행하는 전승 70주년 열병식엔 1만2000명의 병력이 참가한다. 소식통은 “열병식에 북한의 최정예 기계화 장비와 전투기 등이 대거 차출됐다”며 “특히 북한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의 경우 수량이 많지 않은데 실전에 쓸 만한 차량은 현재 평양으로 상당수 옮겨져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열병식 참가 병력도 후방 군단인 함경북도 9군단과 자강도 12군단, 평양시 대학생 중에서 주로 차출됐지만 무력시위 성격의 핵심 장비는 일선 부대에서 차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국지전에 돌입할 경우 부대가 둘로 나뉘고 핵심 장비들을 평양에 차출당한 부대들의 작전 수행능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남한 도발을 위해 열병식 훈련을 중단하고 장비들을 부대에 복귀시킬 경우 북한이 야심 차게 준비해 온 노동당 창건 행사는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열병식과 집단체조 관람을 패키지로 묶은 관광상품을 외국인들에게 팔 정도로 당 창건 행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방 ‘준전시 선포’ 속내는 북한이 전방지역에만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것도 전국에 대대적인 공사판을 벌이며 주민을 ‘100일 전투’에 총동원시키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북한 당국은 7월 1일부터 10월 10일까지 100일 동안을 ‘건설 전투’ 기간으로 선포한 뒤 주민들을 밤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공사 완공에 동원하고 있다. 주요 대상물의 경우 공화국 창건일인 9월 9일까지 완공하라는 김정은의 지시도 하달된 상태다. 만약 전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면 모든 공사가 중단되고 주민들은 전쟁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그러면 노동당 창건일을 맞이해 대규모 건설을 마감하고 김정은의 치적을 선전하려던 노력도 물거품이 된다. 최근 북한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공사는 평양 대동강 쑥섬 10만 m²의 넓은 부지에 짓고 있는 과학기술전당과 미래과학자거리이다. 완공을 앞둔 요즘 수만 명의 군인과 주민들이 동원되고 있으며 군에 공급돼야 할 유류도 공사장에 우선 돌리고 있다.○ 포병 전쟁 준비 안돼 북한의 포병이 한국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열세인 것도 군사 도발을 망설이게 만드는 대목이다. 북한이 확성기를 포격하고 한국군이 반격할 경우 양측 간에 포병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의 포병은 화력전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김정은이 한 자주포 대대를 불시에 방문해 전투 상황을 검열했는데, 김정은이 지시한 장소에 3시간이나 늦게 도착했고 목표 근처에 떨어진 포탄은 한 발에 불과했다고 한다. 화가 난 김정은은 해당 대대를 즉시 해산시키고 군단 군관 전원의 별을 하나씩 강등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시 북한은 최정예 포병부대를 3개월 동안 훈련시켰지만 북한의 포탄은 불과 12km 앞에 있는 큰 섬도 못 맞히고 절반 가량이 바다에 떨어졌다. 섬에 떨어진 포탄 중에서도 불발탄이 대거 수거됐다. 한 북한군 출신 탈북자는 “전기난 때문에 온습도 관리를 포기한 갱도에 수십 년 동안 포탄을 보관해왔기 때문에 포탄이 제 기능을 할지 의문”이라며 “포격전이 시작되면 북한은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대북 심리전 방송이 북한군에 미치는 효과는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북한 병사들은 13년 복무 기간 휴가도 거의 못 가고 최전방을 지키는데 이 기간 동안 듣는 외부 방송이란 건 오로지 대북 방송밖에 없으니 자기도 모르게 세뇌가 된다.” 2002년 한국에 귀순한 주승현 씨(34·사진)는 탈북자들 중 유일한 북한군 대남방송요원 출신이다. 귀순 전 서부전선 최전방 비무장지대 경계를 담당한 민경대대 소속 심리전제압방송국 방송조장(상급병사)을 지냈다. 2004년 남북이 전방 확성기를 철수하기 불과 2년 전까지 대남 심리전 요원으로 활동해 최근 군이 11년 만에 대북 방송을 재개하고 북한이 이에 맞불 방송을 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전방으로 나온 뒤 몇 달은 대북 방송 내용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 되니 반신반의하게 됐고 2년쯤 되니 방송 내용을 거의 믿게 됐다.” 주 씨는 이번에 목함지뢰가 터진 지역 바로 맞은편 북한군 최전방 초소에서 대남 심리전 요원으로 있었다고 한다. 18일 만난 그는 “사상이 가장 투철한 병사만 선발되는 정예 심리전 요원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의 영향을 막기 위해 활동했는데 내가 먼저 목숨 걸고 휴전선을 넘어오게 될 줄이야…”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남쪽에서 보내는 확성기 방송은 어디까지 들릴까. 우리 군은 확성기 출력을 최대로 하면 야간엔 24km, 주간에는 약 10km까지 내용이 전달된다고 발표했다.▼ 대남방송 요원 출신이 말하는 심리전 ▼“목숨 바쳐 싸우겠다던 北 심리전 동료들, 대북방송 내용 들은뒤 그런 말 쏙 들어가” “내가 있을 때에는 4, 5km 거리에서도 내용이 다 들렸다. 흐리고 안개 낀 날에 방송 소리가 더 멀리 간다. 지금 북한이 시작한 대응 방송을 제압방송이라고 하는데 확성기 성능이 떨어져 남쪽엔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린다니 좀 안쓰럽다고 할까. 아마 장비는 내가 있을 때 쓰던 것들을 아직도 쓰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가 있었던 서부초소에선 경기 파주 자유로가 보인다. 북한 정치장교들은 병사들에게 “저 도로는 남쪽에 하나뿐인 고속도로로 그나마도 선전용”이라고 교육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믿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그 정도로 어리석진 않다. 도로에 차들이 끊이질 않는 것을 보고 대북 방송에서 들었던 ‘남쪽에 자동차가 1000만 대가 넘는다’는 말이 사실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선업 1등, 반도체 1등 이런 말들도 당연히 믿어졌다.” 그가 근무했던 ‘제압방송국’은 군사분계선(MDL)에 11곳이 있다. 남쪽의 확성기 설치 지역이 11곳이니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제압방송국은 1998년까진 대남방송중계국이라고 불렀다. 그전엔 북한 체제의 우월성과 체제 찬양 같은 대남 심리전 방송을 했지만 1998년 명칭이 바뀌면서 방어 개념으로 바뀌었다. 김일성 찬양 노래를 틀어놓는 정도다. 아마도 남쪽을 향한 체제 선전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듯싶다.” 그러다 1999년부턴 전기 사정이 악화되고, 일본산 방송장비가 자주 고장이 나 제압방송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일방적으로 대북 방송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 병사들에게 심리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방송보다는 오히려 전광판이 낫다고 말했다. 전광판은 멀리서도 글씨가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잘 각인된다는 것. ‘삐라’도 효과가 좋다고 했다. “처음 북한 지도부의 부패상을 담은 삐라를 봤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최전방 민경대원은 북에서 제일 ‘새빨간 집’ 자식들만 골라 보내고 특히 심리전 요원은 그중에서도 제일 사상성이 투철한 사람만 뽑는다. 처음 전방에 올 때는 조국을 목숨 바쳐 지키겠다는 각오가 투철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니 ‘전쟁이 터지면 내가 과연 싸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입대 동기에게 이 질문을 했더니 답을 하지 않더라. 그 친구도 처음엔 나처럼 목숨 바쳐 싸우겠다던 친구였는데 말이다.” 그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몇 달간 고민하다가 귀순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가 고압 철조망 4개를 돌파해 한국군 초소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25분. 이는 지금까지 최단 시간 귀순 기록이다. “내가 체험을 해보니 MDL 남쪽은 지뢰 구역이 따로 고정돼 있어 북한군이 MDL만 넘으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반면에 북쪽은 70∼500m의 지뢰밭이 펼쳐져 있다.” 목함지뢰 폭발사건이 있기 전 북한군 병사들이 지뢰 매설을 하는 장면이 우리 군에 포착됐다는 발표에 대해선 “남쪽에 침투하려면 사단이나 군단 공병대가 통로를 열어야 하는데, 그 작업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2014년 탈북자로는 최연소 박사가 됐다. 현재 명지대 외래교수로 북한체제론을 가르친다. 그에게 북한군 심리전 요원이었던 과거는 어떤 의미일까. “귀순 뒤 금호석유화학에서 회사 생활을 좀 했는데, 우연히 나와 비슷한 장소와 시기에 남쪽에서 심리전 요원으로 있었던 여직원을 알게 됐다. 과거 적으로 마주 서서 목소리 경쟁을 했던 남녀가 직장동료가 된 것이다. 처음 서로를 알았을 땐 충격적이었고, 반가웠다. 하지만 그 이후로 우린 둘 다 과거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국의 대북방송 재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2600여 명의 동독 경비병이 서독으로 귀순했다. 북한 병사도 1000명은 넘어와야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근 10년 동안 귀순한 최전방 병사가 6명밖에 되질 않는다. 대북 방송을 재개하면 병사들의 심리 변화에 영향을 미치리라 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서방이 참가하지 않아 ‘반쪽 대회’란 논란과 함께 인명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제1회 ‘세계군사경기(International Army Games-2015)’에서 러시아가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에는 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중국 인도 이집트 앙골라 베네수엘라 쿠웨이트 등 17개국 군인 2000여명이 참가해 탱크전, 공군, 특수전 등의 종목에서 실력을 겨뤘다. 대회의 백미는 탱크바이애슬론이었다. 기동과 사격, 장애물 극복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20㎞ 거리를 누가 가장 빨리 돌파하는지를 겨루었다. 각국 팀은 러시아가 제공한 T72B3 탱크를 타고 실전 같은 게임을 벌였다. 이 탱크는 러시아가 올해부터 군에 보급한 T72 계열 탱크의 개량형이다. 중국은 자국에서 최신형 96A 탱크를 직접 공수해왔다. 이 경기에선 1시간 14분 만에 모든 임무를 끝낸 러시아팀이 이겼다. 실전과 같은 경기를 치르다보니 사고도 잇따랐다. 2일 지상 공격 미션에 참가한 러시아 팀의 MI28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숨졌다. 쿠웨이트 팀은 탱크가 뒤집힌 바람에 탱크병들이 부상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15일 시상식에서 종합 우승은 러시아, 준우승은 중국, 3위는 카자흐스탄이 각각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병력이 불참했다. 북한군도 참여하지 않았다. 러시아 측의 한 장성은 “미국을 포함한 NATO 측에 초청장을 보냈지만 참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런 대회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탱크나 장갑차와 같은 전투 장비의 성능을 올리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고대 이집트에서 절세의 미인으로 꼽히던 네페르티티 왕비(사진)의 무덤이 1922년 발견된 투탕카멘 왕의 무덤 옆에 숨겨져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네페르티티 왕비는 기원전 1370년∼기원전 1330년 사이 생존했다. 투탕카멘 왕은 네페르티티의 양아들이자 사위이다. 네페르티티는 남편을 도와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혁명’을 단행한 역사적 인물이지만 아직까지 무덤이나 미라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미스터리에 싸여 있는 왕비의 무덤은 투탕카멘 왕의 무덤 북쪽에 숨겨져 있다고 미국 애리조나대의 영국인 고고학자 니컬러스 리브스 교수가 10일 발표했다. 리브스 교수는 투탕카멘 무덤 벽에서 촬영한 고해상도 디지털 영상을 분석하던 중 숨겨진 문의 흔적을 발견한 뒤 추가 연구를 통해 이것이 네페르티티 무덤으로 가는 길이라고 밝혔다. 리브스 교수는 “투탕카멘 왕이 어린 나이에 갑자기 죽자 무덤을 만들 시간이 없어 네페르티티가 묻힌 무덤에 함께 묻었다”고 주장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개인적으로 통일이 되면 평양에 돌아가 꼭 다시 가고픈 식당이 있다. 김일성대 옛 기숙사 정문 앞에 있는 ‘룡흥식당’이다. 대학 앞 지하철 ‘삼흥역’ 출구에서 불과 20m 앞에 있다. 이 식당은 냉면 전문집이다. 옥류관만큼 맛이 있지 않지만 나름대로 꽤 잘하는 냉면집이다. 참고로 내 입에는 남쪽의 어느 유명 냉면집 맛도 평양의 평범한 냉면집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걸 보면 냉면은 물맛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다니던 당시 김일성대는 교직원만 1만5000명가량 됐는데, 대학 정문 주변에 식당은 룡흥식당 단 하나뿐이었다. 대학가 주변에 수백 개의 식당이 골목을 이루고 있는 서울의 신촌이나 홍익대 주변을 떠올린다면, 김일성대 앞에 식당이 하나밖에 없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평양의 대다수 사람들은 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오전 8시부터 90분 강의를 3과목 마친 학생 행렬이 대학 청사를 나서 우르르 정문으로 향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 속에서 걸음이 잽싼 무리가 있다면 룡흥식당으로 갈 확률이 높아 서로 눈치를 보면서 경계한다. 열심히 뛰어가도 점심시간엔 식당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으니까. 요주의 무리를 발견하고 아닌 척 추격하다가 막판에 추월해 뒷줄에 세운다면 쾌감에 냉면 맛은 더 좋아진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지금 그야말로 옛말이 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삼흥역 앞에만 식당이 다섯 개나 새로 생겨났다고 한다. 정문 울타리를 벗어나면 약 100m 안에 식당이 10여 개나 생겨났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직접 가봐야 알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이랴. 대학 주변 아파트 가정집에서 하는 개인 식당도 많다. 말이 식당이지, 가정집에 들어가 밥상을 펴놓고 먹는 식이다. 각 집마다 메뉴가 특성화돼 있고 가격도 싸서 싼값으로 허기를 때우려는 대학 기숙사생들이 주요 단골이다. 이런 개인 식당들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대학가 주변에 많이 생겨났는데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돈 떨어진 대학생들이 우산이나 장화와 같은 물건을 맡기고 외상으로 잔뜩 먹고는 방학에서 돌아와 한꺼번에 갚기도 한다. 서울도 먼 옛날에 대학생들이 그리 살았다고 하니 사람 사는 동네는 욕구나 인심이 거기서 거기라는 점을 새삼 느낀다. 요즘 평양에 식당들이 수없이 많이 생기는 것을 보면 음식 문화 역시 서울을 따라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평양 사람들이 외식에 눈을 뜬 것이다. 얼마 전 평양 주민에게 어떤 식당이 유명하냐고 물었더니 수십 개를 줄줄 내리 읊는다. 그만큼 평양 사람들이 식당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고난의 행군 이전만 해도 식당은 한 개 구역에 고작 몇 개 정도만 있었다. 그때만 해도 평양에서 식당은 출장을 다니는 사람 또는 기숙사생이나 먹는 곳 정도로 여겨졌다. 식당 가격도 ‘량표’ 1장에 1∼2원이 대다수였다. 량표란 200g짜리 식량권을 의미하는데, 출장을 많이 다니는 사람은 쌀을 메고 다닐 수 없으니 배급 대신 외지 식당에서 밥 한 그릇과 바꾸어 먹을 수 있는 량표를 받은 것이다. 이때만 해도 유일한 손님 접대는 집에 초대하는 것이었다. 회사 동료들끼리 술 한잔하려고 해도, 부서 회식을 하려 해도 집밖에 장소가 없었다. 이렇게 동료들의 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같은 직장 사람들의 술버릇까지 아내와 자식들이 다 꿰뚫는다. 서로 길을 가다가도 “오, 너 아무개 동무 아들이구나” 하고 알아본다. 서로 상대방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살다 보니 동료들끼리 서로 끈끈해지는 면도 분명히 있다. 그 대신 가정주부들만 허리가 휜다. 그런데 요즘 평양은 술 한잔할 때 식당을 찾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점점 남편 회사 동료가 누군지 말만 들었지 얼굴은 모르는 서울을 닮아가는 것이다. 돈이 좀 있으면 손님 접대도, 가족 외식도 집에서 차리기보단 식당에 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나도 평양에 가서 옛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 오면 이런 말을 들을 확률이 크다. “어느 식당에 가서 술 한잔하자.” 여기서 또 하나 알아야 할 상식이 있다. 평양의 식당들은 어쩌면 서울보다 더 ‘레벨’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어느 식당에 가자는 말만 들어도 대충 내가 어느 정도의 접대를 받을 수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평양의 식당 중 최고나 최하위 식당은 어디며, 어느 식당에 가면 ‘중앙당 5과’에서 선발된 미인이 접대를 할까.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한번 다루려 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5년 전 수백 억 원을 들여 꾸몄던 김정은의 평양 15호 관저를 최근 허물고 공사를 새로 벌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평양시 보통강구역에 있는 15호 관저는 김정은의 평양 공식 자택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도 생전에 거주한 곳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커티스 멜빈 연구원은 11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를 갖고 “위성사진 판독결과 최근 15호 관저 북쪽 지붕이 철거됐고 정원 조경공사도 새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 관저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된 2010년 북한이 수천 만 달러를 들여 호화롭게 재건축했으며, 인근에는 전용 철도와 도로도 깔았다. 김정은은 지난해부터 주요 공사장을 찾아다니며 건축 설계에 대해 시시콜콜 지시를 내리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최근의 관저 리모델링은 김정은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뜯어고치라고 직접 지시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위성 사진을 통해 평양시 룡성구역의 김 씨 일가 주택단지도 새로 지어진 것으로 드러났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이 ‘알파벳’이란 이름의 지주회사 체계로 전격 개편한다.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10일 공식 블로그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기존 회사로서의 구글 주식은 모두 일대일로 알파벳의 주식으로 전환되며 구글은 알파벳 지분 100%의 자회사가 된다. 나스닥에 상장된 기존 ‘구글’ 기업명도 ‘알파벳’으로 바뀐다. 이번 조직개편의 핵심은 지주회사 설립과 지배구조 개편이다. 올 연말까지 설립될 모회사 알파벳 산하에 7개 자회사가 만들어지는 형태이다. 구글이 지금까지 추진해온 7개 사업을 각각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구글도 알파벳 자회사로 편입되어 검색과 광고, 모바일 운용 체제와 같은 종전의 핵심 사업에 주력한다. 기존에 추진해온 헬스케어 관련 사업은 ‘칼리코’란 자회사가, 무인자동차 개발은 ‘구글X’가, 고속 인터넷 사업은 ‘피버’가 각각 맡게 된다. 벤처캐피털 사업을 담당하는 ‘구글 벤처스’, 장기 기술 투자를 담당하는 ‘구글 캐피털’, 스마트 홈 사업 담당인 ‘네스트’도 자회사로 생긴다. 페이지 CEO는 “‘알파벳’은 언어와 인류 최고의 혁신을 상징하고, 구글의 검색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모회사 이름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을 지향하며 1998년 설립된 구글은 그동안 무인자동차, 드론, 무선 인터넷, 우주사업, 헬스케어, 벤처 투자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해 왔다. 일부 투자자들은 핵심 사업인 검색과 인터넷, 모바일 광고와는 거리가 먼 사업에 구글이 문어발식으로 투자하면서부터 기업 경영 내용이 불투명해졌다고 불만을 터뜨려 왔다. 알파벳이 내년 1월 첫 실적을 발표하게 되면 투자와 연구 등 사업 분야별로 자세한 실적이 공개돼 투명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이를 반영하듯 페이지 CEO의 성명이 발표된 직후 구글의 주가는 7% 급등했다. 10일에는 최고 경영진 인사도 포함됐다. 알파벳 최고경영자는 페이지 CEO가 맡게 되며 세르게이 브린 구글 사장은 알파벳 사장이 된다. 에릭 슈밋 현 구글 회장은 알파벳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 페이지 CEO의 뒤를 잇는 구글 최고경영자엔 인도인 순다르 피차이 선임 부사장(43)이 선임됐다.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에서 태어나 인도 명문대인 인도공과대(IIT)에서 공부한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과 재료공학을 연구했다. 2004년 구글에 합류해 독자적인 검색 브라우저 ‘크롬’ 개발을 주도했으며 2013년까지 지메일, 안드로이드 사업 부문까지 맡았다. 미 언론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조용한 성격을 지닌 그가 업계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페이지 CEO의 심복이자 오른손 역할을 해왔다고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최근 몇 달 동안 이라크를 강타하고 있는 사상 최악의 폭염이 이라크 정부의 과감한 개혁조치를 이끌어냈다. 하이다르 압바디 이라크 총리는 9일 정부와 의회의 부패와 예산 낭비를 줄이기 위한 강도 높은 개혁조치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명망 높은 학계 인사와 법관으로 구성된 부패청산위원회를 만들고 과거와 현재의 모든 부패 혐의를 조사한다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현재 3명씩인 부통령과 부총리직을 모두 없애고 불필요한 장관과 정부기구를 감축한다는 것. 이번 개혁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리를 지냈고 현재 부통령직을 수행하는 누리 알 말리키 전 총리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압바디 총리가 평소라면 정치적 운명을 걸어야 했을 승부를 과감히 건 데는 폭염으로 ‘열 받은’ 민심이 개혁을 적극 추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5월 말 이래 기온이 37.8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히트돔’이라고 불리는 거대 고기압이 이라크와 이란 중상층부 대기에 머무르며 뜨거운 공기를 지면으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7월 말부터 기온이 50도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정부가 하루에 몇 시간씩 제한송전을 실시하자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한 주민들이 전국 각 도시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는 삽시간에 반정부 시위로 발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난달 4일 동해에서 표류하다 해경에 구조된 북한 어민 5명 중 남한에 귀순한 3명의 신분이 모두 노동당원인 것으로 밝혀져 북한 주민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반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북한으로 돌아간 어민 2명은 당원이 아니었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던 어선은 오징어잡이를 위해 7월 초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새나루 포구에서 출항했던 군부대 소속 어선이었다. 주민들은 출항한 지 이틀이 지나도록 배가 돌아오지 않자 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10일경 북한 당국이 어민 가족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이자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음을 짐작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한국 정부는 14일 북송을 원하는 어민 2명을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냈다. 당시 북한은 귀환 일주일 전부터 어민 5명 전원을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귀순 의사를 밝힌 어민 3명에 대해선 남한 당국이 강제 억류하고 있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북한 당국은 어민 2명이 북한 땅을 다시 밟은 14일에는 판문점에서 귀순 어민 가족들을 내세워 억류 해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북한 주민들이 다 아는 사건이 돼 버렸다. 하지만 막상 돌아온 어민들의 면면이 알려지자 청진 주민들은 크게 술렁거렸다고 한다. 배에 당원 3명과 비(非)당원 2명이 타고 있었는데, 당연히 돌아올 줄 알았던 당원 3명이 모두 자발적으로 남쪽에 남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어선 표류 중 남한에 구조되더라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주민들은 돌아온 비당원 어민들에 대해 “비당원이 당원들보다 당성이 더 투철하다” “남들은 목숨 걸고 찾아가는 곳에 공짜로 굴러 갔다가 돌아오는 1등 바보들이니 당원이 되지 못한 것”이라며 비웃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반면 귀순한 어민에 대해선 “역시 당원들은 똑똑하다”고 비아냥거리는 분위기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은 “귀순한 3명 가족은 아직 처벌을 받지 않고 살고 있는 반면에 돌아온 어민은 어떤 칭찬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보위부의 혹독한 조사를 거쳐 일자리에 복귀했다”며 “이 때문에 주민들의 조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세계 항공 사상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인 지난해 3월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실종 사건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29일 발견됐다. 인도양 동남부 프랑스령 레위니옹 섬 해안에서 실종된 MH370편의 잔해로 보이는 부품이 수거된 것이다. MH370편은 지난해 3월 8일 승객과 승무원 239명을 태우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이륙해 중국 베이징으로 가던 중 40여 분 만에 통신 두절과 함께 사라졌다. 이후 5000만 달러(약 585억 원) 이상의 비용을 투입해 수색을 벌여왔지만 일말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509일 만에 드디어 마지막 교신 지점에서 5700km 넘게 떨어진 곳에서 잔해로 유력한 부품이 발견된 것이다. 이 부품은 이날 오전 해안을 청소하던 청소부가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길이 2m, 너비 1m 정도의 흰색 물체가 여객기 잔해인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한 목격자는 “물체가 조개껍데기로 가득 뒤덮여 있었고 물속에 오래 있었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프랑스 항공당국은 이 부품이 MH370편의 잔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프랑스 본토에 있는 연구소로 옮겨 정밀조사에 착수키로 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지금까지 실종 여객기 수색 작업을 계속 이어오던 말레이시아 당국도 즉각 분석기술팀을 급파했다.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며칠 더 걸릴 예정이지만 미국의 보잉사 기술자들을 비롯해 여러 전문가는 이날 “사진에 찍힌 물체가 실종된 MH370편 보잉777기 날개 뒤편의 부품인 플래퍼론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바다에서 보잉777기의 부품이 나온다면 이는 MH370편의 잔해일 수밖에 없다. 1995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보잉777기는 지금까지 모두 5대가 추락했다. 2013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과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미사일에 격추된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등 앞선 4건의 사고는 모두 육지에 떨어져 잔해가 수거됐다. 바다에 추락한 보잉777기는 MH370편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워런 트러스 호주 부총리 겸 교통장관도 29일 “발견된 잔해가 실종 여객기의 부품이 맞는 것 같다”고 발표했다. 부품이 발견됐지만 여객기 본체까지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레위니옹 섬은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추락 지점으로 지목돼 1년 넘게 수색이 진행돼 온 호주 남서쪽 해상에서 4800km 넘게 떨어져 있다. 수색팀은 퍼스 남서쪽 6만 km² 범위의 우선수색구역에 실종기가 있을 것으로 확신해 왔는데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객기 잔해 추정 물체가 나타난 것이다. 조 하틀리 호주교통안전국(ATSB) 대변인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고로부터) 16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호주 서쪽 바다로 들어간 물체가 인도양 서부까지 떠내려간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앞으로 광범위한 지역을 수색해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객기가 실종됐던 초기엔 26개국이 참여하는 역대 최대의 국제 공동 수색작업이 펼쳐졌지만, 1년 뒤 모두 손을 뗀 상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최룡해까지 처형될 뻔했다.” 최근 탈북한 북한 고위 인사가 김정은의 공포 통치에 대해 증언하면서 한 말이다.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일이다. 최룡해는 장성택과 더불어 북한 주민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위급 인물이다. 장이 김일성의 사위 신분이었다면 최는 김일성의 가장 가까운 혁명전우이자 북한에선 충신의 대명사로 통하는 최현의 아들이란 배경을 업고 젊어서부터 승승장구했다. 이 정도의 신분은 북한에선 김 씨 혈통 다음으로 인정받는 절대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장성택을 제거하고 최룡해까지 처형한다면 북한 내부에 미치는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탈북 인사가 설명한 구체적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4월 15일 태양절을 맞아 김정은이 군인 축구경기를 관람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행사 시간이 2시인데 김정은은 5시에 나타났다. 행사에 동원된 군인들은 12시까지 경기장에 입장해 꼼짝없이 5시까지 기다렸다. 김정은은 이를 트집 잡아 크게 화를 냈다. 행사 조직을 잘못해 많은 군인이 대기하느라 큰 고생을 하게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총정치국 행사과장(대좌)이 불똥을 뒤집어쓰고 다음 날 고사기관총으로 처형됐다. 그러나 이는 사실 김정은이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부하에게 생트집을 잡은 것이다. 행사과장이 처형된 날 비공개 군부 사상투쟁회의가 열렸다. 보위사령관이 맨 앞에 나서서 최룡해를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부하가 상관을 이처럼 성토하는 것은 이미 제거 각본이 써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최룡해는 울면서 자아비판을 했고, 나중에 장성택처럼 군인들에게 끌려 나갔다. 하지만 처형은 면했고, 구금돼 조사를 받은 뒤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되는 것으로 끝났다.” 이 증언을 검증하기 위해 지난해 4월 북한 보도를 찾아보았다. 우선 김정은의 행적을 보면 4월 6일과 7일 이틀 연속으로 군 소속 축구팀의 경기를 관람한 것이 눈에 띈다. 4월 초 김정은의 관심 주제가 축구였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다음으로 최룡해의 행적을 보면 4월 13일 태양절 기념 군장병 예식에서 김정은에게 충성 맹세 연설을 했고, 15일 새벽엔 김정은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도 방문했다. 그러곤 갑자기 언론에서 사라져버렸다. 19일 열린 비행사대회, 21, 23일 잇따른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 24일 개최된 인민군 창건 82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와 같이 총정치국장이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중요한 행사와 대회에 모두 빠졌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룡해는 26일 열린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의에선 그를 총정치국장에서 해임시키고 황병서에게 차수 계급을 수여함과 동시에 후임으로 임명한다는 안건이 가결됐다. 황병서는 15일에 상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했는데, 11일 만에 다시 차수로 사상 초유의 벼락 승진을 해 총정치국장이 됐다. 이를 미루어 보면 최룡해가 4월 15일부터 26일까지 12일 동안 어떤 고초를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5일까지 멀쩡히 활동하고, 해임이 발표된 뒤 5월 초부터 사복을 입고 김정은을 다시 열심히 따라다닌 것을 보면 건강상 문제는 아닌 듯하다. 아마 이 기간이 탈북 간부가 이야기한 최룡해의 위기 시점이 아닐까 싶다. 최룡해는 왜 제거 대상이 됐을까. 그 힌트를 “최룡해는 장성택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절대로 장성택 숙청에 찬성하거나 동조할 리가 없다”고 한 탈북 인사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최와 장은 오랫동안 함께 일을 했다. 최룡해는 1986년부터 1998년까지 회원이 500만 명이나 되는 북한 최대 조직인 청년동맹의 수장을 지냈다. 청년동맹을 직접적으로 지도하는 노동당 부서가 청년사업부다. 장성택은 1980년 중반부터 1995년까지 노동당 청년사업부 수장으로 있었다. 둘은 지도기관장(장성택)과 산하기관장(최룡해)으로 10년 넘게 손발을 맞춘 것이다.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후 이듬해 4월까지 수많은 장의 측근이 처형되거나 정치적 숙청을 당했다. 장성택 못지않게 오랜 기간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최룡해가 숙청된 간부들과 친분이 없었을 리 없다. 매일같이 가까웠던 간부들이 김정은이 휘두른 숙청의 칼날에 우수수 목이 잘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을 최룡해의 심정은 어땠을까. 반대로 김정은의 입장에선 그런 최룡해가 군부 수장이란 사실이 너무 불안했을 듯싶다. 하지만 최룡해까지 죽이기엔 떠안아야 할 부담이 너무나 크다. 또 최룡해는 상징성은 크나 장성택에 비해 김정은 권력에 미치는 실질적 위협은 작은 인물이다. 애초에 김정은은 최룡해를 죽일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냥 실권이 없는 한직으로 밀어내 견제해야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리고 군부는 함께 손에 피를 묻힌 황병서에게 맡기는 것이 당분간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쪽엔 최룡해가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김정은이 가장 경계하는 인물일지 모른다. 고사기관총으로 즉결 처형당했다는 행사과장은 최룡해를 권력의 외곽으로 밀어내기 위한 억울한 희생양이었을 것이다. 권력 유지의 도박판에 판돈으로 걸려 있는 목숨들이 가련하기 짝이 없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