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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국의 핀테크 시장에서는 혁신 아이디어로 무장한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 벤처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와 달리 국내 핀테크 기업들은 유니콘이 될 잠재력을 갖고도 척박한 규제 환경에 묶여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신산업 분야 700여 개 기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설문 결과 47.5%가 “지난 1년 새 규제 때문에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핀테크 기업의 사업 차질 경험률이 70.5%로 가장 높았다. 또 핀테크(56.8%)는 국내 대표적 신산업 중 두 번째로 글로벌 경쟁력이 낮은 분야로 꼽혔다. 하지만 한국의 높은 규제 울타리를 벗어나 나라 밖에서 유니콘이 될 날개를 펴는 국내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호주에서 성공해 한국에 역(逆)진출한 ‘와이어바알리’와 인도에서 4년 새 고객 6000만 명을 끌어 모은 ‘밸런스히어로’가 대표적이다. 이들을 통해 한국의 핀테크 신산업을 육성할 과제를 들여다본다. 》 6년 전 연세대 경영학과 86학번 동기 3명이 뭉쳤다. 호주 현지에서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해외송금 서비스업체 ‘와이어바알리’를 설립한 것이다. 50대 늦깎이에, 국내도 아닌 외국에서의 창업이었지만 세 친구는 자신감이 넘쳤다. 삼성전자 해외본부 출신인 유중원 대표, 인터넷 커뮤니티의 원조로 불리는 프리챌 창업 멤버인 윤태중 부사장, 공인회계사 출신인 김원재 이사회의장의 풍부한 경험이 든든한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법 외에는 새로운 서비스를 모두 허용하는 호주의 ‘네거티브 규제’가 사업을 확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와이어바알리는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아시아 각국의 청년과 외국인 근로자를 타깃으로 해외송금 서비스를 선보였다. 베트남 필리핀 네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각국의 대형 금융사와 제휴하고 경쟁사보다 수수료를 최대 70% 낮췄다. 이를 기반으로 와이어바알리는 월평균 100억 원 이상의 송금 거래를 취급할 정도로 성장했다. 해외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세 친구는 2016년 한국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한국에서 영업 중인 해외송금 업체들보다 수수료를 낮출 수 있고, 와이어바알리의 ‘송금 허브’로 설립한 홍콩법인을 통해 환전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호주에서 빛을 발하던 이들의 사업은 오히려 한국에서 큰 부침을 겪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각종 규제의 족쇄가 사업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와이어바알리는 호주, 홍콩, 뉴질랜드 등 각국 법인의 사업 정보와 고객 정보를 하나의 서버(클라우드 서비스)로 관리해왔다. 하지만 한국 금융당국은 규정상 이 정보들을 한 서버에 둘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와이어바알리는 연간 1억 원의 비용을 들여 서버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2016년 한국법인을 설립하고도 실제 서비스를 시작하기까지 1년가량이 걸렸다. 국내에 마땅한 규정이 없어 해외송금 사업자가 고객 정보를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기획재정부가 금융실명법에 해외송금업을 추가해준 뒤에야 고객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금융실명법 개정이 발목을 잡았다. 와이어바알리가 벤처캐피털사로부터 40억 원을 투자받았지만 중소기업벤처부가 이를 불허한 것이다. ‘금융실명법에 따라 와이어바알리가 금융회사로 분류돼 벤처특별법에 따라 투자를 받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유중원 대표는 “결국 자회사를 만들어 우회적으로 투자금을 썼다. 스타트업은 속도와 효율이 생명인데 한국은 답답한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들어서야 이 규제 조항을 없앴다. 유 대표는 “한국 정부는 핀테크를 ‘혁신의 시각’이 아닌 ‘위험의 시각’으로 접근한다. 스타트업에 비협조적인 대형 금융사도 걸림돌이 돼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금만 관점을 바꾸면 핀테크 혁신 서비스들이 금융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해외투자도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특별취재팀▽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경제부 김재영 조은아, 런던=김성모, 시드니·멜버른=박성민, 싱가포르=이건혁, 호찌민·프놈펜=최혜령 기자▽특파원 뉴욕=박용, 실리콘밸리=황규락, 파리=동정민, 베이징=윤완준, 도쿄=김범석}

“이제 고작 6000만 명이 쓰는 정도입니다. 진짜 ‘국민 애플리케이션’(앱)이 되려면 사업을 더 넓혀야죠.” 설립한 지 4년밖에 안 된 국내 신생 핀테크 기업이 한국도 아닌 인도 시장에서 최근 앱 사용자 60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 스타트업이 꿈도 꾸지 못할 놀라운 성과다. 인도의 ‘국민 앱’으로 통하는 ‘트루밸런스’를 선보인 핀테크 기업 밸런스히어로의 이철원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2015년 1월 인도 시장에 출시된 트루밸런스는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도 통신 및 데이터료 잔액을 확인하고 충전할 수 있는 앱이다. 인도 국민 12억 명 중 95% 이상이 선불제 통신요금을 사용하고 있으며, 수시로 잔액을 확인하고 충전한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대표는 “2002년 국내 통신사의 자회사에서 일하면서 인도에 첫발을 들인 뒤 인도 통신시장에 눈을 떴다”며 “인도인도 잘 모르는 인도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철저하게 현지화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인도에서는 2개 이상의 유심칩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 트루밸런스에선 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또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마케팅을 할 때 인도 공용어인 힌두어 대신에 각 지역에서 쓰는 지방언어로 공략했다. 이 대표는 “인도 현지 사업가도 중산층 이상을 주로 상대하다 보니 ‘12억 인도 시장’ 전체를 꿰뚫는 경우가 많지 않다. 밸런스히어로는 이런 한계를 탈피했다”고 말했다. 트루밸런스의 사업성을 인정받아 밸런스히어로는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총 500억 원의 투자를 이끌어 냈다. 올 7월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순방 때도 초청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인도에 진출한 스타트업 중 가장 잘하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인도에 진출할 수 있도록 모범이 돼 달라”고 말했다. 인도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밸런스히어로의 본사는 한국에 있다. 또 전체 직원의 절반가량이 한국인이다. 이 대표는 “국내에 정보기술(IT) 등에 뛰어난 인재가 많기 때문에 주요 서비스 개발이나 기획, 디자인 등은 한국에서 맡고 있다”며 “사업이 확대되면 한국 인력을 더 많이 뽑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밸런스히어로는 트루밸런스에 이어 소액대출, 보험 서비스 등 새로운 금융 플랫폼 분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동남아시아로 사업을 넓힐 준비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IT 강국의 인프라를 잘 활용하면 한국도 영국, 싱가포르처럼 핀테크의 거점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좋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을 두고도 각종 금융규제에 막혀 핀테크 산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 기업은 글로벌 시장을 보고 사업을 시작한다. 한국도 국내 스타트업의 창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손봐야 한다. 그래야 양질의 일자리가 늘고 금융산업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저소득층의 실업이 급증하면서 올해 3분기(7∼9월) 소득하위 20% 가구의 근로소득이 사상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취업자가 늘어난 상위 20% 고소득 가구의 근로소득은 크게 상승했다. 이에 따라 상·하위 20% 계층 간 소득 격차는 1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쪽으로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금과 연금보험료 등 전체 가구가 의무적으로 내는 비소비지출은 사상 처음 월평균 100만 원을 넘었다. 통계청이 22일 내놓은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3분기 기준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74만8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증가했다. 가계소득이 대체로 늘었지만 하위 20%인 1분위 가구 소득은 131만8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줄었다. 반면 상위 20%인 5분위 가구 소득은 973만6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8.8% 늘었다. 이런 ‘빈익빈 부익부’ 양상은 가난한 가구는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이 안 되고 부유한 가구는 취업이 잘되는 고용 양극화 때문이다. 1분위의 가구당 취업자 수는 지난해 3분기만 해도 0.83명이었지만 올 3분기 0.69명으로 급감했다. 그 결과 1분위의 근로소득은 1년 전보다 23% 줄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5분위 가구의 취업자는 같은 기간 2명에서 2.07명으로 늘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양극화 정도를 보여주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52배였다. 상위 20% 가구가 세금을 빼고 실제 쓸 수 있는 돈이 하위 20% 가구의 5.5배를 넘는다는 뜻이다. 이는 2007년 3분기(5.52배) 이후 가장 큰 수준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가계동향에 대해 “엄중함을 인식하고 있고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서 현안 보고를 받고 서민, 영세 자영업자, 제조업에 대한 긴급 금융지원 대책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금융지원 방안을 지시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카드 수수료체계 개편으로 애로를 겪는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마련하고,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부가가치세 매출세액공제를 확대하라”고 했다. 금융당국은 연간 1조4000억 원가량 가맹점 카드 수수료를 인하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어 자동차, 조선 등을 지원하기 위해 매출채권 등 자산을 포괄적 담보로 활용할 수 있는 ‘일괄담보제도’를 도입하도록 했다. 기업 대출 때 적용하는 예대율 규제를 완화해 대출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도록 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 문병기·김성모 기자}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정부와 서울시가 도입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제로페이’가 다음 달 시범사업을 앞두고 삐걱대고 있다. 주요 업체들이 연이어 발을 빼는가 하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제로페이는 다음 달 17일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제로페이는 소비자가 결제할 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가맹점의 QR코드를 찍으면 고객 계좌에서 가맹점 계좌로 바로 돈이 이체되는 방식이다. 신용카드처럼 카드사나 부가통신사업자(VAN사)가 떼어가는 수수료가 없다. 하지만 제로페이는 정부와 서울시가 발표할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존 위기에 직면한 자영업자를 돕는다는 취지였지만 정부가 금융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시장 질서를 깨뜨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시는 당초 이 사업에 18개 은행과 카드사, 10개 간편결제 사업자가 참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무협약에 참여했던 카카오페이, BC카드가 최근 불참을 선언했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카카오페이를 이용하는 15만 개 가맹점과 제로페이의 QR코드 체계가 호환되지 않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BC카드 관계자도 “결제 방식이 계좌이체형이라 카드사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상은 제로페이가 결제수단을 대체할 가능성이 낮고 수익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불참을 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참여 은행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제로페이도 은행 간 계좌이체 수수료가 50∼500원 정도 들지만 은행들은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거나 낮춰주기로 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수수료만 깎아주는 게 아니라 플랫폼 구축, 운용비 등으로 돈이 많이 들 텐데 제로페이를 쓸 소비자는 별로 없어 보여 문제”라고 말했다. 연태훈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주도의 이런 서비스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핀테크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국내 증권업계의 홍콩행(行)이 거셌다. 대형 증권사는 물론이고 중위권 증권사까지 “홍콩을 거점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해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하겠다”며 홍콩법인을 잇달아 세웠다.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유수의 금융사들이 홍콩에서 발을 뺐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홍콩법인에서 대거 손실을 보면서 증권사들은 3년도 채 안 돼 홍콩법인을 축소하거나 아예 문을 닫아야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가 면밀한 분석도 없이 경쟁이 심한 홍콩 시장에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세계 12위의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해외 무대에선 좀처럼 한국 금융의 성공적인 발자취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제조업에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간판기업이 나온 것과 달리 해외사업 장기 전략이 부재한 금융사들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 갇혀 있다.○ 해외 진출 성적표 ‘D학점’ 동아일보가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의뢰해 한국과 주요 7개국(G7)의 금융업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해외 진출과 수익 다변화 등을 평가한 ‘사업 다각화’ 부문에서 꼴찌인 8위를 차지했다. 이 부문 점수는 20점 만점에 4.2점에 불과했다. ‘경영 성과’, ‘디지털 금융’ 등의 부문에서 2, 3위에 오른 것과 대비된다.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도 스스로 해외 진출 경쟁력이 ‘열등생’에 그친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가 CEO 6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5%가 금융사의 해외 진출 성적에 D학점, 42%가 C학점을 줬다. 오래전부터 금융 CEO들의 취임사와 신년사엔 “국내를 벗어나 해외 시장에서 기회를 찾겠다”는 포부가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지만 결과는 초라하다. 굴지의 해외 금융사들이 본국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과 달리 국내 4대 금융그룹의 해외수익 비중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리딩뱅크인 KB금융그룹은 지난해 전체 수익의 1.1%만을 해외 시장에서 올렸다. 야심 찬 목표를 내걸고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가 초라한 결말로 끝난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진출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국민은행은 2008년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을 9541억 원에 사들였다. 당시 가장 큰 해외 금융사 인수합병(M&A)이었다. 하지만 BCC는 금융위기에 취약한 사업 구조를 갖고 있었고, 국민은행은 BCC의 장부상 가치를 1000원으로 손실 처리한 채 지난해 지분을 매각했다. 중국에 대거 진출했던 국내 보험사들도 줄줄이 손실을 내며 발을 빼고 있다. 삼성생명은 2005년 현지 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웠다가 2015년 최대 주주 자리를 중국은행에 넘기고 경영에서 손을 뗐다. ○ 장기비전 없어 해외사업 비중은 뒷걸음질 국내 금융사들은 해외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새로운 수익원을 찾거나 현지화 전략을 꾀하기보다는 현지에 있는 한국인이나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대출해주거나 상품을 파는 단순한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해외사업 실적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은행권의 해외사업 비중은 2013년 말 11.0%에서 지난해 말 7.1%로 감소했다. 이런 부진한 해외 진출 성적표는 금융사들이 단기 성과에 매몰된 채 장기 비전이나 철저한 시장 분석 없이 ‘뜨는 지역’에 몰려가는 탓이 크다. 중국, 홍콩에 이어 최근 들어서는 신남방정책으로 주목 받는 동남아 지역으로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금융사가 베트남에 설립한 점포는 50곳으로, 해외 진출 역사가 훨씬 더 긴 중국(64곳), 미국(55곳)과 맞먹는다. 한 시중은행 해외사업 담당자는 “최근 캄보디아로 많이 가는 이유는 현지에서 점포 인·허가를 받기 쉽기 때문”이라며 “생색내기 좋으니 회사는 일단 점포를 내고 발표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사업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해외사업 담당 임원을 둔 금융사가 드물다. 경영진 임기가 짧다 보니 장기적 안목에서 해외 진출을 이끌기가 힘들다”고 꼬집었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은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에 갇힌 한국 금융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은아 achim@donga.com·김성모 기자}

“감사드릴 게 네 가지고, 말씀 듣고 싶은 것이 세 가지입니다.”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서울공관에 은행장을 초청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은행장들을 직접 오찬 장소로 안내한 이 총리는 “여러분을 모시게 된 것은 일부 관행적인 생각처럼 당부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그런 염려가 있다면 지금 나가셔도 됩니다”고 인사말을 시작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메모를 준비하던 일부 은행장은 펜을 내려놓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총리는 “평소엔 늘 한식 중심으로 먹지만 오늘은 돈을 많이 가지신 분들이어서 양식으로 준비했다. 손님 덕에 양식을 먹게 생겼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날 오찬간담회에는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장과 은행장 15명이 참석했다. 이 총리는 먼저 은행장들에게 ‘네 가지 감사할 일’로 △정부 경제운영 협력 △중견·중소기업 지원 확대 △취약계층 서민 지원 확대 △금융기관 공익재단 활동을 꼽았다. 이 총리는 “내외 경제 여건이 동시에 안 좋은 상황인데, 여러분께서 국내 경제의 피가 돌게 해주시고, 또 정부의 경제 운영에 협력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 이 총리는 세 가지 ‘듣고 싶은 말씀’으로 은행별 4차 산업혁명 대응 노력과 함께 이를 위한 정부의 지원, 경제운영 방향에 대한 조언을 당부했다. 금융혁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성장의 대표적인 과제로 강조해온 분야다. 최근 직접 규제혁신 성과보고를 받고 있는 이 총리가 은행장들로부터 핀테크, 빅데이터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애로를 직접 확인하고 나선 것이다. 은행장들은 규제 혁신부터 해외 진출까지 다양한 제언을 내놨다. 한 은행장은 “외국 금융사와 경쟁하려면 디지털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데, 국내 은행들은 핀테크업체를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에 묶여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내 은행 등 금융회사는 비(非)금융사인 핀테크 업체 지분을 15%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동아일보가 ‘강한 금융이 강한 경제 만든다’ 시리즈에서 지적한 대표적인 금융 규제 족쇄다. 이 총리는 은행들의 “4차 산업혁명 흐름에 금융도 부응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며 그 자리에서 금융위원회에 관련 규제 검토를 지시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총리실과 협의해 관련 법규를 완화하거나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 조선 등을 기반으로 한 지역경제가 어렵다”는 지방은행장들의 의견에 이 총리는 “연내에 조선, 자동차부품 업종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답했다. 이 총리는 또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에 국내 금융사가 진출하면 가능성이 있다”며 “현지 당국이 관련 인가를 빨리 내줄 수 있도록 정부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 은행장이 “은행들이 ‘비 올 때 우산을 뺏는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금융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토로하자 이 총리는 “은행이 돈을 많이 벌면 일반 국민은 자신의 재산을 뺏기는 것으로 느끼고, 반대로 돈을 못 벌면 무능하다고 얘기한다”며 “그건 금융인의 숙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익을 많이 내면 가능한 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며 웃었다. 이날 간담회는 당초 예정 시간을 1시간 반가량 넘겨 오후 2시 반경에야 마무리됐다. 은행장의 건의에 이 총리가 일일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날 회동을 두고 2기 경제팀이 출범한 가운데 경제 분야에서 총리의 보폭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부총리나 금융위원장이 은행장 모임을 가진 적은 있지만 이 총리가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연 것은 처음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총리가 금융권의 현장 이야기를 경청해줬다. 이런 소통의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유근형 noel@donga.com·김성모 기자}
가상통화 대표주자인 ‘비트코인’의 가격이 1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하며 6000달러가 붕괴됐다. 15일 가상통화 정보사이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이날 오전 9% 하락한 5640.36달러(약 637만 원)에 거래됐다. 9월 중순 이후 2개월가량 6400달러 선을 유지하던 비트코인이 연중 최저치로 급락한 것이다. 이날 다른 가상통화의 하락 폭도 컸다. 이더리움은 13%, 리플은 15% 폭락했다. 이날 하루 동안 전체 가상통화의 시가총액은 150억 달러(16조9400억 원)가 증발해 850억 달러(96조500억 원)로 주저앉았다. 미국 CNBC 방송은 “가상통화 비트코인캐시에서 디지털 화폐 확장 방식을 둘러싸고 내부 이견이 발생해 가상통화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15일 오후 5시경 찾은 서울 여의도의 국제금융센터(IFC). 퇴근시간 전인데도 오피스 건물 3개동 중 1곳은 55층의 절반가량이 불이 꺼져 있었다. 완공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입주 기업을 찾지 못해서다. 현재 이곳의 공실률은 35%나 된다. ‘동북아 금융허브’를 표방하며 2012년 11월 들어선 IFC는 국제금융센터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입주 기업 142곳 중 외국계 금융사는 25곳에 불과하고 당초 정부가 목표로 했던 외국계 금융회사의 본사 이전은 1곳도 없다. 당초 논의됐던 법인세 인하 등의 혜택이 결국 무산된 탓이다. 최근 IFC로 본사를 옮긴 국내 금융사 관계자는 “국제금융센터여서가 아니라 비교적 최신 건물인데도 여의도의 다른 오피스빌딩보다 임대료가 저렴해서 택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3년 12월 발표한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의 현주소는 이처럼 초라하다. 세계 각국이 금융허브를 넘어 혁신산업과 금융이 어우러진 ‘핀테크 허브’를 구축하며 앞서가는 사이 한국의 금융 경쟁력은 뒷걸음치고 있다.○ 서울도 안 되는 금융허브, 부산·전주까지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이 매년 9월 발표하는 ‘세계 금융 중심지’ 순위에서 서울은 2015년 6위로 가장 높은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불과 3년이 지난 올해 33위로 27계단 급락했다. 아시아 도시들만 따로 순위를 매겨도 서울은 올해 처음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제2 금융허브’를 내세웠던 부산의 위상은 더 초라하다. 지옌의 조사에서 부산은 지난해 70위, 올해 44위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1월 여의도와 함께 부산 문현지구를 파생상품, 선박금융에 특화된 세계적 금융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현재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금융공공기관만 옮겨갔을 뿐 외국계는 물론이고 국내 민간 금융사들도 부산을 외면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 부산에 이어 전북 전주를 ‘제3의 금융허브’로 육성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2015년 국민연금공단이 전주혁신도시로 옮겨가자 전북도는 금융타운 조성 사업에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전주를 제3 금융도시로 키우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놨다. 최근 전주로의 공공기관 이전 움직임이 가시화하자 부산 지역 정치권과 기업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등 갈길 먼 금융허브 이슈가 지역 갈등으로 번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서울, 부산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전주를 금융허브로 키우는 것은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며 “금융허브는 금융회사와 기관들을 한곳에 모으는 군집 효과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는 금융허브 각축전 한국이 뒷걸음치는 사이 세계 각국은 금융허브 수성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국의 도약이 두드러진다. 중국은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선전(深(수,천))을 세계적 금융허브로 키워내며 기존의 홍콩, 싱가포르, 일본 도쿄 ‘3강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지옌의 아시아 금융 중심지 순위에서 중국 5개 도시가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상하이는 2015년 21위에서 올해 5위로 급상승했다. 화웨이, 텐센트 등 중국의 정보기술(IT) 대표 기업을 배출한 선전은 IT와 금융이 융합된 핀테크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를 금융 혁신의 실험장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목표로 2015년 ‘스마트 파이낸셜 센터’ 비전을 내놓은 데 이어 2016년 ‘규제 샌드박스’(새로운 서비스에 각종 규제를 면제해주는 것)를 도입했다. 세계 4위의 자산운용 시장을 갖춘 호주는 시드니를 대체투자 등 자산운용에 특화된 금융허브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프랑스는 파리를 ‘유럽의 금융수도’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하고 유럽 내 금융사가 파리로 이전할 때 걸림돌을 없애는 137개의 이행 과제를 선정해 개선에 들어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본사를 파리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 중요 전문가들은 한국의 금융허브를 만들기 위해선 글로벌 금융사를 끌어들일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의 유인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예측할 수 있는 규제 환경을 만들어 금융사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외국계 운용사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펀드 수수료까지 사사건건 간섭해 이에 대응할 인력을 둬야 한다”며 “한국은 홍콩 싱가포르보다 비용이 2, 3배 들어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홍콩 싱가포르 등 경쟁국은 높은 노동 유연성으로 기업 부담을 낮췄다”고 말했다. 쟁쟁한 금융허브 틈바구니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형 금융허브보다 1000조 원이 넘는 연금시장을 활용해 ‘자산운용 허브’로 특화할 필요가 있다”며 “세제 정비, 정주 여건 개선으로 토양만 갖추면 금융허브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박성민 min@donga.com·김성모 기자 특별취재팀▽ 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경제부 김재영 조은아, 런던=김성모, 시드니·멜버른=박성민, 싱가포르=이건혁, 호찌민·프놈펜=최혜령 기자▽ 특파원 뉴욕=박용, 실리콘밸리=황규락, 파리=동정민, 베이징=윤완준, 도쿄=김범석}

“하도 억울해서 창업했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두 친구가 영국에서 온라인 해외송금 서비스업체 ‘트랜스퍼와이즈’를 창업한 이유는 단순했다.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던 한 명은 유로화로 월급을 받는데 영국 생활을 하려면 파운드화가 필요했다. 다른 친구는 파운드화로 월급을 받지만 에스토니아 은행의 대출금을 갚으려면 유로화로 환전해야 했다. 은행을 찾으면 꼬박꼬박 5% 안팎의 환전·송금 수수료를 내야 했고 해외로 돈을 보내는 데도 사나흘이나 걸렸다. 하지만 서로에게 돈을 보냈더니 문제가 한번에 해결됐다. ‘핀테크’란 말도 없던 2010년, 두 친구는 이 아이디어를 갖고 영국 금융당국을 찾았다. 은행의 독점 업무를 위협하는 파괴적 아이디어였지만 감독당국은 ‘좋은 생각’이라며 상용화 방법을 함께 찾았다. 벤처캐피털들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섰다. 2011년 문을 연 트랜스퍼와이즈는 현재 전 세계 400만 명이 이용하는 글로벌 최대 개인 간(P2P) 송금업체로 자리 잡았다.○ 정부와 금융이 함께 키우는 해외 ‘유니콘’ 세계 각국에서는 혁신 아이디어로 무장한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벤처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유니콘의 뿔이 저절로 자라난 건 아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는 규제를 풀어주고 대형 금융사들도 적극적인 투자로 힘을 보태고 있다. 세계 최초로 ‘규제 샌드박스’(새로운 서비스에 각종 규제를 면제해주는 것)를 도입한 영국은 금융당국도 혁신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기관 레벨39의 벤 브래빈 대표는 “기업들은 금융감독청(FCA)을 참견자가 아니라 조력자로 생각한다”며 “공무원들이 이곳으로 출근하다시피 찾아와 기업들과 소통하고 애로점을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정부와 스타트업의 협업 속에 지난해 영국에선 핀테크 관련 일자리만 15만 개가 생겼다. 최근 유니콘으로 올라선 싱가포르의 핀테크 기업 ‘엠닥’의 성공에도 자유로운 규제 환경이 큰 도움이 됐다. 이 회사는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가격을 세계 각국 화폐가치로 실시간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전자상거래와 외환거래가 결합된 이 서비스는 현재 중국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에 쓰이고 있다. 싱가포르 금융당국인 통화청(MAS)은 2015년부터 엠닥 같은 핀테크 기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섰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은 알리바바와 함께 엠닥에 1억1800만 싱가포르달러(약 1000억 원)를 투자했다. 토머스 강 엠닥 글로벌사업본부장은 “재무장관이 직접 스타트업 기업을 챙긴다. 정부에 사업 관련 문의를 하면 무조건 2시간 내에 회신이 온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세제 혜택으로 핀테크 투자를 유도한다. 호주 핀테크 기업 육성 허브인 스톤앤드초크의 마리앤 럼퍼탱 책임자는 “핀테크 기업에 투자해서 얻은 수익 가운데 20만 호주달러(약 1억6000만 원)까지는 세금을 20% 공제해준다”고 전했다.○ 규제 막혀 제자리걸음하는 한국 핀테크 기업 해외에선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까지 나오고 있지만 한국 핀테크 기업들은 척박한 규제 환경에 막혀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트랜스퍼와이즈가 한국에서 창업을 했다면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고 사업을 접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세계무대에서 한국 핀테크 기업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사 KPMG가 10월 발표한 ‘세계 50대 핀테크 리딩기업’ 가운데 국내에선 송금 서비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28위)가 유일하다. 그나마 비바리퍼블리카를 두고도 업계에선 “더 클 수 있는데 나라를 잘못 만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최근 이 회사는 1년 넘게 공들여 은행권에서 대출이자가 가장 싼 상품을 찾아 고객에게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하지만 ‘대출모집인은 1개의 금융사 상품만 중개해줄 수 있다’는 규제에 막혀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촘촘한 규제를 뚫고 상품을 내놔도 금융당국의 소극적인 대응에 발목이 잡히기 일쑤다. 하나금융그룹과 SK텔레콤이 함께 설립한 핀테크 벤처기업 ‘핀크’는 연초 금융권 최저 수준의 송금, 대출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국의 소극적 태도와 늑장 대응으로 출시에 9개월이나 걸렸다. 업계 관계자는 “핀크는 그나마 대기업 합작사라 버텼지 다른 업체였다면 진작 문 닫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진출한 해외 핀테크 기업들도 혀를 내두른다. 엠닥의 강 본부장은 “규제도 문제지만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등 각 부처마다 입장이 다른 게 커다란 장벽이었다”며 “한국 대형 금융사들도 핀테크 스타트업과의 제휴, 투자에 소극적인 편”이라고 지적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해외에서는 금융 신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며 “우리도 관치와 규제를 허물어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성모 mo@donga.com·김재영 기자 ▼ “10파운드로 핀테크 창업… 정부 지원 덕분” ▼英 핀테크 기업 관계자들“대형 금융사 고객정보 공유 등 정부 창업-투자 장려정책 큰 힘”“저도 10파운드(약 1만5000원) 손에 쥐고 회사 차렸습니다.”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만난 핀테크 기업 ‘핀테크파워50’의 마크 워커 대표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가진 돈이 없어도 창업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워커 대표는 유망한 핀테크 기업들을 선정해 이들끼리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회사를 지난해 세웠다. 스타트업의 성장기를 보고서로 만들어 대형 금융사의 투자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는 “런던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유망한 핀테크 기업을 유치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투자는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고 강조했다. 워커 대표의 사무실에 모인 ‘핀테크 새내기’ 대표들도 창업에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라고 입을 모았다. ‘유니제스트’의 피터 마일스 대표는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 실제로 고객의 삶을 변화시킨 기업은 대부분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유니제스트는 유학생을 대상으로 계좌를 만들어주고 체크카드 같은 금융상품을 발급하는 서비스를 한다. 이들은 핀테크 창업을 독려하는 정부의 지원이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마일스 대표는 “영국 정부는 창업을 열성적으로 독려한다”며 “일반인이 핀테크 기업에 투자했다가 자칫 기업이 망해 손해를 봐도 정부가 투자금의 75%까지 세제 혜택으로 돌려준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회사 ‘큐브’의 로버트 쿡 대표는 “대형 은행 등 금융사의 고객 정보를 핀테크 기업이 공유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용했다”며 “이를 통해 금융산업의 경쟁이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영국 핀테크 전문매체 ‘핀테크타임스’의 매슈 도브 기자도 정부가 ‘경쟁의 장’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많은 핀테크 서비스가 쏟아지면서 소비자 선택권이 넓어졌고 스타트업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며 “초반에 이런 흐름에 저항하던 대형 금융사들도 시냇물 하나하나를 다 막을 순 없다는 걸 깨닫고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런던=김성모 기자 mo@donga.com ● 특별취재팀▽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경제부 김재영 조은아, 런던=김성모, 시드니·멜버른=박성민, 싱가포르=이건혁, 호찌민·프놈펜=최혜령 기자▽특파원 뉴욕=박용, 실리콘밸리=황규락, 파리=동정민, 베이징=윤완준, 도쿄=김범석}
지난달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금융권 가계대출이 10조 원 넘게 늘었다. 지난달 말 가장 강력한 대출 규제로 꼽히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도입을 앞두고 ‘막차 타기’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금융권 가계대출은 10조4000억 원 증가했다. 은행권이 7조7000억 원, 제2금융권이 2조7000억 원 늘었다.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분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3조5000억 원이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9·13부동산대책을 앞두고 주택 거래가 늘어났는데 잔금 지급 수요가 몰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등 기타 대출의 증가액은 4조2000억 원이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8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특히 이 중 신용대출이 2조9000억 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다. 올해 1조 원 안팎이던 월별 신용대출 증가 폭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신용대출 급증은 9·13대책의 주택담보대출 강화에 따른 풍선효과와 지난달 말 DSR 시행을 앞두고 수요가 몰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DSR는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등 대출자가 매년 갚아야 하는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따져 대출을 제한하기 때문이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한국 금융엔 ‘삼성전자’가 없다. 경제 규모 12위의 강국이지만 세계 50대 은행에 국내 금융사 1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정부의 규제와 무관심, 금융사들의 보신주의 속에 한국 금융은 성장을 멈췄다. 국내에선 골목대장 노릇을 하지만 세계 무대에선 구멍가게 수준이라 굵직한 프로젝트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반면 세계 각국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금융의 몸집을 키우고 있다. 한국도 ‘금융의 삼성전자’를 키우겠다는 의지와 전략이 필요하다. 》 “유럽 최대 은행인 스페인 산탄데르의 시가총액이 미국 JP모건의 4분의 1밖에 안 된다. ‘범유럽 차원의 대형 은행’이 필요하다.” 올해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 춘계회의에 참석한 유럽연합(EU) 주요 은행장들의 화두는 ‘은행 대형화’였다. 이들은 미국 은행과의 격차가 갈수록 커져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유럽에선 은행들의 합병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독일은 자국 기업을 세계 시장에서 지원할 튼튼한 은행이 필요하다며 1, 2위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바클레이스와 스탠다드차타드, 이탈리아 우니크레디트와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의 합병설도 나오고 있다.○ 금융영토 넓혀라…대형화 속도 내는 해외 은행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 시장에서 아웅다웅하며 이자 수익에 안주하는 한국 금융사들과 달리 세계 각국의 주요 은행은 적극적인 M&A와 해외 진출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 창출 능력을 키우고 중복 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해외 사업을 축소한 공백을 틈타 중국, 일본 은행들은 꾸준히 금융영토를 넓히며 덩치를 키웠다. 중국은 영국 금융전문지 더뱅커가 7월 발표한 ‘세계 100대 은행’에서 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은행, 중국농업은행 등 4곳이 1∼4위를 휩쓸었다. 규모를 키운 이 은행들은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경제영토 확장 프로젝트) 정책에 따라 아시아를 넘어 유럽, 아프리카까지 공략하고 있다. 단순한 몸집 불리기에 그치지 않고 투자은행(IB), 자산관리, 무역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쌓아가며 월가를 위협할 정도다. 일본의 ‘3대 메가뱅크’는 저금리, 저성장, 고령화로 수익성이 나빠지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미쓰비시도쿄UFJ금융그룹(MUFG)은 2008년 미국 유니언뱅크, 2013년 태국 아유디야은행, 지난해 인도네시아 다나몬은행 등을 사들이며 해외 수익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렸다.○ 미국 IB들 ‘월가의 구글’ 선언 세계 금융투자업계를 선도하는 미국 IB들은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몸집을 키워 왔다. 최근에는 스스로를 ‘금융회사가 아닌 정보기술(IT) 회사’라고 자처하며 ‘월가의 구글’로 변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015년 제너럴일렉트릭(GE)의 온라인은행 부문을 인수하는 등 최근 5년 새 150여 개 IT 회사를 인수했다. JP모건 역시 지난해 미국 온라인 결제서비스 ‘위페이’를 인수하며 핀테크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구글의 인공지능(AI)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올해 IT 분야에만 108억 달러(약 12조 원)를 투자했다. 최고경영자(CEO)가 장기 비전과 철학을 펼칠 수 있는 것도 미국 초대형 IB의 혁신 동력으로 꼽힌다. 2005년 CEO에 오른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올해 초 임기를 5년 연장했다. 국내 금융사 CEO 임기가 평균 2, 3년에 그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형화-질적 성장 동시 추구” 해외 금융사들이 대형화만 추구하며 마구잡이 확장에 나선 것은 아니다. 주요 금융사들은 장점에 집중해 특화 영역을 육성하고, 장기적 안목의 해외 진출을 통해 규모와 효율성을 함께 키우고 있다. 2013년 미국에 진출한 스페인 산탄데르는 스페인계 외에도 미국 백인 중산층 고객을 공략해 입지를 넓혔다. 올해 6월 말 현재 지점 600곳, 자산 745억 달러, 고객 2100만 명을 보유한 미국 소매금융의 강자로 부상했다. 산탄데르도 1990년대 이후 100건이 넘는 M&A를 통해 성장했지만 개인 소매금융에 집중하고 중남미 시장에서 역량을 쌓은 뒤 선진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호주 맥쿼리그룹은 인프라 투자라는 틈새시장에 역량을 집중해 세계 일류 금융사의 반열에 진입했다. 최근엔 신재생에너지까지 투자 영역을 넓혔다. 지난해 영국 정부 산하 녹색투자은행(GIB)을 인수한 뒤 아시아 지역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뛰어들었다. 맥쿼리 인프라펀드 규모는 2001년 말 40억 달러에서 올해 3월 말 1190억 달러로 급성장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는 “글로벌 금융사들은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 금융도 이런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재영 redfoot@donga.com·김성모 기자 특별취재팀▽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경제부 김재영 조은아, 런던=김성모, 시드니·멜버른=박성민, 싱가포르=이건혁, 호찌민·프놈펜=최혜령 기자▽특파원 뉴욕=박용, 실리콘밸리=황규락, 파리=동정민, 베이징=윤완준, 도쿄=김범석}

“목욕물만 버려야지 아기까지 버려선 안 된다.” 지난해 10월 로레타 메스터 미국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뉴욕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금융규제를 이같이 비유했다. 시스템 위기를 막기 위해 금융규제가 필요하지만 혁신까지 막아선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되던 금융규제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세계 각국은 금융산업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주고 있다. 한국 금융이 시대에 뒤떨어진 ‘갈라파고스 규제’에 꽁꽁 묶여 있는 동안 세계 금융산업은 규제 빗장을 풀고 훨훨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일단 해봐라”… 신산업 놀이터 열어줘 세계 주요국은 정보기술(IT)과 금융이 결합한 핀테크 산업의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파격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가장 앞선 곳은 영국이다. 2014년 런던을 ‘글로벌 핀테크 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뒤 세계 최초로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다.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처럼 규제 없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마음껏 혁신적인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규제 샌드박스에선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심사를 거쳐 시범사업, 임시허가 같은 방식으로 각종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준다. 테스트가 끝나면 성과를 평가해 상용화 여부를 결정한다. 영국은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네 차례에 걸쳐 89개 기업을 규제 샌드박스 대상으로 선정했다. 블록체인을 이용한 해외 송금과 주식 발행 서비스, 소비자의 운전 습관을 모니터링해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애플리케이션 등이 이를 통해 현실화됐다. 영국의 성공을 확인한 싱가포르, 호주, 스위스 등 20여 개국이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했고 ‘글로벌 샌드박스’를 구축하는 국제 공조도 시작됐다.○ 꼴찌에서 1등 만든 중국의 ‘네거티브 규제’ 금융 환경이 낙후됐던 중국은 모바일로 단숨에 역전에 성공했다.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중국의 간편결제 서비스 시장 규모는 거래금액 기준으로 2016년 58조8000억 위안(약 9400조 원)에서 지난해 98조7000억 위안(약 1경5800조 원)으로 급성장했다. 중국이 핀테크 강국으로 떠오른 데는 ‘네거티브 규제’ 정책의 영향이 컸다. 네거티브 규제는 기존 법으로 규율하기 힘든 새로운 서비스는 일단 모두 허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규제하는 방식이다. 2004년 간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를 개발한 알리바바그룹은 성공을 확신하기 어려웠다. 정부가 은행이 독점하는 지급결제 시장의 개방을 허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조차 감옥에 갈 각오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낙후된 금융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다는 생각으로 신산업의 등장을 내버려뒀다. 알리페이를 남부지역에 시범적으로 허용했다가 성과가 나타나자 바로 전국으로 영업 범위를 확대해줬다. 아울러 시장 진입 규제를 풀어 비(非)금융사가 금융산업에 진출해 혁신을 주도하도록 유도했다. 이런 유연한 규제 환경 속에서 알리바바는 대출 중개, 신용평가, 온라인펀드·보험 등으로 빠른 속도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은산분리 한국선 논란, 세계는 이미 사문화 한국에서 “재벌이 금융을 사금고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온갖 조건을 달아 간신히 인터넷은행에 한해 예외를 둔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 규제도 해외에선 이미 사문화된 지 오래다. 일본은 2005년 은산분리 규제를 과감히 풀어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100% 소유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IT, 유통, 통신, 전자 등 다양한 대기업이 뛰어들어 최근 6년간 일본 인터넷은행 산업은 2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중국도 대기업의 은행 소유 제한이 아예 없다. 오히려 중국 정부는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촉진해 기존 은행들과 경쟁하도록 했다. 알리페이를 만든 알리바바, 중국 최대 모바일 기업 텐센트와 인터넷 기업 바이두,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 모두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했다. 유럽도 적격성 심사를 통과한 대기업은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원칙적으로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고 있지만 캘리포니아 하와이 콜로라도 인디애나주(州) 등에선 대기업이 은행을 100% 소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는 “규제를 아예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하자는 것”이라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강하게 규제하되 전문 영역에 대해서는 시스템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느슨하게 규제하는 미국식 규제 철학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김재영 redfoot@donga.com·김성모 기자}

연내에 자동차보험료를 인상하기 위한 손해보험사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됐다. 인상 폭은 3%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정비요금 상승, 여름철 폭염에 따른 사고 증가 등이 맞물리며 차보험의 적자폭이 커지자 보험사들이 약 2년 만에 보험료 인상에 나선 것이다. 국내 ‘빅4’ 손보사를 시작으로 중소형 손보사들의 도미노 인상 움직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11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는 최근 보험개발원에 차보험 기본보험료율 검증을 의뢰하며 인상 절차에 공식적으로 들어갔다. 메리츠화재가 검증을 의뢰한 기본보험료 인상률은 약 3%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보험 업계 6위인 메리츠화재는 차보험 시장의 약 5%(보험건수 100만 건)를 차지하고 있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요율 검증에 들어간 것은 맞지만 인상 시기나 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도 조만간 요율 검증을 의뢰할 계획이다.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 ‘빅4’ 역시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마련해둔 상태다. 보험사들은 3% 안팎의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4가 인상 계획을 발표하면 롯데손해보험, 흥국화재 등 중소형 손보사들도 인상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4월 이후 차보험료를 동결했던 손보사들이 일제히 인상에 나서는 것은 자동차보험 손해율(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출 비율)이 치솟으면서 적자폭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손보사들의 손해율은 90%를 돌파했다. 통상 손해율이 80% 안팎이면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특히 삼성화재(90.4%), 현대해상(93.8%), DB손보(92.8%), KB손보(94.5%) 등 빅4가 모두 90%를 넘어섰다. 흥국화재와 MG손해보험은 100%도 돌파했다. 이에 따라 차보험의 영업적자도 올해 7000억 원에서 내년에는 최대 1조4000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적자를 그대로 두면 나중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보험료 인상 요인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적자폭을 감안하면 7% 이상 올려야 하지만 금융당국이 인상 폭을 2% 안팎으로 고려하고 있어 실제 인상률은 3∼4% 정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정비요금 상승도 한몫했다. 주요 손보사들은 정비업체 약 2000곳과 정비요금을 재산정해 계약한 상태다. 6월 말 국토교통부의 적정 정비요금 발표 때 2.9% 정도의 차보험료 인상 요인이 예상됐지만 실제 재계약 결과 3.4%의 인상 압박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여름 폭염으로 사고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7월 6개 주요 손보사에 접수된 사고는 1년 전보다 8.8% 늘었다. 금융당국은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차보험료 인상 폭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당국은 보험료 인상과 별개로 내년 초 사고 처리 합리화 등 보험금 누수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금융의 핵심은 ‘혁신’입니다. 혁신이 살아 있는 런던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에도 건재할 겁니다.” 지난달 영국의 런던금융특구인 ‘시티오브런던’에서 만난 찰스 보먼 금융시장(로드 메이어·사진)은 “법과 제도부터 전문 인력, 역사 등 런던이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온 금융 경험은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금융산업은 영국 경제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금융 및 관련 서비스업이 영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이르고, 130만 명이 금융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먼 시장은 “사업하기 좋은 세금제도와 적은 규제, 우수한 인력 등이 영국 금융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영국의 금융업도 브렉시트 이후 금융회사들의 ‘탈(脫)런던’ 움직임과 유럽 각국의 ‘포스트 금융허브’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보먼 시장은 “일부 기업의 이탈은 있을 수 있지만 핵심 기능은 변함없을 것”이라며 “정부와 감독당국,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금융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허브 역할을 하는 시티오브런던은 영국 금융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보먼 시장은 “시티오브런던은 서로를 끌어들이는 자석과 같은 곳”이라며 “정보기술(IT) 기업 500m 옆에 금융회사가 있고, 도보 2분 거리에 감독당국, 5분 거리에 정부기관이 있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이 세계 최초로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새로운 서비스에 각종 규제를 유예해주는 제도)도 이 같은 분위기에서 가능했다. 보먼 시장은 “단순히 규제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가장 적합한 규제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런던=김성모 기자 mo@donga.com}

경기 부천시에 사는 직장인 차예주 씨(30·여)는 ‘BMW족’이다. 버스(Bus), 지하철(Metro)을 탄 뒤 걸어서(Walk) 서울 강서구의 회사로 출근한다. 그는 “집에서 회사까지 1시간 정도 걸리고 공항철도를 갈아타 귀찮지만 돈을 아낄 수 있고 교통체증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자가용을 타는 사람보다 한 해 175만 원의 교통비를 덜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카드와 한국교통연구원은 8일 이런 내용의 ‘대도시 교통비 지출 현황’을 발표했다. 서울, 6개 광역시, 세종시에 거주하는 삼성카드 회원 30만 명의 지난해 소비 지출을 분석한 결과다. 조사 대상자의 52%는 출퇴근이나 나들이 등을 할 때 승용차와 대중교통을 함께 이용했다. 운전면허증과 자가용이 없어 대중교통만 이용하는 ‘대중교통족’은 33%였다. 승용차로만 이동하는 ‘자가용족’은 15%였다. 대중교통족은 연간 교통비로 평균 50만 원을 썼다. 반면 자가용족은 연평균 225만 원을 지출했다. 자가용족이 BMW족보다 4.5배의 교통비를 쓰는 셈이다. 자가용족 교통비에는 차량 구입으로 내는 할부금, 주유비, 세금, 정비비용 등이 포함됐다. 성별로 보면 자가용족의 81.4%는 남성이었다. 이들은 연 242만3000원을 교통비로 썼다. 자가용족 여성(18.6%)은 상대적으로 적은 149만9000원을 지출했다. 반면 대중교통족은 여성의 비중이 80.0%로 훨씬 높았다. 이들은 연간 47만2000원을 대중교통비로 썼다. 대중교통족 남성(20.0%)은 이보다 약간 많은 58만 원을 지출했다. 허재영 삼성카드 빅데이터연구소장은 “40대 남성의 승용차 이용 비중이 특히 높다”며 “이들은 교통비를 지출하는 데 부담을 덜 느끼고 가족과 장거리 여행 등 여가활동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 보면 출퇴근 때 자가용을 이용하는 비중은 울산(48.3%)이 가장 높았다. 대구(39.2%) 광주(37.1%) 세종(30.6%)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은 2.5%에 그쳤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중교통 체계가 덜 갖춰져 있거나 신도시에서 자가용을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경기 부천시에 사는 직장인 차예주 씨(30·여)는 ‘BMW족’이다. 버스(Bus), 지하철(Metro)을 탄 뒤 걸어서(Walk) 서울 강서구의 회사로 출근한다. 그는 “집에서 회사까지 1시간 정도 걸리고 공항철도를 갈아타 귀찮지만 돈을 아낄 수 있고 교통체증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자가용을 타는 사람보다 한 해 175만 원의 교통비를 덜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카드와 한국교통연구원은 8일 이런 내용의 ‘대도시 교통비 지출 현황’을 발표했다. 서울, 6개 광역시, 세종시에 거주하는 삼성카드 회원 30만 명의 지난해 소비 지출을 분석한 결과다. 조사 대상자의 52%는 출퇴근이나 나들이 등을 할 때 승용차와 대중교통을 함께 이용했다. 운전면허증과 자가용이 없어 대중교통만 이용하는 ‘대중교통족’은 33%였다. 승용차로만 이동하는 ‘자가용족’은 15%였다. 대중교통족은 연간 교통비로 평균 50만 원을 썼다. 반면 자가용족은 연평균 225만 원을 지출했다. 자가용족이 BMW족보다 4.5배의 교통비를 쓰는 셈이다. 자가용족 교통비에는 차량 구입으로 내는 할부금, 주유비, 세금, 정비비용 등이 포함됐다. 성별로 보면 자가용족의 81.4%는 남성이었다. 이들은 연 242만3000원을 교통비로 썼다. 자가용족 여성(18.6%)은 상대적으로 적은 149만9000원을 지출했다. 반면 대중교통족은 여성의 비중이 80.0%로 훨씬 높았다. 이들은 연간 47만2000원을 대중교통비로 섰다. 대중교통족 남성(20.0%)은 이보다 약간 많은 58만 원을 지출했다. 허재영 삼성카드 빅데이터연구소장은 “40대 남성의 승용차 이용 비중이 특히 높다”며 “이들은 교통비를 지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가족과 장거리 여행 등 여가활동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 보면 출퇴근 때 자가용을 이용하는 비중은 울산(48.3%)이 가장 높았다. 대구(39.2%) 광주(37.1%) 세종(30.6%)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은 2.5%에 그쳤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중교통 체계가 덜 갖춰져 있거나 신도시에서 자가용을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김성모기자 mo@donga.com}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가 시행된 첫날인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SK 직영 셀프주유소에는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쉬지 않고 들어왔다. 주유기 앞에서 기름을 넣는 운전자들의 시선은 시세표에 쏠렸다. 전날 1714원이던 L당 휘발유 가격은 1591원으로, 경유 가격도 1514원에서 1427원으로 떨어졌다. 주유소 직원은 “새벽부터 주유하려는 차량이 평소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0시부터 휘발유, 경유 등에 붙는 유류세를 15% 내렸다. 이날부터 곧바로 기름값을 내린 직영 주유소엔 이른 아침부터 주유 차량이 몰렸다. 유가 정보를 제공하는 한국석유공사의 웹사이트 ‘오피넷’은 기름값이 싼 주유소를 알아보려는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하루 종일 서버가 먹통이었고, 각종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도 종일 올라 있었다. 6일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현재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판매 가격은 L당 1674.14원으로 전날보다 16.16원 하락했다. 휘발유 값은 18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다가 하락한 것이다. 특히 서울은 전날보다 44.29원 하락한 1729.55원에 판매됐다. 서울 일부 지역에선 1500원대에 휘발유를 판매하는 주유소도 속출했다. 경유 가격도 전국 평균이 16.81원 하락해 L당 1478.95원까지 떨어졌다. 서울은 41.90원 내린 1541.47원으로 조사됐다. 유류세 15% 인하 조치에 따라 L당 휘발유 가격은 최대 123원, 경유는 87원, 액화석유가스(LPG)·부탄은 30원이 떨어진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이날 0시 출고분부터 휘발유 값을 일제히 123원 내렸다. 정유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는 재고 물량과 상관없이 인하분을 반영했다. 전국 1만1500여 개 주유소의 90%가량을 차지하는 자영 주유소들은 재고 물량을 다 털어낸 뒤 1주일 후쯤 인하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이날 일부 소비자는 유류세 인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겠다는 불만도 쏟아냈다. 다만 자영 주유소 중에도 재고 물량과 상관없이 이날부터 유류세 인하분을 미리 반영하는 곳이 일부 있었다. 이번 유류세 인하는 내년 5월 6일 출고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유류세 인하는 2008년 3월부터 10개월 동안 10% 내린 이후 10년 만이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2020년까지 JB금융그룹 이익의 50%를 수도권에서, 20%를 해외에서 올릴 계획입니다. 호남 기반을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잡는 금융사가 될 겁니다.” 요즘 금융권에선 ‘JB금융의 분위기가 제일 좋다’는 말이 돈다. 광주전라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지방은행의 틀을 깨고 ‘디지털 금융’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적도 좋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JB빌딩에서 만난 김한 JB금융지주 회장(64)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JB금융, 올해 사상 최대 실적 JB금융은 올해 3분기 누적(1∼9월)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3.5% 늘어난 2110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2013년 지주사 출범 이후 최대 실적이자 올해 연간 목표치(2083억 원)를 뛰어넘은 성과다. 라이벌로 꼽히는 DGB금융과 BNK금융은 순이익이 같은 기간 각각 2.6%, 1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김 회장은 “시중은행이 많이 다루지 않는 중금리 대출 상품을 강화해 수도권 영업 기반을 넓힌 게 효과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계열사인 전북, 광주은행은 현재 서울 등 수도권에 각각 16곳, 31곳의 지점을 뒀다. 그는 “이미 전북은행은 수도권과 비(非)수도권의 수익 비중이 5 대 5다. 광주은행은 3 대 7인데 수도권 비중을 절반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JB금융은 2014년 광주은행 인수 이후 진행했던 ‘완전 자회사 편입’도 지난달 무사히 마쳤다. 김 회장은 “인수 이후 광주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포인트가량 오르고 부채비율도 떨어지는 등 모든 지표가 좋아졌다. 내년에 본격적인 시너지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JB금융 안팎에서는 이 같은 성과가 나기까지 김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회장은 2010년 자산 7조5000억 원 규모의 전북은행 행장으로 취임한 뒤 광주은행, 우리캐피탈, 캄보디아 프놈펜상업은행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9월 말 현재 JB금융의 자산은 47조2000억 원으로 2010년보다 6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겸직했던 전북, 광주은행장 자리를 후배들에게 잇달아 물려준 것도 ‘파격’으로 통한다. 김 회장은 “회사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행장과 임직원들을 믿고 맡긴 덕분”이라고 했다.○ “수도권·해외서 돈 벌어 호남에 기여할 것” JB금융은 ‘디지털 금융’을 이끄는 숨은 강자로 통한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도 JB금융의 전산 시스템을 도입했을 정도다. 최근 여러 회사의 금융 서비스를 한곳에서 쓸 수 있는 ‘오픈뱅킹 플랫폼’도 선보였다. 자영업자의 일별 매출에 따라 금리 혜택을 주는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그는 “디지털 금융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이라며 “다만 이 때문에 발생할 ‘금융 사각지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경영 포부를 밝힐 때와 달리 JB금융의 성장 기반이 됐던 지역 이야기를 꺼내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조선, 자동차산업의 침체로 군산 등 호남 지역에서 경영난에 빠진 기업이 늘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우리가 거래하는 자동차 2, 3차 부품업체가 망하면 1차 벤더뿐만 아니라 결국 현대자동차까지 어려워진다”며 “직원들에게 10년 이상 거래한 업체들은 어떻게든 살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JB금융의 기반이자 뿌리인 지방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사정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수도권과 해외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수익을 확대해 지역경제의 활력을 일으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미중 무역전쟁이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가 지난주 큰 폭으로 반등에 성공했지만 상승장 진입 신호로 보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국내외 증시 움직임은 일단 미국의 정책 향방을 가를 6일(현지 시간)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여부부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및 미중 정상회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등 굵직한 이벤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주식시장이 또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코스피, 본격 상승 전환은 “글쎄”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2,000이 붕괴됐던 코스피는 이달 2일 단숨에 2,090대를 회복했다. 2일 상승 폭(71.54포인트, 3.53%)은 7년여 만에 가장 높았다. 외국인은 4400억 원 넘게 사들이며 코스피 상승세를 이끌었다. 중국과의 통상 마찰이 완화될 수 있다는 미국발 훈풍에 이날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2% 안팎으로 급등했다. 하지만 미중 화해 무드로 조성된 증시 반등세가 상승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은 하루 만에 한풀 꺾였다. 2일(현지 시간) 미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0.43%,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04% 하락했다. ‘월가 대장주’인 애플이 3분기(7∼9월) 실적 부진으로 4년 만에 최대 폭(―6.6%)으로 급락한 데다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불씨가 다시 커졌기 때문이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협상 초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부인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한국과 중국의 증시 상승률이 거의 꼴찌 수준이었는데 이번 반등으로 국내 증시가 겨우 ‘키 맞추기’를 했을 뿐”이라며 “글로벌 경기 둔화, 미중 무역전쟁 등 불안 요소가 여전해 급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대형 이벤트 줄줄이, 당분간 큰 변동성 예상 증시 전문가들은 우선 중간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결과에 따라 트럼프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물론이고 대중(對中) 강경책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 상원은 공화당이,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시장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면 투자심리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단기적으로 ‘안도 랠리’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불확실성이 해소돼 증시가 당분간 상승할 수 있다”며 “민주당도 재정 확대에 대해 크게 반대하진 않을 것으로 보여 미 경기부양책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공화당 지지층의 결집력이 강해지고 있어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이렇게 되면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윤서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달러 강세, 미국 금리 상승 등의 즉각적인 반응이 올 것”이라며 “신흥국의 금융 불안이 고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 직후인 8일(현지 시간) 열리는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와 이달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앞두고 증시가 다시 크게 출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FOMC에서는 금리 동결이 예상되지만 회의 내용에 따라 경계심리가 강해질 수 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기존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보다는 실질적으로 미중 무역전쟁의 방향을 틀 수 있는 G20 정상회의를 가장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가상통화 거래소 빗썸이 미국에 ‘증권형 토큰 거래소’를 설립하고 미국 제도권 금융시장에 진출한다. 빗썸은 최근 미국 핀테크회사 시리즈원과 거래소 설립을 위한 투자 및 기술 지원 계약을 맺었다고 1일 밝혔다. 증권형 토큰은 부동산, 콘텐츠 등의 자산을 유동화해 프로젝트 성공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빌딩을 담보로 발행된 토큰에 투자하면 배당을 받거나 비트코인처럼 거래소에서 팔 수 있다. 두 업체는 내년 상반기(1∼6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증권형 토큰 거래소 설립을 허가받을 계획이다. 빗썸 관계자는 “시리즈원이 나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며 이 회사 지분도 인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국내 거래소들의 ‘망명’이 이어지고 있다. 빗썸은 앞서 홍콩에 거래소를 설립했고 업비트와 코인원도 각각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에 거래소를 만들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