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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겠지만, 미국인들은 ‘좀’ 무식하다. 2007년 워싱턴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 50% 이상이 이슬람교나 이슬람 세계는 존경할 만한 거리가 전혀 혹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9·11테러의 악몽이 여전하다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다. 로이터통신 기자로 터키와 이란 등에서 20년 넘게 취재한 경험을 가진 저자는 이런 상황이 더 어이없었나 보다. 이 책은 한마디로 “바보들아, 서양 문명은 이슬람 문명과 과학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르네상스는 꿈도 꾸지 못 했어”라고 꾸짖는 책이다. 기껏 신학이나 파고들던 유럽 사람들이 십자군 전쟁을 치르며 거의 모든 분야에서 어떻게 이슬람의 은혜(?)를 입게 되는지 꼼꼼히 추적한다. 저자는 특히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라 불렸던 아바스 왕조(8∼13세기) 시절, 당시 이슬람 교단의 지배자였던 칼리프들이 애정을 쏟았던 수도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바이트 알히크마)’에 주목했다. 40만 권의 장서를 자랑했던 지혜의 집은 이슬람 문명의 총체였다. 아라비아숫자 ‘0’의 개념을 도입한 천문학과 수학, 그리스철학까지 꼼꼼히 검토하고 분석한 철학, 유럽 의사들의 교과서로 추앙받던 11세기 ‘의학정전’을 탄생시킨 의학까지…. 서구 중심 시각에 사로잡힌 이들로선 자존심에 상처 입을 만큼 이슬람 문명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슬람의 지혜가 너무 광대해서였을까. 솔직히 책은 ‘좀’ 읽기가 버겁다. 아랍 명칭에 어색한 탓도 있겠지만, 읽다가 자꾸 머리가 뱅뱅 돌았다. 초입에 컬러사진들을 몰아넣고 온통 ‘검은 건 글자, 흰 것은 종이’로 만든 출판사도 원망스러웠다. 아, 이슬람 문명을 좇는 일은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공청회 한 지 며칠 됐다고 덜컥 발표했대요? 아직 개념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문화재청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오후 2시)를 앞두고 있던 11일 오전. 국무총리실이 문화유산제도정비방안을 발표하면서 “50년 미만의 근·현대 유물을 예비문화재로 지정해 보존 관리한다”고 밝히자 문화재청 예비문화재(가칭) 인증제도 추진에 자문 역할을 했던 한 전문가가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예비문화재 지정제는 1988 서울올림픽 굴렁쇠처럼 보존할 가치가 있으나 역사가 짧은 문화유산을 미리 문화재로 지정해 훼손의 위험을 막기 위한 제도다.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등록문화재는 50년 이상 된 근대문화유산이다. 문제는 총리실의 발표 시기와 절차다. 예비문화재 인증제 도입은 지난해 문화재청이 이미 발표한 사안이다. ‘박세리 골프채’ ‘김연아 스케이트’가 문화재가 될 것이란 보도도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예비문화재 법안 마련을 위해 문화재청이 발주한 연구용역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관계자는 “의원입법으로 할지, 정부입법으로 할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이르면 5월경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문화재청 관계자는 “총리실의 발표 직전 별다른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예비문화재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만들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열린 ‘예비문화재 추진 공청회’에선 예비문화재와 근대문화재의 구분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한 교수는 “이런 경우엔 공청회를 추가로 열어 의견을 조율하는 게 상례인데 어떤 의도로 총리실이 깜짝 발표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발표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위한 ‘맞춤 발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 문화계 인사는 “예비문화재의 경우 ‘새마을운동’ 등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문화유산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보고거리’로 낙점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문화재청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부처 간 협의와 조율을 거친 내용으로 누구를 의식해서 발표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식상한 얘기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다룬 책은 시중에 너무도 많다. 뻔히 있는 나라를 두고 “있다, 없다”를 따지는 책들부터 숱한 담론과 주장을 담은 무림협객들의 책이 허다하다. 한 서점 인터넷 사이트에서 일본이란 키워드를 쳐봤더니 국내외 관련 도서가 10만 권을 훌쩍 넘는다. 물론 어학서적 포함해서.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일본 관련 서적을 들이미는 건 어쩌면 참 ‘감 없는’ 일일 수 있다. 막말로 이 책의 제목인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하등의 관심도 없는 사람이 꽤 되리라. 하지만 독도를 포함한 동북아 영토분쟁이나 지정학적으로 G2(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상황을 함께 맞닥뜨린 입장이고 보면, 일본의 지성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들어보는 건 결코 해될 게 없다. 특히 이 책은 2010년 중국 국제정치학계 인사들과 나눈 대담집 ‘중국의 내일을 묻다’를 썼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서승원 고려대 교수와 함께 그 연장선에서 일본을 바라봤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대국굴기(大國굴起) 기세가 넘쳤던 중국과 달리, 경제 불황과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심각한 위기 담론에 빠진 일본의 고충을 엿볼 수 있다. 뭣보다 이 책의 매력은 일본 학자들의 꽤 솔직한 심경을 전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의 날카로운 질문 덕분이겠지만 “일본 정치인은 의제 설정이나 국가 전략 같은 발상 자체도 갖고 있지 않다”(소에야 요시히데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장) “한국이 통일된다면 일본에 적대적인 국가가 될 가능성도 있다”(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신문 주필) 등 신랄한 발언이 상당하다. 그중 제3부 ‘일본과 한반도’ 편은 더욱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 지성인들의 속내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만 ‘일본은 지금…’은 사전 공부가 어느 정도 요구되는 책이다. 주석이 풍부하게 달려 있긴 하지만 현재 동북아 정세에 대한 기초가 약하면 용어부터 헷갈리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미들파워 이론’ ‘보통국가론’ ‘요시다 노선’ ‘세계민생대국론’ 등 개념을 미리 정립해야 이해가 빠르다. 불편하다면 그냥 읽어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국내에도 흔치 않은 14세기 고려불화와 7세기 반가사유상이 이탈리아에서 발견됐다.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9일 “이탈리아 국립동양예술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려불화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 1점과 삼국시대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1점을 찾았다”고 밝혔다.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불이 와서 맞이하는 그림이란 뜻으로,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손을 내밀어 죽은 이를 서방극락으로 인도하는 내용이다. 반가사유상은 오른발을 왼 무릎에 얹고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긴 자세의 불상을 일컫는다.이번에 발견된 아미타내영도는 47×105.6cm 크기로 비단에 그려졌으며 광배(光背·머리나 등 뒤에 광명을 표현한 것) 부분을 일부 손본 흔적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아미타불이 입고 있는 대의(大衣·설법이나 걸식할 때 입는 승려의 겉옷)의 경우 붉은 색감과 금빛 연화당초 무늬가 잘 살아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은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권강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그림 속 대의의 무늬 패턴과 양감이 잘 살아 있는 얼굴 등으로 미뤄볼 때 14세기 전반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함께 발견된 반가사유상은 왼 다리 무릎 아래가 소실돼 8cm 남짓한 크기다.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같은 계열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데다 이목구비가 온화하고 상반신이 당당해 7세기 삼국시대 작품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는 게 국립중앙박물관 측의 설명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국 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요즘엔 박지성 선수가 뛰는 프리미어리그를 꼽는 이도 꽤 많겠다. 하지만 역시, 이 나라를 애기할 때 ‘신사의 나라’ ‘변덕스러운 날씨’는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신사 얘기는 사람마다 찬반이 엇갈려도, 런던 시민조차 “Bloody weather(망할 놈의 날씨)!”를 입에 달고 사는 변화무쌍한 하늘은 누구라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날씨가 현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이 책은 19세기 초 기후가 과학과 미술에 드리운 파장에 주목했다. 영국에서 기상학이 태동하고, 자연을 면밀히 관찰해 화폭에 담는 낭만주의 풍경화가 성행한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 가운데 당대에 활동한 ‘구름에 빠진 과학자’ 루크 하워드와 ‘구름 그림의 대가’ 존 컨스터블의 생애와 성과에 초점을 맞춰 직물 짜듯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실험실의 명화’는 이처럼 ‘멀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끈끈한 친척’인 과학과 미술의 접경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버무려 놓는다.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정보기술(IT) 전문잡지기자로 활동했던 저자에게 이런 주제는 맞춤옷처럼 편안해 보인다. 예를 들어, 명화 ‘비너스의 탄생’에 담긴 여신의 바다거품 탄생설화에서 생물의 진화에 대한 고대인의 혜안을 감지해낸다. 르네 마그리트의 ‘집합적 발명’을 보며 2004년 발굴된 ‘발이 달린 물고기’ 틱타알릭 화석 얘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에세이처럼 사적 취향이 물씬하다가도 묵직한 미술과 과학 영역도 ‘스리슬쩍’ 넘나드는 공력이 만만치 않다. 의외로 이 책은 친절한 교양입문서와는 상당히 질감이 다르다. 솔직히 퇴근 후 소파에 누워 편안하게 책장을 펼쳤다가 여러 차례 당황했다. 실핏줄처럼 복잡 미묘한 내용들이 머릿속에 영 착상이 되질 않았다. 책의 부제가 ‘미술, 과학을 만나다’인데 가벼운 미팅인 줄 알고 나갔더니 준비도 없이 콘퍼런스나 학술대회에 참석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했음이 분명한 정보량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여러 명의 대가가 그린 해부학 강의에 대한 그림들을 소개하면서 인체 회화론의 역사를 설명하거나 반대로 의학적 발전이 미술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 짚어보는 건 참으로 흥미롭다. 특히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뇌 해부도에 빗대어 설명한 미국 의학자의 주장은 진실 여부를 떠나 한참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펴게 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이 책에서 가장 아쉬웠던 대목과도 직결된다. 과학과 미술 관련 자료가 풍부하나, 전달하려는 바가 헷갈릴 때가 잦았다. 단적인 사례가 명화의 X선 검사를 다룬 챕터다.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은 원근법 등이 맞지 않아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다. 그런데 X선으로 촬영해 봤더니 마네가 의도한 실수였음을 일러준 건 좋다. 하지만 그게 미술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증이 풀리질 않는다. 반대로 X선이 회화의 비밀을 캐는 과학적 원리도 자세하지 않다. 미술이란 여성이 맞선에 나가 과학이란 남성을 만났다 치자. 소감을 물었더니 “괜찮긴 한데, 뭔가 얘기를 하다 말다 해”라고 삐죽거릴 것만 같다. 하긴, 그렇게 여지를 남겨야 보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 또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퇴계 이황(退溪 李滉)은 대중적 위상이 특별한 인물이다. 1000원짜리 지폐에 등재된 영향이겠지만 그만한 존경과 명성을 누리는 철학자도 드물다. 허나 폭넓은 인지도와 달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등 그가 설파한 사상은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 그래서 퇴계의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그의 사상을 보다 쉽게 전하려는 작업이 학계와 출판계에서 꾸준히 이어졌다. 최근 출간된 ‘퇴계처럼’(글항아리·사진) 역시 이런 노력이 깃든 작품이다.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냈던 한국국학진흥원의 김병일 원장은 특히 퇴계와 ‘여성’의 만남에 주목했다. 어머니와 아내, 며느리 등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폈다. 김 원장은 “퇴계는 위대한 성리학자임에도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낮춤과 섬김’으로 여성들을 대했다”며 “이런 배려의 인간관계야말로 후손들이 배워야 할 조선 선비의 덕목”이라고 말했다. ‘퇴계처럼’은 국학진흥원과 글항아리의 교양총서 ‘오래된 만남에서 배운다’ 첫 권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지역과 시대, 사물과의 관계를 모두 만남으로 설정한 기획으로 연간 2, 3권씩 성과를 내놓을 계획이다. 올 하반기엔 영호남 유학의 교류에 초점을 맞춘 ‘호남 선비들은 왜 경상도 땅을 밟았을까’가 나온다. 글항아리 측은 “2010년 시작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진다’와 지난해 ‘국학자료심층연구총서’에 이은 세 번째 국학진흥원과의 공동 시리즈물”이라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방글라데시는 개인적으로 그리 친숙한 나라가 아니다. 같은 아시아지만 높은 인구밀도나 빈국이란 점 말곤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1971년 파키스탄과 싸워 독립을 쟁취했다거나 미성년자 성매매가 심각하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해외 언론의 주목도도 낮아 3년 넘게 국제부에 있었어도 관련 보도를 본 기억이 흐릿하다. 그런데 최근 이 나라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 외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이달 초 방글라데시 국제범죄재판소(ICT) 수장이던 무함마드 니자물 대법관이 스스로 사임했단 기사다. 얼핏 봐선 뉴스거리가 되나 싶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 포린폴리시 등 여러 언론이 주목하며 분석을 쏟아냈다. 이들이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니자물 대법관이 이끌던 ICT 때문이다. ICT는 이름과 달리 자국 내 전쟁범죄 척결을 목적으로 2010년 설립됐다.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의 속주 ‘동 벵골’이던 시절, 이 땅의 민초들은 파키스탄군 비호 아래 알량한 권력을 누리던 세력에게 참혹한 고통을 겪었다. 갖은 탄압 아래 숨진 국민이 30만 명을 넘는다. 그러나 독립 뒤 4번이나 쿠데타가 터지는 혼탁한 정국이 지속된 탓에 관련자 처벌은 요원했다. 정치권 등엔 요직에서 떵떵거리는 전범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야의 산통 끝에 어렵사리 문을 연 ICT의 첫 재판 대상은 델와 후세인 사이디 전 의원이란 정치거물이었다. 1996년부터 12년간 의회에 머물며 현 최대 야당인 ‘자마트’ 당수까지 지냈다. 허나 조사결과 사이디는 1960년대 파키스탄 앞잡이 노릇을 했고, 양민학살에 관여한 증거도 발견됐다. 이달 말쯤 예상됐던 판결에선 극형 선고가 확실시됐다. 그런데 이 민감한 시기에 담당판사가 돌연 물러나버린 것이다. 니자물의 사퇴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폭로가 결정적 촉매가 됐다. 매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재판 도중 한 벨기에 국제변호사와 수시로 전화나 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방글라데시에선 판사가 ‘관련 없는 제3자에게 재판에 대한 의견을 듣는 행위’는 위법이다. 대법관은 “해외 판례 수집을 도왔다”고 해명했으나, 판결 문항이나 처벌 수위를 논의하는 장면이 수차례 등장했다. 게다가 정부 고위층이 자주 전화해 진행 과정을 물어본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대목까지 공개돼 니자물은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먼 나라 얘기지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아무리 정의를 지키는 ‘올바른’ 일이라도 적절한 과정을 밟지 않으면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사이디는 어떻게든 벌을 받겠지만, 현 재판은 절차상 하자로 정당성을 잃었다. 정부 역시 재판관에게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났으니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코노미스트도 승자는 아니다. 메일과 통화 녹취가 흘러나왔다는 건 누군가 불법 해킹 및 도청을 저질렀단 뜻. 그런 자료를 내밀고 원칙을 따지는 모양새도 궁색해 보인다. 실타래처럼 꼬였지만, 앞으로 진짜 놓쳐선 안 될 ‘과정’이 남아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와 사법부는 얼른 잘못을 인정하고 초심을 되찾아야 한다. 더 많은 우여곡절이 벌어져도 끈질기게 역사를 바로 세워 나갈 때 지금의 과오도 씻을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도 이를 지켜보고 지지할 책임이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그러나 정도로 돌아온다면, 결코 과정을 헛되게 하지도 않는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입사 초기에 몽골로 출장 간 적이 있다. 잠깐 짬이 나 수도(首都) 울란바토르 시내 골동품가게에 들렀는데 말굽 모양 장식품에 눈이 갔다. 주인은 칭기즈칸(1162?∼1227)이 쓰던 것이라며 우리 돈으로 3만 원쯤을 불렀다. 어이가 없었지만, 칭기즈칸이 쓰던 것이라는 걸 어찌 증명할 거냐고 물어봤다. 씩 웃던 사장은 통역을 통해 한마디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싸죠.” 칭기즈칸은 몽골에서 영웅이자 종교다. 우리에겐 아픔을 줬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을 몽골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건 당연하다. 인류 역사상 칭기즈칸만큼 넓은 땅을 차지한 패왕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이슬람의 ‘인샬라(신의 뜻대로)’처럼 몽골에선 “칭기즈칸이 지켜본다”라는 말을 수시로 쓴다. 하지만 정색하고 되씹어 보자면, 사실 칭기즈칸이 ‘어디에서’ 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 매장됐는지 문헌조차 남질 않았다. 묘를 만든 뒤 말 1000여 마리가 밟아 평지로 다져 버렸다거나 진시황처럼 수백 명을 함께 순장(殉葬)했다는 풍문만 전해진다. 수많은 세계 고고학자와 보물 사냥꾼들이 찾아 나섰지만 언제나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800년가량 미스터리였던 칭기즈칸의 무덤이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거란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UCSD)과 전미지리학협회(NGS) 몽골과학아카데미 등이 참여한 다국적 탐사단이 최근 그의 무덤이 확실시되는 장소를 찾아냈다. 앨버트 린 NGS 연구원은 “칭기즈칸의 묘로 짐작되는 건축물 토대에서 황제가 소장했음직한 13세기 유물을 다량 발견했다”라며 “위성 사진과 지질탐사자료 분석이 마무리되면 더 명확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탐사 결과가 틀림없다면 몽골 안팎을 그토록 헤맸던 이들로선 허망하게도 무덤은 의외로 코앞에 존재했다. 단서는 전설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100여 km 떨어진 헨티 산맥은 몽골 사람들이 ‘칸(군주)의 산맥’이라 부르는 곳이다. 역사가들은 그곳을 칭기즈칸의 출생지로 추정해 왔는데, 무덤 역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역사적 성취를 앞뒀지만 몽골 정부와 탐사단은 무척 조심스럽다. 자세한 정보가 공개되면 도굴꾼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몽골은 오랜 경제적 정체를 겪으며 불법 도굴과 밀수출이 성행하고 있다. 울란바토르국립대의 에르데네바트 교수는 “지난해 발견된 바얀홍고르의 황족 묘지는 발표 직후 며칠 새 뼈와 옷가지 빼곤 모두 훔쳐 갔다”라고 한탄했다. 하물며 칭기즈칸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덤빌 거란 얘기다. 게다가 묘 발굴을 신성모독이라며 내켜 하지 않는 상당수 몽골 국민의 정서도 걸림돌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다. 동북공정의 깃발 아래 칭기즈칸 역시 자기네 조상이라 우기고 있다. 이미 자국에 관련 박물관과 학회를 세웠고, 무덤 공동발굴권도 요구하고 나섰다. 밀수출 유물도 대부분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몽골 정부는 중국에 공식 항의할 수도 있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커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국력이 달리니 제 목소리도 못 내는 설움. 남 얘기로만 치부하기엔 왠지 우리도 뒷목이 뜨끔하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봉건시대 영토 전쟁을 방불케 하는 4대 제국의 패권 다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기술(IT)산업은 어떤 영역보다 변화와 부침 속도가 빠른 분야.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제국’이라 부를 만한 4대 기업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이전엔 볼 수 없던 독특한 산업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1일자)가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주목한 인터넷 IT업계의 4대 천황은 애플과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네 회사는 이미 IT라는 본연의 영역을 넘어 세계적으로 사회 문화적 파급력까지 갖춘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했다. 제국이나 거인이란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들은 애플을 제외하면 창업된 지 20년도 안 됐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위를 구축했다. 구글은 인터넷 검색 분야, 아마존은 디지털온라인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석권한 페이스북이나 ‘글로벌 브랜드 가치’ 1위에 오른 애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뜨긴 했으나 창업자들이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사업을 이끈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한 기업이 독식하던 ‘퍼스널 컴퓨터(PC) 세대’에 이어 4대 기업이 구축한 ‘모바일 인터넷 세대’는 팽팽한 긴장 속에 전장의 먼지가 자욱하다. 먼저 이들은 제국으로 올라서기 전엔 서로 막역한 공생관계였으나 지금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주적으로 변모했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 애플 이사회에 참여했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던 애플과 구글은 현재 휴대전화와 태블릿PC 시장을 놓고 첨예하고 맞붙고 있다. 애플의 소중한 판매망이던 아마존은 전자책 ‘킨들’을 내놓으며 애플의 아이패드와 경쟁 중이다. 애플도 아이튠스를 통해 아마존의 핵심인 전자책과 온라인 상거래를 위협하고 있다. 구글이 끊임없이 SNS 개발에 투자하자 페이스북도 조만간 전자상거래와 검색 분야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존 배틀 IT 애널리스트는 “이들의 싸움은 국지전에 머무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핵심사업을 겨냥해 ‘승자 독식 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전면전이지만 백병전보단 참호전 스타일이란 점도 이채롭다. 본거지까지 비워두고 뛰어드는 ‘올인(다걸기)’ 전략은 절묘하게 피하고 있다. 상대의 주력사업을 지속적으로 넘보면서도 자신의 핵심사업 역량 키우기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다른 분야도 압도하는 승리 공식이라는 게 4대 천황의 공통된 판단이다. 전쟁의 주인공은 4개 기업이지만 변수들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지금은 경쟁에 뒤처진 듯한 분위기지만 ‘과거의 지배자’ 마이크로소프트는 가벼이 볼 상대가 아니다. 최근 출시한 윈도 8.0이 어느 정도 성과를 얻는다면, 이를 기반으로 권토중래를 꾀할 수 있다. 또 다른 세력은 정부감시단체들이다. 올 하반기 미국과 유럽 행정부는 애플과 구글 등의 독점 및 탈세 혐의에 대해 면밀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가능성은 낮은 편이지만, 이들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전황은 일순 역전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대치상황이 결국 ‘슘페터 2.0 시대의 도래’를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미 경제사상가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돌풍”이 가장 적확하면서도 빠르게 적용되는 모양새란 설명이다. 즉 4강 구도는 당분간 유지되겠지만 항구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인터넷 사업은 소비자의 ‘취향’이 승패와 직결되기 때문에 유행이 바뀌면 현 체제 또한 순식간에, 그리고 송두리째 바뀐다. 살아남는 기업 역시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변화할 공산이 크다. 이코노미스트는 “네 기업이 거인으로 성장한 건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을 원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며 “덩치가 커졌다고 그 초심을 잃는다면 몰락하는 것도 금방일 것”이라고 조언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지난달 22일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새 헌법 선언문 발표로 이집트에서는 대규모 유혈시위가 벌어지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새 헌법 선언문에 반대해 대법원과 지방법원이 파업을 시작한 데 이어 2일에는 헌법재판소마저 파업을 선언했다. 사법부 전면 파업은 1919년 영국의 식민 지배에 항거해 단행된 이후 93년 만이라고 AP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이집트 헌재는 이날 예정됐던 제헌의회 해산 여부를 다루는 재판을 무기한 연기하고 파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헌재는 “친(親)무르시 대통령 시위대의 방해로 재판관의 재판정 출입마저 불가능하다”면서 “신성한 법정의 독립이 훼손된 이집트 사법 역사 최악의 날”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사법부가 이렇듯 강경한 태도로 나선 데에는 무르시 대통령과의 기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술적 판단’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스민 혁명 이후 무슬림형제단 등이 주도권을 쥔 입법부나 행정부와 달리 사법부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세력들이 여전히 주요 직책을 장악하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이 발표한 새 헌법 선언문의 ‘독소조항’이 국민적 항거에 부닥치자 사법부는 군부의 무바라크 잔존세력과 함께 세력을 회복할 수 있는 호기로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재판소 앞을 점령한 시위대의 위협”을 파업 이유로 들었지만 현장에선 경찰 통제 아래 차분하게 가두시위가 벌어지고 있을 뿐이고 재판관의 출입 역시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법부의 구(舊)세력이 꼼수를 부릴 빌미를 제공한 것은 무르시 대통령이다. 그가 발효한 새 헌법 선언문은 사법기관의 의회 해산권을 제한하고 대통령령이 최종 효력을 갖는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국민들은 ‘파라오 헌법’이라며 반발했다. 독립 성향의 알와탄과 알마스리 알윰 등 이집트 일부 신문사는 새 헌법에 항의해 4일자 신문 발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르시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정당과 단체들은 4일 대통령궁 앞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집트 사태는 무르시 대통령이 15일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새 헌법 선언문에 대한 국민투표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집트는 전통적으로 사법부가 선거나 투표를 감독하지만 전국 판사들의 대표조직인 판사회는 헌재 파업과 동시에 선거 감시 업무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새로운 감시기구를 조직해 투표를 일정대로 진행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중동 문제 전문가인 캐나다 오타와대 피터 존스 교수는 “현재 이집트의 통치 방식은 무바라크 시대와 마찬가지로 국민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권위적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다”며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세력은 그 어느 쪽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꿋꿋이 마약 범죄조직들과 맞섰던 멕시코의 전직 여성시장이 끝내 갱단의 보복으로 목숨을 잃었다.미국 CNN방송은 28일 “12일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던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전 티키체오 시장(36·사진)이 22일 시 외곽 고속도로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멕시코 남서부 미초아칸 주에 있는 티키체오 시는 인구 1만 명이 조금 넘는 소도시지만 마약 카르텔과 무장갱단의 주요 활동거점이어서 흉악범죄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의사 출신인 고로스티에타 전 시장은 2008년 시장에 취임한 뒤 악명 높은 도시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갱단의 위협에도 “시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옳은 일을 할 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며 신념을 지켰다. 2009년 무장괴한의 테러에 남편을 잃었고, 2010년엔 자신도 옆구리 등에 총상을 3군데나 입었지만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지난해 임기를 모두 채우고 물러날 때도 “신은 내게 시민의 안녕을 위해 헌신할 고마운 기회를 주셨다”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고로스티에타 전 시장은 호심탐탐 그를 노리던 마수를 결국 피하지 못했다. 납치된 날 딸을 등교시키려 차를 몰고 가다 무장괴한들에게 끌려갔으며 열흘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총상은 없었으나 두 손이 묶인 채 둔기에 머리를 강타당한 흔적이 있었다. 미초아칸 주 경찰은 “의심할 바 없는 범죄조직의 흉악한 살인”이라며 “관련자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중국 정부가 28일 “류치바오(劉奇보) 공산당 중앙선전부장이 29일부터 이틀간 북한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이번 방북은 중국이 제18차 전국대표대회(18차 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체제가 구축된 이래 첫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다. 류 부장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나 시 총서기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중국 지도부가 북한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대해 자제를 당부하거나 시 총서기가 김 제1비서를 중국에 공식 초청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연이겠지만 최근 나갔던 몇몇 모임에서 똑같은 TV프로그램 하나가 수다 거리로 등장했다. 채널A의 ‘잠금 해제 2020’이란 시사보도물인데, 11일 방영한 “강남 엄마가 제주도로 간 까닭은”을 놓고 쉴 새 없이 품평이 오갔다. 방송이 다룬 제주국제학교에 대해 자식 가진 부모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학비나 교육효과 등을 놓고 가치관과 여건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렸지만, 누군가의 한마디엔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젠 개천에선 용(龍)이 나질 않아. 용도 다 자연산이 아니라 양식이거든.” 이무기가 꼭 승천해야 좋은지는 의문이지만 요즘 미국도 용이 사라진 개천을 두고 고민이 많다.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보고서를 보면 상위 146개 대학에 다니는 학생 가운데 겨우 3%만이 저소득층(하위 25%) 가정 출신이다. 문틈이 좁아지다 못해 거의 닫히다시피 했다. 어렵사리 대학에 가더라도 비싼 등록금은 또 다른 난관이다. 기숙사비 등을 포함해 연간 학비가 대략 3만4000달러(약 3700만 원)에 이른다. 중산층조차 학자금 융자에 기댈 수밖에 없다. 형편 따라 다를 테지만 단순히 계산하면 학생 1명당 2만6600달러의 빚을 지고 졸업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자식의 대학 진학을 반대하는 부모도 꽤 많단다. 하지만 돈 없다고 공부에 대한 갈망마저 사라지는 건 아닐 터. 그래서 최근 현지에서 대안으로 각광받는 게 온라인강좌다. 아이비리그 명문대가 만든 웹 사이트 교육과정은 내용이 알차면서도 저렴하거나 무료로 제공돼 호평을 받는다. 특히 스탠퍼드대가 개설한 사이버대학 ‘유다시티(Udacity)’는 높은 미국 대학 문턱에 아쉬웠던 해외 학도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현재 수업을 듣는 가입자의 국적이 200개국을 넘는다. 인터넷과 대학의 ‘마리아주(mariage·결합)’가 빚어 낸 미담도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파키스탄 10대 소녀 니아지는 지난달 유다시티의 물리학 강의를 듣다 봉변을 당했다. 자국 정부가 최근 시끄러웠던 반(反)이슬람 영화 유입을 막는답시고 미국 서버 접속을 차단한 것. 마지막 시험만 남겨 놓고 절망에 빠진 소녀를 구한 건 함께 수업을 듣던 전 세계 동료였다.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독일 40대 직장인은 시험 동영상을 내려받아 보냈다. 한 포르투갈 청년은 소녀의 답안지를 대신 등록해 줬다. 일면식 없는 학우들의 십시일반으로 니아지는 마침내 수료증을 획득했다. 타임은 “배움에 대한 목마름은 그 어떤 장벽도 뛰어넘는다”라고 극찬했다. 현실도 과연 그러할까. 학구열이 진정 모든 걸 넘어서려면 사회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미 인적자원관리협회(SHRM)는 올해 하반기 기업 인사 담당자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약 70%가 온라인 대학이 정규과정으로 인정받더라도 비슷한 조건이면 기존 대학을 ‘제대로’ 다닌 구직자를 뽑겠다고 응답했다”라고 전했다. 물론 캠퍼스 체험의 가치를 무시할 수야 없겠지만 취업하려면 등골 빠지게 간판을 따란 소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좋은 교육은 연봉을 올리고, 위대한 교육은 인생의 방향을 튼다”라고 말했다. 뭐가 위대한 건진 잘 모르겠다. 다만 산골짝 실개천이 실해야 용이 나고 아우라지 강도 풍요롭다. 양식도 자연산과 공존해야 품질이 좋아진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12일 “영국 플리머스대 심리학 연구진이 성인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한 결과 어렸을 때 매를 맞거나 심한 꾸지람을 들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 발병률이 평균 70%가량 높았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천식이나 심장질환 발병률도 각각 약 60%, 30% 높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체벌이 건강에 나쁜 이유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계가 깊다. 체벌의 강도가 아무리 약해도 아이가 받는 감정적 충격은 클 수 있기 때문. 충격이 지속되면 정신적 외상으로 이어져 신체 면역력도 떨어뜨린다. 연구를 이끈 마이클 하일랜드 박사는 “기존 연구결과에 따르더라도 어린 시절 학대행위를 겪으면 여러 형태의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며 “꾸짖을 땐 아이들이 정서적 혼란을 겪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애플의 시대가 저물고 있을지도 모른다.”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마이클 울프가 ‘정보기술(IT) 산업의 거인’인 애플이 최근 잦은 논란 속에서 최강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울프는 12일(현지 시간) 미 일간지 유에스에이투데이에 기고한 칼럼에서 “제너럴모터스(GM)나 IBM,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여러 세대를 풍미했던 회사들과 달리 애플의 지배적인 위치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애플의 아성이 흔들린다고 판단한 근거는 단순한 정황이 아니라 실제 벌어지는 현실에 기초한 것이다. 9월 이후 애플 주식 가격은 20%가량 폭락했다. 한때 스마트폰 시장은 아이폰과 그 아류로 구분됐으나 이젠 안드로이드폰이 더 많이 팔린다. 태블릿PC 시장점유율도 지난해 60%가 넘었으나 지금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시장 판세는 ‘애플 vs 삼성 연합군’으로 재편됐고 삼성은 막강한 시장 장악력과 광고예산으로 애플의 신화를 위협하고 있다.애플이 고전하는 첫 번째 요인은 고 스티브 잡스 창업자의 부재다. 울프는 “잡스의 신격화는 독특한 IT업체였던 애플을 시대의 화두로 끌어올리는 ‘애플리즘’을 양산했다”며 “하지만 휴대전화나 태블릿PC가 보편화되면서 브랜드 이미지로 시장을 독식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애플이 가격과 원가절감이 아니라 명성에 안주하거나 잡스가 남긴 영향력으로 시장경쟁력을 기대하는 데 한계가 있단 설명이다.애플 내부의 권력투쟁도 우려를 증폭시켰다. 스콧 포스톨 수석부사장과 존 브로윗 소매사업 부문 책임자의 사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잡스만큼 영향력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애플의 권위적인 판매정책도 과거엔 카리스마 넘치는 책임감의 발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소비자를 무시하는 처사로 비난받고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투표소에 경찰을 배치하지 않는다고요? 신분증이 없어도 투표를 할 수 있어요? 그게 정말 가능합니까.” 6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견학한 세계 각국의 선거 관리자들이 미 선거 시스템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전했다. 나흘간 선거 진행을 지켜본 그들의 눈에 비친 미국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 부정을 저지를 수 있을 만큼 허술해 보였기 때문이다. 예멘과 잠비아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60여 개국에서 온 국제선거제도재단(IFES) 소속 선거 담당자들이 가장 놀란 것은 대다수 주에서 별다른 신분 확인 없이 투표가 가능하단 점이었다. 우편이나 온라인 투표도 마찬가지였다. 리비아에서 온 누리 엘라바르 씨는 “믿을 수가 없다”며 “아랍에선 이런 시스템을 악용해 여러 번 투표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투표소에 경찰이나 선거를 감시하는 인력이 따로 없다는 점도 신기해했다. 그럼 선거가 안전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는지 누가 관리하느냐는 반문이다. 미국인들은 경찰 배치를 불편하게 여기는 데다 제한된 선거 관리 인력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정당에서 파견한 참관인들이 투표를 지켜본다는 설명에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선거 뒤 남은 투표용지 처리 방식도 화제였다. 미국은 개표요원이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현장에서 처리하거나 수거해 가는 게 일반적이다. 모로코는 남은 용지를 현장에서 소각하고, 러시아는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오용될 위험을 막는다. 주마다 선거 스타일이 제각각인 점도 얘깃거리였다. 메릴랜드 주는 이미 전자투표가 일반화됐는데, 워싱턴 주는 여전히 종이 기입이 주된 투표방식으로 남아 있다. 미국에선 유권자들이 당일 투표소 명단에서 이름을 찾지 못해도, 일단 투표한 뒤 며칠 뒤에 신분을 입증해도 된다는 점도 인상적으로 꼽았다. IFES 담당자들은 이 같은 선거는 미국에서나 가능하다며 이를 미국이 가진 ‘신뢰의 힘’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라 알우타이비 요르단 선거감독관은 “미 선거의 가장 놀라운 점은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이를 별 탈 없이 꾸려 나가는 유권자와 선거기관”이라고 말했다. 레바논에서 온 담당자는 “꾸준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제도를 정착시킨 선거 선진국만이 가능한 일”이라며 “중동이나 아프리카는 현실적으로 당장은 불가능하다”라고 평가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번 선거를 통해 여러분은 우리의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싸운다는 것을 일깨워 줬습니다. 중산층의 새 일자리와 새로운 기회, 그리고 안전을 위해 계속해서 싸워 나갈 것입니다.” 이변은 없었다. 선거 며칠 전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조심스레 점쳐졌던 미국 대통령선거는 결국 현직 대통령의 승리로 결론 났다. 투표가 마무리된 직후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우세가 예측되더니 격전지로 꼽히던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주 등을 대부분 쓸어 담으며 승기를 굳혔다. 6일 오후 11시(미국 동부시간·한국 시간 7일 오후 1시)경 CNN방송과 뉴욕타임스, MSNBC 등 주요 언론은 출구 예측조사를 바탕으로 일제히 ‘오바마 재선 성공’을 발표했다. 발표 직후 일리노이 주 시카고의 오바마 대통령 선거본부 인근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은 큰 함성으로 승리를 자축했다.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2개(재선) 또는 4개(임기 4년 더)를 펴 보이며 기뻐했다. 워싱턴 백악관 인근과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 등에도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반면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의 밋 롬니 공화당 후보 선거본부에 모인 지지자들은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소감 연설은 7일 0시 반경 시카고 컨벤션센터 매코믹플레이스에서 이뤄졌다. 뜨거운 환호 속에 부인 미셸 여사와 두 딸을 대동하고 연단에 올라 “미국의 대통령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롬니 후보를 위로하며 “서로 맹렬히 싸웠지만 양 진영 모두 미국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었다”며 “조만간 그와 마주앉아 미국이 나아갈 길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허리케인 샌디 희생자들과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군인들을 언급하며 “미국을 강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운명을 함께하며 서로 책임을 나눌 때 나라를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앞서 미 언론들은 6일 오후 8시경 투표가 종료되자 곧장 양 진영의 선거인단 확보 현황을 생중계했다. 오하이오를 잃고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법칙은 이번 선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CNN방송이 이 지역 판세를 ‘오바마 51% 대 롬니 48%’로 발표하자 오바마 대통령 진영은 일찌감치 과반수(270명) 확보를 자신하며 승리를 예감했다. 뉴욕타임스가 한때 오하이오 주에서 롬니 후보 우세를 전망했으나 곧 전세가 역전됐다. 롬니 후보 측은 초기 2시간가량 텍사스 등 우세한 주들이 먼저 발표돼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 앞서가자 실낱같은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스윙스테이트(경합 주)로 꼽혔던 11개 주에서 대부분 밀리며 분위기가 급속도로 암울해졌다. 오하이오 주는 물론이고 몇 주 전만 해도 다소 우세하리라 관측됐던 ‘남부 최대 격전지’ 플로리다에서까지 뒤처지며 결정타를 맞았다.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콜로라도 아이오와 뉴햄프셔 등 나머지 주요 경합 주도 오바마 대통령이 2∼7%포인트 이긴 것으로 드러났다. 선거인단도 처음엔 오바마 대통령이 겨우 마지노선을 넘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였다. 뉴욕타임스는 7일 오전 2시경 “오바마가 이미 303명을 확보해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플로리다 선거인단 29명을 롬니(206명) 측이 가져가도 대세는 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플로리다는 현재 오바마 대통령이 약 0.53%포인트 앞선 것으로 1차 개표를 마쳤으나 법적으로 규정된 재검 기준(0.5%)에 근접해 확정을 미뤘다. 이로써 접전 지역의 재검표로 인해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선거 이전의 우려도 사라졌다. ‘선거는 이겨도 득표율은 뒤질 것’이란 전망과 달리 총 득표수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CNN방송은 7일 오전 9시 현재 “오바마가 약 5959만 표(50%)를 얻어 롬니(약 5697만 표)보다 2%포인트(약 262만 표)가량 많이 획득했다”고 보도했다. 나이별로는 44세 이하는 오바마 대통령(56%)을, 45세 이상은 롬니 후보(53%)를 더 많이 지지했다. 지역별로는 도시는 오바마 대통령(62%)이 농촌은 롬니 후보(59%)가 우세했다. 여성은 55%가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 반면 남성은 52%가 롬니 후보를 지지해 성별 투표 성향도 달랐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사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2시간 후인 오전 1시경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컨벤션센터 패니얼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웃는 얼굴로 연단에 올라 “방금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전했다”며 “지금은 미국의 중요한 순간이므로 정치적 대결에 골몰하기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돼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지만 국민은 다른 리더를 선택했다”며 “이제 국민의 한 명이 돼 그의 리더십을 따르겠다”고 연설을 마쳤다. 롬니 패배에 침울해 있던 관중들은 긍정적인 연설에 큰 박수를 보냈으며 일부 지지자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당초 승리 연설만을 준비했던 롬니는 오바마의 승리가 확정된 후 급히 패배 연설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롬니는 베인캐피털 경영 등 성공적인 기업가 전력을 내세우며 대선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기업가 전력은 그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오바마 진영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해외 일자리 유출과 세금 미납 의혹, ‘부도덕한 기업가’ 이미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잇단 말실수와 모르몬교 신자라는 약점 등으로 지지율 부진에 시달렸던 롬니는 10월 초 대선 1차 TV토론에서 오바마를 압도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선 직전 발생한 허리케인 ‘샌디’ 이후 민심은 다시 오바마에게 기울었다. 롬니는 ‘0.01% 초(超)부유층’ 집안의 2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아메리칸모터스 회장인 아버지 조지 W 롬니는 미시간 주지사와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을 지내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까지 나선 거물이었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도 대선 도전에 실패한 셈. 어머니 역시 미시간 주 상원의원에 도전한 경력을 갖고 있다. 아버지에게서 사업가 DNA를 물려받은 그는 1984년 베인캐피털을 창립해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다가 1999∼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200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당선된 그는 민주당이 장악한 주의회와 초당적 협력을 통해 당시 각종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롬니가 ‘회생 전문가’란 별명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2008년 공화당 경선에서 패배한 후 절치부심해 올해 대선후보로 나섰던 롬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인적인 유세 일정을 소화하며 경합 지역을 누볐지만 대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인 앤 롬니는 지난달 ABC방송에 출연해 “남편이 이번 대선에서 패하면 더는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롬니는 경영 일선에 나서거나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계의 거물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다만 보수진영의 결집을 촉구하는 공화당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는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살다 보니 명절은 참 이중적이다. 가족이 모여 맛난 음식을 먹으니 좋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 쉼표를 얻는 것도 기쁘다. 하지만 행사치레에 지쳐 드러눕는 주부가 많다. 백수나 주머니 빠듯한 월급쟁이도 부담이 크다. 물가는 또 어찌나 뛰는지. 그런데 말 많고 탈 많은 명절 풍경이 꼭 우리네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10월 31일 서양 명절 핼러윈을 맞은 미국의 씀씀이는 엄청났다. 전미소매업연합회(NRF)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이 ‘뜨거운 밤’을 위해 80억 달러(약 8조7600억 원)를 썼다. 지난해 69억 달러보다 17% 늘어 사상 최고액을 경신했다. 미국답게 애완동물도 축제를 즐겼다. 강아지 분장, 고양이 사탕 등에 3억7000만 달러를 소비해 역시 최고점을 찍었다. 올해 핼러윈 대박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했다. 대선을 치르는 해면 투표를 앞두고 이래저래 돈이 좀 풀렸다. USA투데이는 “올림픽과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히트 등 흥행 호재 요인이 많았던 것도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안 그래도 파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데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다. 하지만 테이블 아래를 들쳐 보면, 실상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이렇게 소비가 커진 건 여러 악재가 겹친 물가 폭등이 주범이다. 올해 미국이 21세기 최악의 가뭄을 겪는 바람에 ‘핼러윈의 상징’ 호박 값이 가파르게 뛰었다. 중국 경기 둔화와 임금 상승은 ‘메이드 인 차이나’ 파티복과 장식 가격을 올려 놓았다. 어린이 비만 논란이 일면서 비싼 유기농 캔디가 많이 팔린 것도 한몫했다. 사정이 이러니 축제가 드리운 그림자도 짙었다. 델라웨어 주립대 학생신문은 최근 ‘바느질에 빠진’ 신(新) 캠퍼스 풍속도를 조명했다. 턱없이 오른 학비도 버거운 마당에, 괜찮다 싶으면 1000달러씩 하는 파티 의상은 그림의 떡이었을 터. 결국 직접 옷을 지어 조촐하게 명절을 맞는 학생이 많았단 얘기다. 서부 지방지 ‘새크라멘토 비’는 이런 이들을 위해 유행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저렴한 핼러윈 의상들을 제안했다. 그중 하나는 ‘싸이’ 차림새다. “장롱에 모셔 뒀던 정장을 꺼내 입고 선글라스만 착용하면 당신도 패션 피플”이란다. 이 정도면 웃고 넘기겠지만, 사뭇 진지한 갈등도 있다. 폭스뉴스는 “핼러윈을 금지하는 초등학교가 늘어 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하다”고 전했다. 빈부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는 파티로 가난한 학생들의 맘을 생채기내지 말자는 게 학교 측 논리다. 안 그래도 ‘골칫거리’인 핼러윈을 피해 가고 싶은 속내도 크다. 일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해골이나 귀신 분장을 악마 숭배라며 비난해 왔다. 서구적 축제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민자 가족들도 있다. 이런 판국에 학생 평등권 추구란 적당한 명분이 생긴 셈이다. 사연이야 제각각이지만 이런 논의들 속엔 ‘앙꼬’가 빠져 있다. 2000여 년 세월이 깃든 핼러윈의 본질은 어린이들의 축제란 점이다. 꼬마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스스로 잔치를 준비하고, 이웃집에 사탕을 조르며 마을 어른께 인사드리는 따사로운 미풍양속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성인들의 논리로 물든 핼러윈을 이젠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라고 개탄했다. 동심을 멍들게 하는 건 경제니 뭐니 그런 게 아니다. 색안경을 쓴 채 그걸 강요하는 어른들 심보가 문제다.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미국에서 뇌염의 일종인 ‘웨스트나일열’로 인한 사망자가 올해만 200명이 넘으며 관련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고 로이터통신이 24일 보도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로 지난주 36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올해 들어 사망자는 216명, 감염자는 4725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2002년 284명, 2003년 264명이 각각 숨진 이래 가장 많은 인명 피해다. 이 바이러스는 대부분 모기를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주로 따뜻한 지역의 피해가 컸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루이지애나 등 8개 주가 미국 전체 발병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한국에서 4군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돼 있는 웨스트나일열은 17일 국내 첫 환자가 발생했다. 대인 접촉으로 옮겨지지는 않지만 드물게 수혈이나 장기 이식으로 전염돼 뇌염 수막염으로 번질 수 있다. 건강한 성인은 감염돼도 자연 치유되지만 면역체계가 약한 어린이나 노약자는 뇌염 수막염으로 번질 수도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