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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여제’ 린지 본(35·미국)이 조만간 은퇴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은 20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린 2018∼2019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여자 알파인 슈퍼대회전 경기에서 완주에 실패했다. 지난해 11월 캐나다에서 열린 월드컵을 준비하던 중 왼쪽 무릎 부상으로 한동안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본은 이번 주 시즌 첫 경기에 나섰다. 18일과 19일에 진행된 활강 경기에서 15위, 9위로 선전한 본은 하지만 이날 경기 도중 기문을 놓치면서 코스에서 이탈했다. AP통신은 “본이 은퇴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전망했다. 본은 시즌 개막에 앞서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AP통신은 “본의 무릎 상태가 더 우승하기에는 힘이 부족하고, 통증도 심한 상태다. 본이 곧바로 은퇴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예상했다. 본 역시 이날 완주에 실패한 이후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경기를 마친 직후라) 감정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월드컵 통산 82승으로 여자 선수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본은 앞으로 4승을 더하면 남녀 통틀어 최다 우승 기록인 잉에마르 스텐마르크(스웨덴)의 86승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한편 2017년 삿포로 아시아경기 금메달리스트인 알파인 스키 간판 정동현(31·하이원리조트)이 FIS 월드컵에서 2년 만에 20위권 순위를 회복했다. 정동현은 이날 스위스 벵겐에서 열린 2018∼2019 FIS 월드컵 남자 회전에서 1, 2차 합계 1분48초46으로 74명 중 20위를 기록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경기도태권도협회를 특정감사했다. “협회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제보 80여 건이 이 시기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제보 중에는 “경기도태권도협회 임원 A 씨가 직원 B 씨를 성추행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문체부는 “경기도태권도협회의 상급 기관인 경기도체육회가 해당 내용을 상세히 조사하고 A 씨를 징계하라”는 내용을 포함해 총 32건에 대해 처분을 명령했다. 현재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는 이처럼 종목·지역단체가 상급 기관으로부터 처분 명령을 받을 경우 3개월 안에 경과를 보고하게 돼 있다. 하지만 경기도태권도협회는 일부 재심을 청구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성폭력과 관련해서는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고 관련 내용에 대한 보고도 하지 않았다. 문체부에서 수차례 공문을 보내고 전화를 거는 등 협회를 압박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규정에 ‘보고해야 한다’는 의무는 있지만 보고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할 근거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급 기관의 명령에도 징계 절차를 밟지 않는 체육단체를 앞으로는 정부가 직접 징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처분 명령을 받은 단체가 3개월 안에 경과를 보고하지 않을 경우 해당 단체와 업무 당사자를 징계할 수 있는 규정을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명문화하는 내용이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8일 심석희 선수가 스포츠계 미투 운동을 촉발한 지 3일 만인 11일 관계단체 회의를 소집해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문체부 관계자는 “이번 회의에서는 보고 누락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하고 가해자를 감싸는 구조를 만든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성폭력 사실을 은폐할 경우 단체를 퇴출시키겠다는 대한체육회 발표보다 더 강화된 규정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맷 버즈비, 알렉스 퍼거슨의 뒤를 잇는 ‘레전드’ 감독이 탄생할 수 있을까. 적어도 부임 직후 한 달간 성적만 보면 이미 두 선배 감독을 뛰어넘었다. 지난해 12월 19일부터 감독 대행을 맡은 올레 군나르 솔셰르(46·사진)가 맨유의 고공비행을 이끌고 있다. 솔셰르는 맨유 지휘봉을 잡은 뒤 연전연승이다. EPL에서 6연승을 질주했다. FA컵을 포함하면 7연승이다. 신임 감독이 부임 후 거둔 팀 최다 연승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1946년 버즈비가 기록했던 부임 직후 4연승이다. 2009년 리그 9연승 기록을 세우며 맨유의 전성기를 지휘한 퍼거슨조차 1986년 부임 직후에는 2연승도 챙기지 못했다. 솔셰르 직전 경질된 전임 감독 조제 모리뉴는 부임 직후 2연승을 올린 바 있다. 역대 EPL 전체 감독 중에서도 부임 후 리그 6연승을 올린 감독은 카를로 안첼로티 전 첼시 감독과 페프 과르디올라 현 맨체스터시티 감독 등 3명뿐이다. 맨유의 최다 연승 기록은 1904년 10월∼1905년 1월에 걸쳐 쌓은 14연승이다. EPL 최다 기록은 맨시티가 2017년 말 기록한 18연승이다. 솔셰르는 첫 경기부터 남달랐다. 지난해 12월 23일 카디프시티와 맞붙은 리그 18라운드 방문경기에서 5-1로 대승을 거두며 처진 팀 분위기를 한 번에 반전시켰다. 맨유는 이 경기에서 이번 시즌 처음으로 한 경기 5골을 기록했다. 같은 달 27일 허더즈필드타운과의 안방경기를 3-1로, 31일 본머스와의 안방경기도 4-1로 각각 이겨 팬들에게 시원한 승리를 선물했다. 새해에도 뉴캐슬, 레딩, 토트넘, 브라이턴을 차례로 꺾으며 맨유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하게 새기고 있다. 솔셰르는 팬뿐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높은 평판을 받고 있다. 모리뉴 전 감독과 마찰이 잦았던 폴 포그바는 솔셰르에 대해 “선수들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고 있다”며 “페널티 박스 안으로 파고들어 득점 기회를 만드는 나를 믿어주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는 “솔셰르가 감독 대행을 맡은 후 맨유는 더욱 공격적인 팀이 됐다”며 “13번 리그 우승을 할 때 볼 수 있던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대한체육회가 성폭력 관련 대책을 졸속으로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성폭력 관련 조사를 외부 기관에 의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해당 기관과는 사전에 업무 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15일 이사회에 앞서 잇따른 체육계 ‘미투’ 폭로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폭력, 성폭력 관련 사안 처리는 외부 전문기관, 시민·사회단체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등에 전격 기관 의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이날 유일하게 구체적인 기관명을 언급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측과 공식적인 사전 협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본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 회장은 대책 발표 하루 전날인 14일 오후에 진흥원을 찾아가 체육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미투 폭로에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 상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식적인 제안 및 결정은 없었다. 진흥원 관계자는 “대한체육회에서 진흥원을 방문했을 당시 시민단체, 분야 전문가, 관계부처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며 “상의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적인 양해각서(MOU)를 맺거나 조사를 수락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진흥원 직원은 15일 언론 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이 내용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인권진흥원은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대한체육회 측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외부에 조사를 의뢰할 기관의 ‘예’를 든 것뿐”이라며 “현재 다수 기관과 조사 의뢰에 대한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대한체육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진흥원은 여성가족부 산하로 정부 간 조율이 필요해 빠른 시간에 협의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진흥원을 방문한 시점은 8일 빙상 종목에서 성폭력 피해 폭로가 나온 지 7일 만이고 14일 전직 유도선수가 실명으로 미투 운동에 동참한 직후다. 대한체육회 측은 14일 이전에도 이 회장이 다른 여성단체 등을 찾아간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여성 인권 단체 등과 통화를 직접 하신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한체육회는 17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비공개로 열릴 예정이던 2019년도 국가대표 훈련개시식을 잠정 연기했다. 당초 대한체육회는 해마다 공개 행사로 개최하던 훈련개시식을 성폭력 사태를 이유로 들어 사상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해 선수촌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난에 휩싸였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행사를 주관할 신임 선수촌장과 사무총장 인선을 매듭짓지 못해 미루게 됐다. 추후 일정은 다음 달 설 연휴 이후로 잡힐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31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15일 발표하려다가 미룬 신임 선수촌장과 사무총장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원주 takeoff@donga.com·김종석 기자}
정부와 정치권이 공동으로 스포츠계 폭력, 성폭력 등을 전담 조사하고 처벌하는 권한까지 가진 독립기관 설립을 추진한다. 이는 ‘비위 관련 조사는 외부에 의뢰하겠지만 최종 징계 권한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대한체육회의 입장과 다른 것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 대책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오영우 문체부 체육국장은 “국가대표선수 관리와 운영 실태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체육계 비위 업무를 전담하는 독립기관인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 국장은 “그동안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합동으로 빙상 선수 폭행 등 체육계 비리 사항에 대해 자체 감사를 실시해 왔으나 또다시 성폭력 비위 파문이 발생함에 따라 대국민 신뢰 확보 차원에서 이달 11일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공익 감사는 공공기관의 사무 처리가 위법하거나 부당해 공익을 현저히 해한다고 판단되는 특정 사항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는 제도다. 문체부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단과 함께 문체부나 대한체육회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스포츠윤리센터를 설립할 수 있도록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스포츠윤리센터가 설립되면 선수나 지도자, 종목단체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박인숙 자유한국당 문체위 간사는 “더 이상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며 “스포츠계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여야 이견이 없기 때문에 법안 통과까지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가 15일 체육계 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처벌에 대한 최종 권한은 놓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혼선이 예상된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성폭력 사건이 또 발생할 경우 여성인권진흥원 등 외부 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는 조사에 한정된 것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외부기관에서 중징계 경징계 등의 판단을 내리면 그 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한체육회가 징계 수준을 최종 결정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한편 문체부는 체육계 성폭력 사안을 조사할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직접 조사하는 방안도 추가로 검토 중이다.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특별전담팀을 구성해 성폭력 조사 과정을 전면 재검토하고 조사 과정과 징계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안영식 ysahn@donga.com·이원주 기자}

“이제는 ‘키움 히어로즈’라고 불러주세요.” 키움증권을 새 메인 스폰서로 맞이한 프로야구단 서울히어로즈가 15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포시즌스호텔 서울에서 출범식을 열고 새 구단 엠블럼과 유니폼을 공개했다. 선수들은 이번 시즌부터 가슴에 ‘KIWOOM’이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게 된다. 넥센 시절 하늘로 상승하는 듯한 느낌의 글자체와 히어로즈의 상징색인 짙은 와인색 ‘버건디’는 그대로 계승했다. 키움증권의 상징색은 밝은 분홍에 가까운 ‘마젠타’이지만 팀 상징성을 고려해 현재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현 키움증권 대표는 자사(自社) 온라인 주식거래 프로그램 이름이 ‘영웅문’인 점을 강조하며 “특별한 인연이 우리를 맺어줬으니 함께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국민거포’ 박병호를 비롯해 서건창 김하성 최원태 이정후 등 팀의 스타 선수를 비롯한 선수단이 총출동했다. 박병호는 “새 이름으로 뛰는 첫해인 만큼 2019년을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건창도 “선배와 후배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서 팀이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넥센 히어로즈’는 4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와일드카드전에서 KIA를,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꺾으며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작년 우승팀 SK와이번스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명승부 끝에 아쉽게 석패했지만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주로 학생들을 집에 바래다준다며 태우고 갔던 승합차에서 일어났어요. 내릴 코스와 상관없이 그날 마지막으로 내릴 사람을 지정했어요. 그러고는 인근 야산으로 몰고 가…. 체육관 승합차 엔진 소리를 아직도 기억해요. 아직도 비슷한 소리를 들으면 ‘나를 잡으러 왔나’ 하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곤 합니다.” 이번엔 태권도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전 유도선수 신유용 씨에 이어 태권도계에서도 피해자가 자신의 실명을 밝히며 관련 사실을 알렸다. 전 대한태권도협회 이사 A 씨가 운영하던 태권도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웠던 이지혜 씨(33)는 15일 본보와 채널A의 인터뷰를 통해 피해 내용을 말했다. 이 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A 씨에게 폭력과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이 씨에 따르면 당시 태권도를 배우던 많은 원생이 피해를 입었고 중학생 때부터 수십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이도 세 명이나 된다. 이 씨에 따르면 A 씨는 체육관과 합숙소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폭력을 일삼았다. 운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신체 변화를 알아야 한다며 신체를 만지고 성폭력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A 씨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온몸이 얼어붙는다. 늦은 밤 큰 쓰레기봉투를 보고 (A 씨인 줄 알고) 주저앉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 가운데는 당시 악몽으로 자살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이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관장에게 간식거리와 체육관 비품 등을 제공했던 부모님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하시겠나. 관장에게 맞아 허벅지에 피멍이 들어도 긴 바지를 입어 가리곤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생에 걸쳐 마음을 짓누르던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이들은 용기를 냈다. 이 씨를 비롯한 피해자 15명이 피해자연대를 꾸려 지난해 4월 대전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현재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당시 피해로 인해 지금까지도 극심한 심리적 장애(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현재도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이때는 처벌이 가능하다.A 씨 측은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A 씨의 동생 B 씨는 “재판 중인 사항이고 결론이 나지도 않았는데 자꾸 문제 삼는 건 누군가 피해자들을 꾀어 이 일을 터뜨린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형은 결백하다고 믿는다. 성폭행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스포츠계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이 잇달아 불거지고 있지만 대한체육회는 형식적인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이날 “그동안 내부 관계자들이 징계·상벌에 관여함으로써 자행되어 왔던 관행과 병폐에 대해 자정 기능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했다. 체육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관련 내용을 선후배 체육인들이 심의하고 징계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벌어진 데 대해 사과한 것이다. 이어 체육인이 아닌 제3자가 신고를 받고 조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겉치레일 뿐이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묻자 대한체육회 측은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외부 여성 기관 등에 범죄의 경중을 묻고 그 결과를 전달받을 예정이다. 그 후에 징계 수위에 대해서는 대한체육회가 자체적으로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제 식구 감싸기의 핵심 문제였던 대한체육회의 자체 징계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이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조응형 yesbro@donga.com·이원주 기자 / 이서현 채널A 기자}

선수촌에서 도망쳐 보기도 했다. 경찰에 고소를 해 보기도 했다. 그래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졌던 심석희 선수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언론이다. 전 유도선수 신유용 씨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리려 했다. 성범죄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2차 피해에 노출된다. 그런 고통을 감수하고 언론이나 SNS에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할 경우 가해자는 솜방망이 징계를 받고 피해자는 계속해서 고통받는 구조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본보가 11일 단독 보도했던, ‘성추행 쇼트트랙 코치의 징계를 감경한 선수위원회 속기록’에도 이런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체육계에서는 “특수한 사례다”라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럼 이런 사례들은 어떨까. 지난해 5월 한 고등학생 승마 선수가 “지도자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며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 신고했다. 대한체육회는 이를 직접 조사하지 않고 대한승마협회에 조사하라며 내려보냈다. 6개월 뒤 승마협회는 대한체육회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합의했다”고 보고했다. 징계는 없었다. 이런 사례도 있다. 2017년 5월 한 대학교의 양궁 선수가 “동료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들었다”며 대한체육회에 신고하는 동시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안은 현재까지도 조사가 끝나지 않고 있다. 대한체육회 측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원 판결 전까지 조사를 중지했다”고 설명했다. 승마 선수가 승마협회가 아닌 대한체육회에 신고한 이유는 승마인이 아닌 상급단체 조사 담당자들이 조사해 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양궁 선수가 법원 소송과 별도로 대한체육회에 신고한 이유는 긴 시간이 걸리는 법적 절차와 별도로 가해자가 조사와 징계를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는 이런 선수들의 ‘알려지지 않은 간절함’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관련 내용이 알려지고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면 달라진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조재범 전 코치를 영구 제명하는 징계를 14일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유도회 역시 19일 이사회를 열어 신유용 씨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코치를 징계할 방침이다. “신 씨가 SNS에 해당 내용을 올린 지난해 말부터 사안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법원 판결을 기다리느라 징계를 미뤘다”는 지금까지의 태도와 다르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쉴 틈 없이 터지는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뉴스를 보면서 체육계의 자정 능력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떤 경우에도 이를 성역 없이 집행하겠다는 체육인들의 의지다. 지금 체육계가 해야 할 건 대책 발표뿐만아니라 다시는 부당하게 징계를 낮추는 회의록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실천 의지’를 다잡는 일이다. 이원주 스포츠부 기자 takeoff@donga.com}
대한체육회가 직접 운영하는 피해 신고센터인 ‘클린스포츠센터’에 지난 1년 사이 선수나 지도자들에게서 접수된 성폭력 관련 신고가 단 1건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체육회가 8일 발표한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서는 이 기간 73명이 총 136건에 이르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답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피해를 입고도 신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11일 동아일보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실과 함께 입수해 분석한 ‘2017년 1월∼2018년 9월 클린스포츠센터에 접수된 비위 현황’ 전수조사 자료를 보면 해당 기간 클린스포츠센터는 총 327건의 신고를 받았다. 이 중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조사한 기간(2017년 8월∼2018년 8월) 선수나 지도자가 연관된 성폭력 피해 신고는 지난해 5월 고등학교 마장마술 선수가 “지도자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성희롱을 당했다”며 신고한 1건이 전부다. 클린스포츠센터가 설립된 2017년 1월부터 지난해 9월 사이로 기간을 확장해 봐도 성폭력 관련 신고는 단 4건에 불과하다. 비슷한 기간 보디빌딩협회 직원의 성추행 신고가 있었다. 심석희 선수가 피해를 당한 사안에 대한 신고는 2018년 1월에 접수됐지만 당시에는 성폭력이 아닌 일반(신체)폭력으로 분류됐다. 피해자들이 선뜻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고자가 2차 피해를 당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경징계를 받을 경우 가해자들은 1∼5년 후 현장에 복귀할 수 있다. 이용식 가톨릭관동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소위 ‘바닥이 좁은’ 체육계 특성상 자체 신고기관에 신고하면 해당 종목 관계자들은 금방 신고한 사람을 찾아낸다”며 “꼭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2차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관계자들이 아닌 제3자들로 구성된 객관적 신고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클린센터는 효용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이동섭 의원은 “10일 성폭력 피해 체육인을 보호하기 위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며 “입법기관이 할 수 있는 보호 조치를 최대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주위에 인맥이 있었다면 제가 보기에는 이렇게(영구제명)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B 위원) “내 동생이, 내 오빠가 그 지도자일 수도 있다는 것도 한번 생각을 해주십시오.”(C 위원) “그런 것을 영구제명해 버리면 선수 지도 부분에서 굉장히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D 위원) “규정 완화에 대한 화살은 제가 다 맞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부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지 않거든요.”(A 위원장) 2016년 2월 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 13층 회의실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속기록의 일부다. 이날 대한체육회 자체 징계의 최종 심사기구였던 선수위원회는 쇼트트랙 실업팀 감독 A 씨에 대한 영구제명 징계를 재심의했다. A 씨는 체육계 징계와 별도로 진행된 법원 판결에서 선수 성추행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2심에서 벌금 2000만 원에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처분이 내려졌다. A 씨가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음에도 체육계 자체 징계에서는 영구제명 징계가 자격정지 3년으로 줄어들었다. 이날 체육계 1차 심의에 관여했던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자체 규정상 해당 사항은 영구제명에 해당한다고 답변했다. 이에 이날 참석한 다른 위원들은 규정을 재해석해 해당 사안이 영구제명에 해당할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 제29호에는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의 경우 이미 한 번 징계가 내려지면 어떠한 경우에도 징계 수위를 감경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위원회가 규정까지 무시해 가면서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것이다. 본보가 10일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당시 속기록에 따르면 허술한 징계 감경 과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심지어 내 가족일 수도 있지 않으냐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정부 정책을 비난하던 위원장은 시간 제약을 이유로 무기명 비밀투표 원칙을 깨고 눈을 감고 거수하는 방식으로 투표를 처리했다.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스타 심석희를 비롯해 국내 스포츠 현장에서 성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처럼 허술한 시스템 탓이라는 지적이다. 성폭력 사태가 불거질 때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등 관련 기관들은 무관용, 일벌백계, 원 스트라이크 아웃 등 표현을 바꿔가며 재발 방지를 외쳤지만 실효는 적었다. 대한체육회는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 통합 시대를 맞아 2016년 3월 선수위원회의 징계 관련 업무를 신설 스포츠공정위원회로 이관했다. 하지만 성폭력 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경기단체 전 회장은 “법조인, 학자 등으로 이뤄진 공정위원회 위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 외풍에 따라 결정이 내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 등의 사건이 보고되면 우선 시도체육회와 경기단체에서 1심을 한 뒤 징계에 대한 이의가 발생하면 공정위원회 2심을 통해 징계가 확정된다. 하지만 시도체육회나 경기단체는 같은 종목 선후배들로 조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단일화되지 않고 스포츠 관련 기관마다 여러 곳에 존재하는 신고센터도 선수들의 제보나 신고를 힘들게 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스포츠비리신고센터를, 대한체육회에서는 클린스포츠센터를 각각 운영해 일원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또 비리 내용을 접수하는 이들 기구의 구성원들도 체육계 인사들인 경우가 많다. 중립성을 확보한 인사들로 구성된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 등을 전담할 준사법기관의 신설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조재범 전 코치의 상습 폭행 혐의를 심리 중인 수원지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성관)는 14일 오후 2시로 예정됐던 그의 항소심 판결을 미루기로 했다. 기존 폭행 혐의와 새로 불거진 성폭력 의혹이 연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김종석 kjs0123@donga.com·이원주 기자}
초등학생도 남자도 여자도 훈련장도 선수촌도 구분이 없었다. 국내 스포츠계에서 성폭력이 성별과 장소 구분 없이 전방위적으로 발생한 것이 드러났다. 초등학생이 강제로 성행위를 당한 경우도 조사됐다. 본보가 10일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8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생 남자 3명이 운동부 내에서 두려움 위협 폭력 등으로 인해 강제로 성행위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훈련 장소는 물론이고 국가대표 진천선수촌 등 공공기관에서도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여성 지도자는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문을 연 평창선수촌 내에서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체육회가 한남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전국의 국가대표 및 일반 선수와 지도자 20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성희롱, 성추행 및 성폭행을 포함하는 성폭력 피해 136건(피해자 73명)이 조사됐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의 폭로로 스포츠계에서도 ‘미투 운동’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는 이날 “빙상계에 심석희 외에 성폭행 피해자가 6명이 더 있고 가해자도 2명이 더 있다. 이들의 실명 공개 여부는 추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원주 takeoff@donga.com·정윤철 기자}
“내가 성폭력을 당해도 섣불리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새로 들어간 팀이라면 나오면 되지만 보통 한 팀에서 오랫동안 배우기 때문에 코치들이 부모님과도 친한 경우가 많다. 그 종목에 있는 한 어떻게든 마주치게 된다. 누가 당하더라도 쉽게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의 성폭행 내용이 불거진 9일 서울의 한 대학교 체육관. 오후 훈련을 준비하던 여대생 선수 A 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여대에서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B 교수는 “올 것이 온 건지도 모른다. 한국 스포츠의 구조적인 한계 속에서 성폭력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었으나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젊은 빙상인 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고 “과연 심석희 선수 혼자만이 성폭력의 피해자이겠는가”라며 “심석희 선수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도 빙상계 실세들의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에 시달려 왔다”고 주장했다. 선수와 지도자들이 함께하는 장기 합숙 훈련이 많고 일대일 지도방식이 필요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늘 있어 왔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접수된 성폭력 신고 상담 건수는 2014년 57건에서 지난해 93건으로 63.2% 늘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 비율도 2016년 1.5%에서 지난해 1.7%로 늘었다. 최근에는 선수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선수의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한 지도자는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는 아들을 따라 간 어머니들을 술자리나 노래방에 불러 성희롱, 성추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 스포츠 현장에서는 성폭력으로 고통받았다는 목소리가 간간이 나오긴 했어도 연쇄적인 ‘미투 운동’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운동선수들은 학창 시절부터 운동 하나에 인생을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동 말고는 다른 진로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진학이나 취업을 결정짓는 성적이나 기록을 좌지우지하는 지도자의 눈 밖에 날 언행을 자제하게 된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진로가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대한체육회 2017년 조사를 보면 국가대표 경력이 있는 은퇴 선수 중 자신의 전공을 살려 스포츠 관련 업종에 재취업한 사람은 10명 중 2명 정도(22.7%)밖에 되지 않았다. 많은 선수가 은퇴와 동시에 버려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어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 최준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운동 외에도 ‘플랜 B’가 있다면 미투 운동이 확산됐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처음부터 퇴로가 막혀 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지도자를 상대로 싸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이 같은 폭로나 고소, 고발에 가해자들이 보복하기는 어렵지 않다. 출전 기회를 주지 않거나 경기력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선수들의 인권 및 성폭력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선수들이 지도자들에게 인격적,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희암 전 연세대 농구부 감독은 “운동선수에게 다양한 직업 교육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일과 호주는 운동선수들에게 고등학교 때부터 직업 교육 및 진로상담을 실시하고 훈련 및 경기로 인해 빠진 수업은 철저하게 보충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대한체육회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해온 점도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구제명 징계가 자격정지로 줄어들기도 했고 중앙단체와 지역단체를 오가는 방법으로 계속해서 자리를 보존하는 체육단체 간부도 있었다. 해외에서는 스포츠계의 성폭력에 대해 훨씬 엄격하게 대처하고 있다. 래리 나사르 전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가 어린 여자 선수 156명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은 미국 전역을 분노하게 했다. 법원은 징역 175년을 선고했다. 나사르를 고용한 미시간주립대는 약 5000억 원을 내고 피해자들과 합의했으며 당시 총장이 사퇴했다. 제대로 관리 감독을 하지 못한 체조협회는 미국 올림픽위원회에서 협회 자격을 박탈당한 후 1120억 원대의 보상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이원주 takeoff@donga.com·김종석 기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한국체대)의 성폭행 피해 폭로가 ‘미투운동’의 사각지대로 여겨진 한국 스포츠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동안 국내 스포츠 현장에서는 성폭력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목소리가 간간이 나오긴 했어도 연쇄적인 ‘미투 운동’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정치권과 문화계 전반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된 것과 대조적이다. 한 대학 교수는 “올 것이 온건지도 모른다. 한국 스포츠의 구조적인 한계 속에서 성폭력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었으나 드러나지 않았을 것일수도 있다”고 말했다. 운동선수들은 학창 시절부터 운동 하나에 인생을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동 말고는 다른 진로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진학이나 취업을 결정짓는 성적이나 기록을 좌지우지하는 지도자의 횡포에도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때문에 더욱 ‘윗사람’들의 눈 밖에 날 언행을 자제하게 된다. 최준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운동 외에도 ‘플랜 B’가 있다면 미투 운동이 확산됐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처음부터 퇴로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지도자를 상대로 싸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대한체육회 2017년 조사를 보면 국가대표 경력이 있는 은퇴선수 네 명 중 한 명은 직업을 갖지 못한 상황이다. 취업자 중에서도 37%는 월 200만 원 이하의 급여를 받고 일하고 있다. 반면 이 같은 폭로나 고소·고발에 가해자들이 보복하기는 어렵지 않다. 출전 기회를 주지 않거나 경기력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강유원 세종대 체육학과 교수는 “국가대표 지도자나 체육단체 임원쯤 되면 다른 선수나 심판을 움직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면서 “체조, 피겨 등은 심판을 회유해 낮은 점수를 주는 방법이, 기록경기는 다른 선수를 통해 경기력을 낮추거나 방해하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고 말했다. 성폭력을 가한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스포츠계에 계속 발을 붙이는 경우가 적지 않아 제보는 더 어려워진다. 실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쇼트트랙 실업팀 감독 A 씨(54)는 선수 성추행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의 영구 제명 징계는 판결 이후 자격정지 3년으로 줄어들었다. A 씨가 “공개된 장소에서 교육 중 발생한 일”이라 해명했고 이를 선수위원회 위원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체육단체 간부의 경우 중앙단체와 지역단체를 오가는 방법으로 계속해서 자리를 보존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직 선수들은 피해자들이 높은 확률로 가해자와 다시 마주치게 된다고 증언한다. 국내 대학에 소속된 한 현역 복싱선수는 “지도자들은 협회 수뇌부와 선수들의 학부모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피해를 당했더라도 선수로 계속 뛰는 한 반드시 마주치게 되어 있다”며 “선수 인생을 계속 할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 용기를 내겠나”라고 토로했다. 연세대 농구부 감독 출신인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은 “운동 선수에게 다양한 직업 교육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운동에만 매달리다 어린 나이에 은퇴해 마땅한 직업을 찾기 힘든 게 한국 학원 스포츠의 실정이다. 몇 년 전부터 공부하는 운동부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운동에만 집중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게 현장 지도자의 목소리다. 해외에서는 스포츠계의 성폭력 폭로가 사회 전반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다. 래리 나사르 전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가 어린 여자 선수들 156명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은 미국 전역을 분노하게 했다. 법원은 징역 175년을 선고했고 제대로 관리 감독을 하지 못한 체조협회는 미국 올림픽위원회에서 협회 자격을 박탈당한 후 막대한 보상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파산했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아시안컵 조별 예선에서 한국과 맞붙었던 필리핀의 최전방 선발 공격수는 등번호 17번 ‘슈테판 슈뢰크’(32)다. 독일계 필리핀인인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20세 이하(U-20) 독일 국가대표로 활약하다가 2011년부터 필리핀 국기를 가슴에 달았다. 한국은 필리핀과 마지막으로 붙었던 1980년 3월 8-0으로 이기는 등 7승 무패에 단 한 골도 내준 적이 없었다. 필리핀은 월드컵 무대는 밟아본 적조차 없고 아시안컵 본선도 이번에 처음 진출했다. 그런 필리핀을 상대로 한국이 고전했다. 그 배경에는 이런 ‘이중국적 선수’들이 있다. 김승규(빗셀 고베)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슛을 터뜨리던 마이크 오트(23)도 독일계다. 황의조의 멀티 골을 저지한 골키퍼 미카엘 팔케스고르(27)는 덴마크에서, 수비수 알바로 실바(34)는 스페인에서 각각 태어났다. 필리핀 대표팀 23명 중 단 두 명을 빼고는 모두 이중국적 선수들이다. 필리핀 축구협회는 2005년 이후 이처럼 축구 선진국에서 활약하는 이중국적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전력을 강화해 왔다. 결과는 대성공. 필리핀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2005∼2006시즌에 191위였지만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타며 이번 시즌 역대 최고 순위인 116위까지 올랐다. 필리핀이 이중국적 선수 발굴에 적극 나서도록 만든 도화선은 ‘축구 게임’이다. 실제 선수 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축구 게임을 즐기던 한 필리핀 축구팬이 게임 속 영국 명문 첼시 유스팀에서 뛰던 필리핀 이중국적 ‘영허즈번드’ 형제의 존재를 발견하고 이를 퍼뜨린 것이다. 필리핀 축구협회가 2005년 제임스(32)와 필(31) 등 두 형제에게 필리핀 유니폼을 입히는 데 성공하면서 ‘다국적 스카우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필리핀 대표팀은 국가대표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1913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국가대표팀을 만든 필리핀에 정작 ‘순혈’ 선수가 많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축구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1년 중 3분의 2가 우기인 날씨도, 불안한 치안도 모두 원인이다. 현지에서 농구, 권투 등 실내 스포츠는 큰 인기를 끌지만 축구와 야구 등은 그렇지 못하다. 필리핀은 11일 오후 10시 30분(한국 시간) 중국을 상대로 아시안컵 본선 첫 승리에 도전한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면 항상 저를 경기장에 데려가셨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던 분인데도 유독 당시 아시안컵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어요.” 1960년 제2회 아시안컵 우승 주역인 고 최정민 선생의 딸 최혜정 씨(57)는 4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열린 ‘진짜 금메달’ 전달 행사에서 메달을 건네받은 뒤 “메달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니 아버지께서 당시 얼마나 속상하셨을지 알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날 최 씨와 고 김홍복 선생의 딸 김화순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 고 조윤옥 선생의 아들 조준헌 축구협회 인사총무팀장, 고 손명섭 선생의 딸 손신정 씨 등 4명에게 59년 만에 순금으로 만든 대회 우승 메달을 전달했다.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초대 아시안컵을 제패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4년 뒤 한국 대회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우승 후 받은 금메달을 깨물자 도금이 벗겨지면서 ‘가짜 금메달’임이 탄로 났다. 벽에 메달을 긁어본 후 벗겨진 도금을 보고 분노한 선수도 있었다고 축구 원로 박경화 선생은 ‘한국 축구 100년 비사’에서 회고했다. 이후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가짜 금메달 해프닝은 ‘저주론’으로 번졌다. 한국이 계속 우승하지 못하자 “진짜 금메달을 유족들에게 전달하고 저주를 풀자”는 여론이 확산됐다. 일부 참가선수들도 새 금메달 제작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가 2014년 고증을 거쳐 새 금메달 23개를 제작했다. 축구 수집가 이재형 베스트일레븐 이사가 보관하고 있던 당시의 메달 사진을 바탕으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 2014년 선수와 유족 등 6명에게 이 메달을 전달했으나 ‘저주’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한국은 2015년 1월 호주 아시안컵 결승에서 연장전 끝에 호주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번에 4명에게 추가로 메달을 전달했으니 이제 남은 메달은 13개. 축구협회 측은 “이미 작고하신 분이 많은 데다 생존해있는 당시 선수들도 행방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유족이나 당사자를 찾는 대로 계속 메달을 전해드리겠다”고 설명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빨갛게 떠오르는 새해를 기록하라.얼어붙은 공기와 몰아치는 바람과 흩날리는 눈발까지 모두 기록하라.그 삼백몇십 개 기록의 마지막 줄에 “나는 더 나아졌다”고 쓸 수 있도록오늘,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기록하라. ―대관령 삼양목장에서사진=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글=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올 연말에도 ‘술생술사(술에 살고 술에 죽는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술이 송년회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연말 보내기의 반란, 묵은 한 해를 보내는 현명한 방법, 다양한 사람들의 ‘송년회’를 들어봤습니다. 》 ▼ ‘쫀드기’ 걸고 갤러그 대결 ▼ “저희 회사는 송년회를 테마 파티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올해는 ‘추억의 오락실’이라는 콘셉트로 갤러그 등 추억의 게임기를 여러 대 빌렸어요. 부서 간 게임 대결을 했는데, 경품은 학교 앞에서 팔던 쫀드기 같은 추억의 식품이었죠.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부대낄 수 있는 콘셉트로 매년 다른 송년회를 열고 있어요. 송년회 뒤 업무 분위기는 당연히 부드러워집니다.” ―김민경 씨(인실리코 전략기획팀장) “부서 사람들과 ‘마니또’를 했어요. 회사에서 마니또를 한다는 게 신기했죠. 제비뽑기로 대상을 골랐고 칭찬을 퍼뜨리거나 선물도 마련했습니다. 한 남성 직원은 연애편지같이 길고 정성스러운 편지를 써서 동성 직원에게 줬어요. 중간중간에 하트도 그렸죠. 받는 분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건전한 소통 문화가 될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저희 부서 부장님을 뽑았어요. 결과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원모 씨(30대·여행사 직원) “상무님 자택에서 송년회를 열었어요. 이런 회식은 처음이라 고민되고 어색했어요. 막상 갔더니 집을 카페처럼 꾸며 놓고 파스타, 샐러드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더라고요. 조용하고 편했어요. 대화 주제도 ‘공장(업무 관련) 이야기’보다 집 인테리어, 여행, 만화책 등 소소한 주제가 대부분이었죠. 어렵게 느껴졌던 상무님이 어느덧 동네 아저씨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김정은 씨(보험회사 직원) “저희 회사는 12월 20일쯤에 점심식사 송년회를 하고 연초까지 쉽니다. 일종의 직장인 방학이죠. 연차를 붙여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긴 휴가로 새해를 견딜 만한 충전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밀린 일을 집에서 처리하는 사람도 있어요. ‘직딩’의 숙명이랄까요.” ―심혜윤 씨(24·회사원) “책방에 송년회 공간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거나 아예 독서 토론회를 열어요. 18세기 프랑스의 ‘살롱’ 같은 분위기랄까요. 여기서 음식도 해먹으면서 편한 시간 보냅니다. ‘힘들었던 한 해를 잊자’라는 의미보다는 새해 출발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김이듬 씨(40대·책방 주인)▼ 이불 밖은 위험해 ▼ “지난해 성탄절 전날 친구들끼리 홈파티를 했어요. 연말은 식당 예약도 쉽지 않고 어디를 가도 복잡해요. 호텔이나 레지던스 파티룸을 빌리자니 너무 비싸죠. 감바스를 만들고 친구들이 가져온 음식과 과일, 케이크를 상에 올리니 풍성했어요. 드레스코드 맞춰 입고 사진을 찍고 서로 준비한 선물이나 편지를 교환하면서 따뜻한 연말을 보냈습니다. 올해도 친구 집에 모일 예정입니다. 집에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만들고 보드게임을 하려고요.” ―김하은 씨(20대·대학생) “홈파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관련 용품 ‘연말 기획전’을 열었습니다. 모든 음식을 직접 준비할 시간이 없을 때 간단하고 풍성한 메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로스트치킨과 티본스테이크, 연어스테이크, 바닷가재 등 파티에 어울리는 식품 판매량이 늘고 있어요.” ―전혜수 씨(30·마켓컬리 브랜드마케팅팀 사원) “지난해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했는데, 연말이면 현지 상점들은 문을 닫고 보통 가족끼리 크리스마스를 보냅니다. 유학생이라 마땅히 갈 곳도 없어서 굉장히 외로웠습니다. 다행히도 현지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칠면조 요리를 해줬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큰 칠면조는 처음 봤어요.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함께 같이 말춤도 췄습니다.” ―이연정 씨(20대·명지대 학생)▼ 아직도 부어라 마셔라? ▼ “주 52시간 근무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집에 일찍 가는 것’으로 의미가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근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연히 송년모임이 위축됩니다. 긍정과 부정을 딱 부러지게 평가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기존 송년회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죠.”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올해 송년회는 딱 두 번밖에 없습니다. 제 또래분들이 많이 실직했어요. 경기가 좋지 않고 사회 분위기가 가라앉아 행사 자체를 여는 게 쉽지 않아요. 이번 연말은 지인들을 챙기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방향으로 바꿨어요.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날 생각입니다.” ―김모 씨(40대·자영업) “성별, 연령에 따라 송년회 방식이 크게 달라요. 남자 교수가 많은 모임은 행사가 적어도 2차까지 이어지며 술을 많이 마십니다. 여자 교수끼리 모이면 행사가 오후 6시에 시작해서 3시간 만에 끝나죠. 점심으로 대체하거나 와인 한 잔으로 모임을 마칠 때가 많아요. 올해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술을 권하는 일이 더 없어졌어요.” ―홍주현 씨(40대·대학교수) “연말이면 족구회, 조기축구회, 계모임 등 소소한 모임에서 예약을 많이 잡았어요. 이런 분들을 잘 챙겨드리면 단골을 만들 수 있죠. 가게 주인에게는 기회입니다. 하지만 단체 예약이 많이 줄었어요. 적당히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갑니다. 과거에는 연말 식당에서 송년회를 하면 취해서 뻗어 있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보였어요.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배희순 씨(50대·식당 운영) “금융권에는 여전히 ‘군대식 문화’가 존재합니다. 술을 마시라면 마실 수밖에 없는 분위기죠. 많은 새내기 직장인들은 송년회를 두려워합니다. 목으로 넘어가는 술의 양이 패기로 이어지지 않아요. 술이 업무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가 남이가’식의 관계 설정은 더더욱 아니죠.” ―유모 씨 (20대 후반·금융회사 직원) ▼ 연말이 없는 사람들 ▼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입니다. 3교대 근무를 하는데 올해는 성탄절, 31일 모두 밤샘 근무에 걸렸어요. 중환자실에서는 한 시간마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내년이 되는 순간에도 일하고 있을 제 모습이 그려집니다. 다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작은 위로가 됩니다.” ―이모 씨(20대·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간호사) “연말이면 취해서 버스에 타는 승객이 굉장히 많아요. 이런 손님들은 다짜고짜 욕부터 합니다. 저희는 한마디도 대꾸를 못해요. 토사물을 뱉는 분도 있는데, 저희가 다 직접 치웁니다. 주무시는 분도 많은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연말이 달갑지 않아요.” ―최육 씨(60대·심야버스 기사) “지난해부터 딸과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어요. 연말엔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빠요. 주문이 폭주하고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하루를 마감하면 가족끼리 맥주 한 캔으로 기분 정도는 내려고요.” ―김미순 씨(50대·커피숍 운영)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연말 모임을 아예 거절합니다. 최근 한 친구가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이미 취업한 친구가 너무 부럽다고. ‘얘 취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저도 공감했습니다. 상대적인 박탈감도 느끼고 씁쓸한 생각도 들죠. 예민한 성격이 아닌데 좀 예민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홍모 씨(20대·취업준비생)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4학년}

올해 연말에도 ‘술생술사(술에 살고 술에 죽는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술이 송년회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뜻 깊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많습니다. 유종의 미. 새해를 힘차게 시작하려면 마무리도 잘 해야 합니다. 연말 보내기의 반란, 묵은 한해를 보내는 현명한 방법, 다양한 사람들의 ‘송년회’를 들어봤습니다. ●‘쫀듸기’ 걸고 갤러그 대결 “저희 회사는 송년회를 테마 파티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올해는 ‘추억의 오락실’이라는 콘셉트로 갤러그 등 추억의 게임기를 여러 대 빌렸어요. 부서 간 게임 대결을 했는데, 경품은 학교 앞에서 팔던 쫀드기 같은 추억의 식품이었죠.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부대낄 수 있는 콘셉트로 매년 다른 송년회를 열고 있어요. 송년회 뒤 업무 분위기는 당연히 부드러워집니다.” -김민경 씨(인실리코 전략기획팀장) “부서 사람들과 ‘마니또’를 했어요. 회사에서 마니또를 한다는 게 신기했죠. 제비뽑기로 대상을 골랐고 마니또 칭찬을 퍼뜨리거나 선물도 마련했습니다. 한 남성 직원은 연애편지같이 길고 정성스러운 편지를 써서 동성 직원에게 줬어요. 중간 중간에 하트도 그렸죠. 받는 분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건전한 소통 문화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저희 부서 부장님을 뽑았어요. 결과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원모 씨(30대·여행사 직원) “상무님 자택에서 송년회를 열었어요. 이런 회식은 처음이라 고민되고 어색했어요. 막상 갔더니 집을 카페처럼 꾸며 놓고 파스타, 샐러드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더라고요. 조용하고 편했어요. 대화 주제도 ‘공장(업무 관련) 이야기’ 보다 집 인테리어, 여행, 만화책 등 소소한 주제가 대부분이었죠. 어렵게 느껴졌던 상무님이 어느덧 동네 아저씨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김정은 씨(보험회사 직원) “저희 회사는 12월 20일 정도에 점심식사 송년회를 하고 연초까지 쉽니다. 일종의 직장인 방학이죠. 연차를 붙여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긴 휴가로 새해를 견딜 만한 충전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밀린 일을 집에서 처리하는 사람도 있어요. 직딩의 숙명이랄까요.” -심혜윤 씨(24세·회사원) “책방에 송년회 공간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거나 아예 독서 토론회를 열어요. 18세기 프랑스의 ‘살롱’같은 분위기랄까요. 여기서 음식도 해먹으면서 편한 시간 보냅니다. ‘힘들었던 한해를 잊자’라는 의미 보다는 새해 출발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김이듬 씨(40대·책방 주인) ●이불 밖은 위험해 “지난해 성탄절 전날 친구들끼리 홈파티를 했어요. 연말은 식당 예약도 쉽지 않고 어디를 가도 복잡해요. 호텔이나 레디던스 파티룸을 빌리자니 너무 비싸요. 감바스를 만들고 친구들이 가져온 음식과 과일, 케이크를 상에 올리니 풍성했어요. 드레스코드 맞춰 입고 사진을 찍고 서로 준비한 선물이나 편지를 교환하면서 따뜻한 연말 보냈습니다. 올해도 친구 집에 모일 예정입니다. 집에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만들고 보드게임을 하려고요.” -김하은 씨(20대·대학생) “홈파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관련 용품 ‘연말 기획전’을 열었습니다. 모든 음식을 직접 준비할 시간이 없을 때 간단하고 풍성한 메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로스트치킨과 티본스테이크, 연어스테이크, 로브스터 등 파티에 어울리는 식품 판매량이 늘고 있어요. 가정 간편식(HMR)을 골라 원하는 날짜로 예약하면 배달하는 ‘홈 파티 예약’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혜수 씨(30세·마켓컬리 브랜드마케팅팀 사원) “지난 해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했는데, 연말이면 현지 상점들은 문을 닫고 보통 가족끼리 크리스마스를 보냅니다. 유학생이라 마땅히 갈 곳도 없어서 굉장히 외로웠습니다. 다행히도 현지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칠면조 요리를 해줬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큰 칠면조는 처음 봤어요.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함께 같이 말춤을 췄습니다.” -이연정 씨(20대·명지대 학생) ●‘술푸지’ 않으면 슬프지 않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집에 일찍 가는 것’으로 의미가 변질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근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연히 송년모임이 위축됩니다. 긍정과 부정을 딱 부러지게 평가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기존 송년회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죠.”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올해 송년회는 딱 두 번 밖에 없습니다. 제 또래 분들이 많이 실직했어요. 경기가 좋지 않고 사회 분위기가 가라앉아 행사 자체를 여는 게 쉽지 않아요. 이번 연말은 지인들을 챙기기 보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방향으로 바꿨어요.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날 생각입니다.” -김 모 씨(40대·자영업) “성별, 연령에 따라 송년회 방식이 크게 달라요. 남자 교수가 많은 모임은 행사가 적어도 2차까지 이어지며 술을 많이 마십니다. 여자 교수끼리 모이면 행사가 오후 6시에 시작해서 3시간 만에 끝나죠. 점심으로 대체하거나 와인 한잔으로 모임을 마칠 때가 많아요. 올해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술을 권하는 일이 더 없어졌어요.” -홍주현 씨(40대·대학 교수) “연말이면 족구회, 조기축구회, 계모임 등 소소한 모임에서 예약을 많이 잡았어요. 이런 분들을 잘 챙겨드리면 단골을 만들 수 있죠. 가게 주인에게는 기회입니다. 하지만 단체 예약이 많이 줄었어요. 적당히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갑니다. 과거에는 연말 식당에서 송년회를 하면 취해서 뻗어있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보였어요. 요즘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배희순 씨(50대·식당 운영) “금융권에는 여전히 ‘군대식 문화’가 존재합니다. 술을 마시라면 마실 수밖에 없는 분위기죠. 많은 새내기 직장인들은 송년회를 두려워합니다. 목으로 넘어가는 술의 양이 패기로 이어지지 않아요. 술이 업무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가 남이가’식의 관계 설정은 더더욱 아니죠.” -유모 씨 (20대 후반·금융회사 직원) ●연말이 없는 사람들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입니다. 3교대 근무를 하는데, 올해는 성탄절, 31일 모두 밤샘 근무에 걸렸어요. 중환자실에서는 한 시간마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내년이 되는 순간에도 일하고 있을 제 모습이 그려집니다. 다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작은 위로가 됩니다.” -이모 씨(20대·아주대 병원 권역외상센터 간호사) “연말이면 취해서 버스에 타는 승객이 굉장히 많아요. 이런 손님들은 다짜고짜 욕부터 합니다. 저희는 한 마디도 대꾸를 못해요. 토사물을 뱉는 분도 있는데, 저희가 다 직접 치웁니다. 주무시는 분도 많은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성은 깨우기도 어려워요. 연말이 달갑지 않아요.” -최육 씨(60대·심야버스 기사) “지난해부터 딸과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어요. 연말엔 눈 코 뜰 새가 없을 정도로 바빠요. 주문이 폭주하고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설치도 일입니다. 여행이나 휴식은 꿈도 못 꾸죠. 하루를 마감하면 가족끼리 맥주 한 캔으로 기분 정도는 내려고요.” -김미순 씨(50대·커피숍 운영)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연말 모임을 아예 거절합니다. 최근 한 친구가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이미 취업한 친구가 너무 부럽다고. ‘얘 취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저도 공감했습니다. 상대적인 박탈감도 느끼고 씁쓸한 생각도 들죠. 예민한 성격이 아닌데, 좀 예민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홍모 씨(20대·취업준비생)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4학년 서재의 인턴기자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4학년}

“거의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추운 날씨에 오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특히 그동안 많이 힘들어했던 구성원들이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을 대표하여 저희가 두 손 모아 줄지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제 정말로, 새해를 맞아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으니까요.”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글=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검은 바닷물이 모든 밝음을 빨아들이고 나면물에 녹아버릴 하얀 글씨를 모래에 써 봅니다.잊는다 못 잊는다 온전히 사랑한다.햇빛 비추고 모래가 하얘지면 지워질 시를새하얀 글씨로 허무하게 허무하게 흘려봅니다. ―부산 해운대에서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글=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시: 조지훈 ‘민들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