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김수현 기자

동아일보 경제부

구독 43

추천

세상은 둥글고 신문은 네모납니다. 빙글빙글 세상 이야기, 재밌게 알려드릴게요.

newsoo@donga.com

취재분야

2025-11-20~2025-12-20
경제일반76%
사회일반6%
무역6%
고용3%
금융3%
복지3%
미국/북미3%
  • FBI, ‘美대선개입 혐의’ 푸틴 최측근 압수수색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러시아 알루미늄 재벌 올레크 데리파스카(53) 일가 소유의 미국 내 저택 두 곳을 압수수색했다. 데리파스카는 러시아가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해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소위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그가 트럼프 선거 캠프를 총괄했던 폴 매너포트와의 친분을 이용해 캠프 내부 정보를 빼돌려 러시아에 전달했다는 혐의로 2018년 미국 재무부는 그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19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FBI는 이날 오전 워싱턴 노스웨스트 30번가,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는 데리파스카 일가의 자택을 각각 예고 없이 압수수색했다. 여러 대의 차량을 동원해 갑자기 들이닥친 FBI 수사관들은 두 저택에서 여러 개의 상자를 들고 나왔다. FBI는 수색 이유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법 집행에 따른 수색”이라고만 설명했다. 데리파스카의 변호인 또한 “해당 저택은 그가 아닌 친척의 소유”라고 밝혔다. 물리학도 출신의 데리파스카는 1997년 알루미늄 공장, 수력발전소 등을 운영하는 베이직엘리먼트 그룹을 창업했고 러시아 최대 알루미늄 생산업체 ‘루살’의 최대주주였다. 2008년 미국 포브스는 그가 280억 달러(약 33조600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러시아 최대 부호 겸 세계 8위 부자라고 전했다. 이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현재 자산은 전성기보다 훨씬 적은 29억 달러로 줄어든 상태다. AP통신은 유출된 미국 외교 전문을 인용해 데리파스카가 푸틴이 의지하는 2, 3명의 과두재벌(올리가르히) 중 한 명이며 푸틴의 해외 순방에 늘 동행하는 인물이라고 전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美, 물류대란 현장에 軍투입 검토… 입항대기 화물선 역대 최다

    미국 경제가 유례없는 물류대란과 공급망 병목 현상에 시달리는 가운데 백악관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주방위군 배치까지 검토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9일 보도했다. 주방위군은 평소 예비군처럼 재난 대응과 치안유지 업무를 맡지만 전시에는 정규군 같은 역할을 하는 준(準)군사 조직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그만큼 현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WP에 따르면 최근 백악관은 트럭 운전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주방위군이 운송 트럭을 운전하거나 항만에서 적체된 컨테이너 품목을 하역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검토했다. 주방위군 소속 군인들이 어떤 종류의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들을 기존 업무에서 배제한 뒤 트럭 운전사로 배치하는 것이 가능한지 등을 논의했다는 의미다. 바이든 행정부 내 고위 경제 관료와 교통부 소속 관리가 이 안을 검토했고 민간 기업 또한 비슷한 구상을 내놨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숙련 노동자 부족이 물류대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트럭 면허를 보유한 일부 주방위군을 동원하는 정도로 현 사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악관은 앞서 13일에도 공급망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항 등 주요 항만을 주 7일, 하루 24시간 운영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월마트 페덱스 삼성전자 등 국내외 주요 민간 기업에도 물류난 해소를 위해 근로시간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10월 말 핼러윈, 11월 추수감사절, 12월 성탄절 등 소매유통업계의 연말 대목이 다가오고 있어 물류대란이 현재보다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폭스비즈니스에 따르면 서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항과 인근 롱비치항에서 입항을 기다리는 화물선이 18일 기준 157척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두 항구는 미국에 오는 수입 화물의 40%를 처리하고 있다. 두 항구의 화물 처리 지연이 공급망 병목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동부 조지아주 서배너항에도 20여 척의 화물선이 바다에서 입항을 기다리고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입항을 한다 해도 항만에 쌓인 컨테이너 또한 제때 내륙으로 운반되지 못해 물류대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진 세로카 로스앤젤레스항 이사는 18일 CNN에 “현재 약 20만 개의 컨테이너가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항구에서 하역된 컨테이너 중 25%는 13일 이상 하역장에서 대기한 후 이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BBC는 18일 “최근 백악관 관료들은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미국 내에서 폭발적으로 소비가 이뤄지는 연말 시즌에 소비자들은 화장지, 생수, 옷, 장난감, 반려동물용 사료 등의 물품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FBI, ‘푸틴 최측근’ 러시아 억만장자 美 자택 2곳 압색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러시아 알루미늄 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53) 일가 소유의 미국 내 저택 두 곳을 압수수색했다. 데리파스카는 러시아가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해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소위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그가 트럼프 선거 캠프를 총괄했던 폴 매너포트와의 친분을 이용해 캠프 내부 정보를 빼돌려 러시아에 전달했다는 혐의로 2018년 미 재무부는 그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19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FBI는 이날 오전 워싱턴 노스웨스트 30번가,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는 데리파스카 일가의 자택을 각각 예고 없이 압수수색했다. 두 동네는 모두 해당 도시에서 집값이 비싼 곳으로 유명하다. 여러 대의 차량을 동원해 갑자기 들이닥친 FBI 수사관들은 두 저택에서 여러 개의 상자를 들고 나왔다. FBI의 수색 이유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법 집행에 따른 수색”이라고만 설명했다. 데리파스카의 변호인 또한 “해당 저택은 그가 아닌 친척의 소유”라고 밝혔다. 물리학도 출신의 데리파스카는 1997년 알루미늄공장, 수력발전소 등을 운영하는 베이직엘리먼트 그룹을 창업했고 러시아 최대 알루미늄 생산업체 ‘루살’의 최대주주도 지냈다. 2008년 미 포브스는 그가 280억 달러(약 33조600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러시아 최대 부호 겸 세계 8위 부자라고 전했다. 이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현재 자산은 전성기보다 훨씬 적은 29억 달러로 줄어든 상태다. AP통신은 유출된 미 외교 전문을 인용해 데리파스카가 푸틴이 의지하는 2, 3명의 과두재벌(올리가르히) 중 한 명이며 푸틴의 해외 순방에 늘 동행하는 인물이라고 평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20
    • 좋아요
    • 코멘트
  • 美 ‘테러와의 전쟁’ 20년간 참전군인 3만명 극단 선택…전사자의 4배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20년 간 ‘테러와의 전쟁’에 투입된 전·현직 미군들 중 후유증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병사들의 수가 3만 명을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브라운대 왓슨 연구소가 정부 자료와 인터뷰 등을 토대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가운데 3만177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사자 수인 7057명의 4배가 넘는 숫자다. 보고서는 참전자들의 자살률이 민간인들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18살~34살 전·현직 군인들의 자살률은 같은 연령대의 민간인보다 2.5배 높았다. 보고서는 2001년 테러 이전에는 군인들의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보다 낮았다는 점에서 군인들의 전쟁 후유증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군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요인은 복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전쟁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외에도 군대 특유의 문화와 훈련 방식, 지속적인 총기 사용, 전장에서 복귀 후 일상생활 적응의 어려움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에서 적대세력의 급조폭발물 사용 증가로 인해 외상성 뇌손상 발생이 늘어났고, 의학 기술의 발달로 부상자들이 복귀하는 대신 치료 후 전선에 다시 투입되는 경우가 늘면서 복합적 트라우마 발생 상황에 노출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쟁과 참전자들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적어졌고 이는 참전자들의 사회 복귀에 또 다른 어려움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밀리터리타임즈는 “전쟁 이후 참전 용사들은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김수현기자 newsoo@donga.com}

    • 2021-10-18
    • 좋아요
    • 코멘트
  • 아이티서 미국인 선교사들과 가족 17명 무장 괴한에 납치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미국인 선교사들과 그들의 가족 17명이 현지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됐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아이티 보안 당국은 16일 무장 괴한들이 미국인 선교단이 타고 있던 버스를 습격해 이들을 납치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들이 다음 행선지로 가기 전 일부 인원을 내려주기 위해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CNN에 따르면 현재까지 알려진 납치된 자들은 성인 14명과 아이 3명이다. 이들은 포르토프랭스 북동부 지역인 크루아데부케에서 인근 북부 마을 티타¤으로 가는 길목에서 납치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미국 종교봉사단체 ‘크리스천 에이드 미니스티리’는 음성 메시지를 통해 이들은 납치 직전까지 크루아데부케에서 보육원을 짓고 있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납치된 자들 중 한 명은 메신저에 “그들이 운전사를 납치했다. 어디로 가는 지 모르겠다. 기도해달라”는 요청을 남겼다고 WP는 전했다.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이날 오후 “해당 사안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다”고 짧게 언급했다. 아이티 법무부와 경찰 당국은 구체적 입장을 밝히길 거부했다. 아이티에서는 올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사저에서 괴한들에게 피살된 데 이어 8월에는 2200명 이상이 사망한 대지진으로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NYT는 수도 포르토프랭스 전역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있고 도시의 절반을 범죄조직이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리서치앤애널리시스센터에 따르면 아이티에서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최소 628명이 납치됐고 대통령 암살 이후 납치 범죄는 3배 가까이 급증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17
    • 좋아요
    • 코멘트
  • 유럽정치 좌향좌… 코로나 민심, 긴축 대신 복지공약에 한 표[글로벌 포커스]

    “유럽 중도좌파 정당의 낙관적인 가을이 이어지고 있다.” 5일 영국 가디언은 지난달 독일과 노르웨이 총선, 이달 초 이탈리아 지방선거 등 최근 유럽 주요 선거에서 좌파 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며 이렇게 진단했다. 오랫동안 유럽 좌파 정당이 부진을 면치 못했던 것과 대조적이라는 의미다. 이번 총선에서 제1당에 오른 독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마지막으로 승리한 시기는 20년 전인 2001년이다. 영국 제1야당 노동당 또한 2010년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에 제1당을 내준 후 11년째 야당에 머물러 있다. 이랬던 유럽의 정치 지형이 ‘좌회전’한 이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극화, 홍수 폭염 폭설 등 이상 기후, 극우 정당에 대한 반발 심리 등이 꼽힌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럽 좌파를 구했다”며 전염병으로 팍팍해진 삶 탓에 우파의 긴축 정책 대신 좌파의 사회복지 확대 정책이 각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빵과 버터’가 중요했다”며 법치와 질서를 중시하는 우파보다 복지 확대를 내세운 좌파가 강점을 가질 환경이 조성됐다고 진단했다. 이런 기조가 내년 4월 프랑스 대선 등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 ‘좌향좌’ 유럽 유럽 좌파의 상승세는 2019년부터 시작됐다. 2019년 핀란드와 덴마크 총선에서는 모두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승리했다. 지난해 1월 스페인에서도 중도좌파 사회노동당과 급진좌파 포데모스가 좌파 연정을 출범시켰다.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사망해 스페인에 민주 정부가 들어선 1975년 이후 46년 만에 처음 좌파 연정이 탄생했다. 지난달 13일 노르웨이 총선 역시 중도좌파 노동당을 비롯해 좌파 계열 정당이 전체 169석 중 합계 101석을 차지했다. 2013년부터 8년간 집권해 온 우파 보수당은 67석에 그쳤다. 이에 따라 현재 연정 구성을 주도하고 있는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동당 대표(61)가 새 총리에 올랐다. 유럽연합(EU) 국내총생산(GDP)의 21%를 차지하는 독일에서도 같은 달 26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25.7%를 얻어 집권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24.1%)을 제쳤다. 사민당이 마지막으로 총선에서 승리한 시점은 2001년이었다. 아직 연정 구성이 끝나지 않았지만 16년간 집권한 현 앙겔라 메르켈 총리(67)의 후임으로 올라프 숄츠 사민당 대표(63)가 유력해진 상태다. 숄츠가 올해 안에 새 총리에 오르면 1997∼2005년 집권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에 이어 24년 만에 사민당 출신 총리가 탄생한다. 수도 베를린 시장 선거를 포함해 총선과 같은 날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사민당 후보가 대거 승리했다. 이달 3, 4일 실시된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서도 북부 밀라노와 볼로냐, 남부 나폴리 등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좌파 후보들이 승리했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17, 18일 양일간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르는 수도 로마와 북서부 토리노 시장 선거에서도 좌파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안사통신은 2월 출범한 마리오 드라기 총리 내각에서도 국방, 보건, 고용, 문화 장관 등을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도 좌파가 압승함에 따라 권력의 무게추가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평했다.○ 코로나19로 양극화 심화 이런 변화의 뒤에 코로나19가 자리하고 있다. EU 통계기관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진 지난해 3월 유로화 사용 19개국을 뜻하는 ‘유로존’ 실업률은 7.2%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8.3%로 치솟았다. 특히 지난해 유로존 GDP는 2019년보다 12% 이상 감소해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5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양극화도 심화했다. 거대 플랫폼 기업과 화이트칼라 전문직 노동자는 재택근무 등으로 코로나19의 타격을 거의 입지 않았다. 또 각국 정부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이들이 보유한 자산 가격 또한 대폭 상승했다. 반면 강도 높은 봉쇄 조치로 식당 종업원 등 육체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가게 점원 배달원 등 유럽 저숙련 노동직은 인구가 과밀한 지역에서 일해 감염 위험이 일반 사무직보다 약 2배 높았다. 또 지난해 저숙련 저임금 직종은 근로시간이 28% 감소한 반면 사무직 등 고임금 직종은 18% 감소에 그쳤다. 청년계층 노동시간도 26% 감소해 중장년 근로자(15%)보다 크게 줄었다. 이로 인해 임대료 제한,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 좌파 정당의 공약이 주목을 받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독일 총선이다. 사민당은 임대료 제한, 최저임금 인상, 공공서비스 확대, 부유세 도입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 기민당을 물리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민당은 코로나19 사태로 재정 지출이 대폭 늘어난 만큼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특히 총선 당일인 지난달 26일 베를린에서는 도이체보넨 등 대형 민간 부동산회사 10여 곳이 보유한 임대주택 20만 채를 몰수한 후 공유화하도록 시 정부에 촉구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주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고 민간 기업에 대한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지만 과반수의 유권자가 찬성했다. 조만간 취임할 프란치스카 기파이 시장 당선자는 어떤 식으로든 주민투표 결과를 시정에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상 기후와 바이든 효과 기후 재난이 자주 발생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7월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서유럽 주요국에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200명 이상이 숨졌다. 8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에서는 폭염과 강풍 등으로 산불이 확산돼 각국마다 최대 2만 헥타르 이상의 숲이 불탔다. 이로 인해 탄소배출 ‘제로(0)’ 등 기후변화 대책을 주창하는 녹색당이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우파 정당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BBC는 석유부국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지난달 총선에서 8년 만에 집권 우파 정당이 패한 것 또한 기후변화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노르웨이는 풍부한 석유, 천연가스를 보유한 자원부국이다. EU가 최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터라 이번 총선에서도 에너지가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많은 유권자들이 풍력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 강화, 석유산업 비중 축소 등 ‘탈(脫)탄소’를 주창한 좌파 정당 쪽에 표를 던졌다. 1월 집권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친환경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것 또한 유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화상 연설을 통해 “2030년까지 메탄 배출을 2020년 대비 최소 30% 줄이는 ‘국제메탄서약’ 마련을 위해 EU 등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이 임명한 존 케리 미 기후특사 역시 세계를 누비며 친환경 정책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극우 정당에 대한 거부감 좌파 부상으로 이들과 정반대편에 있는 극우 대중영합주의 정당들은 눈에 띄는 부진을 보이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난민이 유럽에 대거 유입된 후 반이민·반EU를 주창하며 한때 약진했지만 지나친 극단주의 성향으로 유권자의 외면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017년 총선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당 이후 극우정당으로는 처음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당시 득표율 또한 12.5%에 달해 기민당, 사민당에 이어 일약 제3당으로 약진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10.4%를 얻어 제5당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수도 빈 시의회 선거에서도 극우 자유당이 7%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2015년 같은 선거 때 득표율(31%)보다 2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크리스티안 뤼트 전 AfD 대변인은 사석에서 “이민자를 총살하거나 가스로 처리하면 된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져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나치 독일의 과오를 지우기 위해 지도자부터 과거사 사과에 앞장서 온 독일에서 공당의 대변인이 ‘가스’ 운운했다는 사실이 일반인에게도 큰 거부감을 안겼다. 한때 ‘세계 최연소 국가정상’으로 젊은 우파 정치인의 상징으로 각광받았던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전 총리(35)가 최근 부패 혐의로 전격 사임했다. 그리스 극우정당 황금새벽당의 전직 의원 6명 또한 지난해 범죄조직 운영에 가담한 혐의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강도 높은 봉쇄로 국가 간 이동 인구가 줄어 난민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감소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 프랑스 대선이 분수령 유럽의 좌향좌 현상이 더 공고해질지는 독일과 함께 EU 쌍두마차로 꼽히는 프랑스의 내년 대선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상두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최근 유럽 선거 결과는 좌파 정당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지난 4, 5년간 집권한 우파 정당에 대한 심판 성격”이라며 좌향좌 추세가 완전히 고착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했다. 그는 독일 총선 역시 사민당의 승리보다는 안정적이고 신중한 이미지로 ‘남자 메르켈’이라 불리는 숄츠 대표가 인물 대결에서 승리한 경향이 짙다고 분석했다. 아르민 라셰트 기민당 대표가 7월 대홍수 당시 수해 현장에서 웃는 모습으로 큰 비판을 받은 데다 라셰트가 주지사로 재직 중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코로나19 상황도 나빠 숄츠가 반사이익을 거뒀다는 의미다. 프랑스 대선에서는 중도 실용주의를 내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극우 후보가 추격하고, 좌파 후보는 부진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6일 해리스 인터랙티브의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24%의 지지를 얻었고 극우 언론인 에리크 제무르(17%), 역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15%)가 뒤를 이었다. 반난민을 주창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힌 제무르는 소속 정당이 없고 정식 출마 선언을 한 적이 없는데도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이슬람화를 강하게 비판한 저서 ‘프랑스의 자살’로 극우 진영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이민을 제한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르펜과의 차별화를 위해 ‘대부분의 범죄자는 흑인 무슬림이다. 이들을 아예 프랑스에서 완전히 쫓아내야 한다’는 강경 발언을 일삼고 있다.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대표(11%), 중도좌파 사회당의 안 이달고 파리 시장(6%) 등은 선두권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오창룡 고려대 노르딕·베네룩스센터 교수는 사회당 소속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실업난 등 여러 실정으로 사회당이 회복 불능 수준으로 추락했음을 감안할 때 당분간 프랑스에서는 좌파 득세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올랑드 이후에도 좌파 정당에서 걸출한 인물이나 정책을 배출하지 못한 데다 무슬림 테러범에 의한 여러 대형 테러가 발생했던 점도 좌파 정당에 불리한 요소”라고 진단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전설의 마피아’ 알 카포네 권총 10억원 낙찰

    1920년대 미국 금주령 시대에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한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애인(sweetheart)’이라고 부를 만큼 아꼈던 권총(사진)이 8일(현지 시간) 비공개 경매에서 86만 달러(약 10억2300만 원)에 낙찰됐다고 시카고트리뷴 등이 12일 보도했다. 경매에 등장한 20세기 총기 중 최고가라고 덧붙였다. 이번 경매에는 카포네의 손녀 3명이 내놓은 유품 174점이 출품됐다.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최고급 시계 브랜드 ‘파텍필립’의 회중시계를 비롯해 장신구, 가구, 가정용품, 가족사진, 편지 등이다. 이날 낙찰된 물품의 합계 가격은 최소 300만 달러(약 35억7000만 원)에 달한다. 세계 각국에서 약 1500명의 입찰자가 참가했다. 1899년 미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카포네는 1920년경 시카고로 이주해 본격적인 갱단 활동을 시작했다. 금주법 시기에 밀주, 매음, 도박 등으로 부를 축적했고 한때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 갑부로 등재됐다. 1929년 2월 14일 카포네의 부하가 경쟁 갱단의 조직원 등 총 7명을 총격 살해한 ‘성 밸런타인데이 학살’ 사건으로 배후 조종한 카포네 또한 시카고에서 ‘공공의 적’ 1호로 몰렸다. 1931년 탈세 혐의로 수감됐고 이후 풀려났지만 1947년 48세에 사망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알카포네 애장 권총, 10억원에 낙찰…“20세기 총기 중 최고가”

    1920년대 미국 금주령 시대에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한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애인(sweetheart)’이라고 부를 만큼 아꼈던 권총이 8일(현지 시간) 비공개 경매에서 86만 달러(약 10억2300만 원)에 낙찰됐다고 시카고트리뷴 등이 12일 보도했다. 경매에 등장한 20세기 총기 중 최고가라고 덧붙였다. 이번 경매에는 카포네의 손녀 3명이 내놓은 유품 174점이 출품됐다.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최고급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의 회중시계를 비롯해 장신구, 가구, 가정용품, 가족사진, 편지 등이다. 이날 낙찰된 물품의 합계 가격은 최소 300만 달러(약 35억7000만 원)에 달한다. 세계 각국에서 약 1500명의 입찰자가 참가했다. 1899년 미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카포네는 1920년경 시카고로 이주해 본격적인 갱단 활동을 시작했다. 금주법 시기에 밀주, 매음, 도박 등으로 부를 축적했고 한 때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 갑부로 등재됐다. 1929년 2월 14일 카포네의 부하가 경쟁 갱단의 조직원 등 총 7명을 총격 살해한 ‘성 밸런타인데이 학살’ 사건으로 배후 조종한 카포네 또한 시카고에서 ‘공공의 적’ 1호로 몰렸다. 1931년 탈세 혐의로 수감됐고 이후 풀려났지만 1947년 48세에 사망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13
    • 좋아요
    • 코멘트
  • 日 뿌리깊은 세습정치 … “3개의 ‘반’ 있어야 의원배지 단다”[글로벌 포커스]

    “고노가 1위가 아니라고?” 지난달 29일 일본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가 치러진 도쿄 미나토구의 그랜드프린스호텔. 대형 화면에 뜬 1차 투표 결과를 본 취재진과 의원 보좌진은 깜짝 놀랐다. 여론 지지가 높은 고노 다로(河野太郞) 당시 행정개혁담당상이 1차 투표에서 당연히 1위를 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외상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기자들이 휴대전화로 본사 보고를 하느라 현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일본은 집권당 대표가 총리로 선출된다. 선거 직전 주요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 2명 중 1명은 고노를 새 총리로 지지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결국 기시다는 4일 임시국회에서 제100대 총리로 취임했다. 의원 382명, 당원 382명 등 합계 764명이 투표를 한다지만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이 사실상 밀실에서 총리를 결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과정에서 1억2000만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는 거의 없었다. 세계 3위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은 후진적 정치 체계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기시다는 유권자가 아닌 몇백 명의 자민당 의원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며 “중국과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 외에 자민당은 유일하게 세계에서 긴 시간 동안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디언 또한 자민당의 장기 집권으로 일본이 주요 선거에서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며 “제대로 된 선택지가 없다면 민주주의 또한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일종의 ‘종교’ 혹은 ‘선거승리 기계’로 여겨지는 자민당의 독주가 새롭고 신선한 인물의 등장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 고착화된 자민당 장기 집권과 세습 정치 2000년대 들어 모리 요시로(森喜朗)부터 현 기시다까지 일본은 총 10명의 총리를 맞았다. 이 중 자민당 출신이 아닌 사람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 나오토(菅直人),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단 3명. 다만 하토야마 총리는 1986년 자민당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7년 후 당적을 옮겼다. 이 세 사람의 재임 기간을 합해도 약 3년 3개월에 불과하다. 두 차례 집권을 통해 무려 3188일(약 8년 7개월)간 재임한 최장수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큰 차이를 보인다. 또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간, 노다 총리를 제외한 총리 7명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총리, 장관, 의원 등을 지낸 정치 명문가(名門家) 출신이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후보 4명 중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제외한 기시다 총리, 고노 자민당 홍보본부장,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저출산담당상 등 3명이 세습 정치인이었다. 의원도 마찬가지다. 2017년 출범한 현 중의원에서 당시 당선인 중 26%가 세습이었다. 자민당으로 한정하면 이 수치가 40%로 오른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과 일본의 세습 정치 전통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잘 보여준다. 일본 내에서는 31일 중의원 선거에서도 세습 정치인이 대거 당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민당은 1955년 온건 보수 성향의 민주당과 강경 보수 자유당이 ‘보수 대단결’을 주창하며 탄생했다. 이후 현재까지 66년 동안 약 4년(1993년 8월∼1994년 5월, 2009년 9월∼2012년 12월)을 제외하면 집권당 자리를 유지했다. 즉 일본의 정권교체는 집권당이 바뀌는 게 아니라 자민당 총재를 배출하는 파벌의 물갈이에 가깝다. 당내 특정 파벌이 배출한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선거 성적이 좋지 않으면 다른 파벌의 수장을 새 총리로 앉혀 일당독재 비판을 비켜가는 식이다. ‘당내 정권 교체’란 적당한 타협점을 제시해 변화를 바라는 국민 불만을 무마하는 것이다.○ 약체 야당, 선거제도 등이 장기 집권 부추겨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62년간 특정 정당이 집권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로 우선 수권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무능이 꼽힌다. 많은 일본인은 하토야마, 간, 노다 등 민주당 소속 총리가 3번 연속 집권했던 당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약체 국가였다고 보고 있다. 당시 민주당은 고교 수업료 및 고속도로 이용료 무료화, 양육비 지원 등 다양한 복지정책을 시도했지만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소비세를 올렸다. ‘자민당 장기 집권에 질려서 뽑아줬더니 돈부터 뜯어간다’는 조세 저항이 거세졌다. 이 와중에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당시 간 나오토 정권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했다. 엔화 가치 상승을 방치해 수출경쟁력이 약화됐고 자주외교를 외치면서 미국과의 충돌도 잦았다. 당시 트라우마가 강하게 남아있는 탓에 많은 일본인은 자민당 소속 주요 정치인의 비리 등이 대대적으로 보도돼도 자민당을 버리고 야당으로 돌아서지 않는다. 요미우리신문이 6일 보도한 정당 지지율을 보면 자민당이 48%, 입헌민주당은 13%에 불과했다. 입헌민주당을 자민당의 대체재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95년까지 유지됐던 중의원 중선거구제 또한 자민당 장기 집권과 세습 정치를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는 ‘국회의원에게 3개의 반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반(地盤·지역구), 가반(포·돈), 간반(看板·가문)을 뜻하며 세 요소의 일본어 발음이 모두 ‘반’으로 끝나 유래했다. ‘가반’은 한국어의 ‘가방’인데 일본 정치계에서는 돈다발을 가득 넣은 가방으로 비유된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최다 득표를 한 후보 1명만이 당선되지만 지역별 인구에 따라 3∼5명의 복수 후보가 뽑히는 중선거구제에서는 15∼20% 득표만 해도 당선이 가능했다. 자금력, 인지도 등에서 일반 후보보다 훨씬 앞선 세습 정치인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1996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후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런 전통이 짙게 남아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부분의 선거가 전자 투·개표가 아닌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직접 지지 후보의 이름을 써내는 ‘자필 기술’ 방식으로 치러지는 점도 익숙한 성을 지닌 세습 정치인에게 유리하다. 세습 의원이 자식 이름을 ‘다로’ ‘신지로’ 등 기억하기 쉬운 이름으로 짓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부총리의 장남 고노 다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전 환경상 등이 대표적이다. 가네코 마사루(金子勝)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세습 정치인끼리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 총리에 오르는 현실을 두고 마이니치신문에 “19세기 메이지시대의 귀족 사회처럼 명문가가 아니면 (높은 곳에) 오를 수 없다. 북한을 보고 비웃을 수 없을 정도”라고 비판했다.○ 기시다 내각도 ‘세습 내각’ 기시다 내각에서도 세습 정치인의 득세가 두드러진다. 우선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재무상은 전임 재무상 아소 다로(麻生太郞)의 처남이다. 소셜미디어에는 ‘처남에게 재무상 같은 중책을 물려주는 게 말이 되느냐’ ‘장관직이 친인척 사이에서 오가는 자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아소는 아베 전 총리가 속한 자민당 최대 파벌 호소다파(96명)에 이은 2위 파벌 아소파(53명)를 이끌고 있다. 아소파는 이번 선거에서 겉으로는 기시다 총리와 고노 전 행정개혁담당상 중 1명에게 자율적으로 투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파벌 수장인 아소가 개혁 성향이 강하고 자신과 사이도 껄끄러운 고노를 배척하고 기시다를 노골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 이런 아소에게 보답하기 위해 기시다 또한 아소의 처남을 재무상에 발탁했다는 말이 나온다. 스즈키 재무상 또한 세습 정치인이다. 그의 부친이자 아소의 장인은 1980년대 초 총리를 지낸 스즈키 젠코(鈴木善幸·1911∼2004)다.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이다. 어렸을 때 외가로 양자를 가서 형과 성이 다르지만 전후 일본 총리 중 가장 극우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형의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네코 겐지로(金子原二郞) 농림수산상의 부친 역시 과거 농림수산상을 지낸 중의원 의원 가네코 이와조(金子岩三·1907∼1986)다. 부자(父子)가 같은 자리 장관을 지내는 것 또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시다 총리 또한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넘겨준 히로시마 지역구를 물려받은 3대 세습 정치인이다. 아들만 셋인 그 또한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장남 쇼타로(翔太郞·30)는 기시다의 비서, 차남 고시로(晃史郞·24)는 비서 직책조차 없이 부친의 일을 도우며 도쿄에 있는 의원 숙소에서 함께 기거했다. 조만간 두 아들이 어떤 형태로든 정계에 입문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파벌은 존재하나 분열은 없어 자민당 내 7개 파벌이 합종연횡을 거듭하지만 막판에는 굳건하게 단결하는 모습 또한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하고 있다. 자민당 파벌은 △파벌 수장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소속원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다른 파벌과 동시에 소속되지 않는다. 일종의 ‘정당 속 정당’인 셈이다. 총재 선거 때는 서로 지지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합의 추대로 새 총리를 결정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자민당에서 분열은 일종의 ‘금기’로 여겨진다”며 오랜 집권 경험을 통해 분열하면 집권할 수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짧은 집권에 그친 민주당이 이후에도 오랫동안 당내에서 집권 실패 원인에 대한 책임 공방에만 치중해 국민 신뢰를 잃은 것과 대조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주경 부산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또한 “국회에서 정당 간 정책 대결이나 논의보다 자민당 내 파벌 간 결정과 합의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당 내부에서 합의를 도출하면 국회에서도 곧바로 통과되는 식으로 고착화되다 보니 당의 결정이 정부 정책을 좌우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의미다. 세습 정치에 대한 국민 거부감도 낮다. 일본에서는 정치뿐만 아니라 많은 직업이 세습된다. 동네의 조그마한 라면가게, 초밥가게 등도 마찬가지다. ‘자식에게 기득권을 물려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장인정신을 계승한다’는 쪽에 가깝다.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자는 여론 또한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주요 언론 중 ‘헌법을 개정해 총리를 국민이 직접 뽑는 방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곳은 2012년 5월 아사히신문이 마지막이다. 당시에도 찬성이 68%로 반대(17%)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이런 여론이 현실 정치에 반영되지는 못했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정치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무관심을 부추겨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계속 이어지는 일종의 악순환이 나타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여러 측면에서 자민당은 ‘유권자의 무관심’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고 권력자를 직접 선출하는 것도 아니고, 선거에서는 어차피 자민당이 이길 가능성이 큰 만큼 투표를 하지 않는 국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OTT탓 업무 과중”… 美할리우드 노동자, 128년 만에 파업 결의

    미국 할리우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128년 만에 파업을 결의하면서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와 영화 등의 제작이 미국에서 전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OTT 플랫폼 산업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데 반해 노동자 처우는 산업 초기인 1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파업을 결의하게 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촬영 음향 영상 기술자와 무대 소품 메이크업 의상 담당자 등으로 구성된 노동조합 ‘국제극장무대종사자연맹(IATSE)’은 조합원 6만여 명 가운데 투표자 98% 이상의 찬성으로 무기한 파업을 승인했다고 5일 밝혔다. IATSE의 전국 단위 파업 의결은 연맹 결성 128년 만에 처음이다. IATSE는 고용주를 대표하는 ‘영화·방송제작자연합(AMPTP)’에 제작 스태프들의 임금 인상과 휴식 및 식사시간 보장, 안전한 노동 환경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매슈 러브 IATSE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수조 달러 가치의 거대 회사들이 스태프들의 충분한 수면이나 주말 보장 등 기본적인 요구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특히 넷플릭스와 애플TV, 아마존프라임, 디즈니플러스, 훌루, HBO맥스 등 거대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들이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IATSE는 주장하고 있다. 독일의 시장조사 회사 슈타티스타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비디오 스트리밍 시장 규모는 2017년 282억200만 달러에서 올해 708억4500만 달러(예상치)로 성장했다. 급속히 성장한 이들 플랫폼은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지만 스태프 임금은 기존 제작사들이 지급하는 것에 비해 오히려 적다는 것이 IATSE의 불만이다. WP는 “기존 TV시리즈가 시즌제로 제작돼 휴지기가 있었던 데 반해, 스트리밍 서비스는 연중무휴로 제작되면서 스태프의 노동 강도가 눈에 띄게 높아진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도 파업 결의의 배경이 됐다. NYT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인기 많은 시리즈의 제작이 지연되면서 넷플릭스 등 OTT 회사들의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했다”며 “이들 회사는 구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A급’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막대한 급여를 지급하면서 스태프 임금 등에서 비용 절감을 꾀해 왔다”고 지적했다. 협상이 최종 결렬돼 IATSE가 실제 파업에 돌입하면 즉각 그 여파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NYT는 “2007년 작가노조 파업 당시 제작사들은 여분의 대본으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할리우드에서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제작자 출신인 글렌 윌리엄슨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파업이 시작되면) 단기적으로는 모든 것이 중단될 것”이라고 WP에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계 미국인 로렌 조, 실종 3개월째…美 당국 수사 나서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실종된 지 3개월이 넘도록 발견되지 않아 미 수사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2일(현지 시간) 미 CNN 등에 따르면 북동부 뉴저지주 태생인 로렌 조(30)는 6월 28일 오후 5시 경 서부 캘리포니아주 유카밸리에 있는 한 숙소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실종됐다. 당시 조 씨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 중이었다.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카운티 당국은 마지막 목격자인 친구들의 증언을 토대로 조 씨가 화를 내며 모든 소지품을 숙소에 둔 채 물과 음식 없이 사막으로 향했다고 전했다. 한 친구는 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일을 그만두고 여행 이전부터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 씨는 타투 샵 등에서 일했다.조 씨의 가족들은 8월부터 페이스북에 ‘실종자: 로렌 조’ 계정을 개설해 그의 사진과 신체적 특징 등을 올리며 목격자를 찾고 있다. 조 씨의 실종은 그와 비슷한 시기 실종됐지만 지난달 30일 숨진 채 발견된 백인 여성 개비 페티토(22) 사건과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다. 페티토는 6월 남부 플로리다주에서 미 전역을 도는 캠핑 여행을 떠났다. 소셜미디어에 약혼자 브라이언 론드리(23)와의 여행 일상을 올리며 행복했지만 8월 말 갑자기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페티토는 지난달 19일 북서부 와이오밍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력한 용의자인 론드리는 아직까지 실종 상태로 행방이 묘연하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03
    • 좋아요
    • 코멘트
  • 美와 밀착 호주 때린 中… ‘철광석 방패’ 못뚫고 전력난 자충수[글로벌 포커스]

    지난달 15일 호주가 미국, 영국과의 앵글로색슨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면서 최근 몇 년간 이어졌던 중국과 호주의 갈등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중국은 철광석, 와인 등 호주산 상품의 수입을 줄줄이 중단하며 강도 높은 무역 제재를 가했다. ‘중국 정부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후시진(胡錫進) 관영 환추시보 편집장 또한 지난해 4월 “호주는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처럼 느껴진다. 돌로 문질러줘야 한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오커스로 핵잠수함을 보유하게 된 호주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중국 또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시사전문지 디애틀랜틱은 양국 갈등을 두고 “중국은 힘의 한계를 발견했다. 세계를 바꾸려 하지만 작은 주변국조차 바꾸지 못했다”고 평했다. 상호 의존적인 세계 무역 공급망, 복잡한 외교안보 네트워크가 작은 나라(호주)도 큰 나라(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했다는 의미다. ○ 中 과거엔 ‘좋은 동반자’ vs 현재 ‘씹던 껌’ 호주와 중국은 1972년 수교했다. 미중 수교(1979년)보다 7년 빨랐다. 이를 통해 호주는 세계 최대 수출 시장을 얻었고, 중국은 영연방의 일원이며 역사적으로 영국 미국과 친밀한 관계인 호주와의 협력을 강화할 기회를 확보했다. 7년 전만 해도 양국 관계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10월 고프 휘틀럼 전 호주 총리가 별세했을 때 “중국인은 좋은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휘틀럼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2년 동맹인 미국과 영국의 반대에도 호주 총리 최초로 중국을 방문해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시 주석은 한 달 후 호주를 직접 찾아 연방의회 연단에서 “역사적인 원한도, 근본적인 이익 충돌도 없는 중국과 호주야말로 진짜 동반자”라고 선언하며 호주-중국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알렸다. 호주는 중국에 아편전쟁, 홍콩 할양 등 굴욕을 안긴 영국도, 패권 다툼을 벌이는 미국도 아니라는 의미다. 당시 시 주석은 중국 최고지도자 최초로 뉴사우스웨일스 등 호주 6개 주를 모두 방문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하고 다음 해 8월 현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집권하면서 양국 갈등이 격화했다. 2018년 8월 트럼프 행정부는 미 국방부 등 정부기관에서 중국 최대 통신장비기업 화웨이의 통신장비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가 중국 정보기관의 역할을 한다고 봤다. 인민해방군 출신의 런정페이(任正非)가 창업한 화웨이가 각국 통신망에 ‘백도어’(정보를 빼돌리는 장치)를 심어 기밀을 빼낸 뒤 중국 공산당에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호주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화웨이 때리기’에 동참하며 화웨이를 5세대(5G) 이동통신망 사업 입찰에서 배제했다. 중국은 분노했다. 중국은 2019년 3월 호주산 석탄을 시작으로 보리, 쇠고기, 와인, 바닷가재 등 주요 상품에 줄줄이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특히 와인에는 최대 218%의 관세를 부과했다. 지난해 기준 중국은 호주로부터 2511억 호주달러(약 215조3157억 원)의 물품과 서비스를 사들였다. 호주 전체 수출의 43%다. 2위 미국(808억 호주달러), 3위 일본(791억 호주달러)보다 훨씬 많다. 중국 시장을 잃으면 호주 수출이 반 토막 난다. ‘미국 편에 서면 돈으로 보복한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지난해 11월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트위터에 호주 군인이 웃으며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목을 베는 모습을 묘사한 합성사진을 올리고 “호주 군인이 아프간에서 저지른 행각에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당시 호주는 과거 아프간에 파병된 자국 특수부대원이 민간인 등 39명을 불법 살해했다고 발표하며 전면 재조사를 약속했다. 중국의 조롱에 격분한 모리슨 총리는 “혐오스럽고 터무니없다”며 사진 삭제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거부했다. 같은 달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은 호주 취재진에 5G 사업에서 화웨이 배제, 홍콩 인권문제 개입 등 ‘호주의 반중 정책 14가지’란 문서를 배포하며 ‘이런 행동은 하지 말라’는 협박성 메시지를 보냈다.○ 일대일로 파기한 호주, ‘中은 침략자’ 맞불 호주도 반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했을 때부터 중국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며 기원 조사를 주장했다. 모리슨 총리 또한 지난해 4월 ‘친중 성향의 세계보건기구(WHO)가 아닌 중국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며 미국을 거들었다. 석 달 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2700억 호주달러(약 224조 원)를 들여 첨단 무기를 도입하겠다고도 발표했다. 올 4월에는 남동부 빅토리아주가 2018, 2019년 중국과 맺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이 안보와 국익을 해친다며 전면 백지화했다. 호주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외국의 계약을 무효화한 것은 처음이다. 5월 호주 국가안보위원회(NSC)는 2015년 북부 다윈항이 중국 기업과 맺은 ‘99년간’ 장기 임대차 계약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윈항은 중국이 중동산 석유를 들여오는 말레이시아 남부 말라카해협에서 남동쪽으로 약 3700km 떨어져 있으며 뱃길로 접근이 용이하다. 중국의 ‘에너지 생명줄’ 같은 이 해협을 미국, 영국 해군이 장악해 왔다. 유사시 미국이 말라카를 틀어막으면 중국의 석유 공급이 끊긴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주석은 이 안보 위협을 ‘말라카 딜레마’라고 불렀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역대 중국 지도자의 숙원이었다. 최근에서야 중국이 다윈항을 거점 삼아 장기적으로 말라카의 미 해군을 견제하려 했는데 호주가 엎은 셈이다. 서방은 오래전부터 일대일로를 두고 ‘인프라 투자를 앞세워 전 세계를 중국의 경제식민지로 만들려 한다’고 비판해 왔다. 파키스탄 과다르항, 스리랑카 함반토타항 등 저개발국 주요 항만에 투자한 것도 이런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모리슨 총리는 지난달 27일 미 CBS 인터뷰에서 시 주석과 1년 넘게 대화가 없었으며 중국 측이 호주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브론윈 비숍 전 호주 하원의장은 3월 “중국은 침략자(aggressor)”라고 일갈했다. 호주 언론도 중국에 날을 세웠다. 앤드루 볼트 호주 스카이뉴스 앵커는 지난달 27일 “중국은 깡패집단(gangsters)이 운영하는 나라”라고 비난했다.○ 中자본·유학생 급증, 반중 여론 부추겨 호주가 중국을 버리고 미국의 편에 선 것은 미국과 오커스,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5개국 동맹체) 등을 함께한다는 점, 인권 및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점도 있지만 호주 내부의 반중 여론 또한 적지 않게 작용했다. 2014년경부터 중국인은 호주 부동산을 대거 매입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017년 한 해에만 중국인이 사들인 호주 부동산이 150억 호주달러(약 12조8600억 원)다. 이후 시드니 등 주요 도시 집값이 급등하자 호주인의 분노는 중국을 향했다. 2019년 7월 퀸즐랜드대에서는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평화 시위를 벌였던 호주 학생이 2년 정학 처분을 당했다. 반면 시위대를 폭행한 중국 유학생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중국 유학생은 호주 학생보다 3, 4배 비싼 등록금을 낸다. 유서 깊은 대학조차 중국 자본에 종속돼 벌어진 일이라는 자조가 일었다. 지난해 6월 호주 로위연구소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호주 국민의 94.4%는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을 줄이고 대체 시장을 모색해야 한다”고 답했다. 중국이 ‘경제협력 대상’이라는 응답은 2018년 81%였지만 지난해 15%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중국이 ‘안보위협 국가’란 답도 12%에서 41%로 증가했다. ○ 고품질 호주산 철광석이 버팀목 중국이 유독 호주를 때리는 이유에도 관심이 쏠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베이징 지국장을 지낸 리처드 맥그리거 로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어도 미국의 동맹은 때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중국이 호주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입지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호주를 공격해 미국과 대리전을 벌인다는 의미다. 중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다. 호주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4위에 불과하다. 인구(1위 vs 55위)와 군사력(3위 vs 19위)도 차이 난다. 미 CNN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의 국방비는 270억 달러(약 31조9950억 원), 중국은 2520억 달러(약 298조6200억 원)다. 그래도 호주가 버티는 것은 ‘믿는 구석’ 때문이다. 호주는 세계 최대 철광석 수출국이고 대중 1위 수출 품목도 철광석이다. 호주산 철광석은 고품질이라 중국도 대체품을 찾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호주산 철광석이 없다면 중국 제철산업이 문을 닫아야 할 것으로 분석한다.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중국은 호주에 무역 제재를 가했지만 타격을 주지 못했다. 철광석 수입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4월 SCMP 또한 ‘철광석 가격 급등으로 호주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대부분 만회했다”고 분석했다. 호주는 세계 제1의 석탄 수출국이기도 하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중국 전력난의 주요 원인도 호주산 석탄 수입 중단이었다. 중국은 연간 발전용 석탄의 5%(약 1억5000t)가량을 호주에서 수입한다. 이것이 막히자 전력 공급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호주 역시 중국과 대치하며 피해를 입었다. 중국은 호주산 바닷가재의 95%를 소비한다. 적지 않은 호주 어민 및 농가 또한 중국의 무역 보복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 호주 경제학자 솔 에슬레이크는 “호주는 중국을 대상으로 무역 흑자를 내는 몇 안 되는 국가”라며 “무역 전쟁이 길어지면 불리한 쪽은 호주”라고 우려했다. 미 외교싱크탱크 퍼스 US아시아센터의 제프리 윌슨 연구원은 디애틀랜틱에 호주를 ‘탄광 속 카나리아’ 같은 존재라고 평했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유럽 광부들은 갱도의 유독가스를 감지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들여보냈다. 마찬가지로 호주를 통해 힘을 앞세운 ‘늑대전사(戰狼) 외교’를 펼치는 중국이 전 세계에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감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제프 라비 전 중국 주재 호주대사는 “거대하고 강력한 국가인 중국은 나쁜 행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과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10-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EU 주요인사들 “영국 주유 대란은 브렉시트 때문, 자업자득” 비판

    유럽연합(EU) 주요 인사들이 영국의 운송 지연 사태는 EU를 떠나는 ‘브렉시트’를 단행한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일간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미셸 바르니에 전 EU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는 28일 런던정경대 화상 행사에서 영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운송 지연으로 인한 연료용 기름 부족과 사재기 사태에 대해 “브렉시트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문제는) 트럭 운전자들과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며 “영국은 이동의 자유를 끝내고 EU 단일시장을 떠나기로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월 말 단행된 영국의 EU 탈퇴 이후 많은 EU 노동자들이 영국을 떠났다. 브렉시트 후 영국에서 장기체류를 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하는 등 전보다 각종 절차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이동과 고용이 어려워지면서 트럭 운전사 부족 사태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26일 독일 총선에서 승리해 유력 차기 총리 후보가 된 올라프 슐츠 사회민주당 대표도 브렉시트를 택한 영국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2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국 매체 채널4 기자가 “영국에서 발생한 운송 지연 사태에 독일 운전사를 보내줄 계획이 있나”고 묻자 그는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EU의 한 요소다. 우리는 영국의 EU 탈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영국은 다른 결정을 내렸다. 영국이 그것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잘 해결하길 바란다”며 지원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클레망 본 프랑스 유럽담당 국무장관도 “영국의 운송 지연 사태는 브렉시트 탓”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에서는 트럭 운전자가 부족해 곳곳에서 기름과 생필품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09-29
    • 좋아요
    • 코멘트
  • 美, 소비폭발에 물류대란… 코스트코 “생수-휴지 판매수량 제한”

    미국과 영국이 물류대란으로 비상이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경제가 회복되면서 위축됐던 수요가 급증했고, 추수감사절 연휴 특수도 다가오고 있지만 항만 하역이 적체되는 데다 화물차 운전사 등 운송 인력마저 부족한 탓이다. 일부 품목은 가격 인상과 품절 사태도 빚어지고 있다.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수입품의 4분의 1 이상이 들어오는 서부 로스앤젤레스(LA)와 롱비치 항구는 최근 밀려드는 화물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정박까지 대기하는 시간이 3주에 이르면서 60척이 넘는 화물선이 바다에서 입항을 기다리고 있다. 항구에는 컨테이너가 쌓여가고 있다. 이스라엘 운송회사 프레이토스는 화물선이 중국을 출발해 미국에 입항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83% 증가했다고 밝혔다. 평일에도 몇 시간씩 문을 닫던 롱비치항은 적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주 4일은 24시간 운영 체제를 도입했다. 물동량 증가가 적체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태평양상선협회는 LA항과 롱비치항이 취급한 컨테이너 수가 올해 1∼7월 600만 개에 이르러 코로나19 이전보다 23% 늘었다고 밝혔다. 내륙 운송도 화물차와 운전사를 구하지 못해 난리다. 일부 상품의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코스트코는 키친타월과 휴지, 생수 판매 수량을 제한하기로 했다. 나이키는 미국에서 추수감사절(11월 셋째 주 일요일) 연휴 동안 판매할 운동화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나이키는 최근 아시아 공장에서 북미로 화물 컨테이너를 옮기는 데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2배로 긴 약 80일이 걸린다고 알렸다. 인조 크리스마스트리 업체들은 운송비가 치솟자 예년에 비해 가격을 20∼25% 인상키로 했다. 영국도 운송 지연으로 기름과 생필품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27일 BBC 등에 따르면 영국 전역의 주유소 앞엔 나흘째 주유를 기다리는 차량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영국 석유소매상협회는 26일 회원사 주유소의 3분의 2에 이르는 5500곳에서 기름이 동났다고 밝혔다. 슈퍼마켓은 식료품을 제때 배달받지 못해 진열대가 빈 곳이 늘고 있다. 기름과 생필품을 실어 나를 트럭 운전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파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출입국 관련 규제 강화로 EU 회원국 소속 운전사 수만 명이 영국을 떠났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부족한 트럭 운전사 수는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영국 정부가 외국인 트럭 운전사 5000명의 비자를 연장하고 군인을 물류 운송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사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가디언은 “지금이라도 EU 운송업자들이 영국에서 일하는 걸 장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27일 올라프 숄츠 독일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가 총선 직후 연 첫 기자회견에서 영국 매체 기자가 “독일은 영국의 운전사 부족 사태를 도울 생각이 있느냐”라고 물은 것에서도 상황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숄츠는 “우리는 영국이 EU를 떠나지 않도록 매우 열심히 설득했다”고만 답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09-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獨총선, 중도좌파 사민당 박빙승리… 집권 기민당과 연정 싸움

    26일 독일 총선에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1위를 차지해 2005년 이후 16년 만에 정권 교체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집권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과의 지지율 격차가 1.6%포인트에 불과해 최소 2개 정당과 연정을 구성해야 집권할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최대 수개월이 걸리는 협상 결과에 따라 16년간 집권했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67)의 후임자가 결정되는 만큼 메르켈이 당초 예정됐던 다음 달 퇴임이 아닌 연말까지 총리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공영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연정 협상이 12월 17일을 넘기면 그는 5869일간 집권한 헬무트 콜 전 총리를 넘어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된다. 27일 선거당국의 예비 결과 발표에 따르면 사민당은 25.7%의 지지율을 얻어 중도우파 기민·기사 연합(24.1%), 좌파 녹색당(14.8%), 우파 자유민주당(11.5%),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10.3%) 등을 눌렀다. 사민당은 4년 전 총선보다 5.2%포인트를 더 얻었다. 7월 대홍수, 수도 베를린의 부동산 가격 급등 등으로 민심을 잃은 기민·기사 연합은 8.8%포인트를 잃으며 참패했다. 의원내각제인 독일 총선은 유권자가 개별 정당과 선거구 후보에 각각 한 표씩을 행사하며 이후 정당별 득표율에 비례해 최종 의석수가 결정된다. 특정 정당이 과반 지지율을 얻어 단독 정부를 구성하는 사례가 거의 없어 정당 간 협상을 통해 연정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민당은 선거 전부터 “기민·기사 연합과 연정을 구성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현재 녹색당 및 자민당과의 연정을 추진하고 있다. 빨간색을 당색으로 쓰는 사민당이 녹색당(초록), 자민당(노랑)과의 연정을 구성하면 일명 ‘신호등 연정’이 탄생한다. 올라프 숄츠 사민당 대표(63)는 1위 확정 후 “유권자는 정권 교체 및 내가 총리가 되는 것을 바랐기에 사민당에 투표했다”며 연정 구성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성공하면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게르하르트 슈뢰더에 이어 4번째 사민당 출신 총리가 된다. 연방의회 의원, 함부르크 시장, 노동장관 등을 지냈고 사민당이 2018년 3월 기민·기사 연합과 대연정을 출범시킨 후부터 지금까지 메르켈 정권의 재무장관을 맡고 있다. ‘기계인간’ ‘로봇’ 등으로 불릴 만큼 신중하고 안정적인 이미지, 풍부한 국정 경험 등이 장점이다. 이로 인해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총리 후보 중 메르켈과 가장 비슷한 스타일을 지녔다고 평했다. 9.6유로인 연방 최저임금을 12유로로 인상하고 엄격한 임대료 제한 정책을 도입하자고 주장해 젊은이와 서민층의 지지를 얻었다. 1위를 빼앗긴 기민·기사 연합 또한 연정을 통해 정권 연장을 시도한다. 아르민 라셰트 기민당 대표(60) 또한 “우리 당 중심으로 연정을 구성하겠다”며 역시 녹색당, 자민당과의 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검정을 쓰는 기민당과 녹색당, 자민당의 연정은 중남미 자메이카의 국기 색깔과 같아 ‘자메이카 연정’으로 불린다. 양대 정당 모두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녹색당과 자민당에 동시에 구애하는 모습을 두고 공영 ARD방송은 “두 명의 총리 후보와 두 명의 킹메이커가 있다”고 평했다. WP는 “두 후보 모두에게 총리 관저로 가는 명확한 길이 없다”고 했다. 다만 선거 참패의 책임론에 시달리는 라셰트 대표는 연정 구성에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7월 대홍수로 200여 명이 사망한 와중에 피해 현장에서 웃으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포착돼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26일 선거일에도 선거함에 투표용지를 넣던 중 투표 내용을 보이도록 해 구설에 올랐다. 연정 구성이 차질을 빚을수록 유럽연합(EU)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지도력 공백이 국제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유럽 최대 민주주의가 ‘어정쩡한(limbo)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2017년 총선 때도 연정 협상에 4개월이 걸리는 바람에 메르켈 총리가 2018년 3월에야 공식 재취임했다. 4년 전과 달리 메르켈 같은 거물 지도자도 없는 터라 중국 및 러시아 견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양대 정당이 모두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 대통령이 총리 후보를 제청할 수 있다. 후보자가 연방의회 재적 의원(735석) 과반의 지지를 얻어야 총리에 오른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09-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아이슬란드, 유럽 최초 여성의원이 의회 과반

    아이슬란드에서 유럽 최초로 여성 의원이 과반을 차지한 의회가 탄생했다. AFP통신 등은 25일 실시된 아이슬란드 총선에서 여성 의원이 전체 63석 중 33석(52%)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26일 보도했다. 앞서 2017년 총선에서는 여성 의원 24명이 의석을 차지했으나 과반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스웨덴이 전체 여성 의원 비율 47%로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 국제의회연맹(IPU)에 따르면 현재 여성 의원이 과반을 차지한 국가는 르완다(61%), 쿠바(53%), 니카라과(51%), 멕시코(50%), 아랍에미리트(50%)다. 이들 중 일부는 여성 의원 비율을 최고지도자의 지시나 법령으로 할당하는 쿼터제를 두고 있다. AFP통신은 “의회 내 여성 쿼터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슬란드는 여성 과반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아이슬란드는 올해 3월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 남녀평등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2009년부터 12년간 남녀평등 순위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0년에는 세계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선출됐다. 1961년에 남녀 동일 임금을 법으로 규정했고 2018년에는 남녀 동일 임금을 증명하는 책임을 고용주에게 부여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성 총리 카트린 야콥스도티르가 이끄는 좌파녹색운동이 독립당, 진보당과 함께 구성한 3당 연립정부가 37석을 차지하면서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09-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백신 의무화 vs 안 맞을 자유… 美, 줄소송 번진 ‘불신 논쟁’[글로벌 포커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각국이 속속 강도 높은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감염국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9일 연방 공무원, 100인 이상인 민간기업 근로자, 의료 종사자의 백신 접종을 사실상 의무화했다. 이번 조치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 최대 1억 명에 이른다. 21일에는 항공 여행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에게도 접종 증명서 및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미 주요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최대 도시 뉴욕에서는 이달부터 음식점, 헬스장, 박물관, 공연장 등 거의 모든 실내 시설에 입장할 때 반드시 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 2대 도시 로스앤젤레스 역시 다음 달부터 술집과 클럽 등 실내 시설은 물론이고 1만 명 이상의 군중이 모인 야외 놀이공원과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접종 증명서를 내도록 했다. 백신을 맞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접종 의무화 정책을 도입한 것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이에 ‘전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란 의견과 ‘개인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백신 거부 왜?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23일 기준 미국의 접종 완료율은 54.3%로 80%가 넘는 포르투갈과 아랍에미리트(UAE), 70%가 넘는 스페인과 싱가포르보다 뒤진다. 적지 않은 미국인이 백신 접종 의무화에 상당한 반감을 보이고 있어 접종 속도가 정체를 보이고, 신규 확진자 또한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백신 거부자들은 최소 수년, 길게는 10여 년이 걸리는 일반 백신 개발과 달리 코로나19 백신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개발됐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특히 우려한다. 8월 CNBC에 따르면 남부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비기 모터 씨(77)는 “코로나19보다 백신이 더 두렵다.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며 “백신을 맞느니 차라리 내 운을 시험하겠다”고 밝혔다. 미 비영리 단체 카이저가족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미 성인 중 53%가 ‘코로나19 감염’보다 ‘백신 부작용’을 더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전문가의 잘못된 행위로 인한 백신 전반에 대한 불신, 인종차별 역사, 음모론, 종교 등도 빼놓을 수 없다. 199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미 의학 전문지 ‘랜싯’에 ‘홍역 예방 백신이 아동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허위 논문을 발표한 것은 많은 사람에게 백신에 대한 불신을 부추겼다. 훗날 그가 부적절한 연구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해당 논문이 철회됐음에도 후폭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세계 각국 부모들이 집단으로 자녀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1991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는 거의 사라진 줄 알았던 홍역 환자가 대거 발생해 5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조사 결과 주된 감염 경로는 백신은커녕 치료약이나 체온계도 갖추지 않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은 채 옹기종기 모여 사는 한 교회 신도들로 밝혀졌다. 잘못된 믿음이 어린이의 희생을 낳은 셈이다. 1932년 미 공중보건국 또한 남부 앨라배마주의 저소득 흑인 밀집지역인 터스키기에서 매독 연구를 하며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당시 파견된 의사들은 매독으로 고통받는 흑인들에게 정확한 병명을 알려주지 않은 채 아스피린과 철분제를 치료제라고 나눠줬다.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페니실린이 발견된 후에도 이 같은 행태를 이어갔다. 1973년에야 이런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악몽으로 적지 않은 흑인들이 백신 의무화 등 정부 주도의 의료 정책에 강한 트라우마를 보인다. 반면 의료계는 백신 반대 움직임을 백신에 대한 비합리적인 불신이 낳은 반지성의 산물로 보고 있다. 미접종 보균자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병을 옮길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사회 전체의 집단면역 체계 또한 무너진다는 이유에서다. 연방정부 또한 오래전부터 백신 접종을 독려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8세기 천연두가 창궐하자 휘하 군인들에게 예방접종을 강제했다. 독립전쟁 당시 ‘천연두가 영국군보다 더 무서운 존재’란 말까지 돌았고 당시 감염자의 3분의 1이 숨졌을 정도로 천연두가 무서운 병이었기 때문이다. 미 ‘건국의 아버지’로 꼽히는 벤저민 프랭클린 또한 저서에 “1736년 네 살짜리 아들을 천연두로 잃었다. 아이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된다”는 기록을 남겼다. 백신의 효과가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장티푸스 등 전염병 백신을 의무적으로 맞은 군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백신 문화’를 보급했다. 소아마비, 홍역, 볼거리 등에 대한 백신들도 이즈음 개발됐다. 각 주 또한 입학하는 초등학생들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법률을 속속 도입했다.○ 의무화 밀어붙일수록 반발도 거세바이든 행정부가 접종 의무화 강도를 높이면서 미 전역에서는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속속 충돌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21일 유나이티드항공사 직원 6명은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발해 텍사스주 법원에 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가 종교나 의학적 이유로 접종을 거부하려는 직원들을 차별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것이 회사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로 작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앞서 8월 “모든 직원에게 백신 접종을 요구하는 것이 직원 안전은 물론이고 접종률 고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접종을 의무화했다. 접종 대신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것 등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접종을 하지 않은 직원들은 무급 휴가를 받도록 했다. 일부 공무원의 반발도 거세다. 최근 로스앤젤레스 일부 소방관과 경찰들은 시 당국의 공무원 백신 접종 의무화 방침에 반발하며 “당국은 접종을 의무화시킬 헌법적 권리가 없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공무원이 실험 상태인 백신을 왜 먼저 맞아야 하느냐며 ‘마루타’가 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코로나19 백신의 장기적인 효과 및 부작용이 확인되기 전에 접종을 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며 일종의 ‘백신 독재’가 펼쳐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15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남부 플로리다주 로더힐의 아파트에서 2년째 살던 재스민 얼비 씨(28) 또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해 집주인 산티아고 알바레스 씨(81)와 거세게 충돌했다. 올해 초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된 알바레스 씨는 지난달 “모든 신규 세입자는 8월 15일까지, 기존 세입자는 임대 갱신 전에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 접종하지 않을 사람은 나가라”고 통지했다. 그는 “친구 2명이 코로나19로 죽었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주민 또한 12명이 사망했다. 접종을 안 하는 사람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얼비 씨는 “접종 여부는 나의 개인 건강 정보이며 이를 집주인에게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지만 결국 다른 집을 구해 이사했다. 그는 이사 후 변호사를 선임해 알바레스 씨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냈다. 음식점 업주의 반응도 엇갈린다. 유명 스테이크 식당 체인 ‘바비 밴스’의 조지프 스미스 대표는 폭스비즈니스에 출연해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로 막대한 영업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주에서 오는 50명 이상의 단체 손님들이 그룹 내 일부가 백신 접종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예약을 통째로 취소하고 있다”며 시 당국의 접종 증명서 강제화 조치가 과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데 있어 손님과의 갈등이 불거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뉴욕 맨해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스트래티스 모포건 씨 또한 마켓워치에 “한 고객이 와서 ‘나는 3주 전에 코로나에서 회복돼 항체가 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도 음성’이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여기서 식사를 할 수 없다’고 손님을 쫓아내겠느냐”고 했다. 앞서 6월 인디애나대의 학생 8명은 학교 측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 대학 측이 가을학기부터 이 대학은 학생들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종교적 또는 의료적 사유로 면제를 받은 사람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정기적인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접종을 강제해 신체에 대한 권리 등을 보장한 미 헌법을 위반했다. 대학이 우리들을 성숙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하는 어린이처럼 대했다”고 반발했다. 다음 달 법원은 “대학은 학생과 교수, 교직원의 합법적인 공중 보건 이익을 위해 합리적이고 정당한 백신 접종 절차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학내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 정치 공방으로도 번져백신 접종 의무화 논란에 대한 입장은 정치 성향에 따라 뚜렷하게 갈린다. 정치매체 액시오스와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10∼13일간 미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집권 민주당 지지자 중 약 80%는 “바이든 행정부의 민간기업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을 찬성한다”고 답했다. 야당 공화당 지지자의 찬성 비율은 약 30%에 불과했다. CNN 방송과 여론조사업체 SSRS가 지난달 3일부터 이달 7일까지 실시한 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자의 80%는 접종 의무화를 찬성했다. 공화당 지지자의 찬성 비율은 23%에 그쳤다. 중도파는 44%가 찬성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9일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를 발표하자 공화당 소속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행정명령으로 맞섰다. 이에 따라 16일부터 플로리다에서는 기업이 직원이나 고객에게 백신 접종서 제공을 요구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5000달러의 벌금을 납부해야 한다. 텍사스, 애리조나, 조지아 등 보수 성향이 강하고 역시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주들 또한 비슷한 소송을 제기했다. 마크 브르노비치 애리조나주 법무장관은 “행정부는 헌법상 백신 접종을 의무화할 권한이 없다. 이 조치는 개인의 자유, 연방주의 원칙, 권력분립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있는 미 24개 주 검찰총장은 16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도 보냈다. 이들은 특히 민간기업 직원의 접종을 강제하는 부분에 불만을 표시하며 “의무화 조치는 불법적이며 분열과 불신만 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백신 접종 의무화를 인정해주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6월 텍사스주 휴스턴에서도 백신 접종을 거부해 일자리를 잃은 의료진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이 병원의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에 대해 직원 안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판단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공무원, 교사 등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쪽은 백신 접종 의무화가 타당하다는 흐름이 관찰된다. 폭스뉴스가 12∼15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사의 백신 접종 의무화를 찬성하는 비율은 61%로 반대(36%)를 크게 앞섰다. 공무원에 대한 접종 의무화에 찬성하는 여론도 58%, 실내 시설에 입장할 때 접종 증명을 요구하자는 비율도 54%로 반대 의견보다 각각 10%포인트 이상 많았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09-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中연예계 휘몰아치는 ‘홍색 정풍’… “시진핑식 문화대혁명”[글로벌 포커스]

    중국에 거센 규제강화 바람인 ‘홍색 정풍(整風)운동’이 몰아치고 있다. 당국이 빅테크, 사교육, 연예계, 대학가, 인터넷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기강 잡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유명 연예인과 팬덤을 향한 칼날은 유독 강력해 “자고 일어나면 새 규제가 나오고 퇴출 연예인 명단 또한 추가된다”는 말이 나온다. 당초 당국이 알리바바, 텐센트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을 규제할 때만 해도 해당 기업이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위협할 만큼 덩치를 키운 터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집권 걸림돌을 치우려는 목적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예계 규제는 얼핏 보면 ‘이것이 시 주석의 장기집권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란 의문이 들게 한다. 대중의 선망을 받는 인기 연예인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사실이나 권력과는 별 관계가 없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10대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산시성 토굴에서 하방(下放·마오가 고위직과 그 자녀를 농촌 및 공장에서 일하도록 한 정책)했던 시 주석이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연예산업 전반, 특히 스타를 추종하는 팬덤 문화를 ‘자본주의의 썩은 잔재’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지난달 17일 ‘부의 재분배’를 강조하며 ‘공동부유(共同富裕)’ 개념을 주창한 시 주석에겐 공동부유의 정반대에 있는 집단이 연예인으로 여겨진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 등은 아마존, 구글 등에 미 IT 공룡에 맞먹는 세계적 기업을 키워낸 공이 있고 일반인이 그를 접할 기회 또한 많지 않지만 늘 대중과 호흡하는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은 15억 인민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당국이 연예계를 가장 손보기 쉽고, 규제 효과 또한 강력한 정풍운동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의미다.○ 톱스타의 잇단 구설수 중국에서는 연예계 정풍운동을 촉발한 인물로 올해 초 대리모 스캔들에 휩싸인 여배우 정솽(鄭爽·30)을 꼽는다. 그는 2018년 미국에서 당시 사귀던 연인과 비밀 결혼을 한 후 두 명의 대리모를 고용해 이들로부터 각각 한 명의 아이를 낳으려 했다. 두 사람은 대리모들이 임신 약 7개월일 때 결별했다. 정솽은 낙태를 종용했지만 대리모들이 거절했고 두 딸이 태어났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 시민권자인 두 아이가 중국으로 돌아오려면 어머니 정솽의 동의가 필요했다. 정솽은 거부했고 현재 헤어진 연인이 미국에 머물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은 정솽은 지난달 세금 탈루에 따른 천문학적 벌금까지 맞고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당국은 지난달 그에게 2억9900만 위안(약 534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2018년 톱스타 판빙빙(范빙빙·40)이 세금 탈루로 8억8400만 위안(약 1596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후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공교롭게도 이때를 전후해 유명 연예인의 대형 스캔들이 잇따라 터졌다. 영화 ‘적벽대전’, 드라마 ‘황제의 딸’의 주인공으로 판빙빙 못지않은 톱스타였던 자오웨이(趙薇·45)는 세금탈루 의혹으로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자오는 2014년 알리바바의 영상사업 자회사 알리바바픽처스에 투자해 44억 홍콩달러(약 6607억 원)의 이익을 거뒀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에 직면했다. 현재 중국의 주요 포털과 소셜미디어에는 자오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의 이름이 모두 삭제됐다. 이에 관한 설명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일부 매체는 그가 이미 프랑스로 도피했다는 설을 제기했다. 자오가 당국이 눈엣가시로 여기는 알리바바 자회사에 투자했다는 점, 과거 일본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옷을 입고 공개석상에 등장했다는 점 또한 미운털이 박힌 이유로 꼽힌다. 최근 스타로 급부상한 배우 장저한(張哲瀚·30)은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V’자를 그리며 찍은 사진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7월 말 아이돌 그룹 ‘엑소’의 전 멤버 크리스(중국명 우이판·吳亦凡·30) 는 강간죄로 체포됐다. 이들도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이 외 2008년 유명 여배우 여럿과 찍은 나체 사진과 동영상이 유출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배우 천관시(陳冠希·41),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 주제가를 불렀던 유명 가수 만원쥔(滿文軍·52) 등도 언제든 당국의 퇴출 명단에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부남인 두 사람은 모두 불륜과 마약 의혹에 휩싸였다. 배우 커전둥(柯震東·30)과 황하이보(黃海波·45) 또한 각각 마약, 성매매 스캔들에 직면했다. ○ 오디션 프로그램 투표 중 우유 27만 병 폐기5월 유명 유제품회사 멍뉴의 ‘우유 27만 병 폐기 사건’ 또한 당국의 분노를 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멍뉴는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청춘유니3’과 손잡고 신제품을 출시했다. 우유 뚜껑에 QR코드를 부착해 소비자가 휴대전화로 이를 스캔하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특정 아이돌 연습생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습생에게 표를 몰아주기 위해 멀쩡한 우유를 대량으로 구매해 QR코드만 스캔한 뒤 먹지 않고 버렸다. 특히 일부는 노인층에게 푼돈을 준 후 이들로 하여금 하수구 옆에서 버려진 우유 뚜껑을 모으도록 했다. 펑파이 등 중국 매체들은 이 과정에서 버려진 우유가 최소 27만 병일 것으로 추산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멍뉴와 ‘청춘유니3’ 제작사가 사과했지만 사이버 감독기관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춘유니3 제작은 중단됐고 각종 팬클럽 계정도 폐쇄됐다. 시 주석은 지난해 8월 ‘잔반 남기지 않기’ 운동을 주창할 정도로 음식 낭비를 싫어하는 인물이다. 당시 그는 “중국 전역의 음식 낭비 현상에 가슴이 아프다. 단호히 막아야 하므로 관련법을 제정하라”고 지시했다. 이때부터 ‘먹방’에 최대 17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음식낭비 금지법이 시행됐다.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자는 ‘광판운동’, 식사하는 사람 수보다 1인분을 적게 시키자는 ‘N―1 운동’도 시작됐다. 잔반을 극도로 싫어하는 최고 권력자가 장기집권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연예인을 추종하는 어린 팬들이 우유 27만 병을 하수구에 버리는 행동은 당국으로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성범죄자인 크리스를 구명하려는 운동이 벌어졌던 것 또한 당국으로선 달갑지 않다. 크리스 체포 후 일부 팬은 그의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모금을 했다. 웨이보에는 ‘인민해방군은 200만 명, 공안은 250만 명이지만 크리스의 웨이보 추종자는 5000만 명이다. 우리가 그를 감옥에서 구할 수 있다’는 글이 나돌았다.○ 출연료·외모·오디션 투표 등 전방위 규제방송규제기구인 국가광전총국 등은 이달 들어 연예인과 팬덤에 대한 규제를 속속 쏟아내고 있다. 너무 많은 규제가 한꺼번에 발표되다 보니 주요 매체들이 규제를 일일이 따로 정리해서 보도할 정도다. 국가광전총국은 불법을 저지르거나 도덕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불량 연예인’이 소속사를 옮겨 다시 연예계에 발을 들이는 것을 금했다. “연예인은 덕을 갖추고 공산당과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도덕성 또한 갖춰야 한다”고 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연예인이 ‘레드라인’을 한 번만 넘어도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는 점을 알아야한다고 엄포를 놨다. 국가광전총국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투표도 불허했다. 온라인 투표는 물론 현장 투표, 순위 매기기 등도 안 된다. 팬들이 금품을 살포하거나 투표를 조작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당국이 액수를 콕 집어 밝히지는 않았지만 관행에 과도하게 어긋나는 비싼 출연료를 받는 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출연료 규정을 위반하거나 탈세를 위해 이면계약을 한 연예인은 즉시 퇴출된다. 외모 규제도 등장했다. 당국은 “방송에서 연예인을 출연시킬 때 ‘냥파오(娘포·여자처럼 예쁜 남자 연예인에 대한 경멸 표현)’ 같은 기형적인 미적 기준을 과감히 제거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서구 기준이라면 성소수자 차별로 여겨질 수 있는 행위다. 소셜미디어에서의 팬덤 활동 또한 철퇴를 맞았다. 최근 웨이보는 ‘연예기획사와 팬클럽 행동지침’을 발표했다. 우선 팬들이 연예인을 위해 모금을 벌이는 것이 엄격히 금지된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박지민·26)의 중국 팬클럽이 비행기에 대형 사진 광고를 하면서 불과 1시간 만에 230만 위안(약 4억 원)을 모았던 행위 등을 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해당 팬덤 계정이 곧바로 폐쇄된다. 지민 팬클럽의 웨이보 계정은 60일간 활동이 정지됐다. 연예인 사생활에 관한 게시물도 작성할 수 없다. 관변 인사들은 연일 당국의 규제를 칭송하며 연예계 차원의 자정에 나서자고 주장한다. 왕하이린(汪海林) 중국영화문학학회 부회장은 “스타의 부덕(不德)은 현재의 스타 양성 체계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인기 연예인은 팬덤의 인터넷 트래픽으로 만들어지고 소속사에 의해 포장된 가공의 상품이라고 비판했다. 과거에는 배우가 되려는 사람들이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표준 이상의 도덕성을 갖췄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혼과 뿌리가 없는 스타들은 도덕적으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시성 시안에서 연예인 양성단체를 이끌고 있는 루신(盧흠) 대표는 중국 연예계의 타락이 한국 때문이라는 비상식적인 주장까지 펼쳤다. 그는 “현재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스타들은 한국의 아이돌 배출 체계를 답습해 만들어졌다”며 문화와 도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런 스타들이 순식간에 돈과 지위를 얻는 바람에 자멸하고 있다고 했다.○ ‘21세기 문화대혁명’ 비판서구 언론은 당국의 이런 행보가 21세기판 문화대혁명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2012년 말 시 주석 집권 후 내내 권위주의 통치가 이어지긴 했지만 문화예술 분야에 이 정도의 규제가 가해진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CNN은 “중국 내부에서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선전선동을 위한 연예계 규제가 문화대혁명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당국이 유명 연예인을 당과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도록 하는 일종의 ‘역할 모델’로 여긴다며 “시 주석 체제에서 공산당이 점점 사상과 문화 통제에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가디언은 “현재 많은 이들이 문화대혁명 시절의 메아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공산당이 원하는 사회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문제가 없는 일종의 무균(無菌)사회”라며 “공산당은 연예인 팬덤이 사회 불만세력으로 바뀌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진단했다. 내년 10월 20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지으려는 시 주석이 ‘전 인민이 다 같이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을 위해 공동부유를 주창한 마당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일 화려한 생활을 강조하는 일부 스타야말로 용납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09-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美, 英-호주와 ‘핵잠 동맹’… 中견제 ‘오커스’ 신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안보 증진을 목적으로 영국, 호주와 함께 외교안보 3자 협의체 ‘오커스(AUKUS)’를 출범시켰다. 또 호주의 핵추진잠수함(핵잠) 개발과 보유를 지원하기로 했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후 중국 견제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이 60년 넘게 원칙으로 삼아 온 핵 비확산 체제에 예외까지 둬가며 대중국 공동 전선 확대에 나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화상으로 연결한 기자회견을 갖고 오커스 발족을 공식 발표했다. 세 나라는 앞으로 정기적인 고위급 협의 등을 통해 외교안보와 관련된 사이버 공격 대응,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 분야 협력, 정보 공유 등을 하게 된다. 미국과 영국은 앞으로 18개월간 호주의 핵잠 개발을 공동 지원한다. 미국이 핵잠 기술을 다른 나라에 이전하는 것은 1958년 영국 이후 63년 만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모리슨 총리는 이날 오커스 체제 아래 8척의 핵잠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국과 영국, 중국 등이 발표한 군사력 정보에 따르면 중국이 보유한 핵잠은 6∼9대다. 이날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오커스 출범을 두고 “역사적인 발표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더 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결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라고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언급함으로써 중국 견제 목적임을 드러냈다. 그는 또 “우리의 전통적인 아시아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양자 파트너십을 포함해 더 큰 협의체를 만들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설명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 4자 협의체인 ‘쿼드(Quad)’와 함께 개별 국가로 한국, 일본, 태국, 필리핀 등을 예로 들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을 통하여 오커스에 대해 “지역 내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해치고 핵 비확산 노력을 약화시킨다. 매우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美, 中견제 적극 동참한 호주에 핵잠수함 지원…“단 한번뿐인 예외” 美, 英-호주와 ‘핵잠 동맹’ ‘오커스’ 신설은 인도태평양에서 일본, 호주, 인도를 거쳐 유럽의 섬나라 영국까지 연결하는 거대한 해양안보 전선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에 맞서 해양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미국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영국과 함께 호주의 핵잠수함 확보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은 특히 눈여겨볼 부분이다. 현재 핵잠수함을 보유한 나라는 핵보유국인 P5(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에 인도까지 6개 국가뿐이다. 핵 비확산 체제 유지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은 다른 나라의 핵잠수함 개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지난해 김현종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비공개로 방미해 핵잠수함 확보에 필요한 핵연료 제공을 요청했을 때도 비확산 원칙을 앞세워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미국이 호주에 대해서는 이런 원칙을 이례적으로 허물어뜨린 것이다. 이런 지적이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15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특별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핵잠수함) 기술은 극도로 민감한 것이며 (호주에 대한 지원이) 많은 측면에서 예외인 것이 사실”이라며 “(핵잠수함 기술 이전이) 앞으로 다른 환경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one-off)일 것으로 본다”고 못 박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다른 주요 동맹국에는 이(핵잠수함 기술)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정부 당국자 설명에는 지난 수십 년간 자체 핵 능력을 갖추려고 움직여 왔던 한국도 포함된다고 전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바이든 행정부는 비확산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에 깊이 전념하고 있다”며 호주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비롯한 글로벌 비확산 노력에 앞장서온 국가라는 점, 호주가 핵무기 개발 의도가 없다는 점, 이번 시도가 21세기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3자 협력이라는 점 등도 거듭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에 동참하면서 중국의 호된 경제보복에 시달려온 호주에 대한 보상이자 중국을 향한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유엔 소비자무역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호주의 수출국 1위는 중국(42%)으로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나 호주는 자국 농산물과 와인에 대한 중국의 관세 폭탄, 해산물과 광물에 대한 수입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에 지속적으로 동참해왔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16일 사설을 통해 “(미국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적대감을 조성하며 동맹들을 결집시켜 중국에 맞서느라 이성을 잃고 있다”며 “호주가 어떻게 무장하든 간에 여전히 미국의 경주용 개(running dog)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호주가 중국을 도발한다면 호주 군대는 남중국해에서 생을 마감하는 첫 번째 서방 군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호주와 영국은 모두 서구 민주주의 국가이자 미국과 오랫동안 안보 협력을 유지해온 동맹국으로, 민감한 기밀을 공유하는 정보동맹체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회원국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호주는 쿼드(Quad) 회원국이기도 하다. 미국이 이처럼 탄탄한 동맹체를 복수로 구성하고 있는 국가들과 또다시 오커스 설립에 나선 이유는 그만큼 남중국해 등지에서의 중국 견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럽에 있는 영국의 경우 지리적으로는 인도태평양 지역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글로벌 브리튼(global Britain)’을 표방해온 영국은 미국과 발맞춰 중국 견제 및 이를 위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현안 대응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유럽에서 아시아로 대외전략 방향을 트는 움직임이 명백하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09-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돌아오지 못한 1106명… 끝까지 찾는 美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한 지 20년이 됐지만 뉴욕에서는 지금도 테러 희생자들의 유해에 대한 신원 확인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6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달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사는 여성 니키아 모건 씨(44) 집에 경찰이 찾아왔다. 경찰은 어머니의 것으로 확인된 유해를 뉴욕시 당국이 찾았다고 알렸다. 어머니는 20년 전 세계무역센터(WTC)에서 보험중개인으로 일하다 9·11테러로 숨졌다. 모건 씨는 어머니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당국에서 실종자들의 신원 확인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모건 씨는 9·11테러 후 희생자 신원 확인을 위해 자신의 유전자 샘플을 당국에 제출해 놓고도 잊고 있었다. 검시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유전자 분석 기술이 좋아진 덕에 아주 작은 뼛조각에서 어머니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건 씨 어머니는 뉴욕에서 신원이 확인된 1646번째 희생자로 기록됐다. 며칠 뒤에는 또 다른 남성의 유해도 확인돼 그는 1647번째가 됐다. 9·11테러 전체 희생자 2983명 중 뉴욕에서 숨진 사람은 2753명이다.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가 1106명 남아 있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들의 유해는 현재 맨해튼 9·11 추모공원 등에 안치돼 있다. 뉴욕시 검시관실 법의학자들은 지금도 2만2000개에 이르는 사망자 신체 부위를 갖고 신원 확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9·11테러 발생 직후에는 한 해 수백 구의 시신이 유족 품으로 돌아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1년에 한두 건의 신원 확인도 어려웠다. 테러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이 오랫동안 화염에 휩싸였던 데다, 유해 발굴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모건 씨 어머니 유해도 2019년 이후 2년 만에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다. 뉴욕시 바버라 샘슨 수석 검시관은 “(9·11테러 사망자) 신원 확인은 우리 기관의 신성한 의무이자 2001년 당시 우리가 유가족들에게 했던 약속”이라며 “차세대 유전자 분석 기술을 활용하면 더 많은 신원 확인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 2021-09-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