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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외교장관이 국제회의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국’이라고 주장했다가 비웃음을 샀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3일(현지 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인도 외교부와 옵서버리서치재단이 주최한 지정학 및 글로벌경제 포럼 ‘라이시나 다이얼로그’에서 발언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우리가 끝내려고 하는, (서방 진영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이용해 러시아를 노리고 시작된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청중에서는 폭소가 터져나왔다. 라브로프 장관은 주춤하며 말을 더듬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정책을 포함한 러시아의 각종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24일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러시아는 전쟁 책임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돌리고 있다. 하지만 서방의 러시아 에너지 제재에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려온 인도에서마저 이 같은 주장이 웃음거리로 치부되는 순간이었다. 라브로프 장관은 또 “러시아는 서방의 그 어떤 파트너에도 더는 의존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그들이 또 송유관을 날려버리도록 허용하지 않겠다고”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발생한 발트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사건 책임이 서방에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지난달 6일 발생한 튀르키예(터키) 시리아 대지진 사망자가 4일(현지 시간) 5만1000명을 넘어 21세기 발생한 자연재해 중 5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냈다. 재산피해도 양국 합쳐 약 393억 달러(약 51조 원)로 추산됐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당국에 따르면 사망자는 이날 현재 튀르키예 4만5089명, 시리아 5914명으로 총 5만1003명이었다. 21세기 들어 이보다 많은 사망자를 낸 자연재해는 2010년 아이티 지진(사망자 22만∼31만6000명),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인도양) 지진 및 쓰나미(16만∼22만7000명),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7만∼8만7000명), 2005년 파키스탄 지진(7만∼8만6000명) 밖에 없다. 세계은행은 지난달 27일 튀르키예 직접 피해액을 약 342억 달러(44조5000억 원)로 추산했다. 이는 2021년 튀르키예 국내총생산(GDP) 8190억 달러의 4%에 해당한다. 건물 약 20만 동이 붕괴되거나 심하게 파손됐고 이재민이 약 200만 명 발생했다. 2차 및 간접 피해와 추가 여진 피해까지 합치면 피해액은 GDP 10%에 이를 것이라고 튀르키예기업연맹은 밝혔다. 세계은행은 또 시리아 직접 피해 추산액은 약 51억 달러(약 6조6400억 원)라고 이달 3일 발표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영국 왕실이 올해 1월 자서전으로 왕실의 사생활을 폭로한 찰스 3세 국왕의 차남 해리 왕자 부부에게 윈저성 옆 거처인 프로그모어 코티지(사진)를 비우라고 통보했다고 해리 왕자 부부의 대변인이 1일(현지 시간) 밝혔다. 영국 매체 ‘더선’은 앞서 찰스 3세가 이 저택에서 해리 왕자 부부를 퇴거시키고 자기 동생인 앤드루 왕자에게 이 저택에 살라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올 1월 해리 왕자의 자서전 ‘스페어’가 출간된 지 며칠 만에 이 같은 조치를 했다. 해리 왕자 부부 대변인도 “서섹스 공작(해리 왕자) 부부가 프로그모어 코티지를 비우도록 요청받았다는 점을 확인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같은 날 보도했다. 버킹엄궁은 이 보도에 대해 “이런 사안은 사적인 가족 문제”라며 논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해리 왕자 부부는 2020년 영국 왕실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두 아이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 등 특별한 때를 제외하면 영국에 거의 오지 않고 있다. 가끔 영국을 찾을 때만 프로그모어 코티지에 머문다. 영국 BBC에 따르면 런던 서부 버크셔의 윈저성 부지 내에 있는 이 저택은 영국 왕실 재산 운용 조직인 ‘크라운 에스테이트’가 소유하고 있다. 2018년 결혼한 해리 왕자 부부는 지난해 9월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전 영국 여왕으로부터 선물로 이 저택을 받았다. 2018∼2019년 침실이 10개인 이 저택을 약 240만 파운드(약 38억 원)를 들여 개조했다. 이 비용은 당초 세금으로 마련된 왕실 교부금으로 충당했으나 나중에 해리 왕자가 상환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최소 46명이 숨진 그리스 역사상 최악의 열차 충돌 사고는 역장의 잘못된 선로 변경 지시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다. 2일(현지 시간) 그리스 공영방송 EPT가 입수한 역무실과 기관실 간 교신 녹취록에 따르면 사고 발생 직전인 지난달 28일 밤 12시 직전 라리사(사고 발생 지역) 역장은 열차 기관사에게 “빨간색 출구 신호등을 지나 네오이포로이 입구 신호등 쪽으로 가라”고 지시한다. 기관사가 “지금 출발하나요”라고 묻자 역장은 “가세요, 가세요”라고 말했다. 선로는 복선이었지만 이로 인해 아테네에서 북부 테살로니키로 향하던 상행선의 여객열차가 화물열차가 오고 있던 하행선으로 접어들었고, 결국 정면충돌했다고 EPT는 전했다. 두 열차는 충돌하기 전 수 km, 약 12분 동안 한 궤도에서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1일 사고 현장을 방문해 “비극적인 인재(人災)”라며 독립기구에 의한 전면 조사를 공언했다. 역장은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됐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교통장관은 사고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철도 운영사는 2017년 그리스 구제금융 사태 때 민영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철도 노동조합 측은 “인력 부족과 뒤처진 기술 등 만성적 결함 탓”이라고 주장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영국 왕실이 올해 1월 자서전으로 왕실의 사생활을 폭로한 찰스 3세 국왕의 차남 해리 왕자 부부에게 윈저성 옆 거처인 프로그모어 코티지를 비우라고 통보했다고 해리 왕자 부부의 대변인이 1일(현지 시간) 밝혔다. 영국 매체 ‘더선’은 앞서 찰스 3세가 이 저택에서 해리 왕자 부부를 퇴거시키고 자기 동생인 앤드루 왕자에게 이 저택에 살라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올 1월 해리 왕자의 자서전 ‘스페어’가 출간된 지 며칠 만에 이 같은 조치를 했다. 해리 왕자 부부 대변인도 “서섹스 공작(해리 왕자) 부부가 프로그모어 코티지를 비우도록 요청받았다는 점을 확인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같은 날 보도했다. 버킹엄궁은 이 보도에 대해 “이런 사안은 사적인 가족 문제”라며 논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해리 왕자 부부는 2020년 영국 왕실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두 아이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 등 특별한 때를 제외하면 영국에 거의 오지 않고 있다. 가끔 영국을 찾을 때만 프로그모어 코티지에 머문다. 영국 BBC에 따르면 런던 서부 버크셔의 윈저성 부지 내에 있는 이 저택은 영국 왕실 재산 운용 조직인 ‘크라운 에스테이트’가 소유하고 있다. 2018년 결혼한 해리 왕자 부부는 지난해 9월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전 영국 여왕으로부터 선물로 이 저택을 받았다. 2018~2019년 침실이 10개인 이 저택을 약 240만 파운드(약 38억 원)를 들여 개조했다. 이 비용은 당초 세금으로 마련된 왕실 교부금으로 충당했으나 나중에 해리 왕자가 상환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흘렀습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려 정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닷새간 수도 키이우를 찾았습니다. 이곳에 발을 닿은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매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장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큰 울림을 줬습니다. 키이우는 제게 이 모든 걸 꼭 널리 알려달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취재 후기로 소개합니다. “정확한 인터뷰 장소는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동아일보·채널A가 지난달 1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와 인터뷰를 할 때까지 대통령실 비서는 인터뷰 장소를 철저히 함구했다. 여사의 동선이 노출되면 언제든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인터뷰에 늦지 않으려면 이동 시간을 가늠해야 했다. ‘장소가 키이우 내부이긴 한가’라고 물었더니 ‘그렇다’란 답을 겨우 들었다. 이외에 기자가 아는 정보는 ‘오후 2시에 시작해 1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는 것 뿐. 젤렌스카 여사와의 인터뷰는 준비부터 거의 007 작전이었다. 기자도 혹여나 동선을 외부에 노출해 전쟁 중인 국가 정상에 피해를 줄까 조심하고 긴장했다. 취재팀의 운전과 가이드를 맡아준 현지인들에게도 인터뷰 직전까지 “정부 고위 관료를 만난다”고만 말했다.● 키이우에 진심이 닿다러시아 침공 1년을 앞두고 키이우 방문을 검토하면서 기자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 젤렌스카 여사와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치·외교적 의미가 있는 특종을 듣진 못해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일상을 전쟁처럼 사는 사람들도 힘든데, 실제 전쟁의 한 가운데에 있는 대통령 부부는 어떤 마음일까’란 생각이었다. 이런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야기에서 깊은 공감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깊은 공감이 한국 독자와 시청자들에겐 머나먼 일처럼 느껴질 수 있는 전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어찌 보면 전쟁의 무게에 비해 다소 가벼울 수 있는 질문까지 준비한 것도 그래서다. 물론 심각한 질문들도 덧붙였다. e메일로 질의서를 보내자 대통령실 비서가 반갑게도 긍정적인 답변을 줬다. 질문의 내용에 어느 정도 공감한 듯했다. 대통령실 비서는 “인터뷰를 뻔하게 하지 말고 창의적으로 해보자”고 말했다.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전쟁과 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키우고자 한 기자의 진심이 닿은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말 인터뷰가 성사될지는 직전까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비서진이 정확한 장소와 계획을 잘 알려주지 않아 더욱 그랬다. 전쟁 중인 국가의 대통령 부인이기에 언제든 일정이 뒤바뀌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임시 대통령궁에 들어서다 인터뷰 당일, ‘시작 3시간 반 전에 지정한 장소로 와 달라’는 비서의 지침대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다시 차량으로 10여 분을 이동해 ‘임시 대통령궁’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머물며 전쟁을 지휘하는 곳이었다. 대통령궁 내부에 닿기까지 3단계 검문을 거쳤다. 자동소총을 들고 방탄조끼를 입은 군인들이 취재팀을 항상 감시했다. 궁 안으로 들어서니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당장 총격전이라도 일어날 법한 최전선에 세워진 건물에 온 듯했다. 정문으로 보이는 대문은 나무판과 모래주머니 등이 가로막았고 건물 한쪽 작은 문으로만 사람이 드나들었다. 궁 안 곳곳에도 무장 군인들이 배치돼 있었다. 창문은 모두 가려져 있었다. 참호처럼 쌓아 놓은 모래주머니가 여기저기 보였다. 외부인들이 쉽게 침투할 수 없도록 여러 보호막이 겹겹이 씌워진 듯했다. 대통령 집무실까지 동선은 미로 같았다. 통로는 조명이 꺼져 있어 알아보기가 힘들었고, 띄엄띄엄 설치된 바닥 조명이 양쪽 벽을 향해 희미한 빛을 쏴주는 정도였다. 이동할수록 내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쯤 있는지 도무지 감 잡을 수가 없었다. 낡은 듯한 대통령궁 안팎과 달리 집무실 내부 인테리어는 현대적이었다. 중앙의 벽에 ‘대통령 사무실’이라고 쓰인 네온사인이 걸려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는 넓은 테이블과 화상회의용인 듯한 대형 스크린이 인상적이었다. 집무실 내부엔 우크라이나 국기 색상인 푸른 조명이 들어오는 화장실, 탕비실 등이 갖춰져 있었다. 집무실 출입자들의 건물 내 동선을 최소화하려는 장치로 보였다. 비서와 취재팀은 마치 웰메이드 영화의 촬영장을 만들 듯 오랜 시간 인터뷰 배경과 방식을 상의했다. 젤렌스카 여사와 기자가 앉을 위치와 촬영 각도, 조명의 종류와 국기 등 소소한 소품까지 정성을 들였다.● 차분하지만 치열한 답변 비서가 왜 굳이 인터뷰 시작 3시간 반 전에 오라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준비할 일이 너무 많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인터뷰 예정 시각이 되자 집무실 앞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젤렌스카 여사가 환하게 웃으며 나타나 기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자리에 앉아 정식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기자와 영어로 몇 마디를 나누다 “다 잘 될 것이다”라는 격려의 말을 했다. 잡기 힘든 중요한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기자의 마음을 읽은 듯했다. 기자의 질문에 “흥미로운 질문이다”라고 여러 번 호응하며 성의 있고 자세하게 답변하려 애썼다. 답변하는 태도는 차분했지만 그 내용은 치열했다. 특히 “이 전쟁이 잊혀지지 않도록 내가 오늘 당신과 만났다”는 말에서 절실함이 느껴졌다. 한국에 바라는 점을 물을 땐 원격 수업하는 아이들을 위한 노트북, 정신건강을 위한 애플리케이션과 스마트폰, 병원 재건 등을 세세하게 언급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는 한국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자필로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젤렌스카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극작가로 일했다는 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짧은 글이더라도 남다른 메시지를 주지 않을까 싶었다. 예상대로 여사는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적은 듯한 필체로 진심이 담긴 글을 전해줬다. “친애하는 대한민국. 당신들은 키이우에서 7000km 떨어진 곳에 살고 우크라이나인보다 7시간 일찍 해를 맞이하지만 지난 12개월 내내 바로 우리 옆에 있었던 것처럼 느낍니다. 지원에 감사드리고 지원이 더 강해지길 희망합니다.” 이런 진심이 널리 전해지도록 동아일보와 채널A는 지면에서 편집된 인터뷰 전문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방송엔 나가지 못한 젤렌스카 여사의 전체 답변을 유튜브로 별도 제작했다. 이 진심이 많은 이들을 움직여 평화를 향한 작지만 중요한 변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관련기사 보기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흘렀습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려 정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닷새간 수도 키이우를 찾았습니다. 이곳에 발을 닿은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매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장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큰 울림을 줬습니다. 키이우는 제게 이 모든 걸 꼭 널리 알려달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취재 후기로 소개합니다.▶1부 보기▶2부 보기 12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도심의 베사라비안 전통시장은 싱싱한 딸기 오렌지 등 다양한 농산물로 가득했다. 농산물들은 기자가 특파원으로 주재 중인 프랑스 파리의 시장에서 보던 상품들보다 오히려 더 신선한 느낌이었다. 장기간 보관하기 쉬운 말린 과일이나 견과류가 유독 많았다. 전쟁 국가라서 수출입이 쉽지 않으니 시장에 물건이 부족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많아 시장은 전쟁에 따른 교역 위축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정문 바로 옆에 있는 곡물 가게엔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빵을 주식으로 삼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자주 찾을 법한 곳이어서 의아했다. 밀가루로 만든 빵이 따뜻하게 구워져 나올 법한 아침, 곡물 가게와 이웃한 빵 가게도 폐업한 지 꽤 오래 되어 보였다. 이곳에서 30년째 식료품점을 운영했다는 나디야 브라우스 씨는 “전쟁이 길어지며 오랫동안 영업했던 상당수 곡물 가게와 빵집이 폐업했다. 곡물 가격이 비싸지자 사람들이 전통시장보다 싼 가격에 곡물을 파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님이 없어 썰렁한 시장에선 낯선 외국인 기자에 대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시장 관리인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취재팀의 촬영을 금하며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냉랭한 분위기를 뚫고 상인들에게 말을 걸어봤다. 상인들은 겉보기엔 차가웠지만 속으론 뜨거운 결의를 품고 있었다. ‘러시아군이 아무리 우리를 공격해도 우린 끝까지 생업을 놓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전쟁 중에도 농사를 멈추지 않는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 시장에서 곡물과 견과류를 팔고 있는 브라우스 씨는 “우리 마을이 러시아군에 포위됐을 때 폭탄을 맞을 위협을 무릅쓰고 감자와 야채들을 재배했다”며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허벌판의 농부들 머리 위에서 언제든 폭탄이 떨어질 수 있었지만 과거 대기근의 경험을 떠올리며 일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밭이나 농업 기기가 파괴돼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농민들도 많았다. 기자가 방문한 키이우 인근 농장에는 폭탄 잔해나 여러 발의 총알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도 전쟁 중일수록 생업을 더 굳건하게 이어가고 하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유리 크레민스키 씨는 “이 시장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전쟁으로 농업 시설이나 밭이 파괴돼 불행하게도 손실이 크다”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맡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해 전쟁으로 인한 불안함을 최소화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쟁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크라이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목소리 높여 말하며 생업으로 복귀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1년. 혹독한 시련의 시간은 우크라이나인들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 대다수에게선 전쟁에 대한 공포나 불안을 느끼기 어려웠다. 어떻게 이 시간을 견뎌야 할지 알게 된 듯했다. 어업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빅티리야 술로키아 씨는 “물론 전쟁 초기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이젠 이 상황에 적응이 됐다”면서 “우린 뭐든지 겪어낼 수 있다는 걸 세계에 보여줬기 때문에 이제 어떤 문제가 닥쳐도 해결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직은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 시장이, 그리고 우크라이나 경제가 전쟁 이후 얼마나 힘차게 일어설지 궁금해졌다. 13일부터 이틀 동안 키이우 취재 중 만난 젊은이들도 “전쟁을 겪어 무서울 게 없는 우리는 빠르게 극복할 것이다” “세계인에게 우리의 저력을 보여줬으니 시장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이후 그간 단련된 저력을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6·25 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 못지않은 역사를 쓰길 기원한다. ▶관련기사 보기[단독]젤렌스카 “우크라만의 전쟁이라 여겨질까 가장 두렵다"‘전쟁 지휘’ 임시 대통령궁, 미로 구조에 3단계 검문 ‘철통 보안’[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인터뷰 전문… “우크라만의 전쟁이라 여겨질까 가장 두렵다”[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매번 새로운 공포…아이들 보며 긴 전쟁 견뎌”[특파원칼럼/조은아]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노트북을“전쟁 겪으니 어려움에 단련돼”… 전쟁 중 창업하는 우크라 청년들[글로벌 현장을 가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흘렀습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려 정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닷새간 수도 키이우를 찾았습니다. 이곳에 발을 닿은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매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장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큰 울림을 줬습니다. 키이우는 제게 이 모든 걸 꼭 널리 알려달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취재 후기로 소개합니다.▶1부 보기11일(현지 시간) 토요일 오전 9시가 안 된 이른 아침. 키이우 도심에 있는 재활병원은 붐볐다. 군복 입은 건장한 군인들이 목발이나 휠체어에 기대 드나들고 있었다. 이들 속에서 두 다리를 잃은 아르템 씨가 나타나자 이곳이 전쟁터란 사실이 확 와 닿았다.아르템 씨는 지난해 9월 남부 격전지인 헤르손에서 7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순찰하던 중 지뢰가 터지면서 부상을 입었다. 3명은 숨졌지만 그는 다행히 손에 무전기를 지니고 있던 덕에 구조를 요청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헤르손에서 북서쪽에 있는 미콜라이프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곳 상황도 여의치 않아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로 이송돼 대수술을 받았다. 그는 비록 두 다리를 잃었지만 수술을 잘 해준 당시 의사에게 재차 고맙다고 했다. 재활을 위해 수도 키이우로 옮겨온 그는 여전히 다시 싸우겠단 의지가 강했다. 전장에서 러시아군들의 만행을 직접 지켜봤기 때문이다. 마을 도로에선 폭격을 맞은 차량과 쓰러진 시신들을 보곤 했다. 그는 “푸틴은 러시아란 국가가 우리를 죽이도록 만든 짐승”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언제 전쟁이 끝날 것 같으냐”는 질문에 “푸틴이 죽을 때까지”라며 격한 분노를 드러냈다.이곳에서 만난 의사 안드리 팔라마르추크 씨도 “재활센터에 오는 군인 90%가량이 ‘전장으로 돌아가겠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두 다리를 잃고, 정신적인 충격과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다시 싸우겠다는 그들의 결의에 숙연해졌다.아르템 씨는 거동이 힘든 상황인데도 너무나 긍정적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보여주면서 “나는 꼭 이렇게 극복할 것”이라고 했다. 용감한 전사들을 두렵게 하는 건 무엇일까. 적군도 아니고 자신의 죽음도 아니었다. 이들은 가족과 친구의 죽음이 두렵다고 했다. 아르템 씨도 아들과 딸, 홀로 가정을 지키는 아내와의 이별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가족이 우리에겐 가장 소중한 만큼 가장 아프다. 두 다리를 다친 20대 군인 올레크 씨도 “난 죽는 게 두렵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가 죽을까 봐 두려울 뿐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는 새해 첫날 동부 최전선에서 폭탄에 사망했다. 그 부대 팀원들이 순찰을 당했다가 단 한 명만 살아 돌아왔다고 했다. 친구의 죽음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망설여졌다. 슬픔 가득한 이 젊은 군인에게 아픈 이야기를 더 물어봐야 할지. 가끔 질문이 날카롭게 마음을 벨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질문을 하게 돼 미안해요.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여쭙습니다. (…) 혹시 하늘에 있는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올레크 씨는 울음을 꾹 억누르면서 말했다. “친구야, 슬프지만 어쩌겠니. 이게 인생인가보다.”이 한마디에 응축된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전쟁 초기 한 달 넘게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키이우 북서쪽 부차도 찾았다. 부차로 가는 길목엔 폭격에 무너진 건물과 녹슨 탱크들이 폐허로 남아 있었다. 불에 타올라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대형 건물 단지 근처에 있는 한 피란민 임시 거주지에 닿았다.인터뷰를 위해 들어선 아이들 놀이방엔 유니세프 등에서 지원한 장난감만 쌓여 있었다. 러시아군의 폭탄에 남편을 잃은 류보프 악세노바 씨는 “단전과 혹한으로 어린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다. 가건물로 조립된 거주지는 전력 부족으로 절반 이상이 어둑어둑했다. 악세노바 씨는 동부 격전지인 도네츠크 지역에서 온 피란민. 농사를 짓던 남편이 미사일 폭격에 목숨을 잃고 집이 불에 탔다. 망연자실한 채 두 아이와 함께 짐을 싸 작년 여름 이곳까지 오게 됐다. 10대인 딸은 직접 미사일 파편이 날아가는 장면을 본 터라 지금도 그 미사일이 날아들까 공포에 떤다고 했다. 악세노바 씨는 집도, 농사할 땅도 잃은 채 두 아이와 함께 부차로 왔지만 생계를 이을 길이 막막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힘든 건 남편의 빈 자리. 악세노바 씨는 “아이들과 남편이 유난히 더 끈끈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힘들어 한다”고 했다. 악세노바 씨는 전쟁으로 조국이 동서로 분단돼 도네츠크 지역에 남아 있는 친정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될까 봐 두렵다고도 했다. 전화 연결이 안 될 때마다 불안하다.이 임시 거주지 여기저기에서 매일 같이 ‘아들이 죽었다’ ‘친구가 죽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호텔로 돌아와 만난 한국어 통역사도 “좀 전에 친한 친구 남편이 동부 최전선에서 사망했단 소식을 들었다”며 울먹였다. 가족, 절친의 죽음은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 우리가 멀리서 접하는 전쟁 속보의 사망자 숫자가 늘 때마다 이들의 삶은 매번 이렇게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키이우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묘지에서 아직 싱싱한 생화가 걸린 무덤을 만났다. 이곳에 묻힌 이가 전장의 군인이었는지는 불분명했다. 하지만 아직 군인 묘지가 마련되지 않아 우크라이나 곳곳의 묘지에 전사한 군인들의 무덤이 자리 잡는다고 한다. 망자는 이 곳에 묻힌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전쟁 탓에 이렇게 생명이 저물어 가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관련기사 보기[단독]젤렌스카 “우크라만의 전쟁이라 여겨질까 가장 두렵다“‘전쟁 지휘’ 임시 대통령궁, 미로 구조에 3단계 검문 ‘철통 보안’[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인터뷰 전문… “우크라만의 전쟁이라 여겨질까 가장 두렵다”[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매번 새로운 공포…아이들 보며 긴 전쟁 견뎌”[특파원칼럼/조은아]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노트북을“전쟁 겪으니 어려움에 단련돼”… 전쟁 중 창업하는 우크라 청년들[글로벌 현장을 가다]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흘렀습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려 정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닷새간 수도 키이우를 찾았습니다. 이곳에 발을 닿은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매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장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큰 울림을 줬습니다. 키이우는 제게 이 모든 걸 꼭 널리 알려달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취재 후기로 소개합니다.2023년 2월 10일 밤 9시 15분(현지 시간). 폴란드 국경도시 프셰미실에서 출발한 열차가 9시간 넘게 달린 끝에 무겁게 멈춰 섰다. 꼭 열차가 내 가슴 위로 멈춰서는 듯한 갑갑한 이 기분. 종점에 왔다. 우크라이나 키이우.현대로템이 만들어 한국 고속철도(KTX)와 닮은 열차에 친숙함을 느끼며 달렸는데 열차를 벗어나니 정말 낯선 세계가 나타났다. 탄약 연기가 가득 메운 듯 매캐한 냄새. 전쟁의 냄새. 군복 입은 남성들이 많았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정전이 된 듯 불을 찾아보기 힘든 키이우역 플랫폼. 열차에서 내려 어둠 속을 디뎠다. 열차 행선지가 뜬 안내판에 들어온 조명으로 나갈 길을 겨우 가늠했다.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없어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일일이 계단을 오르고 내렸다. 지나던 남성들이 줄줄이 달라붙었다. 가방을 들어주겠단 얘기였다. 전혀 호의로 느껴지진 않아 단호한 ‘노(No)’로 응대했다. 뽀얀 피부에 열 살 정도 될 법한 남자아이가 “하이(Hi)”라고 말을 걸었다. 영어를 연습해보고 싶단 의지로 똘똘 뭉쳤는데 마침 외국인이 나타나 반갑다는 듯. “기자인가요(Are you a journalist)?”옆에 있던 소년의 누나가 물었다. 내가 어찌 알았냐고 물으니 “사진을 많이 찍고 있어서”라고 답했다. 하긴 이곳에선 나 같은 기자가 아니면 사진을 찍을 이가 없다. 이곳은 전쟁 국가의 수도가 아닌가.다들 차가운 표정으로 열차마냥 무겁게 몸을 이끌고 나갔다. 나도 겨우 플랫폼을 빠져나가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역사는 비교적 조명이 들어와 있었지만 흐릿했다. 딱 봐도 전력 사정이 안 좋음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군이 에너지 시설을 집중 포격해 전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역사를 나오니 네온사인이 곳곳에 보여 오히려 놀랐다. 우리 팀을 안내하는 현지인 가이드 말로는 키이우는 전력 사정이 그나마 낫다고 했다. 호텔로 향하는 길은 어둑했다.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티를 만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종종 불 켜진 건물들도 눈에 띄었다.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밤 11시부터 통금이라 다들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듯했다.“에에엥!” 호텔에 들어서 체크인할 무렵 날카로운 공습경보가 울렸다. 호텔 직원은 비상시 방공호의 위치를 알려주고, 호텔 주변 지하철역을 일러줬다. 지하철역은 이곳에서 시민들이 길 가다 공습경보 때 대피하는 방공호다. 가이드가 “오늘 키이우 인근 지역까지 미사일 공격으로 도심 상점들이 문을 닫고 한바탕 시끄러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놀란 우리에게 위안 아닌 위안을 해줬다. “러시아가 공습을 한 번 하면 다음을 준비하는 데 열흘 정도 걸린대요. 오늘 큰 공습이 있었으니 그래도 열흘은 조용할 겁니다.”키이우를 자주 오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위험하진 않다고 위로했지만 아무도 모른다. 미사일이, 아니면 그 파편이라도 언제 어디로 날아올지.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에선 “극초음속 미사일이 발사될 땐 공습경보가 울리기 전에 미사일이 날아와 경보조차 소용이 없다”고 했다. 더구나 얼마 전 국내 언론사 직원이 숙박했던 도심의 4성급 호텔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그 직원은 체크아웃을 한 뒤였지만 일본의 한 기자가 남아 있다가 부상을 당했다. 호텔 방에 들어오니 집에 있는 어린 두 아이 생각이 많이 났다. 첫째는 엄마가 폴란드에 있는 줄 안다. 아이는 낌새가 이상했는지 떠나기 며칠 전부터 ‘엄마 어디가’라고 자꾸 물었다. 불안해할 것 같아서 “폴란드 출장을 간다”고 말해뒀다. “폴란드 과자 많이 사 와”라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떠나오며 마음이 참 심란했다.그런 마음을 끌고 드디어 여기까지 왔는데 경보가 첫날 밤부터 반겨주니 온몸이 긴장됐다. 호텔 방에 짐을 풀자마자 체크아웃하는 날 우크라이나를 벗어날 기차부터 예약했다. 호텔 유리창을 보니 키이우를 이미 다녀온 기자들 조언이 생각났다. ‘혹여나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 창가가 위험하니 피하라’는 말이었다. 피곤하지만 깊이 잠들 수 없는 첫 밤, 창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몸을 뉘었다.▶관련기사 보기[단독]젤렌스카 “우크라만의 전쟁이라 여겨질까 가장 두렵다"‘전쟁 지휘’ 임시 대통령궁, 미로 구조에 3단계 검문 ‘철통 보안’[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인터뷰 전문… “우크라만의 전쟁이라 여겨질까 가장 두렵다”[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매번 새로운 공포…아이들 보며 긴 전쟁 견뎌”[특파원칼럼/조은아]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노트북을“전쟁 겪으니 어려움에 단련돼”… 전쟁 중 창업하는 우크라 청년들[글로벌 현장을 가다]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하루 앞둔 23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대 핵전력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겠다”며 이틀 만에 또 핵 위협을 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이틀 전 양국의 핵 군축 합의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의 참여 중단을 선언한 것을 두고 “큰 실수”라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조국 수호의 날’인 이날 기념 연설에서 “3대 핵전력(Nuclear Triad)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3대 핵전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뜻한다. 그는 또 “사르마트를 올해 배치하는 등 첨단 무기를 갖춰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르마트는 핵 탄두를 여러 개 탑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ICBM으로, 연내에 배치하겠다는 방침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차세대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과 해상 기반 극초음속 미사일 ‘지르콘’ 또한 대량 생산하겠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21일 국정연설에서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이틀 만인 이날 3대 핵전력 증강까지 거론하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핵 위협을 연계시킬 뜻을 분명히 했다. 22일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지르콘’을 장착한 러시아군 호위함 ‘고르시코프’가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했다. 이날부터 27일까지 진행되는 남아공, 러시아, 중국 3개국의 해군 연합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사거리가 900km인 지르콘은 음속의 5배 속도여서 현존하는 미사일방어체계로는 요격이 어렵다. 고르시코프는 지난달 말 대서양에서 지르콘을 시험 발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 ABC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뉴스타트 참여 중단에 관한 질문을 받고 “큰 실수이며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핵 전력) 태세나 그들이 하는 것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푸틴)가 핵무기나 비슷한 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하루 앞둔 23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대 핵전력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겠다”며 이틀 만에 핵 위협을 또 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이틀 전 양국의 핵 군축 합의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의 참여 중단을 선언한 것을 두고 “큰 실수”라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조국 수호의 날’인 이날 기념 연설에서 “3대 핵전력(Nuclear Triad)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3대 핵전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뜻한다. 그는 또 “사르마트를 올해 처음 배치하는 등 첨단 무기를 갖춰나가겠다”고 밝혔다. 사르마트는 핵 탄두를 여러 개 탑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ICBM로, 연내에 배치하겠다는 방침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차세대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과 해상 기반 극초음속 미사일 ‘지르콘’ 또한 대량 생산하겠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21일 국정연설에서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이틀 만인 이날 3대 핵전력 증강까지 거론하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핵 위협을 연계시킬 뜻을 분명히 했다. 22일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지르콘’을 장착한 러시아군 호위함 ‘고르쉬코프’가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했다. 이날부터 27일까지 진행되는 남아공, 러시아, 중국 3개국의 해군 연합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사거리가 900㎞인 지르콘은 음속의 5배 속도여서 현존하는 미사일 방어 체계로 요격이 어렵다. 고르쉬코프는 지난달 말 대서양에서 지르콘을 시험 발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 ABC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뉴스타트 참여 중단에 관한 질문을 받고 “큰 실수이며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핵 전력) 태세나 그들이 하는 것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푸틴)가 핵무기나 비슷한 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우린 강하고, 두렵지 않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14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도심 카페에서 만난 청년 이반 카라울라노우 씨(34)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카페를 창업하게 된 이유에 대해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카페 정문에는 큼직한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그의 카페 이름은 ‘카락테르니키’. 우크라이나어로 ‘특징’이란 의미다. 다른 카페와 차별화된 특징을 담자는 의지가 반영됐다. 이 카페의 특이한 점은 지금은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베르댠스크를 주제로 했다는 것이다. 베르댠스크는 이 카페 직원 20여 명이 떠나온 고향이다. 카페 곳곳에 베르댠스크의 풍경을 찍은 사진과 전통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이들은 베르댠스크를 상징하는 깃발로 디자인한 설탕 과자, 전통주, 전통 음식을 팔고 있었다.》 피란민들, 고향 테마로 카페 열어 카라울라노우 씨는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뒤 비교적 안전한 키이우로 옮겨왔지만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같은 고향 출신 지인들을 만나 ‘그리운 고향을 알리고 추억하는 카페를 만들자’며 의기투합하게 됐다. 애초엔 고향에서의 경험을 살려 ‘튀르키예식 후카(물담배) 바’를 운영할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을 가급적 많이 고용할 수 있는 카페가 더 낫다고 판단이 섰다. 지난해 8월 23일은 ‘우크라이나 국기의 날’이자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날 ‘러시아의 핵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카라울라노우 씨는 “러시아의 핵 공격 예고는 우리가 카페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신호 같았다”며 “카페 개업을 한창 준비 중이었는데 이날 전격 개업했다”고 했다.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될수록 오히려 가게 문을 열어 항전 의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직원들도 개업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키이우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카페 창업 취지를 설명하며 투자를 받았다. 손재주가 좋은 카라울라노우 씨는 테이블과 의자를 직접 만들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직접 가게를 수리했다. 카페에 걸어놓을 그림을 가져오고 인테리어 소품을 구해 오는 직원들도 있었다. 카페 곳곳에는 러시아에 대한 항전 의지를 새겨 넣었다. 카페 2층 벽 전면에는 대형 창 두 개가 ‘X’ 모양으로 걸려 있었다. 이 문자는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는 “‘X’는 우크라이나어 문자 가운데 15세기부터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는 문자”라고 설명했다. “이 창은 우리 고향 베르댠스크가 있는 자포리자주의 호르티차섬에서 가져왔어요. 우리 민족의 영웅인 ‘코자크’가 호르티차섬에서 외세에 맞서 쓰던 무기죠. 그 시대의 정신을 가져오고 싶었어요.” 우크라이나 전사 집단인 코자크(카자크)는 15, 16세기 러시아 등 외세에 맞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영웅 집단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코자크에게서 항전 의지와 민족정신을 찾는다. 우크라이나 국가 말미에 ‘형제들이여, 우리는 우리가 코자크의 국가임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표현이 담길 정도다.“망하면 돈 잃지 목숨 잃진 않아” 카라울라노우 씨는 오히려 전쟁을 겪으면서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전쟁 전에 장사할 때는 애로사항이라면 파이프 파열, 단수 등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어려움의 차원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제 우린 식자재를 사러 갈 때 공습경보가 울릴지, 식자재 도매점이 단전이나 격전 지역은 아닌지 따져보고 목숨을 걸고 갑니다. 이제 금융위기 같은 것도 두렵지 않아요. 장사해서 망하면 돈을 잃지, 목숨을 잃진 않잖아요?” 그는 전쟁 후 우크라이나 경제가 더 단단해져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우크라이나인의 기상도 세계에 널리 알려져 투자자나 소비자들이 더 주목할 것이라고 봤다. 우크라이나의 젊은 청년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도 확 달라졌다고 했다. 삶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껴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됐다는 얘기다. “전쟁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다 보니 우리는 종(種)이 달라졌어요. 이젠 돈을 생각하며 내키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아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려 합니다.”“창업 공간이자 연대의 공간” 12일 키이우에서 남쪽으로 승용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비타치우의 한 베이커리 겸 식당에는 점심시간이 지난 시각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 사장인 이리나 소브코 씨는 손님으로 북적이는 베이커리에서 음식을 나르는 틈틈이 손님들과 얼싸안고 안부를 묻느라 바빴다. 손님 대부분이 이웃이나 친구 같았다. 카페 중앙에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고,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에게 빵을 보내자’란 취지의 기부금 이벤트가 마련돼 있었다. 테이블 곳곳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크레용과 종이가 놓여 있었다. 베이커리 한편에는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그린 우크라이나의 풍경, 전쟁 모습 등이 걸려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틀 뒤인 지난해 2월 26일, 그는 베이커리 개업 일정을 앞당겨 이곳에 문을 열었다. 침공으로 갑자기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진 주민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베이커리 주방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각자 밀가루, 설탕, 계란 등 식재료를 주섬주섬 들고 와 함께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빵을 구워냈다. 이렇게 베이커리는 동네에서 연대의 상징이 됐다.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지역 손님들도 찾아오고 있다. 소브코 씨는 “우린 가진 게 별로 없었지만 함께 빵을 구우며 희망을 봤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에 비해 30.4% 줄고 실업률은 30%까지 치솟았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청년들은 지금이 암울한 만큼 오히려 미래를 더 낙관하고 있다. 전후 우크라이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보며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기회를 선점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키이우시 교통 담당 부서에서 일하다가 ‘주차 공유 서비스’ 창업을 준비 중인 세르게이 마이젤 씨는 5년 뒤쯤이면 전쟁이 끝나고 안정을 찾아 도심 주차 수요가 늘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는 “자체적으로 조사해 보니 사람들이 주차 장소를 찾는 데 쓰는 시간이 평균 15분이었다.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도록 주차 공유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을 계획”이라며 “4개월 뒤에는 사업을 런던 파리 뉴욕 등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서비스를 ‘우버택시’에 버금가는 ‘우버파킹’ 격으로 키운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청년들은 기자에게 전쟁이 끝나면 꼭 다시 우크라이나를 찾아올 것을 권했다. 이곳저곳에서 사업 기회가 생기고 관광객은 늘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꼭 취재해 달라고 부탁했다.―키이우·비타치우(우크라이나)에서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J K 롤링(58·사진)이 가정폭력을 휘둘렀던 전 남편이 해리포터 1권 원고를 볼모로 잡고 떠나지 못하게 통제하는 바람에 원고를 매일 몇 장씩 몰래 복사해야 했다는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롤링은 ‘J K 롤링의 마녀재판’이라는 팟케스트에서 1993년 전 남편 호르케 아란치스와 이혼하고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원고를 완성한 과정을 이 같이 소개했다고 더타임스가 21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롤링은 “그가 날 떠나지 못하도록 태우거나 가져가거나 하는 식으로 원고를 볼모로 삼을 것이란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롤링은 1992년 아란치스와 결혼한 뒤 이듬해 딸 제시카를 낳았지만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혼했다. 싱글맘이 된 그는 복지수당으로 생계를 꾸리며 원고를 완성했다. 그는 2001년 영국 마취과 의사 닐 머리와 재혼해 1남 1녀를 더 낳았다. 롤링은 “전 남편은 매우 폭력적이었고 통제가 심했다. 내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가방을 뒤졌고 나는 현관 열쇠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전 남편은 해리포터 원고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 원고를 숨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롤링은 “내가 원고보다 더 열심히 챙긴 건 딸 뿐이었다”고도 했다. “성별은 변하지 않는 것” 등의 발언으로 트랜스젠더 혐오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사랑받는 동화작가로 기억됐을 것이란 의견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명성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전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사흘 앞둔 21일(현지 시간) ‘맞불 연설’에 나섰다. 미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 중심의 권위주의 진영 간 대결이 더욱 격화되는 모습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낮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국정연설을 통해 “서방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확장하고, 그 우산으로 우리를 덮으려 한다”며 “전쟁에 책임 있는 것은 그들이며 우리는 전쟁을 멈추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러 간 핵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저녁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연설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 전쟁은 (지역 분쟁이 아니라) 민주주의 파괴자들과 지지자들의 경쟁”이라고 규정했다고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아무리 오래 걸려도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7시간 차를 두고 이어진 두 정상의 연설에 대해 “극명하게 다른 세계관이 화면 분할이라는 드문 순간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났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냉전 전사(cold warrior)’의 대리전이 됐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전세계가 우크라 편”… 푸틴 “러 패배시키는건 불가능” 美-러 정상 ‘맞불 연설’ 푸틴 “러 핵전력 현대화” 또 핵위협바이든, 서방의 우크라 지지 강조젤렌스키 “中, 러 지원땐 3차대전”美, 바이든 키이우 방문 러에 통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사흘 앞둔 21일(현지 시간) 수도 모스크바 의회 국정연설에서 전쟁 개전 및 확전을 서방 탓으로 돌렸다. 이어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가 올봄 대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전력을 지원하는 서방 국가를 압박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같은 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최전방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맞불 연설’을 통해 서방 진영에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침략자들과의 물러설 수 없는 결전”을 강조했다. 신(新)냉전의 양축인 두 정상이 약 1000km 떨어진 유럽 도시에서 서로를 향해 날 선 발언을 쏟아낸 것은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의 대립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굳히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푸틴, 탈냉전 상징 ‘뉴스타트’ 파기푸틴 대통령은 이날 2시간에 가까운 의회 국정연설에서 “러시아를 전장에서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전날 우크라이나를 찾아 “푸틴의 정복 전쟁은 실패했다”고 말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맞대응으로 해석된다. 그는 매년 초 국정연설을 통해 정국 운영 방침을 밝혔지만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이유로 국정연설을 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정연설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멀리 밀어낼 것”이라며 “러시아의 핵전력은 현대화됐고 국가 방위를 위한 준비가 돼 있다”며 또다시 핵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미국 프랑스 영국이 핵무기를 모두 러시아에 겨냥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는 이어 2011년 발효된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감축 조약인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미국이 먼저 핵무기를 시험하면 러시아도 핵무기를 시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핵탄두 수를 각 1550기 이하로 줄이고, 상호 핵시설을 사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가 뉴스타트를 거부하면서 탈(脫)냉전을 상징했던 양국의 핵 군축 합의가 모두 무효화됐다. 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그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포함해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합병 후 결성된 ‘부쿠레슈티 나인’ 지도자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주주의는 건재하다. 세계가 우크라이나와 함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각각 1942년생과 1952년생인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사실상 직접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계속 부딪혀 온 냉혈 70대 지도자(푸틴 대통령)와 막 80이 넘은 지도자(바이든 대통령)가 직접 전쟁을 벌이기 직전까지 이르렀다”고 해석했다.● 美, 바이든 키이우 방문 전 러에 통보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독일 유력 일간지 ‘디벨트’ 인터뷰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 무기를 지원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의 추가 지원을 압박했다. 중국의 러시아 지원 가능성을 감안할 때 미국이 반드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이 남긴 각종 후일담도 화제다. 미 언론은 현직 대통령이 미군이나 동맹국 군대가 상황을 통제하지 않는 ‘전쟁 지역(War Zone)’을 방문하는 점은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방문 이틀 전인 17일 직접 우크라이나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보안을 우려해 그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 대신 국내 이동에 사용하는 ‘에어포스 투’를 탔다고도 했다. 백악관이 대통령과 동행한 취재기자 2명에게 보낸 일정 안내 이메일의 제목 또한 ‘골프 대회 지침’이었다. 백악관은 러시아와의 충돌을 우려해 대통령의 출발 몇 시간 전 러시아 측에 이를 사전 공지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의 반응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언급해 러시아의 격한 반발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사흘 앞둔 21일(현지 시간) 수도 모스크바에서 국정 연설을 갖고 전쟁 개전 및 확전의 책임이 모두 서방에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외무부 또한 린 트레이시 러시아주재 미국 대사를 초치해 “서방 병력과 장비를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특히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맺은 핵무기 통제조약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미국이 핵실험을 하면 똑같이 할 것”이라고 했다. 올봄 대공세를 앞두고 전쟁 장기화에 지친 자국 여론을 무마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 또한 압박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같은 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최전방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의 ‘맞불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침략자들과의 물러설 수 없는 결전”을 강조했다. 신(新)냉전의 양축인 두 정상이 약 1000km 떨어진 유럽 도시에서 서로를 향해 날 선 발언을 쏟아낸 것은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의 대립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굳히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푸틴, 탈냉전 상징 ‘뉴스타트’ 파기 푸틴 대통령은 이날 약 2시간의 연설에서 “러시아를 전장에서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아 “푸틴의 정복 전쟁은 실패했다”고 일침을 날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맞대응으로 해석된다. 그는 매년 초 국정연설을 통해 정국 운영 방침을 밝혔지만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이유로 연설을 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한다면 그것을 멀리 밀어낼 것”이라며 거듭 핵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미국 프랑스 영국의 핵무기가 모두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2011년 발효된 뉴스타트에 대한 참여 중단도 선언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핵탄두 수를 각 1550기 이하로 줄이고 상호 핵시설을 사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의 뉴스타트 거부로 탈(脫)냉전을 상징했던 양국의 핵 군축 합의가 모두 무효화됐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복귀를 원하면 프랑스와 영국의 핵무기고를 어떻게 할지부터 답하라고도 했다.그는 이날 불리한 전세를 뒤집거나 전쟁 종료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진 못했다. 서방 제재에도 경제가 잘 버티고 있다며 “돈의 흐름이 마르지 않았다”고도 했다. 외부보다 국내 여론을 신경 썼다는 분석이 제기된다.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트레이시 대사를 초치했다고 밝혔다. 또 트레이시 대사에게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 미국 시민을 포함한 인력까지 모두 러시아 공격의 합법적 목표물”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발트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사건에 대한 공정한 조사도 주문했다. 최근 미 탐사보도 전문기자 세이무어 허쉬는 미국이 러시아를 방해하기 위해 노르트스트림에 고의적으로 폭발물을 설치했고 노르웨이와 함께 터트렸다고 주장했다.20일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그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포함해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합병 후 결성된 ‘부쿠레슈티 나인’ 지도자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9개국은 옛 소련의 압제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각각 1942년생과 1952년생인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사실상 직접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계속 부딪혀 온 냉혈 70대 지도자(푸틴 대통령)와 막 80이 넘은 지도자(바이든 대통령)가 직접 전쟁을 벌이기 직전까지 이르렀다”고 해석했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1일 러시아가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한 것을 두고 “매우 유감스럽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美, 바이든 키이우 방문 전 러에 통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독일 유력 일간지 ‘디벨트’ 인터뷰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 무기를 지원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의 추가 지원을 압박했다. 중국의 러시아 지원 가능성을 감안할 때 미국이 반드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이 남긴 각종 후일담도 화제다. 미 언론은 현직 대통령이 미군이나 동맹국 군대가 상황을 통제하지 않는 ‘전쟁 지역(War Zone)’을 방문하는 점은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17일 직접 우크라이나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보안을 우려해 그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 대신 국내 이동에 사용하는 ‘에어포스 투’를 탔다고도 했다. 백악관이 대통령과 동행한 취재기자 2명에게 보낸 일정 안내 이메일의 제목 또한 ‘골프 대회 지침’이었다. 백악관은 러시아와의 충돌을 우려해 대통령의 출발 몇 시간 전 러시아 측에 이를 사전 공지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의 반응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언급해 격한 반발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수현기자 newsoo@donga.com}

24일 러시아 침공 1년을 맞는 우크라이나의 지역언론 오데사저널이 동아일보와 채널A가 함께 볼로도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45)를 인터뷰한 기사를 인용해 소개했다. 오데사저널은 19일(현지 시간) ‘하루 만에 끝나는 전쟁일지라도 전쟁은 항상 길다’는 젤렌스카 여사의 인터뷰 발언을 제목으로 내건 기사에서 “젤렌스카 여사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 감사함을 전하며 국제사회의 계속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오데사저널은 동아일보·채널A 인터뷰 가운데 주로 “현대의 전쟁은 검투사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을 관람하는 무대가 아니다”, “오늘날의 전쟁은 언제든지 무대로부터 튀어나올 수 있다”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무심함을 우려하거나, 전쟁의 확전 가능성을 경고하는 발언들을 소개했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 모습을 촬영한 사진도 여러 건도 기사와 함께 게재했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열흘가량 앞둔 13일 아시아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젤렌스카 여사를 수도 키이우 임시 대통령궁 내 대통령집무실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해 한글과 함께 영문으로도 보도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취재하러 찾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열 살배기 딸을 키우는 여성을 만났다. 그는 몇 달 전 갑자기 울린 공습경보에 부리나케 아이 학교 앞으로 달려갔다. 스마트폰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는 아이들이 학교 지침에 따라 교내 대피소로 대피했다는 공지가 떴다. 딸을 데리고 나오고 싶었지만 공습경보가 종료될 때까지 학교 앞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갑자기 ‘교내 대피소에 (공중 살포) 지뢰가 떨어졌다’는 가짜뉴스가 퍼져 아이들은 다른 피난처로 자리를 옮겼다. 발만 동동 구르던 그는 극도의 공포에 떨었다. 이날 이후 ‘학교는 더 이상 보낼 곳이 아니다’는 생각에 집에서 원격수업만 시키고 있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군의 포격과 미사일 공격에 교실을 잃은 아이가 늘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전쟁으로 학교 등 교육시설 수천 곳이 파손돼 우크라이나 어린이 약 500만 명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어린이 약 190만 명이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참혹한 현실 속 아이들에게 힘든 일상을 이겨내는 희망을 주고 있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 수업에서 위안을 찾는다”고 입을 모았다. 키이우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도 좀처럼 보기 힘든 외국인 기자를 붙잡고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기회, 새로운 세계를 탐색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문제는 아이들 희망의 끈인 온라인 수업마저 노트북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13일(현지 시간) 기자와 직접 만나 원격수업을 하는 아이와 교사를 위해 한국이 노트북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지인들에게 들어보니 노트북 부족은 심각했다. 러시아군이 미사일 공격이나 포격을 가한 지역의 집들은 가구는 물론이고 노트북이나 PC 등이 불에 탔다. 남은 교사는 고령의 여성이 많은데, 급여가 적어 노트북 살 여유가 없다고 한다. 물론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노트북을 전달해 왔다. 다만 여전히 노트북이 부족한 상황이니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 신제품뿐 아니라 중고 노트북을 기부받아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등 좀 더 적극적으로 도우면 어떨까. 우크라이나에서 스마트폰 및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전쟁이 길어지며 우울감을 느끼거나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같이 정신건강에 위험 신호가 생긴 사람이 많아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정신건강 자가 진단용 앱 개발에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의료 분야에서도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클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사상자가 많아지면서 최전선이 아닌 키이우 병원들마저 찾아온 환자를 돌려보낼 지경이다. 전시 의료용품 지원에 이어 전후 재건 과정에서 의료 기술을 전수할 필요도 있다. 6·25전쟁 직후 한국은 미국의 전문 기술을 전수받는 ‘미네소타 프로젝트’ 수혜를 받았다. 당시 미 국제개발처(USAID)가 지원한 1000만 달러를 토대로 농학과 공학 분야에서 뛰어난 미네소타대를 중심으로 서울대 복구와 농과 및 공과대학 발전을 도왔다. 전후 우방국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IT 강국 한국’은 어려웠을 것이다. 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이다. 정부와 대학이 70년 전 우리를 떠올리며 우크라이나판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가동하길 기대해 본다.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뚱뚱한(fat)은 거대한(enormous)으로, 남자(men)는 사람(people)으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등으로 유명한 영국 아동문학작가 로알드 달(1916∼1990) 작품 속 표현들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맞게 수정돼 재출간됐다고 17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출판사 ‘퍼핀’ ‘로알드 달 스토리컴퍼니’는 2020년부터 전문가들과 그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검토해 신체, 정신건강, 젠더, 인종 등과 관련된 수백 가지 표현을 수정했다. 신체 표현이 대표적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수정본에서 오거스터스 그루프는 ‘뚱뚱한’ 대신 ‘거대한’ 사람으로 표현됐다. 소인족 움파룸파는 ‘아주 작은(tiny)’ 대신 ‘작은(small)’으로 바뀌었다. ‘남자’이던 움파룸파 성별도 중성적인 ‘사람’으로 변경됐다. 마틸다에서 주인공 마틸다는 남성 작가 러디어스 키플링 소설을 즐겨 읽는 것으로 묘사됐지만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 책을 읽는 것으로 수정됐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주인공 미스터 폭스의 아들은 딸로 바뀌었다. 문제적 표현은 아예 삭제됐다. ‘더 트위츠(멍청씨 부부 이야기)’에서 인신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중 턱’ ‘미친’이란 표현은 없어졌다. 인종차별을 떠올린다는 색상이라며 ‘검은’ ‘하얀’도 사라졌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땐 문장이 추가됐다. ‘더 위치스(마녀를 잡아라)’에서 마녀가 가발 아래 대머리를 숨기고 있다는 대목 다음에 “여자들이 가발을 쓰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란 문장이 들어갔다. 로알드 달은 최근 반유대주의와 여성 혐오, 인종차별 비난을 받았다. 2020년 미국 할리우드 영화 ‘더 위치스’에서 마녀 역을 맡은 앤 해서웨이가 손가락이 없는 것으로 나오자 장애인 비하 논란이 일었다. 유족은 반유대주의 성향이 담긴 작가의 글에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품 수정을 두고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달의 전기 작가 매슈 데니슨은 달이 신중하게 어휘를 선택했다며 “정치적 분위기로 촉발된 그의 소설 변경은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 주도했다”고 말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앞두고 미국이 “러시아는 반(反)인도적 범죄를 책임져야 한다”며 신속한 러시아 전범 처벌과 추가 제재를 시사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대러 제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러시아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 사상자가 2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는 가운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 올해 평화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전쟁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이 우세해지고 있다.● 美 “러, 반인도적 범죄 책임져야”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18일 독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러시아의 행위에 대한 증거를 검토했다”면서 “미국은 공식적으로 러시아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살인과 고문, 강간, 추방 등 끔찍하고 광범위한 공격을 해왔다. 어린이를 포함한 수십만 명을 러시아로 강제 추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죄를 저지른 모든 이와 그들의 상관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우크라이나 사법 절차와 국제 (전쟁범죄) 수사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엔은 1996년 조직적 살인과 인종 말살, 고문, 강제 인구 이동 등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했다. 미국이 러시아를 이 같은 ‘반인도적 범죄 행위자’로 규정하면서 러시아의 전쟁범죄 처벌을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미 CNBC방송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조만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러시아 전범 처벌을 위한 특별재판소 설치를 논의할 것이라고 이달 초 보도했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비롯해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정황이 속속 드러났지만 구체적인 처벌 시도는 거의 없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러시아를 지원하는 북한과 중국, 이란에도 강하게 경고했다. 월리 아데예모 미 재무부 부장관도 이날 미국외교협회(CFR) 연설에서 러시아와 지원 국가에 대한 추가 제재를 시사했다. 그는 “러시아 경제는 (서방) 제재로 (경제가 불안한) 이란과 비슷한 모습”이라며 “불법 침공이 멈출 때까지 더 많은 일(제재)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반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대사는 19일 텔레그램을 통해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 제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러시아에 반인도적 범죄 혐의를 씌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언제든 전쟁 종식 가능” 주장도영국 국방부는 전쟁 1년간 러시아 정규군과 용병단 바그너그룹 등의 사상자가 17만5000∼20만 명(전사자 4만∼6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17일 분석했다. 그럼에도 올해 평화협상을 통한 종전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경제분석조직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19일 발간한 ‘우크라이나 전쟁 백서’에서 “평화협상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어느 쪽도 양보해야 하는 종전안에 동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 요원 출신인 군사평론가 이고리 기르킨은 “우리는 특별군사작전 목표를 공식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 목표 달성을 선언하고 전쟁을 끝내는 일도 간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나쁜 일은 겪을 수 있는 만큼 다 겪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번 전쟁의 새로운 공포를 알게 되네요.” 지난해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열흘가량 앞둔 13일(현지 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45)는 수도 키이우의 ‘임시 대통령궁’ 내부 대통령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채널A 공동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쟁을 견뎌내고 있는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젤렌스카 여사는 하르키우시 버스정류장에서 죽은 아들의 손을 4시간 동안 잡고 있던 아버지, 부차 집 마당에 묻힌 어머니 묘지를 지키는 아들, 드니프로시의 파괴된 주택 속에서 청각장애인이라 ‘살려 달라’는 말을 제대로 외치지 못하다 뒤늦게 구조된 여성을 소개하며 “매주, 매일이 비극이다. 우린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그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세계가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길어지는 전쟁의 종식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대화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또 “6·25전쟁 후 한국의 재건 경험은 우크라이나에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전쟁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도 했다. 러시아 침공의 부당함을 호소할 각종 국내외 행사로 피곤한 기색도 엿보였지만 젤렌스카 여사는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응했다. 그는 “지금 내가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면서 “나는 나의 일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코미디언 출신 남편 힘들어해, 내가 웃겨 주려 노력” “매일 비극, 우린 그냥 살고 싶을뿐아이들 미래 생각하며 전쟁 견뎌국제사회의 군사적 도움 절실전후 복구 성공한 韓과 협력 원해”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이날 낮 키이우의 ‘임시 대통령궁’ 대통령 집무실 앞에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나타났다.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 그는 기자의 푸른색 정장 차림을 보고는 “우리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과 같다”고 말했다. 처음 접해 보는 한국어 통역 인터뷰에 “한국어는 매우 부드럽게 들린다”며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여사의 성인 ‘젤렌스카’는 남편의 성인 ‘젤렌스키’에 여성형 어미 ‘에이(a)’를 덧붙인 형태다. 젤렌스카 여사는 전생 참상을 알리며 각국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 지난해 영국 공영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에 올랐다. 현재 19세 딸과 10세 아들을 두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는데 힘들진 않은가. 긴 전쟁을 어떻게 견디고 있나. “어떤 전쟁을 ‘짧은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쟁이 매주, 매일 비극이다. 우리 모두 피곤하고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살고 싶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긴 전쟁에 대한) 피로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힘든 순간을 견딘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나.“전쟁 전에 독서를 많이 좋아했다. 하지만 독서는 잡생각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정말 좋다. 아이들이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도 그렇다. 아이들의 발랄함과 천진함은 굉장히 큰 선물이다.”―젤렌스키 대통령이 힘들 때 어떤 말을 해주나. “가끔 남편을 웃게 하면 남편이 힘을 받는다. 내가 요즘 (코미디언 출신) 남편을 웃기려고 한다. 보통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격려의 말도 한다. ‘힘내’ ‘우리 다 이겨낼 수 있어’란 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는데 가장 두려운 점은 무엇인가. “세계가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만 위험한 게 아니다. 우크라이나가 지면 러시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우리가 부탁하는 만큼 (국제사회가) 도움을 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가.“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나 내게 ‘대통령 부인이 군사적 도움을 부탁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냐’라고 물었다. 우리를 보호하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내가 나서야 한다. 군사적 도움은 제일 필요한 일이다. 두 번째로 이제 인프라 복원이 절실하다. ‘사람’이 우선이다. 무너진 건물과 학교, 유치원, 병원을 다시 지어야 한다. 세계가 도와줄 수 있다.” ―전쟁 중에 아이들을 키우며 무엇을 중시하고, 어떤 말을 많이 하나.“아이들에게 솔직해야 한다. 우리는 예전처럼 완전한 꿈을 꿀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확실히 예전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 ‘확실함’을 전달해야만 한다. ‘어른들이 너희를 지킬 거야. 그러니 너희들은 안심하고 걱정하지 마’라고.” ―이번 전쟁이 더 길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숨을 쉬면서) 전쟁은 언제나 긴 법이다. 우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는 우방국의 지원에 달려 있다. 한국전쟁을 보더라도, 다른 나라의 용감무쌍한 파견 군인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날 수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단 한순간도 그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를 죽이러 온 상대는 그 어떤 누구도 직접 마주하기 싫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으로서 푸틴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뿐이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라.”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길 바라나.“우리를 잊지 말고 계속 응원해 주면 좋겠다. 한국은 큰 나라라서 도움이 절실하다. 군사적 지원에 대한 (한국 측의) 대화를 기다리겠다. 또 몇 개월 전 내가 설립한 재단을 통해 한국이 교육 시스템을 지원할 수 있다. 아이들이 안전 문제 때문에 온라인으로 공부하는데, 노트북이 필요하다.” ―한국의 전후 재건 과정이 참고가 될까.“한국은 전후 복구에 성공했다.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뤘고 인적 자원도 회복했다. 이 같은 경험은 (우크라이나에) 굉장한 의미가 있다. 한국이 협력을 제안해 준다면 우리는 그 제안을 너무나 행복하게 받겠다.” ▶dongA.com에서 인터뷰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