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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없습네다,” 10일 청와대를 방문한 북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2시간 40여 분간의 면담과 오찬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서로 간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청와대 관계자들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식사는 괜찮았는지 등을 묻자 김여정은 “일없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고 한다. “괜찮습니다”는 뜻으로 북한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김일성의 혈육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2박 3일 동안 행보는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큰 화제였다. 김여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정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보통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내내 밝은 표정을 유지했지만 수다스럽지는 않고, 해야 할 말만 딱딱 골라서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특사라는 중압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매우 절제되고 겸손한 언행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여정은 연이은 회동과 식사 자리에서도 고개를 숙이는 일 없이 발언자를 쳐다보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10일 강릉에서 열린 조명균 통일부 장관 주재 만찬에 참석했던 최문순 강원도지사도 김여정에 대해 “굉장히 말수가 적고 침착했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정확한 워딩을 구사하는 스타일이었다”고 전했다.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도 “대통령님”이라고 호칭하며 깍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김여정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김정은이 특사로 왜 김여정을 보냈는지 이해가 갔다”고 말했다. 단순히 혈육이라서 보낸 것이 아니라 ‘평양 초청장’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전달하고 우리 측 인사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인상을 심어줄 적임자라 특사로 보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나 공식적인 식사 자리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없어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그렇다고 불필요한 거만을 떨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서울과 평창, 강릉을 오가는 빡빡한 일정에 후반부에는 김여정도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10일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응원에 참석했던 김여정은 방남 기간 내내 자정을 넘겨 숙소인 워커힐 호텔에 도착했다. 김여정은 2박 3일 동안 총 7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했고, 네 차례 경강선 KTX를 탔다. 10일 청와대 접견에서 핸드백을 떨어뜨리는 등 다소 경직됐던 김여정은 일정 막바지인 11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만찬에서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활발한 성격에 붙임성 좋은 임 실장이 재킷을 벗으며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인데, 이 자리에서는 정말 편하게 한 끼 드시고 가시라”고 말했고 김여정도 가볍게 웃으며 “감사합니다”고 답했다. 이 자리에서는 김여정도 참석자들의 농담에 비교적 크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만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등 최고위층과의 식사보다는 덜 부담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며 “임무였던 김정은의 친서 전달도 무사히 마쳤고, 만찬 이후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만 보면 떠난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마지막 일정으로 문 대통령의 오른쪽 옆자리에서 공연을 지켜본 김여정은 개회식,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 관람 때와는 다르게 문 대통령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여정은 공연 관람 후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문 대통령이 김영남과 악수를 할 때도 손을 놓지 않았다. 이어 김여정은 김정숙 여사에게 “늘 건강하세요. 문 대통령과 꼭 평양을 찾아오세요”라고 했다. 한편 김여정이 일정 내내 유독 몸가짐을 조심하는 장면이 포착돼 임신설도 다시 제기됐다. 만찬에 참여한 김여정이 의자에 앉을 때 양손으로 아랫배를 살짝 감싸 안으며 천천히 앉았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지난해 10월 출산설이 돌기도 했으나 아직 결혼이나 출산 여부가 파악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한상준 alwaysj@donga.com·황인찬 기자}

북한 노동신문은 11일 1면 하단 기사로 “김영남 동지를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이 제23차 올림픽경기대회 개막식에 참가하고 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남조선 대통령을 만났다”고 사진 7장과 함께 보도했다. 노동신문이 문 대통령의 사진을 보도한 것은 처음이다. 신문은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북측 대표단의 방문이 남북관계 개선과 조선반도 평화를 위한 불씨로 되었다고 하면서 오늘의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김정은 위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하였다”고 전했다. 이어 “김여정 동지가 김정은 동지께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정중히 전달했으며 최고 영도자 동지의 뜻을 구두로 전하였다”고 밝혔다. 친서 내용이나 구두 메시지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신문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님께서 신년사에서 밝히신 바와 같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하나 당사자들끼리 풀어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서로 긴밀히 협력하여 남북 공동의 번영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의지를 표명했다”고 전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31)이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가하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 일행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6·25전쟁 이후 김일성 일가의 첫 방남이다. 전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에서 연설 중인 오빠 뒤에 나타났다가 황급히 기둥 뒤로 숨었던 김여정은 하루 뒤 한국에 와서는 고개를 살짝 치켜든 도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실세 단장은 나” 9일 오후 1시 47분 김정은의 전용기인 ‘참매 1호’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편명은 ‘PRK-615’. ‘PRK’는 북한을 의미하며, ‘615’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6월 15일을 뜻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도착 10여 분 뒤 공항 VIP접견실에 가장 먼저 들어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멈춰서 문 쪽을 뒤돌아보며 잠시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김여정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웃으며 방향을 돌려 소파로 향했다. 착석할 때도 비슷한 모습이 나왔다. 김영남이 김여정에게 상석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자 김여정이 환하게 웃으며 ‘사양’하는 손짓을 한 것. 결국 잠시 승강이 끝에 김영남이 그자리에 앉았다. 김여정은 김일성의 피를 직접 이어받고 북한의 고위 관료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김정은의 최측근. 김영남이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이지만 북한 체제에 비춰 볼 때 김여정이 양보하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김여정이 과거 북한 권력자들과 다른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접을 나온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귀한 손님들이 오신다고 하니까 날씨도 거기 맞춰서 이렇게 따뜻하게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김영남 위원장은 “우리 동양 예의지국으로서 알려져 있는 그런 나라임을, 이것도 우리 민족의 긍지의 하나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여정은 시종일관 고개를 살짝 든 도도한 모습이었다. 조 장관을 보며 살짝 눈을 흘기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 엷은 화장에 별 액세서리 없어 김여정의 모습은 수수한 편이었다. 칼라와 소매에 모피가 달린 검은색 롱코트 차림이었다. 머리는 별다른 액세서리 없이 꽃핀으로 단정하게 묶었고, 옅은 화장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어깨에 멘 체인백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검은색 가방이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명품으로 추정되는 가방을 연달아 선보이며 화려함을 과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모습이 베일에 싸여 있던 김여정은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의 영결식 때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오빠를 수행하는 장면이 여러 번 목격됐다. 하나같이 검은색 투피스나 짙은 회색 점퍼 등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짙은 색 계열의 옷들을 즐겼다. 예술인 출신으로 패션 감각을 뽐내는 올케 리설주와도 패션 취향이 거리가 있는 것이다. 다만 다소 아담한 체격의 김여정이 이번 방문에서는 북한에서 신었던 것보다 높은 굽의 구두를 신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 ‘김정은 친위대’의 경호 김여정이 이동할 때는 철벽 경호가 따라붙었다. 인천공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 장신인 북측 경호원 4명이 앞뒤좌우를 에워싼 통에 김여정은 눈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 검은색 양복과 선글라스, 푸른색 넥타이 차림에 귀에 무전기 리시버를 꽂은 북측 경호원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어 보이는 팀장 격이 앞에 서고 나머지 짧은 머리의 건장한 청년 3명이 ‘역삼각형’으로 김여정을 둘러싸며 이동했다. 양복 상의에 동일한 배지를 단 이들은 김정은을 비롯한 김 씨 일가에 대한 근접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사령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때 찾은 황병서 총정치국장 경호에 2명이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이번엔 최소 두 배 이상으로 경호가 강화된 셈이다. 김여정의 최근접 경호는 북측 요원들이 맡고, 청와대 경호처 요원들이 좀 떨어진 거리에서 이중의 경호를 펼쳤다. 사실상 국가 정상 수준의 경호가 벌어진 것. 김여정 일행 주변 지역은 휴대전화와 카메라 영상 전송용 장비 등의 통신이 일시 먹통이 되기도 했다. 김여정 등 북측 대표단에는 제네시스(EQ 900) 4륜 구동 차량이 제공됐다. 이 차량에는 방탄 기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고용희 쏙 빼닮아 김여정의 모습은 그동안 북한 매체가 편집해 공개하는 짧은 영상이나 해상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진을 통해서만 대외에 공개됐다. 이날 제대로 얼굴이 공개된 김여정의 모습은 생모인 고용희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았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김여정과 두 오빠인 정철 정은의 생모인 고용희는 김정일의 셋째 부인이다. 1953년 일본 오사카 인근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무용수였고 1971년 북한 만수대예술단에서 활동하다가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 하얀 피부에 비교적 아담한 체구, 갸름한 얼굴선과 비교적 수수한 인상 등 고용희의 20대 때 활동 모습이 이날 김여정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고용희는 1990년대 후반 유선암 수술을 받았지만 완쾌되지 못하고 앓다가 2004년 결국 사망했다. ○ 극도로 말 아낀 김여정 김여정은 언론 등 대외에 노출된 장소에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인천공항 접견실에서 조명균 장관과 김영남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며 분위기를 띄울 때도 입을 꾹 다물고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인천을 출발한 지 2시간 10분 만인 오후 4시 47분 김여정 등 북측 대표단을 태운 KTX가 진부역에 도착했다. 북측 사진기자가 먼저 열차에서 내린 뒤 이어 하차하는 김여정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이 기자는 수시로 김여정에게 근접해 사진을 찍었다. 북측 기자는 개회식에서 김여정과 김영남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있는 장면을 다수 촬영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진을 대내외에 보내 ‘정상 국가’임을 선전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여정은 한국 기자들이 ‘기분이 어떠신가’ 등 가벼운 질문을 던졌지만 옅은 미소만 띤 채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김여정은 개막식 이후 서울로 이동해 호텔에서 대표단과 1박을 했다.황인찬 hic@donga.com·신나리 / 인천=황금천 기자}

9일 한국을 찾은 김여정 곁에는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53·사진)의 모습이 시종일관 눈에 띄었다. 김 부장은 북측 경호요원들처럼 김여정의 지근거리에서 그림자 수행을 했다. 김성혜는 북한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대남 일꾼’ 중 한 명이다. 1965년생으로 김일성대 출신으로 알려진 김성혜는 “매우 똑똑하고 달변이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 제15, 16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 수행원으로 참석했다. 2006년에는 6·15 남북 당국 공동 행사의 보장성원(안내요원)으로 활동했고 이듬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측의 특별수행원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김성혜는 우리 인사가 북한에 갔을 때 자주 전면에 나섰다. 이희호 여사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후 조문을 갔을 때 당시 개성에서 이 여사를 영접했다. 2012년 2월에는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일행이 방북했을 때 영접과 환송을 맡기도 했다. 앞서 2002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평양을 찾았을 때는 3박 4일간 옆에서 근접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비가 오자 곁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기도 했다. 김성혜는 2013년 6월 9일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한 판문점 실무접촉에서는 북측 수석대표로 나오기도 했다. 여성 관료가 수석대표로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당시 북측이 여성 대표를 내세워 ‘정상국가’임을 강조하고 체제 선전을 극대화하려고 김성혜를 내세웠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실무회담의 상대자가 바로 통일정책실장이었던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다. 천 차관은 9일 김여정을 비롯한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왔을 때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영접을 나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평창 게임’이 막을 올렸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8일 한국과 핀란드의 컬링 경기를 시작으로 17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남북, 미중일이 얽힌 사활을 건 외교전(戰)도 서막을 열었다. 평창이 스포츠 제전과 정치·외교의 장이 되면서 세계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에 쏠리고 있다. 북-미 간의 신경전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찬회동을 가진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미국은 북한이 영구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핵무기뿐만 아니라 미사일을 폐기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비핵화를 촉구하고 김정은의 ‘평창 공세’로 인한 대북제재 균열을 막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 것. 이에 문 대통령은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북한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이날 평앙에서 건군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갖고 “(미국 등) 침략자들이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0.001mm도 침해하거나 희롱하려 들지 못하게 하여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미는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직전 주일미군 요코타(橫田) 공군기지에서 “앞으로 이틀간 어떤 만남이 이뤄질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9일 오후 1시 반 전용기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한다고 우리 측에 알렸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 등 대표단과 10일 청와대에서 오찬 면담을 갖는다. 지난해 전란 위기를 넘어 북-미 정상급 인사를 한반도에 끌어들이는 데 일단 성공한 문재인 정부의 평창 구상은 진짜 성패의 갈림길에 섰다. 북-미 대화, 최소한 남북 대화 기조로 연결하지 못하면 평창발 훈풍은 꺼지고 다시 한반도에 삭풍이 불 수 있다. 평창에서의 17일 후, 한반도에 봄이 올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문병기 weappon@donga.com·황인찬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포함한 북측 고위급 대표단은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일인 9일 오후 방남해 숨 가쁜 2박 3일을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보안 등을 이유로 서울에 숙소를 잡은 탓에 서울∼평창을 오가며 ‘광폭 행보’를 펼칠 것이 예상된다. 8일 청와대와 통일부에 따르면 고위급 대표단은 9일 오후 1시 반 전용기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천해성 차관이 영접한다. 이후 우리 당국의 협조를 받아 개막식이 열리는 평창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안전 문제를 고려해 헬기 이용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6시 평창에서 열리는 개막식 리셉션에는 북측 고위급 대표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만 참석한다. 김여정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등이 참석하는 리셉션에 참석하지 않는 것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리셉션은 (국가)수반만 참석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부부장으로 차관급인 김여정은 직급상 참석이 어려운 것. 개막식엔 고위급 대표단 전체가 참석할 것이 예상된다. 여기서도 김여정과 김영남이 나란히 앉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림픽 스타디움의) VIP 박스 배치는 국가수반이 (앞줄에) 앉고 총리급 등이 뒤로 앉는다. 김영남은 수반급이라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등과 멀리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게다가 VIP석 뒤편에는 몸을 녹일 수 있는 별도의 라운지가 있어 음료와 다과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눌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전 입장까지 감안하면 정상들은 최소 3시간 이상 VIP 박스 인근에 머물게 된다. 오다가다 서로 얼굴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과 김영남 위원장이 자연스럽게 만날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되는 개막식이 끝난 뒤 오후 10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 대표단은 다시 서울로 향한다. 북한 대표단의 방남 하이라이트는 10일 낮 12시 청와대에서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이다. 우리 대통령이 북측 인사와 청와대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3739일 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1월 16일 제1차 남북 총리회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김영일 북한 내각총리 일행에게 환송 오찬을 연 게 마지막이었다. 남북 간 대리 정상회담 성격의 이날 만남에서 김여정은 대북 제재 완화,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 중지 등 김정은의 의중을 전할 수도 있다. 별도의 메시지를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위원장을 비롯한 이번 북측 대표단과 문 대통령의 오찬 명칭을 두고 청와대는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회담이나 정상급회담이라고 붙이는 게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내부적으론) 지금까진 접견, 면담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북측은 문 대통령과의 오찬 이후로는 별다른 일정을 알려오지 않았다. 오찬 결과에 만족한다면 대표단은 11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돌아갈 때까지 더욱 활발한 대남 활동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 기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평창 공세’가 우리 사회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자신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사진)을 7일 평창 겨울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에 포함시키며 ‘백두혈통(김일성 일가)의 첫 방남’을 전격 발표한 것. 김정은이 가장 가까운 ‘혈족 대리인’을 보내면서 김여정을 매개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간접 남북대화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10일 청와대에서 접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날 오후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는 고위급 명단을 통보해 왔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앞서 4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보내겠다고 알려온 북한은 이날 김여정과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최휘 당 부위원장, 남북 고위급회담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 대표단 3인의 명단을 보내왔다. 이번 북측 대표단은 역대 방남한 북측 대표단 가운데 가장 무게감이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폐회식 때 찾아온 ‘실세 3인방’(황병서 최룡해 김양건)보다 상징성이 크다. 당시 3인방의 방문은 당일치기였지만 이번 대표단은 9∼11일 2박 3일간 한국에 머문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김여정의 방남에 대해 “관련 직책과 다른 외국 정상의 가족들이 축하 사절단으로 파견되는 사례도 함께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여정과 최휘는 지난해 1월 북한 인권 문제로 미국의 독자제재 대상에 올라 있어 초청 과정에서 한미 간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여기에 최휘는 지난해 6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56호 제재 대상이라 그의 방남을 위해서는 유엔의 제재 일시유예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북한은 올림픽 개막 전날인 8일 건군절 기념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가질 예정이어서 김여정 등의 방한 수용을 두고 북-미 간, 한미 간 마찰음이 이전보다 고조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물론 평창 이후 전개될 수 있는 미국의 ‘코피 작전’(제한적 대북 선제타격)을 감안해 김정은이 여동생 편으로 북핵 이슈에 대한 입장을 문 대통령에게 전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7일 “김여정은 노동당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긴장 완화와 관련해)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내려온다고 볼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편 문 대통령은 8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한을 시작으로 김여정이 돌아가는 11일까지 나흘간 평창 외교의 분수령을 맞게 된다. 8일 오후 펜스 부통령과 만찬회동을 가진 뒤 9일에는 북-미 대표단이 모두 참여하는 평창 올림픽 개회식과 사전 리셉션에 참석한다. 북한은 7일 오전 경의선 육로를 통해 응원단 229명, 기자단 21명, 태권도시범단 26명, 김일국 체육상을 비롯한 민족올림픽위원회(NOC) 관계자 4명을 한국에 보냈다. 북측 응원단이 방문한 것은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124명이 온 뒤 13년 만이다. 이날까지 평창 올림픽과 관련해 한국에 온 북측 인사는 569명이다. 황인찬 hic@donga.com·문병기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여동생이자 최측근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31)을 평창 겨울올림픽에 맞춰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달 신년사 발표 이후 계속된 한반도 주도권 잡기 게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백두혈통’(김일성 일가)은 광복 이후 한반도 남쪽 땅을 밟은 적이 없다. 당초 북측 고위급 대표단에 실질적 2인자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의 참석을 기대했던 정부는 김여정 파견이 결정되자 적잖이 놀라고 있다. 통일부는 자료를 내고 “(김여정 등의) 체류기간 동안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하겠다”며 반겼다. 동시에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비핵화는커녕 핵동결 이야기는 쏙 뺀 채 약 600명의 대표단에 이어 김여정 카드까지 꺼낸 김정은의 융단폭격식 ‘평창 공세’ 뒤에 숨겨진 진짜 의도를 지금이라도 잘 따져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 오빠는 나쁜 사람 아니다”며 선전전 펼 듯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유성옥 원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여정은 최룡해에게도 반말을 한다. 그냥 ‘최룡해’라고 부른다고 한다. 2인자 최룡해도 김여정 앞에서는 쩔쩔맨다”고 말했다. 어릴 적 강원 원산에 있는 아버지 김정일의 특각(별장)에서 함께 뛰놀았던 여동생 김여정은 김정은에게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다. 김정은이 이런 김여정을 한국에 보내기로 한 것은 평창 드라이브의 대미를 장식하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북한은 지난달 9일 고위급 회담에서 우리가 비핵화 대화 재개를 요청한 것을 사실상 거부한 후 “핵은 대화 대상이 아니다”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여정을 포함한 ‘역대급 대표단’이 내려오지만 남북은 아직 대화 의제조차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1989년 임수경이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석차 방북했을 때 남한의 풋풋한 여대생을 보고 북한에서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북한도 이번에 그런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미지 세탁’을 노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김여정은 ‘우리 오빠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로켓맨도 아니고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란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데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에서 벌어질 북-미 간 신경전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은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문에 맞춰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격’을 맞췄다. 이어 트럼프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의 폐회식 참석이 유력해지자 김정은이 맞대응으로 김여정을 보내기로 했다는 것.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정상국가’로서 미국과 대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이방카가 폐회식에서 주목받으니 김여정은 개회식 스포트라이트를 받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여정, 김정은 메시지 갖고 청와대 가나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북측 고위급 대표단을 면담할 것으로 보인다. 면담은 청와대에서 대표단장인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등 대표단 전원이 모두 참석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주변에선 과연 김여정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갖고 올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김여정 일행을 만나더라도 비핵화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는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핵”이라면서도 “이제 첫발을 떼는 것이다. 비핵화 문제는 (대화 단계 중) 가장 끝에 있는 것이니 첫 만남부터 본격적인 얘기를 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오히려 김정은은 김여정을 통해 문 대통령의 의중을 떠보려 할 수도 있다. 과연 평창 이후 대화를 이어갈 만한지 등을 타진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초대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남북 대화는 물론이고 북-미 대화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성욱 교수는 “(김여정에게) 이번이 북한에 마지막 기회다.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미국과 시작해야 한다고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찬 hic@donga.com·문병기·홍정수 기자}

6일 오후 5시경 강원 동해시 묵호항에 들어온 하얀 화물 여객선의 마스트(Mast·선체의 중심선상 갑판에 수직으로 세운 기둥)에는 붉은색 인공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2002년 9월 부산 아시아경기 이후 15년 5개월 만에 남한을 찾았지만 모습은 그때와 크게 변하지 않은 북한 선박 만경봉92호(9627t급)였다. 북한 예술단 본진 130여 명(예술인 114명)을 태운 선박은 이날 오전 6시경 함경남도 원산을 출발해 약 11시간 만에 항구에 도착했다. 체감온도 영하 7도의 혹한 속에 부두는 한반도기를 들고 환영하는 인파와 태극기를 든 보수단체가 뒤엉켜 서로 비난을 퍼붓는 바람에 혼란스러웠다. 16년 전 부산을 찾았을 때 선내 모습이 공개될 정도로 이 배는 남북 교류의 상징 중 하나였지만 이날은 남남 갈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 만경봉호 주변에 비행금지구역 설정까지 양곡과 시멘트 등 주로 화물을 운송하는 묵호항에는 낮부터 속속 사람들이 몰렸다. 현송월이 이끄는 삼지연관현악단의 방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원정 시위대들이 찾아왔다. “환영한다” “돌아가라”는 외침이 뒤엉켰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은 인공기와 한반도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사진을 소각했고 경찰이 급히 불을 끄는 소동도 벌어졌다. 만경봉92호는 조용했다. 남성 선원들이 갑판으로 나와 정박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을 뿐 대부분의 선실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진 상태였다. 한 북측 인사는 카메라를 들고 나와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부두 주변을 촬영하기도 했다. 정부는 배가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 묵호항 일대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임시 설정해 헬기와 드론의 비행을 차단했다. 취재진의 근접 취재도 막았다. 단원들은 도착한 뒤에도 한참을 내리지 않았고 예정됐던 환영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통일부는 오후 9시 반경 “예술단 본진은 오늘 하선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발표했다. 보수단체 시위와 단원들의 뱃 멀미 등으로 일정이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단은 8일 강원 강릉아트센터, 11일 서울 국립극장 공연을 앞두고 있다. ○ 김영남, 제재 대상인 고려항공 타고 오나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만경봉92호에 대해 “2002년 아시아경기 등 전례에 준해서 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라며 음식, 기름, 전기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의 독자 제재인 5·24조치의 예외를 인정해 입항을 허가한 데 이어 각종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 하지만 통일부는 1시간여 뒤 기자단에 휴대전화 문자를 돌려 “편의 제공과 관련해 북측이 요청한 사실도 없고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도 없다”고 말했다. 아직 북측의 정식 요청도 받지 않았는데 먼저 “우리가 제공해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논란이 되자 급히 취소한 것이다. 논란 끝에 만경봉92호 입항을 수용한 정부는 이젠 고려항공 운항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9일 방남하는 고위급 대표단 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아흔 살의 고령인 만큼 고려항공 편으로 이동하겠다고 제안하면 난감해진다. 고려항공이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마식령스키장 방문 시 이용한 우리 전세기에 이어 또다시 미국에 예외 인정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아직 북에서 고위급 회담과 관련된 항공편 이용 제안을 하지는 않았다.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말을 아꼈다. 정부는 김 위원장과 함께 오는 다른 대표단원에 2010년 천안함 폭침 배후로 알려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포함돼도 이를 수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당국자는 “대화와 관련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이 열려 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일국 체육상 등 북한 민족올림픽위원회(NOC) 관계자 4명, 응원단 229명, 태권 도시 범단 26명, 기자단 21명 등 총 280명이 7일 오전 9시 반경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남한다. 북한 응원단의 경기장 입장료만 1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입장권 금액이 전체적으로 높아 북한 응원단 입장료 부담도 상당하다. 강원도 등과 협의해 부담 비율을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hic@donga.com / 동해=박은서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일인 9일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오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여태껏 방남한 북한 인사 가운데 최고위급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5일 “북한이 진지하고 성의 있는 자세를 보였다”고 환영했다. 김정은이 꺼내 든 ‘김영남 카드’가 평창 너머로 남북 대화의 모멘텀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아흔 살에 처음 남한 땅 밟는 김영남 김영남에게는 ‘명목상 국가수반’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북한 사회주의헌법은 김영남이 맡고 있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영남은 1998년 9월부터 19년 넘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다. 앞서 1983년부터 15년 동안 외교부장을 지내며 ‘북한의 얼굴’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방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방남이 전해진 4일은 그의 아흔 번째 생일이었다. 신년 들어 강한 유화 공세를 펼치고 있는 김정은에게 김영남은 가장 안정적인 카드 중 하나일 수 있다. 각종 핵·미사일 도발에도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에 오르지 않았을 정도로 그는 실권이 없다고 봐야 한다. 뒤집어 보면 북한 정권의 숱한 숙청에서도 살아남았을 만큼 1인자의 의중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영남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그런 역할은 김영남이면 충분하지 최룡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외교관 출신의 한 고위 탈북자는 김영남의 스타일에 대해 “김일성이 벽을 가리키며 ‘저것은 문이다’라고 한다면 김영남은 그 말을 믿고 기어이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가려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시에 김영남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에 앞서 김영남을 만났다. 2007년 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국회 정보위원회 한 관계자는 “김영남은 나이가 아흔인데도 유연하다. (김정은이) 그래서 보냈다”고 설명했다. ○ 문재인 대통령, 김영남 단독 접견하나 이제 관심은 문 대통령이 김영남을 단독 접견할지에 쏠리고 있다. 김 대변인은 “다양한 소통의 기회를 준비해 나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며 문 대통령과 김영남의 회동을 추진할 방침임을 밝혔다. 김 대변인은 “어젯밤 늦게 (김영남의 방남을) 통보받았고, 오늘 대통령을 비롯한 실무진이 어떤 수위에서 어떤 내용을 갖고 만날지 현재 논의 중”이라며 “확정되는 대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특히 김영남은 김정은의 친서를 갖고 방남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결국 문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김영남 간 만남의 격(格)을 검토 중이다. 김영남이 헌법상 국가수반이긴 하지만 정상회담이라고 하긴 어려운 만큼 남북 정상급 회담으로 부르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아직 북측이 공개하지 않은 대표단 단원들의 구성을 살피면서 북한과의 접촉 방식 및 수위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대표단원 3명에 사실상 북한의 ‘2인자’ 자리를 굳힌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나 최휘 국가체육위원장이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은 한 명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킨다. 김영남이 온 마당에 최룡해까지 오면 시선이 분산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은 안 올 가능성이 높다. 백두혈통은 한 번도 방남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방문 기간이 겹치는 만큼 관련국들과의 조율도 필요한 상황이다. 김영남은 개회식에 앞서 열리는 공식 리셉션에 참석해 자연스럽게 미국, 일본 등의 대표단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평창 올림픽 기간 중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해 “커 보이지 않지만 닫아 놓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간접적으로 노력할 수는 있겠으나 직접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황인찬 hic@donga.com·홍정수·박훈상 기자}

김정은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해임되고 김정각 전 인민무력성 제1부상이 후임에 올랐다고 국가정보원이 5일 밝혔다. 이에 따라 8일 북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은 김정각 지휘 아래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이같이 보고했다고 강석호 정보위원장 등이 전했다. 국정원은 이날 회의에서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노동당 조직지도부 주도로 총정치국에 대한 검열이 진행됐다”고 재확인한 뒤 “검열 결과 황병서는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됐고 현재 고급당학교에서 사상교육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후임은 김정각”이라고 보고했다. 이어 “총정치국 제1부국장 김원홍은 해임 및 출당 처분을 받았고 부국장 염철성과 조국진은 강등 후 혁명화 교육을 받는 등 다수 간부가 해임 또는 처형됐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엔 손철주, 선전부국장에는 이두성이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총정치국장에 오른 김정각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시신을 운구한 이른바 ‘운구차 7인방’ 중 하나다. 이듬해 인민무력부장에 올랐지만 2013년 명예직 성격이 강한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에 임명돼 밀려났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2014년 12월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모습이 전해지며 복귀설이 돌았고 이번에 화려하게 재기했다. 국정원은 열병식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초부터 평양 미림비행장에서 병력 1만2000명을 동원해 열병식을 준비 중이고, 각종 미사일을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황인찬 hic@donga.com·박성진 기자}

북한에 17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지난해 6월 식물인간 상태로 돌아와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친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과 함께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9일)에 참석해 잔혹한 북한 정권의 실상 알리기에 나선다. 워싱턴포스트(WP)는 웜비어의 부친 프레드 씨가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 펜스 부통령의 손님 자격으로 참석한다고 4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펜스 부통령이 프레드 씨를 개회식에 초청한 것은 평창 올림픽을 선전장으로 활용하려는 북한에 맞서 북한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고 대북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펜스 부통령은 개회식 오전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를 탈북자들과 함께 방문해 천안함 기념관을 둘러보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미 대사관에서 우리 군 쪽으로 문의가 와서 일정을 조율 중이나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을 거쳐 8일 한국을 방문하는 펜스 부통령은 이처럼 올림픽 기간 대북 압박 캠페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펜스 부통령 보좌관은 “우리는 북한의 선전전이 올림픽의 메시지를 납치(hijack)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올림픽에서 하는 모든 일이 그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포악하고 압제적인 정권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가식이라는 점을 세계에 상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고 미 인터넷매체 액시오스가 4일 전했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황인찬 기자}

북한이 개막 나흘 앞으로 다가온 평창 겨울올림픽에 파견할 고위급 대표단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파견하기로 하면서 남북, 북-미 간 평창 외교전의 라인업이 윤곽을 드러냈다. 북한은 4일 오후 11시 40분경 예고 없이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통지문을 보냈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김 위원장을 단장으로 단원 3명, 지원인원 18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파견한다는 내용이다. 김 위원장은 헌법상 북한 행정부의 수반으로 이미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에 여러 차례 등장한 인물이다. 미국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대표단장으로 평창에 파견하기로 한 가운데 북한도 상징적인 인물인 김 위원장을 파견하면서 격(格)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맡으며 김정은 체제의 실세로 떠오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에 비해 여러 차례 국제사회와의 대화 테이블에 나섰던 김 위원장이 미국 입장에서도 대화 상대로 부담이 적을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2013년 방북한 게리 프루잇 AP통신 사장과 만나 “김정은 위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적 목표는 경제 성장”이라며 “이는 미국이 평양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을 포기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이 없어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상에 오른 적이 없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이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방한하는 것”이라며 대화 국면 전환에 제동을 걸었지만 김 위원장과는 어떤 식으로든 접촉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날 갑자기 김영남 대표 카드를 꺼낸 것은 평창 올림픽 기간 어떤 식으로든 미국과의 접촉을 이끌어 내 평창 모멘텀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도 평창 올림픽이 중요한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이번 기회를 흘려보내면 평창 이후 전개될 상황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펜스 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날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김영남을, 그것도 평창 올림픽 개막 전에 이렇게 공표한 전술적 배경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펜스 부통령이 올림픽 기간 김영남을 만날지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김영남이 온다면 펜스 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과도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북한이 급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정은이 ‘2인자’ 최룡해에게 과도하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김영남을 앞세웠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룡해에게 너무 많은 직함이 몰려, 이번엔 김영남을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김영남과 함께 올 가능성이 있는) 최휘나 태종수 등 김정은의 실세로 알려진 사람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측근의 방남을 기대했던 청와대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청와대 회동도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반 참가국과는 다른 측면이 있는 만큼 누가 (대표단장으로) 오든 만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영남이 와서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면 우리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서는 게 급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김정은의 의중을 담고 왔을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이번 방남 하이라이트는 청와대 예방이 될 것이고 여기서 상호 관심사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황인찬·홍정수 기자}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북한 선수단이 대형 인공기를 숙소 외벽에 내걸어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오전 11시쯤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머무는 강릉 선수촌 804동 15∼17층 외벽에 대형 인공기가 세로 방향으로 3개 층에 걸쳐 걸렸다. 가로세로 약 2.5m, 6m 크기다. 북한의 대형 인공기는 802동 외벽에 가로 방향으로 걸린 카자흐스탄 국기와 사이즈는 비슷하지만 세로 방향이라 눈에 잘 띈다. 북한 선수단이 머무는 804동은 선수촌 단지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지만 인공기가 설치된 지점은 선수촌 웰컴센터에서 한눈에 보인다. 북한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당시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번과 비슷한 사이즈의 대형 인공기를 숙소 외벽에 걸었다. 이전까지 북한은 국제대회에서 창문 크기의 인공기를 내걸었지만 김정은 집권 후 스포츠를 통한 체제 선전을 위해 대형 인공기를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관계자는 “평상시 인공기 게양은 불가능하지만 올림픽 기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규정에 따라 예외적으로 게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단 숙소가 있는 801동에는 태극기가 아닌 13개 층을 뒤덮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 현수막에는 선수단 로고와 함께 ‘대한민국은 당신이 흘린 땀을 기억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조직위에 따르면 각국 선수단이 숙소에 내거는 국기 사이즈 등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다. 다만 조직위원회에서는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에 선수촌 창틀의 사이즈를 미리 알려줘 그에 맞는 국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패럴림픽도 남북 공동 입장한편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이날 “남북이 패럴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에 공동 입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이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PC는 북한 장애인 노르딕스키 선수 마유철(27)과 김정현(18)에게 두 장의 와일드카드를 제공한다고 밝혔다.강릉=김배중 wanted@donga.com / 황인찬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서울과 강릉에서 열리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특별공연의 온라인 티켓 신청자 수가 오픈 6시간 만에 1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터파크티켓은 2일 오후 6시 기준 집계 결과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리는 8일 공연에 2만5032명이 응모했다고 밝혔다. 11일 서울국립극장 공연엔 7만3928명이 몰렸다. 강릉 공연은 280명, 서울은 250명을 추첨해 각각 2장씩 관람권을 무료로 준다. 서울 공연은 티켓 오픈 6시간 만에 경쟁률 295 대 1을 넘은 셈이다. 신청은 1인 한 번만 가능하다. 티켓 응모는 3일 낮 12시까지다. 당첨자 명단은 6일 오전 인터파크티켓에 공지되고 당첨 문자도 발송된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문모 씨는 “장인어른이 보고 싶어 하셔서 가족들을 총동원해 신청을 했다. 당첨되면 로또 맞은 기분일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북측은 2일 밤 보낸 통지문에서 “구체적 공연 내용은 추후 알려 줄 것”이라며 “공연에 남측 노래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 왔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검은 털모자에 남자는 검은색, 여자는 자주색 코트를 입고 가슴에 인공기 배지를 단 북한 선수단은 말이 없었다. 쏟아지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준비된 버스에 오른 뒤에는 창밖을 내다보며 미소로 화답했다. 손을 흔들며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1일 오후 6시 10분경 강원 양양국제공항에 전세기편으로 도착한 북한선수단 본진은 32명. 선수단장인 원길우 체육성 부상과 스키 빙상 선수 10명, 임원 등이 포함됐다. 도착 1시간 만인 오후 7시 10분경 원 단장이 김기홍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차장의 안내를 받으며 입국장으로 나왔다. 피겨스케이팅 페어에 출전하는 렴대옥은 버스 창문을 통해 취재진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북한 임원 중에는 비디오카메라 등을 들어 기자로 보이는 인사들도 있었다. 이들은 5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곧바로 강릉선수촌으로 이동해 입촌했다. 북한 임원 3명이 선수촌에 입촌할 때 액체류를 반입하려다가 제지당하자 항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물이나 술 등은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다. 보안요원들이 일단 해당 물품을 맡아 검사한 뒤 이상이 없으면 돌려주기로 했다. 북한 선수들은 선수촌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식사를 했다. 메뉴를 꼼꼼히 살피던 렴대옥은 고기류는 거의 고르지 않았고 버섯과 샐러드, 요구르트 등 채식 위주로 식사를 마쳤다. “고기는 전혀 먹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원래 고기는 잘 안 먹습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체중 조절을 하고 있느냐”고 재차 묻자 “예”라고 짧게 답했다. 평창 올림픽 출전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다 좋습니다. 한민족끼리 같이 경기에 나오니까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원 단장은 역도 선수 출신이다. 올해 남북 고위급 회담과 평창 올림픽 참가 관련 남북 실무회담에서 북한 대표로 나왔다. 선수 10명은 알파인 스키 3명, 크로스컨트리 스키 3명, 피겨스케이팅 페어 2명, 쇼트트랙 2명 등으로 구성됐다. 원 단장과 선수들 외에도 코치 3명과 지원인력 18명이 선수단 본진에 포함됐다. 지난달 25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위해 15명이 들어오는 등 두 차례에 걸쳐 들어온 북한 인원은 47명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북한선수단의 규모를 선수 22명, 임원 24명 등 모두 46명으로 승인했으나 실제 인원은 1명이 늘어났다. 원 단장이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1일부터 이틀간 북한 마식령스키장에서 진행된 남북 스키 공동훈련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1일엔 서로 자유롭게 스키를 탔고, 1일 오전에는 알파인스키 친선경기 및 크로스컨트리 공동훈련을 진행했다. 북한 알파인스키 리진명은 1박 2일 일정으로 남한 선수들과 훈련한 소감을 묻자 “한겨레 한 언어가 닿아 있는 경기에서 함께해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북한 알파인스키 김청송 선수는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남측 선수들과 세계 패권을 함께 쥐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남한 취재진이 ‘평창 올림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마디 말해 달라’고 묻자 북측 알파인스키 김유정 선수는 “아직 올림픽에 누가 나가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남한 선수들도 공동훈련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크로스컨트리 김선민(단국대 2년)은 “북한 선수들이 먼저 앞장서서 코스로 올라가면서 설명해주고, 같이 내려오면서 이야기도 하고 다른 선수들과도 얘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남영 대한스키협회 부회장은 “스키장 코스와 설질이 좋았다. 앞으로 훈련이 계속된다면 남북 선수들 모두 기록이 향상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남북 선수들은 오후 2시 30분에 마식령스키장을 떠났다. 35분 거리의 갈마비행장까지 가는 길은 한산했다. 갈마비행장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같은 아시아나항공 OZ1368편 비행기에 탑승했다. 한편 마식령스키장에서는 인기 스노모빌 브랜드인 캐나다산 ‘스키두(Ski-Doo)’의 모빌 4대가 눈에 띄었다. 스노모빌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3년 북한 유입을 금지한 사치품이다. 북한 선수들은 “(자신들이 입은) ‘골드윈’ 경기복은 60만 원, ‘레키(LEKI)’ 스키폴은 20만∼30만 원대”라며 “모두 조국에서 사줬다”고 설명했다. 골드윈 제품이 남한 골드윈코리아의 제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마식령·강릉=강홍구 windup@donga.com·김배중·황인찬 기자·공동취재단}

현송월이 다시 온다. 강릉아트센터와 서울 국립극장 공연을 위해서 6일 두 번째로 방한한다. 지난번 방문은 떠들썩했다. 정작 현송월은 별말 안 했는데 우리 사회는 시끄러웠다. “북한의 선전전에 홀렸다”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현송월의 일거수일투족에 묻혔다. 이번엔 140여 명의 삼지연관현악단원도 같이 온다. 지난 방문보다 훨씬 시끄러울 듯하다. 현송월에게 저번 방남 때 제비집 게살 수프, 어향소스 가지 새우 등 10만 원이 훌쩍 넘는 호텔 코스 요리를 대접했던 정부가 갑자기 김치찌개나 비빔밥을 내밀 수는 없을 것이다. 현송월을 비롯해 한국에 오는 북한 인사들의 밥값 등 체류 비용은 모두 남북협력기금에서 집행된다. 남북한 주민 왕래, 교역 및 경제 협력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1990년 남북협력기금법이 제정됐고 이듬해 기금이 조성됐다. 정부 출연금, 기금 운용 수익 등으로 마련된 올해 사용 가능한 기금은 9624억 원이나 된다. 방남한 북측 인사에게 기금이 투입되는 것에 법적 문제는 없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냉담하다. 김정은 신년사 이후 한 달 동안 남북 교류가 어느새 일상처럼 됐지만 북한이 우리에게 보여준 태도엔 여전히 진정성과 성실함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송월의 방문 취소에 이어 금강산 합동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도 사과는커녕 해명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의 기금 집행 방식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도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는 “평창 교류에 남북협력기금이 투입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정작 기금 집행 결정을 위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지 않았다. 우선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확보한 평창 예산에서 결제하고 나중에 교추협을 열어 기금을 확정해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둘 다 정부 돈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용카드 쓰듯 먼저 쓰고, 사후 정산하는 식이다 보니 현송월의 지난 1박 2일 방남에 정부 예산을 얼마 썼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아직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평창 올림픽 기간 중이나 폐막 후에나 정산할 예정이다. 총액은 그때 가서야 나온다. 남북 교류 명목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기금이 들어갈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식은 기금 운영의 타당성을 제대로 따져볼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북한이 평창행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한 후 한 번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고사하고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성의를 보이지 않았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피로감이 쌓여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치레를 하라는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눈치를 봐가면서 북핵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평창 모멘텀을 만들려고 하는데, 김정은은 모른 척하고 있다는 데 대한 서운함과 회의감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은 문 대통령이 차려 놓은 ‘평창 밥상’을 지금까지 잘 먹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밥값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개막을 코앞에 둔 평창 모멘텀은 지금부터 본격화된다. 북한이 지금이라도 돌연 행사 취소 같은 몽니 부리기를 그만두고 도발 중단 가능성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야 현송월 밥값에 쓰인 남북협력기금을 둘러싼 논란도 잦아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라고 손님맞이에 쓴 돈 갖고 왈가왈부하고 싶겠는가. 황인찬 정치부 차장 hic@donga.com}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 이벤트로 다음 달 4일 열기로 했던 금강산 합동 문화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통일부는 30일 낮 12시 40분경 북측에 통지문을 보내 “우리 언론 보도 등을 문제 삼아 예정되었던 금강산지역 남북 합동 문화행사를 취소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또 남북 모두 상호 존중과 이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합의사항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점과 합의된 모든 행사들이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북한은 전날 오후 10시 10분경 남측 언론의 대북 보도 태도를 문제 삼으며 돌연 금강산 공연 취소를 통보한 이후 우리 정부에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일 현송월의 방남을 돌연 취소한 후에도 아무 설명이 없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일방 취소 결정에도 31일부터 1박 2일간 강원 원산 마식령스키장에서 남북 스키선수 합동 훈련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30일 오후 늦게까지도 이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추가 취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금강산 공연을 취소하고 마식령 훈련까지 최종 확답을 하지 않자 정부 안팎에서도 “우리가 북한에 너무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북측 선수단과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까지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지만 북한의 ‘갑질’과 이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우리 정부를 주변국들이 어떻게 볼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그냥 확 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북한은 참 어려운 상대다.” 북한이 금강산 문화공연 엿새 전인 29일 밤 공연 취소를 일방 통보하자 정부 관계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19일 현송월 방문 취소 땐 ‘중단’이라고 해 여지를 남겼지만 이번엔 아예 ‘취소’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도 “일정상 올림픽 개막 전 금강산 공연이 힘들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금강산 공연 취소가 다른 올림픽 관련 이벤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북측에 “합의한 사항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며 원칙론 수준의 촉구만 했다. 북한 선수단, 고위급 대표단 구성에 영향을 미쳐 올림픽 계기로 마련된 대화 기조가 깨질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 정부 “北, 금강산 공연 선발대 방북 직전 취소” 북한은 29일 오후 10시 10분경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명의 통지문을 통해 다음 달 4일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인 합동문화 공연의 취소를 통보하며 한국 언론 탓을 했다. 통지문에서 “남측 언론들이 평창 올림픽과 관련하여 북한이 취하고 있는 진정 어린 조치들을 모독하는 여론을 계속 확산시키고 있는 가운데, 북한 내부의 경축행사(건군절 열병식)까지 시비해 나선 만큼 합의된 행사를 취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 하지만 우리 언론의 북한 비판 보도와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의 우리 언론에 대한 욕설에 가까운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공연 취소 이유를 우리 언론에 돌린 것은 핑계이고 진짜 이유는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금강산 공연을 위해 북측에 경유 1만 L 반입을 추진하면서 제재 위반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공연 준비는 비교적 순조로웠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동아일보에 “경유 반입에 대해선 미국에 특수한 상황(공연을 위한 발전기용)을 설명했고, 쓰다 남은 경유도 가져오겠다고 했다. 미국도 부정적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금강산 공연과 관련해 별다른 불만을 내비치지 않다가 당초 30일로 예정됐던 선발대 방북 하루 전 돌연 취소를 통보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공연 준비가 덜 돼 있다” “케이팝 등 공연 내용이 문제였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는 얼마든지 남북이 조율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때문에 북한의 돌연 취소 통보는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판을 흔들겠다는 전략전술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김정은은 신년사 후 한 달 가까이 공개 군사 행보를 자제하면서 남북 교류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미국은 남북 대화는 지지하면서도 “비핵화 없이 북-미 대화는 없다”며 북-미 대화와 관련된 입장에서 큰 변화가 없다고 재확인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한미를 동시에 겨냥해 상황 변화를 노렸다는 것. 북한은 현송월 방문 취소에 이어 금강산 공연 취소도 미 워싱턴 관공서가 하루 일정을 시작하는 오전 8시 이후(한국 시간 오후 10시 이후)에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을 지켜보며 남은 기간 평창에 고위급 대표단을 누굴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 취할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마식령 합동훈련도 영향 불가피 금강산 공연 취소는 마식령 이벤트에도 영향을 줄 듯하다. 이르면 31일부터 1박 2일 동안 강원 원산 마식령스키장에서 진행되는 훈련에는 우리 측 선수단 31명이 참가해 북측 선수들과 친선경기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통일부 당국자는 30일 마식령 훈련과 관련해 “우리가 (북측에) 방문하거나 방남할 때 출입경 절차에 필요한 것들이 아직 마무리가 안됐다”며 “(일정 확정이) 30일 중 어려울 확률이 많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북측이 마식령 훈련을 놓고서도 어깃장을 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강산 공연과 마식령 훈련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밝혔던 ‘평창 평화올림픽 5대 구상’ 중 핵심이어서 북측이 모두 취소할 경우 우리 정부에도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황인찬 hic@donga.com·홍정수 기자}
북한이 다음 달 4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한 합동 문화공연의 취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통일부는 29일 “오늘 오후 10시 10분경 남북 고위급회담 북측 단장 명의 통지문을 통해 2월 4일 금강산에서 진행하기로 합의했던 남북 합동 문화공연을 취소한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남측 언론들이 평창 올림픽과 관련하여 북한이 취하고 있는 진정 어린 조치들을 모독하는 여론을 계속 확산시키고 있는 가운데, 북한 내부의 경축행사(건군절 열병식)까지 시비해 나선 만큼 합의된 행사를 취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의 일방적 통보로 남북이 합의한 행사가 개최되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어렵게 남북관계 개선에 첫발을 뗀 상황에서 남과 북 모두 상호 존중과 이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합의한 사항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으로부터 공연 취소와 관련해 사전에 어떤 언질도, 취소 사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19일 오전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이끄는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보내겠다고 통보했다가 11시간 뒤 돌연 ‘중지’ 결정을 내렸고, 이튿날 오후 다시 “보내겠다”고 제멋대로 통보하기도 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