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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비구니 군승(軍僧)이 탄생했다. 대한불교조계종 군종 특별교구장인 정우 스님은 10일 “국방부가 지난해 7월 군종병과를 여성에게도 개방하기로 결정한 뒤 비구니 군승의 임관을 준비해 왔다”며 “7월 1일 비구니 스님을 포함한 군승 12명이 임관한다”고 밝혔다. 비구니 군승은 1968년 군승 제도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가톨릭과 개신교, 원불교 등 다른 종교를 망라해도 여성 성직자의 군 파견은 최초의 일이다. 비구니 군승 1호가 된 명법 스님(34)을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원광사에서 만났다. “줄탁동시((초+ㅐ,줄)啄同時), 병아리가 알에서 나올 때 어미닭과 병아리가 동시에 알을 쫀다고 하잖아요. 정말 그랬어요. 제가 군 포교에 대한 뜻을 세웠을 때 은사인 석산 스님도 똑같은 생각을 하셨어요.” 19세 때인 1999년 출가한 스님은 2006년 비구니계를 받은 뒤 동학사 승가대 등에서 수행과 공부에 전념하다 지난해 2월 동국대 불교학부를 졸업했다. 비구니로 군승에 지원하려면 35세 미만으로 비구니계를 받고 4년제 대학도 졸업해야 한다. 명법 스님은 8주간 부산 군수사령부 제2보급단 군법당인 금련사에서 설법과 상담, 심리학 등 군종 교육을 받았고, 4월 22일 충북 괴산에 있는 군사학교에 입소한다. 9주 동안 다양한 군사 훈련과 장교로서의 소양 교육을 받은 뒤 7월 1일 중위로 임관한다. 군대에 대한 예비지식이 있냐고 물었더니 스님이 소녀처럼 웃으며 대꾸했다. “절에서도 비구 스님들이 모이기만 하면 군대 얘기를 꺼내요. 이번에 다른 군승 후보들이 화생방은 독하고, 행군은 말 그대로 지옥행군이라며 겁을 주더군요. 그래요, 그럼 ‘내가 군대 갔다 와서 다시 얘기합시다’ 하고 한마디 했죠.” 이어 스님은 “군대에 금녀(禁女)의 벽, 없잖아요? 그러니 유리천장을 깼다거나 남녀평등을 실천하고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스님은 사찰이 아닌 군을 포교 공간으로 선택한 이유도 당차게 밝혔다. “군종교구와 상의하겠지만 육해공군 중 육군으로 가고 싶어요. 전방에 가면 법사(군승)가 부족해 빈 법당도 적지 않다고 해요. 전방, 후방 가릴 것 없이 부처님 법을 전하고 싶어요.”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스님은 여고 때 생사(生死)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 출가를 결심했다. “남들이 입시에 매달릴 때 전 삶의 근원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집안도 독실한 불교 집안이라 출가할 때 어려움은 없었어요. 무엇보다 출가 이후 더 많은 공부와 삶의 기회를 준 은사 스님께 감사해요.” 스님이 꿈꾸는 것은 누이 같은 군승상이다. “무엇보다 고민이 많을 병사들에게 누이의 모습으로 다가가 대화하면서 도움을 주고 싶어요.” 명법 스님은 체력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체력단련에는 절이 최고예요. 매일 1000배와 팔굽혀 펴기를 하며 기본 체력을 다져왔어요. 모범적인 군 생활과 수행으로 30년 이상 군승으로 활동하고 싶어요.”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10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충북 음성의 꽃동네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곳에서 생활하는 신부와 수녀, 수사, 수용인과 자원봉사자들은 한목소리로 기뻐했다. 마을 입구에 걸려 있는 ‘환영 오웅진 신부 교황성하 알현’이라는 플래카드는 이번 방문 소식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현재 꽃동네는 교황 방문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차분하게 교황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꽃동네의 한 관계자는 “올 2월 로마 교황청의 관계자들이 드러나지 않게 서울과 대전을 방문하고 꽃동네에도 왔다 갔다”며 “당시만 해도 교황께서 꽃동네를 찾으실지 확실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방문이 결정돼 큰 영광”이라고 밝혔다. 20년째 꽃동네에서 살고 있는 이재석 씨(59)는 교황 방문 소식에 “정말 영광이다. 내 평생에 언제 교황을 뵐 수 있겠느냐”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교황께서 이곳을 직접 둘러보신 뒤 꽃동네의 정신이 세계 곳곳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원봉사자인 이은혜 씨(26·여)도 “교황이 계신 곳은 한국과는 너무 먼 곳인데 이번에 한국에 오시고, 꽃동네까지 방문하신다니 정말 기쁘다”며 “8월에는 가족들과 이곳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만나 뵙고 싶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의 일정 동안 한국 가톨릭 교구들의 다양한 방문 요청에도 불구하고 방문지 중 하나로 꽃동네를 선택한 것은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교황이 되기 전인 지난해 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꽃동네의 아르헨티나 분원 설립을 요청했다. 꽃동네에서 운영하는 ‘행동하는 사랑학교’에 참가한 아르헨티나 신자가 고국으로 돌아가 꽃동네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한 것이 계기가 됐다. 1976년 설립된 꽃동네에는 수도자와 봉사자 등 800여 명이 상주하면서 4000여 명을 돌보고 있고, 세계 10개 나라에 분원을 두고 있는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 당시 꽃동네 측도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지만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되면서 무산됐다. 꽃동네의 아르헨티나 진출은 무산됐지만 지난해 8월 교황이 꽃동네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를 로마 바티칸으로 초청하면서 인연의 끈이 다시 이어졌다. 방문 당시 오 신부는 교황에게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란 꽃동네 표어가 새겨진 도자기와 꽃동네에서 생활하는 전신마비 환자가 입으로 그린 교황의 초상화, 묵주를 선물했다. 오 신부가 이어 교황 방한과 꽃동네 방문을 요청하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한국은 사제 없이 평신도들이 열정을 갖고 교회를 이룬 나라이기 때문에 특별히 사랑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편 천주교 청주교구와 대전교구는 11일 각각 청주교구청과 대전 대철회관에서 교황의 한국 방문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음성=장기우 straw825@donga.com / 박훈상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공식 확정됐다. 교황청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0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천주교회의 요청으로 대전교구에서 치러지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차 8월 14∼18일 한국을 찾는다”고 밝혔다. 교황은 방한 기간에 청주교구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행려인 공동체인 충북 음성 꽃동네도 방문할 계획이다. 교황의 방한은 1989년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한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25년 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의 방한 기간 중 청년대회에 참석한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대한 시복시성식과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도 집전할 계획이다. 방한 첫날인 14일에는 청와대를 방문해 박 대통령을 만난다. 주교회의는 교황이 꽃동네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 “지난해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줄곧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나누려고 노력해 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교계는 이번 시복시성식이 1984년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103위 시성식 이후 꼭 30년 만에 맞는 큰 경사라며 크게 환영하고 있다. 또 미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기원한다는 점에서 향후 교계는 물론 남북한 화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주교회의는 “교황의 사목방문 주제는 ‘일어나 비추어라’(이사야서 60장 1절)”라며 “한반도 평화와 순교자들의 시복, 미래를 상징하는 청년들에 대한 축하와 기원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고 밝혔다. 염수정 추기경은 이날 발표한 환영 메시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아시아 전체에 주님의 평화를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교계는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으며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가 위원장, 조규만 서울대교구 보좌주교가 집행위원장을 맡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사진)은 6일 사순절(四旬節) 메시지에서 “주님의 수난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이웃에 대한 적극적인 자선과 희생을 실천하자”고 말했다. 사순절은 예수 부활 대축일(부활절) 전 40일 기간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되새기는 교회력 절기다.}

“카르멘, 하비에르, 몬세, 페드로, 쿠키, 마기, 테레, 로시타, 가브리엘, 안나, 알바로, 페페와 페파, 파블로, 토마스, 롤리타, 라파엘.” 지난달 28일 만난 스페인 청년 후암피 포스티고(한국명 서지환·20) 씨는 손가락을 연신 꼽으며 이름들을 읊조렸다. 그의 입에서 속사포처럼 튀어나온 것은 그의 형제자매들의 이름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그는 18남매 중 5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자리는 페드로와 쿠키 사이다. 하비에르와 몬세는 태어나자마자 숨졌고, 누나 카르멘은 2012년 심장병 수술 뒤 하늘나라로 갔다. 하지만 후암피 씨는 가족에서 이들의 이름을 빼지 않았다. 생존해 있는 형제자매 기준으로는 페드로에 이어 둘째다.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하비에르와 몬세를 위해 언제나 기도해왔다. 카르멘의 죽음이 큰 슬픔이었지만 어린 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가족 모두 힘을 내고 있다.” 아시아에 관심이 많던 차에 2012년 가톨릭 단체 ‘오푸스데이(Opus Dei·라틴어로 하느님의 사업이란 뜻)’ 후원으로 한국에 온 그는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운 뒤 올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의 아버지 호세 마리아 포스티고 씨(54)와 어머니 로사 씨(49)는 아이는 신의 축복이라고 여겨 대가족을 이뤘다. 1990년생인 카르멘부터 10번째 가브리엘까지 연년생이고, 이후 형제들은 1∼3년 차의 터울이 있다. 아버지의 형제자매 역시 14명, 어머니 쪽은 16명으로 후암피 씨의 친가와 외가 모두 대가족이다. 스페인 언론과 영국 채널4는 포스티고 일가를 ‘세계 최대의 대가족(The biggest family in the world)’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놀라움과 궁금증 때문에 “미안하지만 모두 엄마, 아빠가 같냐”고 물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요. 막내 라파엘(4)이 자기만 동생이 없다고 투정을 부려 고민하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육류 컨설턴트인 아버지와 이벤트 전문가인 어머니는 대가족을 꾸리면서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평일 저녁에는 가족과 식사하고 TV 시청하지 않기, 나이가 많은 형제가 동생의 공부와 일상생활을 책임지기, 가사 일은 철저하게 나누기…. 가족이 많아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사춘기에 친구와 사귀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유쾌한 스페인 청년은 “우리는 비싼 음식을 먹지 않았고, 닌텐도 같은 게임기는 없었지만 집에 오면 항상 즐거웠다”면서 “많은 형제자매가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후암피 씨도 가능한 한 많은 자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계속되는 임신과 출산 때문에 때로 힘들어했지만 항상 ‘내가 대가족 사이에서 자라면서 얻은 행복했던 기억을 너희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나도 동생을 돌보면서 미리 부모가 되는 교육을 받은 것 같다.” 그의 휴대전화번호 뒷자리는 부모의 결혼기념일 숫자다. 7월 15일 결혼 25주년을 맞는 부모에게 짧은 편지를 미리 썼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님을 미쳤다고 하거나 우리를 희한한 가족으로 여기지만, 전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25년간 헌신적인 사랑과 미소, 특히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을 물려줬습니다. …형제라는 큰 선물을 주고, 제가 선택한 인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이따금 만나는 개신교 목회자들의 큰 불만은 개신교의 공은 축소되고, 과는 과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개신교 소식을 전하는 매체들을 잠깐 살펴봐도 사건, 사고를 다루는 신문의 사회면으로 착각할 뉴스가 많다. 돈 문제로 재판받고 있는 대형 교회의 목사들을 둘러싼 추문,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다툼으로 두 쪽이 난 교회, 사유재산처럼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진 교회 세습…. 최근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주도적으로 유치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A)의 한국 개최가 무산됐다.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쳤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심지어 연합예배라는 이름이 붙은 부활절 예배마저 나눠 치를 예정이다. 그럼에도 주요 교단장 선거는 치열하게 치러지고, 선거 뒤에는 금권선거 시비와 결과에 불복하는 소송이 꼬리를 문다. 교회 밖 선거판과 다를 게 없다. 다른 한편에서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모습들이 있다. 남미 출신 최초의 교황에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 행보다. 그는 아직도 콘클라베 당시 추기경들이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 산타 마르타에 머물고 있다. 지난달 22일 추기경 서임식을 전후해 이곳에 묵었던 한 신부의 말이다. “숙소라는 게 정말 보잘것없다. 화장실을 합쳐도 13.22m²에 불과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손님을 맞기 위해 다만 두 방을 터서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역대 교황들은 성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교황궁에서 생활했다. 12개가 넘는 방에 테라스를 갖춘 곳이다. 그의 교황궁 ‘입주 거부’는 그 자체가 교회 개혁을 향한 강한 메시지가 되고 있다. 4일 명동대성당에서 치러진 염수정 추기경의 서임 축하미사는 관례적인 축하연 없이 신자들에게 차를 나눠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사제 대표인 한 신부는 축사에서 신학교 사무처장이던 시절의 염 추기경의 말을 전했다. “두루마리 화장지 한 칸이 몇 cm인지 아느냐? 11cm인데 아껴 써야 한다.” 개신교는 중세에 부패가 만연한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시대가 달라져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몫은 대부분 목회자들의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동쪽으로 기운 나무는 동쪽으로 쓰러진다고 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20대 초반 나는 초저녁 지방의 변두리 거리에서 한 여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지옥에나 가버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면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있는 순간이었나 보다. 그녀는 나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면전에 두고 그렇게 험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순간엔 아마 나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놓은 채 피식 웃었던 것 같다. “그래. 그러지 뭐.” 등을 돌려 그녀를 둔 채 모퉁이를 돌아 뚜벅뚜벅 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 순간이 잊혀지질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말이 떠나지 않는다. “지옥에나 가버려!”라는 말은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머릿속에서 어두운 행성처럼 돌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면 꼭 사과를 받아야겠어. 다른 건 몰라도 지옥이라는 단어는 좀 취소해 달라고 말이야.” 이번엔 물리학을 공부하는 다른 친구에게 이렇게 투덜거렸더니 그는 내게 이렇게 조언했다. “음, 분명 그녀는 자네에게 상심을 주려고 했던 말이니 완전히 취소한다면 의미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 그쪽에서 그 말을 완전히 취소하긴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마음이 좀 아물었다면 지옥이라는 단어 대신에 다른 걸로 바꾸어 줄 순 없는지 물어보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아. 예를 들어 똥통이랄지, 새집이랄지, 변기통이랄지, 뭐 빠지게 되면 기분이 별로인 곳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 친구의 말 역시 별 도움이 안됐다. 그녀와 나는 소위 사귀는 관계가 아니었다. 당시 나는 몇 개월 후 군 입대를 앞둔 채 웨스턴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몇 개월 정도 먼저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보라색으로 머리를 염색했고, 나는 탈색한 노랑머리였다. 나는 늘 오후 5시에서 5시 10분 사이에 가게에 나왔고, 그녀는 늘 5시 10분에서 20분 사이에 출근했다. 항상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우리는 함께 부엌에서 저녁을 먹었고, 함께 양치질을 한 후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그녀는 늘 새벽 2시에 퇴근했고 나는 늘 새벽 5시에 마감을 하고 퇴근을 했다. 우리는 항상 새벽 6시에 24시간 음악다방에서 다시 만나 손을 꼭 잡고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다. 나는 하이네켄을 마셨고 그녀는 잭콕을 마셨다. 그러곤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자고 오후 6시에 가게로 다시 나와 바 구석에서 손을 잡았다. 몇 달째 이 일을 반복했을 뿐이다. 그리고 입대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저녁, 나는 홀로 지옥에 가게 된 것이다. 수많은 짝사랑을 경험했던 친구의 조언은 꽤 흥미로웠던 것 같다. “네가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있어.” “그래? 그게 뭔데?” “다음에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사실 그때 지옥이라도 함께 가자!’ 이렇게 말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해.” “지금 와서 그 말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적어도 널 좋아했던 마음의 지옥으로부터 그녀가 떠날 수는 있겠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언젠가 그녀를 다시 만나면 그녀를 지옥으로부터 구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이 내가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길이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길일 테니까. 누군가에게 ‘지옥에나 가버려!’라는 말은 참 오래가니 조심해야 한다.김경주(시인)}

“다른 누구도 아닌 목회자들이 흙탕물을 만들고 있다. 샘물이 계속 솟아야 혼탁해진 연못을 맑게 할 수 있다.” 종교 간 대화와 교회 갱신에 헌신해온 개신교 원로 손인웅 목사(72)의 쓴소리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사랑의교회 등 대형교회 목회자를 둘러싼 소송과 세속화 논란, 이름과는 달리 연합으로 치러지지 못하는 부활절 연합예배(4월 20일) 등 현재 진행형인 개신교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다. 2012년 서울 성북구 덕수교회 담임 목사직에서 물러나 원로 목사로 있는 그는 현재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위원장과 한국교회희망봉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가 찾은 샘물은 무엇일까? “교계에 오래된 명제가 하나 있다. ‘교리는 교회를 나누고, 봉사는 교회를 하나 되게 한다’는 말이다. 한국 교회의 화두는 더 이상 신자를 늘리고, 건물을 신축하는 외적 성장이 될 수 없다. 사회봉사라는 최상의 가치에 ‘올인(다걸기)’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와 사회 사이에 생긴 벽을 넘을 수 있고, 모두 건강해질 수 있다.” 실제 2007년 개신교계는 서해안 태안 앞바다에 기름 유출사고가 터졌을 때 범교단 차원으로 움직였다. 손 목사는 “당시 교단이 어디냐에 관계없이 목회자와 평신자가 기름을 뒤집어쓴 채 복구에 매달리며 땀과 눈물을 함께 흘렸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교회의 세속화와 자리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교단의 모습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부끄럽지만 온갖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세상과 교회의 모습이 다를 게 없다. 교회는 사회와는 다른 영성(靈性), 거룩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뭣 하러 교회를 찾겠나?” 그는 영성에 대한 좁은 이해도 아쉽다고 했다. “영성은 새벽기도나 거리전도와 같은 모습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 훌륭한 교인이 사회 밖에서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야 한다.” 손 목사는 13일 한국교회희망봉사단 이사장 자격으로 미래목회포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와 함께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 회견은 한때 아름다운 미덕으로 자리 잡았던 부활절 연합예배 전통이 무너지고, 교회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반성과 함께 대안을 찾기 위한 자리였다. “그동안 노력했지만 부활절 예배가 한곳에서 치러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리스도는 한 분인데 교회도 나뉘고, 연합예배마저 이런 지경이라 할 말이 없다. 2006년까지 활동한 교단장 협의회를 부활시켜 개신교단 전체 의사를 모으고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하겠다.” 손 목사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 교회에 희망 있느냐’고 물으면 그래도 ‘희망 있다’고 답변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지난해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참석을 위해 방한한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한국 교회의 역동성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어느 나라 신자들보다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헌금한다는 것이다. 이 에너지가 사회 속으로 전달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T’은 몸과 마음을 합친 말입니다. 매주 한 번 종교 현장에서 만나는 종교인에 얽힌 사연과 화제를 소개합니다. T길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사연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서울 조계사 근처에 승소(僧笑)라는 음식점이 있다. 이곳은 조계사가 운영하는 곳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미역옹심이를 판다. 스님들이 국수나 냉면 같은 밀가루 음식을 유별나게 좋아한다는 것은 소문난 사실이다. 그래서 절집에서는 국수를 승소면(僧笑麵)이라고 부른다. 스님들이 국수를 보면 저절로 방긋방긋 웃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오죽하면 밀가루로 쑨 풀이 발라져 있는 문풍지를 보고도 침을 꿀꺽 삼킨다는 말이 나올까. 25일 무소유의 삶으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 4주기 추모법회에 다녀왔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법회에 모인 추모객이나 스님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조계종에서 주요 소임을 맡은 스님들도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 행사를 준비한 길상사와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는 청빈의 삶을 살다간 스님의 뜻을 기려 조촐하게 치른다고 밝혔지만 아쉬웠다. 차분하게 진행된 이날 법회에서 예전처럼 등장한 것은 스님 영정 앞의 간장국수. 잔치국수지만 자극적인 향신료 없이 간장으로 간을 맞춰 이렇게 불린다. 스님이 생전 워낙 좋아했던 음식이라 매년 추모법회 때마다 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절집 음식답게 버섯과 다시마로 국물을 연하게 내고 간장으로만 간을 맞췄다. 간장국수에는 송광사 불일암에서 소박한 삶을 살았던 법정 스님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평소 스님은 인사치레나 번잡한 일을 독을 보듯 싫어했다. 법흥 스님의 추모사다. “젊은 시절 법정 스님에게 다른 절에 가서 소임 맡아 같이 지내자고 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어. ‘공부하는 데 방해되게 뭐 그런 짓을 쓸데없이….’ 스님이 공부에는 무척 열심이고, 이기적이었어.(웃음)” 이기적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법정 스님은 소박한 삶을 꾸려가면서 자신에게 철저했다. 그래도 불일암에 불청객들이 들이닥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스님은 금세 간장국수를 내놨다고 한다. 열이면 열, 간장국수는 불청객들에게 별미였다는 평가다. 그들이 맛을 본 것은 국수뿐 아니라 스님 삶의 한 자락 아니었을까.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추기경 서임식에 참석한 뒤 로마에 체류 중인 염수정 추기경(사진)이 24일 북한 개성공단을 방문해 남북한 근로자들과 함께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기원하는 미사를 재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염 추기경은 이날 이탈리아 로마 한인신학원에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개성공단 방문미사를 남북한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고 추진 중이었는데 장성택 실각 이후 연기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염 추기경은 이어 “지난해 개성공단이 폐쇄됐을 때 개성공단 신자들의 부탁으로 명동성당 주교관에서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다”면서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관할지역인 개성공단을 방문해 남북한 근로자가 함께하는 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북한 선교에 대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듯하다”며 “하지만 복음의 목적은 어느 나라를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면서 평화롭게 지내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심을 묻는 질문에 염 추기경은 “교황께서 특별히 북한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셨다”며 “북한뿐 아니라 전쟁의 상흔이 남은 우리도 인간다운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평화와 화해는 교황께서 강조해온 근본적인 메시지”라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주장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했다.바티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무소유의 삶으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 입적 4주기를 맞아 25일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추모 법회가 봉행되고 있다. 이 법회는 스님들과 신도 등 700여 명이 참석했으며 법정 스님의 생전 법문 영상에서는 카랑카랑한 스님의 육성이 울려 퍼졌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추기경이란 말은 문의 ‘돌쩌귀’라는 뜻입니다. 교황님과 세상이 소통하는 연결고리가 되겠습니다.” 염수정 추기경은 서임 행사를 마친 뒤 24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AP, RAI 바티카노 등 외신 기자들도 참석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과 통일기원 미사계획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염 추기경은 교황의 8월 방한 여부에 대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다른 대륙은 다 가셨는데 아시아는 방문하지 않으셨다”며 “교황 방한이 성사되면 아시아 교회들에도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한 이산가족 문제를 추기경 회의에서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북한에도 이산의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추기경단 앞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했고, 회의 후 많은 추기경이 관심을 보였다.” ―한국 교회는 강하고 젊다. 선교사를 받다가 이제는 보내는 교회가 됐는데 개선할 점은 무엇인가. “과거 역사를 보면 한국에 파견돼 일생을 살다 뼈를 묻거나 순교한 분들이 계신다. ‘그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파견되는 신부님뿐만 아니라 수도자와 평신도, 그 나라 사람들이 모두 함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추기경이 된 각오는…. “과연 제가 잘할 수 있는지 깊이 묵상하게 됐다. 추기경의 붉은색 옷은 순교자의 색깔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헌신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한국 사회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은…. “김수환 정진석 추기경의 장점만을 본떠 하려고 해도 잘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 어려움이 있다면 할 이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고 싶지는 않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생각은…. “매우 열정적인 분들이다. 아낌없이 헌신하는 형제들로 사제로서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국내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교황께서 23일 바티칸 광장의 군중에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코린토 교회가 베드로파와 바오로파로 분열되었던 때를 언급하며 교회는 리드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도 자기주장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한편 기자회견에 앞서 24일 예상됐던 교황과 추기경단의 점심과 면담은 무산됐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검소한 스타일의 교황이 기존의 격식과 관례에서 벗어나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27일(한국 시간) 오후 귀국한다. 바티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홍표근 ◇한국동서발전 △상임감사위원 강요식 ◇MBC △비서실장 조창호 ▽편성국 △편성기획부장 한상규 △시청자리서치〃 강미영 ◇뉴스1 △행정정책부장 부국장 신윤석 △국제부장 부국장 윤석민 △정치부장 이영섭 △사회부장 고태성}
“나는 한국을 참 사랑합니다.” 22일 오전 11시(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신임 추기경 서임 예식. 염수정 추기경(71)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하는 칙서를 받는 순간 깜짝 놀랐다. 교황이 성호를 그어 축복한 뒤 염 추기경과 포옹하면서 큰 소리로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교황의 발언에 염 추기경도 “한국인들도 교황님을 무척 사랑합니다”라고 응답했다. 평소 한국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교황이 공식 석상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교황의 방한도 곧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도 “교황은 한국을 좋아하고, 가고 싶어 한다”며 “(방한은) 최종 결정만 남았다”고 말했다. 교계에서는 바티칸과 한국 가톨릭교회가 공동으로 3월 초 교황의 8월 방한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드레아 염수정 아르치에피스코포(대주교) 디 서울.” 추기경 서임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처럼 새 추기경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교황은 순교자의 성혈과 추기경을 상징하는 진홍색 주케토(둥근 모자)와 비레타(사각 모자)를 추기경들에게 직접 씌워 주었다. 염 추기경은 이날 서임식을 통해 김수환(1922∼2009), 정진석 추기경(83)에 이어 우리나라 세 번째 추기경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훈화를 통해 “교회는 추기경들의 수고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며 “폭력과 전쟁으로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평화를 위한 투사가 되어 주님의 길을 따라 걸어가자”고 말했다. 이날 성베드로 성당은 세계 각국의 추기경들이 대부분 참석하면서 추기경의 복장 색깔인 진홍색 물결로 가득했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중계되는 서임식을 성베드로 광장에서 지켜보던 한국인 순례객 500여 명은 염 추기경의 이름이 호명되고, 주케토와 비레타를 받을 때마다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서임식에서는 염 추기경을 포함해 교황청 국무장관인 피에트로 파롤린 대주교 등 새 추기경 19명이 공식으로 임명됐다. 교황과 새로 임명된 추기경들은 23일 성베드로 성당에서 공동으로 서임 축하미사를 집전했다. 이날 미사 중 평신도들의 기도 순서에서는 로마한인성당 신자인 여고생 황재원 양이 한복을 입고 우리말로 기도해 눈길을 끌었다. 염 추기경은 축하 미사 뒤 로마 한인성당에서 열린 감사 미사 강론에서 “갈라져 있으면 서로 불신하고 배척하지만, 하나가 되면 서로 믿고 화해한다”며 “먼저 남북이 하나가 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신뢰할 수 있는 평화의 시대가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염 추기경은 21일 ‘가정의 복음화’라는 주제로 열린 추기경 회의에서 3년 4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전하며 교황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염 추기경은 “6·25전쟁으로 생겨난 이산가족 대부분이 80세를 넘겼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남과 북으로 흩어져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족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이산가족들을 위해 교황님께서 기도해 달라”고 청원했다. 24일 교황과 면담할 예정인 염 추기경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바티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2일 가톨릭 전통에 따라 거행된 추기경 서임식에 대한 궁금증을 Q&A로 풀어본다. Q. 서임식 때 염수정 추기경은 사제(司祭)급 추기경인데 일부는 부제(副祭)급 추기경이었다. 왜 다른가. A. 통상적으로 부제는 사제 서품 이전 단계인 신부를 뜻하지만, 추기경 서임식에서 언급된 사제와 부제는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로마 교구장을 겸하고 있는 교황은 전통에 따라 주교급, 사제급, 부제급 추기경을 임명한다. 교구장을 맡고 있는 추기경들은 로마 근교 성당의 ‘명의 사제’가 되며 ‘사제급 추기경’에 해당된다. 염 추기경의 명의 본당은 성 크리소고노 성당이다. 로마 교황청에서 장관 등으로 활동하는 추기경은 ‘명의 부제’로 부제급이다. 주교급은 로마 근교 7개 교구의 명의 교구장 직함을 갖게 되는 추기경이 해당된다. Q. 염 추기경이 받은 추기경 반지는 교황이 끼는 어부의 반지와 다른가. A. 다르다. 추기경 반지는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갖는 특별한 친교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반지 안쪽에는 추기경을 임명한 교황의 문장이 들어간다. Q. 서임식 중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흰색 수단을 입은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인사를 나눴다. 흰색은 교황만의 색 아닌가. A.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자진 사임 이후 교황으로서의 권한과 책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명예는 유지되고 있어 교황의 색깔인 흰색 수단을 입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좋아하는 소설을 두 번 읽고, 그 소설에 대한 비평을 쓰다가, 내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가 스물여덟 살 즈음이다.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며 조선시대 고소설부터 근대와 현대 소설을 두루 읽었던 터라, 눈은 높았지만 손은 무뎠다.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뒤늦게 해군 장교로 입대하여 경남 진해로 내려갔다.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작문과 해양문학을 강의하는 것이 내게 부여된 새로운 임무였다. 오전 7시 45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연구실에 앉아 소설 습작을 시작했다. 단편 소설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서울에 계신 양귀자 선생님께 팩스로 보냈다. 지금이라면 장편소설 원고를 파일에 담아 e메일로 간단히 띄웠겠지만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소설이 담긴 긴 팩스 용지가 혹시 엉키지나 않을까 별별 걱정이 다 들었다. 처음에 선생님은 내 습작품에 대해 구체적인 말씀이 없으셨다. “또 써 봐.” 이게 전화기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전부였다. 처음부터 빛나는 시를 쓰는 시인은 있지만, 처음부터 완성도 높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는 없다고 했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인물도 구성도 문체도 손볼 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품평 대신 침묵을 택하셨으리라. 그러나 나는 서울과는 너무 먼 남해안 작은 도시에 있었고, 반복되는 아침에 군인 정신으로 소설을 쓰는 것 외엔 마음 둘 다른 것을 찾지 못했다. 부끄러움보다 열정이 컸던 시절이었다. 반년쯤이 흘러갔다. 그사이 단편을 여섯 편쯤 썼고, 선생님께 팩스로 보냈으며, 다음 작품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단편 하나를 더 썼다. 막내 외삼촌에 관한 이야기였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경남 창원의 어느 야산에서 과수원을 했다. 그 과수원에는 앵두나무가 100여 그루 있었다. 6월이면 친척들이 과수원으로 몰려가서 주렁주렁 붉게 익은 앵두를 땄다. 아이들은 양손을 번갈아 뻗어 앵두를 한 움큼씩 쥐고 먹느라 바빴다. 서울에서 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너만의 풍경을 문장으로 옮겼으니, 작가가 될 수 있겠다. 짜증을 내며 산길을 올라가던 아이가 산마루에서 붉게 물든 앵두나무를 발견하고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달려가는 이 장면을 김탁환 아닌 누가 또 쓰겠니?” 해군사관학교 연구실에서 썼던 단편들은 단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인상적이라고 지적해주신 장면이 담긴 소설 역시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전문 작가로 나서기엔 모자라는 솜씨인데도 작가가 될 수 있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내가 읽어온 소설들로부터 영향 받은 풍경이 아닌 나 자신만의 풍경을 거기서 처음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제대한 후 소설가가 되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연구실과 아침 습작과 팩스와 선생님의 격려가 없었다면, 나는 내 재능을 의심하다가 소설을 읽고 논하는 연구자의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각종 작법서들이 출간되고 있다. 소설을 업으로 삼기에, 나 역시 글쓰기에 관한 책을 두 권 펴냈다. 나는 줄곧 글을 쓰는 테크닉보다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독자들로부터 ‘태도’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수많은 풍경 중에서 자신만의 풍경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의 문장으로 옮기고자 분투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물론 양귀자 선생님께 배운 것이다.김탁환 소설가}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한 법정 스님(사진) 입적 4주기를 맞아 추모 법회가 25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길상사 설법전에서 열린다. 이 법회는 명종 타종을 시작으로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 추모사, 문도대표스님 인사말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영상과 법문을 통해 법정 스님을 회고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사회통합운동인 ‘화쟁코리아’가 닻을 올렸다. 20일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조계사에서는 불교 종단 대표와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 선언식’을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선언문에서 “좌우, 친북·반북, 자본가·노동자, 개발론·보존론으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60여 년 전 좌우익의 갈등과 한국전쟁이 피맺힌 응어리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붓다, 예수, 원효, 간디, 만델라처럼 진실과 화해의 길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나아가자”고 밝혔다. 화쟁코리아는 원효의 화쟁(和諍·대립하거나 갈등하는 종파나 이론의 원만한 융합) 사상과 3·1 정신에 입각해 한국 사회와 한반도의 분열, 갈등을 치유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순례단은 3월 2일 한라산 백록담에서 천고제를 지낸 뒤 하루 10∼15km를 걸으며 6월 10일까지 전국 14개 광역시내 100여 개 중소도시를 순례한다. 각 도시에서는 순례를 희망하는 시민들과 함께 걷고, 문화행사와 명상 등도 진행한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이번 순례는 한반도 곳곳의 갈등과 고통의 현장을 어루만지고 원융무애의 정신으로 서로 손을 맞잡는 대장정이자 자비와 화쟁의 큰 발걸음”이라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 ▽과장급 △문화콘텐츠산업실 영상콘텐츠산업과장 김혜선 △관광국 국제관광과장 박병우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 김석호 ◇국민권익위원회 △상임위원 최학균 ◇관세청 ▽부이사관 △관세국경관리연수원장 서정일 ▽과장급 △자유무역협정협력담당관 심갑영 △대변인 안문철 △인천공항세관 수출입통관국장 윤이근 △관세청 강대집 ◇한국지역난방공사 ▽1급 △광주전남지사 김종철 △고양사업소 최윤수 ▽2급 △사업개발팀 정용우 △요금제도팀 박은숙 △네트워크관리팀 박한준 △인사교육팀 노형두 △노무복지팀 임태형 △판교지사 기계팀 이엄용 ▽3급 △예산팀 최석윤 △녹색성장팀 홍정환 △기계팀 권동욱 △동반성장팀 류시원 윤지현 △자금IR팀 김한수 △플랜트진단팀 김상수 △마포지사 공무팀 박병규 △대구지사 네트워크팀 신재천 △청주지사 기계팀 손상철 △파주지사 운영부 조원 △〃 네트워크팀 박찬현 △판교지사 운영부 강동헌 △광교지사 계전팀 윤철호 △광주전남지사 공사팀 고현일 △분당사업소 운영부 김해준 ▽처장 △기획 서태원 △경영전략 안용모 △성장동력 윤형민 △영업 권영철 △전력사업 박종선 △건설 정남일 △경영지원 탁현수 △재무 김명석 ▽단장 △광역망기획 김세호 △냉방추진 배규현 ▽연구소장 △지역난방기술 서봉경 ▽실장 △감사 김동간 ▽지사장 △마포 문재희 △강남 신상윤 △대구 양광식 △청주 박래용 △경남 오학균 △판교 강희국 △삼송 김연홍 △세종 조유철 ▽사업소장 △분당 손창일 △고양 고중호 △수원 신동진 ▽지사 운영부장 △마포2 백인엽 △강남1 노대희 △대구 양균식 △용인 정재훈 △판교 정용종 △삼송 조용신 △광교 홍성철 △세종 박병규 ▽사업소 운영부장 △분당 진광희 △고양 송철근 △수원 이덕원 ▽팀장 △비서 이기창 △정부3.0TF 이병렬 △경영전략 이홍연 △정보보안TF 조형제 △리스크관리 박준범 △광역망기획TF 민정식 △녹색성장 박창규 △해외사업 정재훈 △연료 이상대 △고객기술 이창준 △전력정책 함상훈 △전력관리 구자균 △건설〃 성기준 △제어 이상진 △네트워크공사 이장범 △냉방정책 간홍진 △냉방기술 송현규 △네트워크기술 임신영 △재무 유영근 △플랜트관리 박응규 △기후환경 신경아 △플랜트진단 김상수 △안전품질 김부헌 △통합관제 김영주 △통합운영 윤범수 △청렴감사 황만영 △감사운영 한상철 △광주전남지사 토건 김영호 △〃 기전 이명행 ▽지사 공무팀장 △강남 김재원 △경남 최형석 △용인 김유호 △세종 윤태헌 ▽지사 고객지원팀장 △강남 안덕용 △경남 정현석 △화성 정석규 △파주 이무형 △삼송 배종태 △광교 유성환 △광주전남 노규현 ▽사업소 고객지원팀장 △분당 김영우 △고양 김갑철 △수원 표병준 ▽지사 네트워크팀장 △마포 신재천 △대구 한상준 △용인 이기섭 △삼송 이창구 △광교 오준 △세종 함정호 ▽사업소 네트워크팀장 △수원 정준철 ▽지사 계전팀장 △청주 오세민 △광교 조성백 ▽사업소 계전팀장 △수원 최영복 ▽지사 기계팀장 △화성 노근호 △판교 박흔동 △삼송 권오욱 ▽사업소 기계팀장 △수원 이관배 ▽지사 안전품질팀장 △화성 임종원 △파주 구기동 ◇연세대 △보건대학원장 노재훈 △국제처장 모종린 △성평등센터소장 이미현 △백양로건설사업본부장 박진배 ◇서강대 △산학협력단장 이태수 △학생문화처장 이욱연 △총무처장 천명훈 △관리처장 이인주 △스타트업 연계전공주임 장흥순 △사학과장 박단 △생명과학과장 이규호 △경제학부학장 겸 경제대학원장 이한식 △법학부학장 겸 법학전문대학원장 이상복 △사회학과장 이재혁 △심리학전공주임 김근영 △국제지역연구소장 김재천 △미국문화전공주임 한트케 슈테펜 호르스트 △서강대-㈜엠텍비젼 산학연구소장 정옥현 ◇CBS△마케팅2팀장 권혁주 △크로스미디어전략부장 양병삼 △시사교양제작부장 이광조 △예능제작부장 김세광 △아나운서부장 최정원 △뉴스제작부장 김재덕 △사회부장 구병수 △문화체육부장 송형관 △노컷뉴스팀장 하근찬 △스마트뉴스팀장 도성해 △부산방송본부 보도제작국장 정민기 △울산〃 〃 박창호 △〃 디지털기술국장 박상대 ◇한국일보문화사업단 △대표이사 이현걸 △이사 김세형 △감사 박성규}

“스님, 회사 동료가 제게 부탁을 해서 몇 번 들어줬더니, 이제는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계속해서 자기 일을 저에게 넘기는 거예요. 스님, 이런 동료에게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 강연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여성 질문자는 마이크를 잡고 울먹이면서 이렇게 물었다. 참다못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울면서 토로한 것이다. 학교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들어와 문화적 혜택이 적은 지방 도시를 찾아 마음치유 강연과 고민 상담을 한 지 3년이다.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설령 박사학위가 몇 개 있다 해도, 책을 수천 권 읽었다고 해도 쉽게 풀 수 없는, 철저한 삶의 현장에서 나오는 고민들이다. 그래서 그분들이 나에게는 삶의 스승님들이시다. 나는 그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 성장하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로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나요?” “어, 스님 어떻게 아셨어요?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대학의 학과에 들어갔고 지금의 직장도 부모님 말씀대로 했고요.” 아,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문제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착하다는 말은요, 달리 표현하자면, 본인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르고 상대의 말에 순응해서 잘 들어준다는 의미예요. 하지만 착하다고 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이 없거나 자기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에 그 여성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유순한 편이라서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게 좋기만 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냥 착하기만 한 것은 문제가 있구나 하고 처음 느꼈다. 수업에서 그룹 과제를 내주었을 때 똑똑하고 기가 센 학생들과 함께하다 보니 모두가 기피하는 부분만 내게 계속 맡겨지곤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그냥 넘어갔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니까 점점 힘들어졌다. 이 고민을 친한 미국인 선배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이렇게 조언했다. “다른 사람보다 본인에게 먼저 착한 사람이 되세요!” 그 순간, 무언가로 뒤통수를 맞은 듯 아차 싶은 생각이 지나갔다. 나 역시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만을 염려하며 살았다. 나를 아껴준다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하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사연과 함께 그 여성에게 다시 얘기했다. “나의 호의를 너무나 당연시하는 사람을 만날 땐, 그 사람과의 경계선을 긋고 당당하게 말하셔야 해요.” 살다 보면 ‘더이상 당신 마음대로 금 넘어 오지 마!’라고 얘기해야 할 때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나를 아껴주어야 할 의무도 우리에겐 있다.혜민 스님(미국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