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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있을까. ‘그릿·Grit’(앤절라 더크워스 지음·김미정 옮김·비즈니스북스·1만6000원)의 저자인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10년간의 연구를 토대로 ‘성공=재능×노력²’이라고 제시한다. 성공은 노력의 양과 함께 좌절해도 다시 일어나려는 태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릿’은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열정적 끈기를 의미한다. 고교 때 수학 점수가 형편없던 학생이 로켓을 만드는 세계적인 공학자가 되고, 문제아들이 모인 학교에 배정된 초임 교사 중 누가 끝까지 남는지 등 여러 사례를 분석했다. 그릿을 기르려면 관심사를 분명히 하고 이를 성과로 연결시키도록 의식적으로 연습해야 한단다. 더 높은 목표 의식을 가지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한 방법도 제시한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늘 그렇듯 가장 어려운 거지만.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사진) 주문이 급증하고 있다. 출판사인 문학세계사는 수상자 발표 후 17일까지 영업일 기준으로 단 이틀 만에 책 주문량이 1만 권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2005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은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11년간 모두 8000여 권이 판매됐다 김요안 문학세계사 기획실장은 “전업 작가가 아닌 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니 딜런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그가 직접 쓴 유일한 자서전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완벽하고 싶어서’, ‘우아한 세계’는 책 내용을 알리려면 한참 설명해야 해요. 홍보에 비용이 많이 들어요. 뭘 얘기하는지 대놓고 보여줘야 해요.” 서울 마포구 사회평론 출판사에서 13일 열린 회의에서 최연순 편집이사가 다음 달 출간할 에세이의 제목 후보를 보며 입을 열었다. ‘Primates of Park Avenue’(파크 애비뉴의 영장류)가 원제인 이 책은 미국 엄마가 뉴욕 맨해튼의 최상류층이 사는 파크 애비뉴로 들어가 독특한 문화를 관찰하며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경험을 담았다. ‘판타스틱 맨해튼 백서’, ‘맨해튼 여자 보고서’, ‘맨해튼의 엄마들’도 후보에 올랐다.○ 손이 절로 가게 해야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아이를 배웅하다 왕따가 된 저자는 에르메스의 버킨백을 구하려 애쓴다. 오순아 교양1팀 편집장은 “20, 30대 여성이 주로 보고 40대로도 확산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독자층을 예상했다. 박보람 교양1팀 대리가 “하이힐, 버킨백이 제목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하자 곧바로 반대 의견이 나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정도로 완성도 높게 짓지 않는 한 하이힐, 버킨백이 들어가면 독자에게 다가가기 어려워요.”(오 편집장) “‘칙릿’ 느낌을 주는 에세이는 많이 안 팔려요.”(노희선 편집자) ‘영장류’를 넣지 말자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영장류’가 들어가면 서점에서 과학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책의 배경을 나타내는 표현도 찾기 시작했다. “센트럴 파크, 파크 애비뉴, 렉싱턴 정도? 참고로 파크 애비뉴의 우편번호는 10021이에요.”(노 편집자) 기자를 포함해 참석자들은 ‘맨해튼’, ‘상류층’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최 이사는 “‘한국이 싫어서’처럼 제목만 봐도 확 공감이 돼서 바로 집어 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제목, 판매와 직접 연결 출판계에서는 내용을 잘 드러내면서 한 번만 들어도 기억돼야 좋은 제목이라고 말한다. 눈에 띄는 제목은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켜 판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본보가 출판계 대표 10명에게 2014년부터 올해까지 출간된 책 가운데 제목이 좋은 책(3권씩)을 조사한 결과 4명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꼽았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대화와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상식을 갈망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반영했다”고 평가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도 각각 3명이 추천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남자들은…’은 저자의 메시지는 물론 뉘앙스까지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귀에 한 번에 꽂힌다”고 말했다. ‘시골 빵집…’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자본주의의 모순과 삶의 진정성을 생각하게 만들고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시를 읽지 않는 독자에게 강렬함을 준다고 분석됐다. 도발적이고 발랄한 제목으로는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가 꼽혔다. 아쉬운 제목으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풀꽃도 꽃이다’ 등이 나왔다. ‘어떻게…’는 너무 직설적으로 죽음을 표현해 수준 높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나 부모에게 선물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 ‘풀꽃도…’에 대해서는 입시 위주 교육의 병폐를 더 강하게 드러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영화 ‘부산행’이 제49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2관왕에 올랐다. 연상호 감독(38·사진)의 ‘부산행’은 15일(현지 시간) 스페인에서 열린 시체스 영화제 폐막식에서 감독상과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촬영상과 포커스 아시아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도 관객상을 받아 한국 영화들이 선전했다. 이 영화제는 벨기에 브뤼셀,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투 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로 꼽힌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오후 8시는 신문사에는 ‘잔인한’(?) 시간이다. 여러 개의 기사를 쓰기는 시간이 촉박해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들별로 각각 기사를 준비한다. 밥 딜런의 수상 소식이 알려진 13일 밤, 준비한 기사는 무용지물이 됐고 부서는 ‘불난 호떡집’이 됐다. 다행인 건 가요 담당 기자가 대기하고 있었다는 것. 노벨상 예측 사이트에 딜런이 당일 10위 안으로 껑충 뛰어오르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은 것이다. 발표 전 몇몇 기자는 수상자 맞히기 내기를 했다. 응구기 와 시옹오가 2표, 무라카미 하루키와 아도니스가 각각 1표였다. 가요 담당기자는 놀랍게도 “밥 딜런”을 외쳤다. 한데 “너무 확률 낮은 데 거는 거 아냐?”라는 한마디에 돈 들릴로로 급선회하고 말았으니…. 문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가장 높다는 ‘10월 둘째 주’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자기는 나쁜 경영자란다. 10년간 세 번이나 정리해고를 해 1500명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나이키를 창업해 연매출 300억 달러(약 34조2000억 원)의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의 고백이다. 올해 78세인 저자의 첫 자서전은 솔직하다. 육상 선수를 꿈꿨지만 다른 선수의 등을 보고 달리며 재능이 없음을 인정했다. 미국인 대부분이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던 1962년, 세계 배낭여행을 나설 정도로 과감하고 엉뚱했다. 당시 24세였다. 배낭여행 중 무작정 일본 운동화 회사 오니쓰카(현재 아식스)를 찾아가 신발 300켤레를 들여와 팔기 시작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슈독’은 신발 연구에 미친 사람을 뜻하는 은어로, 저자와 괴짜 동료들에게 딱 맞는 말이다. 운동화와 달리기를 가장 성스럽게 여겼던 제프 존슨, 촉망받던 육상 선수였지만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보브 우델 등이 회사의 멤버가 됐다. 창업 후 6년간 그는 월급 한 푼 가져가지 못하고, 은행 대출을 돌려 막으며 간신히 버텼다. 하지만 와플형 밑창과 에어쿠션을 도입하며 고객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반항아로 구설에 오르내리는 운동선수를 후원하며 혁신적인 브랜드 이미지도 구축한다. 개인사도 책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들을 스쿠버다이빙 사고로 잃은 후 다이버들이 깊은 물속에서 위험에 처한 순간 행복감에 도취된다는 자료를 보며 애써 아픔을 달래는 모습은 여느 아버지와 다름없다. 저자는 불투명한 미래를 불안해했던 젊은 날을 떠올리며 당부한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앞으로 40년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쓰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보라.” 화려한 성공담보다는 삶의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했던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지혜로운 이웃집 할아버지를 만난 기분이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미국의 가수 겸 시인인 밥 딜런(75·본명 로버트 앨런 지머먼)이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3일(현지 시간) “훌륭한 미국 음악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인보다 가수로 더 유명한 인물이 노벨 문학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딜런은 1993년 수상한 소설가 토니 모리슨(85)에 이어 23년 만에 미국에 노벨 문학상을 안겼다. 한림원은 “딜런의 노래는 ‘귀를 위한 시’다. 그는 놀라운 방법으로 리듬을 만들었고 인내를 승화시켰으며 획기적인 사고를 보여줬다”고 밝혔다.이어 “5000년 전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와 여류 시인 사포가 쓴 시적인 텍스트는 공연이 됐는데 이는 딜런과 같은 방법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딜런은 그래미상, 아카데미상, 퓰리처상에 이어 노벨상까지 거머쥔 최초의 인물이 됐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딜런은 1970년대 대표적인 포크가수로 저항음악의 상징이었다. 1963년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Knockin' on Heaven's Door’ 등의 곡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한때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인도 출신의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트위터에 “오르페우스(그리스 신화의 음유시인)부터 파이즈(파키스탄 가수)까지 음악과 시는 매우 가까이 연결됐다”며 “딜런은 음유시인 전통의 뛰어난 후계자”라고 썼다. 상금은 800만 크로나(약 10억4000만 원).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 울 뻔했어요. 작가 선생님의 어머니가 쓰러지신 적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 할머니도 그러신 적이 있거든요.” 연평초등학교 6학년 홍정민 양은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포토에세이 ‘할매 할배 참 곱소’에 대해 말하다 눈시울이 빨개졌다. 이 학교에서는 11일 저자인 김인자 작가와의 만남이 열렸다. 본보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함께하는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캠페인의 첫 번째 방문지인 연평도에서 10∼12일 진행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다. 홍 양은 “담임 선생님도 우셨다”고 살짝 귀띔했다. 학생들은 이 책을 갖고 싶다며 앞다퉈 요청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콘텐츠’의 힘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83세 황보출 할머니가 늦깎이로 한글을 배운 후 쓴 시를 모아 올 8월에 출간한 ‘가자뒷다리’도 서점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살면서 겪은 아픔을 솔직하게 쓴 작품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내가 클 때는/쌀 서 말을/못 먹고 컸다고 하네.//참 나도 요즘 태어났으면/인생살이가 좋았을까.’ 제목이 ‘욕심’이다. 할머니가 생각하는 욕심은 그런 거다. ‘지하철 노인좌석에 앉으려는데/뒤에서 열쇠뭉치가 날아온다/남자 한 분이 자리를 먼저 잡으려고 한다 (중략) 열쇠뭉치가 자리 주인 된 것은 처음 본다’(‘열쇠좌석’) 희한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의아한 표정이 보이는 듯해 웃음이 난다. 한글학교를 다닌 어르신 87명이 쓴 시와 산문을 모은 ‘보고시픈 당신에게’는 서툴게 꼭꼭 눌러쓴 글씨와 정성껏 그린 그림으로 가득하다. 예쁘기 한량없는 손자가 자기 동화책을 읽을 때 할머니 것도 한 권 빼 오며 어느새 사이좋은 공부 친구가 되고(김정순 ‘손자는 내 공부 친구’) 한글을 깨쳐 딸에게 문자도 보내고 계모임 돈 계산도 하고 식당에 가서 먹고 싶은 청국장을 주문하며 기뻐한다.(오홍자 ‘내 인생에 꽃이 폈네’) 역시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쓴 시를 담은 ‘시집살이 詩집살이’도 인기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는 독자들이 ‘삶의 애환이 묻어나 작은 울림이 느껴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안고 토닥여 주고 싶다’는 소감을 남겼다. 책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연극에서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사랑받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노년층뿐만 아니라 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환호를 보낸다. 지난한 세월을 견뎌온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생사는 한 명 한 명이 책 한 권을 넉넉히 채우고도 남는다. 온갖 풍파를 겪은 이들에게선 애잔함과 함께 느긋함과 해학이 묻어난다. 젊은 세대는 가지 못한 길을 먼저 가 본 그들이기에 지혜도 얻을 수 있다. 삶의 의미와 여유, 웃음에 목말라하는 이가 갈수록 늘어나는 요즘, 문화계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힘은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미국의 가수 겸 시인인 밥 딜런(75·사진)이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3일(현지시간) "훌륭한 미국 음악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인보다 가수로 더 유명한 인물이 노벨문학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8)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데 이어 2년 연속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밥 딜런은 1993년 소설가 토니 모리슨(85)에 이어 23년 만에 미국에 노벨문학상을 안겼다. 사라 다닐스 스웨덴 한림원 사무차장은 "딜런은 54년 동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놀라운 방법으로 리듬을 만들었고 인내를 승화시켰고 놀라운 사고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호메로스와 사포를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시적인 텍스트를 썼고 이것은 공연이 됐다. 이것은 밥 딜런과 같은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밥 딜런은 1970년대 대표적인 포크가수로 저항 음악의 상징이었다. 1963년 앨범 '더 프리휠링 밥 딜런'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등의 곡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이지만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에서 딜런이라는 이름을 따 예명을 지을만큼 문학에 심취했다. 상금은 800만 크로나(약 10억 4000만 원). 시상식은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인천 옹진군 연평도 연평초등학교 인근에는 2010년 북한의 포격으로 땅이 푹 꺼진 현장 사진과 이를 설명하는 게시물이 설치돼 있다. 6년이 지나도 연평도는 그때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12일 연평초에는 평소와 달리 활기가 넘쳤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의 책 버스에 모인 1, 2학년생 16명은 스토리텔러 최순자 씨가 강아지 똥 모형을 들자 키득키득 웃음부터 터뜨렸다. “내가 아주아주 답답한 곳을 빠져나왔는데 여기가 어디지? 너희들은 어느 학교 친구들이니?”(최 씨) “연평초등학교요!”(학생들) ○ 문화 싣고 달리는 책 버스 올가을 꽃게 철에도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탓에 시름에 빠져 있던 연평도 어민들은 최근 본격적으로 꽃게잡이에 나서고 있었다. 해경 고속단정 침몰 사건 이후 중국 어선이 그나마 줄어든 덕분이다. 해질 무렵 연평도 항구에는 꽃게를 가득 실은 배가 들어와 이를 트럭으로 옮기는 손놀림이 분주해지는 등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여기에 ‘작은도서관…’ 등이 10∼12일 사흘간 책 버스 행사와 공연 등으로 책 문화 향연을 펼치자 학생과 주민, 군인들은 이내 흠뻑 젖어들었다. 11일에는 김인자 작가가 학생들에게 그림책과 에세이집을 읽어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연평초 6학년 박은경 양은 “김 작가님이 ‘할매 할배 참 곱소’라는 책을 쓰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30여 년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작은도서관…’ 대표인 김수연 목사(70)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고정욱 동화작가가 쓴 ‘책 할아버지의 행복도서관’을 연평초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아이 이름과 함께 ‘책을 읽으면 행복해집니다’ ‘책을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란 당부를 일일이 쓰고 사인을 했다. 10일 저녁에는 마을회관인 연평종합회관 앞마당에서 가수 서수남 씨가 노래를 부르고 발레 ‘지젤’ 영상물을 상영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주민 100여 명이 함께했다. 흥에 겨워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는 아이도 있었다. ○ 연평부대, 문화가 꽃피다 12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주최로 테너 신재호, 소프라노 김문희 씨가 해병대 연평부대를 직접 찾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내 마음의 강물’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등을 불러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창작발레 ‘심청’, 오페라 ‘마술피리’ 영상물도 상영했다. 고학찬 서울 예술의전당 사장은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있는 서해5도의 연평도에서 발레 ‘심청’을 처음 선보이게 돼 뜻깊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세계문학전집 300권과 신간 베스트셀러 100권을 포함해 총 400권을 연평부대에 전달했다. 국민은행은 내년 초 주민과 군인 가족을 위해 컨테이너를 도서관으로 꾸민 ‘컨테이너 도서관’도 기증할 예정이다. 박이성 연평부대장은 “입대 후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된 군인이 많은데 신간을 보면 무척 반가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병에게는 도덕경, 논어, 명심보감, 탈무드 등 2000여 권의 포켓북을 전달했다. 김상민 병장(22)은 “제대 후 복학 준비를 위해 책을 가까이 했는데 마음을 더 다잡고 읽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남북 대치에 따른 아픔이 서린 연평도에서 책 버스가 출발하게 돼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 “책 한권 펼쳐들고 벙글벙글 웃어주세요” ▼ 작은도서관 전국공연 서수남씨 “벙글벙글 벙글벙글 웃어 주세요. 화내지 말고∼.” 해병대 연평부대에 11일 저녁 기타 소리와 함께 ‘벙글벙글 웃어 주세요’를 부르는 가수 서수남 씨(73·사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물농장’ ‘팔도유람’ 등 신명 나는 노래가 이어지자 사병들은 큰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어깨를 들썩였다. 우렁찬 목소리로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서 씨는 김수연 목사와의 인연으로 2014년부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공연하고 있다. 올해로 가수 인생 52년을 맞은 그는 행사장 분위기를 띄우는 데 톡톡히 역할을 한다. 중년 이상의 팬들은 그를 보면 반가워하고, 젊은 세대들은 얼굴은 몰라도 ‘닭장 속에는 암탉이∼’라는 ‘동물농장’의 가사가 나오면 ‘아, 그 노래’라며 박수를 친다. 이날도 서 씨가 공연 전 연평도 골목을 다니자 주민들은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넸고, 소주를 마시던 남성들은 “한잔하고 가시라”며 손짓하기도 했다. 서 씨는 “작은도서관을 통해 사람들을 돕자는 취지로 참여했는데 오히려 내 인생이 바뀐 것 같다”며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느새 피곤함을 잊는다”고 말했다. 연평도=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2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연평초등학교 운동장. 노란색으로 꾸민 버스에는 책 그림과 함께 ‘꿈을 캔다! 행복을 만든다! 작은 도서관에서…’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책과 TV 모니터를 갖추고 놀이방처럼 꾸며 놓은 책 버스 안에서는 1, 2학년 학생 16명이 구연 동화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운영하는 책 버스가 연평도를 찾았다. 이 단체는 KB국민은행, 서울 예술의전당과 함께 10∼12일 학생과 해병 부대원에게 책을 기증하고 작가와의 만남, 발레 영상 상영, 노래 공연을 펼쳤다. 2010년 북한 포격을 받은 연평도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7일엔 해경 고속단정이 중국 어선의 공격으로 침몰해 연평도 일대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후 중국 어선의 출현이 주춤해지자 주민들은 본격적으로 꽃게잡이에 나섰다. 여기에 책 잔치까지 더해지자 주민들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작은도서관…’은 32년째 전국에 300여 개의 도서관을 세우고 책을 기증하는 운동을 펼쳐왔다. 2005∼2010년 방방곡곡을 누볐던 책 버스를 새로 만든 뒤 첫 방문지로 연평도를 택한 건 상처 입은 최전방의 섬을 문화로 어루만진다는 의미가 담겼다. ‘작은도서관…’과 동아일보는 독서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책 버스’를 앞세워 도서관을 만들고 책을 기증하는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캠페인을 펼친다.연평도=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쭈쭈쭈쭈∼.”충남 홍성군 결성면에 자리한 돼지농장 ㈜성우의 이도헌 대표(49)가 5일 방목해 키우는 까만 돼지를 보며 소리 내 다가가자 돼지들이 달려왔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은 듯 얌전히 있었다. 돼지 농장주 4년 차인 이 대표는 월스트리트에서 헤지펀드 운용에 참여하고 아시아개발은행 인도네시아 자문역,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컨설턴트, 한국투자증권 상무를 지냈다. 글로벌 금융인이 돼지농장주로 변신한 이유는 뭘까. 그는 최근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스마트북스)를 펴냈다. 》 ○ “평범한 삶 따분해” 그는 연세대 경제학과 3학년 때 파생상품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국내에서 파생상품에 관심을 가진 이는 극소수였다. 28세에는 금융 컨설팅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설립해 7년 후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제가 ‘삐딱선’을 타는 기질이 있어요. 남들이 가는 길은 재미가 없어요. 새로운 일에 뛰어들어 성과를 냈을 때 맛보는 짜릿한 쾌감이 좋아요.” 쌍용증권에 입사한 그는 미국 뉴욕 주재원으로 나가면서 국제 금융계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2010년 금융계 구조조정을 겪으며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던졌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노키아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걸 보며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라지지 않을 업종을 찾았는데 먹을거리와 관련된 1차 산업이더라고요.” 한국 소비자들이 수입한 냉동돼지고기보다는 얼리지 않은 냉장육을 선호해 유통기간이 짧은 돼지고기는 국내산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은 자국 내 돼지고기 수요도 감당하지 못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돼지농장 투자자가 되기로 했다. 물론 고민도 적지 않았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딸, 아들의 학비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대에도 일하고 싶었기에 행동에 나섰다.○ 자연의 시간 따른 삶 날벼락이 떨어졌다. 투자한 농장이 부도 위기에 처한 것.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013년 농장 경영에 뛰어들었다. 농장 운영은 만만치 않았다. 그해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돼지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자식이 죽어나가는데 병원비가 없는 부모 심정이었어요. 구제역이 인근 농가까지 번졌을 때는 전염될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언덕에 올라 바람 방향을 살피며 가슴을 졸였고요.” 문제가 생기면 경험 많은 농장 직원 6명과 머리를 맞댔다. 축사에 에어컨을 설치했고, 돼지의 성장 단계에 따라 축사를 구별해 온도와 사료 배합도 조정했다. 처음엔 새끼 돼지만 따로 키우는 축사가 없었다. 그는 현재 4만9587m²(약 1만5000평) 크기의 이 농장에서 돼지 7800여 마리를 키운다. 돼지 사육 밀도는 일반 농가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생산성은 전국 상위 3%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에게 성과급도 지급하고 있다. 농장에는 돼지 분뇨로 에너지를 만드는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세울 계획이다. 덴마크, 스페인 등의 선진 농가를 방문해 고급 돼지를 키우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나는 돼지농장으로…’에는 고군분투했던 과정과 인생 2막을 준비한 구체적인 방법, 조언을 구하는 이들에 대한 당부가 자세히 담겨 있다. 특히 그는 책에서 인생 2막의 원칙 중 하나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를 들었다. 그는 임원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직원들을 평가해 구조조정하는 업무를 떠맡아 마음에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는 직접 결정한 일은 낯설고 힘든 상황을 견디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다른 이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고 좋은 돼지를 키우는 데만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하다”며 “홍성 돼지를 돼지업계의 ‘인텔’로 만들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홍성=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일본이 올해까지 3년 연속 노벨 과학상을 거머쥐었다. 지금까지 노벨 과학상을 받은 일본인은 22명에 이른다. 환호하는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부러움과 궁금함이 뒤섞여 있다.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고토 히데키 지음·허태성 옮김·1만8000원·부키)는 일본이 1854년 개국 후부터 16번째로 노벨상을 받은 2012년까지 일본 과학자들이 150여 년간 고군분투한 과정을 그렸다. 메이지 유신, 태평양전쟁 등 역사적 상황에서 과학자 개개인이 기울인 노력과 애환을 확인할 수 있다. 국력을 키우려는 욕구와 군사 강국에 대한 열망이 일본의 과학 발전을 이끌었다고 한다. 포로를 대상으로 한 실험,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고민 등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도 짚는다. 상이 목표는 아니지만,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걸 이룬 과정을 보노라면 일본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든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귀 체온계, 아폴로 11호,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 고엽제….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 과학자들이 개발했거나 개발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 독일이 패망한 후 미국은 1600여 명의 나치 과학자를 미국으로 밀입국시키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페이퍼클립’ 작전이다. 포로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생체 실험을 거듭한 독일 과학자들은 놀라운 결과물을 갖고 있었다. 탄도미사일, 사린 가스, 로켓 포격 기술, 생화학무기…. 냉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소련보다 먼저 이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페이퍼클립’에 강한 추진력을 부여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공식 승인했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전작 ‘에어리어51(Area51)’ 집필을 위해 자료를 찾다 독일 제국 원수 헤르만 괴링의 최고위 기술자문이었던 지크프리트 크네마이어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미 공군을 위해 일했고 국방부가 민간인에게 주는 가장 큰 상을 받은 사실에 경악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파헤치기 위해 정부 기관, 대학, 도서관, 교도소를 찾아다녔을 뿐 아니라 나치 과학자 2세까지 인터뷰했다. 28쪽에 달하는 참고문헌과 인터뷰한 인물 등의 목록은 저자가 발로 뛴 흔적을 증명한다. 이 책은 나치 과학자 21명의 행적을 집중 조명한 결과물이다. 방대하고 치밀한 취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다. V-2 로켓으로 영국과 벨기에의 도시 3000개를 폭격한 베른헤르 폰 브라운은 나치 친위대 장교였지만 미국에서 우주 연구의 유명 인사로 급부상하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그의 연구팀은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선보였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과학훈장까지 받았다. 나치 과학자들을 받아들인 데 항의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 기자는 ‘아들아, 대량살상을 즐기지만 자기 목숨은 소중히 여긴다면 과학자가 되어라’라는 글을 쓰며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짙은 어두움을 향해 간다. 소련 스파이를 대상으로 최면 상태에서 정보를 말하게 하는 약물을 실험하던 중 연구자인 박테리아 학자 프랭크 올슨에게 몰래 약물을 주입하며 결과를 관찰했다. 두려움과 흥분에 휩싸이며 이상 증세를 나타내는 올슨을 보며 미국 정부는 그가 기밀을 소련에 누설할 가능성을 염려하기에 이른다. 결국 올슨은 호텔 창문에서 떨어져 숨졌다. 사건은 자살로 처리됐다. 괴물(독일)을 패망시켰고 또 다른 괴물(소련)을 견제한다고 자부했던 미국은 스스로 괴물이 되어 갔다. 한편 독일 과학자들은 실생활에도 기여했다. 음료업계는 열처리를 하지 않고도 과일즙을 살균하게 됐고 실이 풀리지 않는 양말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효모를 무제한으로 생산할 수도 있었다. ‘히틀러의 마법사’들은 미국이 군수산업, 우주공학, 상업, 공업 등 각 분야에서 비상하는 도약대가 된 것이다. 저자는 과학의 극단적인 두 얼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 나아가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착잡하고도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끝없이 자문했던 것이기도 하다. ‘국가가 사용하는 수단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남는가’. 원제는 ‘Operation Paperclip’.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김환기 김기창 장욱진 천경자…. 이름만으로도 화려한 이들이 모였다. 회화전이 아니다. 이들이 디자인한 단행본을 모은 전시회다. 서울 종로구 비봉길 삼성출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책이 된 예술, 예술이 된 책’ 기획전에는 유명 작가들이 디자인한 책을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책의 표지나 면지(표지 안쪽) 등을 꾸미는 장정(裝幀)은 주로 화가들이 맡았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주요 화가와 삽화가, 서예가 대부분은 책의 표지화와 삽화, 표지 글씨인 제자(題字) 작업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화가인 김용준 정현웅 길진섭 구본웅 남관 윤명로와 삽화가인 김용환 김영주 이승만 김세종을 비롯해 서예가인 김충현 김응현 손재형 등 작가 65명의 손길이 깃든 책 117권을 감상할 수 있다. 긴 뿔을 가진 동물 두 마리가 그려진 안수길의 소설 ‘제3인간형’(1952년) 표지는 김환기의 작품이다. 김기창은 윤영춘의 시집 ‘무화과’(1948년) 표지에 여백의 미를 살려 무화과 열매와 나뭇잎을 그렸다. 김기창의 아내인 화가 박래현도 장정에 참여했다. 조풍연의 ‘청사수필’(1959년)의 표지 디자인은 박래현의 작품이다. 이병도의 수필 ‘내가 본 어제와 오늘’(1966년) 표지는 그의 사위인 장욱진이 디자인했다.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1947년)의 장정은 동생인 박문원이 맡았다.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은 “우리 출판물이 구현했던 뛰어난 예술성을 감상하고 책과 예술의 새로운 융합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말까지로, 이달 12일까지는 무료다. 관람료는 일반 3000원, 학생 2000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달 전기료 5500원… 자급자족의 삶궁극의 미니멀라이프(아즈마 가나코 지음·즐거운 상상)=30대 중반 주부인 저자를 포함해 4인 가족은 도쿄 교외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청소기 없이 지내고 텃밭을 가꾸고 오골계, 메추리를 키우며 자급자족한다. 한 달 전기료는 500엔(약 5500원)에 불과하다. 지금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삶을 통해 무소유의 가치를 제시한다. 1만2000원.상품-소비가 바꾸는 역사 이야기카트에 담긴 역사 이야기(김대갑 지음·노느매기)=테디 베어에 담긴 미국의 대외 침략의 역사, ‘토마스와 친구들’에 담긴 영국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유산 등 상품에 스며 있는 역사적 가치를 분석했다. 영국의 차 소비와 아편전쟁, 미국의 홍차 소비와 독립 등 인간의 소비가 어떻게 역사를 바꾸는지도 짚었다. 1만5000원.미술·가구 등 가까이 있는 수학수학은 어떻게 예술이 되었는가(이한진 지음·컬처룩)=중세 고딕 성당과 르네상스 회화, 현대 추상 미술에는 수학의 원리가 활용됐다. 성인 남성 키의 황금 분할을 통해 얻은 숫자들은 의자, 탁자 등 가구의 길이와 천장 높이의 기준이 된다. 우리 삶 가까이 있는 수학의 원리를 분석했다. 1만8000원. 사계절문학상 대상받은 작가 장편소설다윈 영의 악의 기원(박지리 지음·사계절)=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자인 작가의 소설. 핵심권력자들이 사는 1지구부터 버림받은 땅 9지구까지 구획된 사회가 배경이다. 9지구의 인물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삼촌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1지구에 사는 루미는 모범생 친구 다윈 영과 함께 1지구를 벗어나 9지구로 향한다. 1만8000원.}
번데기를 보면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가 떠오른다. 운동회 날엔 번데기 장수가 꼭 찾아왔다. 종이를 돌돌 말아 고깔처럼 만든 간이 용기(?)에 감질나게 몇 마리 담겨 있던 번데기의 고소한 맛은 운동장에 펄럭이던 만국기를 불러낸다. ‘어른의 맛’(히라마쓰 요코 지음·조찬희 옮김·1만3800원·바다출판사)은 인생의 순간순간 만났던 맛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온 초밥에서 맛본 와사비의 코끝 찡한 맛, 어른이 돼 즐기게 된 술안주의 맛, 여름이면 생각나는 추어탕…. 작은 냄비에 두부, 바지락, 대파, 무를 넣고 끓인 음식은 배를 채우려는 게 아니라 술을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한 거란다. 두 명이 마주 앉아 익은 두부나 생선을 건네주고 받는 맛이 있다고 한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 편안히 먹는 음식은 또 하나의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비행기가 야간에 착륙하기 10∼15분 전에 객실 전등을 끄는 이유는 뭘까? 힌트는 우리 눈이 빛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관계가 있다. 승객을 어둠에 적응시켜 사고가 났을 경우 앞을 제대로 보며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망막이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비상탈출용 슬라이드는 물론이고 땅도 보이지 않아 허공으로 뛰어내리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더. 해적들은 눈에 이상이 없어도 한쪽에 안대를 하고 다녔다. 어두운 곳에서 빠르게 움직여야 할 상황이 되면 안대로 가린 눈을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과학 유튜브 채널 ‘생각 좀 해 봅시다’(e-penser) 운영자로 유명한 저자는 이들 사례와 함께 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빛을 조절해 받아들이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망막을 이루는 원추세포와 간상세포 등 학창 시절 밑줄 그어가며 외웠던 단어들이 줄기차게 튀어나온다. 책은 태양계, 전자기학, 고전역학, 열역학, 특수상대성이론, 일반상대성이론, 생명 분야까지 종횡무진 달린다. 소행성대 안에서 소행성들은 보통 서로 수십만에서 수백만 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 기사들이 소행성을 피해 조심조심 건너야 할 필요가 없다. 사고가 났을 때 시간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흘러간다고 느껴지는 건 뇌가 흥분해서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기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잘못됐단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물론이고 우주의 구조까지 흥미로운 내용이 적지 않다. 뉴턴, 아인슈타인, 갈릴레이 같은 유명한 과학자의 업적과 일화뿐 아니라 무명의 과학자도 다수 소개한다. 과학 발전의 열매는 전설적인 과학자뿐 아니라 이름 없는 과학자들의 남모르는 노력이 쌓였기에 가능했다는 저자의 말에는 과학자에 대한 존경심이 엿보인다. 방대한 분야를 다뤄 모든 내용을 다 소화하기는 쉽지 않지만 눈길이 가는 내용만 찾아 읽어도 과학상식이 꽤 늘어난 기분이 든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시를 쓰고 나면 저렇게 철해 놓고 계속 고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존경하는데, 이 그림액자는 그분이 태어나고 돌아가신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구입한 거죠. 이건 제 시를 안치환 씨가 노래로 만든 CD고요.” 서울 마포구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29일 열린 ‘푸르메를 사랑한 작가초대전’ 개막식에서 정호승 시인(66)이 자신의 애장품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전시회에는 올해 4월 문을 연 이 병원을 세우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세 명의 작가인 고 박완서 작가와 이해인 수녀(71), 정 시인의 육필 원고와 편지, 손부채, 꽃삽, 옛 사진 등이 출품됐다. 세 작가의 여러 면모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세 작가는 서로 긴밀하게 교류하기도 했다. 전시회에는 박 작가가 작고했을 때 정 시인이 쓴 조시(弔詩)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이 수녀와 정 시인은 법정 스님과도 가까웠다. 법정 스님이 이 수녀를 위해 쓴 친필 액자와 정 시인에게 쓴 손편지도 보였다. 박 작가의 넷째 딸인 호원균 씨는 생전에 어머니가 바느질 할 때 사용했던 목판과 자를 보며 “우리가 자랄 적에는 기성복이 별로 없어 어머니가 옷을 다 만들어 줬다”며 “이건 그때 쓴 물건들”이라고 말했다. 박 작가는 2005년부터 발간한 모든 책의 첫 인세를 지속적으로 푸르메재단에 기부하고 매달 별도 기부금을 냈다. 장애 청소년과 거제도 여행을 함께했다. 박 작가가 화단을 가꾸는 사진도 걸려 있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댁을 방문했을 때 화단을 가꾸는 선생님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잡초를 뽑느냐고 물었더니 ‘잡초를 뽑으면 사념이 없어진다’고 말씀했다”고 전했다. 이 수녀가 글씨를 쓰고 스티커를 붙여 만든 손부채 4개도 펼쳐져 있었다. “수녀님이 소녀 같은 마음을 지녀 스티커를 좋아한다”는 게 백 상임이사의 설명이다. 이 수녀는 일정상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수녀는 장애 어린이와 부모들을 위한 북콘서트, 시 낭송 등에 참여하고 책과 음반 판매 수익금을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청년 정호승’을 볼 수 있는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정 시인은 장애아 부모를 위한 시 강연회를 열고, 장애 청소년과 백두산에 함께 올라 자작시 ‘백두산의 눈물’을 낭독해 감동을 안겼다. 장애아를 둔 어머니를 위해 시 ‘어머니 당신이 희망입니다’를 지었고,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책을 보내고 친필 사인을 한 시집도 한가득 보내고 있다. 정 시인은 “장애아 어머니들은 누구보다 많은 아픔을 갖고 있다”며 “그분들이 전시회에 많이 와서 세상살이가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느끼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시회는 12월 31일까지 열리며 무료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38세에 세상을 떠난 미국 신경외과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쓴 에세이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흐름출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5만 권 넘게 팔려 지난주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8위, 예스24는 6위에 각각 올랐다. 영문학, 철학을 공부한 저자가 레지던트 막바지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담담히 일상을 이어가며 삶을 성찰한 글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이처럼 요즘 서점가에서는 존엄한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책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외과 의사가 환자들을 만나며 의미 있는 마지막 순간에 대한 생각을 담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지음·부키)도 지난해 5월 출간된 후 현재까지 5만5000여 권이 팔렸다. 영국의 저명한 신경외과 의사가 환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경험을 토대로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해 쓴 ‘참 괜찮은 죽음’(헨리 마시 지음·더퀘스트)도 올해 5월 출간돼 1만 권 이상 팔렸다. 출판사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수치다.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4편의 에세이를 묶은 ‘고맙습니다’(알마)는 올해 5월 말 나온 뒤 모두 5500여 권이 팔렸다. 특별판 1, 2는 가격이 일반판(6500원)의 3∼4배에 이르는데도 불구하고 한정판으로 각각 찍은 500권이 모두 나갔다. 저자들은 모두 인문학적 소양이 깊은 의사로, 폭넓은 사유와 죽음에 대한 경험을 결합해 큰 울림을 주는 책을 탄생시켰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는 ‘숨결이…’를 읽은 독자들이 ‘불안해하던 내일을 마주하는 용기를 갖게 됐다’, ‘삶에 대한 애착이 컸던 저자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나의 모습에서 인생을 생각해 본다’는 글을 남겼다. ‘참 괜찮은…’의 한 독자는 ‘죽음이라는 끝이 정해진 길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걸어갈 수 있게 해줬다’고 썼다. 이들 책의 주요 독자는 40, 50대로 알려졌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재의 40, 50대는 고민에 대한 답을 책에서 찾으려는 성향이 강한 세대로, 주위에서 죽음을 접하며 본인과 부모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고령화가 본격화되기 시작됐던 1990년대 중반부터 죽음을 다룬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 젊은 독자들에 대해서는 불안한 사회 구조가 한몫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노력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데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성취보다는 꽉 찬 삶의 방식을 찾으려는 20, 30대 독자가 유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남 교보문고 상품지원단 구매팀 과장은 “죽음을 다루지만 의미 있는 인생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들 책은 결국 삶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