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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불교와 수행에 관한 3권이 최근 출간됐다. ‘흠모’(민족사)는 불교계의 대표적인 스승 21명과 제자들의 인연을 담았다. 청담, 성철, 홍법, 법정, 금오, 관조, 청화, 보문, 벽안, 서옹, 묘엄, 광덕, 혜암, 일타, 해안 스님 등과 그 제자들의 눈에 비친 다양한 사연들이 펼쳐진다. 책은 지난해 교계 매체 불교포커스에 연재됐던 것들이다. 선(禪) 전문잡지 ‘고경’ 편집장 겸 백련불교문화재단 기획팀장인 저자 유철주 씨의 순간을 포착한 인터뷰와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티벳 사자(死者)의 여행안내서’(정신세계사)는 단 한 번 듣는 것만으로 해탈에 이른다는 티베트 불교 경전 ‘사자의 서’와 바르도(현생과 다음 생 사이의 중간계를 의미)에 대한 해설서다. 저자 족첸 폰롭 린포체는 현재 북미 지역에서 국제적 불교연구와 수행센터인 날란다보디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단전주선(씨아이알)은 길도훈 원불교 교무가 교조 소태산 박중빈의 깨달음 이후에 내려오던 선법을 정리한 책이다. 제목 단전주선(丹田住禪)은 마음이 단전을 떠나지 않고 항상 머무르는 상태를 가리킨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17일 종교계는 진도 여객선 참사와 관련해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는 입장을 잇달아 발표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개최할 예정이던 각종 행사를 취소하거나 축소하기로 했다. 조계종은 이날 전국 2500여 개 사찰에서 실종자 무사 생환을 바라는 기도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종단 소속의 긴급재난구호봉사대는 사고 현장 부근에 부스를 설치하고 구호활동과 함께 현장 구조대원들에게 차와 식사를 제공할 예정이다.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20일 오후 3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대한민국 야단법석’을 전격 취소했다. 같은 날 열리는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 취임 고불법회도 내용이 축소됐다. 백양사는 방장 취임을 알리는 고불법회는 그대로 진행하되 식전식후 문화공연은 하지 않기로 했다. 부산불교연합회(회장 수불 스님·범어사 주지)도 18일 오후 7시 용두산공원에서 봉행할 예정이던 연등축제 점등식의 내용을 대폭 줄인다. 축하공연도 취소하고 여객선 희생자에 대한 묵념을 진행하는 등 최대한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를 치를 계획이다. 26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연등행렬 등 각종 봉축 행사도 축소되거나 경건한 분위기 속에 치러질 예정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도 17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미사에서 사망자와 실종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발표하고 사제와 신자들과 함께 기도했다. 염 추기경은 “실종된 승객들이 조속히 구조되기를 기도한다. 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를 기원한다”며 “특별히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님들과 구조 활동 관계자들에게 하느님께서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교회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개신교 연합 단체도 애도 메시지를 발표했다. NCCK는 “안타까운 죽음 앞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학생과 승객, 선원들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NCCK는 19일 오전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주교관에서 소속 교단장 긴급회의를 열어 사고 수습 과정에서 한국 교회가 할 일을 논의한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캄보디아에서 자전거는 아이들이 통학할 때뿐만 아니라 부모가 일을 하거나 생활할 때에도 이용되는 큰 재산입니다. 시골마을까지 찾아와 귀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캄보디아 프놈펜 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시골마을에 있는 포미우 초등학교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구세군은 “지난달 31일 캄보디아 포미우 초등학교에 ‘구세군 사랑나눔 프로젝트’를 통해 마련된 자전거 111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하루 100원씩 1년간 3만6500원을 모아 캄보디아에 자전거를 보내는 캠페인. 경기 평택 지역의 고교생 111명이 ‘아자학교’(아이들 자전거 태워 학교보내기) 프로젝트를 만들고 자발적으로 확산시켜 후원금 400여만 원을 모아 눈길을 끌었다. 김규한 구세군 홍보부장은 “올해 말까지 캄보디아에 자전거 1000대를 후원할 계획”이라며 “하루 100원씩 모으는 사랑나눔 프로젝트는 개인에게는 큰 부담은 아니지만 캄보디아 현지 학생들에게는 큰힘이 된다”고 말했다. 10월에는 구세군 홍보대사와 참여 학생들의 직접 방문도 추진한다. 후원 문의 02-6364-4072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부처님오신날(5월 6일)을 앞두고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점등된 미륵사지 탑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이 등은 좌대를 포함해 높이 20m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본뜬 것이다. 이날 점등식 행사에는 봉축위원장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 불교계 인사와 신도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사진)은 14일 발표한 부활절(20일) 메시지에서 “삶이 아무리 거칠고 힘들어도 부활의 믿음 안에서 주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고, 새로운 하늘과 새 땅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자”며 “갈등과 분열,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나의 생각과 뜻이 다른 이들을 보듬고 대화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도 “빈곤과 차별, 극심한 양극화의 끝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희망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며 “교회는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피조물과 함께 진정한 부활의 생명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순례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절집 살림도 잘 꾸려가고 초기불전 연구에 노후 복지시설까지 정말 잘하신다고 소문이 자자하죠.”(정념 스님·58) “전, 스님의 절반, 아니 삼분의 일도 못 따라갑니다.”(법만 스님·53) 10일 서울 조계사 건너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는 두 스님의 하심(下心·자신을 낮춤)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과 제24교구 본사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이다. 두 사찰은 한국불교학회와 공동으로 18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학술대회 ‘석전과 한암, 한국 불교의 시대정신을 말한다’를 개최한다. 교구 본사 두 곳이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석전 스님(1870∼1948)과 한암 스님(1876∼1951)은 일제강점기 각각 선(禪)과 교(敎)를 대표했으며 한국 불교의 전통을 지켜 1962년 출범하는 현 조계종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선운사는 석전 스님, 월정사는 한암 스님과 깊은 인연의 끈을 갖고 있다. 박한영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석전 스님은 두 차례 종정을 지낸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청담·운허·운성·운기·남곡 스님과 최남선 정인보 이광수 서정주 등이 제자였다. 4차례나 종정을 지낸 한암 스님은 1925년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봄날에 말 잘하는 앵무새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며 강남 봉은사 조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후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두문불출하며 선 수행에 전념했고 6·25전쟁 때에는 소실될 위기에 빠진 상원사를 지켜내기도 했다. 석전과 한암 스님은 머무는 곳이 달라 직접 교류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흠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념 스님의 말이다. “한암 스님은 제자인 탄허 스님(1913∼1983)의 학문적 자질이 뛰어난 것을 눈여겨보고 석전 스님 밑에서 공부하라고 보낸다. 하지만 석전 스님은 이미 최고의 선지식에게 배우고 있는데 가르칠 수 없다며 탄허 스님을 다시 돌려보냈다.” 월정사 교무를 맡고 있는 자현 스님이 공동 세미나의 산파가 됐다. 선운사에서 종종 강의를 하던 스님이 지난해 가을 세미나를 제안해 성사됐다. 문중과 학연에 따른 이합집산은 조계종이 지닌 오랜 문제점 중 하나였다. 사찰의 틀을 넘어선 두 본사의 아름다운 동행은 새로운 시대로 기대할 만하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이제부터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죠. 굳이 지금까지의 삶에 점수를 매기라면 100점 만점에 85∼90점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요즘 골프 스코어랑 비슷한데 이 정도면 만족해야죠. 허허.”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이자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는 7일 팔순을 맞았다. 한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그는 역대 대통령들과 두루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신망을 잃지 않은 개신교 원로로 꼽힌다. 두 아들도 목회의 길을 걷고 있지만 교회를 세습시키지 않은 그는 은퇴 뒤 방송선교에 전념하고 있다. 10년 만에 부활절(20일) 연합예배 설교자로 나서는 그를 9일 만났다. ―팔순을 맞으셨는데…. “할 일이 많은데 하루가 너무 짧아요. 더 베풀며 멋있게 살아야죠. 어떻게 태어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해요.” ―교계에서 복 받은 목회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안호영 주미 대사가 ‘빌리 킴(김장환) 목사를 만나면 좋은 일이 많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더군요. 평소 친분이 있던 버지니아 주지사와 대사가 만나도록 주선했는데 두 분이 금세 친해지더군요. 제 삶의 지론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역사가 만들어지고, 사람과 하나님이 만나면 기적이 생긴다는 겁니다.” ―10년 만에 연합예배의 설교자로 나섭니다. “MB는 통일은 도적처럼 온다고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대박이라고 했어요. 통일시대를 맞아 한국 교회도 부활해야 합니다. 경제가 부활해야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교육이 부활해야 국민들이 웃고 살 수 있습니다. 이번 설교에 그런 메시지를 담을 생각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큰 화제입니다. “종교가 공존해야 하나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최근 방한했던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바쁜 일정에도 극동방송에서 대담을 나눴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그때 미국에 있어서 대신 손님 맞을 준비만 신신당부했죠. 그분, 술을 안 하기 때문에 알코올 없는 포도주로 건배하도록 했어요. 큰아이(김요셉 목사)가 영어를 꽤 하는 편이어서 대담을 했습니다. 이건 세습 아닙니다.(웃음)” ―내한 당시 100만 명이 참석한 여의도 집회로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위독하다고 합니다. 당시 통역을 하셨는데요. “한 달 전 그쪽 비서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혹 돌아가시면 연락할 테니 바로 올 수 있느냐고 하더군요. 한국 교회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라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현재 거동은 못하지만 의식은 있다고 합니다.” ―‘복 손’으로 소문나 축도를 원하는 신도가 많은데 수원중앙침례교회에 유력한 경기지사 후보들이 있던데요. “남경필 의원이 집사, 김진표 의원이 장로로 있죠. 전 모두 잘되라고 기도해줘야죠, 결정은 하나님 몫이니까요. 하하.” ―MB 멘토 역할 잘 못한 것 아닙니까. “전 그분이 지식과 인품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우리 국민들이 전직 대통령에게 후하게 점수를 주는 편이 아니라 아쉬워요. 미국처럼 정부가 전직 대통령의 노하우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전직 대통령이 자원외교를 돕고, 해외 원수 장례식에도 참석하면 얼마나 좋아요.” ―개신교 지도자들의 리더십 문제를 거론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 분 한 분 보면 유능한데 상황이 돕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무엇보다 교회의 분열과 교계의 자리다툼은 지양돼야 해요.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해 갈라서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무지렁이 빈승을 어른들이 잘 보신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따른 지 54년이 됐습니다. 거의 한평생 부처님 품안에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제 삶을 그래도 조용하게 잘 살아왔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박헌영(1900∼1956)이 월북 전 남한에 남긴 유일한 혈육 원경 스님(73)의 말이다. 스님은 9일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선출됐다. 조계종 원로회의(의장 밀운 스님)는 이날 원경 스님 원로의원 선출 건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원로회의는 법랍 45년, 연령 70세 이상으로 자격기준이 제한돼 있으며 임기 10년의 단임이다. 25개 교구별로 1명씩을 두며 매우 까다로운 심사로 인준하고 있어 종단 내에서도 영예로운 자리로 여기고 있다. 원경 스님은 박헌영의 두 번째 부인 정순년 씨가 낳은 아들로 부친이 잠적한 뒤 어머니와도 헤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열 살 때 한산 스님을 만나 화엄사에서 출가했다. 원경 스님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버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한평생을 이념 갈등 속에서 살아 두렵고,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릴까 무서워하며 살아왔습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경우도 있어 항상 조심했습니다. 세속을 벗어나 수행승으로 살면서도 조심하는 것은 몸에 배었습니다.” 원경 스님의 부친에 대한 기억은 짧다. 여섯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렸을 때 두 번 정도 품에 안긴 기억 정도만 난다고 했다. 스님은 부친으로 인해 삶이 어렵지 않았냐고 묻자 “저는 물론 주변 분들이 고통받을 때가 있어 괴로웠지만 ‘아버지의 운명에 의해 사는 것도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걸 놓아 버리니 편해졌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보호자였던 한산 스님 등의 조언으로 부친의 흔적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2004년까지 부친의 삶을 정리한 책을 9권으로 묶어 냈고, 2010년에는 시집 ‘못다 부른 노래’를 출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만화를 통해 ‘경성 아리랑-무덤도 꽃다발도 없는 혁명가들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만화는 아버님을 포함해 온몸으로 일제강점기에 맞선 20, 30대의 젊은이들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원경 스님은 최근 혈육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박헌영의 첫 부인에게서 태어난 누나 박비비안나 씨가 지난해 11월 모스크바에서 별세한 것. 생전 비비안나 씨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는 부친의 세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나타샤와 세르게이라는 이름의 두 동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 문제로 누님이 세상을 뜬 지 10일쯤 지나 모스크바 무덤에 갔습니다. 제가 스님이니 옛 기억을 그리며 묘소에서 혼을 위로했어요. 아버님은 물론 모든 주변 분들의 삶을 위로하면서 살 생각입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3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교황은 지난해 10월 이 땅의 모든 교회에 ‘정의와 평화로의 순례’를 요청한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 폐막 메시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부산 총회 이후 최근 한국을 다시 찾은 올라브 트베이트 WCC 총무(54·사진)는 9일 간담회에서 “WCC 메시지와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를 강조해온 교황의 정신은 일맥상통한다”고 덧붙였다. 트베이트 총무는 방한 기간에 국내 개신교계에 WCC 성공적 개최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남북한 교회의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는 회원 교단 방문에 이어 9일 천주교주교회의를 찾아 교황과의 면담 내용을 전달했다. “교황은 8월 방한을 앞두고 남북한 교회의 연대와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고 있었다. 한국의 ‘기독교 패밀리’가 함께 교황의 방한을 환영하고, 서로 대화하기를 바란다.” 트베이트 총무는 남북한 교회의 교류를 위한 계획도 밝혔다. 그는 “6월 스위스에서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관계자를 초대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영주 NCCK 총무도 “8월 15일 한 주 전 주일(일요일)에 세계 교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는 취지의 남북한 교회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37년 전,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3월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가정 환경을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교실에서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설문했다. 피아노며 전화기, 텔레비전이며 냉장고,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는지를 거수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학생은 팔을 들어 올릴 일이 별로 없었지만, 간혹 어떤 학생은 계속해서 들고 있는 오른팔이 아파 왼팔로 오른팔을 지지하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했다. 5학년 때까지의 그런 조사 방식이 6학년에 올라오자 설문지로 바뀌었다. 아마 내가 다닌 학교가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그나마 선진적인 방식을 따랐던 터였으리라. 방과 후 집에서 나는 설문지를 읽어가며 다를 바 없는 질문들에 신속하게 체크했다. 그러다 부모님의 최종 학력을 묻는 질문을 놓고 잠시 고민했다. 결국 어머니는 ‘중졸’에, 아버지는 ‘고졸’에 표시했다. 저녁에 아버지께서 귀가하셨다. 누나, 형과 함께 쓰는 책상에 놓인 그 설문지를 보셨던가 보다. 저녁식사를 마치자 아버지께서 옆방으로 나를 부르셨다. “병무야, 왜 설문지에 거짓말을 했냐?” 나는 무슨 말씀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네 부모 모두 국졸(초등학교 졸업)인데, 그리고 그걸 네가 잘 알고 있는데, 왜 거짓으로 표시해 놓았느냐?’라는 뜻이었다. 나는 ‘창피해서요’라고 말씀드리지 못하고 거멓게 탄 종이장판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다고 사실이 바뀌지는 않아.” 그러고는 방바닥에 놓인 설문지를 내게 돌려주셨다. 동시를 쓰신다는 6학년 담임선생님이 칠판 위에 걸어놓은 급훈 액자에는 세 줄로 ‘성실 정직 화목’이라고 씌어 있었다. 첫 행은 ‘성실’, 끝 행은 ‘화목’이었지만, 중앙에 박힌 글자는 ‘정직’이었다. 그날, 아버지의 그 말씀은 껌껌한 베갯머리에서도, 쥐들이 달리기 경주 하던 천장에서도 이명처럼 울렸다. 창피했다. 그날 이후, 삶의 돛은 ‘정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직 없는 성실은 그야말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묻게 되고, 정직 없는 화목은 (집단)이기주의가 되는 것이다. 십여 년 후, 그날 같은 3월 어느 날 저녁, 우리 집에서 영장 없이 끌려간 내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47시간 동안 취조받고 나왔을 때, 그리고 또 다른 한밤에 피투성이가 된 친구가 병원 응급실에서 내게 도움을 청했을 때, 언제 와 계셨는지 저물녘 어느 다방 건물 앞에서, 또 새벽녘 종합병원 응급실 문 앞에서 우두커니 나를 기다리시던 아버지께서는 귀갓길에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아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마음 졸이셨겠지만,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라고는 차마 아들에게 말씀하시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측지연(不測之淵). 연못의 깊이를 알 수 없기에 불안하셨겠지만, 당신께서 박아놓은 말의 돛이 이미 펼쳐졌기에 묵묵히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이 말의 운명이다.윤병무 시인}

“올해는 가톨릭의 해죠.” “홍보가 필요 없겠어요. 가톨릭 최고의 브랜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죠.” 며칠 전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개신교와 가톨릭, 불교, 원불교 홍보 담당자들과 조촐한 저녁 식사 모임이 있었다. 소속 종단은 다르지만 일선 실무자들이 종교 간 대화를 나누는 뜻깊은 자리다. 이날 모임의 화두는 단연 가톨릭과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종교 지도자에게 적합한 표현은 아닐 수도 있지만 시쳇말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참석자는 “‘KFC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웃고, 어려운 이들의 손을 잡아 주니 어떻게 마음이 안 끌리겠냐”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에 이어 사목방침을 다룬 ‘복음의 기쁨’도 큰 반응을 얻고 있다. 천주교주교회의에 따르면 이 책은 2월 출간 이후 2만 부 이상 판매됐다. 교황과 관련한 문헌들의 평균 판매량이 3000∼4000부라는 것을 감안하면 폭발적 인기라는 설명이다. 프란치스코 효과는 27일 로마 바티칸에서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동시에 시성(諡聖)되는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등 다른 교황에 대한 관심을 높이면서 가톨릭 전반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가톨릭출판사는 최근 ‘요한 23세 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 등 두 교황과 관련한 책을 5종이나 출시했다. 종교 지도자들과 대중문화계 스타의 인기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그 인기가 특정 종교에 엄청난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이미지를 초래한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한다. 국민적 존경을 받은 김수환 추기경이나 입적 당시 수많은 추모 인파가 몰렸던 성철 스님은 각각 가톨릭과 불교의 큰 자부심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들 삶의 공통점은 종교적 열정과 가난한 삶,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깊은 연민이었다. 특정 종교를 뛰어넘은 존경과 사랑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이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끌린 것이다. 과장하면 이런 지도자를 갖지 못한 종교는 불행하다. 홍보 담당자들의 고민도 더 깊어질 것이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1961년 3월 한국 불교사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선교(禪敎)를 겸비해 불교계 안팎에서 존경을 받던 해안 스님(1901∼1974)이 전북 부안군 내소사에서 자신의 장례를 치른 것. 해안 스님의 제자 10여 명이 스승이 탄 꽃상여를 멨다. 이 상여는 지장암에서 출발해 일주문을 돌아 다시 부도전으로 향했다. 내소사와 약 1km의 상여길 주변에는 보기 드문 광경을 보려는 1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행렬이 멈추고 상여 밖으로 나온 해안 스님은 군중을 향해 “대나무 매듭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육십 평생을 매듭 짓겠다”며 “이제 시시비비를 가리며 지냈던 모든 일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절을 가득 메운 군중 사이에서 어린 사미승이 드라마 같은 장면들을 한순간이라도 놓칠세라 지켜보고 있었다. 해안 스님의 어린 제자로 지금은 서울 성북구 전등사의 주지가 된 동명 스님(64)이다. 53년이 흘러 이제 당시 스승의 나이를 넘어선 동명 스님이 스승의 장례를 재현한다. 지난달 25일 전등사를 찾아 해안 스님의 생존 장례식 사연과 이를 재현하는 제자의 사연을 들었다. 장례 장면은 6일 내소사에서 촬영된다. ―왜 장례 장면을 재현하나. “나이 들면서 세속의 부자(父子)처럼 어릴 적부터 키워주고 수행자의 삶을 이끌어준 은사 스님이 너무 그립다. 은사의 삶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2년 전부터 BTN불교TV 제작진을 도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었다. 은사의 삶에서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겠다’고 선언한 그 장면이 빠질 수는 없다.” ―은사 역할을 맡아 꽃상여를 타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 처음에는 배우를 쓰려고 했는데 스님들이 상여를 메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은사 역할을 맡기로 했다. 외람된 일이다.” ―스님들 중 살아 자신의 장례를 치른 사례가 있나. “중국은 모르겠고 국내에서는 이런 사례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해안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제자들을 무릎에 앉히고 수행자의 삶을 가르쳐 준 아버지 같은 분이다. 그때 무릎에서 배운 게 지금도 남아 있다.” ―은사는 17세 때 백양사 조실 학명 스님의 인가(認可)를 받아 가장 젊은 나이에 깨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7일 안에 깨쳐야 한다’는 말도 하셨다. 이른바 돈오점수(頓悟漸修·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점진적 수행단계가 필요함)’, ‘돈오돈수(頓悟頓修·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면 수행이 더 필요하지 않음) 중 어느 편에 있었다고 보나. “생전 그 논쟁을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신 기억이 난다. 은사의 가르침은 불법(佛法)이 스님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업과 성(性)에 관계없이 열심히 수행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신도 모임인 불교전등회를 왕성하게 지도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은사의 옛 사진과 시를 보여주던 동명 스님은 “은사가 돌아가시기 전 비에 뭐 새기고 지저분하게 요란 떨지 말라고 당부했다”며 “심지어 쓸 글도 정해주셨다”고 말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실제 탄허 스님이 쓴 해안 스님의 부도(浮屠) 앞 비석에는 장식이나 장황한 기록 없이 ‘해안범부지비(海眼凡夫之碑)’라고 적혀 있다. ―기억에 남는 가르침이 있다면…. “비석 뒷면에 적힌 글이다. 생사어시 시무생사(生死於是 是無生死), 죽고 사는 것은 이것(마음)에서 나왔으나, 이것에는 생사가 없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일부 대형교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 연합단체를 중심으로 한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개신교계에서 23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해 통합을 선언했던 서울 강동구 강일로 수림교회(김동진 목사·71)와 서울중심교회(김상기 목사·54)가 이날 통합 감사예배를 올린 것. 29일 낮 12시에는 김동진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 및 김상기 목사의 담임목사 취임 예배가 예정돼 있다. 교회 통합은 개신교 전래 초기나 교회 개척 단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 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두 교회의 통합은 교계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26일 두 교회의 이름을 따서 새롭게 출발하는 서울수림교회에서 ‘양김(兩金) 목사’를 만났다. ―어떻게 정당 합당보다 어렵다는 교회의 통합을 이뤘나(웃음). “원로목사님 얘기부터 들어야.”(김상기 목사) “우선 하나님의 뜻이다. 담임목사님을 통합 이전에 제대로 본 적이 없었지만 한 번 오셨을 때 그대로 마음이 통했다.”(김동진 목사) “아무리 사심 없어도 교회 건축까지 끝냈으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30년 넘게 한 교회서 목회를 했으면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원로목사님께서 흔쾌히 마음을 비우셨다.”(김상기) ―건축 기간에 이웃교회를 빌려 쓰는 경우는 있어도 통합 소식은 최근 들은 적이 없다. “맞다. 오래전에는 통합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드물다.”(김동진) “신자가 20, 30명으로 개척 상태라면 몰라도 성인 기준 200여 명(수림교회), 300여 명(서울중심교회)으로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춘 교회에서는 없었던 일 같다.”(김상기) 이전 두 교회는 직선거리로 약 5km 떨어져 있다. 2011년 지상 5층, 지하 2층 규모의 교회 건축을 끝낸 수림교회는 지난해 김동진 목사의 은퇴에 앞서 후임 목사를 찾고 있었고, 공간을 임대해 교회를 운영하던 서울중심교회는 교회 건축을 준비하고 있었다. 청빙 소식을 들은 김상기 목사가 지난해 10월 수림교회를 찾아 통합을 제안했다. 수림교회는 건축으로 생긴 부담을 나누고, 서울중심교회는 교회 건축이 필요 없는 ‘윈윈’이었다. ―통합 과정은 어땠나. “통합 논의 뒤 2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초 두 교회의 공동의회에서 통합안이 통과됐고, 12월 25일 첫 공동예배를 가졌다.”(김동진) “통합 논의 때 목사님께서 혼자와도 좋고, 교회 전체가 와도 좋다고 하시더라.”(김상기) “이전부터 건너편 교회에 훌륭한 목사님이 계시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대화해 보니 신학과 목회, 선교관에서 공통점이 많았다.”(김동진) ―경제적인 이유 말고 무엇 때문에 통합이 가능했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재 교계에는 비생산적인 면이 많다. 교회들이 통합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그 어려움을 그대로 감수한다. 목회자들이 어느새 생긴 편안함과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김상기) “목회자 입장에서 통합하면 분명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 김 목사님과 함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겠다고 의견을 모았다.”(김동진) ―그래도 어려움은 없었나. “입만 열면 사랑과 포용을 얘기하는 교회가 이 정도도 못하면서 무슨 사회를 향해 봉사하고 사랑을 얘기할 수 있겠나.”(김상기) “이제 어려움을 넘어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원로목사로 요한 봉사단을 통해 성경통독운동을 벌이고, 음악 선교에도 힘을 쏟고 싶다.”(김동진)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장면1 14일 첫 비구니 군승(軍僧)이 탄생했다. 명법 스님이 이날 발표된 국방부 군종장교 선발 최종합격자에 포함된 것. 비구니 군승은 1968년 군승제도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었다. 여성 성직자의 군종장교 파견은 다른 종교를 망라해도 최초의 일로 불교계의 경사였다.#장면2 19일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회는 호계위원의 자격을 ‘비구(남성 스님)로 하지 말고 승려로 하자’는 취지의 종헌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67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찬성 46, 반대 20, 무효 1표로 종헌개정 정족수인 54표에서 8표가 부족했다. 여기서 중앙종회는 국회, 호계위원은 사법부 판사에 해당한다. 조계종에 따르면 비구는 5602명, 비구니는 5281명이다. 비구니 승가는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큰 규모다. 이들은 수행과 포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조계종 헌법인 종헌에서는 비구니의 경우 말사(末寺·본사 주지가 임명권을 행사하는 사찰) 주지와 중앙종회 의원(81명 중 10명)을 빼면 종단의 선출직을 맡을 수 없다. 특히 이 개정안의 부결은 비구니가 비구의 잘잘못을 감히 따질 수 없다는 비구들의 전통적인 정서가 반영돼 있다. ‘100세 비구니일지라도 새로 계를 받은 비구에게 예를 표하고 가르침을 받으라’ 등 비구니가 비구에게 지켜야 할 이른바 ‘8경계(八敬戒)’의 영향이다. 비구니, 여성과 관련한 불교 단체들은 개정안 부결에 대해 “부처님의 평등정신을 거스르는 반불교적이고 반승가적인 행위”라고 반발했다. 비구니 종회의원 일운 스님은 “6월 중앙종회에 다시 상정해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8경계는 ‘모든 물이 바다에 이르면 짠맛으로 통일된다’며 신분에 관계없이 출가를 허락한 부처의 평등사상에 맞지 않는다. 설령 비구와 비구니를 구별하는 언급이 있다 해도 당시 시대상과 남성 위주의 승단에서 여성을 보호하려는 취지였으리라. 25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그 구절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도박사건과 동화사 주지 자리를 둘러싼 갈등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는 게 비구 위주 조계종단의 현주소다. 비구니 군승을 탄생시키고 끊임없는 자성과 쇄신을 주장해 온 조계종의 바람직한 선택을 기대해 본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개신교 목사들은 아들이 대를 이어 목회자가 되는 것을 큰 축복으로 여긴다. 그러나 축복은 어느 순간 딜레마가 된다. 아버지 목사가 교회를 개척해 중대형교회의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대형교회로 꼽히는 명성교회의 김삼환 담임목사(69)와 아들 김하나 목사(41)가 변칙 세습 논란에 휩싸였다. 아들 김 목사는 8일 경기 하남시에 세워진 새노래명성교회 창립 예배에서 담임 목사로 취임했다. 이 교회는 명성교회가 토지와 건축 비용을 들여 분립, 개척한 것으로 기존에 운영하던 하남기도실 교인 600여 명을 흡수했다. 교회 세습을 반대해온 한 단체는 성명에서 “새노래명성교회 창립은 변칙된 교회 세습”이라고 주장했다. 아들 김 목사는 지난해 교회 세습을 금지하기로 한 소속 교단인 예장 통합의 결의와 관련해 “세습 금지는 하나님이 주신 시대의 요구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신교의 교회 세습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길자연 목사와 현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도 각각 왕성교회(길요나 목사)와 경서교회(홍성익 목사)를 아들에게 물려줬다. 일각에서는 아들 목사가 교회 개척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유능하다면 세습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후임 목사와 원로목사의 갈등으로 혼란에 빠진 교회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세습 문제를 바라보는 원칙은 역설적으로 김하나 목사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세습 금지는 구차한 이유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신 시대의 요구, 즉 신앙과 시대적 요청이라는 두 가지 면에서 볼 때 피할 수 없는 명제다. 부와 권위를 물려받고 있는 일부 2세 목사와 달리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열악한 현실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 교회 5만여 곳 중 4만여 곳이 미자립 상태라는 통계도 있다. 기업 세습도 문제가 되는 게 요즘 세상이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다. 자수성가한 기업처럼 교회를 ‘지상의 왕국’으로 만들어 아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 아들과 교회를 위해 2세 목회자를 고난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절집의 큰어른 스님 같으세요. 호호.” “오늘 스님들과 옷 색깔 좀 맞췄는데. 허허.” 가톨릭 노(老)주교의 농담에 비구니 스님은 다시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비울수록 가득하네’의 저자이자 ‘힐링 어머니’로도 불리는 정목 스님(53)과 천주교 춘천교구장을 지낸 장익 주교(81)의 말이다. 17일 정목 스님이 진행하는 인터넷방송 유나방송이 있는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명상센터에 이색손님들이 찾아왔다. 비구니의 삶을 다룬 영화 ‘길 위에서’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47)은 장 주교보다 한발 먼저 도착해 센터 구경에 바빴다. 》○ “스님 같다는 분도 있어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로만 칼라 차림의 노신부와 스님, 영화감독이 어색하지 않게 공양게(供養偈)를 함께 읽은 뒤 수저를 들었다. 들깨를 넣은 쑥국과 봄나물 식단이다. 장 주교와 정목 스님의 인연은 22년 전인 1992년으로 거슬러 간다. 장 주교가 스님이 진행하던 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의 애청자가 된 것. 목소리만으로 팬이 된 당시 장 신부는 정목 스님과 가까운 지인을 통해 점심을 사고 싶다고 연락했다. “인사동에서 열무김치가 나오는 보리밥을 사주셨어요. 나이 차가 적지 않았는데도 다른 종교의 대등한 종교인으로 맞아주시는 것이 너무 놀랍고 좋았어요.”(정목 스님) 장 주교는 ‘왜 다른 종교인들과 가깝게 지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불교와 가톨릭은 발심해 수행하고, 대중과 같이 생활하고, 본사나 교구 같은 소속감이 있다는 게 비슷하죠. 형식은 다르지만 의식을 치르면서 기도도 하죠.”(장 주교) “발심, 수행, 대중, 모두 불교적 언어인데요.(웃음)”(정목 스님) “가끔 대화하다 저보고 스님 하며 농하는 분도 있는데 잘 봐주신 거죠. 그 말이 싫지는 않아요. 하하.”(장 주교) 두 사람은 장 주교가 춘천교구장으로 옮겨간 뒤에도 소식을 전하며 종교를 넘어 인연을 쌓아왔다.○ 인연은 돌고 돌아… 이들의 인연은 요즘 말기암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이 감독에게 이어졌다. ‘길 위에서’를 관람한 뒤 홍보대사를 자처한 정목 스님은 지난해 8월 도반 혜욱 스님이 주지로 있는 춘천 봉덕사에서 법문 요청이 들어오자 극장에서 신도들과 영화를 본 뒤 법문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장 주교를 정목 스님은 이 감독에게 소개했다. “제 마음의 ‘방어막’이 좀 단단한 편인데 가장 빨리 마음을 뺏은 분이 정목 스님이죠(웃음). 8개월 가깝게 경기도 포천에 있는 가톨릭계 호스피스 병원 문을 두드렸는데 실패했어요. 영화를 포기하려 할 때 주교님 도움으로 촬영을 시작해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어요.”(이 감독) 세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의 문제로 옮겨갔다. “탄생만큼 죽음도 귀해요. 본인에게 쉬쉬하는 죽음이 어디 있습니까? 누가 대신 죽어줍니까. 그 사람의 인생이죠. 하느님도 대신 못 살아줘요.”(장 주교) “불교는 죽음을 경사로 봐요. 주교님 말씀이 법문 같아요.”(정목 스님) “세상이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즐거움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준치가 높아져 힘들어하고 쉽게 목숨을 버리는 분들도 있습니다.”(이 감독) 장 주교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땅에서 나오려면 죽을힘을 다한다”며 “삶의 모든 순간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창가 밖 뜰에는 노란 복수초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장 주교는 “온통 좋은 일만 있어서는 인생의 스토리가 엮어지지 않아요”라고 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내 시선을 사로잡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란 게 분명 있다. 그건 영화의 스토리와는 사실 무관한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라는 것이 거의 뻔한 거짓말이거나 억지로 꿰어 맞춘 구성이라서 내게는 별스러운 흥미를 주지 못한다. 내 시선을 붙드는 장면은 사람의 속마음이 언뜻 드러날 때이다. ‘아, 저 여자는 남자를 사랑할 때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저 남자는 저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그런 인상적인 장면이 내 눈에 포착되면 참을 수 없는 연민에 젖어 흐느끼거나 미친 듯이 메모지에 무언가를 갈겨 대었다. 나는 예술이란 이름으로 기괴하고 특별한 미장센을 내세우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때 영화광들의 불법 비디오 복제물로 자주 오르내렸던 피에르 파솔리니의 영화도 자극적이지만 싫었다.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은 우화극 같아서 그저 그랬고, TV 3부작 ‘화니와 알렉산더’는 안데르센 동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을 넘어가던 어느 날 문득, 내 손에 타르콥스키의 영화 ‘희생’ 비디오테이프가 입수됐다. 세 시간 가까이 그 느린 영상속도를 견디느라 혼이 났다. 졸음이 엄습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잠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 수 없었다. 느릿하게 지나가는 장면들이 더욱 집요하게 내 잠을 들쑤시고 다녀서 비몽사몽간에 현실과 꿈속의 경계를 넘어 다닌 듯하다. 그렇게 세 시간 가까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절정의 미장센을 마주하게 된다. 언덕 아래 집은 불타고, 늙은 남자는 낮은 진흙땅을 미쳐 돌아다닌다. 신, 혹은 마리아는 칠분 능선쯤에 서서 인간의 운명을 내려다볼 뿐. 아주 작고 흰 앰뷸런스가 오고 있다. 시적 상징과 삶의 철학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이다. 아, 영화라는 것이 시와 철학과 그림과 음악과 연극과 무용을 모두 한 장면 속으로 호출하는구나. 영화가 결국 삶의 총체적인 장관을 보여주는구나. 그 이후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나의 스승이었다. 나는 그의 재미없는 영화를 어떻게든 전부 구해 보았고 그의 영화 작업 노트에서 평생 지켜야 할 예술가의 태도를 하사받았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은 모두 부패한다.’ 1986년 타르콥스키가 칸 영화제 그랑프리상을 받고 죽던 해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란 나의 첫 시나리오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연극판을 기웃거리고 있다. 타르콥스키가 남긴 그 말 한마디는 여전히 목의 가시처럼 남아서 나의 삶을 불편하게 한다.이윤택(연극 연출가)}

《 산 아래 작은 암자에 사는 작은 스님을 찾아나섰다. 전날 책 한 권을 받았다.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담앤북스·사진).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현진 스님(48)의 책이다. 내친김에 전화로 “내일 공양 됩니까” 했더니, 어서 오란다. 12일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는 충청도에 들어서자 호우(豪雨)가 됐다. 스님은 ‘삭발하는 날’ ‘잼 있는 스님이야기’ 등으로 불교계에서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3년 전 충북 청원군에 마야사를 세워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인상 깊은 책 구절에 스님과의 대화를 추임새로 넣었다. 》# 여름 내내 바람 피웠던 놈들이네. 예부터 부채를 일러 ‘지죽상혼 기자청풍(紙竹相婚 其子淸風)’이라 했다. 즉, 종이와 대나무가 만나서 그 자식이 맑은 바람을 낸다는 말이다. ―부채가 몇 개나 되나. “예? 아, 부처라고 들었어. 뭔 소리인가 했지. 하하. 합죽선 셋 하고 한 열 개쯤. 여름에 손님들에게 50개쯤 선물로 줬어. 바람 잘 피우라고, 잘 피웠는지 모르지만.”# 밭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속상하다. 어제 절 식구들이 모여 풀에게 ‘항복 선언’을 했다. ―책에 반농반선의 삶이라는데…. “아니다. 반반농(半半農) 반선이다. 농사가 염불보다 훨씬 힘들다.” ―3년 농사 점수를 준다면…. “30점이나 될까. 절집 식구 셋이서 500평 밭 풀 뽑기 힘들어 그냥 뒀더니 개망초가 지천인데 너무 예쁘더라. 그런데 이웃에서 제발 풀 좀 베 달라고 하더라. 풀씨가 이웃 밭으로 날아온다고 해서 허둥지둥 풀을 벴다.”# 한 번은 선어록을 들추다 치절(痴絶)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어 절 이름 삼을까 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치절은 무슨 뜻…. “어리석음을 끊는다는 건데, 치절암은 어째 발음이 영….” ―마야사는 좀 평범하다. “늙어 암자를 다시 지으면 수졸암(守拙庵)으로 하려고. 나서지 않고 졸렬함을 지킨다는 의미로.”# 어머니는 평생 고집하던 쪽머리의 비녀를 빼고 긴 머리를 자르고 뽀글뽀글 파마를 하시고 아이처럼 웃으셨다. ―왜 파마를…. “마흔 넘어 나를 낳은 어머니는 항상 나이 든 엄마였다. 그 기억 때문인지 4년 전 여행 가면서 파마 하자고 권했다.” ―곁에서 모시고 싶다는 말도 했다. “몇 해 전 2박 3일 절에서 모신 적이 있다. 근데 대구 형님댁 개밥 줘야 한다고 가시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개 안 키우더라. 하하. 노인에게 진짜 효도는 편하고 익숙한 것이다.” ―속가를 멀리하라는 말도 있다. “젊을 때는 그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누구든 부처인데 하물며 어머니 눈에 눈물 내면 되나.”# 호빵을 맛나게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미련 없이 산문(山門) 속으로 들어갔다. ―출가 때 얘긴데, 지금도 호빵 좋아하나. “겨울 되면 생각난다. 그때 내게 호빵은 세속의 상징이었다. 스님들 열의 열은 밀가루로 만든 것을 좋아한다.”# 지난 동지 때 신도들과 팥죽을 나누면서 새해부터 3소 운동을 실천하자고 했다. 이른바 미소, 검소, 간소다. ―3소 운동은 왜…. “스님은 ‘서비스업’이다. 가끔 ‘그렇게 행동하려면 절에 오지 말라’고 하는 스님도 있다. 이 말은 서비스업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신도 없는 절, 교회, 성당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청원=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1969년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이른바 ‘축구전쟁’이 일어났다. 100시간 전쟁이라고도 한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갈등 관계에 있던 두 나라가 월드컵 예선전을 치르다 응원단 간에 싸움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전쟁을 벌인 것이다. 최근 개신교단에서 축구가 발단이 된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 용산구 청파로 삼일교회 게시판에는 7일 송태근 담임 목사의 글이 게시됐다. 송 목사는 ‘모든 성도님들과 삼일교회 성도님들에게’라는 글에서 “사랑의 교회 부교역자들과 삼일교회 부교역자들 간의 친선 축구도 제가 신중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송 목사는 또 “문제는 리더의 결정”이라며 “리더의 결정은 소양과 판단, 가치관에서 나오는데 제가 그 면이 너무 부족했다”고 했다. 중견교회의 담임 목사가 자질까지 언급하며 사과한 ‘축구 유감’의 전말은 이렇다. 축구를 좋아하는 두 교회의 목회자들은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친목 축구 경기를 했다. 사랑의 교회가 제작하는 교회 신문은 이 내용을 기사로 다뤘고, 송 목사와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가 웃으면서 어깨동무한 사진도 게재했다. 그러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오 목사와의 공개적인 만남과 오 목사가 강단에 복귀하는 사랑의 교회 예배에 송 목사가 참여한 것과 관련해 “그 나물에 그 밥” “유유상종”이라는 비난들이 이어졌다. 사랑의 교회는 오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과 학력 시비로 오랜 갈등에 휩싸여 있다. 일부 신자는 새로 건축한 교회에 들어가지 않은 채 옛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교회를 개척한 고 옥한흠 목사의 아들 옥성호 집사는 최근 오 목사와 교회 운영을 풍자하는 듯한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를 출간했다. ‘축구 전쟁’이 남긴 교훈은 상대방에 대한 비합리적인 증오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느냐다. 누군가가 두 교회의 친목 축구를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썼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랑의 교회는 오 목사의 것이 아니라 많은 신자의 신앙 공동체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이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축구도 함께 못하게 하는 따돌림이 아니다. 축구는 축구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서정기 동양문화연구소장(76·사진)이 13일 서울 성균관대 명륜당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제30대 성균관장으로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