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인생은 공(空), 파멸.” 조각가 권진규(1922∼1973)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유서에 남긴 말이다. 생전 개인전을 세 번밖에 열지 못했던 그는 사후에야 ‘근대 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며 재평가받았다.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회고전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회고전 중 최대 규모로, 1950∼1970년대 조각 137점과 회화, 드로잉, 아카이브 등 총 173점을 시기별로 선보인다. 유족의 기증작과 함께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고려대박물관, 리움을 비롯한 기관과 개인 소장자에게 대여 받은 작품들로 구성됐다. 방탄소년단 멤버 RM이 소장한 조각품 ‘말’(1965년)도 포함됐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여인상이다. 전시 제목 중 ‘노실(爐室·가마가 있는 방)’은 권진규의 아틀리에를 의미한다. 그가 아틀리에를 짓고 작품 활동에 전념했던 시기에 가장 많이 만든 것도 여성 흉상이다. 여인상의 제목은 모델의 실명이다. 대개 권진규가 미술대 강사일 때 만난 제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대표작 ‘선자’(1966년), ‘지원의 얼굴’(1967년), ‘현옥’(1968년)을 보면 신체 부위가 단순화돼 있다. 머리카락이나 옷 장식이 생략돼 관람객은 여인상의 얼굴만을 똑바로 마주한다. 권진규의 작품에 기가 서려 있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옥’ 소장자 김현옥 씨(75)는 모델로 섰던 때를 떠올리며 “선생은 긴장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말이 많지 않고 담백한 사람이기도 했다. “두 달간 작업실을 드나들었는데 거리를 둬 비밀스러우셨어요. 제 얼굴 한쪽을 빚다가 ‘현옥이는 고생을 참 안 했나 보구나’ 농을 치기도 하셨죠. 집중하는 순간순간 얼굴에 분노나 격정이 보였고요.” ‘불상’(1971년), ‘흰소’(1972년)에서 볼 수 있듯 동물상, 불상, 탈 가면 등 다양한 형상을 만들었다. 그중 초기작 ‘기사’(1953년)는 그가 석조 조각의 맥을 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젊은 여인과 말의 형상을 담았다. 다섯 개의 면으로 이뤄져 각 면마다 각기 다른 형상을 띠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애제자였던 김정제 씨(71)는 “선생은 작품을 자식이라 불렀다”고 회고했다. “선생은 이따금씩 ‘정제야, 너는 현실과 타협하며 살거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권진규 스스로는 당대 추상 조각의 유행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 자신만의 색깔을 작품에 담았다. 권진규는 후기로 갈수록 모델의 내적 세계를 담는 데에 천착했다. 자신을 승려로 형상화한 ‘가사를 걸친 자소상’(1969∼1970년), 예수의 번뇌를 담아낸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1970년)가 대표적이다. 한희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권진규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영혼, 사라지지 않는 영원성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전시 공간은 권진규의 정체성을 곳곳에 반영했다. 전시장에는 우물과 가마를 떠올리게 하는 모양의 좌대가 삼공블록과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1965년 신문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권진규가 삼공블록과 벽돌을 이용해 자기 작업실을 형상화한 데서 착안했다. 5월 22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서울시립미술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전시장에 들어서면 동그란 원형 좌대와 따로 마련된 네모난 공간이 눈에 띈다. 우물과 가마의 형상이다. 이 둘은 권진규와 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가 주로 썼던 기법인 테라코타(흙으로 빚어 불에 굽는 방식)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 안에는 실제로 그가 작업하며 썼던 우물과 가마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렇듯 이 전시 공간은 권진규의 정체성을 곳곳에 반영하고 있다. 전시장을 건축한 김세진 지요건축사사무소장은 “별스럽지 않음”을 이 공간의 특징으로 꼽았다. 지난해 9월, 김 소장이 권진규 아틀리에에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느낌이기도 하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문, 가공되지 않은 벽, 특별한 물성이 느껴지지 않는 면들, 무덤덤한 선반…. 모든 것이 보편적이고 별스럽지 않았다”는 것. 김 소장은 그런 담백함을 전시 공간에도 그대로 투영했다. “요즘은 전시장 자체가 재밌게 꾸며진 공간들이 많지만, 이 공간만큼은 작품을 위한 배경을 자처하고 싶었다”는 김 소장의 의도는 좌대에서부터 드러난다. 좌대는 무광에 흰색이다. 심심해보일 정도로 특징이 없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권진규 조각의 질감과 색을 부각시킨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좌대 밑을 바치고 있는 것들이 삼공블럭과 벽돌이란 것이다. 이는 1965년 신문회관에서 1회 개인전을 열었을 때 권진규가 삼공블록과 벽돌을 이용해 자기 작업실을 형상화한 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주로 볼 수 없었던 재료는 이질감을 주기도 한다. 김 소장은 “블록과 좌대 사이에 공백이 있다. 날것의 재료처럼 보이는 블록이 완성 이전의 단계를 뜻한다면, 좌대부터는 온전히 작품을 위한 무대처럼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각 뒤로 벽을 세워 다른 작품으로의 시선을 차단한 것들은 은연중에 중요함을 내포한 작품들이다. 자신을 예술가 이전에 장인이라 생각했던 권진규의 의지를 살펴볼 수 있는 ‘손’(1963년),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린 ‘지원의 얼굴’(1967년), 한 교회가 제작을 의뢰해놓고 누추하다는 이유로 반려해 평생 작가의 작업실에 있었다는 조각상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1970년) 등은 그의 예술 세계에 빠질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이중 가장 넓은 공간을 홀로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승려로 자신을 표현한 말기 작품 ‘가사를 걸친 자소상’(1969~1970년)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죄송해요. 제가 수다쟁이가 됐네요.” 지난달 31일 화상으로 만난 배우 김태리(32·사진)는 해맑은 소녀를 연상시켰다. 화면 밖으로 뻗는 큰 동작과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내내 이어졌다. “아직도 애처럼 주체를 못 하고 이럴 때가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한숨을 쉬기도 해요. 그게 희도랑 닮았어요.” 희도는 3일 종영한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그가 맡은 주인공인 18세 펜싱 국가대표 선수. 드라마는 1998년을 배경으로 청춘의 방황과 성장을 그렸다. 김태리는 방송을 보고 “희도를 더 바보 같고 멋있고 예쁘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고 했다. 그는 “희도는 애써 말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사랑스럽고 건강하고 빛나는 아이다. 이 정도로 사랑받을 줄은 몰랐다. 뭘 해도 다 용서해주시니 ‘더 해도 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희도는 개구쟁이지만 누구보다 단단한 캐릭터. 김태리가 이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다. 김태리는 “다른 것에 기대지 않고 혼자서도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캐릭터가 좋다”고 했다. 귀족 아가씨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하녀로 접근하는 소매치기 숙희(영화 ‘아가씨’)나 양반가 규수에서 의병 총잡이가 되는 고애신(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 그가 앞서 연기한 캐릭터도 주체적이다. 그는 현재 영화 ‘외계+인’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고려 말과 외계인이 출몰하는 현재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이어 그와 류준열이 각각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여러분, 기사나 책을 통해 ‘예술로 아픔을 승화한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문자로만 놓고 보면 조금 따분한 말이지요. 오늘 소개드릴 작가는 이 진부한 문장을 인생에 걸쳐 증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출신 대표 현대예술가 니키 드 생팔(1930~2002)인데요. 화려한 문양으로 뒤덮인 풍만한 여성상 ‘나나’로 유명한 작가입니다.지금 롯데갤러리 본점 4층에 가면, 나나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담은 판화 시리즈 ‘나나 파워’가 곳곳에 배치돼있습니다. 생기 넘치는 색과 움직임에 기분 좋은 에너지를 얻게 되는 작품들입니다.그런데 사실 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은 니키가 어떻게 나나를 만들어냈는지 그 일대기를 따라가봅시다.남들 다 그리는 ‘사랑’ 이야기가 어려웠던 작가니키 드 생팔1. 니키 드 생팔은 유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성적학대를 당했다. 치료 목적으로 본격 미술에 입문하면서 짓눌렀던 공포와 두려움을 해소한다.2. 초기에는 남성이나 가부장 사회를 향한 공격적인 작업을 했다. 작업하며 분노를 표출했고, 그렇게 그는 세상과 본인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둬나갔다.3. 결혼, 사랑, 임신 등에 대한 비관은 차츰 긍정으로 바뀌어갔다. 행복한 여성상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조각과 드로잉에 나타나는데, 이것이 그의 대표작이 됐다.숨구멍이 된 미술아버지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아버지와 나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사랑이었던 모든 것이 증오로 변했다. 나는 살해되었다고 느꼈다.니키 드 생팔은 64세가 되던 1994년, 회고록 ‘나의 비밀’에서 자신의 과거를 처음 밝힙니다. 11살이 되던 해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이죠.그는 이 사건을 오래도록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성장기를 홀로 고통 속에서 보낸 거죠. 퇴학과 전학을 되풀이하던 그는 17세에 가출했고 생계를 위해 모델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친구였던 해리 매튜스를 만납니다. 과거의 기억을 잊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거라는 기대로 19살이 되던 해 해리와 결혼을 하고 21세에 딸 로라를 낳았죠. 그러나 힘겹게 모른 척 해왔던 마음의 상처가 잊힐 리 없죠. 그는 깊은 우울감에 빠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등 증세가 심각해지자, 23살이 되던 해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이때 니키는 치료를 위해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하는데요. 그는 그림을 통해 공포와 두려움을 표현하면서 예술에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나는 분노에 찬 젊은 여성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분노에 찬 많은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있지만 그들이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떠한 대안도 없었기 때문에 예술가가 됐다. 예술은 나의 구세주였다.결국 니키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했는데요. 그런 그에게 또 한 번의 전환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장 팅겔리(1925~1991)와의 만남입니다. 스위스 출신이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조각가 장은 당시 이미 유명한 작가였습니다. 니키와 장은 컬렉터와 작가로 처음 만났지만, 둘은 1956년 함께 작업을 시작하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이후 니키는 해리와 이혼한 후 장과 교유하면서 미술계에 전면 뛰어들게 됩니다.세상을 향해 총구를 겨누다니키의 초기작은 매우 공격적입니다. 그의 예술세계를 회고할 때 빠뜨릴 수 없는 1961년 활동을 살펴봅시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 있던 갤러리제이에서 첫 개인전 ‘마음대로 쏴!’를 열고 퍼포먼스를 선보입니다.작가는 관객에게 총을 주고 캔버스나 조각상을 향해 쏘라고 합니다. 남성 조각상이나 그림의 한 모퉁이에는 물감 봉지가 달려 있었는데요. 총을 맞으면 물감이 흐르면서 무작위로 뿌려지는 겁니다. 사격회화(슈팅페인트)라고 불렸죠.사격회화의 시초라 볼 수 있는 작품 ‘내 사랑의 초상화’(1961)도 시사하는 바가 명시적입니다. 넥타이를 맨 남성용 와이셔츠를 나무에 붙인 뒤 다트 핀을 던지고 물감을 쏴 만든 작품입니다. 표창을 던짐으로써 남성들을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작품이었죠.불만을 가졌던 대상을 향해 총이나 표창을 쐈던 것은 관객에게 사회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행위기도 했지만, 작가에게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행동이기도 했습니다.나는 아버지를 향해 쏘았다. 모든 남자들, 중요한 인물들, 나의 오빠, 사회, 학교, 수도원, 나의 가족, 나의 어머니까지. 그리고 다시 아버지와 나 자신까지도 겨누어 쏘았다.작가는 이렇게 분노를 표출하면서 신경쇠약을 많이 극복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거부하지 못했던 성 위계구조에서 해방되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으니까요.현재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인 신부 연작(1963년)도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일침입니다. 멀리서 보면 신부가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신부 옆으로 징그럽게 붙어있는 수많은 아기 인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는 사회에 대한 반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거죠.눈 감을 때까지 행복한 여성을 그리다이렇게 약 4년간 니키는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내면의 멍울을 가라앉혔습니다. 이 이후로는 작업 방향이 조금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남성으로 대변되는 기성 사회에 대한 부정을 온몸으로 표현했다면, 이때부터는 여성에 대한 존중감을 작품 속에 드러내지요.1966년 스웨덴 스톡홀름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를 살펴볼까요? 길이 28m, 폭 9m, 높이 6m. 딱 보아도 거대해 보입니다. 관람객들은 다리를 벌린 여성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데요. 그 안에는 우유 바, 천체관측대, 12석짜리 극장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관람객들은 자신이 태아였을 때를 상상하면서 그 공간을 누비게 되죠. 이 작품 이름은 ‘Hon’, 스웨덴어로 ‘여자’라는 뜻입니다. 여성의 성기는 성적 대상이기 이전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신성한 곳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앞선 작품 ‘신부’처럼 혼인이나 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던 작가가 이렇게 생각을 달리한 데에는 한 친구의 역할도 컸습니다. 니키는 미국 작가 래리 리버스, 그의 아내 클라리스와 친밀했던 사이였는데요. 어느 날 래리 리버스가 임신한 클라리스를 그린 드로잉을 보게 됩니다. 임신한 클라리스는 엉덩이도 크고 배도 불룩했는데 니키는 거기에서 편안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거죠. 깡마른 잡지 모델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던 건강한 생명력, 풍부한 몸의 곡선들을 말이죠.그래서 탄생한 형상이 ‘나나’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나나 파워(1970년)는 니키가 1965년부터 조각하고 그려온 나나를 17개의 그림 시리즈에 담은 작품입니다. 판화 곳곳에는 춤을 추며 삶을 찬미하는 듯한 행복한 여성상이 있습니다. 그림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김영애 롯데백화점 아트비즈실장과 대화해보았습니다.기자 : 나나 파워는 17점의 판화로 이뤄져 있습니다. 17점을 순서대로 봐야 하는 걸까요?실장 : 그림마다 번호가 있긴 하지만 어디서부터 보든 큰 상관은 없습니다. 대신 자세히 보시길 추천합니다. 중간중간 엉뚱해 보이는 그림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텐데요. 예를 들면 11번 그림 하단에는 ‘The Witches tea party’라는 글과 함께 두 여성이 그려져 있는데요. ‘마녀들이 차를 마신다’는 동화적 상상력이 묻어나는 그림입니다. 이런 글씨와 그림을 보면 니키가 일러스트나 디자인 분야에서도 독자적인 영역을 갖고 있었단 걸 알 수 있습니다.기자 : 17점이 하나의 서사를 가진 건 아닌가 보네요.실장 : 네 맞습니다. 동화책 삽화처럼 하나의 이어진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각각의 판화를 뜯어보면 니키의 사랑 이야기이라는 걸 금세 아실 수 있을 겁니다.기자 : 중간에 울고 있는 여성도 있던데요. 니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실장 : 재밌는 포인트입니다. 니키의 두 번째 남편인 장 팅겔리가 나중에 다른 여성을 좋아하게 됩니다. 니키는 그림 속에 우는 여성을 그리면서 “자기야, 나랑 함께했던 밤을 기억해?” 묻죠. 또 어떤 그림은 사랑을 나누는 남녀 모습을 그렸습니다. 어찌 보면 신파 같은 그림들이라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이 묘한 감동을 줍니다. 어릴 적부터 남성들로부터 성적대상으로 취급받아와 사랑이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작가가 오히려 이걸 유쾌하게 그려냈다는 건 굉장한 변화니까요.기자 : 그래서 작품 이름이 ‘나나 파워’인 거군요.실장 : 네. 이 작품 자체가 힘든 과거에 지지 않았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결과물이었으니까요. 작품 속 여성은 더 이상 남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예쁜 여성의 모습을 띠지 않습니다.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또 찬미하는 자존감 있는 여성의 여러 모습이죠. 그래서 니키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희망을 줍니다.나나 형상은 니키의 마지막 작품인 타로 조각 공원 조성 작업(1972~1998년)에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됩니다. 니키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이 조각 공원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마련하고 4년 뒤에 사망합니다. 눈을 감을 즈음 니키는 본인의 암울했던 유년기보다는 행복했던 근래의 기억들을 더 많이 떠올리지 않았을까요?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보다도 우선 자신을 위해, 자신의 행복과 안정을 위해 예술을 했던 작가는 모든 작품에 진심이었을 겁니다. 총을 쏘아대던 퍼포먼스도, 생기발랄한 나나도 말이죠.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한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공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여러분은 무엇을 할 때 마음이 편한가요? 또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요? 저는 니키의 작품을 보면서, 그것을 찾아나가는 것부터가 예술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전시 정보REJOICE : Bulletproof!2022. 2. 18 ~ 2022. 04. 25롯데백화점 본점 4층(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81)작품수 17점※‘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856년 독일 뒤셀도르프 지역의 네안데르 계곡에서 두개골 화석이 발견됐다. 사람의 뼈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동시에 여러 점이 달랐다. 오늘날 인류보다 머리는 더 크고 키가 작지만 몸은 우락부락했을 것으로 보이는 뼈였다. 인간 이외의 호모(Homo) 중에서 가장 처음 발견된 종, 네안데르탈이었다. 과학기술과 고고학 연구를 통해 네안데르탈인이 45만 년 전에 등장해 4만 년 전에 멸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멸종 이유에는 여러 가설이 있지만 지금으로선 명쾌한 해답이 없다. 그렇다 보니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인류의 족보에서 탈락한 종족’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종족처럼 그려진 것이다. 고고학자인 저자는 20세기부터 현재까지 네안데르탈인 발굴의 역사와 수천 개의 학술 연구를 정리한 이 책을 내놓으면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이런 오명을 일축한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은 무력하게 멸종을 기다린 종족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엄청난 기후 변화 속에서 수십만 년간 성공적으로 생존했다. 또 네안데르탈인의 번식에 대해 설명하며 기존 통념을 깬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현재 사하라 사막 이남 혈통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한 전 세계인의 경우 누구나 1.8∼2.6% 비중으로 네안데르탈인 DNA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이종교배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혼혈아들은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고 다시 자손을 낳았다. 그들과 호모 사피엔스의 만남은 또 하나의 생존법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현재 지구에 남은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하나다. 누군가는 “살아남을 운명이었기에 살아남았다”고 자아도취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다시 한번 지구의 유일한 주인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님을 알려준다. 네안데르탈인 역시 역동적인 삶의 주인공이었다. 그들의 역사를 살피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앤디워홀 저작권 분쟁 美 대법원으로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제작한 프린스 초상화의 저작권 분쟁이 미국 대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1984년 워홀은 미국의 한 패션 잡지 의뢰로 가수 프린스의 초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골드스미스가 이 초상화의 밑그림이 자신이 1981년 찍은 프린스의 흑백사진이라고 주장한 거죠. 워홀 재단은 저작권을 침해한 적 없다며 법원의 판단을 구했고, 골드스미스도 맞소송으로 대응했습니다. 1심은 워홀의 손을, 2심은 골드스미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미국 대법원은 오는 10월 심리할 예정입니다.잡음 속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다음달 23일부터 열리는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은 전시관 자체를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지게 할 모양입니다.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영철 예술감독은 “한국관 일부 천장을 제거해 드러난 내부 골조와 자연광, 냄새 등이 작품과 조응하는 풍경을 기대해달라”고 했습니다. 한국관 작가로는 김윤철이 나서서 설치 작품 7점을 선보일 예정입니다.사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이번 한국관 준비과정에서 드러난 잡음에 대한 지적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작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에 감독의 갑질 논란에 대해 진정을 넣었고 문예위는 감독 해임을 고려했으나 이행하진 않았습니다. 작가는 이날 “감독이 사과했다”고 밝혔지만, 갈등이 급히 봉합된 것 아니냐는 우려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330/112597723/1류준화 작가, 여성 독립운동가 그리다여성주의 미술 길을 걸어온 류준화 작가의 개인전 33인 여성 독립운동가에게 바치다가 서울 종로구 서울여담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초상과 그들을 기리는 현대판 제사상 그림이 함께 놓였습니다. 지난해 12월 한 달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중견작가전 카운트다운 2021에서도 짧게 소개된 적 있었는데요. 이번 전시는 류 작가의 과거작들도 포함된 데다 8월까지 이어지니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330/112597573/1※‘이번 주 미술계’는 한 주 간 눈 여겨 볼만한 미술 소식을 정리해드리는 코너로 매주 금요일 발송되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국내에 진출한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을 중심으로 잇달아 재개관하거나 추가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이들 갤러리의 재개관 전시는 미국과 유럽 작가들의 작품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미국 뉴욕에서 출발한 세계 정상급 갤러리 리만머핀의 서울 지점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용산구 한남동으로 15일 확장 이전했다. 첫 전시는 미국 작가 래리 피트먼 개인전이다. 피트먼은 인종 갈등, 성 불평등, 폭력 문제 등에 집중해 온 작가다. 개인전에선 대도시가 만들어지기까지 인류 사회가 남긴 잔재에 대한 고찰이 담긴 작품들을 주로 선보인다. 출품작은 1층 ‘불투명한’ 연작과 ‘반투명한’ 연작, 2층 ‘빛나는’ 연작 순으로 이어진다. 작품들은 다소 어두운 색채에 곤충이나 새 같은 생명체들이 등장했다가 대도시의 이면을 비춘 후 알이 기념비처럼 우뚝 서 있는 형상으로 끝이 난다. 작가는 수직적이고 권력 중심적인 도시 풍경에 연약하지만 생명을 잉태하는 알을 그려 넣음으로써 낙관적인 미래를 말한다. 5월 7일까지. 페이스갤러리는 지난해 확장 이전한 한남동 건물의 한 개 층을 29일 추가로 열었다. 이루리 페이스갤러리 팀장은 “회화전보다는 기술을 사용하거나 몰입형 전시를 선보이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빛’에 주목한 제임스 터렐, 래리 벨, 로버트 어윈, 피터 알렉산더, 헬렌 파시지안, 프레드 에버슬리의 그룹전이 현재 열리고 있다. 이들 작가는 1960년대 말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일어났던 미술 운동인 ‘빛과 공간 예술’을 주도했다. 이 팀장은 “자연과 밀접한 미국 남부 특성상 예술매체로서의 빛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터렐은 16세에 조종사 면허를 취득해 비행하면서 빛에 흥미를 느꼈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이뤄진 그의 설치작품 ‘Beneath the Surface’(2021년)는 2시간 반 내내 미묘하게 색이 변한다. 5월 28일까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에 전시장을 둔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는 지난해 10월 한남동에 입성한 후 현재 영국 작가 제이슨 마틴의 국내 첫 개인전 ‘수렴’을 열고 있다. 마틴은 물감에 시멘트를 섞어 바르거나 금속으로 작업하는 등 조각과 회화의 경계에서 재료에 대해 고민해 온 작가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신작 회화 11점은 ‘알루미늄 회화’라는 새로운 시도의 결과다. 신작들은 은은한 광채를 품고 있다. 캔버스 천이 아닌 알루미늄 지지대 위에 붓질을 했기 때문이다. 반복적이고 역동적인 붓놀림 덕에 작품은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주는 조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붓질의 흔적은 작품 중심부에 위치한 하나의 점에서 끝난다. 이는 작가가 관심을 가졌던 아시아의 보자기 포장 방식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16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이달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재개관하거나 추가로 공간을 열고 유럽,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미국 최정상급 갤러리인 리만머핀은 2017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개관했으나 올해 용산구 한남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다국적 갤러리 페이스갤러리도 지난해 확장 이전한 한남동 건물의 한 개 층을 추가로 오픈했다. 리만머핀은 15일 서울 6호선 이태원역 근처에 새 전시장을 열고,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래리 피트먼을 소개했다. 그는 인종 갈등, 성 불평등, 폭력과 같은 병리적 현상에 집중해왔다. 이번에는 도시를 그리면서 하나의 대도시가 만들어지기까지 인류 사회가 남긴 잔재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한다. 출품작은 1층부터 ‘불투명한’ 연작과 ‘반투명한’ 연작, 2층에는 ‘빛나는’ 연작 순으로 이어진다. 작품들은 다소 어두운 톤에 곤충이나 새 같은 원초적인 생명체들이 등장했다가 대도시의 이면들을 비춘 후 알이 기념비처럼 우뚝 서있는 형상으로 끝이 난다. 작가는 수직적이고 권력중심적인 도시 풍경에 연약하지만 생명을 잉태하는 알을 그려 넣음으로써 낙관적인 미래를 말한다. 5월 7일까지. 페이스갤러리는 확장이전 후 29일 처음으로 1층 공간을 열었다. 이루리 페이스갤러리 팀장은 “이 공간에서는 회화전보다는 기술을 사용하거나 몰입형 전시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곳에서는 ‘빛’을 매체로 하는 제임스 터렐, 래리 벨, 로버트 어윈, 피터 알렉산더, 헬렌 파시지안, 과프레드 에버슬리의 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1960년대 말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일어났던 미술 운동인 ‘빛과 공간 예술’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이 팀장은 “자연과 밀접한 미국 남부 특성상 예술매체로서의 빛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임스 터렐은 16살에 조종사 면허를 취득해 비행하면서 빛에 흥미를 느꼈다. LED 조명으로 이뤄진 설치작품 ‘Beneath the Surface’(2021)는 2시간 반 내내 미묘하게 색을 변화한다. 피터 알렉산더도 서핑보드를 수리하던 중 반투명 레진이 굳으면 빛을 굴절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출품작 ‘Fresh as a Daisy’(2019) 등 그의 작업세계에 반영한다. 5월 28일까지. 런던, 파리 등 유럽을 기반으로 둔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는 지난해 10월 한남동에 입성한 후 현재 영국 작가 제이슨 마틴의 국내 첫 개인전 ‘수렴’을 열고 있다. 마틴은 물감에 시멘트를 섞어 바르거나 금속으로 작업하는 등 조각과 회화의 경계에서 재료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온 작가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신작 회화 11점은 ‘알루미늄 회화’라는 새로운 시도의 결과다. 이번 신작들은 은은한 광채를 품고 있는 게 특징이다. 캔버스 천이 아닌 알루미늄 지지대 위에 붓질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반복적이고 역동적인 붓놀림 덕에 작품은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주는 조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붓질의 흔적은 작품 중심부에 위치한 하나의 점에서 끝나는데, 이는 작가가 관심을 가졌던 아시아의 보자기 포장 방식에서 착안한 것이다. 16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은 작품뿐 아니라 전시관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29일 열린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이영철 예술감독(65)은 이같이 밝혔다. 이 감독은 “한국관 일부 천장을 제거해 드러난 내부 골조와 자연광, 냄새가 작품과 유기적으로 조응하는 풍경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관의 전시 주제는 ‘나선’이다. 한국관 대표작가로 전시에 참여하는 김윤철 작가(52)가 주제를 정했다. 김 작가는 “나선은 원과 달리 열려 있는 소용돌이 형태로 에너지를 갖고 있다”며 “유동적이고 흐르며 변화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색이나 형태가 지속적으로 변화해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설치 작품 7점을 통해 사물, 자연,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4월 23일 공식 개막해 11월 27일까지 열린다. 총감독은 체칠리아 알레마니 미국 뉴욕 하이라인 파크 예술총괄 큐레이터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33인은 모두 남성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각계각층이 3·1운동에 참여했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높이 평가받은 여성은 많지 않았다. 서양화가 류준화(59·사진)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그렸다. 서울 종로구 서울여담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33인 여성 독립운동가에게 바치다’는 역사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 33명의 초상을 포함해 총 62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류 작가는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신여성 그룹에 대한 조사를 1년가량 하며 과거 신문 기사 등에 나온 사진들을 모았다”며 “그려야 할 사람이 많아 선택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33인 중에는 익히 알고 있는 유관순, 나혜석 외에도 2·8 독립선언서를 밀반입해 배포한 김마리아, 의열단원 박차정 등이 포함됐다. 초상 옆으로는 그들을 기리는 제사상 그림 ‘Ritual Table’(2021년) 시리즈가 함께 배치됐다. 제사상 그림에는 와인 커피 수박 계란 화분이 놓여 있다. 주로 여성이 차리던 유교적 제사상에서 벗어나 ‘함께 즐거운 테이블’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 류 작가는 “당대 여성과 현대의 우리가 마주 앉아 나들이 떠나듯 서로의 기억을 공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 지하 1층에 배치된 과거 작품에는 소녀가 나온다. 갓난아이를 업고 강을 건너는 소녀를 그린 ‘꽃강’(2012년)을 포함해 소녀는 여성들의 일생을 함축한다. 류 작가는 “임신, 출산 등을 통해 여성은 생명을 보듬고 치유하는 존재”라며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8월 25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기자는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가면 들르는 곳이 있다. 연면적 37.75m²의 넓지 않은 곳. 서있으면 묘한 적적함이 도는 곳. 한국 근대 조각가인 권진규(1922∼1973)의 아틀리에다. 그는 1959년부터 숨지기 전까지 14년간 이곳에서 생활하며 ‘자소상’(1967년) 등을 만들었다. 그는 보는 이들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데다 여러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드는 작품들을 선보여 ‘천재 조각가’로 불린다. 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발함, 번득임, 날렵함, 귀기서림 등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략) 둔해서인가, 나는 권진규에게서 그런 것들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대신 묵직함을 느꼈다”고. 저자는 권진규의 누이 권경숙의 둘째 아들로, 2008년 권진규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작품의 수집·연구를 이어왔다. 저자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 권진규를 말한다. 권진규의 전 아내 오기노 도모와의 이야기는 특히나 애잔하다. 1949년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한 권진규는 도모와 8년 연애하다 결혼한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인 1959년, 권진규는 국내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혼자 귀국했고 5년 뒤 장인이 보낸 이혼서류에 서명한다. 두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시 만난 건 1968년 도쿄에서 열린 개인전에서였다. 저자는 ‘도모’(1957년), ‘재회’(1967년) 등의 작품을 통해 권진규의 마음을 유추한다. 추상 조각이 유행했지만 권진규는 구상 조각을 고집했다. ‘지원의 얼굴’(1967년)과 ‘십자가 위 그리스도’(1970년)로 대표되는 테라코타(흙으로 빚어 불에 구운 작품)와 건칠(틀 안에 삼베를 붙이고 옻칠을 한 작품)은 그가 끊임없이 도전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품은 잘 팔리지 않았고, 친분을 나누는 지인도 적었다. 그가 느꼈을 고독은 마지막 자취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1973년 5월 3일 고려대박물관에 들러 자신의 출품작 세 점과 가만히 눈을 맞춘 뒤 다음 날 성북구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생전 쓸쓸히 한길을 걷던 그의 인생이 탄생 100주년인 올해, 늦었지만 재조명받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전이 5월 22일까지 열리고 있다. 노실은 가마 또는 가마가 있는 아틀리에를 뜻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설치미술가 양혜규(51·사진)가 올해도 세계무대에서 활동 반경을 넓힌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독일 카셀 도큐멘타 등 주요 국제 미술 행사에 참여했던 양 작가는 21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상반기 활동 계획을 밝혔다. 덴마크 국립미술관에서 7월 3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양혜규: 이중 영혼 Haegue Yang: Double Soul’은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한 작품 56점을 선보인다. 양 작가는 “덴마크와 식민지적 관계에 있는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 삶을 염두에 두고 전시를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표 신작 2점은 덴마크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 ‘소리 나는 중간 유형-아르케에 따른 육손 도보여행자’ ‘소리 나는 중간 유형-페르로우 만코바에 따른 세발 형태 변환자’다. 이들 작품은 작가 피아 아르케, 소냐 페를로브 만코바의 삶을 추적해 만들었다. 아르케는 그린란드 출신으로, 덴마크로 이주한 뒤 고향의 원형을 찾고자 노력했다. 덴마크 출신의 만코바는 프랑스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조각가와 결혼한 후 덴마크로 함께 이주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양 작가는 다음 달 미국과 독일로 넘어간다. 다음 달 7일부터 9월 5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종잡을 수 없는 침묵 Shifting the Silence’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 블라인드 설치 작품 ‘열망 멜랑콜리 적색’(2008년)이 다시 출품된다. 10일부터 10월 9일까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립미술관에서 3인전을 연다. 독일 무용가 오스카어 슐레머의 ‘삼부작 발레’ 초연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회로, 현대미술가 울라 폰 브란덴부르크, 칼린 린데나와 함께한다. 지난해 8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한지 콜라주 작업 ‘황홀망(恍惚網)’ 연작은 올해 유럽 무대에서 본격 공개할 예정이다. 황홀망은 한지를 접고 오려 도깨비나 무당의 이미지를 나타낸 작품이다. 독일 바르바라 빈 갤러리와 프랑스 샹탈 크루젤 갤러리에서 각각 4월, 10월에 선보인다. 양혜규는 “한지와 무속적 도구에 대한 이해가 많이 넓어졌다. 앞으로 작품 수를 늘려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삑∼!”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다. 특수부대 마크를 단 대원들이 자존심을 걸고 대결을 시작한다. 카메라 뒤로 대원들만큼이나 마음 졸이는 사람들이 있다. 현장에서 시합을 조율하는 4명의 ‘강철부대 시즌2’ 마스터들이다. 모두 특수부대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다. 매주 화요일 오후 9시 20분 방송되는 채널A·SKY채널 예능 ‘강철부대 시즌2’에서 활약 중인 안웅태(46) 최영재(40) 채병덕 마스터(44)를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박민형 마스터(37)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의 특징은 시즌1에 비해 ‘더 강해진 미션’이다. 참호격투와 각개전투는 규모가 커졌고 장애물의 난도도 높아졌다. 두 미션 구성이 시즌1과 유사하다는 일각의 반응에 대해 마스터들은 “참호격투와 각개전투가 대원들의 원초적인 센스를 파악하는 데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부대 간 연합 등 지난 시즌보다 지능적인 대결을 펼친다”고 평했다. 참호격투에서 해군해난구조전대(SSU), 군사경찰특임대(SDT), 해군특수전전단(UDT)이 사전에 연합해 다른 부대원들을 밀어낸 장면이 있었다. 안 마스터는 “이 장면이 불편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전투에는 반칙이 없다. 강철부대가 스포츠 예능이라 볼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미션은 실제 훈련을 각색한다. 국내 방송 최초로 벌인 권총 실탄 사격 미션이 대표적이다. 본래 전술 훈련 때 권총 사격은 5∼15m 근거리에서 한다. 권총집에서 권총을 빠르게 뽑아 목표물을 정확하게 쏘는 것이 평가의 관건이다. 방송에선 기존 훈련보다 먼 거리인 20m에서 서서 쏘는 대신 10초라는 제한시간을 뒀다. 최 마스터는 “방송에선 대원 간 승부를 가려야 한다”며 “10∼15m에서 하는 건 너무 쉽기 때문에 시간제한을 두고 거리를 더 멀리 정했다”고 설명했다. 부대 간 형평성도 미션 구성 시 가장 고려하는 부분이다. 해상, 산이나 고지, 시가지 중 어디를 배경으로 하느냐에 따라 유리한 부대가 생길 수 있다. 마스터들은 “특수부대 훈련 간의 교집합을 찾고, 이를 중심으로 다른 체력적 요소들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미션을 정한다”고 설명했다. 안 마스터는 “소형 고무보트(IBS) 해상 미션의 경우 IBS 미션 구간을 멀게 조정하면 해상훈련을 많이 한 팀이 유리하지만 거리를 좁히면 육군 팀과 해군 팀 간의 변별력이 사라지고 체력이 가장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미션은 회를 거듭할수록 진화한다. 채 마스터는 “기본적인 맨몸 미션을 거쳤으니 이제 대테러작전 등 전략적인 미션들이 차차 나올 예정”이라며 “미션을 분석하는 능력, 팀워크, 순발력에 대한 부대별 확연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번 시즌에 새로 합류한 국군정보사령부특임대(HID)와 공군특수탐색구조대대(SART)의 특장점도 더 조명할 예정이다. 최 마스터는 “HID는 개인 작전을 많이 수행하는 부대라 생존 능력이 정말 좋다. SART는 소수정예로 훈련을 받다 보니 장비를 사용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마스터들은 미션의 난도가 높은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 “대원들은 현역 때 방송에서 주어진 미션보다 몇 배는 더 힘들게 훈련했던 사람들”이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들이 실제로 고군분투해왔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삑”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다. 특수부대 마크를 단 대원들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 시작된다. 이들을 비추는 카메라 뒤로 대원들만큼이나 마음 졸이는 사람들이 있다. ‘강철부대 시즌2’ 마스터다. 채널A·SKY채널 예능 ‘강철부대 시즌2’에서 활약 중인 안웅태(46) 최영재(40) 채병덕(44) 마스터를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박민형 마스터(37)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불참했다. 이번 시즌은 시즌 1에 비해 ‘더 강해진 미션’이 특징이다. 참호격투와 각개전투는 전 시즌에서도 포함된 미션이지만 규모가 커졌고 장애물의 난도도 높아졌다. 미션 구성이 유사하다는 일각의 반응에 대해 마스터들은 “참호격투와 각개전투가 대원들의 원초적인 센스를 파악하는 데 가장 좋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시즌보다 지능적인 대결을 펼친다”고 평했다. 참호격투에서 해군해난구조전대(SSU), 군사경찰특임대(SDT), 해군특수전전단(UDT)이 사전에 연합해 다른 부대원들을 밀어낸 장면이 있었다. 안 마스터는 “이 장면이 불편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전투에는 반칙이 없다. 강철부대가 스포츠 예능이라 볼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미션은 실제 훈련을 각색한다. 국내 방송 최초로 벌어진 권총 실탄 사격 미션이 대표적이다. 기존보다 원거리인 20m에서 서서 쏘는 대신 10초라는 제한시간을 뒀다. 본래 전술 훈련 때 권총 사격은 5~15m 근거리에서 쏘며 권총집에서 권총을 빠르게 뽑아 정확히 타게팅하는 것이 평가의 관건이다. 최 마스터는 “전술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승패를 가리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야하는 방송에는 적합한 포맷이 아니다”며 “안전문제를 최소화하면서 승부를 명확히 가리기 위한 절충안”이라고 설명했다. 부대 간 형평성도 미션 구성에 가장 고려하는 지점이다. 해상, 산이나 고지, 시가지 중 어디를 배경으로 하느냐에 따라 유리한 부대가 생길 수 있다. 마스터들은 특수부대 훈련 간 존재하는 교집합들을 찾고, 그를 중심으로 다른 체력적 요소들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미션을 꾸린다. 안 마스터는 “소형 고무보트(IBS) 해상 미션을 예로 들면, IBS 미션 구간을 멀게 조정할 경우 해상훈련을 많이 한 팀이 유리하지만 거리를 좁히면 육군팀과 해군팀간의 변별력이 사라지고 오히려 체력이 가장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미션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점차 진화할 예정이다. 채 마스터는 “기본적인 맨몸 미션을 거쳤으니 이제 대테러작전 등 전략적인 미션들이 차차 나올 예정”이라며 “미션을 분석하는 능력, 팀워크, 순발력 등에 대한 부대별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예고했다. 이번 시즌에 새로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특임대(HID)와 공군 특수탐색구조대대(SART)의 특장점도 더 비춰질 예정이다. 최 마스터는 “HID는 개인 작전을 많이 수행하는 부대라 생존 능력이 정말 좋다. 반면 SART는 소수정예로 훈련받다보니 악바리보다는 장비 사용 등에 있어 굉장히 테크니컬하다”고 설명했다. 마스터들은 “현역 때는 방송 미션보다 몇 배는 더 힘들게 육체적으로 훈련했던 사람들”이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들이 실제로 고군분투해왔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방송에 드러난 마스터의 역할은 촬영 현장에서 대원들을 통제하고 시합을 조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미션을 구성하고 자문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마스터들은 “2~3번 현장 답사를 가 직접 미션을 시행해보면서 미션의 실현가능성이나 안전에 관한 문제 등을 검토한다”고 전했다. 모두 특수부대에서 10년 이상 몸담았던 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강철부대 시즌2’는 매주 화요일 오후 9시 20분에 방송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봄이 다가왔다. 풋풋한 감성을 담은 전시를 관람하며 봄을 즐기는 건 어떨까. 사랑에 관한 다채로운 감정과 등장인물이 간직한 이야기를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가 각각 열리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성동구 서울숲으로 이전한 디뮤지엄의 개관 특별전 ‘어쨌든 사랑: Romantic Days’,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사진전 ‘알렉스 프레거, 빅 웨스트’다.》 디뮤지엄 ‘어쨌든 사랑’展‘어쨌든 사랑: Romantic Days’는 7가지 사랑의 감정과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천계영 이은혜 이빈 이미라 원수연 박은아 신일숙 등 한국 순정만화 작가의 7개 작품 속 장면을 기준으로 섹션이 나뉘어 있다. 각각의 장면을 모티브로 사진, 만화, 일러스트, 설치 등 국내외 작가 23명의 작품 약 300점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사랑을 시작할 때부터 이별한 뒤까지 그 일련의 감성을 따라가도록 구성했다. 섹션 제목도 ‘사랑인지도 모르고 서툴고 수줍었던 그때’ ‘언젠가는 바라봐주기를 간절히 바라던 그 밤’ ‘미칠 것같이 뜨겁게 열병을 앓던 그해’ 등 감성을 자극한다. 작품들이 가진 정서도 다채롭다. 지미 마블은 사진 ‘From Way Out’(2017년) 등을 통해 어린이의 풋풋한 사랑을, 채드 무어는 입맞춤하는 남녀를 찍은 사진 ‘Sasha and Melissa (Kiss)’(2016년) 등 청춘의 은밀한 순간을 기록했다. 헨리 오 헤드의 ‘Neon nights’(2019년)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해 한 커플을 빛바랜 색감으로 구현하며 옛 사랑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게 만든다.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설렘, 슬픔, 고독 등 다양한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그린 만큼 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10월 30일까지. 6000∼1만8000원.롯데뮤지엄 ‘알렉스 프레거’展 롯데뮤지엄의 올해 첫 전시 작가인 알렉스 프레거(43)는 2007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를 열며 주목받고 있다. 그의 사진은 ‘영화 같은 사진’으로 불린다. 사진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알렉스 프레거, 빅 웨스트’에 출품된 96점은 화려한 색감, 과장된 몸짓, 생생한 표정을 담았다. 초기작인 ‘Susie and Friends’(2008년)는 등장인물인 수지가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친구들의 표정이 돌변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작가는 모든 등장인물에게 서사, 성격, 대사를 부여한다. 이런 섬세한 연출 덕에 인물들은 모두 주인공처럼 보인다. ‘Pomona’(2021년) 앞에 서면 가운데뿐 아니라 가장자리에 있는 인물에게도 시선이 간다. 이쯤 되면 관객은 ‘누구나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게 된다.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인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BOP)을 촬영한 ‘La Grande Sortie’(2016년)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전시는 발레리나와 관객의 시선에서 찍은 작품들을 뒤섞어 나열해 주연과 조연의 경계를 흐린다. 전시장 출구에는 관중이 박수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 ‘박수’ 앞에 단상을 놓아 관객이 자기 삶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한다. 6월 6일까지. 1만∼1만5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신자연주의 미학을 표방하는 가나인 작가(65)의 개인전 ‘겹쳐진 세계 Metaverse’가 서울 종로구 올미아트스페이스에서 다음 달 6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20점을 포함해 197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총 45점의 회화를 선보인다. 1993년 그가 선언한 신자연주의는 인간을 우주 속의 작은 존재로 보는 동양의 자연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신체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긴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를 반영한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검은 소용돌이와 작은 인간들을 그린 회화 ‘삶(1984년)’이나 ‘이것이 삶이다(2022년)’가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검은 기둥은 개인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그려온 ‘적요심곡’ 시리즈는 작가 삶의 변화에 따라 작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엿볼 수 있다. 빈곤과 폭력의 영향으로 열일곱 나이에 극단적 시도를 할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깊은 계곡과 한없이 쓸쓸한 산을 그린 적요심곡(1982년 작)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이후 적요심곡 시리즈 작업을 이어가며 산을 자신이 성취하고 싶은 여러 욕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2020, 2021년 작업한 적요심곡에선 그런 욕망에 다다르기 위한 도구로 사다리를 함께 그려 넣었다. 신작 20점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각각 다른 장소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인 ‘메타버스’다. 작가는 고전 작품을 통해 작가와 후대 관객들이 공감하는 지점이 메타버스의 세계관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메타버스 6개의 중첩’(2022년)은 우드 패널에 6개의 레고가 붙어 있고 그들 사이로 여러 선들이 이어져 있다. 6개의 레고는 각각 다른 성격과 문화적 맥락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을 뜻한다. 작가는 시공간과 상관없이 서로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흰 선들로 시각화해 메타버스 세상을 표현했다. 신작에서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사과다. 사과는 각자 가진 생각과 처한 현실을 뜻한다. ‘메타버스 길 찾는 아담’(2022년)에는 멀리서 따로 자라나는 사과나무와 서로 뿌리가 얽혀 있는 사과나무가 있다. 이는 동시대를 살지만 각기 다른 역사를 갖는 개인들, 그러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당신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습니까?”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투 유: 당신의 방향’ 전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팬데믹이 부른 일상의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됐다. 기획자 김미정 아르코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최근까지 지하철에서 ‘불필요한 이동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시설을 이용하는 시간에 제한이 생겼다. 누구에게나 무한하게 주어지는 자유라 생각했던 이동에 제한이 가해진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8개 팀의 작가들은 이동이 권력과 배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는 팬데믹 영향으로 온라인 비대면 퀴어 퍼레이드를 열면서 만들었던 영상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2021년)를 출품했다. 닷페이스는 “‘퀴어 퍼레이드는 안 보이는 곳에서 하라’는 요구가 많았다”며 “팬데믹 이후 온라인으로 행사를 진행해야 해 소수자들은 모습을 드러내는 게 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오늘날 이동의 의미를 반추하는 작품도 있다. 정유진 작가의 ‘돌고 돌고 돌아’(2022년)는 팬데믹 이후 유행한 ‘무착륙 비행’의 동선을 구조물로 만든 작품이다. 찰나의 즐거움을 위해 고점과 저점을 반복하는 비행 노선을 보면 이동을 위한 이동일 뿐이라는 걸 자각하게 된다. 유아연 작가의 ‘공손한 님들’(2022년)은 관객이 입구에서 받은 진동벨이 울리면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서빙로봇 2대에 반납하게끔 유도한다. 퍼포먼스를 통해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오늘날의 배달 구조를 보여준다. 미술관은 이동장애인용 지하철 환승 지도를 만든 협동조합 무의와 함께 이동장애인용 아르코미술관 이용 매뉴얼도 제작했다. 25일에는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직원들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미술관까지 이동하며 이동장애인을 위한 개선 사항을 살핀다. 김미정 학예연구사는 “가파른 미술관 경사로, 오돌토돌한 미술관 바닥, 아카이브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부재 등 이동장애인의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는 구조가 아직 남아있다. 이를 바꾸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4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근현대화가 고 윤중식 화백(1913∼2012)의 유족이 11일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에 고인의 작품과 자료 500점을 기증했다. 고인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2세대 서양화가로 꼽힌다. 평양 출신인 그는 6·25전쟁 때 월남했다. 피란길에 아내, 큰딸과 헤어지고 젖먹이였던 작은딸을 잃은 그는 장남 손을 붙잡고 부산에 도착했다. 장남 윤대경 씨(75)는 “당시 부산에 먼저 와 있었던 이중섭 선생이 자신의 집에 머물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이중섭과 일본 제국미술학교를 함께 다녔고 1943년 평양에서 이중섭, 김병기 등과 6인전을 열었다. 1954년 서울로 올라온 고인은 1963년부터 성북구에서 살았다. 그의 성북구 자택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윤 씨는 “아버지가 성북구의 석양과 산새를 참 좋아하셨다”며 “성북구를 새로운 고향으로 생각해 돌아가실 때까지 이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농촌이나 전원과 같은 목가적 풍경을 강렬한 색채로 그렸다. 그의 작품에는 지난 시절과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가 담겨 있다. 성북구립미술관 기증작에는 ‘아침’(1987년) ‘석양’(2005년) 등 주요 유화 71점과 피란길을 기록한 드로잉 28점이 포함됐다. 성북구립미술관은 30일부터 7월 3일까지 윤중식 10주기 추모전 ‘회향 懷鄕’을 연다. 40여 점의 유화와 드로잉, 구아슈(gouache·불투명 수채) 등 총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어 올 하반기에는 고인과 생전에 친분을 맺은 당대 화가들을 함께 다룬 기획전 ‘화가의 벗’이 열린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여러분 너무 오랜만입니다. 너무 보고 싶었고.” 10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그룹 방탄소년단 콘서트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서울’. 멤버들은 이 말을 반복했다. 방탄소년단이 국내에서 팬들과 오프라인으로 마주한 건 2019년 10월 공연 후 2년 5개월 만이다. 방탄소년단은 이날을 포함해 12, 13일까지 총 3일간 공연에서 회당 1만5000명씩 총 4만5000명과 만난다. 공연장에서는 내내 “짝짝짝짝” 소리가 들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함성을 대신한 응원도구 클래퍼(두꺼운 종이를 접어 부채처럼 만든 도구)의 소리였다. 슈가는 “무관중으로는 해봤지만 함성이 없는 공연은 처음이다.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온(ON)’으로 콘서트를 시작해 ‘DNA’ ‘피 땀 눈물’ ‘페이크 러브’ ‘다이너마이트’ ‘버터’ ‘Permission to Dance’ 등 총 28곡을 이어갔다. 한국에서 대면 콘서트로 처음 공개하는 ‘블랙 스완’ 무대는 댄서 수십 명과 함께 백조와 흑조를 연기해 장관을 연출했다. 초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을 무대 가운데 설치하고 곡마다 다른 효과로 멤버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았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뜻의 ‘Life Goes On’이 나올 때는 각 멤버의 공연 순간순간을 화면에 띄웠다. ‘홈’을 선곡한 것도 “아미가 있는 곳이 우리의 고향”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민은 “이제야 집에 돌아온 것같이 그립고 아쉬웠던 감정이 싹 없어졌다”고 했다. 콘서트를 마치며 이들은 그동안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제이홉은 “마냥 잘 지내지만은 못했다. 가수는 관객이 함께 있어야 완성되더라”라고 했다. RM은 “지긋지긋한 언택트”라며 “같이 뛰고, 에너지를 받고, 사랑한다고 말하던 당연한 것들이 없으니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고마움과 희망을 말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는 날까지 절대 지치지 않겠다는 말을 지킬 수 있어 행복합니다. 달려와 주신 아미 여러분 감사합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더 나은 모습으로 만날게요.”(R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경복궁을 사이에 둔 서울 종로구 북촌과 서촌은 옹기종기 모인 갤러리들을 양옆에 두고 걸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네다. 약 100년 전에는 미술가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한국 근대 미술사 연구가인 저자는 오랜 기간 북촌 지역에 거주하면서 많은 미술가의 이야기를 접했다. 북촌 편과 서촌 편으로 나누어진 두 권의 책에서는 각 골목에서 확인한 미술가들의 흔적을 담았다. 화가, 조각가 등 50여 명의 근대 미술가들의 희로애락과 삶,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북촌과 서촌이 조금 달리 보이게 된다. 인사동 일대는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미술 중심지로 부상했다. 조선미술전람회를 주관한 조선총독부와 덕수궁미술관이 인접한 데다 수집가와 후원자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미술품 거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한국예술계 ‘귀인들’을 내놓은 중앙고보와 휘문고보가 1900년대 이 지역에 설립되며 광복 전후 한국 화단을 이끈 김용준, 이쾌대 등을 배출하기도 했다. 저자는 북촌 지역을 산책하며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인물화의 귀재 김은호 등을 떠올린다. 김은호는 그림을 배운 지 21일 만에 순종 어진을 그린 천재 화가다. 그의 제자인 백윤문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열 번 넘게 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려 창작 시기에 공백이 생겼던 화가다. 여덟 살에 장티푸스에 걸려 후천적으로 청각 장애를 갖게 된 김기창도 김은호의 제자다. 서촌 미술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이중섭과 천경자다. 1952년 부인과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이중섭은 머물 곳을 찾아 배회하다 친구들의 부름에 서울로 갔다. 서촌 누상동에서 보낸 1954년 한 해는 그에게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는 전시를 열어 성공하면 일본에서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그림을 그렸고, 이즈음 ‘소’ 등을 전람회에 출품하곤 했다. 천경자도 누하동에 살던 1959년부터 3년간은 가장 여유로운 감성이 흐르던 시절이었다. 서울에 자리를 잡지 못하다 처음 자신의 집을 가지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기 때문이다. ‘서촌 시대’를 기점으로 그의 그림은 낭만적인 화풍을 띠었다는 평가를 받는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