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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으로 알게 돼 저녁을 먹으러 오기 시작했는데 이젠 고향 같아요. 설 명절도 여기서 보낼 생각입니다.” 지난해 3월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한 자립준비청년 유민상 씨(19)는 10일 서울 은평구 밥집알로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 밥집은 천주교 한국예수회 기쁨나눔재단에서 지난해 1월 만들었는데, 월요일을 빼고 주 6일 동안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무료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이름은 청소년들의 수호성인 ‘알로이시오 곤자가’에서 따 왔다. 개소 1주년을 맞은 이날 오후 밥집알로엔 평소보다 많은 30여 명의 청년이 찾아와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이날 저녁 메뉴로 나온 부대찌개와 잡채, 계란말이를 앞에 놓고 이들은 서로 반갑게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눴다. 유 씨는 주 4회꼴로 저녁에 이곳을 찾아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놓인 청년들과 밥을 먹는다고 했다. 어느새 ‘단골손님’이 된 유 씨는 “밥도 맛있지만 진로를 상담하거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밥집을 만든 박종인 신부는 “시설을 나온 자립준비청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배달음식 등으로 ‘혼밥’을 하더라”며 “따뜻한 집밥을 함께 먹으며 교류하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식당은 기쁨나눔재단에서 받는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2020년 보호시설에서 나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휴학생 채동엽 씨(21)는 “평소 인스턴트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여기선 건강한 집밥을 먹을 수 있어 좋다”며 “시설에서 같이 생활했던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제2의 집’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남은 음식을 싸가거나 후원으로 들어온 샴푸, 치약 등 생필품을 챙겼다. 만 18∼24세가 되면서 보호시설을 떠난 자립준비청년은 홀로서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부모 얼굴도 모른 채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세상에 혼자 던져졌다는 고립감 등으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밥집알로에선 청년들에게 진로 및 심리 상담도 제공한다. 신부와 수녀, 자원봉사자 등이 청년 틈에서 같이 식사를 하며 근황을 묻고 고민을 듣는다. 자립준비청년 중 일부도 매니저로 채용돼 일한다. 박 신부는 “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서로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라며 “식사 자리 대화에서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고 적절한 시점에 개입하면 소중한 청년들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또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췄던 청년이 친구 손에 이끌려 와서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의지가 되는구나’ 싶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밥집알로 매니저 제찬석 씨(25)는 “지난해 추석에는 청년 280명이 왔다. 일부는 월급을 받았다고 고향집에 오는 것처럼 음료 같은 걸 사오기도 했다”고 말했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
검찰이 10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부실 대응 및 증거인멸 사건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이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송치한 이태원 참사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벌인 건 처음이다. 검찰이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하는 대신 직접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서부지검은 이날 오전 경찰청,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 10곳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에는 경찰 내부망 서버를 관리하는 경찰청 정보화기반과,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정보부), 용산경찰서 정보과와 생활안전과, 용산구청 비서실과 홍보담당관실 등 참사 관련 특수본 수사를 받은 경찰 및 구청 사무실이 대거 포함됐다. 검찰은 11일에도 경찰청 압수수색을 진행할 계획이다. 검찰은 핵심 피의자들이 수감 중인 서울남부구치소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 송치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참사 관련 주요 피의자의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특수본이 송치한 사건 피의자의 혐의를 보강하기 위한 압수수색으로 아직 추가 혐의를 확인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강제수사에 돌입하면서 ‘윗선 책임’ 규명에 나설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수본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에 대해선 “형사책임을 입증하기 어렵다”며 조사 없이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또 검찰이 지난해 12월 30일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 기소한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 등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참사 발생 전 화상회의를 통해 일선 경찰서장들에게 “많은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촘촘한 사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청장은 앞서 4일 1차 청문회에선 “(사전에) 인파 밀집에 따른 안전사고 관련한 위험성 제기는 없었다”고 했다. 활동 기간을 연장한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유가족과 생존자, 상인이 참여하는 2차 공청회를 12일 오후 2시에 열기로 의결했다. 정식 명칭은 공청회지만 사실상 국조특위의 3번째 청문회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빌라왕, 빌라의 신, 건축왕….언뜻 보기엔 부동산 사업으로 거액을 번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지만 이들은 모두 서민을 울린 전세 사기 용의자들이다. 자기 자본은 거의 투입하지 않고 ‘깡통전세’를 많게는 수천 채까지 사들이며 세입자들의 보증금으로 돌려막는 수법을 썼다.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에 육박하거나 넘어서는 경우를 ‘깡통전세’라고 부른다. 이 경우 경매로 주택을 처분하더라도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전세 사기에 걸려든 피해자 중에는 부동산 계약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과 신혼부부 등 사회 초년생이 많다.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현재로선 살던 집이 경매에서 낙찰돼야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마저도 임대인의 체납 세금이 많은 경우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보증금 반환은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 단기간에 전셋값 급등하자 사기 피해 늘어직장인 황모 씨(43)는 2021년 3월 인천 부평구의 한 신축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집주인은 “오피스텔 매매가 어려워 전세를 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고 했다. 전세가가 매매가와 같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 가격에 이만한 집이 없다”는 부동산 공인중개사 말에 황 씨는 계약을 결심했다. 그런데 입주하기 이틀 전 부동산으로부터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황 씨는 “매매가 어렵다고 했는데 어떻게 집주인이 바뀌었는지 의아했지만 부동산에서 전세 계약 조건은 동일하다고 해 계약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황 씨의 새 임대인은 전세 사기로 300억 원이 넘는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빌라왕’ 김모 씨였다. 전세 사기 범죄는 전셋값이 단기간에 급등한 부동산 시장 상황을 악용해 벌어졌다. 특히 아파트 전세를 구하기엔 돈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들이 빌라로 눈길을 돌리면서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경우가 생겼다. 전세 사기 피해를 입은 강모 씨(31)는 “2020년 9월 집을 구할 때 신혼부부라 경기도 신축 빌라 위주로 알아봤는데 빌라 전셋값이 1억 원대 후반∼2억 원대 초반 정도였다”며 “2억2500만 원에 전세 계약을 했다. 2018년만 해도 비슷한 지역에서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금액인데 가격이 더 오를까 봐 급한 마음에 서둘러 계약했다”고 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은 2018년 1월 4억3905만 원에서 2021년 1월 4억8635만 원으로 3년 만에 5000만 원 가까이 올랐다. 같은 기간 빌라 평균 전세가는 1억7102만 원에서 1억8234만 원으로 약 1100만 원 올랐다. 2018년 1월까지만 해도 2억 원 안팎이면 서울 외곽 지역의 소형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 전세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대적으로 덜 오른 빌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교통편이 좋은 신축 빌라 수요가 늘자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기 시작했다. 신축 빌라를 지은 뒤 분양하지 않고 전세만 내주더라도 공사비를 내고도 목돈을 손에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세 사기범들은 이 같은 상황을 악용해 세입자들의 보증금으로 돌려막기를 하는 ‘나쁜 돈벌이’를 설계했다.○ 슬그머니 집주인 바뀌고, 체납 내역도 깜깜이세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이다. 현행법상 임대인이 변경되더라도 세입자에게 알릴 의무가 없다 보니 주기적으로 등기부등본을 살펴보지 않는 이상 집주인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등기부등본으로는 집주인의 세금 체납 내역도 알 수 없다. 체납 여부를 알기 위해선 임대인 동의를 받은 후 납세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2021년 10월 경기도의 한 빌라에 전세로 입주한 오모 씨(31)는 이사한 지 보름 만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임대인이 바뀌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오 씨는 “보증보험이 가입되지 않거나 안심 전세대출이 안 되는 집은 처음부터 검토하지 않았고, 계약할 때도 등기부등본을 검토해 전세금을 보전할 수 있는 특약을 넣었다”고 했다. 하지만 빌라왕 김모 씨가 지난해 10월 사망하면서 계약 해지를 통보할 대상이 사라졌다. 김 씨 가족이 상속을 포기하면서 반환보증이 이행되려면 상속 포기 및 법원의 상속관리인 지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절차만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자들은 빌라와 오피스텔의 경우 아파트와 달리 객관적 시세 비교가 어려워 피해를 막을 수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20대 전세 사기 피해자 임모 씨는 “세입자가 알 수 있는 정보는 등기부등본뿐이라 사기 조직이 ‘바지 사장’에게 비싸게 팔았더라도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20년 11월 전셋집을 계약한 이모 씨(33)도 “부동산에서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2000만∼3000만 원 정도 더 높다고 얼버무렸지만 신축 빌라라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세입자가 계약 전 깡통전세 위험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사기 조직과 공모한 공인중개사나 분양 대행업자에게 휘둘리기 쉬울 수밖에 없다.○ 교묘해진 사기 수법 막으려면 제도 개선해야수법도 교묘해졌다. 최근 전세 사기 일당은 매매와 전세를 동시에 진행하는 ‘동시진행’ 수법을 썼다.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한 다음 날부터 법적 대항력이 생긴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신고 당일 악성 임대인으로 집주인을 바꾸거나, 매매 후에도 등기를 미루다 세입자가 전입한 후 임대인을 바꾸기도 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이모 씨는 “전입신고 후 집주인이 ‘빌라왕’으로 바뀌었는데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보니 매매 날짜가 입주 전이었다”며 “전 집주인이 악성 임대인에게 집을 팔아 놓고 등기를 미뤘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지난해 12월 국세기본법 및 국세징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올 4월부터는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 없이도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임대인이 바뀐 사실을 세입자가 알기 어려운 구조는 여전하다. 전세 사기 소송을 다수 진행해 온 법무법인 제하의 박소예 변호사는 “최소한의 고지 의무를 부여하고 임대인이 변경될 경우 임차인이 계약 승계를 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에서 전세 사기 피해를 전수 조사해 한시적으로 관련 세금을 면제해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예방을 위해선 세입자도 사전에 가급적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세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면 계약 체결 전 여러 공인중개사사무실을 방문해 가격을 직접 비교해야 한다”며 “특히 전세보증금이 매매 가격의 70%를 넘는 ‘깡통 전세’는 아닌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했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모처럼 친구들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 가려고 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문을 닫아 아쉬워요.” 직장인 노모 씨(33)는 7일 새해 첫 주말을 맞아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노 씨는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로 올해는 야외활동을 많이 하려고 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제약이 생겼다”며 답답해했다. 7, 8일 고농도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치면서 상당수 시민이 야외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실내로 향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대학생 홍예표 씨(24)는 “여자친구와 종로구 북악스카이웨이로 드라이브를 가려 했는데 미세먼지로 대기가 악화돼 대신 동네 카페에서 실내 데이트를 했다”고 말했다. 맘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아이와 눈썰매장에 가기로 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취소했다”는 등의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야외 나들이를 포기한 이들 덕분에 영화관과 박물관, 미술관, 대형 쇼핑몰 등 실내 공간에는 인파가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길거리에 다니는 시민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썼다.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후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다시 마스크 착용이 늘어난 것이다. 숨쉬기 편한 비말차단용 또는 덴털 마스크 대신 보건용(KF94) 마스크를 다시 쓴 이도 많았다. 직장인 박재성 씨(52)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한풀 꺾이면서 일회용 덴털 마스크를 이용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목이 칼칼해 주말부터 KF94 마스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농도 미세먼지의 여파에도 진보·보수단체는 서울역과 서울시청역 일대에서 1000명 이상 참여하는 도심 집회를 열었다.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7일 오후 4시부터 시청역 인근에서 약 1500명(경찰 추산)이 모여 집회를 연 후 용산구 삼각지역 방향으로 행진했다. 우리공화당은 이날 낮 12시부터 약 1000명(경찰 추산)이 모여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진행한 뒤 삼각지역 방향으로 행진했다. 집회 때문에 도심 일대가 통제되면서 시민들은 불편을 겪었다.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올라온 이동순 씨(49)는 “가족과 함께 왔는데 집회 때문에 서울서 만나기로 한 친척도 못 찾고 일대를 한참 헤맸다”고 말했다.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에 따르면 8일 수도권과 호남 서부 지역에는 중국 북부와 고비 사막에서 발원한 황사가 북서풍을 타고 유입되면서 오후 한때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 수준까지 악화됐다. 환경부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 미세먼지 주의보를 발령했고 서울시는 주말 내내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등 공공 야외 체육시설 운영을 중단했다. 센터는 9일에도 수도권과 강원 영서, 충청, 호남, 대구·경북 등에서 미세먼지가 ‘나쁨’(m³당 81∼150μg)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보했다. 또 한반도 상공의 대기가 정체되고 중국발 황사까지 유입되면서 12일까지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유족의 동의 없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의 명단을 공개해 논란이 된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에 대한 고발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서울시청을 압수수색했다. 3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9시경부터 서울시 정보 시스템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압수수색은 유출된 희생자 명단이 서울시 자료로 의심되는 정황을 포착한 데에 따른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유출된 명단이 서울시와의 관련성이 있어 보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시 공무원이 연루됐는지는 압수품 분석 등 추가 수사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지난해 11월 14일 이태원 참사로 숨진 158명 가운데 155명의 이름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했다. 이후 희생자 명단을 유출한 성명불상 공무원을 처벌해달라는 고발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유출된 명단은 지난해 10월 31일 오후 11시~11월 1일 오전 11시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참사 이후 며칠간 부상자가 추가로 사망하면서 희생자가 늘었는데, 민들레가 공개한 명단처럼 희생자가 155명이었던 시간(중대본 집계 기준)이 12시간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신원 파악을 담당한 경찰이나 서울시, 행정안전부에서 유출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충남 태안군 소재 국방과학연구소가 30일 시험비행에 성공한 고체추진 우주발사체를 놓고 전국 각지에선 “미확인 비행체가 목격됐다”는 신고가 400건 넘게 빗발쳤다. 이날 시험비행이 예고 없이 추진된 탓에 시민들은 “무지갯빛 연기를 내는 비행물체가 하늘에서 날아다닌다”며 여러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유했다. 특히 구불구불한 궤적으로 날아가는 사진을 보고 “미확인 비행물체(UFO)가 아니냐”, “북한이나 중국이 신형 무기를 발사한 게 아니냐”는 등 추측이 쏟아졌다. 이날 시험비행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뿐 아니라 강원, 호남, 영남 등 전국 각지에서 목격돼 경찰 소방 등에 관련 신고가 쇄도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날 전국적으로 412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들은 오후 6시 10분경부터 “조명탄이 발사됐다” “하늘에 연기가 보인다” 등 다양한 내용으로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사에도 제보가 쏟아졌다. 국방부가 이날 오후 6시 45분경 “고체추진 우주발사체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자 그제야 시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 주말을 함께 보내곤 했습니다. 이번 토요일에도 아내랑 딸을 데리고 형님네 집들이를 같이 가기로 했는데….” 29일 발생한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로 부인(61)과 딸(29)을 한꺼번에 잃은 유족 김석종 씨(65)는 30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충남 천안시에서 자동차 관련 일을 하는 김 씨는 일 때문에 30년 가까이 부인과 떨어져 주말 부부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부인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고 지난달 경북 경주로 가족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화목했다. 김 씨는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데리고 딸이 찜질방을 자주 찾았다. 사고를 당한 날에도 둘이 같이 찜질방에 가던 길이었다”며 “사고 전날에도 ‘밥 먹었느냐’고 전화로 안부를 나눴는데…”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운전기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60대 가장도 목숨을 잃었다. 유족은 사고 당일 한림대성심병원에서 사망자의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주저앉았다. 시신으로는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이날 두 딸을 부둥켜안고 울던 고인의 부인은 전화로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오열했다. 부인은 “느그 아빠 얼마나 뜨거웠을까. 차를 버리고 도망을 가지. 그놈의 차가 뭐라고. 아이고”라며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유족에 따르면 경기 시흥시에 살던 고인은 서울에 일을 나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참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편을 애타게 찾는 외국인 여성도 병원을 찾아왔다. 이 여성은 29일 오후 8시 50분경 미취학 아동으로 보이는 딸의 손을 잡고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실을 찾아왔다. 그는 “남편 어디 있느냐”며 애타게 찾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족들은 사고 당일부터 30일 오전까지 경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시신은 부검을 위해 이날 오전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이송됐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자들의 신원을 확인 중이며 국과수 부검이 끝나면 사인 등 정확한 감정 결과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과천=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 주말을 함께 보내곤 했습니다. 이번 토요일에도 아내랑 딸을 데리고 형님네 집들이를 같이 가기로 했는데….” 29일 발생한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로 부인(61)과 딸(29)을 한꺼번에 잃은 유족 김석종 씨(65)는 30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충남 천안시에서 자동차 관련 일을 하는 김 씨는 일 때문에 30년 가까이 부인과 떨어져 주말 부부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부인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고 지난달 경주로 가족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화목했다. 김 씨는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데리고 딸이 찜질방을 자주 찾았다. 사고를 당한 날에도 둘이 같이 찜질방에 가던 길이었다”며 “사고 전날에도 ‘밥 먹었느냐’고 전화로 안부를 나눴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운전기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60대 가장도 목숨을 잃었다. 유족들은 사고 당일 한림대성심병원에서 사망자의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주저앉았다. 시신으로는 신원이 확인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이날 두 딸을 부둥켜안고 울던 고인의 부인은 전화로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오열했다. 부인은 “느그 아빠 얼마나 뜨거웠을까. 차를 버리고 도망을 가지. 그놈의 차가 뭐라고. 아이고”라며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유족에 따르면 경기도 시흥시에 살던 고인은 서울에 일을 나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참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편을 애타게 찾는 외국인 여성도 병원을 찾아왔다. 이 여성은 29일 오후 8시 50분경 미취학 아동으로 보이는 딸의 손을 잡고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실을 찾아왔다. 그는 “남편 어디 있느냐”며 애타게 찾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족들은 사고 당일부터 30일 오전까지 경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시신은 부검을 위해 이날 오전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이송됐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자들의 신원을 확인 중이며 국과수 부검이 끝나면 사인 등 정확한 감정 결과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과천=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29일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로 사망한 5명은 모두 타고 있던 차량 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불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제때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 관계자에 따르면 사망자는 승용차 2대에서 1명씩 발견됐고, 다른 승용차 1대에서 2명,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1대에서 1명이 발견됐다. 소방 관계자는 “사망자가 나온 차량들은 대부분 불이 난 트럭의 진행 방향 반대편 차로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차량이 전소돼 희생자들의 탈출 시도 여부 등은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소방 관계자는 “순식간에 불길이 확산되면서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한 희생자들이 질식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화재로 터널에 갇혀 소실된 차량은 45대였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이날 오후 6시 반경 검은 천에 싸인 채 들것에 실려 사고 현장 인근인 한림대성심병원으로 이송됐다. 희생자 신원 확인이 이뤄지면서 유족들은 오열하며 하나둘 병원으로 들어왔다. 사망한 전모 씨(67)의 동료는 “자동차 안에서 사망했는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려서 유전자(DNA)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연기를 들이마시는 바람에 탈출을 못 했다고 들었다”며 애통해했다. 얼굴 등에 큰 화상을 입는 등 중상을 당한 3명 중 2명은 한림대성심병원으로, 1명은 안양샘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다. 중상자 조모 씨(59)는 한림대병원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연기와 열기가 덮치면서 차 안에 있으면 죽을 것 같아 뛰쳐나왔다. 앞이 안 보였는데 깜빡이 불빛이 보여 그쪽으로 무작정 뛰어나갔다. 같이 타고 있던 형님은 못 나왔는데 걱정”이라고 했다.과천=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과천=손준영 기자 hand@donga.com과천=최원영 기자 o0@donga.com}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을 달리던 트럭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지고 37명이 부상을 입었다. 29일 경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49분경 안양에서 성남 방향 북의왕 나들목(IC) 인근 갈현고가교 ‘방음터널’(830m)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폐기물을 싣고 주행하던 5t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시작됐다. 이 트럭은 터널 시작 지점에서 약 280m를 달린 후 불이 나 정지했다. 이 트럭 운전사는 사고 현장 인근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엔진에서 불이 나 차가 멈췄다. 차량에 있던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불이 안 꺼져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불은 트럭 뒤에 실려 있던 폐기물로 옮겨붙었고 아크릴의 일종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 소재 방음벽과 터널 천장까지 빠르게 확산됐다. 한국도로공사 산하 도로교통연구원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PMMA는 강화유리 등 다른 재료보다 저렴하지만 불이 쉽게 붙고 빨리 녹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이 급속도로 옮겨붙은 탓에 미처 터널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5명이 사망했고, 37명은 화상과 연기 흡입 등 부상을 입었다. 소방당국은 인접 소방서까지 총출동하는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소방차 등 화재 진압 장비 77대를 투입했다. 이어 화재 발생 2시간여 만인 오후 4시 12분경 화재를 진압했다. 경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트럭에서 갑자기 불이 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화재 사고와 관련해 “철저한 수색 및 구조된 분들에 대한 의료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지시했다.방음벽 소재, 강화유리보다 싸지만 불에 약해… 불똥비 쏟아졌다 폐기물 수집車서 난 불, 벽타고 번져2020년 수원 터널 화재도 같은 재질휘발성 물질이 유독가스 내뿜어美 등은 불연소재… 韓, 규정 없어 “트럭에서 갑자기 불이 나더니 터널 전체로 순식간에 불이 확산됐습니다. 온 힘을 다해 밖으로 뛰어나왔어요.” 29일 오후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 나들목(IC) 인근에서 발생한 ‘방음터널 화재’ 목격자 박모 씨는 사고 현장 인근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긴박했던 화재 당시를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연성 소재의 방음벽으로 불이 옮겨붙으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순식간에 불길 확산”화재 당시를 찍은 영상을 보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실감할 수 있다. 갓길을 포함해 왕복 8차로 도로가 모두 화염에 뒤덮인 상태인데 터널 입출구로는 검은 연기가 하염없이 배출되는 모습이다. 방음터널 천장이 열기에 녹아 뚝뚝 떨어지는 장면도 영상에 담겨 있다. 터널에서 간신히 탈출했다는 심모 씨는 “터널에 막 접어드는데 폭발 소리가 나면서 차가 정체되기 시작했고 연기가 터널 밖으로 밀려나왔다”며 “후진을 해서 겨우 나왔는데 못 나온 사람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소방당국은 폐기물 수집 집게 트럭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 트럭 운전사 이모 씨(63)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처음에는 불이 붙었다는 걸 몰랐다. 엔진에서 불이 나 차량이 자동으로 멈춰 서자 하차 후 차량에 있는 소화기 2개로 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불이 꺼지지 않아 119에 신고했다”고 했다.○ 저렴한 가연성 소재가 불길 키워이번 화재는 플라스틱 소재 방음벽 때문에 피해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불이 난 터널의 방음벽은 알루미늄 철골 구조에 아크릴의 일종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로 제작됐다. 방음터널에는 강화유리가 많이 사용되지만 PMMA가 더 가볍고 설치가 쉬워 최근 방음벽 재료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가격도 강화유리보다 저렴한 편이라 공사비를 아끼려는 시공업체에서 많이 찾는다. 문제는 휘발성 유기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불이 붙은 PMMA는 유독가스를 다량 내뿜어 질식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PMMA 소재 방음터널 화재는 과거에도 있었다. 2020년 8월 경기 수원시 영통구 하동 광교신도시에서 해오라기터널로 이어지는 하동 나들목 고가차로에서 승용차에서 발생한 화재가 벽면을 타고 불이 옮겨붙어 PMMA 소재 방음터널 200여 m가 뼈대만 남고 다 탔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방음터널에는 불연 소재를 사용하는데 한국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방음시설 안전기준도 미비교통소음 저감 목적의 방음시설은 환경부 기준에 따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기준 자체에 안전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소음진동관리법 관련 조항을 살펴본 결과 화재와 관련된 내용은 ‘한국산업규격(KS)에서 정하는 규격에 적합하거나 동등 이상의 재료로 해야 한다’, ‘방음시설은 내구성, 내화성이 좋은 것으로 한다’ 등 두 가지뿐이었다. 고용노동부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는 “방음판 재질을 화재 안전성(불연성)을 고려해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천=이경진 기자 lkj@donga.com과천=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달리는데 갑자기 차 엔진에 불이 붙었습니다. 처음에는 불이 붙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습니다.”29일 오후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나들목(IC) 인근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처음 불이 난 5t 폐기물 수집 집게 트럭 기사 이모 씨(63)는 화재 현장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엔진에서 불이 나 차량이 자동으로 멈춰서자 하차 후 차량에 있는 소화기 2개로 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불이 꺼지지 않아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트럭은 터널 시작 지점에서 약 280m를 달린 후 불이 나 정지했다.이 씨는 “아마 비닐이 날려서 엔진 쪽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며 “불이 나는 차량을 보고 주변 차량들이 급정거를 하면서 추돌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법인 회사의 트럭 운전수인 이 씨는 29일 오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트럭에서 갑자기 불이 나더니 터널 전체로 순식간에 불이 확산됐습니다. 온힘을 다해 밖으로 뛰어나왔어요.” 29일 오후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나들목(IC) 인근에서 발생한 ‘방음터널 화재’ 목격자 박모 씨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긴박했던 화재 당시를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문가들은 가연성 재질의 방음벽으로 불이 옮겨붙으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또 “방음터널을 불연소재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9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43개의 방음터널이 있다.● “순식간에 불길 확산” 화재 당시를 찍은 영상을 보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실감할 수 있다. 갓길을 포함해 왕복 8차선 도로가 모두 화염에 뒤덮인 상태인데 터널 입출구로는 검은 연기가 하염없이 배출되는 모습이다. 방음터널 천정이 열기에 녹아 뚝뚝 떨어지는 모습도 영상에 담겨 있다. 화재가 발생하자마자 탈출했다는 심모 씨는 “터널에 막 접어드는데 폭발 소리가 나면서 차가 정체되기 시작했고 연기가 터널 밖으로 밀려나왔다”며 “후진을 해서 겨우 나오긴 했지만 못 나온 사람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500여m 정도 떨어진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김모 씨는 “불과 연기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며 “실내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놀라서 밖으로 뛰쳐 나올 정도였다”고 했다. 소방당국은 폐기물 수집 집게 트럭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 트럭 운전기사 이모 씨(63)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처음에는 불이 붙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엔진에서 불이 나 차량이 자동으로 멈춰서자 하차 후 차량에 있는 소화기 2개로 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불이 꺼지지 않아 119에 신고했다”고 했다. 불은 이후 방음터널의 플라스틱 재질 구조물에 빠르게 옮겨 붙어 피해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가연성 소재가 불길 키워 이번 화재는 플라스틱 소재 방음벽 때문에 피해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불이 난 터널의 방음벽은 알루미늄 철골 구조에 반투명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로 제작됐다. 방음터널에는 강화유리가 많이 사용되지만 PMMA이 더 가볍고 설치가 쉬워 최근 방음벽 재료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가격도 강화유리보다 저렴한 편이다. 투명 재질이어서 시야 확보고 가능하다. 문제는 휘발성 유기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불이 붙은 PMMA은 유독가스를 다량 내뿜어 질식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방음터널에는 불연 소재를 사용하는데 한국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방음시설 안전기준도 미비 교통소음 저감 목적의 방음시설은 환경부 기준에 따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기준 자체에 안전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소음진동관리법 관련 조항을 살펴본 결과 화재와 관련한 내용은 ‘방음시설에 사용되는 재료, 시험방법 및 재질 등은 한국산업규격(KS)에서 정하는 방음판 종류별 규격에 적합하거나 동등이상의 재료로 하여야 한다’, ‘방음시설은 가급적 방음효과가 우수하고 사후관리가 편리하며 내구성, 내화성이 좋은 것으로 한다’ 등 두 가지뿐이었다. 고용노동부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는 “방음판 재질 및 성능을 화재 안전성(불연성)을 고려해 선정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과천=이경진 기자 lkj@donga.com과천=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을 막기 위한 이른바 ‘n번방 방지법’ 시행 만 1년이 지났지만 ‘제2 n번방’ 등 온라인 성착취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은밀히 성착취물이 유통되는 메신저 텔레그램의 경우 서버가 해외에 있는 탓에 한국 경찰의 수사력이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찰에 신고해도 “검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에 숨죽여 우는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디지털 성착취물 피해자들이 경찰서에서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은 ‘(유통 경로가) 텔레그램이라 (범인을 잡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이라고 한탄했다. ‘온라인 수색’ 등 새로운 수사 기법을 도입해 수사 당국의 수사력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비공개 대화방은 모니터링 못 해 지난해 12월 10일 시행된 n번방 방지법은 2019년 조주빈(27·수감 중)과 문형욱(27·수감 중) 일당의 텔레그램 불법 성착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성폭력처벌법 등 6개 법 개정안을 가리킨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온라인 성착취 범죄는 더 증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2047건이던 통신매체 이용 음란 범죄 발생 건수는 2021년 5023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7월까지만 5937건이 적발됐다. n번방 방지법의 핵심은 인터넷 사업자의 불법 성착취물 삭제 및 필터링 조치를 의무화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토록 한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 그러나 사업자의 모니터링·삭제 의무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 공개된 대화방이나 게시판에만 적용된다. ‘사적 대화방까지 모니터링하고 규제하는 건 통신·비밀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의견이 많아 개인 및 단체 대화방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불법 촬영물 온라인 유통을 모니터링하는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개인 간 사적 대화방에서 발생한 범죄를 조사하는 것은 행정 당국의 역할이 아니라 수사의 영역”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비공개 메신저 대화방을 통한 성착취물 유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달 초에는 2018년 9월∼올해 8월 미성년자 73명을 대상으로 성착취물 1000여 개를 만들어 트위터 다이렉트메시지(DM)를 통해 유포한 현역 육군 장교가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텔레그램, 성착취물 삭제·수사 협조 요청 무시 더 큰 문제는 온라인 성착취물이 활발히 유통되는 플랫폼이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이라는 데 있다. 지난달 호주에서 검거된 ‘제2 n번방’ 사건의 유력 용의자(일명 ‘엘’) 역시 2020년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텔레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미성년자의 성착취물을 유포해 왔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개발자가 2013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사 등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텔레그램 측은 그간 우리 행정 당국의 불법 촬영물 삭제 요구를 무시해 왔다. 삭제 요구가 제대로 전달됐는지마저도 확실치 않다. 텔레그램에도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과 비슷한 ‘오픈 채널’이 있다. 방통위는 모니터링을 거쳐 텔레그램 오픈 채널에 올라온 불법 촬영물에 대해 삭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행은 안 되는 실정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텔레그램은 법인 소재지나 운영 주체가 드러나지 않아 모니터링 결과 등을 고객센터 e메일로 고지하고 있지만 삭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텔레그램은 우리 수사 당국의 협조 요청에도 묵묵부답이다. 국내 플랫폼은 사적 대화방이라도 검경의 압수수색 등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할 수 있다. 반면 텔레그램 등 서버를 해외에 둔 메신저는 대화 내용을 확보하려면 사실상 운영사 측의 협조를 받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우리 당국의 수사 협조 요청에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 경찰은 n번방 사건이 터지고 2020년 텔레그램 본사에 조주빈 등 주범의 계정 정보를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 경찰은 당시 텔레그램 본사가 있다고 알려진 아랍에미리트(UAE)로 건너간 뒤 인터폴 및 현지 경찰의 도움을 받아 텔레그램 본사 측과 접촉하려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본사가 있다고 알려졌던 곳에는 텔레그램과 무관한 업체가 영업 중이었다. ‘제2 n번방’ 사건에서도 우리 경찰은 용의자를 추적하기 위해 텔레그램 측의 협조를 받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수사력 강화가 현실적 대안” 텔레그램 접속을 금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만큼 전문가들은 국내 수사 기관의 수사력을 강화하는 것이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 관계자는 “소재도 파악되지 않는 텔레그램의 수사 협조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했다. 이에 검경이 피의자의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해킹해 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온라인 수색’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온라인 수색이 도입되면 텔레그램 등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를 통한 성착취물 범죄도 서버 압수수색 없이 범죄자의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을 통해 직접 범행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온라인 수색의 적법성과 도입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성착취물 범죄는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쉽지 않은 피해를 남기고, 미성년자 피해도 많은 만큼 온라인 수색을 도입해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범죄와 관련 없는 많은 정보가 입수돼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신중론도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온라인 수색이 도입된다고 해도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한해 적용돼야 할 것”이라면서 “통신·비밀의 자유 침해 등의 논란이 예상돼 도입에 앞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역시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작성한 온라인 수색 관련 연구 보고서에서 “온라인 수색 도입으로 침해될 수 있는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붙잡힌 피의자가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수사 당국에 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호주, 프랑스처럼 피의자가 휴대전화 암호를 푸는 데 협조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해외 메신저를 단속하기 위해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사이버 범죄에 대한 국제 형사사법 공조를 강화하는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며 “국제 공조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해외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현지 경찰의 수사 결과를 우리가 전달받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아이들이 저에게 침을 뱉고, 때리고, 변기에 제 물건을 쏟았어요. 그때 주변에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대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습니다.”“사랑하는 사람을 제 손으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고립돼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고 몸에 상처를 냈어요.”12일 오후 10시경 서울 마포구 지하철 홍대입구역 인근의 한 극장. 장기간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집 안에만 머무는 ‘은둔형 외톨이’ 경험이 있는 청년 8명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연극을 통해 은둔 경험을 고백하고 자신의 사연을 바탕으로 직접 작사한 노래를 불렀다. “이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 혹시 괜찮다면 물어봐도 될까요. 그댄 어떤 날이 제일 괴로웠나요. 그때 그날 혼자 어떻게 버텼나요.” 노래를 따라 부르던 관객들이 하나둘 눈물을 훔쳤다.이날 공연의 제목은 ‘꼭꼭 숨었쇼: 사실 숨고 싶지 않았던 우리들의 콘서트’였다. 공연은 “꼭꼭 숨어라”라는 외침에 관객들이 “머리카락 보일라”라고 화답하며 시작됐다. 꼭꼭 숨었던 이들은 어떻게 과거를 딛고 공연에 나설 힘을 얻었을까. 이날 무대에 올랐던 김초롱 씨(30)와 송경석 씨(37), 정인희 씨(29)를 서울 강북구의 한 셰어하우스에서 19일 만났다. 이들은 중고교나 대학 시절부터 10년가량 방 안에 은둔했던 이력이 있다. 》○ 세상의 각박함에 숨어버린 청년들은둔형 외톨이를 향해 주변에선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 “사지 멀쩡한 애가 나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라”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대에 오른 청년들은 ‘은둔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은둔으로 내몰린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은둔의 배경에는 학교·가정 폭력이나 경쟁 사회, 빈곤 등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 씨는 집안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홀로 있을 때가 많았다. 자주 못 보는 아버지는 올 때마다 폭언을 해서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 돌보는 이 없는 상황에서 게임 중독에 빠졌던 정 씨에게 중학교 1학년 때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듬해부터 등교를 거부하고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친 채 방 안에 틀어박혔다. 정 씨는 “몇 년 동안 청소하지 않아 지저분한 방 안에서 컴퓨터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누워 있었다”면서 “부모님과도 문자로 의사소통을 했다”고 했다. 김 씨는 외환위기 때 큰 빚을 진 아버지의 가정 폭력으로 우울증을 앓다가 고교 2학년 무렵부터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씻는 것을 거부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해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김 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송 씨는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서 대학에 진학한 뒤 고생하는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송 씨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음식을 먹던 게 폭식으로 이어졌다. 원래 마른 체형이었는데 몸무게가 150kg까지 늘더라”며 “사람들이 나를 기피하고 혐오하는 걸 겪고 방에 틀어박히게 됐다”고 했다.○ 주변의 손길에 마음의 문 열어이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갖게 된 건 가족과 주변인들이 내민 따뜻한 손길 덕분이었다. 정 씨를 동굴 밖으로 꺼낸 것은 은둔 11년째 되던 해 입원했던 정신병원의 주치의였다. 주치의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정 씨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 과외를 해주는 등 정 씨를 아버지처럼 따스하게 대했다. 정 씨는 “주치의 선생님 덕에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리게 됐다”며 “하루는 밖에 나갔는데 다리 근육이 퇴화돼 걷지도 달리지도 못하는 걸 경험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송 씨의 아버지는 길어지는 자식의 은둔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전거 타는 걸 좋아했던 송 씨에게 ‘한 번이라도 아들과 자전거를 같이 타는 게 소원’이라며 밖으로 끌어내려 노력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중학교 동창은 신장 기능이 떨어졌음에도 투석을 거부했던 송 씨에게 “제발 병원이라도 가보라”며 많은 돈을 쥐여줬다. 송 씨는 “그때 마음이 열렸다. 그 친구의 마음을 봐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송 씨는 이후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습관을 들이게 됐다.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병 치료도 시작했다. 김 씨 역시 가족의 지지가 큰 도움이 됐다고 돌이켰다. 김 씨는 “언제나 내 편을 들어 준 여동생 덕분에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게 한순간에 되진 않았다. 이들은 “은둔 생활에는 ‘관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잠시 방심하면 다시 삶의 의욕을 잃고 동굴로 돌아가기 쉽다는 것이다. 정 씨는 “저는 은둔을 벗어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극복 중인 상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둔이 길었던 이들에게 세상도 녹록지 않았다. 5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우울증이 호전된 김 씨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이력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김 씨는 “사회생활에 공백이 있다 보니 ‘알바 할 나이는 아닌 것 같아요’라며 수상하게 보는 경우가 있더라”고 했다. 이들에겐 은둔형 외톨이 경험을 가진 이들이 교류하는 ‘은둔고수’ 프로그램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일본 사회적 기업 ‘K2인터내셔널’ 한국 지부가 운영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 말 한국 지부가 문을 닫자 지부 직원 등이 사회적 기업 ‘안무서운회사’를 창업해 이어나가고 있다. 12일 공연을 주최한 것도 안무서운회사다. ‘다시 은둔 생활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에 흔들리던 김 씨 역시 은둔고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김 씨는 “전에는 나만 의지가 없어서 이렇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은둔이 일종의 사회적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했다.○ “‘은둔 스펙’으로 도움 주고 싶어요”최근까지 은둔고수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은둔형 외톨이들은 약 30명에 이른다. 안무서운회사는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딛고 일어난 청년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연결해 준다. 또 이들이 독립해 생활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 등도 운영하고 있다. 김 씨 역시 안무서운회사에서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은둔 청년 문제 공론화를 시도하고 은둔 청년 및 가족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고 있다. 그는 “얼굴을 공개하고 내 얘기를 하는 게 처음에는 굉장히 꺼려졌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로 찾아온 사람이 ‘인터뷰를 보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며 “그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정 씨 역시 안무서운회사 매니저로 일하며 은둔 청년들을 돕기 위한 각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송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이들을 돕고자 사회복지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힘들던 시절 나에게 손을 내밀어줬던 친구와 내 병을 치료해준 사회에 늘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며 “은둔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 마지막으로 아직 방 안에서 세상과의 교류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못 나올 수 있어. 노력해도 쉽지 않아. 나오는 게 정말 대단하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아. 그러나 자책만은 하지 마. 책임은 세상에도 있는 거야.”(정 씨) “네 잘못이 아니야. 지금 당장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할 수 있어, 정말이야.”(송 씨)韓, 은둔형 외톨이 실태파악 못해… 서울-광주시만 지원 ‘은둔형 외톨이’ 늘어나는데 지원은 태부족다른 지역 거주자는 사각지대로… “관계맺기 교육 전문가 양성 필요”日, 1990년대 은둔형 외톨이 주목… 지자체와 단계별 맞춤 정책 펴 한국보다 먼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 일본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단계별 맞춤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관련 정책이 상대적으로 미비한 실정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등교 거부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고, 1990년대 들어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부 차원에선 2001년 후생노동성이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대응에 나섰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해외동향리포트 일본 편에 따르면 일본에는 지역 사회의 은둔형 외톨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방문해 당사자와 가족에게 상담 등의 지원을 하는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가 전국 지자체 67곳에 설치돼 있다. 또 ‘지역청년 서포트 스테이션’을 설치해 15∼39세 ‘니트족’(구직단념자)을 대상으로 자립 상담 및 취업 훈련 등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은둔형 외톨이 고령화 문제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은둔형 외톨이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2020년 광주시가 전국 최초로 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실시했지만 아파트 거주 가구에 대해서만 서면 조사로 진행해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23년 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진행하며 규모 파악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원 프로그램도 부족하다. 전국에서 관련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자체는 서울시와 광주시 정도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은둔 청년이 타인과 교류할 수 있도록 공동생활을 지원하고 전문가 심리상담, 미술치료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은 지난해 70여 명에서 올해 531명으로 크게 늘었다. 광주시는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를 통해 개인 상담 및 생활습관 개선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백희정 광주시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최근 다른 지역 거주자 5명이 프로그램 참여를 문의해 왔지만 지자체 프로그램이어서 돌려보내야 했다”며 “정부 차원에서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거주지 관계없이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은둔형 외톨이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상빈 광주동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의 여파로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전 연령대에 걸쳐 나타나고 있어 실태조사가 시급하다”면서 “관계 맺기 교육이 가능한 전문가 양성도 필요하다”고 했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평소 3만 원 정도 나오던 택시비가 4만 원 가까이 나오더라고요. 심야 할증 요금이 부담돼 지하철 막차를 사수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에서 일하는 직장인 정모 씨(29)는 회식이 잦은 요즘 지하철 막차를 타기 위해 모임 중에 시간을 자주 체크한다고 했다. 이달 초 경기 고양시에 있는 집까지 택시를 탔다가 요금이 평소보다 1만 원가량 더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란 다음부터다. 정 씨는 “연말이라 모임이 많은데 매번 심야 택시를 탔다간 통장 잔액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라고 했다.○ “택시비 아까워 빨리 집으로”이달 1일부터 서울 심야 택시 요금 할증시간은 ‘밤 12시부터’에서 ‘오후 10시부터’로 확대됐고, 오후 11시∼오전 2시 구간의 경우 할증률이 ‘20%’에서 ‘40%’로 높아졌다. 이후 “택시요금이 부담된다”며 지하철이나 버스로 귀가하기 위해 저녁 모임 시간을 당기거나 1차만 하고 자리를 파하는 이가 늘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30대 직장인 남모 씨는 “13일 서울에서 지인들과 저녁을 먹었는데 2차를 가는 대신 오후 10시경 먼저 일어났다”며 “요금 인상 전이라면 늦게까지 놀다가 택시를 탔겠지만 이젠 택시비가 예전보다 1만 원 더 나오니 부담이 크다”고 했다.○ 택시 호출앱 이용도 ‘뚝’한편 심야 택시 공급은 늘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심야 시간대(오후 11시∼다음 날 오전 2시) 택시 운행 대수는 이달 1∼10일 하루 평균 2만1384대로 지난달 17∼26일(평균 1만9874대)보다 7.6% 늘었다.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다 보니 늦은 밤 택시 잡기는 한결 수월해졌다. 10일 오후 11시경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는 빈 택시가 도로에 줄지어 서 있었다. 직장인 서모 씨(28)는 “예전에는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동네인데, 주말인데도 길가에 빈 택시 4대가 기다리고 있어서 바로 탈 수 있었다”고 했다. 택시 호출 앱을 안 써도 길가에서 쉽게 택시를 잡을 수 있게 되면서 호출앱 이용도 줄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택시 호출앱 3종(카카오T, 우티, 티머니온다)의 이용 건수는 이달 1∼3일(목∼토요일) 462만여 건으로 심야 할증 요금 인상 전인 지난달 17∼19일(481만여 건)보다 약 19만 건 줄었다. 반면 배차 성공률은 올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달 1∼7일 택시 호출앱의 서울지역 심야시간대 배차 성공률은 평균 62%로 지난달(36%) 대비 26%포인트나 올랐다.○ 기사들 “손님 없어 수입 줄어”택시기사들은 울상이다. 10년 차 택시기사 이모 씨(60)는 “심야 할증 개편 후 밤 손님이 30%가량 줄어든 것 같다. 손님 하나 태우려고 전쟁”이라며 “보통 하루 10시간 일했는데, 요즘은 13∼14시간은 뛰어야 같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오봉훈 전국택시노조연맹 서울지역본부 사무처장은 “야간 근무를 하는 기사들이 주간으로 돌아오겠다고 떼를 쓸 정도”라고 전했다. 심야 택시 승객 감소가 일시적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영환 서울 개인택시조합 이사는 “요금이 오르면 일시적으로 승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차츰 회복해 3∼4개월 후면 정상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내년 2월부터 택시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어 승객 수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경기 상황도 승객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승객 회복 여부 역시 경기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고등학생이 숙박업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참사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12일 오후 11시 40분경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숨진 A 군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A 군은 이날 오후 7시경 홀로 투숙했는데, 아들이 야간자율학습 후 귀가하지 않자 어머니가 실종신고를 해 경찰이 수색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범죄를 의심할 정황은 없었다. A 군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A 군은 참사 당시 이태원에 함께 갔던 친구 2명을 모두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A 군도 다리 근육 파열 부상을 입고 위독한 상태까지 갔지만 병원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A 군은 참사 후 주 2회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치료를 받고 교내 심리 상담도 수시로 받아 왔다. 또 트라우마를 우려한 부모님과 담임교사가 지켜봐 왔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내 상담교사로부터 ‘최근 아이가 많이 좋아지고 있으며, 교내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달받았다”며 “상담교사도 충격이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A 군 부모의 지인이라고 밝힌 한 조문객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고교 1학년이라는 나이에 온전히 견뎌내긴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라며 “참사 이후 정신과 치료도 받고, 학교생활도 잘했는데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을 부모는 믿기 힘든 상태”라고 썼다. 한편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측은 “A 군 사망 소식을 듣고 조문을 가려고 했지만 ‘조용히 보내고 싶다’는 유족 의견에 따라 조문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마약 사범이 급증하고 있지만 마약 중독 전담 치료병원 21곳 가운데 19곳은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잘못된 선택으로 마약에 빠진 초기 중독자가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전문 치료인력 및 관련 예산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20, 30대 마약사범은 지난해 5944명 적발돼 2018년(3196명)보다 86% 증가했다. 증가율이 같은 기간 전체 마약사범 증가율(31.1%)보다 훨씬 높다. 초범 비율 역시 같은 기간 72.3%에서 81.2%로 늘었다. 치료를 통해 마약의 덫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초기 중독자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치료를 받고 싶어도 병원을 찾을 수 없어 몇 달씩 기다리는 실정이다. 동아일보가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실을 통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치료비를 지원하는 지정 병원 21곳 중 9곳(42.9%)은 최근 5년(2018년 1월∼2022년 6월) 동안 치료한 중독자가 한 명도 없었고, 10곳(47.6%)은 치료 대상이 연간 1∼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2곳인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이 연간 100명 이상을 담당하며 사실상 치료를 도맡고 있었다. 지난해와 올해 치료 환자가 ‘0명’인 청주의료원 관계자는 “전문 의료진이 없어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털어놨다.국내 마약 전문의 4명뿐… 중독자들 “두달 이상 기다려 진료” 마약 전담병원-인력 부족 병원들 “전문의 없어 진료 못 봐”정부-지자체에 치료비 떼이기도“초기 중독자 골든타임 놓칠 우려” “반드시 끊겠다고 마음먹고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병원 4, 5곳에 연락해 봤지만 모두 거절당했어요.” 마약 중독자였던 30대 박모 씨는 지난해 1월 치료를 결심한 후 복지부 지정 마약 전담 치료병원 여러 곳에 문의했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답만 들었다고 했다. 박 씨는 “당시 ‘영영 치료를 받을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인천참사랑병원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두 달을 기다린 끝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마약 중독자들은 “치료 가능한 병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2, 3개월 대기는 기본”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러 달을 기다려 병원 치료를 받고 6년간 빠졌던 마약에서 벗어났다는 20대 중반 A 씨는 “주변에서 입원을 기다리다 금단 증상을 이기지 못해 다시 마약에 손댄 이들을 봤다”고 했다.○ “전문의 없다” 치료 손놓은 병원들정부는 1990년대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 병상 수 등을 기준으로 마약 치료병원을 지정해 왔다. 그런데 이들 병원 대다수가 마약 중독 치료를 사실상 중단한 것을 두고 복지부 관계자는 “내년에 지정 기준 등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병원들은 “마약 전문 의료진이 없다 보니 환자가 와도 치료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입장이다. 지정 병원이지만 최근 4년간 마약 중독 환자를 받지 않은 울산마더스병원 관계자는 “전문의가 없어 진료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마약 치료는 알코올 등 다른 중독에 비해 치료가 까다로운 영역으로 분류된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정신과 전문의라고 해도 오랜 훈련 없이는 뛰어들기 어려운 분야”라며 “현재 제대로 마약 환자를 볼 수 있는 전문의는 국내 총 4명뿐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정부·지자체에 치료비 떼이기도”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치료비를 ‘떼인’ 지정 병원도 적지 않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지정 병원들이 정부·지자체로부터 받지 못한 관련 미수금은 연말 기준으로 2018년 3억2000만 원이 넘었고, 지난해에도 2000만 원 넘게 남아 있었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가 충분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독자의 치료비를 지방자치단체와 절반씩 나눠 지원하는데 정부 예산은 연간 약 4억1000만 원에 불과하다. 지자체 몫을 더해도 연간 8억2000만 원이 전부인 셈이다. 그나마 대구경북 등 일부 지자체는 올해 관련 예산이 ‘0원’이다. 이 때문에 중독자 치료에 적극 참여하던 병원이 지정 병원에서 빠지기도 했다. 서울 강남을지병원의 경우 2018년 기준 마약 중독 환자 267명 중 136명을 치료했다. 그러나 그해 치료비 미수금이 누적 3억 원에 이르자 지정 해제를 요구해 지정 병원에서 빠졌다. 이 병원은 2020년에야 미수금을 받았다. 지자체로부터 1억 원 넘게 치료비를 받지 못했던 한 병원 관계자는 “민간 병원 입장에서 억대 미수금은 운영에 차질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수 병원 인센티브로는 해결 안 돼”정부는 올 10월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전문 치료보호기관의 인프라를 확충해 일상복귀를 지원하고, 예산을 지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내년 정부 예산안에선 증액이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 대신 국회 보건복지위가 심사 과정에서 예산을 약 27억7300만 원 증액하는 안을 마련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안은 우수 치료기관 2곳에 인센티브를 2억 원씩 지급하는 한편 국립정신병원 5곳에 중독자 치료비를 1억 원씩, 총 5억 원 지원하도록 했다. 전문인력 양성 과정 개발 예산에는 3억 원이 편성됐다. 천영훈 원장은 “전문 인력 부족이 핵심 문제”라며 “병원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도 치료할 수 있는 환자 수에는 한계가 있어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실장은 “이미 한국의 마약 확산세는 단속만으로 뿌리 뽑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지만 중독 치료와 재활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며 “중독자를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해 지금이라도 인력과 시설 등 전반적인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책이 있는 지하철’이라는 간판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9일 오전 11시 반 서울 용산구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6호선 환승구간에 있는 ‘한우리문고’ 점장 배정인 씨(42)가 서점 간판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간판 아래로는 세계문학전집 등 책 500여 권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36년 만에 문 닫는 ‘지하철 서점’ 서울교통공사가 이태원 핼로윈 참사 이후 지하철역의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지하철 서점’을 이날까지 운영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서점을 찾은 시민들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직장인 조모 씨(23)는 “오늘이 마지막 영업인지 모르고 왔는데 사라진다고 하니 너무 아쉽다”며 “평소 지하철을 이용하며 서점을 둘러보는 일이 작은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전국진 씨(50)도 “바쁠 때는 서점에 갈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 지하철 서점을 애용했는데 무척 아쉽다”고 했다. 폐점 소식에 놀라 서점을 찾았다는 직장인 김민정 씨(30)는 “퇴근길 지하철 서점에 들러 책 구경하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는데, 서점이 없어지면 퇴근길이 퇴근길 같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지하철역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서점을 없앴다는 서울교통공사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왔다. 대학생 홍은혜 씨(21)는 “등하굣길 주 2회 정도는 이곳을 찾는데, 서점 앞 공간이 넓어 혼잡 구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왜 서점이 사라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김기훈 씨(73)도 “이태원 참사는 무척 안타깝지만, 그로 인해 지하철 서점을 없앤다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데 왜 없애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8일과 9일 점검한 결과 한우리문고 연신내점, 삼각지점 앞은 6~8m가량의 보행로가 확보돼 있었고, 퇴근 시간에도 크게 혼잡하지는 않았다. 한우리문고 관계자는 “그동안 서점이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민원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사랑방, 길 안내 역할도…“단순 서점 아냐” 1986년 지하철역 100여 곳에서 운영을 시작한 지하철 서점은 경영난 등으로 하나둘씩 문을 닫아 현재는 공덕, 종로3가, 약수, 연신내, 삼각지, 태릉, 왕십리 등 7곳만 남았다. 그러나 한우리문고에 따르면 서점 7곳에서 책을 산 사람은 한 달 평균 5000명이 넘고, 단순히 책을 둘러보는 시민들까지 합하면 매달 평균 1만5000명 정도가 방문했다고 한다. 이용자가 많다 보니 서점 운영중단 위기 소식에 특히 아쉬움을 토로하는 단골도 적지 않다. 15년 동안 서점을 이용했다는 김영순 씨(58)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시집 등을 사곤 했는데 이곳이 사라진다면 역에 올 때마다 기운이 빠질 것 같다”고 했다. 평일에 거의 매일 방문했다는 박연정 씨(73)도 “서점 간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차를 마시다 친해진 단골들이 많다. 단골끼리 반찬도 나눠 먹을 정도”라며 “우리에겐 단순한 서점이 아닌 ‘사랑방’ 같은 존재라 사라지면 우울증이 올 것만 같다”고 아쉬워했다. 연신내점 점장 양수진 씨(58)는 “멀리 경기 구리에서 이곳 서점을 찾는 단골도 있다“며 ”차마 운영 종료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고 했다. 시민들은 지하철 서점이 ‘소통의 공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배 점장은 “역 출구가 많다 보니 하루에도 20명의 승객이 길을 묻는다”며 “길 안내뿐 아니라 치매 노인, 복통을 호소하는 학생 등 갑작스레 도움이 필요한 승객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역무원을 불러오는 등의 일도 종종 있다. 단순 서점이 아닌, 소통의 공간인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내 문화공간 지킬 수 있었으면” 9일 위탁운영 계약이 종료된 한우리문고는 15일까지 모든 점포를 정리할 계획이다. 엄철호 한우리문고 대표는 “36년간 지하철 서점을 운영하며 수익보다는 승객들의 지하철 내 문화공간으로서의 자부심이 컸다”며 “일본 등 선진국은 주요 역사마다 서점이 있다. 우리나라도 지하철 내 문화공간을 지킬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서점이 계속 운영되길 바라는 요구가 있는 만큼 재입찰을 통해 서점 운영을 재개할지 여부를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전혜진기자 sunrise@donga.com}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재신청을 검토 중이지만 전날 이들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수사가 이미 동력을 상당 부분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수본 관계자는 6일 “이 전 서장 등에 대한 영장 재신청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수본이 앞서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통해 여러 증거를 모았음에도 법원이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구속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한 것으로 볼 때, 영장을 재신청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특수본이 사실상 핵심 피의자 혐의 소명에 실패한 걸로 보인다”며 “구속영장을 재신청해도 발부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경찰 안팎에선 ‘부실한 사전·사후 조치가 참사를 낳았다’며 이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한 특수본의 논리가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법무법인 아리율의 백성문 변호사는 “경찰의 조치 미흡과 부상, 사망자 발생의 인과관계 입증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법원이 형사책임 인정 가능성을 낮게 본 것”이라고 했다. 향후 ‘윗선’ 수사 확대도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현장 책임자의 혐의가 뚜렷치 않다면 지휘 책임을 지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의 혐의 입증은 더욱 어렵다는 분석이다. 경찰 관계자는 “용산구청, 행정안전부 등 타 기관 피의자의 영장 신청 방침도 재검토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로 아들을 잃은 이종철 씨(54)는 이 전 서장 등에 대한 영장 기각을 두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며 “(같은 경찰) 식구끼리 수사해서 이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유채연 기자 ycy@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아들 인생이 걸린 입시 면접인데 갑자기 열차편이 취소되면 못 갈 수도 있잖아요. 파업 소식을 들으니 갑자기 걱정되더라고요.” 광주에 사는 학부모 이모 씨(55)는 1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아들과 3일 대입 면접시험을 위해 당일 새벽 KTX를 타고 서울에 갈 예정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2일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파업에 돌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던 이 씨는 결국 표를 취소하고 전날 자동차를 운전해 올라가 하룻밤 자기로 했다. 이 씨는 “중요한 시험인데 잠자리가 바뀌는 게 결과에 영향을 줄까 봐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4일부터 준법투쟁(태업)을 진행 중인 철도노조가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중요한 약속 등을 위해 열차를 예매한 승객들의 걱정이 커지는 모습이다.○ “면접 놓칠까 봐 열차표 취소”특히 이번 주말 지방에서 열차편으로 상경하려던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크다. 서울대를 비롯해 건국대 경희대 중앙대 등 서울 주요 대학 면접 고사 일정이 2, 3일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부산에 산다고 밝힌 학부모는 “면접 당일 새벽 열차로 올라가려다 철도 파업이 걱정돼 표를 취소하고 전날 숙소를 잡았다”고 했다. 경북 포항에 사는 학부모 A 씨도 “딸 면접 때문에 전날 KTX를 예약했는데 철도 파업이 걱정돼 다른 교통편을 찾아보고 있다”고 썼다. 철도 파업으로 차량 이용이 늘면서 도로가 막힐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3일과 4일 오전에 대학 면접을 앞둔 수험생 김서현 양(18·경기 광명시)은 “철도를 포기한 사람들이 도로로 몰리면 평소 1시간 만에 갈 거리가 2∼3시간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시에 출발해야 늦지 않을지 고민”이라고 했다.○ “열차 언제 출발할지 불확실”지난달 24일부터 진행 중인 준법투쟁(태업)의 여파로 현장에선 이미 열차 이용객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1일 오후 2시 반경 서울역 매표소 앞에는 시민 8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전광판에는 “철도노조 태업으로 일부 열차 중지 및 지연 운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안내문구가 떠 있었다. 시민들은 그대로 열차를 기다려야 할지, 지금이라도 다른 교통편으로 변경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경기 평택시에 사는 박모 씨(22)는 오후 2시 6분에 타려 했던 평택행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던 중 열차가 90분 지연된다는 안내문자를 받았다. 매표소에 찾아가 열차가 언제 출발하느냐고 물었더니 “불확실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박 씨는 “지금도 열차 이용에 불편이 큰데 파업까지 더해지면 열차 이용이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KTX를 타고 출퇴근한다는 직장인 최모 씨(42)는 “KTX가 중단되면 버스밖에 방법이 없는데, 시간도 1시간이나 더 걸리고 표도 구하기 힘들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항구에 컨테이너 발 묶여”8일 차에 접어든 화물연대 파업의 여파도 점차 산업계 및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 중국 제품 구매대행업체 관계자는 지난달 27일부터 평택항에 쌓인 제품을 이송해 줄 화물업체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1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까지 컨테이너 3개 분량의 물건이 그대로 항구에 쌓여 있어 고객에게 배송을 못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해외 직구 대행업체 관계자는 “중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증가로 우리 물류센터가 있는 웨이하이시 항구가 봉쇄돼 물건을 돌려보낼 수도 없는데, 국내 배송마저 못해 매출이 바닥을 치고 있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 관계자는 “하루에도 배송 지연 항의 전화가 수십 통씩 오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유류 등 필수품 배송을 걱정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전남 장성군에 거주하는 김모 씨(27)는 “비닐하우스에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는데 보일러용 기름까지 구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중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모 씨(62)는 “혹시라도 (화물연대가 하이트진로 공장을 점거했던) 올 6월 파업 때처럼 주류 구입에 차질이 생길까 두려워 미리 많이 사둬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