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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2시 30분경 강원 춘천시에서 한 대의 버스가 광주를 향해 출발했다. 헬기 추락으로 숨진 소방대원 5명의 유족 12명을 태운 버스였다. 시신이 수습된 광주 광산구 왕버들로 KS병원까지 5시간 가까운 긴 시간이었지만 버스 안에서는 유족들의 오열이 한순간도 끊이지 않았다. 버스가 두 차례 휴게소에 멈췄지만 유족들은 한 명도 내리지 않았다. 춘천소방서가 준비한 물과 음료수도 마시지 않았다. 그저 “믿을 수 없다”는 탄식과 흐느낌만 이어졌다. 오후 7시 7분경 버스가 병원에 도착했다. 사망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50대 여성이 쓰러지듯 버스에서 내렸다. 이 여성은 소방서 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우리 아들 왜 죽었어, 우리 아들이 왜 죽어”라며 절규했다. 가족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 한 남성은 연신 한숨만 내쉬며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6시 50분경 이들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한 한 30대 여성은 엄두가 나지 않는 듯 장례식장 입구에 주저앉았다. 순직 소방대원의 여동생이라고 밝힌 이 여성은 “오빠 어떡해. 애들도 아직 어린데”라며 흐느꼈다. 병원 7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브리핑이 끝난 뒤 한 유족은 “출근하다가 라디오로 사고 소식을 들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탄식했다. 오후 9시경 희생자 시신은 신원 확인을 위해 전남 장성군 광주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졌다. 유족들은 시신 운구를 지켜본 뒤 광주시내 한 모텔로 이동했다. 장례절차와 별도로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는 강원 춘천시 동내면 강원 효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 머물던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도 충격에 빠졌다. 가족들은 추락한 소방헬기가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여했다가 복귀하는 중이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우리를 도와주러 멀리 강원도에서 오신 분들이라는데, 너무 가슴 아프다”라며 “기상 상황이 나빠 헬기가 뜨지 못하고 수색도 못했다는데 왜 복귀하려 했는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팽목항에서 수색작업을 지원하던 소방대원들은 하나같이 착잡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일하던 중간중간 굳은 표정으로 뉴스를 지켜보거나 가족들의 안부 전화를 받기도 했다. 전남도소방본부 소속 김모 소방장(45)은 “13일에도 제주에서 소방관이 화재 진압 도중 순직한 소식을 들었는데 또 동료들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마음이 더할 수 없이 무겁다”고 말했다.광주=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나 전국구 건달이야. 도망가면 지방 건달들 풀어서 끝까지 찾아낸 다음에 죽여버린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던 A 씨(32·여)는 지난해 조직폭력배 이모 씨(44)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벌벌 떨었다. 이 씨는 "도망가면 여기보다 더 (착취가) 심한 섬에 팔아버린다"는 협박도 했다. A 씨가 '야한 옷'을 입고 있으면 사진도 찍었다. 왜 찍느냐고 물으면 "나중에 네 결혼식장에서 시부모와 남편에게 보여줄 거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A 씨는 2011년부터 약 2년간 경기 성남시의 룸살롱에서 일하다가 이 씨를 만났다. 그는 함께 '2차'를 가자며 밖으로 나올 때면 성매매를 하러 모텔에 가는 대신, 커피를 사줬다. 스키장에 데려가준 적도 있었고, 명품가방을 사주기도 했다. 한없이 자상한 남자로 보였다. 이 씨는 어느 날 "천호동 성매매업소에 가면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언제든 관둘 수 있다"며 자신을 따라가자고 말했다. 당시 A 씨는 교통사고를 내서 합의금 3000만 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씨는 합의금을 빌려주면서 천호동의 성매매 업소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날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이 씨는 여성들을 감금시킨 채 성매매를 하고 있었다. A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출을 할 때는 남자직원의 감시를 받았고, 감옥같은 나날이 지속됐다. 당초 성매매를 하기로 계약한 기간은 1년. 하지만 손님을 하루에 5명 이상 못 받거나, 몸이 아파서 쉬게 되면 계약기간이 하루씩 연장됐다. 몸이 아파 고통을 호소하면 업소는 '주사이모'로 불리는 무면허 업자인 전모 씨(57·여)를 불렀다. 전 씨는 항생제 주사를 놓아주면서 현금 1만~5만 원을 요구했다. A 씨는 아파도 주사를 맞아가며 성매매를 해야 했다. 이 씨는 조직폭력배 김모 씨(35)와 함께 무등록 대부업도 일삼고 있었다. 성매매 종사자 및 유흥업소 직원 44명을 상대로 3억5100만 원을 빌려주고 연 221%라는 폭리를 내세웠다. 그는 2009년부터 지난달까지 성매매업소 3곳을 운영하면서 1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이렇게 번 돈으로 외제차 12대를 타고 다녔고, 아파트와 전원주택을 사들이며 호화생활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 씨와 전 씨를 구속하고 관련인물 16명을 불구속입건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씨는 벌어들인 돈 중 약 17억 원을 위장이혼한 부인 김모 씨(44)를 통해 차명으로 관리하며 숨겨왔다. 경찰은 범죄수익을 환수하기 위해 해당 재산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양도·매매 등을 금지하는 '기소전몰수보전'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경찰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된 고소·고발사건과 관련된 수사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전교조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15일 수사관 10여 명을 보내 전교조 웹사이트와 e메일 등을 통합 관리하는 서울 서초구의 서버 관리업체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사법당국이 전교조 서버를 압수수색한 것은 2009년 7월과 지난해 12월에 이어 세 번째다. 전교조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교사들의 서명을 받아 5월 15일과 이달 2일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 대통령 퇴진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교조는 지난달 27일 정부의 법외노조 처분에 반발해 조퇴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교육부와 7개 보수교육단체는 이들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 및 고발한 상태다. 고소 고발 사건은 총 9건에 달한다. 전교조는 시국선언 당시 서명에 참여한 교사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1, 2차에 걸친 시국선언에 각각 1만5853명, 1만2244명이 서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는 교사들이 선언을 했다는 자료밖에 없고, 가담 과정과 정도에 대한 자료는 없다”며 “아울러 교사 중에는 동명이인이 많아 당사자를 특정하기 어려운데, 압수수색을 통해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두 차례 공동으로 올린 교사들도 수사 중이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을 통해 1차(5월 13일)로 글을 올린 43명의 신원을 파악했고, 같은 달 28일에 2차로 글을 올린 80명 중 3분의 2가량의 신원을 확인해 경찰에 자료를 넘겼다. 교육부 관계자는 “글 게재에 동참한 교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모집됐기 때문에 전교조 소속이 아닌 교사도 포함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직 교사 161명이 지난달 12일 한 언론사의 지면광고란에 대국민 호소문을 게재한 것과 관련해서도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참여 교사들의 명단은 있지만 소속은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경찰의 서버 압수수색에 대해 전교조는 성명서를 내고 ‘공안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전교조는 “박근혜 정권은 법외노조화에 이어 전방위적인 공안 탄압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이번 압수수색은 검찰, 청와대, 교육부가 합작한 기획 수사”라고 주장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일본 자위대(自衛隊) 창설 60주년 기념식이 11일 오후 6시 반 서울 성북구 성북동 주한 일본 대사관저에서 열렸다. 일본대사관은 당초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념식을 열 예정이었으나 호텔 측이 반대 여론을 이유로 10일 대관을 취소하자 장소를 옮겨 강행했다. 이날 오후 4시 30분경부터 대사관저 정문에서 50m가량 떨어진 골목에서 기념식 개최에 반대하는 국내 시민단체 회원 50여 명(경찰 추산)이 모여 항의했다. ‘집단자위권 반대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일본 우익 정치인의 얼굴이 인쇄된 현수막을 찢는가 하면 과거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불태우려다 경찰에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단체 회원은 “기념식을 중단하고 초청자 명단을 공개하라” “아베 총리는 당장 한국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외치며 경찰이 설치한 폴리스라인을 뚫고 대사관저로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격한 몸싸움을 벌였다. 시민단체 측은 “서울 한복판에서 자위대 창설 기념식을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일본군의 과거, 현재, 미래의 한반도 진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라고 우려했다. 5시간 가까이 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단체 회원들은 ‘집단자위권 행사 허용 철회’ 등의 내용이 담긴 서한문을 일본대사관 측에 전달하겠다고 요구했으나 대사관 측이 끝내 만남을 거부하자 오후 9시 15분경 해산했다. 이날 기념식에 국내 정관계 인사는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방부는 실무 협조 차원에서 주한무관협력과장(대령)을 참석시켰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군사외교적인 차원에서 유관 부서의 부장급(소장)이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냉각된 한일 관계) 상황을 고려해 실무 과장급으로 낮춰 보냈다”며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주최한 일본 내 국군의 날 행사에 일본 무관도 참석하기 때문에 (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아무도 가지 않는 것은 외교적인 결례”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행사에 140명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했다. 앞서 일본대사관 측은 국내 정관계 인사 등 500여 명에게 행사 초청장을 보낸 바 있다. 한편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호텔 측이 행사를 하루 앞두고 장소를 제공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연락한 것은 극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1차적으로 호텔의 문제여서 호텔 측에 항의했지만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이러한 (일본 측의) 우려를 확실히 전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11일 이번 사안을 ‘이례적 사태’라고 표현하며 “한국이 일본을 배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이샘물 기자도쿄=박형준 특파원}
“직접 쓴 논문에 내 이름이 제2저자로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을 지난해 졸업한 A 씨(27·여)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장관 후보자들의 제자 논문 ‘가로채기’와 ‘무임승차’ 논란과 관련해 “학생들이 쓴 논문에 지도교수의 이름이 제1저자로 기재되는 일은 공공연히 벌어져 왔다”고 10일 털어놨다. 그는 “논문을 쓰고도 내 이름이 아예 안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교수는 논문을 누가 썼느냐에 관계없이 여러 명의 제자 중 임의로 골라서 자신이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곤 했다는 것이다. 교수는 ‘제자 관리’를 빌미로 내세웠다. 논문 수가 부족한 제자들의 실적을 채워준다는 것이었다. 부당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연구 참여나 논문 심사에 목을 매는 대학원생에게 교수는 ‘슈퍼 갑’이었기 때문이다. A 씨와 같은 대학원에 다니던 B 씨(29·여)는 교수의 눈 밖에 난 뒤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외부 프로젝트를 맡아 교수의 연구실에서 6개월간 일하면서 월급을 한 푼도 못 받은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공평하게 나눠서 월급을 받았다.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게 논문 가로채기, 연구실적 부풀리기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유사한 경험을 한 대학원생이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가 올해 4, 5월 전국 대학생 4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논문, 연구 관련 비리를 겪어봤다”는 응답이 33%(138명)에 달했다. 가장 자주 겪는 논문 관련 비리로는 63명이 ‘무관한 논문에 이름 넣기나 참여자 이름 누락’을 꼽았다. 18명은 ‘논문 표절, 짜깁기’라고 답했고 ‘논문 대필로 금품 수수’라고 답한 대학원생도 6명 있었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는 이런 적폐를 바로잡기 위해 최근 20, 30대 230명으로 구성된 ‘2030 청년기획단’과 함께 대학원생 연구 활동에 관한 실태조사를 한 뒤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이며 이르면 다음 달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야. 노래 한 곡 불러봐라.” 지난해 6월 서울의 한 식당. 석사과정 대학원생 박모 씨(26·여)는 지도교수로부터 이런 주문이 떨어지자 얼굴이 빨개졌다. 교수가 소속된 학회의 세미나가 열린 날이었다. 박 씨는 참석자들에게 책자를 나눠주는 일을 했고, 이후 저녁식사에 동석해 삽겹살을 굽고 있었다. 이날 식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박 씨의 차례가 다가오자 교수는 노래를 부를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가 고개를 숙이면서 머뭇거리자 교수가 말했다. “너 논문 통과 안 되고 싶냐?”○ 사적인 일에 동원, 성희롱까지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일부 지도교수가 ‘슈퍼 갑’으로 군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울의 사회계열 대학원에 다니는 이모 씨(29)는 “입학한 뒤로 교수의 말을 거부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교수의 주문에 따라 매일 커피와 음식을 사오는 잔심부름을 하고 있다. 교수는 책조차 직접 구매하지 않고 일일이 이 씨의 손을 빌린다. 이 씨의 친구는 지난해 여름에 교수의 비행기표를 대신 예매한 적도 있다. 교수가 동남아로 여행을 떠난다며 표를 끊으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지방의 한 공과대 대학원에 다니는 최모 씨(26)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그는 “특히 석사과정 대학원생들은 교수의 개인비서처럼 일을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차를 사더라도 조용히 해야 한다. 꼼짝없이 교수의 운전기사 노릇을 할까 봐 두려워서다. 최 씨는 “매일 도서관에 와서 대기하다 교수가 부르면 달려가서 일하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지도교수 앞에서 꼼짝 못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대학원생들은 설령 성희롱을 당하거나 폭언을 듣더라도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석사과정에 다니던 박은정(가명·34) 씨도 그랬다. 그는 지난해 저녁식사 자리에서 술에 취한 교수로부터 “자고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거세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주변의 대학원 친구들은 박 씨의 하소연을 듣고서도 아무도 도와주지 못했다. 괜히 나섰다가 보복을 당할까 무서워서다.○ 대학원생 인권보호 어떻게?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에 ‘갑을관계’가 형성되는 이유는 장학금이나 연구비뿐 아니라 논문 심사에 대한 권한이 전적으로 지도교수에게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사립대 인문계열 석사과정 대학원생 김모 씨(25·여)는 “논문심사를 받을 때 외부 교수들이 학생의 논문을 비판하면 지도교수는 해당 논문을 설명하며 방어해주는 역할을 한다”며 “이 때문에 지도교수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문 통과에는 지도교수의 도움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논문이 통과되면 갑을관계가 사라질까. 그렇지도 않다. 이평화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30·여)은 “한국의 학문사회는 좁기 때문에, 졸업을 하더라도 자신이 전공한 학계에 남아 있는 이상 지도교수를 계속 마주쳐야 하고, 잘 보여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립대 석사과정 대학원생 김모 씨(29)는 “학계에서는 지도교수가 당사자에게 내린 평가가 평생 가고, 결국 대학원생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진석 서강대 대학원 총학생회장(28)은 “부당한 관행은 제도를 통해 바꿔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대학별로 인권문제를 다루는 인권센터 설립을 의무화하고 대학원생의 권리와 관련된 회칙을 마련하도록 하는 한편 이를 대학평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논문이나 연구성과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인권과 관련된 회칙이나 센터를 마련해도 선언적인 대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논문심사와 연구비 사용, 프로젝트 추진 과정을 부정이 개입되기 어려운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모든 대학원생과 지도교수 간에 갑을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스승과 제자로 남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번 장관 후보자들의 논문 파동을 계기로 대학가의 관행으로 남아 있는 폐해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갑을관계를 이용해 횡포를 부리거나 부정을 저지른 교수는 퇴출시키는 등 제재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손호영 인턴기자 이화여대 작곡과 4학년}

안전모를 쓴 관광객들이 8일 경기 광명시 가학광산동굴을 방문해 굴속을 둘러보고 있다. 이 동굴은 수도권에 있는 유일한 동굴 관광지다. 1972년에 폐광됐다가 2011년 문을 연 뒤 지난해까지 약 60만 명이 다녀갔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제8호 태풍 ‘너구리’가 북상하고 있는 가운데 8일 전남 여수시 국동항에 어선들이 피항해 있다. 너구리는 9일 오전 9시경 제주 서귀포 남쪽의 약 360km 부근 해상까지 접근해 남해안에 강한 비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여 안전에 유의해 달라고 기상청은 당부했다. 여수=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더위가 이전보다 일찍 찾아오면서 영유아들 사이에서 감염성 질환이 확산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영유아들의 대표적인 감염성 질환인 수족구병 환자가 지난달 마지막 주에 인구 1000명당 21.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8명보다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수족구병과 함께 증가하는 여름철 영유아 감염성 질환 중 하나가 바로 뇌수막염이다. 지난해 뇌수막염 환자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6월 말부터 급증하기 시작했고, 전년도 같은 기간에 보고된 뇌수막염 환자 수보다 2배 더 많았다. 전체 누적 환자 역시 보통 때에 비해 70∼80% 증가했다. 올해도 유난히 더위가 빨리 찾아온 만큼 뇌수막염 예방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여름철 불청객 바이러스 뇌수막염 여름철에 특히 유행하는 뇌수막염은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으로, 전체 뇌수막염의 80%를 차지한다. ‘콕사키바이러스’나 ‘에코바이러스’ 등과 같은 장 바이러스가 주요 원인이다. 뇌수막염에 걸리면 발열과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 감기로 오인하기 쉽지만 두통의 정도가 감기에 비해 심한 게 특징이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은 뚜렷한 치료법이 없고, 일주일 정도 휴식을 취하면 대부분 자연적으로 회복된다. 아직까지 특별한 예방법도 없기 때문에 외출 후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는 등 평소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야 한다. 하지만 뇌수막염이 모두 이렇게 가볍게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손용규 GF소아청소년과 원장은 “주위에서 흔히 보는 뇌수막염은 주로 바이러스에 의한 뇌수막염이기 때문에 뇌수막염을 가벼운 질환으로 여기기 쉽다”며 “하지만 세균성 뇌수막염은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기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열제를 먹어도 38도 이상의 열이 지속되고, 극심한 두통과 함께 발진, 경부강직(목이 뻣뻣해짐)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세균성 뇌수막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빨리 병원을 찾는 게 좋다”고 말했다. 세균성 뇌수막염의 초기 증상은 고열, 두통 등이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경부강직, 발진 등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난 뒤엔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신경계통에 후유증이 남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사실 세균성 뇌수막염은 선진국 어린이 및 영유아 10대 사망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위험하다. 하지만 질환의 증상, 위험성과 예방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세균성 뇌수막염의 일종인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으로 인한 출혈성 발진을 단순 열꽃으로 착각해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예방백신은 세균별로 각각 다른데, 영유아기에 Hib(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백신을 접종하면 모든 종류의 뇌수막염이 예방된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수막구균성 뇌수막염 주의해야 예방접종만 잘해도 세균성 뇌수막염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국내에 존재하는 뇌수막염 예방접종은 Hib 백신, 폐렴구균 백신, 수막구균 백신이 있다. Hib 백신은 과거 영유아 뇌수막염의 가장 흔한 원인균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8년 Hib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으로 포함하도록 권장했고, 2006년까지 108개 국가가 이를 시행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Hib를 필수예방접종으로 포함하고 있다. Hib 백신이 도입된 뒤 Hib에 의한 뇌수막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Hib 백신을 기본 예방접종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지역에선 폐렴구균이 영유아에서 발생하는 세균성 뇌수막염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지난달부터 폐렴구균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편입해 무료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세균성 뇌수막염 중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질환의 진행속도가 가장 빠르고 사지 절단, 뇌손상 등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긴다. 이런 까닭에 미국,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필수예방접종에 포함해 관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관련 백신이 2012년에 도입됐지만 아직 국가필수예방접종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가 직접 챙겨줄 필요가 있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1세 무렵의 영유아에게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9월 0세에게, 올해 2월 1세에게 발병했다. 영유아기에 예방해야 하는 이유는 이 시기에 발병하면 회복하더라도 성장 불균형, 학습장애 등의 후유증이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수막구균 예방백신이 만 2세 이상에서 접종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부터 생후 2개월부터 접종이 가능하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았다. 이때부터 가장 발병률이 높은 1세 미만의 영아에게서도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예방이 가능해졌다. 손 원장은 “세균성 뇌수막염은 영유아에게 특히 위험한 만큼, 폐렴구균 백신이 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된 것과 수막구균 백신 접종연령이 확대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방접종이 필수와 선택으로 구분되는 것은 정책적인 부분이지 질환의 경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발병률이 낮은 질환이라 하더라도 내 아이에게 발병하면 (개인의 발병률은) 100%가 될 수 있는 만큼 엄마들이 백신 정책에 대해 꼼꼼히 알아보고, 아이의 예방접종을 챙겨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대한의사협회 제38대 회장에 추무진 메디서울이비인후과의원 원장(사진)이 당선됐다. 의협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3층 회의실에서 의협 회장 보궐선거 결과 추 후보가 당선됐다고 밝혔다. 추 당선인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용인시의사회 회장, 경기도의사회 대의원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추 당선인은 “의협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고 의료계 대화합의 기틀을 다지는 계기를 만들겠다”면서 “오랫동안 지속돼 온 불합리한 건강보험 저수가 체계를 개선해 환자 건강을 위한 진료권과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받는 의사로 살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향후 의협 운영 방향, 대정부 정책에 대한 질문에 “다수 회원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번 보궐선거 적극 투표층이 노환규 전 회장의 지지층으로 파악되는 만큼 ‘원격진료 반대, 의료 자회사 허용 등 의료영리화 반대’라는 대정부 노선을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임기는 내년 4월 30일까지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이모 씨(68)는 얼마 전부터 다리 통증을 앓았다. 누워 있거나 쉬면 통증이 없었지만, 일어나거나 걸으면 엉덩이와 양쪽다리가 쥐어짜는 듯이 저렸다. 100m 정도 걸으면 다리를 몇 번 두들겨야 했고, 통증 없이 걸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아졌다. 다리 근육도 약해졌다. 결국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척추관협착증 같다”며 “다리까지 심하게 저리니 수술이 필요할 것 같으니 큰 척추병원을 가보라”고 제안했다. 자기공명영상(MRI)촬영으로 정밀 진단을 받아보니 ‘척추관협착증에 의한 심한 다리 저림’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씨는 당뇨병으로 인해 10년 이상 약물치료와 인슐린 주사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병원에서 수술없이 신경성형술 시술을 15분간 받은 뒤 당일 퇴원했고, 일상생활을 잘하게 됐다. 척추관협착증은 전형적인 퇴행성 척추질환으로, 신경다발을 보호하는 척추관이 좁아지면서 허리의 통증을 유발한다. 척추 신경이 지나는 통로가 좁아지면 다리 등에 있는 신경으로 가는 혈액이 잘 순환되지 않고, 피가 통하지 않아 신경에 손상을 일으킨다. 이 질환은 60대 이상에서 자주 발생하며, 주로 다리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나타난다.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거나 보통 속도로 걸을 때 증상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고, 이때 약간 아픈 느낌과 함께 다리에 힘도 떨어진다. 이런 증상은 날이 갈수록 잦아지고 심해져서 50∼100m만 걸어도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처럼 다리가 저리며 근육이 약해지는 현상도 온다. 증세가 심해지면 엉덩이 허벅지, 발바닥까지 통증이 오고 혈액순환이 감소해 신경에 손상이 오고, 결국 감각을 느끼게 하는 부위도 손상된다. 발이 시리거나 뜨겁고, 따가운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운동 신경이 손상되면 다리가 가늘어지거나 대소변에 지장이 올 수 있다. 척추관협착증은 허리 디스크와 증세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허리디스크는 허리를 앞으로 굽히면 통증이 심해지는 반면, 척추관협착증은 허리를 굽히면 통증이 사라진다. 결국 점점 허리를 굽히게 되고, 결국 ‘꼬부랑할머니’가 되는 경우도 많다. 초기에는 물리치료, 보조기, 운동요법 등으로 증상을 완화시키고 치료할 수 있지만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많은 환자들이 나이로 인해 수술에 부담을 느끼고, 치료 시기를 놓친다. 최근에는 이런 고령 환자를 위해 수술 없이 자연 친화적으로 하는 신경성형술을 많이 시행한다. 신경성형술은 1mm 정도의 관을 척추의 병변 부위에 넣어 눌린 신경을 풀어주거나 약물을 주입해 치료하는 방법이다. 영상을 직접 보면서 시술하고, 전신마취가 필요 없다. 흉터도 남지 않고, 5∼10분이면 시술할 수 있어 고령 환자에게 적합하다. 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순 없다. 다리쪽으로 내려오는 신경이 눌려 다리에 증상이 나타나면 수술이 필요하다. 척추관협착증을 다리병으로 오해하는 분도 많다. 이 병은 허리 쪽에 눌린 신경 부위에 따라 다양한 부위에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발바닥까지 증상이 심해질 정도면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치료 효과도 떨어질 수 있으므로 증세가 심해지기 전에 정확한 원인을 찾아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좋다. 신규철 제일정형외과병원 병원장}

“부정맥을 진료하던 초창기엔 시술을 할 기회가 1년에 2, 3건밖에 없었다. 당시엔 시술실을 2, 3곳 열고, 몇 달 치 시술이 예약돼 있는 꿈을 꿨다. 15년가량 지난 지금, 그 꿈이 거의 다 이뤄졌다. 꿈꾸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다. 상상하고 꿈꾸자, 그러면 이뤄진다.” 부정맥 분야에서 아시아 최고 명의로 꼽히는 김영훈 고려대 안암병원 원장이 3월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이다. 그는 부정맥의 한 종류인 ‘심방세동’을 치료하기 위한 ‘전극도자절제술’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 한 뒤 부정맥 센터를 오픈했다. 김 원장은 독창적인 수술법도 개발하면서 아시아태평양 부정맥 치료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태평양부정맥학회(APHRS) 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그는 올해 1월 취임한 뒤 환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The BEST 고려대학교병원’이 되는 것과 ‘대한민국의 메이요 클리닉’(미국의 세계적인 병원)으로 꼽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강한 자신감과 믿음을 전 교직원과 공유하면서 추진력 있게 목표를 이뤄 나가고 있다.글로벌 외과허브 육성 지난달 초 카자흐스탄에서 온 유리 니파리레예비치 씨(68)가 고대 안암병원을 찾았다. 그는 거대간세포암 환자였다. 카자흐스탄과 터키의 병원을 찾았지만 수술이 더이상 어렵고 간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이스라엘의 병원에서는 간 절제술이 가능하다며 수술실에서 개복을 했지만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상태라며 다시 배를 닫아버렸다. 그는 의사인 아들의 추천으로 마지막 희망을 걸고 고대 안암병원 간이식센터 김동식 교수를 찾아왔다. 중환자실을 몇 번씩 드나들기도 했지만 결국 건강하게 퇴원했다. 지난해 말에는 인도계 미국인 라제슈제할라 씨가 고대 안암병원에서 직장암 로봇수술을 받았다. 그는 미국에서 직장암 로봇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뒤 김선한 대장항문외과 교수에게 e메일을 통해 검사기록을 보내며 수술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직장암 로봇수술에 대한 논문, 리뷰, 기사 등을 찾아보고, 외과 의사인 동생에게 자문해 김 교수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최고의 수술을 위해 한국에서 수술 받기를 원했고, 결국 건강을 회복했다. 김 원장은 외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글로벌 외과 허브’를 키우고, 고대 안암병원이 외국에서도 찾는 수준 높은 병원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된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병원은 2007년 로봇수술센터를 연 가운데, 곧 최신 수술용 로봇을 추가로 도입할 예정이다. 고대 안암병원 로봇수술센터 의료진은 최고수준이다. 김선한 교수의 직장암 로봇수술은 다빈치 로봇의 국제적인 표준 매뉴얼로 선정돼 있다. 강석호 비뇨기과 교수는 전(全) 단계 방광암 로봇수술을 아시아에서 처음이자 가장 많이 실시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비인후과 정광윤, 유방내분비외과 김훈엽 교수는 머리카락 선 안쪽, 구강내 점막 등을 통한 무흉터 갑상샘 수술을 선도하고 있다. 로봇수술센터장을 맡고 있는 천준 교수는 “이번에 수술용 로봇이 추가로 도입되면서 의료진의 역량도 배가 되고 환자들에겐 더 나은 치료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대 안암병원은 지난해 국내 외국인 신장이식 건수 1위, 간이식 건수 2위를 기록했다. 장기이식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고위험 환자의 장기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실시해왔기 때문이다.최신 병원 시설과 진료환경 구축 고대 안암병원에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신관(첨담의학센터) 증축 및 확장 공사를 추진 중이다. 병원은 신관 증축에 앞서 본관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150여 개 병상을 늘리고, 병상당 면적을 확대해 내원객들에게 여유로운 공간과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확보된 병동 중 일부는 외국인 전용병동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대규모 주차시설도 설치한다. 고대 안암병원은 환자 안전과 관련된 국제인증인 JCI 인증을 2009년부터 2차까지 획득했고, 내년에 3차 인증을 앞두고 있다. 사실 JCI 인증을 받는다고 환자에게 진료비를 더 받는 것도 아니며, 병원에 직접적인 이득이 되는 것도 없다. 하지만 고대 안암병원은 환자 안전이 최우선인 병원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인증을 추진해왔다. 이외에도 병원은 환자 안전을 위해 환경호르몬 위험에서 자유로운 ‘Non-PVC’ 수액줄뿐 아니라 의료진의 안전을 위한 ‘안전 주사기’ 등 다양한 장치들을 도입하고 있다. 고대 안암병원은 다른 병원들이 규모를 늘리는 데 주력하던 2005년부터 연구중심 체계를 구축하고 인력과 비용을 투자했다. 김 원장은 “환자 안전과 연구중심 모두 결국에는 의료의 질을 높이고, 환자에게는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의료를 선도하기 위해 당장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대학병원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고대 안암병원은 오전 진료시작 시간을 9시에서 8시 반으로 30분 당겼다.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다. 모든 진료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점차 많은 진료과에서 8시 반 진료가 확산되고 있다. 그 덕분에 오전 시간 주차장과 검사실의 병목현상이 해소되는 한편, 출근 전 진료를 받기 원하는 직장인 등에게서 호응을 얻고 있다. 아울러 고대 안암병원은 협력병의원으로부터 진료 의뢰만 받는 것이 아니라 병원 내 환자를 지역병의원에 역의뢰할 수 있는 ‘KU-메디컬 파트너십’ 모델을 구축했다. 지역병의원 추천 프로그램을 개발해 환자의 주소지와 질환을 근거로 가까운 병의원으로 안내하는 것. 김 원장의 꿈은 고대 안암병원이 환자들로부터 존경받는 병원 1위가 되고 인간사랑, 환자사랑이 넘치는 의료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는 “병원을 믿고 귀중한 생명을 맡겨 주신 환자의 믿음에 보답하는 길은 최상의 치료 결과로 감동을 안겨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지난달부터 강화된 현행 요양병원 안전기준이 병원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사용이 불가능한데도 규정만 지키기 위해 안전설비를 형식적으로 설치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무용지물 되어 버린 안전기준 지난달 30일 본보 취재진이 찾은 서울 A요양병원. 소방방재청 ‘피난기구의 화재안전기준’ 고시는 의료시설의 경우 각층 바닥면적 500m²마다 피난기구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A요양병원도 층마다 비상용 피난기구인 구조대를 갖췄다. 하지만 사용은 불가능한 상태. 구조대를 설치해야 할 창문으로 사람이 빠져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조대는 밑이 트여 있는 자루 형태의 긴 부대로, 화재 시 창문이나 옥상에 설치한 뒤 사람이 속을 통해 미끄러져 내려오는 대피 기구다. 당연히 구조대를 설치할 창문은 사람이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요양병원 창문은 거의 대부분 완전 개폐가 가능한 미닫이식이 아닌 환기를 위해 일부만 약간 열리는 방식. 구조대를 제작하는 업체 관계자는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창문이어야 구조대를 사용할 수 있다”며 “사람이 나올 수 없는 창문이라면 구조대는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상당수 요양병원 창문이 A요양병원처럼 구조대보다 작은 크기라는 점. 병원 측은 환자들의 자살이나 낙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장은 “자살을 시도하려는 환자가 종종 있어 어쩔 수 없이 작은 창문이나 전부 열리지 않는 창문을 설치한다”며 “실제로 과거 한 요양병원에서 자녀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뛰어내려 자살한 노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층간 경사로, 안전손잡이 등도 마찬가지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은 요양병원들이 층간 경사로를 설치하고, 바닥 턱을 제거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 동작구 B요양병원의 경우 비상구에 냉장고가 들어서 있어 이동이 어려웠다. 비상탈출구가 물건 등으로 막혀 있는 셈이다. 또 법에서 규정한 대로 상당수 요양병원이 복도, 계단, 화장실, 욕실 등에 안전손잡이를 설치했지만 실제로는 이용이 어려운 곳이 많았다. 상당수 병원이 안전손잡이 앞에 휠체어, 재활기구 등 각종 물건을 쌓아 놓았기 때문이다. ○ 안전교육 안받는 간병인도 다수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을 통해 요양병원의 안전관리를 점검하고 있다. 인증 항목에는 요양병원 직원들에 대한 안전교육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요양병원에서 가장 수가 많고, 환자와 가까이 접촉하는 간병인들은 대부분 안전교육을 받지 않고 있었다. 인증원 측은 “간병인도 안전교육 대상에 포함되지만 이수 여부를 조사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보니 실제로 요양병원에서는 간병인에게 안전교육을 시키지 않는 곳이 많았다. B요양병원의 경우 환자 40여 명에 간호사는 오전에 3명, 오후에 2명뿐. 그 대신 방마다 간병인들이 환자들을 돌본다. 어느 때라도 화재가 발생할 경우 간병인들의 도움이 없다면 신속한 구조는 불가능하지만 정작 이들은 안전관리 교육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양병원에는 거동이 불편한 장기 입원환자가 많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타인의 도움 없이는 빠져나갈 수 없다”며 “사고가 나면 어떻게 대피할지 환자 입장에서 세심하게 설계하고 관리운영 규칙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28일 발생한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 화재는 전국 어느 곳의 요양병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잠재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병원마다 환자 유치를 위해 가격을 낮추는 출혈경쟁을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안전시설, 환자 보호 등에 돌아갈 재정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 환자에게 용돈까지 주며 유치 29일 본보 기자가 경기 지역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를 문의하자 “한 달에 50만 원으로 맞춰줄 수 있다. 거의 진료비를 안 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병원 측은 이 50만 원에 하루 세끼 식비 5400원과 공동간병비 1만5000원, 입원료와 약값까지 포함돼 있다고 했다. 이 병원의 실제 식비와 간병비만 계산해도 한 달에 61만2000원이 든다. 병원 관계자는 “그러니까 사실상 돈을 안 내는 것”이라며 “자기 부담이 매우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영세한 요양병원일수록 환자에게서 돈을 안 받아도 건강보험 재정에서 주는 진료비 수익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양병원 입원환자들은 일당 정액제로 입원 진료비가 책정된다. 환자 상태에 따라 하루당 1만3600∼5만6100원. 여기서 환자가 20%를 부담하고, 나머지 80%는 건보재정에서 지급된다. 병원은 건보재정에서 환자 1인당 입원료만 하루 1만880∼4만4880원, 한 달에 30만∼130만 원대의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입원환자 수를 늘릴수록 이윤을 남기게 되는 구조다.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김승수(가명) 씨는 “어떤 요양병원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진료비 중 환자 본인부담금도 받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받았다고 해둔다”며 “심지어 건강보험재정에서 받은 진료수가를 환자에게 용돈으로 주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병원이 차량 운행을 하면서 환자를 태우고 와 진료를 한 뒤 다시 집으로 보내는 일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의료법상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한 ‘환자 유인행위’는 불법이다.○ 병원 환경 개선도 어려워 국내 요양병원의 수는 2004년 113개에서 올해 1262개로 10배 이상 늘었다. 요양병원이 고령화로 인해 노인 환자가 증가하면서 수익을 창출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요양병원 수가 늘면서 환자 유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저렴한 가격이나 의료서비스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기에 환자를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안전 강화는 돈은 많이 들어도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눈에 뜨이지 않기 때문에 환자 유인에 별 도움이 못 된다. 요양병원에서 안전이 뒷전으로 밀렸던 이유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요양병원 안전을 위해 시설기준을 강화했다. 병원들은 층간 경사로와 침대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휠체어와 병상이 이동할 수 있게 벽 간 폭을 확보해야 한다. 기존 병원에는 시행이 1년 유예됐기에 내년 4월부터 모든 요양병원에 적용된다. 하지만 기존의 요양병원들이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킬지는 미지수다. 안전에 투자하는 것도 인색하지만, 설립 당시부터 안전규정을 지킬 수 없는 건물에서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경기 지역의 A요양병원은 아파트단지 인근에 있는 빌딩 내 9층을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다. 한 층만 임차해서 요양병원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침대용 엘리베이터는 애초부터 설치돼 있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비상시 대피할 수 있는 경사로도 없다. 경기 지역 한 요양병원의 원장은 “건물주가 침대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주지 않는 이상, 내가 자체적으로 공사를 하긴 어렵다”며 “비상구 경사로를 만드는 것도 다른 임대주들의 동의를 일일이 구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설령 돈을 들인다고 해도 모두 침대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보 취재팀이 엘리베이터 회사에 문의하자 “침대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면 기존 엘리베이터가 최소 20인승 이상이어야 한다”며 “5층짜리 건물을 기준으로 해도 4500만 원은 든다”고 말했다. 기존 엘리베이터가 작으면 별도의 비용을 들여 건물을 개축해야 한다. 현재까지 법으로 의무화되지 않은 스프링클러의 경우 비용은 훨씬 많이 든다. 층당 330m²(약 100평)인 5층짜리 건물을 기준으로 최소 1억2000만 원이 들어간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병원들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 현행 의료법상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정부가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곳에는 1년 이내의 운영정지나 허가 취소, 폐쇄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요양병원들이 안전기준을 확실하게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규정을 어기면 시설 인허가를 해주지 말고, 기존의 건물들은 안전규정에 맞지 않으면 시설을 옮기도록 하든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지금은 한국말 잘하죠. 목소리만 들으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인 줄 알 거예요.” 주부 안진서 씨(40)는 방글라데시에서 입양한 딸 박조안나 양(15)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이 ‘마음으로 낳은 딸’은 안 씨의 식성과 말투, 생각까지 빼닮아가며 쑥쑥 크고 있다. 안 씨는 남편 박혁재 씨(40)와 2005년 결혼했다. 이들은 결혼할 때부터 “앞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고, 아이도 입양하자”고 약속했다. 부부는 결혼 후 약 2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입양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국 아이를 입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에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조안나라는 아이를 만났는데 너무 예뻐서 딸 삼고 싶더라”란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방글라데시의 교육환경이 열악해 조안나도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었다. 부부는 입양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하게 안 씨가 임신을 하게 됐다. 안 씨는 임신 6개월이었던 2008년 12월 조안나를 만나러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당시 조안나는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몰랐고, 조안나 부모와는 간단한 영어나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안 씨 부부는 조안나를 입양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쌍둥이 딸들(5)을 낳았다. 동생들이 태어나자, 조안나는 엄마, 아빠에게 매일같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기 시작했다. 자신이라는 대답을 듣고 싶어서였다. 박 씨는 회사에 다녀오면 큰딸과 먼저 놀아준 뒤 쌍둥이 딸들을 돌봤다. 사람들은 이들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졌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 이런 용어는 생소했다. 국내에서 다문화가정이란 용어는 결혼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생겨났다. 국제결혼가정의 아이들이 ‘혼혈’이라고 불렸던 게 계기였다. 2004년 4월, 시민단체인 ‘건강가정시민연대’는 차별적인 용어를 고치자며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결혼 자녀를 ‘다문화가정 2세’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 용어는 빠르게 전파됐고, ‘다문화’란 수식어가 붙은 단어들도 등장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엔 결혼이민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민자 124만7834명(3월 기준)이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삶을 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나는 러 출신, 아내는 일본… 한국이 좋아 뿌리 내렸죠” ▼“회사서 첫 외국인 정규직 되고… 변호사 공부 학비도 지원받아취직-사업… 한국은 기회의 땅, 나 같은 이민자 계속 늘어날 것”“영화에서 보면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그곳을 ‘꿈이 이뤄지는 나라’라고 생각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국이 ‘성공이 이뤄지는 나라, 성공을 끌어당기는 나라’입니다.” 러시아 출신인 드미트리 레투놉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41)는 “한국에 와서 학교도 졸업했고, 좋은 곳에 취직해 아내도 만났고, 아이들도 낳았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모든 인생이 이뤄진 거나 마찬가지”라며 유창한 한국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1953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인으로 귀화한 사람은 13만5810명. 레투놉 변호사는 올해 2월에 귀화했다. 그는 한국에서 일본인 아내(38)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고 있다. 아내는 일본 국적, 두 아이는 러시아 국적이다. 아이들은 주로 아빠와는 러시아어, 엄마와는 일본어, 유치원에선 영어와 한국어로 대화한다.성공이 이루어지는 나라 레투놉 변호사는 1998년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 입국했다. 한국 대학에서 무료로 한국어 연수를 시켜 준다는 소식을 접하고, 3개월간 연수를 받으러 온 것이다. 처음부터 한국에서 계속 살 의향은 없었다. 하지만 연수가 끝날 무렵, 금융위기로 러시아 경제상황이 좋지 않자 돌아가지 않고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이때부터 한국과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석사 학위를 딴 후 2004년부터 LG건설(현 GS건설)에서 일했고, 첫 외국인 출신 정규직 직원이 됐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 직원들은 대개 계약직이었던 때였다. 그는 “정말 감동을 받았고 자랑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레투놉 변호사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2007년 법무법인 율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러시아와 관련해 마케팅과 시장조사 등 각종 프로젝트 업무를 맡았다. 당시 그의 직책은 전문위원. 당시만 해도 변호사는 아니었다. 회사에선 “변호사가 되는 게 어떠냐”며 관련 학비 일체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회사의 지원으로 러시아의 대학원에 진학했고, 변호사 과정을 마쳤다. 러시아 변호사로 변신한 뒤부터는 러시아와 옛 소련 국가에 관한 사건 변호와 자문 등을 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직장문화는 녹록지 않았다. 러시아와는 달리 연차를 14일밖에 쓸 수 없고, 길게 붙여 쓰기보다는 조금씩 나눠 써야 했다. 그는 “러시아의 경우 기본으로 연차 18일을 주고, 근무연수가 쌓일수록 연차가 계속 늘어난다”며 “러시아에 계신 아버지는 퇴직하기 직전 연차가 60일이나 됐다”고 말했다. 레투놉 변호사가 한국의 직장에 적응하고, 끊임없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당연히 있었고, 적응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젊을 때 여러 일도 해보고 싶고 도전도 해보고 싶었다”며 웃었다. “한국에 이민자 많아질 것” 레투놉 변호사가 일하는 법무법인에도 러시아뿐만 아니라 독일 페루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자신처럼 한국에서 취직해 일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국과 러시아만 보더라도 앞으로 가스, 석유 등 각종 경제교류가 늘어날 거예요. 미국이나 유럽연합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에서도 전망이 보이면 외국인을 더 많이 채용하겠죠” 그는 “이민자들이 한국어만 잘 배운다면 의사표현도 할 수 있고, 각종 오해도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에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다”며 언어 구사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언어만 잘한다면 모스크바에서 독일까지 걸어서도 갈 수 있다’는 러시아 속담도 소개했다. 낯선 땅에서 생활한 지 어언 16년. 향수병으로 고생한 적은 없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건 한국 부모들이 아이를 비닐하우스처럼 따뜻한 환경에서 키우기 때문”이라며 말했다. “많은 한국 부모가 애들이 공부만 잘하면 된다며 설거지며 청소며 다 해줍니다. 하지만 아이 성격이 발전하려면 혼자서 뭔가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해요. 교육이 핵심입니다. 외국인과 성격이 안 맞는데 어떻게 하냐고요? 차이점을 극복할 수 있게 배짱을 길러줘야 해요.” 그의 자녀들이 다니는 유치원에는 인도 호주 이란 일본 미국 등에서 온 부모를 둔 다양한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레투놉 변호사는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는 다양한 문화와 친숙해지고, 다양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이민자들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일자리도 만들고, 경제에도 당당히 기여하는 이민자도 많다. 2006년 이민 온 파키스탄 출신 무다사르 알리 ACM 대표이사(31)는 인천에서 연간 30억∼40억 원 규모의 중장비 수출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중장비를 사들인 뒤 파키스탄 등 외국으로 수출하는 사업이다. 한국인 직원도 3명을 고용했다. 알리 대표이사는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정보기술(IT)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그의 형(44)은 한국에서 중장비 수출을 하고 있었다. 2000년대 한국의 건설회사들이 파키스탄의 건물과 도로 공사를 도맡아 하면서, 한국 중장비도 인기가 높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5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한 뒤 기업투자(D-8) 비자를 받고 들어와 법인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영어로 거래를 했다. 장비를 사면 서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수출할 때 세금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등을 일일이 한국인들에게 문의했다. 그는 “이곳에서 사업도 잘되고 있고 한국이 너무 좋아서 평생 살고 싶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도 배우고 한국 법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알리 대표이사는 경기 부천시의 경기글로벌센터에 찾아가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민자에게 한국어와 경제 사회 법률 등을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2년간 매주 센터를 찾아가 공부했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됐다. 그는 한국은 이민을 생각하는 외국인들에게 ‘기회의 땅’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엔 사업 아이템이 엄청 많아요. 중장비뿐만 아니라 중고차, 휴대전화, 옷, 화장품 등 무궁무진하죠. 한국에 파키스탄 기업가 모임이 있는데, 회원이 230명이나 됩니다.” ▼ 전문가 “다문화=결혼이민 인식… 또 다른 편견 우려”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이민자나 귀화자가 포함된 가족을 ‘다문화(多文化)가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다문화는 문화 다양성을 뜻하는 말이지 이민자를 지칭하는 건 아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이민자 가족을 다문화가족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며 “번거롭더라도 용어는 정확하게 써야 하는데, 잘못된 용어가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사자들도 해당 명칭이 거북하긴 마찬가지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내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고 아빠도 한국 사람인 데다 모국어도 한국어이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다”며 “제발 다문화 학생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한국에서 태어난 국제결혼자녀와 외국에서 태어난 뒤 한국에 온 외국인 아이를 한데 묶어 ‘다문화 학생’으로 분류한다. 잘못된 명칭은 사소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큰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본래 문화 다양성을 뜻했던 다문화라는 말이 특정 가족 형태를 지칭하는 데 쓰이면서, 어느새 주로 아시아계 결혼이민자의 가족을 비하하는 수식어로 변질돼왔기 때문이다. 김영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소수집단에 자꾸 어떤 명칭을 붙여 범주화하면 고정관념과 편견이 생기고, 그게 결국 차별행위로 이어진다”며 “다문화가족이란 말을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주민가족을 특정 단어로 미화해 부르기보다는 정확한 용어를 쓰는 게 좋다고 말한다. 정기선 IOM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현상 그 자체를 말해주는 ‘이민자’ ‘이주민가족’ ‘이주배경 자녀’와 같은 용어로 불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보통 ‘이민자’라고 하면 영주권자나 귀화자를 떠올리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3개월 이상, 유엔에서는 1년 이상 체류한 외국인을 이민자라고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정부에서 이민자들을 ‘외국인’이나 ‘다문화가족’으로 부르면서 문제도 잇따르고 있다. 안전행정부에서는 매년 발표하는 ‘외국인주민현황 통계’에서 귀화한 결혼이민자와 이들의 한국인 자녀까지 외국인 주민으로 집계하고 있다. 설 교수는 “외국인은 한국 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을 뜻하는데, 귀화자와 결혼이민자의 자녀까지 외국인 주민으로 부르는 건 명백한 오류”라며 “자국민을 외국인으로 부르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지적했다. 통계청은 다문화가족의 출생자와 사망자 통계를 ‘다문화 출생’과 ‘다문화 사망’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자료의 의미가 다문화시대의 시작과 종말인 줄 알았다”며 “다문화가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출생하고 사망하느냐”는 탄식이 나오곤 한다. 정부가 다문화라는 이름을 쓰는 건 2008년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 때문이다. 이 법은 결혼이민자나 귀화자의 가족을 지원하는 법률로, 이들이 국적을 취득했건 안 했건 내국인과는 별도의 지원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아이라도 엄마가 외국인 출신이면 영원히 내국인 자녀들과는 구분된 ‘다문화가족’으로 불릴 수밖에 없도록 하는 셈이다. 최윤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결혼이민자가 국적을 취득하거나, 영주권을 취득해 가족과 생활하면 다른 가족과 동일한 법체계로 지원과 규율을 해야 한다”며 “그래야 장기적으로 차별, 역차별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민의 정착 지원과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과 다문화가족지원법, 출입국관리법 등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진 법들을 하나로 통폐합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아울러 법에서 다문화가족이라는 모호하고 차별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건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다문화 아이들 따로 국어교육, 이방인 취급받는 느낌” ▼“학교 다니면 별 차이도 없는데…다문화라 공부 못할거라고 인식해아이에겐 한국인 정체성 심어주고, 엄마에겐 일자리 주는 정책 폈으면”진정으로 이민자를 위한 정책 필요 안전행정부가 이민 배경을 지닌 주민의 현황을 정리한 ‘외국인주민통계’(2013년)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귀화자나 외국인은 144만5631명. 귀화자를 빼면 국내에 정착한 외국인은 근로자(52만906명), 동포(18만7616명), 결혼이민자(14만7591명), 유학생(8만3484명) 순으로 많다. 번듯한 곳에서 일하며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차별이나 편견, 미흡한 제도로 인해 힘겹게 살아가는 이주민도 상당수다. 이민자들이 그리는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39)은 “정부가 정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0년 정식으로 출범한 이주여성연합회는 온·오프라인을 포함해 회원이 2000여 명이다. 중국 한족(漢族) 출신인 왕 회장은 2002년 한국에 처음 왔다. 지인을 통해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됐고, 2003년 결혼했다. 한국에 정착한 뒤엔 아들 둘을 낳아 키우고 있다. 이민자들이 그리는 세상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낳은 자녀를 이방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를 대상으로 한 다문화교육에는 찬성하지만 다문화가정 자녀만 따로 떼어다가 별도의 보충교육을 시키는 것엔 반대한다. 당사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아직도 정부 정책 중에서는 다문화가정에 의도치 않은 ‘주홍글씨’를 새기는 프로그램이 많다.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언어 발달을 진단해주고, 한국어 교육을 해주는 정책 등이 그렇다. “누구나 공부를 못할 수 있는데, 왜 다문화가정이라서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나요. 다문화가정 아이만 따로 한국어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게 이상합니다. 영유아 때는 외국 출신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 못할 수 있지만 학교에 들어가면 별 차이가 안 납니다.” 정부가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엄마(아빠)나라 언어습득 지원을 위한 언어영재교실’도 마찬가지다. 왕 회장은 “엄마나라 언어를 가르쳐주는 건 엄마 몫이지, 국가에서 해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은 자신이 한국 사람인지 다른 나라 사람인지 혼란을 느끼면서 오히려 안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이주여성 모임에서 합창단 활동을 할 때도 엄마들은 출신국 의상을 입어도 아이들은 한복을 입힌다. 명절에 중국 친정을 방문할 때도 한복을 입힌다. “아이들이 한국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주고 싶어요. 당연히 군대도 보낼 겁니다. 정부도 제발 아이들이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줬으면 합니다.”탄탄한 한국어 교육 절실 결혼이민자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주여성들은 정부가 아무리 복지 지원을 해줘도, 당사자들이 계속 복지 혜택에만 의존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으로 우려한다. 왕 회장은 다문화가정의 미래에 대해 “애들이 중고교에 들어가면 돈은 더 많이 들어가고, 남편은 나이가 많이 들수록 경제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때도 계속 정부 지원만 바라보고 사나요? 아니잖아요. 이주여성들의 나이가 20, 30대로 젊을 때 한국어와 기술을 제대로 배워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왕 회장도 처음부터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 건 아니었다. 그는 결혼 전 중국 칭다오의 한국 회사에서 일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1년 반 정도 공부하며 실력이 늘었고, 지금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왕 회장은 한국에서 이주여성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이주여성들을 무수히 만나왔다. 상당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몇 년 동안 다녀도 한국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무료니까 그래요. 제가 언어교육원에 다닐 때는 싼 금액이라도 학비를 내니까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무료니까 오늘은 가고 내일은 안 가는 식으로 다니는 사람이 많더군요. 예산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왕 회장은 언어교육원에서 교수급 강사나 박사과정을 마친 연구진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웠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이에 비해 강사의 전문성이 훨씬 떨어졌고, 교육도 느슨하게 하곤 했다. 그는 “정부가 한국어 교육을 좀 더 전문적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며 “차라리 한국어 교육 예산이 대학 어학당으로 가면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다양한 이민자 늘어날 듯 한국에서 다문화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민자라고 하면 ‘외국인 며느리’(결혼이주여성)를 떠올리는 시대는 끝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올해 4월부터 국제결혼 비자심사를 강화해 결혼이민자가 줄어들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부부간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거나 한국인 배우자가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안 될 경우 결혼이민비자 발급이 제한된다. 정부는 의사소통도 안 되는 남녀가 단기간에 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한 후 각종 사회문제가 생기자 이를 예방하기 위해 비자 발급 문턱을 높였다. 결혼 당사자 간 혼인의 진정성과 가족부양 능력을 보다 엄격히 심사해 비자를 주는 것이다. 이 조치가 시행된 후 중개업체를 통한 속성결혼이 줄어들면서, 과거에 비해 결혼이민비자 신청 건수도 대폭 줄고 있다. 세계화가 가속화하면서 이민의 양상은 유학, 취업, 사업 등으로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다문화가정’을 넘어 ‘이민자’로 시야를 넓혀야 하는 이유다. 정기선 IOM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다문화가족 지원정책 자체가 이민정책은 아니다”라며 “이민자들을 어떻게 지원하느냐는 이민정책 중에서 사회통합 정책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차용호 법무부 이민통합과장은 “이민정책은 국가가 어떤 외국인을 어떻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인구 경제 외교 국방 문화 인권 복지 등에 관한 정책과 국민정체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이민정책을 논의하고, 체계적인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의 시민권과 이주’라는 영문서적을 공동 집필한 이종희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방송토론팀장(사회학 박사)은 “한국에 이민청 같은 총괄기구가 없다 보니 국가적인 차원의 큰 틀에서 정책을 추진하거나 장기적인 로드맵을 설정하는 데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국가적으로 이주민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

근육병, 루게릭병 등은 근육이 서서히 마비돼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희귀난치성 신경근육계질환이다. 이 환자들은 타인에게 의지해 생활해야 하고, 호흡 근육까지 마비되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는 이러한 환자를 관리해주는 호흡재활센터가 있다. 병원에 오기 어려운 환자에겐 방문 간호사를 파견하고, 형편이 어려우면 의료비 지원 기관과 연계해주기도 한다. 센터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후원으로 2008년 설립됐다. 기자는 ‘희귀난치성질환자의 날’(22일)을 앞둔 12일, 이 센터를 찾았다.○ 호흡기능 조기 검진이 중요 신경근육계질환 환자는 팔다리 근육이 먼저 약해지고, 그 다음에 호흡 근육이 약해진다. 보통 사람은 걸을 때 숨이 차면 호흡이 약해졌다는 걸 느끼지만, 이들은 일단 팔다리부터 약해져서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호흡이 나빠진 걸 호흡 마비 직전에야 아는 경우가 많다. 강성웅 호흡재활센터 소장은 “정기검진으로 암을 일찍 발견하면 치료가 되는데 통증으로 인해 병원에 오면 늦는 것처럼 호흡도 마찬가지다”라며 “숨이 차서 잠을 못 잘 지경이 되어서야 치료를 시작하면 늦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아 조기에 발견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일반인이 호흡기능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손발이 마비되는 걸 느끼는 사람이 검진 대상이다. 신경근육계질환 환자들은 보통 1년에 한 번꼴로 센터에서 호흡기능을 체크한다. 호흡 검진은 어떻게 받을까. 기자가 직접 호흡기능 검진을 해봤다. 우선 ‘이산화탄소 모니터링’을 받았다. 몸에서 이산화탄소를 제대로 뱉어내는지 체크하는 것으로, 근육이 약해지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못해 수치가 높아진다. 기계를 입에 대고 “후” 하고 불었더니 38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이산화탄소 수치가 30∼40으로 나오면 정상이라고 했다. 환자는 대개 40이 넘고, 심할 경우 50∼60까지 나오기도 한다. 기침 능력도 체크해봤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기기에 대고 기침을 최대한 크게 하는 것이다. 정상수치는 300 이상이다. 기자는 420이라는 아주 정상적인 수준을 나타냈다. 근육병 환자들은 100 남짓의 적은 수치가 나오기도 하고, 심하면 아예 0이 나오기도 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폐활량도 체크했다. 점수는 3570. 의료진이 기자의 키와 나이를 컴퓨터의 계산식에 입력하니 75%라는 수치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100%는 나와야 하는데 적은 수치였다. 의료진은 “폐활량을 늘리도록 유산소 운동을 많이 하라”고 주문했다.○ 인공호흡기는 휠체어 같은 보조기기 호흡이 악화된 걸 미리 발견해 관리 받으면 인공호흡기를 쓰면서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보통 인공호흡기라고 하면 죽음을 앞둔 환자를 떠올리지만 그렇지 않다. 강 소장은 “인공호흡기는 보조도구”라고 설명했다. 몸의 근육이 약해지면 지팡이, 목발, 휠체어를 사용하듯이, 인공호흡기도 마찬가지다. 인공호흡기를 하루에 4∼5시간만 쓰는 환자도 있고, 잠을 잘 때만 사용하는 환자도 있다. 인공호흡기를 쓰면 어떤 느낌일까. 센터에서 인공호흡기를 착용해 봤다. 가정용 인공호흡기에 부착된 마스크를 얼굴에 밀착시키고 입을 다물자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기계를 작동시키자 호스를 통해 공기가 코로 들어가고 나왔다.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환자들은 집에서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쓰고, 병원에 입원할 때도 이를 갖고 온다. 근이영양증을 앓는 남모 씨(23)의 어머니 김영숙(가명·48) 씨는 “인공호흡기에서 소리가 나는데, 일반 병실에 입원하면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싫어한다. 눈치가 보여서 편치 않다”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는 생보재단의 후원으로 설치된 ‘호흡재활전용병실’이 2곳(4인실, 6인실) 있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환자끼리 입원하는 곳이다. 김 씨는 “전용 병실에는 비슷한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도 해주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또 다른 고충은 간병이다. 대부분은 가족들이 꼼짝없이 간병에 매달리고 있다. 강 소장은 “장기적으로 집에서 요양하기 어려운 환자도 있다”며 “전용 병실뿐 아니라 이런 환자를 돌봐주는 요양시설이 마련돼 있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희귀난치성질환자 위한 다각적 지원 환자들은 몸뿐 아니라 마음의 치료도 필요로 하고 있다. 호흡재활센터의 최원아 교수(재활의학과)는 “환자도 힘들지만, 보호자도 아이에게 병이 생긴 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마음의 병을 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에서는 생보재단의 후원으로 환자와 가족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인문학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생보재단에서는 신경근육계질환 환자뿐 아니라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을 위해 비급여 의료비와 특수식이(로렌조 오일, 유동식 등), 피부재생용품, 주사용품 등을 지원하고 있다. 환자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안구마우스, 페이지터너, 리프트체어 등 학습용 보조기기도 지원한다. 희귀난치성질환은 치료는 물론이고 진단 자체가 어렵고 전문 의료진도 크게 부족하다. 재단에서는 2008∼2013년에 약 96억 원을 들여 총 1만605명의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을 지원했다. 강 소장은 “정부가 희귀난치성질환자를 지원하고 있지만, 개개인에 맞는 지원은 힘든 상황”이라며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난 환자를 위해 민간 지원이 필수였는데, 재단의 지원은 정부사업을 보완할 수 있는 민관 협력체계의 좋은 모델”이라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혼자 살고 있는 기초수급자 노인 A 씨. 지금은 정부에서 생계급여(생계비)로 매달 38만531원을 받는다. 기초연금제도가 7월부터 시행되면 A 씨는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A 씨는 매달 정부로부터 기초연금을 합한 58만531원을 받게 될까. 아니다. 기초수급자들은 기초연금 액수만큼 생계급여가 깎이기 때문이다. A 씨가 기초연금 20만 원을 받는다면, 매달 받는 생계급여는 20만 원을 뺀 18만531원으로 줄어 여전히 38만531원만 정부로부터 받는다. 기초연금제도가 시행돼도 정부로부터 받는 총 지원액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기초연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을 낮추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A 씨처럼 극빈층 노인인 기초수급자 노인이 혜택을 못 보게 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8월을 기준으로 기초수급자 중 기초노령연금 수령자들은 총 39만4015명. 이들은 기초연금을 받는다 해도 사실상 혜택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정부가 기초수급자들의 소득을 계산할 때 기초연금도 소득인정액으로 넣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초수급자에게 지원을 할 때, 당사자의 소득인정액과 정부의 지원금(생계급여 등)이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도록 한다. 기초수급자의 소득인정액이 많아지면, 정부에서는 생계급여를 덜 지원해도 당사자의 총소득은 최저생계비 이상이 된다. 그러니 정부는 당사자의 소득만큼 깎은 생계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와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가장 빈곤한 노인이 기초연금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14일 ‘요구서’를 배포하고 “기초수급자의 소득인정액을 계산할 때 기초연금 수입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반대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초연금을 소득인정액으로 산정하지 않으면 기초수급자의 ‘가처분소득’(생계급여+기초연금)이 차상위계층보다 더 많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소득의 역전 현상이 발생할 경우 기초수급자는 계속 수급 상태에 남으려고 하고 차상위계층은 수급자가 되려고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외국의 사례를 봐도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안 잡는 나라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기초수급자들에게 주는 복지급여가 충분하면 기초연금을 중복 지급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 기초수급자들에게 최소한의 품위 있는 생활도 하기 힘든 수준의 적은 금액을 주고 있으면서 기초연금을 받았다고 지원액을 깎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골반과 엉치, 혹은 고관절(엉덩관절) 부위의 통증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골반 통증이란 보통 배꼽 아랫부분의 통증을, 엉치 통증이란 허리 아랫 부분의 통증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외측(바깥쪽) 고관절 부위를 골반 혹은 엉치라고 말한다. 정확한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외측 다리 윗부분, 혹은 외측 고관절 부위라고 해야 한다. 골반 통증은 자궁, 난소, 요로, 성기 등 내장의 통증에 의한 것도 있지만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문제가 아닌 신경이나 근육, 힘줄의 문제로 생기기도 한다. 일례로 50대 후반 직장인 박모 씨는 10년 전부터 쪼그려 앉거나 양반다리를 하면 앞쪽 골반 부위가 땅기고 순간적인 통증을 느꼈다. X선 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 방치했다. 최근에 등산을 하고 온 날이면 골반 부위에 심한 통증이 몇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알고보니 고관절 부위가 심하게 망가진 골관절염이었다. 만약 박 씨가 10년 전에 병원을 찾았더라면 ‘고관절 포획증후군’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진단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온 상태였다. 골반 통증은 여러 원인에서 비롯된다. 의사가 진단할 때는 서둘러 각종 촬영을 하기보다는 손으로 만지고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허리, 내장, 고관절, 근육 등 여러 부위의 문제를 고려해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 우선 고관절이 움직이는 범위를 체크하면 문제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사타구니 쪽을 지나는 근육을 통해서는 힘줄이나 근육이 손상됐는지를 알 수 있다. 허리를 만져보면 척추의 병을 알 수 있고, 하복부를 만져보면 내장에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X선이나 자기공명영상(MRI)에서 정보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검사를 해야 정확할지는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검사로 대부분 판별된다. 직장인 유모 씨(50)는 일어나 걸으려 할 때마다 엉치에 극심한 통증이 나타났다. 처음엔 걸을 만했지만 100m만 걸으면 엉치가 아파서 허리가 저절로 구부려졌다. 허리를 펴려고 하면 “악” 소리가 났다. 허리 문제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엉치 통증이었다. 엉치 통증이 지속되면 허리가 굽고 팔자 걸음걸이가 된다. 엉치에 나타나는 통증은 대부분 허리에 관련된 신경의 문제이므로, 허리 문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허리를 지나서 엉치로 가는 신경은 흔히 마찰이 심해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허리를 지나는 신경은 주로 다리를 향하지만, 일부 신경은 엉치나 고관절 부위를 지배한다. 이 때문에 검사를 통해 어느 신경의 문제인지 확인해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골반이나 엉치의 통증은 진단이 정확하면 치료는 어렵지 않다. ‘FIMS’라는 치료법은 신경이나 혈관이 다치지 않도록 고안된 특수바늘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신경이 마찰되는 부위에 들어가 신경이 마찰되지 않도록 주위 조직과의 유착을 막아주고 두꺼워진 신경을 정상화해 마찰되지 않도록 해준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켰던 10일 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상태는 조치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찔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삼성서울병원을 평소 이용했던 이 회장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 가까이 있는 순천향대병원을 늦은 밤 급하게 찾았다는 것은 상황이 매우 긴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성 심근경색은 심장 근육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혈전(피떡)으로 막혀 혈액 공급이 안 되는 상태를 말한다. 급성 심근경색은 심장마비를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오후 10시경 자택에서 호흡 곤란과 함께 가슴 등에 통증을 느낀 이 회장은 10시 55분경 순천향대병원에 도착했다. 도착 직후 심장마비 증세가 나타났고 의료진은 곧바로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했다.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온몸의 혈액 순환이 중단된다. 의학 전문가들은 심장이 멈춘 뒤 4, 5분이 지나면 뇌세포가 손상되고 소생 가능성도 크게 떨어진다고 말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 회장 가족과 비서진이 자택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순천향대병원을 찾은 건 매우 적절한 판단이었다. 처음부터 거리가 먼 삼성서울병원으로 향했다면 차량 안에서 심장마비 증세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CPR를 하면 심장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혈액을 순환시킬 수 있다. CPR를 하지 않거나 늦게 하면 심장 박동이 다시 시작되더라도 의식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생존하더라도 심한 뇌손상을 입게 된다. CPR를 통해 이 회장이 위험한 상황을 넘기자 순천향대병원에서는 기도 확장을 위해 기관지 삽관 시술을 진행했다. 그리고 상태가 다소 호전된 11일 0시 15분경 이 회장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됐다. 삼성서울병원에 도착한 이 회장은 오전 1시경 심장의 혈관을 넓혀주는 스텐트(Stent) 삽입 시술을 받았다. 1초, 1분이 급박했던 이 회장의 건강 상태는 오전 1, 2시경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은 현재 심장과 폐 기능이 크게 떨어질 때 하는 ‘체외막산소화 장치(ECMO·에크모)’ 시술을 받고 있다. 에크모는 환자의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장비로 정맥에서 혈액을 체외로 빼낸 뒤 동맥혈로 바꿔 환자에게 주입한다. 삼성은 이 회장이 약물 및 수액 치료와 함께 ‘저체온 치료’를 받으며 깊은 수면 상태에 있다고 전했다. 저체온 치료는 인체 조직에 혈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가 혈류 공급이 재개될 때 해로운 물질이 생성되는 것을 줄여준다. 24시간 저체온 치료 뒤 정상 체온을 회복하면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게 된다. 삼성 측은 “이 회장의 입원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얘기할 단계가 아니지만 초기 응급치료와 각종 시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며 “자가 호흡이 돌아왔고 회복 중이라 에크모도 곧 뗄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장마비가 발생했을 때 우려되는 뇌손상에 대해서도 삼성 측은 “초기 조치를 적절하고 신속하게 잘한 덕분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의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회장이 고령이고, 과거 폐 림프암을 앓았기 때문에 정확한 예후는 다소 시간이 지나야 파악될 수 있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이세형 turtle@donga.com·이샘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