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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여러분들은 ‘초현실주의’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흘러내리는 시계를 그린 살바도르 달리, 공중을 떠다니는 신사들을 그린 르네 마그리트….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이들의 회화를 마주하리라 예상하고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회를 찾았습니다. 상당수 그림들이 생각했던 대로 꿈속에서 마주한 듯한 인상을 주었는데 정작 전시장을 나서며 기억 속에 남은 것들은 ‘19금’ 급의 작품들이었습니다.“참 기괴하다” “언짢다”일부에서는 이렇게 속닥거리는 관람객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는데요. 전시장 후반부 ‘욕망’ 섹션에 자리한, 관능미를 넘어 여성의 몸을 도구화 한 조각과 회화들을 보고 하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전시장에는 심지어 미성년자 출입 불가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는데요. 에로티즘과 초현실주의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는 지점이었습니다.그러면서 한 가지 근원적인 질문이 뒤따랐습니다. 왜 대중에게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다 남성일까?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없었던 걸까?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초현실주의 거장들’에서 떠오른 이 같은 궁금증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영감 한 스푼 미리 보기: 거침없이 욕망하며 껍질만 남은 ‘이성’을 비꼬다초현실주의 거장들1.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를 불신, 이성과는 거리가 먼 ‘꿈과 우연’, 더 나아가 ‘원초적인 욕망’을 탐닉한다.?2. 신체와 본능을 과감히 말하며 시대의 금기를 부쉈으나 여성이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받았다는 비판을 받는다.3.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여성의 도구화에 대해 "헛소리"라 일갈하며 자신들의 세계관을 만들어간다.○ 본능에 전념한 초현실주의자들초현실주의 집단이 원초적 욕망에 집중하게 된 데에는 1차 세계대전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인간은 이성적’이라는 이성중심주의가 지배적이었는데요. 전쟁이 발발하면서 무의미한 폭력과 인명피해를 몸소 경험한 예술가들은 더 이상 이성중심주의가 안락한 삶을 보장해주지 않음을 깨닫습니다.기존 사회에 대한 반발심으로 뭉친 초현실주의 집단은 이성의 반대급부로 향합니다. 무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말 그대로 꿈 속 장면을 그리기 시작한 거죠. 르네 마그리트의 ‘그려진 젊음’처럼 겉보기에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나열하거나 이어 붙이기도 하고요. 한 발 더 나아가 이성의 논리와 통제를 벗어난 본능에 집중합니다.다만 초현실주의자들이 원초적 욕망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다른 예술가들과 그 목적에서 차이를 보였습니다. 자신들의 전시를 통해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죠. 육체가 아름다워서라거나 인체를 탐구하려고 몸과 성적 행위를 묘사한 것이라기보다 이성이 만든 도덕적 규범, 미(美)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고 개인의 본능적 자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움직임에 가까웠습니다. 일례로, 살바도르 달리의 서랍이 있는 밀로의 비너스는 엄격한 신체미를 강조했던 전통 그리스 예술의 정신을 비틀었습니다. 비너스상에 서랍이라는 장치를 달아 여성의 신체에 대한 호기심을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식으로 말이죠.앞서 말씀드렸던 욕망 섹션 전시실도 초현실주의 모토 중 하나인 에로티즘을 설명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이 전시실에 가장 많은 작품을 전시한 작가는 한스 벨머인데요. 한스 벨머는 관절이 움직이는 어린 소녀 마네킹을 만들어 여러 포즈로 재조립한 뒤에 사진을 찍는 ‘인형’ 시리즈로 유명합니다. 이는 당시 전통 예술이 강제하던 아름답고 단일한 신체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다만 어떠한 구속도 없이 자신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던 성적 욕망과 페티시즘을 인형에 반영한 것은 지금 봐도 다소 충격적입니다. (한스 벨머의 인형 시리즈 사진은 불편할 수 있어 다른 작품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초현실주의자들은 성(性)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하며 금기시 됐던 행동들을 실행에 옮깁니다. 이들의 목적은 대중적 영향력이었기에 성에 대한 집단 공개 토론은 물론이고, 스트립쇼나 억압된 욕망 등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28년 한 파티에서 남성 회원들이 성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이중 일부는 ‘초현실주의 혁명’(1924~1929)이라는 잡지에 실려 대중에 공유되죠. 예술 작품과 유통에 일종의 반항아적 메시지를 한껏 집어넣은 것 입니다.살바도르 달리와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 ‘황금시대’의 에피소드만 봐도 당시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이 파격 그 자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한 쌍의 연인이 길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영화는 1930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봉됐는데, 노골적이고 성적인 내용에 격분한 극우 시위자들이 스크린에 잉크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프랑스 검열관에 의해 영화는 재분류 됐고 공개 상영이 금지됐죠.○ 뮤즈에서 벗어난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이들의 활동이 엄숙했던 사회에 기름 역할을 한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욕망이 예술이라는 형식을 빌려 표출될 때 어디까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또 현대에 들어 이러한 작품들은 여성을 대상화 했다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남성이 다수였던 초현실주의 그룹의 특성상 그들과 교류하는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려지는 대상, 뮤즈로만 비춰졌으니까요.이번 전시회는 아마 이 지점을 가장 고민한 것 같습니다. 전시장에는 그동안 덜 주목받았던 초현실주의 여성 작가인 에일린 아거, 우니카 취른, 메레 오펜하임, 엘사 스키아파렐리, 셀린느 아놀드, 레오노라 캐링턴의 작품 14점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민을 거쳐 나온 결과인지 알아보기 위해 취재 내용과 전시 기획사 기획팀과의 서면 인터뷰를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해보았습니다.기자 : 돌이켜보니 초현실주의 전시회에서 여성 작가들의 이름을 접한 기억이 희미하네요. 저와 같은 관람객들을 위해 이번 전시에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을 포함시키셨다고요.기획팀 : 기획 단계 때 여성 작가 섹션을 따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지만, 각 섹션의 전면부에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배치해 조금 더 관람객들의 눈에 띌 수 있도록 했습니다.기자 : 미술사에서 여성 작가가 초현실주의 사조에 기여한 바는 어느 정도인가요?기획팀 : 1920년대 유럽에서 초현실주의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전 세계로 확산될 때까지 여러 방면에서 기여했습니다. 그림, 글쓰기, 디자인 등 많은 형태를 넘나들었고, 특히 출판물의 기고문과 전시회에도 꾸준히 포함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수가 적고, 남성 작가들의 뮤즈로만 비춰졌던 시대상 때문에 미술사에서 그들 역할이 격하되곤 했죠. 기자 : 대표적인 작가를 소개해 주신다면요?기획팀 : 에일린 아거(1899~1991)가 있습니다. 에일린 아거는 1936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에 참가한 몇 안 되는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만 레이, 폴 내쉬와 어깨를 나란히 해 주목받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번 전시에는 에일린 아거의 앉아있는 사람을 포함해 총 5점이 출품됐습니다. 아거는 화석 생물체나 식물, 고대 해양 동물과 해초를 자신의 회화에 상징으로 끌어들였는데요. 여성을 뮤즈로 간주하는 남성적 시각을 거부한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기자 : 충분히 재평가 받을 법 한데요?기획팀 : 실제로 현대에 들어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활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술사학자인 휘트니 채드윅은 1985년 Women Artists and the Surrealist Movement라는 제목의 서적을 발표하며 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예술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이 책은 1992년 쉬르섹슈얼리티라는 제목으로 번역됐고요. 또 여전히 많은 현대 여성 작가들이 초현실주의 사조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기자 : 예를 들면 누가 있을까요?기획팀 : 미국 예술가 페니 슬링거(74)는 페미니스트 초현실주의자라고 불리는 작가입니다. 여성의 신체와 인형들을 소재로 한 사진 콜라주, 퍼포먼스 등을 해오며 여성이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해 논해왔는데요. 작가는 초현실주의 방법을 사용해 여성의 언어,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페니 슬링거가 첫 개인전을 연 1971년, 당시 영국의 저명한 비평가는 여전히 남성 우월주의인 세상에서 여성이 처한 위치를 기록한 작품이다. 그는 가장 사회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 평했습니다. “헛소리라 생각한다. 나는 누구의 뮤즈가 될 시간이 없다. 나는 내 가족에 반항하고 예술가가 되는 법을 배우느라 너무 바쁘다.”여성 초현실주의자로 분류되는 레오노라 캐링턴(1917~2011)은 1980년대, 그녀의 연인 막스 에른스트의 뮤즈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저는 이번 취재로 초현실주의자들의 당당함에 반했고, 이들 작품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됐습니다. 순간적으로 현실을 잊게 하는 화풍 덕분에 국내에서도 이전부터 많이 사랑받아온 사조이지만, 시대의 요구에 때론 간접적으로 또 때론 노골적으로 맞섰던 작가들을 알고 나면 한 번 더 눈길이 갑니다. 여러분들도 이번 전시를 통해 덜 알려졌던 그들의 면모를 발견하셨으면 합니다.전시 정보달리에서 마그리트까지: 초현실주의 거장들2021.11.27 ~ 2022.04.24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작품수 180여 점‘영감 한 스푼’ 연재 안내※‘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제 영화적 연출은 수학적인 디자인에 가깝습니다. 저의 첫 생각은 유치하고 감상적인 게 많아요. 하지만 사진은 안 그래도 되죠. 우연한 찰나의 만남을 아무 생각 없이 찍습니다.” 박찬욱 감독(59)이 지난해 10월 국제갤러리 전속 작가가 돼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에는 세계적인 아트페어 아트바젤 온라인 뷰잉룸 ‘OVR:2021’에 주차장의 특정 순간을 포착해 친숙한 대상의 낯선 모습을 부각하는 ‘Face 166’(2021년)을 내놨다. 최근 영화감독들의 ‘부캐’(부캐릭터)는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09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첫 개인전을 연 팀 버턴 감독은 다음 달 한국에서 스케치, 드로잉을 전시한다. 국내에서도 박 감독과 민병훈 감독(53)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크린뿐 아니라 상업갤러리에도 적합한 작품을 창조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지만 이들의 ‘부캐’ 활동이 ‘본캐’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흥미롭다. 박 감독에게 사진은 영화로부터의 도피다. ‘박쥐’ ‘아가씨’ 등 정교한 미장센을 자랑하는 영화와 달리 그의 사진은 우연성과 즉흥성이 전부다. 혼자 있기 좋아한다는 그는 여럿이서 만드는 영화가 때론 한없이 힘들다고 했다. 그는 “영화보다 사진은 홀가분하고 자유롭다”며 “영화 일이 아무리 바빠도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1999년 ‘벌이 날다’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독립영화계에 몸담아 온 민 감독은 지난달 미디어아트 작가로 데뷔했다. “영화의 형태가 흥행과 멀다는 이유로 ‘실패한 영화’라 명명되다 보니 만드는 기쁨이 사라졌어요. 그럼에도 영화는 찍어야죠. 그래서 찾은 극복법이 일상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강남구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19일까지 열리는 ‘영원과 하루’에는 민 감독이 4년 전 홀로 제주도로 내려가 자연을 찍은 영상 20점이 출품됐다. “영화로 성공하는 게 너무 소수다 보니 우울감을 안고 살게 된다”던 그가 ‘영화 다이어트’를 하면서 찍은 단편 영상들이다. 민 감독의 작품은 영화의 연장선에 있다. 실제 추후 영화 작업에도 활용할 생각이다. 작품은 파도가 절벽에 부딪히거나 노을이 지는 장면 등을 실제 속도보다 6배 이상 느리게 재생시킨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질감과 색감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회화적 밀도감이 높은 풍경들은 영화에서 시적인 화면 연출을 중요시해온 민 감독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이번 주 미술계’는 한 주 간 눈 여겨 볼만한 미술 소식을 정리해드리는 코너로 매주 금요일 발송되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 국내 최고령 현역 화가 김병기 화백 별세국내 추상미술 1세대로, 최고령 현역 화가로 주목받은 김병기 화백이 1일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106세.1916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근현대 미술의 산증인입니다. 평양 종로보통학교 다닐 때 절친했던 동료가 이중섭이었고, 일본 도쿄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 미술을 수학하면서 김환기, 유영국과 교류했습니다.월남 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했습니다. 100세가 넘는 날까지도 작품 활동을 이어왔던 그는 2017년 101세에 대한민국예술원 최고령 회원으로 선출, 지난해에도 신작을 발표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303/112125867/1○ 내년 광주비엔날레 방향성 밝힌 이숙경 예술감독이숙경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 지난해 12월 선임된 이후 처음으로 방한해 내년 4월 열릴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방향성을 밝혔습니다. 다양한 국적과 세대를 가진 작가들이 개인적인 배경을 기반으로 광주 정신을 해석한 작품을 내놓겠다고 합니다.사실 광주정신을 흔한 주제라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주제가 반복된다는 비판은 두렵지 않다. 이전에 다뤘던 주제라고 피한다면, 지금의 관람객들은 예전의 것들을 경험할 수조차 없게 된다”며 “새로운 작가와 관객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합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28/112088836/1○ 안드레아스 에릭슨, 학고재 ‘해안선’ 전?안드레아스 에릭슨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에릭슨은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북유럽관 대표 작가입니다. 이번 전시 ‘해안선’에서는 독창적인 색채와 질감을 가진 유화와 드로잉 등 58점을 선보입니다.두 세계 간 경계와 만남을 주목한 작가는 구글 맵을 통해 한국을 여행하면서 비무장지대(DMZ)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남북이 이어져있는 장소인 동해안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전시는 20일까지 진행됩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제 영화적 연출은 수학적인 디자인에 가깝습니다. 저의 첫 생각은 유치하고 감상적인 게 많아요. 하지만 사진은 안 그래도 되죠. 우연한 찰나의 만남을 아무 생각 없이 찍습니다.” 박찬욱 감독(59)이 지난해 10월 국제갤러리 전속 작가가 돼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에는 세계적인 아트페어 아트바젤 온라인 뷰잉룸 ‘OVR:2021’에 주차장의 특정 순간을 포착해 친숙한 대상의 낯선 모습을 부각하는 ‘Face 166’(2021년)을 내놨다. 최근 영화감독들의 ‘부캐’는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09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의 첫 개인전을 연 팀 버튼 감독은 다음달 한국에서 스케치, 드로잉 등을 전시한다. 국내에서는 박찬욱과 민병훈(53)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스크린뿐 아니라 상업갤러리에도 적합한 작품을 창조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지만, 이들의 ‘부캐’ 활동이 ‘본캐’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흥미롭다. 박 감독에게 사진은 영화로부터의 도피다. ‘박쥐’ ‘아가씨’ 등 정교한 미장센을 자랑하는 영화와 달리 그의 사진은 우연성과 즉흥성이 전부다. 혼자 있기 좋아한다는 그는 여럿이서 만드는 영화가 때론 한없이 힘들다고 했다. 그는 “영화보다 사진은 홀가분하고 자유롭다”며 “영화 일이 아무리 바빠도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1999년 ‘벌이 날다’를 시작으로 20여 년 넘게 독립영화계에 몸담아 온 민 감독은 지난달 미디어아트 작가로 데뷔했다. “영화의 형태가 흥행과 멀다는 이유로 ‘실패한 영화’라 명명되다 보니 만드는 기쁨이 사라졌어요. 그럼에도 영화는 찍어야죠. 그래서 찾은 극복법이 일상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강남구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19일까지 진행하는 ‘영원과 하루’에는 민 감독이 4년 전 홀로 제주도로 내려가 자연을 찍은 영상 20점이 출품됐다. “영화로 성공하는 게 너무 소수다 보니 우울감을 안고 살게 된다”던 그가 ‘영화 다이어트’를 하면서 찍은 단편 영상들이다. 민 감독의 작품은 영화의 연장선에 있다. 실제 추후 영화 작업에도 활용할 생각이다. 작품은 파도가 절벽에 부딪히거나 노을이 지는 장면 등을 실제 속도보다 6배 이상 느리게 재생시킨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의 질감과 색감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회화적 밀도감이 높은 풍경들은 영화 제작 때 시적인 화면 연출을 중요시해온 민 감독의 궤적과 맞닿아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국내 추상미술 1세대로 최고령 현역 화가로 주목받은 김병기 화백(사진)이 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6세.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부친 김찬영 화백(1893∼1960)의 뒤를 이어 1930년대 일본 도쿄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 미술을 공부했다. 고인은 귀국 후 북조선문화예술총연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지냈으나 전체주의에 염증을 느껴 1948년 월남했다. 서울대 교수를 지낸 뒤 1965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여를 계기로 미국에 정착했다. 미국 이주 후 한동안 국내 화단에서 잊혔던 그는 1986년 소환됐다. 당시 미술평론가로 활동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주선해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22년 만에 개인전을 연 것.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던 그는 2014년 영구 귀국해 고국의 자연을 선과 면으로 재구성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고인은 100세가 넘어서도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103세에 개인전을 열면서 “이제 장수에 대한 질문보다는 그림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작품 활동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청익 청윤(조각가) 씨, 딸 주은 주량 주향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4일 낮 12시. 02-3010-2000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타고나길 그늘진 곳을 쫓는 사람이 있다. 안창홍 작가(69)의 시선은 늘 시대의 어두운 면에 머물렀다. “사회의 응달은 없어지지 않아요. 세상이 우리가 꿈꾸는 것만큼 달콤하지 않죠. 응달 속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기에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의 작품은 평범한 소시민에게서 시대의 아픔을 직면하게 만든다. 안 작가가 이번에 내놓은 화두 역시 인간의 ‘공허함’이다.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유령 패션’은 욕망의 허상을 다룬다. 지난해 에콰도르 키토에서 전시를 연 그의 귀국 보고전으로, 회화 및 조각 32점과 디지털펜화 105점, ‘마스크’ 연작 23점으로 구성됐다. 안 작가는 이번 연작에 대해 “자본과 권력에 의해 개인성이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유령 패션’ 회화들 속 의상은 한껏 멋스럽게 포즈를 취했지만 정작 그 옷을 입은 사람은 없다.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만 남고, 자아는 사라져 도구 밖으로 흘러내린다. 옆에 나란히 놓인 ‘마스크’ 조각 연작도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화려한 색으로 치장했으나 붕대로 가려진 눈과 이마에 난 구멍은 탐욕을 통제하지 못해 자신을 망가뜨리는 현대인을 상징하는 듯하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현실참여주의적’이라고 표현했다. 가족과 떨어져 경기 양평군 외딴 마을에 작업실을 두고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도 문명의 폭력성을 더 절실히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품이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았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자기 안의 언어를 발언하는 사람’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반골 기질을 타고났더라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게 괴롭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작가는 가벼이 웃다 말했다. “힘듭니다. 힘든데도 외면할 순 없잖아요. 사회가 불운하면 작가도 암울할 줄 알아야죠.” 5월 29일까지. 5000∼7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광주 문화에 대한 깊은 탐구를 바탕으로 작가만의 진정한 재해석이 더해질 예정입니다.” 서울 중구에서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숙경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53·사진)은 내년에 열리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방향성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광주정신’을 주제로 하지만, 다양한 세대와 국적을 가진 작가들이 개인적인 사상적 뿌리와 배경을 기반으로 광주를 바라보면서 무엇이 유사하고 다른가를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창설된 뒤 수차례 ‘광주정신’을 주제로 열렸다. 이 감독은 “팬데믹과 인종 갈등, 기후위기, 원주민 주권운동 등을 ‘하나의 엉킴’으로 해석하고 특별한 시각으로 풀어가고 싶다”며 “예를 들어 마야족 후예인 MZ세대 멕시코 작가가 억압과 저항, 정의를 통해 새롭게 광주정신을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억압과 저항 같은 ‘공동체로서의 경험’은 모든 나라와 지역에 있다. ‘국제 대 한국’이라는 위계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서로 간의 유사성을 광주비엔날레에서 찾고 싶다”고 덧붙였다.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이기도 한 이 감독은 홍익대 예술학과 대학원을 거쳐 영국 런던시티대에서 예술비평 석사 학위, 에식스대에서 미술사·이론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를 거쳐 2007년 진입장벽이 높은 테이트모던미술관에 첫 동양인 큐레이터로 입성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내년 4월 7일부터 7월 9일까지 역대 최장 기간인 94일간 열린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채널A 예능 프로그램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이하 도시어부)의 NFT(대체불가토큰)가 발행 당일인 26일 완판됐다. 도시어부는 이덕화 이경규 등이 출연하는 국내 대표 낚시 예능으로 시즌3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채널A와 트레져스클럽은 그동안 도시어부에 등장했던 낚시 스팟을 전체 지도 이미지로 제작한 후 5401개로 쪼개어 NFT화했다. 28일 트레져스클럽에 따르면 5401개 중 판매용은 3800개로 1차 판매 수량인 1500개는 29초 만에, 2차 판매 수량인 2300개는 1분 만에 완판됐다. 도시어부 NFT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생성되는 예술인 ‘제너러티브 아트’로, 5401개 모두 각기 다른 이미지가 추출된다. 트레져스클럽은 IT 전문 스타트업 제이사이언스 산하 제너러티브 전문 NFT 프로젝트다. 최근 영화 ‘특송’ NFT 3021개를 발행해 1초 만에 완판시켰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툰 ‘빈껍데기 공작부인’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제작진과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시즌1은 반쪽짜리였다고 생각해도 좋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채널A·SKY채널 예능 ‘강철부대’가 시즌2로 돌아왔다. 밀리터리 팀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강철부대는 극한의 전투 미션이 주는 긴장감과 전우애, 도전정신을 보여줘 큰 호평을 받았다. 시즌1부터 연출을 맡은 이원웅 PD는 22일 열린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특수한 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한 부담감을 느꼈다”며 “시즌1에서 미처 보여드리지 못했던 부대들을 섭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그들을 시즌2에서 알릴 수 있게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9시 20분 첫 방송을 한 시즌2에서는 국군정보사령부특임대(HID)와 공군특수탐색구조대대(SART)가 새로 투입됐다. HID는 시즌1부터 섭외 1순위였다. 이 PD는 “HID가 베일에 싸여 있고 미디어의 조명을 받는 데 부담을 많이 느껴 시즌1에서는 출연이 불발됐다”며 “어렵게 모신 결과 함께하게 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즌1에서는 해군해난구조전대(SSU)가 유일한 구조부대로서 외롭게 싸웠지만 시즌2에서는 SART가 함께 참가해 국군 내 수준 높은 구조부대 두 팀이 겨루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즌에 참가하는 부대는 총 8개다. 지난 시즌 접전을 펼쳤던 육군특수전사령부, 해병대특수수색대, 제707특수임무단, 군사경찰특임대(SDT), 해군특수전전단(UDT), SSU도 총출동했다. 대원은 모두 32명이다. 이들은 시즌1에 비해 20배가 넘는 특수부대 예비역 지원자들 가운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됐다. 참가 대원 선정 기준은 전투력, 군인으로서의 자부심, 동료 또는 라이벌로서 충분한 존재감과 매력을 지녔는지 등이다. 이 PD는 “지난 시즌에선 몇몇 팀이 인기를 독차지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매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며 “새로운 캐릭터를 찾으면서 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션은 난도가 높아지고 규모도 커졌다. 첫 화에서는 최강 대원 3인을 가리기 위한 첫 미션이 제시됐다. 특수부대 동계훈련의 성지로 악명 높은 강원 평창군 황병산이 배경이다. 이 PD는 “시즌1도 공정성이나 미션의 수준에 대해 고민하면서 만들었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시즌2는 더욱 빈틈이 없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현장과 스튜디오를 오가는 마스터 최영재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몸 상태가 너무 좋아 미션도 덩달아 수준이 높아졌다. 다들 많은 준비를 하고 온 것 같았다. 현역 때의 체력과 전투력이 그대로 나온다. 시청자들은 보면서 감동도 하겠지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도 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시즌2에서는 걸그룹 ‘아이브’의 안유진이 새 MC로 투입됐다. “당돌한 질문을 잘한다”는 이 PD의 말처럼 안유진은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시청자를 대신해 궁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난 시즌 생생한 중계를 선보였던 김성주와 김희철, 장동민, 김동현, 최영재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했다. 프로그램과 관련된 유튜브 콘텐츠는 더 많아진다. 미션 준비 과정과 뒷이야기, 숙소 생활에서 대원들 간 ‘케미’가 돋보이는 영상을 채널A와 SKY채널의 공식 유튜브 계정을 통해 공개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결핍은 생각지 못한 돌파구를 만든다. 국내 1세대 단색화가 하종현(87) 역시 그랬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홍익대 재학 시절부터 캔버스는 그에겐 버거운 재료였다. 비싼 캔버스를 대신할 것을 찾던 그는 남대문시장에서 천을 사다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등 나름의 대안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쌀 포대로 쓰던 마대였다. 그는 마대 뒷면에 물감을 칠해봤다. 올이 촘촘하지 못하다 보니 물감이 앞으로 밀려 나왔다. 앞면에서 본 물감의 흔적은 마치 또 하나의 그림 같았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배압법’. 1974년부터 하종현이 본격적으로 사용한 이 기법은 “엉뚱한 짓을 많이 했다”고 자평하던 그의 일생의 결실이 됐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하종현 개인전에서는 배압법과 같은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에 펼쳐진 작품 39점은 모두 전형적인 회화 기법으로 그리지 않았다. 작품 곳곳에선 노화백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배압법으로 만든 작품은 ‘접합(Conjunction)’ 시리즈로 불린다. 단순히 추상화라 칭할 수 없을 정도로, 평면 작업임에도 생생한 물성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마대와 물감과의 전쟁”이라고 표현했듯 그의 작품은 작가가 들인 노동의 양과 시간을 유추하게 만든다. 하종현은 앞면으로 빠져나온 물감을 펴 바르거나 그 위에 다른 색을 덧칠하면서 여러 표현법을 꾀했다. 전시 출품작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인 ‘Conjunction 95-020’(1995년)과 비교해 보면 ‘Conjunction 21-82’(2021년)를 포함해 최근작의 색이 밝아진 것도 알 수 있다.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70대에 들어 나뭇조각을 겹쳐 만든 작품 시리즈인 ‘이후 접합’에 도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후 접합’ 15점을 선보인다. ‘이후 접합’ 작업은 얇게 자른 나뭇조각에 먹이나 물감을 칠한 캔버스 천을 감싸는 것부터 시작된다. 한 나뭇조각을 놓고 옆 가장자리에 물감을 짠 다음 다른 나뭇조각을 이어 붙이는 식이다. 이때 나뭇조각 사이로 물감이 눌리며 스며 나와 조각적인 요소가 부각됐다.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에 따라 작품의 이미지는 크게 달라진다. ‘Post-Conjunction 21-307’(2021년)처럼 물감을 긁어 파편처럼 표현함으로써 역동성을 살릴 수도 있고, ‘Post-Conjunction 21-201’(2021년)처럼 푸른색을 덧칠하며 정적인 정서와 리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3월 13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박찬욱 감독(59)이 애플과 협업해 제작한 단편영화 ‘일장춘몽(LIFE IS BUT A DREAM)’을 18일 공개했다. 영화는 21분 24초짜리 사극으로 배우 유해진 김옥빈, 박정민이 출연한다. 이번 신작은 애플의 스마트폰인 ‘아이폰 13 Pro’로만 촬영했다.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는 애플의 ‘Shot on iPhone’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애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영화는 요절한 두 귀신이 관을 두고 싸우면서 벌어지는 늦은 밤의 한바탕 소동을 그린다. 이번 작품은 박 감독의 첫 사극이다. 판소리와 마당극을 넣으며 새로운 시도를 했다. 박 감독은 “작은 카메라로 찍을 때 먼저 떠오른 건 자유로움이었다. 특정 장르 영화가 아니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다 보니 꼭 마당극 같은 이야기가 펼쳐졌다”고 말했다. 김옥빈은 “작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데 익숙지 않아 걱정했는데 완성본을 보니 오로지 나만의 걱정이었다”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888년 프랑스 남부의 한 시골 의사 펠릭스 레이는 한 환자에게 “뇌전증의 한 형태를 앓고 있다”고 진단을 내린다. 환자는 전날 스스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라내 머리가 온통 피에 젖어 있었다. 환자는 종종 환청을 들었고,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고 했다. 그는 화단 내에서 그저 ‘미쳤다’고 알려졌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다. 고흐는 회복되는가 하면 발작을 다시 일으켰다. 그는 그럴 때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실제가 아니라고 느꼈다. 우울해졌고, 어떤 때는 사람들이 자신을 독살한다고 생각해 두려워했다. 1888년 12월부터 1년 7개월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전보다 그림을 더 자주 그렸다. 이 기간에 그린 수백 점의 그림은 그가 평생 그린 전체 작품의 절반이나 된다. 그를 괴롭히던 ‘과도한 민감성’이 풍부한 표현력으로 발현된 것이다. 고흐가 겪었던 질환은 심각한 발작을 동반하는 ‘측두엽뇌전증(TLE)’이다. 이 책은 미국의 논픽션 작가인 저자가 약 10년간 TLE를 파고들며 쓴 의학 논픽션이다. 저자는 TLE 연구 선구자인 하버드대 신경과 전문의 노먼 게슈윈드의 연구를 중심으로 TLE를 설명한다. 게슈윈드는 TLE 발작을 일으키는 뇌의 흉터가 성격 변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적 능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흔히 ‘간질’로 알려진 대발작과 달리 TLE 발작은 신체적 경련이 없어 인지하기 어렵다. 환각과 낯선 감정 등이 나타나기 때문에 정신병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TLE는 뇌전증 중에서 가장 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뇌전증재단은 뇌전증의 오명을 벗기기 위해 정보가 퍼지는 것을 막기도 해 대중의 인식은 더 낮아지고 환자들은 정보에 접근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TLE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담아 환자들과 주변인이 혼란에서 벗어나고 외로움을 치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세계 미술계에 대체불가토큰(NFT) 열기가 뜨겁다. 유명 작가와 미술관들도 NFT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순수예술 작품이 어떻게 NFT가 되는지, 기성 미술계의 NFT 시장 진출로 예술계에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지 들여다봤다.》미술시장 핫이슈 NFT 지난해부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미술 시장에서 블록체인 기술로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기록하는 대체불가토큰(NFT)이 뜨거운 이슈로 부상 중이다. 세계 최대 NFT 시장 데이터 통계 플랫폼인 논펀지블닷컴에 따르면 NFT 미술품 거래량은 지난해 3분기부터 급증해 8월에는 주간 거래량이 17억8000만 달러(약 2조1000억 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디지털아트 작가 비플의 NFT ‘매일: 첫 5000일’이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785억 원에 거래되며 NFT 미술 시장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본력과 커뮤니티를 갖춘 화랑과 미술관들도 유명 작가들과 함께 NFT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화랑인 현대화랑을 모태로 한 갤러리현대는 최근 “5월 미술품 NFT 플랫폼을 오픈하겠다”고 밝혔다. 갤러리현대가 설립한 디지털 아트 회사 ‘에이트(AIT)’는 김환기의 전면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이중섭의 ‘황소’를 NFT로 제작할 예정이다. NFT 플랫폼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다소 의아할 수 있다. 이제껏 NFT 미술 시장에서는 디지털 아트 작품이 대세였다. 작가들 또한 익히 들어보지 못했던 신진 작가가 대부분이었다. 미술관에 두 발로 걸어가야 볼 수 있었던 유명 작가들의 회화 작품이 어떻게 NFT가 된다는 걸까. 벽에 걸어놓고 감상할 수도, 만질 수도 없는 NFT는 왜 만들어지고 팔리는 걸까.○ NFT 시장에 뛰어든 순수예술 작가들NFT는 일종의 디지털 진품 증명서다. 블록체인이라는 디지털 장부에 이미지 파일이나 동영상 저작물을 업로드하고 작품명, 작가명, 에디션 수량 등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렇다 보니 똑같은 디지털 파일의 사본이 수없이 많아져도 NFT만이 원본임을 인정받는다. 회화 원화와 프린트 포스터 굿즈의 무게감이 다른 것처럼, 디지털상에서도 원본과 사본 간에 가치 차등을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NFT 소비자는 작품이라는 ‘물질’이 아닌 원본이라는 ‘가치’를 산다고 이해하면 된다. 미술계 내에서 NFT 시장의 탄력을 받은 건 디지털 아트 작가들이었다. 이제껏 아날로그 예술 작품은 전문가 감정을 통해 원본과 사본을 구분할 수 있었지만 디지털 아트는 그렇지 못했다. 디지털상에서 원본과 사본을 구별할 수 없다는 문제점은 창작자의 위치와 수익을 보장하지 못했고, 디지털 아트를 비주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하지만 NFT로 디지털 원본을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가 열리면서 기존 미술 시장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신진 작가와 디지털 아트 작가들은 NFT 플랫폼에서 소비자와 직거래를 시작했고, 팬덤까지 형성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회화, 조각 등 순수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던 작가들 역시 NFT 미술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궁금증은 여기서부터 생긴다. 실물 원본이 어떻게 NFT가 된다는 것일까. 이 질문은 곧 ‘실물 원본을 어떻게 디지털화하는가’로 이어진다. 시장이 형성되던 초반, 순수예술 분야 작가들의 NFT는 조악한 수준이었다. 일부 작가는 자신의 실물 작품을 카메라로 찍은 디지털 이미지를 NFT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누가 어떤 이유로 저 이미지 파일 NFT를 돈 내고 사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실물 원화를 재해석해 영상으로 만드는 ‘디지털 아트워크’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9월 NFT 플랫폼 ‘클립드롭스’에 올라온 김태호(74)의 ‘Internal Rhythm_hole_blue’가 대표적이다. 김태호의 실물 원화 ‘Internal Rhythm 2020-26’(2020년)을 재해석해 영상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김태호는 약 20개 물감을 덧칠한 뒤 표면을 깎아내는 식의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의 NFT를 보면, 깎여 나간 부분을 여러 물감이 섞여 떠다니는 강가로 표현했다. 47초짜리 영상 중간에는 갈매기 소리와 돛단배가 등장해 생동감을 살린다. 작가별 표현 방식과 작품 세계가 다르기에 디지털 아트워크 방법도 다양하다. 올해 NFT 작업에 나서는 국내 1세대 행위예술가 이건용(80)은 ‘퍼포머’라는 정체성을 살려 소비자가 직접 보디페인팅 과정에 일부 참여하는 방식을 차용했다. 구매창을 클릭하면, 이건용의 실제 모습을 본뜬 아바타가 나온다. 아바타는 소비자가 고른 캔버스와 물감 색에 따라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곧이어 일명 ‘하트 작품’이라 불리는 이건용의 ‘바디스케이프 76-3’ 형상이 탄생한다. 아바타의 퍼포먼스 과정과 결과물인 디지털 작품이 NFT로 만들어져 판매되는 식이다.○ 도전 나선 갤러리와 미술관유명 원로 작가들의 NFT 시장 진입 흐름에 갤러리는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상대적으로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원로 작가들은 갤러리의 지원을 받아 디지털 아트워크를 진행한다. 앞서 설명한 김태호 작가는 표갤러리 소속으로 활동한다. 올해 표갤러리는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을 만든 김영원 조각가(75)의 작품 NFT도 준비 중이다. NFT 시장은 갤러리 입장에서 상업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공간이다. 현실에서는 원화 한 작품이 팔리지만, NFT 시장에서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여러 에디션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고재, 아라리오갤러리 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클립드롭스에 선제적으로 소속 작가 NFT를 내놓았고, 한국화랑협회도 회원 화랑들이 클립드롭스에 작품을 올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14일 기준 금산갤러리, 리서울갤러리 등 14개 화랑이 협회의 도움을 받아 NFT 사업에 진출했다. 갤러리현대는 NFT 플랫폼 운영을 주요 사업 영역으로 하는 회사 에이트를 설립하고, NFT 미술품 거래 플랫폼 ‘에트나(ETNAH)’를 올해 5월 공개할 계획이다. 약 3개월간 시범 운영하고 8월 정식 버전을 가동할 예정이다. 이건용의 NFT가 이 플랫폼에서 거래된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기존 고객들은 NFT 결제 수단인 암호화폐 활용을 어려워한다”며 “이들을 위해 현금을 암호화폐로 바꾸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해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들도 작품을 대중화하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NF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영국 대영박물관은 지난해 9월부터 소장품인 에도시대 일본 작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주요 작품을 NFT로 만들어 판매 중이다. 담당 블록체인 기업 라콜렉시옹의 최고경영자(CEO)는 “대영박물관을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새로운 관객들을 유입시킬 기회”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간송문화재단이 지난해 재정난 해소 방안으로 훈민정음 혜례본을 100개 한정 NFT로 제작해 판매했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시애틀 NFT 뮤지엄’이 개관해 NFT 판매 최고가 기록을 가진 크립토펑크 등의 NFT를 전시 중이다. 물리적 공간을 통해 NFT 커뮤니티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 “고유 가치 창조하는 작가만 살아남을 것”NFT 미술 시장이 기성 미술계 중심으로 움직이면 NFT 질이 보장될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가 있다. 실제로 세계 최대 규모의 NFT 거래 플랫폼인 ‘오픈시’를 살펴보면, 누구나 NFT를 올릴 수 있는 플랫폼 특성상 자율권이 보장되는 반면 질 낮은 작품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전통 미술계는 작품성과 시장성이 증명된 유망 작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NFT 시장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신인의 활약이 가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유명 작가가 시장에 유입되고 그 이름값에 시선이 쏠리면 수평적인 예술 유통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미술계 인사와 협업해 자체 심사로 작품을 선별하는 NFT 플랫폼들이 늘면서 서열화의 속도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일부 화단은 트위터나 클럽하우스를 통해 화단 구성원들에게만 NFT 플랫폼 ‘파운데이션’에 가입할 수 있는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미술계 내부만의 이권 다툼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팝아트 작가이자 지난달 책 ‘NFT는 처음입니다’를 발간한 김일동 작가는 “유튜브를 통해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유명 방송인이 되는 것처럼 NFT 플랫폼은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며 “NFT는 블록체인상 표식을 새기는 정보기술(IT)일 뿐, 사회가 기술에 적응만 되면 기성 작가든 신진 작가든 본인만의 고유한 가치를 창조해내는 작가의 NFT만이 시장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예술품으로서의 NFT 의의가 모호한 현 시장에서는 디지털상에서의 ‘아트’가 무엇인가에 대한 재정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요훈 IT 칼럼니스트는 “NFT는 작품이 아니라 기술인데, 지금 NFT 시장은 우선 돈이 되니 이 점을 간과한 채 뛰어들고 있는 것 같다. 실물 그림을 디지털화하는 것은 일종의 양념일 뿐, NFT 아트라 칭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NFT 전문가도 “현재 NFT 시장에서 거래되는 이미지와 영상들이 과연 예술로 불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시점”이라며 “디지털 ‘아트’라 지칭할 수 있는 기준을 예술사적으로 재정의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박찬욱 감독(59)이 애플과 협업해 제작한 신작 단편영화 ‘일장춘몽(LIFE IS BUT A DREAM)’을 18일 공개했다. 영화는 21분 24초짜리 단편 사극으로 배우 유해진, 김옥빈, 박정민 등이 출연한다. 이번 신작은 애플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으로만 촬영해 완성됐다. 영화는 애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요절한 두 귀신이 관을 두고 싸우면서 벌어지는 늦은 밤의 한바탕 소동을 그린다. 이날 오전 11시 화상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박 감독은 “2011년에 제가 ‘파란만장’이라는 단편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 기억이 정말 좋아서 단편영화 만들 기회가 있으면 꼭 참여해왔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2011년 동생 박찬경 감독(57)과 함께 아이폰4로 촬영한 단편영화 ‘파란만장’을 선보인 바 있다. ‘파란만장’은 2011년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서 대상인 황금곰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등을 통해 독보적인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여온 박 감독의 첫 사극이다. 그는 판소리와 마당극 등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포함시켰다. 박 감독은 “작은 카메라로 찍는다고 할 때 먼저 떠오른 건 자유로움이었다. 특정 장르 영화가 아니고,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풀다보니 꼭 마당극 같은 이야기가 펼쳐졌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아이폰 성능을 직접 결과물로 보여주는 애플의 ‘Shot on iPhone’ 캠페인의 일환이다. ‘아이폰 13 Pro’로 모든 장면을 촬영했다. 영화 ‘1987’, ‘고지전’, ‘암살’에 참여한 김우형 촬영 감독이 참여했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김 촬영감독은 “도전이라는 생각보다는 경쾌하고 재밌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김옥빈은 “작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데 익숙지 않아 걱정했는데, 완성본을 보니 오로지 나만의 걱정이었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최근 범죄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과거와 달리 범죄 사실을 소개하거나 해결 과정을 따라가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그 대신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의 심리를 추적하는 데 초점을 둔다.23일 오후 10시 50분 첫 방송을 하는 채널A 스릴러 다큐 ‘블랙: 악마를 보았다’는 범죄자의 내면을 더욱 깊숙이 파고든다. ‘블랙’은 시청자가 범죄자의심리상태, 재판 과정에서 나온 범죄자가 한 말에 담긴 숨은 뜻을 고민하게 만든다.범죄자의 심리, 행동을 분석하며 프로그램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인물은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 겸임교수(56)다.‘블랙’에 고정 패널로 참여하는 그는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을 비롯해 토막 살인범 오원춘, 성폭행범 고종석을 실제 면담해 수사 성과를 내는 데 기여했다.》권 교수는 ‘블랙’에 출연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 “현직에서 많은 범죄자들을 분석했다”며 “대중에게 범죄자들의 실체를 알리는 것이야말로 범죄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블랙’은 범죄자의 시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해 범죄자의 비뚤어진 심리를 꿰뚫어본다. 범죄자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나가는 프로그램에서 권 교수는 범죄자의 심리와 이면, 범죄 계획 등을 파헤치며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할 여지를 예리하게 가려내는 것도 그의 일이다. 권 교수는 “범죄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살아가는지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첫 회는 살인을 저지른 후 시신을 훼손한 사형수가 제작진과 주고받은 실제 편지로 시작한다. 5개월간 사형수가 보낸 7개의 편지를 모아 범죄자의 주장과 심리를 파악한 뒤 드라마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보다 밀도 있고 흡입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제작진도 드라마 PD와 드라마 작가, 예능 PD와 예능 작가 등으로 이뤄졌다. 김경훈 채널A 드라마플러스1팀 PD는 “또 다른 사형수 4, 5명의 이야기도 순차적으로 방송하는데 이 역시 실제 편지를 바탕으로 구성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범죄 관련 프로그램에 패널로 종종 출연한 권 교수는 “‘블랙’은 사형 선고를 받은 범죄자들의 잔혹한 심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며 “사건의 발생과 수사 과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범죄자가 실제 쓴 편지를 통해 직접적으로 범죄자 심리를 분석하는 것은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도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블랙’의 고정 패널로는 권 교수 외에 영화감독 장진, 배우 최귀화가 합류했다. 이들은 범죄자에 대해 각자 분석한 내용을 설명한다. 첫 촬영을 마친 뒤 권 교수는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범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밝혔다. 김 PD는 “패널들이 ‘왜 살인에서 그치지 않고 시신을 훼손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답을 내놓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도 그 나름의 프로파일링을 할 수 있게끔 구성했다”며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짚신 네 켤레가 갤러리 한가운데 놓였다. 최대 71cm 길이의 짚신 주인은 코끼리. 사방에 배치된 스피커에서 물이 튀는 소리가 들린다. 코끼리들이 신발을 던져놓고 목욕을 하러 웅덩이로 떠나는 것 같다.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열린 홍영인 작가(50)의 ‘위 웨어(We Where)’ 개인전에 출품된 설치미술 작품 ‘Thi and Anjan’(2021년)이다. 작가는 영국 체스터 동물원에서 숨진 할머니 코끼리 티와 손녀 코끼리 안잔을 위한 신발을 만들었다. 공동체를 이루며 살다 숨진 생명체를 기리는 작품이다. 1997년부터 영국에서 활동 중인 작가 홍영인은 이번 전시에서 신작 8점을 포함해 총 26점의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주제는 공동체. 작가는 오랫동안 공동체 복원이나 자연과의 공존에 천착해왔다. 그는 “서로를 배척하는 수직적 사회가 아닌 다양한 주체가 공생하는 수평적 공동체를 꿈꾼다”고 말했다. 전시장 한편에 걸린 ‘One gate between two worlds’(2021년)는 사당 안 고릴라와 원숭이를 묘사한 대형 자수 작품이다. 사당을 그린 전통 민화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에서 착안했다. 감모여재도는 유교 제례의식에서 영적 세계와 실제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작품에서 사당 안 고릴라와 원숭이가 마치 공경받는 조상처럼 표현돼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역전된 듯하다. 홍영인은 “인간은 동물을 하등하다고 여기는 것 이상으로 타인을 배척하고 끊임없이 경계를 짓는다”고 말했다. 작품들은 짚풀 공예나 자수처럼 소외되고 있는 문화요소를 다룬다. ‘Woven and Echoed’(2021년)와 ‘A Colourful Waterfall and the Stars’(2021년) 같은 자수 작품이 많은 것도 과거 여성들의 자수가 예술로 인정받지 못한 점을 반영한 것. “제가 경험한 1970, 80년대 한국 역사는 너무도 남성적으로 쓰였다”는 홍영인은 당시 여성 직공들이 쓴 일기 속 문장을 자수로 놓았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잊힌 존재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홍영인은 “늘 ‘어떻게 하면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동안 여성, 동물 같은 비주류를 대변한 예술적 시도는 많지 않았다. 미술은 아래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26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조선시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생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를 보면 1713년 숙종의 초상화 명칭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의 얼굴을 그려놓은 것을 ‘사진(寫眞)’, 왕의 초상화를 ‘어진(御眞)’이라 칭한 기록이 나온다. 한국 사진의 역사를 망라한 ‘한국 사진사’를 지난해 11월 출간한 박주석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대표적인 ‘사진 컬렉터’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사진(寫眞)이란 단어가 일본어와 한자가 같다 보니 일본으로부터 유래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에 ‘초상화’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진’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언주라운드에서 26일까지 무료로 열리는 전시 ‘사(寫)에서 진(眞)으로’는 1920∼1980년대 한국 사진 역사의 중심에 섰던 사진작가 22명의 작품 50점을 선보인다. 한국인 최초로 개인 사진 전람회를 개최한 정해창,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인 신낙균 등의 작품이 포함됐다. 작품들은 모두 박 교수와 그가 스승으로 모신 한국 사진사 연구의 개척자 고 최인진 선생의 수집품이다. 박 교수는 “1985년 국내 사진작가 1세대로 통하는 현일영 씨에 관한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현 작가의 자녀로부터 작가의 사진을 기증받았다”며 “이때부터 사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틈나는 대로 사진 작품을 모았고 최인진 선생이 모은 사진 852점과 합쳐 총 1266점의 사진 컬렉션 ‘지평’을 마련했다. 박 교수는 “한국인에게 사진은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외형을 묘사할 뿐 아니라 인격과 내면까지 표출해야 한다’는 동양의 전신사조에서 비롯됐다”며 “베끼는 기술 ‘사(寫)’에서 사람의 참모습인 ‘진(眞)’을 끌어내는 것이 한국 사진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출품작인 정해창의 ‘무제(여인의 초상)’(1929년)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여인의 얼굴을 강조하기 위해 여인에게 흰색 저고리를 입고 흰 두건을 두르게 했다. 또 모델의 시선은 렌즈와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다.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해 대중 스타 이미지를 만드는 서양의 촬영 기법을 거부한 것이다. 박 교수는 “사진에 찍힌 대상은 구체적인 누군가가 아니라 절제된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 자체로 보인다”고 했다. 사진 조명과 포즈에 대한 연구 과정에서 나온 신낙균의 ‘무희 최승희’(1930년), 민충식의 ‘마술사2’(1930년대)도 인물의 얼굴보다는 전체 실루엣과 정서를 보여준다. 전시는 26일 서울 일정을 끝낸 후 3월 광주 갤러리 혜윰, 4월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순회전을 연다. 사진 컬렉션 ‘지평’ 중 28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뮤지엄(LACMA)에서 올해 9월 열리는 한국 근대미술 특별전에 출품된다. 특별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63점을 포함해 총 14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조선시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생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를 보면 1713년 숙종의 얼굴을 그릴 때 이야기가 나온다. 어용도사도감도제조였던 이이명은 ‘어진’이라는 명칭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의 얼굴을 그려놓은 것을 ‘사진(寫眞)’이라 하니 왕의 초상화는 ‘어진(御眞)’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박주석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국사진사를 총망라한 ‘한국사진사’를 발간하면서 “‘사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용어”라고 밝혔다. 최근 만난 그는 “일본에서도 ‘Photography’를 ‘寫眞’이라 표현하기 때문에 일본으로부터 유래된 말로 알려졌지만 조선시대에 ‘초상화’를 지칭하는 용어가 ‘사진’이었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언주라운드에서 열리는 전시 ‘사(寫)에서 진(眞)으로’는 1920~1980년대 한국 사진 역사를 톺으며, 그 역사의 중심에 섰던 사진작가 22명이 촬영 후 10년 이내에 직접 인화한 작품 50점을 선보인다. 박 교수와 그가 스승으로 모신 한국사진사 연구 분야 개척자 고 최인진 선생의 사진 수집품으로 이뤄졌다. 한국인 최초로 개인 사진 전람회를 개최한 정해창,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인 신낙균 등의 작품이 포함됐다. 박 교수는 1985년 현일영 사진작가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부터 사진 컬렉팅을 시작했다. 현일영의 삶과 작가론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다 만난 현일영의 자제에게 기증받았다는 것. 그는 이후 틈나는 대로 모으다가 최인진 선생이 모은 사진 852점과 합쳐 총 1266점의 ‘사진컬렉션 지평’을 마련했다. 그는 “한국인에게 사진은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외형 묘사뿐 아니라 인격과 내면까지 표출해야 한다’는 동양의 전신사조에서 비롯됐다”며 “베끼는 기술 ‘사(寫)’에서 사람의 참모습인 ‘진(眞)’을 끌어내는 것이 한국 사진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출품작인 정해창의 ‘무제(여인의 초상)’(1929년)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여인의 얼굴을 강조하기 위해 흰색 저고리와 두건을 두르게 했다. 또 모델이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해 대중 스타 이미지를 만드는 서양의 촬영 기법을 거부한다. “그래서 사진에 찍힌 대상은 구체적인 누군가가 아니라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 자체로 보인다”고 했다. 사진 조명과 포즈에 대한 연구과정에서 나온 신낙균의 ‘무희 최승희’(1930년), 민충식의 ‘마술사2’(1930년대) 등 또한 인물의 얼굴보다는 전체 실루엣과 정서를 보여준다. 26일에 종료되는 이 전시는 3, 4월 광주 갤러리 혜윰,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순회전을 거쳐 9월에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LACMA)으로 장소를 옮긴다. 전시작 중 16점과 컬렉션 중 12점은 미국에서 한국 근대 시기를 주제로 열리는 최초이자 최대규모의 특별전에 출품된다. 이 전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63점을 비롯한 140여 점의 1900~1965년에 제작된 근대미술 대표작이 포함될 예정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비올리스트 김은진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18일 오후 7시 반 ‘김은진 비올라 리사이틀: 웨이팅 포 스프링’을 연다. 김은진은 서울예고, 서울대 음악대를 거쳐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악대학 전문 연주자 과정, 슈투트가르트 국립음악대학 최고 독주자 과정을 마쳤다. 2004년 귀국한 그는 서울 대구 부산 제주 등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2018년 일본 도쿄 야마하홀에서 독주회도 열었다. 현재 창원시향 수석 비올리스트이며 실내악 앙상블 ‘부산클래식뮤직소사이어티(BCMS)’ 대표도 맡고 있다. 이번 독주회에서 그는 니노 로타, 세자르 프랑크의 비올라 소나타와 막스 브루흐의 비올라를 위한 로망스, 파울 힌데미트의 비올라 소나타를 연주한다. 피아노 반주는 스크리아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원종호가 맡는다. 2만 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전문가들이 모여 전시나 교육, 연구에 참여해 다양한 담론을 끌어내는 공동 기획 형식(컬렉티브)으로 미술관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의 김장언 관장(47)이 올해 가장 큰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8일 만난 김 관장은 다음 달부터 김선정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57), 미술계 인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관장은 4년 6개월간 공석이었던 아트선재센터의 관장으로 지난달 24일 임명됐다.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한 김 관장은 대안공간 풀 큐레이터, 안양문화재단 예술팀장을 지냈다. 2014년부터 2년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기획2팀장을 맡아 한중일 프로젝트 그룹 ‘시징맨’을 소개하는 ‘시징의 세계’, 한일 그래픽디자인 50년사 ‘交(교), 향’전(展) 등 굵직한 전시를 진행했다. 1998년 대우문화재단에서 설립한 아트선재센터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씨와 외동딸 김선정 씨가 연달아 관장을 맡았다. 김선정 씨가 2017년 7월 광주비엔날레 대표로 취임하면서 아트선재센터 관장직은 계속 비어 있었다. 김 관장은 아트선재센터를 ‘동시대 미술의 게이트’라고 표현했다. 그는 “‘컨템포러리 아트’가 잘 인지되지 않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동시대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보여준 곳”이라고 평가했다. 아트선재센터의 전시가 실험성이 짙어 난해하다는 평도 있다. 이에 대해 김 관장은 “미술관은 새 연구나 담론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며 “관람객의 눈높이도 이전과 많이 달라져 새로운 도전을 지속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990년대 이후 미술사의 주요 이슈와 작가들을 다시 살펴보는 전시를 구상하고 있다”며 “보통은 회고전 형식으로 진행하지만, 새로운 연구 방식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