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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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2부 유통중기팀 데스크입니다.

teller@donga.com

취재분야

2024-04-23~2024-05-23
칼럼27%
경제일반23%
기업20%
산업17%
문화 일반10%
유통3%
  • ‘방구석 여행’ 떠나볼까!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이 힘들어진 시기지만, 작가들의 여행기가 ‘방구석 여행’ 대리체험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최근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응집된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 백민석 씨는 최근 홀로 떠났던 러시아 여행기 ‘러시아의 시민들’을 펴냈다. 블라디보스토크,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의 여러 도시를 가로지르는 동안 느낀 짧은 단상과 이국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사진 120여 장을 직접 찍어 수록했다. 러시아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는 여전히 냉전시대, KGB(옛 소련 정보기관)나 혁명, 레닌 등이지만 작가가 담백한 말투로 기술하는 여행기 속에는 잘 웃고 친절하며 아기자기한 이웃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차분하면서도 무덤덤하게 이어지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창밖으로 그 풍경을 함께 내다보는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해이수 작가는 최근 장편소설 ‘탑의 시간’(사진)을 펴냈다. 미얀마의 유적지 ‘바간’을 배경으로 네 남녀의 뒤얽힌 기억과 인연을 그려낸 작품. 낡은 게스트하우스나 ‘미얀마 비어’, 님트리와 코코넛 나무, 선착장 옆 사원 등 이국적 풍경의 디테일이 언젠가 떠났던 동남아 여행지를 연상시키며 소설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2000개가 넘는 탑에 각자의 소원을 두고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처럼, 책을 따라가던 독자들 역시 이곳의 방문자가 된다. 김소연 시인의 첫 여행산문집 ‘그 좋았던 시간에’는 코로나19 이전 자유로웠던 여행의 시간을 추억하며 쓴 글을 모았다. 다수의 산문집을 낸 시인이지만 여행산문집은 이번이 처음. 마음을 파고드는 특유의 섬세하고 예리한 글로 지난 여행기와 그것을 회상하며 깨달은 것들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엽서 고르는 데 한나절이나 쓰고 빵과 커피 냄새에 한없이 이끌려 다니는 시간이 여행지에선 가능하다. 낯선 세상으로 가 느리게 머물면서 심장이 뛰며 이끄는 대로 걸어 다니던 시절. 목적한 적 없는 시간이었지만 여행의 묘미가 바로 그 목적 없음이다. 시인은 “돌아와 보니 모든 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고 한다. ‘우주를 독식하는 시간’이자 ‘도처에서 새로 태어나는 시간’이었던, 자유롭던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책장 속에서 반추하게 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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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미나리’ 美비평가협회 작품상 윤여정 여우조연상 등 4관왕 올라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영화 ‘미나리’가 미국 비평가협회 영화상에서 첫 작품상을 받았다. 5일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비평가협회는 4일(현지 시간) 최고상인 작품상에 ‘미나리’를 선정했다. 이와 함께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정 감독이 각본상을 받았고 배우 윌 패튼은 ‘켄 행크 메모리얼 타힐상’을 받아 총 4관왕에 올랐다. 한국계 미국인인 정 감독이 1980년대 아칸소로 이주한 한인 가정 이야기를 담아낸 ‘미나리’는 새해 들어서만 미국 여성영화기자협회 여우조연상(윤여정), 카프리 할리우드 국제영화제 각본상과 음악상을 받은 데 이어 서부 뉴욕 평론가를 중심으로 한 그레이터 웨스턴 뉴욕 비평가협회에서 여우조연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차지했다. 수상 소식이 잇따르며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수상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 개봉은 상반기로 예정돼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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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떼’와 90년생 사이… 80년생의 시대유감[광화문에서/박선희]

    최근 몇 년은 90년생의 해였다. 90년생이란 신인류를 이해하기 위한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많았다. ‘90년생이 온다’ 같은 베스트셀러도 나왔고, 언론의 조명도 집중됐고, 다들 열심히 그들에 대해 공부했다. 가끔은 너무하다 싶은 관대함과 이해심도 발휘해줬다. 그들을 거스르는 건 ‘라떼’(꼰대) 대열에 자진 합류하는 것과 같은 무모한 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어떨까. 새해에 소개할 신간을 검토하다가 80년생의 시각에서 본 사회비평을 담은 ‘추월의 시대’란 책을 봤다. 친일 대 종북, 산업화 대 민주화 세대란 이분법만으론 읽을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다층적 변화를 80년생 관점에서 다시 점검했다는 소개가 눈길을 끌었다. “개발도상국 한국에서 자란 마지막 세대이자 선진 대한민국을 겪은 첫 세대”란 특수성을 바탕으로 배척과 분열 일변도인 현재 정치 지형에 비판을 가한 착안점이 흥미로웠다. 사실 80년생이 정치적 발화자로 등장하려는 조짐은 최근 들어 계속 있어 왔다. 강력한 기득권 정치집단이 된 운동권 세대를 작심 비판한 ‘386 세대유감’(2019년)도 80년생 공저자가 주축이었다. 특히 지난해 국민청원에 ‘시무7조’를 써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조은산, ‘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를 연재해 화제가 됐던 삼호어묵도 80년대생으로 알려졌다. 80년생은 연탄불 때던 기성세대의 삶을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워라밸을 중시하는 90년생 정서에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낀 세대다. 양쪽에 역지사지가 되는 동시에 기존 정치구도로부터도 자유롭다. 일례로 조은산의 유려한 고어체는 ‘보수 어르신’이어서가 아니라 어릴 때 엄마가 사준 ‘이문열 삼국지’ 영향이었단다. 노무현 지지자였지만, 반민주적 당파성까지 용인할 만큼의 맹목적 부채감(혹은 이해관계)은 없었다. 목동의 중산층 워킹맘으로 알려진 삼호어묵은 흙수저 유년기를 자주 언급한다. ‘노오력’이 꼰대의 상징이 된 시대지만, 성과주의의 순기능이 작동했던 사회를 그는 직접 체험하며 컸다. 열심히 살며 내 집 장만한 게 적폐가 되는 세상은 경험과 직관 모두에 반한다. 이들이 상식과 원칙의 기준에서 분노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그 반향이 컸다. 80년생의 복합적 정체성에서 파생된 분노가 생각보다 폭넓은 공감을 얻는 사소한 예가 한 가지 더 있다. 80년생 회사원 지인은 얼마 전부터 인터넷 뉴스에 일일이 댓글을 단다. 정치부터 부동산까지 열 뻗치는 뉴스가 너무 많아서란다. 댓글만 보면 육군 장성 출신 은퇴자 같은데 실제 그녀는 몇 년째 갖고 싶은 반클리프 목걸이 가격만 검색하는 소심한 워킹맘이다. 그 댓글 속에 살아 숨쉬는 그 준엄한 부캐(부캐릭터)는 라떼도 90년생도 다 이해가 가는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 80년생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재밌는 건, 이게 자주 포털의 베스트 댓글에 오른단 점이다. ‘튀어서 좋을 것 없다’는 베이비붐 부모 세대의 가르침대로 웬만하면 순응하고 살던 30대들을 자꾸 발화자로 깨우는 시대다. 여러모로 유감에 찬 발화자들인데, 갈채와 관심이 쏟아진다. 이쯤 되면 소개해도 좋지 않을까. 60년생 386세대와 그들의 자녀인 90년생 사이에서 생략됐던 이들. 80년생도 왔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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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열정과 혁신에 가려진 ‘욕망의 스타트업’ 실체

    ‘스타트업’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이미 열정, 창의력, 엄청난 잠재력 같은 걸 떠올린다. 테슬라, 에어비앤비, 우버처럼 업계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사회 혁신을 불러온 스타트업 기업들은 창업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가슴 뛰는 모델이다. 대기업들도 스타트업처럼 작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갖기 위해서 그들의 방식을 흉내 낸 공간을 만들고, 주요 정책 과정을 바꿔보기도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모두의 상상처럼 그렇게 멋진 신세계이기만 할까. 실제 스타트업을 창업한 적이 있는 정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막연한 환상에 가려진 스타트업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테슬라는 이미 2017년 증권거래소에서 BMW의 가치 평가를 앞섰지만, BMW가 연간 250만 대의 차를 팔아 기록적 판매량을 경신할 때조차 일론 머스크가 공언했던 50만 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생산을 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가치평가가 현실지표라기보다 욕망의 반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스타트업 경영자들이 환상적인 스토리텔링, 즉 ‘거짓말’을 하는 데 주력하게 되는 이유다. 사실 스타트업 중 80%가 3년을 버티지 못하고, 90%가 좌초한다. 정식 계약서도 없고, 근로 기준도 불분명하다. 저자는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성보다 수익률 확보가 가장 중요한 실리콘밸리의 냉혹함과 자유분방한 척하지만 획일적이고 차별이 심한 조직 문화, 조세 회피와 거짓 아이디어 등 넘쳐나는 기만의 사례까지 스타트업의 어두운 이면을 조목조목 파헤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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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없는 좌절 끝에 찾은 ‘희망의 빛’… 영예의 9인 “삶을 성찰하는 글 쓰겠다”

    매년 신춘문예 응모자들 사이에선 ‘당선되려면 이래야 한다’는 수많은 풍문이 떠돌지만, 모두 틀렸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이후 독학으로 시를 공부해 등단한 청년부터 베트남 국제학교의 영어교사, 전방에서 복무 중인 군인에 이르기까지 올해 당선자들의 면면은 어느 때보다 다채롭다. 2021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중편소설, 단편소설, 시, 시조, 희곡, 시나리오, 동화(가작), 문학평론 영화평론 등 9개 부문에서 이서안(본명 이태순·58) 이소정(43) 이근석(본명 전영재·27) 이윤훈(61), 신윤주(23) 임형섭(39) 김은아(44) 진기환(29) 김명진 씨(24)를 당선자로 배출했다. 연령대도 20대부터 60대까지 고루 분포한 데다 재학 중인 대학생부터 영화감독까지 지내 온 이력, 활동 반경도 각양각색이었다. 개성 넘치는 당선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군복무 중인 진기환 씨, 베트남에서 근무하는 이윤훈 씨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구에 거주 중인 김명진 씨도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했다.○ 해외에서 군부대에까지 걸친 ‘신춘문예 어벤저스’ 문학평론 당선자인 진기환 씨의 휴대전화는 이틀 내내 꺼져 있었다. 인터넷 글을 단서로 수소문해 학과 사무실에 연락하니 답이 왔다. “군복무로 휴학 중이시네요.” 위병소 근무를 끝내고 전화기를 켰을 때 그에겐 ‘아주 중요한 소식이 있어. 바로 전화 줘’라는 문자가 몇 개씩 와 있었다. 막사 복도에서 극적으로 당선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생각보다 덤덤했어요. 같이 복무하는 용사들이 ‘신춘문예가 뭔데?’ ‘왜 좋아하는 거야?’란 반응이었거든요. 하지만 소식을 전해준 선배의 축하를 받자 점점 실감이 났고 소리 지르며 계단에서 마구 뛰었어요.” 하노이 국제학교 교사인 이윤훈 씨(시조)는 “차 한잔 하면서 쉬던 중”에 한국에 있던 아들로부터 ‘동아일보에서 전화가 왔다’는 연락을 전해 받았고 김명진 씨(영화평론)는 “넷플릭스를 보고 있던 중” 뜻밖의 희소식을 접했다. ‘아들 셋’이란 극한 직업 덕에 10년 넘게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던 이소정 씨(단편소설)는 “이삿짐을 꾸린다고 정신이 없던 와중”에 전화를 받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머무는 위치, 상황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당선 통보를 받은 이들은 이렇게 차례대로 ‘신춘문예 어벤저스’에 합류했다.○ 묵묵히, 하지만 치열했던 습작 “이맘때 신춘문예 응모하러 마을의 작은 우체국에 가면 택배로 부칠 절임 배추가 가득 쌓여 있어요. 저 배추는 수취인이 분명한데, 올해 내 소설은 수취인에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이소정 씨) 기간이나 방법은 모두 달랐지만 당선자들은 각자의 절실함으로 치열한 습작기를 보내왔다. 올해 최연장자인 이윤훈 씨는 오랜 습작기를 거친 만큼 최종심에서 아깝게 떨어진 적도 많았다. 그는 “행운의 여신은 늘 입질만 하고 달아나는 물고기였다”며 “그래도 미련이 남아 올해를 마지막이라 여기고 투고했는데 행운이 주어졌다”고 말했다. 김은아 씨는 식품회사에서 근무하던 영양사였지만 2년여 전 동화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회사도 관뒀다. 진기환 씨는 군대에서 야간 근무를 서면서 글감을 고민했고, 이소정 씨는 ‘바늘로 우물을 파듯 써야 한다’는 오르한 파무크의 말을 되새기며 썼다. 이근석 씨(시 당선자)는 이력이 독특하다. 중학교 졸업 후 “자유롭고 싶어서”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치고 혼자 시를 써왔다. 그에게 강단 위 은사는 따로 없었다. 대신 책이 그 역할을 했다. 그는 “황현산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많이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전통에 누 되지 않는 작품 쓸 것” 작가로서의 첫발을 뗐다는 기쁨만큼 염려도 뒤따른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 “쟁쟁한 선배들, 심사위원들께 누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걱정과 책임감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소망에서는 설렘이 묻어났다. “명작을 남기겠다는 욕심보다 삶을 성찰하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이윤훈) “문학을 읽는 새로운 마음의 창을 열어주는 평론가가 되고 싶다”(진기환)는 저마다의 꿈에 온기가 어렸다. 이서안 씨(중편소설 당선자)는 “10대 때 일본에 가셔서 30년을 살다 광복 후 돌아오신 아버지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고 싶다”며 “이번 당선에서 그 꿈을 이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최연소 당선자인 신윤주 씨(희곡)는 “다른 분야도 도전해봤지만 희곡을 쓸 때 해방감과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이 펼칠 꿈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다. 또 한 번 ‘다음’을 기약하게 된 낙선자들이다. 임형섭 씨(시나리오)는 가족 코미디로 데뷔를 앞둔 영화감독이다. 공모전에서 숱하게 떨어져 면역이 됐다는 그는 “떨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응모했다”고 말했다. “탈고하려고 쭉 읽어보는데 재밌더라고요. 내 글이 스스로 재밌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거든요. 당선되든 안 되든 ‘지금까지 해온 게 맞았다’ ‘성실히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글에 자신감이 생겼고 재밌으니 됐다’는 마음으로 응모했어요.”(임형섭 씨) 올해도 신춘문예는 당선자보다 훨씬 많은 낙선자를 냈다. 하지만 “응모로도 충분했다”는 그의 대답은 신춘문예를 기꺼이 ‘모두의 축제’로 즐기는 방법을 일러주는 듯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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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옥인동 ‘벽수산장’ 敵産인가 유산인가

    광복 후 20년이 지난 1966년. 무명 독립운동가의 아들 이해동은 서울 종로구 옥인동 ‘벽수산장’에 자리 잡은 유엔 산하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언커크)에서 일하는 통역비서다. 언커크의 사무실로 쓰이는 벽수산장은 친일파였던 윤덕영이 지은 별장이다. 평범하던 그의 일상은 윤덕영의 막내딸 윤원섭이 나타나면서 달라진다. 벽수산장 내 아무도 몰랐던 비밀의 방을 찾아냄으로써 파견 온 외교관에게 ‘옛 주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친일파 윤덕영의 아호를 따 벽수산장이라 불렸고 이후 언커크 본부로 쓰이다 1973년 철거된 공간. 크고 아름다운 이 대저택은 이해동에겐 적산(敵産)인 동시에 윤원섭에겐 유산(遺産)이다. 전혀 상반된 내력을 가진 두 인물의 삶이 교차하며 충돌하는 상징적 공간 벽수산장은 그 자체로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품는다. 작가는 “물질로도 정신으로도 박멸된 벽수산장의 예를 통해 적이 남긴 유산 앞에 선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고자 했다”고 썼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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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집콕’에 케이크도 완판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올해 크리스마스는 집콕 파티가 대세가 됐다. 홈파티에서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기에 케이크만큼 좋은 건 없다. 최근 한 커피전문점 조사에 따르면 올해 크리스마스 키워드는 ‘집’ ‘홈파티’와 함께 ‘케이크’가 차지했을 정도다. 그래선지 케이크 수요는 올해 어느 때보다 높아서 이미 이달 초부터 예약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입소문이 난 서울 시내 유명 디저트 맛집의 시즌 케이크는 일찌감치 예약 판매가 끝났다. 용산구 한남동의 ‘수르기’는 한눈에 봐도 앙증맞은 프렌치 디저트류를 판매하는 카페.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산타클로스, 루돌프 모양의 케이크, 마롱트리 타르트를 선보였는데 예약을 오픈할 때마다 순식간에 선착순 마감됐다. 일본에서 공부한 파티셰들이 운영하는 서초구 방배동의 프렌치디저트 카페 ‘메종엠오’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뷔슈 드 노엘’을 감각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였다. 밤 맛 나는 밀크 초콜릿 케이크에 바닐라 크림으로 감쌌다. 독일에서 유래한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디저트 슈톨렌은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넣어 구운 뒤 설탕을 입혀 조금씩 잘라먹는 빵. 이곳에선 마들렌으로 슈톨렌을 만들어 시나몬 슈거를 입혔는데 이 역시 큰 호응을 받았다. 크림, 초콜릿, 젤라틴 등의 재료로 앙증맞은 무스케이크를 만드는 강남구 삼성동의 ‘리틀앤머치’는 피스타치오 스펀지 사이에 파인애플, 망고를 넣고 동화 속 크리스마스 느낌으로 장식한 케이크 등을 선보였다. ‘제이엘 디저트바’의 젤라토 케이크는 젤라토 본체에 초콜릿 바닐라크림, 산딸기 크리스피 등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특급호텔들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 고급스러운 특별 케이크를 선보인다. 올해 각 호텔에서 선보인 케이크들은 한층 더 화려해져서 홈 파티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매년 화제를 모으는 서울신라호텔의 베이커리 ‘패스트리 부티크’는 올해 설원 위 내리는 눈송이를 형상화한 ‘스노플레이크 위시스’ 케이크를 새롭게 선보였다. 눈이 내리는 포근한 겨울을 표현하기 위해 슈거페이스트로 만든 눈꽃송이와 진주로 장식했으며 생크림 안에는 레드 벨벳 스펀지를 넣었다. 겨울 제철 과일인 신선한 딸기는 색감이며 모양까지 크리스마스 기분 내는 데 빠질 수 없는 재료다. JM메리어트는 스펀지 케이크를 감싼 화이트 초콜릿 안에 딸기가 쏟아질 것처럼 가득 들어찬 ‘화이트 초콜릿 베리박스’를 선보였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비주얼이 특징. 부드러운 딸기 무스 케이크 위에 큼직한 생딸기를 듬뿍 올린 파라다이스시티의 ‘스트로베리 트리’와 트리 모양 케이크에 화이트 초콜릿 크림슈를 귀엽게 쌓아올려 만든 ‘슈슈 트리’도 연말의 동화적 감성을 자극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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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여성 철강 노동자가 만난 ‘두 개의 미국’

    클리블랜드의 허허벌판과 제철소가 내뿜는 거대한 연기를 보며 자란 소녀. 을씨년스러운 공업지대를 보며 성장했지만 설마 그곳에서 자신의 삶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꿈꾸는 대로 성취할 수 있다는 ‘미국적 열정’을 소녀도 믿었다. 하지만 영문학 교수란 꿈이 좌절된 후 돌아오게 된 건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 클리블랜드의 제철소다. 철강소의 유틸리티 노동자 6691번으로 입사한 그녀에게 나이 지긋한 직원이 말한다. “조심해. 까딱하다가는 기계가 자네를 집어 삼킬지도 몰라.” 제철소에서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진실이다. 높은 화통과 크레인, 반짝이는 것이라곤 철강밖에 없는 곳. 잠시 방심하는 사이 컨베이어벨트 강재 사이에 사람이 깔려 죽는다. 하지만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일터에 첫발을 들인 이들에게 유효한 경고이기도 하다. 안정적 수입, 잘 갖춰진 복지혜택. 세계적 불황과 취업난 속에서 현실과 타협해 간신히 비집고 들어온 이곳에, 어린 시절 꿈꿨던 이상적이고 고상한 일상 같은 건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삼켜지기 십상이다. 그것이 기계이든, 조직이든, 일 자체이든 말이다. 이 책은 4년 전 워싱턴 정가의 이단아였던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표밭이자 올해 치러진 미국 대선의 격전지였던 러스트벨트에서 ‘어쩌다 철강노동자’가 된 한 밀레니얼 여성의 기록이다.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를 뜻하는 러스트벨트는 1970년대까지 미국 제조업 중흥을 이끌던 곳. 하지만 이제는 산업 공동화(空洞化)로 높은 실업률, 빈곤에 시달리는 백인 노동자들의 불만이 가득한 곳으로 대변된다. “하와이는 커피, 버지니아는 땅콩이 나는데 클리블랜드에서 뭐가 나느냐”는 질문에 이곳 사람들은 자조적으로 대답한다. “실패.” 러스트벨트는 제조업 활황기 미국의 옛 영광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현재 미국 사회가 이르게 된 다양한 문제가 뒤엉킨 곳이다. 이 때문에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곳이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 페미니스트, 영문학 교수를 꿈꿨던 저자가 철강소에 입사해 겪게 되는 모든 과정은 흥미로운 개인서사를 넘어 현대 미국 사회가 마주한 문제를 미시적으로 증언한다. 페미니즘, 총기 등의 주제를 놓고 가족, 동료와 부딪치는 진보주의자지만 한편으론 자신들을 ‘시골뜨기’ ‘블루칼라’로 분류해버리는 동부의 ‘화이트칼라’ 엘리트에게 편견과 반감을 갖지 않기 힘든 처지다. 하지만 저자 자신조차 벗어나지 못했던 러스트벨트 노동자에 대한 통념은 늘 산재가 도사린 위험한 현장에서의 동료애, 정직한 노동과 공정 속에 녹아들며 조금씩 와해돼간다. 뿌리 깊은 개인주의, 성과주의 문화 속에서 자라온 젊은 여성이 노동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는 성장 스토리가 아름답고 흡인력 있는 문체로 그려졌다. “제대로 바라보면 불꽃은 숨을 멎게 한다. 그 불빛 속에서 제철소는 거의 신성해 보인다”는 마지막 문장은 분열 속 미국이 그리워하는 어떤 이상(理想)처럼 읽히기도 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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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로 만나는 ‘인간 예수’의 삶

    연말이 다가오면 누구나 크리스마스 장식을 꺼낸다. 트리의 불을 밝히는 건 ‘세상의 빛’으로 왔다는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행위지만, 그 사실을 의식하며 행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2000년 전 그날을 모두 축제처럼 즐기지만 정작 왜인지는 잘 모른다. 최근 3, 4권이 출간된 대하소설 ‘소설 예수’(전 7권)는 이처럼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예수의 면모를 소설적 상상력으로 복원해낸 작품이다. 작가 윤석철 씨(70)는 2005년부터 15년간 고고학부터 신학까지 각종 자료를 수집하면서 작품을 구상했다. 내년에 7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정통 신학의 관점에서 쓴 작품은 아니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후 진보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저자는 예수의 삶을 ‘신(神)’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꿈꾼 ‘가슴 뜨거운 인간’의 관점에서 묘사했다. 이스라엘의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예수가 당대 사회에서 핍박받고 상처 입은 이들과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그려낸다. 지배계급의 폭압에 맞서 평화적 해방을 꿈꾼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그렸다는 점에서는 민중신학, 해방신학의 관점이 읽히기도 한다. 작가는 “특정한 신학적 카테고리를 떠나 일체의 압제, 억압으로부터 놓여난 수평적 해방과 자유를 원했던 예수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분량은 방대하지만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지기 전 7일 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긴박한 사건들을 중심축으로 해 서사의 밀도를 높였다. 작가는 “예수는 태어난 계급과 신분대로 살던 시대, 집단주의에 매몰됐던 시대에 이미 개인의 가치에 눈뜨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를 발견했던 인물”이라며 “과연 그가 그토록 가슴 아프게 여겼던 당시 현실에서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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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값 폭등-플랫폼 노동자 애환 등 생활밀착형 소재가 대세”

    “코로나로 인한 단절과 고립을 다룬 작품들과 집값 상승, 주거 불안정이나 가족 간 갈등 같은 사회 현상을 반영한 생활밀착형 소재들이 주를 이뤘다.”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사옥에서 10일 열린 ‘2021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 총평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올해 예심은 방역당국의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준수해 모든 심사위원의 좌석 간격을 2m 이상 두고 진행했다. 코로나19도 신춘문예를 향한 열기를 꺾지 못했다. 올해 9개 모집 분야 응모작은 총 7306편으로 지난해보다 10% 이상 많아졌다. 분야별로는 중편소설 312편, 단편소설 713편, 시 5246편, 시조 556편, 희곡 58편, 시나리오 63편, 동화 292편, 문학평론 24편, 영화평론 42편이었다. 특히 단편소설(지난해 비해 30% 증가)과 시(20% 증가)에서 예년보다 응모작이 크게 늘었다. 예심 심사위원은 △시의 서효인 안미옥 시인, 송종원 문학평론가 △단편소설의 정이현 염승숙 정한아 소설가, 고봉준 문학평론가 △중편소설의 김설원 소설가, 조연정 강동호 문학평론가 △시나리오의 변승민 레진스튜디오 대표, 최정열 영화감독이 맡았다. 올해는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탓인지 어둡고 우울한 경향의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 분야를 막론한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시 부문에서는 코로나 세태를 반영한 듯 몸이나 마음의 아픔을 표현한 시, 절대자인 신을 호명하는 듯한 작품이 많았다. 송종원 문학평론가는 “마스크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활용한 시도 많이 보였고, 최근 시 경향을 반영한 듯 시 속에 캐릭터를 만들어 소설처럼 쓴 작품도 자주 보였다”고 말했다. 단편소설에서는 생활밀착형 소재와 유튜브 인스타그램같이 일상에 깊게 파고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계를 다룬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평이다. 정이현 소설가는 “장류진 작가를 연상시키는 직장생활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나 주택, 아파트같이 부동산을 둘러싼 이야기가 많았다”며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안에서의 관계나 자아정체성 문제를 다룬 작품도 상당수였다”고 말했다. 고봉준 평론가는 “배경으로는 빌라가 유난히 많았고 시대상을 반영하려고 애쓴 듯 배달 플랫폼 노동자의 애환, 코로나 이후 일상화된 체온 측정 등을 소재로 삼은 작품도 눈에 띄었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생활형 소설이 늘어난 반면 해외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예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또 다른 특징. 정한아 소설가는 “월세냐 전세냐 등 주거 문제나 집값에 대한 분노 등에서 무능감과 무력감이 읽혔다”고 평했다. 염승숙 소설가는 “역시 소설은 세태와 풍조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장르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편소설은 전반적으로 가족 내 불화나 갈등 같은 전통적 소재를 쓴 작품이 많았다. 1960, 70년대 이야기나 1990년대를 복고풍으로 다룬 작품도 많아 응모자 연령대가 상향됐음을 유추케 했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코로나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었고 SF적 작품도 늘었지만 신선하고 파격적인 작품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했다. 김설원 작가는 “가벼운 웹 소설 형식의 응모작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심사를 맡은 최정열 감독은 “죽음, 자살, 취업난처럼 사회상을 반영한 어두운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고 말했다. 변승민 대표는 “장르적으로 스릴러이면서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고 최근 트렌드인 여성 서사도 도드라졌다”고 평했다. 이날 예심 결과 시 부문 11명을 비롯해 중편소설 8편, 단편소설 9편, 시나리오 10편이 본심에 올랐다. 시조 희곡 동화 문학평론 영화평론은 예심 없이 본심으로만 당선작을 정한다. 당선자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동아일보 내년 1월 1일자에 게재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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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생충’ 만든 나라 독자라면 ‘서사의 탐구’ 어렵지 않겠죠”

    지난해 한국계 작가 최초로 미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소설가 수전 최(51)는 1998년 등단 이후 줄곧 미국 주류 문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전미도서상 수상작이자 최근 국내에 번역된 장편 ‘신뢰연습’은 연극학교를 배경으로 성적(性的) 합의, 서사의 신뢰 문제를 해체적으로 다룬다. “완전히 넋을 빼놓는 이야기”(전미도서상 심사평) “성적 합의에 대해 고찰한 최고의 작품”(뉴욕타임스) 등의 호평을 받았다. 예술고등학교 연극과 학생 두 명이 사랑에 빠진다. 이 사실이 친구들과 카리스마 있는 연기 교사인 킹슬리 선생에게 알려진다. 선생이 두 사람의 사랑에 개입한 후 충격적인 일들이 휘몰아치듯 벌어진다. 반전을 거듭하는 비정형적 이야기, 인물들 간의 진실 게임뿐만 아니라 화자와 독자 간 신뢰 문제까지 제기하는 이 작품은 눈을 떼기 힘든 흡인력만큼이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뻔하게 들리지 않길 바라지만 이 말은 반드시 해야만 할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생충’ 같은 영화를 만드는 나라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을 준비는 그 이상이 돼 있다고 본다. 작품이 다루는 ‘서사의 탐구’를 한국 독자들이라면 그리 놀랍게 여기지도 않을 것 같다.” 그는 “믿기 힘든 반전과 눈부신 서사로 짜인 ‘기생충’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봉준호 감독이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설의 잠재력을 완전히 깨닫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봤다”고 경의를 표했다. 이 작품은 학교 내에서 위계, 권위를 악용한 성적 합의 문제를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최 씨는 “소설 대부분은 2017년 말 미투 운동 발생 전에 이미 탈고한 상태였지만 그런 일이 이전부터 있었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며 “오랫동안 학교 내에서의 성적 불법 행위에 대한 뉴스를 특별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왔고 교사와 학생 간 불균형 등 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소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서사 권력과 화자의 진실성 문제로 나아간다. 1인칭, 3인칭이 한 화자에 의해 동시에 기술되는 실험도 펼쳐진다. 그는 “내게 소설의 큰 주제는 항상 등장인물과 그들의 욕망에서 딸려 나오는 것”이라며 “처음에는 단순히 연극학교와 학생들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그들의 문제가 ‘동의’와 ‘서사의 주체(narrative control)’ 문제인 것이 곧 드러났다”고 말했다. ‘무엇(누구)을 믿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독서 후의 강렬한 의문은 역설적으로 작가가 얼마나 이 서사를 장악했는지 반증해준다. 그는 한국 영화와 소설의 팬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내 책꽂이에 있는 책 중 몇 권을 소개하자면 ‘이별의 말들, 한국여성 작가 단편소설’ 같은 문학선집이 여러 권이다. 하성란 작가의 단편집 ‘곰팡이꽃’, 이태준의 단편선집 ‘먼지 외 다른 이야기들’도 즐겨 읽는,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책들이다.” 그는 “한국 독자들은 비전통적 이야기에 열렬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며 “그런 면에서 다른 방식으로 쓴 내 책도 좋아해주지 않을까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예일대와 코넬대 대학원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문학평론가 최재서(1908∼1964)의 손녀이자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최창 교수의 딸이다. 6·25전쟁 참전 후 미국으로 망명한 아버지의 삶을 그린 ‘외국인 학생’으로 데뷔한 만큼, 한국적 뿌리와 한국계라는 정체성은 작가로서의 출발뿐만 아니라 작품 세계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경험에 늘 끌린다. 미국에서 우리 위치는 매우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인종 문제가 심각한 이 나라에서 우리가 어느 위치쯤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쓰며 산다. 권력을 잡거나 백인 엘리트 위주의 최고 교육기관에 입학도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질문은 그대로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가 맞는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 혹은 아닌지부터 말이다.” 그는 친일 논란이 있는 할아버지인 최재서에 관한 소설을 집필할 계획임을 몇 차례 밝히기도 했다. 그 계획이 여전히 유효한지 묻는 질문에 “물론”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다룰지 알아내는 것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첫 장편을 쓸 때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6·25전쟁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지만 결국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전쟁 직전에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일제 강점기는 어땠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20세기 초 역사를 더 알기 전까지 현재의 한국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지만 “재벌을 포함한 한국의 많은 면을 매우 흥미롭게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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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사람마다 ‘아픔’도 다르다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죽음. 부부는 그 비극이 일어난 시점까지 모든 일을 세밀히 복기하고 주변을 뒤지며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려 하지만 ‘도대체 왜?’라는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없다. 남편은 하루아침에 머리가 세어버리고 ‘나’의 일상 역시 달라져버린다. 아들을 잃은 아픔에서 회복되지 못한 이들에게 평범한 하루하루가 계속되는 것은 더 견디기 힘든 일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의 인위적 응징과 책임이라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동행’) 최윤은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등 역사와 시대 갈등을 다룬 작품을 주로 써온 작가. 이번 신작 소설집은 전작과 달리 표제작에서처럼 일상에서 겪는 각기 다른 모습의 아픔에 초점을 맞췄다. ‘서울 퍼즐’은 동생을 잃은 형의 이야기다. 경주용 자전거를 타고 강변길을 끝없이 내달리는 새로운 습관과 동생의 죽음 이후 시작된 치통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상실에서 시작된 균열이다. 올해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소유의 문법’은 자폐증 딸을 둔 주인공이 은사의 배려로 시골의 전원주택에 들어가 살며 겪게 된 이야기다. 목공일을 하며 평범하게 사는 그에게 계곡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그 마을은 꿈만 같다. 하지만 그는 점차 마을사람들의 비뚤어진 심미안과 탐욕을 알아 나간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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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머핀… 초콜릿 케이크… 매일매일 ‘빵 굽는 소설가’

    소설가 백수린(38)의 인스타그램에는 니트 레이스가 깔린 원목책상 위 접시에 따뜻한 차와 먹음직스러운 빵이 올려진 사진이 매일 올라온다. 루이보스 스트로베리크림이나 진저 레몬그라스에 직접 구운 사과머핀, 초콜릿 케이크 등이 예쁘게 차려져 있다. 이 사진들은 소설만큼이나 베이킹을 사랑하는 그의 성실한 ‘출근 인증샷’이다. 소설을 쓰기 전 차를 우린 뒤, 잘 구운 케이크를 올려두고 음미하는 오후는 창작의 중압감을 버리고 순수한 기쁨을 채우는 ‘기도의 시간’이다. “그저 하얀 사각 종이를 사랑했던, 쓰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황홀했던 청순한 마음을 다시금 불러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문지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으며 활발히 활동해 온 백수린 작가가 문학작품 속 빵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사진)을 펴냈다. “빵집 주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결국 소설 쓰는 사람이 됐다”고 고백하는 그는 문학과 빵이라는 두 재료를 섞어 삶의 이야기를 따끈하게 구워낸다. “어릴 적 ‘빨간 머리 앤’ 같은 외국 동화를 보면 오븐에 뭔가 구워져 나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림책 빵 굽는 장면은 언제나 파티, 크리스마스가 배경이고, 빵은 달콤하고 행복한 것과 연결되는 것 같았죠. 너무 궁금하고, 직접 해보고 싶어서 고등학교 다닐 때 서점에서 산 베이킹 책을 보고 처음 굽기 시작했어요.” 그는 마카롱부터 식빵까지 웬만한 건 다 구워낸다. 장작 모양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뷔슈 드 노엘’ 같은 고난도 베이킹도 해봤다. 하지만 베이킹의 생명인 계량을 ‘대충 느낌대로’ 하기 때문에 맛이 들쭉날쭉하단 치명적 단점(?)이 있다. 그는 “단편소설도 사실 ‘계량’이 생명인 장르라 늘 치열한데, 취미인 베이킹까지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며 웃었다. 그렇기에 베이킹은 늘 사랑과 동경, 순수한 기쁨 그 자체다. “소설과 베이킹은 비슷한 점이 많아요. 낱개의 재료로 배합을 달리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같은 레시피라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발효나 굽는 시간이 필요하단 점, 모든 게 완벽해도 오븐의 조건에 따라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 누구에게 주기 위해 만든다는 점까지요.” 책에서 그는 앤 카슨의 허구적 산문 ‘남편의 아름다움’ 속 정교하게 세공된 문장과 고통 어린 치명적 아름다움을 사치스러운 과자 마카롱에 빗대 풀이하기도 하고,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 속 가족의 존재를 떠올리기도 한다. 바움쿠헨, 침니 케이크, 델리만쥬 이야기가 레이먼드 카버부터, 도리스 레싱, 로맹 가리 등의 문학세계로 절묘하게 연결된다. 그는 “결국은 문학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책”이라며 “‘세상에 이렇게 빵 종류가 많네’만큼이나 ‘이렇게 안 읽어본 책들이 많네!’ 하며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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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시대, 명품도 ‘파자마 패션’에 빠져든다

    올해가 재택근무에 따른 파자마 패션과 ‘상하의 따로’ 패션 같은 ‘집콕 패션’의 발아기였다면 내년엔 중흥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력이 유행을 선도하는 명품 패션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1년 봄여름 컬렉션에는 동네 슈퍼에 잠시 생수 사러 들른 것처럼 ‘편하게 차려입은’ 모델이 대거 등장했다. 셀린느와 발렌시아가는 럭셔리 브랜드의 런웨이 맞나 싶게 파격적인 캐주얼 룩을 일관되게 선보이고 있다. ‘댄싱 키드(dancing kid)’라는 주제로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컬렉션을 선보인 셀린느는 캐주얼한 트레이닝팬츠와 셀린느 로고가 쓰인 브라톱, 야구모자를 반복적으로 믹스매치했다. 분명히 새로운 컬렉션인데 동네에서 자주 마주친 듯 친근함과 기시감을 안겨 준다. 발렌시아가는 2030년 미래 패션을 주제로 ‘포스트 팬데믹 스타일’을 구현했다. 젠더 구분에서 탈피해 사이즈는 남녀공용 한 사이즈로 제작했다. 대체로 크고 헐렁하며 상하의 세트로 제작된 오버사이즈 트레이닝복도 자주 보인다. 보그는 “재택근무복 트렌드를 반영한 호텔 슬리퍼, 샌들, 빨간 목욕 가운 등이 컬렉션에 위트 있게 등장한다”고 평가했다. 실내에서 편하게 입는 라운지웨어가 일상복이 된 시대다. 편안함이 럭셔리와 공존하지 않던 시대는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루이비통, 프라다 등에서도 이런 영향은 일부 보였다. 루이비통은 남녀 경계를 허문 루스핏(크기가 넉넉한 옷) 디자인에 니트 베스트, 프린트 티셔츠의 뉴트로 컬렉션을 선보였다. 프라다는 역삼각형 모양의 로고를 예년보다 훨씬 키워서 양쪽 쇄골 중앙자리에 넣은 상의를 다수 선보였다. 프라다 측은 “현실을 반영했다”고 하는데 재택근무의 화상회의에서 돋보이기 위한 ‘상하의 분리 패션’이라는 분석도 있다. 마실 가는 느낌을 살린, 우아하면서도 편안한 ‘원마일웨어’ 컬렉션도 보인다. 화려하고 몽환적인 개성을 짙게 드러내던 안나수이는 내년 봄여름 신제품으로 홈드레스 느낌의 플로럴 패턴 원피스, 편안한 샌들 등을 내놨다. 디올은 좀 더 우아하고 업그레이드한 재택근무 패션을 선보였다. 찰랑거리며 길게 떨어지는, 속이 비치는 파자마 스타일의 점프슈트에 긴 로브와 헤어밴드는 라운지웨어의 편안함과 격식 갖춤의 경계를 오간다. 브랜드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코로나19 시대가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미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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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범고래 “내가 살인고래라고?”

    범고래의 영어 명칭은 살인고래(Killer Whale)다. 무서운 이름이지만, 범고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야생에서 범고래는 엄격한 사회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며 생존이 아닌 목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죽이지 않는다. ‘범고래 포비아’는 이름을 무신경하게 지은 탓에 대물림되고 있는 편견이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대충 이름 붙여지거나 홀대당하는 동물들은 이뿐이 아니다. 멕시코 생물학자이자 바다거북 파수꾼으로 알려진 저자는 야생 동물 보호 활동을 하면서 경험한 자연의 신비와 흥미진진한 동물들의 세계를 풀어냈다. 문어, 집게벌레, 나비, 갈매기, 좀벌레, 반딧불이 등 그가 관찰한 생물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난다. 저자는 태평양 산호초 물고기 개체수를 조사하기 위해 잠수한 사이 자신을 ‘관찰’하고 ‘조사’하는 문어를 만났다. 어린 문어는 이윽고 은신처에서 빠져나와 저자가 들고 있던 연필, 철판뿐 아니라 손까지 빨판으로 부드럽게 더듬는다. 달팽이, 조개의 친척인 이 무척추동물은 통념과 달리 신비스러운 지능을 갖추고 있다. 문어는 뇌가 아홉 개, 심장은 세 개다. 침팬지나 돌고래보다 더 복잡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멕시코 반데라스만에서 우연히 목격한 잔인한 사건은 그의 삶을 바꿨다. 알을 낳기 위해 수천 km를 헤엄쳐 온 바다거북이 매일 밤 인간의 욕심에 의해 죽어가고 있었다. 산란기에 밤새 해변을 감시하며 부화를 도운 그의 운동은 각국 언론에 알려졌다. 인간이 바다거북의 신비로운 여행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다. 저자는 이들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할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근본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라고 말한다. 결혼식을 몇 시간 앞두고 부상당한 갈매기를 발견해 치료하다가 서로 교감했던 일, 얼굴에 침을 뱉으며 약을 올리던 침팬지 무리와 오랜 기간 함께하며 결국 유대 관계를 맺게 된 과정, 악어에게 몇 차례 목숨을 잃을 뻔했던 사연, 말벌에게 목젖을 찔려 구토했던 상황 등 야생을 탐험하며 겪은 에피소드들이 유쾌하게 소개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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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당 제자라는 이유로 ‘친일파’ 낙인…편 가르기 횡행, 안타까워”

    “일제강점기와 전쟁, 분단의 역사 속에서 상처 받은 이가 어디 나 하나뿐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편 가르기가 횡행하는 문단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7일 시조시인인 이근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80)은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1930년대 중반 충남 아산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공로로 부친 이선준 씨(1911~1966)에게 작고 54년 만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된 데 대해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감회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6일 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자에 이 회장의 부친을 올렸다. 이번에 인정받은 이 회장 부친의 공로는 1933~1935년 현 아산시 신창면 일대에서 아산적색농민조합을 결성해 농민운동을 이끌고 민족주의를 고취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의 부친은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남로당원 경력과 보안법 위반 등 좌익 운동 경력이 문제가 돼 이 회장의 가족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할아버지 손에 자란 이 회장은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본 건, 열 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며 “연좌제가 있던 시절에는 공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늘 숨죽여 살아야 했다”고 밝혔다. 이 시절의 압박감, 모진 세월을 견딘 어머니를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은 ‘내가 문을 잠그는 버릇은/문을 잠그며/빗장이 헐겁다고 생각하는 버릇은/ … 낯선 사람들이 돌아간 뒤/겨울 문풍지처럼 떨며/새우잠을 자던 버릇은’(‘문’)이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꽃이 된 것아/너는 사상을 모른다’(‘냉이꽃’) 등 그의 시(詩)세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념 대립 속에 부친의 항일운동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던 피해자였지만 이 회장은 올 초 문단 일각에서 ‘친일 시인’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가 2011년 경기 파주시 6·25전쟁참전기념비에 쓴 비문에 6·25전쟁 영웅 고 백선엽 장군을 언급했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그는 “우리 문학이 아직도 미당(서정주)의 제자라는 이유로 ‘친일파’ 낙인을 찍고, 항일운동 관련 시를 수백 편 써도 그런 한 구절 때문에 ‘친일 편 가르기’를 한다”며 “아직도 ‘너는 누구 편이냐’는 질문을 무자비하게 던지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우리 역사의 아픔과 상처 속에서 생긴 글에 대한 조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좋은 시를 넘어서 한국적 역사와 생활을 반영한 글이어야 위대한 문학으로 세계의 주목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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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긴 호이안” 사진 올리면… 현지인도 깜빡 속아

    베트남 중부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항구도시 호이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옛 시가지의 노란색 전통 가옥으로 유명하다. 밤이 되면 상점마다 각양각색의 등불이 화려한 야경을 펼친다. “호이안은 개항지라 해외문화 영향을 가장 빨리 받은 곳이기도 해요. 옻칠한 나무 바닥은 호이안 전통이지만 바닥 타일은 프랑스, 천장은 청나라식, 창살은 일본풍으로 혼합돼 재미있죠.” 서울 마포구 연남동 베트남 식당 ‘반미프엉’ 김종범 사장의 설명대로 이곳은 ‘서울 안의 작은 호이안’이다. 3층짜리 건물 안팎을 호이안 전통가옥을 본뜬 덕에 인력거 앞에 서는 순간 호이안 옛 도심 한복판으로 공간이동한 것 같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뒤 서울의 베트남인 사이에 인증사진을 찍고 “베트남에 돌아왔다”고 올리면 베트남 지인들까지 속는다고 입소문 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외여행이 힘들어졌지만 맛뿐만 아니라 분위기까지 현지식으로 재현한 식당에서는 얼마든지 여행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반미프엉’은 베트남 ‘3대 반미(베트남 식 샌드위치)집’으로 꼽히는 호이안 ‘반미프엉’에서 레시피를 직접 전수받았다. 2년간의 설득 끝에 프엉 사장이 직접 와서 삭힌 두부, 샬롯(베트남 양파) 등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의 대체재까지 찾아줬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탄생한 반미의 핵심은 쌀가루가 들어가 바삭바삭한 바게트다. 이곳에서는 매일 쓸 빵을 직접 굽는다. 중부지방 반미에는 향신료 팔각과 정향, 카다몬 등을 넣은 매콤한 칠리소스를 넣기 때문에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망리단길 ‘라오삐약’은 국내에선 보기 드문 라오스 음식 전문점. 라오스 글자 간판에 통창으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구조라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낸다. 내부는 라탄 실링팬과 전통 등(燈)으로 꾸며져 있다. “라오스는 지리적으로 서쪽에 태국, 동쪽에 베트남이 있다보니 음식이 완전히 다르진 않아요. 하지만 우동과 쫄면 사이처럼 특이한 식감의 ‘카오피악센’(닭 쌀국수)처럼 라오스만의 특색 있는 음식도 많아요.” 대학 동문인 정효열 씨와 식당을 운영하는 원성훈 씨는 “여행 갔다 카오피악센을 먹고 반해서 6개월에 걸쳐 현지 맛집을 찾아다니며 레시피를 배웠다”고 말했다. 라오스 느낌을 살리기 위해 오픈 주방으로 꾸몄고 식기, 조명 모두 현지에서 공수했다. 쌀가루로 직접 제면도 한다. 카오소이(돼지고기 쌀국수)는 매콤한 감칠맛이 나는 국수다. 고수를 듬뿍 넣은 뒤 연유와 태국의 농축우유로 제조한 달달한 라오스 식 아이스티와 먹으면 찰떡궁합이다. 원 씨는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식재료 때문에 육수 맛이 현지와 다른 부분은 셰프 출신, 주한 라오스대사 부인의 도움으로 업그레이드했다”고 귀띔했다. 태국음식은 한국에서 대중화된 편이지만 이태원 ‘쏭타이’는 맥주 ‘타이거’가 진열된 테라스와 현지어로 제작된 대형 간판까지 방콕 느낌을 물씬 풍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태원의 작은 카오산’이라고 불린다. 방콕에 즐비한 부티크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도 난다. 조근형 매니저는 “인테리어부터 음식까지 주로 방콕의 질 높은 호텔 음식을 참고로 했다”고 했다. 방송인 홍석천 씨가 운영한 ‘마이타이’ 등에서 일한 이들이 독립해 선보였다. 대부분 메뉴를 비건(채식주의) 식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대표 메뉴는 ‘콩 단백’ 고기와 야채류를 사용한 비건 팟타이, 그리고 두유와 식물성 재료로 만든 비건 마카롱.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태국음식을 비건 식으로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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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이야?” 현지인도 놀라는 국내의 이국적인 식당들

    베트남 중부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떨어진 항구도시 호이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가지의 노란색 전통가옥으로 유명하다. 밤이 되면 상점마다 각양각색의 등불이 켜지며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다. “호이안은 강화도 같은 개항지라 프랑스 일본 등 해외의 영향을 가장 빨리, 직접적으로 받았어요. 옻칠한 나무 바닥은 호이안 전통이지만 바닥 타일은 프랑스, 천장은 청나라식이고 창살은 일본풍으로 혼합돼 재미있죠.”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베트남 식당 ‘반미프엉’에서 김종범 사장은 호이안의 알록달록한 둥근 등이 달린 이국적인 내부 인테리어를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이곳은 ‘서울 안의 작은 호이안’이다. 3층 건물 안팎을 호이안 전통가옥 형태 그대로를 본따 만든 덕에 인력거가 놓인 건물 앞에 서는 순간 마치 호이안 구도심 한복판으로 공간 이동한 것 같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이후 서울 거주 베트남인 사이에선 인증사진을 찍고 “베트남에 돌아왔다”고 올리면 현지 지인들까지 속는다며 입소문이 났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힘들어졌지만 맛뿐만 아니라 분위기까지 충실하게 현지 식으로 재현한 이국적인 식당에서라면 얼마든지 여행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반미프엉은 베트남 ‘3대 반미(베트남식 샌드위치)집’으로 꼽히는 호이안의 반미프엉에서 직접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2년여의 설득 끝에 프엉 사장이 직접 와서 삭힌 두부, 샬롯(베트남 양파) 같이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의 대체제를 찾아줬다. 프랑스 식민 지배시절 영향으로 바게트에 현지 식재료를 채워 넣어 만드는 반미는 쌀가루가 들어가서 바삭바삭한 빵이 핵심. 매일 쓸 빵을 직접 굽는다. 지역에 따라 반미 맛이 다른데 중부지방은 매콤해서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겉은 바삭하지만 부드럽고 쫀득한 빵에 팔각, 청향, 카다몬 등 이국적 향에 매콤한 칠리소스가 어우러진 한 입을 베어 물면 긴 여행의 한 끼처럼 느껴진다. 하와이 음식점, 필리핀 디저트 가게 등이 즐비한 망리단길(서울 중랑국 망원동)의 ‘라오삐약’은 국내에선 보기 드문 라오스 음식 전문점이다. 라오스 글자 간판에 통창(窓)으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구조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현지 분위기를 낸다. 내부는 라탄 실링팬(ceiling pan)과 전통 등으로 꾸며져 있다. “라오스는 지리적으로 서쪽에 태국, 동쪽에 베트남이 있다보니 음식이 완전히 다르진 않아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는 쌀국수와 달리 우동과 쫄면 사이의 식감을 가진 ‘까오삐약’(닭쌀국수)처럼 라오스만의 특색 있는 음식도 많습니다.” 대학 동문인 정효열 씨와 함께 식당을 하는 원성훈 씨는 “쌀가루로 매일 직접 라오스 식 쌀국수면을 만든다”고 말했다. 라오스 음식은 고수 바질 민트 레몬그라스 등 향신채를 많이 넣어 허브향이 강하고 메콩강을 낀 내륙지방이다 보니 민물고기를 담근 젓갈도 많이 쓴다. 라오삐약에서도 이런 재료를 적극 활용한다. 여행 갔다 라오스 음식에 반해 한 달씩, 6개월에 걸쳐 현지의 맛있는 집을 다 찾아 다녔고, 라오스 느낌을 살리기 위해 오픈 주방에 식기류와 조명 모두 현지에서 공수했다. 고수를 듬뿍 넣은 까오쏘이(돼지고기 쌀국수)는 매콤하면서 감칠맛을 내는 국수다. 아이스티에 연유와 태국에서 농축한 우유로 제조한 달달한 라오스 식 아이스티와 찰떡궁합이다.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식재료 때문에 육수 등의 맛이 현지와 다른 부분은 셰프 출신인 라오스 대사의 부인에게 전수받아 업그레이드했다. 태국음식은 한국에서 많이 대중화했지만 이태원 ‘쏭타이’는 태국의 유명 맥주 ‘타이거’가 진열된 테라스와 현지어로 제작된 대형 간판, 천연색 컬러에 자연친화적 식물까지 방콕 느낌을 물씬 풍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태원의 작은 카오산’이라고 불리지만, 방콕에 즐비한 부티크호텔 레스토랑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도 난다. 조근형 매니저는 “인테리어부터 음식까지 주로 방콕의 질 높은 호텔 음식을 참고로 했다”고 한다. 방송인 홍석천 씨가 운영한 ‘마이타이’ 등에서 함께 일한 이들이 독립해 선보인 이곳은 대부분 메뉴를 비건(채식주의자)식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대표 메뉴는 ‘콩 단백’ 고기와 야채류를 사용한 비건 팟타이, 두유와 식물성 재료로 만든 비건 마카롱.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태국음식을 비건 식으로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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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간지러운 ‘원태연 표’ 꼬리, 이젠 떼고 싶어”

    90년대를 지나온 청춘이었다면 원태연 시인(49)을 모를 수 없다. ‘넌 가끔 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가다 딴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니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등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국내 시집 판매 1위’의 주인공이다. 그가 18년 만에 구작 70편과 신작 30편을 더한 시집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냈다. 작사가, 감독, 연예기획사 프로듀서로 변신해 활동하다 다시 시인으로 돌아온 것. 그는 “작년에 10년 다닌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해고당했고 올해는 오랜 꿈이었던 드라마 제작까지 엎어지며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돌파구가 절실하던 무렵 필사 시집을 내보자 했던 출판사의 제안이 떠올랐다. 완전히 잊어버린 시 쓰기에 다시 도전한 계기다. 중학생 시절부터 7년간 쓴 시를 묶은 첫 시집은 이름도 없던 작은 출판사에서 인세 계약 대신 매절 계약으로 냈는데 덜컥 베스트셀러가 됐다. 150만 부가 팔렸다고 하는데 정작 그의 손에 들어온 인세는 전무했다. 이후 낸 시집도 인세 정산을 제대로 받은 건 드물어서 정확히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모른다. 총 600만 부를 팔았다고 추산되지만 정작 그는 “경제적 기반을 잡는 데는 시집보다는 작사가 활동이 더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백지영 ‘그 여자’, 허각 ‘나를 잊지 말아요’, 태연 ‘쉿’ 등 수많은 히트곡의 작사를 했다. 사격 선수 출신으로 체육학과에 진학한 ‘상남자’였던 그가 낯간지러울 정도의 애틋한 연애시의 시인으로 유명해지자 가장 놀란 건 가족이었다. 어머니는 “누가 써주는 거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 자아가 어디서 나오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며 “쓰다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오글거리고 오싹하다”며 웃었다. 그는 가장 많이 읽힌 시를 썼음에도 문단과 출판계에선 시인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개그 프로에선 그의 시가 패러디 단골 소재로 쓰였다. 18년 만에 다시 시를 쓰면서 그런 현실에 대한 고민이 컸다. 마지막 시집 ‘안녕’ 이후 시작을 관둔 것도 대중의 요구에 맞춘 시를 쓰는 데 지쳐서였다. 하지만 작사든, 드라마 극본 작업이든 원태연에게 다들 ‘로맨스’만을 원했다. 밀리언셀러 시인이란 타이틀은 영광이자 굴레였다. ‘내 이야기 같은 절실함’을 불러일으키는 데 탁월한 그는 ‘원태연표’라고 세상이 이름 붙인 한계를 뛰어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 나이에 계속 그렇게 쓰는 것도 웃긴 일”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 시집은 구작 70편과 20년 만에 새로 쓴 시를 합친 만큼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서 톤을 맞췄다. 그는 “독자들이 보기에 신·구작 간 온도차가 없다면 잘 쓴 것이다. 그래도 묵직한 남자가 쓴 것 같은 시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돌아온 그의 바람은 이제 “근사한 남자가 쓴, 진짜 근사한 시를 쓰는 것”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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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년대 감성 연애시의 원조’ 원태연 시인, 18년 만에 귀환

    90년대를 지나왔거나 누군가를 짝사랑해본 사람이라면 원태연 시인(49)을 모를 수 없다. ‘넌 가끔 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니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로 대표되는 ‘연애시’ 신드롬을 불렀던 주인공이다. 절절한 가슴앓이를 담아낸 원태연의 시는 숱한 아류작을 양산했다. 그가 18년 만에 대표작 70편과 신작시 30편을 더한 시집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들고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국내 시집 판매 1위’를 기록한 밀리언셀러 시인이 된 이후 출판계를 완전히 떠나 작사가, 영화감독, 연예기획사 프로듀서 등으로 변신해 활동하다 다시 시인으로 돌아온 것. 그는 “작년에 10년 다닌 회사에서 해고당했고 올해 오랜 꿈이었던 드라마 제작(극본작업)이 엎어지며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돌파구가 절실하던 무렵 필사 시집을 내보자했던 출판사 제안이 떠올랐다. 완전히 잊어버린 시 쓰기에 다시 도전하게 된 계기다. 원태연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린 첫 시집은 중학생 때부터 7년간 쓴 시를 묶은 것이었다. 다들 “넌 매일 뭘 그렇게 쓰니” 물었다. 아무런 필터링 없이 거침없이 쓴 시를 묶어 낸 것이 첫 시집 ‘넌 가끔…’이었다. 이름도 없던 작은 출판사에서 인세 대신 매절계약으로 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됐다. 150만부가 팔렸다고 하는데 정작 그의 손에 들어온 인세는 전무했다. 두 번째 시집 ‘손끝으로…’로 대학생 치고 큰 돈을 벌었지만, 그 이후 낸 시집들 역시 출판사 대표의 야반도주 등으로 인세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의 시집들은 총 600만부가 팔렸다고 추산될 뿐 아직도 정확히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모른다. 그는 “결과적으론 잘된 거다. 돈까지 있었으면 큰일 났을 것 같다”며 웃었다. 사격선수 출신으로 체육학과에 진학한 ‘상남자’였던 그가 애틋한 연애시의 시인으로 유명해지자 가장 놀란 건 가족들이었다. 새벽에 출판사에서 받은 증정본을 신발장에 올려놓고 나가려는데 어머니가 다급히 묻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봐. 이거 누가 써 주는 거야?” 백지영 ‘그 여자’, 허각 ‘나를 잊지 말아요’ 등 애절한 발라드 노랫말을 쓴 유명 작사가이기도 한 그는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특별한 능력이 있다. 낯간지러울 정도로의 절절한 표현이 백미다. 그는 “그런 자아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작사할 때 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깜짝 놀란다”고 했다. ‘그 여자’의 일부(“한 여자가 그대를 사랑합니다…매일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그 여자는 웃으며 울고 있어요”)를 예로 들며 설명하다가 갑자기 소매를 손끝까지 끌어내리기도 했다. “추워지네요. 미쳤죠. 오글거려서 오싹해질 지경이에요.” 그는 가장 많이 읽힌 시를 썼음에도 문단에서는 외면 받았다. 출판계에서도 시인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정작 “작사는 20년을 넘게 했는데도 여전히 ‘시인이라서 이렇게 쓴다’는 소릴 듣는 게 아이러니”다. 개그프로에선 그의 시가 패러디 단골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18년 만에 다시 시를 쓰면서 그런 현실에 대한 고민이 컸다. 사실 시 쓰는 걸 관둔 것도 대중이 원하는 ‘원태연 표’ 시라는 얘기가 듣기 싫어서였다. “사격을 시작하고 1년 만에 전국대회 2등을 했었는데 다들 ‘우연’이라고 하더라. 나 역시 성공해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 그렇게 여겼고 그 뒤로는 정말 메달이 없었다”며 “첫 시집이 잘되니 따들 또 그랬다. 그냥 ‘우연’이라고. 더 이상 사회에 지기 싫단 오기로 두 번째 시집을 냈었다”고 말했다. 순수한 즐거움으로, 절실함으로 쓴 건 결국 첫 시집 뿐이었다. 이후로는 계속 대중과 시장의 요구에 맞춰 시를 썼다. ‘안녕’이란 시집을 끝으로 시를 완전히 접고 도망친 이유였다. 그런데 이후 작사, 영화, 드라마 작업을 할 때도 모두 원태연에게는 그런 ‘로맨스’만을 원했다. 밀리언셀러 시인이란 타이틀은 영광이자 굴레가 되기도 한 셈이다.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절실함’을 불러일으키는데 탁월한 그이지만 그래도 ‘원태연 표’라고 세상이 이름 붙인 한계는 뛰어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 나이에 계속 그렇게 쓰는 것도 웃긴 일”이라고 했다. 이번 시집은 구작 70편과 20년 만에 새로 쓴 시를 합친 만큼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서 어느 정도 톤을 맞췄다. 그는 “독자들이 보기에 신작과 구작 간 온도차가 없다면 잘 쓴 것이다. 그래도 묵직한 남자가 쓴 것 같은 시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돌아온 그의 바람은 이제 “근사한 남자가 쓴, 진짜 근사한 시를 쓰는 것”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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