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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문화재단이 다음 달 13, 14일과 20, 21일 나흘간 평택남부문화예술회관에서 ‘2025 평택 실내악 축제(PCMF·Pyeongtaek Chamber Music Festival)를 개최한다. 바이올리니스트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김현미 교수가 음악감독을 맡은 이번 축제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 등 고전적 악기를 비롯해 마림바, 오르간, 하프, 클래식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편성해 기존 실내악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프로그램 역시 고전과 현대음악부터 유럽과 남미, 낭만주의와 민속음악까지 폭넓게 아우르도록 구성했다. 축제 첫째 날인 13일에는 프랑스의 대표 인상주의 작곡가 라벨의 ‘서주와 알레그로’, 낭만주의 음악의 중심이었던 드보르자크의 현악 5중주 등이 연주된다. 서주와 알레그로는 하프와 목관, 현악이 어우러지게 화려하게 구성했다. 14일에는 피아졸라의 탱고부터 스페인 민속 음악 등 리듬과 색채가 풍부한 남미와 지중해 감성의 공연을 선보인다. 핀란드 작곡가 무스토넨의 9중주 신작도 한국 초연으로 선보인다. 20일에는 베토벤의 유쾌한 2중주로 시작하여 마림바의 독주곡, 모차르트의 ‘기뻐하라, 환호하라’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선율을 선본인다. 실내악 공연에서는 흔치 않은 소프라노와 오르간, 현악 9중주가 함께한다.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슐호프의 재치 있는 현악 4중주와 스벤센의 8중주 등 대규모 앙상블이 펼쳐진다. 각 공연에는 김 감독을 포함해 각 악기를 대표하는 국내외 음악가 40명이 참여한다. 김 감독은 “이번 축제는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 평택이라는 공간 안에서 음악의 과거와 현재, 동서양의 감성이 교차하는 진정한 만남의 장이 될 것”이라며 “처음 평택에서 열리는 이번 실내악 축제가 사회를 더 아름답고 퐁요롭게 하는 데 일조하기를 소원한다”고 말했다. 전석 1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주인공 ‘나’는 원시시대와 우주를 수시로 오가는 능력자다. 먼저 원시시대로 같이 가볼까. 너른 벌판 어디선가 회오리바람이 몰아친다. 가벼운 진동과 함께 하늘을 날거나 물을 헤엄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바람 앞에서 ‘아∼’ 소리를 내며 즐거워하는 주인공. 알고 보니 방구석에서 선풍기 하나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 지구 최고의 스파이인 주인공이 적들에게 잡혀간다.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한 곳은 치과. 비록 고문당했을지언정 ‘끝까지 비밀은 지켰어. 하루 세 번 양치질은 어림도 없지. 사탕도 절대 포기 못 해!’라고 생각한다. 사나운 곰을 용감하게 포획한다며 아빠와 몸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이렇게 용감한 능력자인 ‘나’를 유일하게 떨게 하는 건 여름철마다 나타나는 흡혈귀. 엄마가 약을 친 뒤 모기장 안에서 자면서도 흡혈귀들이 달라붙을까 봐 걱정한다. 방구석을 미지의 들판과 미로, 마법의 성과 우주로 만들어 내는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을 재미있게 그려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억지로 꾸미거나 보태려 하지 않아도 음악은 제대로 연주하면 스스로 말을 합니다. 러시아 레퍼토리는 특히 그런 음악입니다.”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승자’로 불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마슬레예프가 다음 달 13,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3년 만의 내한 리사이틀이다. 최근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그는 “한국에 갈 때마다 항상 뜨거운 호응을 보내주는 관객 덕에 설렌다”며 “지난번 공연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했다. 마슬레예프는 2011년 제21회 프레미오 쇼팽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2015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하며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카를라티,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녹음한 데뷔 음반은 2017년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최고의 클래식 음반’으로 선정됐다. 특히 몰입감 있는 연주는 러시아 피아니즘을 제대로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틀간 펼쳐질 이번 공연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첫날에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으로 고전주의의 순수함과 정교함을 표현한 뒤, 차이콥스키의 ‘18개의 소품’ 중 일부를 발췌해 연주한다. 1부와 2부를 각각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곡으로 구성했다. 마슬레예프는 “감정과 멜로디, 화성의 만화경처럼 다채로운 색채를 지닌 작품들로 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둘째 날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로 무대를 채운다. 환상소품곡 중 ‘애가’와 ‘전주곡’, ‘회화적 연습곡’,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이다. 라흐마니노프가 편곡한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중 ‘스케르초’도 연주한다. 마슬레예프는 “‘스케르초’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피아노 소품”이라며 “굉장히 난도 높은 프로그램이지만 제가 이 곡들을 사랑하는 만큼 관객들도 좋아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해석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뭘까. 그는 “작품을 정말 잘 공부하면 무대 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며 “음악은 제대로 연주하면 스스로를 말해 준다. 어느 순간 음악이 저절로 흐르게 되는데 그게 바로 ‘음악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시베리아 울란우데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7세 때 학교 음악반에 들어가기 위해 처음 피아노를 시작했다”는 마슬레예프가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는 “무대에서 더 자유로워졌고, 연주할 곡도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며 “훨씬 더 많은 경험을 쌓았으니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매 시즌 많은 연주회를 하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배우고,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앞으로 30년 뒤까지도 이 일을 계속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연주 자체에서 오는 기쁨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며 “연주하는 이 일을 사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억지로 꾸미거나 보태려 하지 않아도 음악은 제대로 연주하면 스스로 말을 합니다. 러시아 레퍼토리는 특히 그런 음악입니다.”‘러시아 피아니즘의 계승자’로 불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마슬레예프가 다음 달 13,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3년 만의 내한 리사이틀이다. 최근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그는 “한국에 갈 때마다 항상 뜨거운 호응을 보내주는 관객 덕에 설렌다”며 “지난번 공연이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다”고 했다. 마슬레예프는 2011년 제21회 프레미오 쇼팽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2015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하며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카를라티,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녹음한 데뷔 음반은 2017년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최고의 클래식 음반’으로 선정됐다. 특히 몰입감 있는 연주는 러시아 피아니즘을 제대로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틀간 펼쳐질 이번 공연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첫날에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으로 고전주의의 순수함과 정교함을 표현한 뒤, 차이콥스키의 ‘18개의 소품‘ 중 일부를 발췌해 연주한다. 1부와 2부를 각각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곡으로 구성했다. 마슬레예프는 “감정과 멜로디, 화성의 만화경처럼 다채로운 색채를 지닌 작품들로 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둘째 날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로 무대를 채운다. 환상소품곡 중 ‘애가’와 ‘전주곡’, ‘회화적 연습곡’,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이다. 라흐마니노프가 편곡한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중 ‘스케르초’도 연주한다. 마슬레예프는 “‘스케르초’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피아노 소품”이라며 “굉장히 난이도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제가 이 곡들을 사랑하는 만큼 관객들도 좋아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해석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뭘까. 그는 “작품을 정말 잘 공부하면 무대 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며 “음악은 제대로 연주하면 스스로를 말해준다. 어느 순간 음악이 저절로 흐르게 되는데 그게 바로 ‘음악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시베리아 울란우데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7세 때 학교 음악반에 들기 위해 처음 피아노를 시작했다”는 마슬레예프가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는 “무대에서 더 자유로워졌고, 연주할 곡도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며 “훨씬 더 많은 경험을 쌓았으니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매 시즌 많은 연주회를 하고, 새로운 레퍼토를 배우고,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앞으로 30년 뒤까지도 이 일을 계속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주 자체에서 오는 기쁨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여전히 연주하는 이 일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50년 전 이탈리아에 처음 갔을 때부터 음식이나 감정 표현, 노래 좋아하는 것 등을 포함해서 정서가 한국인과 정말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라 스칼라는 처음부터 이상할 정도로 단원들과 잘 맞아서 늘 ‘나의 제일 친한 친구들’이라고 했는데, 이젠 가족이 됐네요.” 12일(현지 시간)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정명훈 부산콘서트홀 예술감독(72)이 19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콘서트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래를 특별히 사랑하는 민족인 한국인의 특성을 라 스칼라와 함께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오래 친분을 맺어 왔던 라 스칼라와 “36년간 잘 지내다 갑자기 결혼한 기분”이라고도 했다. 1778년 개관한 세계적 권위의 오페라 극장인 라 스칼라 극장은 개관 247년 만에 처음으로 동양인을 음악감독으로 선임했다. 정 감독은 “늘 해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첫 아시아인 감독이란 점에 특별한 의미를 두진 않는다”면서도 “우리나라를 빛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에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선임은 오랜 기간 라 스칼라와 맺어온 탄탄한 유대관계가 바탕이 됐다. 정 감독은 1989년부터 아홉 차례 라 스칼라의 오페라 프로덕션을 맡아 공연 84회와 콘서트 141회를 지휘했다. 라 스칼라에서 역대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지휘자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횟수다. 정 감독은 내년 12월 7일 라 스칼라 음악감독으로 공식적인 첫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 작곡가가 베르디”라며 “라 스칼라에서도 베르디 곡을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 감독은 다음 달 정식 개관하는 부산콘서트홀과 2027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이에 부산과 밀라노를 오가는 겸직 체제를 유지하며, 양국의 예술적 교류도 강화할 예정이다. 그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인 부산의 프로젝트가 라 스칼라와의 협업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 때도 라 스칼라와 함께 오프닝 무대를 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방향을 잘 잡는 것은 지휘자의 가장 큰 책임입니다. 제가 부산에서 할 수 있는 게 좋은 씨앗을 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평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클래식 청중을 키우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가겠습니다. 아시아에서 특별히 부산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최근 한 단톡방에 ‘초중등용 권장도서 목록’이 올라온 걸 봤다. 입시학원에서 정리한 자료라는데, 칸트 ‘순수이성비판’,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건 그렇다 치자. ‘보바리 부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책까지 포함돼 있어 놀랐다. 거칠게 줄거리만 요약해 보자면, 전자는 유부녀가 불륜 도중 파산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 아닌가. 후자도 주인공의 외도와 외설이 서사의 중심축을 차지하는 책이다. 명문대 권장 도서란 이유로 초등학생에게 ‘잘못된 남녀관계’를 중심으로 세계의 균열과 불안을 그려낸 책을 추천하는 ‘아묻따’식 사교육 세태를 접하고 나자, 올바른 책 추천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추천한다는 건 사실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좋은 책이란 읽는 사람의 연령대나 성별, 읽는 시기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책들은 모두 명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등학생이 읽기 좋냐면 그럴 수는 없다. 좀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가치관이나 취향에 따라서도 책 추천의 작동 방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출판담당 기자는 볼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게 되는데, 매번 난감함을 느낀다. ‘볼만하다’의 기준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평소 그 사람의 취향과 독서력, 배경지식과 관심사 등에 대해 숙지한 상태에서만 타율이 높은 책 추천이 이뤄질 수 있다. 그렇다고 분명히 가벼운 의도로 ‘책이나 한 권 추천해 봐’라고 했을 상대에게 요즘 삶의 고민이나 관심사가 무엇인지 상담을 시작할 수도 없고. 일본 서점 쓰타야에는 ‘북 컨시어지’란 게 있다. 보통 서점에 가도 책 위치 물을 때 외엔 점원과 말을 섞을 일이 잘 없지만, 이곳에선 자신의 관심사나 생활 환경 등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북 컨시어지의 특화된 책 추천을 받을 수 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이 얻길 기대하는 위안, 즐거움, 정보 같은 걸 생각해 보면 책 추천이야말로 이처럼 정교한 커스터마이징이 중요한 분야다. 하지만 아직 이런 문화는 국내에선 보편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다 보니 좋아하는 작가나 권위자의 추천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도 리스크가 있다. 책이 정말 좋아서 추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관계나 비즈니스 관계 등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실제 책의 가치와 무관하게 추천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일종의 ‘주례사 추천’이랄까. 소위 ‘미디어 셀러’로 불리는 유명인 추천 도서 역시 이런 함정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추천인이 유명하다는 사실이 책의 수준을 보장하진 않는다. 자신의 삶의 맥락과 동떨어질 위험이 크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해결책은 결국 좋은 책을 보는 안목을 스스로 길러내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추천에 의존한 독서는 스스로 갖춰가야 할 내면의 도서관을 확장시키는 데 한계를 가진다. 내면적 필요에 의해 선택한 책이 내 안에서 하나둘 주제별 서가를 이루고 확장될 때, 그 책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행성처럼 자전하고 공전하면서 하나의 우주를 이뤄 갈 때, 마침내 ‘교양 있는 독자’가 탄생한다. 그러고 보면 A대 권장도서, B대 권장도서 던져주는데 급급한 우리 독서 교육은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빠뜨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잘 읽을 줄 아는 것만큼, 잘 고를 줄 아는 게 중요한데 말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막둥이의 생일, 온 가족이 숲으로 소풍을 갔다. 가족들이 모인 김에 열린 막둥이배 인기투표. ‘할아버지가 좋아, 할머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오빠가 좋아, 언니가 좋아?’ 서로 간식, 용돈, 책 읽어주기 등 막둥이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시하며 열띤 토너먼트를 벌인 끝에 할머니, 엄마 등의 차례로 좁혀진다. 심지어 ‘멍멍이가 좋아, 야옹이가 좋아’라며 반려동물들까지 토너먼트에 뛰어드는데…. 16강, 8강, 4강, 준결승, 결승전 끝 최종 승자는 야옹이. 그런데 심술이 난 멍멍이가 ‘야옹이가 좋아, 똥이 좋아?’라고 묻자 막둥이가 뜻밖의 대답을 한다. “똥.” 똥이 최종 승자의 자리를 갈아치우는 혼란스러운 순간, 할아버지가 뭔가 깨달은 듯 묻는다. ‘할아버지가 좋아, 똥이 좋아?’ 과연 막둥이의 대답은? 아이들에게 어릴 때 짓궂게 던지는 질문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를 모티브로 가족 간의 화목한 시간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막둥이가 왜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를,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다고 했는지 토너먼트 최종 승자의 비밀이 마지막에 밝혀진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모양 나라에 살고 있는 네모. 뾰족한 모서리와 선 때문에 돌아다닐 때마다 이리저리 부딪히는 게 너무 우울하다. 아무리 애써도 어딜 가나 우당탕거린다. 멋지게 구르는 건 그에겐 불가능한 일. ‘산다는 건 힘든 일이구나’ 절로 한탄이 나온다. 하지만 네모는 울적해하는 대신 새롭게 마음먹는다. ‘내 몸이 좀 각지고 날카롭긴 하지만 나는 총명하고 강인해.’ 네모는 씩씩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원한 바람, 반짝이는 바다, 포근한 가을 햇살, 살랑거리는 나뭇잎, 심지어 보글보글 홈메이드 레모네이드 거품 소리에까지 행복을 느낀다. 그러자 조금씩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네모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러는 동안 네모의 뾰족한 모서리가 조금씩 둥글어지고 있었던 것. 어느 날 데구루루 구르는데 너무 부드럽게 잘 굴러가는 자신에게 놀란다. 가만 보니, 모서리가 다 사라지고 동그랗게 변해 있다. 동그랗게 변한 네모는 새로운 교훈을 얻는다. 힘든 순간에도 행복은 항상 함께 있다는 것. 나만의 콤플렉스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재치 있게 그려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최근 만난 한 출판사 대표는 더 이상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나 이탈리아 볼로냐도서전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경기 침체로 인해 옛 명성이 무색하게 활력을 잃은 해외 도서전의 부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몰라보게 달라진 서울국제도서전 위상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 우리가 해외 저자나 책을 계약하기 위해 외국 도서전에 찾아다녔던 것처럼, 이제는 해외 출판인들이 한국 책을 찾아 서울로 온다”며 “유럽에 직접 가봤자 경기 침체로 다음 해면 참여 출판사들이 바뀌는 걸 몇 번 경험한 이후로는 차라리 서울국제도서전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K콘텐츠의 선전에 힘입어 격세지감을 느끼는 분야가 한둘은 아니지만, 출판 시장에서 이런 변화는 참 드라마틱하다. 1954년 처음 시작된 서울국제도서전은 오랫동안 ‘국제적이지 못한 국제도서전’ ‘어린이책 할인 장터’란 자조적인 평가를 받곤 했다. 해외 유명 도서전을 흉내내긴 했지만, 해외 출판사나 에이전시 참여가 거의 없었다. 국제도서전의 주요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각국 출판업자 사이의 저작권 거래도 이뤄지기 힘들었다. 내세울 만한 세계적인 작가와 콘텐츠도 부족해 관객을 끌 유일한 방편이 도서 할인 판매였다. 이렇다 보니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간판 출판사들은 도서전 참여를 꺼려 참여사 모집부터 난항을 겪었다. 변화가 시작된 건 최근 몇 년간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각광받으면서부터다. 외부 여건도 좋았다. 2016년 이후 일본 도쿄국제도서전이 열리지 않고 있는 데다, 중국 베이징도서전은 정부 통제가 심해지면서 서울국제도서전은 아시아 대표 도서전이 될 기회를 맞았다. 2023년의 경우 참여사가 36개국 530개 출판사로 전년의 2.7배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과는 별개로 서울국제도서전은 최근 연이은 내홍을 겪고 있다. 원래 문화체육관광부는 해마다 정부 보조금 형태로 서울국제도서전에 약 10억 원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2023년 도서전 수익금 관련 회계보고 과정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 측 문제가 발견됐다며 직접적인 지원을 끊었다. 양측의 공방 속에 치른 지난해 도서전은 관람객 15만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19개국 452개 참가사로 전년보다 규모를 절반 정도 줄였다. 올해는 도서전 개최 불과 한 달여를 앞두고 사유화 논란이 불거졌다. 문체부와의 갈등이 장기화되자 출협 측은 도서전을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그런데 출판계 일각에서 이 과정이 불투명했으며 몇몇 법인과 개인이 지분을 독점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서며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선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김혜순 시인, 정보라 작가 등 국내 작가들이 해외 유명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며 세계적 주목을 받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해외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한국 그림책뿐 아니라, 수많은 국내 작가와 작품이 해외 시장에 소개될 수 있는 절호의 호기를 자중지란으로 놓치는 건 아닌지 안타깝다. 국내 최대의 책 잔치인 서울국제도서전이 잇단 갈등의 출구를 찾아 ‘K북’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박선희 문화부 차장 teller@donga.com}

형이 너무 얄밉고 싫은 유준이.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형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울분을 토한다.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둔 쿠키를 마음대로 집어 먹다니. 다른 친구들도 이에 질세라 잘난 척하는 언니, 이것저것 시키는 누나 흉을 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먹는 걸 빼앗아가는 것보다 더 치사한 짓은 없다. 유준이 말에 친구들이 슬슬 동의하기 시작한다. 동생들 괴롭히는 ‘못된 점수’는 결국 유준이 형이 최고점을 얻어 1등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는 유준이. 얄밉고, 짜증나고, 정말 싫지만 왜 친구들이 우리 형을 욕하는 건 참을 수가 없는 걸까? ‘너네 형이 제일 별로다’라고 흉보는 친구들과 티격태격하기 시작한다.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온 유준이 형이 소리친다. “누가 내 동생 건드려?” 아무리 티격태격해도 핏줄은 핏줄. 내가 욕하는 건 괜찮아도, 남이 욕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가 가족이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현실 형제자매들이 함께 읽기 좋은 책.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태어나 1953년 3월 한국전쟁의 마지막 격전장이었던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미국 해병대의 전설이 된 군마 ‘레클리스’의 실화를 복원했다. 당시 중공군은 판문점 북방 네바다 구역을 집중 타격하며 최전선 돌파를 시도했다. 쏟아지는 포탄이 공중에서 폭발할 정도로 치열한 고지 점령전에서 레클리스는 하루 56km를 이동하고, 51번 죽음의 고지를 왕복하면서 총 5t의 탄약을 운반했다. 레클리스의 활약으로 미 해병대는 중요 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참전 미 해병과 수많은 지휘관, 가족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하고 방대한 자료를 추적 조사해 전기를 완성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사람은 본성적으로 선악이 구별되는 세계, 이분법으로 나뉘는 세계를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삶은 그렇지가 않잖아요. 오류이든 실수이든 과녁을 잘못 맞아 빗나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소설집 ‘안녕, 우리’(상상)를 펴낸 소설가 심아진 씨(사진)는 2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특히 요즘 우리 사회가 자꾸 극단으로 가고 있는데 어떤 일의 이면엔 각자의 사정, 일일이 설명하기 힘든 수많은 결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작가의 설명처럼 이번 소설집에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모습이 때론 희극적으로, 때론 모순적으로 손에 잡힐 듯 생생히 그려진다. 표제작 ‘안녕, 우리’는 경마장에서 가족 모임을 가진 40대 대학 친구들의 시끌벅적하면서도 어딘지 피로한 하루를 그려낸다.‘안내’는 “문지방 밟지 마라” “결제일 매달 1일로 하지 마라” 등 부정 타는 일을 일절 금지시키는 기이한 20대 하숙집 주인 이야기. 그의 잔소리를 미신으로 치부했던 성준은 그 말대로 해서 비트코인이 스무 배 올랐다는 둥, 누군가 갑자기 부고로 방을 뺐다는 둥 하는 주변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그에게 의지하게 된다. 오갈 데 없는 청년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재기를 돕는 사장이 운영하는 양양수산 이야기 ‘혹돔을 모십니다’도 인상적이다. 혼혈인 외국인 노동자 레이는 선의로 그를 고용한 사장 돈을 가로채고 종국엔 도망쳐 버리지만 양양수산 사람들은 그 허물을 못 본 척 덮어준다. 작가는 “괜찮은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1999년 한 계간지로 등단한 그는 긴 무명 생활 동안 매번 투고로 작품집을 어렵게 냈으나 최근 통영시문학상(2022년) 채만식문학상(2023년) 등을 잇따라 수상하며 밀렸던 출간작을 세상에 내놓게 됐다. 이번 책이 소설로만 9번째 책. 2020년 필명 ‘심순’으로 쓴 동화 ‘가벼운 인사’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동화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2021년) 등을 받았다. 그는 “소설 쓰는 게 힘들 때 동화에서 힘을 많이 얻었다”며 “수백 권의 책이 매일 나오는 시대이지만, 한 편이라도 천천히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좋겠다”고 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어느 날, 먼 산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민 씨네 집에 엄청나게 커다란 불덩어리 돌이 떨어진다. 돌 구르는 소리를 듣고 모두 민 씨네 집에 몰려든 마을 사람들. 저마다 각각의 방법으로 돌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한다. 돌쇠는 힘으로 들어 옮기려 젤 먼저 나선다. “나가 들어 옮겨 불라니께 다들 쪼까 비켜보소!” 하지만 너무 뜨거워 실패.박식한 훈장 어르신은 ‘그대는 돌이어라. 나 또한 돌이어라’ 등 갖은 글을 써보나 움직일 리 만무하다. 무당이 나서 굿을 해도 꿈쩍 않는 뜨거운 돌덩어리.모두 실패하고 돌아갔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뜨끈한 돌 기운 때문에 민 씨 피부가 보송해지더니 옥수수가 팝콘처럼 튀겨지고, 마른 오징어를 두니 고소한 냄새가 나며 구워진다. 결국 온 마을 사람들이 다시 민 씨네에 몰려들어 각종 주전부리와 찜질을 즐긴다. 모두 한목소리로 말한다. “여기가 말이오, 지상 낙원 아니겄소!”5대째 이어온 ‘원조 민 씨네 불가마’의 출발을 해학적인 그림과 판소리 같은 구수한 말 맛을 살려 유쾌하게 담아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무더운 여름, 수박씨가 빠진 자리에 고인 물이 시원한 수영장이 되는 상상에서 출발한 그림책 ‘수박 수영장’. 현재까지 88쇄, 약 32만 부가 팔렸고 뮤지컬로도 제작되며 큰 인기를 끈 이 그림책은 2015년 ‘무명의 신인’이 낸 첫 책이었다. 말 그대로 얼굴도 이름도 없이 필명으로만 활동하는 안녕달 작가다. 그의 작품은 이례적인 출세작 이후로도 ‘할머니의 여름휴가’ ‘당근 유치원’ 등 펴내는 책마다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림책들의 전체 누적 판매는 국내에서만 약 81만 부에 이른다.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아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으로 올라선 안녕달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수박 수영장’으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소회가 어떤가요.“첫 책이라 오랜만에 꺼내 들 때면 저도 기분이 묘해요. 투고했을 당시 이 책이 나온다면 간간이 새 그림책을 내거나 일러스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더 잘됐어요. 덕분에 지금은 그림책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으니 참 고마운 책이죠.” 데뷔와 동시에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실은 작가는 오랫동안 “거의 반백수 느낌”의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수년간 그림책 공모전 등에 응모하거나 투고했으나 낙방과 거절이 거듭됐다. ‘안녕달’이란 이름도 “예쁜 이름이면 많이들 써주려나” 싶어 급히 예쁜 단어만 조합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었을까요.“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는데 디자인을 잘 못했어요. 서점에 디자인 서적을 보러 갔다가 너무 어려워서 쉬워 보이는 그림책만 한 권씩 사 왔어요. 그러다 그림책 그리는 일을 하게 됐네요. 그림책은 쉬워서 좋아요. 누구나 10분 정도면 볼 수 있고, 좋아하는 책은 쉽게 다시 또 꺼내 볼 수 있는 게 매력적이에요.” 수박이 수영장이 되고(‘수박 수영장’), 솜이불 아랫목이 찜질방이 되는 것(‘겨울 이불’)처럼 작가의 작품은 일상적 소재에서 떠오른 마법 같은 순간을 포착해 낸다. 그는 “가끔 운 좋게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고 했다. 아기자기한 그림과 따뜻한 유머, 뭉클한 이야기를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마감할 때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편”이라고도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우당탕 일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떠난 낯선 휴가지에서 아무거나 먹다가 배탈이 난 상태”라고 했다. ―그림책 작가로 가장 보람 있었던 때가 있었다면….“두 번째 책 ‘할머니의 여름휴가’가 책으로 나왔을 때 어느 분이 자신의 할머니가 떠올랐다고 메일을 주셨어요. ‘내일은 할머니 병문안을 가야겠어요’라고요. 오랜만에 손주를 보고 좋아할 할머니 표정을 떠올리며 엄청 행복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나요.” 안녕달 작가는 “조금 더 소소한 기쁨도 있다”며 “지금까지 낸 책을 모아 꽂아 놨는데 벽에 맞닿은 책장 한 칸에 10권이 넘는, 다양한 높이와 깊이의 책들이 있다. 가끔 벽에 기대서 그 책들을 가만히 보면 뿌듯하다”고 했다.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아무래도 책에 저의 어떤 부분이 묻어날 수밖에 없겠지만, 저와 제가 그린 책들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요. 책을 보시는 분들이 저를 떠올리기보다 책 속 이야기, 캐릭터들에 더 집중해 주셨으면 하거든요.” 작가는 MBTI를 묻는 질문에조차 답을 아꼈지만 책 속에 단서가 묻어 있긴 하다. 데뷔 10주년을 맞아 최근 펴낸 신작 ‘별에게’는 “어느 날 할아버지가 해변에서 주워 온 작은 별들을 손주 손에 건네주는 장면”이 떠오르며 착안한 책. 이 아이디어가 1980, 90년대 학교 앞에서 병아리 파는 할머니들에 대한 어릴 적 추억으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연령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올여름엔 ‘수박 수영장’ 10주년을 기념해 작은 ‘복숭아 책’을 낸다고 한다. 그는 “작은 독립출판물처럼 만들어 사은품으로 증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예전의 그처럼 꿈을 향해 달리는 이들을 향한 조언을 부탁하자 “위로, 격려 이런 건 너무 어렵다”며 이렇게 덧붙였다.“저도 살면서 이뤄진 소망이 있고 그러지 못한 것들이 있죠. 이뤄지든, 이뤄지지 못하든 그 기억들이 제 삶 어딘가에 소중히 남아 남은 삶을 비춰 주길 바라고 있어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무더운 여름, 수박씨가 빠진 자리에 고인 물이 시원한 수영장이 되는 상상에서 출발한 그림책 ‘수박 수영장’.현재까지 88쇄, 약 32만 부가 팔렸고 뮤지컬로도 제작되며 큰 인기를 끈 이 그림책은 2015년 ‘무명의 신인’이 낸 첫 책이었다. 말 그대로 얼굴도 이름도 없이 필명으로만 활동하는 안녕달 작가다.그의 작품은 이례적인 출세작 이후로도 ‘할머니의 여름 휴가’ ‘당근 유치원’ 등 펴내는 책마다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림책들의 전체 누적 판매는 국내에서만 약 81만 부에 이른다.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아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으로 올라선 안녕달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수박 수영장’으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소회가 어떤가요.“첫 책이라 오랜만에 꺼내 들 때면 저도 기분이 묘해요. 투고했을 당시 이 책이 나온다면 간간이 새 그림책을 내거나 일러스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더 잘됐어요. 덕분에 지금은 그림책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으니 참 고마운 책이죠.”데뷔와 동시에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실은 작가는 오랫동안 “거의 반 백수 느낌”의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수년간 그림책 공모전 등에 응모하거나 투고했으나 낙방과 거절이 거듭됐다. ‘안녕달’이란 이름도 “예쁜 이름이면 많이들 써주려나” 싶어 급히 예쁜 단어만 조합해 만들었다고 한다.―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었을까요.“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는데 디자인을 잘 못했어요. 서점에 디자인 서적을 보러 갔다가 너무 어려워서 쉬워 보이는 그림책만 한 권씩 사 왔어요. 그러다 그림책 그리는 일을 하게 됐네요. 그림책은 쉬워서 좋아요. 누구나 10분 정도면 볼 수 있고, 좋아하는 책은 쉽게 다시 또 꺼내 볼 수 있는 게 매력적이에요.”수박이 수영장이 되고(‘수박 수영장’), 솜이불 아랫목이 찜질방이 되는 것(‘겨울 이불’)처럼 작가의 작품은 일상적 소재에서 떠오른 마법 같은 순간을 포착해낸다. 그는 “가끔 운 좋게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고 했다. 아기자기한 그림과 따뜻한 유머, 뭉클한 이야기를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마감할 때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편”이라고도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우당탕 일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떠난 낯선 휴가지에서 아무거나 먹다가 배탈이 난 상태”라고 했다.― 그림책 작가로 가장 보람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면….“두 번째 책 ‘할머니의 여름휴가’가 책으로 나왔을 때 어느 분이 자신의 할머니가 떠올랐다고 메일을 주셨어요. ‘내일은 할머니 병문안을 가야겠어요’라고요. 오랜만에 손주를 보고 좋아할 할머니 표정을 떠올리며 엄청 행복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나요.”안녕달 작가는 “조금 더 소소한 기쁨도 있다”며 “지금까지 낸 책을 모아 꽂아 놨는데 벽에 맞닿은 책장 한 칸에 10권이 넘는, 다양한 높이와 깊이의 책들이 있다. 가끔 벽에 기대서 그 책들을 가만히 보면 뿌듯하다”고 했다.―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아무래도 책에 저의 어떤 부분이 묻어날 수밖에 없겠지만, 저와 제가 그린 책들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요. 책을 보시는 분들이 저를 떠올리기보다 책 속 이야기, 캐릭터들에 더 집중해 주셨으면 하거든요.”작가는 MBTI를 묻는 질문에조차 답을 아꼈지만, 책 속에 단서가 묻어 있긴 하다. 데뷔 10주년을 맞아 최근 펴낸 신작 ‘별에게’는 “어느날 할아버지가 해변에서 주워 온 작은 별들을 손주 손에 건네주는 장면”이 떠오르며 착안한 책. 이 아이디어가 1980~90년대 학교 앞에서 병아리 파는 할머니들에 대한 어릴 적 추억으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연령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작가는 올여름엔 ‘수박 수영장’ 10주년을 기념해 작은 ‘복숭아 책’을 낸다고 한다. 그는 “작은 독립출판물처럼 만들어 사은품으로 증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예전의 그처럼 꿈을 향해 달리는 이들을 향한 조언을 부탁하자 “위로, 격려 이런 건 너무 어렵다”며 이렇게 덧붙였다.“저도 살면서 이뤄진 소망이 있고 그러지 못한 것들이 있죠. 이뤄지든, 이뤄지지 못하든 그 기억들이 제 삶 어딘가에 소중히 남아 남은 삶을 비춰 주길 바라고 있어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키보다 훨씬 더 높은 국수 그릇을 층층이 쌓아올린 쟁반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유명한 국숫집의 배달원. 아이들은 오늘도 경의에 찬 눈으로 그를 구경한다. 한 팔로 그릇 탑을 지탱한 채로 차들로 붐비는 거리, 공장, 큰 빌딩의 사무실, 상점가를 하루 종일 누빈다. 언덕을 오르고, 커브를 돌고, 움푹 파인 곳을 지나면서도 흔들림 없이 내달리는 배달원. 지친 다리로 쉴 새 없이,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배고픈 고객들을 향해 열심히 달린다.보는 것만으로 탄성이 절로 나는 묘기 같은 국수 배달. 그가 하루 종일 쉼 없이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사실 그를 눈으로 좇으며, 응원하며, 기다리는 아이들 덕분이다. 늦은 저녁, 아빠가 퇴근하며 마지막으로 배달해온 달짝지근한 메밀국수를 온 가족이 함께 먹는다. ‘기억하는 것보다 항상 더 맛있는’ 그것을.방식은 달라도 묘기하듯 쟁반을 머리 위에 층층이 올리고 시장을 누비던 배달원의 추억이 우리에게도 있다. 고단한 일상을 예술로, 곡예로 승화시키며 성실히 살아가는 이웃과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책.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5만 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갖춘 서재로 유명했다. 그의 서재를 본 사람들은 여지 없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셨어요?” 에코는 한 수필에서 그런 유의 질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다 읽은 책을 도대체 왜 책장에 꽂아두겠냐’는 거였다. 그의 반문은 책장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통념을 뒤짚는다. 다 읽은 책이 꽂혀 있는 책장은 엄밀히 말해서 죽은 책장이다. 그런 책장은 사냥의 전리품을 박제해 진열한 것처럼, 오래전 독서의 추억과 성취감을 상기시키는 용도로 책을 활용한다. 하지만 에코처럼 현재 읽는 책, 앞으로 읽을 책이 더 많은 책장은 읽기를 멈추지 않는 탐독가들의 지적 팽창력이 꿈틀대는 미지의 숲이다. ‘살아 있는’ 책장이다. 탐독가들에게 책장은 주기적으로 가지치기와 분갈이를 해 줘야 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책장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주제에 따른 분류다. 멜빌 듀이가 1876년 창안한 DDC(Dewey Decimal Classification·듀이 십진분류법)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책장 정리 방법으로,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이 이에 따라 책을 정리한다. 철학, 종교, 사회과학 등 10가지 대주제에 따라 장서를 정리하는데 국내 도서관도 이를 한국적으로 보완한 한국십진분류법을 따르고 있다. 이를테면 듀이는 책 정리업계의 고전적 슈퍼스타이고, 도서관에 들락거리는 걸 삶의 낙으로 삼아온 많은 탐독가들에게 ‘무릇 교양인의 책장이란 주제에 따라 정리돼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 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책을 반드시 주제에 따라 정리하라는 법은 사실 없다. ‘세계 최고의 독서가’란 별명을 가진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알베르트 망구엘은 ‘밤의 도서관’에서 책을 가나다순, 지역이나 국가, 표지 색깔, 책의 크기와 장르뿐 아니라 심지어 구입일자와 출판일자에 따라서도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랭 드 보통은 미술관이 예술 본연의 기능인 ‘치유와 구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구체적 작품을 통해 균형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전시실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책장 정리에도 유효한 통찰을 준다. 예를 들면 ‘영혼의 치유와 회복’이라는 감정선에 따라 책을 분류해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언젠가 들었던 사례도 흥미롭다. 시인 출신인 한 출판인은 침실 책장에는 무조건 시집만을 비치해 둔다고 했다. 그 사적이며 신성한 회복의 공간에는 ‘순도 100%’ 시의 언어가 아닌 책은 감히 책장 한 장 들이밀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거실에는 인테리어 효과를 낼 수 있는 화집이나 디자인북 등 화려하고 큰 책을, 서재에는 검토해야 할 책들을 둔다고 했다. 한때 엄격한 ‘듀이 모델’ 신봉자였지만 책 정리에 한 가지 절대 모델이란 없음을 알게 된 후 나 역시 책장 관리에 보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방식을 적용 중이다. 요즘은 ‘독자 키’ 기준으로 책을 분류한다. 거실 한편을 차지한 책장을 어른들 책으로만 채워두는 게 탐욕스럽게 느껴져 세 번째 칸까지 비우고 아이들에게 내어줬기 때문이다. 날이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이 부쩍 “네 번째 칸까지 손이 닿는다”며 은근한 압박을 해온다는 게 이 분류법의 숙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돌부처’ 이창호 9단(50)이 50세 이상 기사를 대상으로 열리는 첫 시니어 세계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6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제1회 블리츠자산운용 시니어 세계바둑 오픈 결승에서 이창호는 유창혁 9단에게 304수 만에 흑 2집 반승을 거뒀다. 2000년대 초반 세계 바둑을 주름잡던 ‘바둑 전설’들의 대결로 관심을 끌었던 이번 결승은 대국 내내 치열했다. 초반에는 유창혁이 앞섰지만, 중반 이후 인공지능(AI) 승률 그래프가 요동쳤다. 막판까지 역전을 거듭하면서 겨룬 끝에 이창호가 끝내기에서 확실한 승세를 굳히며 2집 반을 남겼다. 우승 후 이창호는 “유창혁 9단은 항상 어렵게 생각하는 선배라서 열심히 두자고 생각했고, 운이 따랐던 것 같다”며 “바둑이 잠깐씩 싫증 날 때도 있지만 좋아하는 바둑을 어렸을 때부터 할 수 있어 복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앞으로도 즐겁게 생각하고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1986년 11세에 입단한 이창호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약 15년간 세계 바둑계 랭킹 1위를 유지했다. 경기 중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로 인해 ‘돌부처’ 등의 별칭으로 불렸다. 블리츠자산운용 시니어 세계바둑 오픈은 프로와 아마추어, 국적의 경계가 없는 대회다. 프로는 남자 50세 이상, 여자 40세 이상 기사에게 출전 자격이 주어졌고, 아마추어는 남자 50세 이상, 여자 19세 이상이 참가하도록 했다. 우승 상금은 3000만 원, 준우승 상금은 1000만 원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 K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글로벌 미디어 시장분석업체 암페어(Ampere)는 15일(현지시간) “한국 프로그램이 넷플릭스에서 미국 콘텐츠를 제외하고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넷플릭스 시청 데이터를 바탕으로 암페어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콘텐츠는 2023년 이래 넷플릭스 전체 시청 시간에서 미국 콘텐츠(56∼59%)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점유율은 8∼9%대로 영국(7∼8%)과 일본(4∼5%) 콘텐츠를 넘어선 수치다. 드라마 시장의 전통적 강자였던 영국, 일본을 모두 앞지른 것. 암페어는 “현재 한국은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국외(non-US) 프로그램 500개 중 85개(17%)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지난해 하반기 스트리밍 6억1990만 시간을 기록한 ‘오징어 게임’ 시즌2를 비롯해 로맨스 드라마 ‘엄마친구아들’ 등이 있다. ‘오징어 게임’ 시즌1과 ‘눈물의 여왕’, ‘사랑의 불시착’ 등 수년 전 공개된 드라마들도 계속 사랑받고 있다. 암페어는 “넷플릭스가 2028년까지 한국 콘텐츠에 25억달러(약 3조5708억원)를 투자하기로 한 것은 한국 콘텐츠 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CJ ENM의 대규모 투자 등 한국의 콘텐츠 업체들도 글로벌 한류 현상에 올라타고 있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여느 날처럼 체조와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 뭉실 할아버지. 하얀 솜뭉치처럼 동글동글한 할아버지가 사는 마을은 어쩐지 좀 수상쩍다. 레고 조각, 젤리 봉지 등 버려진 물건이 많은 데다 깊고 어둡다. 이 마을은 어떤 곳일까. 아침부터 부지런히 마을의 분실물 보관소를 찾은 할아버지는 돌돌 말린 커다란 종이 한 장을 빌린다. “바람이 곧 올 것 같아서”란 알쏭달쏭한 이유를 대면서다. 사실 뭉실 할아버지가 사는 곳은 패브릭 소파의 깊은 틈 사이다. 할아버지와 그가 반갑게 인사하는 작은 아이들의 정체는 둥글게 뭉친 먼지. 청소기의 강력한 바람이 소파 안을 들쑤셔 모두가 빨려 들어가는 위기의 순간, 뭉실 할아버지는 분실물 보관소에서 빌려온 커다란 종이를 펼쳐 흡입구를 막아 버린다. 청소기 입구를 막은 건 오래된 가족사진. 집주인이 “이게 여기 있었네” 미소를 짓는 사이, 할아버지와 아이들은 다시 소파 틈으로 숨는다. 먼지, 장난감, 막대사탕 등 온갖 물건이 뒤엉킨 소파 틈새를 재밌는 상상력으로 풀어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