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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활동중인 유성민 작가의 개인전 ‘우주의 비전’(Visions of the Universe)이 30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한국잡지박물관 M미술관에서 열린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전시됐다. 유 작가의 작품들은 SF 애니메이션 같은 기법을 쓰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지와 수묵을 활용한 회화 기법은 초현실주의 작가 이브 탕귀(1900~1955)를 연상시키지만 뿌리는 한국적이다. 전시 하이라이트는 신작 ‘Division’. 대형 캔버스에 수묵과 유화, 먹, 한지를 활용해 완성한 이 작품은 이민자로서 작가의 경험을 집약한다. 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이주 경험과 그 속에서 겪은 정착에 대한 갈망,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짜증 나.” 지난달 28일 마지막 회가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딸 금명(아이유)은 부모에게 이 말을 자주 한다.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애틋함과 미안함이 스민 말이다. 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가수 겸 배우 아이유(본명 이지은·32)는 이 문장을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로 꼽으며 “하이퍼 리얼리즘”이라고 했다.“진짜 사랑하고, 미안하고, 걱정돼서 나오는 말이에요. 그걸 다 말로 못 하니까 ‘짜증 나’라고 하게 되죠. 저도 실제로 부모님이 아픈데도 청소하고 밥까지 해두시면 ‘짜증 나’밖에 못 하겠더라고요. 하하.” 아이유는 10대의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애순’부터 자신의 감정을 꾹 눌러 담는 어른 ‘금명’까지, 1인 2역으로 모녀를 연기했다. 두 인물의 결이 다르기에 연기의 난도가 높았다. 그런 그가 자신과 닮았다고 꼽은 인물은 10대 애순이었다.“제가 10대였을 때와 정말 많이 닮았어요. 지고 싶지 않아 하고, 뭐든 다 해보고 싶고, 화가 나면 그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면이요. 그러면서도 회복도 빠르고, 낙천적인 성격이 저랑 많이 겹쳤어요.” 딸 ‘금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집중한 부분은 내레이션이었다고 한다. 금명의 시점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는 형식의 내레이션은 작품 전체의 정서를 이끌고 간다.“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금명이가 과거를 회고하는 구조예요. 어리게 들리지 않도록, 감정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도록 계속 조율했어요. 녹음만 두 달 넘게 했습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고생 가득한 애순의 삶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시집 한 권처럼 써 내려간다고 생각했어요. 장마다 고통과 기쁨, 아쉬움과 희망이 담긴 시집이죠. 그 시집에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면, 그 삶은 진짜 잘 산 거 아닐까요.” 스타 가수에서 연기력도 인정받는 배우로 자리 잡은 아이유. 자신의 20, 30대를 하나의 시집으로 묶는다면 어떤 제목이 어울릴까.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연필을 다시 깎겠습니다.’ 20대를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날카로운 연필심처럼 온 힘을 다해 쓰듯이요. 이제는 그 연필이 좀 뭉툭해졌다고 느껴졌어요. 다시 깎아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어요.” 아이유는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하는 팬들을 위해 음식값을 선결제했다가 ‘좌이유’(좌파+아이유)라는 비난을 받은 것을 두고 “그런 것도 감당해야 하는 부분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인터뷰 끝자락, 4계절로 구성된 작품에 비유해, ‘지금 자신은 어떤 계절일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다. 앞서 상대역 관식을 연기한 박보검은 “봄”이라 답했다. 아이유는 “가을”이라고 했다.“여름처럼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이 있었고, 지금은 그 시간을 돌아보며 수확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가을 같아요.”“‘손주도 내딸 진 빼면 밉지’라는 말은 제 엄마도 해요”문소리의 ‘가장 마음에 남는 말’은‘딸에 대한 노모의 사랑’ 묻어난 표현… 촬영하며 가족들이 자주 떠올라금명이 엄마에 퉁명스럽게 말할땐… 내딸이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어“암만 손주여도 내 딸 진을 너무 빼면 밉지.”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중년의 애순(문소리)이 딸 금명(아이유)의 딸에게 던지는 이 말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다. 다투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애지중지 키운 딸에 대한 깊은 사랑이 묻어난다. 배우 문소리(51)는 2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나 이 대사를 “가장 마음에 남는 말”로 꼽았다.“저희 엄마도 제 딸에게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손녀를 사랑하시면서도 ‘너희 엄마 너무 힘들게 하지 마라. 우리 딸 너무 힘들면 나도 속상하다’고요.” 문소리는 영화 ‘오아시스’(2002년), ‘바람난 가족’(2003년) 등에서 강렬한 인물들을 연기해 왔다. 반면 애순은 전을 부치고, 김밥을 싸며, 자식 뒷바라지에 속상해하는 ‘보통의 엄마’다. 하지만 문소리는 오히려 애순이 “어려운 캐릭터”였다고 했다.“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인물이에요. 하지만 그 안에 많은 시간이 있고, 감정이 있고, 사랑이 있어요. 그걸 억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전달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냥 ‘엄마’로만 보이지 않도록 조심했어요.” 현장에서 문소리는 자주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다고 한다. 특히 극 중 금명이 엄마에게 퉁명스러운 장면에선 자신의 삶과 맞물려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고.“미워하기보단 미안했어요. 우리 딸이 그런 상황이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었죠. 그래서 늘 금명이가 짠하고 안쓰러웠어요.” 그가 본 애순은 어떤 사람일까. 문소리는 잠시 생각을 고른 뒤 답했다.“애순이 남편을 떠나보낸 뒤 이렇게 말해요. ‘그런 복은 내리 안 와’, ‘수만 날이 봄이었더라’. 마치 꽃밭에서 살아온 사람처럼요. 누구나 인생엔 힘든 날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삶을 결국 봄날로 기억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참 대단하지 않나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암만 손주여도 내 딸 진을 너무 빼면 밉지.”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중년의 애순(문소리)이 딸 금명(아이유)의 딸에게 던지는 이 말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다. 다투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애지중지 키운 딸에 대한 깊은 사랑이 묻어난다.배우 문소리(51)는 2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나 이 대사를 “가장 마음에 남는 말”로 꼽았다. “저희 엄마도 제 딸에게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손녀를 사랑하시면서도 ‘너희 엄마 너무 힘들게 하지 마라. 우리 딸 너무 힘들면 나도 속상하다’고요.”문소리는 영화 ‘오아시스’(2002년), ‘바람난 가족’(2003년) 등에서 강렬한 인물들을 연기해왔다. 반면 애순은 전을 부치고, 김밥을 싸며, 자식 뒷바라지에 속상해하는 ‘보통의 엄마’다. 하지만 문소리는 오히려 애순이 “어려운 캐릭터”였다고 했다.“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인물이에요. 하지만 그 안에 많은 시간이 있고, 감정이 있고, 사랑이 있어요. 그걸 억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전달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냥 ‘엄마’로만 보이지 않도록 조심했어요.”현장에서 문소리는 자주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다고 한다. 특히 극 중 금명이 엄마에게 퉁명스러운 장면에선 자신의 삶과 맞물려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고. “미워하기보단 미안했어요. 우리 딸이 그런 상황이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었죠. 그래서 늘 금명이가 짠하고 안쓰러웠어요.”그가 본 애순은 어떤 사람일까. 문소리는 잠시 생각을 고른 뒤 답했다.“애순이 남편을 떠나보낸 뒤 이렇게 말해요. ‘그런 복은 내리 안 와’, ‘수만 날이 봄이었더라’. 마치 꽃밭에서 살아온 사람처럼요. 누구나 인생엔 힘든 날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삶을 결국 봄날로 기억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참 대단하지 않나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짜증나.”지난달 28일 마지막 회가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딸 금명(아이유)은 부모에게 이 말을 자주 한다.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애틋함과 미안함이 스민 말이다.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가수 겸 배우 아이유(본명 이지은·32)는 이 문장을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로 꼽으며 “하이퍼 리얼리즘”이라고 했다.“진짜 사랑하고, 미안하고, 걱정돼서 나오는 말이에요. 그걸 다 말로 못 하니까 ‘짜증나’라고 하게 되죠. 저도 실제로 부모님이 아픈데도 청소하고 밥까지 해두시면 ‘짜증나’ 밖에 못 하겠더라고요. 하하.”아이유는 10대의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애순’부터 자신의 감정을 꾹 눌러 담는 어른 ‘금명’까지, 1인 2역으로 모녀를 연기했다. 두 인물의 결이 다르기에 난이도도 높았다. 그런 그가 자신과 닮았다고 꼽은 인물은 10대 애순이었다.“제가 10대였을 때와 정말 많이 닮았어요. 지고 싶지 않아 하고, 뭐든 다 해보고 싶고, 화가 나면 그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면이요. 그러면서도 회복도 빠르고, 낙천적인 성격이 저랑 많이 겹쳤어요.”딸 ‘금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집중한 부분은 내레이션이었다고 한다. 금명의 시점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는 형식의 내레이션은 작품 전체의 정서를 이끌고 간다.“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금명이가 과거를 회고하는 구조예요. 어리게 들리지 않도록, 감정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도록 계속 조율했어요. 녹음만 두 달 넘게 했습니다.”우리네 어머니들처럼 고생 가득한 애순의 삶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시집 한 권처럼 써 내려간다고 생각했어요. 매 장마다 고통과 기쁨, 아쉬움과 희망이 담긴 시집이죠. 그 시집에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면, 그 삶은 진짜 잘 산 거 아닐까요.”스타 가수에서 연기력도 인정 받는 배우로 자리 잡은 아이유. 자신의 20, 30대를 하나의 시집으로 묶는다면 어떤 제목이 어울릴까.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연필을 다시 깎겠습니다.’ 20대를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날카로운 연필심처럼 온 힘을 다해 쓰듯이요. 이제는 그 연필이 좀 뭉툭해졌다고 느껴졌어요. 다시 깎아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어요.”인터뷰 끝자락, 4계절로 구성된 작품에 비유해, ‘지금 자신을 어떤 계절일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다. 앞서 상대역 관식을 연기한 박보검은 “봄”이라 답했다. 아이유는 “가을”이라고 했다.“여름처럼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이 있었고, 지금은 그 시간을 돌아보며 수확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가을 같아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월 16일 세상을 떠난 고 김새론 배우와 미성년자 교제설 등 논란이 일었던 배우 김수현 씨(37)가 31일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의혹에 대해 반박했다. 김 씨 측은 고인의 유족과 유튜브 운영자 등을 상대로 형사 소송과 함께 12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제기했다. 김 씨는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 상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간 유족 등이 제기한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김 씨는 “죄송하다. 저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고, 고인도 편히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도 “고인과 드라마 ‘눈물의 여왕’(2024년) 방영 약 4년 전에 1년 정도 교제했을 뿐, 미성년자일 때 만나지 않았다”라고 했다. 김 씨가 직접 공식 석상에 나서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해당 의혹은 지난달 10일 한 유튜브 채널이 유족 발언을 인용해 고인이 15세 때부터 김 씨와 6년간 사귀었다고 주장하며 불거졌다. 또 유족 측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2016년 두 사람이 주고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메신저 대화 내용을 증거로 공개하기도 했다. 김 씨는 이에 대해 “시점을 교묘하게 바꾼 사진과 영상, 원본이 아닌 편집된 카카오톡 대화 등이 증거로 나왔다”며 “한때 고인과 교제했다는 걸 빌미로 가짜 증언, 가짜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고인이 자신의 소속사인 골드메달리스트의 채무 압박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의혹 또한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유족 측은 김 씨 소속사가 2022년 위약금에 대한 내용증명을 발송해 고인이 심적으로 힘들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씨 측은 이에 대한 반박으로 “법적 절차를 위한 것일 뿐, 천천히 갚아도 된다”는 내용의 통화 녹음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 씨는 “유족 측이 증거로 내세우는 것들에 대해 수사기관을 통해 검증할 절차를 밟겠다”고도 했다. 김 씨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김종복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유족과 성명불상자인 이모, 유튜브 운영자 등에 대해 정보통신망법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며 “이들을 상대로 12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했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사람 하나 죽여줘. 내 아버지.” 빚에 허덕이던 ‘사채남’(이희준)은 노숙자 ‘길룡’(김성균)에게 충격적인 제안을 건넨다. 아버지를 죽여달라는 청부. 패륜임에도 사채남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사망보험금 5억 원이면 아버지 생명쯤은 맞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계획은 뒤틀린다. 며칠 뒤 아버지의 시신이 깊은 산속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된다. 경찰은 아들을 용의자로 주목한다. 길룡은 약속한 돈을 달라며 협박에 나선다. 손을 더럽히지 않고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악행은 되레 사채남의 숨통을 죄기 시작한다. 4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악연’은 벗어나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인연, 그 끝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파국을 그린 6부작 범죄 스릴러다. 주인공들이 서로를 파괴하며 파멸로 향하는 과정을 그린다. 한의사 ‘안경남’(이광수)은 연인과 밀회를 즐기다 교통사고를 낸다. 사망자를 몰래 처리하려던 순간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목격남’(박해수)이 나타나 말을 건넨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해. 3000만 원만 더 줘.” 처음엔 단순한 협박처럼 보이던 말은 점점 안경남을 옥죈다. 가장 인상적인 서사는 외과의사 ‘주연’(신민아)의 이야기다. 주연은 중학생 시절 끔찍한 사건을 당했다. 그날 이후로 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다. 그런 주연 앞에 어느 날 가해자 중 한 명이 환자로 나타난다. 상대는 주연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주연은 단 하루도 상대를 잊지 못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 있어?”‘악연’의 진짜 긴장감은 따로 흐르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엮이기 시작할 때 폭발한다. 개별 서사는 퍼즐처럼 맞물리고 반전은 거듭된다. 영화 ‘검사외전’(2016년)에서 억울한 검사와 사기꾼의 공조를 유쾌하게 풀어냈던 이일형 감독이 이번에는 웃음기를 지운 얼굴로 돌아왔다. 모든 인물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악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장르물 특유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다만 살인 청부, 장기 밀매, 성폭력 등의 재현 수위를 이 정도까지 높일 필요가 있었는지 다소 의문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월 16일 세상을 떠난 고 김새론 배우와 미성년자 교제설 등 논란이 일었던 배우 김수현 씨(37)가 31일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의혹에 대해 반박했다. 김 씨 측은 고인의 유족과 유튜브 운영자 등을 상대로 형사 소송과 함께 12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제기했다.김 씨는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 상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간 유족 등이 제기한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김 씨는 “죄송하다. 저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고, 고인도 편히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도 “고인과 드라마 ‘눈물의 여왕’(2024년) 방영 약 4년 전에 1년 정도 교제했을 뿐, 미성년자일 때 만나지 않았다”라고 했다. 김 씨가 직접 공식 석상에 나서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해당 의혹은 지난달 10일 한 유튜브 채널이 유족 발언을 인용해 고인이 15세 때부터 김 씨와 6년간 사귀었다고 주장하며 불거졌다. 또 유족 측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2016년 두 사람이 주고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메신저 대화 내용을 증거로 공개하기도 했다.김 씨는 이에 대해 “시점을 교묘하게 바꾼 사진과 영상, 원본이 아닌 편집된 카카오톡 대화 등이 증거로 나왔다”며 “한때 고인과 교제했다는 걸 빌미로 가짜 증언, 가짜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김 씨는 고인이 자신의 소속사인 골드메달리스트의 채무 압박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의혹 또한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유족 측은 김 씨 소속사가 2022년 위약금에 대한 내용증명을 발송해 고인이 심적으로 힘들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씨 측은 이에 대한 반박으로 “법적 절차를 위한 것일 뿐, 천천히 갚아도 된다”는 내용의 통화 녹음을 공개하기도 했다.김 씨는 “유족 측이 증거로 내세우는 것들에 대해 수사기관을 통해 검증할 절차를 밟겠다”며 “수사기관에 모든 자료를 제출하고 법적 절차대로 검증받길 요청한다”고도 했다.김 씨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김종복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유족과 성명불상자인 이모, 유튜브 운영자 등에 대해 정보통신망법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며 “이들을 상대로 12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했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역대 최악의 대형 산불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네이버와 카카오가 운영하고 있는 기부 플랫폼에 100억 원이 넘는 산불 피해 복구 지원 성금이 모였다. 기업들도 피해 복구 및 이재민 지원을 위해 성금과 구호품 기부에 앞장서고 있다. 27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자사 기부 플랫폼 해피빈을 통해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구호 성금 10억 원을 기부했다. 해피빈을 통한 기부 건수는 이날 오전 기준 21만 건을 넘어섰고, 약 53억 원의 성금이 모였다. 카카오는 이재민 지원을 위해 총 10억 원을 기부한다. 카카오는 23일부터 사회공헌 플랫폼 ‘카카오같이가치’를 통해 대형 산불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긴급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7일 오전 기준 120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참여해 52억 원 이상의 기부금이 모였다. 기업들의 성금 기부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GS그룹은 성금 10억 원을 대한적십자사에 기탁했다고 밝혔다. KT&G도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조성한 성금 5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부영그룹과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각각 성금 5억 원, 3억 원을 전달했다. hy(옛 한국야쿠르트)·팔도 윤호중 회장은 피해 복구를 위한 성금으로 3억 원을 기부했다. 대우건설도 3억 원을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한다. 금융권에서는 신한금융지주가 이날 10억 원의 성금을 추가로 마련해 총 2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iM금융은 3억 원을 후원하기로 했고, 은행연합회는 2억 원을 기탁했다. 구호품 기부도 이어졌다. GS리테일은 생수, 과자, 용기면 등 긴급 구호물품 1만4000여 개를 지원했다. 농심도 25일 물, 라면 등으로 구성된 ‘이머전시 푸드팩’ 3000세트를 지원한 데 이어 26일 3000세트를 추가로 지원했다. 무신사는 파트너 브랜드 45곳과 함께 의류 1만5000점을 피해 지역에 전달했다. 연예인들도 피해 지원과 구호를 위한 기부에 잇따라 나섰다. 보이그룹 세븐틴이 성금 10억 원을, 걸그룹 아이브는 2억 원을 기부했다. 방탄소년단(BTS) 제이홉과 슈가도 각각 1억 원을 냈다. 배우 공유 이준호 변우석, 가수 이효리 영탁 태연(소녀시대) 슬기(레드벨벳) 마크(NCT)도 1억 원씩 기부했다. 배우 이동욱 김지원, 걸그룹 르세라핌, 가수 지효(트와이스)도 각각 5000만 원을 기부했다. JYP엔터테인먼트가 5억 원을, SM엔터테인먼트가 3억 원을 기부하는 등 연예기획사들도 참여했다.‘사랑의열매’ 온라인 산불성금… 3일만에 34만명이 14억 기탁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영남 지역 산불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온라인 성금 모금액이 14억 원을 넘겼다고 27일 밝혔다. 모금 시작 3일 만이다. 24일부터 시작된 ‘영남 지역 산불 피해 지원’ 특별 모금에는 27일 오전 9시 기준 34만 명 이상 시민이 참여했다. 이번 모금은 다음 달 30일까지 진행된다.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지난달 16일 세상을 떠난 고 김새론 배우의 유족이 고인이 생전에 배우 김수현 씨(37)에게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유족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부유의 부지석 변호사는 27일 서울 서초구 스페이스쉐어 강남역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인이 지난해 4월 김 씨에게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를 공개했다. 고인은 편지에서 “우리 사이에 쌓인 오해를 풀고 싶어서 글 남겨”라며 “우리가 만난 기간이 대략 5, 6년 됐더라. 첫사랑이기도 마지막 사랑이기도 해서 나를 피하지 않았으면 해”라고 썼다. 고인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두 사람의 사진을 올려 열애설이 불거진 것에 대해 사과하며 “연락이 되길 바라서 올린 사진”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부 변호사는 2016년 6월 당시 미성년자였던 고인과 김 씨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공개했다. 해당 대화는 개인정보를 가리기 위해 원본이 아닌 편집본으로 공개됐다. 부 변호사는 “(김 씨가 고인과) 성인이 된 뒤에만 사귀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유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끝으로 더 이상 무의미한 진실 공방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 씨의 소속사인 골드메달리스트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역대 최악의 대형 산불로 영남권 일대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네이버와 카카오가 운영하고 있는 기부 플랫폼에 100억 원이 넘는 산불 피해 복구 지원 성금이 모였다. 기업들도 피해 복구 및 이재민 지원을 위해 성금과 구호품 기부에 앞장서고 있다.27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자사 기부 피해 플랫폼 해피빈을 통해 전국 재해구호협회에 구호 성금 10억 원을 기부했다. 해피빈은 전국재해구호협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등과 함께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해피빈을 통한 기부 건수는 이날 오전 기준 21만 건을 넘어섰고, 약 53억 원의 성금이 모였다.네이버는 지도 서비스를 통해 주요 도로의 통제 상황, 산불 시 행동 요령 등을 안내하고 있다. 사용자가 산불 영향 지역과 통제 구간을 더욱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지도상에 산불 아이콘과 함께 강조 표기하고 있다.카카오는 이재민 지원을 위해 총 10억 원을 기부한다. 카카오는 23일부터 사회공헌 플랫폼 ‘카카오같이가치’를 통해 대형 산불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긴급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7일 오전 기준 120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참여했으며 52억 원 이상의 기부금이 모였다. 카카오 또한 포털 다음 서비스 내에서 산불 관련 특별페이지를 마련하고 관련된 뉴스 속보와 지역별 산불 현황, 재난 문자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산불 피해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성금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GS그룹은 성금 10억 원을 대한적십자사에 기탁했다고 밝혔다. KT&G도 산불 피해 주민들을 위해 성금 5억 원을 지원한다. KT&G는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조성한 펀드를 통해 성금을 마련됐다.부영그룹과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각각 성금 5억 원, 3억 원을 전달했다.이와 별도로 우아한형제들은 희망브리지와 함께 배민 앱을 통해 산불 피해 복구와 이재민을 돕기 위한 모금 캠페인을 진행한다.hy(구 한국야쿠르트)·팔도 윤호중 회장은 피해 복구를 위한 성금으로 3억 원을 기부했다. 대우건설은 대형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3억 원을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한다고 이날 밝혔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1억 원을 전달했다. 도미노피자도 같은 날 이재민 지원을 위해 성금 5000만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구호품 기부도 이어졌다. GS리테일은 생수, 과자, 용기면 등 긴급 구호물품 1만4000여 개를 지원했다. 산불 초기인 23일 첫 지원을 진행한 후에도 피해가 이어지자 추가 지원을 결정했다. 농심도 25일 물, 라면 등으로 구성된 ‘이머전시 푸드팩’ 3000 세트를 지원한 데 이어 26일 3000 세트를 추가로 지원했다. 무신사는 파트너 브랜드 45곳과 함께 의류 1만5000점을 피해 지역에 전달했다.연예인들도 피해 지원과 구호를 위한 기부에 잇따라 나섰다. 희망브리지 전국구호재해협회는 이날 가수 아이유와 그룹 아이브가 산불 피해 지원과 소방관 처우·인식 개선을 위해 각각 2억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배우 변우석과 그룹 NCT 멤버 마크는 각각 1억 원을 기부했다. 배우 이동욱과 김지원, 그룹 르세라핌도 각각 5000만 원을 기부했다. 배우 박해수는 소방관 지원에 써달라며 3000만 원을 기부했다. JYP엔터테인먼트가 5억 원, SM엔터테인먼트가 3억 원을 기부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기부에 참여했다.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넷플릭스 비(非)영어권 TV 부문 1위를 차지했다.26일 넷플릭스 공식 순위 사이트 ‘넷플릭스 톱10’에 따르면 7일 첫 공개된 이 드라마는 3월 셋째 주(17~23일) 동안 55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비영어 TV쇼 1위에 올랐다. 이 드라마는 3월 첫째 주 4위, 3월 둘째 주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브라질과 콜롬비아, 베트남, 대만, 터키 등 42개국에서 10위 안에 포함됐다.이 드라마는 1960년대 제주 등을 배경으로 문학을 사랑했던 단발머리 소녀 애순(아이유, 문소리)과 가족이 거친 삶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다뤘다. 애순의 억척스럽고도 파란 많은 삶을 그려내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21일 공개된 연상호 감독 영화의 ‘계시록’은 3월 셋째 주 조회 수 570만 회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비영어 부문 영화 1위에 올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너를 사랑한다고.”19세기 중엽이 배경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레오파드’에서 여주인공 콘체타(베네데타 포르카롤리)는 남주인공 탄크레디(사울 난니)에게 화끈하게 사랑을 고백한다. 원래 둘은 이른바 ‘썸’ 관계였지만, 탄크레디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에 콘체타는 당대 여성으로선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것. 원작 소설 ‘표범’(민음사)에선 철저히 수동적이던 그가 드라마에선 왜 이렇게 그려진 걸까.● 여성을 드라마 중심에 세우다국내에선 다소 낯선 이탈리아 드라마인 ‘레오파드’는 이탈리아 통일운동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를 배경으로 귀족 사회의 몰락과 사랑을 다룬 시대극. 5일 공개된 뒤 넷플릭스 비영어권 TV쇼 부문에서 4위를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다.이 작품은 이탈리아 소설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1896∼1957)가 쓴 장편 ‘표범’이 원작이다. 1958년 출간 이후 ‘이탈리아 국민소설’로 불리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원작에서 콘체타는 매우 수동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 아버지 권위 아래 침묵하며, 탄크레디에 대한 연정은 끝내 표현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콘체타가 새로운 사회의 미끄러운 계단을 오르려는 야심 많고 똑똑한 남편을 내조할 수 있을까? 수줍음 많고 신중하고 내성적인 콘체타가?”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정도다.반면 드라마에서 콘체타는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숨기지 않는다. 탄크레디가 혁명군에 합류하려 하자 “모든 걸 희생해서 친구(혁명군)를 돕겠다고? 우리(귀족)가 진다고 누가 그래?”라며 맞선다. 미술과 천문학에 관심 있는 학구적 인물로도 그려진다.이런 극적인 변화는 현대 여성 시청자를 겨냥한 각색으로 읽힌다. 박여영 민음사 부장은 “소설에서 콘체타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은 채 늙어 가는 슬픈 인물로 그려지지만, 드라마에서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주연에 가까운 비중을 지닌다”며 “현대적인 여성의 역할을 반영하려는 제작진의 의지가 느껴진다”고 했다.● ‘브리저튼’의 이탈리아 버전?콘체타를 떠난 탄크레디가 선택한 인물은 안젤리카(데바 카셀)다. 귀족 가문 출신인 콘체타와 달리, 안젤리카는 신흥 부르주아 계층의 딸. 그는 미모와 야망을 무기로 탄크레디를 사로잡는다. 탄크레디가 안젤리카를 처음 본 장면을 원작 소설은 이렇게 묘사할 정도다.“크림색과 흡사한 피부에서는 신선한 크림 냄새가 나는 듯했다. 어린아이 같은 입술에서는 딸기향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새까맣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물결쳤고, 새벽 별처럼 반짝이는 초록 눈은 석상의 눈처럼 움직임이 없었는데 약간 잔인해 보이기도 했다.”드라마는 이런 ‘관능미’를 한층 극대화한다. 무도회 장면에선 붉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모든 인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안젤리카를 연기한 카셀은 배우 모니카 벨루치와 뱅상 카셀의 딸. 이탈리아에서 주목받는 신예 배우로, 젊은층을 겨냥한 캐스팅으로 보인다.화려한 무도회와 관능적 사랑을 통해 계급과 욕망, 사랑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낯익다. 넷플릭스에서 가장 성공한 콘텐츠 중 하나인 드라마 ‘브리저튼’을 연상시킨다. 브리저튼은 영국 리전시 시대(1811∼1820년)를 배경으로 사치와 타락,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자극적인 영상으로 담아냈다. 드라마 ‘레오파드’의 각색을 맡은 영국 작가 리처드 월로도 영 BBC방송 인터뷰에서 “‘더 크라운’이나 ‘브리저튼’처럼 이 작품도 시각적 화려함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너를 사랑한다고.”19세기 중엽이 배경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레오파드’에서 여주인공 콘체타(베네데타 포르카롤리)는 남주인공 탄크레디(사울 난니)에게 화끈하게 사랑을 고백한다. 원래 둘은 이른바 ‘썸’ 관계였지만, 탄크레디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에 콘체타는 당대 여성으로선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것. 원작 소설 ‘표범’(민음사)에선 철저히 수동적이던 그가 드라마에선 왜 이렇게 그려진 걸까.● 여성을 드라마 중심에 세우다국내에선 다소 낯선 이탈리아 드라마인 ‘레오파드’는 이탈리아 통일운동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를 배경으로 귀족 사회의 몰락과 사랑을 다룬 시대극. 5일 공개된 뒤 넷플릭스 비영어권 TV쇼 부문에서 4위를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다.이 작품은 이탈리아 소설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1896~1957)가 쓴 장편 ‘표범’이 원작이다. 1958년 출간 이후 ‘이탈리아 국민소설’로 불리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원작에서 콘체타는 매우 수동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 아버지 권위 아래 침묵하며, 탄크레디에 대한 연정은 끝내 표현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콘체타가 새로운 사회의 미끄러운 계단을 오르려는 야심 많고 똑똑한 남편을 내조할 수 있을까? 수줍음 많고 신중하고 내성적인 콘체타가?”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정도다.“언제나 순종하고 아버지가 아무리 불쾌하게 의사 표시를 해도 온하하게 따를 줄 알았다. 그녀는 지금처럼 변함없이 아름다운 기숙학교 여학생으로 남아서 남편 앞길에 걸림돌이나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반면 드라마에서 콘체타는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숨기지 않는다. 탄크레디가 혁명군에 합류하려하자 “모든 걸 희생해서 친구(혁명군)를 돕겠다고? 우리(귀족)가 진다고 누가 그래?”라며 맞선다. 미술과 천문학에 관심 있는 학구적 인물로도 그려진다.이런 극적인 변화는 현대 여성 시청자를 겨냥한 각색으로 읽힌다. 박여영 민음사 부장은 “소설에서 콘체타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은 채 늙어 가는 슬픈 인물로 그려지지만, 드라마에서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주연에 가까운 비중을 지닌다”며 “현대적인 여성의 역할을 반영하고려는 제작진의 의지가 느껴진다”고 했다.박 부장은 “드라마 속 살리나는 조카 탄크레디에게 가문의 미래를 ‘투자’한다면 콘체타에겐 가문의 정신적 상속자의 역할을 맡긴다”며 “콘체타는 가부장적인 당대 사회의 희생양이지만, 그럼에도 ‘표범’의 정신적 계승자로 남게 된다”고 했다.● ‘브리저튼’의 이탈리아 버전?콘체타를 떠난 탄크레디가 선택한 인물은 안젤리카(데바 카셀)다. 귀족 가문 출신인 콘체타와 달리, 안젤리카는 신흥 부르주아 계층의 딸. 그는 미모와 야망을 무기로 탄크레디를 사로잡는다. 탄크레디가 안젤리카를 처음 본 장면을 원작 소설은 이렇게 묘사할 정도다.“크림색과 흡사한 피부에서는 신선한 크림 냄새가 나는 듯했다. 어린아이 같은 입술에서는 딸기향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새까맣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물결쳤고, 새벽 별처럼 반짝이는 초록 눈은 석상의 눈처럼 움직임이 없었는데 약간 잔인해 보이기도 했다.”“그녀는 천천히 걸었고 움직일 때마다 폭이 넓은 흰 드레스가 춤을 추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신하는 여자가 그렇듯이 침착했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그 집에 들어온 순간 긴장해서 기절할 뻔했다는 사실은 몇 달 뒤에야 알게 됐다.”드라마는 이런 ‘관능미’를 한층 극대화한다. 무도회 장면에선 붉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모든 인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안젤리카를 연기한 카셀은 배우 모니카 벨루치와 뱅상 카셀의 딸. 이탈리아에서 주목받는 신예배우로, 젊은 층을 겨냥한 캐스팅으로 보인다.화려한 무도회와 관능적 사랑을 통해 계급과 욕망, 사랑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낯익다. 넷플릭스에서 가장 성공한 콘텐츠 중 하나인 드라마 ‘브리저튼’을 연상시킨다. 브리저튼은 영국 리젠시 시대(1811∼1820)를 배경으로 사치와 타락,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자극적인 영상으로 담아냈다. 드라마 ‘레오파드’의 각색을 맡은 영국 작가 리처드 월로우도 영 BBC방송 인터뷰에서 “‘더 크라운’이나 ‘브리저튼’처럼 이 작품도 시각적 화려함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조상 이야기로 써내 국민 소설 됐다드라마 ‘레오파드’를 보고 있다 보면, 그 뒤에 놓인 원작 소설에도 손을 뻗어보고 싶어진다.이 소설의 작가는 이탈리아 남단 시칠리아섬에서 유서 깊은 귀족 가문, 토마시 디 람페두사 집안의 마지막 후예로 태어났다. 한때 법학을 공부했으며,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헝가리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탈출해 이탈리아까지 걸어 돌아온 그는 평생을 외국 문학을 읽고 번역하며 조용히 살아갔다. 그가 생의 끝자락에서 완성한 유일한 장편 소설은 당시 여러 출판사로부터 외면받았다. 그러나 그가 숨을 거둔 지 1년 뒤에 세상에 나왔고, 이듬해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거머쥐며 이탈리아 문단의 풍경을 뒤흔들었다.소설은 단지 한 귀족 가문의 쇠락사만 담은 작품이 아니다. 작품은 빛과 그림자가 얽히듯 아름다움과 쇠락, 삶과 죽음, 전통과 변화, 위계와 갈등이 교차하는 풍경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모든 게 그대로 유지되길 원하면,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 이 역설적인 선언은 시대의 변곡점에서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운다.영국 일간 가디언은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의 드라마는 그저 자극적이고 호화로운 볼거리만은 아니다”며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감각적인 연출 너머로 격변의 시대에 지배계층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날카롭게 들여다본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양배추 달아요’ 대사 하나에 관식이란 인물이 다 담겼다고 생각했어요.” 배우 박보검(32·사진)은 24일 서울 영등포구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주인공 관식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관식은 어린 시절부터 애순(아이유)을 한결같이 바라보고 곁을 지키는 인물이다. 시장에서 애순 대신 양배추를 팔아주는 등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한다.“애순이를 향한 보호와 응원, 믿음이 그 말 안에 다 들어 있어요. 짧은 대사지만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인 관식을 박 배우는 “듬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는 아버지 역할을 해본 게 처음이다. “한 생명체가 날 바라보는 설정 자체로도 귀하고 소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극 중반부 아픈 가족사를 겪으며 관식은 무너지고 만다. 박 배우는 “그 감정을 다 표현할 순 없지만, 부모의 슬픔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랐다”며 “촬영 당시 비가 조금씩 내렸다. 모든 게 감정과 겹쳐서 아무것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떠올렸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 TV쇼 부문 세계 4위를 기록 중이다. 그는 “사람들은 관식처럼 묵묵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존재를 믿는다”라며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라 더 의미 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이 ‘자신의 삶에 어떤 계절로 남을 것 같냐’고 묻자 그는 살포시 미소 지었다.“지금 제 삶의 계절은 봄 같아요. 이 작품을 하며 마음속에서 무언가 새롭게 피어나고 있거든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양배추 달아요.”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양관식이 건넨 이 짧은 말 한마디에는 평생을 담은 마음이 실려 있었다. 드러내지 않고 지켜온 사람,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준 인물.박보검(32)은 이 대사를 언급하며 조용히 말했다. “그 말 안에 관식이라는 인물이 가진 마음이 다 들어 있어요. 짧은 대사지만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죠.”24일 서울 영등포구 한 호텔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박보검은 양관식을 떠올리며 여러 번 “멋진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부터 그랬고, 연기를 거듭할수록 그 인물의 깊이에 더 빠져들었다고 했다. “이 인물을 통해 저를 돌아보게 됐어요. 저도 관식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관식은 애순(아이유)을 향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애순을 지켜보며 자란 그는 시장에서는 양배추를 팔고, 힘겨운 삶 앞에서도 말없이 곁을 지킨다. 박보검은 관식을 “듬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다.“그런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겠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그는 관식이라는 인물이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도 말했다.“어렸을 때부터 애순을 향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진 않지만 행동으로 계속 보여줬잖아요. 다 말은 안 해도, 그 마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사람이죠.”이번 작품에서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가족의 죽음을 겪으며 깊은 상실 앞에 무너진다. 그 장면은 배우에게도 낯설고 깊은 감정을 남겼다.“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부모가 자식을 잃는다는 건 상상조차 어렵죠. 표현이 부족하더라도, 그 감정이 조금이라도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촬영 당일은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모든 게 감정과 겹쳐서,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맞다고 느껴졌어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그 장면에선 오히려 이모들을 바라보며 감정을 누르려고 했죠.”현장을 함께한 아역 배우와 스태프들의 분위기 역시 그를 깊이 몰입하게 했다.“아역 배우가 추운 날씨에도 손을 덜덜 떨면서 연기하던 모습이 기억나요. 그 아이가 감정적으로 버티는 걸 보면서 저도 무너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관식은 말수가 적은 인물이다. “관식의 무기는 성실함이에요. 맡은 바를 묵묵히 해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그는 애순과의 관계에 대해 “둘이 함께한 모든 순간이 애틋하게 느껴졌다”고 했다.극 중 애순은 힘든 삶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관식은 그런 애순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다. 말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드라마가 전하고자 했던 정서를 가장 잘 보여준다.드라마를 촬영하며 그는 주변의 따뜻한 시선들 속에서 관식의 삶을 이해해갔다. “어딘가에 이런 사람이 정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 관식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믿어요.”그는 또 “세상이 각박해진 지금이기에 오히려 이런 사람이 더 귀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라 더 의미 있었어요.”‘폭싹 속았수다’는 박보검의 군 제대 이후 첫 복귀작이다. 대중 앞에 다시 서기까지 그가 택한 이 작품은 그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됐다. “군대 제대 후 본격적으로 연기한 첫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더 애정을 갖게 됐죠.”그는 “이 드라마로 다시 연기를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이 작품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질 것 같다”고 했다.드라마 외에도 최근 박보검은 음악 프로그램 ‘박보검의 칸타빌레’ MC로도 활약하고 있다. “뮤지션분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듣는 게 정말 특별한 경험이에요. 매회 공부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그는 “음악이라는 감정을 연기처럼 표현하는 예술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배우로서도 큰 자극이 된다”고 했다.이 드라마가 자신의 삶에 어떤 계절로 남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봄이라고 답했다.“이 작품을 하면서 마음속에서 무언가 새롭게 피어나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 제 삶의 계절은 봄 같아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50∼1960년대 한국 지성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잡지 ‘사상계(思想界)’가 약 반세기 만에 재창간된다. 23일 사상계 재창간을 준비 중인 ‘사상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다음 달 1일 ‘응답하라 2025!’를 주제로 창간 72주년 기념 특대호이자 재창간 1호를 발간한다고 밝혔다. 1970년 5월 20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된 지 약 55년 만이다. 재창간호에는 12·3 비상계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등에 대한 글이 실린다. 발행인은 창간자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한 장준하 선생(1918∼1975)의 장남인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76)이다. 사상계는 1953년 4월 창간됐다. 1970년 5월호에 시인 김지하(1941∼2022)의 시 ‘오적(五賊)’을 실었다는 이유로 폐간됐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23일(현지 시간) 병원에서 퇴원할 예정이라고 교황 의료팀이 22일 발표했다.교황청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교황 의료팀장인 세르조 알피에리 제멜리 병원 외과과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교황이 (바티칸 거처인) 산타 마르타의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황은 지난달 14일부터 폐렴으로 병원에 머물렀다.교황 의료팀은 교황이 그동안 4차례 호흡곤란을 겪는 등 여러 차례 고비를 맞았으나 최근에는 병세가 눈에 띄게 호전됐다고 전했다. 알피에리 과장은 “교황이 겪은 4차례의 호흡곤란 중 두 번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했다”며 “분명히 살이 빠졌지만, 다행히 체중에 여유가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알피에리 과장은 또 “회복을 위해 최소 두 달간의 휴식과 재활이 필요하다”며 “대규모 인원을 만나는 일정이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활동은 자제할 것을 조언했다”고 말했다.의료진이 교황에게 최소 두 달간의 안정을 권고함에 따라 교황이 예정된 공식 일정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교황은 다음달 8일 바티칸에서 찰스 3세 영국 국왕을 접견하고 같은 달 20일에는 부활절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었다.교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최근 며칠 동안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기도를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며 “비록 직접 여러분과 함께할 수는 없지만, 하느님 안에서 나와 여러분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누구나 한 번쯤 방에 들어갔다가 ‘내가 뭘 하려고 했지?’ 하고 멈칫한 적이 있을 것이다. 또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 참 좋았지”라고 말하곤 하지만, 과연 그 기억이 온전히 사실일까 헷갈리기도 한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신경과학과 교수인 저자는 “우리의 기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매 순간 재구성된다”고 말한다. 기억은 고정된 사진이 아니라 과거 경험 조각들이 순간순간 다시 짜인다는 것이다. 책은 다양한 신경과학 이론을 활용해 기억의 본질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에 나오는 기억에 대한 흥미로운 개념을 유명 영화들과 연관 지어 살펴봤다. ① 왜 방금 전 일을 잊어버릴까=영화 ‘메멘토’(2000년)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겪는 주인공이 단서를 따라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는 이처럼 기억이 끊기는 현상을 “사건의 경계선”이라 부른다. 기억은 연속적인 흐름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 단위로 저장된다. 따라서 한 공간에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이전 사건과의 연결이 약해져 순간적으로 ‘메멘토’처럼 불과 얼마 전의 일을 잊어버린다. 우리가 방금 하려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뇌의 정상적인 작동 방식이다. ② 왜 호기심이 생길까=영화 ‘인터스텔라’(2014년)에서 아버지 쿠퍼는 우주 탐사를 떠나기 전 딸 머피가 이상한 책장 움직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본다. 이는 호기심과 관련된 인간의 본능적 반응이다. 예상치 못한 정보를 접했을 때 뇌가 즉각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으로 ‘정향 반응’이라 부른다. 또 우리의 뇌는 정보가 부족할 때 호기심을 자극하고, 도파민 분비를 유도해 학습을 촉진한다. 이는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얻을 때 느끼는 쾌감의 원리이기도 하다. ③ 왜 젊은 시절을 자주 떠올릴까=영화 ‘라라랜드’(2016년)의 결말에선 주인공들이 서로의 꿈을 좇아 다른 길을 걷게 된 뒤 과거의 선택을 돌이켜 보며 대체로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자는 이처럼 인간이 과거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회상하는 경향을 “회고 절정”이라 부른다. 특히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경험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된다. 이 시기에 감정적으로 강렬한 사건이 많기 때문이다. ④ 왜 잘못된 정보에 쉽게 속을까=영화 ‘돈 룩 업’(2021년)은 현대 사회에서 허위 정보가 어떻게 퍼지는지를 풍자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과학자들이 인류를 위협하는 혜성 충돌을 경고하지만,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에 휘둘려 무시한다. 저자는 이처럼 부정적인 정보가 긍정적인 정보보다 더 빠르게 확산하는 이유를 ‘부정성 편향’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부정적인 정보를 먼저 기억한다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하는지를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과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기억과 관련된 개념을 쉬운 언어로 풀어쓴 것도 장점이다. 도전과 실수에서 배운 것을 더 잘 기억하는 ‘실수 기반 학습’, 스스로 배운 것을 시험 치르는 무의식적 작용인 ‘수면의 효과’ 등 실제 생활에 적용하기 좋은 다양한 기억의 메커니즘을 일별해 볼 수 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속 스파이 ‘제임스 본드’. 대니얼 크레이그(56)에 이어 새로운 007은 과연 누가 맡게 될까. 최근 미국 아마존이 영국의 대표적인 첩보물 ‘007 시리즈’의 창작 통제권을 인수하면서 영미권 영화계가 들썩이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달 소셜미디어에 “차기 본드는 누구여야 할까?”라는 글을 올리자, 007 팬덤도 난리가 났다. 영국 백인 배우만 맡아 왔던 본드를 비(非)영국인이거나 다른 인종이 연기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5대 본드였던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마저 “본드는 반드시 영국인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갑론을박에 기름을 끼얹었다.● ‘슈퍼맨 007’ ‘블랙 007’ 등장할 수도 영화 ‘007 시리즈’는 1953년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1908∼1964)이 쓴 소설에 등장하는 영국 MI6 첩보원 제임스 본드가 주인공이다. ‘살인번호’(1962년)부터 ‘노 타임 투 다이’(2021년)까지 25편이 제작됐다.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 같은 현대 첩보 영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주로 이런 첩보물은 미국 중심이지만 007 본드는 오랫동안 ‘영국 영화의 자존심’으로 여겨졌다. 역대 본드 6명 중 4명이 영국인이었으며, 나머지 2명도 영연방 국가(호주, 아일랜드) 출신이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선 아마존이 관객층을 넓히기 위해 ‘전략적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인 파리’에 출연한 루시엔 라비스카운트(31·영국)가 첫 ‘흑인 본드’ 후보로 꼽히는 이유다. 미 배우 오스틴 버틀러(32), 영화 ‘글래디에이터 2’(2024년)에서 주연을 맡은 아일랜드 출신 폴 메스컬(29)도 거론된다. 전통 유지를 바라는 팬들의 기대도 만만치 않다. 영국 BBC 방송은 “영국 출신이자 영화 ‘맨 오브 스틸’(2013년)에서 슈퍼맨으로 나온 헨리 카빌(41)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했다. 과거 ‘카지노 로얄’(2006년) 오디션에서 6대 본드 크레이그와 경쟁했던 경험도 있다. 카빌은 강인한 근육질 백인이란 점에서 기존 본드 이미지를 잘 계승할 배우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다소 연령이 높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화 ‘킥애스’(2010년)에서 액션 연기를 선보인 에런 존슨(34)과 드라마 ‘맥마피아’(2018년)로 인기를 끈 제임스 노턴(39) 등도 유력 후보”라고 분석했다.● 놀런의 ‘007’ 기대해도 될까 본드만 바뀌는 게 아닐 수도 있다. 007 시리즈의 분위기나 주제 자체도 변할 가능성이 크다. 크레이그가 연기한 본드는 고통을 견디며 현실적인 싸움을 벌이는 스파이였다. 하지만 아마존이 007이 좀 더 ‘대중적인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면, 3대 로저 무어(1927∼2017)처럼 유머와 위트 넘치는 본드로 회귀할 수도 있다. 악당의 설정도 달라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과거 007 시리즈는 냉전 시대 소련 관련 스파이가 주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현실적인 위협은 인공지능(AI)이나 기후 변화, 극우 정치 등이다.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악당의 등장이 높게 점쳐지는 이유다. ‘거장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수도 있다. 현지에선 크리스토퍼 놀런(54)이나 드니 빌뇌브(57) 등이 차기 007 연출자로 얘기된다. 특히 놀런은 영화 ‘테넷’(2020년)에서 복잡한 첩보 액션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적이 있다. 007 팬들은 ‘시간을 활용한 스파이 액션’ 같은 새로운 스타일을 기대한다. 한편 영국 패션지 보그는 “아마존이 007 시리즈를 확장하면 ‘본드 걸’이나 악당이 주인공인 스핀오프 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고도 예측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속 스파이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에 이어 새로운 007은 과연 누가 맡게 될까. 최근 미국 아마존이 영국의 대표적인 첩보물 ‘007 시리즈’의 창작 통제권을 인수하면서 영미권 영화계가 들썩이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달 소셜미디어에 “차기 본드는 누구여야 할까?”라는 글을 올리자, 007 팬덤도 난리가 났다. 영국 백인 배우만 맡아왔던 본드가 비(非)영국인이거나 다른 인종이 연기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5대 본드였던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마저 “본드는 반드시 영국인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갑론을박에 기름을 끼얹었다.● ‘슈퍼맨 007’ ‘블랙 007’ 등장할 수도 영화 ‘007 시리즈’는 1953년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1908~1964)이 쓴 소설에 등장하는 영국 MI6 첩보원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이다. ‘살인번호’(1962년)부터 ‘노 타임 투 다이’(2021년)까지 25편이 제작됐다.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 같은 현대 첩보 영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주로 이런 첩보물은 미국 중심이지만, 007 본드는 오랫동안 ‘영국 영화의 자존심’으로 여겨졌다. 역대 본드 6명 중 4명이 영국인이었으며, 나머지 2명도 영연방 국가(호주, 아일랜드) 출신이었다.하지만 할리우드에선 아마존이 관객층을 넓히기 위해 ‘전략적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인 파리’에 출연한 루시엔 라비스카운트(31·영국)가 첫 ‘흑인 본드’ 후보로 꼽히는 이유다. 미 배우 오스틴 버틀러(32), 영화 ‘글래디에이터 2’(2024년)에서 주연을 맡은 아일랜드 출신 폴 메스칼(29)도 거론된다.전통 유지를 바라는 팬들의 기대도 만만치 않다. 영 BBC방송은 “영국 출신이자 영화 ‘맨 오브 스틸’(2013년)에서 슈퍼맨으로 나온 헨리 카빌(41)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했다. 과거 ‘카지노 로얄’(2006년) 오디션에서 6대 본드 대니얼 크레이그(56)와 경쟁했던 경험도 있다. 카빌은 강인한 근육질 백인이란 점에서 기존 본드 이미지를 잘 계승할 배우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다소 연령이 높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영 일간 가디언은 “영화 ‘킥애스’(2010년)에서 액션 연기를 선보인 애론 존슨(34)과 드라마 ‘맥마피아’(2018년)로 인기를 끈 제임스 노턴(39) 등도 유력 후보”라고 분석했다.● 놀런의 ‘007’ 기대해도 될까본드만 바뀌는 게 아닐 수도 있다. 007 시리즈 분위기나 주제 자체도 변할 가능성이 크다. 크레이그가 연기한 본드는 고통을 견디며 현실적인 싸움을 벌이는 스파이였다. 하지만 아마존이 007을 보다 ‘대중적인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면, 3대 로저 무어(1927~2017)처럼 유머와 위트 넘치는 본드로 회귀할 수도 있다. 악당의 설정도 달라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과거 007 시리즈는 냉전 시대 소련 관련 스파이를 주적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현실적인 위협은 인공지능(AI)이나 기후 변화, 극우 정치 등이다.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악당의 등장이 높게 점쳐지는 이유다.‘거장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수도 있다. 현지에선 크리스토퍼 놀런(54)이나 드니 빌뇌브(57) 등이 차기 007 연출자로 얘기된다. 특히 놀런은 영화 ‘테넷’(2020년)에서 복잡한 첩보 액션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적이 있다. 007 팬들은 ‘시간을 활용한 스파이 액션’ 같은 새로운 스타일을 기대한다. 한편 영국 패션지 보그는 “아마존이 007시리즈를 확장하면 ‘본드 걸’이나 악당이 주인공인 스핀오프 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고도 예측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