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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적용 항목을 늘려 환자 부담이 줄면서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비와 노인 진료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예측보다 1.6∼1.7배 많아 건강보험 재정에서 계획에 비해 1800억 원 이상 더 지출된 것으로 추산됐다. 보건복지부는 23일 제2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올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모니터링 결과와 내년 추진 과제를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이 적용되거나 강화된 항목 가운데 뇌·뇌혈관 MRI와 노인 진료비, 12세 이하 광중합형 복합레진 충치 치료 등 3가지의 건강보험 진료 청구액이 정부 예측보다 60% 이상 늘었다. 지난해 10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된 뇌·뇌혈관 MRI는 올해 진료 청구액이 2730억∼2800억 원으로 추산돼 정부가 예상했던 1642억 원보다 1100억 원 이상 많았다.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확대된 노인 외래 진료비도 진료 청구액이 예상치인 1056억 원을 훌쩍 넘은 1790억∼1840억 원으로 추산됐다. 복지부는 뇌·뇌혈관 MRI의 경우 “오·남용 경향이 있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과잉 진료를 인정한 것이다. 정부 조사 결과 두통이나 어지럼증 같은 가벼운 증상에 따른 MRI 촬영이 늘었다. 특히 병·의원급 진료비 증가율은 대학병원의 최대 10배에 이르렀다. 정부는 내년 3월부터 두통이나 어지럼증만으로 MRI를 찍을 때는 환자 본인부담률을 현행 30∼60%에서 80%로 높이고 병원이 불필요한 MRI(복합촬영)를 찍는 경우 수가(酬價)를 낮게 적용해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노인 외래 진료도 과잉 진료가 있었는지 면밀히 살필 계획이다. 지난해 1월부터 진료비가 1만5000∼2만 원인 경우 본인부담률이 30%에서 20%로 낮아졌다. 정부는 이 구간 진료가 대폭 늘었는지 등을 분석할 예정이다. 일부 진료가 급증했음에도 정부는 “과잉 진료가 전반적으로 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올해 총진료청구액은 예상보다 12∼15% 적었다는 것. 손영래 복지부 예비급여과장은 “MRI 등을 빼면 나머지 진료비는 예상보다 적어 전체 집행액을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항목별 추계와 집행액 차이를 점검해 필요하면 뇌 MRI처럼 급여를 조정할 계획이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급여 진료의 오·남용 사례를 예측 못 해 정확한 건보재정 추계가 어려운 만큼 일부 모럴 해저드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2월부터 부인과 초음파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많게는 17만 원이던 진료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여성 생식기 초음파는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이 적용된 항목 중 수혜자가 가장 많고 보장금액도 가장 크다. 정부는 연간 여성 700만 명이 3300억 원의 진료비를 절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문재인 케어에 투입될 비용은 올해보다 약 1조 원 늘어난 6조1000억 원으로 추산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18일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을 찾았다. 1년 전 고 임세원 교수가 사력을 다해 달렸을 복도에는 이제 보안인력 한 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진료실 안에는 방화유리로 된 호신장비가 보였다. 병원 관계자는 “진료실 내 비상벨과 비상구는 사건 당시에도 있었다”며 “임 교수님도 비상벨을 누르고 비상구로 탈출하셨지만 범죄를 피하진 못하셨다”고 말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임 교수가 진료 중이던 환자의 흉기에 안타깝게 생명을 잃자 의료계와 국민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 이후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병원 보안을 강화하고 의료인을 폭행한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 ‘임세원법’(의료법 개정안 등)이 올해 국회를 통과했다. 100병상 이상의 병원급 의료기관은 모두 경찰청과 연결된 비상벨을 설치하고 1명 이상의 보안인력을 둬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의료인 폭행사건이 이어지면서 의료현장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못했다. 이달 16일 충남 순천향대부속 천안병원에서는 사망한 환자 유족들이 신장내과 교수를 진료실에 가두고 무차별 폭행하는 일이 있었다. 이 병원 응급실과 정신과 진료실에는 비상벨, 비상구 등 안전시설이 있었지만 다른 진료실에는 없었다. 두 달 전에는 서울 노원구 을지대 을지병원에서 정형외과 환자가 진료실에 난입해 칼을 휘둘러 의사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을지병원 역시 응급실, 정신과, 병동에만 비상벨을 둔 상태였다. 법에 따르면 비상벨과 보안인력 배치는 병원 자율이다. 그렇다고 보안인력 배치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는 일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행 첫해 병원 보안인력 지원금으로 들어가는 돈만 연간 수십억 원으로 추산된다. 보안시설이 완벽하다고 사건을 다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인 을지병원 이창훈 교수는 “환자가 들어오자마자 칼을 휘둘러 비상벨이 있었다 해도 누르거나 도움을 받을 순 없었을 것 같다”며 “불시의 공격을 완력이나 도구로 막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인 폭행 예방을 위해 처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 의료법 중 ‘반의사불벌죄’(피해자 의사에 반하면 처벌할 수 없는 죄)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후약방문’ 대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대형병원 쏠림, 낮은 수가, 비급여 진료 증가 등 의료계의 해묵은 문제들 탓에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며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무너진다면 그 어떤 대책에도 폭행 사건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방향이든 앞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은 절대 없도록 더 촘촘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이미지 정책사회부 기자 image@donga.com}

세종대는 27일부터 31일까지 정시모집 원서접수를 실시한다. 올해 정시모집을 통해 선발할 인원은 총 959명이다. ‘가’군 30명, ‘나’군 929명이다. 인문·자연계열은 ‘나’군에서 선발하는데 전년도와 같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100%를 반영해 신입생을 뽑는다. 학교생활기록부 교과등급에 비해 좋은 수능 점수를 받은 수험생이라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예체능계열은 ‘가’·‘나’군에서 선발하는데 ‘가’군의 영화예술학과 연출제작 전공과 무용과를 제외한 모든 학과를 ‘나’군에서 뽑는다. 단 무용과와 영화예술학과 연기예술 전공은 수시 미충원 인원 발생 시에만 정시 선발을 진행한다. 각 세부 전공별 전형방법 및 실기고사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지원을 희망하는 수험생은 반드시 모집요강을 참고해야 한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현재 일반 직장에 재직 중인 자의 진학을 위해 마련된 특성화고교졸재직자전형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나’군 호텔외식관광프랜차이즈경영학과와 글로벌조리학과에서 각 10명씩 선발한다. 수능 성적은 국어, 수학 영역의 경우 표준점수, 영어 영역은 등급, 그리고 탐구 영역은 백분위 점수를 반영한다. 계열별 반영유형 및 비율은 인문계열이 국어(30%), 수학 나형(30%), 영어(20%), 사회탐구 2개 과목(20%), 자연계열(창의소프트학부 제외)이 국어(15%), 수학 가형(40%), 영어(20%), 과학탐구 2개 과목(25%)이다. 창의소프트학부는 국어(35%), 수학 가 또는 나형(35%), 영어(20%), 탐구 2개 과목(직업탐구 제외, 10%)이다. 창의소프트학부는 수학 가형 응시자에게 수학 반영점수의 5% 가산점을 부여한다. 해당 반영 영역에 응시해야 지원이 가능하므로 반드시 계열별로 확인해야 한다. 계약학과를 제외한 인문·자연계열 모집단위의 경우 작년과 마찬가지로 한국사 과목 등급별로 가산점을 부여하므로 가산점에서 만점을 희망한다면 한국사 과목에서 3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군 장학생 특별전형은 자연계열에 속하지만 인문계열 수능에 응시한 학생도 지원이 가능하다. 국방시스템공학과와 항공시스템공학과 모두 국어(15%), 수학(40%), 영어(20%), 탐구 2개 과목(25%)을 반영하며, 수학 가형 응시자에게 수학 반영점수의 10% 가산점을 부여한다. 또 정시전형 중 유일하게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있다. 국방시스템공학과의 경우 ‘국어, 수학, 영어 3개 영역 등급의 합이 9 이내(한국사 필수 응시)’를 충족해야 하고 항공시스템공학과의 경우 ‘국어, 수학, 영어 3개 영역 등급의 합이 9 이내와 한국사 영역 3등급 이내’를 충족해야 합격이 가능하다. 예체능계열은 국어(70%), 영어(30%)를 반영하며 학과별로 실기고사 반영비율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지원 시 주의해야 한다. 관련 문의는 입학처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세종대는 우수한 신입생을 대상으로 ‘Sejong Honors Program(SHP)’을 시행하고 있다. 글로벌 창의리더 양성을 위해 기획한 영재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수술에 성공하고 기쁜 마음으로 아주대 교수님들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17일 국군수도병원 국군외상센터 외상진료팀장 이호준 소령(37·사진)의 목소리는 흥분돼 있었다. 6일 저녁 헬기로 도착한 김모 상병(21)의 팔은 두 차 사이에 끼여 짓이겨져 뼈가 부러지고 혈관까지 끊어져 있었다. 이 소령은 “일반 외과 환자는 혈관까지 다 끊어진 경우가 많지 않다”며 “이국종 교수님과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함께한 2년이 아니었다면 신속한 대처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6년째 군에 몸담고 있는 이 소령은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에 파견 나와 있던 2017년, 귀순하다 총에 맞은 북한군 오청성 씨를 이 교수와 함께 수술했다. 군에서 자주 발생하는 심한 외상을 더 잘 치료하기 위해 파견을 자원했다. 2년간의 수련은 혹독했지만 매일이 꿈만 같았다. “이 교수님이 구축한 권역외상센터는 외과의로서는 천국 같았습니다. 그런 곳에서 일할 수 있어 행복했지요.” 올 3월 국군외상센터로 복귀한 이 소령은 아주대의 응급체계를 군병원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치료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김 상병 사고도 곧장 군 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접수됐고 국군외상센터에 상주한 외과 전문의들이 화상(畵像)으로 상태를 판단해 헬기를 띄웠다. 이 덕분에 김 상병은 사고 1시간 만에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료진은 수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소령은 12시간의 수술 끝에 김 상병의 팔을 살려냈다. 이 교수에게 배운 대로 평소 외국 사례를 연구한 덕에 미군의 수술 사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소령은 “이 교수님께서 아주대에 권역외상센터를 세우셨듯이 나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수술에 성공하고 기쁜 마음으로 아주대 교수님들께 전화를 드렸다.” 17일 국군수도병원 국군외상센터 외상진료팀장 이호준 소령(37)의 목소리는 상기돼있었다. 6일 저녁 헬기로 도착한 김모 상병(21)의 팔은 두 차 사이에 끼어 짓이겨져 뼈가 부러지고 혈관까지 끊어져 있었다. 이 소령은 “일반 외과 환자는 혈관까지 다 끊어진 경우가 많지 않다”며 “이국종 교수님과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에서 함께 한 2년이 아니었다면 신속한 대처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6년째 군에 몸담고 있는 이 소령은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에 파견 나와 있던 2017년, 귀순하다 총에 맞은 북한군 오청성 씨를 이 교수와 함께 수술했다. 군에서 자주 발생하는 심한 외상을 더 잘 치료하기 위해 파견을 자원했다. 2년간의 수련은 혹독했지만 매일이 꿈만 같았다. “이 교수님이 구축한 권역외상센터는 외상외과의로서는 천국 같았습니다. 그런 곳에서 일할 수 있어 행복했지요.” 올 3월 국군외상센터로 복귀한 이 소령은 아주대의 응급체계를 군병원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치료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김 상병 사고도 곧장 군 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접수됐고 국군외상센터에 상주한 외과 전문의들이 화상(畵像)으로 상태를 판단해 헬기를 띄웠다. 이 덕분에 김 상병은 사고 1시간 만에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료진은 수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소령은 12시간의 수술 끝에 김 상병의 팔을 살려냈다. 이 교수에게 배운 대로 평소 외국 사례를 연구한 덕에 미군의 수술 사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소령은 “이 교수님께서 아주대에 권역외상센터를 세우셨듯이 나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서울에 사는 직장인 A 씨(28)는 얼마 전 목과 허리가 아파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일자목과 척추측만증 소견이 있다”며 “실손보험이 있으면 도수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 1회에 19만8000원이었지만 실손보험을 적용하니 실부담이 1만5000원에 불과해 A 씨는 총 20회 치료를 받았다. A 씨는 실손보험료로 매달 4만2036원을 내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 국민 의료비를 줄이겠다는 목표로 추진하는 ‘문재인 케어’가 시행된 후 동네 병의원이 급여 항목 확대로 생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늘리고 있는 사례다. 당장은 부담하는 비용이 적지만 비급여 진료의 증가가 전체 의료비 상승이나 실손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환자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2017년 8월 발표된 문재인 케어는 2022년까지 30조6000억 원을 투입해 3800여 개 비급여 대상을 급여화해서 개인 의료비에서 건강보험 급여비가 차지하는 비율(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10년 넘게 60%대 초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정부는 ‘점진적 확대가 아닌 획기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전년 대비 1.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고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0.5%포인트만 하락했다. 비급여 진료비 총액은 15조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조2000억 원(8.4%) 늘었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찔끔 늘어 지난해에만 2조4000억 원을 투입해 300여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했는데 변화 폭은 작은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급여 풍선효과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한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많아져 수익 악화에 몰린 일반 병의원이 또 다른 비급여 진료를 늘렸다는 뜻이다. 실제 상급종합 및 종합병원은 건강보험 보장률이 오른 반면에 병의원 보장률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더 떨어졌다. 비급여 진료 비중은 병원이 34.1%였고, 의원은 22.8%로 전년보다 3.2%포인트 올랐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역대 모든 정부가 급여 항목을 늘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비급여가 늘어났기 때문에 보장률 강화에 실패했다”며 “비급여를 잡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했다. 급여 항목이 늘자 ‘과잉 진료’도 늘고 있다. 지난해 개인 진료비 총액은 93조3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11.4%나 늘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후 지급금으로 진료비가 폭증한 2016년을 제외하곤 근래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병실료 등이 급여화하면서 이용 횟수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전체 진료비가 늘면 보장률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장 금액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 ○ “재정 고갈 막으려면 급여·비급여 틀 손봐야”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건강보험 보장률 목표치인 70% 도달도 어려울뿐더러 3500여 개 항목의 급여화를 마무리하는 데도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측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지난해 1778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정부의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르면 올해 3조1636억 원, 내년 2조7275억 원 등 2023년까지 6년간 9조6932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재정 고갈을 막으면서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현 급여·비급여 운영체계를 손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비급여를 의료기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도록 둔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며 “미국 등 선진국처럼 민간 의료보험 대상 비급여 항목을 정하고 정부와 민간이 가격과 서비스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일본처럼 급여·비급여 혼합 진료를 금지해 비급여를 제한하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이미지 image@donga.com·위은지 기자}
정부가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문재인 케어’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난해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진료비가 전년보다 1조2000억 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증가 폭 8000억 원보다 4000억 원이 더 늘었다. 1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8년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는 2조4000억 원을 투입했지만 건강보험 보장률(전체 의료비 중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은 2017년보다 1.1%포인트 오른 63.8%에 그쳤다. 지난해 전체 의료비가 100만 원이라면 이 중 36만2000원을 환자가 부담했다는 의미다. 중증질환자 중심으로 보장성이 강화돼 상급종합병원의 보장률은 전년보다 3.6%포인트 오른 68.7%였지만 의원급은 57.9%로 2.4%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비급여 진료비 비율은 16.6%로 전년 대비 0.5%포인트밖에 줄지 않았다. 정부는 2022년까지 보장률을 7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건보 보장률 개선 속도가 더딘 것은 급여 항목 확대로 손실이 커진 동네 병의원을 중심으로 비급여 진료가 늘어난 ‘풍선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턱이 낮아진 상급병원으로 환자가 쏠리자 동네 병의원은 도수치료, 영양주사 등 비급여 진료를 늘려 수익을 유지하는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1778억 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그 18배에 이르는 3조1636억 원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박성민 min@donga.com·이미지 기자}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와 소득주도성장, 북한 비핵화 등 정부가 올해 시행한 경제와 외교안보 정책이 줄줄이 낙제점을 받았다.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국민 기대를 거스르는 일방통행식 정책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아일보가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와 함께 올해 정부 각 부처가 시행한 △경제 △사회복지 △교육문화 △외교안보 4개 분야 40개 정책을 선정해 실현 가능성과 만족도 등을 분석한 ‘2019년 대한민국 정책평가’ 결과다. 평가 결과에 따르면 보통(3점) 미만을 받은 9개 정책 중 경제 관련 정책이 5개, 외교안보 정책이 4개였다.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정책은 5점 만점에 2.55점을 받은 국토교통부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정책이었다. 정부는 분양가를 낮춰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취지로 이 정책을 추진했지만 청약 경쟁률이 치솟고 신축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은 지난해 40위에서 올해 39위로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의 정책 추진 속도를 조절하고 있지만 지난 3년간 소상공인들이 받은 피해를 만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높은 점수(3.44점)를 받으며 10위권에 들었던 남북관계 관련 정책은 ‘북한 비핵화 촉진’(2.82점) ‘남북 경제 활로 개척’(2.84점) 등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며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정부 기대와 달리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끊이지 않는 등 북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서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가 쌓이고 있어서다. 미국과 방위비 분담, 일본과 군사 협력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개국(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과의 불협화음이 이어지며 주변 4개국과의 외교도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반면 일본산 수입 식품 분쟁에서 승소(1위)하고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을 추진한 것(13위) 등 이른바 ‘극일(克日) 정책’이 호평을 받았다. 의료비 부담 경감(2위) 및 국민기초생활 보장(3위) 등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 정책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2.38점에서 현 정부 첫해인 2017년 3.27점으로 급등했다가 올해 2.82점으로 하락했다. 최진욱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좋은 의도의 정책이라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목표와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면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며 “정부 출범 시 국민이 갖고 있던 기대가 정책으로 충족되지 않으면서 신뢰도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이미지·한기재 기자}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숨은 쉬고 살아야 할 거 아니에요!” 엄마들은 사나흘 걸러 한 번씩 마스크를 써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분노했다. 매일 아침 날씨를 확인하듯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 온 국민의 일상이 됐다. 이런 분위기는 동아일보와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및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분석한 사회복지 분야 정책평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응책이 연이어 발표됐지만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대책’은 전문가와 일반인 평가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비롯한 고용 정책은 사회복지 분야 최악의 정책으로 꼽혔다.○ 효과와 체감도 낮은 미세먼지 정책 찌뿌듯한 하늘만큼 국민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한 해였다. 정부는 2022년까지 미세먼지를 2014년 대비 35.8% 감축하겠다며 세부 대책을 발표했지만 국민의 만족도는 낮았다. 미세먼지 대책은 종합평가 3.14점(5점 만점)으로 사회복지 11개 정책 중 하위 3위였다. 특히 세부 항목인 효과성과 만족도가 각각 2.7점, 2.9점으로 가장 낮았다. 경유차와 발전소 규제, 친환경차 확대, 취약계층 지원 등을 내놨지만 미세먼지 평균 농도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초미세먼지 수치가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효과를 크게 느끼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정책의 특성상 곧장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대책 마련과 컨트롤타워 구축을 조언했다. ‘일회용품 감소 및 친환경 소비문화 확산 정책’은 종합평가 3.47점을 기록했다. 골고루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구체적인 제도와 기업 부담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근로시간 단축 가장 낮은 평가 올 7월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단축이 현장에서 잘 정착하도록 지원 대책을 세웠다. 기업의 신규 채용과 임금 보전 지원 강화, 근로시간 조기 단축 기업에 대한 우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 현장 안착 정책’은 종합평가 2.92점으로 사회복지 정책 중 가장 낮았다. 인지도는 3.7점으로 꽤 높았지만 효과성은 2.6점으로 가장 낮았다. 정부학연구소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일부 근로자의 임금 감소가 예상된다”며 “기업의 단기적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 정책도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청년내일채움공제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등을 내세운 ‘청년일자리 정책’은 종합평가 3.03점에 그쳤다. 효과성과 만족도에서 특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 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 근로자와 사업주에게 현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의 한계라는 분석이 나왔다.○ ‘문재인 케어’ ‘고교 무상교육’ 높은 점수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항목을 늘리는 ‘문재인 케어’는 종합평가 3.81점으로 사회복지 정책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목표가 명확하고 사회 현안을 잘 반영했으며 실현 가능성도 높다는 평가였다. 다만 운영 과정에서의 책임성, 효과성, 투명성이 3.3점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 심화와 건강보험 재정 악화, 구체적인 재정 계획 미진 등의 요인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가 추진한 교육문화 10개 정책 가운데서는 고교 무상교육이 가장 좋은 종합평가(3.49점)를 받았다. 고교 무상교육은 올해 2학기 고교 3학년을 대상으로 시행됐고 내년에 고교 2, 3학년으로 확대된다. 2021년에는 고교 전 학년이 대상이 된다. 전문가(4.1점)와 일반인(3.8점) 모두 고교 무상교육 정책에 대한 인지도가 높았다. 정부학연구소 보고서는 “해당 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 분담이 불확실하고 고소득층에도 학비를 일괄 지원하는 것 등은 고교 무상교육의 ‘숙제’로 꼽혔다. 보고서는 “학부모로서는 당장 정부가 학비를 감면해주니 지지하는 것”이라며 “2020년 시행 계획을 2019년 2학기로 앞당긴 것에 대해 총선을 앞두고 ‘정파적 이해를 고려했다’는 논란이 있다”고 밝혔다. 방과후 학교, 도시숲 정책, 온종일 돌봄 정책 등은 3.41∼3.49점으로 상위권을 형성했다. 정부학연구소는 “꾸준히 개선에 나선 정책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은 비교적 낮은 3.01점을 받았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지만 정부가 방송 재허가, 재승인 심사권을 쥐고 있어 언론사 성향에 따라 정책 적용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복지교육 분야 평가: 윤견수, 김희강, 김두래, 정해일 고려대 교수이미지 image@donga.com·송혜미·박재명 기자}

서울에 사는 최모 씨(33·여)는 최근 폐렴에 걸린 자신의 3세 아이를 병원 일반병동 1인실에 입원시켜야 했다. 소아폐렴 입원환자가 너무 많아 소아병동은 물론이고 일반병동 다(多)인실에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진단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주변에 같은 병에 걸린 아이가 한둘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 맘카페에는 ‘마이코플라스마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이 자주 올라온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단어인 마이코플라스마는 폐렴을 일으키는 세균 중 하나다. 주로 소아에게서 많이 발병하고 보통 3, 4년 주기로 유행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최근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환자가 급증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국에서 입원환자만 500∼600명이다. 11, 12월은 0∼9세 소아폐렴 환자가 가장 많은 시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통계에 따르면 2016∼2018년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을 포함한 소아폐렴 환자 대부분이 11, 12월에 진료를 받았다. 연간 전체 환자의 25%다. 폐(肺) 조직에 생기는 염증성질환 폐렴은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에게 흔한 질병이다. 특히 0∼9세 소아는 발병환자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심평원 통계에서도 0∼9세 환자가 전체의 42%를 차지해 60세 이상 고령자(27.5%)를 크게 앞섰다. 폐렴의 원인은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기생충 등 다양하다. 이 중 소아에게 주로 발생하는 폐렴은 마이코플라스마균 폐렴을 비롯해 아데노바이러스 메타뉴모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호흡기합포체바이러스(RSV) 보카바이러스 리노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독감) 폐렴 등이다. 문제는 폐렴을 흔히 감기로 오인한다는 점이다. 보통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많이 발생하는 데다 초기 증상이 발열, 기침으로 감기와 비슷해서다. 그러나 증상이 가볍고 보통 2주 내에 호전되는 일반 감기와 달리 폐렴은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고 감기에서는 볼 수 없는 추가 증상을 동반한다. 면역력이 약한 소아의 경우 폐렴을 감기처럼 가볍게 여기고 방치했다가 병을 더 키워 합병증까지 얻을 수 있으므로 부모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폐렴과 감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고열과 심한 기침, 그리고 호흡 곤란이다. 신윤호 서울 강남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폐렴은 일반적으로 감기보다 기침을 심하게 해 잠을 설칠 정도”라며 “사나흘 이상 고열이 지속되고 호흡수가 분당 60회 이상으로 빨라지거나 숨을 쉴 때 갈비뼈 사이와 아래가 쏙쏙 들어가는 등의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나면 폐렴을 의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발생 원인에 따른 추가 증상도 있다. 신 교수는 “마이코플라스마균 폐렴은 두통 인후통 마른기침, 아데노바이러스 폐렴은 인후통 결막염 증상, RSV 폐렴은 처음 콧물이 나고 기침과 미열이 발생하면서 쌕쌕거리는 호흡 곤란이 나타날 때가 많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구토 설사 경련 식욕부진이 뒤따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치료법은 발생 원인에 따라 다르다. 증상만 보고는 정확하게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병원에서 콧물을 채취하는 검사를 받아야 한다. 폐렴 확진을 받으면 항생제 진해거담제 호흡기치료(네뷸라이저) 같은 약물치료를 받는다. 소아는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보통은 입원치료를 권장한다. 신 교수는 “요즘은 의료기술이 발달해 적절한 항생제를 사용하면 24∼48시간에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며 “치료 시기가 늦어지면 늑막염이나 뇌수막염 같은 합병증이 생길 수 있어 되도록 빨리 증상을 확인해서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불가피하게 집에서 통원치료를 해야 한다면 실내온도를 20도 내외로 유지하고 가습기 등을 이용해 습도를 40∼60%로 맞추는 것이 좋다. 아이에게 수시로 물을 먹이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소아폐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위생관리가 필수다. 늦가을∼겨울 환절기에는 가급적 아이와 함께 혼잡한 장소에 가는 것을 피하고, 외출했다 돌아오면 아이의 이와 손을 닦이는 게 중요하다. 폐렴과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폐렴구균 뇌수막염 독감 등의 예방접종을 정해진 시기에 맞히는 것도 소아폐렴 예방에 도움이 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독감 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백신 무료접종 대상인 12세 이하 어린이 4명 중 1명은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 10명 중 4명이 미접종 상태였다. 9일 질병관리본부 인플루엔자(독감) 국내접종현황 집계에 따르면 11월 마지막주(23∼30일) 12세 이하 어린이 전체 접종률은 73.5%로 여전히 26.5%가 접종을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6∼35개월 영아 접종률이 86.1%로 가장 높았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접종률이 떨어져 36∼59개월은 80.1%, 60∼83개월은 76.3%, 7∼9세는 71.8%를 기록했다. 초등학교 4∼6학년에 해당하는 10∼12세는 접종률이 61.0%였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국내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비율은 일반인의 5배가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민주 교수 연구팀은 2012∼2016년 경찰청 범죄통계 자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바탕으로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5일 밝혔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BMC 정신의학’ 최신호에 실렸다. 조현병은 환각 환청 망상에 시달리거나 사고 감정 지각 등 인지 기능에 광범위한 이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이다. 김 교수 팀 연구에 따르면 국내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2012년 0.72%에서 2016년 0.90%로 소폭 늘었지만 국내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일반인 범죄율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었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비율은 2016년 기준 0.5%로 일반인(0.1%)의 5배에 달했다. 방화와 약물 관련 범죄율도 각각 1.7%, 5.3%로 일반인(0.2%, 1.6%)보다 8.5배, 3.3배 높았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최근 프로축구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상철 감독이 췌장암 투병 중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췌장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자라고도 불리는 췌장은 길이 15cm가량의 가늘고 긴 장기로 위(胃)의 뒤에 있다. 크기는 작지만 소화효소를 만들어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같은 영양분의 소화를 돕고 인슐린 글루카곤을 포함한 여러 호르몬을 분비해 혈당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췌장 안에는 이런 소화액과 분비물이 지나가는 췌관이 있는데 주로 이곳에 종양이 발생해 췌장암으로 진행한다. 췌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 환자 수가 적고 발생률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발병 5년 내 생존율이 5% 전후에 불과할 정도로 사망률이 높다. 췌장암은 증상이 미미한 ‘침묵의 암’이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거의 증상이 없다. 있다 해도 복부나 등 쪽의 통증, 체중 감소, 소화 장애 등 다른 가벼운 질환과 증상이 유사해 지나치기 쉽다. 종종 변비를 겪거나 구역질, 쇠약감, 식욕부진, 우울증, 심하게는 위장관 출혈, 정맥염 증상까지 보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암 검사로 잘 알려진 종양표지자(腫瘍標識子) 혈액검사(CA19-9·CEA)도 췌장암의 경우에는 진단 정확도가 높지 않다. 그나마 특기할 만한 증상은 황달이다. 췌장의 종양이 담즙의 흐름을 막아 혈액 내 빌리루빈 수치가 높아지면서 발생한다. 피부와 눈의 흰자위가 노란색으로 변하고 피부 가려움증이 생기거나 회색 대변, 진한 갈색이나 붉은색 소변을 볼 수 있다. 췌장암 환자의 약 80%가 이런 황달 증상을 보인다. 유 감독도 황달로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증상들이 나타난다면 즉시 췌장암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게 좋다. 진단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복부초음파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으로도 종양을 찾아낼 수 있지만 종종 위장관 가스에 가리거나 다른 염증과 감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가장 정확한 진단법은 내시경을 십이지장까지 삽입해 직접 조영제를 주입하고 췌관을 관찰하는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ERCP)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췌관(이자관) 안에 기구를 넣어 조직검사를 할 수도 있다. 췌장암은 발생 원인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아 별다른 예방수칙이 없다. 다만 흡연과 음주, 고칼로리 식사, 화학물질 노출과 관련성이 높다는 보고가 있어 이런 위험요인은 피하는 것이 좋다. 평소 당뇨가 있거나 가족 중에 췌장염, 췌장암 환자가 있는 사람도 발병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경우에는 별 증상이 없더라도 6개월∼1년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최근 프로축구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상철 감독이 췌장암 투병 중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췌장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자라고도 불리는 췌장은 길이 15㎝가량의 가늘고 긴 장기로 위(胃)의 뒤에 있다. 크기는 작지만 소화효소를 만들어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같은 영양분의 소화를 돕고 인슐린 글루카곤을 포함한 여러 호르몬을 분비해 혈당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췌장 안에는 이런 소화액과 분비물이 지나가는 췌관이 있는데 주로 이곳에 종양이 발생해 췌장암으로 진행한다. 췌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 환자 수도 적고 발생률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발병 5년 내 생존율이 5% 전후에 불과할 정도로 사망률이 높다. 췌장암은 증상이 미미한 ‘침묵의 암’이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거의 증상이 없다. 있다 해도 복부나 등 쪽의 통증, 체중 감소, 소화 장애 등 다른 가벼운 질환과 증상이 유사해 지나치기 쉽다. 종종 변비를 겪거나 구역질, 쇠약감, 식욕부진, 우울증, 심하게는 위장관 출혈, 정맥염 증상까지 보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암 검사로 잘 알려진 종양표지자(腫瘍標識子) 혈액검사(CA19-9·CEA)도 췌장암의 경우에는 진단 정확도가 높지 않다. 그나마 특기할 만한 증상은 황달이다. 췌장의 종양이 담즙의 흐름을 막아 혈액 내 빌리루빈 수치가 높아지면서 발생한다. 피부와 눈의 흰자위가 노란색으로 변하고 피부 가려움증이 생기거나 회색 대변, 진한 갈색이나 붉은색 소변을 볼 수 있다. 췌장암 환자의 약 80%가 이런 황달 증상을 보인다. 유 감독도 황달로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증상들이 나타난다면 즉시 췌장암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게 좋다. 진단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복부초음파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으로도 종양을 찾아낼 수 있지만 종종 위장관 가스에 가리거나 다른 염증과 감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가장 정확한 진단법은 내시경을 십이지장까지 삽입해 직접 조영제를 주입하고 췌관을 관찰하는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ERCP)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췌관(이자관) 안에 기구를 넣어 조직검사를 할 수도 있다. 췌장암은 발생 원인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아 별다른 예방수칙이 없다. 다만 흡연과 음주, 고칼로리 식사, 화학물질 노출과 관련성이 높다는 보고가 있어 이런 위험요인은 피하는 것이 좋다. 평소 당뇨가 있거나 가족 중에 췌장염, 췌장암 환자가 있는 사람도 발병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경우에는 별 증상이 없더라도 6개월~1년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그 집 넷째도 이제 많이 컸죠?” 어버이날 아침, 우리 집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특별한 만남이 이뤄졌다. 네 아이를 둔 워킹맘 두 명의 만남이었다. 한 명은 나, 다른 한 명은 어린이집 학부모로 만난 한 어머니였다. 마침 연배도 비슷해서 진작부터 “한 번 꼭 보자”고 말을 주고받아 왔는데 해를 넘겨 이날에야 자리가 마련됐다. 다자녀 가정이야 찾아보면 어디나 있지만, 솔직히 네 자녀 이상은 잘 없다. 하물며 맞벌이까지 하는 집은 더 적다. 그래서 처음 이 어머니를 만났을 때 서로가 무척 신기했다. 더구나 나이까지 비슷하다니, 나도 주변에서 꽤나 젊은 엄마 축에 드는데 이래저래 희소가치가 큰 만남이었다. 사실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하난 졸업하고 둘은 다니고 있다)엔 다자녀 가정과 맞벌이 가정 자녀가 많은 편이다. 아마도 만3~5세(한국 나이 5~7세) 보육 기관으로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어린이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추첨을 통해 입소하는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은 지원순서와 우선순위 조건에 따라 입소가 결정된다. ‘맞벌이’ ‘다자녀’는 모두 가산점이 붙는 입소 조건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우리 첫째가 다녔던 반만 해도 다자녀 가족 자녀가 서너 명은 됐다. 웬만해선 어디서 자녀수로 밀리지 않는 나조차 이곳에서는 ‘차석’이었다. 첫째와 같은 반이었던 친구 중에 형제자매가 다섯인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워킹맘 중에 최다 자녀를 가진 건 아마도 나와 그 어머니였을 것이다. 사정을 알고부터 그 집 첫째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니 참 의젓하고 씩씩했다. 역시 다자녀 맞벌이 가정 맏이답달까. 이 아이도 우리 첫째와 함께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종종 픽업을 하러 갔다가 마주치면 돌봄교실로, 도서관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의연히 잘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번은 교문을 혼자 나서는 그 집 아이와 마주친 일이 있다. 우리 집 첫째 방과후학교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내게 꾸벅 인사하고 지나가기에 “○○야, 어디 가니? 아줌마랑 같은 방향인 거 같은데 △△ 나오면 함께 걸어갈까?” 하고 물었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 언제 나와요?” 했다. 한 10분 뒤일 거라고 답하자 “음, 아니에요, 저 먼저 갈게요” 하고 답했다. ‘학원 차가 20분 뒤 인근 아파트 단지 앞 정문으로 오는데 엄마가 전후로 10분 정도 오차가 있을 수 있으니 늘 미리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아이는 돌아서면서도 내게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한지 곧장 아이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었다. 8일 어머니와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눠보니 아이의 그런 의젓한 모습이 이해됐다. 어머니도 참 생각이 바르고 단단한 분이었다. 아이들 각자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것들은 엄격히 가르치되 일단 아이 손에 넘어간 것은 믿고 맡기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 하나하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배려하는 세심함이 느껴졌다. 엄마가 항상 곁에 없어도 아이가 든든하게 느끼고 씩씩하게 행동할 만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나와 그 어머니, 두 네 자녀 엄마 사이에 의외의 공통점들이 있었던 점이다. 나는 첫째부터 지금까지 천 기저귀를 쓰고 있는데, 그 집도 천 기저귀를 썼다고 한다. 요새 다자녀 집은 물론이고 아이 하나인 집도 천 기저귀를 쓰는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회용 기저귀보다 아무래도 번거롭기 때문이다. ‘출산 전 잔뜩 사놓았는데 막상 낳고 보니 도저히 쓸 엄두가 안 나서 다 처분했다’는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천 기저귀를 쓴다고 하면 다들 마치 전근대시대 어머니라도 본양 식겁한다. 한데 막상 써보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아이가 변을 본 기저귀를 모아 물에 담가두었다가(대변 기저귀는 대변을 털고 물로 씻어낸 뒤 담가놓는다) 세탁에 앞서 한 번만 물에 헹군 뒤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끝이다. 그렇게 하루 한 번씩만 빨래하면 매일 쓰레기통을 가득 채우는 일회용 기저귀 쓰레기를 확 줄일 수 있다. 그 어머니도 세탁기를 이용해 비교적 손쉽게 천 기저귀를 썼다고 한다. 아이들 모두에게 모유 수유를 한 것도 똑같았다. 사실 아이를 여럿 키우며 수유를 병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일정한 수유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고 피로 때문에 모유량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모유 수유를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난 남들이 말하는 시간 간격에 구애받지 않고 틈나는 대로 수유했다. 수유하는 동안에도 좀 쉴 수 있도록 누워서 젖을 물리기도 하고, 들쭉날쭉한 모유량에도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 덕에 아이들 모두 6개월 이상 모유 수유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 어머니도 모유 수유에 대한 ‘강박’이 없었기에 되레 더 편하게 모유 수유를 할 수 있었던 듯했다.물론 어떻게든 모유 수유를 하는 게 옳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그만’둔다고 하는 산모들이 많기에 나와 같은 그 어머니의 마음가짐이 반가웠다. 그 어머니는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막상 해보면 생각했던 것보단 어렵지 않은데 다들 너무 힘들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했다.어찌 보면 그 말은 모든 육아에 적용되는 게 아닐까. 요새 미혼남녀들을 만나면 모두 결혼이 무섭고 육아는 더 무섭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나 미디어에서 나오는 정보에 육아에 대한 비관적인 소식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힘들다’ ‘어렵다’ ‘지친다’ ‘내 삶이 없다’ ‘또 낳는 건 엄두가 안 난다’ 등. 그걸 긍정적으로 헤쳐 나가고 가급적 쉽게 풀어가는 노하우,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힘든 걸 공감해주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모두 ‘힘들지?’ ‘힘들겠다’만 하니까 더 기운이 빠진다. 비판만 하긴 쉽다고, 왜 ‘이렇게 해보니 괜찮았어요’ ‘할 만해요’ ‘할 수 있어요, 힘내세요’와 같은 말은 들리지 않을까. 우리에게 더 필요한 이야긴 사실 그런 건데. 사회적 기반과 시스템도 그것대로 개선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육아에 임하는 부모의 ‘유리멘탈’을 조금은 단단히 만들어줄 수 있는 조언, 격려도 많아지면 좋겠다. 휴직 전 나와 같이 네 아이를 키우는 보건복지부 여자 과장님을 만난 적이 있다. 40대 중후반일 그 과장님이 그때까지 일을 놓지 않고 병행하시는 모습, 매일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고 휴일엔 어딜 놀러 간다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만으로도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 친구 어머니와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네 아이를 키워야 하는 빠듯한 현실에서 탄력근무제와 부부간 육아 분담을 통해 공백을 메우고, “여자는 역시…”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아이와의 시간을 조율해가며 일도 놓지 않는 당찬 모습이 내게 큰 여운을 남겼다. 부모란 말이 ‘뿌듯함’보다는 ‘버거움’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마침 어버이날 있었던 특별한 만남 덕에 부모의 책임감과 역할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 어버이날에도 난 세 송이의 카네이션을 달았다(내년엔 막내까지 어린이집에 가니까 네 송이가 달리겠다). 카네이션 세 송이의 무게는 묵직했지만 덕분에 옷은 예쁜 ‘꽃밭’이 됐다. 부모란 존재도 육아도 모두 그런 양면성이 있을 테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육아가 힘들지만 가급적 ‘할만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려 한다. “그냥 부딪혀보면 돼.” “다 힘들어도 했어.” 이런 ‘꼰대의 훈수’ 같은 게 아니다. 그저 힘들다고 지레 겁먹지 않게끔, 자꾸만 더 위축되지 않게끔 북돋워 주려는 것이다. 힘들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으니까. 나도 다른 엄마들을 보면서 그랬듯 누군가 나를 보면서 용기를 얻기도 했으면 좋겠다. 나는 누가 말하듯 ‘슈퍼 맘’도 ‘슈퍼 우먼’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고 눈물도 많은 워킹맘이다. 때론 실수도 하고 엎어지지만 즐겁게 네 아이를 키우려는 내 모습이 또 누군가에겐 힘이 되기를 바라본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생지옥이 이런 거구나(싶었다).” 몇 달 전 친한 지인이 임신 수개월 차에 불법 낙태 수술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싱글’이었던 것도, 아이를 키울 여력이 안 된 것도 아니었다. 뱃속 아기의 건강에 큰 문제가 있었다. 어렵게 가진 아기였지만 출산 후 생존확률이 희박했기에 떠나보내야만 했다. 지인은 직접 발품을 팔며 자신의 아이를 ‘죽여줄’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취재하며 만난 한 여성 중에도 비슷한 이유로 낙태 수술을 받은 이가 있었다. 그녀의 아기는 초음파 결과 심장과 방광에 구조적 문제가 있어서 태어난 뒤 곧장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생존확률은 절반이었고, 만약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다 해도 아이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다. 위 두 경우 모두 현행법상 합법적 낙태는 불가하다. 결국 두 여성 다 불법을 묵과해준다는 병원을 직접 수소문해 값비싼 비용을 내고 수술을 받았다. 당연히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장도, 보호도 기대할 수 없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이 났을 때 제일 먼저 그들이 떠올랐다. 지난 수십 년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스스로를 위험으로 내몰아야 했을까.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란 말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낙태란 여성이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내 지인들처럼 절박하거나 피치 못할 상황에서 ‘선택 아닌 선택’을 한다. 그저 육아가 싫어서, 한때의 ‘불장난’을 처리하러 가볍게 낙태수술을 하는 사람은 외려 극소수일 것이다. 수술 자체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후유증을 동반할 수 있고, 불법수술일 경우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그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미국 등 낙태를 널리 허용한 국가에선 이미 낙태 후유증을 다룬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 (불법)낙태를 경험한 지인에 따르면 “낙태나 출산이나 몸이 느끼는 부담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 입장에서 낙태가 결코 손쉬운 선택이나 해결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그만큼 출산과 육아가 그들에게 힘든 상황이란 방증일 것이다. 하지만 낙태가 태아에 대한 일종의 ‘살인’이란 사실도 부인할 순 없다. 생명권이란 가장 근본적이고 소중한 가치다. 난 아직도 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본 낙태 영상의 끔찍함을 (무려 20년간!) 잊을 수 없다. 작은 생명이 자궁 안에 들어온 기계를 피해 발버둥치다가 결국 최후를 맞이하는 충격적인 영상이었다. 이런 것까지 보지 않더라도 산전검사에서 작지만 힘차게 박동하는 아기 심장을 보면 ‘태아는 생명체가 아니다’라는 말이 쉬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 그동안 낙태죄가 일부 부모에겐 아이를 지키는 방패막이 되어주었단 주장도 있다. 아이를 낳고 싶지만 주변의 반대가 심한 경우다. 실제 나도 자주 가는 맘(mom) 카페에서 ‘남편과 친정엄마가 모두 출산을 말렸지만 다행히 (법적으로) 중절이 가능한 몇 주째를 지나서 아이를 계속 품을 수 있었다’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필요와 가치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낙태 허용범위는 어려운 쟁점이다. 개정 과정에서 면밀한 고찰과 의견 수렴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의 신체 및 장기를 정밀검사하려면 시기적으로 임신 5개월 정도는 돼야 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태아가 스스로 느끼고 움직이는 단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단일생명, 인격체에 가까워진다. 해외연구에 따르면 21주 된 태아는 곧바로 출산해도 열에 한둘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밖에 여러 논란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난 이번 헌재의 결정을 환영한다. 개정논의를 통해 음지에서 행해지던 수많은 낙태를 일부나마 양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실상 낙태는 국가로부터 방조·방기돼왔다. 불가피한 수요가 분명 존재하는데도 처벌조항만 있을 뿐 적극적인 단속은 없었다. 그 덕에 국가의 관리망을 벗어난 낙태 수술이 만연하면서 여성과 태아의 건강권만 더 위협받게 됐다. 어차피 수술을 해야 한다면 합법의 범주 안에 두고 안전하게라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외려 그를 통해 무분별한 낙태가 줄어들지도 모르고. 위헌 선고가 내려진 날 학교를 다녀온 첫째가 뜬금없이 “엄마, 나는 나중에 절대로 낙태하지 않을 거야”라고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낙태죄와 판결에 대해 설명해주신 모양이었다. 내가 “응, 하지만 낙태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하니 “왜? 아기를 낳아서 우리처럼 다 키우면 되잖아”라고 했다. 사실 딸의 말처럼 낙태를 하지 않고 잘 키울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제일 좋을 것이다. 내 지인의 사례와 같이 답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은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모나 미혼부모들에 대한 육아지원, 장애아들의 복지향상, 사전 성교육 강화 같은 것들이다. 사실 이런 것들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낙태하지 말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책임지지도 못할 아이를 낳는 건 엄마에게나 아이에게나, 그리고 그 사회에나 모두 큰 불행이다. 내년 12월 31일 어떤 결론이 나있을진 모르지만 앞서 헌법소원을 통해 폐지된 호주제, 간음죄처럼 모두가 진보라 평가할 수 있는 결과이길 바란다. 모체와 태아가 대립해야 하는 불행한 상황도 해소되어 있기를….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엄마! 저거 봐. 선생님이 아가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머리를 때렸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아이들이 내가 틀어놓은 뉴스를 보곤 소리쳤다. 아이돌보미가 아이를 학대해 논란이라는 내용이었다. 공개된 CCTV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50대 아이돌보미 여성이 밥을 잘 먹지 않는다며 14개월 아기의 뺨을 때리고 소리를 지르거나 꼬집고 머리채를 잡는가 하면 발로 차기까지 했다. 영상을 보는 남도 이렇게 가슴이 철렁한데 부모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우리 아이들도 무서운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엄마, 우리 집 돌보미 선생님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치?” 나는 아이돌보미 서비스의 오랜 이용자다. 둘째를 낳고 복직하기 전인 2015년부터 꾸준히 이용했으니 햇수로 벌써 4년차다. 내가 기자라는 ‘반(反)워라밸’ 직업과 다자녀 엄마라는 만만찮은 역할을 병행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이 서비스의 역할이 컸다. 어린이집과 친정의 도움이 미치지 못하는 대부분의 시간, 그 보육공백을 아이돌보미가 메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져 여기저기서 몰매를 맞는 걸 보자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다. 솔직히 여러 보육 서비스 중 이만한 양질의 서비스가 없단 생각에 틈만 나면 아이돌보미를 홍보해왔다. 정부가 선발하지, 틈틈이 관리하지, 사설 육아도우미(베이비시터)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지…. 나처럼 여러 아이를 동시에 맡기는 경우엔 혜택도 더 크다. 두 아이를 함께 신청하면 이용금액의 25%, 세 아이면 33.3%를 감면해주기 때문이다. 자녀수, 소득수준 등에 따라 정부로부터 추가지원도 받을 수 있다. 가장 지원폭이 큰 ‘가’ 형의 경우 본인부담액이 시간당 1447원(시간제 일반형·2012년 이후 출생아동)에 불과하다. 사설 도우미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아이돌보미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정부가 보증한 육아도우미’라는 점일 것이다. 아이돌보미 선생님은 신원확인 등 정식 취업절차를 거쳐 교육을 받고 가정에 배치된 후에도 정기적으로 재교육을 받는다. 이용가정 모니터링도 한다. 나도 최근 아이돌보미 모니터 요원의 불시 방문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꼼꼼히 질문하며 확인하시는 모습을 보고 ‘역시 좋은 제도’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이런 관리체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학대 피의자는 아이돌보미 활동경력만 6년에 이른다고 한다. 그동안 수많은 교육과 점검을 거쳤을 텐데 모두 무사통과했다니 기존 관리시스템의 부실을 묵과할 순 없다.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라고 마냥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이런 위험에 대비해 아이돌보미를 자격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었다. 지금처럼 주어진 수업만 수료하면 돌보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절차와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획득하도록 하고 보다 엄정히 관리하겠다는 내용이다. 한데 이렇게 교육과 관리를 강화하면 자연히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난다. 안 그래도 최저임금 인상 등에 발맞춰 6000~7000원 수준이던 아이돌보미 시간당 이용금액이 올해 9650원으로 훌쩍 뛴 참이다. 내 경우 휴직으로 소득이 줄면서 정부금액을 일부 지원받게 됐음에도 오히려 내는 돈이 지난해보다 더 늘었을 정도다. 지금보다 비용이 더 오른다면 시간당 급여가 만 원꼴인 사설 도우미와 별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결국 방법은 국가가 늘어나는 비용을 대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도 아이돌보미에 대한 지원은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올해부터 정부지원대상이 확대되고 지원시간이 600시간에서 720시간으로 늘긴 했지만 실사용자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정부지원 대상인 ‘다’ 형조차 본인부담금이 시간당 8202원(시간제 일반형)으로 지원을 못 받는 ‘라’ 형(9650원)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감면을 받고 있는 나도 여전히 매달 200만 원가량을 아이돌보미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사설 도우미를 이용할 때보다는 저렴하지만 월급쟁이 입장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비용이 더 오른다면 아마도 나를 비롯해 많은 이용가정이 사설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가끔 정부가 내놓은 여러 현금지원정책들을 보면 ‘차라리 저 돈으로 아이돌보미나 어린이집을 더 지원해주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임신 시 병원비 지원, 출산 시 지원금 지급, 아이에게 매달 양육비 지원, 병원 진료 시 의료비 경감 등등 모두 좋지만 그 어느 것도 어린이집이나 아이돌보미처럼 내게 ‘시간’을 벌어다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은 그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일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하고 삶의 재충전 기회를 갖기 위해. 지난해 내가 인터뷰 했던 보육 전문가도 이런 말을 했다. “이 시대의 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우리 집 아이돌보미 선생님은 2015년 첫 이용부터 지금까지 4년 넘게 오고 계신 분이다. 서울 금천구 같은 극한사례가 아니더라도 이런 저런 이유로 돌보미 부침을 겪는 집들이 많은데 나는 천운으로 처음부터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종종 우리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도 ‘그때 그 선생님이 아직도 계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내가 정말 전생에 우주라도 구해서 오복(五福) 중 가장 귀하다는 ‘이모복’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지만, 난 내 경우가 그저 아이돌보미가 잘 운영됐을 때의 모범사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잘 굴러가기만 한다면 다른 아이돌보미 이용자들도 나처럼 다자녀를 낳고 기자도 하는 ‘언감생심(!)’ 꿈을 꿔볼 수 있다. 이번 금천구 사건이 이렇게 좋은 아이돌보미 시스템을 개선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그러자면 그저 한 사건의 피의자를 처벌하고 제도의 허점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실제 예산과 인력을 늘려 실사용자들 입장에서 체감도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우리 땐 안 이랬는데, 요샌 정말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지난 한 주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첫째 하교를 위해 교문 앞에서 기다릴 때면 삼삼오오 모인 학부모들이 모두 마스크 속에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옛날엔 하늘 진짜 파랬는데…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우리 아이들이 불쌍해요.” 온 나라가 미세먼지로 들썩인 한 주였다. 네 영·유아의 엄마인 나도 예민한 일주일을 보냈다. 며칠 켁켁 기침하던 막내가 결국 기관지염에 걸렸기 때문이다. 의사는 “(증상이 심해진 건) 미세먼지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 간 봄철 감기로 수없이 병원을 찾았지만 이런 진단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 과거부터 함께 해온 미세먼지 “근데 그거 아세요? 미세먼지요, 사실 우리 어릴 때는 더 안 좋았어요.” 이렇게 말하자 웬만해선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어주시는 친정엄마조차 곧장 반문하셨다. “무슨 소리야? 내 기억에 예전엔 하늘이 이렇게까지 뿌옇지 않았어. 네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엄마도 이럴진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십중팔구 비슷한 반응이 돌아온다. “말도 안 된다.” “그럴 리 없다.” “그저 네 생각 아니냐.” 하지만 내 말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정부 공식자료에 근거한 사실이다. 환경부가 매년 발간하는 대기환경연보에는 연도별 평균 미세먼지 측정치가 실린다. 도시별로 약간씩 들쭉날쭉하긴 해도 서울부터 부산까지, 전국 7대도시 미세먼지 수치가 거시적으로 꾸준히 떨어져온 걸 볼 수 있다.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만 해도 20년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즉 ‘우리 아이들만 불쌍해 할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연표에 따르면 불과 20년 전, 즉 당신이 어리거나 젊었을 때 우리나라 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중국 베이징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이제와 사람들이 느끼는 심각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착각인 걸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일단 과거보단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나라 대기질은 선진국과 비교해 썩 좋지 않다. 과거가 ‘매우 나쁨’이었다면 현재는 ‘덜 나쁨’ 정도랄까. 그리고 연평균 수치가 떨어져왔다 해도 겨울에서 봄 사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고농도 미세먼지가 사라진 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특정한 이유로 농도가 치솟는 날은 있다는 뜻이다. 지난 일주일도 그런 날이었다(그리고 그런 날들이 요 근래 반짝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과거엔 그런 날이 있어도 몰라서 지나쳤고, 현재는 알기에 지나칠 수 없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어찌됐든 현재도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하고 있는 건 사실이므로 그러려니 하면 그만이지만, 굳이 ‘과거에 미세먼지 농도가 더 높았다’는 사실을 짚고 가고픈 이유는 그래야 우리가 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갑자기 나타난 것’으로 아는 것과 ‘원래부터 있던 것’으로 아는 것의 차이는 크다. ● 중국 탓은 이제 그만 형제자매끼리 놀다 보면 폭력이 발생할 때가 있다. 다자녀 집은 말 그대로 ‘가지가 많아’ 바람 잘 날이 없다. 때린 아이는 꼭 하소연한다. 언니가 내 물건을 뺏어서…, 동생이 자꾸 나를 놀려서…(때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너도 (때리는) 잘못을 했으면서 남 탓 하지 마.” 내가 잘 들어가는 한 온라인 카페에 요즘 틈만 나면 ‘중국을 규탄하는 청원에 동참해주세요’ 라는 글이 올라온다. 미세먼지가 ‘갑자기’ 심해진 이유는 중국 탓이기에 정부가 중국을 강력 규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중국을 포함한 국외발 미세먼지는 현재 국내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 50~80%의 기여율을 차지할 정도로 큰 문제다. 베이징에서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하면 이틀 뒤엔 거의 틀림없이 우리나라 서울에도 비슷한 농도의 미세먼지가 나타날 정도로 기여도는 명확하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미세먼지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한반도는 편서풍 지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평상시 중국, 몽골 등 국외발 미세먼지가 꾸준히 유입될 수밖에 없다. 지금 들어온다면 수십 년 전에도 들어왔을 것이다. 여기서 과거 우리나라 연평균 미세먼지 수치가 훨씬 높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왜 그리 수치가 높았을까? 중국 등 국외로부터 지금보다 더 많은 미세먼지가 들어왔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도 당시에는 국내 미세먼지 발생량 역시 지금보다 많았을 것이다. 일례로 자동차만 해도 불과 10여 년 전 국내서 판매된 경유차는 현재 생산차의 5배 넘는 미세먼지를 뿜었다. 당시엔 배출가스 규제가 낮아 그게 허용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규제가 강화돼 그런 차는 판매도, 운행도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난 수십 년간 공장 굴뚝에도 각종 배출기준이 더해졌고, 사업장 단속이 강화됐으며, 노천소각도 거의 사라졌다. 즉 국내 발생원이 크게 줄었다. 국내 발생량이 준 대신 중국의 배출량은 늘면서 상대적으로 외국 미세먼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다. 높은 미세먼지 기여율을 온전히 중국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미세먼지 양은 여전히 상당하다. 더 줄일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발표한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2015년 서울 미세먼지의 6%, 대전 미세먼지의 18%가 발전소가 밀집한 충남에서 왔다고 한다(이른바 ‘충남발 미세먼지’랄까). 당진에 있는 제철공장 한 곳에서 단 하루 동안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만 55t이다. 1년이면 2만t.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런 배출량을 줄이고, 화력발전을 친환경발전으로 대체하고, 각종 불법배출을 잡고, 미세먼지 배출저감시설을 개선하는 등 우리가 할 일이 많다. 다른 나라 탓 먼저 할 게 아니라 일단 ‘우리 잘못’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시민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차를 적게 몰고, 전기를 아껴 쓰고, 일회용품 사용도 줄이고(우리나라 쓰레기 대부분은 소각된다). 이 모든 것들이 미세먼지 저감으로 이어진다. 한편 중국도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때문이 아니라 당장 본인들이 나쁜 공기에 질식해 죽겠기 때문이다. 한·중 양국의 저감 노력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비춰지는데, 무턱대고 남의 나라에 “공장 돌리지 마!” 할 수는 없으니 환경원조와 조사지원을 하며 저감을 유도하는 게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 실내 미세먼지에도 관심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실내 미세먼지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 아이 어린이집 운영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원장선생님께서는 “겨울~봄철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많은 실외활동을 실내활동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하셨다. 잘못했다간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때문에 아예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미세먼지 나쁜 날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에 체육관이나 교실로 들어가게끔 전화를 넣었어요.’ ‘미세먼지 농도 높다고 해서 바깥에 나가는 대신 아이들 데리고 키즈카페에 다녀왔어요.’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실내로 피신’했다는 내용의 글이 자주 올라온다. 아이들이 실외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해당 기관에 항의를 했다는 내용도 많다. 물론 미세먼지가 나쁜 날 나가지 않는 건 옳다. 근데 과연 실내에 들어가면 안전할까? 사실 일반적으로 실내 미세먼지 농도는 바깥보다 높다. 밀폐된 공간이라 같은 미세먼지 양에도 밀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까지 많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체육관이나 교실, 키즈카페 같은 곳들이다. 더구나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외부 미세먼지까지 유입된다. 체육관, 역사처럼 넓은 공간은 정화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환경부 실시간 자동측정소 자료에 따르면 황사가 왔던 2015년 2월 23일 인천지하철 1호선 작전역 안의 미세먼지 농도는 황사주의보 수치보다도 더 높았다. 그런데 미세먼지 높은 날 어린이집 안에서 뛰고 던지는 체육활동을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농도는 바깥 미세먼지에 준하는 수치가 될 것이다. 물론 실내외 미세먼지 구성에 차이가 있고 실내는 어떻게든 공기청정기를 돌려 정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긴 하지만, 기계를 충분히 가동하지 않는다면(가장 센 강도로!) 먼지 양은 실내라고 별달리 나을 게 없다. ‘그럼 어쩌란 말이야??’ 그저 실내로 피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니 실내 정화 노력도 충분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가 나쁜 날이라도 가정에서 요리나 청소를 할 때는 반드시 환기를 하라고 권한다. 청소도 마찬가지다. 바닥이나 가구에 먼지가 많다면 자연히 공기 중 먼지 농도도 높아진다. 진공청소기가 만들어낼 2차 먼지가 불안하다면 밀대청소를 하면 된다. ● 과도한 공포는 자제하고 해결에 집중을 “올해는 왜 이렇게 틈만 나면 ‘나쁨’이지?” 실제 올 1~2월 미세먼지 나쁨일수가 예년 대비 2배 늘었다고 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해 미세먼지 나쁨 기준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이면 ‘보통’이 떴을 날도 이젠 ‘나쁨’이 되었다는 뜻이다. 덕분(?)에 하루걸러 나오는 나쁨 예보로 온 국민이 미세먼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되었지만, 대기오염의 심각성과 개선 필요성을 환기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것 같다. 우린 그동안 대기질에 대해 너무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단 모두 너무 공포에 떨면서 지나치게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없던 것이 새로 생긴 것도 아니고 당장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고농도가 발생하면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자제하되 평소 우리가 해야 할 것들(저감노력)을 차분히, 그리고 꾸준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환경부를 출입했던 기자이기에 앞서 네 아이의 엄마인 나도 누구보다 미세먼지 문제의 해결이 절실하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출산을 한 달가량 앞둔 지난해 7월 한 대학 동기가 연락을 해왔다. 오랜만의 연락에 반가움도 잠시,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시간 돼?” 하는 친구의 인사말 뒤에 이어진 건 예상치 못한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아이가 많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일찍 결혼한 친구는 벌써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있었다. 첫째는 아들, 둘째는 딸, 번듯한 직장에 사랑하는 부인까지, 누가 봐도 부러워 할 다복한 가정이었다. 메신저 속 프로필 사진에서 활짝 웃고 있는 막내딸은 이제 막 돌을 넘겼다고 했다. 한데 그 갓난아기에게 상상치도 못한 불행이 닥쳤다. 어느 날 아이의 심장이 돌연 멈춘 것이다. 헐레벌떡 달려간 응급실에서 심폐소생 후 받은 진단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특발성 확장성 심근증.’ 확장과 수축을 반복해야 할 심장근육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축하지 않으면서 심장박동이 멈춰버리는 질환이었다. 10만 명 중 한두 명만 걸리는 병인데 특히 소아에게는 흔치 않은 희귀난치병이라고 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여느 애들과 다름없던 아이가 졸지에 희귀난치병 환아가 된 현실에 기가 막혔을 테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당장 심장에 인공장치(심실보조장치)를 달아야 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또 어마어마했다. 1회 수술에만 1억 원, 이후 유지비는 분기별로 3000만 원이 들었다. 매달 1000만 원이 드는 장비라니, ‘돈 먹는 하마’가 따로 없었다. 맞벌이라지만 평범한 회사원인 친구네 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친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게 연락했을 터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장치라고 하는데, 혹시 보험 등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할지 알기에 일단 “알아보겠다”고 했다. 마침 보건복지부와 병원을 출입하고 있던 터라 물어볼 창구를 알고 있었다. 먼저 치료 전반에 대해 정확히 알기 위해 아이 담당의사에게 연락했다. 전문가가 전하는 상황은 친구에게 들은 것보다 한층 심각했다. 아이가 달아야 할 인공장치는 ‘베를린하트’라는 이름의 소아용 심실보조장치로 전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라 했다. 한 마디로 ‘독점’ 장비란 뜻이다. 소아심장환자 자체가 극소수일 테니 관련 치료기기가 희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더구나 독점이라면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일 수밖에 없다. 이미 보험등재신청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심사가 빠르게 진행되긴 어려워보였다. 당장 등재심사대에 오른대도 다음 달인데, 아직 심사대에 오르지 않았다면 최소 그 다음 달까지 두 달간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해야 했다. 사실 가장 좋은 치료법은 건강한 심장을 이식받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소아에게는 그마저 쉽지 않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린아이의 심장이 필요한데, 사고사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심장을 기증하는 아이가 1년에 몇이나 되겠나. 그래도 혹시 몰라 정부 장기기증 통계를 확인해봤지만 역시나 친구 딸이 기증받을 수 있는 만 5세 미만 영·유아 심장은 연중 10개도 되지 않았다. 앞서 줄 서있을 환아들을 생각하면 사실상 이식 가능성이 없는 셈이었다. 자연 치유될 때까지 심장에 인공장치를 달고 근근이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마저 희망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담당의사는 “작은 몸으로 버티기에는 아주 큰 수술이고 치료예요. 아이가 얼마나 견뎌줄지 모르죠”하고 걱정을 털어놨다. 그러고 보니 고작 돌 지난 아기였다. 폐렴 하나에도 숨이 오락가락하는 게 아기들이다. 우리 둘째가 생후 6개월 무렵 가와사키병(영·유아에게 발병하는 급성 열성 혈관염)에 걸려 입원했을 때 담당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현재 이 다인실에 있는 아동 중 가장 위중한 환자가 바로 어머님 아기입니다.” 폐렴이나 가와사키병에만 걸려도 그럴진대 하물며 심장 이상이야…. 이곳저곳 연락을 돌린 나는 전보다 한층 더 비관적인 마음이 들었다. 친구에게 “관련 기획기사라도 고민해보겠다”고 했지만 사실 막막했다. 이미 보험등재 신청까지 올라갔다니 그저 빨리 등재되길 기도하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인 듯싶었다. 친구 부부라고 이런 상황을 몰랐을까. 그래도 둘은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생업과 간병을 병행하면서 언론사 이곳저곳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제보하고 SNS와 온라인 카페 등 각종 창구를 통해 아이의 사연을 알렸다.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도 올렸다. 소아 심장질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이고 유일한 장치가 급여대상에 들어가지 않는 건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나는 해당 청원 링크를 몇몇 온라인 카페와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퍼 날랐다). 부부의 노력 덕인지 제법 많은 언론에서 이 내용을 기사화했다. 비록 큰 도움은 줄 수 없었지만 나는 틈나는 대로 아이 안부를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매번 연락할 때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감안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다행히 친구의 답은 ‘수술 잘 끝났어’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야’ ‘(보조장치) 보험 등재가 잘 진행 중이래’ 같은 것들이었다. 지난해 9월에는 ‘아이 상태가 좋아져 일반병실로 옮기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엄마, 아빠의 사랑 덕에 아이가 잘 버티고 있구나. 축하하고 너도 힘내!” 나는 진심으로 기뻤고 또 놀랐다. 이후 한동안 친구와의 연락이 끊겼다. 당장 큰 고비를 넘긴 아이 소식에 안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바빠졌기 때문이다. 넷째를 낳은 뒤 하루하루는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섯 달이 흐른 올 2월 어느 날, 아기 수유를 하면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친구 SNS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이가 건강히 퇴원하게 돼 의료진들이 축하파티를 열어주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앞선 게시물을 찾아보니 지난해 9월 말 소아용 심실보조장치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건강보험 급여대상이 됐고, 불과 세 달 뒤인 12월에는 아이 상태가 기적적으로 호전돼 장치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나와 있었다. “갓난아기의 몸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친구의 부탁을 받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던 지난해 어떤 이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기적이 정말 일어난 것이다. 부모의 정성과 간절함이 불가능에 가깝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늦었지만 친구에게 축하 문자를 보냈다. ‘축하해줘 고마워! 심장 기능이 많이 좋아져서 집에서 약물치료만 하면 된다고 해 퇴원했어.’ 도착한 답 문자에는 그동안 오간 수많은 문자에서 느낄 수 없었던 희망과 활기가 묻어났다. ‘갑자기 집에서 두 명을 보게 되니 힘든데 (넷을 보는) 너는 참 대단하구나. 리스펙트 유.’ 전에 없이 너스레까지 떠는 모습에 내 기분까지 말할 수 없이 흐뭇해졌다. 새삼 부모의 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잠시나마 비관적인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은 정말 그 작은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진짜 ‘리스펙트’를 받아야 할 건 그들 부부였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주부의 시간은 다른 가족들의 시간과 다르게 간다. 평일엔 숨통이 트이는 반면 주말은 전쟁터다. 쉬는 가족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 방학은 주부에게 연중 가장 바쁜 시간이다. 다자녀 엄마에겐 더 말할 것도 없다. ‘공포의 겨울방학’이 돌아왔다. 한때 ‘낭만’이었던 연말은 아이들 방학이란 것이 생긴 뒤로 그저 ‘난관’이 됐다. 식사부터 목욕까지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영·유아들은 온종일 엄마를 필요로 했다. 더구나 지난해까지 그런 아이들이 셋에 불과(?)했지만 이젠 넷이다. 큰 애들 셋만 있었을 때는 그래도 어디든 데리고 나가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공원, 쇼핑몰, 키즈카페 등등. 하지만 갓난아기가 생긴 올해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여름이라면 하다못해 실내복 차림 그대로 집 앞 놀이터라도 갈 텐데…. 한겨울이라 문 밖 몇 발짝 나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네 아이를 서너 겹씩 무장시켜야 함은 아기 짐만 해도 산더미였다. 게다가 자칫 독감이라도 걸리면 재앙이 따로 없었다. 네 아이에게 순식간에 전염돼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의 윤회’가 시작될 터다. 막내만이라도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설상가상으로 이번 방학엔 친정 부모님마저 안 계셨다. 연말을 끼고 여행을 가셨기 때문이다. “아이들 방학을 생각 못하고 날짜를 잡았구나. 너 힘들어서 어떡하니….” 엄마는 출국하시는 당일까지도 죄인처럼 미안해하셨다. 솔직히 낭패감이 든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자식들 맡기자고 부모님의 여행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애들 일로 사나흘에 한 번 부모님께 SOS를 치고 있는 형편이었다. ‘뭘 하지?’ 전날까지 머리를 싸맸지만 결국 별다른 계획 없이 방학 첫날을 맞았다. 엄마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아침 눈 뜨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오늘 어디가요?” 하고 물었다. 제법 머리가 큰 첫째가 “엄마, ○○이는 미국 간대. 우리는 프랑스 가면 안돼?” 했다. 프랑스라…. 두 동생은 한술 더 떠 “홍콩 디즈니랜드 가고 싶어!” 하고 덧붙였다. 하아, 집 앞 놀이터도 못 가는 판에 프랑스, 홍콩이라니…. 아이들에게 “아가 때문에 어디 나갈 수가 없어” 하고 사정을 설명한 뒤 거실 TV를 틀었다. 그렇게 첫날은 어린이채널을 돌려가며 하루를 때웠다. 평소 TV를 잘 보여주지 않는 엄마가 종일 만화채널을 틀어주자 아이들은 그저 ‘웬 떡이냐’며 신나게 시청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산해진미라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법. 저녁쯤 되자 아이들은 또 다시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엄마, 심심해.” “놀 거 없어?” 다음날은 오래 전 사놓은 놀이용 점토에 생각이 닿았다. 색색의 점토를 꺼내주었더니 아이들은 각자 작품을 만들고 소꿉놀이도 하면서 제법 신나게 놀았다. 전날보다 훨씬 ‘능동적인’ 놀이풍경에 일단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너무 능동적으로 논 탓(!)에 아이들이 돌아다닌 거실, 서재, 침실 곳곳에 점토가루가 날아다녔다. 결국 반나절 점토놀이 끝에 남은 것은 대청소였다. 그날 저녁 내내 7kg이 넘는 아기를 업고 청소기와 테이프크리너를 돌려야 했다. 점토놀이 두 번만 했다가는 몸살이 날 것 같았다. 결국 다음날엔 갓난아기를 들쳐 업고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쇼핑몰로 향했다. 아이들을 혼자 데리고 나간다는 게 엄두가 나진 않았지만, 전날 ‘점토놀이 참사’를 통해 집에 있는 것도 능사는 아니란 교훈을 얻었다. 잘 생각해보니 큰 애들을 미술놀이 카페 같은 데에 넣어놓으면 갓난아기 하나만 데리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큰 애들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가 배가 고프다며 칭얼댔다. 겨우 수유실을 찾아 젖을 좀 물리자 어느덧 큰애들 데리러 갈 시각이었다. 부랴부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갔더니 이번엔 ‘익숙한 지옥’이 시작됐다. 번갈아 가며 “화장실 가고 싶다”거나 일일이 “음식 좀 씹어” 하지 않으면 도통 밥을 먹지 않는 큰 애들, 시종일관 버둥거리는 막내까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 역시 나오는 게 아니었어.’ 식당을 나올 때쯤엔 말 그대로 멘탈이 ‘바닥까지 탈탈’ 털린 느낌이었다. 더 고민할 겨를도 없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도 마냥 쉬고 즐기면 되는 방학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방학이란 막판에 몰아서 하는 탐구과제를 빼면 그저 놀고먹는 시간이었다. 특히 우리 가족은 여행을 많이 다녔다. 친정 부모님께서 워낙 문화유산답사 같은 것을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두 분 모두 교직에 종사하셔서 방학기간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국 유적지와 박물관 탐방은 물론이고 한 번은 차를 빌려서 한 달 간 해외여행을 한 적도 있다. 그랬기에 나도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되면 막연히 아이들과 그런 방학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 회사원에겐 분기마다 돌아오는 일주일여의 짧은 휴가가 있을지언정 방학은 없었다. 일껏 잡은 휴가가 아이들 방학과 엇갈리기도 했다. 그러면 몇 주 전부터 아이들 맡길 곳을 찾느라 전전긍긍해야 했다. 사실 내가 육아휴직 중인 올 겨울 방학은 여러모로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허덕이다 보니 허위허위 열흘 정도의 방학의 끝이 다가왔다. 내일부터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고 하자 셋째가 “싫은데” 했다. 제대로 된 나들이 한 번 못 간 방학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싫지 않았나 보다. 하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엄마와 종일 붙어 있어볼까. 그저 힘들다고 ‘빨리 지나가라’고 기도했던 게 새삼 미안해졌다. 다가오는 여름 방학엔 가까운 교외라도 며칠 나들이 가야겠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