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최악의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1년 안에 재건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진 전문가들은 “최소 수년은 걸릴 것”이라며 다른 관측을 내놓고 있다. 1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동남부 디야르바키르를 찾아 “남부 전역에 걸쳐 거주가 불가능해진 수십만 동의 건물을 재건할 계획을 세웠다. 몇 주 안에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건에 난항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만7000여 명이 숨진 1999년 대지진 때는 대규모 군 병력이 투입돼 비교적 단기간에 재건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지진이 강타한 튀르키예 남부는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어서 주민들이 쿠르드족을 탄압했던 튀르키예군의 지원을 꺼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99년 대지진 이후 건물 내진 규제가 대폭 강화됐지만 정치권에서 준법 의무를 덜어주는 ‘면제권’을 남발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1999년 지진 당시 세계은행의 튀르키예 담당 이사였던 경제학자 아제이 치버는 CNN에 “건설사들이 정당에 자금을 대면서 정치인들이 면제권을 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11일 튀르키예 법무부는 지진 붕괴 건물의 건설업자 100여 명을 부실공사 혐의로 체포했지만 분노 여론을 달래려는 일시적인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간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진영’ 대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시리아 벨라루스 등 ‘권위주의 진영’으로 양분됐다. 전쟁 당사자인 두 나라를 제외하면 어떤 나라도 지상군을 파병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직접 참전 못지않은 혈투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미 정치매체 더힐 등이 각국이 각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편에 서서 치열한 ‘대리전(proxy war)’을 벌이고 있다고 진단한 이유다. 현재까지 양 진영의 ‘명분’과 ‘돈’ 싸움에서는 자유 진영이 앞선다는 평이 우세하다. 러시아는 침공 직후부터 민간인을 집단 학살하고 살인으로 복역 중인 재소자까지 전쟁에 투입했다. 이로 인해 곳곳에서 러시아 혐오 여론이 조성됐다. 러시아의 뒷마당 정도로 여겨졌던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 인근 국가에서도 ‘탈(脫)러시아’ 바람이 거세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정상이 잇따라 포탄이 쏟아지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하고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 것 또한 명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자유 세계의 지도자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사태를 자국산 최신 무기의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로이터통신 기준 최소 7500억 달러(약 920조 원)로 꼽히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해 실리를 챙기려는 목적도 빼놓을 수 없다.●‘명분과 돈’ vs ‘반미 연대’독일 ‘킬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자유 진영의 46개국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경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합해 최소 1088억 유로(약 146조8800억 원)를 지원했다. 각국 정상 또한 우크라이나를 속속 방문했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집권 중 3회, 올 1월에 개인 자격으로 1회 등 총 4회 찾아 지지 의사를 밝혔다. 리시 수낵 현 총리 또한 집권 3주가 채 안 된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해 6월 같은 날 방문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4번 갔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지난해 5월 방탄조끼를 착용한 채 키이우, 민간인 학살지 부차를 누볐다. 두 달 후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당시 스웨덴 총리가 키이우에 갔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을 지킨 두 나라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기로 하고 우크라이나에 갔다는 점은 명분 싸움의 승자를 보여준다. 캐나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3국 정상도 키이우를 찾았다. 러시아는 침공 후 북한, 이란 등으로부터 무기를 제공받았지만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준은 아니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특히 침공 후 줄곧 러시아의 조력자 노릇을 해온 벨라루스조차 아직 참전은 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캐나다 언론 ‘내셔널포스트’는 역시 소련에 속했던 조지아에서도 반러 여론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수도 트빌리시의 식당에는 “푸틴이 죽으면 보르시 수프(동유럽인이 즐기는 수프)가 무료”란 간판이 등장했다. 다만 중국 이란은 물론 베네수엘라, 중남미 최대 경제대국 브라질 등도 서방의 대러 제재를 반대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맞서려는 권위주의 진영과 제3세계의 움직임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14∼16일 중국을 찾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회담하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행보 또한 반미 연대의 결속력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 북한 등 권위주의 진영에 ‘침공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난달 펴낸 논문에서 “대만은 아시아의 우크라이나로 주목받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이 군사적으로 대만을 합병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韓, 무기 지원 고심 깊어져침공 초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를 제공했던 서방이 최근 전차, 미사일 등 공격용 무기 지원을 늘리자 군수품만 지원했던 한국 또한 무기 지원을 고심하고 있다. 4월 중 취임 후 최초로 미 워싱턴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것이 유력한 윤석열 대통령의 고민 또한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지난해 무기 지원의 예상 효과와 후폭풍 등을 검토했고, 북한과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 지원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한국을 찾은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독일 스웨덴 등 일부 나토 회원국은 교전국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바꿨다”며 한국 또한 무기를 지원하라고 압박했다. 이를 감안할 때 윤 대통령이 미국의 요청에 의해 방미 중 무기 지원 의사를 밝힐 가능성도 있다. 다만 러시아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한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간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진영’ 대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시리아 벨라루스 등 ‘권위주의 진영’으로 양분됐다. 전쟁 당사자인 두 나라를 제외하면 어떤 나라도 지상군을 파병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직접 참전 못지않은 혈투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미 정치매체 더힐 등이 각국이 각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편에 서서 치열한 ‘대리전(proxy war)’을 벌이고 있다고 진단한 이유다. 현재까지 양 진영의 ‘명분’과 ‘돈’ 싸움에서는 자유 진영이 앞선다는 평이 우세하다. 러시아는 침공 직후부터 민간인을 집단 학살하고 살인으로 복역 중인 재소자까지 전쟁에 투입했다. 이로 인해 곳곳에서 러시아 혐오 여론이 조성됐다. 러시아의 뒷마당 정도로 여겨졌던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 인근 국가에서도 ‘탈(脫)러시아’ 바람이 거세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정상이 잇따라 포탄이 쏟아지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하고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 것 또한 명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자유 세계의 지도자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사태를 자국산 최신 무기의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로이터통신 기준 최소 7500억 달러(약 920조 원)로 꼽히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해 실리를 챙기려는 목적도 빼놓을 수 없다.● ‘명분과 돈’ VS ‘반미 연대’독일 ‘킬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자유 진영의 46개국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경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합해 최소 1088억 유로(약 146조 8800억 원)를 지원했다. 각국 정상 또한 우크라이나를 속속 방문했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집권 중 3회, 올 1월에는 개인 자격으로 총 4회 찾아 지지 의사를 밝혔다. 리시 수낵 현 총리 또한 집권 3주가 채 안 된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해 6월 같은 날 방문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4번 왔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지난해 5월 방탄조끼를 착용한 채 키이우, 민간인 학살지 부차를 누볐다. 두 달 후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당시 스웨덴 총리가 키이우에 왔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을 지킨 두 나라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기로 하고 우크라이나에 왔다는 점은 명분 싸움의 승자를 보여준다. 캐나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3국 정상도 키이우를 찾았다. 러시아는 침공 후 북한, 이란 등으로부터 무기를 제공받았지만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준은 아니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특히 침공 후 줄곧 러시아의 조력자 노릇을 해온 벨라루스조차 아직 참전은 않고 있다. 지난달 캐나다 언론 ‘내셔널포스트’는 역시 소련에 속했던 조지아에서도 반러 여론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수도 트빌리시의 식당에는 “푸틴이 죽으면 보르시 수프(동유럽인이 즐기는 수프)가 무료”란 간판이 등장했다. 다만 중국 이란은 물론 베네수엘라, 중남미 최대 경제대국 브라질 등도 서방의 대러 제재를 반대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맞서려는 권위주의 진영과 제3세계의 움직임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14~16일 중국을 찾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회담하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행보 또한 반미 연대의 결속력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 북한 등 권위주의 진영에 ‘침공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난달 펴낸 논문에서 “대만은 아시아의 우크라이나로 주목받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이 군사적으로 대만을 합병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 韓, 무기 지원 고심 깊어져침공 초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를 제공했던 서방이 최근 전차, 미사일 등 공격용 무기 지원을 늘리자 군수품만 지원했던 한국 또한 무기 지원을 고심하고 있다. 4월 중 취임 후 최초로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 윤석열 대통령의 고민 또한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지난해 무기 지원의 예상 효과와 후폭풍 등을 검토했고, 북한과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 지원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한국을 찾은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독일 스웨덴 등 일부 나토 회원국은 교전국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바꿨다”며 한국 또한 무기를 지원하라고 압박했다. 이를 감안할 때 윤 대통령이 미국의 요청에 의해 방미 중 무기 지원 의사를 밝힐 가능성도 있다. 다만 러시아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한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하정민기자 dew@donga.com이채완기자 chaewani@donga.com윤다빈기자 empty@donga.com}

역대 최악의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1년 안에 재건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진 전문가들은 “최소 수년은 걸릴 것”이라며 다른 관측을 내놓고 있다. 1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동남부 디야르바키르를 찾아 “남부 전역에 걸쳐 거주가 불가능해진 수십만 동의 건물을 재건할 계획을 세웠다. 몇 주 안에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건에 난항이 펼쳐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1만7000여 명이 숨진 1999년 대지진 당시에는 대규모 군 인력이 투입돼 비교적 단기간에 재건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강진이 강타한 튀르키예 남부는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어서 주민들이 쿠르드족을 탄압했던 튀르키예군의 지원을 꺼려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일란 켈만 재난학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군을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는 남부에 투입하는 것은 큰 도전이다. 이 지역의 쿠르드족은 군대를 자신의 터전에 두는 것을 매우 주저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9년 대지진 이후 건물 내진 규제가 대폭 강화됐지만 정치권에서 ‘면제권’을 남발해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99년 지진 당시 세계은행의 튀르키예 담당 이사였던 경제학자 아제이 치바는 CNN에 “튀르키예 정부가 특정 건설사를 위해 면제권을 남발해 더 큰 문제를 자초했다. 건설사들은 정당에 자금을 대고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면제권을 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11일 튀르키예 법무부는 지진으로 붕괴한 건물의 건설업자 100여 명을 부실공사 혐의로 체포했지만 분노 여론을 달래려는 일시적인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채완기자 chaewani@donga.com}

“시리아에서 내전으로 죽지 않은 사람은 튀르키예에서 지진으로 죽었다.” 2011년부터 계속된 내전, 수니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폭거 등으로 고통받았던 시리아가 강진으로 더 큰 고통에 처했다. 8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CNN 등은 내전을 피해 튀르키예로 건너간 시리아 난민이 지진으로 싸늘한 주검이 된 채 고향에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난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내전 발발 후 거주지를 떠난 시리아인은 전 인구(2100만 명)의 절반이 넘는 1300만 명. 이 중 약 3분의 1인 400만 명이 이웃 튀르키예로 왔다. 이 와중에 6일 시리아 북부와 튀르키예에서 발발한 강진으로 9일 기준 시리아에서만 3000명 이상이 숨졌다. 내전으로 정확한 통계 작성이 어려워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시신 가방 가득한 국경통제소CNN에 따르면 7, 8일 양일간 300구가 넘는 시신이 튀르키예에 인접한 국경통제소 ‘밥 알하와’를 지났다. 시신 가방에 담기지 못한 일부 시신은 푸른색 방수포나 담요 등을 둘렀다. 지진 발생 후 8일까지 사흘간 이 통제소에는 원조 물품이 들어오지 않았고 오직 시신 가방만 통과했다. 오촌 조카인 13세 소녀 야라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왔다는 아흐마드 알유수프 씨(37)는 8일 NYT에 “야라의 부모와 형제는 아직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있다”고 토로했다. 자신 또한 천막 생활을 하는 처지지만 수습을 도맡았다며 “모든 사망자가 가족 곁에 묻히기 바란다”고 했다. 야라의 가족 시신을 수습할 때까지 계속 이곳에 오겠다는 뜻도 밝혔다. 통제소 주변은 시신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 남성은 “여자 형제의 시신을 확인하라”는 다른 남성의 말에 “못 한다”며 머뭇거렸다. 망자의 얼굴이 영원히 기억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결국 다른 남성이 대신 신원을 확인했다. ●내전-IS-강대국 이해관계로 고통 가중다민족 다종교 다종파 국가인 시리아의 고질적인 내부 갈등 또한 주민 고통을 키웠다. 2000년 집권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다. 그가 집권 후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하자 다수인 수니파의 불만이 누적됐고 내전이 발발했다. 아사드 정권이 반군에 화학무기까지 사용하는 와중에 일부 수니파 극단 세력이 IS에 가담했다. 소수민족 쿠르드족도 분리 독립을 주창했다. 수니파, 쿠르드족, IS는 ‘반(反)아사드’ 전선에 있다. 그러나 수니파와 쿠르드족은 IS와도 거리를 두는 등 사분오열 상태였다. 강대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미국 등 서방은 ‘IS 격퇴-반아사드’를 이유로 반군을 지원했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의 후원자다. 서방의 지원으로 IS는 사라졌지만 남은 세력 간 입장 차가 첨예하다. 엘모스타파 벤라믈리흐 시리아 주재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은 CNN에 “내전으로 인프라가 마비된 유령 도시가 많다”며 지진까지 겹쳐 시리아가 ‘위기 속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아사드 정권은 지진이 발생한 6일에도 반군이 장악한 북부 마레아를 폭격했다. 얼리샤 컨스 영국 하원의원은 “마레아가 지진 피해와 싸우는 동안 ‘기회주의자’ 아사드 대통령이 냉혹하고 무자비하게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런 아사드 정권을 줄곧 제재했다. 제재로 구호물품 반입이 어려워지자 아사드 정권은 8일 EU에 도움을 요청했고 EU 또한 돕기로 했다. 9일에는 지진 후 처음으로 유엔의 구조물품이 시리아에 도착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시리아에서 내전으로 죽지 않은 사람은 튀르키예에서 지진으로 죽었다.” 2011년부터 계속된 내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난립 등으로 고통받았던 시리아가 강진으로 더 큰 고통에 처했다. 8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CNN 등은 내전을 피해 튀르키예로 건너간 시리아 난민이 지진으로 싸늘한 주검이 된 채 고향에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난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전 발발 후 시리아를 떠나 튀르키예로 향한 사람은 전 인구(2100만 명)의 19%인 400만 명이 넘는다. 이 와중에 6일 시리아 북부와 튀르키예에서 발발한 강진으로 9일(현지 시간) 기준 시리아에서만 3000명이 이상이 숨졌다. 내전 후 대부분의 인프라가 무너져 정확한 통계 작성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 원조품 대신 시신 가방만 통과 CNN에 따르면 7, 8일 양일간 300구가 넘는 시신이 튀르키예에 인접한 국경통제소 ‘바브 알하와’를 지났다. 시신 가방에 담기지 못한 일부 시신은 푸른색 방수포나 담요 등을 두른 상태였다. 지진 발생 후 8일까지 사흘간 이 통제소에는 원조 물품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오직 시신 가방만 통과했다. 9일에야 음식 등을 실은 구조 트럭 6대가 들어온다고 CNN은 전했다. 오촌 조카인 13세 소녀 야라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왔다는 아흐마드 알유수프(37) 씨는 NYT에 “야라의 부모와 형제는 아직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있다”고 했다. 자신 또한 천막 생활을 하는 처지지만 수습을 도맡았다며 “모든 사망자가 가족 곁에 묻히기 바란다”고 했다. 야라의 가족 시신을 수습할 때까지 계속 이 곳에 오겠다는 뜻도 밝혔다. 통제소 주변은 시신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 남성은 “여자 형제의 시신을 확인하라”는 다른 남성의 말에 “못 한다”며 머뭇거렸다. 망자의 얼굴이 영원히 기억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결국 다른 남성이 대신 신원을 확인했다. ● 내전-IS-강대국 이해관계로 고통 가중 다민족 다종교 다종파 국가인 시리아의 고질적인 내부 갈등 또한 주민 고통을 키웠다. 2000년 집권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다. 그가 집권 후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하자 다수인 수니파의 불만이 누적됐고 내전이 발발했다. 아사드 정권이 반군에 화학무기까지 사용하는 와중에 일부 수니파 극단세력이 IS에 가담했다. 소수민족 쿠르드족도 분리 독립을 주창했다. 수니파, 쿠르드족, IS는 ‘반(反)아사드’ 전선에 있다. 그러나 수니파와 쿠르드족은 IS의 폭거를 용납할 수 없어 거리를 뒀다. 강대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미국 등 서방은 ‘IS 격퇴-반아사드’를 이유로 반군을 지원했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의 후원자다. 서방의 지원으로 IS는 사라졌지만 남은 세력 간 입장 차이가 첨예해 내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아사드 정권이 통치하는 시리아에 대대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와 달리 시리아는 각국 원조를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바삼 삽바그 주유엔 시리아대사는 CNN에 “제재 때문에 많은 비행기와 화물 수송기가 시리아 공항에 착륙하기를 거부한다”고 했다. 이에 아사드 정권은 결국 8일 EU에 직접적인 도움을 요청했고, EU도 “회원국에 의약품과 식량 지원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엘 벤람리 시리아주재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은 “내전으로 인프라가 마비된 유령 도시가 많다”며 지진까지 겹쳐 시리아가 ‘위기 속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우리를 여기서 꺼내 주세요. 뭐든 할게요. 하인이 될게요.”시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하람의 7세 소녀 마리암은 6일 튀르키예(터키)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여동생 일라프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혔다. 마리암은 36시간 만에 도착한 구조대를 향해 어린이가 흔히 쓰지 않는 ‘하인’이란 말까지 써 가며 간절히 구조를 호소했다. 그 와중에도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콘크리트 벽으로부터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일라프의 머리를 감쌌다. 구조대는 “울지 마”라고 자매를 달랜 뒤 작업을 시작했다. 천신만고 끝에 구조된 둘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8일 미국 CNN이 보도한 마리암 가족의 사연은 지진 당시 참상을 짐작하게 한다. 자매를 포함한 세 아이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알 사예드 씨는 지진 당시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잔해가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이틀을 머물렀다”고 토로했다. 인간이라면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극한의 공포를 겪었다고도 했다. 지진 다음 날인 7일 구조대가 이 가족의 집에 도착했을 때 세 자녀 중 마리암과 일라프는 무너진 침실의 벽 사이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예드 씨는 구조대가 아니었다면 딸들을 잃었을지 모른다며 “나와 아내, 세 아이 모두 살아 있다. 가족을 구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시리아에서는 2011년부터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지지 세력과 반군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자매가 구조된 지역은 반군이 통치한다. 오랜 내전으로 사회 인프라가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지진까지 겹쳐 8일 오전까지 최소 2500여 명이 숨졌다.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인 유엔 관계자는 “주민 대부분이 지진 전에도 이미 생존을 위협받고 있었다”면서 “지진이 이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7일 트위터에 영어 등 9개 언어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진심으로 함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구체적인 지원이 끔찍한 비극에서 그들을 구할 수 있다”며 세계 각국의 지원을 호소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6일(현지 시간) 오후 시리아 북부 진디레스. 규모 7.8 강진으로 5층 아파트가 무너져 내린 잔해에서 칼릴 알 샤미(34)는 형의 가족을 찾기 위해 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둔 형수와 태어날 아기가 걱정이었다. 시멘트 파편과 흙먼지 사이로 형수로 보이는 여성의 다리와 탯줄을 달고 있는 아기가 보였다. 차가운 폐허 속에서 조카가 태어난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재난의 한복판에 갇힌 조카는 팔다리가 축 처진 채 구조대원의 손에 들려 나왔다. 얼굴과 등이 멍투성이였지만 숨을 쉬며 팔다리를 움직였다. 아기가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은 앞다퉈 담요를 던졌다. 안타깝게도 산모 등 다른 가족들은 모두 숨졌다고 AP통신은 7일 전했다. 조카의 탯줄을 자른 샤미는 “형수가 다음 날 출산하기로 돼 있었는데 지진의 충격으로 분만한 것 같다”고 말했다. 6일 새벽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8일 오후 2시 반(한국 시간 오후 8시 반) 기준 확인된 사망자는 1만1200여 명에 이른다. 최대 3일까지인 구조의 골든타임이 끝나가고 있어 사망자는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수 있다. 유니세프는 어린이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부모를 잃어 신원 파악이 안 되는 아이들도 많다. 숨진 아이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시신 수습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누르다으의 건물 잔해에서 숨진 자녀를 꺼낸 압두라흐만 겐차이 씨는 “아이를 빨간 담요로 말아 집집마다 다니며 묻어줄 사람을 찾았지만 실패했다. 시체 안치소도 꽉 차서 수십 구의 시신이 앞에 방치돼 있다”고 7일 워싱턴포스트(WP)에 전했다.지진 사망 1만1200명 넘어 천으로 싸인 시신들 도로 곳곳 널려“생존 아동들도 큰 트라우마 겪을 것”이재민 2300만명… 동사 위험도 커 지진으로 도로 등 기반시설이 파괴된 데다 장비 부족 등이 겹치면서 현지에서는 주민들이 맨손으로 잔해를 파내며 구조에 나서는 실정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여기에 추운 날씨까지 겹치면서 생존 능력이 약한 어린이들의 희생이 빠르게 늘고 있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사태 수습에 사실상 손을 놓은 상황에서 구조 작업을 주도하는 반군 측 민방위군 ‘화이트 헬멧’의 한 대원은 “가족 내 사망자 중 대부분이 아이들”이라고 WP에 전했다. 다른 대원은 한 소녀가 건물에 깔린 것을 보고 나무토막으로 잔해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막으며 4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갔지만 다른 곳에서 지원 요청이 쇄도해 결국 떠나야 했다. 그는 “생존자가 있어도 구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절망감을 드러냈다. 기적적인 생존 소식들도 간간이 전해졌다.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에서는 콘크리트 지붕과 뒤틀린 철근 아래에 갇혀 있던 세 살배기 남아 아리프 칸이 지진 발생 이틀 만에 구조됐다. 칸보다 먼저 구조됐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구급차에 실리자 감격의 눈물을 터뜨렸다. 33세 여성과 두 살 난 딸이 지진 발생 44시간 만에 구조됐고, 소파 밑에 끼어 있던 2세 아이도 43시간 만에 구출됐다고 튀르키예 아나돌루통신이 전했다. 조 잉글리시 유니세프 대변인은 뉴욕타임스(NYT)에 “지진 피해 지역 어린이들 중 신체적·심리적으로 이번 재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아이는 없을 것”이라며 “아이들에겐 트라우마 중의 트라우마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회색 먼지를 뒤집어쓴 수십 명의 생존자가 유령처럼 절뚝거리며 (가족이나 지인을 찾기 위해) 아파트 잔해를 헤집고 있다”며 지진이 휩쓸고 간 현장의 참상을 묘사했다. 한 여성이 11세, 17세인 두 아들이 서로 껴안은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며 울먹이자, 어머니를 찾고 있던 이웃은 “시신이라도 찾은 당신이 부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해가 특히 심각한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안타키아에는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구급차량들이 접근하지 못해 혼란이 벌어졌다고 NYT는 보도했다. 하타이 현지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천으로 싸인 시신들이 도로 곳곳에 5, 6구씩 놓여 있었다. 피해 지역은 넓은데 당국의 구조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실종자 가족들은 자구책에 의존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알리며 구조를 요청하는 게시물이 이어졌다. 무너진 집에 갇힌 한 10대 소년은 영상 촬영 도중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자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신이여, 저희를 도우소서”라고 말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8일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최대 1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이재민은 2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 튀르키예 주민은 “텐트도, 난로도, 아무것도 없는데 아이들과 함께 비에 젖은 채 떨고 있다. 굶주림이나 지진이 아니라 추위로 죽을 것”이라며 지원을 호소했다. 튀르키예 시민들은 정부가 재난 예방과 응급 서비스 개선에 쓰겠다며 1999년 이른바 ‘지진세’(특별 통신세)를 도입해놓고 지진 대비에는 부실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AFP통신은 시민들이 “재난 발생 후 첫 12시간 동안 구조팀이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인 것이냐”며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앙카라=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우리를 여기서 꺼내주세요. 뭐든 할게요. 하인이 될게요.” 시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하람의 7세 소녀 마리암은 6일(현지 시간) 튀르키예(터키)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여동생 일라프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혔다. 마리암은 36시간 만에 도착한 구조대를 향해 어린이가 흔히 쓰지 않는 ‘하인’이란 말까지 써 가며 간절히 구조를 호소했다. 그 와중에도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콘크리트벽으로부터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일라프의 머리를 감쌌다. 구조대는 “울지 마”라고 자매를 달랜 뒤 작업을 시작했다. 천신만고 끝에 구조된 둘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8일 미국 CNN이 보도한 마리암 가족의 사연은 지진 당시 참상을 짐작케 한다. 자매를 포함한 세 아이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알사예드 씨는 지진 당시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잔해가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이틀을 머물렀다”고 토로했다. 인간이라면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극한의 공포를 겪었다고도 했다. 지진 다음날인 7일 구조대가 이 가족의 집에 도착했을 때 세 자녀 중 마리암과 일라프는 무너진 침실의 벽 사이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알사예드 씨는 구조대가 아니었다면 딸들을 잃었을지 모른다며 “나와 아내, 세 아이 모두 살아있다. 가족을 구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시리아에서는 2011년부터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지지 세력과 반군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자매가 구조된 지역은 반군이 통치한다. 오랜 내전으로 사회 인프라가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지진까지 겹쳐 8일 오전까지 최소 2500여 명이 숨졌다.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인 유엔 관계자는 “주민 대부분이 지진 전에도 이미 생존을 위협받고 있었다”면서 “지진이 이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7일 트위터에 영어 등 9개 언어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진심으로 함께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구체적인 지원이 끔찍한 비극에서 그들을 구할 수 있다”며 세계 각국의 지원을 호소했다.이채완기자 chaewani@donga.com}
규모 7.8 강진이 강타해 7일 현재 5100명 이상 숨진 튀르키예(터키)와 시리아의 인명 구조와 피해 복구를 위해 국제사회 지원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을 비롯한 70개국이 지진 피해 지역에 구호 인력 파견과 장비 및 자금 제공에 나섰다. AP통신을 비롯한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전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에 각각 79명으로 구성된 2개 수색구조팀을 급파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튀르키예와 협력하며 상황을 면밀히 주시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EU도 19개국에서 1200명 이상의 수색구조팀을 동원했고 인명 수색이 쉽도록 긴급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페르니쿠스 위성 시스템을 활성화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를 비롯해 나토 가입을 놓고 튀르키예와 갈등 중인 스웨덴 핀란드도 지원 의사를 밝혔다. 7일 피해 지역에 구조대를 투입한 중국은 4000만 위안(약 74억 원)을 긴급 지원한다고 밝혔다. 73명 규모의 일본 구조대는 이날 튀르키예에 도착했고, 인도도 수색구조팀 100명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에게해 영유권 등을 놓고 튀르키예와 분쟁 중인 그리스는 구조대와 보급품을 보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통화하고 “지진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하고 부상자 쾌유를 빈다”고 전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내전 중인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 이란은 물론이고 적대 관계인 이스라엘도 시리아에 지원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는 10개 부대 300명의 병력을 파견했고, 이스라엘도 기술자 의료진 구호대원 등 150명으로 구성된 수색구조팀을 보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튀르키예(터키) 남부와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규모 7.8 지진 발생 이틀째인 7일(현지 시간) 사망자가 5100명을 넘었다고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통신이 전했다. 이날도 진앙에서 가까운 튀르키예 동부에서 규모 5.7 지진이 발생하는 등 여진이 계속된 데다 무너진 건물 수천 채의 잔해에 깔린 사람이 아직도 많아 사망자가 2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튀르키예 재난비상관리국은 전날 새벽 발생한 강진으로 이날 현지 시간 오후 4시 반(한국 시간 오후 10시 반) 기준 튀르키예에서 3549명, 시리아에서 1622명 등 모두 5171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하루 새 사망자가 3배로 늘어난 것이다. 부상자는 튀르키예에서 2만1103명, 시리아에서 3649명으로 집계됐다. 우리 정부를 비롯해 국제사회가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무너진 건물이 많은 데다 눈비 같은 악천후까지 겹쳐 구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튀르키예 당국은 7일 오전 기준 건물 5775동이 붕괴된 것으로 파악했다. 여진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7시 11분 튀르키예 동부에서 규모 5.7 지진이 발생하는 등 첫 지진 이후 약 30시간 동안 규모 6.0을 넘는 지진 4차례를 비롯해 규모 4.0 이상 여진이 130차례 발생했다고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망자 폭증 가능성을 우려했다. 캐서린 스몰우드 WHO 유럽지부 선임비상계획관은 6일 AFP통신에 “지진 발생 일주일간 사상자가 상당히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망자가 8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집계된 사망자는 약 2600명으로 8배로까지 늘어난다면 2만 명을 넘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고물가에 따른 경제난과 심각한 내전을 겪고 있는 튀르키예와 시리아가 이번 대지진으로 더 큰 고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미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7층 건물 10초만에 붕괴 영상 올라생존자들은 추위-여진 공포에 떨어2200년 된 가지안테프 古城도 훼손 “신이시여, 우리가 무엇을 했기에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튀르키예(터키) 남동부와 시리아 북부 일대를 강타한 지진 피해를 직격으로 받은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주에서 6일(현지 시간) 가족과 함께 겨우 탈출한 무함마드 하이 카두르 씨는 이렇게 되뇌었다.카두르 씨는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축구장 크기의 건물 일대가 전멸했다. 주위는 사람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며 “(내전) 공습 당시 같은 피 냄새가 났다”고 전했다. 이들리브주의 한 의사는 “50구 넘는 시신이 병원 복도에 쌓였다. 대부분 아이들이었다”면서 “계속해서 또 다른 시신이 들어왔다”고 NYT에 밝혔다. 규모 7.8, 7.5의 강진과 7일까지 이어진 총 130여 차례의 여진은 건물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영국 스카이뉴스가 공개한 현장 영상에서는 진앙인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에서 동쪽으로 약 140km 떨어진 샨르우르파주 할릴리예 7층 건물이 굉음과 함께 10초 만에 붕괴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동부 말라티아에서는 현장 생중계를 하던 튀르키예 방송 취재진 너머로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송출됐다. 일부에서는 여진으로 건물 일부가 내려앉아 구조하던 사람들을 덮치면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지진이 부른 정전과 영하 5도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잇단 여진 때문에 컴컴한 거리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대다수는 두꺼운 옷가지 하나 챙기지 못하거나 신발조차 없었다. 6일 밤 튀르키예 피해 지역 곳곳에서는 무너진 건물 목재로 피운 모닥불 주위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 몸을 녹이는 경우가 많았다. 구조대가 도착하지 않거나 장비가 부족해 수색 작업을 시작하지 못한 곳도 있었다. 남동부 카흐라만마라슈에 사는 남성은 7일 “어머니가 어제부터 24시간째 (잔해 속에) 갇혀 있다. 아침에 구조대가 온다고 했지만 소식도 없다. (구조) 시스템이 열악하다”며 울먹였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튀르키예 교민들에 따르면 이날 남부 하타이 거리는 잔해에 묻힌 가족 친지 이름들을 부르는 울부짖음과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정전은 물론이고 전화나 인터넷 연결도 수시로 끊어졌다. 도심 도로는 빠져나가려는 차량과 지인, 친척들을 구하려고 들어오는 차량으로 마비됐다. 하타이에 사는 안바울 안디옥교회 목사는 “(3층짜리) 100년 된 교회 건물 2, 3층이 무너졌다”며 “거센 비가 내렸지만 여진이 두려워 동틀 때까지 교회 밖에서 기다렸다”고 전했다. 문화재도 다수 훼손됐다. 가지안테프 랜드마크인 2200년 역사의 가지안테프 성도 성벽과 망루 등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800년 가까이 온전하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시리아 알레포 성채도 일부 훼손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7일 대국민 연설에서 지진 피해를 심하게 입은 남동부 10개 지역에 3개월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적어도 8000명이 구조됐으며 5만3000여 명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이스탄불=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지난해 8월 미국 뉴욕에서 강연하다 이란에 동조하는 레바논계 미국 청년에게 습격당해 중상을 입은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6·사진)가 사건 이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아직도 악몽에 시달린다”고 밝혔다. 루슈디는 6일(현지 시간) 미 잡지 뉴요커 인터뷰에서 “피습에 대한 꿈은 아니지만 끔찍하게 두려운 악몽을 꾼다”고 말했다. 피습 사건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한쪽 손을 쓸 수 없게 된 그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려 집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습격범이 자신의 소설 ‘악마의 시’(1988년)를 단 두 쪽만 읽었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1989년 파트와(루슈디 사형 선고)를 그저 따랐다고 밝힌 데 대해 “바보들이나 할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습 당시 방심했느냐는 물음에 “나 스스로 그 질문을 많이 했지만 답을 모르겠다”며 “작가로서 내 삶의 4분의 3은 파트와 이후 일어났고 그 인생을 후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의 신작 ‘승리의 도시’는 7일 영국에서 발간된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신이시여, 우리가 무엇을 했기에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튀르키예(터키) 남동부와 시리아 북부 일대를 강타한 지진 피해를 직격으로 받은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주에서 6일(현지 시간) 가족과 함께 겨우 탈출한 무함마드 하이 카도르 씨는 이렇게 되뇌었다. 카도르 씨는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축구장 크기의 건물 일대가 전멸했다. 주위는 사람들의 울음소리 뿐이었다”며 “(내전) 공습 당시 같은 피 냄새가 났다”고 전했다. 이들리브주 한 의사는 “50구 넘는 시신이 병원 복도에 쌓였다. 대부분 아이들이었다”면서 “계속해서 또 다른 시신이 들어왔다”고 NYT에 밝혔다. 규모 7.8, 7.5의 강진과 7일까지 이어진 도합 130차례 여진은 건물들을 순식간에 무너트렸다. 영국 스카이뉴스가 공개한 현장 영상에서는 진앙인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에서 동쪽으로 약 140㎞ 떨어진 샤르우르파주 할릴리예 7층 건물이 굉음과 함께 10초 만에 붕괴되는 모습이 포착됐다. 동부 말라티야에서는 현장 생중계를 하던 튀르키예 방송 취재진 너머로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송출됐다. 일부에서는 여진으로 건물 일부가 내려앉아 구조하던 사람들을 덮쳐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지진이 부른 정전과 영하 5도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잇단 여진 때문에 컴컴한 거리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대다수는 두터운 옷가지 하나 챙기지 못하거나 신발조차 없었다. 6일 밤 튀르키예 피해 지역 곳곳에서는 무너진 건물 목재로 피운 모닥불 주위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여 몸을 녹이는 경우가 많았다. 구조대가 도착하지 않거나 장비가 부족해 수색 작업을 시작하지 못한 곳도 많았다. 남동부 카흐라만마라슈에 사는 남성은 7일 “어머니가 어제부터 24시간째 (잔해 속에) 갇혀 있다. 아침에 구조대가 온다고 했지만 소식도 없다. (구조) 시스템이 열악하다”며 울먹였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튀르키예 교민들에 따르면 이날 남부 하타이 거리는 잔해에 묻힌 가족 친지 이름들을 부르는 울부짖음과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정전은 물론이고 전화나 인터넷 연결도 수시로 끊어졌다. 도심 도로는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차량과 지인과 친척들을 구하려고 들어오는 차량으로 마비됐다고 한다. 하타이에 거주하는 안바울 안디옥교회 목사는 “(3층짜리) 교회 건물 2, 3층이 무너졌다”며 “거세게 비가 왔지만 여진이 두려워 동 틀 때까지 교회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문화재도 다수 훼손됐다. 가지안테프 랜드마크인 2200년 역사의 가지안테프 성도 성벽과 망루 등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800년 가까이 온전하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시리아 알레포 성채도 일부 훼손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6일부터 일주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또 피해 복구에 집중하기 위해 13일까지 전국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지난해 8월 미국 뉴욕에서 강연하다 이란에 동조하는 레바논계 미국 청년에게 습격당해 중상을 입은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6·사진)가 사건 이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아직도 악몽에 시달린다”고 밝혔다. 루슈디는 6일(현지 시간) 미 잡지 뉴요커 인터뷰에서 “피습에 대한 꿈은 아니지만 끔찍하게 두려운 악몽을 꾼다”고 말했다. 피습 사건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한쪽 손을 쓸 수 없게 된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려 집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루슈디는 “나는 운이 좋았다. 몸 상태는 많이 나아졌다. 큰 부상은 치유됐고 손은 여전히 치료받고 있다”면서 “(피습) 사건 이후 압도적으로 감사함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습격범이 자신의 소설 ‘악마의 시’(1988)를 단 두 쪽만 읽었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1989년 파트와(루슈디 사형 선고)를 그저 따랐다고 밝힌 데 대해 “바보들이나 할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습 당시 방심했느냐는 물음에 “나 스스로 그 질문을 많이 했지만 답을 모르겠다”며 “작가로서 내 삶의 4분의 3은 파타와 이후 일어났고 그 인생을 후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의 신작 ‘승리의 도시’는 7일 영국에서 발간된다.이채완기자 chaewani@donga.com}
홍콩에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민주화 인사 47명에 대한 재판이 6일 시작됐다. 2020년 6월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이후 열리는 최대 규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으로, 90일간 진행된다. 이날 재판이 열리는 법원 앞에는 방청을 요구하는 시민 100여 명이 몰렸다. 일부 시민들은 “정치범들을 즉각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했다고 AFP 통신 등이 전했다. 홍콩 검찰이 정권 전복 혐의로 기소한 47명 중에는 학생 운동가 조슈아 웡, 베니 타이 전 홍콩대 교수, 클라우디아 모 전 입법회(의회) 의원 등이 포함돼 있다. 기소된 인사들 중 31명은 현재 유죄를 인정한 상태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정권 전복과 함께 국가 분열, 외세와의 결탁, 테러 활동을 4대 주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 인사들은 2020년 9월 예정됐던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그보다 두 달 전 야권 후보를 뽑는 비공식적인 예비선거를 진행했다. 당시 투표소에 60만 명이 몰리는 등 상당수 여론이 민주 진영 결집 시도에 호응했다. 하지만 홍콩 검찰은 이 선거를 정부를 마비시키려는 목적의 불법 선거로 규정하고 2021년 2월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이들은 가담 정도에 따라 최소 3년의 징역형에서 최대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중대 범죄에 대해선 보통 배심원 재판으로 이뤄지지만 이번 사건은 배심원 없이 홍콩 행정장관이 직접 지명한 3명의 판사가 심리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들 대다수는 국가안보 위협 등의 사유로 가족 및 변호사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2년여간 교도소에 수감됐다. 미 조지타운대 아시아법센터의 에릭 라이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재판은 47명의 야권 인사뿐만 아니라 홍콩 민주화운동에 대한 재판”이라고 말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민주화 인사 47명에 대한 재판이 6일 시작됐다. 2020년 6월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이후 열리는 최대 규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으로, 90일간 진행된다. 이날 재판이 열리는 법원 앞에는 방청을 요구하는 시민 100여 명이 몰렸다. 일부 시민들은 “정치범들을 즉각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홍콩 검찰이 정권 전복 혐의로 기소한 47명 중에는 학생 운동가 조슈아 웡, 베니 타이 전 홍콩대 교수, 클라우디아 모 전 입법회(의회) 의원 등이 포함돼있다. 기소된 인사들 중 31명은 현재 유죄를 인정한 상태다. 홍콩 국가보안법은 정권 전복과 함께 국가 분열, 외세와의 결탁, 테러 활동을 4대 주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인사들은 2020년 9월 예정됐던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그보다 두 달 전 야권 후보를 뽑는 비공식적인 예비 선거를 진행했다. 당시 투표소에 60만 명이 몰리는 등 상당수 여론이 민주 진영 결집 시도에 호응했다. 하지만 홍콩 검찰은 이 선거를 정부를 마비시키려는 목적의 불법 선거로 규정하고 2021년 2월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이들은 가담 정도에 따라 최소 3년의 징역형에서 최대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중대 범죄에 대해선 보통 배심원 재판으로 이뤄지지만 이번 사건은 배심원 없이 홍콩 행정장관이 직접 지명한 3명의 판사가 심리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들 대다수는 국가안보 위협 등의 사유로 가족 및 변호사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2년여 간 교도소에 수감됐다. 미 조지타운대 아시아법센터의 에릭 라이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재판은 47명의 야권 인사뿐만 아니라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판”이라고 말했다.이채완기자 chaewani@donga.com}

스타벅스, 디즈니, 트위터 등 미국 주요 대기업이 속속 원격 근무를 축소하고 있는 가운데 미 근로자들의 사무실 복귀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안업체 캐슬시스템스 자료를 인용해 지난주 미 10개 도시의 사무실 이용률이 평균 50.4%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대확산으로 2020년 3월부터 대부분의 기업이 원격 근무를 택한 후 50%를 넘긴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지역별로는 남부 텍사스주의 오스틴과 휴스턴의 사무실 근무 비율이 모두 60%를 넘어섰다. 정보기술(IT) 기업이 많고 원격 근무 또한 일반화한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는 41%였다. 뉴욕에서는 요일별로도 상당한 편차가 있었다. 화요일이 59.8%로 가장 높았고 금요일이 26.5%로 가장 낮았다. 주요 기업은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사무실 근무를 지시한 상태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CEO는 지난달 11일 워싱턴주 시애틀 본사 직원에게 “일주일에 최소 사흘은 출근하라”고 했다. 밥 아이거 디즈니 CEO 역시 다음 달 1일부터 주 4일의 회사 근무를 의무화했다. 지난해 10월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또한 “매주 최소 40시간 이상을 사무실에서 일하라”고 지시했다. 일부 기업은 원격과 사무실 근무를 혼합하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근무를 제시하거나 사무실에 무료 간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근로자의 사무실 출근을 독려하고 있다. 야당 공화당이 다수당인 미 하원 또한 1일 연방정부의 원격 근무 기준을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2월 때로 되돌렸다. 또 공화당이 발의한 재택 근무 전환이 노동자 생산성과 연방정부의 비용 지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미 인사관리처(OPM)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연방정부 공무원 중 47%가 원격 근무를 하고 있다. 수도 워싱턴을 이끄는 뮤리얼 바우저 시장 또한 도심 상점이 문을 닫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무원의 사무실 출근을 늘려 달라고 연방정부에 요청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2021년 한 해간 미국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가 2014년 이후 7년 만에 처음 증가했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미국 내 출생아 수는 366만4292명으로 한 해 전보다 1%(약 5만 명) 늘었다. 이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한 수치다. 미 출생아 수는 2014년부터 연 평균 1%씩 감소하고 있었다. 특히 2020년에는 2019년보다 무려 4%(약 13만 명) 줄었다.인종 별로는 백인과 히스패닉 여성의 출산율이 각각 2%씩 증가했다. 반면 아시아계와 흑인 의 출산율은 모두 2%씩 줄었다. 연령 별로는 15~24세 여성의 출산율이 감소했고 25~44세 는 늘었다. 이에 따라 첫 출산 여성의 평균 나이가 역대 가장 높은 27.3세를 기록했다다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신생아 수 증가가 일시적 반등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는 코로나19 발발 첫 해인 2020년에 여성들이 건강, 경제적 불확실성 등을 우려해 출산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CNN 역시 이번 상승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375만 명에 비해서는 크게 낮다고 보도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독립운동가 김순권 지사의 아들이자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서 활약한 한국계 미국 전쟁 영웅 김영옥 대령(1919∼2005·사진)에게 미국 연방의회의 금메달을 수여하자는 법안이 다시 발의됐다. 이 메달은 미 의회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상으로 아직까지 이 상을 받은 한국계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집권 민주당의 앤디 김,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의원, 야당 공화당의 영 김, 미셸 박 스틸 의원 등 한국계 하원의원 4명이 재발의를 주도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영 김 의원실 등에 따르면 4명의 의원은 김 대령의 지도력과 인도주의에 대한 공로 등을 기려 의회 금메달을 수여해야 한다는 법안을 최근 발의했다. 한국계 의원들은 2021년 3월에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이 메달을 수상하려면 하원(435석)과 상원(100석)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스트리클런드 의원은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의 영웅이며 지역사회의 뛰어난 지도자이자 인도주의자로서 그는 이 높은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했다. 스틸 의원 또한 “군 복무를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의 장벽을 깼다”고 평했다. 김 대령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아시아계 최초의 미 육군 장교 자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연합군의 이탈리아 로마 탈환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6·25전쟁 때는 비백인 최초로 전투대대장을 맡아 활약했다. 그는 1972년 대령으로 전역했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계, 장애인, 노인, 청소년 등을 지원하는 각종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했다. 이에 그의 이름을 딴 중학교도 설립됐다. 태극무공훈장을 포함해 이탈리아 최고십자무공훈장,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무공훈장 등 각국에서 수많은 훈장도 받았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교착 상태인 전황을 뒤집기 위한 봄 대공세가 예상되는 러시아 당국이 비판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을 올린 10대를 형사처벌하는 등 국내 온라인 검열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29일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SNS 계정에 공유한 올레샤 크립초바(19)는 테러 조장 및 러시아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크립초바는 또 지난해 10월 크림대교 폭발 관련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이슬람국가(IS), 탈레반 같은 테러리스트 및 극단주의자 명단에 올랐다. 크립초바는 지난해 12월 집에 들이닥친 러시아 경찰에 붙잡혔다. 어머니 나탈랴 씨는 “경찰들이 딸을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는 ‘(용병 집단) 바그너그룹이 보내는 인사다’라고 소리치며 협박했다”고 CNN에 말했다. 이후 크립초바는 오른쪽 발목에 전자발찌를 찬 채 가택 연금된 상태다. 테러리스트로 지정된 탓에 한 달에 145달러(약 18만 원) 이상 지출할 수 없으며 SNS도 차단됐다. 크립초바는 테러 조장 혐의로 최대 징역 7년, 군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3년까지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 정치범 실태를 감시하는 독일 비정부기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에서 ‘온라인 테러 조장’ 혐의로 적어도 61명이 기소돼 26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CNN은 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날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통합사령관이 군사 블로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고 보도했다. 이 군사 블로거들은 전쟁이 장기화되자 군 지휘관의 무능과 전략 등을 비판해 왔다. 이들은 사전 검열을 비롯해 종군기자와 똑같은 규율을 적용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