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문병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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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병기 기자입니다.

weappon@donga.com

취재분야

2026-02-22~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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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국민의힘, 부정선거 음모론과도 절연해야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당 차원의 선거 감시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유튜버 전한길 씨 등과 ‘끝장토론’을 한 직후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선거 시스템을 바꾸는 문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어젠다가 되었다”며 “선거 시스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는 이루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증 앞세운 부정선거론의 함정 장 대표는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정선거 주장에 대한 모호한 태도는 적극적인 동조보다 더 위험하다. ‘의혹이 있으니 검증하자’는 말은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음모론자들이 제도권 정치로 침투할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부정선거가 1940년대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을 위해 추진한 ‘맨해튼 프로젝트’와 같은 극비 프로젝트라는 망상을 늘어놓은 음모론자들의 결론은 늘 “그래서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문제의 핵심은 제도를 개선한다고 해서 부정선거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정선거론자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증거 없는 주장에 반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박할 수 없는 주장, 해법을 찾을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음모론의 핵심이다. 부정선거론자들의 목적은 공정한 선거가 아니라 선거 결과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론이 확산하는 데 ‘소쿠리 투표’, 투표용지 반출 등 선거관리위원회의 자충수가 배경이 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엄정한 선거 관리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옳다. 하지만 제도의 허점이 음모론에 정당성을 부여해선 안 된다. 부정선거에 대한 장 대표의 모호한 태도는 현재 국민의힘이 맞은 정치적 위기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이미 6·3 지방선거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공포가 당을 잠식할수록 극단적 지지층과의 연대를 합리화하려는 유혹도 커진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2024년 총선 패배 이후 계엄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치달으며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 손을 잡았다. ‘윤 어게인(again)’을 외치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지금도 선거 패배의 위기를 맞은 국민의힘을 흔들며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 이런 구도는 낯설지 않다. 비(非)백인 인구의 증가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공화당은 ‘민주당이 조직적으로 불법 이민자들을 투표에 참여시킨다’는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검증’을 앞세우며 흑인과 히스패닉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안들을 밀어붙였다.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 지지층의 손을 잡았지만 음모론자들과 성난 백인 유권자들의 연합에 포획된 공화당은 결국 부정선거를 앞장서 선동하는 대통령을 두 차례나 자신들의 손으로 선출했다.보수의 잣대는 어디로 갔나 부정선거 토론회에 나섰던 이준석 대표는 2008년 광우병 사태, 2010년 천안함 피격 등을 거론하며 “당시 보수 진영은 ‘과학을 존중하라’, ‘전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음모론을 멈추라’는 목소리를 냈다”며 “지금 그 잣대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국민의힘은 9일 ‘윤 어게인’ 세력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결의문을 냈다. 국민의힘은 부정선거론자들과도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 음모론은 한번 품으면 쉽게 놓을 수 없다. 눈앞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음모론자에게 길을 터주는 순간, 결국 스스로 먹잇감이 될 뿐이다.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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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석 “黨, 대통령과 차별화해선 성공 불가능”

    김민석 국무총리(사진)가 당정 관계에 대해 “임기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완벽하게 하나로 가야 된다”며 “(당정 간) 틈을 두고 (대통령과) 차별화해서 국정과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총리 집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연속 집권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거기에는 다 당정 관계의 불협화음이 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재명 정부 초기부터 청와대·정부와 불협화음을 냈다는 지적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체제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풀이된다. 8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표에 도전할 가능성에 대해선 “국정에 전념하고 있다”면서도 “임명직은 인사권자의 판단 속에서 거취가 결정되는 것을 우선해야 된다”고 밝혔다. 서울시장 등 6·3 지방선거 출마를 일축한 가운데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엔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 김 총리는 “지금부터 6개월이 가장 중요하다”며 “여러 개혁과제를 진행하되 가장 큰 방향은 경제 도약의 기반을 깔면서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전남, 대구·경북과 달리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두고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데 대해선 “굉장히 앞뒤가 안 맞는다”며 “2월이 넘어가면 사실상 진행이 어렵다”고 비판했다.“대통령 업무보고 또 받겠다는 건, 6개월간 다 쏟아부으란 경계령”김민석 국무총리 인터뷰“대통령이 직접 부처 점검 한계… 닦고 조이는 군기반장이 내 역할행정통합 2월 넘어가면 진행 어려워… 대전-충남 국힘 반대, 앞뒤 안맞아용산 주거 비중 더 높여도 좋을 듯”“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6개월 뒤 업무보고를 다시 받겠다고 한 것은 집권 1년 기간 동안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기 시작해 그 성과로 평가를 받겠다는 것이다. 각 부처에는 6개월 안에 다 쏟아부으라는 경계령이다.”김민석 국무총리는 1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 군기반장’을 자처한 이유에 대해 “정치하면서 군기반장 노릇하겠다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 직접 (부처) 점검을 하지만 한계가 있다”며 “정비소로 비유하면 중간에서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역할을 누가 해야 하느냐, 그게 제 몫이 된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총리 집무실에서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올해 총리의 중점 과제는 무엇인가.“첫 6개월 동안의 최대 과제였던 위기 수습과 내란 정리를 마치고 여러 개혁 과제들을 진행하되 가장 큰 방향은 결국 경제 도약의 기반을 깔면서 성과를 내는 것이다. ABCDE(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 성장 전략을 실제로 구현해 가기 시작하는 것과 행정 통합이라는 거대한 구조 개편을 연착륙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경제 도약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면.“잠재 성장률에 있어서 통상 1.8% 전후를 이야기하는데 지금은 마이너스로 떨어졌던 성장률은 거의 회복했고 연말까지는 잘하면 1.9∼2%까지도 갈 수 있다. 잠재 성장률로의 회복이 올해까지의 과제다.”―행정통합안에 대해 대전·충남 지역에서 반발이 있는데….“대전·충남 통합은 원래 국민의힘에서 먼저 제기한 것 아닌가. 그분들이 비판하는 (현재) 안의 수준이 대전·충남이 향유하고 있는 권한과 재정력보다 더 큰 것이라 굉장히 앞뒤가 안 맞는다.”―‘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준비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은 무엇인가.“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부동산 정책이 과거처럼 어느 시점에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양도세 중과 유예 중단이나 다주택자 대출 (규제) 등이 지적된 것이다. 다주택뿐만 아니라 ‘똘똘한 한 채’에서 세제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오랫동안 학계나 시민사회에서 제기된 방향 중 하나다.”―부동산 공급 대책에 과거 발표됐다 무산된 곳들도 포함됐는데….“땅을 꿔 오거나 한강을 매립하지 않는 한 서울에서 갑자기 집 지을 땅이 생기진 않는다. (공급 대책은) 실질적으로 실현해 내는 역량과 의지의 문제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현재 1만 채 공급으로 돼 있는) 용산은 오피스 비중을 줄이고 주거 비중을 더 높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입법 지연과 당정 불협화음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당정 관계는 임기 처음부터 말까지 완벽하게 하나로 가야 한다. 그렇게 됐을 때 국정도 성공하고 정권 재창출도 할 수 있었다. 반면 국정의 일정한 성과에도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연속 집권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거기에는 다 당정 관계의 불협화음이 있었다. 교훈은 간명하다. (당정 간) 틈을 두고 (대통령과) 차별화해 성공하는 건 불가능하다.”―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과정에선 직접 목소리를 냈다.“현재 여러 과정을 거쳐 당의 결론이 나지 않았나. 저는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과정에서 있던 문제들을 잘 정리하면서 지방선거에 매진하고 합당 문제는 지방선거 후 다시 논의한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합의다.”―당권 도전에 열려 있다고 봐도 될까.“기본적으로 임명직은 자신의 거취를 자기가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보다는 전체 흐름과 인사권자의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 대통령을 보좌해 내각을 통할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에 집중하는 게 맞다. 제가 정치하면서 군기반장 노릇 하겠다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부터는 6개월이 모든 시기에 있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경제와 외교 부분도 총리가 해야 할 부분을 적극적으로 챙기고 청년 문제도 총리로서 해야 할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한다.”―민주당 대표가 ‘정치적 로망’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서울시장도 당 대표도 원래 가진 꿈 중 하나라고 해서 (로망이라고) 말했는데 그 정도 파장을 부를지는 몰랐다. 이제는 그런 질문이 나오면 국정에 전념하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인터뷰=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정리=권오혁 기자 hyuk@donga.com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 202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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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약탈적 패권 앞 분열은 위험하다

    약탈과 동맹은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약탈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는 제로섬(zero-sum) 관계지만 동맹은 함께 이익을 보는 ‘윈윈(win-win)’ 관계가 기본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쳐 패권국이 된 미국의 대외정책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약탈적 패권(predatory hegemony)’과 달랐다. 동맹 네트워크, 시장 개방, 달러화, 막강한 소프트파워로 국제 질서를 구축했다. 동맹국의 번영이 미국의 안보를 강화한다는 믿음이 깔렸다. 하지만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약탈적 패권으로 규정했다. 세계를 약탈자와 피해자로 이분하며 동맹과 적을 구분하지 않고 착취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이유에서다. 관세 합의 스스로 뒤집은 美 트럼프 행정부는 윈윈보다 상대가 손해 보는 거래를 선호한다. 전체 이익이 100이라면 미국과 상대국이 50씩 나누는 합의보다, 미국이 60을 얻고 상대가 ―50의 손해를 보는 거래를 택한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패배, 무역흑자는 승리로 보는 흑백 논리 때문이다. 동맹엔 더욱 가혹하다. 관세를 무기로 쓰는 것은 적대국이나 동맹국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동맹국에겐 안보 청구서가 더해진다. 스스로 구축한 규범과 제도, 기존 합의를 뒤집어 만든 혼란을 지렛대로 삼는다는 점도 미국이 약탈적 패권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근거로 지적된다. 위기를 맞고 있는 한미 관세 합의는 트럼프 2기 대외정책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시하고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무역적자를 수입액으로 나눈 비율로 산출된 관세율 계산법은 73년 동맹 한국이나 적대국이나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협상 기간 “한국은 (주한미군) 방위비를 거의 내지 않는다”며 안보 문제를 경제적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노골적으로 활용했다. 한국의 대미 수출은 미국 산업 경쟁력과 소비자 후생에 기여한다. 양측 모두 이익을 보는 구조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적자를 패배로 규정하고 한국에 일방적 양보를 요구했다. 더 심각한 것은 합의의 불안정성이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JFS)를 통해 한국이 대미투자특별법을 발의하면 미국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정부는 관련 법을 발의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두 달도 안 돼 관세 재부과 방침을 밝혔다. 스스로 서명한 합의를 뒤집었다.원인 진단도 대응 방향도 갈라진 정부 미국의 관세 재부과 원인과 대응을 두고 정부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100% 국회의 대미무역투자특별법 처리 지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측에선 “미국이 비관세 장벽 완화에 진척이 없으면 관세를 올린다고 했다”고 한다. “관세와 안보 협의는 별개”라는 주장과 “관세와 안보 분야는 별개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충돌한다. 위기의 원인과 영향에 대한 진단이 다르니 대응 방향도 엇갈린다. 일각에선 기존 합의를 고수하며 원칙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착한 동맹에서 벗어나 까다로운 비즈니스 상대가 돼야 정상적 합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안보 협력과 핵잠수함 건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권한 확대 등 숙원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외면하기 어렵다. 전례 없는 동맹 관계를 두고 국익을 지키기 위한 이견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견이 분열로 이어지는 것은 위험하다. 약탈적 패권은 분열된 상대에게 더 가혹한 대가를 요구한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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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갑질 의혹이 들춰낸 그들만의 특권의식

    ‘갑질’이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된 것은 십수 년이 넘은 일이다.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부당한 권력 행사가 ‘갑질’이란 고유명사로 규정되고 공론화된 것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다. 2013년 한 유명 기업 영업사원이 가맹점을 찾아가 “죽여버리겠다”는 폭언과 함께 ‘물량 밀어내기’를 시도한 사건과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은 갑질을 개인의 권력 남용을 넘어선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와 불공정을 상징하는 말로 끌어올렸다.권력이 만든 갑질 성역정치권은 민첩한 대응에 나섰다. 대기업의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부당 단가 인하 등을 막는 하도급법, 대형마트의 납품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는 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에 물량 밀어내기를 차단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대리점 거래 공정화법’ 등이 잇달아 국회를 통과했다.더불어민주당은 갑질 대응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2013년 갑질이 사회 문제가 되자 만들어진 을지로위원회는 13년째 활동 중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공정경제 3법’과 함께 ‘공공기관 갑질 근절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등을 통과시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는 물론이고 기업 내 권위주의적 관행, 사회적 계급 간 차별과 부당행위가 갑질의 영역에 포함돼 법의 규제 대상이 됐다.하지만 김병기 강선우 의원과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두고 최근 불거진 의혹들은 국회가 여전히 갑질의 성역으로 남아 있음을 들춰냈다. 세 사람은 ‘1일 1의혹’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많은 의혹을 받고 있다. 의혹의 종류와 파장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세 사람 모두 의혹의 출발선에 갑질이 있다는 점이다.강 의원은 보좌진에게 자신의 집 쓰레기를 버리게 하거나, 고장 난 비데 수리를 지시하는 등 보좌진을 개인 집사처럼 부렸다는 의혹을 받아 지난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했다. 김 의원은 재취업한 옛 보좌진들을 해고하라는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이 잇단 폭로의 시발점이 됐다. 이 후보자는 “내가 정말 널 죽였으면 좋겠다”, “똥오줌 못 가리냐” 등 보좌진에 대한 폭언 녹취가 공개되면서 의혹 제기가 본격화됐다.국회 갑질이 뒤늦게 드러난 것은 보좌진이 의원 개인에게 종속되는 폐쇄적 구조인 탓이 크다. 국회가 가진 막강한 권력이 오히려 한국 사회 전반에서 이미 상식이 된 갑질에 대한 감수성을 무디게 만든 셈이다. 내 편에는 한없이 너그러운 진영 논리도 정치권 내 갑질에 대한 대응을 둔감하게 했다. 민주당은 강 의원의 갑질 의혹엔 “동지는 비 오면 함께 맞아주는 것”이라고 응원했고, 김 의원을 겨냥한 보좌진의 폭로엔 “일방적 투서일 뿐”이라고 두둔했다.‘내로남불’의 진영 정치는 위임받은 공적 권한을 본래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특권의식으로 이어졌다. 김 의원은 민주당 윤리심판원이 제명을 결정하자 “어쩜 이렇게 잔인한가”라고 했고, 2022년 당시 강 의원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라고 눈물을 흘린 뒤 다음 날 열린 공천 회의에 참석해 공천헌금을 제공했다는 김경 시의원의 단수 공천을 밀어붙였다. 죄의식을 마비시킬 만큼 강력한 특권의식 없이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당당한 태도다.개혁의 칼날 위에 설 각오 보여야갑질을 시작으로 드러난 특혜와 공천헌금 의혹은 민주당의 규정처럼 ‘휴먼에러(human error)’나 개인의 일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뒤늦은 제명 결정으로 민주당이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개혁을 주도하려면 특권의식을 버리고 스스로 개혁의 칼날 위에 오를 각오부터 보여야 한다.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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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욕심이 앞선 정청래식 ‘페이스메이커’론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11일 의원총회에서 “당정대 간 바늘구멍만 한 빈틈도 없이 의견이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 사법개혁안에 대해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 간 이견이 없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9일 이재명 대통령은 정 대표, 김병기 원내대표와 ‘번개 만찬 회동’을 가졌다. 사법개혁을 두고 불거진 이견을 정리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회동 뒤 “개혁 입법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처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당정대 역할분담론의 함정 정 대표 측은 만찬 회동에 대해 “당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해석한다. ‘1인 1표제’ 부결에 이어 민주당 최고위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이른바 ‘명청 대전’(이 대통령과 정 대표 간의 갈등) 논란을 진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 핵심 논리로 내세우는 것이 이른바 ‘역할 분담론’이다. 법제사법위원회가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더 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을 추진해 지지층의 효능감을 높이고, 대통령실이 중도층의 우려를 반영해 합리적 대안을 주문하면 이 과정에서 당 지도부는 강성 당원과 내부 엘리트, 반대 진영의 비판을 대신 받아내 저항을 줄이고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강경파가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이면 대통령실이 제동을 걸어 이후 나오는 수정안이 온건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겨냥한 일종의 계산된 혼선이라는 취지다. 정청래식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론인 셈이다. 하지만 페이스메이커 전략이 성공하려면 일치된 목표와 긴밀한 호흡이 필수다. 이른바 사법개혁을 두고 대통령실은 당과의 소통 문제를 지적한다. 당과 사전에 조율한 방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 내란전담재판부 문제 역시 고위 당정 협의를 통해 항소심부터 설치하자고 조율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석방 가능성 등을 주장하는 강성 지지층의 불안을 파고든 법사위의 단독 플레이에 당 지도부가 호응하면서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강경 지지층만 바라본 당 지도부와 법사위의 사법개혁 드라이브는 당내 역풍과 소모적인 극단 대치로 이어졌다. 8일 의원총회에선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지면 민주당에 이득이 될 게 뭐가 있느냐”는 등 우려가 쏟아졌다. 국민의힘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을 묶은 이른바 ‘8대 악법’ 철회를 요구하며 모든 민생법안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발동했다. 내란전담재판부를 막겠다며 민생법안 표결마저 막아선 국민의힘의 무리수는 ‘의제 외 발언’을 이유로 국회의장이 61년 만에 직권으로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는 또 다른 무리수로 이어졌다.갈등과 퇴행 속 뒷전으로 밀린 민생 이쯤 되면 역할 분담의 손익을 다시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갈등과 혼란이 커질수록 강성 지지층과 그들의 목소리에 호응한 당 지도부 및 법사위 강경파의 결속은 강해진다. 상대 진영도 수혜자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내홍이 커지던 국민의힘은 이른바 ‘8대 악법’ 저지를 명분으로 무제한 필리버스터와 천막농성에 들어가며 당내 리더십으로 향한 시선을 당 밖으로 돌리고 있다. 연말까지 이어질 입법 전쟁으로 정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커진 대통령실의 부담은 커졌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민생법안 처리 지연과 퇴행적 정치를 지켜봐야 할 국민이다. ‘당원 주권주의’를 내건 정 대표 측에선 대통령실과의 불협화음이 ‘자기 정치’로 해석되는 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내비친다. 하지만 불협화음이 건강한 수평적 견제 관계가 아닌 민생을 희생한 권력 갈등으로 비치는 건 권력을 위해 불필요한 대립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페이스메이커가 자기 욕심을 앞세우면 레이스를 망치는 법이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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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실용외교에도 내 편은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외교 노선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다. 국익을 외교의 목표로 내세우지 않은 적이 없지만, 윤석열 정부의 외교 기조인 ‘가치외교’와 비교하면 실용외교의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진다. 가치외교는 ‘가치를 공유한(shared-value)’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기치를 담은 외교 노선이었다. 미중 갈등 구도에서 내 편, 네 편을 구별해 원칙에 따른 외교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실용외교는 두루 잘 지내는 게 이익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안보와 경제적 실리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서는 것을 피해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동북아 발화점 된 중일 갈등 실용외교를 위해선 전략적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택을 강요받거나, 누구 편인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하는 순간을 미루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이 있어야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취임 후 6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재명 정부의 외교는 한미 관세 협상에 발이 묶였다. 취임 직후부터 가동된 대미 외교는 이달 14일 발표된 한미 관세안보 팩트시트를 통해 비로소 첫 성과물을 냈다. 실용외교를 위한 첫 단계가 일단락된 셈이다. 중동·아프리카 순방이 끝나면 이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행보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11년 만의 방한으로 성사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중국과의 전면적 관계 복원을 선언했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조기 방중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어렵게 열린 한중 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APEC을 통해 확보한 외교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일 갈등은 동북아 긴장을 고조시키는 새로운 발화점이 되고 있다. 대만 문제로 시작된 갈등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로 확산됐다. 식품 제재로 시작된 중국의 경제 제재가 미중 무역협상의 핵심인 희토류 통제로 이어지면 미국도 더는 상황을 외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위해 중국과의 휴전을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미국의 전략적 이익은 중국 견제에 있다. 반면 중국은 수출통제 확대로 경제적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일본은 중국이 아시아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는 것이 최대 목표다. 미국,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북한과 러시아까지 근본적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선 중일 갈등이 대형 악재로 번질 가능성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한중 관계 신중한 접근 필요 중일 갈등이 한국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중국은 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비판하며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미일 협력을 우려하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 한중 관계 완전 복원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핵추진 잠수함과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중국이 주시하는 한미 간 전략적 협력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가운데, 부주의하게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한 주한 외교관은 실용외교에 대해 “모두와 잘 지내는 것과 우유부단한 외교정책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용외교에도 내 편은 필요한 법이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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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APEC에 드리운 조공외교의 그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이재명 대통령이 선물한 금관의 파장이 예상보다 크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방한 관련 영상 4건 중 2건에는 금관 선물을 받는 장면이 담겼다. 집권 2기 첫 아시아 순방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질문에 “우리나라가 다시 존중받고 있다”고 했다.황금 선물 경쟁과 힘의 외교 미국에선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에 황금 선물만 한 게 없다는 건 국제사회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일본은 황금 선물의 원조 격인 국가다.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가까운 친구’로 꼽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6년 황금 골프채를 선물해 황금 선물 경쟁의 서막을 열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총리는 황금 사무라이 투구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황금 골프공을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절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요원들을 제거하는 데 썼던 원격 폭탄이 탑재된 ‘삐삐’ 모형을 금으로 도금해 선물했다. ‘남미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추천서를 황금 액자에 담아 트럼프 대통령의 품에 안겼다. 이쯤 되면 황금 선물은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문제인 셈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 정상에게 준 선물을 보면 외교의 기본인 상호주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개념인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 프로 2년 차로 무명에 가까운 선수의 사인이 새겨진 야구 방망이를 선물했다. 다카이치 총리에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제공하겠다”라고 말치레했지만, 황금 골프공에 답례로 준 선물이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황금 삐삐를 선물한 네타냐후 총리에겐 함께 찍은 사진에 자신의 사인을 해줬고,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에겐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에 사인을 해 선물했다. 선물만 박했다면 좋았겠지만, 회담 테이블에선 더 인색했다. 외교 소식통은 “집권 2기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은 더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덜 손해 입기 위한 협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물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안에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누리는 안보·경제적 기회는 황금 선물과는 비교조차 어려울 만큼 막대하다. 문제는 선물의 가치가 아니라 동맹 외교에 나서는 인식이다. 강대국 간의 전략경쟁과 자국 우선주의 속에 다자주의와 정의, 인권 등 이상주의의 가면을 내팽개친 외교의 민낯은 힘의 질서를 과시하는 조공외교를 연상케 한다. 더욱이 냉전의 끝자락에 한국과 캐나다, 호주 등이 주축이 돼 다자무역 체제 확산을 위해 창설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강대국 중심의 위계적 국제질서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상징적이다.李대통령 “국력을 키워야겠다” 말한 이유 다자주의가 후퇴하는 흐름은 한두 명의 정치인이 바뀐다고 쉽게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점차 정글을 닮아가는 국제질서 속에서 강자를 상대해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의 급소를 찌를 수 있는 실력과 협상력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조선(造船)과 반도체 때문 아니었나. 이재명 대통령은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국력을 더 키워야겠다”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강대국의 강압적 질서가 노골화되는 시대, 생존을 위해선 자강은 필수다.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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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트럼프 올라탄 김정은의 ‘제2 건국’ 선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8일 ‘제2의 건국시대’를 선언했다. 구체적인 구상은 내년 1월 9차 당 대회를 거치며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적대적 두 국가론과 연결해 체제를 재정의하려는 전략적 메시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2의 건국은 김정은 자신을 새 시대의 창건자로 위치시키려는 시도로 보인다. 김일성이 제1의 창건자, 김정일이 계승자라면, 자신은 북한을 재건국한 새로운 창업자라는 서사를 내건 것이다.‘핵보유국’ 자신감 커진 北 당 창건 80주년 행사는 제2의 건국시대 서사를 각인시키는 상징적 장면들이 연출됐다. 중국 80주년 전승절 열병식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오른 김 위원장은 중-러 2인자인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베트남 권력 서열 1위 또럼 서기장과 함께 열병식 주석단에 올랐다. 이번 행사에 대표단을 보낸 국가는 11개국.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2011년 이후는 물론 김정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북한이 이만큼 대접받은 행사는 찾기 어렵다. 북한은 이를 3대 세습의 영도력으로 이뤄낸 핵 무력 완성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장장 80성상(80년)에 단 한 번의 노선상 착오나 오류도 없었다”고 했다. 수백만 명을 아사로 몰아간 ‘고난의 행군’과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 당혹감과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던 김정은의 표정을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는 주장이다. 북한의 처지가 반전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2017년 취임한 트럼프는 북한을 최우선 외교 과제로 내세웠다. 북핵 문제를 최고의 난제로 꼽았던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코를 납작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과시욕을 채울 만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했다. 정권 초 북한 선제공격론을 주장하다 내부 반대에 부딪히자 ‘최대 압박’으로 선회하며 좌충우돌했다.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을 수용한 뒤에도 선(先)비핵화-후(後)보상의 ‘리비아식 해법’과 단계적 보상의 ‘이란식 해법’, ‘빅딜’과 ‘스몰딜’을 오가다 러시아 스캔들로 여론이 악화되자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사이 북한의 몸값은 치솟았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 동참으로 실존적 위기를 맞았던 북한은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 5차례, 푸틴 대통령과 3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이 제2의 건국을 선언하며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있다. ‘취임 24시간 이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던 트럼프의 약속이 허언이 된 사이 북한은 러시아에 추가 병력을 파병하고 핵 용인 메시지를 받아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6년 만의 대좌를 앞두고 미국과 날카롭게 충돌하고 있는 중국은 핵을 가진 북한과 공공연하게 협력 심화를 얘기하고 있다.韓 안보 환경 악화부터 막아야 김 위원장은 반(反)서방 연대의 ‘굳건한 보루’를 자처했다. 미국과 북-중-러의 대결 구도로 펼쳐질 새로운 한반도 냉전을 반기는 노골적인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북한은 트럼프의 과시욕과 미중 경쟁이 만들어내는 틈새를 더욱 교묘하게 활용하려 할 것이다. 정부는 중단, 축소, 폐기의 ‘3단계 비핵화’ 구상을 내놨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의 안보 환경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부터 ‘중단’시키는 게 급선무인 것 같다.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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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수박 몰이’에 갇힌 민주당의 개혁 무리수

    “당 내부에 암약해온 ‘진짜 수박’이다. 즉결 제명 처리해야 한다.”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이 이달 8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하자 한 친여 유튜브에는 박 의원을 ‘수박’으로 낙인찍고 조리돌림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수박은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를 가리키는 멸칭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18기)인 박 의원은 3대 특검(내란, 김건희, 채 상병 특검)이 수사해 기소한 사건을 전담하도록 하는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삼권분립 정신을 무시하고 계엄을 발동해 총칼을 들고 들어온 것과 똑같다”고 했다가 지지층들의 파상 공격에 발언 이틀 만에 공개 사과했다. 박 의원은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히든 수박, 왕수박… 꼬리 무는 ‘수박 몰이’민주당 원내지도부를 이끄는 김병기 원내대표도 박 의원이 사과한 10일 특검법 합의로 강성 지지층들에게 “히든(hidden·숨겨진) 수박이었다”는 공격을 받았다. 김 원내대표가 야당으로부터 정부조직법 처리 합의를 받아내는 대신 특검 수사 연장 기한을 초안보다 15일 줄이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강성 지지층들은 “어떻게 내란 세력과 타협할 수 있나”라며 김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김 원내대표에게 재협상을 요구해 강성 지지층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전당대회에서 ‘왕수박’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과거 발언이 공개되면서다.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앞세워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와 경쟁했던 박찬대 의원도 강선우 의원에게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가 수박으로 낙인찍혔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수박 몰이를 추려본 것만 이 정도다. 한국 민주당에 수박이 있다면 미국 공화당에는 ‘라이노(RINO)’라는 표현이 있다. ‘이름만 공화당원(Republican in Name Only)’의 줄임말로 포퓰리즘 성향이 강했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이 공화당을 이끌던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라이노 몰이’를 무기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을 결집해 공화당을 장악했다. 하지만 ‘라이노 몰이’는 자주 자기 파괴적인 광기로 돌변했다. ‘트럼프의 호위무사’로 불리던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이 2023년 민주당과 예산안 협상에 나섰다는 이유로 ‘라이노’로 공격받으면서 공화당 하원 지도부가 붕괴한 것이 대표적이다.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할 때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전국단위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를 이런 극심한 당내 분열에서 찾기도 한다.토론이 사라진 ‘개혁 드라이브’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한다. 다만 거기서 그치면 정치가 전쟁이 된다. 특히 이런 이분법적 적대 구도가 내부로 향하면 극단화로 이어지기 쉽다. ‘순수한 당원’ 대 ‘타락한 배신자’의 이분법은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레토릭이다.이른바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온 민주당의 무리수는 극단화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전당대회, 검찰개혁 과정에서 강성 지지층들의 ‘수박 몰이’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민주당에선 내란재판부 설치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를 두고 제대로 된 논쟁을 찾기 어렵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집권 여당에서 강성 지지층 주도의 극단화 현상이 나타나는 건 이례적이다. 팬덤의 크기가 곧 당내 권력으로 직결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때 아닌 ‘수박 몰이’가 이른 분열의 신호는 아닐지 지켜볼 일이다.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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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한미 관계에 드리운 미국발 ‘문화전쟁’의 그림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이 마무리됐다. 정상회담 직후 이뤄진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호의적이다. 이 대통령을 ‘친중·반미’로 보던 트럼프 행정부 일각의 시선 속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첫 대면에서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회담을 마친 것에 대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그런 평가와 별개로 이번 회담은 어두운 그림자처럼 미묘한 불안감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회담을 3시간 앞두고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숙청이나 혁명(purge or revolution) 같다”는 글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을까.해프닝으로 보기 어려운 트럼프의 SNS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글을 올린 배경을 두고 “한국의 새 정부가 최근 며칠 동안 교회에 대해 매우 잔인한 압수수색을 벌이고 심지어 우리 군사기지까지 들어가 정보를 수집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이 대통령은 “미국 군대를 직접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군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오해였다고 생각한다”며 물러섰다. 하지만 회담 이틀 뒤인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워싱턴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 대통령이 종교적, 정치적 자유에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법치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는 데 향후 몇 주가 중요할 것”이라고도 했다. 깅그리치의 기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고위층 인사와 백악관 참모 일부가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기울어진 인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깅그리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전략을 조언하는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이른바 ‘깅그리치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물들도 다수가 백악관과 트럼프 주변에 포진해 있다. 깅그리치 개인 회사의 부사장 출신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연설문 작성자를 거쳐 현재 백악관 국내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빈스 헤일리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백악관 신앙자문위원회 의장인 폴라 화이트케인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직후 참석한 한 종교 행사에서 “한국에서 정치적 도전이 심각하지만 전 세계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과거 이들이 특정 종교 행사에 참석했던 점을 들어, 해당 종교 단체에 대한 수사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들의 주장이 종교의 자유 등을 명분으로 내건 문화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강력한 보수주의로의 회귀를 내걸고 ‘공화당 혁명’을 이끈 깅그리치는 낙태와 성소수자, 이민자 등에 대한 다양성 정책을 비판하는 이른바 ‘문화전쟁(culture war)’의 기획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탄핵 정국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원 메시지를 요청하는 탄핵 반대 단체들의 로비가 이어졌지만 한미 동맹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 참모들이 이를 가로막았다”며 “하지만 이들이 종교의 자유를 명분으로 앞세우면서 분위기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대형 악재 되기 전 적극 대응해야 실제로 친트럼프 마가(MAGA) 진영은 종교나 민주주의 가치를 명분으로 다른 나라 정치 상황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J D 밴스 부통령이 올 초 독일 총선을 앞두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극우 정당을 지원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해’라고 물러선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국내 정치 상황을 언급하고 나선다면 한미 관계에 미칠 파장은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문화전쟁의 먹구름이 한미 동맹을 삼키기 전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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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클 오기전 선제 설득카드로 ‘반전 외교’… 친중-반일 우려 씻은 李 3박 6일 첫 순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3박 6일에 걸친 일본, 미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글로벌 통상·안보 질서 재편 속에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이 마무리되면서 실용주의를 내건 이 대통령의 외교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한미일 공조가 이재명 정부 외교의 중심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 등 한일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자 “미국에 오기 전 일본을 방문해 양국 간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방일 직전엔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국가로서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진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선 “과거 한국은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태도를 취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강조했다. 한일 과거사 문제와 이른바 안미경중 등 중국과의 관계 등 한미·한미일 공조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현안에 대해 과거 민주당 정부는 물론이고 취임 전 발언과도 달라진 입장을 선제적으로 밝힌 것이다. 자신의 ‘친중·반일’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반전 카드로 상대국에 정치적 효능감(efficacy)을 줘 신뢰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반면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 등 안보 협상, 일본에 대한 과거사 사죄 요구 등 이견이 큰 난제들은 언급을 최소화하며 뒤로 미뤘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가시적인 성과는 제한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상대에게 정치적 상징성이 큰 성과를 제공하면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민감한 현안에 대한 협상을 이어갈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하는 ‘선제 양보(pre-emptive concession)’ 전략”이라고 분석했다.국방비 증액 제시-日 먼저 방문… 선제적 카드로 외교 모멘텀 마련[美日 순방 이후] 정치부장의 D브리핑李, 동맹 현대화 요구에 ‘국방비’ 대응先방일 카드로 한미일 공조 부각… 파격적 선제조치, 외교 지렛대 확보투자 방식 등 실질 결과물은 숙제로… 한중관계 구상도 곧 시험대 오를듯이재명 대통령이 한국의 국방비 지출 증액을 먼저 약속하고,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한 것 역시 후속 협상을 고려한 전략적 양보로 분석된다. 이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간)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에서 “국방비를 증액할 것”이라며 “한국은 한반도의 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비 지출 증액과 한국의 한반도 방어 주도는 집권 2기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고 있는 ‘동맹 현대화’의 핵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의 5%로 국방비 지출을 확대하기로 한 것을 핵심 성과로 꼽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국방비 지출 증액과 한반도 방어 주도를 선제적으로 꺼낸 것은 ‘동맹 현대화’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전략적 유연성 등 양국의 의견이 엇갈리는 민감한 현안에 대한 지렛대(leverage)로 삼으려는 포석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동맹 현대화’의 원칙으로 미국의 대한 방위 공약과 한미 연합 방위 태세는 유지돼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국방비 지출 증액으로 한국이 한반도 방어를 주도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되더라도 한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 등 국제 분쟁에 끌려 들어가거나 확장억제가 약화될 위험을 차단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미국에 앞서 일본을 먼저 방문하는 선(先)방일 카드도 한일·한미 정상회담의 화두로 오르며 주효한 카드가 됐다. 이시바 총리를 먼저 만나면서 미국과의 관세·안보 협상에 대응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미국의 안보 전략에 동참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부각할 수 있게 된 것.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한미일 협력체제 구축을 자신의 최대 외교 성과 중 하나로 꼽는 데 대해 “한국과 일본이 협력을 시작한 것은 나 때문”이라고 강조해 왔다. 파격적인 선제 조치로 주목을 끌어 주도권을 쥐려는 이 같은 전략은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를 거치면서 보인 공격적인 대응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정상회담을 통해 구축된 신뢰와 우호적인 분위기를 실질적인 결과물로 이어가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한미 당국은 순방이 마무리된 26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실무협상을 이어갔지만 정상회담 결과를 담은 공동 문서를 내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통상 안정화와 한미 동맹의 현대화, 새로운 협력 분야 개척 등 한미 정상회담 3대 의제의 디테일을 둘러싼 이견은 여전히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26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내각회의에서 “한국과 일본은 9000억 달러(약 1260조 원)를 제공해 미국의 국가·경제 안보에 투자(invest)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9000억 달러는 미국이 관세 인하 대신 한국이 조성하기로 한 대미 투자펀드 3500억 달러(약 490조 원)와 일본의 5500억 달러(약 770조 원)를 합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들 펀드가 대부분 대출(loan)과 보증(guarantee)으로 이뤄졌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직접 투자(invest)로 보고 있는 셈이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도 언제든 한미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이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려는 이재명 정부의 구상도 곧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10월 3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習近平)이 참석할 전망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7일 사설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의 세계 전략 아래 한국의 국익이 종속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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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李, 중국에 대한 트럼프 질문 답할 준비 됐나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정권 초 관세 협상 고비를 넘겼지만, 상대가 트럼프다. 한미 관계가 전환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의 첫 회담이 갖는 리스크는 상당하다. 정상회담은 통상 실패하기 어려운 외교 이벤트다. 실무진이 사전에 일정과 의제를 면밀히 조율하며 실패 위험을 줄이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하지만 트럼프와의 회담은 일반적인 정상회담과 다르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너무 많다.트럼프 압박 질문 대비해야 미국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은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정상회담을 가진 6개국 외교관들을 인터뷰해 성공적인 회담을 위한 이들의 조언을 보도했다.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다른 국가들에 남기는 일종의 족보다. 첫 번째 성공 비결은 아첨과 화려한 기교다. 트럼프를 ‘아버지(daddy)’에 비유해 화제가 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수준의 아첨은 기본이다. 성공적인 회담 뒤에는 골프 국가대표 출신으로 트럼프와 조를 이뤄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핀란드 대통령 같은 개인기,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행사에 초청한 프랑스 같은 화려한 의전, 이스라엘-이란 전쟁 휴전으로 트럼프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같은 외교·군사적 성과가 있었다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두 번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철저한 대비다. 첫 번째가 성공적인 회담을 위한 팁이라면, 두 번째는 실패를 막기 위한 조언이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진행되는 정상회담은 트럼프와 함께 JD 밴스 부통령,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마가(MAGA) 진영을 대표하는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종종 민감한 현안을 두고 상대 정상을 몰아붙이는 청문회처럼 흐른 사례가 많다. 여기에 취재기자로 회담장에 들어오는 친트럼프 성향의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던지는 예상치 못한 질문까지 회담장 곳곳에 지뢰가 숨어 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도 상대 정상을 몰아붙이기로 유명했다. 2017년 6월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과의 기념 촬영을 마치자마자 백악관 3층에 있는 트리티룸으로 따로 안내해 비공개로 10여 개의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주한미군이 공짜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김정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왜 예정대로 진행하지 않느냐”는 등 당시 한미 관계의 민감한 현안들을 마치 압박 면접하듯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것이다.韓 대중국 정책, 관세-안보에 영향 이 대통령 역시 트럼프의 돌발 질문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까다로운 질문은 중국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참전 여부에 대한 질문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려 할 때 그 답을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분법적 질문을 끝없이 던지는 트럼프에겐 이런 전략적 모호성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후속 관세 실무협상에도 반영될 수 있다. 트럼프는 관세 협상이 불발된 일부 국가들에 대해 “국가 안보 문제에 관해 미국과 충분히 일치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중국에 대해 미국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 동맹 전반에 직접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주변국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실용외교 구상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느냐가 이번 회담에 달렸다.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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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불량 초강대국’ 된 美, 대통령이 협상 나서야

    미국은 북한, 이란 등을 ‘불량 국가(rogue state)’라고 규정해 왔다. 전체주의 체제 아래 핵무기 개발 등으로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국가를 깡패에 비유한 표현이다. 하지만 최근 국제정치학계에선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의 최대 위협은 미국 자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이 당초 예상했던 고립주의를 넘어 미국 우선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강압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불량 초강대국(rogue superpower)’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트럼프 한마디에 뒤집히는 협상 결과 미국이 구축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해체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제질서가 바로 자유무역 체제다. 미국은 동맹, 우방국을 주축으로 한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관세를 낮추며 자유주의 기반의 질서를 확장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에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 규모에 비례한 무차별적 관세를 부과하며 동맹국과의 안보·무역 관계를 축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 경쟁국의 부상을 견제해 온 패권 전략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동맹, 우방국과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뒤집고 있는 것도 미국이 불량 초강대국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근거로 꼽힌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두고 충돌하고 있는 일본은 실무 협상에서 최대 현안인 자동차 품목 관세 인하에 대한 합의점을 찾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백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베트남도 아직 합의안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실무 협상에서 관세율을 11%로 낮추기로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일방적으로 관세율 20%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이런 미국의 태도에 저항 움직임도 나온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깔보는데 참을 수 있나”라며 강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관세에 맞서 3차 보복 조치를 준비 중이다. 한국의 상황도 복잡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선 “힘의 논리에 밀려 일방적으로 양보해선 안 된다”는 강경론이 나오는 반면 국민의힘은 당장이라도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담판을 지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미국의 관세 발효가 1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통령실에선 아직 대통령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고위급 회담을 통해 간극을 좁히는 게 먼저라는 이유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첫 방미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한미 재무-산업 2+2 장관급 회의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미국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담할 것으로 전해졌다. 베선트, 러트닉, 그리어는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스티븐 밀러 부비서실장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결정을 내리는 회의에 참석하는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10일 남은 관세 발효, 최악 막으려면 하지만 미국과의 협상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가 최대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집권 1기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주 말을 바꿨다. 하지만 전통적인 동맹 체제의 중요성을 믿는 참모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와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인 구상이 현실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국익을 위해 어렵게 균형을 맞춘 협상안이 트럼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고위급 협상에서 조건이 무르익으면 한미 정상 간 전화 통화 등 정상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그래야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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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을의 정치’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26일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제가 이제 ‘을(乙)’이니 잘 부탁드린다”고 몸을 낮췄다. 나흘 전인 22일에는 여야 지도부를 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취임 18일 만에 이뤄진 회동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빠른 속도다. 좋은 출발이다. 하지만 협치의 온기는 퍼지기도 전에 식어가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상임위원장 선출 강행에 이 대통령을 향해 “공허한 말잔치”, “양두구육의 전형”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본격화되고 있는 특검 정국은 더 큰 뇌관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수사를 넘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여야 대치는 언제든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다.대부분 실패로 끝난 여야 협치 이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언제든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또 “외교에는 색깔이 없다.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국익이냐, 아니냐가 유일한 선택 기준”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실은 여야정 협의체 추진의 뜻을 내비쳤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내각이 완성된 이후 현안별 협의체를 꾸릴 것인지, 여야 지도부 간 협의체로 할 것인지 등 추후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여야정 협의체는 과거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김대중 정부는 취임 후 8차례에 걸친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여야 정책협의회 등을 출범시켰다. 정국에 따라 등락이 있었지만 이 협의체는 외환위기 속에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고강도 구조조정 관련 법안들을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도 2018년 11월, 5당 대표와 함께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 출범에 합의했다. 하지만 회의는 한 차례 열리는 데 그쳤다. 조국 사태와 공수처법 처리 등 검찰 개혁을 둘러싼 극한 갈등이 이어지면서 협의체는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협치의 성패를 가른 이유는 많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절박함이다. IMF 위기라는 국가적 재난 속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선 여야 모두 위기 극복이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여야정 국정 협의체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됐다. ‘DJP연합’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정부에는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 운영이 불가능했다. 국정 협의체가 들러리가 아닌 실질적으로 권력을 나누는 기구가 된 셈이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와 보수 야당 사이에는 시작부터 불신이 깊었다. 적폐 청산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야당을 협치의 대상이 아닌 청산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2020년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도 협치의 독이 됐다. 야당의 협조에 대한 절박함 대신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더 귀를 기울이는 선명성 경쟁이 우선시됐다.시험대 오른 ‘을의 정치’ 이재명 정부에선 현 경제 상황을 ‘제2의 IMF’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대중 정부 시절 겪은 ‘IMF 위기’ 경기침체의 골은 얕을지 몰라도 장기 저성장 기조와 관세 전쟁, 긴장감을 더해가는 한반도 안보 지형 등 복합 위기의 해법을 마련하기는 더 어렵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첨단 기술 육성 전략과 이를 뒷받침할 예산, 강대국 패권 경쟁 속 국익을 지켜낼 외교는 야당과 함께해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관건은 진정성이다. ‘을의 정치’가 성공하려면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고 때로 정치적 셈법을 제쳐 둘 수 있어야 한다. ‘을’을 자처하며 대통령이 내민 손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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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새 대통령, 빠른 방미만 정답은 아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미국을 언제 방문하느냐가 관심사가 된다. 얼마나 빨리 미국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갖느냐가 새 정부의 외교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51일 만에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청와대는 역대 정부를 통틀어 출범 후 가장 빨리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기록은 2022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취임 11일 만에 회담을 가지면서 깨졌다. 6·3 대선으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 앞에 놓인 한미동맹 이슈의 무게는 어느 때보다 무겁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외교를 복원하고 경제·안보 불확실성을 낮추는 것은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상황을 보면 새 대통령의 방미는 하루라도 빠를수록 좋다는 기존의 외교 문법이 여전히 유효한지 의문이다.달라진 트럼프 외교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방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트럼프 외교의 특징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기존 외교 관례를 깨고 상대를 노골적으로 몰아붙이며 ‘스트롱맨’으로서의 면모를 자랑한다. 역으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과시욕을 자극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안겨주는 대신 실리를 취하는 게 가능했다. 트럼프 1기 때 많은 해외 정상들이 앞다퉈 아부를 쏟아내며 트럼프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두고 경쟁했던 이유다. 하지만 트럼프 2기 들어선 이 같은 ‘트럼프 해법’은 예전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 강경해진 ‘미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앞세우면서 요구조건이 높아졌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18일 만에 정상회담을 가졌다. 1조 달러 투자 약속 등 선물 보따리를 풀어냈지만, ‘트럼프 관세’에 대한 양보는 얻어내지 못했다. 외신에선 ‘황금 골프채’를 안기는 ‘아부의 예술’로 트럼프 대통령과 ‘브로맨스’ 관계를 구축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해법이 트럼프 2기엔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는 평가가 나왔다. 반대로 트럼프 특유의 유연함은 약해졌다. 지난달 미국을 찾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희토류 협력 등을 제안했지만 ‘남아공 백인 농장주 집단학살’ 의혹을 꺼내든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에 회담은 참사로 끝났다. 미중 관세전쟁에서 미국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희토류 문제를 풀어낼 기회를 희생하면서까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이 제기하는 음모론을 꺼내 든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 2기 인사와 외교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강성 마가 진영과 음모론자들이 최근 한국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지난달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한을 두고도 “한국 대선 결과에 달린 중국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등 한중 관계에 대한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있다.방미 전 미국과 신뢰 재확인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유예 기한은 다음 달 8일까지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요구가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미 국방부의 8월 국방전략지침(NDS) 발표 전후 주한미군 감축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새 정부가 신속하게 해법을 찾아야 할 과제들이다. 하지만 빠른 방미가 꼭 정답은 아니다. 때마침 15일에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24일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이 예정돼 있다. 위험 부담을 줄이면서 미국과의 신뢰를 재확인하고 한미 정상외교를 복원할 기회다.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를 씻겠다고 방미를 서두르다 실패하면 그 결과는 돌이키기 어려울 수 있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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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눈 떠 보니 쿠데타 공화국

    “한국은 우리에게 반도체와 자동차를 수출하지만, 우리도 한국에 수출하는 것이 생겼다. 바로 계엄(martial law)과 쿠데타다.” 얼마 전 한 기업인은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를 방문했다. 쿠데타와 정치 불안이 반복되고 있는 이 국가의 한 유력 정치인은 이 기업인에게 비상계엄 이후 한국의 정치 상황을 묻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기업인은 “농담이었겠지만 비상계엄이 한국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꿨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라고 했다.극단화된 정치 보여주는 쿠데타 낙인찍기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발동한 지 165일이 지났다.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판결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계엄 사태의 파장은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의 불씨가 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비상계엄이 촉발한 극단의 정치가 고착화됐다. 거대 양당은 헌법과 법률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법적 조치들을 쏟아내면서 매일 서로를 향해 ‘쿠데타 세력’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5일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5·18민주화운동 진압을 주도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가 취소한 것을 두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또 쿠데타를 벌일 작정인가”라고 비판했다. 하루 전 국민의힘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민주당의 사법부 대선 개입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에 대해 “법을 허물고 권력만 세우겠다는 의회 쿠데타”라고 했다. 같은 날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은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사법 쿠데타의 전모를 고백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쿠데타 세력’이란 손가락질은 상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의 강제 후보 교체 과정엔 국민의힘 내에서도 ‘친위 쿠데타’ ‘야밤의 정치 쿠데타’ ‘쿠데타 잔당의 쿠데타’라는 표현이 줄줄이 등장했다. 과장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쳐도, 오늘 ‘쿠데타 세력’이라고 낙인찍은 상대와 내일 선뜻 대화와 타협에 나서긴 어렵다. 하루에도 수차례 상대편을 향해, 때론 뜻이 다른 같은 편까지 ‘쿠데타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정치는 정상이라 보기 어렵다. 쿠데타가 정치권의 일상 언어가 된 만큼 극단적인 정치 행태도 확산되고 있다. 이번 달만 해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사퇴하고 대선에 출마하면서 전례 없는 ‘대대대행’ 체제가 출범했고 민주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의 탄핵 추진에 나섰으며 국민의힘은 초유의 대선 후보 강제 교체를 시도했다 실패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17일 앞둔 대선, 국민통합 약속 내놔야 미국 의회에선 거대 양당이 관행적으로 지켜온 암묵적인 선을 넘는 극단적 조치를 ‘뉴클리어 옵션’(핵 공격 수단)이라고 부른다. 소수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의결 정족수를 과반으로 낮추는 조치 등이 포함되는데 공멸을 감수하지 않고는 함부로 취할 수 없는 조치라는 경고가 담겨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열리는 조기 대선을 거쳐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 민주주의 회복은 피해갈 수 없는 책무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15일 유세에서 “이제는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자. 앞으로의 정치는 그렇게 만들자”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12일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과 인내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고,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권력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회복하러 나왔다”고 했다. 대선까지는 앞으로 17일 남았다. 이제 쿠데타 대신 통합과 회복에 대한 진지한 약속을 더 많이 듣게 되길 기대해 본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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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날벼락 맞더라도 검증은 피하지 말아야

    “내 근처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는 2월 한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등 공직 때 수없이 반복한 얘기다. 옛말에 못된 놈 옆에 있으면 날벼락 맞는다고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투명하게 살 자신 없으면 내 옆에 있지 말라는 얘기를 수없이 했다”고 덧붙였다.유력 대선 주자가 꺼낸 ‘표적론’의 양면성 최근 만난 민주당 인사로부터도 비슷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 전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경선캠프에 합류한 의원들에게 “내가 모난 돌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여러 피해를 입었다”며 “여러분도 ‘사선(射線) 위의 표적’이 된 것”이라고 했다는 것. 단순한 수사로 넘기기엔 어려운 말들이다. ‘모난 돌’과 ‘못된 놈’이란 표현에는 거친 아웃사이더라는 자기규정이, ‘날벼락’과 ‘사선 위의 표적’엔 자신이 과도한 공격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나는 표적’이라는 인식엔 양면성이 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경선에서 9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독주체제를 굳혔다. 외곽 싱크탱크에는 3000명의 학자와 전직 관료들이 몰려들었다가 논란 끝에 활동을 멈췄다. 벌써 대통령이 된 듯 행동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 근처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는 메시지는 대세론에 도취돼 경계심이 흩어지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력한 대선 후보가 자신을 ‘사선 위의 표적’으로 규정할 때 정치는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 상대는 ‘공격하는 자’, 우리는 ‘방어하는 자’라는 구분 아래에선 대화와 타협, 설득과 공감 대신 생존이 우선이기 마련이다. 이 전 대표의 이 같은 인식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사법리스크도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21일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 간담회에서 그는 “괜찮으면 제가 마이크는 좀 끄고 하겠습니다. 뭐 혹시 말실수한다고 또 꼬투리 잡혀 가지고…”라며 “제가 하도 말꼬투리 잡혀서 고생을 많이 하는 바람에 증폭기를 쓰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토론회와 방송 인터뷰 등에서 한 발언들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을 받고 있다. 표적이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일까. 이 전 대표는 대선 출마 후 공개 메시지와 현장 행보를 대폭 줄였다. 대선 출마 선언은 미리 녹화한 영상으로, 대선 공약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정제된 글로 대신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2주가 넘었지만, 순회 경선을 제외하면 현장 행보도 거의 없다.검증 기회 빼앗는 ‘로키(Low key)’ 행보 유력한 대선 주자의 방어적인 행보는 유권자들의 피해로 돌아온다.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검증 기회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대선 때도 11차례 진행됐던 민주당 경선 TV토론은 올해 대선에선 세 차례에 그친다. 그마저 기억에 남는 변변한 논쟁이 없는 맹탕 토론이란 비판을 받는다. 토론회에 참가한 대선 주자들도 스스로 “토론회보단 간담회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 정도다. 아직 탄핵 찬반을 두고 다투고 있는 국민의힘 경선 상황을 보면 대선 본선에서도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6·3대선은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선거다. 대통령 잔혹사를 끊어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철저한 검증이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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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이복현 짐 싸서 떠나라…대통령 운운 오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상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있었다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던 국민의힘은 “감히 대통령을 운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이 원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총리가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데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며 “김병환 금융위원장에게 (사퇴)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 원장은 “총리께서도 헌법적 권한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 질서 존중 차원에서는 그 결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윤) 대통령이 있었다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원장은 김 위원장 등의 만류로 사퇴를 보류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고위공무원이 국민을 상대로 만약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직을 걸겠다’고 표명했으면, 그것도 일반 공무원이 아니라 고위 공무원이 그 정도 발언했으면 당연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짐 싸서 청사를 떠나는 게 공인의 올바른 태도”라고 말했다. 앞서 이 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직을 걸고서라도 (거부권 행사에) 반대한다”고 말한 것을 거론하며 사퇴를 촉구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으로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며 한 총리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바 있다.특히 권 원내대표는 이 원장이 윤 대통령을 언급한 것을 두고 “오만한 태도라고 본다”며 “어떻게 금감원장이 감히 대통령 운운하면서 대통령과 자기 생각이 같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지 저의 공직 경험을 비춰봤을 땐 있을 수 없는 태도”라고 했다. 이 원장이 윤 대통령의 뜻을 거론한 데 대해 이례적인 표현으로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국민의힘 내부에선 이 원장의 발언을 두고 “제대로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직을 걸겠다’고 공언하는 일부 검사의 나쁜 습관”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일부 검사들 특유의 오만한 태도”라며 “그러면서도 대통령을 파는 건 웃기는 짓”이라고 했다. 검사 출신인 이 원장은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불리며 윤 대통령의 ‘경제계 복심’으로 꼽혀 왔다. 윤 대통령과는 검찰에서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와 2016년 국정농단 특검 수사를 함께 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202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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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관세전쟁에 담긴 트럼프의 세 가지 승리 법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어프렌티스’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멘토’ 로이 콘 변호사로부터 ‘승리의 법칙’을 전수받는 장면이 나온다. ‘악마 변호사’로 악명을 떨치던 콘이 야심에 가득 찬 뉴욕 부동산 업자의 아들 트럼프에게 전한 법칙은 세 가지다. ‘공격, 공격, 또 공격하라’, ‘아무것도 인정하지 말고 모두 부인하라’, ‘승리를 주장하고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말라’.패배 인정 않는 트럼프의 무자비한 관세전쟁 영화적 각색이 가미된 장면이지만 세 가지의 승리 법칙은 트럼프 대통령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 역정을 관통하는 핵심 법칙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도 위기에 처할 때마다 참모들에게 “나의 콘은 어디에 있나”고 물었다고 한다.‘위협하든, 왜곡하든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트럼프의 법칙은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발(發) 관세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중국, 캐나다를 시작으로 한국과 유럽, 일본으로 타깃을 확대하며 쉼 없는 관세 위협을 퍼붓고 있다. 관세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경제학자들은 모두 ‘사기꾼’으로 몰아붙이고,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기업들의 미국 투자 검토 소식까지 싹싹 긁어모아 “관세 정책이 승리하고 있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관세 정책을 몰아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곧 한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가 철회하며 오락가락하는 행보에 비춰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그 자체보다는 관세를 협상 카드로 얻어낼 경제적 이익을 더 중시한다는 해석에 따른 기대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을 설계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대한 신념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7년 뉴욕타임스 등에 자비로 낸 광고에서 “일본은 수십 년간 미국을 이용했다”며 관세 정책 부활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의 신념은 2000년대 미국의 제조업 붕괴로 이어진 ‘차이나쇼크’를 거치며 거의 종교적 믿음으로 굳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와 재선에 목을 매던 첫 임기 때와도 다르다. 주가 하락은 물론이고 일부 정치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둘러 ‘미국 우선주의’ 대못을 박겠다는 태도다. 조급하리만치 관세 정책에 목을 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2일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미국이 한국에 관세를 부과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 때부터 미국을 착취하는 대표적인 동맹국으로 한국을 지목해 집중 공격을 펴 왔다. 양국 간 실효 관세가 0% 수준이라는 해명은 부인하면서도 2018년 한미 FTA 개정 협상은 대성공이었다는 모순적 주장도 이어가고 있다.협상 카드 아끼며 장기전 대비해야 정부는 다급한 모습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직무 정지에서 복귀하자마자 “통상전쟁에서 국익을 확보하는 데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재계엔 ‘민관 원팀’을 통한 공동대응을 당부했다. 총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지만 서두르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의 승리 법칙을 고려하면 트럼프 2기 관세전쟁은 장기전이자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에 에너지, 조선 협력 등 선물 보따리부터 풀어놓고 오는 방식의 외교는 되돌아봐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장기적 계획 없이 협상 카드만 소진했다간 더 거세지는 관세 태풍을 맨몸으로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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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문병기]지지층 향해 주먹 불끈 쥔 尹의 트럼프 전략

    극적인 순간, 정치인의 행동과 메시지가 갖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위기가 클수록, 반전의 강도가 강할수록 극적인 효과도 강해진다. 짧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겐 52일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8일 서울구치소를 나서던 장면이 그런 결정적 순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변호인을 통해 내놓은 윤 대통령의 입장문엔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 대신 강성 지지층을 향한 감사가, 승복 대신 불법 수사에 대한 강변이 담겼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지지자들을 향해 11차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윤 대통령의 행동에 헌법재판소 앞 시위대의 목소리는 커지고 분열의 골은 깊어졌다. 불법 수사 피해자로 자신을 규정한 尹 비상계엄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지지자들과 만나 주먹을 불끈 쥔 윤 대통령의 모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겹친다.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쥐어 보이는 행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 포즈 중 하나다.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형사 기소돼 위기를 맞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승리로 부활했다. 그의 부활의 상징적인 두 장면을 꼽으라면 2023년 조지아주 구치소에 출두하면서 찍은 카메라를 노려보는 ‘머그샷’, 그리고 지난해 7월 유세장에서 총기 피습 후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린 장면이다. 석방된 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지지층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석방 입장문 등에 담긴 메시지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과 빼닮아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석방 입장문에서 ‘불법을 바로잡은 법원’, ‘응원을 보내준 국민과 미래세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자신을 반국가세력이라는 거악과의 싸움 과정에서 불법 수사로 박해받는 피해자로 규정한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는 대목을 두곤 탄핵심판 선고 이후에도 국민의힘에 대한 영향력을 놓지 않으려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석방 직후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과 먼저 전화 통화를 한 뒤 국민의힘 투톱을 관저로 불러 차담을 가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강성 지지층을 향해 ‘보수가 나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메시지를 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0년 대선 패배 이후 부정선거론, 이른바 ‘빅 라이(Big Lie)’를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수사를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조종하는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하며 끊임없이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2020년 대선 패배 후에도 공화당 강경파인 ‘프리덤 코커스’ 등을 통해 당권에 개입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 부활의 발판으로 삼았다.지지층 결집 대신 승복 메시지 내야 윤 대통령은 아직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승복할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 대선 유세 과정에서 끝끝내 대선에서 패배해도 승복하겠다는 선언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트럼프의 길은 다르다. 트럼프는 지지층 결집으로 지난 대선에서 승리하고 면책권을 받았지만, 윤 대통령은 선거가 아닌 사법심판을 앞두고 있다. 탄핵심판과 별개로 진행되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면책 대상도 아니다. 지금 윤 대통령은 지지층을 향한 감사가 아니라 사과와 승복의 메시지를 낼 때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 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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