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聖域이 된 소득주도성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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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긍정효과 90%’란 말 때문이었을까.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청와대 회의 논란을 보면서 중국 현대사에 중요한 고비가 됐던 여산(廬山·루산)회의가 문득 떠올랐다. 중국 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은 수년 내 영국을 따라잡겠다며 1958년 대약진운동을 시작했다. 무리한 인민공사, 철강증산 정책으로 농촌은 피폐하고 아사자가 속출했다. 지방 간부들은 거짓 실적 보고만 올렸다.

처참한 농촌 현장을 둘러본 당시 제2인자 펑더화이(彭德懷)가 마오에게 부정적 의견을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그러자 마오는 “누구나 열 손가락이 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아홉 손가락을 성취로, 한 손가락을 실패로 꼽을 수 있다”며 펑을 실각시켰다. 이후 대약진운동에 대한 비판은 완전히 사라졌고 최소 3000만 명이 대기근으로 사망했다. 1962년에 비로소 국무원장이었던 류사오치(劉少奇)가 “참사의 70%가 인재(人災), 30%가 천재(天災)”라며 대약진운동을 비판했다. 이것이 결국 문화대혁명이 촉발되는 계기가 됐다는 건 알려진 대로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대약진운동과 아주 다른 시대적, 정치·사회적, 경제적 배경을 갖고 있다. 프로젝트의 규모나 진행 절차도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회의에서 여산회의가 연상되는 것은 현 정부의 간판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이 줄곧 70%가 넘는 대통령 국정지지율을 바탕으로 내부에서는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聖域)이 돼가는 듯한 조짐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효과를 충분히 자신 있게 설명해야 한다. 긍정적 효과가 90%다”고 한 발언은 누가 봐도 잘못된 보고에 의한 실언이다. 논란이 되자 청와대 대변인은 처음부터 전체 자영업자, 실업자를 포함한 것이 아니라 ‘고용된 근로자 임금’만 대상으로 한 발언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렇다고 해도 공식 발표도 되지 않는 통계를 참모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꿰맞추기해서 보고했다는 지적은 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소통을 강조하는 이번 정부에서 최고위급 참모들이 초보자들도 하지 않을 실수를 한 걸까. 아마도 청와대 경제 참모와 지지자들 사이에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자칫 소득주도성장 자체에 대한 부정 혹은 후퇴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감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어떤 정책이나 이론이 일단 내부에서 비판 불가의 도그마로 자리 잡으면 속도조절 정도의 수정론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대통령은 회의 말미에 현 정부 경제정책의 두 수장 격인 ‘김&장’ 가운데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혁신성장,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 주도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혁신성장은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만큼이나 실체가 막연하다. 실행 도구인 규제 개혁은 어느 정부에서나 외치던 립서비스용 구호다. 다시 말해 부총리는 힘이 쭉 빠졌다. 이런 결정타를 맞았는데 어떤 장관들이 말뿐인 경제팀장의 눈치를 보겠으며, 자유로운 비판이 나오겠는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라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득주도성장 이론도 마찬가지다. 안팎의 비판도 수용해 가며 실정에 맞게 살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정책의 당위가 소중하다면 그럴수록 통계 수치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오늘 저녁에라도 편의점에 들러 알바 학생에게 사정이 어떠냐고 물어보라. 동네 떡볶이집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도 나눠보고, 중소기업 사장 친구가 있다면 허심탄회한 목소리도 직접 들어보기 바란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최저임금#소득주도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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