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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진영]이국종이 웃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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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진영]이국종이 웃지 않는 이유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입력 2018-11-03 03:00수정 2018-11-0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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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다시 이국종이다. 2011년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고, 2017년 총상으로 벌집이 된 북한 귀순 병사를 소생시킨 ‘국민 의사’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과장(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 새롭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비망록 ‘골든아워’는 출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1, 2권 판매 부수가 13만 부를 돌파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장엔 잠깐 참고인으로 나와 ‘신 스틸러’로 주목받았다. 바다 위 응급환자를 위해 헬기를 타고 출동하는 장면을 담은 KT 광고 영상은 “역시 갓국종”이라는 찬사와 함께 조회수 2000만 회를 훌쩍 넘겼다. 그는 방송사 섭외 1순위다. 6일에는 채널A 건강정보 프로그램 ‘몸신’ 200회 특집에 출연한다.

그는 좀처럼 웃지 않는다. ‘이국종과 맥주의 공통점은 드라이하다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화제의 영상 속 그의 표정은 드라이보다는 앵그리에 가깝다. 응급헬기 탑승 2분 전 고장 난 무전기를 집어던질 때도 그랬다. “안 된다니까, 이 거지 같은 거. 무전기 지원해 달라고 한 지가 8년이 지났어요.” 지난달 2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응급헬기 소음 민원 문제로 말소리가 떨렸다. “영국에선 경기장 근처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경기 중단하고 경기장 잔디에 헬기가 내려앉습니다. 우린 관공서 잔디밭에 내려앉아도 안 좋은 소릴 합니다. … 누구도 안 된다는 사람 없는데 실제로는 전혀 안 되는, 오만 가지 핑계로 찍어 누릅니다.”

무전기가 고장 나 헬기 안에서 카톡을 하고, 응급환자를 향해 다급히 헬기를 몰고 가는 조종사가 “시끄럽다”는 민원 전화를 받는 초현실적인 열악함은 역설적이게도 ‘영웅 이국종’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가 싸워야 하는 적은 환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죽음의 사신만이 아니다. 중증 외상 환자는 대개 3D 업종에서 험한 일 하는 노동자들인데, 치료할수록 적자를 보는 이런 환자를 병원은 반가워하지 않는다. 석 선장 같은 ‘스타’ 환자가 발생해 여론이 들끓으면 ‘높은 분’들이 줄지어 다녀가고 장밋빛 지원을 약속하지만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별것 아닌 환자로 쇼 한다” “헬기가 이국종 개인택시냐”는 뒷말도 감수해야 한다. 3D 업종인 외상외과를 지원하는 의사가 있을 리 없다.

그 결과 한국의 환자 이송 시간은 평균 4시간 5분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수준이다. 적절한 의료 인력과 장비를 갖춘 곳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응급환자가 10명 중 3명이 넘는다(예방 가능 외상 사망률 30.5%·보건복지부 2015년 기준). 중증 외상 의료 시스템의 공백은 외상외과 의료진이 “내 목숨을 갈아 넣어” 메운다. 그는 왼쪽 눈이 멀고 어깨뼈는 주저앉았다. 에이즈 환자의 피를 뒤집어쓰며 수술한 적도 있다. 주 90시간을 일하는 간호사들은 응급헬기를 타다 유산한 동료를 보고도 임신한 몸으로 다시 헬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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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에서 2007년 영국 외상센터 연수 시절이 좋았다고 했다. “제대로 된 시스템 속에서 할 일을 하고 그 자체로 인정받았다. 원흉도 돌연변이도 아니었다. 주말엔 펍에서 동료들과 맥주 마시고 클럽에서 새벽까지 음악을 들었다. 내가 삶에서 바란 것은 그 정도다.”

우리에게도 온갖 가학적인 환경을 기적처럼 이겨내는 의사가 필요한 게 아니다. 산에 오르다, 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로, 군대에서 훈련을 하다 중증 외상을 입었을 때 이국종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든든한 시스템을 원한다. 그래서 ‘영웅 이국종’이 싫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이국종#골든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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