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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엔 직선제 공감대로 속전속결… 여야 특위구성 49일만에 “5년 단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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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엔 직선제 공감대로 속전속결… 여야 특위구성 49일만에 “5년 단임제”

박성진 기자 입력 2017-06-13 03:00수정 2017-06-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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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공화국 헌법’은 어떻게 탄생했나
시민항쟁 에너지로 쉽게 합의, 이번엔 논의 복잡… 시간 걸릴듯
1987년 6월 시민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은 30년 만에 대변화를 앞두고 있다. 동아일보DB

현행 6공화국 헌법은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1987년 7월 13일이다. 이어 불과 49일 만인 8월 31일 여야(민정당과 신민당)는 대통령 직선 5년 단임제 개헌안에 최종 합의했다. 이후 9월 18일 개헌안 발의, 10월 12일 국회 본회의 통과, 10월 27일 국민투표를 거쳐 같은 달 29일 6공화국 헌법이 공포됐다. 개헌 논의 시작부터 완료까지 넉 달이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물론 개헌 논의를 이끌어내기까지는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1985년 2월 총선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공약을 내세워 돌풍을 일으킨 신민당은 12대 국회를 개헌 정국으로 이끌었지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반대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명운동에만 집중해야 했다.

개헌 불씨를 살린 건 시민사회였다. 1987년 1월 서울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은 정권 규탄 반독재 시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13일 ‘개헌 논의를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로 미루고 5공화국 헌법에 따라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겠다’는 이른바 ‘4·13 호헌조치’를 내렸다.


이에 야권과 시민사회 등은 같은 해 5월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호헌 철폐를 주장했다. 6월 민주항쟁의 시작이었다.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은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내용의 ‘6·29민주화 선언’을 발표해 정국을 수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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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민의 관심은 대통령 직선제에 맞춰져 있었기에 정치권 내 합의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연임을 허용할지, 임기를 몇 년으로 할지의 문제였다. ‘5년 단임제’는 3김을 비롯한 각 정파의 이해관계를 절충한 결과였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헌법을 포함한 역대 개헌 과정은 정치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됐다”며 “하지만 국민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이번 개헌 논의는 과거에 비해 논의 과정이 훨씬 복잡하고 조정이 쉽지 않아 개헌에 소요되는 시간이 몇 배 더 걸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개헌#제6공화국#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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