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된 전주 쪽방 여인숙에 불… 폐지-고철 주워 살던 노인들 참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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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펑’ 소리난뒤 불길 치솟아”… 80대 관리인-투숙객 등 3명 숨져
경찰 “방화 가능성 낮아” 원인 조사

19일 오전 4시경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의 한 여인숙에서 발생한 불로 3명이 숨진 가운데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굴착기를 이용해 잔불 정리와 인명 수색을 하고 있다. 전주=뉴스1
19일 오전 4시경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의 한 여인숙에서 발생한 불로 3명이 숨진 가운데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굴착기를 이용해 잔불 정리와 인명 수색을 하고 있다. 전주=뉴스1
지은 지 50년 가까이 된 전북 전주의 한 여인숙에서 불이 나 80대 관리인과 투숙객 등 3명이 숨졌다. 관리인과 한 투숙객은 폐지와 고철을 모아 생계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전북도 소방본부와 전주 완산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경 전주시 완산구 서노송동의 한 여인숙에서 불이 났다. 관리인 김모 씨(83·여)와 장기 투숙객 태모 씨(76), 신원미상 여성 등 3명이 숨졌다. 숨진 이들은 여인숙 내 3개 객실에서 각각 1명씩 발견됐다. 불은 건물 76m²를 모두 태운 뒤 2시간 만에 진화됐다.

목격자 정모 씨(80)는 “새벽에 잠을 자는데 ‘펑, 펑’ 하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와 보니 (여인숙에서) 검은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와 태 씨는 폐지와 고철을 주워 생계를 이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2004년 12월부터 생계·주거급여, 기초연금 등 58만 원을 받고 있다. 이달 14일 덕진구 팔복동의 한 임대아파트로 주소지를 옮겼으나 이날 여인숙에 묵었다가 변을 당했다.

며칠 전 김 씨를 만났다는 한 주민은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며 “김 씨는 법 없이도 살 순진한 사람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씨는 40여 년 전 충남에서 전주에 온 뒤 여인숙 등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주민은 “본래 주인이 10여 년 전 돌아가시면서 김 씨가 여인숙을 관리해 왔다”며 “3, 4년 전부터 폐지와 고철을 주워 와 여인숙 내부와 골목에 쌓아놓고 있었다”고 전했다. 불이 난 현장에는 김 씨 등이 주워 온 폐지와 고철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여인숙 건물은 1972년 사용 승인을 받았다. 지은 지 47년이 된 것이다. ‘목조-슬래브’ 구조로 지어졌고 본체와 객실 11개로 구성돼 있다. 객실 출입문은 나무로 돼 있고 방 하나당 면적은 6.6m² 정도다. 1972년 4월 1일 숙박업으로 영업 신고를 마친 상태였다. 건물이 오래되고 낡아 오래전부터 숙박 영업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당시 주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여인숙을 오고 간 인물은 없었다. 방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신원미상 여성의 신원 확인을 위해 지문을 채취해 분석 중이다.

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전주 여인숙#화재#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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