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례도 없이 앉은 강경화-고노… 외교부 “양국 간극 상당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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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경제보복 파장]냉랭했던 한일 ‘55분 외교 담판’

약 한 달 만에 만나 악수를 나눈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의 얼굴에선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1일 양국 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리는 태국 방콕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위해 만났지만 그 흔한 목례도 하지 않은 채 뻣뻣하게 악수만 나누고 곧바로 회담 테이블에 앉았다.

이처럼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이날 회담은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넘겨 55분간 진행됐다. 그러나 결국 양국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이로 인해 촉발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이견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일 갈등을 진화하기 위한 일종의 ‘중재안’을 내놔 상황이 호전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으나, 한일 간 ‘1차 방콕 담판’은 일단 성과 없이 끝난 것이다.

○ 외교당국 “현재로선 2일 화이트리스트 배제 가능성 상당히 높아”


강 장관은 회담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일본이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실제로 취할 경우 양국 관계가 심각한 수준으로 손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고노 외상에게) 각의 결정이 나온다면 우리로서는 필요한 대응 조치를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외교당국자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이) 배제될 경우 양국 관계가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가져온 ‘국제법 위반 상황’이 시정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사이토 준 일본 외무성 부대변인은 1일 외신 브리핑에서 “회담의 주 의제는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강제징용 문제)였다”며 “고노 외상은 한국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가 일본 측이 공식적으로 주장해온 안보상의 우려 때문이 아닌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것을 사실상 시인한 것. 사이토 부대변인은 “(갈등 해결은) 전적으로 한국 측에 달렸다”고도 했다.

일본이 이렇게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자 외교당국은 일본이 2일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그대로 취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외교당국자는 “일본 측 입장에 큰 변화가 없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강행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회담이 끝난 뒤 “일본의 수출규제가 안보상의 이유로 취해진 것이었는데,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이뤄진다면) 우리도 여러 가지 한일 안보의 틀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연장 기한이 24일로 다가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파기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 “美 중재안도 한일 간에 구체적 논의 안 돼”


미국이 한일 갈등을 진정시키기 위한 중재안으로 ‘현상동결 협정(standstill agreement)’을 제시했다는 보도와 관련해선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외교당국자는 “(미 측의 중재안과 관련한) 구체적 얘기는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핵 문제 등 안보 이슈를 고리로 한 한미일 3각 공조의 중요성은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외교당국자는 “북한 관련 상황에 대해 의견이 교환됐다. 긴밀한 제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일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며 논의의 진전을 보지는 못했지만 한일 양측은 추후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사이토 부대변인은 “상황이 엄중할수록 상호적으로 위기를 관리하고 해결하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측 외교당국자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지시켰다”고 말했다. 양국 장관은 회담의 마지막 5분가량은 통역 없이 영어로 직접 대화하기도 했다.

방콕=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강경화 외교부 장관#고노 다로 외상#한일 외교장관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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