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서동일]한 입양인의 죽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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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산업부 기자
서동일 산업부 기자
대한민국 눈과 귀가 모두 충북 제천으로 쏠렸던 21일, 경남 김해에서 노르웨이 국적의 한 남성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 숨이 끊어진 뒤 약 열흘 지난 뒤였다. 그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고시원 관리인이었다. 사망자 Y 씨(45)는 1980년, 여덟 살에 해외로 입양된 입양아다.

그는 겉모습만 한국인이었다. 한국말을 못했고, 한국에 연고도 없었다. 그런 그가 2013년 무작정 한국을 찾아온 이유는 오직 친부모를 찾겠단 한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모국을 떠난 지 33년 만이었다. 그러나 친부모를 찾는 ‘기적’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낸 5년 동안 얻은 것이라곤 부모의 흔적도, 새로운 인연도 아니다.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찰은 Y 씨가 생전 마음의 병을 앓았다고 설명했다. 모국에서 5년 동안 헤매며 얻은 것은 이뿐이었다. 죽기 전 남긴 유서도 없었고, 그 대신 술병만 차가운 원룸 바닥을 채웠다. Y 씨는 그를 떠나보낸 나라로 스스로 돌아와 가구라고는 침대와 책상뿐인 월세 20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Y 씨 소식을 접한 뒤, 5년 전 이맘때 서울동부지법 재판정에 섰던 피고인 강용문 씨(41)를 떠올렸다. 미국 이름은 트래비스 마이클 더들리, 그 역시 1983년 6세 때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아다.

강 씨는 한국에서 무거운 죄를 저질렀다. 서울 워커힐호텔 카지노 화장실에서 일본인을 때리고 돈을 빼앗았다. 학대와 폭력을 일삼았던 양부모가 남긴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 돌아왔지만 실패했고, 결국 술과 도박에 빠졌다. 그는 당시 최후변론에서 “양부모는 음식에 술을 탔고, 불붙인 성냥을 쥐게 하는 등 나를 학대했다. 한국에서 입양아를 돕는 모임에도 참석하고 적응하려 애썼지만 말이 안 통해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기억 탓에 난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습관처럼 찾아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거듭된 입양과 학대 속에서 자란 점을 들어 형량을 줄였다. 징역 3년 6개월 형. 그리고 지난해 5월 강 씨는 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사랑과 보살핌 대신 학대와 폭력을 준 양부모, 함께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마약과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두 동생에 대한 기억이 뒤섞인 그곳에서 강 씨는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것이다.

해외로 보내진 입양아 중 상당수는 태어난 나라, 살고 있는 나라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해외에 입양됐지만 현지 국적을 얻지 못한 입양인만 지금까지 2만6000여 명(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 전 해외 입양된 16만5305명 중)에 달한다. 100명 중 15명의 아이가 무국적자가 됐다니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매년 300∼400명의 아이가 해외로 보내진다. 마구잡이식 해외입양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입양아 출신 장관, 의사 등 성공 사례에만 관심을 기울인 미디어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올해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강 씨 소식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강 씨를 비롯해 한국을 떠난, 혹은 한국에 친부모를 찾기 위해 돌아온 이들의 연말이 올해는 따뜻했으면 한다는 인사를 지면을 빌려 전한다.

그리고 ‘무연고 사망자’가 돼 외롭게 생을 끝낸 Y 씨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서동일 산업부 기자 dong@donga.com
#입양인#해외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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