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설마가 사람 잡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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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개구리가 뛰어가고 뱀이 그 뒤를 쫓고 있었다. 개구리는 빠르고 뱀은 느릿느릿하기 때문에 형세로 보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개구리는 처음에는 거의 한 길씩 되게 뛰다가도 잠시 뒤에는 문득 서버리곤 하였다. 그 때문에 뱀이 곧바로 따라잡아서 개구리를 물었다. 이것을 보고 나는 말하였다.

“개구리는 빨라서 재앙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결국은 뱀에게 먹히고 말았으니, 이는 그 마음이 해이해져서 그런 것이다. 재앙과 근심이 찾아오는 것은 대부분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웃의 적국이 밖에서 엿보고 있는데 안일한 태도를 취하면서 요행으로 벗어나기만을 바라는 나라의 경우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國爲隣敵外|, 而以姑息冀其倖免者, 似之矣)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 선생의 ‘관물편(觀物篇)’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관물편’은 선생이 농촌 생활을 하면서 직접 보고 겪은 일에서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그 교훈을 서술한 글입니다. 선생이 들길을 가다가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광경을 본 모양입니다. 개구리는 펄쩍펄쩍 잘 뛰기 때문에 뱀에게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는데 끝내 잡아먹힌 것을 보고는 그 이유가 바로 ‘방심’에 있다고 진단을 내립니다. 괜찮겠지?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이런 마음이 문제라는 겁니다. 다음 이야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처마에 있던 거미가 거미줄을 치면서 아래쪽 풀 끄트머리에 붙어 있었다. 개구리가 와서는 은밀하게 엿보고 있다가 뛰어올라 잡아먹으려 했으나 놓치고 말았다. 거미는 놀라서 달아나 숨었지만, 여전히 개구리가 계속해서 엿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살펴보니 거미줄은 완성되었으나 거미는 없었다. 이것을 보고 나는 말하였다.

“위태로운데도 경계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몸을 죽일 수 있다. 이것이 어찌 미물에게만 해당되겠는가.”(危而不戒, 足以殺軀, 奚獨物哉?)

나라 안팎으로 위기입니다. 어떤 분은 지금이 열강의 각축 속에 휩쓸리다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야 만 구한말의 상황과 똑같다고 우려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는데? 우리 국민들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데? ‘설마’ 그런 상황이 다시 오겠어? 이러는 순간 그 우려는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성호 이익#관물편#설마가 사람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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