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현실과 이상의 괴리 ‘9시 등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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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혁신학교인 경기 의정부여중 학생들이 어제부터 오전 9시 등교를 한다. 의정부여중 학생들은 올 6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에게 9시 등교를 제안했고 학부모와 교사의 의견수렴을 거쳐 시행에 들어갔다. 건강과 수면도 중요하지만 중소도시 학교로서 원거리 통학의 어려움도 9시 등교를 선택한 배경이다. 이 교육감은 의정부여중을 필두로 경기도 공립학교의 9시 등교를 밀어붙이려는 모양이다.

생체리듬상 나이든 어른들이 주행성(晝行性) 종달새라면 청소년은 야행성(夜行性) 올빼미다. 청소년기엔 잠을 부르는 멜라토닌이 성인보다 2∼4시간 늦게 분비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던 ‘새 나라의 어린이’도 10대가 되면 밤에 잠들지 못하고 늦게 기상한다. 성인이 되면 체내 시계가 바뀌어 다시 일찍 일어날 수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미국 영국의 일부 학교들이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등교시간을 늦추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금년 3월 등교시간을 늦춘 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고 폭력 알코올 마약 우울증 교통사고 등 각종 지표가 개선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러니 청소년의 아침잠과 아침밥을 보장하겠다는 이 교육감을 이념적 잣대로 비난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9시 등교가 한국적 환경과 교육 현실에 맞는가이다. ‘4당5락’이란 말이 있다. 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다. 대학 합격을 위해서는 잠을 희생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던가. 키 큰 명문대생이 드문 걸 보면 수면시간은 학업성취도와 반비례하는 것 같다. 키 165cm인 한 의사는 내게 “대학(서울대) 다닐 때는 내가 작은 줄 몰랐다”며 웃었다. 9시 등교는 잠을 충분히 잤을 때 얻는 가치, 예컨대 발육개선 수업집중도 향상 등이 잠을 희생했을 때의 가치보다 크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아쉽게도 이 교육감의 9시 등교 정책은 학부모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고 이런 일방적 정책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교육감을 뽑아준 건 아이들이 아니다. 학부모의 의견은 자녀 연령대에 따라 갈린다. 초등생 학부모들은 지지와 반대가 절반가량 되는 듯한데 고교생 학부모들의 민심은 폭발 직전이다. 청소년의 수면주기가 어떻든 고교생들은 지금까지 8시 등교에 적응했고 학교 수업시간에 맞춰 대학수학능력시험도 8시 20분에 시작한다. 9시 등교는 지금까지의 신체리듬과 생활패턴을 흔들게 된다. 맞벌이 가정의 어려움은 논외로 치더라도 경기도만 9시 등교를 하면 입시경쟁에서 손해 볼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청소년의 특성상 30분 더 자게 해봤자 그만큼 잠드는 시간만 늦어질 뿐이라는 주장도 일리 있다. 9시 등교는 초등학교만 시행하되 중고교는 자율에 맡기는 것이 그나마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이 될 것 같다.

9시 등교는 단순히 등교시간을 늦추는 문제가 아니라 가정 학교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파괴력을 갖는 이슈다. 진보 보수로 갈라졌던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과는 달리 9시 등교는 ‘현재의 본능’에 충실한 자녀와 ‘미래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학부모가 충돌하는 접점이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9시 등교로 인한 학업성취도, 발육상태, 학교폭력 등의 지표 변화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들의 아침잠을 조금이라도 더 재우고 싶은 엄마로선 긍정적 결과가 나오기를 고대한다. 그럼에도 기자로선 이상과 현실이 다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9시 등교는 교육감이 주도하고 있지만 좋든 나쁘든 그 결과는 학생이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 경기도 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둔 필자의 고민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혁신학교#경기 의정부여중#9시 등교#이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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