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박근혜 정부, 노동문제 회피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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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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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풀어야 할 가장 터프한 과제는 뭘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겠지만 대북 관계 다음으로 복잡한 건 노동 문제가 아닐까 싶다.

노동 분야는 사업자와 노동자 간 이해관계 충돌이 첨예하다. 노동 현장에선 전쟁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도 벌어지고, 생사(生死)가 갈리는 경우도 있다. 회사로부터 158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뒤 자살한 한진중공업 근로자나 160일 넘게 철탑 고공 농성을 벌이는 현대자동차 하청 근로자의 경우가 그렇다.

無노동 정부

게다가 노동계와 박 대통령의 인연은 별로 좋지 않다. 지난해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은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다 유가족과 쌍용차 농성자들의 저지로 물러났다. 심지어 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이를 비관한 두 명의 농성 근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일각에선 새 정부에 노동정책이 안 보인다고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 과제나 대통령 취임사에서 노동문제에 대해 아무 말이 없고, 청와대와 내각에도 노동 전문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문제 전공이고, 최성재 대통령고용복지수석비서관은 복지 전문가다.

쪽방촌이나 재래시장 등 민생 현장을 자주 찾는 박 대통령이지만 비관 자살이나 질병으로 여러 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은 농성 현장엔 가지 않았다. 노동계에서 박근혜 정부를 ‘무(無)노동 정부’라고 하는 이유다.

하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출발한 이명박 정부와 달리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겠다고 약속한 박근혜 정부가 노동 문제를 피해 갈 수는 없다. 창조 경제나 일자리 창출이란 구호는 장밋빛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반면 근로조건에 관한 문제는 서민의 피부에 직접 와 닿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아직까지 법 적용은 노사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균형을 잡아 왔다. 이마트의 부당노동행위 혐의와 관련해 검찰은 사상 유례없이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여수 대림산업 폭발 사고와 관련해서도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기업의 불법 행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노사자율’ 및 ‘법과 원칙 중시’라는 두 가지 원칙을 밝혀 노동계를 긴장시켰다. 노동계는 그동안 정부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 회사 편을 든다는 의심을 해 왔다. 한진중공업 사태나 용산 철거민 참사처럼 법과 민생 혹은 체감적 정의(正義)가 멀어 보인다면 그 사회는 위험한 사회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을 가혹하게 처벌한 것도 법의 이름 아래였다. 법의 적용이 노사 모두에 공정하다는 믿음을 얻는 일은 중요하다.

노동관계법 개선해야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이미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대여서 노조가 노동자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 비정규직은 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나쁜 여건에 놓였으면서도 노조 활동 바깥에 있다. 이들의 처지를 개선하려면 기존 노사관계로는 어림없다. 시대 변화에 맞게 노동 관계법을 고쳐야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며,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고…. 박근혜 정부가 공약한 내용들이다. 하나하나가 실천하기 만만치 않다. 근로자를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박근혜 정부가 노동문제에 무심하다는 오해를 벗기 바란다.

국민의 삶이 나아지려면 복지만으론 안 된다. 좋은 일자리가 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일자리 창출만 강조하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는 이명박 정부 식의 일방통행으로 빠지기 쉽다. 노사 간 힘의 균형에 대한 고려를 빠뜨려선 안 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박근혜 대통령#고용노동부#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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