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저격,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지시

  • 입력 2006년 3월 5일 16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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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저격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직접 지시한 것이며, 배후 공작을 벌인 불가리아 첩보원이 저격 현장에 있었다고 2일 이탈리아 의회 조사위원회가 주장했다.

조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브레즈네프 전 서기장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자신이 태어난 폴란드에서 일어난 공산권 최초의 자유노조 '연대'를 지원한 데 불만을 품고 소련군 정보국(GRU)에 교황 암살을 지시했다.

당시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의 주축인 폴란드에서 자유노조가 일어난데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따라 GRU의 지시로 옛 동독과 불가리아 정보기관이 함께 공작을 폈고, 바티칸 주재 불가리아 첩보원 세르게이 안토노프가 터키인 전문살인범 알리 아그자를 사주해 1981년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신자를 접견하던 요한 바오로 2세를 저격했다는 것.

보고서가 제출한 저격 당시의 사진을 보면 안토노프는 신자들 틈에 끼어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불가리아항공 임원으로 있던 안토노프는 콧수염에 안경을 끼고 변장했다.

저격범 아그자는 배후가 누구인지 끝내 밝히지 않았다. 그는 소련 불가리아 등을 언급했다가 나중에 번복했다. 2000년까지 이탈리아 교도소에서 복역한 뒤 터키로 이감된 아그자는 1월 석방됐을 때 배후를 밝힐지 모른다는 기대를 모았으나 과거에 터키 언론인 압디 이펙치를 살해한 혐의로 재수감됐다.

소련 연루 의혹은 과거에도 제기됐으나 입증되지 않았다. 1991년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KGB 연루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국가안보위원회(KGB)가 아니라 GRU를 지목하고 있어 관심이다.

보고서는 1992년 영국으로 망명해 소련 첩보원의 서방 내 암약상을 폭로한 KGB 출신의 이중간첩 바실리 미트로킨의 이름을 딴 미트로킨 위원회가 작성한 것. 미트로킨과 프랑스의 반(反) 테러 수사검사로 테러범 카를로스 자칼을 수사한 장 루이 브뤼기에르 씨의 정보가 보고서 작성에 기여했다.

안토노프의 변호인 주세페 콘솔로 씨는 "사진 속 인물은 안토노프가 아니라 헝가리 출신의 미국인 관광객"이라며 "사진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토노프는 당시 살인기도 혐의로 체포됐으나 증거 부족으로 1986년 석방됐다.

조사위원장 파올로 구잔티 상원의원은 "당시 기술로는 변장한 안토노프임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최신 기술로 안토노프의 다른 사진과 대조해본 결과 그라는 사실이 100% 확실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보수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측근인 구잔티 의원이 가톨릭교회에 적대적인 이탈리아공산당을 공격하기 위해 사건조사를 시작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해 서거 직전 출간된 자신의 저서 '기억과 아이덴티티'에서 "아그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저격을 계획하고 사주했다"고 주장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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