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나종갑]中企기술보호법 개정안, 문제 많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나종갑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나종갑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중소기업기술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중소기업기술이 영업비밀이 아니더라도 비밀유지계약 위반이나 부정취득 등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하고, 행정구제를 강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중소기업을 보호하기보다 되레 망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독점에 대한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특허제도는 라이선스를 장려하여 기술을 확산·진보시키고, 독점기간이 끝난 후에는 새 기술개발의 밑바탕이 되어 사회 전체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영업비밀은 기술의 사회적 확산과 친하지 않다. 영업비밀은 타인에게 이전되면 이를 회수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와 루트128 지역이 좋은 예다. 19세기에 이미 섬유, 군수, 기계산업이 발달했던 루트128 지역은 1861년 설립된 매사추세츠공대(MIT) 인력을 바탕으로 보스턴 외곽의 128번 도로를 따라 형성됐다. 그보다 훨씬 늦게 1937년 휼렛패커드의 창업으로 시작된 실리콘밸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성장했다. 실리콘밸리는 첨단기술과 벤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지만 루트128 지역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두 지역의 흥망성쇠의 열쇠는 영업비밀 보호와 관련된 법적 제도의 차이에 있다. 루트128 지역이 속한 매사추세츠는 영업비밀보호법에 따라 기업을 떠나는 종업원에게 상대적으로 강한 영업비밀 유지를 강제했다. 이에 그 지역에서는 창업이나 전직이 자유롭지 못했고 경쟁도 적었다. 캘리포니아에도 영업비밀보호법이 존재하지만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실리콘밸리에서 일한 젊은이들은 전직이나 창업하더라도 이전에 일하던 기업에 대한 경업금지의무로부터 자유로웠다.

정부는 대학생들에게 조기 창업을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되면 이제 대학생들에게 중소기업에는 취업하지 말고, 일단 취업을 하면 전직이나 창업을 하지 말도록 교육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비밀유지계약에 서명했다가 퇴직 후 이를 사용하면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앞으로 중소기업에 취업하려는 좋은 인력은 없어지고 중소기업은 인력난과 경쟁력 저하로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이 법안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죽이는 칼이 될 것이다.

나종갑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정#중소기업기술 보호 지원 개정안#중소기업기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