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현무]해외건설 역군들의 희생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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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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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무 대한토목학회장 서울대 교수
고현무 대한토목학회장 서울대 교수
페루의 카라바야 수력발전소 공사 참여를 위한 조사차 현장을 방문했던 우리 건설기술 관계자 8명이 헬기 추락사고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회사별로 차려진 분향소에 조문객의 행렬이 이어지는 모습에서 이들의 죽음을 애석해하는 국민적인 분위기가 읽혀졌다.

우리 기업들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미국과 일본, 유럽의 경쟁업체를 따돌리고 해외건설 및 자원개발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것은 이런 분들의 뜨거운 열정과 희생정신에 힘입은 것이다. 해외건설의 첨병들은 중동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오지와 험한 지형을 누비며 발전소와 철도, 도로 등 건설사업에 매달려 왔다.

그 과정에서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치안이 불안하거나 내전이 벌어지는 나라에서는 감금, 약탈, 납치 등 신변의 위협을 무릅써야 했다. 그러면서도 상대국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현장을 지키며 공사를 강행했던 경우가 적지 않다.

해외건설 역군의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에도 악천후 속에서 시간을 다투며 비행을 하다가 안데스 고산지대에 헬기가 추락하고 만 것이다.

국내 건설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건설 시장은 우리 경제의 유일한 탈출구일 수 있다.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 5000억 달러라는 눈부신 금자탑의 위용이 그것을 말해준다. 우리 건설업체가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 이래 피와 땀을 흘리면서 쌓아올린 실적이다.

해외건설 수주액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06년 18조 원대에서 지난해에는 65조 원 규모를 넘어섰으니 5년 만에 무려 3배 이상으로 급증한 셈이다. 해외수출 품목도 이미 반도체, 자동차, 조선을 따라잡고 단일품목 1위를 지키고 있다. 국내건설 규모에 비해서는 수주액이 60%에 불과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추세로 미뤄보면 해외 부문이 국내 부문을 조만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참사가 빚어진 페루의 수력발전소 공사도 총사업비가 1조9000억 원이나 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안데스산맥 주변 남미 국가들에 한국의 수자원 토목건설 기술을 수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은 해외건설 산업전선의 순교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토목건설 사업을 비하하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해 무척 유감이다. ‘삽질경제’ 또는 ‘토건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토목건설업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얘기도 들린다. 몇몇 토목건설사업이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괄적으로 폄하하는 시각은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에선 한국이 토건국가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그 우월적인 개념으로 복지국가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올바른 인식은 아니다. 도로나 상하수도를 포함한 인프라의 구축이 복지의 첫 출발이고, 이를 실현하는 게 토목건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내외 건설사업 현장에서 70만 명에 이르는 건설인이 불철주야 뛰고 있다. 우리 경제를 위하고 국가를 위한 이런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하고 또 이어질 것이다. 이번 페루 헬기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고현무 대한토목학회장 서울대 교수
#페루#해외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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